옛신앙  2005년 12월 25일 [제9권 52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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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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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때가 이르리니"

디모데후서 4:1-5, ". . .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진리는 세상 풍조에 물들지 말고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교훈합니다(유 21). 특히 배교(背敎)의 시대에는 성도들이 더욱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사랑하는 영적 아들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 유언적 교훈으로 디모데후서 편지를 쓰면서 본문에서 세 가지 교훈을 남겼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전파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요, 셋째는 그러나 너는 고난을 견디며 네 직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우리 모두에게도 교훈이 됩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말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여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본문 3절에 나오는 '바른 교훈'과 같은 것입니다. '바른 교훈'이라는 원어(휘기아이누세 디다스칼리아)는 '건전한 교훈, 부패되지 않은 순수한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전도자들이 전해야 할 바른 교훈은 선지자들과 사도들로부터 전달된 순수한 역사적 기독교 진리이며 그것은 신구약 66권의 성경책에 밝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바른 교훈의 주요 내용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주 되심입니다. 사람이 죄로부터 구원을 얻을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구주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주신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얻습니다.

또 성경이 증거하는 바른 교훈의 중요한 한 내용은 죄를 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죄는 인간의 불행의 근본 원인이며 하나님의 명령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죄를 회개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성경이 증거하는 바른 교훈의 중요한 내용 하나는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심 즉 그의 재림의 진리이며 그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천국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맨 마지막 진리는 주의 재림에 관한 진리입니다(계 22:20). 우리는 재림 중심, 천국 중심, 내세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고후 4:18).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 곧 바른 교훈을 전파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엄숙한 명령입니다. '전파하라'는 것은 선포하라는 뜻입니다. 전도는 사람들이 그것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좋아하든지 안 좋아하든지 관계치 말고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항상 힘쓰라'는 헬라어는 '즉각적으로, 절박하게 힘쓰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많은 죄인들은 영원한 멸망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에는 적절한 때나 적절하지 않은 때가 따로 없습니다.

또 '범사에 오래 참으라'는 말씀은 전도의 일이 어려운 일임을 암시합니다. 사탄은 자기 권세 아래 있는 죄인들을 순순히 내어놓지 않으며 때때로 핍박과 고난으로 방해합니다. 또 전도의 결실이 금방 보이지 않고 오히려 때때로 전도로 믿은 자들의 연약한 모습이 보입니다. 이 모든 일이 전도자를 낙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전도자는 범사에 오래 참으며 이 일을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교회에 주신,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엄숙한 명령, 하나님의 최고의 명령입니다. 교회에서 이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최고의 명령인 전도를 위해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드리며 이 일을 위해 기도하며 이 일을 위해 물질로 후원해야 합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 때가 온다고 말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여기에 전도자의 고충이 있고 전도의 난관이 있습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교회가 곳곳에 세워졌다고 해서, 세상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은 영적으로 어둡고 어려운 날이 있을 것을 예언합니다. 물론, 역사상 부흥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속화되고 교인들이 영적으로 침체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본문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 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하며 듣지 않고 그것을 재미 없다고 말하는 시대가 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적 재미 때문에 듣고 받는 것이 아니고 진리이니까 읽고 듣고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또 본문은 사람들이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귀가 가렵다'는 말은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귀를 즐겁게 하는 말들은 영적이지 않고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말들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선생들을 좋아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또 본문은 사람들이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들을 좇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허탄한 이야기'라는 헬라어는 '신화들' 혹은 지어낸 이야기들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적 이야기들이 여기에 속하고 확실한 근거가 없는 예화들이나 진실치 못한, 과장된 간증들도 이런 류에 속합니다. 이것들은 재미는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 무익하고 무가치한 것들입니다.

교회가 바른 교훈을 싫어하면 참 경건을 잃어버리고 배교에 떨어질 것입니다. 교인들은 성경 읽기를 싫어하고 성경 연구하기를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옛날 사사시대와 같이 교인들이 각각 자기 생각대로 믿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교리와 윤리의 주요한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을 포용하는 풍조가 바로 그런 경향입니다.

교인들은 참 경건과 도덕성을 버리고 죄의 낙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죄에 대한 지적을 싫어할 것입니다. 또 내세에 대한 소망도, 진리를 위해 고난을 참는 것도 없어지고 교인들은 오직 현세적 복만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현세중심적이고 세상중심적이고 물질중심적이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오늘날 어떤 유명한 목사들은 목회에도 상업적 마케팅 전략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마케팅에서 고객이 왕이듯이, 그들은 목회에서 교인들을 왕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취향에 모든 것을 맞추려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왕은 교인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또 성경은 우리에게 절대 권위의 기준입니다. 목회는 마케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목사들이 교인들을 성경말씀에 맞추려 하지 않고 교회를 교인들에게 맞추려 하는 것은 순전히 인본주의요 그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 시대의 잘못된 풍조들을 분별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롬 12:2). 또 우리는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분별해야 하고(요일 4:1) 또 굳게 서서 성경에 증거된 사도적 교훈을 파악하고 지켜야 합니다(살후 2:15).

셋째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난을 견디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악한 시대에도 전도자는 자기 직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본문의 네 마디는 다 명령어입니다.

첫번째 명령어는 '모든 일에 근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깨어 있고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시대의 풍조에 물들고 영향을 받아 타협하고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그렇지 않으려면 우리는 날마다 진지하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연구하고 힘써 기도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두 번째 명령어는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시대에 부름을 받은 전도자들의 마음가짐이어야 합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의 순교의 시간이 가까움을 예견하면서 유언적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하나님의 참선지자들은 항상 핍박을 받았고 죽임까지도 당했습니다(행 7:52). 장차 마귀의 종들이 세력을 얻고 악한 자들이 앞장서서 분주히 오가며 무지한 군중들이 그들을 지지하는 시대가 올 텐데, 그런 시대에는 주의 참된 종들이 고난도,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명령어는 '전도인의 일을 하라'는 것이고, 네 번째 명령어는 '네 직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인의 일은 전도하는 일, 즉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며 경책하며 경계하고 권면하는 일입니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전도자는 이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이 직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여기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전도자는 골고다의 길, 곧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낙심치 말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이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전도자는 특히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을 변질시키거나 사람들의 기호나 취향에 맞추어 절충시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은 하나님의 뜻을, 그 뜻만을 충실히 선포해야 합니다. 그는 인간의 현실에 절충하거나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낙망치 말고 바른 말씀을 가감 없이, 타협 없이, 충실히 전파해야 합니다.

전도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13, 14).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딤후 3:12). 우리는 고난을 각오하며 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교훈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어떠합니까? 교인들이 바른 교훈을 좋아하는 시대입니까, 이 예언의 말씀처럼 바른 교훈을 싫어하는 시대는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바른 교훈을 좋아하십니까? 바른 교훈을 싫어하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 교회의 입장과 방향은 무엇입니까?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우리 교회와 강단은 바른 교훈을 성실히, 계속 선포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진리들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기호와 취향에 맞출 것입니까? 부디, 하나님께서 긍휼과 능력을 베푸셔서 우리 교회는 끝까지 바른 교훈만을 성실하게, 힘있게 전파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시대의 잘못된 풍조들을 분별하며 배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바른 말씀, 바른 교훈, 성경적 기독교를 분별하며 확신하고 순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다 고난을 각오하며 바른 길 가기를 원합니다. ------------------------------------------------------------------------------------

교리강해:                                                         "성도의 견인(堅忍)"             

성도의 견인(堅忍, perseverance; 끝까지 견딤)은 예수 믿고 구원얻은 사람이 은혜의 상태 안에서 끝까지 견디어 영광에 이른다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1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으시고 그의 영으로 효력있게 부르시며 거룩케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떨어져 버릴 수 없고; 그 안에서 확실히 끝까지 견디며,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성도의 견인의 진리는 다른 말로 구원의 보장에 대한 진리이다. 어떤 이들은 구원의 보장에 대한 진리란 없고 구원은 신자가 끝까지 지킬 때만 유지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의 보장에 대해 가르친다.

성도의 견인(堅忍, 끝까지 견딤)을 명백히 가르치는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0:27, 28,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 . .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로마서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빌립보서 1:6, "너희 속에 착한 일[구원의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고린도전서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데살로니가후서 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디모데후서 1: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구원의 일을 포함함]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후서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이런 명백한 구절들 뿐만 아니라, 성도의 견인 교리를 지원하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택의 불변성이다. 로마서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에독사세 ?δ?ξασε)은 부정과거시제로서 미래의 확실한 사건을 나타낸다. 예정된 자들은 남김없이 다 영화롭게 된다.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디모데후서 2:19,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중보의 완전성이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 .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요한복음 6:39, ". .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로마서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 8:38, 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 . .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셋째는 성령의 인치심이다.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에베소서 1:13, 14,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를 바라며 그를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는 그 얻으신 것의 구속(救贖)의 때까지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재번역). 에베소서 4:30,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인치심'은 보증이다. 이렇게 보증된 자들은 중도에 실패할 수 없다.

천국의 기업을 약속하심도 이와 관련된다.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베드로전서 1:3, 4, ". . .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는 끝까지 견디어 영광에 이를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확신에 대해 가르친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믿음에 본질적 요소인가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견해가 나뉘인다. 어떤 이들은 구원의 확신을 믿음에 본질적 요소라고 보나(카이퍼, 바빙크, 벌코프), 다른 이들은 구원의 확신을 믿음에 본질적이지 않고 단지 믿음의 열매라고 보았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투레틴, 촬스 핫지, 로버트 댑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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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문제:                                               사립학교법 문제

["자립형사립고 운동장에서 바라본 사립학교법," 조선일보, 2005. 12. 13, A35쪽.]

자립형 사립고인 전주 象山高(상산고)의 재단 이사장 홍성대씨는 열린우리당의 밀어붙이기로 사학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후 “학교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참고서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 이사장은 2003년 상산고가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한 이후 施設(시설) 투자비로만 개인 돈 220억원을 넣었다. 81년 상산고 설립 후 지금까지 들어간 돈은 1000억원은 될 것이라고 한다. “자립형 사립고 지정을 받아 전국에서 학생을 뽑을 수 있어 신바람이 났고 그래서 그 후 제대로 된 학교 한번 만들어 보려고 다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 써왔다”는 것이다. 지금도 8층짜리 여학생 전용 기숙사와 1500명을 수용하는 체육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사실 상산고를 제대로 된 학교로 만들기 위해 투자한 액수는 지방에서 웬만한 대학을 만들 수도 있는 돈이다. 이런 학교의 설립자가 학교를 세운 것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내세운 사학법 개정 이유는 非理(비리) 사학의 부패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 비리와 연관돼 관선이사가 파견된 학교는 전국 2077개 사립학교 중 1.7%인 35개교밖에 되지 않는다. 이걸 이유로 사학법을 바꿔 제대로 된 학교 설립자들의 의욕을 꺾어버린 것은 소뿔을 바로잡는다면서 소를 죽여버린 꼴이나 한가지다.

자립형 사립고는 2002년에 세 군데(민족사관고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 2003년에 다시 세 군데(상산고 현대청운고 해운대고)가 생겨났다. 학교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고, 교육과정의 裁量(재량) 폭이 크고, 등록금은 일반 학교의 3배 이내에서 자율로 정할 수 있는 게 자립형 사립고다. 학교다운 학교에서 학생다운 학생을 길러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출범한 것이다.

정말 산자락 2만평을 깎고 돋워 학교로 만든 상산고에 들어서면 校舍(교사)의 배치는 물론이고 그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표정에서까지 설립자의 교육철학과 교육의지가 읽힌다. 상산고는 1, 2학년생들에게 한 달에 두 권씩, 모두 50권의 必讀書(필독서)를 읽게 한다. 서양철학서, 한국과 세계의 문학작품, 음악·미술 분야 교양서적들을 읽은 후 그룹별 주제발표와 토론을 하게 하는 것이다. 2주에 한 번씩은 책의 저자·역자를 비롯한 名士(명사)를 초빙해 강연을 듣는다. 정운찬 서울대총장과 안도현 시인 등이 강사로 나왔다. 횡성의 민족사관고는 국어와 국사를 빼놓고는 모든 과목 강의를 영어로 한다. 국내 서적 50권, 영어 원서 50권을 읽지 않으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 학교다. 민족사관고는 동아리가 83개나 돼서 학생 1명당 평균 4개씩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자립형 사립고들의 방과 후 강좌는 학생이 자기 수준에 맞는 강의를 골라듣는 선택형 강좌다. 상산고가 연간 개설하는 337개의 방과 후 강좌 중에선 학생 한 명이 듣는 강의도 있고, 두 명이 듣는 강의도 있다. 울산의 현대청운고도 같은 방법으로 올 2학기에만 97개의 특강을 개설했다. 해당 강의에 몇 명이 신청하느냐로 교사 실력이 평가받는다. 상산고는 87명의 교사 중 14명이, 민족사관고는 66명 교사 중 28명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실력이 엇비슷한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기 때문에 학생 간 선의의 경쟁에다 선생님 사이의 의욕의 경쟁이 함께 이뤄진다. 교육 성과가 클 수밖에 없다. 작년 4월 상산고의 1학년생들이 치른 전국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받은 비율이 언어 26.8%, 수리 49.3%, 외국어 34%였다. 그 학생들이 2학년이 돼서 치른 지난 9월의 모의고사에선 1등급이 언어 45%, 수학 48(이과)~76%(문과), 외국어는 64%로 늘어났다. 학부모 임연좌씨는 “부모가 열 마디 해도 안 되는 게 자녀 교육인데 아이들이 친구끼리 서로 자극을 받으면서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학교생활에 행복해 한다”고 말했다.

자립형 사립고의 설립자, 교직원, 학생, 학부모의 의욕과 기대에 찬물을 끼얹어버린 것이 2008년부터 실시한다는 새로운 內申(내신) 방침이다. 현대청운고 3학년의 경우 올 3월 전국 모의고사에서 인문계 64명 중에서 56명(88%)이 1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 56명 가운데 바뀌는 대학입시 내신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은 3명뿐이다. 현대청운고 1학년생 중 지금까지 17명이, 상산고 1학년생 31명이 다른 학교로 전학간 것은 그런 불이익을 피해서다.

교육부 자문기구인 ‘자립형사립고 제도협의회’는 최근 자립형 사립고의 확대를 보류하자는 건의를 했다. 그리고 국회는 일부의 사학에 비리가 있다며 사립학교법을 통과시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뤄진 이 두 가지 조치만큼 오늘의 대한민국 교육철학을 대변하는 것은 없다. 앞서가는 사람의 다리를 잡아끌어 ‘균형’을 맞추고 높이 솟아올라보겠다는 사람의 의지를 내리눌러 ‘평등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권은 그것이 ‘무의미한 균형’이고 ‘共滅(공멸)의 평등’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채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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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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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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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