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5년 5월 29일 [제9권 22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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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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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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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은사주의를 경계하라" 누가복음 16: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도 시대에 방언, 예언, 병고침 등 초자연적, 기적적 은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도 하셨고 또 사도들이 전한 구원의 복음을 확증하기도 하셨습니다(막 16:20). 기적 행함은 사도의 표이었고(고후 12:12) 하나님께서 복음을 확증하시는 도구이었습니다(히 2:4). 그러나 교회 역사는 하나님께서 사도 시대 이후에 초자연적, 기적적 은사들을 거두어 가셨음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20세기 초 미국에서 어떤 이들이 성경 말씀의 교리적, 도덕적 교훈으로 만족하지 않고 방언을 간절히 사모하다가 방언 같은 현상을 체험했고, 그것이 오순절 교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 온 세계에 초자연적, 기적적 은사들, 즉 방언, 예언, 병 고침 등의 은사들을 추구하고 또 주장하는 이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움직임은 오순절 교파뿐 아니라 기존하는 교파들 속에서도 일어났고 심지어 천주교회 속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이런 움직임을 은사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누가복음 16장과 고린도전서 1장과 13장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몇 마디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누가복음 16:19-31에는, 주 예수께서 하신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이야기에서 예수께서는 첫째, 부자도, 거지도 언젠가는 다 죽는다는 것과, 둘째, 인간이 죽은 후에는 즉시 그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가든지 아니면 지옥으로 내려간다는 것과, 셋째, 인간이 죽어 일단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 후에는 자신의 거주지를 변경할 수 없다는 것과, 넷째, 인간은 죽은 자가 살아나서 권한다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모세와 선지자들, 즉 성경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 등을 증거하셨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네 번째 요점은, 기적보다 성경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증거합니다. 주 예수께서 밝히 증거하신 바와 같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큰 기적이지만, 인간이 그를 본다고 회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전도할 때 회개할 수도 있습니다. 기적은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적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해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주의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영감(靈感)으로 주신 성경 말씀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본문 29절,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1절,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그러므로 성경 말씀보다 기적을 중시하는 태도는 건전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보다 은사를 중시하는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로, 고린도전서 1:22, 23에는, 사도 바울께서 기적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중요함을 증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사도 바울께서 분명하게 증거하신 바와 같이, 성경적 기독교, 곧 참 기독교는 기적을 추구하는 것, 곧 기적주의도 아니고, 인간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 곧 철학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실을 증거하는 도(道)요, 그것을 믿고 죄씻음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 도입니다. 즉 성경적 기독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도(道)인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는 모든 인간의 죄 문제의 해결이 있습니다. 개인도, 온 인류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비하면, 기적이나 초자연적 은사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옛 시대에 많은 기적들을 체험하였으나 구원을 받지 못했고 마침내 멸망을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기적주의가 아니고 속죄의 복음을 믿고 구원얻는 도(道)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신앙보다 은사 체험을 크게 여기는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로,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도 바울이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보다 사랑이 중요함을 증거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방언과 예언과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증거했습니다(1-3절). 즉,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방언, 예언, 병 고침 같은 초자연적 은사들을 체험하거나 그러한 은사들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는 또 사랑의 성격에 대해서도 증거하기를,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남을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4-7절). 또 그는 예언과 방언 같은 초자연적 은사들의 일시적, 부분적, 초보적 성격에 대해서도 증거했습니다. 8-12절,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특히, 10절에 말한 '온전한 것'은 하나님의 충만한 말씀의 기록물인 성경책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신약 성경은 은사들의 부분적, 초보적 성격에 직접적으로 대조됩니다. 사도 시대에 주셨던 방언과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신약 27권에 비하면 매우 부분적이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 은사들에 비해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충만한, 온전한 말씀인 것입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거짓된 신비주의자들을 경계하라고 교훈하면서,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다시 번역하면,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 속에 빛이 없기 때문이니라"고 말했습니다(사 8:20). 거짓된 신비주의는 기록된 성경 말씀에 의해 분별되고 판단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구약 66권은 하나님의 충족한 말씀이며 하나님의 모든 뜻이 이 책에 충만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도 종말 예언의 책인 요한계시록을 쓰면서 마지막 부분인 요한계시록 22:18, 19에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 외에 더하지도 말고 이 말씀들에서 제하지도 말라고 교훈했고, 만일 더하거나 빼면 하나님의 재앙이 그에게 더하여지거나 천국에 참여함이 제하여질 것이라고 엄히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면 됩니다. 성경의 교리와 생활 교훈은 우리에게 충족한 말씀입니다. 그 외에 다른 무엇이 더 필요치 않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유일의 규칙입니다. 우리는 성경적 신앙과 성경적 생활로 충분합니다. 사도 바울은 또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은사들의 일시적, 초보적 성격에 비해 사랑은 영원하며 완전한 인격의 덕임을 증거했습니다. 8절,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도 바울께서 강조하신 바와 같이, 은사보다 귀하고 중요한 것은 사랑의 덕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은사 체험이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고 순종하며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서 유행하는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은사주의는 성경적 기독교가 아닙니다. 성경적 기독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을 믿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고 오직 성경의 교훈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옛 길이며 건전한 길입니다. 우리는 초자연적 은사 체험을 추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귀의 시험에 빠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은 거짓된 신비주의는 구약시대부터 있었습니다(신 13장; 사 8:20). 또 거짓된 신비주의는 신약 시대에도 천주교회에서 있었고 이단종파들에도 있었으며 심지어 오늘날 이방종교들에도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친히 세상의 종말에 거짓된 신비주의가 유행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7:22, 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기독교회에 배교(背敎)가 있고 세상에 불법의 사람의 나타날 것이며 또 거짓된 신비주의가 유행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살후 2:1-8). 데살로니가후서 2:9, 10,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오늘 시대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이나 예언이나 병 고침 등의 은사 체험을 추구하다가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지 말고, 오직 성경적 신앙생활을 힘쓰고 성경적 신앙생활로 만족해야 합니다. 성경적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계시된 바른 교리들을 다 믿고 성경에 증거된 생활 교훈대로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말씀을 다 믿고 성경의 교훈을 힘써 실천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행위는 늘 부족투성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만 붙들며 그의 보혈의 샘에서 날마다 씻음받으며 힘을 얻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위해 힘써 달음질해야 합니다. ----------------------------------------------------------------------- 그 외의 타락한 천사들은 '그[마귀의] 사자들'(마 25: 41),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 혹은 빈번히 '귀신들'로 불리운다. '귀신'(다이모니온)이나 '악한 천사'나 '악한 영'은 다 동일한 존재를 가리킨다. 타락한 천사들의 일부는 이미 지옥에 던지워져 있는 것 같다. 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타타로스)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그러나 나머지 천사들은 지금도 사탄의 지휘 아래 하나님을 대항하여 활동하고 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政事)와 권세와 이 세상의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요한계시록 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쫓기니라." 타락한 천사들의 활동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혼란시키고 대항하는 것이다. 그들은 온 세상에 사상적 오류들, 정신적 문란 및 도덕적 불결을 일으킨다. 타락한 천사들은 본래의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한 성품을 잃어버렸고 더럽고 악하고 거짓된 영들이 되었다. 마태복음 10:1,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며." 열왕기상 22:22,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디모데전서 4:1,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속이는] 영(들)과 귀신(들)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요한일서 4:1, 3,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하나님께로부터 왔는가] 시험하라. . . . 적그리스도의 영."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또 타락한 천사들은 육체의 질병들과 환경적 재난들도 일으킨다. 욥기 1, 2장을 보면, 욥에게 임한 재난들, 즉 재산의 큰 손실과 자녀들의 죽음과 몸에 난 악창은 사탄이 준 것들이었다. 누가복음 9:42,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영]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간질병으로부터] 낫게 하사." 누가복음 13:11, 16, "18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연약의 혹은 질병의 영을 가지고]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 . .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고린도후서 12:7, "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모든 타락한 천사들은 최종적으로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마태복음 8:29, "[귀신들이 가로되]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마태복음 25:41,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성경은 타락한 천사들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어두운 미래의 상태는 고정되어 있다고 보인다. 이 점에 있어서, 천사의 타락과 사람의 타락은 성격상 크게 다르다. 인류의 타락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진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불신앙적 신학자들은 아담의 첫 범죄를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매우 잘못이다. 창세기 3장은 역사적 문체(文體)로 기록된 역사적 내용을 담은 책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전체와 분리시켜 비(非)역사적 내용으로 간주하는 것은 분명히 부정당하다. 또 신약의 여러 구절들은 첫 사람의 범죄 사건을 언급한다. 로마서 5:12, 18, 19,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 . . 한 범죄로 . . .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고린도전서 15: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고린도후서 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디모데전서 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이러한 말씀들은 창세기 3장 사건이 역사적 사건임을 당연히 전제하고 있다. 만일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면, 위에 인용된 신약의 구절들은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또 성경은 인간의 죄와 마귀가 실제로 관련이 있음을 가르친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만일 창세기 3장의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다면, 죄와 마귀의 관련은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증거대로, 죄와 마귀는 관련이 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불순종이었다. 하와는 뱀[사탄]의 유혹에 빠져, 그리고 아담은 아내의 권함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창 2:16, 17)을 어겼다. 창세기 3:6, 11, 17,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 . .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그러나 첫 사람의 불순종의 행위는 교만과 불신앙에도 관계가 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마귀의 말은 인간의 교만을 부추키는 말이었다. 하와는 마귀처럼 교만의 죄에 빠져들어갔다. 또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뱀[마귀]의 말을 따랐고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아내의 말을 따른 것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불신앙과 불신임이었다. 교만과 불신앙은 불순종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영적 공식(公式)과 같다. 불순종은 교만과 불신앙에서 나오며, 순종은 겸손과 신앙에서 나온다.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첫째로, 아담과 하와는 창조될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지혜와 지식과, 거룩과 의를 잃어버렸다. 그들의 본성은 죄악된 경향성 곧 부패성을 갖게 되었다. 둘째로, 그들은 그들에게 본래 없었던 죄 의식과 수치감을 갖게 되었다. 창세기 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3:7, "그들이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세기 3:8,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셋째로, 그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과 하나님과의 복된 교제는 크게 손상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는 자가 되었다. 창세기 3:8,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내어 보내실 수밖에 없으셨다. 창세기 3:23, 24,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 . .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넷째로, 그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많은 수고와 고통을 경험하리라는 선언을 들었다. 창세기 3:16, "내가 네게[하와에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창세기 3:17, 19, "너는[아담은]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 . .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다섯째로, 땅은 그들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다. 창세기 3:17, 18,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 . .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여섯째로, 그들은 마침내 죽으리라는 선언을 받았다. 창세기 3:19,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왜 사탄의 시험을 허용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허용치 않으셨더라면 인류의 불행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기계적으로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셨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인격적 존재로 대우하셨다. 시험 자체는 악이 아니다. 더욱이, 사람은 이 시험에서 자발적으로 순종하였다면 더 영광된 상태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왜 사람의 범죄를 허용하셨는가? 그는 주권으로 그 일을 막으실 수도 있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으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죄를 허용하셨다고 대답할 수 있다. 잠언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9:22,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그의 모든 일은 다 정당한 목적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하나님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로마서 9:14, 2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 . .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말대답]하느뇨?" 역사상,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죄를 물질적 몸의 특질, 진화되지 못한 동물성, 존재의 부정 혹은 제한, 단순한 결핍, 실재(實在)하지 않는 착각, 정신의 불건전한, 병적 상태, 선에 대한 필요한 대립 원리, 사람의 이기심, 하나님 의식에 대한 인간 자아 의식의 투쟁,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 등으로 보는 것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죄에 대한 바른 개념은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불순종이었다. 요한일서 3:4, "죄는 불법이라." '죄'라는 히브리어(핫타트)는 '표적을 맞히지 못한 행동'이라는 뜻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4문답,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은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나 그 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나 둘 다 실상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 죄이므로, 죄는 하나님 앞에서의 문제 혹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특히,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과 권위을 반영하므로, 죄는 그 성격상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을 모독하는 것이요 그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다. 여기에 죄의 사악성과 심각성이 있다. 창세기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시편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 죄이므로, 죄는 항상 적극적 성격을 가진다. 소극적 죄, 불이행과 태만의 죄도 결국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가 된다. 또한, 죄와 죄 아닌 것 간의 선이 분명하다. 그 둘 사이에 중립지대는 없다. 둘째로, 죄는 죄책(罪責)과 부패성으로 구성된다. 죄책이란,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는 법적 책임을 가리키는데, 좀더 분석하면, 그것은 첫째로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는 사실과 둘째로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죄책이다. 부패성이란, 죄인이 가지고 있는 죄악된 성질(죄성, 罪性), 죄를 향한 경향성 혹은 연약성을 가리킨다. 우리가 흔히 '나는 죄인이다'고 느끼는 것은 이 부패성 때문이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셋째로, 말과 행동 뿐만 아니라, 죄악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도 죄로 간주된다. 특히 이 점에서 잘못된 견해들이 있다. 반(半)펠라기우스주의는, 죄가 항상 인간 의지의 의식적 행동이어야 하며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죄악된 성질과 습관은 죄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간의 죄악된 욕구(concupiscence)는 죄의 기회일 뿐이며 그 자체가 형벌 받을 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알미니우스주의도, 죄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인간의 자발적 행위라고 보며, 비(非)자발적 범죄는 인성의 자연적 결과로서 죄책을 돌릴 수 없으며 엄밀히 말해 죄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 견해들은 공통적으로 죄악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을 죄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죄악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도 죄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출애굽기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잠언 21:4, "마음이 교만한 것은 . . . 다 죄니라."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마태복음 5:22,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5:19, 20,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로마서 7:17, "내 속에 거하는 죄."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사람은 이 죄에서, 즉 죄책과 부패성, 그리고 죄악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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