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5년 6월 12일 [제9권 24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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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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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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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인간의 인간다움"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매우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게 보일지 모르나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정신 없이 세상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정신 없는 일일 것입니다. 사람이 바쁘게만 산다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고 열심히, 바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알 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른다면 어떻게 인간다움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인간에 대한 몇 가지의 기본적 사실들을 증거함으로써 인간의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증거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이 사실은 인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지식입니다. 세상의 과학자들이 생각하듯이 인간이 아메바에게서 진화되어 나왔습니까? 인간은 원숭이가 진화한 것입니까? 소위 그런 진화론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죄악되고 허무한 사상입니다. 그것은 성경 맨 처음 구절을 부정하는 사상입니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지식이며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믿음입니다. 세상에는 결국 두 가지의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할지라도 물질은 영원히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그 속에 아무 생명력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 속에 이성적 지혜와 능력이 있을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 계실 수 있고 영원히 스스로 계신 자이시며 그 속에는 완전한 지혜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 증거는 천지만물과 성경책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간다움은 자신이 하나님의 만드신 창조물임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거기에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인 겸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알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답지 못한 상태요 무지하고 교만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인 잘못입니다. 둘째로,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혼과 육체의 결합체로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산 존재, 생명체]이 된지라." 인간의 육체는 흙에서 왔습니다. 그것은 물질적 원소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는 물질적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날마다 음식과 물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날마다 적당한 수면을 필요로 합니다. 적당한 수면은 몸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다른 생물들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만 가진 존재가 아니고 영 혹은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영혼은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으실 때 창조되었습니다. 영혼은 인간의 생명 원리이며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활동 주체입니다. 영이 육체와 결합되었을 때, 사람은 산 존재가 되었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이 육체를 떠나면 인간은 죽을 것입니다. 영혼이 떠난 육체는 죽은 몸입니다. 영혼은 생명 원리이기 때문에, 마치 자동차의 밧테리나 기름처럼 그것 없이는 몸이 움직이지 못합니다. 영이 없는 몸이 시체입니다. 시체는 아무 생각도 감정도 의지도 없습니다. 인간에게서 영 혹은 영혼은 육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인격성은 바로 그 영에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인간의 영은 불멸적입니다. 인간의 몸은 죽어 썩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죽은 자들의 영에 대해 많이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6:9에 보면, 사도 요한은 환상 중 일곱 인봉된 책을 보았고 어린양께서 다섯째 인을 떼실 때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서 하나님께 그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간구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악인은 죽은 후 그 영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악한 자들이 혹 그들의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일 수 없으므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인간은 불멸적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간다움은 자신이 불멸적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임을 아는 데 있습니다. 거기에서 참 가치관이 나옵니다. 인간이 물질이나 육체에 모든 가치를 두고 산다면 그것은 짐승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짐승에게는 불멸적 영혼이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이 영적인 존재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에게 참 인간다움은 없습니다. 셋째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식 중 중요한 또 하나의 지식입니다. 창세기 1:26-28은 증거하기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외형을 가리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증거하신 대로(요 4:2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은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라고 증거했습니다(딤전 6:16).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어떤 속성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적 내용이 지식과 도덕성임을 증거합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혜롭고 지식이 있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19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이것은 아담의 지혜를 잘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사람을 의로운 자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본래 도덕적 중립 상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고 의롭고 선한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전도서 7:29은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정직하게'라는 히브리어 야솨르(??????)는 '의로운, 올바른'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의롭고 올바른 자로 지으셨음을 증거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처음 명령을 받은 후 얼마 동안 그 명령을 잘 지켰고 그 동안 그들은 확실히 의로운 자들이었습니다. 에스겔 28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印)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 . .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12, 15절). 이 말씀은 두로 왕에 대한 예언이지만, 천사의 창조와 타락을 상징적으로 보인 듯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에 비견할 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의롭고 완전하게 만드셨으나 어느 날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했습니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지식과 도덕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은, 비록 여전히 짐승보다 지혜롭고 물질계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아 고도의 현대 문명을 이룩하였으나, 가장 첫 번째의 지식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고전 1:20, 21). 인간은 심히 미련하고 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짐승보다 더 무서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보듯이, 인간은 돈 몇 푼을 위해 이웃을 잔인하게 죽이기도 하고, 백성은 죽어가는데 자기의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고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증거하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렘 17:9).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죄만 짓는 인간은 결코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49:20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고 말했고, 시편 119:119은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니"라고 말했습니다. 죄인은 무가치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위해 영원한 지옥불을 예비하셨습니다. 여기에 구원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된 지식과 도덕성의 필요성이며 의(義)의 필요성입니다. 참 지식과 의(義)가 하나님의 복음의 목표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제 지식과 의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10에서 증거하기를,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했고, 에베소서 4:22-24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증거했던 것입니다. 참된 인간성의 회복, 인간의 인간다움은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과 도덕성에 있습니다. 악한 인간은 인간답지 못한 자입니다. 그는 짐승보다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를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실 것입니다. 그 때 그의 가치가 없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인간은 존귀하나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짐승보다 못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해 봅시다. 무엇이 인간의 인간다움입니까? 첫째로,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알 때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인간은 자신이 영적 존재임을 알 때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영적 존재임을 알고 짐승처럼 물질이나 육체에 모든 가치를 두지 말고 영적인 일들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마 4:4). 셋째로,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알고 그 형상을 회복할 때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적 내용은 지식과 도덕성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그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또 인간은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롬 3:21-24; 10:4).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의와 선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엡 4:22-24). 사도 요한은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분명히 증거했습니다(요일 3:10).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영적 존재임을 알고 그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인간다운 자들이 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이며 성경의 중요한 교훈입니다. ----------------------------------------------------------------------- 주일오후설교: 죄의 구별(계속)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이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 범죄로 인한 부패성이 그들에게 전달되었다. 아담의 첫 범죄로 인한 인간 본성의 부패성은 흔히 전적 부패성과 전적 무능력이라 불리운다. 원죄로 인해, 사람은 지정의(知情意) 전체에 있어서 전적으로 부패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욕망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사람은 때때로 사람의 표준에서 선하게 보이는 일들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믿음이나, 구원에 이르게 할 선과 의를 행하기에 무능력해졌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2은 말하기를, "이 죄(원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들의 본래의 의와,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떨어졌고, 그래서 죄로 인하여 죽게 되었으며, 영혼과 몸의 모든 기능들과 부분들에 있어서 전적으로 더러워졌다"고 했다. 성경은 사람의 전적 부패성을 밝히 증거한다. 대표적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사야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義)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아누쉬; '절망적이게 사악한'[KJV], '치료할 수 없는'[NIV]) 것은 마음이라." 시편 58: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로마서 3:10-12,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고린도전서 2: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 분별됨이니라." 에베소서 4: 18, 19,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성경은 또한 사람의 전적 무능력도 증거한다. 구약의 역사 전체가 이 사실을 증거한다. ① 창세기는 노아 시대의 세상이 결국 홍수 심판으로 멸망했음을 증거한다. ②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계속 하나님을 불신앙했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불순종했음을 증거한다. ③ 사사기는 그 시대에 이스라엘의 반복된 실패의 역사를 증거한다. ④ 왕국의 역사서들은 이스라엘의 왕국이 결국 멸망했음을 증거한다. 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또 다시 범죄했음을 증거한다. ⑥ 말라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구약의 맨 마지막 때까지 여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순종했음을 증거한다. 특히, 다음의 여러 성경 구절들은 사람의 전적 무능력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斑點)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만일 할 수 있다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비교] 신명기 30:11, 14,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 . .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다'는 말은 '네가 이를 행하도록 [네 마음에 있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로마서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서 8:7, 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에베소서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로 모든 선에 대하여 전혀 싫증나며 무능력하며 반대하게 하고 모든 악으로 전적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이 본래의 부패성에서 모든 실제적 범죄들이 나온다"(6:4). 자범죄(自犯罪) 자범죄(自犯罪)란, 원죄의 부패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실생활 속에서 짓는 죄를 가리킨다. 원죄와 자범죄는 몇 가지 측면에서 서로 구별된다. 첫째로, 그 둘은 인과(因果) 관계가 있다. 원죄는 원인이요 자범죄는 그 결과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4은 "우리로 모든 선에 대하여 전혀 싫증나며 무능력하며 반대하게 하고 모든 악으로 전적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이 본래의 부패성에서 모든 실제적 범죄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원죄는 하나이지만, 자범죄는 여러 개이다. 둘째로, 원죄와 자범죄는 인식의 측면에서도 서로 다르다. 원죄는 모든 사람에게 다 인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신앙자들은 빈번히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자범죄의 존재는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셋째로, 원죄와 자범죄는 죄책의 측면에서도 서로 다르다. 원죄는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본성의 죄이며 죄책을 포함하지만, 자범죄는 자신의 의지적 악행이기 때문에 더 큰 죄책을 가진다. 자범죄들은 다 똑같은 무게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그 종류에 따라 죄책의 경중(輕重)이 있다. 모든 죄가 다 죽음의 형벌을 받을 만하지만, 모든 죄가 다 똑같이 극악한 것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50문답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법에 대한 모든 범죄들이 똑같이 극악한 것은 아니고, 어떤 죄들은 그 자체에 있어서 그리고 몇 가지 더 가중된 이유로 하나님 앞에서 다른 죄들보다 더 극악하다"고 하였다. 성경은 죄와 심판에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고 말씀하셨고(눅 12:47, 48) 또 자신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자의 죄가 더 크다고 표현하셨다(요 19:11).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라고 증거한 사도 바울의 증거도 죄와 심판의 차등(差等)을 전제한다(롬 2:6). 자범죄들은 죄책의 정도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알지 못하거나 연약하여서 짓는 죄이다. 레위기 4:2,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레위기 4:22,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不知) 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레위기에서 여러 번 '그릇' 혹은 '부지 중에' 등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비쉐가가)는 '실수로, 부주의하여, 무심코, 부지 중에' 등의 뜻이다. 누가복음 12: 47, 48, "주인의 뜻을 . . .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둘째는 고의적으로 짓는 죄이다. 민수기 15:29, 30, "이스라엘 자손 중 본토 소생이든지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든지 무릇 그릇 범죄한 자에게 대한 법이 동일하거니와,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짐짓'이라는 히브리어(?????? ?????? 베야드 라마)는 문자적으로 '높은 손을 들고'라는 말로서 '뻔뻔스럽게, 도전적이게, 반항적이게'라는 뜻이다. 시편 19:13, "주의 종으로 고범죄(故犯罪)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여기에 '고범죄'라는 말도 '뻔뻔스런 죄,' '고의적인 죄'를 가리킨다. 신약은 또한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말한다. 이것들은 고의적 범죄의 극단적 형태라고 생각된다. 모든 고의적 죄가 다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래의 네 구절들에 언급된 죄는 특별한 죄로 보인다. 마태복음 12:31, 32,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히브리서 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브리서 10:26, 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κουσ?ω? 헤쿠시오스, 고의적으로)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요한일서 5:16, 17, ". . .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위의 네 구절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① 어떤 이들은 성령 훼방의 죄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동안에만 사람들이 범할 수 있었던 죄로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기적 행하심을 사탄의 일로 돌린 죄만을 가리킨다고 보았다(제롬과 크리소스톰). 그러나 성경 다른 곳에 나오는 죄, 예를 들어 요한일서 5:16의 죄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② 어떤 이들은 위의 죄들을 '끝까지 회개치 않는 죄'라고 보았다(어거스틴과 찰머). 그러나 위의 네 구절에 나타난 죄들은 일반적 성격의 죄가 아니고 특수한 성격의 죄를 가리킨 것 같다. ③ 다른 이들은 이것을 거듭난 사람들이 범하는 죄라고 보았다(어떤 루터파 신학자들). 그러나 거듭난 사람들도 죄를 범하지만 그들의 범죄를 성령에 대항하는 죄 또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④ 우리는, 칼빈이나 투레틴과 더불어, 위의 네 구절의 죄가 다 동일한 죄로서 성령의 사역을 고의적으로 멸시하고 훼방하는 죄, 혹은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적 내용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며 대항하고 참된 신앙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는 배교(背敎)의 죄를 가리킨다고 본다. 이단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러한 죄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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