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5년 6월 19일 [제9권 25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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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구원의 목적"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께서는 처음 전도를 시작하셨을 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막 1:14, 15). 또 그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막 16:15, 16).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간수에게 전도하면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습니다(행 16:31). 그러면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파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 시간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인 구원의 필요성과 방법 그리고 구원받은 후에 남은 일에 대해 간단히 말한 후, 구원의 목적에 대해 좀 증거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구원의 필요성은 사람들의 죄악들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있습니다. 로마서 1:18은 잘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인류는 심히 불경건하고 우상숭배적이며 사람들은 온갖 불의와 음란과 죄악 가운데 빠져 있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들에 대해 진노하시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구원의 방법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1:28에서 이 사실을 단순하게 표현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모든 죄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로마서 3:19-24에서, 바울은 구원의 방법을 좀더 자세하게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율법과 별개로] 하나님의 한 의(義)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즉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죄인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면 참 평안과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후에 남은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한복음 8:11에 기록된 바 주께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하신 말씀으로 잘 표현됩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구원받은 후에 우리에게 남은 일은 죄 짓지 않는 일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聖化) 즉 '거룩하여져 감'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성화에 대해 강조하여 증거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이름으로, 혹은 원문의 표현대로 '그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그와 연합하여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과 같기 때문에 다시는 죄에 거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 . .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1, 2절). 또 그는,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죄로 그의 몸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고 그의 몸을 불의의 도구가 되지 말게 하고 그의 몸을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고 증거합니다(12, 13절). 그는 로마서 6:22에 말하기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힘써야 기본적인 일은 죄 안 짓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죄의 도구로 죄에게 주지 말고,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거룩히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도가 구원받은 후에 남은 일은 죄 안 짓는 일, 곧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는 무슨 목적이 있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궁극적으로 그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창조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했습니다(사 43:7).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그 목적이 실패한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심으로 창조의 본래 목적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의 구원 즉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인치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케 하기 위함이라고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가 그의 놀라운 은혜를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또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구원받은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주께서 피값으로 사신 것이므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고(고전 6:19, 20), 고린도후서 5장에서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다고 말하면서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증거했습니다(고후 5:14, 15). 우리는 우리의 많은 죄로 인해 지옥에 던지워야 했던 자들이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할 몸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한 말씀과 같습니다. 또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말하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아, 놀라운 간증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것을 디도서 2:14은 '선한 일들에 열심을 내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구절은 분명히 구원의 목적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본문에서 우리의 구원의 목적이 '선한 일들에 열심을 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전도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제자들에게 새 계명으로 주시면서 그들이 이것을 실천하면 모든 사람이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34, 35).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에서 하나님의 계명 즉 하나님의 뜻을 요약하기를,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둘째로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일 3:23).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서로 사랑함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그는 그 서신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움 가운데 사는 자요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라고 말했고(2:9, 10),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에 들어간 줄 알지만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3:14, 15). 또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사랑을 입었으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고(4:10, 1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진대, 우리는 그의 계명을 지켜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5:1, 3).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은 전도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일이요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 일을 부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끝부분에 보면, 그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고(마 28:18-20), 마가복음 16장 끝부분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막 16:15, 16). 또 요한복음 20:21에 보면, 그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면서 이 일, 즉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을 그에게 맡기셨고, 독생자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고 또 친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많은 죄인들을 위한 대속(代贖)의 제물이 되셨으며, 이제 제자들에게 이 구원의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고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귀한 일입니다. 그 일은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전도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 곧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모일 때마다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여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계속 복음화되어 믿지 않는 가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당 부근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대를 파송해야 합니다. 지역 복음화는 지교회들의 일차적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웃 사람을 하나님께로 초청해야 합니다. 또 교회는 국내에 교회가 없는 곳들에 개척교회들을 세우고 국외에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들에는 어디든지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또 전도하는 일을 위해 복음의 일꾼들이 더 많이 일어나야 하며 건실한 신학교들이 세워져야 하고 많은 복음의 일꾼들이 그런 곳들에서 잘 훈련되고 파송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들이 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합시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고, 또 다른 두 형제 야고보와 요한이 그 부친과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자 그들도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 4:18-22). 오늘날도 주께서는 경건하고 자기 일에 성실한 자들 가운데서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전도자가 되게 하리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주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마 9:37, 38). 오늘날이 여전히 그렇지 않습니까? 바른 지식과 인격을 갖춘 일꾼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합시다. "하나님이시여, 경건하고 신실한 전도자들과 목사 후보생들을 많이 일으켜 주옵소서!"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단번에 담당하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또 우리가 구원을 받은 자라면 우리는 또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결심해야 합니다. 죄 안 짓는 것, 그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기본적 의무입니다. 또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선한 일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입니다. 또 우리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아는 자라면, 우리가 구원의 목적을 아는 자라면, 우리는 1명의 영혼이라도 하나님께로, 구주 예수께로 인도합시다. 또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많은 전도자들을 일으켜 주시고 그들을 잘 훈련시키고 파송하고 후원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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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후설교:                               하나님의 법

모세의 율법은 도덕법과 의식법(儀式法)과 재판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덕법(moral laws)

도덕법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덕적 규범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에서 나온 것으로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도덕법은 인간의 양심에 기록되어 있으며 모세의 율법으로 성문화(成文化)되었다. 그것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는데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도덕법을 통해 죄를 깨닫는다.

십계명의 구분에 대하여, 역사상 몇 가지 의견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기 20:2을 제1계명으로, 우리의 제1, 2계명을 제2계명으로 보았다. 천주교회와 루터교회는 우리의 제1, 2계명을 제1계명으로, 그리고 우리의 제10계명을 둘로 나누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것을 제9계명으로, '네 이웃의 아내 등을 탐내지 말라'는 것을 제10계명으로 본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현재 우리의 구분대로 구분한다.

십계명에 대한 간략한 해석

십계명의 해석 원리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9문답에 잘 진술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요점들을 포함한다. ① 하나님께 대한 의무가 사람에 대한 의무보다 우선된다. 즉 1-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5-10계명은 사람에 대한 의무를 보인다. ② 같은 종류의 죄들을 대표적으로 간결히 표현하였다. 십계명은 도덕법 전반의 요약이다. ③ '하라'는 명령과 '하지 말라'는 금지를 다 고려해야 한다. 즉 무엇을 하라는 명령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명령은 무엇을 하라는 명령을 포함한다. ④ 행위 뿐만 아니라, 또한 생각과 마음에도 적용된다. 율법은 영적이다(롬 7:14).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제1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증거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무신론은 물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과 우상을 인정하는 모든 생각을 정죄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마리아와 성인들과 천사들에게 기도하고 종교적 경의를 표하게 하는 천주교의 가르침을 정죄한다.

제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 .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제2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을 물질적 존재로 형상화하는 것은 큰 오류요 죄악이다. 예수님이나 마리아의 상이나 그림을 만드는 것도 비록 그것이 제2계명을 어기는 죄는 아닐지라도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예배당 안 강단 뒷벽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런 것은 연약한 성도들에게 우상이 될 수 있다.

제3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제3계명은 우리가 일상 생활이나 종교 의식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불러서는 안된다고 명한다. '망녕되이'라는 말은 '헛되이, 함부로, 무의미하게'라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할 때와 기도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나 성경 구절을 농담거리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 대한 큰 죄이다.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7일에 쉬었음이라."

제4계명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에 대해 명령한다. 구약시대에는 한 주간 가운데 제7일을 안식일로 성별하여 지키라고 명령되었다. 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하여 미리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아야 했다(출 16: 23).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나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다(출 31:14, 15).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지낼 때 안식일에 나무가지를 줍던 한 사람은 실제로 죽임을 당했다(민 15:32-36).

'오늘날 안식일 계명이 문자 그대로 유효한가?'라는 문제는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이 도덕법인가 의식법인가 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루터나 칼빈은 안식일 계명을 도덕적 교훈을 가진 의식법으로 보았다. 칼빈은 안식일 계명의 의식적(儀式的) 부분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되었으나, 교회의 공식적 집회와 휴식을 위한 필요성은 오늘날도 유효하며 따라서 신약 교회는 열심히 주일을 공식적 집회의 날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기독교 강요, 2. 8. 28, 31-34).

17세기 초 화란에서 열린 개혁교회의 세계적 종교회의인 도르트 대회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하나님의 율법의 제4계명에는 의식적 요소와 도덕적 요소가 있다. 의식적 요소는 창조 이후 제7일의 휴식과,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부과된 그 날의 엄격한 준수이었다. 도덕적 요소는 어떤 특정한 날이 종교를 위해 사용된다는 사실과, 그 목적을 위해 종교와 그것의 거룩한 명상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휴식이 요구된다는 사실에 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주일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엄숙히 성별되어야 한다. 그 날은 사도들의 시대 이후 초기 카톨릭 교회에 의해 이미 준수되어 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7은 안식일에 관하여 ". . . 그것은 세상의 시초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때까지는 주간의 마지막 날이었고; 그리스도의 부활 때부터는 주간의 첫째 날로 바뀌었으며, 성경에서 주의 날로 불리우고,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서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공식적 집회의 날로 구별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사도 시대에 이미 안식 후 첫날인 주일이 구별되기 시작하였고 집회의 날이 되었다. 주께서는 주일에 부활하셨고 그 다음 주일에 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요 20:19, 27). 성령께서는 주일에 처음으로 제자들 가운데 내려오셨다(행 2:1- 4).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 중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날은 주일이었다(계 1:10). 드로아의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 떡을 떼며 바울의 설교를 들었다(행 20:7).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매 주일 정기적으로 헌금하라고 교훈하였다(고전 16:1, 2).

사도 시대 직후의 교회 지도자들도 주일 집회에 대해 증거하였다. 바나바 서신(주후 70-100년경)의 저자는 "그러므로 또한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제8일을 기뻐하기 때문에 그 날을 지킨다"고 썼다(바나바의 서신, 15). 익나시우스(주후 107년경)는 "만일 옛 습관들로 살았던 자들이 새로운 소망에 이르러, 더 이상 안식일들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주일]을 따라 그들의 삶을 산다면 . . .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를 떠나 살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마그네시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 9). 순교자 저스틴(주후 100-165년경)은 "일요일에 모든 도시의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사도들의 글을 읽으라. 이 날은 주께서 부활하신 날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모범과 장로교회의 예배 모범대로 주일에 온 가족이 세속적 직업의 일들을 중단하고 매매(賣買)를 금하며 오락을 금해야 할 것이다(느 13:15-22; 사 58:13, 14). 신약 성도들은 복음적 자유를 가지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되 구약 성도보다 못하게가 아니고 더 풍성한 방식으로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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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문제:                                 잊혀진 3천만명의 고통

[최재혁 기자, "잊혀진 3천만명의 고통," 조선일보, 2005년 1월 13일, A16쪽.]

유엔은 지난 11일 남아시아 지진해일 지역 못지않게 긴급지원이 필요한 데도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14개 지역’의 긴급구호를 호소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유엔은 내전과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12개 지역과 유혈충돌이 계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점령지 및 체첸 등 14곳을 긴급 구호가 필요한 지역으로 지정했다.

유엔은 이들 지역에 대한 긴급 구호를 위해 17억달러를 모금한다는 목표 아래 작년 11월부터 긴급 구호기금을 모으고 있다. 적십자사와 비정부기구(NGO) 등 104개 단체들과 함께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얀 에겔란트 유엔 인도지원담당 사무차장은 지난 11일 제네바에서 열린 지진해일 후원국 회의에서 “(지진해일 피해지역 외에) 도움이 절실한 2000만~3000만명의 주민들도 먹여살려야 한다”고 각국 대표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2005년은 인도주의적 호소가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며 “전 세계 모든 생명은 똑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들 잊혀진 지역의 난민 등에게 필요한 것은 식량, 식수, 피난처, 의료지원뿐 아니라 농업 재건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 지원 및 지뢰 제거 장비까지 다양하다.

유엔이 지원대상 국가별로 책정한 긴급구호기금 목표액은 다음과 같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점령지=3억260만달러 ▲콩고민주공화국=1억8539만달러 ▲차드=1억8269만달러 ▲소말리아=1억6446만달러 ▲우간다=1억5768만달러 ▲에리트레아=1억5715만달러 ▲서부 아프리카=1억5228만달러 ▲부룬디=1억3417만달러 ▲르완다 대(大)호수 지역=1억232만달러 ▲체첸=5944만달러 ▲기니=4374만달러 ▲코트디부아르=3936만달러 ▲중앙아프리카공화국=2326만달러 ▲콩고=2196만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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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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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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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