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5년 10월 2일 [제9권 40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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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자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들이 그에게 나아오면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은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심령의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그의 멍에를 메고 그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본받으면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계속적으로 더 풍성한 평안을 얻는다는 뜻인 줄 압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주 예수의 교훈을 행하는 자는 더 풍성한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는 자신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의 제자들이 그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본받아야 할 것을 교훈하십니다. 오늘 저는 이 본문과 성경의 전체적 교훈들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자는 요지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겸손과 반대되는 말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게 평가하는 것, 즉 높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교만한 자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하나님도 무시하고 그의 뜻을 거역합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의 위치를 벗어나는 자입니다. 교만은 마귀의 죄입니다. 마귀는 자기 위치를 벗어나 하나님을 대항하였고 악한 영이 되었습니다. 디모데전서 3:6은 마귀의 죄목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유다서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는데, 그들이 마귀와 함께 타락한 악령들입니다. 교만한 자가 있는 곳에는 싸움과 다툼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13:10은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고 말합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하고 있었을 때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아론과 함께 모세를 비방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않으셨느냐?"라고 했습니다(민 12:2). 민수기 16장에 보면, 레위의 증손 고라와 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과 온은 당을 짓고 유명한 족장들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을 대항하면서 말하기를,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라고 했습니다(민 16:1-3). 그들은 다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교만이 있는 곳에 다툼과 혼란이 있습니다.

사람이 왜 교만할까요? 사람의 죄성 자체가 교만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인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합니다. 게다가 세상의 것들이 좀 있으면 사람은 더 교만해집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교만하기 쉽고 얼굴이 예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교만하기 쉽습니다. 가문이 좋거나 공부를 많이 했거나 사회에서 좋은 직업이나 신분을 가졌거나 세상 권력을 가진 자가 그런 것을 가지지 못한 자보다 더 교만하기 쉽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것들 때문에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교만을 매우 미워하십니다. 잠언 6:16-19에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6, 7가지 중 첫번째가 교만한 눈이라고 말합니다. 잠언 8:13은 "나「참지혜」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잠언 16:5은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미워하시기 때문에 교만한 자를 벌하십니다. 그러므로 잠언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교만했던 미리암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얼마 동안 문둥병으로 고생했고(민 12:10),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던 고라 일당은 땅이 갈라져 산 채로 매장되었고 분향하던 족장들 250명은 다 불에 타 죽었습니다. 사람은 교만하면 망하고 맙니다.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다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라고 명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은 우리가 겸손해야 지킬 수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계명들을 무시할 것입니다. 겸손한 자만 하나님과 그의 계명들을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미가는 미가 6:8에서 하나님의 뜻을 요약하기를,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인자한 마음을 품는 것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 3:34은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신약성경에서 야고보서 4:6과 베드로전서 5:5, 두 곳에서 인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겸손하라고 명하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둘째로, 우리는 피조물이며 부족이 많고 허무한 죄인들이기 때문에 겸손해야 합니다. 창세기 18:27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티끌과 같은 나"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엄위하심을 깨달았던 백부장은 그에게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라고 말했고(마 8:8), 예수님의 신적 영광을 본 베드로는 그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눅 5:8). 인간은 교만할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피조물이요 허무한 죄인입니다.

특히 사람은 고난 중에 자신의 죄악됨과 허무함을 더욱 깨닫게 되며 그 때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다윗은 심한 고난 중에 시편 22:6에서 "나는 벌레요"라고 고백했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경험하면서 예레미야 애가 3:45에서, 주께서 우리를 열방 가운데서 "진개(먼지)와 폐물"을 삼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린도전 4:13에 보면, 사도 바울도 많은 고난 중에 고백하기를,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욥기 25:6은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이사야 41:14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사람은 심히 죄악되며 허무한 존재, 벌레와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겸손해야 합니다.

셋째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창조와 구원에 속한 모든 선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고 말했습니다(약 1:17). 사도 바울은 교만했던 고린도교인들에게 고린도전서 4:7에서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라고 책망하듯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자신에 대해 고백하기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3:8에서는 자신을 표현하기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 . ."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만한 본성의 죄악성을 가진 인간이 과연 겸손할 수 있는가? 겸손은 가능한가? 물론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여 의인을 만드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 측면에서 말한다면, 사람은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겸손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무엇을 행하는 행위나 공적이 아닙니다. 겸손은 단순히 자기 부정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마 16:24), 그가 말씀하신 자기 부정 속에 겸손이 포함됩니다.

또 사람은 고난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겸손한 인격으로 조금씩 변화됩니다. 민수기 12:3은 모세에 대해 증거하기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을 때 모세가 그들에 대해 온유와 겸손으로 응대했음을 암시합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성장했으나 예상치 않았던 살인 때문에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서 40년 동안 양치기 생활을 했습니다. 이 미디안에서의 40년은 모세에게 지루한 고난의 기간이며 또한 겸손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이 겸손 훈련 덕분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후 그 어려운 40년 동안의 광야목회생활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온유함'이라는 히브리어 아나우라는 말은 '고난을 당함, 가난함'이라는 뜻과 함께 '겸손함, 온유함'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겸손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멍에를 메고 그에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말씀대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를 믿고 그를 본받으려고 애쓴다면, 우리는 그의 겸손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웁시다. 그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읍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5-8에서 교훈하기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속 제물이 되시려고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그의 겸손을 배우고 본받읍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성화(聖化)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입니다. 이제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셔서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성도는 육신의 죄악된 일들을 행치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갈 5:16). 그 성령의 열매는 갈라디아 5:22, 23의 말씀대로 사랑과 선함과 온유를 포함합니다. 또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한 대로, 사랑은 온유하고 사랑은 교만치 않습니다(고전 13:4, 5).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하십시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나님의 모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교만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그리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음으로써 겸손을 배우고 겸손을 훈련합시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우셔서 사랑과 선함과 온유와 겸손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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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후설교: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받는 구원은 어떤 순서와 단계로 이루어지는가? 사람의 구원은 크게 말하면 하나님의 예정과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령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진다. 로마서 8:30은 구원의 순서를 예정, 부르심, 칭의(稱義), 영화(榮化)로 표현한다. 구원의 순서를 좀더 자세히 구분한다면, 부르심, 중생(重生), 회개와 믿음, 칭의(稱義)와 양자(養子), 성화(聖化), 성도의 견인(堅忍), 영화(榮化)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천주교회는 구원의 은혜를 셋으로 나누었다. 충족 은혜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깨달음을 주시고 의지를 새롭게 하시는 은혜이다. 협력 은혜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여 믿음과 순종을 하는 은혜이다. 주입 은혜란 세례를 통해 초자연적 덕성이 주입(注入)되는 것으로서 이 은혜를 통해 사람이 중생하고 의로움을 얻는다고 한다. 의로움은 순종과 선행으로 보존된다고 한다.

루터파는 구원의 순서를 외적 부르심, 깨닫게 하심, 회개, 중생, 믿음, 칭의, 양자(養子), 신비적 연합, 성화(聖化), 보전 등으로 본다. 알미니우스파는 구원의 순서를 외적 부르심, 회개, 믿음, 칭의, 중생, 성화(계속 순종할 때), 성도의 견인(믿고 순종할 때만) 등으로 본다.

성경은 구원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표현한다. 로마서 1:6, 7,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로마서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고린도전서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 . ." 베드로후서 1:10,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부르시고 초청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외적 부르심이라고 말한다. 마가복음 16:15,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께서는 구원을 잔치에 초청하는 것으로 비유하셨다. 마태복음 22:1,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태복음 22: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마태복음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누가복음 14:16,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누가복음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 부르심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차별 없이 주어진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요한계시록 22:17,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마가복음 16:15,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율법의 요구가 진실하듯이, 구원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고 진실하게 부르시며 초청하신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이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 마가복음 16:15, 16,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 외적 부르심이, 비록 구원을 받으라는 부르심이기는 하지만, 구원하시는 부르심은 아니다. 외적 부르심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오래 참으심을 나타낼 뿐이다. 로마서 2:4, 5,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초대교회의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의 외적 부르심이 사람의 완전한 자유 의지의 응답으로 효력있게 된다고 보았다. 중세 시대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자들(다수의 천주교 신학자들)이나 종교개혁 이후의 알미니우스주의자들도 하나님의 외적 부르심이 사람의 협력으로 효력있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성경이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을 증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외적 부르심은 사람의 심령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성령의 활동이 없이는 효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성경이 사람의 구원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표현하는 것은 단지 외적 부르심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효력있게 부르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내면적 부르심이라고 말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은 이것을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고 표현한다. 이 부르심은 중생(重生)과 동일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1문: "효력 있는 부르심이란 무엇입니까?" 답: "효력 있는 부르심이란, 하나님의 영의 하시는 일인데, 그것에 의해 그는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권하사 복음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내면적 부르심은 주권적이다. 우리는 그것을 '성령의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 은혜,' 즉 저항할 수 없는 은혜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이끄시면 죄인들은 그에게로 나아올 것이다.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또 이 부르심은 불변적이다. 그가 한번 불러 구원하시면 그의 구원은 확실하다. 로마서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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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문제:                                韓·美관계 이번엔 '맥아더 갈등'

「허용범, "美하원 '차라리 동상 보내달라' 서한 파문," 조선일보, 2005. 9. 17, A3쪽.」

인천상륙작전 55주년인 15일 미국 의회 의원들이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논란과 관련해 강한 불쾌감과 철거반대의 뜻을 담은 편지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 파장이 예상된다. 하원 국제관계위 소속인 헨리 하이드 위원장과 다나 로라베이처, 에드 로이스, 에니 팔레오마배가, 조셉 크라울리 등 5명의 명의로 된 이 서신은 “동상을 훼손하거나 허물어뜨리느니 차라리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노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했다.

또 ‘동상 철거 반대’를 표명한 노 대통령의 언급과 불법행동에 대한 엄정대처를 지시한 이해찬 총리의 국무회의 발언을 상기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동상을 지키기 위한 모든 조치를 공식적으로 취해달라고 말했다.

이는 대통령과 총리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동상철거를 둘러싼 폭력적 시위가 계속되는 데 대한 유감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공화당 소속인 하이드 위원장은 지난 5월 김동식 목사 등 한국인과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에는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했고, 이는 7월 하원 전체회의에서 362대1로 통과됐다. 사태 발전에 따라 의회 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음은 서신의 요지.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의 전세를 바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해방시켰다. 동맹으로서 우리는 그 승리의 기억을 함께 소중히 해야 하며, 특히 그 전투에서 숨진 사람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천에서의 그 승리가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몇개월간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위한 폭력적 시도가 있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에 제기된 민원은 맥아더를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전범”이라고 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미 의회와 미국인들은 그런 묘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의 동맹은 인천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인천상륙작전의 중요성과 맥아더 장군의 리더십에 대한 이런 시각을 공유할 것으로 여긴다.

미 하원 의사당에는 의장석 바로 뒤에 두 개의 초상화가 있는데,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프랑스인으로) 미국의 독립을 도왔던 마르키스 라파예트의 초상화다. 200여 년 간 그의 기억이 미국인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듯이, 우리는 맥아더 장군도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그렇게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만일 그렇게 될 수 없고 또 동상을 허물려는 시도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손상시키거나 무너뜨리게 하지 말고 미국인들에게 넘겨줄 것을 정중히 제안한다. 의회에 있는 우리는 그의 동상을 수도의 명예스러운 곳, 아마 한국전 기념비 부근에 세우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공식 답변을 기대한다.〉  

주한 영국 대사의 공개서한

「"맥아더 동상 공격은 한국자유 위해 목숨 바친 수만 명 모욕하는 것," 조선일보, 2005. 9. 24, A1; 모리스 주한 영국 대사의 공개서한.]

워릭 모리스(Warwick Morris) 주한영국대사는 23일 조선일보에 공개 서한을 보내, 한국전쟁 당시 수만 명의 유엔군 병사가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면서 “인천의 맥아더 동상을 공격하는 것은 당시 한국과 함께 유엔 지휘 아래 싸웠던 모든 외국 병사들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리스 대사는 “(맥아더 동상을 공격하는) 시위대는 단지 미국만 고립시키는 것 이상의 위험을 갖고 있다”며 “많은 나라의 한국의 친구들과 참전군인들이 모욕당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려면 한국의 언론과 지도급 인사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척상륙작전 당시 영국 전함들이 상륙부대를 지원하는 등 영국군도 이 작전에 직접 참여했었다. 다음은 모리스 대사의 편지 전문이다.

일군의 시위대가 인천의 맥아더 장군 동상을 공격하고 철거를 요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펐습니다. 이 동상은 맥아더 장군이 이끌었던 인천 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고, 당시 작전은 한국전쟁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개입 중 하나였습니다. 영국 해군함정들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시위대들은 맥아더 동상과 맥아더에 관한 기념물을 공격, 한국과 함께 유엔 지휘 아래 싸웠던 모든 외국 참전군인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나의 조국 영국을 비롯한 20여 개가 넘는 나라의 젊은 남녀가 참전했습니다. (이 중) 수만 명이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인천상륙작전과 뒤이은 연합군의 격렬한 전투가 없었다면, 당시 부산지역으로까지 밀려났던 한국은 (북측에) 점령당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나라의 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시위대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지만 이런 시위대는 단지 미국만 고립시키는 것 이상의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몇몇 단호한 (신문) 사설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비롯한 많은 지도급 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많은 나라의 한국의 친구들과 참전군인들이 모욕당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려면, 그 분들은 단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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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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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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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안내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