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3월 19일 [제10권 12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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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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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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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아이성에서 실패함" 여호수아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기이한 방법으로 여리고성을 정복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다음 성인 아이성에서는 패배했습니다. 여호수아 7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에서 패배한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에서 사람을 아이성으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기를,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제안하기를,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라고 했고 그래서 여호수아는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이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아이 사람들은 그들 중 36명쯤 죽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물같이 녹아내렸습니다.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여리고성에서 승리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왜 작은 아이성에서 패배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1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패배의 원인이었던 아간의 죄에 대해 좀 생각해보십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파들을 모아 제비뽑기를 통해 범죄자를 찾아내었는데, 그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었습니다. 그 아간 한 사람의 죄는 이스라엘 회중의 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므로 1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 . .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고 기록합니다. 11절에도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고 했는데, 그것은 아간 한 사람의 죄를 가리켰습니다. 한 사람 아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진노하셨고 이스라엘 온 회중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전쟁에서 36명쯤이나 죽었고 온 백성의 마음은 물같이 녹아내렸습니다(5절). 지도자 여호수아의 마음도 낙담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이스라엘 백성의 사기는 단번에 땅에 떨어졌고 아마 주위의 가나안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앞으로의 전쟁들을 생각할 때 더욱 두려웠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죄는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이스라엘 회중에게 연대책임을 물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죄의 경우와 비슷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는 인류의 타락을 초래했고 온 땅의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3:17- 18).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온 인류는 정죄되었고 죽음 아래 처하게 되었었습니다(롬 5:12-19). 한 사람 아간의 죄는 특히 '바친 물건'을 인한 죄이었습니다. 1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 . .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본장에 '바친 물건' 혹은 '바친 것'이라는 말이 여덟 번이나 나옵니다(1절[2번], 11절, 12절[2번], 13절[2번], 15절). '바친 물건'이라는 히브리어 헤렘(??????)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 저주받은 것, 멸망받아야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아주 바친 물건'이라는 개념은 레위기 27: 28-29에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심히 더러워졌던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 저주받은 것, 멸망받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정복하려 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명령하셨던 내용이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말하기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했었습니다(수 6:17-18). 여호수아의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언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1절과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고 하셨고 또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네발라 어리석은 일]을 행하였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저주와 죽음의 경고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언약을 지키면 복을 얻을 것이지만, 그것을 어기면 저주를 받고 죽을 것입니다(신 28:1-6, 15-19).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어겼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바쳐진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아간의 죄는 탐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아간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고 그 물건들을 그의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었습니다. 시날산 즉 바벨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은 오늘날 값비싼 프랑스제 혹은 이태리제 밍크 코트 같은 것일 것입니다. 은 200세겔은 은 약 2.3킬로그램인데, 후에 은 1데나리온이 은 5그램이니 은 200세겔은 약 460데나리온 정도가 되며, 신약시대에 일꾼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을 5만원만 쳐도 은 200세겔은 약 2,300만원어치의 가치가 됩니다. 50세겔중 금덩이는 약 600그램, 즉 약 160돈으로 800만원 이상의 가치가 될 것입니다. 아간의 탐심은 오늘날 우리가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차를 탐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탐심은 신앙생활에 큰 방해거리, 시험거리입니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골 3:5).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성도가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믿어도 탐심을 가진다면 마치 가시밭에 뿌려진 씨와 같아서 좋은 열매를 맺기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3:22).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딤전 6:9-10). 또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말했습니다(약 1:15). 우리는 탐심을 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죄의 원인이요 죄입니다. 아이성에서의 이스라엘의 실패는 한 사람의 아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바친 물건을 취한 죄이었습니다. 그것은 탐심의 죄이었습니다. 죄가 패배의 원인이었습니다. 죄 때문에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세상도 망하는 것입니다. 죄가 세상의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해결책은 죄를 제거하는 것 그러나 또한 해결책이 이 사실에 들어 있습니다. 해결책은 죄를 제거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12절,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 . .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그는 15절에서도 말씀하시기를,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고 하셨습니다. 24절 이하에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고 말한 후에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습니다. '아골'이라는 히브리어는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온 가족이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아마 그 가족들은 아버지의 잘못을 알고도 숨겼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부모의 죄에 대해 자녀들에게까지 벌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시겠다고 십계명에서 말씀하셨습니다(출 20:5).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어린 자녀들은 부모들의 죄 때문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며 고생해야 했습니다(민 14:33). 아버지 아간의 잘못으로 그의 온 가족들, 즉 그의 자녀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괴로움의 골짜기이었습니다. 아간의 죄의 결과는 아골 골짜기에서의 그 가족들의 고통의 부르짖음과 죽음이었습니다. 아간과 그의 가족들이 고통스런 부르짖음 가운데 죽임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극렬한 진노가 그쳤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수 7:26).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에 성공하려면 악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악을 가지고서는 가나안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시 5:4). 말씀을 마칩니다. 죄는 불행과 실패의 원인입니다. 개인이 죄를 지으면, 자신에게 화가 있습니다. 우상숭배나 이단이나 교만, 미움이나 음란이나 거짓말 등 십계명을 어기는 죄는 무엇이든지, 죄는 불행과 화와 실패의 원인입니다. 특히 아간같이 탐심의 죄는 불행과 화와 실패를 초래합니다. 또 부모가 죄를 지으면, 그 자녀들에게 불행과 화가 있습니다. 부모의 죄는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교회가 주의 능력과 영광을 체험하고 간직하려면, 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악을 포용해서는 안 됩니다. 교인 한 사람의 신앙생활이 중요하고, 특히 직분자 한 사람의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중직 한 사람이 범죄하면 교회에 큰 해가 될 것입니다. 또 교회가 하나님의 뜻과 그의 일을 바르게 시행하려면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운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직분자를 바르게 택하여 세우고 교인들을 바르게 관리하고 교회 안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바르게 다루고 필요하면 권징을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죄악을 포용하고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일을 바르고 힘 있게 시행할 수 없습니다. 오직 철저히 회개하고 죄악을 제거할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 지난오후설교: 교회의 직분 목사(牧師, pastor, minister, reverend)는 넓게는 감독 혹은 장로 안에 포함되며, 교사 혹은 '가르치는 장로'라고 표현된다. 에베소서 4:11, "목사와 교사"(한 직분). 디모데전서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디모데후서 2:2,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목사의 임무는 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고 ② 교인들을 살피며 인도하는 직분이다. 이것은 지교회의 담임목사가 가지는 임무이다. 당회가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치리장로들과 함께 교인들을 살피며 감독하며 인도한다. 설교는 목사에게 맡겨진 전문적 일이며 따라서 목사만 신학교육을 받지만, 행정은 치리장로들과 함께 행하는 일이다. 또 담임목사는 목회를 도울 부목사와 전도사 등의 조력자들을 둘 수 있다. 부목사나 전도사 등 목회 조력자들은 교인들의 초청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담임목사의 초청과 당회의 승인으로 오기 때문에, 교회의 치리권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는 자들이다. 목사의 자격은 디모데전서 3:1-7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또한 장로의 자격 요건이기도 하며, 모든 성도의 성화의 목표이기도 하다. "책망할 것이 없으며"--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자.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부부생활의 순결성을 지키는 자. "절제하며"--술, 시간, 돈, 오락, 힘 등을 절제하는 자. "근신하며"--무분별하지 않고 침착하고 조심성 있는 자. "아담하며"--행실이 단정하고 존경할 만한 자. "나그네를 대접하며"--인정이 있고 남에게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자. "가르치기를 잘하며"--성경을 바르게 배워 진리에 정통한 자.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술에 중독이 걸리지 않은 자. "구타하지 아니하며"--성격이 거칠어 남을 때리지 않는 자.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전통본문)--물질 생활에 바른 자. "오직 관용하며"--편협하지 않고, 이해심과 인내심을 가진 자. "다투지 아니하며"--이해심과 인내심이 있어 다투지 않은 자.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하나님만 바라며 돈을 사랑치 않는 자.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신앙 단련을 받아 겸손해진 자. "외인(믿지 않는 자들)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 목사의 권위는 단순히 직분의 권위가 아니고, 그가 전하는 바른 말씀과 그가 보이는 인격적 모범의 권위이다. 성경의 바른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목사가 권위가 있고, 그 가르친 말씀대로 살며 모범을 보이는 목사가 권위가 있다. 바른 말씀과 인격적 모범이 없이 목사직의 권위만을 주장하는 것은 옛날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과 같고 거기에서 종종 인간적 횡포도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악하며 가증스러운 일이다. 신약의 목사는 하나님과 교인들 중간에 있는 제사장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신약시대에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며, 모든 신자의 헌신과 순종의 삶이 하나님께 대한 제사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물론 목사도 제사장이며 목회도 제사이다. 로마서 15:16,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그러나 목사나 목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성도와 그들의 삶이 다 그러하다. 그러므로 천주교회에서 성직자들을 '사제'(priest)라고 불러 평신도와 구별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오늘날 어떤 성직자나 성직계급이 사도직을 계승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천주교회와 영국교회와 감독교회는 일반 신부보다 한 단계 높은 성직자인 주교(bishop) 혹은 감독이 사도직을 계승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한다. 신약은 단순히 장로와 감독이 동일한 직분임을 나타낸다. 사도행전 20:17, 28,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 . . .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직분이라는 점에서, 목사가 사도적 기능을 이어받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사도는 열두 제자들과 바울에게만 제한된다. 장로(長老, elder, presbyter)는 목사와 함께 교회를 감독하고 다스리는 직분이며 보통 치리장로라고 부른다. 사도행전 20:17, 28,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 . . .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5:1, 2,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 .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성경에서 장로와 감독은 동일한 직분이다. 그것은 교회 혹은 교인들을 돌보는 일 곧 목회(牧會) 혹은 목양(牧羊)의 일이다. 장로교회에서 치리장로는 회중을 대표하며 그 권한이 목사와 동등하다. 단지 설교의 직무는 목사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목회에 전념하는 자는 목사이므로, 목사는 목회의 주도적 역할과 책임을 가지며 치리장로들은 목회에 협력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목회란 목사가 장로들의 협력을 받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리장로들은 목사의 목회에 제동(制動)장치가 아니고 윤활유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목사가 비성경적 교훈이나 행정을 할 때에는 치리장로들이 그것을 제어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 장로의 자격은 목사의 자격과 동일하다(딤전 3:2-7). 한마디로, 교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신앙인격자로서 교인들의 본이 되고 교인들을 잘 인도할 만한 교양과 덕이 있는 자이어야 한다. 지교회에서 치리장로의 수는 보통 2명 이상이어야 바람직하다. 이것은 목사와의 의견 대립으로 인한 부작용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주후 140-180년경의 사도적 규범들이라는 책에는, "교인들은 목사 외에 적어도 2명의 장로들을 지명해야 한다. 모든 교회는 적어도 3명의 집사들을 가져야 한다"고 쓰여 있다. 집사(執事, deacon)는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는 직분이다. 헌금의 수금, 정리, 계획, 지출 등 교회의 살림살이와 특히 구제의 일을 행한다. 사도행전 6:2, 3,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물론, 이러한 일들은 당회 즉 목사와 장로들의 감독과 지도 아래 행해져야 할 것이다. 집사의 자격은 디모데전서 3:8-13에 기록되어 있다. ① 단정하고, ②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지 아니하고, ③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④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하며, ⑥ 한 아내의 남편이며, ⑦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이어야 한다. 덧붙여서, 여자들, 즉 장로와 집사의 아내들은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한다.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는 성경적이지 않음 오늘날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교회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세속사회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들의 근거는, 첫째로 신구약 성경에 여선지자 등의 여성 사역자의 예들이 있다는 점, 둘째로 갈라디아서 3:28에 남녀 평등의 원리가 있다는 점, 셋째로 세속사회도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데 하물며 교회가 시대의 조류를 역행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점, 넷째로 교회 내의 여성들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의 반론들에 대하여 그러한 생각들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상 변칙적으로 허용하신 것과 교회에 정식으로 주신 규범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결코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허용치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가르치는 디모데전서 2:11-14과 고린도전서 14:34-37은 여자 목사직과 여자 장로직을 금하는 다섯 가지의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2:11-14,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이 말씀은 여자의 가르치는 일 즉 목사직과 다스리는 일 즉 장로직을 분명히 금하고 있다. 이렇게 금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창조의 질서 때문이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자는 창조될 때 남자의 '돕는 배필' 즉 협력자(helper)로 창조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있다. 둘째는 범죄에 대한 징벌 때문이다. 인류의 타락은 여자의 범죄로 시작되었다. 아담은 아내가 주는 선악과를 먹으므로 범죄하였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즉 여자는 인류의 타락에 일차적 책임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여자는 또다시 나서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제약을 당한다는 뜻이 있다. 이 두 이유들은 어떤 시대적, 환경적 요인들이 아니고, 역사적, 불변적 사실들이다. (계속)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