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5월 07일 [제10권 19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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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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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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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안식일 계명" 출애굽기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죄로 인해 멸망할 세상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자들이 주일을 안식일로 거룩히 구별하여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며 자신들에게 복된 일임을 한번 더 확인하고 강조하기를 원합니다. 구약 시대의 안식일 계명, 즉 십계명의 제4계명인 안식일 계명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 계명의 첫번째 내용은 7일 중 하루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7일이 그 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날을 구별하여 온종일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4계명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주간의 7일 중 하루를 구별하여 거룩히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제7일 하루를--한두 시간이 아니고 '하루'를!--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계명의 두 번째 내용은 그 날에는 세속적인 일들을 쉬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일은 쉬는 날입니다. 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즉 그 날에는 농사나 장사나 오락적인 일 등 어떤 세속적인 일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안식일 계명의 세 번째 내용은 온 가족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안식일 계명은 좋은 의도의 법입니다. 6일 동안 피곤하게 일하던 종들도 그 날에 하루 쉴 수 있었고 심지어 짐승들까지도 쉴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 계명의 네 번째 내용은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안식일 계명 속에는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안식의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로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신 것은 우리에게 휴식의 필요성을 알리시고 우리로 그를 본받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거기에 덧붙여,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복 주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아 안식일을 지킴으로 영육의 복을 받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하게 구별하신 복된 날이며 그 날을 지키는 자들은 복을 받습니다. 안식일 계명에 또 하나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율법의 다른 부분에 명령된 것으로서 성회로 모이라는 내용입니다. 레위기 23:3에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여기에 '성회'라는 말은 공적인 예배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안식일은 공적인 예배의 날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명령된 안식일 계명은 이렇게 다섯 가지의 내용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런 안식일 계명이 사람이 꼭 지켜야 할 그렇게 중요한 계명입니까? 그것을 좀 어기면 안 되는 것입니까? 구약 시대에 안식일 계명은 참으로 중요한 계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지켜야 했던 계명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매우 중요한 계명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어기면 사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물론 십계명의 모든 내용이 다 중요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들은 다 사형을 당해야 마땅한 죄들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1:12은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했고 또 21:15은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규정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안식일 계명도 그것을 범하는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된 중요한 계명입니다. 출애굽기 31:14-15을 찾아봅시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聖日)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안식일에 일을 했던 사람을 사형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15:32-36은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 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니라. 이와 같이, 안식일 계명은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안식일을 즐거움으로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는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이사야 56:2, 6-7을 찾아봅시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또 이사야 58:13-14을 찾아봅시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네 즐거움]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기업]으로 기르리라[먹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안식일 계명의 중요성은 안식일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표라는 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이 점을 증거했습니다. 에스겔 20:12, 20,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그러나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안식일을 범하고 그 날을 더럽혔었습니다. 에스겔 20:13,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20: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 20:21,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 20:24,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노하셨고 그들을 징벌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 시대에 이렇게 중요했던 안식일 계명은 신약 시대에 어떻게 적용됩니까?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구약의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28). 그는 또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8). 안식일의 참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죄로 인해 참된 평안과 안식을 잃어버렸던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참 평안과 안식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참된 안식과 평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 안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구약의 안식일은 그림자요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2:16- 17,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러므로 구약의 제7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즉 주간의 첫째날로 바뀌었습니다. 사도 시대로부터 제자들은 주일에 모였습니다. 사도행전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고린도전서 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利)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그러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정신은 구약과 동일합니다. 주일은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입니다. 신약은 구약 율법의 성취이지만, 그 성취는 구약 시대보다 못한 방향으로가 아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더 풍성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안식일의 필요성은 신약 시대에도 여전합니다. 신약 시대에도 모든 사람에게 하루의 휴식이 필요합니다. 또 한 날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기억하고 공적 예배를 드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는 한, 공적 예배의 날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0:25은 교훈하기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예,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만일 안식일이 없다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고 세상 일에만 골몰할 것입니다. 안식일을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을 무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안식일을 존중하고 공적 예배를 존중하고 교회를 존중할 것입니다. 믿음 없는 자들은 세상에 할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 안식일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지만,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3). 우리는 6일 동안 세상의 일들을 열심히 하고 주일에는 세상의 일들을 중단하고 안식일로 지켜야 합니다. 부득이 한 경우 외에는 주일에 직장에 나가는 것을 피하고, 매매 등의 상거래를 피하고, 학생들은 학교 공부를 쉬고, 주부들은 대청소나 많은 빨래를 하지 말고, 우리 모두는 운동이나 텔레비젼 시청 등의 오락적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약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정신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더 풍성한 방향으로 주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거룩히 구별하여 힘써 지킵시다. 온 가족이, 온종일 주일을 거룩히 지킵시다. 그 날에 세상의 일들을 중단하고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립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시고 은혜와 복을 더욱 퐁성히 주실 것입니다. -------------------------------------------------------------------------- 지난주일오후설교: 성찬 성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규례이다. 고린도전서 11:23- 25,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원문 직역). 성찬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찬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나타낸다. 고린도전서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의 떡은 그의 살을, 성찬의 포도즙은 그의 피를 상징한다. 성찬은 또한 성도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확증한다. 소요리문답 96문답,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 . . 신앙으로 그의 몸과 피에, 그리고 그의 모든 은혜들에 참여하여 영적으로 양육되고 은혜 안에서 자라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요한복음 6:53,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부수적으로, 성찬은 성도들이 서로 연합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성도들의 연합과 교제는 성찬식에서 표시된다. 고린도전서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성찬의 재료에 대하여는, 초대교회는 보통 식사의 빵을 사용하였으나, 천주교회나 루터교회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무교병)을 사용하였다. 개혁교회는 초대교회의 풍습을 따라 보통 식사의 빵을 쓰며 포도즙은 발효되지 않은 것을 사용한다. 마태복음 26:29, "포도나무에서 난 것"(막 14:25; 눅 22:18). 성찬의 참여자에 대하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된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모든 자들은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짓고 회개치 않은 자나 교회적 권징 아래 있는 자는 제외된다. 유아세례를 받은 자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할 수 있는 연령이 되기까지는 제외된다. 고린도전서 11:27-30,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마태복음 26:26, 28, "이것이 내 몸이니라. . . . 이것은 나의 피니라." 이 말씀은 문자적 의미인가, 아니면 상징적 의미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성찬에 실제로 계시는가? 성찬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臨在, 함께하심; presence)에 대하여, 역사상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었다. 초대 교부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이것이 나의 몸이다,' '이것은 나의 피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이해하였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였다. 어거스틴은 성찬이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지만 떡과 포도즙의 실체는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고 보았다. 그 후 천주교회는 떡과 포도즙의 실체가 미사 때 신부의 선언으로 그것들의 특질을 가진 채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소위 '화체'(化體, 실체의 변화; Transubstantiation)를 주장하였다(화체설).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회의 화체설을 거부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화체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사제(priest, 천주교회의 신부)의 봉헌으로나 혹은 어떤 다른 방식으로든지 빵과 포도즙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한다는 (보통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이라 불리우는) 교리는 성경에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식과 이성에도 모순되며, 그 성례의 본질을 뒤집어 엎으며, 여러 가지의 미신들 즉 실로 조잡한 우상숭배들의 원인이 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29:6). 개신교회 안에는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해 세 가지의 견해가 있었다. 첫째로, 종교개혁자 루터는 성찬의 떡과 포도즙 안에, 그것들 곁에 그리고 그것들 밑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함께 계신다는 소위 '공재'(共在, 함께 있음; Consubstantiation)를 주장하였다(공재설). 이것은 루터교회의 견해가 되었다. 루터교회는 이 견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의 편재성(遍在性, 어디에나 있음)과 함께 주장하였다. 성찬 교리에 있어서, 루터는 다음에 언급할 즈빙글리의 견해를 강하게 거부하였다. 둘째로, 개혁자 즈빙글리는 떡과 포도즙이 단지 상징물 혹은 기념물에 불과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함께하신다고 생각할 것이 없다는 견해를 가졌다(상징설). 이것은 개신교회의 일부의 견해가 되었다. 셋째로, 칼빈은 성찬의 떡과 포도즙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그러나 영적으로 함께 계신다는 견해를 가졌다(영적 임재설). 이것은 개혁교회의 견해가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9:7, "이 성례를 받기에 합당한 자들은, 그것의 유형적 재료들에 외적으로 참여할 때, 믿음에 의해 내적으로, 실제로 그리고 참으로, 그러나 육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가 아니고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그의 죽으심의 모든 은택들을 받으며 먹는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그 때 그 빵과 포도즙 안에, 그것들과 함께 혹은 그것들 아래, 육체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있지 않지만; 그 재료들 자체가 그들의 외적 감각들에 그러한 것처럼, 그 규례에서 신자들의 신앙에 따라 실제적으로 그러나 영적으로 함께 있다." 성경은 성찬의 떡과 포도즙을 주의 몸과 피라고 불렀고 그것들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큰 죄로 간주하였다. 고린도전서 11:27, 29,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 . .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 현대사회문제: 위원회가 통치하는 나라 [이두아, "위원회가 통치하는 나라," 조선일보, 2006. 4. 27, A34쪽.] "법은 이성에 기초하는 것이고, 나와 내 신하들도 판사들만큼 이성을 갖고 있소." 17세기 영국의 국왕 제임스 1세는 모든 판사들을 불러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왕이 원한다면 웨스트민스터홀에 앉아서 어떤 법원의 어떤 사건도 판사가 아닌 어떤 신하를 통해서라도 재판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영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법률가 중 한 사람이었던 에드워드 코크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폐하는 영국의 법과 신민들의 생명, 재산에 관계되는 권리 주장에 관하여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 주장들은 자연적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적 이성을 오랫동안 훈련한 법관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법은 신민들의 법적 주장에 답하는 황금의 마법지팡이입니다." 그렇다. 법률가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무는 옳고 그름을 가려 억울한 사람, 억울한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기초공사를 하지 않고, 2층집부터 지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떤 법률을 적용하여 판결을 내릴 것인가를 정하는 일은 그 다음이다. 최근 대한민국 법원은 몇몇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각종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인정했다. 이것은 보기보다 심각한 문제다. 법률가는 감정, 이념, 역사관, 정치색, 기타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전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어떤 인물이나 기관이 작성한 것이든 그 보고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주관적인 견해, 즉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 판결의 근거로 작용할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사법권의 중요한 역할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재판정 밖에서도 사태는 심각하다. 21세기 초엽의 대한민국에서는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설치 근거가 없는 각종 위원회들이 헌법과 국민생활 속으로 마구 침투하며 '자기들만의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위원회 통치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권력의 제도화'라는 입헌주의 헌정(憲政)의 기본 질서를 흔들면서 대통령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권력의 사유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사법제도의 근간을 손보고, 동북아시대위원회는 헌법과 정부조직법상의 국가운영 시스템을 무시하고 행담도 개발사업을 지원했으며, 이 과정에서 해군 작전시설의 건설공사 중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국장급 공무원 인사교류 등을 자체적으로 발표한다. 이 정책들의 소관부서이자 국민들의 위임을 받은 공식기구인 법무부, 외교부, 건설교통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교육부, 산업자원부는 위원회들이 발표한 정책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기관으로 변질됐다. 헌법상 삼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까지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지는 와중에 대통령 직속인 각종 위원회들은 감사원 정기 감사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대통령이 의장이 되는 국무회의에서의 토론과 표결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일들을 위원회라는 비헌법적 기관이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는 얘기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하고 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통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두 기관의 소명의식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두 기관이나 사법부가 의식을 못하는 사이에, 과거사와 관련하여 수사권이라는 마법의 황금지팡이는 어느새 각종 위원회의 수중으로 넘어가 버렸다. 코크는 사법부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는 제임스 1세에게 "국왕은 사람들 아래에 있지는 않지만 신과 법 아래에 있다"고 항변하였다. 이 시대에도 '대통령과 대통령의 위원회들은 사람들 아래에 있지는 않지만 법 아래에 있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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