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2월 12일 [제10권 7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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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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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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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여호수아를 격려하심" 여호수아 1:7, 8,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종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러 요단강 건너편의 가나안 땅을 바라본 후 거기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40년이 지난 때,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둔 때 있었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끝나고 그를 섬기던 여호수아의 사명이 시작되려 한 때이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열 정탐꾼과 백성의 불신앙 때문에 40년 방황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해야 했던 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 능력과 기적의 종 모세를 옆에서 섬기던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임무와 사명이 주어지는 그 중차대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격려하시며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 내용입니다. 첫째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너는 모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모든 말씀을 그대로 지키라는 것이며, 셋째는 그러면 내가 너에게 형통함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여호수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첫번째 내용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5-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 . .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세 번이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 한번은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데에 용기와 담력은 꼭 필요한 마음입니다. 그는 가나안 정복을 위해 많은 전쟁을 치루어야 할 것입니다. 전쟁을 치룰 군인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덕은 용기와 담력입니다. 군인이 용기와 담력이 없다면 전쟁에서 이미 진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는 군인이라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신앙생활은 전쟁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도록 대적하고 방해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성화는 영적 싸움의 과정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죄성과 세상의 악의 풍조와 사탄의 시험과 끊임없이 싸웁니다. 전도나 봉사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특히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을 가장 싫어합니다. 전도하는 일과 참 교회를 설립하는 일은 마귀의 일차적 공격 목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성취하려면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기에 성도에게 용기와 담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무쇠같이 강하지 않고 매우 약합니다. 사람은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낙심하기 잘합니다. 누구든지 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울함과 열등감과 패배감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것이 사람에게 병이 될 수 있고 어떤 때는 그것이 사람을 완전히 폐인이 되게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힘이 되십니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고 또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시 18:1, 29).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 28-3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20). 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지금 믿는 이들 속에 거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 8:9).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속에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사실은 성도의 특권 중에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인해 힘을 얻으십시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교훈했고(고전 16: 13) 또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했습니다(엡 6:10).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로 말미암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합시다. 낙심과 근심을 다 버리고 주 안에서 기뻐하며 용기와 담력을 얻읍시다. 모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하라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의 두 번째 내용은, 모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너는 . . .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 . .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7, 8). 이 말씀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승리하는 길이 군사력이나 지도자의 힘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지 않고 주위의 이방 사람들의 종교와 문화와 생활 방식에 눈길을 돌리며 그것을 모방하는 데서 기인했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길입니다. 이것이 세속화의 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말로 자유주의화, 포용주의화, 다원주의화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타락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망하는 길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이나 전도나 봉사의 일에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믿음 중심, 순종 중심, 의 중심으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그것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요 그것이 곧 불신앙이요 불순종이요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의의 길이요 승리의 길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말씀 중심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주야로 묵상하기를 원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경건하고 의로운 삶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이요 복된 삶입니다. 여러분은 시편 1편을 아실 것입니다. 거기에 말씀하기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시 1:1-3). 또 여러분은 시편 119:165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거기에 말씀하기를,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용기와 담력도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생깁니다. 죄인은 담대함이 없습니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여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살 때 "내가 그들의 마음으로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 26:36). 신명기 28장에서는 죄의 형벌의 하나로 경심증(驚心症)을 언급했습니다(신 28:28). 그러나 잠언의 말씀대로,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합니다(잠 28:1). 죄는 죽음과 불행의 원인입니다. 죄는 재앙과 멸망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의는 승리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영적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능력과 승리는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능력과 승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에는 복잡한 일들이 많고 신앙 생활의 여정에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방해와 유혹들이 많지만,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우리는 이 모든 일들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롬 8:37). 바울은 전도 활동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하여금 항상 이기게 하심을 체험한다고 고린도후서에 고백했습니다(고후 2:14). 사도 요한도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증거합니다(요일 5:4, 5). 그러므로 성도가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과 봉사에서 승리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리하면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세 번째 내용은, '그리하면 네가 형통하리라'는 것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7, 8). 우리가 경건하고 의롭게 살면 이 세상의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에서 승리하고 평안을 누린다는 것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원리입니다. 그러나 매우 단순한 그 원리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것은 레위기 26장이나 신명기 28장의 모세의 율법에서 밝히 증거된 바입니다. 거기 말씀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 평안과 복을 얻고 그 계명에 순종치 않으면 재앙과 화를 당한다고 했습니다. 잠언도 증거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습니다(잠 3:7-10). 건강도 경제도 그러합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증거하는 대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사 48:22; 57:21). 예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즉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의 뜻을 행함으로 의롭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더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3). 왜 하나님의 진리가 이렇게 단순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유일한 주권적 섭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누구든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복을 거두시면 아무도 복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대원칙입니다. 옛날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훈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 각인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나 전도와 봉사를 하는 데 교훈이 됩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일진대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의 힘이시요 우리의 기쁨이시며 우리의 큰 위로이십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의 교훈대로 좌로나 우로 치우지지 말고 온전히 행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바른 신앙생활과 열매 있는 봉사 생활을 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것은 말씀 중심, 믿음 중심, 순종 중심, 의(義)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때, 비록 부족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살려고 애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통과 평강과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부족할지라도, 마귀와 악의 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살아계시고 참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지키시고 복 주시면 우리는 평안을 누리며 형통을 누릴 것입니다. 또 우리의 봉사의 삶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능력과 승리는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며 말씀 중심으로 진행합시다. ----------------------------------------------------------------------- 지난오후설교: 성경적 분리의 원리 현대교회의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교회들은 분리에 대한 성경의 교훈에 성실해야 한다. 성경은 성도들 간의 사랑의 교제를 강조하는 동시에 악을 행하는 자들과의 교제의 단절 즉 분리(分離, separation)를 가르친다. 분리의 대상 성경은 성도들이 어떤 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분리하라고 가르치는가? 성경이 교제치 말고 분리하라고 가르치는 대상은 네 부류의 사람들이다. 첫째로, 성경은 성도들이 불신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고린도후서 6:14-16,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여기에서 교제란 물론 교회적 교제 즉 영적 교제를 가리킨다. 불신자들은 성도들에게 전도의 대상이지, 영적 교제의 대상이 아니다. 둘째로, 성경은 성도들이 이단자들과 분리하라고 가르친다. 로마서 16:17, 18, "너희의 교훈[너희가 배운 교리]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 요한이서 10, 11, "누구든지 이 교훈[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의 교리]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기독교 역사상 천주교회는 큰 이단이며, 19세기에 나타난 각종 이단 종파들과, 특히 20세기에 교회들을 부패시킨 자유주의 신학은 가장 심각한 이단이다. 천주교회의 이단성은 분명하다. 천주교회는 성경의 유일한 절대권위성을 넘어서서 교황의 무오한 권위를 주장한다. 또 천주교회는 마리아의 무죄 잉태, 승천, 중보사역을 주장하고 그에게 중보자와 보혜사 등의 칭호를 돌리고 그에게 기도한다. 또 천주교회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를 명백히 부정하고 정죄한다. 또 천주교회는 미사를 그리스도의 계속적 속죄 사역이라고 주장한다. 적어도 이런 점들에서 천주교회는 명백히 비성경적 이단이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빙성, 신적 권위, 무오(無誤),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와 형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및 처녀 탄생, 그의 기적들, 그의 형벌적 대속(代贖), 그의 부활의 확실성, 그의 재림 등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이단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이런 이단들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참된 교회들은 천주교회와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성경은 성도들이 드러난 죄를 범하고 회개치 않는 자들로부터 분리하라고 가르친다. 고린도전서 5: 11-13,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 . .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교회가 성도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다 살필 수는 없지만, 드러난 일들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적절한 권징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넷째로, 성경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고의적으로 순종치 않는 형제들과도 교제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데살로니가후서 3:6, 14-15, "규모 없이[무질서하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치 않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않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오늘날의 신복음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들은, 비록 복음 진리를 믿는 형제들일지라도, 고의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있고 교회의 질서를 깨뜨리고 있는 자들이다. 분리의 이유 성도들은 왜 이런 대상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분리해야 하는가? 첫째로, 성도들은 교회의 본질 때문에 그러해야 한다. 교회는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께 순종하기로 다짐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을 생각할 때 바른 교훈과 그것에 대한 순종은 교회의 기본적 요소이다. 여기에 성도들 간의 교제의 선, 그리고 교회와 세상 간의 경계선이 있다. 둘째로, 성도들은 교회의 거룩함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교회는 교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거룩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드러난 오류들을 고의적으로 포용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악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분리가 필요하다. 교리적 악이든지 윤리적 악이든지 악은 누룩처럼 퍼져나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전 5:6; 갈 5:9). 디모데후서 2:17,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데."그러므로 악한 자들과 교제를 끊고 분리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점점 더 부패되고 말 것이다. 분리의 방법 그러면 악한 자들과의 교제의 단절 혹은 분리는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우선 교회 안에서 권징의 단계들, 즉 권계(勸戒, 권면과 책망)와 일시적 수찬 정지(성찬에 참여함을 일시적으로 금지함)와 제명 출교(교회에서 내어쫓음) 등의 순서를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성경적 분리의 원리는 전통적으로 이해해온 권징의 원리와 동일하다. 오늘날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함으로써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와 같이 배교적이게 되고 있다. 성경적 분리의 원리는 오늘날 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만일 지교회 혹은 지교단이 자유주의화 되거나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한다면, 신실한 종들과 성도들은 그 교회의 갱신을 위해 합법적 방법을 사용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교회의 갱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예를 들어 교회의 지도층의 다수가 배교적이거나 배교를 고의적으로 포용할 때, 신실한 종들은 그 교회 혹은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교 개혁 때와 같이 지교회 혹은 교단이 전체적으로 부패하고 배교적일 때 참된 종들과 성도들은 그 교회 혹은 교단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부득이한 상황에서, 혹은 교회적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그 속에 머물러 있으며 자유주의 신학을 반대하고 그것과 싸우는 자들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 그들은 자신의 신앙의 절개와 순수성을 지켜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 24, 25,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요한계시록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또 오늘날 성경을 그대로 믿는 보수적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자유주의 교회를 포용하는 신복음주의 교회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수적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포용주의적 교회들과 연합 전도집회, 연합 성찬식, 및 성서공회, 기독교 방송국, 찬송가 발행 등의 연합적 사업 혹은 활동들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악한 자들과의 교제의 단절 혹은 분리는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성급한 단절과 분리는 교회의 일체성을 저버리며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표와 영광을 손상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제를 끊을 때 매우 신중히 처신해야 하며, 또 그때에도 성도들은 항상 겸손과 사랑의 덕을 간직해야 한다. 자신을 남보다 높게 생각하는 교만이나 형제에 대한 미움은 악에 대한 타협보다 결코 작은 죄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