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11월 05일 [제10권 45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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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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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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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창세기 7장: 홍수 심판 [1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구원은 가정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뿐 아니라 그의 가정도 구원해주셨다. 사도행전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은 개인적이지만, 아버지가 구원받으면 가족들도 대체로 구원의 복을 받을 것이다. [2-3절]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짐승들과 새들을 방주에 들여놓게 하심으로 그것들을 땅에 보존시키셨다. 홍수 심판은 대변혁이었지만,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는 변혁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들과 새들을 다시 창조하지 않고 그것들을 방주에 보존하기를 원하셨다. 노아 시대에 벌써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이 있었다. 그 구별은 후에 모세의 율법에서 성문화되었다(레 11장, 신 14장). 암수 '일곱씩'이라는 원어(쉬브아 쉬브아)는 '일곱 일곱'이라는 뜻으로 암수 '일곱 쌍'을 가리킨다. 암수 '둘씩'이라는 말은 '한 쌍'을 가리킨다. 정결한 짐승들과 새들을 암수 일곱 쌍씩 보존케 하신 것은 그것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사용하며 또 홍수 후 사람들의 식물로 사용케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창 8:20; 9:3). [4-6절] 지금부터 7일이면 내가 40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600세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7일 후면 40일 동안 밤낮 비가 내릴 것이다. 땅에는 큰 홍수가 있을 것이며 그 홍수로 땅 위의 모든 생물은 멸망할 것이다. 그 때 노아의 나이는 600세이었는데, 그것은 성경의 문자적 연대 계산에 의하면 아담이 창조된 후 1656년경이며, 대략 주전 2456년경이었다.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다. 그는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도, 모든 생물을 방주 안으로 들여놓으라는 명령도, 모든 식물을 비축하라는 명령도, 또 그와 그의 온 집이 방주로 들어가라는 명령도 다 행하였다. 의인 노아의 삶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삶이었다. [7-10절]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7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와 그 가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에 들어갔다. 그들은 필요한 생활 도구들과 식량을 방주로 옮겼을 것이다. 방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홍수가 시작되기 7일 전에 있었다. 아직 비가 오지 않는 때이었다. 이웃 사람들은 "무슨 홍수가 나서 세상이 망한다는 말인가" 하며 비웃었을 것이다. 그를 미쳤다고 놀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였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생물들은 암수 둘씩 질서 있게 노아에게 나아왔다. 그것들은 다가올 홍수 심판을 예감이라도 하듯이 방주로 나아왔다. 그 많은 생물들이 순순히 방주 속으로 들어온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매우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들은 다 방주에 들어갔다. 아무리 방주가 준비되어 있었을지라도 그 배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홍수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이지만, 그들은 그 배 안으로 다 들어갔고 땅에는 홍수가 있었다. [11-12절]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곧 그 달 17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그때는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이었다. 연월일의 계산은 인류의 초기부터 있었던 것 같다. 노아 시대 홍수의 정확한 날짜는, 입에서 입으로나, 토판(土版) 같은 기록물을 통해 전해 내려왔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특별 계시에 의해, 모세에게까지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만큼 성경은 정확하게 역사적 성격을 띤다. 성경은 역사적 책이다.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려 비가 40주야 땅에 쏟아졌다. 땅의 물 근원들은 터졌고 하늘의 수증기들은 창들이 열리듯이 땅에 부어져 내렸다. 이런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났다. 땅 위의 이상기후 현상은 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난다. [13-16절]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홍수가 시작된 그 날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다 방주로 들어왔다. 또 암수 한 쌍씩 그들에게 나아온 모든 생물들도 다 들어왔다. 방주 밖에는 심상치 않은 소낙비로 인해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감돌기 시작했을 때, 노아의 식구들과 그 모든 생물들은 다 방주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이었다. 그러므로 16절은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고 기록한다.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이도,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신 이도 다 하나님이셨다. 방주는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셨고 하나님이 친히 주관하시는 배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노아와 그와 함께한 자들을 방주 안에 닫아 넣으셨다. 방주 안의 사람들과 방주 밖의 사람들은 구별되었고, 방주 안의 생물들과 방주 밖의 생물들도 구별되었다.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고, 방주 밖에 있는 자들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정한 시간이 지났고 문은 닫혔다. 그 문은 사람이 닫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닫으신 것이었다. 하나님이 닫으셨기 때문에 그가 허락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 문을 열 수 없었다. [17-20절] 홍수가 땅에 40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15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40일 동안의 비로 온 땅은 물 바다가 되었다.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물이 더 많아지자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다. 물이 더 많아져 천하의 높은 산들이 다 덮였다. 본문은 물이 15규빗, 약 7미터 더 불어오르자 온 산들이 덮였다고 말한다. 노아는 아마 그 사실을 하나님의 계시로 알았을 것이다. 이 홍수는 한 지역에 국한된 홍수가 아니고, 온 세계에 미친 홍수이었다. 어떤 이들은 홍수가 유브라데강 유역에 국한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1) 히말라야 상봉을 덮으려면 현재 지구상의 물의 8배가 있어야 하며 (2) 그 물이 없어지는 것도 큰 문제이며 (3) 모든 식물이 1년간 소금물에 잠겼다면 살 가능성이 아주 적으며 (4) 어떤 지역은 침수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 등을 들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은 이 홍수가 지역적 홍수가 아니고 세계적 홍수임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본문은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였고 땅 위의 모든 사람과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고 분명히 증거한다(19, 21-23절). 이 말씀을 부정하지 않는 한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는 땅이 깊이 갈라진 곳이 있고 그 속에 동물들의 골격이 남아 있다고 하며, 또 세계의 여러 민족들에는 홍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인도의 마누는 다른 일곱 명과 함께 세계적인 홍수에서 배 타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며, 중국의 파헤는 그의 아내와 세 아들과 세 딸만 함께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하와이의 누우, 멕시코 인디안들의 테즈피, 알곤킨인들(북아메리카의 한 원주민)의 마나보조 등도 인류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받았고 오직 한 사람이 가족들과 함께 배를 타고 구원받았다고 전한다. [21-24절]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물이 150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홍수는 죄악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죄악되었던가. 일부 일처의 가정 윤리는 깨어지고 남자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자들을 마음대로 취하였다. 남녀의 순결성이나 정절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고 부부 관계의 사랑과 절제가 무가치하게 여겨졌다.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부패되었다. 또 강포가 땅에 충만하였다. 힘과 폭력이 지배하는 무서운 사회가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다. 본문은 홍수로 땅 위의 모든 사람과 생물이 죽었음을 반복하여 증거한다. '다,' '모든'이라는 말이 우리 성경에는 다섯 번, 영어 성경에는 여섯 번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철저한지를 잘 증거한다. 아, 하나님의 심판은 두렵고 엄위하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심판하시면, 그는 악인들의 부르짖음을 무시하고 그들을 땅에서 다 쓸어버리신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 모든 동물과 새까지 죽었다. 홍수 심판으로 모든 사람과 모든 새와 짐승과 땅에 기는 것이 죽었고,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사람들과 생물들만 남았다. 방주가 아니었다면 그들도 다 죽었을 것이다. 방주는 그들에게 홍수로부터의 구원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새 세상을 위해 오직 그들만 남겨두셨다. 본문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옛날 노아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을 뿐 아니라, 장차 불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알아야 한다. 베드로후서 3:6-7,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성경은 악인들을 위한 지옥 불못을 밝히 증거한다(계 21:8). 둘째로, 모든 사람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의인들과 악인들이, 신자와 불신자가,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다 그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2,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 . .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 셋째로,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오직 그를 믿으며 죄를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았던 노아가 구원을 받았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하는 참된 신자들만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다.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한다(행 16:31). 신자는 죄에게서 해방되었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는 자이며 그 마지막은 영생이다(롬 6:22). 또 육신대로 사는 자는 반드시 죽지만,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는 살 것이다(롬 8:13). 그러므로 우리는 장차 임할 불 심판을 잘 대비하는 신자가 되자. ----------------------------------------------------------------------- 지난오후설교: 현대 기독교 음악(CCM)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 음악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전에 술집과 댄스홀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종류의 음악들이 버젓이 교회 안에서 연주되고 있다. 이러한 음악의 변화는 우리 주변에 이미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그 증거를 수집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에 보도된 몇 가지 예들만 보자. 1994년 미국의 텍사스주 휴스턴 제일침례교회(담임목사: 죤 비새그노 박사; 남침례교단 소속)는 그 교회의 솔리드 록 카페에서 엘비스 대회와 비틀즈 음악 연주를 가졌다. 2000년 미국의 남침례교단의 신년 전야제 '유스링크 2000'은 일곱 지역들에서 삼일 밤, 이틀 낮 밀레니엄 축제로 치루어졌다. 네 개의 남침례교회 기관들에서 후원한 이 행사는 남침례교회 역사상 가장 큰 청년 모임이었다.1) 그 모임은 4만 6천명 이상의 남침례교회 청년들을 모았고 그들은 미국 내에서 알려진 '기독교' 록 밴드들에 의해 귀가 찢어지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찬양과 예배 음악을 즐겼고 약 새벽 2시까지 웃으며 노래하며 소리치며 춤추었다.2) 2002년 7월 25일 밤 미국의 달라스 제일침례교회(원로목사: W. A. 크리스웰; 남침례교단 소속)의 하드코어-어돈 연주회에서 청년들은 떠들석하게 춤을 추었다. 그 지역 신문은 보도하기를, "떠들석한 춤과 천둥 같은 기타들과 크리스챤의 경건으로 어울러진 연주회로 인해 그 교회의 부속건물인 장엄한 스펄젼 해리스 빌딩은 흔들린 것 같았다"고 하였다.3) 현대 기독교 음악(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다수는 록 음악이다. 록 음악은 1950년대에 생긴 것으로서 50년대에 엘비스 프레슬리와 60년대에 비틀즈로부터 80년대 마이클 잭슨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음악 형태를 가리킨다. 록(rock)이라는 말은 로큰롤(rock and roll, '흔들고 굴리라')의 줄인 말이다. 이 말은 미국의 방송 음악 진행자인 알란 후리드(Aland Freed)가 처음 사용했는데 육체적, 성적 움직임을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4) 시카고 대학의 알란 블룸 교수는 "록 음악은 성적 욕망이라는 오직 한가지에 마음을 끈다"고 말한다.5) 록 음악의 한 특징은 드럼이나 씸벌즈나 기타를 사용한 반복적이고 자극적인 비트에 있다. 촬스 브라운은, "아마도 록 음악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은 비트이다. 록 음악은 비트 때문에 다른 음악들과는 구별된다"고 말한다.6) 반복적인 비트는 사람의 감정을 강하게 몰아대고 자극한다. 록 음악의 다른 한 특징은 당김음(약약강격)를 많이 사용하고, 불협화음이나 단조(短調)를 빈번히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음악의 질서와 안정성을 파괴한다. 록 음악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음(高音)과 시끄러운 소리이다. 대형 제트기는 이륙 시 대략 120데시벨(db)의 소음을 내며, 천둥소리의 최고 기록은 약 125데시벨인데, 록 콘서트에서의 고음은 대략 130-140 데시벨이라고 한다. 고음은 사람의 감정을 사로잡고 어지럽히고 흥분시키고 격화시킨다. 또한 록 음악의 가사들은 폭력, 반항, 자살 권면, 마약, 음란, 사탄 숭배 등의 나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현대 기독교 음악(CCM) 혹은 크리스챤 록 음악은 세속적 록 음악과 매우 비슷하다. 현대 기독교 음악의 곡은 세속 음악과 별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것의 작곡 형식은 전통적 형식과 매우 다르다. 그것은 전통적 음악이 가지는 질서와 조화, 안정성, 아름다움 등을 중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복적, 자극적 비트와 리듬을 사용하며 또 당김음이나 불협화음과 단조를 빈번히 사용한다. 따라서 현대 기독교 음악은 매우 육감적이다. O. T. 스펜스7)는, 거의 모든 복음성가들에 록 음악의 형식이 들어있으며 그것들은 대부분 은사주의자들이 만들며 주로 사람의 감상적 체험과 느낌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가스펠 록은 육신적 음악이라고 평가한다. 또 그는 "[사람이] 현대 기독교 음악(CCM)에 젖으면 몇 년 후에 록 음악으로 갈 것이다"라고 경고한다.8) 하나님은 거룩하고 존귀하시다. 그는 무질서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이시다(고전 14:33). 우상숭배자들은 오락적 춤과 노래를 좋아하지만(출 32:6, 19), 성도들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해야 한다(시 96:9). 성도들의 찬송과 노래는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것이므로 경건하고 질서와 안정성이 있고 조화와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 성도의 노래는 세상의 것과 구별되어야 한다. 성경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하며(롬 12:2) 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말한다(요일 2:15). 성도의 노래는 결코 세상 노래처럼 자기만족적이거나 자기도취적이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 음악은 육신적 즐거움과 만족을 줄지는 모르나, 확실히 성도들의 찬송이나 노래로는 부적합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노래에 영향받은 현대 기독교 음악(CCM) 즉 크리스챤 록 음악과 그런 류의 복음성가들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 문화 속에 있는 죄악된 요소들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현대 복음송들의 곡과 가사를 신중하게 검토하며 선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옛날부터 즐겨 불렀던 찬송가들을 부르도록 권장해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노래해야 하지만, 그 노래들은 경건하고 조화롭고 안정적이고 아름다워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말한다(빌 1:10). 우리는 음악에서도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한다.
1) Sword of the Lord, 18 February 2000. 2) Calvary Contender, 15 March 2000. 3) Dallas Morning News, 1 August 1998; Fundamentalist Digest, July-August 1998; Calvary Contender, 1 September 1998. 4) Webster's New World Dictionary, 3판, p. 1161; O. T. Spence, Straightway, vol. 25, p. 3. 5) Allan Bloom, 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 (1987), p. 73. 6) Charles T. Brown, The Art of Rock and Roll (1983), p. 42. 7) 고(故) Dr. O. Talmadge Spence는 미국의 Foundation 성경대학과 신학교의 창설자이다. 그는 피바디 음악학교도 나왔고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8) O. Talmadge Spence, 1993년 10월 24일, 서울 잠실동교회 설교에서.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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