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4월 09일 [제10권 15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02-334-9874,  Fax: 02-337-4869,  E-mail:
oldfaith@oldfaith.net


지난오전설교:                              "아모리 다섯 왕을 죽임"

여호수아 10:8,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여호수아 10장에 보면,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을 불러 함께 기브온을 공격하였습니다. 그 때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빠른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스라엘은 즉시 올라가 그 연합군과 싸웠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다 멸하였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막게다, 라기스, 게셀, 에글론, 헤브론, 드빌 등의 성들도 다 멸하였습니다. 우리는 본장의 사건에서 몇 가지 진리와 교훈을 찾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본장에서 두 종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고 다른 하나는 가나안의 여러 성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나라입니다(신 7:6).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고 이제 그 땅을 진멸하라는 임무를 주셨습니다.

가나안의 여러 성들은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세상 나라입니다(신 7:1-5; 레 18:24-25).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며 마귀의 지배를 받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과 그들의 전쟁은 불가피하였고 가나안 성들은 마침내 다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본장에서 두 종류의 나라를 보고 그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을 보는 것입니다. 이 두 나라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이 두 나라에 대해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둘 중 하나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지 않은 모든 사람은 세상 나라에 속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 두 나라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로 구성된 나라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이 나라는 불완전하지만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나라로 나타났고 신약시대에는 교회로 나타났습니다.

신약 교회로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된 바이었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꾼 금신상의 꿈을 해석하면서 말하기를, "이 열왕의 때[로마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고 했습니다(단 2:4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예언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셨고(마 4:17) 이 나라를 밭에 뿌려진 씨에 비유하셨습니다(마 13장).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행 28:23, 31). 신약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입니다. 세계 역사는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과정에 대한 역사입니다. 마침내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될 것입니다(계 11:15).

둘째로, 본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가나안의 성들을 진멸(殄滅)하는 것 즉 완전히 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장뿐 아니라 여호수아서 전체의 주요한 내용입니다. 가나안의 모든 성들을 완전히 멸하라는 것은 모세를 통해 명령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신 7:2). 이것은 전쟁을 통해 이루어질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비참하고 비극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성들을 완전히 멸하는 것은 오늘날 무엇에 비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택함받은 모든 사람을 구원해내는 전도와 구원받은 영혼들의 성화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전도와 성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 전쟁과 같습니다. 마귀는 영혼들을 죄에서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일을 가장 싫어하고 그것을 가로막고 방해합니다. 세상과 교회는 영적으로 항상 전쟁 중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전도 활동의 역사책인 동시에 그들이 받은 핍박의 역사책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롬 7:22-23).

예수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고(요 15:18-19),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딤후 3:12).

전도와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나 핍박 속에서도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었고 성도들은 충성된 마음으로 주를 따랐습니다. 가나안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외적인 전쟁이 아니고 영적인 전쟁입니다. 영혼 구원의 전도와 구원받은 영혼들의 성화는 영적 전쟁의 길입니다. 그것은 때때로 핍박과 심지어 순교의 피흘림을 요청합니다.

셋째로, 본장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하신 임무를 잘 수행했음을 증거합니다. 그들은 먼저 그 전쟁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본장은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성들의 왕들과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부쳐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8절,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19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30절, "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32절,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의 긴급한 구원 요청을 듣고 즉시 응답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8절). 여호수아는 길갈에서 기브온으로 밤새도록 올라갔고, 그 성을 향해 진을 친 아모리 다섯 왕들의 군대들을 갑자기 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본장 1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원문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당황케 하셨고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죽이셨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셨고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러 죽이셨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옛날 영어성경(KJV)이나 근래의 어떤 권위 있는 영어성경(NASV)은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놀라운 표현! 하나님께서는 친히 가나안 사람들을 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본장 11절에 보면, 아모리 다섯 왕들과 그 군대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원문에는 '큰 돌들'이라고 되어 있음]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셨으므로 그들이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습니다.

또 12-14절에 보면, 그 전쟁에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께 아뢰며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하라"고 명령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셔서 그들이 그 전쟁에서 이기기까지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쳤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고 또 그 사실이 야살의 책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증거합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본장 14절과 42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다고 거듭하여 증거합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 전쟁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개입하셨고 그가 친히 도우셨고 그가 놀랍게 응답하셨고 그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셨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25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아모리 다섯 왕들을 죽이기 전 이스라엘 군장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그 임무를 잘 수행했습니다. 본장 40절은 결론적으로 기록하기를,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고 했고 또 42절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고 했습니다.

본장에 증거된 이스라엘의 이러한 임무 수행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가나안 전쟁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듯이 전도와 성화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교회의 임무와 사명인 전도와 영혼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행하시는 일입니다. 또 성도의 성화는 그들이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이루어집니다(갈 5:16). 그것들은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人子) 곧 자기 자신이라고 말씀하셨고(마 13:37) 또 그는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마 15:13). 또 그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37). 영혼 구원은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일입니다.

사도행전도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교회에]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증거합니다(행 2:47). 또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에 대한 일을 들은 후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행 11: 18).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하나님께서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친히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했고(롬 8:30), 또 하나님께서 신자들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고 그 일을 주의 재림의 날까지 다 이루신다고 말했고(빌 1:6), 또 신자들 속에 새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라고 말했습니다(고전 3:7).

그러므로 영혼의 구원의 전도와 구원받은 자들의 성화와 온전케 됨은 성도들이 구주 하나님만 의지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수행함으로 이루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해봅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상에서 두 종류의 나라를 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요 다른 하나는 세상 나라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모든 자는 세상 나라에 속합니다. 세상은 가나안 땅처럼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그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참으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오늘 하나님께로 나오십시오. 오늘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옛날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듯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다 찾아 구원하며 그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전도의 일과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을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선 전도와 성화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영혼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이 심으시고 하나님이 이끄시고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일이며 시작하신 그가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나안 전쟁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전도와 성화를 위해 때때로 핍박과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의 뜻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

지난주일오후설교:                              은혜의 수단

은혜의 수단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수단인데, 그것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 등이다. 소요리문답 [88문답]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택들을 전달하시는 일반적 외적 수단은 그의 규례들, 특히 말씀과 성례들과 기도인데, 그 모두가 선택된 자들에게 구원을 위해 효력이 있습니다.

은혜의 수단의 역할에 대하여 역사상 여러 견해가 있었다. 천주교회는, 말씀과 성례를 은혜의 수단으로 제시하나 성례를 더 강조하며 교회 자체를 은혜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적 은혜가 성례에 객관적으로 들어 있으며, 성례는 '행해진 행위에 의해'(ex opere operato) 하나님의 구원적 은혜를 전달한다고 본다. 루터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례보다 강조하며 성례가 가견적 말씀으로서 말씀을 떠나서는 무의미하다고 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이나 성례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 자체에 효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신비주의는, 은혜의 수단이 자연세계에 속하는 것이므로 영적 효력과 결실을 가져오지 못하며, 하나님의 은혜는 그런 수단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신비주의는 은혜의 수단을 무시한다. 이성주의는, 은혜의 수단을 성령의 초자연적 활동의 도구로 보지 않고 단지 도덕적 설득의 도구 정도로 본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은혜의 수단이 그 자체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나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도구가 된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은혜의 수단은, 비록 우리가 그것을 미신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지만, 존중히 여기고 사모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성화의 중요한 수단이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성경 말씀과 그것에 근거한 설교를 의미한다. 성경의 여러 말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은혜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은 밝히 증거한다. 시편 1:2- 3,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9:7- 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사도행전 17: 11-12,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로마서 1:16,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디모데후서 3:15-16,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과 복음으로 구성되며 이 둘이 다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구약성경은 율법을 강조하고 신약성경은 복음을 강조하며, 그 둘은 다 사람의 구원과 성화를 위한다. 신명기 6:25,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요한복음 1: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로마서 3:21- 22, "이제는 율법과 별개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 .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나 구약도 의식법을 통해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고 신약도 은혜의 복음과 더불어 도덕법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성경은 복음이 없는 율법뿐이요 신약성경은 율법 없는 복음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신약 아래서 율법 즉 도덕법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로, 율법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 의(義)이다. 율법은 의의 법이다. 둘째로, 율법은 사람에게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한다. 로마서 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음이니라." 셋째로, 율법은 사람을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갈라디아서 3:24,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율법과 성도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성도는 구원의 조건으로서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그는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로마서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글자]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 .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러나 성도는 도덕적 의무로서는 여전히 율법을 지킬 의무 아래 있다. 도덕법은 성도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줌에 있어서 여전히 유익하다. 그것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칙이다. 그것은 우리의 성화의 목표요 수단이다. 로마서 7:12, 14,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 . .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고린도전서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디모데전서 1:8,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정당하게 사용하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효력을 단지 도덕적이라고 보며 말씀을 통한 성령의 초자연적 활동을 부정한다(펠라기우스파나 이성주의). 다른 이들은 성경 말씀의 도덕적 영향력이 불충분하고 성령의 보충적 활동이 필요하다고 본다(반(半)펠라기우스파나 알미니우스파). 신비주의는 기록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불필요하다고 보며, 신자 속에 있는 내적인 빛 즉 성령의 내면적 음성만 강조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과 함께 또 그것을 통해 활동하시는 성령의 활동으로 효력을 가진다고 본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해 증거한다. 요한복음 6:63,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베드로전서 1:23,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

그러나 성경은 또 하나님의 영의 활동에 대해서도 증거한다. 요한복음 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디도서 3:5,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은혜의 일차적 수단이므로, 개인적 성경 읽기는 매우 복된 일이다. 또 성경적 설교는 목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영혼의 구원과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현대교회문제:                                      빌리 그레이엄과 천주교회

[캘버리 컨텐더, 2005년 2월호]

2004년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의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를 준비하면서 빌리 그레이엄 단체는 로마 천주교 대교구에게 천주교인들이 개종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것은 그레이엄 박사의 오랫동안 견지해온 신념과 방침에 따른 것이다. 즉 천주교인을 개종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며 누구든지 자신을 천주교인이라고 말하는 자는 천주교회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1950년대 이후 그레이엄의 활동방침이었다. 수천 명의 천주교인들의 이름들이 '양육'을 위해 천주교회로 넘겨졌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기들이 이리들에게로 넘겨진 것이다! 

릭 워런과 천주교회

[November-December, Proclaiming the Gospel; 캘버리 컨텐더, 2005년 2월호]

릭 워런의 목적에 몰린 교회 세미나들은 이제 로마 천주교회들에 의해 접대를 받고 있다. 그 세미나의 로고에 있는 마케팅 메시지는 "목적에 몰린 교회를 실행하기--여러분의 메시지나 사명을 타협함이 없는 성장"이다. 우리가 로마 천주교회가 무오하게 선언한 공적과 성례의 복음을 타협할 수 없고 결코 하지도 않을 것인 고로, 우리는 "목적에 몰린 교회 세미나의 복음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지" 의아함을 가져야 한다. 로마 천주교회들이 릭 워런의 세미나들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그는 가끔 로마 천주교 지도자들을 호의적으로 인용한다.  

복음주의자들과 몰몬교인들이 함께

[캘버리 컨텐더, 2005년 2월호]

2004년 11월 14일 "우정(友情)의 저녁" 대화 모임이 미국에서 열렸고, 라비 자카리아스(Ravi Zacharias)(주강사), 풀러 신학교 교장 리차드 무우(Richard Mouw), 크레익 헤이전(Craig Hazen) (Biola 교수), 죠셉 트카크, 그리고 마이클 카드 등이 특별강사로 참여했다. 데이빗 클라우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쓴다(O Timothy): ". . . 자카리아스보다 먼저 연단에 선 무우(Mouw)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진술을 하면서 몰몬교인들에게 사과하였다: '제가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겠습니다.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여러분께 죄를 지었습니다. . . . 우리는 여러분을 마귀로 만들었습니다. . . .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흔히 말일 성도들[몰몬교도들]의 신앙과 신념들을 잘못 표현하였습니다.'" 클라우드는 질문한다: "유일한 참된 복음을 전파하고 바울이 했듯이 거짓 복음들과 그리스도들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 죄인가?"

몰몬교는 이단종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교의 교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참으로 이 시대는 어둡고 혼란한 시대이다! 참된 성도들은 이단을 주의하고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책 안내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