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1월 1일 [제10권 1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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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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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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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죄인의 구주"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라." 마태복음 1:1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라"고 말합니다. 원문에 '세계'(世系)라는 구절(비블로스 게네세오스)은 '족보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신약성경 첫 부분은 예수님의 족보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구약성경과 연결시키는 뜻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분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는 몇 가지 사실을 증거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경건한 부모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구약 시대에 대표적으로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그에게 순종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경건한 자들에게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주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이시는 곳으로 갔던 자입니다(창 12:1-4). 또 그는 그에게 하늘의 별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자입니다(창 15:6).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또 그는 그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긴 자임을 나타냅니다(창 22:12, 18).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시면서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놀라운 약속을 하셨던 것입니다(창 22:18). 다윗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고 하셨고(삼상 13:14), 그를 이새의 집에 보내어 다윗의 형들을 심사하게 하실 때에도 사무엘에게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시며(삼상 16:7) 막내 아들 다윗을 불러와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증거했습니다(행 13:22, 23). 다윗은 소년 때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었습니다. 물론 다윗에게도 큰 실수가 있었지만, 성경은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다'고 증거합니다(왕상 15:5). 또 성경은 악한 왕들을 묘사할 때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다'고 표현합니다(왕상 15:3 등 여러 구절들에서).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복된 약속을 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아브라함과 다윗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크고 놀라운 메시야 약속을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그를 믿고 그의 계명들에 순종하는 자들을 더욱 사랑하시고 복 주십니다. 둘째로, 예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 때가 되어 그 약속을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자신을 두고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창세기 22:16-18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윗의 경우에도 시편 89:35-37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그 후손이 장구하고 그 위는 해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하셨도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사 9:6, 7; 11:10; 렘 23:5; 겔 34:23, 24; 호 3:5).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고 맹세하며 약속하신다는 말씀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뜻이며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대로 메시야를 보내어주신 것입니다. 비록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2천 년의 세월이 그리고 다윗에게 하신 약속은 천 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약속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족보에는 두드러진 죄인들의 이름들이 언급되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죄인들의 구주 되심을 증거합니다. 3절에 야곱의 아들 유다가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비록 그의 아내가 죽었고 외롭게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지라도, 그가 창녀에게 들어간 것은 실수이었고 그것도 그 여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자기 며느리였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또 다말편에서 볼 때 시아버지가 옛 시대의 풍습대로 막내 아들을 자기에게 주어 자녀가 있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말이 있었다 할지라도,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육체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히 죄악되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5절에 라합은 여리고 성의 창녀이며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 두 여자는 다 이방 죄인들입니다. 한 사람은 부도덕하고 천한 신분의 이방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젊어서 과부가 된 불행한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공통점은 그들이 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창녀가 메시야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또 가엾은 무명의 이방 여인이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6절에 경건한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야를 전장(戰場)에서 고의로 죽게 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악행이었고 그의 생애에 지울 수 없는 큰 오점(汚點)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통해 그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7절 이하에 다윗의 자손들인 유다의 왕들은 대부분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노년에 우상숭배에 떨어졌습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교만한 자였습니다. 아사는 경건했으나 말년에 발에 병이 있었을 때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사에게 구했고, 여호사밧도 경건했으나 악한 아합과 교제를 끊지 않음으로 그의 자녀들의 타락과 부패의 길을 닦았던 어리석은 자이었습니다. 여호람은 아합의 딸을 취함으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본받았고 말년에 하나님이 치시므로 창자에 고치지 못할 병이 들어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던 자입니다. 웃시야는 교만해져 제사장의 일을 하려 들다가 문둥병이 들어 여생을 마쳤고, 므낫세는 유다의 왕들 중에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많은 우상숭배로 유다 왕국은 결국 멸망에 이릅니다. 아몬과, 여고냐 즉 여호야긴 등도 악하였습니다. 마침내 유다 왕국은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생활로 이어집니다. 구약 역사 전체가 그러하지만, 특히 열왕들의 5백 년 역사는 인간의 전적 부패를 증거한 역사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메시야의 인간적, 법적 족보가 그런 연약한 인간들을 통해 흘러내려왔다고 증거합니다. 사람들의 많은 부족과 무력(無力)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계획을 이루어 오셨다는 말입니다. 특히, 메시야의 족보에 이런 두드러진 죄인들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메시야께서 죄인들의 구주가 되실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시요 그의 주권적 긍휼은 죄인들을 구원할 구주를 보내시고 그들을 실제로 구원하셨고 또 구원하십니다. 마태복음 1:21의 증거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그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탄생하셨습니다. 그는 죄인들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눅 5:32). 또 사도 바울도 증거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다시 번역하면, '전적으로']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습니다(딤전 1:15). 예수님의 족보는 몇 가지 사실들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그들의 자손을 통해 메시야를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 그는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족보에 언급된 선조들은 부족한 죄인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증거합니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의 구주로 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구주 예수님을 감사히 받으며 이 사실을 만방에 전합시다. 또 우리는 항상 경건하고 의로운 생활만 합시다. ------------------------------------------------------------------------------------ 교리강해: "성도의 견인(堅忍)에 대한 반론들" 성도의 견인의 교리에 대해 여러 가지 잘못된 반론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견인의 교리가 성화에 대한 권면에 반대된다고 반론한다. 물론 성경에는 성화에 대한 권면들이 많이 있다. 로마서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요한복음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한계시록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그러나 이 말씀들은 권면받는 신자들 중에 어떤 사람이 끝까지 견디지 못하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사람의 자발적 행위를 수단으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또 어떤 이들은 견인의 교리가 성도를 나태와 방종으로 인도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편의 근면과 성실한 노력 없이 우리을 보호하신다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며, 성도의 견인의 확신은 도리어 성화를 위해 큰 위로와 힘이 되기 때문이다. 성도의 견인의 교리는 어떤 이의 표현과 같이 "위험한 시간에 불기둥"과 같다. 또 어떤 이들은 견인의 교리가 배교의 경고에 반대된다고 반론한다. 물론 성경에는 배교에 대한 경고의 말씀들이 많이 나온다. 마태복음 24:4, 5,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로마서 11:20, 21, ". . .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러나 이 말씀들은 신자들 중에 어떤 이가 배교하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구원의 완성을 위해 경고가 수단으로 사용됨을 증명할 뿐이다. 배교에 대한 경고가 구원받은 성도들의 배교의 가능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또 어떤 이들은 견인의 교리가 배교의 실례들에 반대된다고 반론한다. 성경에는 배교의 실례들이 없지 않다. 디모데전서 1:19, 20,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디모데전서 4:1,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디모데후서 2: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베드로후서 2:1,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그러나 배교자들이 한 때 교회 안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들이 참으로 중생하고 구원얻은 자들이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예를 들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속하였지만, 그는 처음부터 믿지 않은 자요 도적이요 깨끗지 않은 자이었다(요 6:64; 12:6; 13:10, 11). 히브리서 6:4-6과 10: 26-29의 말씀들도 배교의 경고 혹은 실례들에 관련된다고 본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성경적이다. 우리가 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신다. ----------------------------------------------------------------------- 현대사회문제: 사학법은 多數의 暴政이다 [정범모, "사학법은 多數의 暴政이다," 조선일보, 2005. 12. 23, A31쪽; 鄭範謨 한림대 석좌교수.] 설마 했던 문제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다수(多數)의 폭정(暴政)이다. 왜냐하면 헌법 31조에 명백히 규정된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의 보장을 정면으로 압살하려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본래 교육의 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까지 명시해서 보장하려 한 이유는, 교육이라는 중요하고 방대한 활동 영역은 권력자나 정치인에게는 그것을 어용화하고 정치도구화하고 싶어 군침이 도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데 있다. 헌법은 본래 다수로 권력을 잡은 강자(强者)라도 소수와 약자(弱者)의 최소한 권익을 함부로 짓누르지 못하게 하려는 제한 조건을 규정한 법이다. 그 조건을 무시할 경우 그것은 다수의 폭정이고 독재와 다름없는 사이비 민주주의에 접근하는 처사가 된다. 그간 한국의 학교와 대학은 교육부의 지나친 관료권위주의로 인한 자주성과 자율성 상실의 고뇌 속에서 허덕여 온 지 이미 오래다. 이제 거기에 더해서 정치인들마저 정부를 등에 업고, 한국 교육에서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학(私學)을 정치도구화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권력에 휘둘리고, 정치의 정욕(政慾)에 휘말린다면 교육계의 내일은 암담하다. 모든 정치적 야욕은 거의 언제나 어떤 정의(正義)의 명분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도,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도 정의를 가장했다. 이번 사학법 개정도 각종 사학 비리(非理)의 척결을 내세웠다. 그러나 숨은 동기는 이른바 ‘진보 세력’의 학원 장악, 방대한 사학 영역의 정략적 장악에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숨길 수 없이 명백하다. 나는 여기에서 보수·진보 논쟁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또 개정안의 조항 조항을 거론하지도 않겠다. 다만 ‘진보 세력’ 인사들이 정 그 정치세력의 확장을 원한다면, 학교와 교육의 바깥인 정치계에서 확장을 꾀해주기를 간청한다. 언필칭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한국 교육은 정욕(政慾)에 좌우되고, 정치도구화의 희생물이 되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학에 자주 일어나는 각종 비리와 부조리에는 나 또한 넌더리가 난다. 몇몇 사학에는 아직도 광정(匡正)되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학들은 교육이란 공립학교건 사립학교건 다 근본적으로 내일 이 나라를 떠맡을 다음 세대를 기르는 공교육(公敎育)의 일환을 담당하고 있다는 공공의식이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비리와 부조리의 광정은 사학의 이사회를 정치적으로 점령하고, 사학에 각종 족쇄를 채우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하지 않고도,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교육부와 정부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많은 감독권과 감사권을 적절히 그리고 충실히 이행만 하여도 그 길은 다양하게 열릴 것이다. 학교의 운영은 자율에 맡기고, 연후에 그 과정과 결과를 스스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발전의 정도(正道)이다. 두 가지만 결론적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공성은 교육의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무너지는 정도에 따라 그만큼 한 나라의 교육은 정치적 야욕의 아수라장이 되든지, 아니면 정치적 도구화의 족쇄가 채워진다. 또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다수결만이 만사가 아니고, 다수도 권력인 이상 모든 권력과 마찬가지로 쉽게 폭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폭정화를 막으려고 헌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아마도 그 이전에 필요한 것은 위정자들의 양식이어야 할 것이다. 국가위기의 진원지 전교조 [조선일보, 2005. 11. 9, A31쪽, 국민행동본부 광고 중.] 전교조(全敎組)는 욕설 편향 왜곡 조작 억지가 난무하는 '반(反)대한민국-반미(反美)친북(親北)' 교육으로써 학교를 황폐화시키고 학생들의 맑은 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최근 전교조 부산지부가 만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반대 동영상 교재에는 입에 담을 수도 없고 여기서 활자화할 수도 없는 욕지거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전교조 교사 약 9만 명은 사실상 치외법권 지대에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전교조의 반미교육 실태를 보고받고도 '특별히 문제삼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교육부는 전교조의 교재가 '이적성이 있다'고 확인하고도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란 교재를 검토한 좌파정권하의 통일부조차도 '미국 등을 분단과 전쟁 원인제공자로 기술하는 등 북한의 시각에서 북한을 미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교재로 써서는 안 된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사학법, 적화통일의 낙동강 전선 [조선일보, 2005. 12. 20, A35쪽, 국민의 함성 광고 중.] 사립학교를 축재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들 합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비리에 연루된 사학은 불과 1.7%에 불과합니다. 비리는 운영권을 창립자에서 전교조로 넘겨주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1993년부터 30여개의 사학들이 소위 '민주화' 세력에 의해 탈취당했습니다. 민주화 세력은 학교마다 '교수협의회'를 만들었고 '교수협의회'는 학생 및 학부모들로 구성된 위성단체를 만들고 이들을 선동하여 재단이사장을 악덕자본가로 매도합니다.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거짓말에 속아 분노합니다. 재단이사장에 달걀세례를 퍼붓고 소방호스로 물대포를 쏘아 창립자의 등교를 원천봉쇄합니다. 먼저 등교 거부, 폭력시위를 강행하고 언론을 통해 의혹을 증폭시킵니다. 교육부에는 거칠게 항의하여 관선이사를 내보내게 하고, 검찰에는 부정이 있다고 고발합니다. 검찰조사 결과 부정이 없고, 오히려 탈취 주동자들이 중벌을 받아도 사학은 일단 탈취됩니다. 무법천지요 백주의 강도행위입니다. 교육부가 '관선이사'를 내보내지만 이들은 곧 학원탈취 세력과 한편이 됩니다. 법은 뒷전이고 생떼가 이기면서 백주의 학원강탈이 기정사실화됩니다. 탈취를 주도한 민주화 어깨들이 연봉을 올리고 직급을 올리며 사학을 이념교육장으로 몰고 갑니다. 사학법은 이런 '관선이사'를 '개방이사'로 표현만 바꾼 것입니다. 한 개의 사학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3-5년간 투쟁을 합니다. 그러나 '사학법'이 통과되면 이런 고생하지 않아도 전국의 2,129개의 모든 사립학교를 일거에 빼앗게 됩니다. 전교조들이 알아서 개방이사를 모두 차지할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을 전투조직으로 단련시켜 반대세력을 초기에 진압할 것입니다. 이들이 지배하는 '협의회'는 재단이사장 및 총장을 의사결정 단계에서 제외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사학이 전교조에게 넘어가게 되는 메커니즘[방식]입니다. 일부 전교조는 학생들에게 북한을 조국이라 가르칩니다. 전교조가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라는 적화통일 교육지침서를 제작했습니다. 강정구가 거목으로 인용되고 강정구의 주장이 그대로 반영돼 있는 이 책을 교본으로 하여 적화통일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교수가 1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사학법이 실현되면 100%의 학교가 적화통일 교육을 시키게 됩니다. 전교조의 붉은 신분증,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라는 책자의 표지에는 인민군의 활짝 웃는 얼굴이 크게 부각되어 있고, 그 주위를 수많은 얼굴들이 꽃잎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인민군이 중심이 된 통일사회가 영상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을 만큼 반미-적화통일 노선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사진과 비디오 등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가르쳐라. 이 세상에서 이런 비참한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는 오직 미국뿐이라고 가르쳐라. 그래서 미국은 인류의 적이자 우리의 적이라고 가르쳐라. 그 다음의 적은 남한 내 친미-반공 기득권 냉전세력임을 가르쳐라.' 이제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언론법, 과거사법, 사학법, 국보법 등 4대 악법이 왜 악법인지 모르는 국민이 많습니다. 이미 통과된 언론법은 언론 장악법이고, 과거사법은 기득권세력을 친일파 또는 '억울한 사람들에게 빨갱이 누명을 씌운' 반인륜범죄자로 매도하여 찍어 내린 후, 그 자리를 좌익세력으로 대체하겠다는 '사회주도세력 교체법'이고, 사학법은 일거에 모든 사립학교를 전교조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법입니다. 여기에서 밀리면 저들은 여세를 몰아 국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킬 것입니다. 국보법은 이미 사문화된 법 아닌가, 그것이 통과되면 어째서 큰일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합니다. 좌익들은 국보법에 저촉되는 이적 행위를 노골적으로 저질러왔습니다. 저들은 국보법을 없애버림으로 '간첩죄'라는 나쁜 죄질의 전과기록을 없애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국보법이 폐지되면 저들은 처벌받을 염려 없이 더 노골적인 방법으로 적화통일 전략을 펼칠 것입니다. -----------------------------------------------------------------------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