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11월 12일 [제10권 46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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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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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창세기 8장: 방주에서 나옴

        1-14절, 물이 줄어들고 땅이 마르게 하심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들과 그들과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들과 새들을 생각하셔서 바람으로 땅 위에 불어 물을 감하게 하셨다. '권념(眷念)하다'는 원어(자카르)는 '기억하다, 생각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신 32:10) 손바닥에 새기시고(사 49:16)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신다(시 121:8).

[2절]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쳤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을 여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닫으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연만물과 그 현상들을 홀로 주관하신다. 비가 오는 것도 가뭄이 드는 것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

[3절]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감하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경우 자연법칙을 사용하시고 특별한 경우에만 기적을 일으키신다. 홍수도 자연적 방법으로 이루어졌고 홍수의 제거도 자연적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150일 동안 세상에 가득했던 물이 서서히 줄어들게 하셨다. 건전한 믿음은 기적주의가 아니고 자연법칙이나 이성적 사고를 존중한다.

[4-5절] 7월 곧 그 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 10월 곧 그 달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7월 17일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2월 17일에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 약 5개월이 지난 때이었다. 아라랏산은 오늘날 터어키의 동쪽 국경에 있는 높이 5,165미터 되는 산이다.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주위에 아라랏산보다 높은 산도 있고 또 멀리 동쪽 네팔 부근에는 유명한 히말라야 산맥의 높은 산들이 있었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아라랏산을 택하셨다. 그 지역은 홍수 후의 세계를 위해 선택된 곳이었다. 물은 점점 더 줄어들어,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지 70여일이 지난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6-12절] 40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接足)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 들이고 또 7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 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또 7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그 후 또 40일이 지난 11월 10일경,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았고 까마귀는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다. 노아는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았는데, 비둘기는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다. '접족(接足)할 곳을 차지 못했다'는 말은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7일 후에 다시 비둘기를 내어놓았을 때 그 비둘기는 감람 새 잎사귀를 입에 물고 왔다. 노아는 그것을 보고 땅에 물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알았다. 또 7일 후 비둘기를 다시 내어놓았는데 비둘기는 다시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땅이 말랐고 비둘기가 거할 곳을 찾았다는 증거이었다.

[13-14절] 601년 정월 곧 그 달 1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2월 27일에 땅이 말랐더라.

노아의 나이 601년 1월 1일, 땅 위에 물이 걷혔다.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제거하고 내려다보았고 땅에 물이 걷혔음을 확인했으나 땅이 완전히 마르지는 않았다. 또 두 달이 흘러 2월 27일에야 땅이 완전히 말랐다. 홍수가 시작된 지 1년 10일이 지난 때이었다. 그 기간은 온 세상에 대변혁을 가져온 시간이었다. 그 기간은 또한 노아의 식구들에게 갑갑하고 지루한 시간이었으나 두려움 중에 감사함이 넘친 시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15-19절, 방주에서 나오게 하심

[15-19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셨고 또 그와 함께한 모든 생물들도 다 이끌어내라고 하셨다. 이제 홍수가 끝났으니, 그들은 지루했던 1년 10일 간의 방주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방주에서 나와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고 이제는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노아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해야 할 일이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왔고 땅 위의 모든 생물들도 다 방주에서 나왔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추어야 한다.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야 한다. 그러한 생활 원리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따라 가야 했던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를 때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다.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하루만 머물 때에도 그들은 순종해야 했고, 한 달이나 일년을 머물 때에도 순종해야 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하나님의 명령과 신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진을 치기도 하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진행하기도 하였다(민 9:15- 23). 이와 같이 주의 자녀된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하심을 따라 가기도 하고 그의 명령과 인도하심을 따라 서기도 해야 한다. 

    20-22절, 하나님께 번제를 드림

[20-22절]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방주에서 나온 후, 노아는 첫째로 하나님께 단을 쌓았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들을 취하여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다. 이것은 그의 자발적인 행위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양의 첫새끼로 제사드렸던 의인 아벨의 발자취를 좇는 일이었다.

번제는 제물을 죽여 온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이다. 번제는 죽어야 마땅한 죄인들을 대속(代贖)하실 중보자의 죽음을 상징하는 뜻이 있었다. 노아와 그 식구들은 홍수로 멸망한 자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짐승 제물로 예표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을 받았다. 죄인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는다.

번제는 또한 하나님께 대한 노아의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큰 구원을 받은 노아는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헌신과 순종의 각오를 표현하였다. 홍수가 있기 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롭게 살았던 노아지만,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은 이후 그의 심정은 하나님을 향해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이것이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번제의 단을 쌓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의지하고 감사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했고(롬 12:1), 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교훈하였다(고전 6:19-20). 또 그는, "저가[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였다(고후 5:15).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드린 제물들의 향기를 받으시고 그 마음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땅을 저주하였지만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겠고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성경은 세상 마지막 날 불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그 경고대로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올 것이지만, 다시 홍수로 세상이 멸망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 8장에서 몇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자연만물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자. 비가 오게 하시는 이도, 홍수가 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비를 그치게 하시는 이도, 바람이 불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자연 은택 속에 산다면 하나님께 항상 감사해야 하고, 또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낙심치 말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를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수 있고, 만일 우리가 그의 뜻에 합당하게 산다면, 좋은 것을 풍성하게 주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한 걸음씩 오직 주의 명령과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자.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에 들어가기도 하고 방주에서 나오기도 하였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명령과 교훈대로 행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명령대로 가기도 하고 서기도 해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에게 우리의 삶을 의탁해야 하며 그의 교훈과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행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한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홍수로부터 구원받은 사실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단을 쌓은 것처럼, 우리는 지옥 형벌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고 감격하며 즐거이 주님을 섬기며 따라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옥갈 죄인들인 우리를 그의 긍휼과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구원하셨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영광을 위하고 그의 뜻과 명령과 교훈을 따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리자.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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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합법적 맹세와 서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2장의 내용을 살펴보자.]

합법적 맹세(oath)는 정당한 경우에 엄숙히 맹세하는 자가 하나님을 불러 그가 주장하거나 약속하는 것을 증거하시게 하고, 그가 맹세하는 것의 진실됨 혹은 거짓됨에 따라 그를 판단하시게 하는 종교적 예배의 한 부분이다(신 6:13; 10:20; 마 26:63-64; 히 6:16).

하나님의 이름만 사람이 맹세해야 할 이름이며(사 65:16), 맹세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거룩한 두려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영광스럽고 두려운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되이 혹은 경솔히 맹세하는 것이나(레 19:12) 어떤 다른 것으로 맹세하는 것은 죄악되며 매우 미워해야 한다(렘 5:7; 마 5:34-36). 하지만 중대한 일들에서 맹세는 구약 아래서 뿐만 아니라 신약 아래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보증되므로, 합법적 맹세는 합법적 권위에 의해 부과될 때 해야 한다(롬 1:9; 고후 1:23; 빌 1:8).

맹세하는 자는 누구든지 마땅히 그러한 엄숙한 행위의 중대함을 생각하고 그가 참되다고 완전히 확신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공언해서는 안 된다(렘 4:2). 또한 누구든지 선하고 옳은 것과, 그가 그렇다고 믿는 것과, 그가 행할 수 있고 행하기로 결심한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맹세로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창 24:2- 9). 하지만 합법적 권위에 의해 부과되었을 때 선하고 옳은 어떤 것에 관한 맹세를 거절하는 것은 죄이다(민 5:19-22).

맹세는 명백하고 일상적인 의미의 말로 해야 하고, 애매함이나 생각의 보류(保留)가 없어야 한다. 그것이 죄를 짓도록 속박할 수는 없지만, 죄악되지 않은 어떤 것을 맹세했으면 비록 자신에게 해가 될지라도 이행할 의무가 있고(시 15:4), 이단자나 불신자에게 맹세했을지라도 그것을 어겨서는 안 된다(수 9:18; 삼하 21:1).

서약(誓約, vow)은 약속적 맹세와 같은 성질의 것이며 같은 종교적 조심성을 가지고 해야 하며 같은 신실성을 가지고 이행해야 한다.

서약은 어떤 피조물에게 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께만 해야 하고(렘 44:25), 서약이 받아들여지도록 그것은 자원함으로, 믿음과, 의무의 양심으로, 받은 자비에 대해서나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을 것에 대한 감사의 방식으로 해야 하며, 서약에 의해 우리는 필요한 의무들에, 또는 그 의무들에 적당히 도움이 되는 한 다른 것들에, 우리 자신을 더 엄격히 속박한다(창 28:20-22; 삼상 1:11).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에 금하신 어떤 것이나, 거기에서 명령된 어떤 의무를 방해할 것이나, 그의 능력 안에 있지 않고, 그것의 이행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의 어떤 약속을 받지 않는 것을 행하기로 서약해서는 안 된다(민 30:12). 이러한 점들에서 영구적인 독신 생활과 공언(公言)된 가난과 규칙적 순종에 대한 천주교 수도원 서약들은 더 높은 완전의 정도이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며 아무 그리스도인도 거기에 자신을 얽어매서는 안 될 미신적이며 죄악된 올무들이다(마 19:11-12; 고전 7: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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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문제:                        월남의 붉은 민주 투사들

[송의달, "월남의 '붉은 민주 투사'들," 조선일보, 2006. 10. 30, A31쪽; 홍콩 특파원.]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우리 조상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폭(北爆)을 중지시키고 남북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 1967년 9월 월남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11명의 입후보자 중 차점으로 낙선한 야당 지도자 쭝딘쥬. 그는 유세 중 이런 선동성 연설로 반전(反戰) 여론을 부추기며 월맹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창했다. 공산화 후, 그는 월맹의 고정간첩이었음이 드러났다.

사이공(현 호찌민시) 함락 당시 타임지 특파원이었던 팜 쉬안 안(당시 47세). 그 역시 친척이 정보기관 최고 책임자였던 점을 이용, 디엠 대통령 시절부터 50여회에 걸쳐 핵심 군사첩보를 월맹에 넘겨준 거물 프락치였다. 뗏 전투(1968년)에서 월남 7사단의 대패를 초래한 공로로, 월맹 최고 군사훈장과 육군 소장 대우까지 받았다.

베트남 통일(1975년) 당시 월남의 패퇴를 예상한 이는 거의 전무(全無)했다. 58만명의 병력에 미군이 넘겨준 첨단 무기들로 월남군의 전력은 세계 4위 수준이었다. 경제력도 월남의 압도적 우위였다. 반면 월맹군은 소금만 갖고 하루 두 끼로 연명하는 비참한 신세였다. 그런데도 월남은 월맹군의 침공 4개월여 만에 허망하게 항복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월남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와 전쟁 피로증 같은 표면적 현상 외에 민주화 인사로 위장해 월남의 신경망을 장악·마비시킨 간첩 세력을 꼽는다. 쭝딘쥬와 팜 쉬안 안, 유명 도지사였던 녹따오 등이 월맹과 내통해 안에서부터 자유 월남을 무너뜨린 대표적인 '붉은 민주 투사'들이다. 이들은 비밀 공산당원(9500명)과 지하 인민혁명 당원(4만명) 등을 합쳐 월남 총인구의 0.5% 남짓했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종교단체, 언론 등에 침투한 이들은 '친(親)월맹-반미(反美) 감정' 확산 등을 통한 월맹의 공산화 통일전선 공작의 선봉장이었다. 한 전직 월남 주재 외교관은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티우의 비서실장도 간첩이었다"고 전했다.

월맹에 대한 이들의 충성은 맹목적이었다. 캄보디아 국경선 근처 빈룽성의 땅굴에 있던 베트남 지하 혁명정부 청사에는 월남 정부 각 부처와 군 총사령부에서 이뤄지는 극비 회의 내용이 하루 후면 상세하게 보고됐을 정도였다. 이들은 휴전협정 체결(73년)로 미군과 한국군이 월남에서 철수하자 100여개의 애국·통일운동 단체를 만들어 좌경화 총공세에 나섰다. 집요한 선전·선동술로 이들에 대한 수사는 양심적인 반전·민주·평화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매도당했다. 동족간의 전쟁은 미국을 위한 '절대 악(惡)'이라는 도식이 만들어졌고, 월남의 정보·대공(對共) 기관은 무력화됐다. 월맹에 대한 주적(主敵) 심리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전쟁의 승패는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붉은 민주 투사'들의 말로(末路)는 비참했다. "자본주의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에서도 똑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대부분 체포·처형당한 것이다. 티우 정권 시절 '반미자주'를 외치던 도안 토아이 전 사이공대 학생회장은 뒤에 "월맹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우리는 완전히 속았다. 수많은 양심인사들이 수용소에서 죽어갔다"고 폭로했다.

당시 베트남을 휩쓴 광풍(狂風)의 역사를 복기(復棋)하노라면 31년이 지난 요즘 한반도 상황이 겹쳐 떠오른다. 기우(杞憂)이길 바라지만….

 ◈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한미동맹을 견고히 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함으로 평안하고 경제도 회복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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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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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