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1월 8일 [제10권 2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02-334-9874,  Fax: 02-337-4869,  E-mail:
oldfaith@oldfaith.net


지난오전설교:                                      "거룩함의 열매"

로마서 6:22, 23,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후, 즉 다시 말해 율법이 요구하는 완전한 의를 은혜로 얻은 후, 간혹 죄를 지어도 괜찮은가? 이 문제에 대해 본문 15절은 "그럴 수 없느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는 헬라어 메 게노이토라는 말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로마서에만 10번이나 나오는 말입니다.

왜 성도는 죄를 지으면 안됩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순종의 원리로 설명합니다. 즉 사람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는 이치로 설명합니다. 사람은 죄에게 순종하면 죄의 종이 되고 의에게 순종하면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짓는다면, 우리가 죄의 종이란 말입니까? 우리가 죄의 종입니까? 죄의 종은 죄만 짓다가 마침내 사망에 이르고, 의의 종은 의를 행하고 거룩함을 이루다가 마침내 생명 곧 영생에 이릅니다. 우리가 만일 죄의 종이라면 우리는 구원을 얻은 자, 즉 영생을 얻은 자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들은 이미 구원을 얻은 자입니다. 구원얻은 자는 죄에게서 해방되었고 의의 종 즉 하나님의 종이 된 자입니다. 본문 18절은 우리가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고 말하고, 본문 22절은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의 영혼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죄에게서 해방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의 종 곧 하나님의 종이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게 순종하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하고 하나님께만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고 의에만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죄를 지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 곧 우리가 죄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죄는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그것은 개인에게나 단체에게나 국가에게나 온 세계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더러운 것이며 그 원인은 욕심입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는 교만과 명예심, 육신의 정욕, 재물에 대한 욕심 등 욕심이 죄를 일으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럽히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고 거룩한 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격과 삶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에베소서 1:4, 5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정하신 목표는 그들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따라 의롭고 거룩한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그 의와 거룩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그 본래의 의와 거룩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24은 복음의 내용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임을 증거합니다. 구원은 의와 참된 거룩의 형상, 곧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6, 27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목표가 흠과 점이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교회라고 말씀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거룩함임을 증거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명확히 말하고, 히브리서 12:14은 사람이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구원 목표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취됩니다. 본문 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은혜의 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영생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이루신 속죄의 사역입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고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의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 사역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가 실제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의에 근거하여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중생시키시고 회개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사람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 죄씻음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습니다. 성도라는 이름은 가장 존귀한 이름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단번에 의인으로 간주됩니다. 이것은 물론 법적인 의미입니다. 실제로는 아직 부족하지만, 법적으로는 의로운 자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인격과 삶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화(聖化)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요일 3:10).

그런데 성화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고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성화를 위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거룩하고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자신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1에서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또 온전한 성화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책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여 항상 읽고 묵상하며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디모데후서 3:16, 17의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화의 과정은 길고 매우 더딥니다. 인간의 죄성은 뿌리가 깊습니다. 성화는 마치 아기가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의 자라는 것을 매일 느낄 수는 없지만, 많은 날들이 지나면 아기가 조금 자랐듯이, 성화의 진전은 우리가 느낄 수 없으나 겨우 조금씩 이루어집니다.

성도에게는 이 세상에서 많은 훈련이 있으나 성도의 성화는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와 훈련은 우리에게 유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며(히 12:10) 또 징계는 징계받는 당시에는 슬퍼 보이지만 그것을 잘 견디는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습니다(히 12:11). 성도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주시는 징계와 훈련을 통해 조금씩 의로운 사람, 거룩한 사람, 선한 사람, 겸손한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본문 22절은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그것이 성화의 과정입니다. 그것은 성도에게 필수적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라면 거룩한 자가 되십시다. 거룩함의 열매를 맺읍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십자가로 우리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성경책은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복된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경 교훈 안에서 경건과 거룩과 의와 선을 힘써 행하십시다. 거룩함의 열매를 맺읍시다. 새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더욱 힘써 신앙 생활을 하고 죄를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갑시다.

------------------------------------------------------------------------------------

교리강해:                                                               "영화(榮化)"

영화(榮化, glorification)란 신자가 죽을 때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지 않고 그의 부활 때에 몸까지도 완전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영화된 몸은 죄성이 없고 범죄하지 않고 범죄할 수도 없는 몸이다.

물론, 신자는 죽을 때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한 상태로 천국에 들어간다. 천국은 완전히 거룩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소요리문답 37문답, "신자들은 죽을 때, 그 영혼들이 완전히 거룩해지며 즉시 영광 안으로 들어가고." 누가복음 23:43,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린도후서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빌립보서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히브리서 12:23, ". . .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그러나 우리의 구원의 최종적 단계는 몸의 구속(救贖), 곧 우리의 몸이 영광스런 몸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8:23,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성도의 부활의 몸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가졌던 범죄할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몸이 아니고, 다시 범죄할 수 없고 다시 죽을 수도 없는 몸이다. 누가복음 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부활의 몸은 썩지 아니하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영적인 몸이다(고전 15:42 -44, 49). 그 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를 닮은 몸이다. 로마서 8:29,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빌립보서 3:21, "그가 . . .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런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로마서 8:18-23에 증거한 대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바라며 탄식하고 있다.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 그 곳에는 눈물도, 사망도, 애통도, 아픈 것도 없다. 그 세계는 현재의 이 세계가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이다(계 21:1-5).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로 말미암아 이미 법적으로 거룩해졌고(고전 1:2; 히 10:10) 도덕적으로 완전해졌다(히 10:14). 그것이 칭의(稱義)이다. 성화란 구원받은 성도에게 법적으로 이루어진 그 거룩과 의를 그의 인격과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비록 성도의 성화가 이 땅 위에서 매우 더디게 이루어지고 심히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구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완전한 의 때문에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의인으로 간주된다. 성도의 미래의 영광은 그의 불완전한 성화의 정도에 근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완전한 의에 근거한다.

영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救贖)에 내포된 바이다. 로마서 8:30,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은 성도들의 영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고 몸에도 관계된다. 장차 성도들이 가질 영광스런 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의 결과이다.

마태복음 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로마서 8:29, 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3:20, 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의 거룩한 삶의 결과를 단순히 '영생'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부르심의 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로마서 6:22, 23,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갈라디아서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브라베이온, prize)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에 대해 주실 상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에 비교될 수 없다. 성도들의 거룩한 행실은 부족투성이며 불완전하나, 하나님의 구원은 영화롭고 완전하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실 상은 그의 은혜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화는 하나님이 주신 영화롭고 완전한 구원에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구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성도들이 지상에서 행한 선행과 봉사에 대해 장차 천국에서 차등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을 보이기 때문에, 이 사실로부터 성도가 내세에 누릴 영광도 차등이 있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상급의 차등에 대한 성경적 증거는 앞에서 살펴본 바가 있으나, 몇 구절을 다시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누가복음 19:16, 17,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고린도전서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1)

헤프는 그의 개혁파 교의학에서 역사상 개혁파 신학자들 가운데 피스카토, 부칸, 코체유스 등의 견해를 소개하였는데, 그들은 성도들이 내세에 누릴 영광의 차등에 대해 말했다.2) 코체유스는 말하기를, "영광에 있어서 개인들에게 차이가 있을 것이나 질투함이 없을 것이며, 가장 큰 영광 곧 머리의 영광이 모두에게 흘러넘칠 것이다"라고 했고, 그는 또 "영광에 있어서 또한 등급들이 있을 것인데, 행위들의 공로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각 사람이 세상에서 맺은 의의 열매들에 일치하는 방식으로일 것이다"라고 했다.3)

헤르만 훽스마와 박형룡은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견해를 소개하였는데, 카이퍼, 바빙크, 훽스마 및 박형룡 자신의 견해들도 위에 헤프가 인용한 사람들의 것과 비슷하다.4) 바빙크는 우리의 합리적 믿음이라는 책에서도 서술하기를, "사람은 그에게 주어진 재능을 사용하는 성실성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큰 영예와 통치권을 받을 것이다(마 24:14 이하). . . . 따라서, 물론 모두가 동일한 복, 동일한 영생, 하나님과의 동일한 교제를 나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과 광휘에 있어서 그들 가운데 차이가 있다. 교회들은 그들의 충성과 열심에 비례하여 그들의 주님과 왕으로부터 다른 면류관과 상을 받는다(계 2-3장)"라고 하였다.5)

각  주

1) 그러나 내세의 영광의 차등을 위해 인용되는 고린도전서 15:39-44과 히브리서 11:35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죽은 자들의 부활체들의 영광의 차등을 말한다기보다, 현재의 몸과 장차 누릴 부활의 몸과의 현격한 차이를 말한다. 또 히브리서의 '더 좋은 부활'이라는 표현도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체들 중에 더 좋은 것이 있고 덜 좋은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죽은 자의 회생(回生)보다 장차 오는 세상에서의 부활이 더 좋다는 것을 말한다.

2) Heinrich Heppe, Reformed Dogmatics Set Out and Illustrated from the Sources (Baker, 1978), pp. 709-710. 헤프에 의하면, 피스카토는 천국에서 의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은사의 분량에 따라 차등하게 영광을 얻는다고 보았고, 부칸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택자들에게 자기의 은사들을 차등하게 나누어주시듯이 천국에서도 자기의 은사들을 택자들 가운데 차등한 방식으로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3) Heppe, p. 709.

4) Herman Hoeksema, Reformed Dogmatics, p. 516; 박형룡, 교의신학: 제5권 구원론, 374, 375쪽. 훽스마에 의하면, 카이퍼는 영생과 상을 구별하였고 영생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에 근거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지지만 상은 그들의 선행과 봉사에 근거하여 일부의 신자들에게 내리시는 은혜의 선물이라고 보았다. 박형룡에 의하면, 바빙크는 성경이 각 사람의 행위에 따르는 상에 대해 말할 때 장차 그가 누릴 영광의 차등함을 가르친다고 말하였다.

5) Our Reasonable Faith (Baker, 1956), p. 567.

-----------------------------------------------------------------------

현대사회문제:                                    공산주의와의 영적(靈的) 싸움

[김홍도, "공산주의와의 영적(靈的) 싸움," 미래한국, 2005. 12. 26, 4쪽; 금란교회 목사, 주일설교 요약.]

수도경비사령부 군종실장이었던 최학량 목사는 “북한의 김정일은 사탄”이라고 했고, 조갑제 씨는 “김정일은 작은 적그리스도”라고 했다. 참 믿음이 있고 심령의 눈이 열린 사람은 공산주의(communism)는 사탄의 사상(satanism)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영적으로 볼 때 북한은 사탄의 먹구름이 뒤덮여 있고, 남한은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는데 이는 남한에 5만 교회와 1,200만 성도 그리고 기도하는 성도가 많기 때문이다. 말세에 한국을 선교하는 민족으로 쓰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파괴하고 타락시키려 한다. 공산주의는 왜 사탄의 사상이며 왜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하는가?

첫째, 그들은 잔인한 살인자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사탄의 성격을 생명을 죽이고 재산을 도적질하고 빼앗는 자라고 하셨는데, 공산당은 사탄의 사상이기 때문에 남의 재산을 빼앗고 도적질하며 살인하는 일을 자행한다.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선언’에서 “전세계 노동자들이여, 다 단결하여 공장과 기업의 주인인 자본가의 재산을 빼앗고 공동소유로 만들자”라고 선언하면서 이 혁명완수를 위해서는 살인도, 방화도 할 수 있고 거짓말도, 파괴도 서슴지 말고 행하라고 했다. 그들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이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56년 2월 전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은 1936~1938년 사이에 감행한 숙청에서 10월 혁명 이전에 공산당에 입당한 당원 90%를 죽였고 그 후에 입당한 사람은 50%를 처형했고 군장성급은 60%를 사형시켰다”라고 폭로했다. 스탈린이 죽인 사람은 총 4,500만 명이고 모택동은 6,300만 명이나 된다.

둘째, 공산당들은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고 도적질한다. 그들은 노동자, 농민을 무산대중, 프롤레타리아라고 한다. 그 반대편인 지식계급, 부요한 사람들은 부르주아라고 한다. 그리고 부르주아에 대해서 죽도록 증오심을 갖게 하고 죽이고 빼앗게 만든다.

이런 사상에서 나온 것이 평등주의며 ‘분배’다. 공산주의 경제관은 평등주의요, 남의 것을 빼앗고 강탈해도 된다는 사상이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할 수 없고 축복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공산국가들은 예외 없이 거지의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생산보다 ‘분배’에만 역점을 두는 것과 ‘평등’을 강조하는 것을 볼 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셋째, 공산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에 마귀는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했다. 공산당은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 ‘민족공조’, ‘민족주의’는 미군을 철수시키고 적화통일하자는 속임수다.

▲ ‘국방개혁과 평화체제, 전시작전지휘권 환수’하겠다는 것도 대한민국을 무장해제시킨 후 무력 적화통일 하겠다는 계략이다. 국군병력을 대폭 줄이고 국방부 요직에 민간인을 채용하겠다는 것도 무장해제의 전단계다. 북한은 군사력을 더 강화하고 있다.

▲ ‘연정’은 당 통합과 연합정부를 만들고 남북연방제를 만들어 적화통일 하겠다는 것이다.

▲ 현 정부는 ‘참여’란 말을 많이 쓴다. ‘참여정부’니 하는 그 밑바닥에는 무산대중 즉 프롤레타리아를 선동해서 공산주의 혁명을 성취하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다.

▲ ‘과거사규명법’은 과거 공산당원이었거나 공산당 협력의 전력을 말소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열린우리당의 신모 의원, 김모 의원의 부친은 친일파로 잔혹한 일을 했으나 그 명단에서 빼버리지 않았는가?

친일파 명단을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 대표 임모 씨의 부친 4형제는 6·25 때 붉은 완장을 두르고 활동하다가 총살당했고, 임 씨는 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공안 사건에 연루된 전력을 가진 자다.

-----------------------------------------------------------------------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책 안내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