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10월 29일 [제10권 44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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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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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성찬식

[본문] 고린도전서 11:23-29

고린도전서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3-29은 성찬식의 유래와 의미와 주의할 점에 대해 증거한다.

첫째로, 본문은 성찬식의 유래에 대해 증거한다. 바울은 성찬식에 대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라고 말한다(23절). 예수께서는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성찬식을 세우셨다. 그는 그 식탁에서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고, 식후에 잔을 가지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23-25절). 주께서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혹은 원문의 순서대로 직역하면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 성찬은 주께서 친히 세우신 의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식을 귀중히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세례식도, 성찬식도 다 귀중히 여겨야 한다. 그것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만일 누가 세례식이나 성찬식을 소홀히 여긴다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될 것이다.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죄가 된다. 또 이 의식을 주께서 친히 제정하셨다는 사실은 이 의식이 신자들에게 주는 은혜와 유익이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이 의식을 제정하셨다.

둘째로, 본문은 성찬의 의미에 대해 증거한다. 본문은 성찬식이 주의 고난을 상징하는 의식임을 증거한다. 성찬의 떡은 우리를 위하여 찢으신 주 예수의 몸을 상징하고, 성찬의 포도즙은 우리의 죄 때문에 흘리신 주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 즉 성찬의 떡과 포도즙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곧 십자가 위에서 찢으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또 주의 흘리신 피는 특히 새 언약의 피이었다. 모세를 통해 맺어진 옛언약은 짐승의 피를 뿌림으로 확증되었었다. 출애굽기 24:6-8,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이제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림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이제 본문 26절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성찬의 의미가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신 죽으심이요 거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다. 주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죽음에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말씀하셨다.

또 마태복음에 보면, 주께서는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시면서,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잔을 가지고 사례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6:26-28).

누가복음 22:19-20에 보면, 주께서는 그 때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것은 주께서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신 후에 하신 말씀과 일치한다. 주께서는 그 때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말씀하셨다(요 6:51, 53-55).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표현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라고 하였고(고전 1:22-23), 또 복음의 요점을 말하기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라고 하였던 것이다(고전 15:3).

주의 죽으심, 곧 속죄적 죽으심은 복음의 핵심이며, 성찬식은 바로 이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이 의식에 참여하는 자는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많은 은혜와 유익을 얻을 것이며 이 의식을 통해 복음의 참 뜻이 만방에 증거될 것이다.

셋째로, 본문은 성찬 오용의 죄에 대해 증거한다. 성찬이 이와 같이 의미심장한 의식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합당치 않게, 분별함 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 말하며(27절), 또 그것은 곧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한다(29절).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자신을 살핀 후에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본문은 성찬의 떡과 포도즙이 물질적으로는 떡과 포도즙이지만, 그 영적 의미는 주의 몸과 피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시 성찬의 의미와 유익이 증거된다. 우리는 성찬식 때에 떡을 주의 몸으로 생각하며 먹어야 하고 포도즙을 주의 피라고 생각하며 마셔야 할 것이며, 성찬식을 통해 주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요 영생의 복의 확증이요 큰 유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시간 본문을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성찬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귀히 여기자. 주께서 친히 세우신 이 의식을 귀중히 생각하자.

또 우리는 성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자.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그런 참혹한 고통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 주 예수의 피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 또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 주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특권과 영생의 복의 확증과 큰 유익을 누린다.

또 우리는 성찬을 잘못 받지 말자. 우리는 주의 몸과 주의 피를 범하는 죄를 짓지 말고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잘못을 행치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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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찬송(계속)

또 성령에 대한 어떤 찬송도 성경적 교리에 맞지 않는다(예를 들어, 172장, "빈들의 마른 풀같이." 173장, "불길 같은 성신여." 177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 이미 오셨고 그들 안에 영원히 거하시기 때문에 이 사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표현의 가사는 옳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성령의 오심을 간구할 것이 아니고 이미 우리 속에 오신 성령께서 우리 속에 충만히 역사하셔서 우리의 인격 전체를 주장하시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곡으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시편 96: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행위이다. 히브리서 13:15,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그러므로 예배와 찬송은 가장 좋은 방식으로 드려져야 한다. 빌립보서 1:10,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

음악의 아름다움은 질서와 조화와 안정성에서 나오며, 그것은 정상적 화음과 박자, 적당한 소리세기와 빠르기에서 나온다. 기본적 정상 화음은 도미솔, 도파라, 시레솔이며, 기본적 정상 박자는 강-약-중강-약(4박자의 경우) 혹은 강-약-약(3박자의 경우)이다. 불협화음이나 빈번한 싱코페이션의 사용, 과도한 소리세기나 빠르기는 질서와 조화와 안정성을 깨뜨리고, 결국 음악의 아름다움을 해친다.

음악의 조화와 안정성을 저버린 현대음악은 인간의 육신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음악은 될지 몰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으로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오락적인 음악은 옛날부터 우상숭배와 어우러졌다(출 32:6, 19).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과 영적 노래에 있어서 얼마큼 세속적일 수 있는가를 생각지 말고 가능한 한 세속적 풍조를 배격하고 가장 경건하고 아름다운 곡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세상 음악은 인간을 만족시키는 것이지만, 성도의 찬송과 영적 노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에베소서 5:19,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나 공교한 악기 연주가 진실한 믿음과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아름다운 목소리나 악기 소리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나 악기 연주를 원하신다. 찬송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이다(히 13:15).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을 원하신다. 때때로 외적으로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진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부르는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 감동도 줄 것이다.

이와 같이 찬송은 성도의 영적 생활의 표현이므로 우리는 진실한 속죄 신앙을 가지고 늘 말씀과 기도로 은혜 충만함을 누리는 가운데 은혜의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야 하겠다. 난 지 몇 개월 만에 시력을 잃었던 파니 크로스비가 평생 약 8천개의 은혜로운 찬송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통해 성경을 많이 배웠고 주 예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 충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늘 보는 첫번째 얼굴이 나의 구주 그리스도의 얼굴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라.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눈이 멀어 그를 더 잘 찬송할 수 있게 하기를 원하셨다고 믿는다. 내가 만일 시력이 있었다면 나는 결코 나의 찬송시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는 그가 쓴 찬송시가 많이 있다(43, 46, 204, 219, 231, 275, 295, 300, 337, 424, 434, 476, 492, 508장 등.).

열린 예배 비판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전통적 형식을 버리고 예배 시간에 멀티비젼, 드라마, 무용, 세속적 형식의 성가와 밴드를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 또 어떤 교회들은 '문화학교'를 개설하여 영어 회화, 꽃꽂이, 바이올린 등을 가르친다. 이런 경향은 예전부터 자유주의적 교회들에서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복음주의적이라고 하는 교회들에서도 볼 수 있다. 이것이 '영성'이 있는 활동이라고 선전된다. 또 교회들은 이런 방식으로 많은 청중을 모으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대형교회가 목회의 성공이라는 인식 속에서, 많은 목사들은 '여하튼 교회가 수적으로 커지고 봐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열린 예배'는 미국의 빌 하이벨스 목사에 의해 시작되었고 릭 워런 목사에 의해 인기를 얻고 있는 예배 형식으로서 구도자들(seekers)을 위해 밴드와 현대음악, 멀티미디어와 드라마 등을 사용한 예배이다.1) 열린 예배의 특징은 시청각적 효과와 축제적 분위기이다.

열린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은 교회의 외형적 구조 변경을 강조한다. 강대상을 큰 강대상 대신 작은 이동식 탁자로 대치한다. 의자는 등받침이 없는 것을 놓고 거기에 걸터앉는다. 강단을 무대로 전환하여 노래나 춤이나 연극을 할 수 있도록 요란스런 조명 세트를 장치한다. 조화 또는 생화로 강대상 좌우를 가득채운다. 대형 자막이나 전광판을 세우고 고도의 방송용 음향 장비를 설치한다.

에드 답손은 열린 예배가 형식에 매이지 말 것, 현대적일 것, 강요하지 말 것, 편안하게 해줄 것 등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형식에 매이지 않기 위해 목사나 안내 위원이나 성가대원은 모두 청바지나 또는 가벼운 옷들을 입으며, 현대적이기 위해 전자 기타, 드럼들, 심벌즈, 키보드 등을 사용하여 기독교적 록 음악을 연주한다. 또 강요하지 않기 위해 공개적으로 초청하거나 앞으로 나오도록 하는 부담을 주지 않는다. 또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강대상 주변을 단장하여 교회 강단처럼 보이지 않게 한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런은 1998년 한 세미나에서 전통적 교회를 극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로 변형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1) 현대적 스타일의, 비(非)위협적 '구도자(求道者) 집회'가 전통적 일요일 예배를 대체해야 한다. (2) 복장은 평상복이어야 한다. (3)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4) 설교는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똑같이, 종종 심리학과 격려적 성경본문을 섞는 설교 후에, 자신들에 대해 좀더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도록 오직 긍정적 내용이어야 한다. (5) 교회의 사역들은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우울증, 무절제한 식사, 불임(不姙), 동성애자들의 가족이나 친구, 낙태 후의 일, 별거(別居) 등을 위한 후원 그룹들을 가지고 준비되어야 한다. (6) 교리적 교훈은 일요일들에 교회 전체에게 주지 말고, 예배 시간과 별도로 소그룹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열린 예배를 보는 교회들은 찬송 대신 현대 기독교 음악(CCM) 즉 크리스챤 록 음악을 부른다. 릭 워런은 크리스챤 록 음악을 새 노래라고 말하며 새 노래를 부르라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음악의 가사들이 더 근래의 것이어야 할 뿐 아니라, 음악의 스타일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날마다 듣는 것이어야 한다." 새들백 교회의 음향 시설, 밴드, 노래하는 이들과 연주 등 오락 구성물은 어떤 세속적 록 연주회의 것과도 경쟁할 만하다. 릭 워런은 교회가 해야 할 첫번째 일 중의 하나가 오르간을 밴드로 대체하는 것이며, 교회 찬양대는 독창 연주자를 배경 음악으로 후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는 말하기를, 몰아대는 비트를 가진 큰 소리의, 쉰 목소리의 음악이 그의 회중이 듣는 종류의 음악이라고 하였다. 또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주말 집회 때 정말, 정말 소리가 크다. . . . 나는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낮추지 않을 것이다.' 자 그 이유는, 어린아이 같은 대중은 음악을 느끼기를 원하지, 단지 그것을 듣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는 심지어 전통적 음악의 사용을 주장하는 것을 우상숭배의 죄와 동일시하였다.

릭 워런은 말하기를, 자기 교회가 현대 팝송과 록 음악을 채택한 것은 "교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우리 교인의 96%가 성인 현대 음악을 듣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새들백 교회에서 우리가 사용하기로 선택한 주요 음악 스타일이다," "우리는 열린 예배에서 찬송은 더 이상 부르지 않기로 전략적 결정을 세웠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교회에 전도의 대상으로 정해준 종류의 사람들에게 맞는 음악을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열린 예배 주장자들의 말이 옳은가? 열린 예배가 과연 오늘 시대에 바람직한 예배 형식인가? 우선, 정말 열린 예배가 오늘 시대에 바람직한 예배 형식이라면, 먼저 기도와 성경 연구와 신중한 토론을 통해 목사와 장로들이 임직 서약 때 하나님 앞에서 수락했던 '예배 모범'을 고쳐야 할 것이다.2) 어떻게 목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약했던 예배 모범과 역행하는 예배 형식을, 신앙 양심의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는가?

더욱이, 성경에 비추어볼 때, 열린 예배와 이런 류의 목회는 비성경적이다. 이런 예배는 기독교 2천년 역사에 일찌기 없었던, 지금까지의 전통적 예배 의식과는 전연 판이한, 현대의 세속적 문화와 표현 방법을 도입한 새로운 예배 형태이며,3)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예배가 아니고 인간 중심의 예배, 흥미 위주의 예배이며 충실한 설교가 빠진 의식 위주의 예배이다. 이런 예배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줄 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근심과 불쾌함을 드릴 것이 분명하다.4)

성경은 찬송과 기도와 설교가 예배 순서이며 그 중에 설교가 가장 중요함을 보이며 또 예배가 엄숙하고 질서 있게 드려져야 하고 예배 음악이 아름답고 안정되어야 함을 계시한다.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고린도전서 14:26,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시편 96: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고린도전서 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빌립보서 1:9-10,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한 교회의 문화적 행사들도 성경 교훈들과 초대 교회의 모범에 맞지 않는다. 교회는 본연의 임무가 있다. 그것은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다. 특히 전도는 주님 자신의 사명이었고 그가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이 일에 충실하였다. 어느 시대든지 교회는 오직 이 일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는 이 일에서 벗어나는 세속적 일들을 계획하거나 행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목회에서도 정확무오한 법칙이다. 혼란스런 오늘날의 교회의 현실 속에서도,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지시하는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우리는 인간적 지혜와 방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교회를 운영하지 말고 성경의 교훈대로 예배드리고 성경의 교훈대로 목회해야 한다.

각  주

1) '열린 예배'는 1988년 미국의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에 의해 처음 구상되었다. 미국의 새들백교회, 갈보리 채플, 한국의 온누리교회, 사랑의 교회, 소망교회, 만나교회 등이 이런 예배를 드린다. "열린 예배, 찬·반 앞서 분명한 이해 요구," 기독교연합신문, 1999. 11. 7.

2)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예배당에서 연극이나 유희를 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결의한 바 있다(1923년 제12회 총회록, 35쪽; 1953년 제33회 총회록, 235쪽).

3)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19쪽.

4) Calvary Contender, 15 June 1998.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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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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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