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옛신앙 2006년 5월 28일 [제10권 22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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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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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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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유다와 요셉의 기업 여호수아 15: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여호수아 11:23과 14:15에 보면,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대략적인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주요한 전쟁을 마쳤고 그 땅을 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수아 15장부터 17장까지는 요단강 서쪽에서 처음으로 땅 분배를 받은 유다와 요셉의 기업에 대해 증거합니다. 유다 지파는 가나안 땅의 남부를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15:2은 유다의 기업의 남편 경계에 대해, 5절은 동편과 북편 경계에 대해, 12절은 서편 경계에 대해 말합니다. 여호수아 15장 전체를 읽어보면, 유다의 기업은 112개 이상의 성들을 포함하였습니다. 요셉의 자손들 중 에브라임의 기업에 대해서는 여호수아 16장에 기록되어 있고, 므낫세의 기업에 대해서는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우리는 많은 지역들과 성읍들의 이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우리가 읽기에도 생소합니다. 성경이 이러한 이름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성경이 역사적 기록임을 증거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지어낸 허구적 내용이나 신화적 내용이 아니고 일차적으로 역사적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나는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는다고 말했습니다(행 24:14).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모든 내용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들을 다 믿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15장부터 17장까지에 기록된 유다의 기업과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기업에 대한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봅니다. 첫째는 갈렙의 믿음과 용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호수아 14장은 갈렙이 헤브론 산지 곧 기럇 아르바를 기업으로 요청한 것과 여호수아가 그 요청을 허락한 것을 기록했었습니다(12-13절). 그 산지에는 아낙 사람들이 살았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했지만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며 그 지역을 요청했었습니다. 여호수아 14:15의 말씀대로,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이었고 아낙 사람들 중 가장 큰 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5:14에 보면, 갈렙은 기럇 아르바['아르바의 성'이라는 뜻] 곧 헤브론을 정복하였고 아낙의 세 아들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습니다. 과연 믿음의 사람답습니다. 우리는 이런 갈렙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갈렙처럼 하나님을 믿고 그의 약속을 믿고 그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명하신 일을 용기 있게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옷니엘이 갈렙을 본받은 일입니다. 갈렙은 기럇 아르바를 정복한 후에 드빌 곧 기럇 세벨이라는 곳으로 나아갔는데, 그 때 그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이 성을 취하는 자에게는 나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때 그의 아우[원문의 뜻]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하였고 갈렙은 약속대로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악사가 출가할 때 자기 남편을 설득하여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렸고, 갈렙이 그에게 "네가 무엇을 구하느냐"고 묻자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라고 구하였고, 갈렙은 그에게 윗샘과 아랫샘을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옷니엘은 갈렙을 본받아 믿음으로 기럇 세벨을 쳤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갈렙의 딸 악사를 복으로 주셨고 그와 더불어 밭도, 두 개의 샘도 주셨던 것입니다. 악사는 지혜로운 여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행하는 모든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잠언 13:21은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고 말했고, 또 잠언 19:14은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어찌 지혜로운 아내만 하나님이 주시겠습니까? 좋은 남편도 주시고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 진리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옷니엘처럼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믿음과 용기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을 복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28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말했습니다(1-2절). 셋째는 여호수아가 요셉 자손에게 개척을 격려한 내용입니다. 여호수아 17:14 이하에 보면, 요셉 자손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나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라고 하자,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찐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요셉 자손이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 스안과 그 향리[마을]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라고 말하며 주저하자, 여호수아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고 격려했습니다. 요셉 자손들은 갈렙처럼 믿음과 용기가 충만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요셉 자손처럼 믿음과 용기가 부족한 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수아의 격려를 받았듯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오늘날 우리는 믿음과 용기가 부족하지만,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주시는 힘과 용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힘과 용기를 가집시다. 믿는 자는 어떤 역경도 이기며 하나님의 일을 행합니다(요일 5:4-5; 롬 8:35). 넷째는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그 땅의 원주민들을 완전히 다 쫓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여호수아 15:63은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고 말합니다. 또 여호수아 16:10은 "그들[에브라임 사람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고 기록하였고, 17:12-13은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합니다. 여호수아서 다음에 나오는 사사기 1:21-35에 보면 나머지 일곱 지파의 땅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불완전한 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멸하라고 명령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의 일부를 멸하지 못하고 남겨두었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함께 살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도덕적 부패의 주원인이 되었습니다(삿 2장). 사람은 모방을 잘하는 존재입니다. 악한 본은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끼칩니다. 민수기 11:4은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라고 증거합니다. 종교적, 도덕적으로 부패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사회에 섞여 살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히 멸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 간의 바른 교제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경건하고 도덕적인 사람과 교제하면 좋은 영향을 받지만,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사람과 교제하면 나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 말했고(고전 15:33- 34), 또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고 말했던 것입니다(갈 5:9). 우리의 신앙이 부패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교제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상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경건하고 선한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는 것,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호수아 15장부터 17장까지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교훈을 받지만, 특히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갈렙의 행한 바요 옷니엘이 행한 바이며 또 여호수아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에게 권면하고 격려한 바입니다. 세상을 정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세상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즉 전도와 영혼 구원을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며 관심이요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고 가치 있게 여기시는 바입니다. 전도는 인간적으로 두려운 일이며 세상은 쉽게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일을 사모하는 자마다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초청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불완전한 정복을 반성해야 합니다. 불완전한 정복은 개인적으로는 불완전한 성화이며, 교회적으로는 불성실한 교회, 즉 분명한 신앙고백이 없는 자를 교인으로 받아들이고 고의적 불신앙과 부도덕을 포용하고 권징할 의사가 없는 교회, 그래서 세상과 별로 구별이 되지 않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정복을 반성해야 합니다. 교회의 참된 건립과 성장은 단순히 교인을 늘이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참된 건립과 성장은 참된 신앙고백을 하고 그 고백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늘어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파하는 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과 영적 성장은 단순히 육신의 흥미를 추구하는 데서는 결코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고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하는 진실함이 없이는 영혼의 완전한 정복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완전히 정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참된 신자가 되도록 힘씁시다.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고 힘씁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는 개인과 교회가 되십시다. -------------------------------------------------------------------------- 지난오후설교: 영혼의 불멸(不滅)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영혼의 불멸(不滅, immortality)이란, 인간의 몸이 죽은 후 그의 영혼이 계속 지정의의 의식(意識)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단순히 그 후손에 의해 혈통이 이어지거나 그에 대한 기억이나 그의 영향력이 후손들이나 다른 이들에게 남는 정도가 아니고, 그의 영혼 자체가 육신의 죽음 후에도 계속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1, "사람들의 몸들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며 썩는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들은 죽거나 잠자지 않는 불멸의 실존(實存)으로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 인간 영혼의 불멸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보편적 신념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대체로 영혼의 불멸을 긍정하였다. 세계의 각종 종교들은 인간 영혼의 불멸을 인정한다. 고대의 헬라 철학자들도 인간의 영혼은 육체의 죽음으로 분해될 수 없는 불멸적 실체라고 보았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영원을 갈망하는 것은 그것을 충족할 어떤 것 즉 영혼의 불멸을 암시하며, 또 봄에 만물이 소생하는 자연 현상도 영혼의 불멸을 암시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다른 이들은 우주의 도덕 질서가 내세의 심판을 요구하며 이에 근거하여 영혼이 불멸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영혼불멸을 부정한다. 예를 들면, 라인홀드 니이버는,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 사상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또 폴 틸리히는,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비록 그것이 플라톤의 교리일 가능성은 있을지라도, 기독교 교리는 아니다," "불멸성의 상징이 이 유행하는 미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곳에서, 그것은 기독교에 의해 근본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에의 참여는 '죽음 너머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의 자연적 특질도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오스카 쿨만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영혼의 불멸]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사람의 영혼의 불멸은 성경에 밝히 계시되어 있는 진리이다. 성경은 다음 네 가지 사실들에서 인간 영혼의 불멸을 분명히 증거한다. 첫째로, 성경은 인간의 죽음의 묘사를 통해 영혼의 불멸을 증거한다.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전도서 3:20-21,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성경은 또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고 묘사한다. 창세기 15:15,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창세기 25:8,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모이매]." 이것은 분명히 영혼이 무(無)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열조들의 영혼들의 집결지가 있음을 암시한다. 분명히, 이러한 묘사들은 사람의 몸이 죽은 후 그 영혼이 계속 존재함을 증거한다. 둘째로, 성경은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 영혼불멸을 증거한다. 성도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해, 시편 73:24은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증거한다. 영광 속으로 영접되는 영혼은 의식을 가진 존재임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영광이 그에게 영광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예수께서도 함께 처형되던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눅 23:43). 낙원의 즐거움도 영혼이 계속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5:8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증거하였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해서도, 시편 9:17은 "악인이 음부[지옥]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라고 증거한다. 또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고 증거한다(눅 16:23). 악인의 죽은 후 형벌과 고통은 영혼불멸을 전제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형벌과 고통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셋째로, 성경은 부활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서도 영혼불멸을 증거한다. 다니엘 12:2은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겠고 어떤 이들은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사도 바울도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증거하기를,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라고 하였다(행 24:15). 의인과 악인의 부활은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넷째로, 성경은 심판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서도 영혼불멸을 증거한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러한 말씀은 분명히 영혼불멸을 전제한다. 사람은 육신이 죽어도 그 영혼은 불멸한다. 육체적 죽음 후에 그 영혼은 선악 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내세를 생각하며 지금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 ----------------------------------------------------------------------- 현대사회문제: '편향된 현대史' 우리 교과서 바로잡자 [이한우, "'편향된 현대史' 우리 교과서 바로잡자," 조선일보, 2006. 5. 11, A24쪽.] 대한민국사를 폄하하고 북한체제는 긍정적 시각으로 평가하는 등 편향성 논란을 빚었던 한국 근현대사 고교교과서 개정(改正)을 위한 국민운동이 전개된다. 북한민주화포럼(대표 이동복), 뉴라이트교사연합(대표 두영택), 자유교육포럼(대표 배호순)은 11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갖고 국민운동 선포식을 연다. 이날 발표할 논문에서 김광동 나라정책원장은 현재 과반수인 754개 학교에서 채택된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의 반미(反美)성향을 수치로 보여준다. 김 원장에 따르면, '한국 근현대사'에는 미군을 포함해 미국에 대한 표현이 총 167회 등장하는데 그 중 164회는 부정적이거나 부정적 문맥에서 기술하고 있다. 김 원장은 "그나마 긍정적 표현에 속하는 '미국에서 들어온 농산물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324쪽)는 표현조차 바로 다음 쪽에서 '미국의 농산물 원조는 생산과잉으로 자국 내에서 농업공황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 역사책과 금성 '교과서'를 민족해방, 민족분단, 정부수립, 일제청산, 국가정통성 등 총 16개 항목에서 조목조목 비교했다. 김 원장은 "우리 현대사의 고비고비를 보는 시각이 북한의 김일성주의 역사서와 놀랄 만큼 똑같다"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해방 후 남한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노력은 좌절된 것처럼 묘사해놓고 김일성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는 이념적 명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던 김일성'(300쪽)이라고 사실상 김일성 체제를 옹호, 변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영 교수(건국대 사학과)는 현재 진행 중인 8차 교육과정(2010년부터 시행) 개정에 '한국 근현대사' 대신 필수과목으로 들어가는 '역사'에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정확한 사실과 평가가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좌우이념 논쟁 속에서 우파가 승리하여 탄생한 나라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체성이 우파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명시해야 한다." 또 대한민국 자유민주체제는 1948년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가운데 어렵사리 걸음마를 해온 과정으로 이해해야 복잡다단했던 현대사에 대한 보다 관대한 시각이 나올 수 있다고 제안했다. 더불어 북한과 대한민국 역사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선상에 놓아서는 안 되고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국가사'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희 교수(공주대 역사교육과)는 교과서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을 제안하면서 "개방적이고 현실적인 교과서가 탄생할 수 있도록 일반국민들도 조직적으로 개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이영훈 교수(서울대 경제학), 이명준씨(중경고 교사) 등이 토론자로 나선다. 한손으로 정부돈 받고 한손으로 폭력시위해서야 [사설: "한손으로 정부돈 받고 한손으로 폭력시위해서야," 조선일보, 2006. 5. 19, A35쪽.] 정부가 불법·폭력시위에 참가하는 단체에도 계속 지원금을 주어야 할 모양이다. 17일 열린 '평화적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 공동위원회'의 민간위원 일부가 불법·폭력 시위 참가 단체에 지원금을 끊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다. 민간 쪽 공동위원장인 함세웅 신부는 "어떤 단체가 (불법시위 참가로 지원금 중단의)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경우 불법시위에 참가한 것이 단체인지 개인인지 가리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법시위에 대한 제재(制裁)보다 합법시위에 대해 권리를 보장하는 쪽으로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정부는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에 따라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익활동을 위한 사업을 신청하면 심사해서 지원금을 준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저마다 관할단체들에 주는 지원금이 모두 합쳐 연간 2000억원이 넘는다. 그중 적지 않은 단체들이 정부 돈을 받아쓰면서 태연히 불법시위를 벌인다. 평택 범대위에 속해 있는 4-5개 단체도 작년에 행자부에서 지원금을 받아썼다. 정부가 국군장병을 폭행하고 경찰관을 구타하고 군기지를 습격하는 폭력단체들을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지원금을 주어 가며 격려하고 있는 꼴이다. 정부는 단체의 가입활동이 폭력시위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단체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즉시 끊어야 한다. 그런 조치를 취하고 나서 혹시 "회원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것이지 단체는 무관하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곳이 나오면 그건 그것대로 진위(眞僞)를 가리면 될 일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일의 순서다. 공동위는 올 1월 민(民)과 관(官)이 합심해 불법·폭력시위를 뿌리뽑을 대안을 찾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출범했다. 그러더니 지난 3월 2차 회의에선 불법·폭력시위 주동자의 처벌을 1년 이하 징역·100만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 징역·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하자는 정부안을 "처벌이 능사(能事)가 아니다"며 없던 일로 해 버렸다. 그때는 범법자를 엄벌하자는 데 반대하더니 이번엔 한 술 더 떠 범법단체에 정부예산 지원을 끊는 것에조차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오는 6월 말 무슨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사회협약'이라는 걸 만든다고 한다. 그건 무슨 무슨 '민주화'를 내건 단체들이 으레 그렇듯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다시 국민을 속이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그렇게 할 요량이면 국민 세금의 낭비를 없애기 위해 위원회 먼저 해산할 일이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