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5월 21일 [제10권 21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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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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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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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갈렙의 온전한 순종 여호수아 14: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여호수아 14:6 이하의 내용은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 정탐을 위해 보냄을 받고 돌아와 보고한 일을 회고하면서 그 때 모세가 자신에게 맹세한 대로 자신이 원하는 땅 곧 헤브론 산지를 기업으로 줄 것을 여호수아에게 요청한 것과 그의 요청대로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은 것에 대해 기록합니다. 갈렙은 그 때 자신은 자신의 마음에 성실한 대로, 즉 자기 마음에 있는 대로 모세에게 보고하였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증거했습니다. 또 그는 그 때에 모세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고 했다고 증거합니다. 모세도 갈렙의 온전한 순종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의 요청을 허락하며 갈렙을 축복하고 헤브론을 기업으로 주었고 이 책에 기록하기를,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본문 14절). 그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민수기 14:24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갈렙은 온전히 하나님을 좇았습니다. 오늘 본문(8, 9, 14절)과 민수기 14장의 본문(14:24)과 성경의 다른 곳들(민 32:11-12; 신 1:35)이 그 사실을 증거합니다. 갈렙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본이 됩니다. 우리는 갈렙과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보고(報告) 민수기 13장과 14장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두 명의 정탐군들이 돌아와 회중 앞에 보고했을 때 다른 동료들은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이긴 하지만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크며 거기서 거인들의 후손인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말했으나 갈렙은 백성을 안돈시키며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했습니다(민 13:27- 30). 또 백성이 동료들의 보고에 낙심하고 밤새도록 통곡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 갈렙은 그 옷을 찢으며 말하기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민 14:7-9).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런 긍정적인 보고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그런 믿음의 권면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확신하는 자가 아니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며 그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부정적 보고 그러나 열 정탐군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외적인 조건만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 대해 악평하기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32-33절). 그들의 보고는 나쁜 보고이며 부정적 보고이었습니다. 열 정탐군들의 보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담시켰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갈렙은 그들이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민수기 14:1-4은 좀더 자세히 기록합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그들은 왜 그런 나쁜 보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였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그의 약속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14:1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을 때 그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열 정탐군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하나님의 뜻을 대항하였던 것입니다. 확신과 인내가 필요 갈렙은 하나님과 그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며 순종하였으나 확신과 인내가 필요하였습니다. 열두 정탐군들 중에 갈렙과 뜻을 같이하는 자는 여호수아뿐이었습니다. 10 대 2의 상황이었습니다. 또 열 정탐군들의 보고의 영향으로 백성들 가운데 거센 반대 세력이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은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제안하기까지 했습니다(민 14: 4). 때때로 하나님의 일에는 거센 반대 세력이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불러 대결해야 했습니다(왕상 18: 19). 또 선지자 미가야는 400명 가량의 거짓 선지자들과 구별되는 외로운 선지 사역을 해야 했습니다(왕상 22:6). 민수기 14:10에 보면, 사람들은 돌로 갈렙을 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며 순종하는 길은 때때로 고난의 길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승리하고 거짓 선지자들을 다 죽인 후에도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칼을 두려워하여 도피하여야 했고, 미가야는 바른 말을 한 후에 옥에 갇혀 고난의 떡을 먹고 고난의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믿음과 마음을 가지고서는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고 하나님의 일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순종을 위해서는 확신과 용기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만일 갈렙에게 그런 확신과 용기와 인내가 없었다면, 그는 중도에 실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히, 끝까지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라고 말하지만, 또한 고백하기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시 3:1, 5-6). 많은 대적들과 싸워야 하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참고 기다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했고(고후 4:8-9), 또 다른 곳에서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말하며(딤후 4:14-16) 낙심치 않고 그의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말세에 성도에게 필요한 덕은 인내와 믿음입니다(계 13:10; 14:12). 갈렙은 45년의 세월이 흐른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읍이 크고 견고하며 아낙 사람이 있는 헤브론 산지를 기업으로 요청하였고 또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수 14:12). 그것은 변함 없는 믿음입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며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고 온전히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주위의 동료들의 다른 생각과 백성들의 불신앙적 적대 세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확신했고 인내로써 자기의 임무를 다했습니다. 신앙의 선진들은 다 그와 같았습니다. 다윗도, 바울도 그러하였습니다. 믿음이 없고 혼탁한 말세지말을 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갈렙의 온전한 순종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줄 압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약속을 믿읍시다. 또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고 그 교훈을 힘써 지키면서 온전히 하나님만 따르며 순종합시다. 믿음 없는 세상에 영향을 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확신하고 인내로써 행하여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 지난오후설교: 육체적 죽음 잠언 3:20-21,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육체적 죽음은 개인에게는 하나의 종말이다. 육체적 죽음은 무엇이며, 죽은 후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육체적 죽음의 의미 육체적 죽음은, 의학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는 심장의 박동 혹은 맥박이 멈추는 것 혹은 코의 호흡이 그치는 것을 의미하지만, 성경적으로는 영혼이 몸을 떠나는 현상, 즉 몸과 영혼의 분리를 가리킨다. 전도서 3:20-21,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누가복음 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육체적 죽음의 원인 인간에게 육체적 죽음은 어떻게 왔는가?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인간에게 죽음이 죄 때문에 왔다고 증거한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로마서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은 포괄적인 깊은 의미가 있는데, 육체적 죽음을 포함한다. 창세기 3:19, (범죄에 대한 형벌 선언)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기 5장, "죽었더라. . . . 죽었더라. . . . 죽었더라." 고린도전서 15:21-22,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성도들의 죽음의 이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데 왜 죽는가? 성도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도가 죽는 이유는, 주의 재림의 때가 아직 안 되었기 때문이다. 주의 재림의 때가 되면, 죽은 성도들은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며 살아 있던 성도들은 죽지 않고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어떤 이들은 성도들이 영은 구원받았으나 몸이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고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그 몸이 죄값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성도들의 몸의 구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로마서 8:23,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느니라." 그러나 성도들의 몸이 그 죄값으로 죽는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赦罪)와 칭의(稱義)는 성도의 영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영육 전체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육의 모든 죄를, 또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다. 우리의 영 뿐만 아니라, 영육의 연합체인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면 성도들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도들의 죽음은 죄의 형벌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죽음은 결코 슬프고 두려운 사건이 아니다. 성도는 죽은 후 그 영혼이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성도의 죽음은 오히려 기쁨과 기대와 소망의 사건이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도 이 땅에서 여러 가지 고난들을 경험하지만, 그러한 고난들은 슬픈 일들만 아니고 또한 많은 유익이 있는 일들이다. 고난은 성도들의 인격을 단련시킨다. 성도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주시는 마지막 고난이며 마지막 훈련의 과정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더욱 깨어 있고 더욱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될 수 있다. 육체적 죽음은 성도에게 큰 유익을 주는 사건이다. 육체적 죽음의 중요성 육체적 죽음은 몇 가지 점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 첫째로, 육체적 죽음은 각 사람의 생애의 마침이며, 죽음으로 마감된 그의 일생은 하나님 앞에서 평가될 것이다. 둘째로, 육체적 죽음은 각 사람의 영혼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의인은 죽을 때 그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가고, 악인은 죽을 때 그 영혼이 지옥으로 들어간다. 셋째로, 육체적 죽음은 각 사람의 영원한 상태를 고정시키며, 그 후에는 그 상태를 변경시킬 수 없다. 육체적 죽음 후에는 사람의 구원이 가능하지 않다. 누가복음 16:26,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고정된 큰 간격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육체적 죽음의 이러한 중요성을 생각할 때, 각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성도는 자신의 생애를 아름답게 마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매장(埋葬)인가, 화장(火葬)인가? 세상에는 죽은 자를 장례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다. 그러나 성도에게 가장 합당한 장례 방식은 무엇인가? 오늘날 유행하는 화장(火葬)은 허용될 수 있는 방식인가? 성경이 증거하는 가장 오래된 장례 방식은 매장(埋葬)이다. 또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부활 소망에 가장 합당한 방식이다. 화장(火葬)은 이방적 풍습에 기원하는 것 같다. 칼빈은 말하기를, "죽은 자를 매장하는 풍습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인정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생명에 대한 보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부득이한 경우 화장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매장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합당한 장례 방식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 현대사회문제: 미군 철수 부를 '평화체제' 추진 [김성욱, "盧정권, 美軍철수 부를 '평화체제' 추진," 미래한국, 2006. 5. 6. 5쪽; 미래한국신문 기자.] 노무현 정권이 남북관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평화체제(平和體制)'가 결국 연방제 사전(事前) 조치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권의 '평화체제'가 △북핵 해결이나 등 군사적 신뢰구축이 선행(先行)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장되고 있고 △평화체제의 필연적 부산물인 주한미군 위상변화문제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있으며 △북한과 남한 내 친북세력이 주한미군철수를 통한 대남혁명전략의 일환으로 평화체제를 주장해왔다는 점에 근거한다. 물론 '평화체제' 문제는 지난 해 9월 19일 미국·일본 등이 참가한 6자회담 합의문에 포함됐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한 이후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는 요지로 4번 조항에 삽입된 것이었다. 즉 '평화체제'는 북핵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이 선행(先行)된 이후에 논의될 수 있다는 일반론을 규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북한이 핵무기 폐기를 이행하지 않고, 6자회담 마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평화체제' 실현만을 지속 주장해오고 있다. 예컨대 정동영 열우당 의장은 2005년 8월 15일 민족대축전 남북공동행사 기념사에서 "한반도 정전상태를 종식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며 북한 측에 평화체제 구축을 제안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 19일·20일, 10월 17일, 10월 24일, 2006년 1월 22일, 1월 30일, 2월 18일에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2006년 통일부의 남북관계 주요과제에는 북핵문제해결과 평화체제구축이 같이 포함됐다. 정권핵심부의 '평화체제' 발언을 살펴보면, '평화체제' 실현과 군사적 신뢰구축의 선후(先後)관계가 뒤바뀌어 버린 듯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정동영 의장은 지난 해 12월 30일 통일부 종무식에서 북핵폐기에 대한 지적 없이 "냉전을 해체하고 평화체제로 가는데 역량을 총집중해야 하며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고, 같은 해 10월24일 국회에서 "평화체제 구축을 넘어서서 남북연합을 내다본다면 헌법 3조의 영토조항을 손질해야 한다"며 북한을 反국가단체가 아닌 국가적 실체로 인정해야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노무현 정권의 '평화체제' 주장은 북핵 폐기 이외(以外) 군사적 신뢰구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은 '햇볕정책' 이후에도 선군정치(先軍政治)라는 군사제일주의 노선 아래 핵무기 이외 화학무기(세계 3위)·생물무기(세계 3위)·미사일(세계 6위권)을 지속 개발함은 물론 재래식 군사력도 강화해왔다. 한미(韓美) 군 당국은 2006년 1월 "북한의 2005년 군사훈련 규모를 평가한 결과, 지상군(地上軍)의 기계화 부대 기동훈련과 공군(空軍) 비행단의 야간비행 훈련횟수가 예년에 비해 20-30% 가량 증가했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휴전선을 중심으로 집중 배치된 기계화부대·장사정포·전투기 등의 후방철수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북한이 요구하는 남한의 안보구조 해체요구에 유화적(宥和的)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학법 고집이 '개혁'인가? [論評중계, "사학법 고집이 '개혁'이라는 여당의 의지," 미래한국, 2006. 5. 6. 5쪽; 동아일보, 5월 1일 사설.]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 재개정 협상에서 '여당이 대승적으로 양보하라'는 대통령의 권고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당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며 쉽게 물러섰다. 한편의 '짜고 하는 게임'을 보는 것도 같고, 레임덕(권력 누수)을 보는 것도 같아 헷갈린다. 개정 사학법을 기필코 고수하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 때문이라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정 사학법은 교육의 자율성과 사학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해치는 위헌적내용을 담고 있어 한나라당과 종교계 사학은 물론이고 공립학교 교장까지 반대했던 악법(惡法)이다. 열린우리당은 김한길 원내대표가 들어서면서 사학법 재개정을 한나라당에 약속했다. 위헌 시비까지 무릅쓰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하자는 대로 교육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이 개혁인가. 또 거짓 약속을 밥먹듯이 하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인가. '당신들끼리의 코드'와 시대착오적 이념에 매달려 급박한 민생문제를 외면하면서 엉뚱한 개혁을 외치기 때문에 여당 지지율이 20% 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윤이상은 北의 문화공작원 [김성욱, "윤이상은 北의 문화공작원," 미래한국, 2006. 5. 6. 6쪽; 미래한국신문 기자.] 윤이상은 생전에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악기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20세기 5대 작곡가로 꼽히며 현대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으로 일관된 반한(反韓)친북(親北) 활동을 벌여 온 인물이다. 67년 중정(中情)은 동백림 사건에 대해 유럽에 유학했던 대학교수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동백림(동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과 북한을 왕래하며 벌어진 간첩사건이었다고 발표했었다. 윤이상은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년 후 형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윤이상은 동백림사건에 대해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음악가로서였다"며 당시 중앙정보부가 고문(拷問) 등을 통해 간첩사건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윤이상은 이 사건 이후에도 95년 11월 사망 시까지 북한을 계속 오가며 '민건회(민주사회 건설협의회)' 회장, '한민련(민족민주통일 해외한국인연합)' 구주본부의장, '한국학술연구원(KOFO)' 원장, '유럽민협(재유럽 민족민주운동협의회)' 고문 등 친북반한(親北反韓)성향단체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90년 11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 해외범민련의 3자기구로 설립된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의 공동의장직에 취임하기도 했다. 윤이상과 북한정권과의 연계성은 92년 '오길남 간첩사건'과 97년 황장엽 前북한노동당서기 입국 당시 재차 확인됐다. 오길남 박사는 독일유학 中 정치망명한 뒤 85년 입북(入北)해 한민전 대남흑색방송요원으로 활동하다, 86년 북한을 다시 탈출해 92년 한국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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