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3월 5일 [제10권 10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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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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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세 가지 준비"

여호수아 5: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 3장과 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와 40년 간 광야 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강의 기적을 주셨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담갔을 때 강물은 그쳤고 백성들은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건넜습니다.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후손들을 위해 열두 개의 돌들을 요단강 가운데 세웠고 또 열두 개의 돌들을 그들이 유숙한 길갈에도 세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여호수아 5장에 보면, 요단강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그들이 건넜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놀라운 신적 기적의 소식을 들은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이라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할례는 남자의 포피(성기의 귀두부를 싼 가죽)를 잘라버리는 의식입니다. '할례산'이라는 원어는 '포피들의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포피들을 잘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들이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들은 할례를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20세 이상의 남자 장정이 약 60만 명이었는데,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죽었습니다. 갈렙은 나이가 80이 넘은 노인이 되었고(수 14:7) 여호수아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가 안 되었던 자녀들과 광야 40년 동안에 새로 태어난 자들로 구성되었고 그들의 수도 다시 약 60만 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는 나이가 제일 많은 자는 60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60만 명 중에서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할례를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쳤고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이 책을 쓸 당시까지 그 곳 이름은 길갈이라고 불리웠습니다. 히브리어 길갈은 '바퀴' 혹은 '굴러감'이라는 뜻입니다.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회중에서 할례가 없었다는 것은 수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었기 때문입니다. 할례가 없다는 것은 이방인과 다름이 없다는 뜻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영광의 표이지만, 할례가 없음은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 없고 하나님의 언약에서 제외되었다는 수치의 표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약 430년이나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마 외형적으로는 애굽 사람이라고 불리울 수도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할례가 없다면 그들은 정말 애굽 사람과 구별될 수 없을지 모르나, 할례를 통해 그들은 애굽 사람과 완전히, 명확히 구별될 것입니다.

할례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예, 할례는 그렇게 중요합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언약의 표로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고 말씀하셨고(창 17:10, 11), 또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창 17:13, 14).

출애굽기 4:25 이하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보내실 때 길의 숙소에서 그를 죽이려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모세의 아내는 차돌을 취하여 그의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졌고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던 것은 그가 자기 아들에게 할례를 행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마 그의 아내의 무지하고 믿음 없는 반대 때문에 그러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노여움의 이유를 알아차렸고 즉시 할례를 행함으로 그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표입니다. 할례의 행위 자체는 불결의 제거, 죄의 제거, 곧 죄씻음과 성결을 상징합니다. 죄가 인류의 불행의 근본 원인이요, 죄씻음이 그 해결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세례로 표현됩니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합니다. 세례는 주의 명령입니다. 사람은 죄를 가진 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이며 그 결과는 지옥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사함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음으로 언약의 백성이 되었듯이, 신약 시대에 모든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언약의 백성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받지 못했던 자녀들에게 길갈에서 할례를 베푼 후에 그 달 14일 저녁에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은혜를 기억케 하는 절기입니다.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순순히 놓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열 번째의 재앙 곧 애굽의 모든 가정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당하고서야 바로는 항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었습니다. 그 죽음의 재앙이 있었던 밤에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그들의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고 심판의 천사는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

유월절도 할례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의 표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표이었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백성과 구별하신 표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은 후에만 유월절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12:14).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유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다시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고 큰 유익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구약의 유월절 규례는 신약의 성찬식으로 이어집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찬식은 주의 명령이요 신약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속죄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주 예수를 믿고 구원얻은 모든 자들은 주께서 제정하신 이 의식을 지켜야 합니다. 세례받은 모든 신자는 이 의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신약교회의 성도들이 지켜야 할 규례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날마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킨 다음 날 그들이 그 땅의 소산인 무교병 즉 누룩 넣지 않은 떡과 볶은 곡식을 먹었고 그 땅의 소산을 먹은 다음 날 만나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그들은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었습니다. 광야 생활을 위해 주셨던 하나님의 비상 식량인 만나는 가나안 땅에서는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기적들을 믿으나 기적주의는 아닙니다. 기적들은 계시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비상한 사건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 방식은 성경 말씀을 통한 신앙 생활입니다. 신자들은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증거된 하나님의 진리들을 다 믿고 그 말씀의 교훈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참된 기독교입니다.

본문은 할례를 베푼 것과 유월절을 지킨 것 외에 또 하나의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난 사건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나아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절하며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하자, 그는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의 말대로 신을 벗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이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신비한 인물입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엎드려 절함 즉 경배를 받았고, 여호수아는 그를 '나의 주여'라고 불렀고, 그는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 가지 사실은 그가 신적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그가 하나님이 아니고 어떤 천사였다면 그는 여호수아에게 경배받기를 거절했을 것입니다. 또 그가 여호수아의 선 곳이 거룩하다고 말한 것은 그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아니면 감히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신적 존재인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구약시대에 종종 나타나셨던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사자, 즉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봅니다.

그가 이 때에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를 위로 격려하시고 그가 그와 함께하심을 기억시키고 그가 친히 이스라엘 군대를 도우실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군대'의 장관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군대'는 이스라엘 회중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 곧 교회의 우두머리이십니다. 그는 그들과 동행하시며 그들과 함께 싸우시며 그들을 진두지휘하시며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그가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에게 구별된 마음가짐, 즉 성결과 경외함과 복종을 요청하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신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신을 신고 움직이며 이런저런 일을 합니다. 그러나 주의 일을 하려는 자는 일상적인 신을 벗고 성결과 경외함으로 주께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뜻대로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세 가지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첫째는 할례받지 못한 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표이었습니다. 할례받은 자들만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교회의 참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준비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유월절도 하나님의 언약의 표증이었습니다. 할례받은 자들은 다 유월절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오늘날 성찬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주께서는 유월절 식탁 자리에서 성찬 규례를 명하셨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세례받은 자들은 다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 의식은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준비는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도우시고 그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싸우실 것임을 기억케 하신 것이요 인간편에서 일상적 생활방식을 버리고 성결과 경외와 복종으로 주를 따라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가나안 정복은 영적으로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일, 즉 전도하는 일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할례와 유월절이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신약 시대에 우리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합니다. 세상을 구원시키려면 먼저 자신이 구원받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믿음으로, 세례와 성찬을 통해 알게 됩니다.

또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 우리는 주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또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주의 뜻과 명령에 온전히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빛된 생활을 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는 잘 준비된 성도로 세상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빛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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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교회의 운영과 조직

교회는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고 성도 상호 간에도 연합되어 있는 유기체적 몸과 같지만, 그것은 또한 외적으로 하나의 조직체이다. 교회 안에는 목사와 장로와 집사 등의 직분자들이 있고 각 부서와 기관과 구역 등의 조직들이 있다. 또한 개체 교회 외에도 노회와 총회 등의 큰 회의들이 있다. 조직은 교회의 본질적 요소는 아니지만 필요한 요소이다.

성경은 초대 교회가 어느 정도의 조직을 갖고 있었음을 증거한다. 예를 들면, 세례를 통해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마 28:19), 교회에 시행되고 있는 규례(고전 11: 16), 성찬의 규례(고전 11:23-26), 교회 집회의 순서들(고전 14:26), 질서의 필요성(고전 14:40), 권징(고전 5장), 헌금의 규례(고전 16:1, 2), 장로와 집사의 직분을 위한 자격 규정(딤전 3장), 과부들의 등록과 관리(딤전 5:9) 등의 말씀들이 그러하다.

교회 역사상 교회 운영에 있어서 세 종류의 형태가 있었다. 첫번째는 감독주의(episcopalism)이다. 감독주의는 교회의 운영이 감독들(bishops)에 의해 이루어지는 형태이다. 이 형태에 의하면, 감독들은 사도들의 계승자로서 교인들을 감독하며 교회를 다스리는(治理) 권한을 가지고 일반 교인들은 교회 운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감독은 몇 개의 지교회들을 관할하고 다스리며 또 성직 임명권을 가진다. 영국교회(성공회)와 감독교회(the episcopal church)가 이런 운영 형태를 취하며, 천주교회의 교황제도는 감독주의의 극단적 형태이다.

두 번째는 회중주의(congregationalism)이다. 회중주의는 교회의 운영이 교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형태이다. 이 형태에 의하면, 목사는 지교회의 한 회원에 불과하며 교인들 위에 감독의 권위나 권한을 가진 사람이 따로 없다. 또 지교회는 개체성과 독립성을 가지며 지교회를 간섭하는 노회나 총회 같은 것은 없고 단지 서로 교제하고 협력하는 협의체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침례교회나 회중교회 등이 이런 운영 형태를 취한다.

세 번째는 장로주의(presbyterianism)이다. 장로주의는 교회의 운영이 교인들 스스로가 선택한 대표자들, 즉 목사와 장로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형태, 곧 대의(代議)제도이다. 장로주의는 일반 교인들의 권한과 목사의 권한을 둘다 동등하게 존중한다. 이러한 운영 형태는 감독주의와 회중주의의 장단점을 보완한 것으로서 성경에 계시된 바에 가장 적합하다.

성경은 목사 혹은 장로들의 직무와 권위를 증거한다. 목사와 장로들은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감독자들'이며, 교인들은 그들이 돌보아야 할 하나님의 양들이다. 즉 목자와 양의 관계인 것이다. 요한복음 21:15 -17, "내 어린양을 먹이라 . . . 내 양을 치라 . . . 내 양을 먹이라." 사도행전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다른 한편, 성경은 일반 교인들의 제사장적 권한도 증거한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요한계시록 1:6, ". . .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또 초대 교회의 직분자들은 교인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사도행전 6:5, 6,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택한다'(케이로토네오 χειροτον?ω)는 말은 사람을 뽑기 위해 손을 내민다는 뜻을 가진다. 사도행전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이와 같이, 성경은 목사와 장로들의 감독자와 목자로서의 직무와 권위를 증거하는 동시에 일반 교인들의 제사장적 권한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경 진리들은 감독주의나 회중주의에 적합하지 않고 오직 장로주의에 적합하다. 우리는 장로주의가 성경이 증거하는 올바른 교회 운영방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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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문제:                                       인권위는 무질서를 원하는가

[신지호, "인권委[위원회]는 무질서를 원하는가," 조선일보, 2006. 2. 6, A30쪽; 자유주의연대 대표· 서강대 겸임교수.]

자유주의가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사회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선택과 결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주의는 가급적 집단적 선택의 영역은 줄이고 개인적 선택의 폭을 늘리자는 발상이다.” 해서 자유주의자는 획일과 통제를 싫어한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랫말처럼 자율을 숭상한다. 그런데 자율에는 책무가 수반된다. 선택이 자유로웠던 만큼 그 결과에 대해 응당 책임져야 한다. 이른바 ‘자기책임 원칙’이다.

그렇다면 자유의 허용 범위는 어떻게 설정되는가? 일부 좌파 지식인들은 자유주의를 자유지상주의 또는 자유방임주의와 동일시하는데, 이는 자유주의의 변천과정에 대한 천박한 이해의 소산이다. 존 스튜어트 밀 이래 형성된 기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생각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를 엄격히 구별한다. 고성방가나 교통방해는 상상할 수 있으나, 실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는 엄정한 질서와 동행(同行)한다. 자유주의자에게 질서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다가간다.

이처럼 교과서적인 얘기에 아까운 지면을 할애한 것은, 기본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작금의 사회상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김선일의 죽음은 물론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국가 보상 운운한 것은 완전한 난센스였다. 위험지역이니 여행하지 말라는 수차례에 걸친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선일은 이슬람의 나라에 기독교를 선교하러 갔다. 김선일은 라이언 일병이 아니었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에 희생된 서해교전 사상자들은 당당히 국가 보상을 요구할 자격이 있지만, 개인적 선택을 한 김선일은 자기책임 원칙에 따랐어야 했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정부에 통보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국가인권위가 위의 교과서적 내용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쉽사리 알 수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른 분단국가의 속성상 집단적 선택의 영역으로 남겨 놓아야 할 병역제도를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을 통해 개인적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로 처리되어야 할 성전환수술을 의료보험 적용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집단적 선택의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한마디로 국가인권위는 기본적인 공사(公私) 구분조차 안 되는 집단인 것이다.

뿐만 아니다. 날치기 사학법에서조차 금지하고 있는 교원의 정치활동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학생의 학교 및 교사 선택권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무엇이 교육현장에서 더 중요하고 시급한 자유인지 기초 이해가 결여돼 있다. 설상가상으로 집회와 시위에 대한 장소 및 시간 제한의 폐지마저 권고하고 있다. 교통방해 및 소음으로 인한 불특정 다수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데모꾼들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고 무질서를 조장하는 것으로 자유의 미명 아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反)자유주의적 행태다.

국가인권위는 1993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에 의거해 2001년에 출범한 독립기구다. 그런데 기본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고 논리적 일관성마저 결여된 인사들이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과 해체를 위해 자유민주적 헌법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가 결핍된 민주화’의 과잉이 빚어낸 결과다. 바로 이 지점에 한국 민주화의 결정적 한계가 존재한다.

우리보다 인권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에도 국가인권위는 없다. 서유럽 국가들의 인권위는 준사법기구인 우리와 달리 대부분 자문과 연구가 주 기능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주체의 소화능력이 떨어지면 역기능을 할 뿐이다. 기초소양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인권위원으로 임명해 연 200억원 가량의 국고를 소진하는 것이 과연 시의적절한지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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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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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