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1월 22일 [제10권 4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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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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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교회의 속성"

니케야-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는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세계적, 사도적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데, 이 고백은 성경이 증거하는 교회의 세 가지 속성을 잘 드러낸다.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며 세계적이다.

교회의 첫번째 속성은 하나됨(일체성)이다. 교회는 하나이다. 전세계에 많은 교회들과 교단들과 교파들이 있어도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 전체로 구성된 교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세계에 오직 하나이다. 창세 전에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얻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한 교회에 속한다. 벨직 신앙고백 27조는 "이 교회는 세상 처음부터 있었고 세상 끝까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1은 교회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수 전체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교회는 인류 창조 때로부터 있었다. 물론 그 구성원과 예배 방식과 하나님의 은혜의 나타남에 있어서 교회는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에 시대적 독특성을 가진다. 구약 교회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성막 혹은 성전 예배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구성되었으나, 신약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나라 사람들로 구성된다. 구약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율법을 통해 예표(豫表)되었으나, 신약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통해 밝히 증거되었다. 그러나 그 둘은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교회가 아니고 동질적(同質的)인 한 교회이다.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가 동질적인 한 교회라는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로, 그 교회들에게는 동일한 명칭이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 '회중'이나 '총회'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할에다는 헬라어 70인역에서 에클레시아로 번역되었는데,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교회'로 번역된 바로 그 말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 원리가 모든 시대에 같다. 아담 이후의 모든 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만 죄씻음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비록 구약 시대에 도덕법이 강조되었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성막 제도와 제사 제도 등 의식법을 통해 밝히 증거되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셋째로, 두 시대에 교인들의 신분과 특권이 같다. 마태복음 8:11,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로마서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에베소서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에베소서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교회가 하나라는 사실은 영적 차원, 교리적 차원, 유형적(有形的) 차원, 이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교회가 하나라는 것은 영적인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엡 1:23; 고전 12:27)는 이미 영적으로 하나이다.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비록 세상에서 그들이 나뉘어 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나뉠 수 없이 하나가 되어 있다. 이것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사실이다.

둘째로, 교회가 하나라는 것은 교리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교리(敎理)는 진리를 말로 표현한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즉 바른 교리 안에서 하나이다. 디도서 1:4, "같은 믿음(코이네 피스티스)을 따라 된 나의 참아들 디도에게." 교회의 하나됨은 바른 교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공동적 이해와 고백을 위해 힘써야 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11, 20-21에서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이 기도에서 성도들의 하나됨은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되심과 같은 종류의 하나됨이며 그것은 진리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하나됨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4:3-6에서 성도들의 하나됨의 근거로서 성령과 소망과 주와 믿음과 세례와 하나님 등 여섯 가지가 각각 하나임을 들었는데, 이것은 성도들의 하나됨이 교리적임을 잘 증거한다.

그러므로 B. B. 워필드는 말하기를, "신약의 그리스도인의 하나됨은 신자들의 공통적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였다"고 했고, 마틴 로이드 죤스도 "진리와 교리를 떠난 일체성이란 없다"라고 단언하였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교회들은 인간의 무지와 오해로 인하여 하나님의 모든 진리들에 대한 같은 이해와 신앙고백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그것이 교파가 생긴 주요 이유이지만, 적어도 복음적 개신교단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기본적 진리들에 있어서 하나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교회들은 그 정도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모든 진리에 대한 같은 이해와 신앙고백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교회는 외적으로도 하나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다. 분열과 파당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있는 파당에 대해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라고 지적하였다(고전 1:13). 또 그는 에베소 교회에게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했고(엡 4:3), 갈라디아 교회에게는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육체의 죄악된 일들이라고 열거했다(갈 5:19-21). 우리는 교회들의 유형적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한다.

교회의 두 번째 속성은 거룩함(성결성)이다. 교회는 거룩하다. 에베소서 5:26, 27,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적이다.

교회의 거룩함은 법적인 면에서와 실제적인 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법적으로 교회는 이미 거룩하다. 성도들은 법적으로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거룩해진 자들이다. 고린도전서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졌고(원문 직역)." 히브리서 10:10,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이것이 칭의(稱義)의 진리에 담긴 은혜이다.

그러나 교회는 실제적으로도 거룩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다(엡 1:22, 23). 몸은 머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또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성전은 거룩하며 거룩해야 한다. 또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아가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향해 순결한 사랑을 가져야 한다. 한마디로, 교회는 주를 사랑하고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거룩한 교회이어야 한다.

교회는 우선 교리적으로 거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진리들을 교회에 위탁하셨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딤전 3:15) 이 진리를 보수(保守)하며 보존하고 모든 사람들 앞에 제시하고 변호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교리적으로 매우 부패되어 있다. 역사적 대교단들의 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역사상 유례 없을 정도로, 심지어 천주교회보다도 더, 복음진리에서 이탈한 이단적이고 배교적인 사상이다. R. B. 카이퍼는 말하기를, "우리 시대의 거의 모든 대교단들과 그 밖의 많은 작은 교단들이 신학적 자유주의의 침해를 받아 왔는데,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초자연적 중생(重生)이 구원의 본질임을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더욱이, 자유주의 신학은 장로교회, 감리교회 등 기존하는 역사적 교회들의 목사 양성원인 신학교들 속에 들어와 신학생들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고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

교회는 윤리적으로도 거룩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윤리적으로도 매우 부패되어 있다. 교권주의와 명예심으로 인한 교회들의 분열, 교인들의 세속주의적 생활과 돈 사랑, 술과 담배, 영화와 춤 등의 무절제한 허용, 특히 근래에 낙태, 동성애, 안락사(安樂死) 등의 허용과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의 용납, 현대기독교음악(CCM), 열린 예배 등이 물밀듯이 들어와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속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참된 교회들은 이러한 교리적, 윤리적 오류들을 배격해야 한다.

지상의 교회는 흔히 전투하는 교회로 표현된다. 세상에 있는 교회 곧 성도들은 마귀와 악령들과 싸움을 한다. 이 세상은 영적 전쟁터이다. 에베소서 6:10-13,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선한 싸움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승리한 교회라고 불리운다. 그들은 지금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다. 히브리서 4:10,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는 . . .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브리서 12:22, 23, "하늘의 예루살렘,"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 . .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교회는 땅 위에서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

교회의 세 번째 속성은 세계적임(보편성)이다. 교회는 세계적이다. 교회의 세계적 속성은 하나님의 교회가 전 세계에 퍼져 있고 각 족속,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구원받은 성도들의 수가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을 말한다.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충만한 수의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로마서 11:25, 26,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요한계시록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회'라는 구절의 '공회'(公會, the catholic church)는 이 세계적 교회를 의미한다. 천주교회가 자신을 '카톨릭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비록 그것이 부당한 적용이지만 이런 의미에서다. 하나님의 참 교회는 세계적이다. 교회의 이러한 성격을 생각할 때, 우리는 교회를 생각하는 우리의 시야를 좀더 넓게 가지고 마음을 좀더 포용적이게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교회는 처음부터 세계적 모습을 가지지는 않았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묘사하며 그것은 작은 형태로부터 세계적인 형태로 성장할 것을 암시하였다. 교회는 "적은 무리"(눅 12:32)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으로 이해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앗과 같이 세상에 뿌려지고 시작되었다.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 곡식과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그물 비유 등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마태복음 11:12,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사람들은 중생함으로 그 나라에 들어간다(요 3:5). 마태복음 12:28,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7:20, 2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 .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골로새서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러므로 중생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그들이 또한 교회를 구성하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불리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요한계시록 1: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그러나 세계적 교회는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이 미래적 단계를 소망한다. 영광의 천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초자연적 방식으로 올 것이다. 마태복음 25:34,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빌립보서 3:20, "우리의 시민권[나라]은 하늘에 있는지라." 히브리서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 1:10, 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요한계시록 11:15,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요한계시록 22:5,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우리는 교회의 세 가지 속성을 기억하며 참된 교회를 건립해야 한다. 교회는 교리적, 유형적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한다. 또 교회는 교리적, 윤리적 거룩함을 힘써 지켜야 한다. 또 교회는 세계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특히, 교회는 하나됨을 위해 거룩함을 버려서는 안 되고, 또 거룩함을 위해 하나됨을 쉽게 버려서도 안 된다. 이것은 물론 실제적으로 참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충성과 인내와 사랑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됨과 거룩함을 둘 다 성실히 지키고자 힘쓸 때, 교회는 참교회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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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문제:                                     개정 사학법의 내용과 영향

[서현교, "개정 私學法의 내용과 영향," 미래한국, 2005. 12. 19, 14쪽.]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앞으로 사학이 재단과 급진세력 간 갈등과 투쟁의 장으로 바뀌고, 이념교육의 장으로 변질될 것으로 우려된다. 개정 사학법이 설립자 측의 경영권을 제한하는 대신 교수·교사·교직원 등 피고용자들에게 학교경영권 참여 및 대학평의원회 설치 등을 통한 세력 확대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개정 사학법의 골자는 전교조가 10여 년 전부터 주장해 온 개방형 이사제다. 즉 비리 척결을 구실로 학교구성원이 추천한 외부인사를 법인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외부인사는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한 자로 이사진의 4분의 1 이상을 구성한다. 이사가 7명이면 2명, 9명과 11명이면 3명, 13명과 15명이면 4명이 개방형 이사가 되는 셈이다. 개정 사학법 부칙은 법의 시행 시기를 내년 7월 1일로 정해 놓았다. 이때부터 법인이사회의 결원이 생기면 재단은 새 법에 따라 4분의 1 이상을 개방형 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개방형 이사제의 이면에는 정권에 의한 사학의 법적통제를 강화하고 전교조의 경영 참여를 허용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는 “개방형 이사제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도록 학교 구성원의 추천에 의한 이사선임을 제도화한 것”이라며, “이는 사학의 창학정신 유지 및 계승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학교법인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과잉 입법”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개정 사학법은 정이사가 한번 물러나면 이사회 복귀가 어렵게 되어 있다. 즉 비리 등으로 이사 취임이 취소된 인사는 복귀 금지 기간을 2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복귀할 때에도 이사진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도록 했다.

또한 이사장 친족의 경영권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친족이사의 비율을 현재 이사정수의 1/3이내에서 1/4 이내로 축소시켰다. 그리고 감사 2명 중 1명도 학운위나 대학평의원회에서 추천받은 인사로 임명되도록 했다. 이사장 배우자 및 혈족의 학교장 취임도 금지했다. 학교장 임기도 기존에는 정관으로 자유롭게 정했으나 개정 사학법은 4년을 초과할 수 없고 1회에 한해 중임하도록 제한했다. 학교장은 학교 예산을 편성해 학운위와 대학평의원회 자문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재단 예산편성에 대한 간섭도 허용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이사장 배우자와 혈족의 학교장 취임을 금지한 조항은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와 연좌제 금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조전혁 인천대 교수는 “학교설립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이사회를 구성할 것인지는 학교법인의 권한이지, 외부에서 강제하거나 내부 구성원이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대학에는 교수·교직원 등으로 대학평의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조직과 운영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따라서 교수노조·교직원노조가 대학평의원회를 좌지우지할 경우 재단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학계는 “개방형 이사는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학교의 피고용인들이 이사 추천을 좌지우지 하면서 결국 전교조의 사학지분 챙기기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금치 못했다. 

    공공성과 자율

[이상돈, "공공성과 자율," 미래한국, 2006. 1. 2, 4쪽; 중앙대 법대 교수.]

노무현정권이 사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면서 내건 명목은 ‘사학의 공공성’이다. 실제로 작년에 열우당이 이 법안을 내놓을 즈음 당시 열우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여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공성’이란 양두구육(羊頭狗肉) 같은 것이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정부는 또 맑은 물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국민에게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런 목적은 분명히 공공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독점적으로 물과 주택 그리고 교육 서비스를 공급하도록 하면 옛날 소련이나 북한 꼴이 되고 만다.

반대로 가격 메커니즘에 기초한 시장의 자율기능에 이를 맡기면 온 국민은 보다 맑은 물과 좋은 주택 그리고 좋은 교육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자율과 선택 그리고 경쟁과 시장이 있어야 소비자인 국민은 좋은 물, 좋은 주택, 좋은 교육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자율이 없는 것이다. 사립학교는 말만 사립학교이지 스스로 학생을 모집할 수 없게 돼 있다. 정부 말대로 오늘날 사립학교가 온갖 비리와 불법의 온상이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은 정부에 있다. 비리 사학에도 정부가 학생을 배정해서 사학이 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학의 비리를 예방한다는 핑계로 이제는 사학의 소유주체를 송두리째 바꾸려하고 있다. 그것은 공산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우리는 흔히 정부가 소유. 운영하는 ‘공립학교’는 공적으로 운영되는 성스러운 학교이고, ‘사립학교’는 장사꾼이 운영하는 냄새나는 학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언어의 장난이 빚어낸 착각이다.

우리가 흔히 공립학교라고 부르는 학교란 사실은 정부가 소유. 운영하는 ‘정부학교’(‘government school’)일 뿐이다. 대체로 보아서 정부학교는 사립학교에 비해 비효율적인데, 왜냐하면 정부학교는 경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학교 평준화를 내걸고 사립학교가 학생을 선발할 권리를 박탈한 데 있다. 권위주의 정부가 끝났으면 사립학교에게 학생선발권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이제는 오히려 학교를 송두리째 내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학교교육을 공교육이라고 부르고 학원 등을 사교육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스운 것이다. 선택과 경쟁이 없는 우리나라에선 공교육이 사교육을 이길 수 없다. 또한 사교육에 비해 공교육이 공적인 면은 티끌만큼도 없다. 정부가 학생을 배정해서 망할 염려가 없는 학교에 교원노조가 들어섰으니 공교육은 거대한 철밥통이 돼버렸다. 오늘날 사립학교가 그나마 사학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지배구조 때문인데, 개정 사립학교법은 여기에 칼을 대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언어조작(semantic manipulation)에 매우 능숙한데, ‘공공성’이란 주술적(呪術的) 단어도 그런 면이 있다. ‘공공성’ 같은 외견상 고상한 단어를 선점해서 자신들에 대한 반대를 도덕적으로 능가하려는 것이 이들의 술책이다. 그러나 ‘공공성’이란 공허한 개념이다. 역사는 자유와 선택을 통해서만 개인의 창의성과 능력이 고양되며, 그런 과정을 거쳐서 공공선(公共善)이 창출돼 왔음을 잘 보여 준다. 교육과 주택 등 모든 것을 공공성의 이름으로 정부가 관리하는 나라는 이제 북한과 쿠바 밖에 없다.

개정법이 담고 있는 반(反)종교적, 특히 반(反)기독교적 의도에도 주목해야 한다. 근대 교육을 기독교 사학이 시작한 우리나라에 있어 이 문제는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무신론(無神論)에 서 있는 좌파들에 있어 교회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개정 사학법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좌파뿐 아니라 세속적 휴머니스트들이 벌이는 반기독교 캠페인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기독교 학교에서의 종교수업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한 고등학생을 수시 전형에 합격시킨 적이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기독교 학교가 학생들에게 미사나 예배를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문제는 정부가 제멋대로 학생들을 배정하는 데 있는데, 이 같은 본질은 본체만체하고 어린 학생을 영웅으로 만든 처사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독교 포퓰리즘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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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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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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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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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