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12월 10일 [제10권 50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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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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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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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 . 사랑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제이며 또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덕이다. 오늘 본문에 증거된 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34절,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새 계명을 주신 예수 그는 누구인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의 신성(神性)을 나타낸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이 같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요한복음 1:1의 증거대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며 곧 하나님'이시다. 또 그는 요한일서 5:20에 증거한 대로 '참 하나님'이시며, 디도서 2:13에 증거한 대로 '크신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고(요 10:30), 그는 또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하셨다(요 14:9).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셨고(요 7:16),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4:24). 예수님의 교훈과 명령은 고상한 인격을 가진 부모님의 교훈보다 더 권위가 있고 가장 훌륭한 스승의 교훈보다 더 권위가 있다. 우리는 그의 교훈과 명령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따라야 한다. 예수께서 주신 새 계명의 내용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을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사랑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는 용서이다. 예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을 주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행동을 하셨다. 요한복음 13:14-15에 보면,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다. 발을 씻기신 것은 일차적으로 죄의 용서를 상징하였다. 사랑의 중요한 특성은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다. 잠언 10:12은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말한다. 또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에서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한다(벧전 4:8). 인간 관계에서 상대의 부족과 실수와 허물을 용서함이 없다면, 인간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다 깨어지고 말 것이다. 주께서는 용서에 대해 많이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6:12-15에 보면, 그는 심지어 제자들에게 중요한 기도의 내용을 요약해 가르치실 때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부언(附言)하셨다. 또 그는 누가복음 17:3-4에서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18:22에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상대가 나에게 죄를 범할 수 있지만, 회개하면 언제든지 용서하며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아니,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사랑의 중요한 특징은 이와 같이 용서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사랑은 여러 가지로 묘사된다. 성경에서 사랑의 여러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한 곳은 고린도전서 13:4-7이다. 거기에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주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즉 그는 자신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0:28). 또 그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때에 떡을 나눠 주시면서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고 포도즙을 나누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6:26, 28). 예수님의 사랑은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로 내어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신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4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했고, 또 에베소서 5:2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말하였다. 찬송가 144장은 그의 십자가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야 죽였네/ 피와 같이 붉은 죄 없는 이가 없네/ 십자가의 공로로 눈과 같이 되네/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 공로 아니면 영원 형벌 받네." 찬송가 147장은 그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못박힌 손 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찬송가 405장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의 제자된 표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그의 제자인 줄 알 것이지만,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 우리는 주의 제자된 표를 상실할 것이다. 요한복음 14:21, 23에 보면, 주께서는 또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즉,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가 주를 사랑하는 것이 증명되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고 우리 속에 오셔서 함께 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요한일서에 보면, 사도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어두움에서 나와 빛에 거하는 증거이며(2:9-10),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온 증거이고(3:14-15), 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며(4:10-11),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라고 말하였고(4:20-21; 5:3), 또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담대함을 얻고 기도 응답을 받고 주 안에 거하게 된다고 말하였다(3:22-24). 그렇다면, 서로 사랑함은 모든 성도가 반드시 가져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요 복된 특권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서로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성도의 가장 높은 덕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자. 서로 사랑함을 가정에서부터, 부부 관계에서부터 실천하자. 잠언 12:15, 18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먼저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상대에게 고백하자. 또 우리는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때 그를 용서하자. 그리고 우리는 이제부터 주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위하자.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가정에서 또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며 생활하기를 원하신다. ----------------------------------------------------------------------- 지난오후설교: 성수 주일(聖守主日)의 방법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주일을 거룩히 지킬 수 있는가? 첫째로, 우리는 주일을 온종일 지켜야 한다. 출애굽기 20:10,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장로교회의 예배모범은 "이 날은 주일인즉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라고 말한다(1:2). 둘째로, 우리는 온 가족이 주일을 지켜야 한다. 출애굽기 20:10,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부모는 교회에 나와 주일을 지키지만 자녀가 학교나 학원에 가거나 집에서 텔레비젼을 보거나 놀이터에서 논다면, 또 자신은 주일을 지키지만 자신의 가게나 사업체를 주일에도 열고 직원들로 일하게 한다면, 그것은 성수 주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일에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가 경영하는 곳의 직원들도 쉬게 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주일에 세속적 일을 중단해야 한다. 출애굽기 20:10, ". . .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은 주일에 쉬는 직업과 직장을 구해야 한다. 또 자신의 권한 안에 있는 일은 주일에 쉬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성수 주일하며 버는 돈이 복된 돈이다. 주일을 어기며 번 돈은 어느 날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일주일 내내 일하며 돈을 벌어도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신 돈만 복되다. 의사의 응급실 근무, 군인과 경찰 등의 비상근무 등 직업상 부득이 주일에도 일해야 할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주일을 지키도록 애써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 그 형편과 처지에 따라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주부는 부득이한 것 외에는 주일에 빨래나 대청소를 하지 말고 학생은 주일에 학교나 학원에 나가지 말고 시험공부도 쉬어야 한다. 우리는 주일에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사 먹는 일 등도 하지 말아야 하며(느 13:15-17) 자동차 주유도 미리 해야 한다. 성도는 주일에 세상의 회의나 행사나 잔치 등에 참여하지 않고 축구나 테니스 등의 운동이나 등산, 낚시, 텔레비젼 시청, 영화 감상, 스포츠 관람 등도 피해야 한다. 이사야 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장로교회의 예배모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리 육신의 모든 사업을 정돈하고 속히 준비하여 성경에 가르친 대로 그 날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없게 하라(1:1). 종일토록 거룩히 안식하고 위급한 일 밖에 모든 사무와 육신적 쾌락의 일을 폐할지니, 세상 염려와 속된 말도 금함이 옳다(1:2). 먹을 것까지라도 미리 준비하고 이 날에는 가족이나 집안 사환으로 공동 예배하는 일과 주일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되지 않도록 함이 옳다(1:3). 넷째로, 우리는 주일에 교회의 공적 예배들에 참석해야 한다. 교회는 오전에 뿐만 아니라 오후에도 모여야 할 것이다. 교회의 공적 모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성도들이 영적으로 자라고 새로워지는 시간이다. 교회의 공예배 시간을 귀중히 여기며 지키는 자는 영적으로 자랄 것이지만 그 시간을 소홀히 여기며 자주 빠지는 자는 영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영적 손실이 클 것이다. 장로교회의 예배모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날은 주일인즉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 공동회집으로나 개체로 예배하는 일에 씀이 옳으며(1:2). 주일 아침에는 개인으로나 혹 권속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되 특히 저희 목사가 그 봉직하는 가운데서 복 받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며 묵상함으로 공동예배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준비하라(1:4). 개회 때부터 일심 단합함으로 예배 전부에 참여하기 위하여 정한 시간에 일제히 회집함이 옳고 마지막 축복 기도할 때까지 특별한 연고 없이는 출입함이 옳지 않다(1:5). 이와 같이 엄숙한 태도로 공식예배를 마친 후에는 이 날 남은 시간은 기도하며 영적 수양서를 읽되 특별히 성경을 공부하며 묵상하며 성경문답을 교수하며 종교상 담화를 하며 시편과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를 것이요, 병자를 방문하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며 무식한 자를 가르치며 불신자에게 전도하며 경건하고 사랑하며 은혜로운 일을 행함이 옳다(1:6). 끝으로, 성수 주일은 그리스도인의 순종과 불순종, 성공과 실패의 시험물이다. 신약 시대의 성도는 구약 시대의 성도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자이므로 하나님께서 여러 날을 지키라고 명하셔도 지켜야 할 터인데, 주일 하루를 거룩히 지키라 하시니 그것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요 특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주일을 거룩히 지키자! ----------------------------------------------------------------------- 현대교회문제: 전쟁협박과 대북지원 [김상철, "전쟁협박과 대북지원," 미래한국, 2006. 12. 2, 1쪽.] 대북제재를 가하면 북한을 자극해서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북한에 줄 것은 주면서 살살 달래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전쟁해볼래?'를 앞세운 대북지원론이다. 대북지원論者들은 평소 북한은 남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고, 또 전쟁을 일으킬 능력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핵무장 국가로 부상하자 북한에 괜히 압박을 가하여 감정을 건드렸다가 북한이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면서 일종의 협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선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은 없다는 그들의 주장은 모순된 것이고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이는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금 그들은 '한반도평화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심지어 '국방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남한의 군축을 주장하고 있으나, '전쟁해볼래?'라는 협박을 통해 이런 주장이 다 잘못되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또 전쟁협박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대북지원론을 말하는 것은 더욱 모순이다. 그들은 북한을 압박할 것이 아니라 달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에 대해서 무조건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미사일 발사로 인해 UN의 제재결의를 받고 있던 김정일 정권이 수재복구 지원을 요청하자 2,200억원 곧 2억4천만 달러(!)상당의 모두 군수용으로 쓰일 수 있는 물자를 지원했는데, 도중에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어도 계속 물자를 실어 보냈다. 그리고 새해 북한지원을 위한 소위 남북협력기금으로 1조 1855억원(약 13억 달러)의 예산을 책정하였다. 최근 서울 강남의 수 만 명씩 모이는 두 군데 S교회에서 "북한동포가 불쌍하니 북한을 대대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평양과학기술대학 건립을 위해 총력헌금을 하자"는 설교가 이루어져 한군데서만 "100억원 모금목표 중 70억원을 달성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사람들은 '평양과기대'도 '연변과기대'와 비슷한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나 연변과기대는 중국내 시설로서 중국은 우리나라의 적(敵)이 아닌 반면, 평양과기대는 북한 내 시설이고 북한 통치집단은 대한민국의 적이라는 점에서 두 시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설교자들은 김정일이 직접 '평양과기대'의 자율권을 보장했다고 말하고 있다지만, 김일성??김정일을 신격화하고 주체사상을 신조화하는 수령독재체제 하에서 김정일이 자율보장 서면을 써주었다고 해서 '평양과기대'가 자유사회의 사립대학쯤 될 것이라고 본다면 큰 오산(誤算)이 아닐 수 없다. 평양에 첨단과학기술을 전수해준다면 김정일은 그 첨단기술을 가지고 선군(先軍)에 제일 먼저 쓰고 대남협박과 대남전략전술 공작에 쓸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즉 평양과기대는 김정일 집단에 첨단 과학기자재를 대량 공급하고 김정일의 충복기술자를 양산하는 이적시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북퍼주기를 해야 전쟁이 막아진다고 하더니, 그 돈과 물자로 북한이 핵개발을 위해 핵무장 국가로 둔갑함으로써 국가적 비상시국에 처해 있는데 또 딴소리로 김정일 정권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정치권력자들과 종교권력자들의 기만과 위선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를 참고 기다리며, 김정일의 노예된 북한동포가 되돌려지는 그 날을 고대(苦待)한다. ◈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한미동맹을 견고히 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함으로 평안하고 경제도 회복되도록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