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4월 16일 [제10권 16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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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심"

고전 15:1-4: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은 기독교 복음의 중심적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기독교 복음의 성격과 그 근거와 그 내용에 대해 말하면서 이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이 시간 저는 오늘 읽은 본문에 근거하여 기독교 복음의 성격과 그 근거와 그 내용에 대해 증거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본문은 기독교 복음의 성격에 대해 증거합니다.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3절에서는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라고 말했습니다. 즉 기독교 복음은 사도들이 주께로부터 받은 복음이요 그들이 전파한 복음이요 또 초대 교회들이 받은 복음이었고 그 가운데 선 복음이었습니다.

바울은 본래의 열두 제자 중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갈라디아서 1:1에 증거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자이었고 그가 전한 복음은, 갈라디아서 1:11-12에 증거한 대로,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거나 배운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啓示)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또 그의 복음은 원래의 사도들과의 교제의 악수를 통하여 그들의 것과 동일한 복음이었음이 확증되었습니다(2:9).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막 16:15). 사도들은 주의 명령대로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했고 초대 교회는 그 복음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사도들이 전하고 초대 교회가 받은 바로 그 복음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이와 같이 명확하게 전달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내용을 마음대로 수정하거나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서 1:7-9에서 단언하기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주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요 초대 교회가 받은 복음이며 아무도 그 내용을 변경할 수 없는 유일하고 불변적인 복음입니다.

둘째로, 오늘 읽은 본문은 기독교 복음의 근거에 대해 증거합니다. 3절, 4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았고 전했던 복음의 내용이 성경에 계시된 바이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사도 시대에는 구약성경에 근거한 것이었고 오늘날에는 신구약성경에 근거합니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인데, 곧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창세 이후 제사 제도를 통해 증거되었습니다. 아담의 아들 아벨은 양의 첫새끼를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증거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십니다(계 13: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의 율법과 구약성경 전체에서 분명하고 풍성하게 예표되었고 예언되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계시하신 성막 제도와 제사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적으로, 상징적으로 증거하였습니다. 또 그 외의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풍성하게 증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22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생생하게 예언하기를,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저희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했습니다(1,  6, 16, 18절).

또 이사야 53장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예언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2-12절).

기독교 복음은 성경에 근거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신구약 성경에 근거합니다. 참된 복음은 성경적 복음입니다. 참된 기독교는 성경적 기독교입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복음도 기독교도 구원도 소망도 영생도 없습니다.

셋째로, 본문은 기독교 복음의 내용에 대해 증거합니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복음의 중심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서신 1장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증거했었습니다(1:22-23).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전도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요한이 증거했던 바이었습니다. 그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요 1:29). 예수님도 자신에 대해 증거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고(마 20:28), 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하셨습니다(요 6:51). 예수께서는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세상 죄를 진 대속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받아야 마땅했던 죄값과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구약 제사 제도의 첫번째 의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21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고, 갈라디아서 3:13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대속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 3:16).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예물과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했습니다(엡 5:2). 요한도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요일 4:9-10).

복음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구원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6:15-16). 오늘 읽은 본문에서 바울은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해주는 구원의 복음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는 소식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다 믿으셨습니까? 아직도 복음을 믿지 않은 사람은 속히 이 복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믿고 죄와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가장 귀한 보배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 복음 진리 안에 굳게 거해야 하며, 또 이 복음은 유일하고 불변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복음을 변질시키는 배교적 사상과 풍조를 경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하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살아야 하고(고후 5:14-15) 오직 주의 계명을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요 13:34-35; 요일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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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오후설교:                      은혜의 수단--성례(聖禮)

또 하나의 중요한 은혜의 수단은 성례들(聖禮, sacraments)이다. 성례들에 대한 교리적 진술들은 다음과 같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1, "성례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은혜언약의 거룩한 표들과 확인물들로서 그리스도와 그의 은택들을 나타내며, 그 안에서의 우리의 유익을 확증하며; 또 교회에 속한 사람들과 나머지 세상 사람들과 사이에 유형적 차이점을 주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엄숙히 서약하게 하는 것이다." 소요리문답 92문답,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규례인데, 거기에서 감각적 표들에 의해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혜택들이 표시되며 신자들에게 확인되고 적용됩니다." 한마디로, 성례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은혜언약의 거룩한 표들과 확인물들이다.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과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중심적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죄 씻음이 성례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 "[성례는] 유형적(有形的) 말씀들이다." 그 둘은 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내용으로 가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적어도 성인들에게 구원에 절대 필수적이지만, 성례는 그렇지 않다. 성례는 그리스도의 명령이므로 모든 신자들에게 의무적이지만 구원에 절대 필수적이지는 않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지만, 성례는 언약 백성들에게만 주어진다.

신약성경은 오직 두 가지의 성례들만 가르친다. 그것은 세례와 성찬이다. 이것들은 구약의 할례와 유월절에서 각각 동일한 영적 의미를 가졌던 규례들이다. 골로새서 2:11-12,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마태복음 26:19,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고린도전서 11:23-24,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린도전서 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성례는 바른 재료와 바른 형식과 바른 의도를 가질 때 정당하게 시행된다. 세례의 경우, 바른 재료는 물이요, 바른 형식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요, 바른 의도는, 세례주는 자가 세례받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으로 인도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세례받는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성례의 효력은 성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3, "올바르게 사용되는 성례들 안에서 혹은 그것들에 의해서 표시되는 은혜는 그것들 안에 있는 어떤 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성례의 효력은 그것을 집행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성령의 활동과 성례 제정의 말씀에 달려 있는데; 그 말씀은, 그것의 사용을 인가하는 명령과 함께, 그것을 합당하게 받는 자들에 대한 은혜의 약속을 포함한다."

성례 집례자의 자격에 관하여는, 성례들이 복음 진리의 엄숙한 유형적 제시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와 수호의 책임을 정당하게 맡은 사역자들에 의해서만 집행되어야 합당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4, "(세례와 성찬) 그 어느 것도 정당하게 임직된 말씀의 사역자 외에 누구에 의해서도 거행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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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문제:                                 1975년 월남 패망(敗亡)의 교훈

[홍관희, "1975년 월남 敗亡의 교훈," 미래한국, 2006. 3. 27, 4쪽; 안보전략연구소장·미래한국신문 주필]

1975년의 월남 패망을 기억에 올리는 사람들이 요즈음 많아졌다. 한반도 안보 현실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불안감의 발로일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친북·좌파 세력이 재집권한다면, 한반도 안보구도는 근본적 변화를 맞을 것이다. 전시작통권 이양에 따라 한·미 연합방위체제 붕괴가 확실시되고, UN司 재편의 향방에 따라 한·미 동맹의 좌표가 설정될 것이다.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美지상군 철수는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도 이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1975년 1월 8일 월맹이 총공격을 개시한 후, 4월 말에 사이공은 함락되고 월남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역사에서 '설마' '혹시'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냉엄한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월남 경우와 한반도는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있다. 두 경우를 비교·분석, 월남 패망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우리의 생존전략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북폭'을 견뎌낸 월맹과 같이, 북한의 대남 적화의지는 불변이며 군사 능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특히 위협을 '평화·민족·반외세' 등으로 위장하여 고도의 심리전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이다. 오늘날 한국사회 내에서 북(北)의 WMD 개발과 인권탄압 및 범죄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판과 안보의식은 실종되고 있다. 北정권을 '적'이 아닌, '우군'으로 보는 '민족공조' 시각이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현상은 국가 공권력과 거대한 대중 매체에 의해 조직적으로 주도되고 있다. 내부 친북·좌익 세력의 준동과 대한민국 파괴 시도는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된 가운데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키신저 국무장관 주도로 월맹에 40억 달러를 주고 평화협정에 조인했으며, 1973년 1월 27일 전쟁은 종식되었다. 미국과 월남은 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월맹이 남침할 경우, 즉각 해공군력을 투입하고, 북폭을 재개하기로 약속했으며, 미군이 보유하던 각종 최신 무기들을 월남군에 이양했다. 월남 공군력은 세계 4위에 마크됐다. 당시 월맹은 미국의 북폭과 경제봉쇄로 전쟁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으며, 매년 80만-100만t의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미국은 월남전의 장기화에 진저리를 치고, '베트남전의 베트남화' 구호를 내걸며, '명예로운 철군'을 감행했다. 이대용 전 월남공사의 지적처럼, 월남은 힘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적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월맹의 호지명은 항불(抗佛)·항일(抗日) 독립투쟁의 명성으로 전국적 존경심을 획득하였으며, 독재자가 아닌 헌신적인 인물로서, 세습은 커녕 그의 사후 내부 신뢰와 단결로 '집단지도체제'를 이루어 정치안정을 이룩했다. 이에 비해, 김정일 정권은 WMD개발, 인권 유린, 범죄행위로 국제적으로 완전 고립되어 있다. 최근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조치로 현금 흐름이 차단됨에 따라, 이대로 가면 체제붕괴·교체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金 체제에 도전 세력은 없으나, 그의 사후 극도의 내부 혼란이 예상된다. 특히 그의 신병에 이상이 생길 경우 北체제에 중대한 위기가 도래할 것이다.

월남의 티우 정권은 확실한 반공정권이었다. 그럼에도 내부의 반미(反美)·친(親)월맹 세력에 의해 무너졌다. 대조적으로 한국은 김대중·노무현 친북좌파 정권이 8년째 집권 중이다. 이미 친북·좌익을 위한 기본 토대는 많이 형성됐다. 1998년 전교조가 합법화됐으며, 민노당은 10석의 소수당이긴 하지만, 합법 공간 내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권 핵심에 친북세력이 포진하고 있으며, 국가공권력이 친북세력의 조직화에 선도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한국은 사회 저변에 기독교를 포함한 광범한 보수·우익 세력이 잠재적으로 포진해 있는 점이 큰 위안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치세력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다.

노정권은 지금 北을 신뢰하고 남북 평화체제 수립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은 월남 만큼 부패하지 않았고, 경제구조 및 타 분야에서 훨씬 건전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문제는 권력을 장악한 집권세력이 동맹국인 미국보다 우리를 위협하는 北을 더욱 신뢰한다는 것이다. 과연 앞으로 남북 '좌파연합'음모 이전에 북한이 먼저 붕괴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초인적 탁견과 배짱의 이승만

[이도형, "초인적 탁견과 배짱의 이승만," 미래한국, 2006. 4. 1, 5쪽; 한국논단 발행인, 토론회 발제문 요약.]

이승만 박사의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탁견(卓見)과 배짱이다. 이것은 아마도 향후 대통령의 필수조건이라 할 것이다. 탁견이란 일종의 예지능력이다. 예를 들어 이 박사는 1919년 4월14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대한인총대표회의'(The First Korean Congress)를 열고 '신(新)대한건국구상'을 만들었는데 이때 만든 10개의 결의문은 1948년 7월 17일 제정·공포된 '대한민국헌법'의 기초가 됐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 "초기 10년은 중앙정부에 권력을 집중시킨다"는 강력한 미국식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했고, 이를 위해 "민중의 교육(敎育)수준을 미국식 민주주의 실시에 적응할 만큼 끌어올리며" "민주주의적 자치경험을 축척키 위해 지방자치(地方自治)를 실시한다"고 결의했다.

이승만의 이 구상은 통치초기 모두 성취됐다. 48년부터 50년  말까지 증등학교는 97개에서 1,053개교로, 대학은 19개교에서 63개교로 늘어났고, 학생수는 7,819명에서 97,819명으로 12배나 증가했다. 지방자치법도 1949년 제정돼 일부 지방에서 실시되기에 이른다. 오늘의 번영은 초인적 예지능력과 배짱을 갖춘 이승만과 같은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승만에 항거하며 반대했던 박헌영, 여운형, 김구 등은 대한민국 건국에서 고려될 수 없는 인사들임에도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역사를 거꾸로 인식하고 있는 데는 일부 지식인과 전교조 등의 죄과가 크다 할 것이다.

 김구·김규식의 패배주의

[이인수, "건국해도 오래 못 갈 것: 김구·김규식의 패배주의," 미래한국, 2006. 4. 1, 5쪽; 전 명지대 교수.]

"남한에 정부가 수립된다 해도 50만으로 추산되는 북한의 공산군 앞에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1948년 1월27일 UN 한국 임시위원단과의 대담에서 김규식(金奎植)).

"공산주의자들이 앞으로 3년간 조선인 붉은 군대 확장을 중지한다고 해도 남한이 전력을 다해 붉은 군대의 현재 병력만한 군대를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러시아인들이 책잡힐 일없이 쉽게 남쪽에 대한 급습을 할 것이다. 당장 여기에 정부가 세워지고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이다"(1948년 7월11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지지하기 바란다는 장개성 총통의 뜻을 전하는 유어만(劉馭萬) 공사에게 김구가 대한민국건국에 회의적인 뜻을 전하면서 답한 말). 남한에 정부가 수립돼도 곧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이니 대한민국을 건국할 필요가 없다는 데서 김구·김규식 두 사람의 생각은 일치했었다.

이처럼 숱한 회의(懷疑)와 반대(反對) 속에서 이 박사는 조선왕조 말의 구국운동과 임정의 독립운동을 계승한 민족사적 정통성을 갖는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대한민국 건국은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개방사회·교육입국의 이념을 실현했고, 대륙의 전제(專制)세력으로부터 자주독립과 함께 해양(海洋)세력의 앞선 문화를 배우는 시대를 열었으며, 6·25동란에서 자유를 수호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안정을 통한 번영을 이룰 기반을 구축했다.

우리 민족사에서 20세기는 이 같은 이승만 체제가 구축된 시대이며 이 박사는 우리 민족을 광명의 길로 인도코자 헌신했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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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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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