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3월 12일 [제10권 11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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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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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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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여리고성을 정복함" 여호수아 6: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여호수아 6장에 기록된 여리고성 정복은 요단강 서쪽 가나안 땅에서의 첫 전쟁 사건입니다. 그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편에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체험한 전쟁이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승리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사람들편에서는 그 전쟁은 처참하고 잔인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리고성 정복 사건에 담긴 진리들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여리고성 정복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셔서 그 땅의 원주민들을 다 죽이게 하셨습니다. 온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작정 가운데서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본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리고성 정복은 하나님께서 그 성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붙여주심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성의 남녀의 사람들과 노인들과 어린아이들까지 또 소들과 양들과 나귀들까지 다 죽인 것이 인간적으로는 잔인한 행동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런 처참한 일을 뜻하시고 행하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죄악이 심히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죄는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이었습니다. 레위기 18:24, 25에는, "너희는 이 모든 일[근친상간의 음란한 일들, 동성애, 짐승과의 문란 등]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 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또 신명기 7:1-5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십니다. 특히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가장 전형적인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히 음란한 소돔 고모라성을 유황불비를 내려 멸망시키셨습니다(창 19장). 이와 같이 그는 우상숭배가 가득하고 심히 음란했던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완전히 멸망시키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그들과 언약하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론 불쌍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도, 소돔 고모라성의 심판도, 또 최종적인 지옥의 심판도 참으로 무섭습니다. 둘째로, 여리고성 정복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지시가 때로는 인간의 상식에 맞지 않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본장 1절에 보면, 여리고성은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성을 점령하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또 많은 군인들의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시에 단순히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매일 성을 한바퀴씩 돌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는 행렬에 순서가 있었습니다. 몇 명의 무장한 자들이 맨 앞에 섰습니다. 원문에는 '무장한 자'라고 단수로 되어 있지만(7, 9, 13절), 아마 한 명이 아니고 몇 명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들과 한글 성경은 복수로 번역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곱 양각나팔[소나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든 일곱 명의 제사장들이 섰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섰습니다(12절). 언약궤는 보통 때는 레위인들 중 고핫 자손들이 메지만(민 4:15) 요단강을 건널 때(수 3:6)와 이번에는 제사장들이 메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모든 군사들이 행진했습니다. 그들이 여리고성을 돌 때 한 가지 조심할 사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외치지 말고 음성을 들레지 말고[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입으로 아무 말도 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10절). 오직 일곱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습니다(8절). 그들은 6일 동안 매일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7일에는 성을 일곱 바퀴 돌아야 했습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그 당시 여리고성은 둘레가 약 600미터이고 면적이 약 28,300평방미터 [약 7,000평] 정도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자그마한 성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그 시대의 성은 주로 외부의 침입을 막는 용도이었고 평소의 생활은 성안에서뿐 아니라 성밖에서도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 정도 크기의 성이라면 제7일에 일곱 바퀴를 도는 것은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성을 일곱 바퀴 돈 후,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은 나팔들을 길게 울려 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큰 소리로 외쳤고 그 성은 무너졌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성으로 들어가 그 모든 사람들을 쳐서 멸망시켰습니다. 본장 20절, 21절은 기록하기를,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老幼)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정복의 방식에서 우리는 몇 가지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습니다(창 12:7; 13:15; 15:18-21 등). 이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도 계속됩니다(창 26:3; 28:13).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출 3:8).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라는 말씀은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와 신명기에 반복되었고(출 3:17; 13:5; 33:3; 레 20:24; 민 13:27; 신 26:9)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말씀에도 나타납니다(렘 11:5; 32:22; 겔 20:6).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행렬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운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또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나팔을 들고 행진 중에 나팔을 분 것은 하나님께 아뢰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민수기 10:10은 말하기를,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의 나팔소리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의 소리와 같았습니다. "오 하나님, 주의 약속만 의지합니다. 주의 명령을 따라 이 시간 이 곳까지 왔사오니 우리의 이 전쟁을 주께 부탁하나이다. 주의 대적들을 주의 종들의 손에 붙여주소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매일 한 바퀴씩 6일 동안 성을 돌고 돌 때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조용히 행진하며 오직 제사장들만 나팔을 불었고 제7일에 일곱 바퀴 성을 돈 후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맞춰 큰 소리로 외침으로 성을 정복하게 된 이 모든 과정은 한마디로 순종의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지시하신 방식대로 이루어졌고 인간편에서는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본장에서 우리는 여리고성의 멸망 중에서 기생 라합이 구원얻은 일을 읽습니다. 본장 17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지시했습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또 22절 이하에 보면, 여호수아는 그 성을 칠 때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그 기생의 집에 들어 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라"고 말했고 그들은 들어가서 라합과 그에게 속한 자들을 다 이끌어 내었습니다. 라합의 구원은 이스라엘편에서는 맹세를 지킨 것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창문에 붉은 줄을 매는 표로 그와 그의 친족들을 살려줄 것을 맹세했었고(수 2:13, 17) 여호수아는 그것을 지켰습니다. 라합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멸망의 성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비록 큰 죄인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리고성 정복은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로, 이 사건은 죄의 결과가 멸망임을 증거합니다. 여리고성이 그렇게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이 그 예이었습니다. 소돔 고모라성의 멸망이 그 예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멸망이 그 예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분명히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계 21:8). 그러므로 사람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 이미 지은 모든 죄들을 회개하고 그것들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은 죄 짓지 않는 일입니다. 둘째로, 여리고성 정복 사건은 하나님의 일이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짐을 증거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나팔을 불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순종해야 했습니다. 여리고성 정복과 같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주께서는 우리에게 전도의 일을 명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교회의 건립을 명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의 명령을 이룰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붙들고 의지하며, 양각나팔을 불듯이 하나님께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의 지시와 방법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적 교훈이라면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진실한 성도들이여, 오직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살며 주의 일을 합시다. 셋째로, 여리고성의 정복 사건은 사람이 멸망의 세상 속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함을 증거합니다. 라합은 멸망하는 성 가운데서, 비록 죄인의 신분이었지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와 그의 모든 친족들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비록 그가 라합처럼 큰 죄인일지라도, 비록 그가 사는 사회가 여리고성처럼 심히 악하여 그 멸망이 임박할지라도, 오직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 지난오후설교: 장로주의의 기본 원리들 장로주의의 기본 원리는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은 교회의 권세의 원천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시다(엡 1:22). 교회 안의 누구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그리고 그의 말씀과 그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둘째로, 주께서는 교회의 권세를 교인들 전체에게 주셨다. 성경은 모든 성도들이 존귀한 특권을 가짐을 증거한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요한계시록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또 권징의 권세도 교회 자체 즉 회중[교인들]에게 주어졌다. 마태복음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러므로 지교회에서 세례 교인들의 전체회의인 공동의회는 가장 중요하다. 또 그렇기 때문에 지교회는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나 전입 교인들을 받아들일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 셋째로, 교회의 권세는 교인들이 뽑은 대표자들, 즉 목사와 장로들에 의해 행사된다. 즉 대의(代議)제도의 원리이다. 주께서는 교인들이 선택한 목사와 장로들이 교회를 돌보며 다스리게 하셨다.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사도행전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목사와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권세를 위탁받은 자들이므로, 교회는 그들을 성경에 교훈된 자격 조건에 따라 매우 신중히 선택하고 장립하여야 하며, 일반 교인들은 장립된 감독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넷째로, 교회의 권세는 지교회로부터 전체 교회들로 확장된다. 장로주의는 지교회의 치리회인 당회를 중요시하며, 치리권은 지교회로부터 노회와 총회 등을 통하여 전체 교회들로 점점 넓게 확장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의 참된 교제와 협력을 나누게 되고 또 어떤 지교회가 탈선하지 않도록 상호 감시하고 견제한다. 장로교회에서 당회장이나 노회장이나 총회장은 단지 회의를 인도하는 의장 즉 사회자의 성격을 가지지 그 이상의 것은 없다. 또 도시의 큰 교회들의 목사와 장로들이나 시골의 작은 교회들의 목사와 장로들의 권위에 차이가 없다. 장로주의와 달리, 감독주의는 전체 교회를 지교회보다 더 중시하며 또 총회에서 지교회에 무엇을 명령하는 하향적(下向的) 성격을 가진다. 지교회의 공동의회는 권징 아래 있지 않는 세례교인들로 구성되며 지교회에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다. 지교회의 당회는 담임목사와 시무 장로들로 구성되며 지교회의 기본적 치리회이다. 지교회의 당회의 권한은 상회 혹은 확대회의들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견제된다. 성경은 노회와 총회의 예를 보인다. 디모데전서 4:14, "장로의 회에서."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회의. 교회의 직분 신약교회의 창설 시기에 있었으나 그 후 사라졌던 직분들은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등 세 가지이었다. 이것들을 창설직이라고 부른다.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 세 가지 창설직들 중 가장 중요한 직분은 사도이었다. '사도'라는 말(아포스톨로스)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일반적인 뜻이지만, 신약에서는 특히 열두 제자들과 바울에게 사용된다. 누가복음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사도행전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로마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단지 예외적으로, 신약 원어 성경에서 사도행전 14:4, 14에 바나바에게 사도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사도의 자격과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사도는 예수께서 직접 불러 세우시고 보내신 자이었다. 마가복음 3:13- 14,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갈라디아서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둘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을 직접 본 자이었다. 사도행전 1:21, 22,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고린도전서 9:1, "내가 사도가 아니냐? 자유자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셋째, 사도는 예수께서 친히 기적 행할 능력을 주신 자이었다. 마가복음 3:14, 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병들을 고치며](전통사본)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참음 중에]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두 번째 창설직은 선지자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아 전달하는 직분이었다.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사도행전 15: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세 번째 창설직은 복음전도자이었다. 이것도 신약교회 창설시기에 있었던 특별한 직분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디모데와 디도 같은 자들이 그러하며, 이들은 일반적 목사나 장로의 직분과 구별되었다. 디모데후서 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사도행전 21:8, "일곱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 창설직과 달리, 사도 시대 이후 주님 재림 때까지 신약교회에 항상 있어야 할 직분들은 목사와 장로와 집사이다. 이것을 항존직이라고 부른다.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사도행전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빌립보서 1:1,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 현대사회문제: 연방제 목표 '단일연대체' 추진 [김성욱, "연방제 목표한 ‘單一연대체’ 추진," 미래한국, 2006. 2. 20, 1쪽.] 남북연방제를 상정한 운동권단체들의 소위 단일연대연합체 결성이 속도를 내고 있다. 단일연대연합체는 운동권 내부에서 “남한사회 정치격변기를 맞아 민주노동당의 ‘의회투쟁’에 통일연대·민중연대 등 여타 단체들을 망라한 ‘대중투쟁’을 결합,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워 민중집권을 하기 위한 투쟁의 구심체”로 정의된다. 이들의 계획대로라면 현재 100여 개 이상 분립해 온 반미(反美)단체들이 '자주통일민중연합' '자주통일진보연합' '전국진보연합' 등의 이름으로 통합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월10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연합 산하단체) 10기 출범식장에서 배포된 단일연대연합체 건설시안(이하 시안)에 따르면, 이 조직은 주한미군철수, 한미상호조약 개폐, 국보법 개폐, 과거사진상규명 및 역사재정립, 군사독재유지에 기여한 정치인 퇴출, 소위 양심수 전원석방, 공공부문과 기간산업 국유화(國有化), 무상(無償)의료·무상(無償)교육 확대 등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적 주장을 담고 있다. 단일연대연합체는 북한과 남한 내 친북세력이 주장해 온 소위 남북연방제의 선결조건으로도 주장되고 있다. 2월10일 전농 중앙위원들에게 배포된 자료집에 수록된 ‘대규모연합전선체 건설(박경순 진보운동연구소장 著)’이라는 문건은 “통일운동은 연방제(聯邦制)방식의 자주적 통일국가 건설운동이고, 변혁운동은 반민족적·반민중적 정치경제구조를 타파하는 운동이다. 6·15공동선언 이행투쟁은 통일운동이자 변혁운동”이라며 “단일연대연합체 건설을 통해 6·15공동선언을 이행, 연합·연방제통일을 실현하자”는 요지로 주장했다. 한총련 역시 지난 2월 4~5일간 대의원대회에서 “단일연대연합체 건설에 복무할 것”을 결의하면서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민중이 주인 되는 새 세상을 위해서도 이남(以南) 진보진영은 단일한 조직으로 단결해서 큰 덩어리로 싸워야 한다”며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위한 투쟁을 전면적으로 벌이자”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운동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단일연대연합체는 사회주의적 남북연방제를 상정하고 추진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단일연대연합체는 지난 해 말 이적단체(利敵團體) 한청, 한총련, 범민련남측본부 등의 결성 지지에 이어 올 초 북한이 신년사설을 통해 “통일운동단체들 사이의 연대연합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지령하면서 구체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단일연대연합체 건설은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남한사회 정치격변기를 주동성 있게 맞이하기 위함”이라는 전농의 결의문에 볼 수 있듯 북한과 남한 내 친북세력은 현 시국을 일종의 격변기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북한과 남한 내 친북세력이 현 시국을 대남혁명의 고양기(高揚期) 내지 만조기(滿潮期)로 보고 단일연대연합체를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