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5월 14일 [제10권 20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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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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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부모 공경과 자녀 교육

오늘 본문을 설교하기 전에 먼저 부모 공경과 자녀 교육에 대해 잠간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육신의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고 또 자녀들을 믿음 안에서 잘 키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교훈했습니다(엡 6:1-4).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십계명에 명시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인간 관계에 대한 계명 중 첫번째 계명입니다. 부모 공경은 사회 질서의 기초입니다. 가정이 바로 되어야 사회가 바로 됩니다. 또 부모 공경은 복이 약속된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모든 계명은 하나님의 권위로 주신 것이므로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또 부모된 자들은 자녀들을 믿음 안에서 잘 키워야 합니다. 자녀 교육은 학교나 정부에 맡길 일이 아니고 일차적으로 아버지들의 책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자녀를 교육하되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말은 부모가 자녀에게 무리하게, 감정적이게 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책은 자녀 교육을 위한 가장 중요한 교과서입니다. 자녀에게 성경을 읽게 하고 성경을 가르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부모님을 공경하고 주 안에서 순종하며 자녀를 성경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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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레위 지파의 기업

여호수아 13: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아직도 남은 땅이 많았지만(수 13:1),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했고 그 일은 상당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여호수아에게 그 땅을 모든 지파에게 분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열두 지파 중,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지파의 절반은 이미 모세를 통해 요단강 동쪽의 땅을 얻었으므로, 요단강 서쪽의 땅은 나머지 아홉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나머지 절반의 기업이 될 것입니다.

            레위 지파는 땅 분배에서 제외됨

그런데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레위 지파는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는 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원문에는 '그가'; 모세를 가리킴]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 기업이 됨이 그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음이었더라"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라고 오늘 본문은 기록합니다.

민수기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 광야에서 각 지파 사람들을 셀 때, 레위 지파는 모세의 명령대로 그 셈에서 빠졌었고, 그 대신,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야곱의 유언대로 두 지파로 간주되었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과 그들을 도와 성막 봉사의 일을 하는 레위인들이었는데 그들만 성막에 대한 책임을 가졌습니다.

숫자적으로도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에 비해 적었습니다. 다른 지파들은 20세 이상의 남자들의 수가 평균 약 5만 명 가량이었지만 레위 지파는 1개월 이상의 남자들의 수도 약 2만 2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레위 지파는 숫적으로 많이 번창하지 못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땅의 분배에서 제외시키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3절은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민수기 18:20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고 하셨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레위 지파의 기업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날 레위 지파는?

레위 지파에 대한 말씀은 오늘날 누구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까? 물론 그것은 목사나 전도사 같은 봉사자들을 가리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일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자들입니다. 또 교회의 일들을 돕는 유급 봉사자들도 레위인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도 세속적 일과 구별된 하나님의 집의 일에 종사합니다. 그들은 돈을 버는 생각보다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정신으로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레위 지파는 그들뿐 아니라, 영적으로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삶이며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요 천국이 그들의 본향임을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더욱이 성경은 성도를 제사장이라고 표현합니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세상은 지나가는 곳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고 여행하듯이 지나가는 곳입니다. 다윗은 인생을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고 묘사하고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고 사람의 일생이 없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였습니다(대상 29:15; 시 39:5-6). 전도서는 세상의 모든 일이 헛되다고 강조하였습니다(전 1:2-3). 야고보는 사람의 생명을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표현하였습니다(약 4:14). 예수께서는 세상의 일들을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27). 성도들은 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의 기업에 모든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세상, 그림자 같은 세상, 안개 같은 인생의 삶, 썩는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은 죽음 앞에 설 때 자신이 심히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화

세상의 삶이 그러하기 때문에 다윗은 고백하기를,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시 39:7). 하나님은 우리의 보화이시요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73편의 저자는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시 73:25-26).

하나님과 그의 일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을 전도자로 부르시는 주 예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물과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 4:18-22). 주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랐던 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교훈하며 격려하셨습니다(막 10:29-30).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큰 보화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주의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눅 14:26, 33).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義)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義)라"고 고백했습니다(빌 3:7 -9). 이것은 하나님의 가치를 안 자만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본향

하나님이 우리의 보화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천국은 우리의 본향입니다. 인생을 나그네라고 표현한 것은 그에게 참 본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도 사람에게 죽음 너머에 본향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람은 죽어 하나님께로 돌아가 선악 간에 심판을 받습니다.

히브리서는 신앙의 열조들에 대해 증거하면서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히 11:15-16). 하늘에 있는 우리의 본향인 그 성이 천국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장차 구원받은 성도들이 들어갈 천국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지금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고 증거했습니다(벧전 1: 4).

   하나님의 뜻만 행함

세상은 지나가는 곳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보화이시며 천국은 우리의 본향이기 때문에,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며 하나님의 뜻만 행하려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증거하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롬 14:7-8). 얼마나 놀라운 증거입니까? 오늘날 믿는 우리는 어떠합니까?

사도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또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고후 5:14-15). 주를 위해 사는 삶, 그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예수님 자신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고(요 4:34),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교훈하였습니다(요일 2:15, 17).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며 이 세상의 일들을 하지만, 사실상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일을 힘써야 하는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적으로 레위 지파와 같습니다. 우리의 기업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게으르지 말고 성실히 살아야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이 지나가는 세상이며 우리의 삶이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삶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화이시며 천국은 우리의 본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죽어야 할 것이며 우리의 양식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성도의 모습이요 그것이 영적 레위인들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 영적 레위 지파 사람이 됩시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레위인들처럼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보화로 삼고 천국만 우리의 기업으로 삼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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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오후설교:                                    기도

마태복음 6:9-13: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또 하나의 은혜의 수단은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영적 은혜들을 받을 수 있다.

     기도의 대상

기도는 누구에게 하는가? 기도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뿐이다. 우리는 보통 성부 하나님께 기도드리지만, 삼위 하나님께 다 기도할 수 있다. 마태복음 6: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요한복음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한 예들은 다음과 같다. 누가복음 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누가복음 23:42, "예수께 가로되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사도행전 7:59-60,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고린도후서 12:8, "이것이[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가]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기도의 내용들

기도의 내용들은 감사와 찬양, 죄의 고백, 간구 등이다. 소요리문답  98문답, "기도는 우리의 죄들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그의 뜻에 맞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소원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에게 아뢰는 것입니다." 구약 시편의 많은 시들(특히 95편 이후)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다. 찬송은 곧 기도요, 기도의 주요한 부분은 찬송과 감사이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죄의 고백도 기도이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물론, 기도는 간구의 내용을 포함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간구해야 하는가? 우리는 먼저 영적인 것부터 기도하고 그 후에 육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구해야 한다. 또한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그 후에 남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

마태복음 6:9-13에 나오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에게 기도의 주요 내용들을 깨닫게 해준다.

① "주의[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② "주의[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의 영광스러운 천국 뿐만 아니라, 또한 현재의 복음 사역으로 말미암은 영적인 나라 즉 교회도 가르킨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다(벧전 2:9).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는 것은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첫째 주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영광스런 천국이 오기를 간구하는 뜻인 동시에,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 곧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어 택한 백성들이 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 다시 말해 참된 교회의 설립과 확장을 간구하는 뜻인 것이다. 이것은 전도를 위한, 그리고 전도자들을 위한, 기도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③ "주의[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은 나 개인의 문제들뿐 아니라, 나의 가정, 교회, 사회와 국가, 온 세계의 문제들을 포함하며, 정신적, 영적 문제들뿐 아니라, 물질적, 육신적 문제들까지도 포함한다. 이 땅의 이 모든 영역들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탄과 악령들은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고, 사람의 죄와 불순종도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까지도 그의 뜻을 이루시는 과정으로 삼으실 것이다.

④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의 육신의 양식도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은 우리의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할지도 모른다.

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가 지은 죄들을 고백하고 용서받는 것이 필요하며 신앙 생활에 있어서 죄사함은 매우 중요하다. 또 주께서는 이 기도에서 우리가 서로의 허물을 용서해주는 것이 필요함을 교훈하신다.

⑥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마귀와 죄의 유혹에 떨어져 범죄치 않기를 기도하고 혹시 악에 떨어졌다면 거기로부터 속히 건짐받기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기도의 시간과 장소

기도의 시간에 관하여는, 우리가 어떤 정해진 시간에만 기도할 것이 아니고 언제나,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로마서 12:12, "기도에 항상 힘쓰라."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데살로니가전서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물론, 교회가 정한 공적 기도회들, 예를 들어 수요기도회나 새벽기도회는 유익하다.

한국교회의 전통인 새벽기도회는 유익이 많다. 예전과 달리,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부득이한 이유로 늦게 자기 때문에 새벽 4시 혹은 4시 반에 일어나는 것은 어려움이 있고 생활 리듬이 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지키는 데는 유익 많다. 새벽기도회를 통해 성도들은 성경을 더 많이 배우고 날마다 기도하게 되고 교역자들도 성경 말씀을 더 많이 연구하게 된다. 서양의 경건한 사람들도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새벽기도회에서는 인도자가 말씀을 간단히 전하고 각자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기도의 장소는 예배당이나 어느 기도원에 국한시킬 것이 없다. 기도원은 유익하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한 신약 교회의 예배당은 일차적으로 교회의 공적 집회 장소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구약의 성전과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에 성전 건립을 명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예배당은 기도하기에 좋은 곳이지만, 꼭 예배당에 나와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다. 어디든 조용한 곳은 나의 기도의 골방이 될 수 있다. 마가복음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광야, 빈 들]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기도의 방법

기도의 방법에 대해, 성경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요한복음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함이라." 우리의 의(義)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며 무엇을 간구할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유다서 20, "성령으로 기도하며."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셋째로, 우리는 겸손히 기도해야 한다. 주께서는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어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눅 18:9-14). 우리는 자신의 부족과 죄악됨을 항상 인정하면서 겸손히 주의 긍휼을 구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주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7). 또 그는 밤에 친구에게 찾아와 떡 세 덩이만 빌려달라고 강청한 한 사람의 이야기와,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끈질기게 기도하고 인내하며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눅 11:5-8; 18:1-8).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도할 때 소리를 조금 내어 기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묵상 기도는 졸음이나 잡념의 침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인 공적 집회시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소리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도의 유익

기도의 유익은 실로 크다. 기도는 성도의 영적 성장 곧 인격의 성화를 이룬다. 기도는 또한 주를 믿고 따르며 그를 섬기는 힘을 공급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통로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다. 권능은 하나님께 있다(시 62:11). 하나님의 일은 힘으로 능으로 이룰 수 없고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이룰 수 있다(슥 4:6). 그러므로 인간편에서는 기도밖에 다른 길이 없다.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누가복음 11:13,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 생활에 대해 강조했던 경건한 신앙인들의 글들을 인용해본다.

윌리암 윌버포스, "지금까지 나는 개인적인 기도, 묵상, 혹은 성경 읽기의 종교적 훈련을 위해 너무도 적은 시간을 습관적으로만 배당하여 둔 것같이 생각된다. 그 결과로서 나의 영혼은 말라빠지고 냉냉해지고 따라서 굳어지고 말았다."

리차드 뉴톤,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은 말씀에 합당치 않는 기도 생활의 퇴보에 있다."

촬스 스펄젼, "세상과의 접촉은 자주 우리의 경건에 더러움을 가져온다. 우리는 멀리 낙원에 가서야 더러움 없는 순결을 볼 것이다. 그 동안 이 세상에서 은혜로운 생활을 유지하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많이 홀로 있어야 한다." "밀실의 기도가 봉사 생활에 주는 큰 복은 글로 표시할 수도 없고, 모방할 수도 없는 성령께로 온 힘이다."

이 엠 바운즈, "밀실은 설교자에게 참된 교사요 학교이다. 사상은 기도를 통해 광채가 나고 분명해질 뿐 아니라, 기도 중에 생겨난다. 중심에서 나오는 한 시간의 기도는 서재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결과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설교를 하기 위한 성령의 힘은 기도, 즉 시간을 들인 기도에서만 얻어진다. . . . 쉬지 않는 기도가 없이는 이 성령의 힘은 결코 설교자에게 임하지 않는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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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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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