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2월 26일 [제10권 9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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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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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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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요단강을 건넘" 여호수아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여호수아 3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일을 기록하고 있고, 4장은 기념하는 열두 돌을 세운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특이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요단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길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그들 앞에는 요단강이라는 큰 장애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그 많은 회중이 어떻게 이 강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배를 타고? 뗏목을 만들어 타고? 수영을 해서? 그것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런 과정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앞에 도착하여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거기서 유숙하였고, 3일 후 관리들로 하여금 진중으로 두루다니며 백성에게 말하게 했습니다.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2,000규빗쯤, 약 900미터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또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 내일 너희 가운데 놀라운 일들(wonders, 기적)을 행하시리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들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의 주님이십니다. 이 표현은 두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11, 13절). 그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일을 체험하기 위해 자신을 성결케 해야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성결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또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가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 안에 서라"고 말했습니다. 백성은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났고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였습니다. 유대 땅에는 겨울이 우기(雨期)이며 모맥 즉 보리를 거두는 시기인 초봄에는 요단강물이 항상 언덕에 넘쳤습니다. 그러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가에 잠기자 곧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읍 변방에서 일어나 쌓였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졌습니다(3:16).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넜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단강 물이 그치고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건넌 이 사건은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넌 사건과 같았습니다(출 14:21, 22). 또 선지자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엘리사와 함께 요단으로 갈 때 겉옷을 말아 물을 쳐 물이 갈라지게 하고 육지 위로 건넌 일과 같았습니다(왕하 2:8). 하나님께서는 요단이라는 어려운 난관 앞에 선 이스라엘 회중을 이와 같이 기적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가나안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기적으로 요단을 건넜습니다.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쳤을 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대로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택한 열두 사람에게 말하기를, "요단 가운데 하나님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취하여 어깨에 메어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말대로 했습니다. 또 여호수아 4:9에 보면, 여호수아는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도 돌 열둘을 세웠습니다. 그 돌들은 '오늘까지' 즉 20여 년 후 여호수아가 이 성경을 쓸 때까지에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그 날 열두 개의 돌을 두 군데 세운 것입니다. 하나는 4:8과 20절에 있는 대로, 그들이 그 밤에 유숙했던 길갈에 세웠고, 또 하나는 9절에 있는 대로,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세웠던 것입니다. 요단강 가운데 세운 돌들은 아마 더 큰 것들이었을 것이고 열두 개를 세운 것이 물 위로 나왔든지 혹시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요단강 물이 줄어들 때 보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열두 개의 돌을 세운 목적은 요단강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4:6, 7에 보면, 여호수아는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4:21 이하에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기를,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느니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요단강의 기적이 확실히 역사적 사건입니까? 예, 그 증거는 열두 돌들이었습니다. 하나는 길갈에 세워져 있고, 하나는 요단강 가운데 세워져 있었습니다. 열두 돌들은 하나의 '표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들에 대한 증언을 듣고도 믿지 않는 심령이 어둡고 완고한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많은 증거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의 일들을 믿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였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이전처럼 언덕에 넘쳤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요단강 기적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4:2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즉, 첫째는 세상의 모든 사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나님을 영원히 경외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바로 깨닫고 그를 경외하고 섬기고 순종하게 하기 위해 그 기적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요단강 기적을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역사상 세상에 기적을 주신 목적이 다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기적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들은 우리에게 참된 믿음을 주고 그 믿음을 확실하고 견고하게 하는 방편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긍휼 가운데 우리를 위해 기적들을 주신 것입니다.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들은 역사적인 사실들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성경은 거짓 증거의 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진실한 증인들의 진실한 증거의 말들이며 사건들입니다. 또 이렇게 증거된 하나님의 기적들은 우리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게 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과 행위들을 기록한 요한복음의 끝부분은 증거하기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 :30, 31)고 하고, 또 말하기를,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요 21:24)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실한 증거들을 통해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 3:10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요단강 기적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시다는 것과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원주민을 쫓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을 멸망시키는 것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음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힘 있는 족속들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운 상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 기적을 체험할 때 그들은 가나안 정복에 대한 믿음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다시 정리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특이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 동편에 도착했고 그 많은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그 상황에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그들이 요단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담당해주십니다. 불신앙이 가장 큰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기적으로 건넜습니다.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잠그자 요단강물은 그쳤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건넜습니다. 요단강에서 길갈로 가져와 세운 열두 개의 돌들과 또 요단강 가운데 세운 열두 개의 돌들이 요단강의 기적의 증표로 남겨졌습니다. 요단강의 기적은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그 증인들이었고 열두 돌들은 그 증표이었습니다. 요단강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고 그를 경외하고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을 포함하여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깁시다.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가 있습니까? 아직도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가 있습니까? 성경이 증거하는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확인하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요단강의 기적은 또한 사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자기의 힘으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됨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스런 천국과 영생을 약속하셨고 이 세상에서 참된 교회의 설립과 전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힘 있게 행하며 천국에 들어갈 힘이 없습니다. 때때로 요단강 같은 장애물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바른 교회를 세울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능력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읍시다. 요단의 기적을 주신 하나님을 믿읍시다. 세상의 일들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 의탁하며 오직 죄짓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진행합시다. 하나님의 지시대로만 진행합시다. 그리하면 우리는 승리하고 성공할 것입니다. ----------------------------------------------------------------------- 지난오후설교: 교회의 임무 교회 즉 교인들의 모임인 단체로서의 교회의 임무는 무엇인가? 성경은 교회의 임무를 세 가지로 계시한다. 첫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요, 둘째는 그 자체를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요, 셋째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교회의 첫번째 임무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지극히 기본적인 임무이며 따라서 교회의 기본적 임무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와 구속자로서 성도들에게서 찬송과 감사와 영광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에베소서 1:6, 12, 14, "[이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예배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오직 하나님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신앙의 기본적 태도이다. 예배가 성도들에게 영적 유익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단지 부수적일 뿐이다. 예배에서의 찬송이나 기도도 그러하다. 우리는 공예배가 우리에게 주는 은혜를 생각하기 전에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단체적 경배가 되게 해야 한다. 예배 의식은 결코 회중을 즐겁게 하거나 회중의 기호(嗜好)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 설교까지도, 먼저 설교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의 뜻을 온전히 선포하고 회중들은 진지하게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하며, 그 다음에 회중들의 구원과 성장과 유익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예배의 방식에 있어서, 예배는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의 이름으로 드려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유일한 중보자시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죄인들은 그를 통해서만 구원받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그를 섬기며 그에게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의 속죄 사역과 십자가 공로와 의(義)를 의지함 없이 드려지는 예배는 다 인본주의요 윤리 종교와 행위 종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송하고 기도해야 한다. 예배는 또한 예수께서 요한복음 4:24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신령(혹은 심령)과 진정(혹은 진리)으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주일날의 공예배가 특별한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지만, 신약시대의 예배는 어떤 장소나 어떤 시간이나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두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 신약의 예배는 결코 외형적이거나 의식적(儀式的)인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부패된 마음은 종교를 내용이나 진심이 없이 의식화(儀式化)하고 형식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잘못된 경향을 조심해야 한다. 예배는 또한 엄숙하고 경건하게 드려져야 한다. 그것이 전통적인 예배 모범의 정신이다. 시편 96: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요즈음 일부 교회들에서는 교회의 전통적 모범을 깨뜨리고 예배 시간에 멀티비젼(대형 자막에 비쳐지는 그림들), 드라마, 무용, 세속적 형식(록이나 랩 스타일)의 복음 성가와 밴드, 청바지 형태의 예배 복장 등을 도입하는 소위 '열린 예배'의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질서 있고 아름답고 선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다(고전 14:33). 또 우리는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한다(빌 1:10). 예배의 요소들에 관해, 신약 교회의 예배는 구약시대의 제사에 비해 매우 자유로우며, 예배의 요소 혹은 순서는 찬송과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헌금 등이다.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고린도전서 14:26,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詩)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고린도전서 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利, 이익)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초대 교회는 '매주일 첫날' 곧 일요일에 공적 집회를 가지기 시작했다. 히브리서 13:15,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빌립보서 4:18,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신약의 예배와 구약의 제사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신약의 예배가 구약 제사의 대치물은 아니다. 구약 제사는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예표한 것이고, 부수적으로 성도들의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교훈적 의미가 있었다. 물론 신약시대에는 성도들의 헌신의 삶 전체가 제사이므로 교회에서의 공적인 예배도 그런 의미에서는 제사이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가 독특한 의미를 가졌듯이, 신약 성도들의 예배가 제사라는 독특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즉 예배만 제사라는 관념은 비성경적이다. 성경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찬송하며 순종하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제사라고 계시한다. 로마서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히브리서 13:15, 16,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신약 시대에는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다. 교회의 두 번째 임무는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 자신을 영적으로 건립하는 것 즉 건덕(建德, edification)이다. 이것은 교회가 자기 자신 즉 교인들을 향해 가지는 임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엡 1:23). 몸이 자라듯이 교회도 자라간다. 에베소서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또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교회는 지금 건축 중에 있다. 에베소서 2:21, 22,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교회의 영적 건립의 임무를 위해, 주께서는 교회에 목사들을 주셨고 어느 정도의 조직을 주셨다. 에베소서 4:11-12, "그가 목사와 교사를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임무는 특히 교회의 교훈권과 관계된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이런 임무 때문에,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불리운다. 교회는 이 임무를 위해 또한 기도와 교제와 봉사와 구제에도 힘쓴다. 사도행전 2:42, "저희가 . . .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요한복음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도행전 2:44-45,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 . . 나눠주고." 고린도후서 8:7, "너희는 . . . 이 은혜[성도를 섬기는 일]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린도후서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교회의 세 번째 임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특별한 임무 곧 사명(使命, mission)이다. 세계 만국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교회의 최대의 임무요 사명이다. 이것이 선교(宣敎, mission)다. 선교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그 외의 다른 무엇이 아니다. 죄인들의 영혼의 구원 즉 장차 그들의 부활과 영생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6:38- 40,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죄인들을 위한 대속물이 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 또 그는 승천(昇天)하시기 전 그의 제자들에게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부탁하셨다. 마태복음 28:19, 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가복음 16:15,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 24:47,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요한복음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러므로 교회는 그 어떤 일들보다도 전도(傳道)의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힘을 합하여 세계 복음화(福音化)의 일을 위해 힘써야 한다. 교회는 이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 전도자들을 주시기를 간구하고 그들을 모집하고 훈련시키고 파송하고 물질과 기도로 후원해야 한다. 마태복음 9:37, 38,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주셨으니." 디도서 1:3, "이 전도는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에베소서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데살로니가전서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8:3,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빌립보서 4:14-18에 보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물질적 후원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교회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자체를 위한 영적 건립과, 세상 사람들을 위한 전도의 임무들을 잘 수행하기 위해, 우선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