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7월 08일 [제11권 27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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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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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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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실패한 사람을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로 비유하셨다(마 13:22). 젊은 이들은 취직 염려, 사업가들은 회사나 공장이나 가게 등의 경영 염려, 많은 사람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염려, 더 좋은 주거 환경을 위한 염려, 경제적 안정을 위한 염려, 노후 대책을 위한 염려 등 여러 가지 염려를 가지고 있다. 세상 염려는 일차적으로 경제 문제에 대한 염려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식주 문제를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셨다. 옛 시대에는 주거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주로 문제이었던 것 같다. 사실 주거 문제는 이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주거 환경이 있다. 사람의 행복이 사람의 주거 여건에 정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을 먹고 입는 것은 기본적인 문제이다.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식량이 부족한 가운데 있다고 한다. 기근은 하나님의 재앙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상 땅 위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넉넉히 먹고 살고 있고 지구의 식량이 풍부하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다. 사람은 조금만 부지런히 일하면 땅이나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넉넉히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염려치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31절), 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셨다(34절). 사람이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는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탐심 때문일 것이다. 탐심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말한다. 이것은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이것은 자족하며 사는 것과 반대된다. 성경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말한다(딤전 6:8). 자족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마 6:11). 잠언에 보면, 지혜자는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30:8). 탐심을 품으면 항상 불만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지만, 자족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자족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이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는 두 번째 이유는 불신앙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는 자들을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부르셨고(30절), 그런 염려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생활 태도라고 말씀하셨다(31절).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 염려가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는 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의식주 문제로 염려치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공급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1-32절). 32절을 다시 번역하면, "이는 이 모든 것이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임이니라. 이는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심이니라." 우리가 의식주 문제로 염려치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아시고 친히 공급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하신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6절). 하나님은 공중의 새를 친히 먹이시고 기르신다. 새들은 씨를 심지도, 익은 곡식을 거두지도, 창고에 저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많은 새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반적 은총이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는 원어는 "너희는 이것들보다 훨씬 더 낫지 아니하냐?"는 뜻이다. 사람이 참새 한 마리보다 더 낫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무가치하게 보이는 새 한 마리도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을 먹이시고 기르시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27절)고 말씀하신다. '키'라는 원어(헬리키아)는 일차적으로 '수명'(壽命)이라는 뜻이며 '키'라는 뜻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염려함으로 우리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거나 우리의 키를 조금이라도 더 크게 할 수 없다. 염려는 우리의 몸에 해가 될 뿐이다. 염려는 의식주 문제에 아무런 유익이 없고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믿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우리의 할 일을 해야 할 뿐이다. 또 그는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28절)고 말씀하신다. '길쌈'은 천 짜는 일을 가리킨다. 들의 백합화는 스스로 무슨 수고나 천 짜는 일을 하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자라게 하시고 예쁘게 단장시키신다. 예수님은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29절)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30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가치 없어 보이는 들풀 하나도 아름답게 입히시는 자이시다. 그러면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에 대해 그가 어떻게 배려하실지 분명하지 않은가!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지으셨고 지금도 먹이시고 기르신다. 시편 104편은,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자이시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모든 것을 의탁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가 알아야 할 바가 한가지 있다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33절에는 원문에 '그러나'라는 말(데)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러나 혹은 오직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나라'는 전통본문대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 앞에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권을 부정하고 자기들의 뜻대로 악을 행하였다. 이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를 인정하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또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義)이다(신 6:5).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성경에 증거된 인간의 본분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요약하기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하였다(3:23).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살며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이렇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의식주의 모든 필요를 넉넉히 채워주실 것이다. 이것은 진리의 교훈이며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말씀을 맺는다. 염려거리가 많은 세상의 현실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의 구주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힘써 실천하자. 첫째로, 우리는 의식주 문제를 인해 염려치 말자. 내일 일을 염려치 말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염려치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믿음과 자족하는 마음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공급하심을 믿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믿음과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의식주 문제를 인해 염려치 않을 수 있고 내일 일을 염려치 않을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오직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자.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인간의 본분이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의식주의 모든 필요를 넉넉히 채워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의 현세와 내세를 보장하신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며 살아가자. ---------------------------------------------------------------------- 지난오후설교: 기쁨과 감사 성도의 생활은 기쁨의 생활이다. 기쁨은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이요 성령의 열매이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갈라디아서 5:22,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천국에서 평강과 희락의 충만함을 누릴 자들은 지상에서도 주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평안과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이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했고(느 8:10)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 즉 그들이 들은 말씀을 밝히 알았기 때문에 크게 즐거워하였다(느 8:12). 시편 19:8은 하나님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말했다. 또 시편 119편 저자는 주의 말씀이 나의 즐거움이라고 반복해 말했다(24, 77, 143절).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경험하였다. 사도행전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고린도후서 8:2, "(마게도냐 성도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베드로전서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육신적, 물질적, 가정적 복을 인해 즐거워할 수 있다. 신명기 16:15, ". . .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초막절]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전도서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수고하며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난 것이요(2:24) 그의 선물이며(3:13) 그의 분복이며(3:22) 선하고 아름답다고(5:18) 말하며 또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라고 말한다(9:9). 그러나 성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구원을 인해 기뻐한다. 누가복음 10:20,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사도행전 16:34,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죄인이 의인이 되고 지옥 갈 자가 천국 백성이 되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것보다 더 기뻐할 일이 또 무엇이랴! 성도는 특히 천국을 소망하며 기뻐한다.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말하지만(10절), 곧 이어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14-15절). 그 기도는 천국에서 충만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고 말했고(롬 5:2), 또 우리에게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교훈했다(롬 12:12). 성도는 또한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1-12).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한다(행 5:41). 또 사도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말했고(롬 5:3) 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고 했다(빌 2: 17). 베드로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교훈하였다(벧전 4:13). 특히, 전도자는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얻는 것을 기뻐한다. 빌립보서 1: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의인 아흔아홉 사람을 기뻐하심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는 기쁨과 같다(눅 15:7). 성도는 또 다른 형제가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볼 때 기쁨이 넘친다. 요한이서 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요한삼서 3-4,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죄와 불신앙은 슬픔과 염려를 가져오지만, 참된 믿음과 의(義)는 기쁨과 평안을 준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마다 항상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기쁨이 주제인 빌립보서를 썼다. 그는 거기서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2:18),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3: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고 교훈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 .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다(살전 5:16, 18). 성도의 생활은 또한 감사의 생활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다'는 히브리어(야다)는 찬송하다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며 또 '찬송하다'는 다른 말(할랄)과 매우 빈번히 함께 사용된다. 역대상 16:4,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였으니." 감사는 하나님과 그의 하신 일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참 믿음에서 나온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생활은 불평과 원망이 가득하였다(출 15:24; 16:2; 17:3; 민수 11:1; 14:2; 21:5). 민수기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그들이 항상 원망하고 불평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수기 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여러 성경 구절들이 그 사실을 증거한다(신 1:26-27, 32; 시 78:22; 106:24-25; 히 3:18-19). 그들이 불평하고 원망했던 다른 하나의 이유는 탐심 때문이었다(민 11:4; 시 78:18).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현실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성경은 우리에게 원망하지 말라고 교훈한다(고전 10:10; 빌 2:14; 약 5:9; 벧전 4:9). 우리는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에베소서 5:4,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에베소서 5:20,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7, "무엇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가 우리에게 영육의 많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성도는 음식을 먹을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마 15:36; 26:27; 행 27:35). 그러나 우리는 특히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또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푼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특히 자녀들은 부모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딤전 5:4). 우리는 배은망덕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 96쪽. 1,000원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중국어 역). 96쪽. [추천하는 책]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