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4월 01일 [제11권 13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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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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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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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하나님의 나타나심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99세 때에 나타나셨다. [창세기 18장 1절]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간혹 그는 나타나셨다. 창세기 17장은 아브람의 99세 때에 그가 나타나셨음을 증거했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인격적이신 분이시다. 그는 사람에게 나타나실 수 있고 나타나셨다. 그는 마침내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1:14). 하나님께서는 시공(時空)세계 속에 나타나셨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초월자이시므로 시공세계 속에 나타나실 수 없고 사람이 육신적으로 경험하거나 그 경험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잘못된 사상이지 성경 진리와 다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시공세계 속에 나타나셨다고 증거한다. 이것은 신화적 묘사가 아니고 사실적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장소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 장막문에서이었고 시간은 오정 즈음이었다. '오정 즈음'이라는 원어(케콤 하이욤)는 '낮의 뜨거움'이라는 뜻으로 '한낮 즈음에'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시공세계 속에 나타나셨다. [2절]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장막문에 앉았다가 맞은편에 사람 셋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세 사람 중 둘은 천사요 하나는 하나님이셨다. 다음에 나오는 10절과 13절은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또 여호와 하나님은 계속 아브라함과 대화하고 계셨고 두 사람만 소돔 성으로 갔고 19:1은 두 천사가 소돔 성에서 롯의 영접을 받은 것을 증거한다. 아브라함은 그 세 사람이 보통 분이 아니라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유대교 정통 서기관들인 마소라 학자들은 3절의 '내 주여'라는 말을 하나님께 대한 호칭인 아도나-이로 읽었다.1) 히브리서 13:1-2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말했다. [2-5절]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2절부터 8절까지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정성껏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을 본다. 이것은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벗었을 때 옷 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본 것이 곧 주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35- 36, 40). 또한 성경은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하고(롬 12:13), 또 감독의 자격요건 중 하나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을 들었다(딤전 3:2). 아브라함은 어떻게 손님을 대접하였는가? 우선, 그는 달려가서 그들을 영접하였다. 그것은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대접했음을 보인다. 또 그는 몸을 땅에 굽혔다. 그것은 그가 겸손한 마음으로 대접했음을 보인다. 또한 그는 그들에게 '내 주여'라고 말했고 자신을 '종'이라고 말했다(3, 5절). 이것은 손님을 높이고 자신을 낮춤을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셨고(마 20:26-27), 바울은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하며 피차 복종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롬 12:10; 엡 5:21; 빌 2:3). 또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자신을 떠나 지나가지 말 것을 간청하며 그들에게 발 씻을 물을 드리고 떡을 제공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대접은 자원적이었다. 성경은 우리의 선행이 억지같이 되지 않고 자의로, 자발적으로 되어야 할 것을 교훈했다(몬 14). 또 성경은 우리의 헌금도 인색함이나 억지로가 아니고 즐거움으로 내는 것이어야 하고(고후 9:7) 양 무리를 돌보는 목회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벧전 5:2). [6-8절]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아브라함은 급히 그의 아내 사라에게 가서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떡을 만들라고 부탁했다. 세 스아는 약 22리터로 세 사람 먹기에는 넉넉한 양이다. 또 그는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해 하인에게 급히 요리하게 하였다. '기름지다'는 원어(라크)는 '부드럽다, 연하다'는 뜻이다. 그는 맛있는 고기로 대접한 것이다. 그는 뻐터와 우유와 송아지 요리를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모셔 섰고 그들은 먹었다. 요약하면, 아브라함은 손님을 대접하되, 즐거이, 겸손히, 간절히, 자원적으로, 정성스럽게 하였다. [9절]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그가 장막에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성경적 아내의 모습은 좋은 주부이며, 시편 128:3은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라고 표현하였다. 디도서 2:4-5은 젊은 여자들이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할 것을 교훈한다. 반면에, 잠언 7:11은 '그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는 음녀'에 대해 묘사한다. [10절]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9절에는 '그들이 . . . 이르되'라고 말했으나, 10절은 '그가 가라사대'라고 말한다. 말씀하는 주체가 '그들'에서 '그'로 바뀌었다. 여기에 '그'가 누구인지는 13-14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는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고 14절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반복하셨다. '기한이 이를 때에'라는 원어(카에스 카이야)는 직역하면 '소생하는 때에' 즉 '오는 봄에'라는 뜻이다(BDB). [11-15절]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졌다.2) 사라는 그의 말씀을 듣고 웃으며 그와 그의 남편이 늙었으니 무슨 낙이 있겠는가라고 속으로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웃으며 부정적인 말 함을 지적하시며 그의 약속을 반복하셨다. '기한이 이를 때에'라는 원어는 '오는 봄에, 정한 때에'라는 뜻이다(왕하 4:16-17에도 같은 표현 나옴). 또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창 17:1). 그는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민 11:23; 신 32:39; 욥 42:2; 눅 1:37). [16-19절]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 성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이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로, 그는 "내가 그를 택하였다"고 말씀하셨다(19절). '내가 그를 택하였다'는 원어(예다티우)는 '내가 그를 알았다'는 단어이다. '안다'는 말은 '호의적으로 안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선택하심을 의미한다.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둘째로,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의(義)를 행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19절,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하나님의 주관심은 사람이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그 자손들에게 명령하고 가르쳐야 할 내용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의의 말씀으로 교육해야 한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에베소서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8-19절).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창세기 12:3에 나와 있는 말씀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또 이 약속은 창세기 22:18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것은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복이다. 1절부터 19절까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진리와 교훈을 가진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자. 하나님께서 역사상 나타나셨음과 그의 약속하신 모든 말씀을 믿자.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능력과 약속을 믿자.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들처럼 회의주의자나 불신앙자가 되지 말자. 주께서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마 22:29).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자. 세상에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과 받지 못한 자들이 있다. 선택의 증거는 회개와 믿음이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구주 예수를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의인 되고 실제로 의롭게 사는 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영생과 영광스런 천국이 약속되어 있다. 셋째로, 우리는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자. 선행은 경건과 의의 한 열매, 중요한 한 열매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손님 대접도 잘하자.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장로의 자격 요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즐거이, 겸손히, 간절히, 자원적으로, 정성스럽게 손님 대접을 하였다. 우리도 그런 선한 인격자가 되자. ----------------------------------------------------------------------- 지난오후설교: 결혼 결혼은 하나님께서 첫사람을 창조하실 때 세우신 신성하고 복된 제도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따로 만드시지 않고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고 그 둘을 부부가 되게 하셨다.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부모로부터의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의미한다. 결혼은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결혼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 이 세상에서 인간 관계 중 가장 가까운 관계의 시작이다. 부부는 한 몸이다. 결혼은 또한 언약적 성격을 가진다. 주 예수께서는 결혼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마 19:6)이라고 말씀하셨다. 잠언 2:17은 음녀를 "소시(少時)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고 말한다. 말라기 2:14은 하나님께서 부부 간의 증인이셨다고 말하며 아내를 "너와 맹약한 아내[네 언약의 아내]"라고 표현한다. 결혼은 적어도 이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계속 성실히 지켜져야 할 언약적 관계이다. 성경적 결혼은 일부일처(一夫一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 둘이 부부가 되게 하신 사실에서 확증된다(창 2:21-24). 그러므로 신명기 17: 17은 왕에게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명령했고 디모데전서 3:2은 감독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에 태어나는 남녀의 수가 거의 같은 비율인 것도 일부일처가 하나님의 뜻임을 보인다. 신앙고백 24:1,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남자이든지 동시에 한 아내 이상을 가지거나, 어떤 여자든지 동시에 한 남편 이상을 가지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다." 성경 역사상, 야곱, 솔로몬, 르호보암(대하 11:21), 그의 아들들(대하 11:23), 아비야(대하 13:21), 요아스(대하 24:3) 등이 여러 아내를 취했다. 그러나 성경이 그것을 기록한 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보이는 역사적 사실을 증거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셨거나 권장하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야곱의 경우는 본인의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솔로몬의 경우는 많은 아내들로 인하여 결국 신앙의 실패를 맛보았다(왕상 11:4-8). 결혼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로, 결혼은 상호 협조를 위해 제정되었다. 창세기 2:18,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돕는 자]을 지으리라." 사람은 다른 이와 함께 사는 사회적 존재이다. 사람은 서로 돕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친구가 필요하고 교제가 필요하다.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친구요 협조자다. 가정은 피곤한 세상 생활에서 휴식과 위로의 보금자리이다. 둘째로, 결혼은 자녀의 출산을 위해 제정되었다. 성경은 결혼의 한 목적이 출산이며 많은 자녀들의 출산 즉 다산(多産)이 하나님의 복임을 증거한다.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시편 127:4-5,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箭筒)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전사와 같이, 자녀들이 많은 가정은 복되다. 그러므로 부모의 건강이 매우 나쁘거나 경제 형편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자녀의 수는 많은 것이 좋다. 역사상 위대한 어떤 인물들은 부모의 다산의 결과이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요 경건했던 요한 웨슬리는 그 부모의 15번째 아들이었다. 오늘날도 경건한 가정들이 많은 자녀들을 둔 예들을 볼 수 있다. 미국의 보수적 루터파 신문인 크리스챤 뉴스(Christian News)의 편집자 헤르만 오톤 목사는 6, 7명의 자녀를 두었고, 밥 죤스 대학교 음악교수인 멀핑거 교수는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셋째로, 결혼은 부정(不淨)의 방지를 위해, 즉 음행을 피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고린도전서 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사람에게는 성적 감정과 요구가 있고 그 감정은 결혼으로 해소된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 속에서 정당한 부부관계가 없다면, 사람은 음행의 죄에 떨어지기가 더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가르치기를 "서로 분방하지 말라[서로 거절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고전 7:5). 그러나 주를 위해 홀로 사는 것도 가능하며 때때로 더 나을 수도 있다. 고린도전서 7:8,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고린도전서 7:38, "처녀딸을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독신생활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필요하다. 성도의 결혼 대상은 반드시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도는 불신자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 신명기 7:3, "너는 가나안 족속들과 혼인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6:14,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창세기 6:2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은 것)"은 경건한 셋의 아들들이 불경건한 가인의 딸들과 결혼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결혼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 또한 유다의 역사에서 유다 왕들은 믿음 없는 아내들로 인하여 범죄한 일이 많았다. 역대하 21:6,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과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신자나 이방 종교인이나 천주교인이나 이단 종파에 속한 자나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자와 결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자와 결혼하는 자에게는 영적 고통이 뒤따른다. 그런 자에게는 성수주일, 십일조, 술 담배, 제사, 장례식 등 실제 문제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 또 친족간의 결혼도 합당치 않다. 레위기 18장은 근친상간뿐 아니라 또한 친족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으로 이해된다. 거기에 금지된 대상은 어머니, 계모, 자매, 손녀와 외손녀, 고모, 백숙모, 자부, 형제의 아내 등이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추천하는 책]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