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4월 08일 [제11권 14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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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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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심판의 공의로우심

[창세기 18장 20절]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한 도시가 악화되는 것은 매우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악한 자들의 악한 행위로 인해 의인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이 있고 여론의 지적과 비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악의 세력이 커지고 악에 대한 반대는 약해진다. 도시는 점점 더 악에 물들어간다. 사회의 도덕적 갱신과 회복은 오직 종교적 각성에서만 가능하다(잠 8:13; 16:6). 종교적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도시, 그 사회는 도덕적 갱신의 가망성이 없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컸다. 그것은,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의인들과, 그 사회에서 밀려나고 사라져가는 순진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의 부르짖음이었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어린양이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서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라고 외치는 큰 소리를 들었다(계 6:9-10). 그런 부르짖음이 소돔 성을 위해서도 있었을 것이다

또 선한 천사들의 부르짖음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의인들을 섬기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는다고 말씀하셨다(마 18:10). 또 소돔 성에 살았던 의로운 롯의 부르짖음도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후서 2:7-8에 보면, 소돔 성에 살았던 의로운 롯은 날마다 저 무법하고 불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들을 보고 들음으로 심령이 상하고 고통을 느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곳으로부터 건져주셨다.

소돔의 죄악은 심히 무거웠다. 죄는 다 악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 비교적 작은 죄가 있고 비교적 크고 중대한 죄가 있다. 작은 죄란 '부지 중에 지은 죄, 실수로 지은 죄, 연약하여 지은 죄'를 가리킨다. 크고 중대한 죄란 '알면서, 고의적으로, 반항적으로 지은 죄'를 가리킨다. 우리는 큰 죄를 짓지 말고 작은 죄도 조심해야 한다.

[21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소돔 성의 죄악된 형편을 확인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 유한(有限)한 사람처럼 직접 확인하셔야 비로소 무엇을 아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다. 시편 139:1 -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의 확인하심은 실상 우리로 확인케 하시는 뜻이 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으로 인해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였다. 우리는 소돔 성의 멸망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분이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바벨론으로 묘사된 마지막 적그리스도 왕국도 그러할 것이다. 성경은 그 죄가 하늘에 사무쳤고 하나님께서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셨다고 말한다(계 18:5). 마침내 세상의 종말이 온다.

[22절]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그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세 명의 사람들 중 하나님을 뺀 나머지 천사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창세기 19:1은 소돔 성에 두 천사가 나타났다고 기록한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라는 구절의 원래 히브리어 원문은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 앞에 계속 서 계셨더니"이었으나, 유대교 서기관들이 오래 전에 이 구절을 한글개역 본문과 같이 수정하였다. 그러나 다음 절의 주어가 '아브라함'이므로(한글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본절의 주어는 '아브라함'보다 '여호와'가 더 자연스럽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떠나지 않으시고 계속 그 앞에 서 계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근히 하셨고 교제하기를 원하셨다. 이사야 41:8에 보면, 그는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고 부르셨다.

[23-25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50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50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갔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양심에 거리낌을 가지면 가까이 나갈 수 없다. 아담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 3:8). 주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요 3:20-21).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 '친근히 한다'는 원어(다바크)는 '꼭 붙든다'는 뜻으로 가까이 함을 뜻한다. '부종(附從)한다'고 번역되기도 하였다(신 11:22). 야고보서 4:7-8,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아브라함의 질문은 당돌하게 보였다. 그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책망하는 듯한 어투로 말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질문의 내용은 정당하였다.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다루셔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셔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단지 아브라함은 너무 세상을 관대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는 죄악된 소돔 성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의인이 50명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상 그는 무지하였다. 그는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 잘 모르고 있었다. 세상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아서도 안 되지만, 세상을 너무 좋게만 보아서도 안 될 것이다.

[26-27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50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비천함과 무례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티끌과 같은 나라도'라는 원어는 '저는 티끌과 재입니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티끌과 재와 같은 존재이다. 인간은 본래 흙(티끌)으로 지음을 받았다. 창세기 2:7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말했는데, 거기에 '흙으로'라는 원어는 '땅의 흙으로'라는 뜻이며, 거기에 흙이 바로 본문에 '티끌'과 같은 말이다. 히브리어로 '아담'은 첫사람의 이름인 동시에 '사람'이라는 보통명사이기도 한데, 사람(아담)은 땅(아다마)에서 나왔다. 사람은 티끌과 재와 같은 존재이다.

[28-31절] 50 의인 중에 5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5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45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4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40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3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30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2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20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의 계속되는 끈질긴 대화는 그의 확고한 도덕적 신념을 보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과 악,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심판하셔야 한다는 신념이다. 그는 그의 무지한 관대함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례한 대화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지함과 연약한 생각을 오래 참으셨고 너그럽게 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인간을 상대해주셨고 단번에 무시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너그러움과 인내도 배워야 하겠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하겠다. 어떤 때는 어린 아이가 더 바르고 좋은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무지하고 무례한 질문을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32-33절]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1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10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롯의 가족들이 겨우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그것도 그의 아내는 실패하고 두 딸들은 근친상간적 죄를 지을 것이다. 그러면 실상 의인은 롯 한 사람뿐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소돔 성에 살면서 마음 고생만 많이 했고 결국엔 빈손으로 그 곳을 떠나야 할 것이다. 베드로후서 2:7-8,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20절부터 33절까지의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큰 죄를 짓지 말자. 죄 중에는 부지 중에, 연약하여, 실수로 짓는 죄도 있지만,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반항적으로 짓는 죄가 있다. 우리는 부지 중에, 연약하여, 실수로 짓는 작은 죄도 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특히 알면서 짓는 죄, 고의적인 죄, 반항적이게 짓는 죄를 극히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회개의 가망성이 거의 없는 큰 죄이다. 그런 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서는 고칠 수 없는 심령의 심각한 병이다. 우리는 멸망하는 소돔 성 사람처럼 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시고 공의로 보응하심을 알자. 하나님은 불의하거나 편벽된 심판자가 아니시다. 그는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시키는 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무정한 자가 아니시다. 그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악에 대해서는 엄격하시다. 그는 사람의 행한 대로 공의롭게,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보응하신다(전 12:14; 롬 2:6-8).

셋째로, 우리는 성의 멸망을 막을 의인 10명이 되자. 소돔 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서울은 소돔 성보다 나은가? 오늘날 서울의 밤거리는 소돔의 밤거리보다 나은가? 오늘 세상은 점점 더 불경건하고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 되고 있다. 현대 문명은 부도덕하고 음란한 문명이 되고 있다. 지구의 종말이 오고 있다. 세상이 멸망할 때, 거기에서 구출될 노아의 여덟 식구들은 누구인가? 서울의 멸망을 막을 의인 10명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은 악하고 음란해질지라도, 우리는 남은 자가 되자. 우리는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유지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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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결혼(계속)

젊은이가 결혼을 위해 준비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믿음의 준비이다. 이를 위해 신랑과 신부는 결혼 전에 성경읽기와 기도생활에 힘써야 한다. 자녀들이 생기고 힘들고 바쁜 시간이 오기 전에 그렇게 하여야 한다.

둘째로, 결혼할 자는 인격적 성숙을 준비해야 한다. 결혼은 사랑과 순종의 인격적 관계이며 부부는 사랑, 이해심, 관용, 인내, 명랑함 등의 덕을 가져야 한다(잠 12:4; 14:1; 15:17; 17:1; 21:9, 19).

셋째로, 결혼할 자는 건강을 준비해야 한다. 건강은 이 세상의 삶을 위해 매우 필요하다. 모든 사람은 적절한 운동과 영양 섭취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넷째로, 결혼할 자는 경제적 안정을 준비해야 한다. 잠언 24: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이것은 결혼 시기와도 관계된다. 학생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진 후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은 교제 시 범죄치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녀의 친근한 교제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항상 공개적이어야 한다. 방에서나 차를 타서나 단 둘만의 은밀한 교제는 삼가야 한다. 또한 결혼 전 남녀교제는 인격적이어야 한다.

부부 관계는 사랑과 순종의 관계이다. 첫째로,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에베소서 5:25, 28,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골로새서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아내에 대한 사랑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우선, 남편은 아내에게 정신적 평안과 기쁨을 주어야 한다(신 24:5). 정신적 부담과 슬픔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남편은 따뜻한 말, 칭찬과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나 욕을 해서는 안 된다.

남편은 또한 아내를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남편은 어떤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아내의 의견을 듣고 그와 의논하고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내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의 취미나 관심 분야가 있으면 그것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구타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또 가사의 일들이 무미건조하고 피곤한 일임을 인정하고 집안일을 도와주어야 한다.

남편은 가정의 경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려면 그는 부지런해야 한다. 물질의 복은 근면한 남자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남편이 혼자 관리하며 아내를 가난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내가 매우 불성실하고 낭비적이지 않다면, 재정 관리를 아내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로,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에베소서 5:22-24,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아내는 자기 남편을 주님처럼 생각하며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아내의 머리가 되게 하셨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이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순종해야 한다. 혹 남편이 잘못을 범했을 때라도 즉시 비판하지 말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기회를 봐서 그에게 조용히 충고해주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지혜로운 여자는 남편을 존중하고 자기 집을 세우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사사건건 남편과 다투며 자기 집을 허문다.

아내는 하나님 외에는 자기 남편만 사모하고 사랑해야 한다. 아내는 자기 남편 외에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부모나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자기 남편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

또한 사랑은 봉사, 희생, 수고를 동반한다. 그러므로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가정의 의무에 충실한 주부가 되어야 한다(시 128:3; 잠 31:10-31; 딛 2:4-5). 특히 식사 준비는 아내에게 맡겨진 중요한 책임이다. 이렇게 하려면, 아내는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여자의 아름다움과 단장은 심령의 온유함과 조용함이다(딤전 2:9-10; 벧전 3:3-4).

참된 사랑과 순종은 주 안에서만 가능하므로 이상적 부부관계는 신앙 안에서의 관계이어야 한다. 함께 기도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는 관계이어야 한다.

성(性, sex)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즉 사람이 타락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것은 결코 더럽거나 죄악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창 2:24-25). 그러므로 부부의 성 관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이요 부부의 정신적, 육신적 사랑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는 방편이다(잠 5:18-19; 전 9:9). 부부의 성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부부의 사랑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며 또 부부의 사랑에 문제가 생기면 성 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또 부부의 성 관계는 음란한 세상에서 육신의 연약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음행을 피하는 정당하고 유익한 방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부부가 분방하지 말고 서로의 몸을 거절하지 말라고 교훈한다(고전 7:2-5).

물론, 성은 반드시 정당한 부부 관계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부부 관계 이외의 모든 성 행위, 예를 들어, 간음, 음행, 결혼 전 관계, 성 매매, 동성애, 짐승과의 관계 등은 다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

또 성은 부부 관계에서만 허용되므로 은밀해야 한다. 오늘날 남녀의 키스, 애무, 성 행위까지 영화나 인터넷 동영상으로 표현되고 공개되는 풍조는 한마디로 사람의 죄악된 육신의 감정을 자극하는 음란한 풍조이며 죄악된 풍조이다. 소위 성인 영화는 하나님 앞에서 다 음란물로서 그것은 세상을 더욱 음란한 세상으로 만드는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른이나 아이나 이런 풍조를 대적하고 깨어 대처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을 이런 풍조로부터 멀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죄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또 성 문제에 있어서, 한가지 첨가할 교훈은 절제에 대한 것이다. 성은 아름답고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는 금욕(禁慾)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금욕은 성 행위를 완전히 끊는 것을 의미하지만, 절제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조건 아래서 그것을 끊는 것을 의미한다. 금욕은 그런 은사를 받은 자에게만 가능하지만, 절제는 모든 성도에게 요구된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첫째이고, 하나님이 주신 부부의 사랑은 둘째이므로, 성도가 너무 육신의 즐거움에 빠져서 경건 생활이나 봉사에 지장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이든지 지나친 것은 죄가 된다. 성도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전 6: 12-13; 9:25).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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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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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추천하는 책]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