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2월 25일 [제11권 8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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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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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롯을 구출함

[창세기 14장 1-2절]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북방의 네 나라의 왕들은 소돔 성 주위의 다섯 나라 왕들과 전쟁을 하였다. 시날은 바벨론의 수도 바벨과 아브람의 원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 지역을 가리키며 오늘날 이라크 동부 지역이다. 엘람은 페르샤만부터 카스피해까지 페르샤 지역을 가리키며 오늘날 이란 서부 지역이다. 엘라살과 고임은 그 주위에 있었을 것이나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남방의 다섯 나라들은 염해 남부 지역에 있었던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단지 "벨라 곧 소알"이라는 표현은 벨라가 옛 이름이고, 소알이 모세가 창세기를 쓸 당시 사용되었던 이름임을 보인다.

[3-4절]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13년에 배반한지라.

북방의 연합군이 남방의 왕들과 전쟁한 곳은 싯딤 골짜기이었다. '싯딤'이라는 원어(싯딤)는 '들판'이라는 뜻이며 그 곳이 본래 들판이었음을 보인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라는 표현은 들판이었던 싯딤 골짜기가 후에 염해로 변했음을 보인다. '염해'(鹽海)는 '소금 바다'라는 뜻인데, 그 곳의 물은 보통 바닷물보다 10배나 더 짠 30-33%의 소금물이라고 한다.1) 전쟁의 동기는 남쪽 나라들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12년간 섬기다가 제13년에 배반했기 때문이었다.

[5-7절] 제14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르바(거인), 수스, 엠, 호리는, 신명기 2장이 증거하는 대로, 옛시대에 요단강 건너 동북쪽부터 요단강 남단 염해 동쪽과 남쪽, 즉 모압과 암몬과 에돔 지역에 살았던 족속들이다. 아스다롯 가르나임은 요단강 동북쪽 바산 땅에 있었고, 함은 갈릴리 호수 동쪽 게술 땅이며, 사웨 기랴다임은 요단강 동남쪽 르우벤 지파 땅에 있었고, 세일산은 에돔 지역이다. 엘바란은 에돔의 남단, 즉 홍해 북단 항구이며, 엔미스밧은 가데스 바네아일 것이다. 하사손다말은, 역대하 20:2에 의하면, 염해 중서부의 엔게디이다. 다시 말하면, 북방 연합군은 요단강 동북쪽 땅으로부터 요단강 남쪽 염해 동부와 남부와 서부를 쳤던 것이다.

본장은 그 내용의 역사적 성격을 잘 나타낸다. 옛 시대의 나라들이나 성들의 이름과 왕들과 족속들의 이름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R. D. 윌슨은 본장의 왕들의 이름이 고고학적 발굴 내용과 일치한다고 증거하였다. 또 본장에는 창세기를 쓴 모세의 보충적 설명이 여러 번 나온다. 2절에는 "벨라 곧 소알," 3절에는 "싯딤 골짜기 곧 염해," 7절에는 "엔미스밧 곧 가데스," 8절에는 "벨라 곧 소알," 17절에는 "사웨 골짜기 곧 왕곡(왕의 골짜기)" 등이 그것이다.

[8-12절]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곧 그 다섯 왕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북방의 다섯 왕들의 연합군이 소돔 성 주위의 네 왕들의 연합군과 접전한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들이 많았다. '역청'(케마르)은 석유나 석탄에서 나오는 '아스팔트, 콜타르, 피치 등'을 가리킨다. 그 전쟁에서 소돔 왕과 그 동맹국들은 패전하였고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겼다. 소돔에 거했던 롯도 포로로 잡혀갔고 그의 재물들도 다 빼앗겼다. 롯은 큰 낭패를 당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악된 도시 소돔에 내리신 경고의 징벌이며 또 인간적 생각과 욕심을 따라 요단 들을 선택했고 심히 죄악된 소돔 성에까지 내려가 거주하며 그들과 교제했던 롯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징벌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사람은 물질적 유여함을 가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셔야 사람이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이 침략자를 보내시면 하루 아침에 모든 좋은 것도 다 빼앗길 것이다.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13절]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도망쳐 온 한 사람이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성경에서 여기에 처음으로 '히브리 사람'이라는 말(이브리)이 나온다. 이 말은 '에벨의 자손'이라는 뜻인 동시에 '강 건너편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 명칭은 아마 가나안 땅에 나그네처럼 거주했던 아브람에게 주위 사람들이 붙여준 것일 것이다. 그 때 아브람은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다. 마므레는 에스골과 아넬의 형제이며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들이었다.

[14-16절]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람은 평소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켰던 가신들 318명과 더불어 롯을 구출하기 위해 북방 나라의 왕들을 뒤쫓아갔다. 그와 동맹했던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도 거기에 참여하였다(24절). 아브람은 평소에 자기 방어를 위해 가신들을 훈련시켰다. 사람은 개인적으로 운동도 하고 체력도 단련시키는 것이 좋고, 세상에서는 군대도 필요하고 경찰력도 필요하다. 아브람은 단까지 쫓아갔다. 여기의 '단'은 사사기 18:28-29에 나오는 도시를 가리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단은 사사 시대에 단 지파가 그 곳을 정복한 후에 붙여진 이름이고, 북방 왕들은 요단 동쪽의 바산 길이나 평지 길 그리고 왕의 대로로 내려오고 올라갔을 것이며 그 길은 그 성을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단은 길르앗에 속한 한 성읍을 가리킬 것이다.2)

아브람은 가신들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했고 다메섹 북편에 있는(원문의 뜻)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긴 재물과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부녀들과 사람들을 찾아왔다. 이것은 그의 조카 롯을 위해 자기 목숨의 위험을 무릅썼던 아브람의 사랑과 용기를 잘 나타내준다. 아브람의 믿음은 헌신적 사랑과 용기로 잘 표현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소극적 태도로가 아니고 적극적 참여와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홀로 혹은 직접적으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지만(사 37:36),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자연적 수단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에나 성실하고 자연적 수단도 감사함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행 27:31).

우리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내용을 다 믿자. 창세기는 역사적 성격을 가진다. 예를 들어, 창세기 2장은 에덴 동산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10-14절), 7장과 8장은 홍수가 시작된 연월일과 물이 땅 위에서 마른 연월일에 대해 언급한다(7:11; 8:13-14). 10장은 노아의 자손들의 이름들과 그들로 인해 퍼져 나간 열국들의 이름들에 대해 자세히 증거한다. 11장은 바벨탑 사건에 대해 증거한다. 12장 이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자세히 기록한다. 창세기는 첫장부터 끝장까지 역사적 성격을 가진 책이다. 사실 성경 전체가 역사적 성격을 가졌다. 성경은 절반 이상이 역사적 내용이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내용을 다 믿자.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징책을 깨닫자. 롯은 소돔 성과 거기 살던 자신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징책을 깨달아야 했다. 사람의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은 하나님께 달렸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달아야 한다. 시편 119:67, 71,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셋째로, 우리는 주 안에서 사랑과 용기를 가지자. 우리는 모든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이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가자. 시편 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로마서 8: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용기 있게 세상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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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자살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자살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플리머스 락 재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에서 매 20분마다 한 사람이 자살하는데, 하루에는 80명이고 1년에는 29,000명 이상이다. 또 매 100분마다 15세부터 24세 이하의 청소년이 한 명씩 자살하며 매년 6,000명 가량이 자살한다. 70년 이후 청소년 자살 수가 3배로 증가했고 자살이 청소년 죽음의 세 번째 원인이 되었다. 또 매일 약 1,000명의 젊은이들이 자살을 기도한다고 한다.3)

2006년 우리나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한국은 2년 연속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1995년 인구 10만명당 11.8명이었던 자살률이 2005년에는 26.1명으로 급등하였고 자살자 수는 1년에 12,047명이었다.4) 자살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고대에 세네카와 스토아 학파는 각 사람은 고통에서 자신을 자유케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살의 권리를 옹호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심각한 질병이나 천재지변이나 큰 사고나 노환으로 죽는 것은 사람이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며 섭리이고, 또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경우나, 전쟁에서의 희생적 죽음이나 합법적 권위에 의한 사형 집행으로 인한 죽음은 허용되지만, 사람이 다른 이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나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죄악이다.

자살이 죄악이라는 것은 다음 몇 가지 점을 생각할 때 분명하다.

첫째로, 사람의 생명은 타인의 것이나 자신의 것이나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생명의 소유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시편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에스겔 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사도행전 17:25, "이[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따라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만 그 생명을 끝내실 권한을 가지고 계시며 사람은 그것을 끊을 권리가 없다.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고 빼앗는 것은 분명히 죄악된 일이다.

둘째로,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고 살인은 사형의 벌로 엄하게 보응을 받게 하셨다. 창세기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이와 같이, 사람은 다른 이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듯이 자신의 생명도 존중해야 하며 그것을 잘 보존하고 지켜야 한다. 그것은 사람의 기본적 의무이다(마 22:39; 엡 5:28). 하나님이 주신 지극히 고귀한 것, 즉 하나님의 형상인 자기 목숨을 고의로 파괴하는 것은 분명히 죄악된 일이다.

셋째로, 사람에게는 존재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목적이 있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 즉 사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는 것이다. 이사야 43:7, 21,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존재 목적을 저버리고 고의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악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넷째로, 더욱이 구원받은 성도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피 흘려 사신 것이다.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전통사본). 그러므로 성도는 주의 것을 가지고 주의 영광을 위해 바르게 사용해야지 자기 마음대로 그것을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주의 피값으로 사신 바된 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임의로 끊는 행위는 확실히 죄악된 일이다.

비록 자살하는 자에게 인간적으로 동정할 만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사정이 있다 할지라도, 비록 자살이 중죄(重罪)가 아닌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또 비록 자살하는 자의 구원 문제는 결국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라 할지라도, 자살은 분명히 허용되어서는 안 될 죄악이다. 애국자의 할복 자살이라도 성도에게는 합당치 않다.

성경에서 성도가 자살한 예는 없다. 성경에 기록된 자살의 예들은 다 악을 행하던 자들이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의 죄를 짓다가 버림당했던 사울은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중상을 입고 자기 칼 위에 엎드려 죽었다(삼상 31:4; 대상 10:4). 다윗의 모사이었던 아히도벨은 후에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왕 다윗을 대적하였고 압살롬 앞에 베푼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 집을 정리한 후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삼하 17:23). 반역으로 7일간 왕이 되었던 시므리는 오므리의 반격을 받고 왕궁 위소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다(왕상 16:18). 3년 동안 주를 따랐으나 그를 배신하고 은 30에 그를 팔아 넘겼던 가룟 유다는 주께서 정죄되심을 보고 스스로 후회하여 그 은 30을 도로 갖다 주며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마 27:3-5).

삼손의 경우(삿 16:28-30)는 전쟁 상황에서 원수들을 죽이는 일을 통해 자신도 죽은 경우로서 자살과 다르다. 자살이란 외적으로 어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자기 목숨을 고의적으로 끊는 행위를 가리키며, 원수들과의 전쟁에서 자신을 바쳐 죽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모든 슬픔과 고통과 절망은 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죄인의 구주이신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8).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있다. 여기에 자살을 극복할 좋은 길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과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자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써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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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문제:                                         특무기관망은 살아 있다

[히구치 즈네하루, "공산주의는 소멸했지만 특무기관 망(網)은 러시아에 살아 있다," 제군, 2007. 2월호; 미래한국, 2007. 2. 3, 15쪽에서 발췌, 요약함.]

"자유롭고 평등하고 억압 없는 천년왕국 건설을 지향하는 공산주의는 비공산국 인텔리들의 환상 속에서나 존재했다. 현실의 러시아혁명(1917년 11월 7일은 '미리 배반된 혁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러시아혁명 후 혹독한 특무기관(비밀경찰과 첩보조직)이 창설됐다. 1917년 11월 8일에는 NKVD(내무인민위원부)가, 12월 20일에는 '반혁명·투기·사보타지·직권남용에 대한 투쟁비상위원회'가 설치 결정되었다. 레닌이 지도하는 볼셰비키는 만인이 공포에 떠는 초법적인 체제를 혁명 발족과 동시에 만들어냈던 것이다."

"표방하는 평등주의와 달리 1922년 8월 제12차 러시아 공산당대회에서 특권계급이 제도화되었다."

"근년에는 미국의 루즈벨트 정부(1933. 3-1945. 4)에 공산주의자나 그 동조자 다수가 잠입해 있었고 트루만 정부(-1953. 10)에도 이어졌다는 것은 각종 사료(史料)로 알려져 거의 상식이 되었다."

1941년 7월 미국은 첩보기관으로 OSI(전략조정관 사무국)를 설치했고 OSI는 1942년 6월 육군성으로 이관돼 OSS(전략임무국)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그 기관은 소련 스파이국(Office of Soviet Spies)으로 불릴 정도로 이중 스파이의 소굴이었다. 이런 이유로 FBI국장 J. 애드가 후버는 OSS를 증오하고 있었다.

OSS 폐지(1945년 9월 결정) 후에 우여곡절 끝에 CIA가 발족했는데(1947년 9월) 적지 않은 요원이 구 OSS요원이고 공산당 관계자가 여전히 섞여 있었다.  

소련은 스탈린 사후 특무기관(FSB, 구KGB)이 제1권력기관이 돼 있었다. 브레즈네프 이후 "소련 공산당은 거대 범죄조직으로 전락했고 정상으로 기능하고 있는 기관은 KGB뿐이었으므로 모든 실권은 완전히 KGB로 옮아가버리고 공산당은 결정을 추인하는 역할만을 했다고 한다." 구 소련 특권계급은 민주화 과정에서 국유재산을 통째로 사물화하여 지금은 과점집단(寡占集團)으로 바뀌어 있다고 한다. 중국과 북한은 소련형 특무기관이 만들어진 나라들이며 그 요소는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각  주

1) 염해는 크기가 남북이 78km, 동서 18km로 제주도의 절반 넓이 정도이며 지중해 해면보다 400미터 낮은 곳으로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계곡이라고 한다. 이찬영, 성경지리총람 (서울: 소망사, 1993), 198쪽.

2) 카일과 델리취는 여기의 단이 신명기 34:1에 나오는 길르앗의 단이거나 사무엘하 24:6의 다냐안(야안의 단)을 가리킬 것이라고 본다. C. F. Keil and F.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I. Pentateuch (1864), I, 206.

3) Haven Bradford Gow, "Why So Many Suicides?" Christian News, April 28, 1986.

4) 중앙일보, 2007. 2. 14.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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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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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추천하는 책]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