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9월 23일 [제11권 38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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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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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요셉의 고난과 형통

[창세기 39장 1절]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 . . .

창세기 37:36에는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라고 기록했었는데, 본절도 요셉이 애굽으로 이끌려 내려갔고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이 그를 샀음을 증거한다. '시위대장'은 청와대 경호실장 같은 직위일 것이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하신 주의 말씀과 같이(마 10:29),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요셉은 애굽에 종으로 팔렸고 그것도 바로의 시위대장에게 팔렸다.

[2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요셉과 함께하신 여호와는 영원하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요셉과 함께하셨다. 그가 에녹과 동행하시고(창 5:22) 노아와 동행하셨듯이(창 6:9), 그가 아브라함과 함께하시고(창 21:22) 이삭과 함께하시고(창 26:3, 28) 야곱과 함께하셨듯이(창 28:15, 20), 그는 요셉과 함께하셨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다. '형통하다'는 원어(찰라크)는 '성공하다, 번영하다, 잘 되다'는 뜻이다. 요셉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비슷하였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살면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많은 복을 받았다.

전지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께서 인생과 함께하신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위로와 힘과 용기를 얻고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고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와 구원을 얻는다. 전쟁의 승리도 얻고 건강도 경제적 안정도 얻는다. 왜냐하면 그가 온 세상의 주권자, 곧 주권적 섭리자시기 때문이다.

[3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그의 주인 보디발도 보고 알았다. '범사에 형통케 하심'이라는 말을 보면, 요셉은 주인이 맡긴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원만하게 잘 처리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도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그랄왕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의 말을 들었다(창 21:22). 이삭도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는 그랄왕 아비멜렉의 말을 들었다(창 26:28). 본문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형통함의 복을 얻는 성도가 주위 사람들에게도 증거가 됨을 보인다.

[4절]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 . . .

요셉은 주인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었다. 그것은 주인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을 입은 것을 말할 것이다. 그것은 종에게 큰 복이다. 주인이 요셉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요셉의 인격의 됨됨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가치는 그의 건실한 사상과 인격성, 도덕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말 잘하는 것이나 지식과 기술이 많은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도 좋은 요소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실한 사상과 인격성과 도덕성이다. 정직하고 착하고 진실함, 남을 배려함, 겸손함, 인내와 용기 등의 덕성이 그것이다. 요셉에게는 이런 덕성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무슨 일에 대한 책임을 가질 자의 자질이다. '가정 총무'는 집안일의 총책임을 가진 자, 즉 가사 관리인이다. 그의 주인은 모든 소유를 요셉의 손에 위임하였다.

[5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 . . .

주인이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요셉 때문에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고 그 복은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다. 본문은 책임자의 역할이 큼을 보이는 것 같다. 무슨 일을 책임 맡은 자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맡은 모든 일에도 복을 주실 것이다.

[6절]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 . . .

주인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요셉의 손에 위임하였고 자기가 먹는 식품 외에는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요셉은 그만큼 주인의 신임을 얻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윗사람의 신임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남에게 신임을 얻는 인격이 좋은 인격이다. 요셉은 또한 용모도 잘 생겼고 보기에도 아름다웠다고 본문은 말한다.

[7-9절]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 . . .

요셉의 종살이가 형통한 것 같은 때에 그에게 시험이 닥쳐왔다. 사람에게는 세상 사는 동안 많은 시험이 있는 것 같다. 요셉의 시험은 그 주인의 아내로 인해 왔다. 그 주인의 아내는 단정치 못했고 욕망을 품은 눈으로 요셉을 쳐다보며 자기와 동침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을 거절하며 그에게 말했다. "나의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은 바른 양심과 도덕성이 있었다. 그는 간통이 큰 악이며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짓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10-12절]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 . . .

주인의 아내는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다. 그 여자는 전혀 도덕성이 없는 여자이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 여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고 그 집 사람은 아무도 거기 없었다. 그 때 그 여인은 요셉의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갔다. 그는 범죄할 만한 위기를 잘 모면하였다. 음행의 죄는 기회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13-19절]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 . . .

그런데 그 주인의 아내는 요셉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 그는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주인이 사온 히브리 사람이 자기를 희롱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요셉이 그와 동침하고자 들어왔으나 그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그 옷을 그에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단정치 못한 말과 행동을 반성하고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요셉이 나쁜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 잘못이 없는 남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은 배갑절이나 더 나쁜 일이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없는 일을 이렇게 그럴 듯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 주인은 "이런 식으로 당신의 종이 내게 행하였다"(원문)는 아내의 말을 듣고 심히 노하였다.

[20-21절]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 . . .

주인은 요셉을 잡아 감옥에 넣었다.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다. 요셉은 이렇게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비록 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감옥책임자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 '전옥'은 '감옥책임자' 즉 오늘날 말로 하면 '교도소장'이다. 요셉에게 고난은 있었지만, 그는 그가 처한 현실에서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다.

[22-23절]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 .

본문은 2-3절과 비슷하다. 감옥책임자는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요셉의 손에 맡겼고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였고, 감옥책임자는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그 까닭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기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

창세기 39장의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고난을 겁내지 말자. 요셉이 당한 고난은 컸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았고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애굽에 종으로 팔렸다. 야곱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하루아침에 애굽 사람의 종이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그는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감옥에 갇혔다. 요셉은 많은 고난을 겪었다.

시편 34:19은 의인에게 고난이 많으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5:19). 또 그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다(요 16:33).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행 14:22), 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다(딤후 3:12).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을 겁내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형통케 하심을 사모하자. 요셉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입었고(2, 3, 21, 23절) 형통한 자가 되었다(2, 3, 23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며 거기에는 모든 복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위로와 힘과 용기를 얻고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고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와 구원을 얻고, 전쟁의 승리도 건강도 경제적 안정도 얻을 것이다.

성도는 때때로 고난의 현실을 통과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형통한 자가 될 수 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체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었다. 여호수아 1:5, 9,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형통케 하심을 사모하며 체험하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왜 요셉과 함께하셨는가? 그것은 그의 경건함 때문이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죄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중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주인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큰 악임을 알았고 그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썼다. 경건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사는 자는 확실히 형통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1편은 사람이 악인과의 교제를 멀리하고 주야로 성경을 묵상할 때 복됨을 증거했다(시 1:1-3).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실 수 없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에서 실패한 이유이었다. 시편 5:4-6은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여 형통의 복을 누리려면, 그는 무엇보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는 경건하게 살아야 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성산에 하나님과 함께 거할 자이며(시 15:1-3) 그런 자가 형통함의 복을 얻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런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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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6. 천주교회는 참 교회인가?

세계교회협의회(WCC) 초대 총무이며 명예 회장인 빌렘 비셜트 후프트는 세계교회협의회와 천주교회의 적극적 협력관계에 대해, "우리가 반복해 말하는 바는, 세계교회협의회 내의 교회들과 천주교회는 이제 모두 한 동일한 교회연합운동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전 총무인 에밀리오 카스트로도, "현재 세계교회협의회와 천주교회 간의 관계는 매우 긍정적이며 모든 종류의 우호 관계들이 있다"고 하였다.

천주교회는 1959년까지 교회연합운동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교황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의 노력으로 연합운동에 대해 적극적이게 되었다. 1962년에 시작된 제2 바티칸공의회는 그 특별한 전환점이었다. 천주교회는 아직 세계교회협의회의 회원이 아니고 회원권을 구하고 있지도 않지만 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1968년 이후, 10-15명의 천주교 신학자들이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에 정회원으로 참여해왔다. 천주교회는 정규적으로 세계교회협의회의 주요 대회들에 참관인으로 참여하였고 세계교회협의회의 프로그램 작성 간사 중에도 들어 있다. 1993년,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 세계대회의 120명 회원 중 26명은 천주교인이었다.

1997년 8월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는 수세기 동안의 천주교도들과의 분열의 싸움이 끝났고 과거의 정죄들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진술을 승인하였다. 1998년 1월 우리나라의 성공회 대성당에서 열린 기독교 일치주간 연합예배에 개신교회, 성공회, 천주교회, 정교회 등이 참여하였다. 1999년 현재, 천주교회는 56개국 교회협의회들의 정회원이다. 교회연합운동에서 모종의 교황 제도를 받아들이려는 경향은 처음부터 있었다.

미국교회협의회와 미국 천주교 주교대회는 매년 문안과 사절단을 교환하며, 커져가는 협력의 한 상징으로, 교회협의회의 회장이며 미국의 전(前) 유엔 대사 앤드류 영이 199년 9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천주교 성당에서 그의 취임식을 거행했다.

1999년 10월 31일, 루터교 세계연맹 크리스티안 크라우제 주교와 교황청 일치위원장 에드워드 카시디 추기경은 신교와 구교의 500년 만의 화해 사건으로 '칭의의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에 서명하였다.

2000년 1월 18일 로마의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2000년 대희년 교회일치기도회에 천주교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영국교회(성공회) 수장 조지 커레이 캔터베리 대주교와 동방정교회 대표 헬리오폴리스 수석대주교 등이 참여하였다.

2000년 4월 앨버타 에드몬튼에서 열린 회의에서 캐나다 교회협의회는 천주교회 온타리오 주교인 안드레 발리를 새 지도자로 선출하였다. 천주교인을 회장으로 선출한 것은 창립 56년 만에 처음이다.

덧붙여, 오늘날의 은사운동은 천주교인과 개신교인 간의 접착제로 나타난다. 교회연합운동은 이처럼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연합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개신교회는 천주교회를 우상숭배적이고 변질된 적그리스도적 집단으로 간주해 왔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회들이 천주교회와 친근히 교류하며 일치를 추구하는 것을 볼 때, 천주교회가 16세기의 모습과 달라졌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천주교회는 교회와 전통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와 동등히 여기며 로마 교회의 우위성과 교황의 사도 베드로 계승성을 주장하며, 심지어 로마 교황이 그 직분에 따라 믿음과 윤리에 관한 교리를 정의할 때 그는 무오(無誤)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교황 무오의 교리는 성경에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모든 기독교 교리의 기초인 성경의 신적, 절대적, 최종적 권위의 교리에 가장 모순된다. 또 교황 무오의 교리는 교황의 칙령들의 실제 역사에도 모순된다. 또 교황들 중에는 두드러지게 부도덕한 자들도 있었다. 또 교황들이 상당한 정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주님의 모습과 다르다. 주께서는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하셨다(마 20:28). 그는 정치적 권력을 소유하지도 행사하지도 않으셨다.

천주교회의 교황은 교회의 머리나 무오한 지도자가 아닐 뿐 아니라, 참되고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영광을 부당하게 탈취한 자이다.

또 천주교회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에 대해 그의 무죄한 잉태와 승천을 선언하였고 또 마리아에게 기도할 것을 가르친다. 또 천주교회는 마리아에게 만물 위의 여왕, 천상과 지상의 모후, 보혜사, 중보자 등의 여러 신적인 명칭을 돌린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밝히 가르치는 대로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기도해야 하며,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신적 경배와 기도를 올려서는 안 된다(출 20:3; 마 4:10). 또 우리의 구주와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요 14:6; 행 4:12; 딤전 2:5). 마리아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 죄인에 불과하다(눅 1:38). 우리는 성경에서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높임을 볼 수 없고 도리어 그 반대의 예를 본다(마 2:11; 눅 11:27-28; 마 12:50).

그러므로 천주교회의 마리아 교리는 비성경적이며 우상숭배적이다.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그를 '보혜사, 중보자, 천상 천하의 어머니와 여왕' 등으로 부르는 행위는 분명히 우상숭배이다.

또 천주교회는 칭의(稱義, 의롭다 하심)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복음 진리를 부정하고 정죄한다. 또 칭의와 관련하여, 천주교회는 신자들의 죄들의 속죄가 남아 있다고 가르친다. 여기에서 선행과 기도를 통한 속죄의 교리와 연옥의 교리 등이 나온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완전하며 오직 그 공로에 근거하여 죄인이 죄씻음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사실을 밝히 가르친다(롬 3: 21-22; 4:4-5). 또 사죄와 칭의는 완전하다(롬 8:1; 10: 4; 히 10:10, 14). 성도들의 기도와 선행은 사죄와 칭의의 수단이 아니고 그 결과요 열매이다. 그러므로 천주교회의 칭의론은 복음의 왜곡이며 변질이요 이탈이다. 그것은 저주받을 다른 복음이다(갈 1:8-9).

또한 천주교회는 성찬에 대해서 우리와 다르게 가르친다. 천주교회에서는 성찬을 미사라고 부른다. 천주교회는, 미사가 속죄 제사로서 거기에서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며 그리스도께서 미사 때마다 반복하여 죽으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천주교회의 미사 교리는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사역에 대한 왜곡이요 모독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요 19:30).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성취하셨음을 나타낸다. 또 히브리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음을 강조하였다(히 7:27; 9:12, 26, 28).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위해 더 이상 속죄의 제사가 필요치 않다(히 10:18).

이상의 비성경적, 이단적 오류들을 볼 때, 우리는 천주교회가 참 교회가 아니며 신약교회 2천년 역사상 대표적인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회를 참 교회가 아니고 적그리스도적이고 우상숭배적인 교회라고 판단하였다.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변하지 않았고 그것은 분명히 비성경적이다. 그렇다면 천주교회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태도는 오늘날도 여전히 정당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교회연합운동의 천주교회에 대한 우호적 태도와 관계는 종교개혁의 귀한 유산을 저버림이며 분명히 성경적 교제의 원리에 위반된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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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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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기독교윤리. 225면. 4,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 96쪽. 1,000원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중국어 역). 96쪽.

  [추천하는 책]

◆ 김효성, 공산주의 비평. 28쪽. 무료.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 이상돈,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559쪽. 18,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