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3월 11일 [제11권 10호] ◆ 매주 발행 ◆ |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
지난오전설교: 믿음의 의 [창세기 15장 1절]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출하고 돌아온 후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다. 이상(異常)은 하나님께서 옛날 자신을 특별하게 계시하시던 방식들 중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에는 꿈이나 이상(異常)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민 12:6).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람은 이상 중에 하나님을 뵈옵게 되니 두려웠을 것이며 또 아마 북방 연합군이 다시 쳐들어올 지 모른다고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시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에게 "나는 너의 방패니라"고 말씀하셨다. 방패는 전쟁에서 적군의 칼과 창을 막는 무기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공격을 막아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뜻이다. 과연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람에게 "너의 상은 매우 크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는 원어는 "너의 상은 매우 크도다"라는 뜻이다.1)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조카 롯를 위해 행한 희생적 사랑과 봉사, 그리고 소돔 성의 물품들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 등의 선한 행위에 대해 큰 상으로 갚기를 원하셨다. 사람의 선행은 보잘것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상을 주신다. [2-5절]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無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라고 질문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때까지 그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브람은 자기 집에서 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그의 상속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3절에 '내 집에서 길리운 자'라는 원어는 '내 집의 아이'라는 뜻으로 영어 성경들은 '내 집에서 난 자'라고 번역하였다(KJV, NASB). 그는 아브람의 집에서 종으로 나서 길리운 자이었던 것 같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했다. 하나님께서는 다메섹 엘리에셀이 너의 상속자가 아니며,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며, 네 자손들이 하늘의 별같이 셀 수 없이 많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의심 없이 믿었다. 아브람은 자신과 자신의 아내가 늙었고 자녀 출산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을 믿었다. 로마서 4:19-21,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그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그의 의(義)로 여기셨다. 하나님은 그의 착하고 의로운 행위를 의로 간주하지 않았고 그의 믿음을 의로 간주하셨다. 사람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 간주될 만큼 완전치 못하며 부족투성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선행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아브람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일의 본이 되었다(롬 4:1-3; 23-25). [7절]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주셨던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다. 그는 가나안 땅을 그에게 기업으로 주기 위해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란에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창 12:1)은 단지 하란에서가 아니고, 이미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에게 암시적으로라도 주어졌던 것 같고, 그렇다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자녀들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던 것(창 11:31)은 아마 아브람의 요청 때문이었을 것이다. [8-11절]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된 암소와 3년된 암염소와 3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확증의 표를 요청했다. '무엇으로'라는 말은 그의 불신앙을 나타내기보다 믿음을 위한 확증의 표를 구한 것이다. 훗날에 기드온이나 히스기야도 비슷한 요청을 하였다(삿 6:37; 왕하 20:8).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3년된 암소, 3년된 암염소, 3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제물로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람은 그것들을 준비하고 그 중간을 쪼개었다. 제물의 중간을 쪼갠 것은 언약을 맺는 당사자 어느 한 쪽이 그 언약을 어기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이었던 것 같다(렘 34:18). 솔개가 제물의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그것을 쫓았다. [12-14절]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어 이방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400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며 그 후에 하나님이 그들을 징벌하심으로 그들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대로 이루어졌다. 당시에 그들은 애굽에서 심한 학대와 고통을 받고 있었고(출 1:11, 14; 2:23-24; 3:7, 9), 그들은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 만에 그 괴롭힘과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나왔다(출 12:40). [15절]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다시 번역하면, "또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라. 너는 장수하다가 장사되리라"(원문, KJV).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표현은 사람의 영혼이 몸의 죽음 후에도 계속 존재하며 어떤 장소에 모임을 암시한다. 이것은 영혼불멸에 대한 성경의 한 증거이다.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일 뿐만 아니라, 또한 불멸적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영혼은 몸이 죽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곳에 집결된다. 성경은 그 장소가 천국과 지옥이라고 말한다. 의인의 영혼은 천국에 올라가 몸의 부활 때까지 안식하지만, 악인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워 마지막 심판 때까지 고통을 당할 것이다(눅 16:19-31). [16절] 네 자손은 4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4대 만에'라는 말씀도 그대로 성취되었다. 예를 들어, 야곱이 애굽에 내려간 때로부터 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에 이르는 4대째에 그들은 애굽에서 나왔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땅의 여러 족속을 대표한다(창 48:22; 왕상 21:26; 암 2:9-10). 또 아브람은 현재 아모리 족속 곁에 살고 있다. 창세기 14:13은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고 말한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는 말씀은 후에 있을 가나안 땅 정복이 그 곳 거주민들의 가득한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일 것을 암시한다. 과연, 레위기 18:24-25은 증거하기를, "너희는 이 모든 일[심히 음란한 일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고 하였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상당한 세월이 흘러야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 약속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신약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과 천국의 약속도 꼭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7-21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쪼갠 제물들 사이로 지난 연기 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은 하나님을 상징한 것 같다(출 3:2). 그것은 아브람이 하나님께 요청한 하나님의 표증이었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다시 땅을 약속하시고 그 땅의 경계와 당시에 거기 살고 있었던 열 족속들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후에 다윗과 솔로몬 왕 시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의 그 경계까지 거의 확장되었다(삼하 8:6, 14; 왕상 4:21, 24). 결론적으로, 창세기 15장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방패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는 너의 방패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모든 성도의 방패이시다. 다윗은 시편 18:2에서 하나님을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방패라고 고백하였다. 세상에는 환난과 시험이 많고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대적들도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이시요 방패가 되신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살자. 둘째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실 상은 매우 크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의 상은 매우 크다"고 말씀하셨다. 시편 19:11은 "또 주의 종이 이로[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운동 선수처럼 열심히 달려 썩지 않을 상을 얻으라고 교훈하였다(고전 9:24-25). 예수께서는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약속된 상을 기대하며 열심히 의와 선을 행하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의를 주신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그의 의로 간주하셨다. 우리의 구원도 그러하다.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자. 그러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그는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의 의가 되시며 현세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내세에서 영생의 영광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비록 오랜 세월 후일지라도 반드시 성취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과 영생의 약속도 꼭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자. ----------------------------------------------------------------------- 지난오후설교: 안락사(Euthanasia)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는 '편안한 죽음'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고통 중에 있는 생명을 고의적으로 죽이거나, 물이나 공기나 음식물 등 자연적 생명유지수단을 중단시킴으로 죽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자비로운 살인'(mercy killing)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오늘날 세상에는 안락사를 허용하려는 경향이 있고 또 안락사의 개념이 점점 더 확대된다고 한다. 안락사는 화란에서 많이 시행되는데, 한 보고서에 의하면, 1995년 화란의 안락사(安樂死)의 거의 3분의 2가 법이 요구하는 대로 보고되지 않았다.2) 1999년 화란에서 7천명 이상이 안락사로 죽어갔다.3) 또 화란에서 안락사는 가망 없는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부터 만성적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 또 신체적 질병을 위한 안락사로부터 심리적 고통을 위한 안락사로, 또 자발적 안락사로부터 비자발적 안락사로 움직여왔다고 지적된다.4) 미국에서도 '죽음 박사'라는 별명이 있는 잭 케보키안은 적어도 45건의 '자살'을 도왔으며 그 중 많은 이들은 최종적으로 아픈 상태가 아니었고 몇 경우는 질병의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5) 안락사를 허용하는 생각이 교회 안에도 들어왔다. 1991년 미 연합그리스도의 교회(UCC)는 안락사를 지지하고 자살을 허용하는 최초의 대교단이 되었다.6) 1999년 미국의 프린스톤 대학교의 생명윤리학 교수인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갓난 아기가 돼지와 소와 개보다 더 큰 생명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척추장애나 혈우병(血友病) 등을 가진 자를 죽일 권한을 환자들이나 의사들에게 주기를 원한다.7) 그는 "불구가 된 어린아기를 죽이는 것은 한 인간을 죽이는 것과 도덕적으로 똑같지 않다"고 말했다.8) 안락사 옹호자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두어 가지다.9) 첫째로, 안락사 옹호자들은,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고 심각하게 고통스런 생활은 죽음보다 못하기 때문에 안락사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인본주의(humanism)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든 일을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인간이 모든 것의 기준이라고 본다. 인본주의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자들은 자살, 낙태, 안락사의 권리를 주장하며 그런 행위를 사생활의 자유와 권리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로, 안락사 옹호자들은 안락사가 선하고 자비로운 일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안락사가 심각하게 고통당하는 병자들을 그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때문에 병자들 자신에게나 가족들에게 선하고 자비로운 행위라고 말한다. 그들은 또 그것이 가족의 무거운 경제적 부담이나 사회적 부담을 덜어준다고 말한다. 그들은 심지어 노인은 죽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하나님 앞에서나 이성적으로, 양심적으로나 올바르지 않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하지 말라는 그의 계명을 어기는 악한 일이다. 출애굽기 20:13, "살인하지 말지니라." 창세기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선한 목적이 악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둘째로, 사람의 생명을 죽일 권한은 오직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만 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벨사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사람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이시다(단 5:23). 또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 밤에 우리의 영혼을 도로 찾으실 수 있는 분이시다(눅 12: 20). 인간은 그 누구도, 합법적 사형이나 전쟁 외에, 남을 죽일 권리가 없다. 아무리 괴로운 형편과 처지라 할지라도 우리는 선지자 요나처럼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고 구하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욘 4:3). 셋째로, 사람은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이며 얼마나 죄악된지를 깨닫고 또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거룩과 의임을 깨닫고 또 천국이 얼마나 사모할 만한 곳인지 깨달아야 한다. 다윗은 병중에서 사람의 삶이 그림자 같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시 39:6). 또 시편 저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고백하였다(시 119:67, 71). 넷째로, 이성적으로, 양심적으로 생각할 때도, 세상의 것 중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물질적 이익이 생명의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생명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비인간적인 생각이다. 주께서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셨다(막 8:36). 안락사는 일종의 살인 행위이다. 인간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그것은 자신이나 타인에 의해 고의적으로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 남의 생명에 대한 고의적 손상은 분명히 살인이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해야 한다(벧전 4:19). 단지, 의학적으로 치유 불가능한 경우, 의학적, 인공적 수단(인공호흡기 등)이 병을 고치기보다 단지 죽음의 자연스런 진행과정을 방해할 뿐이라면, 그러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항하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은 죽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지 않고 대항하여 죽음을 피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치유 불가능한 질병이라는 의사의 판정이 있는 경우, 환자가 동의한다면 혹은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가족들이 동의한다면, 무의미한 생명 연장의 인공적, 의학적 조치는 중단될 수 있다고 본다.
1) 히브리어 원어성경의 마소라 액센트가 그러하다. NASB 영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했다. 2) Journal of Medical Ethics, February 1999; World, 13 March 1999; Calvary Contender, 1 April 1999. 3) Byron Northwick and Edward Fehskens, "Euthanasia: A Matter of Death and Life," Christian News, 6 December 1999, p. 6. 4) Reader's Digest, September 1997. 5) Calvary Contender, 15 September 1997. 6) Calvary Contender, 1 August 1991. 7) New Americans, 27 September 1999; Calvary Contender, 15 October 1999. 8) Reader's Digest, October 1999; Calvary Contender, 15 October 1999. 9) 노르만 L. 가이슬러, 기독교 윤리학 (기독교문서선교회, 1992), 199-202쪽.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추천하는 책]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