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7월 15일 [제11권 28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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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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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야곱의 결혼

[창세기 29장 1-6절]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 . . .

야곱은 고향을 떠나 외롭고 쓸쓸하게 먼 곳 동방 사람들의 땅 곧 하란 가까이에 왔다. 그는 한 우물곁에서 목자들이 세 무리의 양떼를 누이고 물 먹일 때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란에서 온 자들이었다. 야곱은 그들에게 나홀의 손자 라반의 안부를 물었다. 그들은 라반이 평안하다고 대답하며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떼를 몰고 오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후에 그의 아내가 될 라헬을 야곱은 하란의 들판 우물곁에서 이렇게 처음 만났다. 야곱의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신비롭다.

[7-14절] 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 . . .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양떼를 몰며 왔다. 야곱은 자기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양떼를 보자 나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떼에게 물을 먹였다. 야곱은 라헬에게 입맞추며 소리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조카이며 리브가의 아들임을 말했다. 쓸쓸했던 긴 여행으로 그의 가슴은 눈물로 가득하였다. 라헬은 달려가서 라반에게 고했고 라반은 조카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였다. 야곱은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였고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였다.

[15-20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 . .

라반이 야곱에게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고 물었을 때 야곱은 그의 딸 라헬을 사랑하므로 그를 아내로 주시기를 요청하며 그러면 외삼촌에게 7년을 봉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라반은 그 일을 허락하였다. 이렇게 야곱은 아내를 얻기 위해 7년 동안 수고로운 봉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7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고 기록한다. 사랑은 수고로운 긴 7년간을 수일같이 여기게 만들었다. "7년을 수일같이!"--이것은 야곱의 사랑의 힘을 잘 증거한다. 사랑의 힘은 참으로 크다.

야곱의 결혼은 이렇게 준비되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섭리하신다. 그러나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롬 11:36). 야곱의 결혼은 라헬에 대한 참된 사랑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결혼은 사랑의 관계이다. 결혼의 중요한 조건은 사랑이다. 그 외의 다른 조건들은 부수적일 뿐이다. 사랑 없는 결혼은 삭막할 것이며 또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21-25절]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 . .

7년의 기한이 찼다. 야곱은 라반에게 아내를 주어 그에게 들어가게 하시기를 요청했다. 라반은 사람들을 모아 혼인 잔치를 열었고 저녁에 그 딸 레아를 그에게 데려다주었다. 그는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에게 시녀로 주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이었다. 그는 라반에게 자기가 라헬을 위해 봉사하였는데 왜 그를 속이셨는가 하고 물었다. 전에 부친을 속였던 야곱은 이제 그 자신이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했다. 그가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갚으심으로 과거의 그의 부족을 기억나게 하셨을 것이다. 사람은 행한 대로 하나님께 받는다.

[26-30절]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 .

라반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이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라고 말하며 "이를 위해 7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해 또 7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7일을 채우라"는 원어는 "이 한 주간을 채우라"는 말로서 레아를 위한 이 혼인 잔치 주간을 채우라는 뜻이라고 본다(KJV, NASB, NIV, Amplified Bible). 야곱이 7일을 채웠고 라반은 그의 딸 라헬도 그의 아내로 주었고 그의 여종 빌하를 그에게 시녀로 주었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였고 다시 7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다.

이렇게 하여 야곱은 원치 않게 두 아내, 그것도 형제인 두 아내를 얻게 되었고 또 7년간의 수고로운 봉사를 더하게 되었다. 야곱은 그의 두 아내로 인해 심적 고통이 컸을 것이다. 일찍이 아브라함이 하갈로 인해 그런 고통을 당했었다(창 21:11). 또 야곱은 결혼을 위해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수고로이 보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혹독한 고난의 훈련 과정이었다. 인간의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는 그의 종들을 고난을 통해 단련시키신 후 크게 쓰셨다. 요셉이 그러했고 모세가 그러했으며 다윗이 그러하였다.

[31-35절]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

섭리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레아가 미움받음을 보셨고 그를 돌아보셨다. '총이 없다'는 원어(세누아)는 '미움을 받다'는 뜻이다. 한 남자가 두 여자를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하나를 더 사랑하면 다른 하나는 미움을 받는 것이 된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이치이다(마 6:24).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했고 레아가 아무 잘못이 없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레아를 동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태를 여심으로 그를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레아를 통해 야곱에게 자녀들을 주셨다. 야곱의 자녀들은 먼저 레아를 통해 출산되었다. 출산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여셨다고 말한다(31절). 하나님은 여인들의 태를 열기도 하시고 닫기도 하신다(창 20:17-18; 30:2, 22; 삼상 1:19).

레아는 남편 사랑을 받지 못했던 과정을 통해 경건의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사람은 고난 중에 인격 단련을 받는다. 레아는 첫아들을 낳고 이름을 르우벤이라 지으며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아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라고 말했고, 둘째 아들을 낳고 "여호와께서 내가 미움받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라고 말하며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지었다. 그는 셋째 아들을 낳고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고 말하며 그 이름을 레위라 지었고, 넷째 아들을 낳고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고 말하며 그 이름을 유다라고 지었다. 그가 지은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모하며 의지했는지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창세기 29장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사랑의 힘을 본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므로 7년을 수일같이 수고하였다. 남녀간의 사랑도 이러한데,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더 그러하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속죄제물로 내어주셨다(요 3:16; 롬 5:8). 우리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우리는 그의 모든 계명을 즐거이 지킬 수 있고 그의 모든 일에 헌신하며 충성할 수 있다(요 14:15; 21:15). 또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된 자들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벧전 1:22; 4:8).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므로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수고하였듯이,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께 거룩히 드리며 하나님의 일에 수고하며 죽도록 충성하자.

둘째로, 우리는 현실의 고난을 달게 받자. 야곱의 하란 생활은 고난의 생활이었다. 그는 아내를 얻기 위해 7년을 두 번, 즉 14년간이나 수고를 하였다. 하나님은 야곱을 고난의 현실에 두셨고 고난 중에 그를 단련시키셨다. 하나님의 섭리로 주시는 고난들은 우리의 많은 부족에 비하면 오히려 그의 선하신 처분이시다. 또 그 고난의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이 있다. 성도는 고난들을 통해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믿고 바라며 의지하게 되고 성결하게 되고 또 겸손하게 된다. 우리의 인격은 고난을 통해 거룩하고 온전하게 된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정금같이 단련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단련된 인격]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한다(롬 5:3-4). 우리는 고난의 현실을 불평하지 말고 달게 받자.

셋째로, 우리는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선을 베푸심을 깨닫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길을 인도하셨고 또 레아의 길을 인도하셨다. 특히 그는 레아가 미움을 받음을 보시고 그를 동정하셨다. 그는 그에게 자녀들을 주심으로 그를 위로하셨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그 분은 지금도 온 세상을 홀로 다스리신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그에게 우리의 모든 삶을 의탁하며 그와 동행하며 그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자.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요점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구원이며 영생이다. 그 분을 믿고 사랑하며 순종하는 것이 인생의 참 행복이다. 여러분은 그 구원, 그 영생, 그 행복을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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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우리가 사는 사회가 바르고 좋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시민이 바라는 바이며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사실상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의 심령이 악하므로 주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악인들을 제거하시고 의의 세계를 만드시기 전까지 세상에는 불의와 불법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직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온 세상의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다. 사도행전 3:19-21,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속사회가 주의 재림 때까지 조금이라도 바르고 좋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대해 가지는 책임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속 국가의 위정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로마서 13:1-2, 4-5,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 . .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베드로전서 2:13-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베드로전서 2:17, "왕을 공경하라."

이 말씀들에 의하면, 우리는 세속적 위정자들에게 굴복해야 한다. 그들이 가진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우리가 그들에게 복종치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라고 불리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고 복종해야 한다. 사회에 위정자들을 두신 것은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이다. 이러한 은혜 때문에 세속 사회는 너무 급격하게 부패되거나 타락지 않으며 하나님의 허락하신 기간 동안 어느 정도 그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법령을 공포할 때, 우리는 그보다 더 높으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법령에 복종할 수 없고 그것을 저항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우상에게 절하라는 바벨론 왕의 명령을 어기고 풀무불에 던지웠고(단 3:5-30),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지울 줄 알면서도 여전히 그의 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어놓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였다(단 6:10). 또 사도들은 복음 전파를 중지하라는 유대인 공회의 명령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말하면서 복종치 않았다(행 4:19).

그러나 그런 때에도 우리는 오직 합법적, 비폭력적 방법으로 저항해야 한다. 잠언 24:21,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또 부득이한 경우, 성도는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세속적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과 동일하다. 예레미야 29: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우리는 우리 나라와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세속적 위정자들을 위해 세금을 내어야 한다. 불법적인 탈세는 그리스도인에게 옳지 않은 일이다. 로마서 13:6-7,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주께서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일을 부정하지 않으셨다. 마태복음 22:21,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두 영역에서 살고 있고 그 두 영역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세속 사회의 개선을 위해 다음 몇 가지의 일들을 실천해야 한다.

첫째, 전도하는 일이다. 성경이 보이는 사회 개선의 근본적 방법은 심령의 구원을 통해서이다. 인간의 본성은 심히 부패되어 있어 치료 불가능하므로(렘 17: 9) 단순히 어떤 강압적 법규나 최선의 교육 등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거듭남을 통해서만 죄성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도는 사회의 개선에 대한 최상의 성경적 대답이다. 잠언 16:6은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고 말한다.

둘째, 모범을 보이는 일이다. 성도는 말과 행위로 세상 사람들에게 의와 거룩과 선과 진실의 본을 보여야 한다. 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디모데전서 3:7, "[장로는]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기독교가 과연 진리 운동이고 새 생명 운동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사회 속에서 빛으로, 모범된 인격자들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정치, 경제, 법률, 과학, 교육, 신문 방송, 예술 등 직업의 각 분야에서 모범을 보임으로써 우리가 책임 있는 윗사람일 경우 직접적으로 혹은 우리가 아랫사람일 경우 간접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하며 또 기회 있을 때마다 다른 동료들을 겸손히 설득하며 그들의 양심에 호소함으로써 사회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 사회의 개선을 위한 합법적 일들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적 악을 제거하고 사회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고 교회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와 국가는, 비록 그 구성원이 서로 중첩되지만, 그 성격과 존재 목적과 기능이 엄격히 다르다. 요한복음 18:36,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자들의 모임이며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임무를 가진다(요 4:24; 엡 4:12; 마 28:19). 그러므로 국가가 교회의 활동들에 간섭해서는 안 되듯이, 교회도 국가의 활동들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단체로서의 교회가 세속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바일 뿐 아니라 주께서 성경에 가르치신 교회의 본분에서 이탈하는 행위라고 본다. 교회는 단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진술대로, "비상한 경우들에 겸비한 청원의 방식으로; 혹은 국가의 위정자들로부터 요구된 경우에 양심의 만족을 위해 충고의 방식으로"(31: 5) 국가와 관계되는 세속적 사건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단체로 세속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리스도인 개인이 세속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나 소명감을 가진 정치가, 국회의원, 공무원, 법조인 등으로서 그리스도인은 국가나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정당하게 활동할 수 있다. 여기에, 단지 물질적 여유나 육신적 행복이나 출세 등의 근시안적 목표를 넘어서 고상하고 원대한 꿈과 비전을 품는 그리스도인 인재들이 요청된다.

물론, 사회 개선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참여는 혁명이나 과격한 폭력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혁명이나 폭력적 방법은 악하며 사회의 발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시민으로서 그가 속한 사회가 허용하는 합법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합법적 시위는 필요하며 선거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회의 개선은 매우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인간 본성의 개조 없이 사회 개선이나 사회 정의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인내와 여유를 가져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속에도 불완전이 있다면 세속사회 속에서 온전함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실상,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자들에게 참되고 온전한 도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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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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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 96쪽. 1,000원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중국어 역). 96쪽.

  [추천하는 책]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