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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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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우리는 신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는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유산을 받은 모든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신념이다. 누구든지 무엇을 주장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하고 누구든지 무슨 이의를 제기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제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 목회 전반, 목사의 설교나 지교회 혹은 전체 교회의 모든 활동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을 제쳐놓고 무슨 활동을 계획하거나 수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묵상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성경 명칭은 본서의 맨 처음의 두 단어인 웨엘레 쉐모스 (“그리고 이것들이 ~의 이름들이다”)이다. 출애굽기(Exodus)는 헬라어 70인역에 따른 명칭이다. 본서가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되는 것은 그것보다 먼저 기록된 책인 창세기와 한 묶음인 것을 암시한다.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은 한 묶음이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쓴 책이다. 그것은 정통 유대교가 증거하는 바요 신약성경이 확증하는 바이다.

출애굽기의 주요 내용은 애굽에 거주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사건과,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성막을 건립한 일들에 관한 것이다. 1-19장은 출애굽 사건을, 20-24장은 율법을 받은 것을, 25-40장은 성막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와 그 지시대로 건립한 일을 기록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 그가 온 천하에 유일한 참 신(神)이심과 그의 구속(救贖)의 사랑과 능력을 증거하셨고, 또 그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어떻게 신실하게 행하신 것을 증거하셨다. 또 그는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과 여러 가지 율법을 통해 자신의 도덕적 의지를 알리셨고 또 이로써 인간의 죄악됨을 깨우치기를 원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성막제도를 통해 장차 오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증거하셨고 또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교훈하셨고 또 그가 친히 자기 백성 가운데 함께 계심을 증거하셨다.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Karl Feyerabend,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to the Old

Testament.

Holladay 

William L. Holladay,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NBC

The New Bible Commentary. IVP

 

 

제목 차례

1장: 이스라엘의 번창과 고난

2장: 모세를 준비시키심

3장: 모세를 부르심

4장: 모세를 보내심

5장: 바로의 첫 반응

6장: 하나님의 동일한 명령

7장: 피 재앙

8장: 개구리, 이, 파리 재앙들

9장: 악질, 독종, 우박 재앙들

10장: 메뚜기 재앙과 흑암 재앙

11장: 장자 재앙

12장: 유월절과 출애굽

13장: 하나님의 인도하심

14장: 홍해의 기적

15장: 모세의 노래

16장: 만나와 메추라기

17장: 르비딤 사건들

18장: 이드로의 방문

19장: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내려오심

20장: 십계명

21장: 공의의 보응--종, 살인

22장: 도둑질, 음행

23장: 공정함, 절기 등의 법

24장: 언약서

25장: 성막 건립 지시--법궤, 떡상, 등대

26장: 성막, 띠, 휘장

27장: 번제단, 성막뜰, 등불

28장: 대제장의 옷

29장: 제사장의 임직

30장: 분향단, 물두멍

31장: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심

32장: 금송아지 사건

33장: 단장품을 제함

34장: 두 번째 40일

35장: 자원하는 예물을 드림

36장: 성막을 만듦

37장: 법궤, 떡상, 등대, 향단을 만듦

38장: 번제단, 물두멍, 성막뜰을 만듦

39장: 제사장의 옷을 만듦

40장: 성막을 세움

 

 

1장: 이스라엘의 번창과 고난

[1-7절]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 . . .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는데,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며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허리에서 나온 자들](원어)이 모두 70명이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즉 고센 지방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 그들은 애굽에 정착한 이후 모세가 출생할 즈음까지 약 350년 동안 번창하였다. 그것은, 그들로 번창케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었다.

[8-11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 . . .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렸는데, 그는 그 백성에게 말했다.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그는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애굽의 신왕국 시대의 왕을 가리켰다고 본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간 때는 애굽의 중왕국 시대 제12왕조 중 센우스레트 3세(주전 1888년-1852년경) 때라고 생각되며, 모세 시대는 신왕국 시대 제18왕조 중 투트모세 1세(주전 1539년-1514년경) 때라고 생각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빠른 번창을 매우 염려하였고 그들을 탄압할 한 정책을 세워 국고성들을 건축하게 하였다. 이스라엘에게는 번창케 하신 복도 있었으나 압제의 고난도 있었다.

[12-14절]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 . . .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였고,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해 근심하여 그들의 일을 더 엄하게 하였고 고역[고된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였다.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들판에서 하는 여러 일들](원어)이었고 그 시키는 것이 다 엄하였다. ‘들판에서 하는 여러 일들’은 농사뿐 아니라, 그 외의 여러 일을 포함할 것이다.

[15-19절]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 . . .

애굽 왕은 또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해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고 지시하였다. 그것은 강제 노역으로 기대되었던 인구 억제책이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살렸다. 애굽 왕은 산파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아이들을 살렸느냐?” 산파들은 바로에게 대답했다. “히브리 여인들은 애굽 여인들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들이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성경이 그 말의 진위(眞僞)를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일 수 있고 사실일 것이다.

[20-21절]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 . . .

하나님께서는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은혜를 베풀다’는 원어는 ‘선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고 복 주신 것을 보면, 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였다. 이 말은 7절과 12절에 이어 본장에서 벌써 세 번째이다. 또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셨다[그들의 집들을 만드셨다](원문).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가정들을 복 주셨다.

[22절]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 . . .

그러므로 바로는 그 모든 백성에게 명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자아이가 나면 나일강에 던지고 여자아이이면 살리라고 하였다. 무서운 법령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왔다.

1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번창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것이었는데(창 12:2; 13:16; 17:2, 6; 18:18; 22:17; 26:4; 28:14; 46:3)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옛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셨던 것같이, 그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세계복음화라는 약속을 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충만히 성취된 것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더 열심으로 전도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난도 있음을 알자. 에스겔서에 암시된 대로(겔 20:5-8),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우상숭배의 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이 당한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이었을 것이다. 또 그들은 고난을 통해 애굽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더 사모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고난을 당했듯이, 신약 성도들도 세상에서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신약성경의 교훈이다. 또 주 예수께서는 그의 재림 직전에 배교와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지진 등의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4장). 신약 성도에게도 고난이 있다. 그러나 성도의 고난은, 그의 인격의 남은 죄악성을 제거시키고 그의 인격을 성숙시키는 성화의 과정이며, 또 이 세상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하나님과 천국만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는 유익한 과정이다.

 

 

2장: 모세를 준비시키심

[1-4절]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 . . .

레위 족속 중에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는데,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아들다움]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다. 모세의 이야기이다. 모세의 부친은 레위인이며 그의 모친도 레위인이었다. 그가 출생할 즈음에는 히브리인의 남자아이가 나면 나일강에 버리라는 왕의 칙령이 내려져 있던 때이었다. 그의 모친은 믿음이 있는 자들이었다(히 11:23).

아이를 더 숨길 수 없이 되자, 그의 모친은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그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었고 그 누이는 그 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서서 보았다. 그가 갈대 상자를 버린 곳은 바로의 공주가 종종 목욕하러 오는 곳이었다. 그의 모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과 지혜로 행하며 그 아이를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의탁하였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했을 것이다. 그 누이가 그 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서서 본 것은 아마 어머니의 지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5-6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 . . .

그때 바로의 딸이 목욕하기 위해 강가로 내려왔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는 신기하게, 신비하게 이루어졌다. 그 시녀들은 강가에 거닐었다. 바로의 딸은 갈대들 사이에서 한 상자를 발견하고 한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그 상자를 열어 그 아기를 보았다. 삼 개월된 그 아기는 공주를 보고 울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이루시려고 바로의 공주에게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다.

[7-10절]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 . . .

아기의 누이는 공주에게 가서 말했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해 이 아기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공주는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그는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공주는 그 유모 즉 아기의 모친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그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신기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그의 종 모세를 살리셨고 지키셨고 경건함으로 양육받게 하셨다. 모친은 공주에게 삯을 받으면서 안전하게 자신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키웠다. 그 아이는 자라서 바로의 딸에게로 인도되고 그의 아들이 되었다. 그는 바로의 궁중에서 궁중 교육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스데반은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말한다(행 7:22). 바로의 딸은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부르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고 하였다. ‘모세’라는 원어(모쉐 )는 ‘끌다, 끌어내다’는 뜻의 단어(마솨)에서 나온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신비하고 신기하다.

[11-12절]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 . . .

모세는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았는데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자,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모세의 그 행동은, 그가 비록 애굽 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지만 자신을 고통받는 히브리인 형제와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은 설교 중에 말하기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고 했다(행 7:23-24). 또 히브리서는 증거하기를,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다(히 11:24-26).

[13-15절]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 . . .

이튿날 모세는 다시 나가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잘못한 자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고 말하자, 그는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방백]와 법관[재판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고 대답하였다. 스데반은 그의 설교에서 말하기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하였다(행 7:25).

모세는 두려워하며 “일이 정녕(아켄) 탄로되었도다”(원문)라고 말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은 퍼졌고, 바로는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았다. 공주의 아들이었던 그는 한 순간에 지명수배자가 되었고 바로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 머물렀다. 하루는 그가 우물 곁에 앉았다.

[16-17절]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 . . .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고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내쫓자,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무리에게 물을 먹였다. 모세에게는 정의감과 선한 동정심, 즉 건전한 인격의 기본적 요소인 도덕성이 있었다.

[18-21절] 그들이 그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 . . .

그들이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그가 말하였다.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그들은 대답하기를,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무리에게 먹였나이다”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딸들에게 말했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는 은혜에 보답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는 바르고 선한 마음이 있었다.

[21-22절]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 딸 . . . .

모세는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였고, 르우엘은 그의 딸 십보라(칩포라)를 모세에게 아내로 주었다. 그가 아들을 낳았고 모세는 그 이름을(게르솜)이라 부르며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고 말했다. ‘객’이라는 원어는 게르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 나이가 80세이었으므로(출 7:7), 그가 미디안 광야에 거한 세월은 약 40년이었다(행 7:29-30). 미디안 광야는 모세의 믿음과 겸손을 훈련시킨 학교이었다. 출애굽 후 40년의 광야 생활이 실전(實戰)과 같은 삶이었다면, 미디안 생활은 그것을 준비하는 학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다, 내가 해보겠다고 생각했을 때 여지없이 실패했던 그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실패자 같은 그, 살인자, 도피자인 그를 들어 쓰시려고 거기서 그를 훈련시키셨다.

[23-25절]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 . . .

여러 해 곧 40년간의 세월이 흘렀다.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해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고역으로 인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 소리를 들으셨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그 언약을 기억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보셨고 하나님께서는 아셨다. ‘권념하셨다’는 원어는 ‘보셨고 아셨다’는 뜻이다. 원문에는 24절과 25절에 하나님이라는 말(엘로힘)이 4번 나온다.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셨고 하나님께서 보셨고 하나님께서 아셨다. 물론 하나님께서 긍휼의 심령으로 돌아보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가까웠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본장은 몇 가지 진리와 교훈을 준다. 첫째로, 하나님의 섭리는 기이하게 진행된다. 모세의 출생과 보존과 양육은 하나님의 신비롭고 신기한 섭리 안에 진행되었다.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는 오늘날도 진행 중이다. 주의 말씀대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우리는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 개인적인, 가정적인, 사회적인, 세계적인 모든 일이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바라자(롬 11:36).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위한 일꾼을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키신다. 모세는 내가 할 수 있다, 내가 해보겠다고 할 때 실패하였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실패자 같은 그, 살인자, 도피자인 그를 들어 쓰시기 위해 훈련시키셨고 준비시키셨다. 그는 자신의 무능과 무력을 깨닫고 겸손히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를 섬기며 그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준비되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그의 일을 이루신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긍휼로, 그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에 대한 그의 성실한 이행으로, 그의 주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와 세계의 복된 삶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 방황하는 허무한 인생들은 다 하나님께 나아와 구원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순종하는 것이 영생이요 행복이다.

 

 

3장: 모세를 부르심

[1-2절]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 . . .

미디안 광야에 약 40년간 거하면서 모세는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쳤다. 미디안 족속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아들 미디안의 자손들이라고 본다(창 25:1-6).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사람 보기에 더딘 것 같을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들어 쓰시고자 하실 때 40년을 기다리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믿음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모세는 그 기간 믿음과 겸손과 인내의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어느 날 그가 양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 된다(4, 5, 7절).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천사나 사람의 모습으로 종종 나타나셨다. ‘떨기나무’(세네)는 일반적으로 나무의 원줄기와 가지들의 구별이 분명치 않은 나무(灌木), 예를 들어 진달래 같은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본문의 떨기나무는 아마 검은 딸기나무 같은 가시나무일 것이라고 한다(BDB).

모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가지들이 타서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신기한 광경이었다. 불이 붙었으나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것 같다. 떨기나무가 보잘것없는 평범한 나무이듯이, 이스라엘 민족은 보잘것없는 평범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불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은 신기하게도 망하지 않고 있었다.

[3-4절]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 . .

모세는 그곳을 향해 눈을 돌리며 “가서 그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라고 말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셨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어떻게 아셨는가? 그러나 실상 그는 모든 사람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부르신다. 그는 후에 엘리 제사장 때에 성소 안에서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어린 소년인 사무엘을 부르셨다(삼상 3:10). 그는 후에 자신을 핍박하던 바울을 “사울아, 사울아”라고 부르셨다(행 9:4).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들은 모세는 즉시 하나님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5-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 . . .

하나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은 어디나 거룩한 곳이다. 흙과 먼지가 묻은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적이고 죄악된 생각과 생활방식을 버리라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을 성결케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은 15, 16절에도 나온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경건한 조상들이 섬기던 하나님이시다. 기독교는 하루아침에 된 종교가 아니고 인류 역사 시초로부터 계시된 종교이다. 하나님과 경건한 열조들 간에는 언약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계시된 진리들이 있었다. 그것이 성경이다. 모세는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었다.

[7-8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 . . .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의 근심과 고통을 알고 내려오셔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어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에 이르려 하셨다. ‘이르려 한다’는 말은 ‘이르게 하려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임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동정하시며 긍휼히 여기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에서 비롯된다(딤후 1:9).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장차 임할 복되고 영광스런 천국을 예표한다.

[9-10절]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도달했고 애굽 사람들이 그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도 보셨기 때문에 이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셨고,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원해내시기를 원하셨다. 긍휼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이루실 것이다.

[11-12절]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 . . .

모세는 하나님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자신의 무자격함과 무능력함을 느끼며 대답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사람은 무자격하고 무능력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13-14절]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 . . .

모세는 하나님께 말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사람의 이름은 그의 인격 곧 그 자신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원어(에예)는 ‘나는 있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누가 만든 자가 아니고 처음부터 그냥 계신 분이시다. 그로부터 모든 창조세계가 시작되었고 이스라엘과 인류의 구원역사가 시작되었고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질 것이다.

[15절]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하라. 이것은 나의 영원한 이름이며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니라”고 하셨다. 본절은 앞절의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과 ‘여호와’라는 말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인다. ‘여호와’라는 말은 ‘있다’라는 원어(하와)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자존하시고 불변하심을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본다.

[16-18절]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말하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정녕 너희를 돌아보았고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고 하셨다”고 하였다. 그들은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이다. 16절에 ‘권고한다’는 원어(파카드)는 ‘방문한다, 돌본다, 돌아본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가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라고 하라고 말씀하셨다.

[19-22절]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내가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낼 것을 안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출은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다음 몇 장에 나오는 10가지 재앙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취한다’는 원어(니찰템)는 ‘약탈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들의 오랫동안의 종살이, 즉 고생과 학대받음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주도하시는 자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스스로 계신 자,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가 맨 처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그가 만드신 세상을 홀로 섭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정하신 때에 그의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또 우리 모두를 구원하셨다.

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고 그를 부르셨고 그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의 능력과 기적으로 그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러므로 로마서 9:16은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말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언약에 근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셨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 우고(憂苦)를 아셨다(7절).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도달하였다(9절). 하나님께서는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돌아보셨다(16절). 또 하나님의 긍휼은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에 근거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셨다(6, 15절). 오늘날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에 근거한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인물을 부르신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오랫동안 준비되었다. 미디안 광야는 그에게 믿음의 훈련장, 겸손의 훈련장, 인내의 훈련장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한 일꾼을 부르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소관이시다. 모든 직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 마가복음 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고린도전서 12: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에베소서 4:11-1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꾼을 부르신다.

 

 

 4장: 모세를 보내심

[1-5절]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 . . .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애굽에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주저하며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지팡이니이다.” 그것은 모세가 양을 칠 때 사용한 지팡이였다. “그것을 땅에 던지라.” 그것을 땅에 던지니 뱀이 되었다. 모세는 뱀 앞에서 피하였다.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모세가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니 그 손에서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 신기한 기적이었다. 하나님의 영의 세계는 신비한 세계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런 기적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조상들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줄 믿게 하려 함이었다.

[6-9절]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 . . .

여호와께서는 또 “네 손을 품에 넣으라”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희게 되었다. 그는 또 말씀하시기를,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고 하셨고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예전과 같았다.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오스)[표적, sign]의 표징()[소리]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표적의 소리]은 믿으리라. 그들이 이 두 이적[표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강물을 조금 취하여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취한 강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기적은 성경에서 빈번히 표적(sign)이라고 표현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확증의 표이었다. 나병이나 강물 기적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나님과 모세를 믿게 하려 하심이었다. 기적은 믿음을 위한 증거로 주어졌다(히 2:4). 그 기적들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믿었다(51절).

[10-12절]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 . . .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이러한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기를 주저하며 말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뻣뻣하다,’ ‘둔하다’는 원어(카바드)는 동일한데 ‘무겁다, 둔하다’는 뜻이다. 모세는 지식은 많았지만, 말하는 데는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을 입이 둔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나님께서 ‘가라’고 사명을 주시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실 것이니 모세는 이제 가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가서 그가 전하라는 것을 전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그의 입과 혀를 주관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 하실 수 있고 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전도자로 보내실 때 그들이 이방인의 법정에 설 것이지만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0:19-20).

[13-17절]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 . .

그러나 모세는 또 말했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는 정말 애굽으로 갈 자신이 없었다. 그는 참으로 자신의 무자격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를 향해 노를 발하시며 말씀하셨다.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사양하는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기어코 보내시고자 하셨다. 그는 그에게 말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주실 것이다. 또 그는 모세에게 그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적을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18-20절]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 . . .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말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는 그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했다.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또 말씀하셨다.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21-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애굽 왕 바로가 마음을 강퍅하게 가지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행하신다. 그러나 바로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 이스라엘 백성 놓기를 거절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장자를 죽이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장차 행하실 열 가지 재앙의 마지막 재앙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의 손으로 징벌하실 때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게 될 것이다.

[24-26절]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 . . .

그런데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숙소에 쉴 때 여호와께서는 그를 죽이려 하셨다. 그때 그의 아내는 ‘부싯돌 칼’(초르)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말하였다.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놓으셨다. 그의 아내가 그를 피 남편이라고 말한 것은 할례를 인함이었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행해야 할 의식이었다. 신약시대도 세례는 모든 신자의 필수적 의무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직접 뽑으신 모세라 하더라도 그 자신의 가정에 언약의 표를 받지 않은 자가 있다면 그것은 죄이며 모세는 먼저 그 죄를 청산해야 하였다.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하는 사명을 받은 모세는 먼저 할례받지 않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해야 했다.

[27-31절]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 . . .

여호와께서는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섭리하신다. 아론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부탁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명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말했다. 모세와 아론은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기적들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믿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무자격함을 참으로 깨닫는 자를 들어 쓰셨다. 모세는 자신의 무자격함을 참으로 깨닫고 있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 . .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10절).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13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들어 쓰셨다. 겸손은 봉사자의 가장 중요한 덕이다. 교만은 멸망의 첫걸음이다. 주의 귀한 종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하였다(고전 15:10). 그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았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은 자들은 자신의 부족을 안 자이었다. 하나님의 일에 자격 있는 자가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무자격함을 알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시켜 보내셨다. 그는 모세에게 표적들을 주셔서 그의 소명을 확신케 하셨다. 그는 그에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다(출 4:11-12). 그는 노하시면서까지 모세를 보내려 하셨다. 그는 말 잘하는 형 아론을 그의 대변자로 주셨고, 가족도 함께하게 하셨다. 그는 장자 재앙을 통해 강퍅한 바로를 꺾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표적도, 전할 말씀도, 능력의 보증도 주셨다. 그는 일꾼들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준비하신다.

셋째로,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야 한다. 모세는 어떤 연고로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치 않았다. 할례는 언약 백성의 표이었고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은 큰 죄이었다. 하나님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죽이려 하신 것은 그 까닭이었다. 모세의 아내가 급하게 부싯돌을 들어 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그 아내도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음을 보인다. 모세는 아마 아내의 반대로 할례를 행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아내가 할례를 행함으로 모세는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마음에 거리끼는 죄를 다 버려야 한다.

 

 

5장: 바로의 첫 반응

[1-2절]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 . . .

전장 끝에 기록된 대로,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기적을 행했을 때 그들은 모세를 믿고 하나님께 경배하였었다. 그들의 반응은 모세와 아론의 사역에 좋은 시작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모세와 아론은 애굽 왕 바로를 접견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그들은 바로에게 하나님에 대해 논증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하였다. 성경의 진리는 논증적이기보다 선포적이다.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뜻은 “내 백성을 보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내포한다. 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야 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겨야 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는 하나님의 뜻을 단번에 거절하였다. 그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다. 바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어떤 점에서 그가 이스라엘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한 것은 당연하였다.

[3-5절]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 . . .

모세와 아론은 다시 좀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무서운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자신을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내시되, 직접 천사나 사람의 모양으로, 혹은 음성으로, 혹은 기적들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다. 모세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들은 이런 특별계시에 의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성경 진리들은 단순히 사람들이 묵상 중에 깨달은 것이나 스스로 지어낸 말들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주어진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는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거절하였다. 그는,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일을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勞役)이나 하라,”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라고 말하였다. 첫 번째 역사(役事)라는 원어(마아세)는 단순히 ‘일’이라는 뜻이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역사(役事)라는 원어(세발라)는 ‘힘든 노동’ 즉 ‘노역(勞役)’이라는 뜻이다. 바로 왕은 모세의 전한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이 노역을 쉬게 하는 것 정도로 보았다.

[6-9절] 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명하여 . . . .

뿐만 아니라, 바로는 그날 백성의 감독들과 괸리들에게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고 명하였다. ‘간역자’라는 원어(노게심)는 ‘감독들’이라는 뜻이고, ‘패장’이라는 원어(쇼테림)는 ‘관리들’이라는 뜻으로 감독들 밑에 있는 이스라엘 관리들을 가리킨다(14절).

바로는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드리자’고 말하니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을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고 마땅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또 바로는 하나님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거짓되고 헛된 말로 생각하였으나, 실상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진리이다(요 17:17).

[10-18절] 간역자들과 패장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 . . .

감독들과 관리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기를, “바로의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짚을 얻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백성은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 즉 곡초를 베고 남은 밑둥치와 뿌리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였다. 감독들은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당일 일을 당일에 마치라”고 독촉하였고, 또 자기들이 세운 이스라엘 관리들을 때리며,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했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바로에게 호소하였다. “왕은 어찌하여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그들이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우리더러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종들이 매를 맞으오니 이것은 왕의 백성의 허물이니이다.” 그러나 바로는 말했다.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을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너희가 벽돌의 정량을(원문) 바칠지니라.”

[19-23절]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 . . .

이스라엘 백성의 관리들은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는 바로의 말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았다. 그들은 바로를 떠나 나올 때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보자 말했다.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들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미운 물건이 되게 하다’는 원어(히브아슈템)는 본래 ‘악취를 나게 하다’는 뜻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돌아와 말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이는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심이니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이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행 2:40). 우리는 불경건하고 악한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행 2:40). 구원이 하나님의 뜻이며 진리이다.

둘째로, 우리는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자.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거기 포함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간의 행복보다 더 높고 고상한 목적이다. 그러나 바로는 그것을 게으르다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돈을 위해 분주하고 수고하지만, 돈이라는 것은 실상 허무한 것이 아닌가?(요 6:27; 전 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사 43:7, 21). 우리의 구원의 목적도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라고 말했다(롬 14:7-8).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영광을 위해 살자.

셋째로, 그러나 성도는 세상에서 학대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고 더 학대했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19). 바울도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딤후 3:12). 우리는 그것을 각오해야 한다. 진리로 구원받은 성도는 고난을 각오하고 잘 참고 견뎌야 한다.

 

 

6장: 하나님의 동일한 명령

[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 . . .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전했을 때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학대하였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대답하시며 해결책을 보이신다. 그는,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해 내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다. 그것은 물론 사람의 일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전도도 설교도 목회도 주일학교일도 권찰일도 찬양대일도 그러하다. 본절 후반부를 다시 번역하면, “이는 강한 손을 인해 바로가 그들을 보내며 강한 손을 인해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낼 것임이니라.”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은 하나님의 강한 손의 역사로 이루어질 것이다.

[2-5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본장에 “나는 여호와로라” 혹은 “나는 여호와라”는 말이 네 번 나온다(3, 6, 8, 29절). ‘여호와’라는 이름은 ‘스스로 계신 자’(출 3:14) 곧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 영원불변자, 특히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자라는 뜻을 가졌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자신을 ‘전능의 하나님’(엘 솻다이  la)으로만 알리셨고 ‘여호와’(예호와)로는 알리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17: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창 12:8; 13:4; 22:14).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이름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면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알리지 않으셨다는 말씀은, 그 이름에 담긴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 특히 언약의 불변적 성취 등의 뜻을 알리거나 체험케 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Matthew Poole). 그러나 이제 모세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여호와로 밝히 계시하셨고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행하실 자로 나타내셨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그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로 하신 언약을 기억하셨다.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였다.

[6-8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할 내용을 주셨다. 그는 우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는 자신이 ‘여호와’인 것을 강조하셨다(6, 8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세 가지이었다.

첫째로, 그는 그들을 무거운 짐 밑에서 건져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시벨롯)[노역들]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쉐파팀)[심판]으로 너희를 구속하리라.”

둘째로, 그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함이시다.

셋째로, 그는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을 소유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땅이었다.

[9-11절]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 . . .

모세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들은 마음의 상함(코체르 루아크)[심령의 조급함](BDB)과 일의 혹독함을 인해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어 보내라고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명령은 동일하였다. 비록 여러 가지 난관이 있을지라도, “내 백성을 내어 보내라”(출 5:1)는 하나님의 처음 명령은 변함이 없었다.

[12절] 모세가 여호와 앞에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도 . . . .

모세는 여호와 앞에 고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도 나를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입이 둔하다’는 원어(아랄 세파사임 )는 ‘할례받지 못한 입술을 가졌다’는 말인데, ‘말에 익숙치 못하다’는 뜻이다. 모세는 여전히 힘과 용기를 가지지 못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고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들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을 전하게 하셨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셨다. 그 과정은 어려웠으나 하나님의 뜻하신 바는 결국 다 이루어졌다.

[14-27절] 그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은 이러하니라. . . .

14-27절의 본문은 이스라엘의 정식 족보가 아니고 모세와 아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간략한 증거인 것 같다. 모세와 아론은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의 아들들 중 고핫의 아들 아므람의 아들들이다. 모세와 아론, 그들이 하나님의 명을 받았고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고 말했고 또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다.

[28-30절]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 . . .

본문은 앞의 내용을 반복한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고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 앞에서 말하기를, “나는 입이 둔한[할례받지 못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를 들으리이까?”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명령은 동일했고 분명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크고 중대한 구원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인간 사역자의 연약함이 있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 뜻하신 일을 친히 이루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천지를 창조하셨고 통치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약속하신 바를 친히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주권자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의지하고 그 앞에서 바로 행하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는 것이 구원이요 영생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명령은 항상 동일하다. 바로의 학대가 더 심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동일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 되었다. 오늘날도 똑같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사람들이 세속화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은 동일하다. 그것은,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모든 죄를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하라,” “너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명령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

셋째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는 항상 어려움이 있다.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더 학대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의 조급함과 일의 혹독함을 인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모세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날도 영혼 구원과 교회 건립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인류의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문제들을 인해 낙심치 말고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말씀과 기도, 믿음과 순종과 인내로 진행하자.

 

 

7장: 피 재앙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신(神)이 되게 하셨고 형 아론은 그의 대언자(代言者)가 되게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바를 그의 형 아론에게 말하고, 아론은 그것을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내보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불러 그의 일을 행하신다.

[3-5절]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증과 나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한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출애굽기에는 바로가 자기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는 표현도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표현이 9번 나온다(4:21; 7:3; 9:12; 10:20, 27; 11:10; 14:4, 8, 17). 이것은 악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인다. 악의 책임은 악인에게 있지만, 악인의 악행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가 그의 표적들과 그의 기사(奇事)들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할 것이지만 바로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며, 그가 그의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그의 군대, 그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재앙’이라는 원어(쉐파팀)는 ‘심판, 징벌’이라는 뜻이다.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도하시고 이루실 일이다.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일이다.

또 그는 그가 그의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그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의 일은 그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을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 것이다.

[6-7절]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 . . .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그대로 행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었고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80세이었고 아론은 83세이었다. 모세가 전에 애굽인을 죽이고 애굽을 떠났을 때 그의 나이는 40세쯤이었고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친 기간도 40년 가량이었다.

[8-10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바로가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명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가져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기적을 보이라고 요구할 것을 아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성의 근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무 말이든지 덮어놓고 믿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들 앞에 지팡이를 던졌고 그 지팡이는 뱀이 되었다.

[11-13절]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들도 . . . .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불렀다. ‘박사’라는 원어는 ‘지혜자들’이라는 뜻이고 ‘박수’는 ‘마술사들’이라는 뜻이다. 또 그들은 애굽의 술객들이라 불리었다. 애굽에는 거짓된 마술들이 성행했던 것 같다. 애굽의 술객들도 그들의 술법으로 모세와 아론과 같이 행하였다. 왜냐하면 그들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들이 뱀들이 되었기 때문이다(원문). 세상의 마술도 악령의 역사로 신기한 일들을 행한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들을 삼켰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바로는 이런 광경을 보았지만 마음이 강퍅하여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람은 기적을 본다고 다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진리를 믿지 않을 것이다. 바로가 그러하였다.

[14-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한다고 말씀하시며 아침에 나일강가로 가서 바로를 맞고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통해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으나 이제까지 그가 듣지 않는다고 말하라고 하셨다.

[17-19절]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인하여 나를 . . . .

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바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하셨다.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인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강물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강물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이것이 열 가지 재앙들 중 첫째 재앙인 피 재앙이다. 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중에 인간에게 아마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피로 변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에게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펴라고 명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에와 나무 그릇에와 돌 그릇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고 하셨다.

[20-25절]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 . . .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바로와 그 신하들의 눈앞에서 지팡이를 들어 강물을 쳤다. 그 물은 다 피로 변하고 강물의 고기들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났다. 애굽 사람들은 강물을 마시지 못했고 또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었다. 그런데 애굽 술객들도 그들의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였다. 마술도 신기한, 초자연적 일들을 행한다. 그러므로 바로의 마음은 강퍅하여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다. 바로는 궁으로 돌아갔고 그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애굽 사람들은 하수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강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했고 7일이 지났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보인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악인들의 마음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말씀은 그가 은혜를 거두심으로 그의 마음이 강퍅하게 되고 교만하며 바른 생각과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고 오기(傲氣)를 부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되었고 무능력해진 존재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바르게 생각할 수 없고 또 설사 생각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죄와 부족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앞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둘째로, 본장은 세상의 마술도 상당히 신비한 일들을 행함을 보인다. 애굽의 술객들도 그들의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였고 강물을 피가 되게 하였다. 마술은 악령의 활동이며 악령도 기적들을 행한다. 무당이나 심령술사도 신비한 일들을 행한다. 그러나 마술과 하나님의 기적은 현저히 다르다. 마술은 사람의 호기심을 끌어 그를 종으로 삼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그릇된 길로 인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깨닫게 하고 믿게 하며 모든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며 평안과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술을 포함하여 모든 거짓된 신들과 우상들과 신비한 일들을 경계하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바로 알고 바로 섬기자.

 

 

8장: 개구리, 이, 파리 재앙들

[1-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지경을 칠지라. 개구리가 강물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궐에와 네 침실에와 네 침상 위에와 네 신하들의 집에와 네 백성에게와 네 화덕에와 네 떡반죽 그릇에 들어갈지며 개구리가 네게와 네 백성에게와 네 모든 신하에게 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이것이 둘째 재앙, 곧 개구리 재앙의 선언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고 하셨다. 아론이 팔을 애굽의 물들 위에 펴자 개구리들이 올라와서 애굽의 온 땅에 덮였다. 그러나 애굽의 술객들도 자기 술법대로 이같이 행하여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다. 마술도 신비한 일을 어느 정도 행한다.

그러나 애굽의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개구리를 올라오게는 했으나 그것들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하기를, “여호와께 구하여 개구리를 나와 내 백성에게서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릴 것이니라”고 하였다. 바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겠다고 말하였다. 그의 교만하고 완고함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9-15절]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 . . .

모세는 바로의 요청대로 내일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서 강에만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또 그는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이다”고 말했다. 바로는 여호와께서 개구리를 제거해주심을 봄으로써 그가 참 하나님 되심을 조금 알고 느끼게 될 것이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를 떠나 나가 여호와께 간구했고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말대로 응답하셨다. 그가 바로에게 말한 대로, 개구리들은 집에서, 마당에서, 밭에서 나와서 죽었다. 한글 성경에는 ‘나와서’라는 말이 작은 글씨로 쓰여져 있지만, 원문에는 이라는 전치사가 세 번이나 반복해 쓰였고 그것은 ‘나와서’(out of)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개구리들을 모아서 무더기로 쌓았고 땅에는 악취가 진동하였다.

그러나 바로는 숨을 통하게 되자 그 마음을 완강케 하였고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아무리 큰 기적을 보아도 바로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이다.

[16-1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하기를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이것이 세 번째 재앙, 곧 이 재앙의 선언이었다. ‘이’라는 원어(킨님)는 ‘각다귀(gnats, 모기보다 좀 큰 곤충)’ 혹은 ‘이’라는 뜻이다(BDB).1)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행했다.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흙을 치자 애굽 온 땅의 흙이 다 이가 되어 사람들과 가축들에게 올라왔다. 애굽의 술객들은 그들의 술법으로 이를 내려 했으나 못했다. 이는 사람들과 가축들에게 있었다. 술객들은 바로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라고 말했다. ‘권능’이라는 원어(에츠바,)는 ‘손가락’(KJV, NASB)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라는 뜻이다(BDB).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대로, 바로의 마음은 강퍅케 되어 그들을 듣지 않았다.

[20-2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의 거하는 땅에도 그러하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네 번째 재앙, 곧 파리 재앙의 선언이었다. ‘파리 떼’라는 말이 본장에 일곱 번 나온다(한글개역성경에는 한번은 ‘파리’라고만 번역함)(21, 21, 22, 24, 24, 29, 31). ‘파리 떼’라는 원어(아롭)는 ‘쏘는 파리 떼’ 혹은 ‘해로운 곤충 떼’라는 뜻이다(BDB). 영어성경들은 ‘파리 떼’(KJV, NIV) 혹은 ‘곤충 떼’(NASB)라고 번역했다.

[22-24절] 그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 . . .

여호와께서는 또 바로에게 말씀하셨다. “그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여호와께서는 그대로 행하셨다. 무수한 파리 떼가 바로의 궁에와 그 신하들의 집에와 애굽 전국에 모여왔고 파리 떼로 인해 온 땅이 해를 받았다. 그러나 고센 땅에는 파리 떼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 중에서 고센 땅을 구별하셨다. 그는 자기 백성을 환난에서 지키시고 또 환난 중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시다(시 91:1-11).

[25-26절]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 . . .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하기를,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고 말했다. 바로는 허락하면서도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가 제안한 첫 번째의 타협안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어긋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말했다. 26절을 다시 정확히 번역해보면, “이는 우리가 애굽 사람의 미워하는 것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드림이니이다. 우리가 애굽 사람이 미워하는 것을 그들의 눈 앞에서 제사드리면 그들이 우리를 돌로 쳐죽이려 하지 않겠나이까?”

[27-28절]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 . . .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하나이다”라고 하였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하시는 대로 행하여야 했다. 바로는 다시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하였다. 바로는 이렇게 허락하면서 모세에게 그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타협안이었다. 그것은 바로의 두 번째 타협안이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과 달랐다. 그것은 미지근한 신앙, 절반쯤의 순종을 암시하였다.

[29-32절] 모세가 가로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 . . .

모세는 말하기를,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기도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치 마소서”라고 하며 바로를 떠나 나왔다. 그는 여호와께 기도하였고 여호와께서는 그의 말대로 하셔서 파리를 바로와 그 신하와 그 백성에게서 몰수히 떠나게 하셨다. 그러나 바로는 이 때에도 마음을 완강케 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다.

본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자. 애굽 왕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모세는 바로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되기를 원했다(10절). 애굽의 술객들은 이를 내지 못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손가락이라고 고백했다(19절). 바로는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등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천지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바로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자. 바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들을 보면서도 마음을 완강하게 하며 강퍅케 하였다(15, 19, 32절). 그것은 인간의 무지하고 완고한 죄악성을 나타낸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께 대한 진지한 관심도, 바른 깨달음과 지식도, 또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가난한 심령, 죄를 통회하는 심령, 온유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자.

셋째로, 우리는 죄악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자. 바로는 두 가지 타협안을 내놓았다. 첫째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죄악된 삶을 버리지 않는 것을 암시한다. 두 번째는 너무 멀리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지근한 신앙, 절반쯤의 순종을 암시한다. 그것은 예수를 믿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 죄악된 세상을 떠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모든 죄를 다 버리고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한 회개와 온전한 순종을 하자.

 

 

9장: 악질, 독종, 우박 재앙들

[1-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는 동일한 명령을 주셨고, 원문에 보면 그 이유로 “이는 네가 만일 그들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약대와 우양[소와 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악질이 있을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순종해야 할 이유로 재앙의 경고를 주셨던 것이다. ‘악질’이라는 원어(데베르)는 ‘악성 전염병’이라는 뜻으로 본문에서는 문맥적으로 ‘역병’ 즉 ‘가축의 악성 전염병’을 가리킨다. 이것이 다섯 번째의 재앙 즉 악질 재앙의 경고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이튿날 여호와께서는 애굽의 모든 가축을 죽이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 바로는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의 가축이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과 이방 백성들을 구별하셨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은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

[8-12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풀무의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풀무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눈앞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독종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였고 사람과 짐승에게 독종이 발하였다. ‘독종’이라는 원어(쉐킨 포레아크 아바부오스)는 ‘물집이 생기는 종기’라는 뜻이다(BDB). 그것은 독한 종기였다. 이것이 여섯째 재앙 곧 독종 재앙이었다. 술객들도 독종으로 인해 모세 앞에 서지 못했다. 왜냐하면 독종이 술객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기 때문에 바로는 그들을 듣지 않았다. 바로의 마음의 강퍅함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 있었다. 바로의 마음의 강퍅함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13-2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 . . .

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서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바로가 이스라엘을 보내야 할 이유로, “이는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네 마음과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너로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할 것임이니라. 내가 손을 펴서 온역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바로의 강퍅함 때문에 내려진 재앙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고 그 소문이 온 세상에 알려질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계속 말씀하시기를, “네가 여전히 내 백성 앞에 자고하고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느냐? 내일 이맘때면 내가 중한 우박을 내리리니 애굽 나라가 건립된 이래로 그 같은 것이 있지 않던 것이리라. 이제 보내어 네 가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으리라”고 하셨다. 이것이 일곱 번째 재앙 곧 우박 재앙의 경고이었다.

바로의 신하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짐승들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자는 그 종들과 짐승들을 들에 그대로 두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들에 둔 종들과 짐승들을 그 우박으로 인해 잃게 될 것이다.

[22-3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하늘을 향하여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애굽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게 하셨다. 모세가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들자 여호와께서는 뇌성과 우박을 보내셨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니 우박의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였다. 애굽 전국에 그 나라가 건립된 이래로 그 같은 일이 없었다. 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물론하고 무릇 밭에 있는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다. 들에 머물렀던 사람들과 짐승들은 다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스라엘 자손의 거한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다.

바로는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말했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여호와께 구하여 이 뇌성과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모세는 그에게 말했다. “내가 성에서 나가자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싹이 났으므로 삼과 보리는 그 우박으로 상하였다. 31절에 “꽃이 피었다”는 구절에서 ‘꽃’이라는 원어(기브올)는 ‘싹’이라는 뜻이다(BDB, KB, NASB). 그러나 밀과 나맥 즉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상하지 아니하였다.

[33-35절] 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서 . . . .

모세는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서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폈다. 뇌성과 우박은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비와 우박과 뇌성의 그친 것을 볼 때 바로는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강케 하였고 그의 신하들도 그와 같았다. 바로의 마음은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았다. 바로의 마음의 완강함과 강퍅함은 인간 본성의 부패성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사람의 심령의 온유함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여호와 참 하나님을 알자. 여호와께서는 바로에게 온 천하에 그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하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섭리자이심을 알자. 우리는 또한 그의 능력이 얼마나 크시고 두려운지 알며, 또 온 세상과 온 인류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줄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그 하나님께 순종하자. 하나님을 거역함은 멸망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일이며, 그에게 불순종함이 죄요 죽음이요 불행이며, 그에게 순종함이 생명의 길이며 평강의 길임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그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알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키신다. 시편 91편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대낮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라고 고백하였다. 우리는 오늘날도 주 하나님께서 그를 전심으로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들을 위하시고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영육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자.

 

 

10장: 메뚜기 재앙과 흑암 재앙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케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아들의 아들(원문)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강케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신다. 악인들의 악한 마음까지도 그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케 하신 목적은, 첫째, 그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표징’이라는 원어(오스)는 ‘표’라는 뜻이다. 또 둘째,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일들을 그들의 아들과 후손에게 전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알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녀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의 자녀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지식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다. 그것이 그들의 구원과 영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죄만 짓다가 지옥 형벌을 받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사모하며 의와 선을 행하다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3절]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 . . .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들어가서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치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불순종이 그의 겸비치 않음 즉 그 마음의 교만 때문이라고 지적하셨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오직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을 믿고 그의 계명에 순종할 것이다.

[4-6절]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불순종에 대한 징벌로 메뚜기 재앙을 선언하셨다. 그는,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로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들에 너희를 위하여 자라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비와 네 조상이 세상에 있어 옴으로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여덟째 재앙 곧 메뚜기 재앙이다. 모세는 이 선언을 한 후 바로에게서 나왔다.

[7절]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고하되 . . . .

바로의 신하들은 왕에게 고했다.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바로보다 그의 신하들의 마음속에 먼저 깨달음이 생겼다. 그들은 애굽이 거의 망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고,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였다.

[8-11절]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 . . .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다시 불렀다. “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뇨?” 모세는 대답했다. “우리가 남녀노소와 우양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이는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켜야 함이니이다”(원문 직역). 바로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것들을 보내면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하게 함과 일반이니라. 삼갈지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 그는 불가하니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의 구하는 바니라.” 이것은 바로의 또 하나의 타협안이었다. 그것은 어린아이들과 우양을 두고 남자 어른들만 가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제안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달랐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서 쫓겨났다.

[12-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애굽 땅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네 손을 애굽 땅 위에 들어 메뚜기로 애굽 땅에 올라와서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고 명하셨다.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자 여호와께서는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셨고 아침에 미쳐 동풍이 메뚜기를 불러들였다. 기상의 변화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문명국가라도 폭설이나 폭우나 폭풍 등의 자연 재해를 막지 못한다.

메뚜기는 애굽 온 땅에 와서 그 사방에 내리므로 그 해가 심하였다. 이런 메뚜기 떼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다. 메뚜기는 온 지면에 덮여 날므로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음으로 애굽 전역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않았다. 참으로 무서운 재앙이었다.

[16-20절]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이르되 . . . .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말했다.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 그 무서운 재앙 앞에서 바로는 자신의 죄를 깨달았고 인정하였다. 모세는 바로에게서 나가 여호와께 구하였고 여호와께서는 돌이켜 강렬한 서풍이 불게 하셔서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셨고 애굽 온 땅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다.

[21-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모세에게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홉 번째 재앙 곧 흑암 재앙의 선언이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자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었다. 그 캄캄한 삼일 동안 사람들은 서로 볼 수 없었고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도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고센 땅에는 빛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과 고센 땅을 구별하셨고,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셨다.

[24-26절]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 . . .

바로는 모세를 불러서 말했다.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이것은 바로의 마지막 타협안이었다. 그것은 재물을 두고 사람들만 가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남녀노소와 우양들이 다 애굽에서 나오는 것을 명하셨다. 그러므로 모세는 말했다.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모든 소유물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27-29절]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 . . .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바로는 그들 보내기를 즐겨 아니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부드러운 마음도, 강퍅한 마음도 그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다. 바로는 모세에게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말했고, 모세는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메뚜기 재앙과 흑암 재앙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셨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을 알게 하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자. 온유와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면 우리는 바로처럼 마음이 완강하고 강퍅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하게 될 것이며 그것도 물론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 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순종할 것이다. 우리는 바로처럼 하나님 앞에서 교만치 말자. 우리는 겸손히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자. 바로는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온 가족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특히 우리의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바로는 또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가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우리는 소득의 십일조와 소산의 첫 열매와 감사의 헌물 등 우리의 물질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온전한 순종이다. 우리는 그의 명하신 대로 우리의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일에 힘쓰자.

 

 

11장: 장자 재앙

[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제 한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다 쫓아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말씀하신 남은 한 재앙은 장자 재앙으로서 마지막 재앙이 될 것이다. 그 재앙으로 인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정녕 다 쫓아내듯이 내보낼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 금패물을 구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다. 원문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애굽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사람들에게 금패물과 은패물을 요구하였고 애굽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그들은 애굽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강탈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것들을 요청하자 애굽 사람들이 그들에게 준 것이었다. 실상, 그것들은 그들이 애굽에서 수십년간 아니 수백년간 종살이한 대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또 본문은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고 기록한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한 기적들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바로나 애굽 사람들이 그를 무시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모세는 그들 앞에 큰 자로 드러났다.

[4-6절]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 . . .

모세는 바로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이것이 열째 재앙 곧 마지막 재앙의 선언이었다. 이와 같이 궁궐을 비롯하여 애굽의 온 집의 장자가 한 날 밤에 동시에 죽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전의 아홉 재앙들 중에는, 우박 재앙 때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 외에 사람이 죽은 재앙은 없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재앙에서 각 집의 장자들은 같은 날 밤 동시에 죽을 것이다. 그래서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前無後無)한 큰 곡성이 있을 것이다.

[7-8절]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 마지막 재앙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거주했던 고센 땅에는 평온함이 있을 것이다. 개도 짖지 않는 평온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별하심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신기한 사건일 것이다.

모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에게 이렇게 전한 후에 “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서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좇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고 말했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왔다. 하나님의 재앙들은 이렇게 마칠 것이다. 마침내 애굽 왕의 모든 신하들은 모세에게 내려와서 그에게 절하며 굴복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떠남을 요청할 것이다.

[9-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바로가 너희를 . . . .

본문은 열 가지 재앙들 전반에 대해 다시 말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기사를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었고 모세와 아론은 이 모든 기사 곧 여러 가지 재앙들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다. 애굽 왕 바로가 심히 강퍅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되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재앙, 곧 장자 재앙의 때에 바로는 항복하고 말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모세를 통해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들은 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들이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장자 재앙도 애굽에 내리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자, 섭리자, 영원하신 한 분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요 평안이요 영생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별하셨고 보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에게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것을 피하게 하셨다. 세상에는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이 많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들을 넘어뜨리려는 시험과 고난이 많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된 우리 모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잊지 않으시고 구별하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실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모세를 애굽 사람들 앞에 크게 하셨다. 3절,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 8절, “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서 내게 절하리라.” 사람을 세우시고 파하시고 높이시고 낮추심이 하나님께 있다. 시편 75:6-7,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자.

 

 

12장: 유월절과 출애굽

[1-11절]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을 떠날 준비를 시키셨다. 그는 모세에게 “이 달로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시며 “이 달 열흘에 너희 각 인이 어린양을 취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해 취하되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이웃과 함께 인수(人數)를 따라 또는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 어린양을 준비해야 했다.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된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그것을 그 달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그것을 죽여야 했다.

또 그들은 그것의 피로 그 고기를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했고, 또 그 밤에 그 고기를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그것을 급히 먹어야 했다. 또 그들은 그 고기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태워야 했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다.

[12-14절]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 . . .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들에게 벌을 내리리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애굽의 신들에게 벌을 주신다는 말씀(민 33:4에도 나옴)은 애굽인들이 섬기던 가축들의 첫 새끼를 죽이시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사무엘 선지자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다곤 신상을 부서뜨리신 것처럼(삼상 5:4) 애굽인들의 신상들을 파괴하시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Poole).

유월절 어린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라진 양의 피는 재앙을 모면케 하는 표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고 하셨다.

[15-20절] 너희는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 . . .

이스라엘 백성은 그날로부터 7일 동안, 즉 정월 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무교병, 곧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을 먹어야 했다. 그들은 그 첫날에 누룩을 집에서 제거하고 7일 동안 누룩을 집에 있지 않게 해야 했다. 첫날부터 7일까지 유교병 곧 누룩을 넣어 만든 떡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또 그들은 그 첫날과 제7일에 성회로 모여야 했다. 그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각인의 식물만 먹을(원문) 안식일이다. 그것이 그들이 영원한 규례로 지킬 무교절이었다.

[21-28절]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 . . .

모세는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이 그 가족대로 어린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 그 피를 문 인방과 문 좌우 설주에 바르고(웨힉가템)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게 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을 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규례를 영원히 지켜야 했다. 후에 그들의 자녀들이 이 의식이 무슨 뜻이 있느냐고 물으면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이며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어가셨고 그들의 집을 구원하셨음을 말해주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말을 듣고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였고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29-36절]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 . . .

밤중에 여호와께서는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位]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셨다. 참으로 무서운 재앙이다. 그러므로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났고 애굽에 큰 곡성이 있었다. 그 나라에 장자가 죽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밤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의 말대로 너희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애굽 사람들은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라고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재촉하여 그 지경에서 속히 보내려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발효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었다. 또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의 말대로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였고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 앞에서 그 백성에게 은혜를 주셔서(11:3) 그들이 구하는 대로 얻게 하셨다. 그들은 애굽 사람의 물품을 노략한 셈이었다(원문; KJV, NASB, NIV).

[37-42절]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 . . .

이스라엘 자손은 라암셋에서 떠나 숙곳에 이르렀다. 그들은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60만명 가량이었고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합하면 200만명 이상 되었을 것이다. 애굽에서 나올 때 지체할 수 없었고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가지고 나온 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 즉 누룩 없이 만든 떡을 구웠다. 그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 되는 때이었다.2) 출애굽 연도는, 열왕기상 6:1에 의하면, 솔로몬 왕의 즉위 4년 즉 주전 966년으로부터 480년 전, 즉 주전 1447년경이며, 애굽의 제18왕조 투트모세 3세(주전 1482-1447년경) 때이었다고 생각된다. 430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으므로 그들은 그 밤을 여호와 앞에서 대대로 지켜야 했다.

[43-51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 . . .

이방인은 유월절 양의 고기를 먹지 못할 것이나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우거하는 자나 타국 출신의 일꾼들은 먹지 못할 것이다. 그들과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다. 유월절 고기는 한 집에서 먹고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아야 했고 유월절 양은 뼈를 꺾지 말아야 했다. 뼈도 꺾지 말라는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었다. 요한복음 19:33, 36,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기이한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신 출애굽 사건에 근거한다. 유월(逾越)은 ‘넘어간다’는 뜻이다. 열 번째 재앙, 곧 장자 재앙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넘어가셨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의 모든 집에는 장자가 죽는 재앙이 내려졌다.

유월절 어린양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예표하였다.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말했다(고전 5:7). 유월절 어린양이 흠 없는 수컷이어야 한 것은 구주 예수께서 죄 없는 속죄제물이심을 예표한다. 그 어린양을 죽인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루신 속죄를 믿는 믿음을 예표한다. 고기를 불에 구워 쓴 나물과 함께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예표한다. 무교병 즉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은 그의 무죄성을 가리킨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진리와 우리의 속죄 신앙을 계시한다. 속죄 신앙은 구원 신앙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우리를 영원한 지옥불로부터 구원하였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속죄를 강조하셨다. 요한복음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이 말씀은 속죄의 피가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에게 속죄 신앙이 필요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마음의 문설주와 문 인방에 발라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며 그의 대속(代贖)의 공로를 믿는 속죄 신앙을 가져야 한다. 또한 교회는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며 성찬예식을 거행하며, 모든 신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속죄 신앙을 가지고 성찬 예식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13장: 하나님의 인도하심

[1-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 . . .

본장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강조한다(3, 9, 14, 16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온갖 압제와 학대를 받았었다(3, 14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손의 권능으로’(3, 14, 16절), ‘능하신 손으로’(9절) 그들을 인도하여 내셨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특히 마지막 장자 재앙이 아니었다면 애굽 왕 바로는 결코 그들이 떠나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해방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나 가축이나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고 말씀하셨고, 애굽에서 나오던 그날 밤에 행하게 하셨던 규례, 즉 유교병을 먹지 말고 무교병을 먹게 하신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으로 계속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었다. 그 땅에는 당시에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 땅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맹세하셨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묘사될 만한 아름다운 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더라도 거기서 아빕월 즉 1월 14일의 절기인 유월절과, 또 1월 15일부터 7일 동안의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때 무교병 즉 누룩 넣지 않고 만든 떡을 먹어야 했고 제7일에 여호와께 성회로 지켜야 했다. 또 그들은 7일 동안 유교병[누룩 넣은 떡]을 그들의 처소에도 있지 않게 해야 했고 누룩도 그들의 경내에서 보이지 않게 해야 했다. 또 그들은 이 절기의 뜻을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말해주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 규례를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9절의 ‘기호’라는 원어(오스)는 ‘표’(sign)라는 뜻이며, ‘표’라고 번역된 원어(직카론)는 ‘기념물’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사건과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그 은혜를 해마다 잊지 말고 기억하며 이 규례를 지켜야 했다.

[11-16절]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 . . .

모세는 또,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가나안 땅을 얻게 되면 그들은 사람이나 가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반복하여 강조했다.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하고 그들의 모든 장자는 다 대속하라고 했다.

또 장차 자녀들이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고 묻거든,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첫새끼까지 다 죽이셨기 때문이라고 말해주며 이것을 너희의 손의 기호와 너희의 미간의 표로 삼으라고 하라고 하셨다. 16절의 ‘표’라는 원어(토타폿)는 ‘머리띠’라는 뜻이다.

[17-22절]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 . .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나온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블레셋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 길은 몇 일이면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며 그러면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여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리라고 염려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연약한 몸과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적합한 다른 길로 인도하신 것이었다. 그것은 홍해의 광야 길이었다. 또한 그 길은 뒤쫓아올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고 하나님의 큰 영광을 나타내실 길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단련하시는 첫 과정의 길이기도 했다. ‘항오를 지어’(카무쉬임)라는 원어는 ‘전투대형으로(in battle array)’라는 뜻이다(BDB).

야곱의 아들 요셉은 죽기 전에 그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녕 돌아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리라고 말하며 그들이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갈 것을 맹세시켰었다(창 50:24-25). 모세는 조상들로부터 전달되어 내려온 요셉의 그 맹세를 기억하여 그의 해골을 취했다. 요셉의 유언도 놀랍지만, 그 유언을 지킨 모세는 참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숙곳에서 출발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쳤다. 여호와께서는 그들 앞에 행하셔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추어 밤낮으로 진행케 하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인도하심이었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노릇하던 상태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그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기를 원하셨다. 큰 구원을 체험한 그들은 그 은혜를 항상 기억해야 했다. 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사람이나 가축의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셨고 또 매년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게 하셨다. 그들은 그 절기의 7일 동안 처소에서 누룩을 제거해야 하였다.

우리는 무지한 짐승같이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잘 잊어버린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 살면서도 창조주께 대한 감사와 영광을 돌릴 줄 모르고 산다. 특히, 신약 성도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그 은혜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은혜를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하자.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방법이 그가 명하시고 제정하신 성찬식이다. 그것은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가 지켜야 할 의식이며(고전 11:23-26), 이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또 오늘날 우리는 초태생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구속받은 자들이다. 우리가 산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누룩을 제거하고 무교병을 먹어야 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늘날 죄 없는 삶을 추구하고 힘써야 한다. 주 예수께서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이제 죄의 도구가 되지 말고, 오직 의와 거룩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후 그들을 블레셋 사람의 길로가 아니고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고, 광야 40년 동안에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가 친히 은혜로 구원하신 신약 성도들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이다(롬 8:14).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신 모든 현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자. 우리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자(계 14:4).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가나안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게 주신 가나안 땅은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영광의 천국을 예표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밝히 약속하신 영광의 천국을 사모한다. 세상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불탈 것이지만,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그 영광의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며 바라자(벧후 3:12-13).

 

 

14장: 홍해의 기적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을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셨다. ‘돌쳐서’라는 말은 ‘돌이켜’라는 뜻이다. 본절의 바다는 ‘홍해’를 가리킨다(13:18; 15:4, 22).3) 또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고 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득하여’라는 원어(네부킴)는 ‘방황하여’라는 뜻이다(BDB, NASB). 또 하나님께서는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해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본장에도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다’는 표현이 두 번 나온다(4, 8절).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다. ‘영광을 얻는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을 뒤따르는 애굽 사람들이 멸절될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행하였다.

[5-9절] 혹이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 . . .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한 것을 보고받자,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마음이 변하여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라고 말했다. 또 바로는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갔고, 특별 병거 600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데려갔다. ‘발하다’는 원어는 ‘데리고 갔다’는 뜻이다. 그 병거들은 다 애굽의 장관들이 거느렸다. 본문 6-7절의 표현을 보면, 애굽 왕 바로 자신이 그 추격을 주도하였고 직접 참여하였던 것 같다.4)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랐다.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 곳까지 미쳤다.

[10-12절]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 . . .

바로가 가까워 올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눈을 들어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 것을 보았다.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말하였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스라엘 백성은 그 위기 상황에서 믿음 없음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대항하였다.

[13-14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 . . .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믿음으로 말했다. 그는 몇 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섭리자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두려워 말아야 한다. 둘째는 가만히 서 있으라는 것이다. 믿음은 고요히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셋째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기 위해 이끌어내신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위기에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넷째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실 것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그들과 싸우실 것이다.

[15-2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라고 말씀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앞에 가로놓인 홍해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 갈대 바다는 갈라지며 길을 낼 것이다. ‘바다 가운데 육지로’라는 이 특이한 표현은 본장에 세 번 나온다(16, 22, 29절).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뿐 아니라, 애굽 사람들의 마음도 강퍅케 하실 것이며 바로와 그 모든 군대를 인해 영광을 얻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며, 그 결과,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는 옮겨 그 뒤로 행하였고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서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섰다.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한 방식으로 보호하셨다.

[21-25절]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 . . .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다. 하나님께서는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고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 그는 큰 동풍을 사용하여 홍해를 갈라지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바닷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었다.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마병들은 다 그들을 따라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다. 새벽에 하나님께서는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것을 어지럽게 하셨고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어렵게 하셨다.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심을 느끼며,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해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라고 말하였다.

[26-3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고 하셨으며, 모세는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고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되었다.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다 가운데서 엎으셨다. 바닷물은 다시 흘러 이스라엘 자손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 그 병거들과 기병들을 다 덮었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은 좌우에 벽이 되었다. 본장에는 이런 표현이 세 번 나온다(16, 22, 29절).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이같이 구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의 시체를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다. ‘큰일’이라는 원어(하야드 학게돌라)는 ‘큰 손’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큰 능력의 일’을 가리킨다. 홍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또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다. 기적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위해 은혜로 주신 것이다.

본장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장은 성도에게 고난과 위기가 있음을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작정과 뜻 가운데서, 그의 인도하심 속에서 애굽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큰 고난과 위기를 직면하였었다. 그들은 광야에서 바로와 애굽 군대의 칼에 죽을 것 같은 큰 위기를 만났다.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많은 고난을 당하고 위기를 만난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고난과 위기가 있음을 알자.

둘째로, 본장은 성도에게 닥친 고난과 위기를 대처하는 바른 방법이 무엇임을 보인다. 그것은 살아계신 섭리자, 구원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했고, 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하였다(13-14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15-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무엇보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체험치 못할 것이나, 기도하는 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할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큰 손, 즉 큰 능력의 일을 볼 것이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위기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기회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그의 백성된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위기를 해결하실 수 있고 또 해결하실 전능하신 섭리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을 바라며 그가 우리를 위해 어떻게 행하시는지, 그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보아야 한다.

 

 

15장: 모세의 노래

1-21절, 모세의 노래

[1절]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 . . .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여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넜고 바로의 병거와 그 신하들의 병거들이 홍해에서 다 죽은 그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노래를 불렀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라는 원어 는 “내가 여호와께 노래하리니”라는 뜻이다. 그가 하나님께 노래한 이유는 “그가 높고 영화로우시기” 때문이었다. “높고 영화로우시다”(가오 가아)는 원어는 “심히 높으시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다.” ‘말과 그 탄 자’는 단수명사로 애굽 왕 바로를 가리킬 것이다. 물론, 그 외에 그의 장관들의 병거들도 있었고 그들도 다 바다에 던지웠다.

[2절]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 . .

“여호와(야흐 Hy)는 나의 힘”이라고 말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애굽 왕 바로와 그 군대를 이길 힘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기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나의 노래”라고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기뻐서 노래했기 때문이다. “나의 구원”이라고 한 것도 그들이 절망과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소유하고 섬기는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많다. 그러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며 그를 경외하고 믿고 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삶의 의미와 삶의 목적으로 삼고 그들의 삶의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라는 원어(안웨후)는 “내가 그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 즉 그의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로 삼는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 할 것이다.

“내 아비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자신이 경건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음을 나타낸다. 모세의 부모는 경건하였음에 틀림없다(히 11:23). 모세는 어릴 때 어머니의 경건한 교훈 속에 자랐음에 틀림없다. 모세의 하나님은 그의 부모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조상의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내가 그를[그 하나님을] 높이리로다”라고 말한다.

[3절]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모세는 또 “여호와는 용사”라고 말한다. ‘용사’라는 원어(이쉬 밀카마)는 ‘전쟁의 사람’ 즉 ‘전사(戰士)’라는 뜻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애굽의 군대를 파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출 3:14). 그것이 여호와라는 말뜻이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 즉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라는 뜻이다. 영원자존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이루셨다.

[4-5절]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 . . .

그는 바로의 병거들(원문)과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셨다. 바로의 병거들과 장관들이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은, 우연이거나 재수가 없어서거나 이스라엘 자손과의 전투에서 패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바로의 택한 장관들은 홍해에 잠겼고 큰물이 그들을 덮었고 그들은 돌처럼 깊은 바다 속에 잠기었다.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넜고 애굽 사람들이 빠져 죽은 그 바다를 ‘홍해’라고 부른다. 홍해는, 자유주의자들이 추측하는 대로, 애굽 북동쪽 끝, 지중해의 한 해변이 아니고, 분명히 ‘홍해’라고 불린 애굽 동쪽의 큰 바다의 북단, 즉 수에즈만 북쪽의 어느 지점이었을 것이다.

[6-10절]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 . . .

홍해 사건은 하나님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신 일이었다. 그의 오른손이 원수들을 부수셨다. 하나님은 그의 큰 위엄으로 그를 거스르는 자들, 즉 그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엎으셨다. 그는 진노를 발하셨고 그의 진노는 그들을 그루터기나 겨같이 사르셨다. ‘초개’라는 원어(카쉬)는 ‘그루터기, 겨’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서고 큰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었다. 출애굽기 14:21은,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고 말하였다.

대적들은, “내가 쫓아 미쳐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인하여 내 마음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고 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바람을 일으키셨고 바다는 그들을 덮었고 그들은 흉용한 물에 납같이 잠겼다. 출애굽기 14:27은,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라고 말하였다.

[11-12절]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 . .

모세는 이 놀라운 홍해의 구원 체험으로 인해,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고 고백한다. ‘기이한 일’이라는 원어(펠레)는 ‘기적’이라는 단어이다. 홍해를 갈라지게 하시고 자기 백성을 무사히 건너게 하시고 대적자들을 다 물에 빠져 죽게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과 거룩하심과 영광이 밝히 증거되었다. 세상에 여호와와 같은 신은 없다.

모세는 “주께서 오른손(즉 능력의 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라고 말한다. ‘땅이 그들을 삼켰다’는 표현은 특이하다. 실제로는 땅이 아니고 바다가 그들을 삼켰지만, 바다가 땅 위에 물이 고인 곳이며 넓게는 땅에 포함된다는 뜻에서, 즉 하늘과 땅 곧 천지(天地)라는 말 속에 우주만물이 다 포함된다는 뜻에서, 표현된 것 같다.

[13절]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 . . .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은혜로’라는 원어(베카스데카)는 ‘그의 자비로’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속(救贖)하신, 즉 구원하신,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로 인도하시는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곳은 그가 거룩하게 구별하신 처소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조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땅이다. 그들은 그 땅에 들어갈 힘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으로 그들을 그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신다.

[14-16절]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 . . .

홍해 사건의 소문은 애굽 주위의 여러 나라들에 널리 퍼졌다. 이방 나라의 백성들이 듣고 떨었고 블레셋 거민들도 두려움에 잡혔고 에돔 방백들도 놀랐고 모압의 영웅들도 떨림에 잡혔고 가나안 거민들도 다 낙담했다.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을 듣고 떨고 두려워하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는가. 후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정탐꾼을 보냈을 때, 그 성의 기생 라합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다(수 2:9-11).

모세는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너무 놀라고 두려워 돌같이 잠잠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주의 백성’ 곧 ‘주의 사신 백성’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신 백성이었다. 그것은 신약성경의 ‘구속(救贖)’의 개념과 같다. 구원은 죄의 노예된 자들을 값을 주고 사서 해방시켜 주는 것과 같다. 고린도전서 6:19-20,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18절]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 . . .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인도하셔서 그의 기업의 산, 그의 예비된 처소, 그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 곧 가나안 땅에 심으실 것이다. 13절에서도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모세는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라고 말한다. 원문은 “여호와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시도다”이다. 다스린다는 말은 왕노릇하신다는 뜻이다. 그것이 섭리의 개념이다. 섭리는 통치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며 통치하신다.

[19절]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 . . .

본문은 다시 “바로의 말과 병거들과 마병들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고 말한다. ‘바로의 말’이라는 원어는 단수명사이다. 애굽 왕 바로 자신이 그때에 홍해에 빠져 죽었던 것 같다. 바로의 말과 애굽의 병거들과 마병들이 다 바다에 빠져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하였다.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라는 표현은 벌써 네 번째 나온 표현이다(출 14:16, 22, 29; 15:19). 이렇게 반복해서 증거된 대로, 홍해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며 하나님의 놀랍고 은혜로운 기적의 사건이었다.

[20-21절]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 . . .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작은 북]를 잡으니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었다. 구약시대의 미리암이나 신약시대의 전도자 빌립의 네 딸과 같이 여자가 선지자인 경우는 예외적이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나 선지자, 신약시대에 사도나 장로와 집사는 남자들 중에서 택했다. 성경은, 남녀가 함께 모인 회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 즉 목사나 장로의 직분이 허락되지 않음을 분명히 계시한다(고전 14:34-37; 딤전 2:11-14).

모세의 노래의 첫 부분과 동일하게, 여선지자 미리암은 여인들에게 화답하면서,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라고 말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홍해 사건의 역사성을 믿자. 모세의 노래의 내용은 홍해 사건의 역사성을 다시 한번 더 확실히 증거한다. 홍해 사건이 기적적 사건이 아니었다면, 모세는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긴 노래는 홍해 사건의 체험에 근거한 것이다. 더욱이, 본문은 애굽 주위의 나라들이 그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였다고 증거한다. 14-15절,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우리는 홍해 사건의 역사성, 즉 홍해 사건이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믿자. 우리는 성경의 진실한 증거를 다 믿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지금도 온 세상을 섭리하심을 믿자. 홍해 사건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었다. 모세의 노래는 이 사실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다(1절). 그가 바로의 병거들과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셨다(4절). 하나님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셨다(6절). 그가 그의 큰 위엄으로 그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셨다(7절).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의 자비로 성결한 처소, 그의 기업의 산, 그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 인도하신다(13, 17절).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통치하신다(18절).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그의 보호와 인도, 그의 통치를 증거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지금도 세상 만물과 우리 개인과 국가와 세계 전체를 섭리하시고 통치하심을 믿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친 백성이라는 사실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의 기적을 주신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救贖)하신 백성이며(13절) 그의 사신 백성(16절) 곧 그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대적자들을 부수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신다(13, 17절). 약속의 땅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영광의 천국을 예표한다.

신약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자. 우리는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전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자.

 

22-27절, 마라의 교훈

[22-23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 . . .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했고 그들은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수르 광야는 홍해 건너편 애굽에 근접해 있는 광야이었다. 창세기 25:18은,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수르] 사이 그랄에 우거했고(창 20:1) 이스마엘 자손들도 애굽 앞 술[수르]까지 이르러 거하였다고 기록하며, 또 사울이 애굽 앞 술[수르]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쳤다고 한다(삼상 15:7). 이런 말씀들을 보면, 수르 광야는 시내 반도의 북서쪽의 광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행하면서 물을 얻지 못했다. 물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그 광야에서 물이 없었으니 그들은 매우 불안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또 그들은 물이 있는 한 곳에 이르렀지만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였으므로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다. 마르 라는 말은 ‘쓰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3일 전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던 그들은 이제 물이 없거나 물이 써서 어려움을 당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홍해를 건너는 기쁨도, 물이 없거나 물이 쓴 고통도 주셨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신 일들이었다.

[24-25절]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 . . .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 모세를 원망했다. ‘원망하다’는 원어()는 ‘투덜거리다, 웅성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13번 사용되었다(출 15:24; 16:2, 7, 8; 17:3; 민 14:2, 27, 27, 29, 36; 16:11, 41; 17:5).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면서 투덜거렸고 웅성대었다. 고난 중에 원망하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공통적 연약성이다. 원망과 불평은,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의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고난의 현실을 참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한 나무를 지시하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놀랍게도 물의 맛이 달아졌다. 그것은 나무 자체의 효능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어난 기적이었다. 본문은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라고 말한다. 그 법도와 율례는 다음절에 나오는 내용일 것이다.

[26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가지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는 말씀이다.

‘너희가 청종한다’는 원어(솨모아 티쉬마)는 ‘너희가 진심으로 듣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교훈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계명들과 율례들을 힘써 지키기를 원하셨다. 또 그런 순종의 삶에 대해 건강과 치료를 약속하셨다. 이것은 잠언 3:7-8의 말씀과 동일하다. 거기에 보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씀했다. ‘양약’이라는 원어(리프우스)는 ‘치료’라는 뜻이다.5)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예호와 로프에카)로 표현되었다. 몸의 건강과 병의 치료는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70주가 . . . .

이스라엘 백성은 엘림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물샘 열두 개가 있었고 종려나무 70주가 있었다. 그곳은 사막의 오아시스이었다. 거기에는 그들이 기다리던 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간 목마름도 주셨지만 시원한 물도 주셨고, 고난도 주셨지만 기쁨과 평안도 주셨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자. 세상에는 고난이 많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높으시고 깊으신 뜻 가운데서 일어난다. 우리의 모든 현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섭리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섭리자 하나님을 잊지 말자. 그의 능력을 잊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자.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를 사흘 동안 행할 때 물이 없어 불안과 고통을 당했고 마라에서는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어 백성들이 투덜대며 원망했으나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낙심하거나 불평, 원망치 말고, 오직 전능하신 섭리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건강 문제이든지, 직장 문제이든지, 결혼 문제이든지, 자녀 문제이든지, 무슨 문제이든지, 특별한 기도 제목을 가진 자마다 힘써 기도하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면 그들에게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건강과 치료를 약속하신 것이다. 계명 순종은 건강뿐 아니라, 또한 평안과 행복을 위한 길이다. 거기에는 의식주의 안정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성경은 안식일 성수(聖守)와 십일조 생활에 대해 영육의 복을 약속하였다(사 58:13-14; 말 3:10-12). 우리는 이러한 교훈이 오늘날도 유효한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자.

 

 

16장: 만나와 메추라기

[1-3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 . .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렀다. 애굽에서 나온 후 제2월 15일, 즉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이 되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은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한 달이 지나자 애굽에서 가져 나온 양식들이 다 떨어졌던 것 같다. 사람은 식량이 부족할 때 불평하기 쉬운 것 같다. 그러나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신 하나님, 홍해를 기적으로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굶겨 죽이시겠는가?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고 원망하였다.

[4-5절]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 . . .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제6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첫째,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양식을 내려주실 것. 둘째, 그들은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 셋째,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그들이 율법을 준행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실 것 등이었다. 세 번째 내용은, 하나님께서 제6일에 그들이 다른 날의 두 배를 거두게 하셔서 그 다음날을 안식일로 지키게 하시는 것이었다.

[6-8절]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 . . .

모세와 아론은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했다.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이 말씀은 그들이 저녁에 메추라기를 얻을 것이며(8, 12, 13절) 아침에 만나를 거두게 될 것을 가리켰다. 모세는 다시 분명하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원망한 것은 실상 하나님을 향해 한 것이었다. 민수기 14:2, 27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을 하나님을 원망한 것으로 간주하셨다.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우리에게 평안도 주시고 또 이런 저런 어려움도 주신다.

[9-12절]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 . . .

모세는 또 아론에게 말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명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할 때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아셨다. 그는 그들의 믿음 없이 내뱉는 불평과 원망의 말을 다 들으셨고 근심하셨고 불쾌히 여기셨겠지만, 그러나 그들의 필요대로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그들로 하나님을 알게 하기를 원하셨다.

[13-16절]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 . . .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였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었으며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었다. 만나이었다. 그것은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서로에게 말했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원어(만 후)는 “그것이 만나이다”라고도 번역된다(KJV). 그러나 ‘만나’라는 원어는 아람어로 ‘무엇’이라는 뜻이며, 그래서 우리말처럼 번역하기도 한다(NASB, NIV). 이와 같이, ‘만나’라는 말은 “이것이 무엇이냐?”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인다. 모세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 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오멜’은 부피의 단위로 약 2.2리터(즉 한 되 한 홉)에 해당한다.

[17-20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 . . .

이스라엘 자손은 그같이 하였고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항상 얻게 하셨다. 모세는 그들에게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더러는 그것을 아침까지 두었고 그러자 거기서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 모세는 그들에게 노하였다.

[21-24절]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 . . .

이스라엘 회중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만나를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다[녹았다]. 제6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양식 곧 한 사람에 두 오멜씩 거두었다. 회중의 모든 우두머리들이 와서 모세에게 고하자, 모세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안식일은 모든 일상적 일을 쉬는 휴식의 날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신 날이다(막 2:27). 그날 사람들은 육신의 일을 쉬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그의 일을 생각하고 그를 섬긴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명대로 만나를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회중은 아침마다 만나를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녹았다.

[25-30절]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 . . .

모세는 그들에게,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 6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7일은 안식일인즉 그날에는 없으리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6일에 갑절로 거둔 만나를 제7일까지 먹어야 했다. 그러나 백성 중 어떤 이들이 제7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였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보라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6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7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제7일에 안식하였다.

[31-36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 . . .

이스라엘 족속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하늘로부터 주신 그 양식의 이름을 ‘만나’라고 불렀다. 그것은 ‘깟’(coriander)이라는 일년생 풀의 씨와 같고 색깔은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 모세는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 너희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느니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 아론에게 말하기를,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고 하였다. 오멜은 에바의 10분의 1이었다. 오늘날의 측정단위로 말하면, 오멜은 약 2.2리터이며 에바는 약 22리터이다.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 즉 법궤 안 십계명 두 돌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했다. 그러면 구약시대에 법궤 속에는 세 가지 물건이 있었다. 첫째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이요, 둘째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요, 셋째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였다(히 9:4). 이스라엘 자손은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만나를 먹었다.

본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점에서 부족하였다. 본장에는 ‘원망’ 혹은 ‘원망하다’는 말이 7번이나 나온다(2, 7, 7, 8, 8, 9, 12절). 본문은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이 여호와를 향해 한 것이라고 말한다(8절). 또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 원망을 들으셨다고 네 번이나 말한다(7, 8, 9, 12절).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근심하시고 노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불평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도 말자. 우리는 오직 절대주권자 하나님을 바라고 기도하며 기다리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창조자요 보존자요 통치자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이 없어 원망하고 불평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 즉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자이셨다. 그는 그들에게 자비하셨고 은혜로우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살아계셔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그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의 쓸 것을 아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자(마 6:11). 또 우리는 어려운 현실을 겁내거나 현실에 위축되지 말고 과감하게 믿음으로 대처해 나가자. 오직 믿음으로 살고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하고 사랑과 선을 실천하자(마 6:31-33).

셋째로, 우리는 주일을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로 거룩히 구별하여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안식일 준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자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믿고 의지하며 섬기려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높이고 찬송하려 한다면, 우리가 정말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 우리의 소망을 두는 자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이 지키며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 계명 안에 공적 예배의 날로서의 안식일을 지키는 의무도 포함된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은 구약의 안식일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신약 성도는 구약의 안식일 계명의 본을 따라 주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예배의 날로 지키며 또 육신의 휴식도 취한다. 우리는 주일을 온종일 구별하고 공적 예배와 휴식의 날로 즐거이 지키자.

 

 

17장: 르비딤 사건들

1-7절, 맛사와 므리바

[1-3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 . .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가 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이 없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모세와 다투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하였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들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다투며 모세를 원망한 것은 곧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었다. 만일 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과 경외심이 있었다면 그들은 모세와 다투거나 그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고요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참고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과 경외심이 없었다.

[4-7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 . . .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말했다.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이 상하여 모세에게 돌질할 정도까지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변화무쌍하여 한 때는 모세를 향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를 존중하며 따랐을 그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자 돌변했다. 이것이 무지하고 믿음 없는 인생의 모습이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다. 모세는 불평하며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한 하나님의 마음의 고통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는 기도로 그 상황을 대처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강물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이 말씀은 몇 가지 내용을 가진다. 첫째는 백성들 앞을 지나가라는 것이다. 모세는 백성 앞에서 위축되지 말고 당당히, 담대히 그의 직무를 수행해야 했다. 둘째는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는 것이다. 장로들은 백성의 대표자들이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자들이요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볼 자들이었다. 그들이 친히 하나님의 일을 목격하는 것은 이스라엘 회중을 위해 유익할 것이다. 셋째는 “네 지팡이를 잡고 가라”는 것이다. 모세가 손에 든 지팡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지팡이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는 지팡이보다 더 귀한 성경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믿고 실천하면서 담대히 살아가자!

넷째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에 관여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관여하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맞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는 전능(全能)하시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그대로 행하였다. 즉 그는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했고 모든 백성으로 그 물을 마시게 하였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런 기이한 능력의 일들을 많이 행하셨다.

이 반석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고 거기서 나오는 물은 영생수를 예표했다.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요한복음 4:10,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시요 힘과 위로이시다.

모세는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다투었고 여호와를 시험하여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기 때문이다. ‘맛사’는 히브리말로 ‘시험’이라는 뜻이고, ‘므리바'는 ‘다툼’이라는 뜻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문은 성도가 고난 중에서 사람과 다투고 사람에게 불평하며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께 기도해야 함을 교훈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맛사와 므리바에서 마실 물이 없었을 때 믿음 없이 모세와 다투며 그를 원망했으나, 모세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응답하셔서 모세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셨다. 그것은 온 백성이 마실 풍성한 물이었다.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가 된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낙심치 말고 하나님을 앙망하며 기도해야 한다. 혹시 생각나는 죄가 있으면,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잠잠히 기다리고 또 기대해야 한다(마 7:7; 빌 4:6-7).

 

8-16절, 아말렉과 싸워 이김

[8-9절]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 . . .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다투며 원망했던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아말렉 사람들은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자손들이다(창 36:12, 16). 전쟁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이기적인 동기로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웃의 침략을 받았을 때 자기 나라를 방어하는 것이거나 침략받은 나라를 돕는 것이다. 침략 전쟁은 악하지만, 방어 전쟁이나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전쟁은 정당성을 가진다. 아말렉은 악한 전쟁을 일으켰고 이스라엘은 정당방위적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실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모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을 상징하는 지팡이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로 보내실 때 그 지팡이를 들고 가게 하셨었다(출 4:20). 모세의 그 지팡이는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 사용되었고 홍해를 가를 때나 반석을 칠 때에 사용되었다. 모세는 그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설 것이다.

[10-11절]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 . . .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에 순종하였다. 그는 모세의 말대로 사람들을 모아 아말렉과 싸우려고 나갔다.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몇 명의 동역자들을 주셨다. 그는, 나가서 전쟁할 여호수아를 주셨고, 함께 산에 오를 아론과 훌을 주셨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주의 종들에게 몇 명의 신실한 동역자들을 주실 것이다.

그런데 그 산꼭대기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원문에 ‘손’이라는 말이 복수가 아니고 단수인 것을 보면, 모세가 양손을 든 것이 아니고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들었던 것 같다.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능력과 도우심을 간구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오 하나님, 우리가 주의 능력과 도우심을 간구하오니 이 전쟁에서 이기게 하옵소서.” 그것은 모세의 믿음의 표시이며 믿음으로 하는 기도이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긴 것은 이스라엘 군대의 승리가 병사들의 전투 기술이나 용맹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에 있음을 증거한다. 소년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칠 때 한 고백과 같이(삼상 17:47),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며 그 승리와 실패는 단순히 칼과 창 같은 전쟁 무기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12-13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 . . .

모세의 팔이 피곤하였다. ‘팔’이라는 원어는 ‘손들’이라는 뜻이다. 모세는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들었던 것 같고, 그는 그의 두 손이 다 피곤하였다. 그때 아론과 훌은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좌우에 서서 그의 피곤한 손들을 붙들어 주었다. 그래서 모세의 손은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그의 손은 피곤할 수밖에 없었으나,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계속 높이 들렸다. 주의 일에 있어서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고 서로의 믿음과 기도를 돕는 것은 복되다. 마침내 그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여호수아는 아말렉을 쳐서 파하였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자신에게서나 모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14-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이 전쟁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계시 사건이었다. 이것은 책에 기록되어 후대에 교훈이 될 것이었고, 우리는 지금 그 내용을 읽고 교훈을 받고 있다.

모세는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부르며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하셨도다.” ‘여호와 닛시’라는 원어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장이셨고 그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하였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항상 함께하시며 그들을 승리케 하신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은 여호수아나 이스라엘 군대의 힘이나 지혜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에 있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힘써 싸워야 한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싸우게 하였고 자신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들어 기도했다. 땅 위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이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영적인 전쟁을 치루는 자들이다. 우리의 원수는 마귀와 악령들이다(엡 6:10-20). 우리는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에게 기도하면서 이 전쟁을 수행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깃발이시며 친히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이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길 것이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고 합력해야 한다. 아론과 훌은 모세를 도와 그의 피곤한 손을 붙들어 주었다. 그들의 협력은 그 전쟁의 승리에 있어서 매우 필요하였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뜻과 힘을 같이할 동역자들이 필요하며 그런 동역자들이 되자.

 

 

18장: 이드로의 방문

[1-4절] 모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하나님이 . . . .

모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소문으로 들었다. 그는 모세가 돌려보내었던 그의 아내 칩포라와 그 두 아들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왔다. ‘게르솜’은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고, ‘엘리에셀’은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5-8절]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들들과 그 아내로 . . . .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의 아들들과 그 아내와 함께 광야에 들어와 모세에게 곧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진 친 곳에 이르렀다. 그는 모세에게 “그대의 장인 나 이드로가 그대의 아내와 그와 함께한 그 두 아들로 더불어 그대에게 왔노라”고 말을 전했다. 모세는 나가서 그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갔고, 모세는 장인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고하였다. 이드로는 그 내용을 소문으로 들어 대략 알고 있었으나 이제 모세의 증언을 통해 자세히 듣게 되었다. 출애굽기 앞부분에 기록된 애굽에서의 열 가지 재앙들이나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넌 일이나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일이나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온 일이나 아말렉 전쟁을 승리한 일 등 모든 일들은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들이었다.

[9-12절]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은혜를 베푸사 . . .

모세의 말을 들은 이드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은혜 곧 ‘모든 좋은 것’(핫토바)을 베푸시고 애굽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며 말했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들의 손과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들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들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여호와는 모든 신들보다 크시도다. 이는 그들이 그 백성을 대적하여 교만히 행할 때 그러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을 징벌하심으로 자신을 증거하셨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번제물과 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왔고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었다.

[13-16절] 이튿날에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 . . .

이튿날 장인은,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백성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의 곁에 서 있음을 보고 말했다. “그대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찜이뇨?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대의 곁에 섰느뇨?” 모세는 장인에게 대답하였다.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니이다. 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나니 내가 그 양편을 판단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그는 바른 재판을 위해 많이 수고했다.

[17-23절]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 . . .

모세의 장인은 그에게 말했다.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드로의 평가는 적절하였다. 재판하는 모세 자신뿐 아니라, 재판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종일 재판의 일로 피곤하였고 지치고 있었다.

이드로는 모세가 행하는 기본적 직무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실지로다. 그대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있어서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며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땅히 갈 길과 행할 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 율례와 법도는 모든 재판 사건들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드로는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대는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才德)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利)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짐을 담당하므로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그의 제안은 5심제 재판제도와 같았다.

그의 제안은 좋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인가하시면”이라는 말을 보면, 그는 경건한 자이었다. ‘재덕(才德)이 겸전한 자’라는 원어(안쉐 카일)는 ‘능력 있는 자’라는 말로 지혜와 덕을 겸비하여 맡겨진 일을 잘 처리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잠언 31:10의 ‘현숙한 여인’(에쉐스 카일)이라는 말도 지혜와 덕을 겸비한 ‘능력 있는 여자’를 가리킨다.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하며 돈에 깨끗한 자가 재판관의 자격이 있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24-27절]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 . . .

모세는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재덕이 겸전한 자를 빼서 그들로 백성의 지도자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왔고 쉬운 일은 스스로 판결하였다. 이런 제도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유익했던 것 같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모세가 장인을 보냈고 그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증거성을 믿자. 출애굽기의 내용들은 여러 나라들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드로는 그 내용을 소문으로 알고 있었으나 모세는 그에게 직접 자세히 증거하였고, 그 증거를 들은 장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애굽에서 또 광야에서 역사하셨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섭리자, 곧 통치자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history)는 바로 ‘그 분의 이야기’(his story)이다.

셋째로, 본문은 지도자들의 자격에 대해 증거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적 성장의 본이 된다. 첫째, 재덕이 겸전한 자이어야 한다. 그것은 지혜와 덕이 있어서 무슨 일을 맡기든지 해내는 자를 가리킨다. 둘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경건이며 그것이 신앙의 근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이며 악을 떠날 것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셋째, 진실한 자이어야 한다.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의 세계의 속성이다. 넷째,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이어야 한다. 사람의 도덕성은 돈 거래에서 잘 나타난다. 돈 셈이 흐린 사람은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다.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봉사자들은 돈 문제에 있어서 정직하고 깨끗해야 한다. 이런 자격들은 시편 15편에 말한 하나님의 장막에 유할 자의 자격과 비슷하고, 디모데전서 3장에 교훈한 감독과 집사의 자격과 비슷하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 모두가 온전해져서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기를 기대하신다.

 

 

19장: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내려오심

[1-6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3월 . . . .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3월, 약 두 달 후에,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은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산 앞에 장막을 쳤다. 모세는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고 여호와께서는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온 땅이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참으로 내 말을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원문). ‘소유’라는 원어(세굴라)는 ‘특별한 보화’라는 뜻이다(BDB, KJV).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을 보인다. 온 땅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이며 그에게 속하였지만,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은 세상의 많은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하나님의 특별한 보화가 될 민족이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될 자들이었다. 이 말씀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참으로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을 붙이셨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인생의 본분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명령과 순종의 관계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려면 그의 뜻과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7-9절]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 . . .

모세는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였다. 백성들은 일제히 응답하며 말했다.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자,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영원히 믿고 그의 음성을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10-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3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3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눈앞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그는 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돌에 맞거나 화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도 사람도 살지 못하리라.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오늘과 내일 자신을 성결케 하고 의복들을 빨아야 했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선을 지키고 넘어가지 말아야 했다. 그 경계선을 어기고 들어오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하나님의 이 지시는 죄 많은 인생이 감히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가 백성에게 와 그들로 성결케 했고 그들은 자기들의 옷을 빨았다. 모세는 또, “예비하여 제3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오늘날도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태도이다.

[16-20절] 제3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 . . .

제3일 아침에 천둥과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었고 나팔 소리가 심히 컸고 진중의 모든 백성은 다 떨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맞으려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왔고 그들은 산기슭에 섰다. 시내산에는 연기가 자욱하였다.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셨기 때문이었다. 그 연기는 옹기점 연기같이 떠올랐고 온 산은 크게 진동하였다. 또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 모세는 말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음성으로 대답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시내산 꼭대기에 내려오셔서 그리로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는 여호와께로 올라갔다.

[21-2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申飭)하라[경계하라]. 백성이 돌파하고[어기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갑자기 칠까] 하노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정하신 경계선을 어기고 들어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갑자기 치실 것이며 그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모세는 여호와께 아뢰었다.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산 사면에 지경을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어기고]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갑자기 칠까]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반복해 말씀하심으로 경고하셨다. 모세는 백성에게 내려가서 말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인격성을 바르게 알고 그를 섬기자. 자연만물도 하나님을 증거하지만,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하나님을 더욱 확실하게 증거한다. 그는 자신의 위엄과 영광을 생생하게 증거하셨다. 시내산 위에는 천둥과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있었고 나팔 소리가 심히 컸다.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위엄과 영광을 보았고 그 앞에서 두려워 떨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음성으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시다. 그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히 1:1-2).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과 성결함으로 그를 섬기자. 우리는 죄성을 가진, 죄악된 행실의 발자취를 가진, 누추한 존재들이며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지만,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며(히 10:19; 4:16),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함으로써 인격적으로 그를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된 특권을 감사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었다. 이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보배로운 소유이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를 다하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언약을 지키는 조건이 있었다. 물론 신약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을 얻었다(요 1:12).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성도의 본분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본분이다(전 12:13).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시며, 또 그의 말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이지만, 그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지혜로운 자라고 하셨다(마 7:21, 24-26). 우리는 순종으로 성도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20장: 십계명

1-11절, 하나님께 대한 의무

[1-2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 . . .

모세는 증거하였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 모든 말씀’은 이어 나오는 십계명을 가리킨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모든 도덕적 교훈들의 요약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의 고된 노역과 학대로부터 그 권능의 손으로 구원해주신 구주 하나님께서 이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다.

[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3~11절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너는 나 외에는(알-파나이)[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 계명은 우리에게 유일신(唯一神) 사상을 가져야 할 것과 다른 신들을 인정치 말아야 할 것을 명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 진리이다.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이사야 43:10,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이사야 44:6,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5:5-6,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 . .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 46:9,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예레미야 10: 10-11,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 . .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4-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 . . .

둘째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새긴 우상’이라는 원어(페셀)는 ‘(나무나 돌에) 새긴 우상’이라는 뜻이다. 둘째 계명은, 위로 하늘에 있는 것 즉 해나 달이나 별을 비롯하여 각종 새들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 즉 나무나 짐승들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 즉 물고기들 등, 그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명한다. 그것들은 다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만 섬기고 그 어떤 피조물도 신(神)처럼 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할 이유로, 그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며 우상숭배의 악에 대해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질투는 인간 관계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워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징벌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삼사 대까지 징벌하시면 그 가문은 다 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수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천 대’라는 원어(알라핌)는 ‘수천’이라는 뜻이다(KJV, NASB, 'thousands'). 의인들의 자손들은 복될 것이다. 시편 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7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 . .

셋째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는 계명이다. ‘망령되이’라는 원어(랏솨웨)는 ‘헛되이, 함부로’라는 뜻이다. 셋째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나 그에게 기도하거나 맹세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진실하게, 진지하게, 두려움과 존숭함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농담할 때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8-11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 . . .

넷째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7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7일 중 하루를 거룩히 구별하여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니 만큼, 우리는 그날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기억해야 한다. 또 이 계명은 엿새 동안 힘써 우리의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전제(前提)한다. 이 계명의 정신은 엿새 동안도 게으르고 제7일도 쉬는 것이 아니다.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는 자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엿새 동안에 우리의 할 일을 부지런히, 열심히 해야 한다. 

또 이 계명은 온 가족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집안의 한두 사람이 대표로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고, 자녀들을 포함하여 온 가족이, 심지어 집에서 일하는 자들이나 손님들까지도 함께 거룩히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또 안식일에는 세속적인 일들을 중단해야 한다. 그날에 우리는 직업상의 일, 물건을 사고 파는 일, 세상 공부, 오락 등을 중단해야 한다. 출애굽기 34:21,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매매하는 일을 안식일을 범하는 악한 일로 정죄하며 경계하였다(느 13:15-22). 또 그 대신, 그날은 ‘성회(聖會)’ 즉 공적 예배의 날로 지켜야 하였다(레 23:3).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7일에 쉬심에 근거하였다. 그는 그날을 복되게 하셨고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날을 귀하게 여기며 구별하여 거룩히 지키는 자는 복되다. 이사야 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안식일을 성취하셨다. 마태복음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러나 그 성취는 구약보다 더 풍성한 방향으로의 성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모범을 따라 토요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온종일 거룩히 구별하여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기쁨과 자원함으로 지키며 주 안에서 쉰다.

십계명의 내용은 말씀 그대로이다. 그것은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성실한 순종을 요청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이 계명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해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만 유일한 하나님으로 바로 알고 그를 믿고 섬기며 따라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살아계신 여호와 참 하나님, 삼위일체 되신 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에게 절하지 말고 또 그것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큰 가치를 두고 섬기는 모든 것이 우상이다. 현대인들은 돈이나 과학이나 육체의 쾌락을 하나님처럼 중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찬송을 부를 때나 기도할 때나 특히 맹세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일상적인 농담이나 경박한 노래들의 가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주일을 기억하고 거룩히 구별하여 지켜야 한다. 신약 성도들은 엄격한 토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즐겁고 복된 날로 지킨다. 우리는 이 날 세속적인 일을 중단하고 교회로 모이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들 간의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말씀의 교훈을 사모해야 한다.

 

12-26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 . . .

12~17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말씀하셨다.

다섯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계명이다. 자녀를 낳으시고 기르신 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그들에게 순종하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야메카)[네 날들]이 길리라”는 약속을 첨가하셨다. 그는 부모 공경에 대해 장수(長壽)의 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부모 공경은 가정 질서를 세우는 것이며 인간 관계의 윤리의 기본이다. ‘부모’는 넓게는 이웃 어른들, 학교 선생님들, 직장 상급자들, 교회와 사회 지도자들을 대표한다. 레위기 19:32,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에베소서 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라.” 베드로전서 2:17, “왕을 공경하라.” 디모데전서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이웃의 어른들을 공경하고 학교의 선생님들을 존경하고 직장의 상급자들을 존중하고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을 존중할 것이다.

[13절] 살인하지 말지니라.

여섯째는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당한 사형 외에 사적인 감정으로 남을 죽이는 것을 금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이 하나님의 형상을 깨뜨리는 큰 악이며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창 9:6).

생명은 귀한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불멸적인 영혼의 존재를 내포한다. 더욱이, 육신의 생명은 영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생명이다. 그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다(마 16:26). 또 살인은 욕심과 미움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돈을 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숨을 죽인다. 또 미움은 살인으로 나타난다. 미움은 마음의 살인이다.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과 미움을 버려야 한다.

[14절] 간음하지 말지니라.

일곱째는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정조(貞操)와 순결성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남녀의 성관계는 결혼 관계에서만 허용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질서가 깨어지고 문란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혼전 관계, 혼외 관계, 동성 관계, 짐승과의 관계 등은 다 음란한 일이며 매춘(賣春)도 그러하다. 또 이런 일을 조장하는 글, 그림, 동영상, 영화, 비디오, 인터넷 매체 등은 다 죄악되다. 그것을 만들거나 유포하거나 그런 일에 종사하거나 그런 일로 돈을 버는 모든 것이 다 죄악되다.

현대 사회는 도덕 수준이 낮아지고 해이해지고 음란 풍조가 만연해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남녀관계가 문란하다. T.V.나 인터넷 등이 음란 풍조의 주된 도구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일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특히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위해 이런 도구들을 엄격히 통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세상의 음란 풍조에 물들고 포로가 되고 믿음을 잃고 결국 죄 가운데서 멸망하게 될 것이다.

[15절]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여덟째는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그것을 침해하지 말라는 뜻을 포함한다.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 강탈과 토색(討索)은 죄악이다. 강압적 방식으로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생각도 악한 것이다. 자유 경쟁에 의한 이윤의 추구는 기본적으로 성경적인 생각이다. 부(富)의 분배는 좋은 이상(理想)이지만 강압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경제적 평등을 혁명을 통해 실현하려는 공산주의는 악마적 이념이며 성경은 결코 그런 사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민주사회에서 부(富)의 분배는 단지 정당한 법 제정에 의한 세금 징수로써만 점진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성경은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말한다(잠 10:4). 또 성경은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교훈한다(엡 4:28).

[16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아홉째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존중하라는 뜻을 내포한다.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다(요 8:44). 거짓말은 지옥 갈 죄악이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죄악이다. 요한계시록 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교훈한다(엡 4:25).

[17절]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 . . .

열째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즉 탐심을 가지지 말라는 계명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집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나 그의 종이나 가축들이나 그의 모든 소유도 탐내지 말아야 한다. 탐심과 욕심은 모든 죄악들의 뿌리이다. 야고보서 1:15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말한다. 탐심은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의 원인이 된다. 또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한다(골 3:5). 사람이 돈을 탐하면 돈이 그에게 우상이며, 그가 육체의 쾌락을 탐하면 육체의 쾌락이 그에게 우상이다. 그러므로 탐심은 모든 죄악의 뿌리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무서운 악, 곧 우상숭배의 악인 것이다.

[18-21절]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 . . .

18-26절은 백성의 반응과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백성은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았고 그것을 볼 때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위엄 앞에 심히 두려워했다. 모세는 백성을 안심시키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엄위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그들을 죽이려 하심이 아니고 그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 짓지 않게 하려 하심이었다.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나아갔다. 그는 그들의 중보자 역할을 하였다.

[22-2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서 행할 몇 가지 일을 지시하셨다. 우선, 그는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비겨서’라는 원어(잇티)는 ‘나 외에’라는 뜻이다(BDB, NASB, NIV). 그것은 우상숭배를 다시 경계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순수한 경건성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만 순수하게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게 토단(土壇)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토단’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이동하는 동안 쉽게 만들고 쉽게 부술 수 있는 흙으로 만든 단이다. 이 명령에서,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허식보다 내면적 거룩이 중요함을 보이셨다(Poole). 그들이 토단 위에 속죄와 헌신과 교제를 상징하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단을 돌로 쌓을 수 있지만, 그때는 다듬은 돌로 하지 않아야 했다. 다듬은 돌로 만드는 단은 많은 시간과 기술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런 일에 많은 시간을 쓰지 않게 하셨다. 그러나 제사장은 층계로 단에 올라 하체가 드러나게 하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단정함을 중시하셨다. 아직 제사장의 긴 의복은 계시되지 않았다.

십계명 후반부의 뜻도 명료하다. 첫째로,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 에베소서 6: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모님을 공경할 뿐 아니라, 또한 이웃의 어른들도 공경하고 학교의 선생님들도 존경하고 직장의 상급자들이나,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5계명에 내포된 하나님의 뜻이다.

둘째로, 우리는 살인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실제적 살인뿐 아니라, 마음의 미움과 적개심도 버려야 한다.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또 우리는 말로 악하고 거짓되게 남을 비방하여 그의 명예와 평판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도 삼가야 한다.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고 단지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자들이다.

셋째로, 우리는 간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결혼관계를 벗어난 모든 성행위가 죄임을 알아야 한다.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셨다(마 5:28). 음란 풍조가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와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이런 풍조에 물들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남의 것에 손대지 말고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아야 하며 도리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돌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다섯째로, 우리는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진실해야 하고 진실한 말만을 해야 한다.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여섯째로, 우리는 탐내지 말아야 한다. 탐심은 모든 죄의 뿌리이며 그 자체가 죄악이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우리는 물질적, 육신적 욕심을 버려야 한다.

 

 

21장: 공의의 보응--종, 살인

1-17절, 종, 살인, 납치, 부모 공경에 대한 규례들

[1-2절] 네가 백성 앞에 세울 율례는 이러하니라. 네가 히브리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백성 앞에 세울 율례는 이러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율례’라는 원어(미쉬파팀)는 ‘판단들’이라는 뜻으로 ‘재판법’을 가리킨다.

2-11절은 종에 관한 규례이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6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7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사람이 동족 히브리 사람을 종으로 사면 6년 동안만 주인을 섬기게 해야 했다. 사람은 너무 가난할 때 남의 종이 된다. 레위기 25:39에 보면, “네 동족이 빈한[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히브리 종은 6년간만 일을 시키고 제7년에는 아무 조건 없이 자유케 하여야 했다. 신명기 15:12도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6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7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라고 명하였다.

이것은 가난한 동족에 대한 배려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에게 너무 엄하게 하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대하라고 명령한다. 레위기 25:39-40,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이 말씀은, 보통 히브리 종은 6년간만 일을 시킨 후에 자유를 주지만, 그 동안 희년이 끼면 자유케 하고 또 그의 기업, 즉 밭까지도 돌려주라는 뜻이다. 레위기 25:43, 46도,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라,”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히브리 종은 이방인 종과 구별되었다. 이방인 종은 영구적인 종이었지만(레 25:46), 히브리 종은 단지 6년간만 종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택하지 않으신 백성의 구별을 볼 때,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것 같지 않다. 모두가 다 죄인이며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기에 합당했지만,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에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에게 그의 특별한 긍휼과 사랑을 베푸셨다. 모든 사람이 우상숭배를 하고 부도덕하며 음란한 삶을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고자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대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

[3-6절]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자녀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KJV, NIV)6)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만일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주었고 그 아내가 그에게 자녀들을 낳았다면, 그 아내와 그 자녀들은 주인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홀몸으로 나갈 것이다. 종은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인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종은 재판장들에게 나아가 문이나 문설주 앞에서 귀에 구멍을 뚫어야 했다. 귀에 구멍을 뚫는 것은 영원한 종이라는 뜻이었다.

[7-8절] 사람이 그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같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그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같이 나오지 못할지며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 아니하여 상관치 아니하면 그를 속신케 할 것이나 그 여자를 속임이 되었으니 타국인에게 팔지 못할 것이요.”

부모가 그 딸을 여종으로 파는 것은 가정이 극히 어려워서 부득이 이루어지는 경우이고 다음절에 비추어 볼 때 주인에게 첩으로 드리는 조건으로 행해지는 경우이다. 이런 여종은 6년 후에도 남종같이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니고 스스로 종이 된 경우에는 남종같이 6년 후에는 자유를 얻었다. 그러므로 신명기 15:12는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6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7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라고 말했다. 만일 그 여자가 자기를 첩으로 정한 주인을 기쁘게 하지 못하면 주인은 그를 자유케 할 수 있었다.7) 그러나 그가 그 여자를 속인 것이 되었으므로 그를 타국인에게 팔 권한은 없었다.

[9-11절]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같이 대접할 것이요 만일 상전이 달리 장가 들지라도 그의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못할 것이요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속전(贖錢)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이것은 첩으로 받은 여종에 대한 상당한 배려이었다. 또 주인이 다른 아내를 취할지라도 그의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8)은 끊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배려하셨다. 만일 주인이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그 여종은 몸값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갈 수 있었다.

[12-13절]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12-17절은 살인, 부모 구타, 납치, 부모 저주 등의 죄에 대한 처벌에 관한 법이다. 여기에 지적된 죄는 중죄(重罪)로서 그 형벌은 사형이었다. 12-17절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는 구절이 네 번,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는 구절이 한번 나온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지만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 손에 붙이신 경우, 즉 고의적이지 않고 그가 실수로 남을 죽인 경우, 예를 들어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인 경우(민 35:22-23), 사람이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 함 같은 경우(신 19:5) 등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용도로 구별된 성, 곧 ‘도피성’이 요단강 동쪽에 세 곳과 요단강 서쪽에 세 곳, 모두 여섯 성이 있었다.

그러나 고의적인 살인의 경우는 달랐다. ‘짐짓 모살하였으면’이라는 원어는 ‘간교하고 뻔뻔스럽게 행하면’이라는 뜻으로 고의적 살인을 가리킨다. 고의적 살인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였다. 예를 들어,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거나 돌을 들고 사람을 쳐죽이거나 나무 연장을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민 35:16-18) 그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고의적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피신한다 할지라도 그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하였다(신 19:11-13).

[15절]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것은 제5계명을 직접 어기며 하나님의 권위를 대항하는 일이며 참으로 배은망덕한 아주 악한 일이다. 그런 자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16절]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후린다’는 원어(가나브)는 ‘도적질하다’(출 20:15)는 단어이다. 납치하는 일은 사람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적질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도적질이다. 사람을 납치하고 감금 폭행하고 매매하는 일은 엄벌을 받아야 마땅한 죄악이다. 그런 자는 그 납치한 사람을 팔았든지 그 손안에 있든지 간에 반드시 죽여야 하였다.

[17절]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레위기 20:9도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했다. 자기의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제5계명을 어기는 배은망덕하고 악한 일이다. 부모가 없으면, 나도 없다. 사람은 자기의 뿌리가 되는 부모에 대해 공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결코 그를 저주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얼마나 엄격한지, 인간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또 우리를 우리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저주의 죽음을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닫는다.

본장은 몇 가지 실제적 교훈을 준다. 첫째로, 종에 관한 교훈은 오늘날 직장생활의 윤리를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된 형제들을 사랑하고 배려해야 한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키되 너무 엄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주인들이 종들에게 잘 하고 위협하기를 그치라고 교훈한다(엡 6:9). 또한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순복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6:1-2에서 사도 바울은 교훈하기를,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주인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주인이 있는 자들은 그 주인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을 죽이거나 납치하는 것은 사형을 받을 큰 죄악이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말고 남의 인격과 생명을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으로 여기자.

셋째로, 우리는 특히 부모님의 인격과 권위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자녀들은 결코 부모님을 치거나 부모님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형받을 큰 죄악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자.

 

18-36절, 살인에 대한 추가적 규례들

[18-19절]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 적수를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지팡이를 짚고 기동하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기간 손해를 배상하고 그로 전치되게 할지니라.” ‘형벌을 면한다’는 말은 사형의 형벌을 면한다는 뜻이다. 싸우다가 친 상대가 죽으면 고의적 살인에 해당하므로 그를 반드시 죽여야 하지만, 그가 죽지 않고 얼마간 누웠다가 일어나 거동하면 사형은 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부상당한 자의 기간 손해를 배상하고 그로 전치(全治)되게 해야 했다. ‘기간(其間) 손해’라는 말은 ‘그의 시간의 손실’이라는 뜻으로 그가 치료받는 동안의 시간적 피해를 가리킨다. 또 ‘전치(全治)된다’는 말은 ‘다 낫기까지 치료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면 그가 낫기까지 치료하고 그의 시간적 피해를 보상해야 했다. 이것은 싸움으로 인한 부상을 정당하게 처리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오늘날도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상대를 쳐죽이면 그를 사형시켜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공의이다. 그래야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사회에서 살인의 악이 근절되거나 감소될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죽지 않고 거동하면 그의 치료비 전액을 부담하고 그가 당한 시간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싸우지 말고, 혹 싸울 때라도 신체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부득이한 경우, 재판에 호소하고 해결을 얻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법과 질서가 없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쇠파이프나 각목이 등장하고 경찰들을 구타하고 경찰 차량을 파손하는 폭력시위는 엄격히 제재되어야 한다. 정부는 사회 질서와 평안을 위해 이런 폭력시위자들을 엄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20-21절] 사람이 매로 그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매로 그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에 죽으면 반드시 형벌을 받으려니와 그가 1일이나 2일을 연명하면 형벌을 면하리니 그는 상전의 금전임이니라.” 본문의 형벌은 사형을 가리킨다. 종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으로 존중되어야 했다. 종은 주인이 함부로 죽여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매를 맞은 종이 하루나 이틀 생명이 연장되면 주인은 사형의 벌을 면할 것이다. 그것은 주인이 종을 죽이려는 의도로 매를 때린 것이 아니라고 인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이 종을 때릴 수는 있다. 본문은 “그는 상전의 금전(케셉)[은, 돈]임이니라”고 말한다. 종은 주인에게 순종할 위치에 있고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종에게 무슨 일을 시킬 수 없을 것이다.

[22-25절]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낙태케 하였다’는 원어(웨야체우 옐라데하)는 ‘그의 아이가 나왔다’는 말로서(KJV) ‘그의 아이를 조산(早産)케 하였다’는 뜻이다(NIV). ‘다른 해가 없다’는 말은 ‘아이가 죽거나 상하거나 혹은 산모가 죽는 일이 없다’는 뜻이라고 본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그의 아이를 조산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반드시 벌금을 내어야 했다. 그것은 산모가 조산으로 인하여 받은 정신적 충격과 아기가 일찍 나옴으로 인한 특별한 보호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는 말씀은 만일 아기나 산모가 죽으면 그 친 자를 죽일 것이며, 몸의 어느 부분이 다치거나 상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내려야 한다는 공의의 보응을 보인다. 특히 이 규정은 태아의 생명이 인간 생명임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음란 풍조와 맞물려 널리 행해지는 인공중절수술 즉 낙태가 살인죄임이 분명하다. 낙태는 현대 사회의 매우 심각한 죄악이며 그리스도인이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26-27절]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을 것이며 그 남종의 한 이나 여종의 한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 대신에 그를 놓을지니라.” 눈을 ‘상하게 한다’는 원어(쉬케스)는 ‘못쓰게 만든다’(KJV-'perish'; NASB, NIV-'destroy')는 뜻이다. 이 법은 종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법이다. 주인이 종을 책망할 수 있고 또 필요할 때 어느 정도 때릴 수도 있지만, 그의 몸에 치명적인 해, 예컨대 눈을 못쓰게 만든다든지 이를 빠지게 하는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직장에서 윗사람은 아랫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책망이 필요할 때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을 책망할 수 있겠으나, 그에게 심한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28-32절]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을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 소는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인하여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므로 남녀간에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명하면 무릇 그 명한 것을 생명의 속으로 낼 것이요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율례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지니라.”

그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피를 흘리지 않고 죽은 짐승이므로 피 채 먹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며, 또 그것은 주인에 대한 약간의 벌칙일지도 모른다(Poole). 하지만 소의 주인은 형벌, 즉 사형의 형벌을 면한다. 그러나 받는 버릇으로 인해 경고를 받았으나 단속하지 아니하므로 그 소가 남녀간에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일 것이고 주인도 죽여야 했다. 그것은 소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 때문에 주인에게 부과되는 벌이다.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명하면 무릇 그 명한 것을 생명의 속전으로 내야 했다. 또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아 죽이면 주인은 은 30세겔을 그 종의 주인에게 주고 소는 돌로 쳐죽여야 했고, 소 주인을 죽이지는 않으나 종의 주인에게 큰 손실을 입혔으므로 소 주인은 종의 주인에게 30세겔을 주어야 하였다.

사람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아 사고로 남을 죽인 것은 사형받을 만한 잘못이다. 예컨대, 자동차 운전자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차를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어 죽였거나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였다면, 그는 사형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인 것이다. 그 벌이 매우 엄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 귀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이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오늘날 자동차는 매우 유용하지만 또한 위험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조심해야 하며 항상 기도하면서 또 제한속도와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운전해야 한다.

[33-36절]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 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 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아니함으로 소나 나귀가 거기 빠지면 그 구덩이 주인이 잘 조처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산 소를 팔아 그 값을 반분하고 죽은 것도 반분하려니와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이것은 소 주인의 책임 여부와 그 정도에 따른 하나님의 공의롭고 공정한 판결이며 처분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18절부터 36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남을 해하지 말자. 남을 죽이는 것은 물론, 남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남에게 신체적 해를 끼쳤다면, 우리는 그것이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 모든 비용을 담당해야 하고 그의 시간적 손실에 대해서도 보상해야 한다. 매우 억울한 경우에라도, 우리는 교회 법정이나 세상 법정에 호소할 수 있을 뿐이고 그에게 물리적 보복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낙태가 살인죄임을 알고 시대적 풍조인 낙태를 경계해야 한다. 태아는 인간이며 그것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주인은 자기의 종을 인격적으로 다루어야 하였다. 오늘날도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함부로 다루지 말고 학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 복종해야 하고(엡 5:21)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벧전 2:17).

넷째로, 우리는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자기 소를 단속치 않아서 그것이 다른 사람을 받아 죽이면 그 주인은 죽임을 당해야 했다. 오늘날도 교통법규를 어기고 자기가 운전하는 차로 남을 죽였다면 그는 사형을 당해야 마땅하다.

 

 

22장: 도둑질, 음행

1-20절, 도둑질, 음행, 무당에 대한 규례

[1-4절]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 . . .

하나님께서는 또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도둑질에 대한 벌은 엄하였다. 비싼 것을 도둑질한 것은 싼 것을 도둑질한 것보다 더 많이 보상을 해야 하였다. 도둑질한 물건의 값이 클수록 그 도적질 행위가 더 악하다고 간주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해 돋은 후이면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적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적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도적질한 것이 살아 그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무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도둑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죽인다는 말은 어두운 밤에 이루어지는 일을 가리킨다. 해 돋은 후에 도둑을 쳐죽이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하지만, 주인이 밤에 도둑을 막다가 그를 쳐죽이는 일은 허용된다는 뜻이다. 도둑을 막는 일은 정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도둑은 반드시 주인에게 배상하되 배상할 돈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배상해야 했다.

[5-6절]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먹이다가 그 짐승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먹이다가 그 짐승을 놓아서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제일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불이 나서 가시나무에 미쳐 낟가리[곡식단]나 거두지 못한 곡식이나 전원을 태우면 불 놓은 자가 반드시 배상할지니라.” 주인은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7-9절]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의 집에서 봉적하였는데 그 도적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도적이 잡히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장 앞에 가서 자기가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의 조사를 받을 것이며 어떠한 과실에든지 소에든지 나귀에든지 양에든지 의복에든지 또는 아무 잃은 물건에든지 그것에 대하여 혹이 이르기를 이것이 그것이라 하면 두 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 재판장이 죄 있다고 하는 자가 그 상대편에게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봉적(逢賊)하다’는 말은 ‘도둑을 맞다’는 뜻이다. ‘재판장’(8, 9, 9절)이라는 원어(엘로힘)는 ‘하나님’이라는 말로 재판장이 하나님의 공의를 시행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었다.

[10-15절]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자기에게서[그가 있을 때] 봉적하였으면 그 임자에게 배상할 것이며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거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않을지니라. 만일 이웃에게 빌어온[빌려온] 것이 그 임자가 함께 있지 아니할 때에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하려니와 그 임자가 그것과 함께하였으면 배상하지 않을지며 세 낸 것도 세를 위하여 왔은즉 배상하지 않을지니라.” 맹세는 갈등의 최후의 해결책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거짓 맹세하는 자를 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 낸 것도 세를 위하여 왔은즉 배상하지 않을지니라”는 원문은 그 손실이 그 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인 것 같다(NIV).

[16-20절] 사람이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 . . .

하나님께서는 또, “사람이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빙폐를 드려 아내로 삼을 것이요 만일 그 아비가 그로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빙폐하는 일례로 돈을 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신명기 22:29에 보면, 그 빙폐는 은 50세겔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레위기 18:23도 짐승과의 교합이나 교접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문란한 일’이라고 정죄하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 도둑질한 자는 엄격하게 배상해야 하였다. 성도는 오늘날에 책 도둑질이나 세금 도둑질이나 지적 재산권 도둑질(논문표절,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등)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도둑질을 멀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적 탈선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정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 동침하면 그를 아내로 삼아야 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어느 때나 성적 문란이 있었겠지만,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한 것 같다. 사회에 부도덕하고 음란한 풍조가 점점 심해지는 때일수록 성도는 더욱 단정하고 성결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거짓된 신비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무당은 악령들과 교제하는 자이다. 다른 신에게 제사드리는 자들도 그러하다. 오늘날 교회들 안에는 거짓된 신비주의가 많이 들어와 있다. 이것은 말세의 징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야 한다(요일 4:1). 그러므로 말세의 신자들은 교회들과 목사들을 분별하고 바른 목사와 바른 교회를 선택해야 한다.

 

21-31절, 나그네, 과부와 고아, 가난한 자에 대한 규례

[21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 . . .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방 나그네’라는 원어(게르)는 이방인을 포함하여 객과 나그네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이다. 출애굽기 23:9도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고 말씀하였다. 레위기 19:33도 “타국인(게르)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였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성경 여러 곳에서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신 24:17; 렘 7:6; 슥 7:10; 말 3:5).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음을 상기시키셨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그네로 압제와 학대를 당해본 경험이 있으므로 동족이든 이방인이든 나그네에게 악하게 행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라는 뜻이다. 더욱이, 신명기 10:18은 하나님께서 나그네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였고, 시편 146:9는 하나님께서 객(게르 나그네)을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였다. 나그네는 대체로 길이나 언어나 풍습에 서툴고 친한 사람도 없는 자이다. 그런 자를 압제하고 학대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그런 자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고 그를 도와주고 필요하면 길도 안내해주어야 한다.

[22-24절]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 . . .

하나님께서는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과부는 그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남편을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가신 자요, 고아는 보호하고 양육할 부모를 하나님께서 일찍 불러가신 미성년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자신의 기본적 생활을 자기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할 자들이다. 그들은 다른 이의 배려와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다. 우리는 그런 자를 해롭게 해서는 안 된다.

신명기 24:17은 “너는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고 말했고, 또 신명기 27:19는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말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부패한 방백들이 “고아를 위해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않는다”고 지적하였다(사 1:23). 또 그는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라고 말했다(사 10:2). 신명기 10:18은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신다”고 말했다. 시편 68:5는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말했고, 시편 146:9는 여호와께서 “고아와 과부를 붙드신다”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런 자들에 대해 해를 끼치지 말고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고 도와주고 가르쳐주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어떤 사람이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듣고 그에게 노하셔서 그를 죽이시고 그의 아내가 과부가 되고 그의 자녀가 고아가 되게 하겠다고 무서운 저주의 경고를 하셨다. 그것은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인지를 잘 증거해준다.

[25-27절]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빌려주면] 너는 그에게 채주(債主)같이 하지 말며 변리(邊利)를 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상호간에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일을 금하셨다. ‘변리’라는 원어(네쉐크)는 ‘이자’(interest)(NASB, NIV)라는 뜻도 있고 ‘고리’(高利, 높은 이자, usury)(KJV)라는 뜻도 있다.

레위기 25:35-37,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식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 신명기 23:19- 20, “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 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시편 15:5는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만한 자를 여러 말로 표현하는 중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는” 자라는 말도 포함하였다. 선지자 에스겔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을 의로운 행위로 여겼으며 이자를 받는 것을 악한 행위로 여겼다(겔 18:8, 13, 17; 22:12).

하나님께서는 또,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신명기 24:12-13도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고 말하였다. 가난한 자의 옷이 담보물일 경우 해 질 때에 그것을 돌려주어 잘 때 추위를 피하게 하라는 뜻이다. 신명기 24:6은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을 담보물로 받지 말라고도 하셨는데, 그것들은 다 생활에 기본적인 물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자비한 자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시다(출 34:6; 시 86:15; 103:8).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본래의 모습은 선하고 자비로운 인격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자비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거나 학대하거나 해롭게 하지 않고 가난한 자에게 이자를 받지 않는 행위로 나타날 것이다.

[28절]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며 백성의 유사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며 백성의 유사를 저주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재판장’이라는 원어(엘로힘)는 ‘하나님’(God)(NASB, NIV) 혹은 ‘신들’(gods)(KJV) 즉 ‘재판장들’이라고 번역된다. 이 말은 본장 8절과 9절에서는 ‘재판장들(judges)’이라고 번역되었다(KJV, NASB, NIV). 본문은 재판에서 패소한 사람이 인간적 감정으로 재판장을 향하여 욕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본다. 또 누구든지 백성의 유사(有司) 즉 관리들이 행하는 일들에 불만하여 그를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의 질서는 지켜져야 한다. 사회의 평안과 안정은 질서에서부터 시작되며, 폭력과 보복은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을 가져오고 그런 사회는 결국 패망할 것이다.

[29-30절]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지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너의 소와 양도 그 일례로 하되 칠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팔일 만에 내게 줄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23:19는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리라”고 말씀했다. 출애굽기 34:26도 같은 내용이다. 레위기 23:10은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우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라”고 말씀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곡식과 기름과 포도주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돌려졌다(민 18:12-13; 신 26:2, 10; 느 10:35; 겔 44:30). 잠언 3:9-10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 난 아들들도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소와 양도 그러했다. 출애굽기 13:2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고 말씀하였다. 신명기 15:19는 “너의 우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라”고 말씀하였다.

단지, 소와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릴 때에 그것을 7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제8일에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일반 짐승 제물도 제8일 후에 드려야 하였다. 레위기 22:27도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나거든 7일 동안 그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제8일 이후로는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열납되리라”고 말했다. 그것은 새끼에 대한 어미의 모성적 본능을 배려하신 일일 것이다.

[31절]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지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22:8에서도 “절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그런 고기는 피 있는 고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자. 우리는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학대하지 말며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고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지 말고 이웃에게 자비와 선을 베풀고 인정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본래 모습이며 구원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도의 올바른 모습이다. 야고보서 1:27은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로,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자들을 공경하자. 우리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고 백성의 관리를 저주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의 판단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신약성경도 그것을 밝히 교훈한다.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지성(至誠)으로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밭의 소산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고 첫 아들과 짐승의 첫 새끼를 그에게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뜻이다. 잠언 3:9-10도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했고 말라기 3:10도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했다.

넷째로, 우리는 자신을 거룩케 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는 그들이 세상과 구별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악하고 음란한 세상과 구별되기를 원하신다.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 .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속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음란 풍조 등을 멀리해야 한다.

 

 

23장: 공정함, 절기 등의 법

1-9절, 공정한 재판에 대한 법

[1절]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허망한 풍설’이라는 원어는 ‘헛된 소문, 거짓된 소문’이라는 뜻이다. 레위기 19:16은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이웃에게 돌아다니며 거짓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는 뜻이다. 잠언 20:19는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말씀했다. 우리는 사실이라도 남의 말은 조심하는 것이 좋다. 하물며 사실이 아닌 것을 전하는 일은 거짓말을 전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거짓말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것은 제9계명을 어기는 큰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誣陷)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명하셨다. ‘무함(誣陷)’이라는 말은,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서 남을 나쁜 구덩이에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 ‘무함하는’이라는 원어(카마스)는 ‘악의(惡意)를 가진, 남을 해치는’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악인과 연합하여 거짓된 말로 남을 해치는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참으로 악한 일이다.

[2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 . . .

하나님께서는 또한 “[너는]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다수를 따라’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하시며 다수를 이용한 악을 경계하셨다. 정당하고 좋은 사실을 널리 전달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나쁜 것을 좋은 것처럼 포장하여 널리 퍼뜨리고 일반 대중을 선동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다. 또 법정에서 사람들을 의식하여 양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증거하는 일도 매우 나쁜 일이다.

[3절]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레위기 19:15에서도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가난한 자는 약간의 배려가 필요한 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행한 악이 정당화될 수 없다. 가난한 자의 편을 무조건 두둔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모든 판단을 공정하게 하고 편벽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4-5절]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에 대해 긍휼을 베풀고 그에게 어떤 어려운 문제가 생긴 것을 볼 때 못 본 체하지 말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와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선을 베풀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로마서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6절]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3절에서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여기서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재판은 공정해야 한다. 재판에서 무조건 가난한 자의 편을 들어서도 안 되지만,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그에게 부당하고 억울한 판결을 내리게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모든 일을 공의롭게, 공명정대하게 행해야 한다.

[7절]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며 진실한 말을 권장하시고 거짓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성도는 거짓된 일을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의로우시며 의를 권장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결코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냥 악한 것보다 훨씬 더 악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공의로우시며 공의로운 재판장이시다. 그는 의는 의라고 판단하시며 불의는 불의라고 판단하신다. 또 그는 의인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악인에게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주신다. 우리는 그의 성품을 본받아 악한 자를 칭찬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선한 자를 죽이는 일도 없어야 한다.

[8절]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뇌물’은 불순한 의도가 있는 비교적 큰 선물을 가리킨다. 그러나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도는 뇌물을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아야 한다.

[9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정경’이라는 원어(네페쉬)는 ‘영혼’이라는 말로 ‘심정’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옛날 애굽에서 종살이하였을 때 나그네의 심정이 어떠함을 체험하였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옆에 사는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 22:21도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하여 이 법을 강조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과 악을 행치 말자.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려는 뜻이 없다면 사람이 거짓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헛된 소문은 남의 명예를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남에게 해를 끼친다.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갈 것이며(계 22:15)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계 21:8). 또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큰 악이다.

둘째로, 우리는 공정한 태도를 가지고 공의롭게 행해야 한다. 우리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도 말고 또 부자를 무조건 반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 공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잠언은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고 말했다(잠 17:15; 28:4).

셋째로, 우리는 선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탈북자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서 친한 자들과만 인사하지 말고 신입교인에게, 아니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교회에 처음 방문한 이에게 관심과 배려를 나타내어야 한다. 우리는 밝은 얼굴로 서로 인사하고 서로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모두의 마음도 기쁘고 더욱 평안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10-19절, 절기에 대한 법

[10-11절] 너는 6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6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7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이것은 논이나 밭, 포도원이나 감람원 등 땅의 안식년에 대한 법이다. 6년 동안만 파종하고 제7년에는 묵혀 두라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들이 먹도록 배려하신 법이다. 그것은 땅의 생산력을 높이는 데도 유익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12절] 너는 6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6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 계명도 가축들과 종들을 배려하는 뜻이 있다. 집에서 일하는 소와 나귀도 안식일에 쉴 것이며 여종의 자녀들과 나그네들도 숨을 돌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짐승들과 종들과 집에 거하는 나그네들까지도 배려하신다. 하나님은 너그러우신 분이시다. 그는 피조물들의 수고로움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13절]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법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겨야 한다. 모든 법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그가 주신 법을 지키는 것이다. 온 우주에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14절]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연중 3대 절기를 말씀하신 것이다. 모세의 율법은 열 가지 절기들을 규정한다. 안식일, 월삭, 유월절-무교절, 보리초실절, 맥추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안식년, 희년 등이 그러하다. 그 중 연중 절기가 여섯이고, 또 그 여섯 중 세 가지 대표적인데, 그 셋이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이다.

[15절]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연중 3대 절기 중, 첫 번째는 무교절이다. 무교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아빕월 즉 1월에 지키는 절기이다. 1월 14일 저녁은 유월절이며, 1월 15일부터 7일 동안이 무교절이다(레 23:5-6). 그것은 양력으로 3월 중순쯤 된다. 무교절은 7일 동안 누룩 없이 만든 떡을 먹기 때문에 무교병[누룩 없이 만든 떡]의 절기 혹은 무교절이라고 불린다. 무교절의 첫날인 1월 15일과 제7일인 1월 21일은 쉬는 날(안식일)로서 성회(聖會)로 모였다(레 23:7-8). 유월절과 무교절은 시간적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신약시대에는 더욱 그러하였다(마 26:17; 막 14:1, 12; 눅 22:1, 7).

유월절과 무교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 때 흠 없고 1년된 숫양을 죽이고 그 피를 문틀 위와 좌우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되,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었다. 무교병은 옛날에 애굽에서 급하게 나온 사실과 흠 없는 제물을 상징한다. 쓴나물은 애굽에서의 고통스런 생활을 상징한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고린도전서 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유대인들이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와 문인방에 발라 하나님의 재앙을 피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보혈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연중 3대 절기 때에는 하나님께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정성의 예물을 드려야 했다. 신명기 16:16-17도, “공수(空手)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절기 때에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하였다.

[16절]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연중 3대 절기 중, 두 번째는 맥추절이다. 맥추절은 ‘밀 초실절’(출 34:22)이라고도 불린다. 그것은 밀 추수를 시작할 때 첫열매를 드리는 절기이다. 유대 땅에서 곡식 추수는 무교절 기간의 보리 추수로 시작하여 맥추절 기간의 밀 추수로 끝난다. 무교절의 7일 중에 보리 추수의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또 하나의 절기가 있는데, 그것이 ‘보리초실절’이다. 그날은 보리 추수의 첫 단을 안식일 다음날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 날이며(레 23:10-11), 전통적으로 1월 16일이다. 이 날로부터 일곱 안식일을 지난 그 다음날이 맥추절이다. 그래서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도 부른다(신 16:16).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불리신다(고전 5:7). 무교절 기간에 있는 보리초실절(1월 16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한다고 본다. 주께서 잠자는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 이와 비교하여, 맥추절은 성도의 중생과 구원을 예표한다고 본다. 그날 성령께서 강림하셨고(행 2:1-4) 신약교회의 구원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날 3천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행 2:41). 레위기 23:17에 보면, 맥추절에는 누룩을 넣어 구운 떡 두 개를 하나님께 드리는데, 그것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인(롬 8:23) 성도들, 구원은 받았으나 죄성이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또 떡 두 덩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상징한 것일 것이다.

연중 3대 절기 중, 세 번째는 수장절(收藏節)이다. 수장절은 연말에 밭에서 거둔 것들, 곡식들을 비롯하여 각종 열매들, 기름, 포도주 등을 저장하는 절기이다. 수장(收藏)이라는 말은 ‘거두어 저장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불린다(레 23:34; 신 16:13).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 동안 초막에 거하였던 것을 기억케 하는 뜻이 있었다. 초막절 혹은 수장절은 연중 3대 절기 중 가장 기쁜 절기이다(레 23:39-40; 신 16:13-15). 이 세상은 광야와 같고 성도의 삶은 순례자의 삶과 같다. 또 우리의 육신은 영구적인 집이 아니고, 임시적인 초막과 같다.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다. 우리의 본향은 장차 올 천국이다. 고린도후서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 집이 무너지면 . .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17절]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의 절기들은 출애굽과 추수와 관계된 뜻이 있었고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하였다. 또 절기는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임을 보인다. 오늘날 신약 성도들은 우리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영육의 공급하심을 항상 감사하며 힘써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할 것이다.

[18절]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 . . .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누룩 없는 떡은 죄 없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또 그것은 예배자의 거룩한 마음가짐을 내포한다. 우리가 마음에 죄를 품고 회개치 않은 채 하나님께 예배하거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시편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또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말씀은 유월절 제물을 가리킨 것 같다. 유월절 어린양은 그날 불에 구워 먹고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아야 했다(출 12:9-10). 출애굽기 34:25,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

[19절]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첫것’은 ‘가장 좋은 것’(NASB, NIV)을 의미한다. 민수기 18:12-13은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이스마엘 사람들의 풍습이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금하신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짐승의 어미와 새끼 간에 세우신 관계를 멸시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일 것이다(카일-델리취).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가난한 자나 들짐승이나 가축까지도 배려하는 자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앞장에서도 나그네나 과부나 고아를 배려하고 가난한 자를 배려하라고 교훈하셨다(출 22:21, 22, 25). 그는 본장의 안식년과 안식일 계명에서도 가난한 자를 배려하고 들짐승이나 가축까지도 배려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성경은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고 말하며(신 25:4), 또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고 말하였다(잠 12:10). 우리는 남을 배려하고 특히 가난한 자를 배려하고 짐승까지도 배려하는 자가 되고, 결코 무심한 자나 잔인한 자가 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자. 실상, 절기는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임을 보인다. 특히 유월절과 무교절은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며, 초막절은 광야 40년의 생활을 상기시킨다. 연중 삼대절기는 추수감사의 뜻도 있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죄와 사망과 마귀 권세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늘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또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육으로 돌보시고 지키시고 도우시고 공급하심을 기억하고 항상 감사의 예배를 드리자.

셋째로, 우리는 정성껏 하나님을 섬기자. 우리는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의 전에 드려야 한다.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잠언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7:12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해서나 사람에게 대해서나 동일하다. 우리는 우리의 쓰고 남은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것이 합당하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자.

 

20-33절,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리라

[20-21절]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사자는 천사라는 단어이다. 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세상에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하셨다(골 1:16). 본문의 사자는 23절에서 ‘나의 사자’라고 불린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자를 이스라엘 백성 앞서 보내실 것이다. 그는 길에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들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서 보내실 그 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해야 했다. 그들은 그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그에게 있고 만일 그들이 그 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그 사자는 그들의 허물을 사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사자가 단지 한 천사가 아니고 특별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본문의 하나님의 사자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 같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불렀는데 그는 하나님이셨다(창 22:11-12). 야곱은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하였다(창 31:11, 13).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소서”라고 말하였다(창 48:16). 이런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되었는데, 그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본다.

[22절]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 . . .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약속된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능자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왕이시다. 그는 천둥과 벼락, 태풍과 지진을 주장하신다. 세상에는 그와 다투어 이길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는 우리편이시며 우리를 위하신다. 단지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 지키자.

[23-26절]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사자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앞서 가서 그들을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 인도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끊으실 것이다. 그의 사자께서 앞서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 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행하시면 그들의 대적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들에게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타파하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원문에 ‘. . . 말며 . . . 말며 . . . 말고’라는 말은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9) 또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타파하라’는 원어는 ‘그것들을 완전히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완전히 타파하라’는 강한 의미를 가진다.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는 영원히 스스로 계신 자이시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자이시요 섭리하시는 자이시요 심판하시는 자이시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자이시다. 그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면, 즉 그들이 참된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하면, 그들의 양식과 물의 복이 약속되었다. 양식과 물, 즉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 요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필수 요건인 양식과 물을 보장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고 말씀하셨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인간의 삶과 행복에 중요한 요소이다. 또 자녀 출산과 인구 증가는 가정과 사회의 복이다.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는 말씀은 ‘충분하게 살게 하겠다, 장수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악인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지만(시 55:23), 의인들은 장수할 것이다.

[27절]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내 위엄’이라는 원어(에마시)는 ‘내 두려움’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두려움을 앞서 보내셔서 가나안 땅의 모든 백성을 두렵게 하시고 그들을 파하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로 그들을 등지게 하실 것이다. 원수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패배하고 다 도망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왕벌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은 성경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신 7:20; 수 24:12). 왕벌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을 가리킨다. 고대 이방인들의 글에는 가나안 거주자들이 개구리나 이나 벌 등 때문에 그 거주지를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Poole). 그러나 성경에서 여호수아나 사사기에 그런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본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왕벌은 상징적인 뜻을 가지는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실 여러 재앙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29-33절]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 . .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황폐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이스라엘을 해할까 하여 1년 안에는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이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땅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교제의 문제로서 이스라엘의 순수한 신앙을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스라엘이 이방의 신들과 언약하고 그들을 허용한다면 그들은 범죄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그들에게 올무가 될 것이다. 잘못된 교제는 신앙생활에 큰 시험거리이다. 그것은 그 자체도 잘못일 뿐 아니라, 또한 더 큰 실패의 첫걸음이 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고 그들 앞에 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자와 왕벌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그가 그들과 함께하심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신약 성도들에게도 그러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8:20).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항상, 영원히 거하신다.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며 그 명령대로 행해야 한다. 성경 교훈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고 잘 듣고 그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는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며 그 명령대로 행하기를 힘쓰자.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평안과 승리가 있다. 22절,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25-26절,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이것이 율법의 약속이요 합당한 법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사 48:18). 사도 바울도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말했다(빌 4:9). 하나님의 평안과 승리를 원하는 자마다, 성경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24장: 언약서

[1-3절]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과 함께 나에게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내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아론과 그의 두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은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 올라와 아마 산 중턱에 멀리서 하나님께 경배해야 했고 모세는 산꼭대기로 올라가고 백성은 산밑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판단들](미슈파팀)를 백성에게 고하였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들’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현실에서 옳고 그름,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지시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겠다는 백성의 대답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부패성과 무능력함 때문에 그 대답대로 실천치 못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지 못한다. 성도는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신의 죄악된 욕구와 행실을 죽일 수 있다(롬 8:13; 갈 5:16).

[4-8절]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 . . .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오늘날 고고학은 모세 시대에 문자가 있었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을 증거함으로 과거에 모세 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했던 학자들의 무지와 불신앙을 드러내었다. 모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였다. 번제는 속죄와 헌신의 뜻이 있는 제사이며, 화목제는 속죄와 교제의 뜻이 있다. 

모세가 피를 취해 반은 여러 그릇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려주었다. 그 언약서는 출애굽기 21장부터 23장까지의 내용일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말하였다. 모세는 그 피를 취해 백성에게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하였다. 언약의 피는 언약을 어기면 죽임을 당함을 상징하고 또 속죄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9-11절]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 . . .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내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았다.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였고 하늘같이 맑았다. 하나님의 영광은 심히 아름답고 순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고 그 앞에서 음식을 먹고 마셨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얻었을 것이다.

[12-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모세는 그의 수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15-18절]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 . . .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6일 동안 산을 가리었고 제7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구름과 함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출애굽기 16:10, “아론이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출애굽기 40:34, “[성막 건립 후]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민수기 16:42,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은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훨훨 타는 불같이 보였고 모세는 산 위에 구름 속으로 올라갔으며 40일을 밤낮 거기에 있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경의 참 가치를 알자.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였고 그것들을 책에 기록하였다. 그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천천금은보다 나은 말씀이다(시 119:72). 우리는 성경의 참된 가치를 알고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밤낮 묵상하자.

둘째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힘써 행하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신명기 4:1-2,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셋째로, 우리는 언약의 피를 의지하자.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의 피의 절반을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낭독하고 피의 나머지 절반을 백성에게 뿌리며 언약의 피라고 불렀다. 언약의 피는 속죄의 뜻이 있다. 인간은 죄성과 연약성을 가지고 있어서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의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자.

 

 

25장: 성막 건립 지시--법궤, 떡상, 등대

25-40장은 성막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와 성막 건립의 일을 기록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 중심은 성막(후에는 성전)이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교회를 상징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전이라고 부르며(요 2:21),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엡 1:23)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른다(고전 3:16).

[1-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자원하는 예물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교회는 성도들의 자원하는 봉사와 헌신과 헌금으로 세워진다. 하나님께서는 즐거움으로 봉사하며 헌신하며 헌금하는 자를 사랑하신다(고후 9:7).

모세가 백성에게서 받을 예물은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와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들이었다. ‘해달의 가죽’이라는 원어(타카쉬)는 ‘돌고래 가죽’(NASB)을 가리킬 것이라고 하며(KB), ‘조각목’은 ‘아카시아’ 나무라고 한다(NASB, NIV).11)

[8-9절]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해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모세의 성막과 후에 솔로몬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실 성소(聖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셨다.

출애굽기 29:45-46,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위기 26:11-12,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열왕기상 6:11-13,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네가 이제 이 전(殿)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구약의 성막은 신약교회의 모형이며 천국의 모형이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요한계시록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10-16절]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2규빗 반, 광이 . . . .

하나님께서는 먼저 궤, 즉 법궤를 짓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모세는 법궤를 조각목, 즉 아카시아 나무로 짓되, 길이가 2규빗 반, 즉 약 115센티미터, 너비가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 높이가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가 되게 지으며, 금으로 그것의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둘러야 했다. 또 그는 금고리 넷을 부어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와 저편에 두 고리를 달며, 또 조각목으로 채, 곧 장대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장대를 법궤의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고 그 장대는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아야 했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주실 증거판, 즉 십계명의 돌판을 그 궤 속에 넣어두어야 했다. 율법을 ‘증거’(하에둣)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증거하기 때문일 것이다.

[17-21절]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2규빗 반, 광이 . . . .

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속죄소’라는 원어(캎포렛)는 ‘덮개’와 ‘속죄소’라는 뜻을 가진다. 영어성경들은 ‘시은좌’(施恩座, mercy seat)라고 번역하기도 하였다(KJV, NASB). 그것은 길이가 2규빗 반, 즉 약 115센티미터, 너비가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가 되게 하고, ‘그룹’이라는 천사의 모양 둘을 속죄소 두 끝에 금으로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붙여서 만들고 그룹들은 그날개를 높이 펴서 그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해야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실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어야 했다.

[22절]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 . . .

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셨다. 증거궤, 곧 법궤와 그 덮개인 속죄소는 성막 제도에서 핵심적 요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암시하는 중요한 뜻이 있었다. 율법과 속죄는 하나님의 구원 진리의 핵심이다. 사람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다. 이제는 율법과 별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모든 사람은 그의 십자가 속죄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 되었다(롬 3:19-24).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아래서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되었고 지극히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

[23-30절]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2규빗, 광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상, 즉 떡상을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길이가 2규빗, 즉 약 92센티미터, 너비가 1규빗, 즉 약 46센티미터, 높이가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가 되게 하고, 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달아야 했다. 이것은 떡상을 멜 채, 곧 장대를 꿸 곳이며 또 그는 조각목으로 그 장대를 만들고 금으로 싸야 했다. 그것은 떡상을 멜 장대이다. 또 모세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금으로 만들어야 했고, 떡상 위에 ‘진설병’(陳設餠, 레켐 파님), 즉 ‘하나님 앞에 차려놓은 떡’을 두어 하나님 앞에 항상 있게 해야 했다.

떡상과 진설병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였다고 본다. 예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말씀하셨다(요 6:51). 또 그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4: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시며 또 성경말씀도 우리에게 날마다 영혼의 양식이 된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도 성경을 읽고 그 뜻을 해석하는 것과 그것을 묵상하고 받고 실천하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31-40절]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등대를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등대를 금을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붙여서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해야 했다. 그는 또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해야 했다.

또 그는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붙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붙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붙게 해야 했다. 양쪽의 가지가 나란하게 줄기에 붙는 모양이다. 그 꽃받침과 가지는 줄기에 붙게 하고 전부를 금으로 쳐 만들어야 했다. 또 그는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금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는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금 한 달란트로 만들고 산에서 그에게 보인 식양대로 해야 했다.

등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성령을 상징했다고 본다. 성경에서 빛은 지식과 기쁨과 행복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요 1:9). 그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요 8:12). 또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19:105의 말씀대로,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시다. 또 성경은 성령께서 온 땅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시라고 증거한다(계 4:5).

출애굽기 25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립하자.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예물로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하셨다(2, 8절).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이 되어간다고 표현했다. 에베소서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는 참 교회의 구성원이 되자. 또 우리는 참 교회의 건립을 위해 즐거이 봉사하며 헌신하며 헌금하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의 속죄의 의만 굳게 붙잡자. 22절은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한다.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그와 교제할 수 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며(골 2:16-17), 그 핵심은 속죄이다(고전 1:23).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며 그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하며(골 2:6-7),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골 2:19).

셋째로, 우리는 성경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자.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로마서 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도의 기본적 생활법칙은 성경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자.

 

 

26장: 성막, 띠, 휘장

본장은 성막과 그 덮개들과 널판과 띠와, 또 성소와 지성소를 막는 휘장과 성막문 휘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지시하신 말씀이다.

[1-6절]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성막을 휘장(예리아)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 천사들의 모양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청색’이라는 원어(테켈렛)는, 히브리어 사전에 의하면, ‘보라색’(violet)(BDB) 혹은 ‘자주색’(purple)(KB, Langenscheidt)을 가리킨다고 한다. 또 ‘홍색’이라는 원어(톨라앗 솨니)는 주홍색(scarlet) 혹은 진홍색(crimson)을 가리킨다. 그러면 ‘청색 자색 홍색실’이라는 말은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이라는 뜻으로 피의 색깔을 상징할 것이다. 휘장은 매 폭의 길이가 28규빗 즉 약 12.9미터, 너비는 4규빗 즉 약 1.8미터로 하고 그와 똑같은 휘장 다섯을 서로 잇고 다른 휘장 다섯을 또 서로 잇는다. 그러면 길이는 28규빗이며 너비는 20규빗인 큰 휘장이 두 개가 된다. 각 휘장의 끝에 청색 즉 보라색 고리 50개를 만들어 서로 연결하여 한 성막을 이루게 한다. 그러면 성막은 길이가 40규빗 즉 약 18미터이며, 너비가 28규빗 즉 약 12.9미터가 된다.

[7-14절]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 . . .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을 덮는 막들에 대해 지시하셨다. 먼저 성막을 덮는 막은 염소털로 만들어야 했다. 그는 각 폭의 길이가 30규빗 즉 13.8미터이며 너비가 4규빗 즉 약 1.8미터인 열한 개의 휘장을 염소털로 만들어, 다섯 폭을 서로 잇고 또 여섯 폭을 서로 이으라고 하셨다. 여섯째 폭의 절반은 성막 앞면에 접어 내리고 나머지 절반은 성막 뒷면에 내리게 하였다. 또 그는 연결할 휘장 끝에 고리 50개를 만들고 놋 갈고리 50개를 만들어 서로 연결하여 한 막이 되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면 염소털로 만든 덮는 막은 길이가 44규빗 즉 약 20미터이며, 너비가 30규빗 즉 약 13.8미터가 된다. 덮는 막의 좌우의 남는 것(성막에 비해)은 이편에 한 규빗, 저편에 한 규빗씩 성막 좌우 양편에 덮어 내리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붉은 물들인 숫양 가죽으로 그 염소털 막의 덮개를 만들라고 지시하셨고, 마지막으로 해달(테카쉼), 아마 돌고래(porpoise)(KB, NASB)의, 가죽으로 맨 위에 덮을 윗덮개를 만들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성막의 덮개는 삼중이었다. 첫째는 염소털로 만든 막이며, 둘째는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이며, 셋째는 돌고래의 가죽으로 만든 윗덮개이었다.

[15-25절]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 . . .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벽이 될 널판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아카시아 나무로 널판을 만들되, 각 판의 길이는 10규빗 즉 약 4.6미터, 너비는 1규빗 반 즉 약 70센티미터로 하고 각 판에 두 촉(tenon, 장부)씩 내어 서로 연결하라고 지시하셨다. 또 그는 남쪽과 북쪽을 위해 각각 널판 20개를 만들고, 각 널판에 은받침 2개씩, 도합 40개를 만들게 하셨다. 성막 뒤 곧 서쪽을 위해서는 널판 여섯을 만들고 양쪽 모퉁이를 위해 또 널판 둘을 더 만들어 두겹 두께로 하게 하셨고 또 그 널판 여덟을 위해 은받침 열 여섯을 만들게 하셨다.

[26-30절]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편 널판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널판을 연결할 를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아카시아 나무로 띠를 만들되, 성막의 북쪽과 남쪽의 널판들을 위해 각각 다섯 개씩을 만들고 성막의 뒷쪽 즉 서쪽의 널판들을 위해 역시 다섯 개를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또 중간의 띠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미치게 하라고 하셨다. 이 중간띠는 성막 전체를 하나로 묶게 된다. 또 그는 그 모든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모세에게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고 말씀하셨다.

[31-33절] 너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 . . .

하나님께서는 또 지성소와 성소를 막는 휘장(파로켓)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청색 자색 홍색실, 즉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 천사들의 모양을 공교히 수놓고 금 갈고리로 네 기둥 위에 내리라고 지시하셨다. 또 그 네 기둥은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받침 위에 두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 내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 놓으라. 이 휘장은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고 말씀하셨다.

[34-37절]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그 휘장 바깥 북쪽에 떡상을 놓고 남쪽에 등대를 놓아 떡상과 마주 대하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성막문을 위한 휘장을 역시 청색 자색 홍색실, 즉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라고 지시하셨다. 또 그 휘장을 위해 기둥 다섯을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며 또 다섯 기둥들을 위해 받침 다섯을 놋으로 부어만들라고 하셨다.

출애굽기 26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속죄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의지하자. 구약의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구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성막 중심, 성전 중심의 생활을 해야 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함을 보인다. 구약의 성막은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로 만들어졌다. 또 그 덮개도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이었고, 지성소와 성소를 막는 휘장과 성막문 휘장도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구주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 즉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고 본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했다(고전 1:23).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으라는 것이다(롬 3:21-26). 우리는 속죄의 주 예수를 굳게 믿자.

둘째로, 우리는 구주 예수의 이름으로 휘장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자.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막는 천이었다. 그것은 속죄의 피가 없이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께서 그 휘장을 여셨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마 27:51). 히브리서 10:19-20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

셋째로, 우리는 주 안에서 사랑의 매는 띠로 단합하자. 성막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덮는 덮개들도. 성막의 널판들도 한 띠로 연결되었다. 온 세계 교회는 하나다. 에베소서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골로새서 3:12-14,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빌립보서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우리는 주 안에서 사랑으로 항상 단합하자.

 

 

27장: 번제단, 성막뜰, 등불

[1-8절]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5규빗, 광이 5규빗의 단을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조각목 즉 아카시아 나무로 번제단을 만들라고 명하셨다. 번제단은 길이와 너비가 5규빗 즉 약 2.3미터로 네모 반듯하게 만들며, 높이는 3규빗 즉 약 1.4미터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어 붙이고 그 단을 놋으로 싸야 했다. 번제단은 놋단이다. 뿔은 하나님께 드려짐을 상징하는 것 같다. 또 놋으로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고, 또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어 그물을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단 절반에 오르게 해야 했다. 또 아카시아 나무로 채, 즉 장대를 만들고 놋으로 싸며 번제단 양편 고리에 그것을 꿰어 단을 메게 해야 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산에서 그에게 보여주신 대로, 번제단을 널판으로 비게 만들어야 했다.

[9-19절]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성막뜰을 만들라고 명하셨다. 성막뜰은 남쪽과 북쪽에 동일하게 길이 100규빗, 즉 약 46미터의 세마포 천을 쳐서 만들되, 기둥이 20개, 놋받침이 20개이며, 또 그 기둥 갈고리와 끈을 은으로 만들어야 했다. ‘가름대’(10, 11절)라고 번역한 말은 ‘끈’을 가리킨다. 서쪽 즉 성막의 뒷쪽은 길이가 50규빗, 즉 약 23미터의 세마포 천을 쳐서 만들되, 기둥이 10개, 놋받침이 10개이어야 했다.

동쪽 즉 성막의 앞쪽도 너비가 50규빗, 즉 약 23미터이다. 가운데 20규빗 즉 약 9.2미터 너비의 출입문이 있고, 문 좌우로 15규빗 즉 약 6.9미터씩 천을 치되 각각 기둥 셋과 받침 셋이 있어야 했다. 출입문은 청색 자색 홍색실, 즉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천을 치고 기둥 넷과 받침 넷을 세워야 했다. 뜰 사면 모든 기둥의 갈고리와 끈은 은으로 만들고 받침은 놋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 성막뜰은 폭이 50규빗 즉 약 23미터, 길이가 100규빗 즉 약 46미터이며,12) 세마포 천의 높이는 5규빗 즉 약 2.3미터이다. 성막뜰의 기둥 받침은 놋이며,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휘장(천) 말뚝은 다 놋으로 만들어야 했다.

[20-21절]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올리브 열매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라고 지시하셨다. 대제사장 아론과 그 아들들은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관리해야 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이었다.

본장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번제단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번제단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는 우리에게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것과, 둘째는 제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제사장이 필요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하셨다. 그들은 반드시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알려준다. 죄인인 우리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하였다. 구약의 성막 제도, 성전 제도는 이 사실을 계시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대제사장이시며(히 4:14) 중보자이신 이가 오셨다. 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히브리서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브리서 10:15,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요 중보자이시다.

또 모든 사람에게 제사가 필요하였다. 제사의 근본 의미는 속죄(贖罪)이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그는 오직 속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한 영원한 속죄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셨다. 히브리서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이와 같이, 번제단은 제사장의 필요성과 제사의 필요성을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하신 크신 대제사장으로 세상에 오셨고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한 한 영원한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번제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한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신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자. 또 우리에게 죄사함과 의와 구원과 영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곧 속죄 신앙을 굳게 지키자. 속죄 신앙은 구원 신앙이고 죄인들의 생명줄이다.

둘째로, 성막뜰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성막뜰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공적인 예배 장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시때때로 성막뜰에 나아와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다. 성막뜰은 우리에게 공적 예배의 필요성을 교훈한다. 성막뜰은 교회의 공적 집회 장소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개인적 경건의 시간과 더불어 공적 예배 모임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는 모임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신약 성도들이 공적 예배 모임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많은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권면하였다(히 10:24-25). 또한 성경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고, 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증거한다(행 2:42, 46).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 곧 하나님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받고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과 영생을 얻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교훈대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그들은 일주일에 교회에 한두 번 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많은 시간 모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더욱 많이 모여 말씀을 배우고 복습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야 한다.

셋째로, 본장 마지막에 기록된 등불의 관리에 대한 명령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성막의 등불을 잘 관리하여 끊임없이 켜야 했다. 등대와 그 등불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 되심과, 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빛 되심을 상징한다. 주 예수께서는 그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다(요 1:9; 12:46).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다(시 119:105). 또 요한은 환상 중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리켰다고 말했다(계 4:5). 이처럼 등불은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과 성령을 상징한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구약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등불을 끊임없이 켜고 지켰듯이, 항상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오직 성경말씀의 교훈과 성령의 감동으로만 살아가자.

 

 

28장: 대제사장의 옷

[1-5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의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위해 거룩한 옷을 지어 입히고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하나님께서 지혜의 영으로 채우신 자들에게 그 옷을 짓게 하고 아론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해야 했다. 그들이 지을 옷은 흉패와 에봇과 두루마기와 공교히 짠 겉옷과 관과 띠이며, 또 그들의 쓸 실은 금실과 보라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었다.

‘겉옷’(메일)은 ‘(소매 없는) 두루마기 겉옷’(robe)을 가리키고(BDB, KJV, NASB, NIV), ‘반포(斑布) 속옷’(케도넷)은 ‘(체크무늬의) 속옷(tunic)’(NASB)이라는 뜻 같다(BDB). 앞장들에서와 같이 본장에서도 ‘청색’이라는 원어(테켈렛)는 ‘보라색’ 혹은 ‘자주색’이라는 뜻이라고 본다(BDB, KB, Langenscheidt). 옷은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의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은 그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과 그의 완전한 인성(人性)의 영광을 예표한다고 본다. 제사장의 옷들을 만드는 금실은 그의 신성을 나타내고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은 그의 대속 사역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신 대속(代贖)의 구주이시다.

[6-14절] 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 . . .

먼저, 하나님께서는 에봇을 만드는 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에봇은 조끼 같은 것이다. 에봇의 특이한 점은 그것에 견대 둘을 달아 에봇에 붙이고 거기에 호마노라는 보석 두 개를 금테에 물려 붙이는 것이다. 그 두 보석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나이 순서대로 한 보석에 여섯 명씩 도장을 새기듯이 새겨 넣는다. 아론은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 기념이 되게 해야 했다. 에봇과 견대의 규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석같이 여기시는 것과 대제사장이 그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함을 나타낼 것이다.

[15-21절]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 . . .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판결 흉패를 만드는 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판결 흉패는 길이와 너비가 한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만들며 거기에 네 줄로, 한 줄에 세 개씩 열두 개의 보석을 물린다.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었고 다 금테에 물릴 것이다. 이 열두 개의 보석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을 하나씩 도장을 새기는 방식으로 새겨야 했다.

[22-29절] 정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 . . .

흉패의 위의 두 끝에 금고리 둘을 만들어 달고 정금으로 땋은 사슬을 거기에 각각 매고 나머지 두 끝을 에봇 두 견대의 금테에 매어야 했다. 또 흉패의 아래 양편 가에도 안쪽 곧 에봇에 닿은 쪽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정금으로 땋은 사슬을 거기에 각각 매고 나머지 두 끝을 역시 에봇 두 견대의 금테의 아마 다른 쪽에 매어야 했다. 대제사장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아야 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석같이 귀히 여기심을 보이며 또 보석의 다양한 색깔과 같이 그들이 각각 받은 은사와 재능이 다양함을 보인다. 또 그것은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극진히 사랑하시고 그들을 가슴에 품는다는 것도 예표한다.

[30절]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판결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게 하셨다. ‘우림’은 ‘빛’이라는 뜻이고, ‘둠밈’은 ‘완전함’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기 위해 사용된, 아마 제비 같은 어떤 물건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론은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 우림과 둠밈을 그의 가슴에 두어야 했다. 그것은 그가 항상 하나님의 빛과 완전함을 사모해야 함을 보일 것이다. 아론은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과 분별력으로 이스라엘의 소송 사건들을 판결해야 했다.

[31-35절]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 . . . .

하나님께서는 또 에봇 받침 두루마기를 만드는 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한글성경에 ‘겉옷’이라는 원어(메일)는 ‘두루마기 겉옷’ (robe)을 가리키는 것 같다. 에봇 받침 두루마기 겉옷은 전부 청색 즉 보라색으로 하고 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주위를 갑옷 깃같이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또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로 석류를 수놓고 금방울을 달되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이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금방울 소리가 들릴 것이며,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36-39절]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 . . .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패를 만드는 법을 말씀하셨다. 모세는 정금으로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기는 방식으로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자를 새겨야 했다. 그 패는 청색 끈, 즉 보라색 끈으로 관(冠) 위에 매어 관 전면에 있게 해야 했다. 이 패는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책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성물을 받으시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다. 모세는 또한 가는 베실로 공교히 짠 두루마기와 관을 짜고 관의 띠를 수놓아 만들어야 했다. 한글성경에 ‘반포 속옷’이라는 원어(케소넷)는 ‘(체크무늬의) 속옷(tunic)’이라는 뜻 같다(BDB, NASB).

[40-43절]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한 아론의 아들들을 위해서도 ‘속옷’을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속옷’이라는 원어는 ‘반포 속옷’이라는 말과 같고, 그것은 ‘(체크무늬의) 속옷’이라는 뜻이라고 본다(BDB, NASB). 모세는 또 그들을 위해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해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제사장들의 옷도 대제사장의 옷처럼 영화롭고 아름답다고 표현된다. 모세는 이 옷들을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그들을 위해 베로 고의(반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회막에 들어갈 때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지어 죽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은 아론과 그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자.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옷은 영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했다. 특히 대제사장의 옷이 그러하였다. 옷은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의 옷이 영화롭고 아름다운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상징한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의 주님이시다(고전 2:8). 그의 영광은 그의 신성(神性)의 영광이다. 요한은 증거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다(요 1:14). 그의 영광은 또한 그의 완전한 인성의 영광이다. 천국에서의 우리의 인성은 그의 영광을 닮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말했다(빌 3:21). 우리는 주 예수의 영광을 알자. 그의 영화롭고 아름다우심을 깨닫고 확신하자.

둘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본받자. 대제사장의 옷은 ‘거룩한 옷’이라고 불렸다(2절). 또 대제사장은 관 전면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패가 매여 있다(36절). 또 제사장들은 다 기름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된다(41절). 이 모든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으시고 거룩하신 인격과 사역을 나타낸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도 제사장들(벧전 2:9)로서 거룩해야 한다(벧전 1:15).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본받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를 보석같이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그에게 보답하자. 대제사장의 견대에 있는 두 개의 보석에는 이스라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한쪽에 여섯 씩 새겨 넣었다. 또 에봇 위에 걸치는 판결 흉패에는 한 줄에 세 개씩 네 줄, 즉 열두 개의 각종 보석이 있었고 거기에도 이스라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 의복의 규정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석같이 여기심을 보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보석같이 귀히 여기셨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어깨에 메시고 우리를 가슴에 품으셨다. 우리는 우리를 보석같이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감사하고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삶을 살자.

 

 

29장: 제사장의 임직

[1-9절] 너는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제사장 임직에 대해 명령하셨다. 모세는 그의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해야 했다. 그는 제사장 위임식을 위해 수송아지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과 고운 밀가루로 만든 무교병(無酵餠, 누룩 넣지 않은 떡)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부꾸미) 한 광주리를 준비해야 했다. 그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의복을 입혀야 했다. 그는 아론에게 속옷, 에봇 받침 겉옷, 에봇, 흉패 등을 입히고 띠와 관과 성패를 갖추게 해야 했다. ‘속옷’이라는 원어(쿳토넷)는 ‘일상적으로 주로 입는 옷’을 가리킨다고 하며(BDB), 또 에봇 받침 ‘겉옷’이라는 원어(메일)는 ‘(소매 없는) 두루마기(robe) 겉옷’을 가리킨다고 한다(KB).

또 모세는 관유(灌油)를 가져다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야 했다. 그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다(요 3:34). 모세는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해야 했다. 모세는 이같이 그들에게 제사장직을 위임하여 거룩하게 해야 했다.

[10-14절] 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제사장 위임식 때에 드릴 속죄제에 대해 명령하셨다. 모세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게 해야 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그것에게 그들의 죄를 전가(轉嫁)시킨다는 뜻이 있다. 모세는 회막문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죽이고 그 피를 손가락으로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아야 했고,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살라야 했다. 그것이 속죄제이었다. 속죄제는 죄씻음을 상징한 제사로서 죄인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먼저 드려야 할 제사이었다.

[15-18절] 너는 또 숫양 하나를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번제에 대해 명령하셨다. 모세는 숫양 하나를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해야 했고 모세는 그 숫양을 죽이고 그 피를 취하여 단 위의 주위에 뿌리고 그 숫양의 각을 뜨고[토막을 내고] 그 내장과 다리는 씻어 각 뜬 고기와 그 머리와 함께 두고 그 숫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이것이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이며 이것은 향기로운 냄새이며 여호와께 불태워 드리는 제물이다. 번제는 속죄의 의미와 더불어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상징하는 뜻이 있었다고 본다.

[19-21절] 너는 다른 숫양을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위임식 숫양에 대해 명령하셨다. 모세는 위임식 숫양을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 모세는 그 숫양을 죽이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불과 그 아들들의 오른 귓불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라야 했고,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단 위의 피와 관유를 취해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야 했다. 그러면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들의 옷이 거룩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듣는 것과 만지는 것과 행하는 것에서 거룩해야 하며 그의 온 몸이 거룩해야 함을 보인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신을 거룩케 해야 한다. 아무도 죄로 더러워진 채 그를 섬길 수 없다.

[22-25절] 또 너는 그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 장부에 . . . .

모세는 또 그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신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 우편 넓적다리를 취해야 했다. 신장은 중요한 기관으로 여겨졌다. 이는 위임식 숫양이며, 여호와 앞에 있는 무교병 광주리에서 떡 한 덩이와 기름 바른 과자 하나와 전병 하나를 취하고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 아들들의 손에 주고 그것을 흔들어 여호와 앞에 요제(搖祭, 흔드는 제물; wave offering)를 삼고, 모세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해 단 위에서 번제물에 더하여 불살라야 했다. 이것은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이며 여호와께 불태워 드리는 제물이다.

[26-28절] 너는 위임식 숫양의 가슴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 . . .

모세는 또 위임식 숫양의 가슴을 취해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아야 했다. 이것은 그의 분깃이다. 그는 그 흔든 요제물 곧 아론과 그 아들들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거룩하게 해야 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 영원한 분깃이며 거제물(擧祭物, 드는 제물; heave offering), 곧 이스라엘 자손이 화목제물 중에서 취한 거제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거제물이다.

[29-30절] 아론의 성의는 아론의 후에 그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 . . .

아론의 거룩한 옷은 아론 후에 그 아들들에게 돌릴 것이며 그들은 그것을 입고 기름부음으로 위임을 받을 것이다. 아론을 이어 제사장이 되는 아들은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 때 7일 동안 그것을 입어야 했다. 아론의 거룩한 옷은, 우리의 중보자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과 의를 상징하는 것 같다.

[31-34절] 너는 위임식 숫양을 취하여 거룩한 곳에서 . . . .

모세는 위임식 숫양을 취하여 거룩한 곳에서 그 고기를 삶고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광주리의 떡을 먹어야 했다. 속죄물 곧 그들을 위임하며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데 쓰는 것은 그들은 먹되 다른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또 위임식 고기나 떡이 아침까지 남았으면 불태워야 했다.

[35-37절] 너는 내가 무릇 네게 명한 대로 아론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해 7일 동안 위임식을 행하고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고, 또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케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고 명하셨다. 모세가 7일 동안 단을 위해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면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단이 되며 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할 것이다.

[38-46절] 네가 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1년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가 단 위에 드릴 제물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매일 1년된 어린양 두 마리를 드려야 했다. 하나는 아침에 드리고 하나는 저녁때에 드리는데, 한 어린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의 일과 찧은 기름 힌 사분의 일을 더하고 전제(奠祭, 붓는 제물)로 포도주 힌 사분의 일을 더하여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여호와께 불태워 드리는 제물로 삼아야 했다. 에바는 약 22리터이며 힌은 약 4리터이다. 이것은 그들이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복되고 중요한 약속을 하셨다. 그는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해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내가 그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42-46절)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이 드려지는 그 회막에서 이스라엘과 만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과, 또 그들 가운데 거하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복되고 은혜로운 약속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제사장들로서 듣고 만지고 행하는 일에 조심하고 거룩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위임식 때 위임식 숫양의 피를 오른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라야 했고 그 몸과 옷에 뿌림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그들이 듣는 것과 만지는 것과 행하는 일에서 조심하고 또 범사에 거룩해야 함을 나타낸다. 신약 성도인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제사장들로서(벧전 2:5, 9) 듣는 것, 만지는 것, 행하는 것에 조심하며 거룩하자.

둘째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며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날마다 1년된 어린양 두 마리를 하나는 아침에, 하나는 저녁에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다. 번제는 제물을 온전하게 불태워 드리는 제사로서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를 믿으며 사랑하며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누가복음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며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기대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거기서[회막에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힘쓰고 날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고 순종하며 살고자 힘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우리가 부르짖을 때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이것은 신약 성도들에게도 주신 복된 약속이며 특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가자.

 

 

30장: 분향단, 물두멍

[1-5절]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의 기구들에 대해 계속 지시하셨다. 그는 분향할 단(분향단)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모세는 그것을 조각목 즉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되 길이가 1규빗(약 46센티미터), 너비가 1규빗(약 46센티미터), 높이가 2규빗(약 92센티미터)이 되게 하며 아마 네 모퉁이에 뿔을 만들어 붙이고 단 윗면과 전후좌우면과 뿔을 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둘러야 했다. 또 그는 그 금테 아래 양편에 금고리 둘을 만들되 양편에 만들어 단을 메는 채, 즉 장대를 꿰게 해야 했다. 채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야 했다.

[6-10절]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 . . .

모세는 그 분향단을 증거궤 뚜껑인 속죄소의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어야 했다. 그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과 만나실 곳이다. 아론은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르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살라야 했다. 등불은 저녁에 어두워지면 켜고 아침에 해가 밝으면 껐던 것 같다(출 27:21; 레 24:3; 삼상 3:3; 대하 13:11). 이 분향은 이스라엘이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단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아야 하며 번제나 소제나 전제의 술을 붓지 말아야 했다. 단지 아론은 일년에 한 번씩 이 향단과 그 뿔을 위해 속죄(贖罪)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해야 했다. 그러면 그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한 단이 될 것이다.

[11-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생명의 속전(贖錢)에 대한 규정을 명령하셨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리되 계수 중에 드는 20세 이상된 모든 사람이 성소의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내야 했다. 성소의 세겔로 1세겔은 약 10그램이다.13) 그것은 인구 조사를 할 때 그들 중에 온역, 즉 무서운 전염병이 없게 하려 함이었다.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아야 했다. 그 생명의 속전은 회막 즉 성막의 봉사를 위해 사용되어야 했다. 이것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생명을 속(贖)하는 일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자이므로 그 생명을 위해 죄를 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의 생명의 연장이나 수적 증가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17-2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물두멍을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물두멍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물두멍’은 ‘큰 물통’ 혹은 ‘큰 물대야’를 가리킨다. 모세는 그것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고 그것을 성막과 번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아야 했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성막에 들어갈 때에나 화제(火祭)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 먼저 그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했다. 본문은 그들이 물로 씻으면 죽기를 면할 것이라고 두 번 말한다. 이것은 아론과 그 자손들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이었다.

[22-2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일러 가라사대 너는 상등 . . . .

그 다음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관유를 만드는 법을 지시하셨다. 모세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성소의 세겔대로 액체(流質--국한문성경) 몰약 500세겔 즉 약 5킬로그램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250세겔 즉 약 2.5킬로그램과 향기로운 창포 250세겔 즉 약 2.5킬로그램과 계피 500세겔 즉 약 5킬로그램과 감람 기름 한 힌 즉 약 4킬로그램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 것이다.

[26-33절] 너는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그 관유를 성막과 그 기구들에게 바르라고 지시하셨다. 모세는 그 관유를 회막 즉 성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떡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그 기구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거룩한 성물로 구별해야 했다. 무릇 이것들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할 것이다.

모세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그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하나님께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해야 했다. 또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무릇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자나 무릇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말해야 했다. ‘끊어진다’는 말은 출교나 사형 또는 하나님께서 직접 징벌하여 죽이심(레 20:3) 등을 가리킨다.

[34-3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향을 만드는 법을 지시하셨다. 모세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무게로 섞고 그것으로 향 만드는 법대로 향을 만들어야 했다. 또 그는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날 회막 곧 성막 안 증거궤 앞에 두어야 했다. 이 향은 이스라엘에게 지극히 거룩하며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이런 방법으로 향을 만들지 말아야 했다. 자신이 맡으려고 이 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분향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성도들의 기도 생활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위해 중보 사역을 하신다(롬 8:34; 히 7:25). 또 우리 성도들도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시 141:2; 계 5:8; 8:3-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중보 기도를 감사하자. 또 우리는 날마다 기도를 올리자. 아침에와 저녁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 죄의 고백과 회개, 선한 소원의 간구를 아뢰자.

둘째로, 생명의 속전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20세 이상된 자들은 다 생명의 속전으로 반 세겔씩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그것은 회막 봉사에 사용되었다. 우리는 죽어 지옥에 던지워야 마땅한 죄인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자.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셋째로, 물두멍, 즉 큰 물통 혹은 큰 물대야는 제사장들에게 성결함이 필요함을 보인다. 물로 씻는 것은 성결함을 상징한다.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시며 지극히 성결하신 주이시다. 히브리서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된 우리 모든 성도도 다 손과 발을 항상 물로 씻어 깨끗케 해야 할 것이다(요 13:10). 고린도후서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우리는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31장: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심

[1-1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불러 성막을 만들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브살렐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이었고, 오홀리압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내가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 일할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명하여 부르시고 세우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든 지혜로운 자들을 그들에게 돕는 자로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브살렐에게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을 주시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고 금은과 놋으로 만들고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일을 하게 하시며, 또 오홀리압과 그와 함께할 자들에게도 지혜를 주어 성막과 증거궤와 속죄소와 상과 정금 등대와 분향단과 번제단과 물두멍과 이런 모든 비품들에 따른 기구들과 또 제사장의 거룩한 옷들과 관유와 향 등을 만들게 하실 것이다. 성막을 만드는 일에도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하였다. 영적 성전인 신약교회의 건립과 봉사의 일들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신약교회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건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의 봉사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봉사해야 할 것이다.

[12-1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을 다시 강조하셨다. ‘나의 안식일’이라는 원어(솹베소사이)는 ‘나의 안식일들’인데, 그것은 주간 안식일뿐 아니라, 절기들의 안식일들을 포함하는 것 같다. ‘나의 안식일들’이라는 표현은 이 모든 안식일들이 다 하나님의 날임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서도 안식일을 ‘나의 안식일’로 반복하여 강조하셨다(겔 20:12, 13, 16, 20, 21, 24). 사실상 우리의 모든 날들과 시간들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가 지정하신 절기들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영속적인 표시()이었다. 이 안식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온 세상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으로 표시되었다. 그들은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이 증거되었다. 그날에 온 가족은 세속적인 일을 쉬며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였다(레 23:3).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의 안식일은 단수명사로서 주간 안식일을 가리킨다. ‘성일이 됨’이라는 원어는 단순히 ‘거룩하다’는 뜻이다. 주간마다 오는 제7일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날이었다. 그날은 한 주간의 다른 여섯 날들과 구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에 대해 무서운 벌칙을 선언하셨다. 그는 “무릇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날을 더럽힌다’는 말은 그날을 거룩한 날로 구별하여 경건하게 예배하며 보내지 않고 일상적인 날로 보내는 것을 뜻한다. ‘끊쳐지리라’ 혹은 ‘끊어지리라’는 말도 여기에서는 사형을 가리킨다. 이처럼 안식일을 범하는 자에게는 사형이 선언되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할 수 있는 여섯 날을 주셨고 그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7일은 ‘큰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셨다. ‘큰 안식일’이라는 원어(솹밧 솹바손)는 ‘쉬는 안식일’이라는 뜻이다(KJV, NASB, NIV). 또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고 부언(附言)하셨다.

또 안식일을 범하는 자에게 부과되는 벌칙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반드시’라는 말로 사형이 강조되었다. 구약시대에 안식일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들만큼 중요한 계명이었다. 민수기 15:32-36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하는 것을 보고 그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회중 앞으로 끌어왔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셨고 회중은 그를 진 밖에 데려가 돌로 쳐죽였다(32-36절).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한 언약이며 표라고 말씀하셨다. 십계명이 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지만, 그 중에도 안식일 계명이 그러하였다. 또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이었다. 이방인들은 안식일 없이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키며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안식일 계명의 이유와 근거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이는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7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평안하다’는 원어(나파쉬)는 ‘상쾌함을 얻다, 새 힘을 얻다’(be refreshed)는 뜻이다. 안식일은 상쾌함과 새 힘을 얻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제7일에 쉬셨고(창 2:2),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출 20:11). 하나님께 무슨 피곤함이 있으셨겠는가? ‘상쾌함을 얻었다, 새 힘을 얻었다’는 표현은 순전히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닌가? 안

식일은 우리를 위한 제도이다.

여호와께서는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성막 제정에 대한 이 모든 말씀을 다 이르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셨다. 이것은 돌판들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것이었다. 거기에 쓰인 내용은 십계명이었다(신 4:13). 그 두 돌판의 양면에 십계명이 쓰여 있었다고 보인다. 그 판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께서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었다(출 32:15-16).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일하자. 하나님께서는 성막 건립을 위해 브살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지혜 있는 자들을 세워 일하게 하셨다. 영혼 구원과 교회 건립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뜻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신실한 종들을 세우시며 일하신다. 영적 성전 건립의 일, 즉 영혼 구원과 개인의 성화, 지교회의 건립과 성장, 전체 교회의 건립과 성장과 완성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과 지혜와 능력을 받은 종들과 성도들의 충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그의 일을 위해 충성된 종들을 많이 세우시고 성령 충만을 주셔서 일하게 하시기를 기도하자.

둘째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자. 구약시대에 안식일은 매우 중요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의 표이었다. 안식일을 어기며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오늘날 신약 성도는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킨다. 신약 성도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적으로가 아니다. 우리는 주일을 범하면 큰 죄를 짓고 지옥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지키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을 자원적으로 즐거이 지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날을 온종일 거룩하게 구별하며 온 가족이 세속적인 일을 쉬고 피곤한 몸도 쉬고 공예배의 날로 지킨다. 신약 성도는 구약 성도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자들로 구약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 이상으로 거룩함과 즐거움으로 이 날을 지킨다.

 

 

32장: 금송아지 사건

1-8절, 금송아지를 만듦

[1-8절]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 . . .

모세가 시내산 위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고 계시의 말씀을 받고 있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말했다.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신뢰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했고 아론을 부추겨서 그들을 인도할 신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라고 요청했고, 아론은 백성의 말을 들었다.

아론은 그들에게 “너희 아내들과 아들들과 딸들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했다. 모든 백성은 그들의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왔고 아론은 그 고리를 받아 부어 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라고 말했다. 아론은 그것을 보고 그 앞에 단을 쌓았고 공포하여,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고 말하였다. 이튿날에 그들은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인간의 죄성은 컸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받은 지 40일밖에 안 되었는데, 하나님의 법을 속히 떠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섬겼다. 아마 목소리 큰 자들이 주장하고 혹 바른 생각을 가진 자가 있어서도 침묵했던 것 같다. 인간은 심히 무지하고 죄악되다. 지도자 아론의 잘못이 컸다. 그는 바른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백성의 잘못된 제안을 따랐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 잘못된 여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우상숭배는 유흥적 예배의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우상숭배하며 뛰놀았다. 오늘날 열린 예배니 축제적 예배니 하는 예배의 변질은 경건의 변질에 기인한다고 본다.

 

9-14절, 모세의 간구

[9-14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목이 곧다’는 말은 겸손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태도를 묘사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금송아지 숭배는 목이 곧은 행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다 멸하시고 모세를 통해 큰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모세는 감히 하나님 앞에 중보자처럼 서서 세 가지를 간구하였다. 첫째로, 그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시고 홍해에서 권능으로 구원하신 일을 언급한 것이다. 둘째로, 그는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애굽 사람들의 관찰거리가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완전한 멸망은 하나님의 명예에 큰 손상이 될 것이 분명하였다. 셋째로, 그는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 자손의 번창을 맹세하신 백성이라면 완전히 멸망시키실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변호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말을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셨고 말씀하신 화를 그들에게 내리지 않으셨다.

모세는 백성을 사랑한 좋은 지도자이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택한 백성을 구속(救贖)하셨고 신약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나 신약교회의 역사는 배교의 역사이었다. 특히 중세 천년간의 역사는 심히 부끄럽고 수치스런 역사이었다. 신약 교인들도 목이 곧은 백성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말미암아(히 7:25)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를 완전히 멸하지 않으셨고 오늘날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로 살고 있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받들고 있고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성화를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다.

 

15-29절, 3천명 가량을 죽임

[15-24절]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 . . .

모세는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그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편저편에 글자가 있었다. 그 판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었고 글자는 하나님께서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었다. 여호수아가 백성의 떠듦을 듣고 모세에게 말했다.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모세는 말했다.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모세는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다. 모세는 그들의 만든 송아지를 가져 불살라 부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웠다. 그것은 송아지 우상의 헛됨을 보인 것 같다.

모세는 아론에게 말했다.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그는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 큰 죄임을 분명히 하였다(30, 31절). 아론은 말했다.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해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아론은 백성 중에 불경건한 자들의 생각과 주장에 굴복한 것이었다.

[25-29절]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 . . .

모세가 보니 백성이 방자하였다. 그것은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였기 때문이며 그래서 원수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다. ‘방자하다’는 원어(파루아)는 ‘풀어졌다’는 뜻으로 경건성과 도덕성이 통제력을 잃고 해이해졌다는 뜻이다(BDB). 모세는 진 문에 서서 말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왔다. 모세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들은 모세의 말대로 즉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하여 그날에 백성 중에 3,000명 가량이 죽인 바 되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제사한 일은 큰 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크게 징벌하셨다.

모세는 말했다.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헌신하게 되었다’는 원어(밀레우)는 ‘[너희는] 헌신하라’는 뜻의 복수 명령형이다. 그러면 본문은 옛날 영어성경처럼 “이는 모세가 이르되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라.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치라. 그러면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하였음이라”(KJV)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한 듯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 제사한 것은 우상숭배의 큰 죄이다(21, 30, 31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고 모세도 그들을 보고 크게 노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죽이려고 하셨다. 죄인들은 다 죽어야 마땅한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대신 레위 사람들을 사용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단지 3천명 가량을 죽이셨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보다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무서운 징벌이었다. 죄의 값은 죽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30-35절, 모세가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함

[30-35절]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 . . .

이튿날 모세는 백성에게 말했다.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그는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말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해 금신(金神)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자기 생명과 그 백성의 구원을 맞바꾸려 할 정도로 그 백성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고 다시 명하셨다. 또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앞서 가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하나님의 사자는 아마 구약시대에 활동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실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지만, 하나님의 엄위하신 공의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살아 있음을 증거한다.

아론은 백성의 말을 듣고 큰 잘못을 저질렀으나 모세는 달랐다. 그는 선과 악을 분별했고 우상숭배가 큰 죄임을 인식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기 백성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주시기를 간구했고 심지어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라고 말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었다. 그는 자기의 목숨을 백성의 구원과 맞바꾸려 하였다. 그것은 백성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셨다. 그것은 그의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요 확증이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모세를 본받자. 부모들은 자녀들을 이처럼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시키고, 교역자들과 권찰들과 교사들은 교인들과 학생들을 이처럼 사랑하고 구원시키자.

 

 

33장: 단장품을 제함

1-11절, 단장품을 제하라

[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그의 계획하신 바이었고 오래 전, 약 사오백 년 전에 그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며 약속하신 바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모세에게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사자[천사]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천사는 힘이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천사를 그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그들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즉 살기 좋은 복된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中路)에서 너희를 진멸(殄滅)할까 염려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앞장에서 본 대로 그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하고 그 길을 속히 떠나 금송아지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겸손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또 한번 그렇게 범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길에서 그들을 다 멸망시키실지도 모른다. 여하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으시겠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참으로 큰 행복이지만, 그가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신다면 참으로 큰 불행이다.

[4-6절]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 . . .

이스라엘 백성은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였다. ‘이 황송한 말씀’이라는 원어(핫다바르 하라 핫제)는 ‘이 불행한 말’이라는 뜻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라”는 이 불행한 말을 듣고도 그들이 자기들의 몸이나 단장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정말 무지하고 무감각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 몸을 단장치 않은 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호렙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였다. 몸의 단장은 기쁠 때 하는 것이지, 슬플 때 몸을 단장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7-11절]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 . . .

모세는 항상 장막을 취하여14)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會幕) 즉 ‘만남의 장막’이라고 불렀고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갔다. 또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았다. 또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셨고 모든 백성은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였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고 모세는 진으로 돌아왔으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우리는 외적 단장을 절제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호렙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였다(6절).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죄성을 경계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응답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의 세상 생활에 교훈을 준다. 성경은 우리에게 외적 단장을 좋아하지 말고 내면적 단장을 힘쓰라고 말한다. 디모데전서 2:9-10,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3-4, “[아내들아]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조용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우리가 세상의 허무함을 깨닫고 천국을 사모한다면, 우리는 외적인 단장을 절제하고 하나님을 사모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보화이시다. 욥기 22:24-25,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12-23절, 내가 친히 가리라

[12-16절]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 . . .

모세는 여호와께 고하였다. “보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앞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앞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께서는 생각을 바꾸셔서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는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모세는 여호와께 다시 고하였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앞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그는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동행해주시고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천하 만민 중에 구별된 민족임을 증거해 주시기를 간구한 것이다.

[17-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앞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모세는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말했다.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그는 자신이 주권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자임을 증거하셨다.

그는 또 말씀하셨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그는 또 말씀하셨다.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영이시며(요 4:24)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딤전 6:16)이시기 때문에, 그의 얼굴, 그의 등, 그의 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사람과 같이 묘사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것을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이라고 말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한 형상’을 나타내시고 ‘그의 등’을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의 영광을 볼 수는 없으나, 때때로 그의 등, 즉 그의 영광의 지극히 작은 부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14절). 출애굽기 3:12,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신명기 31:6, “너[이스라엘]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신약 성도들도 이러한 동일한 말씀을 받았다.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요한복음 14:16,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보증하신다(엡 1: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곧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심을 깨닫고 믿고 확신하자. 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체험하자. 시편 34:6-10,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86:17,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저희가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심이니이다.”

 

 

34장: 두 번째 40일

1-9절,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

[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지시하셨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들에 쓰리니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라.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사람의 접근을 금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만든 돌판에 친히 히브리어로 글을 쓰실 것이다. 모세는 돌판 둘을 처음 것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홀로 시내산에 올라갔다. 산 아래도 조용하게 했다.

여호와께서는 구름 가운데 시내산 위에 강림하셨고 모세와 함께 거기 서서 당신의 이름을 반포하셨다. 그는 특히 구름 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그는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시내산 꼭대기에 내려오셨었고(출 19:9), 모세가 돌판을 받기 위해 처음 시내산에 올라갈 때도 구름이 산을 가리었고 구름이 6일 동안 그렇게 하였으며 제7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갔었다(출 24:15-18). 지금도 그러하였다. 후에 성막을 다 세울 때도 구름이 성막을 덮을 것이다(출 40:34). 구름이나 구름 기둥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표시이었다(출 33:9; 민 9:15-23; 11:25; 12:5).

[6-9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 앞으로 지나시며 당신의 이름을 반포하셨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子與孫, 아들과 손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신이 ‘여호와’ 곧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심을 증거하셨다. 또 그는 자신의 긍휼하심을 증거하셨다. 그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仁慈)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자비를 천 대까지 베푸시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자신의 공의로우심도 증거하셨다. 그는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죄를 아들과 손자 삼사 대까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말을 듣던 모세는 급히 몸을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말하였다.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서 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 앞에 설 수 없는 자신이며 자기 백성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굴복한 것일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이 목이 곧은 백성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총만 구하며 그들의 죄와 악을 사하시기를 간구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그는 여호와 곧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셨고 그의 특별한 나타나심들이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안다. 우리는 특히 그의 긍휼하심과 엄위하심을 알자. 그는 회개하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 그러나 그는 죄인들을 결코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의 죄를 반드시 징벌하시는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상반된 듯하지만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이 두 속성, 즉 그의 긍휼하심과 그의 공의로우심을 알자. 우리는 그의 긍휼을 입은 자들이 되었다.

 

10-17절, 잘못된 교제를 경계하심

[10-14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 . . .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노라. 나는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니플라옷 ‘기적들’)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하리라. 너의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할 바를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해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라.”

그가 세우시는 언약은 십계명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모세의 모든 율법이었다. 그가 행하실 기적들은 광야를 지나는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등의 기적뿐 아니라, 또 요단강을 건넘과 특히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멸하는 일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언약은 언약 당사자들의 조건 준수가 필수적이다. 인간 편에서의 하나님의 언약 조건은 율법 순종이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스스로 조심하여 네가 들어가는 땅에 거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지 않도록 그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柱像)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으라.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 땅에 거하는 자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아야 했다. 그들은 그들의 단을 헐고 그들의 주상(柱像)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어야 했다. 그들은 그들의 신에게 절하지 말고 그들의 우상숭배적 종교의식에 참여치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의 죄를 결코 용서치 않고 징벌하실 것이다.

[15-17절]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 . . .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말씀하셨다. “너는 조심하여 그 땅에 거하는 자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만들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원주민들과 언약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시 강조하셨다. 또 그는 그들이 그 원주민들의 종교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그들의 자녀들과 결혼함으로써 종교적, 신앙적 혼잡과 부패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고 언약의 조건으로 계명 순종을 명하셨다. 오늘 신약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새 언약의 복을 받았지만, 계명 순종은 여전히 성도들의 당연한 의무이다. 또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은 이중 계약을 하듯이 다른 신들과 언약하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신을 섬기는 며느리와 사위를 맞아서도 안 된다.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 그것은 신앙의 변질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그런 행위에 대해 노하신다.

 

18-26절, 삼대 절기를 지키라

[18-20절]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언약의 내용들 중에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말씀하셨다. 우선, 그는 무교절에 대해 말씀하셨다.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유대인들의 1월] 그 기한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무교절과 유월절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또 그는, 그날 애굽에서 장자 재앙이 있었음을 상기시키시며, “무릇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무릇 네 가축의 수컷 처음 난 우양도 다 그러하며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양으로 대속(代贖)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애굽 사람의 장자들은 다 죽임을 당하는 그날 밤, 이스라엘 자손의 장자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사람이 애굽에서 놓여나는 은총을 입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날의 큰 은혜에 감사하여 장자들을 다 하나님 앞에서 대속하며 감사 예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합당하였다.

[21-24절]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7일에는 쉴지니 . . . .

하나님께서는 또한 안식일에 대해서도 상기시키셨다.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7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라.” 그것은 안식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6일 동안은 세속적인 일들을 하는 날이며 제7일은 하나님의 날로 구별하여 세속적인 일들을 쉬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그의 말씀의 교훈을 듣는 날로 지켜야 했다. 안식일은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쉬어야 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또 아무리 바쁜 때에도 쉬라는 뜻이다. 아주 부득이 한 경우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날을 구별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물론 그날은 우리 자신의 쾌락이나 오락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또, “칠칠절 곧 맥추[밀]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收藏節, 초막절)을 지키라.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절기를 지키는 때에 외부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25-26절]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내 제물의 피를 유교병[누룩을 넣어 만든 떡]과 함께 드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짐승 제물과 함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 즉 곡식제물에 누룩을 넣지 말아야 했다(레 2:11). 또 그는 “유월절 제물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유월절의 이 규정도 잊지 않고 지켜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의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는 이전의 말씀(출 23:19)을 재강조하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과 소득의 가장 좋은 것으로 정성껏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도 출애굽기 23:19의 말씀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그것은 당시 이방인들의 미신적 풍속을 경계하신 것이라고 보이며(카일-델리취) 잔인함을 방지하는 뜻도 있어 보인다.

구약의 안식일은 육신의 휴식과 공예배로 모임에 의미가 있었다. 이것은 신약 성도들에게도 필요하고 신약성경도 교훈하는 바이다. 우리는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거룩히 구별하여 지키자. 또 토지 소산의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것을 잘 나타낸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 역대상 29:14, [다윗의 기도와 고백]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27-35절, 증거의 돌판들을 가지고 내려옴

[27-2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책에 다 기록되었다. 그것이 모세가 쓴 율법책이었다. 그것이 오늘날 모세 오경 즉 모세가 쓴 다섯 권의 책이 되었다.

모세는 시내산 위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40일 낮과 밤을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또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아세렛 핫데바림 ‘그 열 가지 말씀들’)을 그 돌판들에 기록하셨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적 내용이었다.

[29-35절]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 . . .

모세는 그 증거의 두 판들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왔다. 그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났으나 깨닫지 못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를 볼 때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였으나,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들이 모세에게로 왔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였으며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도 그에게 가까이 왔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그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였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친 후 수건으로 그 얼굴을 가리었다. 모세의 얼굴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그와 말씀하셨다는 표증이었고 모세가 전하는 말씀의 신적 권위성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었다.

모세가 얼굴에 수건을 가린 것은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불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모세의 영광은 구약의 없어질 율법적 영광을 나타내며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영광을 나타낸다고 말했다(고후 3:11, 13). 모세의 얼굴의 영광은 없어질 영광이었고 수건으로 가려야 할 영광이었다. 율법 제도는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영광은 없어지지 않을 영광이다.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역할을 하였고 그것은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그러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의롭다고 하시는 데 쓰임을 받는다. 또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참된 자유가 있으므로 신약 성도는 수건으로 우리 자신을 가릴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3:16-17).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 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보며 그의 거룩한 영광의 형상을 조금씩 이루어간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그 모든 말씀을 책에 기록하였다. 오늘 우리는 모세의 책들과 선지자들의 글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책들, 곧 성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성경을 많이 묵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모세의 율법은 없어질 영광을 가진 것이었다. 율법 제도는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구약성경이 예언한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는 죄인들의 죄를 사하시고 의롭다고 여기시는 구원 사역을 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복음의 영광은 없어지지 않을 영광이다. 신약 제도는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제 모든 죄인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한다. 또 우리는 성경말씀의 묵상과 기도와 성령의 감동으로 주의 영광의 형상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35장: 자원하는 예물을 드림

[1-3절]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 . . .

모세는 이스라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7일은 너희에게 성일(聖日)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내용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며 그들에게 행하라고 주신 내용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믿음의 근거요 내용일 뿐 아니라 행위의 지침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증거한다. 성경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도구이며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계명을 다시 강조하셨다. 현대 교인들처럼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잘 지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안식일을 강조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는 십계명(출 20:8-11)을 주신 후에, 벌써 세 번째 그것을 강조하셨다(출 31:12-17; 34:21; 35:1-3). 하나님께서는 본장 2절, 3절에서 안식일을 구별할 것, 불도 피우지 말 것, 어기면 죽일 것을 강조하셨다. 우리는 구약시대의 안식일 정신을 본받아 오늘날에도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聖守主日) 성도가 되자. 우리는 이날에 온종일 쉬고 교회로 모이며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기도하고 전도와 구제와 봉사에 힘쓰고 세상일이나 육신의 오락을 위해 쓰지 말자.

[4-9절]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 . . .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했다.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소유물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청[보라]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돌고래]의 가죽과 조각목[아카시아 나무]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본문은 1절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내용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로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소유물 중에서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소유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성경 맨처음의 말씀에 들어 있는 기본적 진리이다. 모세는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말했고(신 10:14), 다윗도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다(시 24:1).

우리의 모든 소유물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잠언은 “네 재물로 또 네 모든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한다(잠 3:9-10). 그러므로 주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고, 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다(마 6:20, 24).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소유물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억지로 강제로 할 일이 아니고, 자원함으로 해야 할 일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에서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성도 섬기는 일, 즉 구제 헌금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며 구하였다고 증거하였다(고후 8:1-4). 또 그는 그 일을 본 삼아 고린도 교인들이 헌금을 하되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교훈하며 또 하나님께서는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말했다(고후 9:7).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자원함을 해야 하겠다.

[10-19절]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 . . .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또 말했다.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곧 성막과 그 막과 그 덮개와 그 갈고리와 그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증거궤와 그 채[장대]와 속죄소와 그 가리는 휘장과 떡상과 그 채[장대]와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하나님 앞에 차려놓은 떡]과 불 켜는 등대와 그 기구와 그 등잔과 등유와 분향단과 그 채[장대]와 관유와 분향할 향품과 성막문의 휘장과 번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장대]와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큰 물대야]과 그 받침과 뜰의 포장과 그 기둥과 그 받침과 뜰문의 휘장과 장막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과 그 줄과, 성소에서 섬기기 위해 공교히 만든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명하신 것을 다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지혜가 필요하다. 잠언이 증거하는 대로, 지혜는 금이나 은이나 진주보다 더 귀한 보화이다(잠 3:13-15).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며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지혜를 얻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롬 12:1-2). 그러므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구제와 재정 출납의 봉사의 일을 위해 직분자를 세울 때 회중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였었다(행 6:3).

[20-24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 . .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모세 앞에서 물러갔다가,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들과 무릇 자원하는 자들이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해,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해, 거룩한 옷을 위해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다. 마음에 원하는 남녀들이 와서 가슴핀과 귀고리와 반지와 목거리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왔고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다. 무릇 보라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돌고래의 가죽이 있는 자들도 가져왔으며, 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들은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무릇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자도 가져왔다. 마음이 감동된 남자들과 여자들, 자원하는 그들이 다 금은 예물을 하나님께 가져와 드렸다. 하나님의 선한 일들은 자원함으로 이루어진다.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했다(빌 2:13).

[25-29절]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 . . .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보라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왔고, 마음에 감동을 받은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털로 실을 낳았다. ‘실을 낳는다’는 말은 ‘실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또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다.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 모든 남녀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해 물품을 가져다가 이와 같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렸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슬기로, 또 성도들의 자원함과 즐거움으로, 이루어졌다. 보석들을 가져오는 자들도 있었다. 남자도 여자도 다 하나님께 귀한 물건들을 드렸다. 그들은 다 즐거이 하나님께 드렸다.

[30-35절]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 . . .

모세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했다. “보라,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게 하시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공교로운 일과 청색[보라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공교로운 일을 연구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특히 성막을 건립하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지명하여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을 주셨고(31절) 그들의 심령을 감동하셨고(34절)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주셨고(31, 35절) 그리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셨던 것이다(32, 33, 35, 35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위해 일할 자들을 지명하여 부르신다. 주 예수께서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셔서 열 둘을 세우셨고, 그들로 그와 함께 있고 전도도 하며 병도 고치게 하셨다(막 3:13-15). 또 그는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16). 교회의 직분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다(고전 12:28).

본장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성도가 안식일을 잘 지켜야 할 것과, 또 우리가 우리의 소유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을 보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와 더불어 중요한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자원함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5절, “너희의 소유물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21-22절,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 . .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 . .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6절,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29절,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선을 행할 때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자발적으로 하자(몬 14).

둘째로, 우리는 지혜와 총명을 얻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자. 10절,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25-26절,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보라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 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털로 실을 낳았으며.” 31절,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5절,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우리도 지혜와 총명을 얻어 하나님의 일을 받드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이 되자(마 24:45).

셋째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자. 31절,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스가랴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성전 건립의 일]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빌립보서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배드리며 전도하며 봉사하자.

 

 

36장: 성막을 만듦

36장 이하는 26장 이하의 내용을 다시 반복하는 기분이 든다. 26장 이하의 내용은 성막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기록한 것이고 이번에는 그것을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들었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다. 성막 건립에 대해 이처럼 지시와 실행을 기록한 것은 성막 제도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막 제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1-7절]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 . . .

성막을 건립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사용하셨다. 모세는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고 말하며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불렀다.” 또 4절과 8절도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 “일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건립에 지혜로운 자들을 사용하셨고, 봉사자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셔서 그 일을 받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성막을 건립함에 있어서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불러 사용하셨고 또 성도들의 자원하는 예물들을 받아 사용하셨다. 2절,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불렀다.” 3절,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오는 고로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보고하기를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을 위해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일꾼들도 부족하지 않았고 건축 재료들도 부족하지 않았다. 모세는 명을 내렸고 그들은 진중에 공포하여 “남녀 누구든지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고 함으로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쳤다. 그것은 이미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즐거운 걱정이었다.

[8-13절] 일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 . . .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은 열 폭 앙장[휘장]으로 성막을 지었다. 그 휘장은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보라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 천사들을 무늬 놓아 짜서 지은 것이었다. 매 폭의 길이는 28규빗 즉 약 13미터이며, 너비는 4규빗 즉 약 1.8미터이며, 각 폭의 길이와 너비를 같게 하여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또 다섯 폭을 서로 연하여 두 개의 큰 막이 되게 하였다. 그러면 한 막의 길이가 28규빗 즉 약 13미터이며 너비가 20규빗 즉 약 9미터가 된다. 그 두 막의 가장자리에 각각 연결고리를 50개씩 달고 또 금갈고리 50개를 만들어 그 두 막을 연결시켜 한 개의 큰 막이 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성막은 한 개의 큰 막이었다.

[14-19절]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 . . .

또 브살렐은 성막을 덮는 막을 염소털로 만들었다. 그것은 열한 폭으로 만들었는데, 각 폭의 길이는 30규빗 즉 약 14미터이며 너비는 4규빗 즉 약 1.8미터이었고, 길이와 너비를 같게 하여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또 여섯 폭을 서로 연하여 두 개의 큰 막을 이루었다. 그러면 그 막은 길이가 30규빗 즉 약 14미터이며 너비가 44규빗 즉 약 20미터인 큰 막이다. 두 막의 가장자리에 각각 연결고리 50개씩 달고 놋갈고리 50개를 만들어 두 막을 연결시켜 한 큰 막이 되게 하였다. 또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었고, 해달[돌고래](테카쉼)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었다.

[20-30절] 그가 또 조각목으로 성막에 세울 널판들을 . . . .

브살렐은 또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성막에 세울 널판들을 만들었다. 각 판의 길이는 10규빗 즉 약 4.6미터이며 너비는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이었고, 각 판에 두 촉이 있어 서로 연하게 하였다. 남쪽으로 널판이 20개이며 은받침 40개이었고, 북쪽으로도 널판이 20개이며 은받침이 40개이었다. 장막 뒤 곧 서쪽을 위해서는 널판 여섯을 만들었고 장막 뒤 두 모퉁이 편을 위해서는 널판 둘을 만들되 아래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 두께로 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편을 다 그리하였다. 즉 서쪽을 위해서는 널판이 모두 8개이며 은받침은 16개이었던 것이다.

[31-34절] 그가 또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었으니 곧 성막 이편 . . . .

브살렐은 또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띠를 만들었다. 성막 이편 널판을 위해 다섯 개, 성막 저편 널판을 위해 다섯 개이며, 성막 뒤 곧 서편 널판을 위해 다섯 개이며, 그 중간띠를 만들되 널판 중간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였다. 그 중간띠는 성막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띠이었다.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에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도 금으로 쌌다.

[35-38절] 그가 또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장을 . . . .

브살렐은 또 청색[보라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휘장을 짜고 그 위에 그룹 천사들을 공교히 수놓고 또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네 기둥을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그 갈고리는 금으로, 기둥의 네 받침은 은으로 부어만들었다. 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 즉 지성소에 들어가는 문에 해당하는 휘장이다.

그는 또 청색[보라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장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고 기둥 다섯과 그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머리와 그 가름대를 금으로 쌌으며 그 다섯 받침은 놋으로 만들었다. 그 휘장은 성막의 문인 휘장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자. 구약시대에 매우 중요했던 성막과 성전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상징한다. 성막의 모든 휘장과 성막문과 지성소 문 휘장을 보라색, 자색, 홍색실로 짜서 만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이루실 대속 사역을 상징했고, 또 성막의 두 번째 덮개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한 것도 그러했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막과 성전을 매우 사랑했다. 시편 84편 저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고백했다(시 84:1). 다윗은 시편 122편에서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했다(시 122:1, 6). 또 시편 137편 저자는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라고 말했다(시 137: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며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자원하는 예물로 교회를 세우자. 구약의 성막은 지혜로운 자들과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만들었다(1, 2, 4, 8절). 또 구약의 성막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자원하는 예물들로 세워졌다(3, 5절).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헌신하는 종들에게 성령의 풍성한 은혜와 지혜를 주셔서 주의 교회를 세우시며 또 성도들의 자원하는 헌금들과 헌물들을 통해 그의 일을 이루신다.

신약교회는 성전과 같이 지금 건립 중에 있다. 성전 건립의 사역은 가장 작게는 지교회의 건립이며 가장 크게는 세계복음화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이 성전 건립, 즉 세계적 교회의 건립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일꾼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하나님께 헌신하는 지혜로운 일꾼들을 많이 부르시며 또 성도들의 자원하는 헌금들과 헌물들을 교회 건립을 위해 사용하신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과 재물을 하나님께 즐거이 드리며 복음 전도와 교회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 건립에 동참하자.

셋째로,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교회의 일치단합을 지키자. 성막은 두 개의 큰 막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었다. 또 성막의 골격은 널판들인데, 그것들은 다섯 개의 띠로 연결되어 있고 또 중간띠는 성막문을 제외한 성막 전체를 연결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하나임을 나타낸다. 만국 교회는 실상 하나이다. 교회는 영적으로 이미 또한 항상 하나이다. 지상에 교회들은 여럿일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뿐이다. 물론 그것은 진리 안에서 하나이다. 우리는 우선 지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일치와 단합을 지켜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요 13:34). 또 그는 제자들이 진리 안에서 하나를 유지할 것을 기도하셨다(요 17:11-12). 사도 바울도 성도들이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 가운데서 하나됨을 유지하라고 교훈했다(엡 4:1-3). 우리는 거짓과 이단을 포용하는 오늘날의 잘못된 연합주의를 배격해야 하지만, 성도들 상호간에는 미움과 분쟁을 버리고 진리와 참된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일치단합해야 한다.

 

 

37장: 법궤, 떡상, 등대, 향단을 만듦

[1-5절]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장이 2규빗 반 . . . .

브살렐은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궤를 만들었다. 그것이 법궤 혹은 언약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길이는 2규빗 반, 즉 약 115센티미터, 그 너비는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 그 높이는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이었다. 그는 그것의 안팎을 정금[순금]으로 쌌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만들었고 금고리 넷을 부어만들어 네 발에, 이편에 둘, 저편에 둘을 달았다. 그는 아카시아 나무로 채[장대]를 만들어 금으로 쌌고 그 채를 법궤 양편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다. 법궤는 언약의 두 돌판을 넣어둘 상자이었다. 두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은 하나님의 의(義)를 나타내고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한다.

[6-9절]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장이 2규빗 반 . . . .

브살렐은 또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다. 그 길이는 2규빗 반, 즉 약 115센티미터, 법궤 길이와 같고, 그 너비는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 역시 법궤 너비와 같다. 또 그는 금으로 그룹 천사 둘을 속죄소 양편에 쳐서 만들었는데, 하나는 이편 끝에, 하나는 저편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만들었고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며 속죄소를 향하였다.

‘속죄소’라는 원어(캅포렛)는 ‘뚜껑’이라는 뜻도 되고 ‘속죄소’라는 뜻도 된다. ‘덮는다’는 원어(카파르)가 ‘속죄한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속죄는 죄를 덮는 것이다. 속죄소는 1년에 하루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약 세 번 들어와 그 위에 두 번 피를 뿌림으로써 자신과 온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곳이다(레 16:11-16). 속죄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한다. 모든 사람은 율법 앞에서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죄씻음을 받는다. 죄인들은 누구나 속죄의 구주를 믿어야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義)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義)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1-24).

[10-16절] 그가 또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었으니 장이 2규빗 . . . .

브살렐은 또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상 곧 떡상을 만들었다. 그 길이는 2규빗, 즉 약 92센티미터, 그 너비는 1규빗, 즉 약 46센티미터, 그 높이는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이었다. 그는 그것을 정금[순금]으로 쌌고 그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둘렀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었다. 그는 금고리 넷을 부어만들어 떡상의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았고 거기에 상을 메는 장대를 꿰게 하였다. 그는 아카시아 나무로 상 멜 장대를 만들어 금으로 쌌고 상 위의 기구들 곧 대접과 숟가락과 잔과 붓는 병들을 순금으로 만들었다.

떡상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이시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말씀하셨고, 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고 하셨다(요 6:48, 51, 53-55).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는 영생의 유일한 길이시다.

성경은 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됨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구약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말씀하셨다(마 4:4). 욥은 “내가 그[하나님의]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라고 고백하였다(욥 23:12). 우리는 생명의 양식인 성경을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17-24절] 그가 또 정금으로 등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 . . .

브살렐은 또 정금[순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었다.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은 그것과 한 덩이가 되었다. 여섯 가지는 이편에 세 가지, 저편에 세 가지가 나왔고 각 가지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등대 줄기에도 그러하였다.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해 두 가지 아래 각각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였다. 이것들은 전부 순금으로 쳐서 만들었으며 등잔 일곱(23절)과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었다. 등대와 그 모든 기구를 만드는 데는 순금 한 달란트, 즉 약 30킬로그램이 사용되었다.

등대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 그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요 8:12). 빛은 지식, 의, 기쁨과 행복, 생명을 상징한다.

성경은 성령께서도 빛이시라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심령을 진리로 깨우치시는 빛이시다.

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도 빛이라고 말한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잠언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믿고 성령의 감동 속에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빛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

[25-29절] 그가 또 조각목으로 분향할 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 . . .

브살렐은 또 아카시아 나무로 분향단을 만들었다. 그 길이는 1규빗, 즉 약 46센티미터, 그 너비도 1규빗, 즉 약 46센티미터로서 네모 반듯하였고, 그 높이는 2규빗, 즉 약 92센티미터이었다. 또 그 뿔들은 단과 연하였다. 그는 그 단 윗면과 전후 좌우면과 그 뿔을 순금으로 쌌고 주위에 금테를 둘렀다. 또 그는 그 테 아래 양편에 금고리 둘을 만들어 단을 메는 장대를 꿰게 하였고, 아카시아 나무로 그 장대를 만들어 금으로 쌌다. 또 그는 거룩한 관유를 만들었고, 또 향을 만드는 방법대로 정결한 향도 만들었다.

분향단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중보자이시다. 사도 바울은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말했다(롬 8:34). 히브리서는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했다(히 7:25). 사도 요한도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말했다(요일 2:1).

또 성경은 성도의 기도도 분향에 비유하였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은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진 환상을 보았고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증거하였다(계 5:8). 또 그는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고 말했고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다”고 증거하였다(계 8:3-4). 우리는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속죄 신앙을 가져야 한다. 성막 제도의 핵심은 법궤와 속죄소에 있었다. 법궤는 하나님의 언약의 율법을 가리켰고 속죄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상징하였다. 우리는 십계명에 근거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이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았을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기독교 복음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소식이다(고전 1:2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救贖)함”이 되셨다(고전 1:30).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속죄의 주님을 믿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는 성경말씀(요 3:36)은 바로 이런 이치 때문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죄, 지옥 형벌을 받을 만한 죄를 속량하신 구주이심을 믿는 속죄 신앙을 가져야 한다. 속죄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 신앙이며 구원받는 신앙이다. 우리는 다 속죄 신앙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자. 떡상과 등대와 분향단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셨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요 3:16). 또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다. 성경에서 빛은 지식과 의와 기쁨과 행복과 생명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지식과 의와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빛이시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지금도 하나님 오른편에서 간구하시는 중보자이시다. 우리는 여러 가지 부족과 흠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중보사역으로 인해 오늘도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힘을 얻고 새 결심을 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길을 걷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 우리의 빛, 우리의 중보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해야 한다. 거기에 구원이 있다. 또 예수 그리스도만 믿는 자는 성경의 교훈대로 살기를 힘쓸 것이다. 참된 믿음은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르고 있는가? 성경대로 바르게 살기를 원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지 못한 자일 것이며, 구원이 필요한 자일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와 지옥 형벌의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구원을 받고 그를 따르자.

셋째로,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자. 성막에 있는 떡상과 분향단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삼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을 보인다. 성경 읽기와 기도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다. 성경은 영의 양식이다. 밥 잘 먹는 아이가 잘 크고 튼튼하듯이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자가 믿음이 강하고 거룩하고 선한 성도가 된다. 또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여 얻는 방법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알자. 그것이 금은보화보다 더 귀함을 알자. 또 우리는 기도가 성도의 특권임을 알자.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두고 살고 있는가? 돈이나 육신의 쾌락 등의 허무한 세상 것들에 두지 말고, 영광의 하나님과 복된 천국과 영생에 두고 살자.

 

 

38장: 번제단, 물두멍, 성막뜰을 만듦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성막과 그 기구들을 만든 일에 대해 계속 기록한다. 본장에는 번제단과 물두멍과 성막뜰을 만든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들을 만드는 일의 책임을 맡은 이는 브살렐이었다.

[1-7절] 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 . . .

브살렐은 먼저 아카시아 나무로 번제단을 만들었다. 번제단은 하나님께 제물을 불태워 드리는 기구이었다. 번제단은 가로 세로 5규빗 즉 약 230센티미터로 네모 반듯하였고, 높이는 3규빗 즉 약 138센티미터이었다. 브살렐은 네 모퉁이 위에 뿔들을 만들어 단에 붙게 하였고 단을 놋으로 쌌다.

또 그는 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었고, 또 단을 위해 놋그물을 만들어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단 절반에 오르게 하였다. 또 그는 그 놋그물 네 모퉁이에 장대를 꿸 고리 넷을 부어만들었고 장대를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놋으로 싸고 단 양편 고리에 그 장대를 꿰어 메게 하였다. 단은 널판으로 안쪽은 비게 만들었다.

번제단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려 할 때 그에게 반드시 제물을 불태워 드려야 함을 보인다. 번제단에 올려져 불태워지는 제물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지옥 형벌의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고 증거하였다(히 10:12).

또 번제단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야 할 것을 교훈하는 뜻도 있다고 본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했다(롬 12:1).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 즉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한다.

[8절]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 . . .

브살렐은 또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었다. ‘물두멍’은 ‘물대야’라는 뜻이다. 그는 놋으로 물두멍의 받침도 만들었다. 그는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놋거울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만들었다.

물두멍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막에 들어갈 때나 번제단에 가까이 나아가 제물을 하나님께 불태워 드리는 직분을 행할 때 그 손과 발을 씻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었다(출 30:19-21). 물두멍은 제사장에게 성결이 필요함을 보인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결하신 제사장이시다(히 7:26). 또 물두멍은 제사장된 신약 성도가 하나님을 섬길 때 그 손을 깨끗이 해야 함을 보인다(약 4:8).

[9-13절] 그가 또 뜰을 만들었으니 남으로 뜰의 남편에는 . . . .

브살렐은 또 성막뜰을 만들었다. 성막뜰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뜰의 남쪽과 북쪽의 세마포 휘장이 100규빗 즉 약 46미터이며, 그 기둥들은 각각 스물이며 그 놋받침도 스물이며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끈]는 은이었다. 서쪽 즉 뒤쪽 휘장은 50규빗 즉 약 23미터이며 기둥이 열이요 놋받침이 열이며 기둥의 갈고리와 끈은 은이었다. 동쪽도 길이가 50규빗 즉 약 23미터이었다.

[14-20절] 문 이편의 포장이 15규빗이요 그 기둥이 셋이요 . . . .

성막의 동쪽은 입구가 있는 곳이다. 성막문 오른쪽과 왼쪽의 휘장이 각각 15규빗 즉 약 6.9미터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가운데는 성막문이 있었다. 성막문 휘장은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였다. 길이가 20규빗 즉 약 9.2미터이며, 높이는 뜰의 휘장과 같이 5규빗 즉 2.3미터이었다. 성막문 휘장 기둥은 넷인데 그 받침 넷은 놋이며 갈고리는 은이며 그 머리싸개와 끈도 은이었고 성막 말뚝과 뜰의 사면 휘장 말뚝은 다 놋이었다.

[21-23절] 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의 쓴 재료의 . . . .

성막 곧 증거막을 위해 레위 사람의 쓴 재료들의 수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대로 계산하였다.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었고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은 그와 함께 하였다. 오홀리압은 재능이 있어 조각하는 일과 또 보라색 자주색 진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놓는 일을 하였다.

[24-31절] 성소 건축비용으로 드린 금은 성소의 세겔대로 . . . .

성소의 건축비용으로 드린 금은 성소의 세겔로 29달란트와 730세겔, 즉 약 884킬로그램이었고, 조사를 받은 회중의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대로 100달란트와 1,775세겔 즉 약 3,018킬로그램이었다. 조사를 받은 자가 20세 이상으로 603,550명이었고, 성소의 세겔대로 각 사람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었다. 1세겔은 약 10그램이다.

은 100달란트로 성소의 널판 받침과 성막문 휘장 기둥받침, 모두 100개를 부어만들었다. 각 받침에 한 달란트씩, 모두 100달란트이다. 또 1,775세겔로 기둥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머리를 싸고 기둥끈을 만들었다.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놋은 70달란트와 2,400세겔, 즉 약 2,148킬로그램이었다. 이것으로 성막문 기둥받침과 놋단과 놋그물과 번제단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며 성막뜰 사면의 기둥받침과 성막문 휘장 기둥받침과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 사면의 모든 말뚝을 만들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번제단과 물두멍과 성막뜰을 통해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다. 첫째로, 번제단은 우리에게 헌신을 교훈한다. 물론, 번제단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속죄제물이 필요함을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사도 바울은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말했다(엡 5:2). 또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증거하였다(히 10:12).

그러나 번제단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드려야 함을 보인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하였다(롬 12:1).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셨으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마땅하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다(고후 5:14-1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몸을 드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해야 한다.

둘째로, 물두멍은 우리에게 성결을 교훈한다. 물두멍은 제사장에게 성결이 필요함을 보인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결하신 제사장이시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고 말했다(히 7:26). 또 물두멍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된(벧전 2:9) 신약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깨끗한 손으로 해야 함을 보인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무엇보다 죄와 불결을 버리고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잠언 3:32는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교통하심’이라는 원어(소드)는 ‘앉아서 대화하며 친밀히 교제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의롭고 정직한 자와 친밀히 교제하신다. 악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지 못한다(시 5:4).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의롭고 거룩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하였다(롬 6:22).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삶’이다. 사도 바울은 또 말하기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하나님의 자녀 되는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하였다(고후 7:1). 야고보도 말하기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하였다(약 4:8). 우리는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자.

셋째로, 성막뜰은 우리가 교회의 공적 집회들에 힘써 참여해야 함을 교훈한다. 성막뜰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었다. 그것은 구약교회의 예배처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모여 찬송하며 기도하고 율법을 배우기를 원하셨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회의 공적 예배회들과 기도회들과 모임들에 힘써 참석하는 것을 원하신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이었다(행 2:42, 46). 히브리서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주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모이자]”고 교훈했다(히 10:24-25).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자.

 

 

39장: 제사장의 옷을 만듦

본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성막 제도 중 제사장의 옷을 만든 일을 기록한다.

[1절]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청색 자색 . . . .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청색[보라색] 자주색 진홍색실로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입는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대제사장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다.

모든 율법과 성막 제도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의 뜻이었다. 또 그것은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 도구이었고 그 점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진실성과 권위를 인정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성막과 옷들을 만들었다. 본장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라는 말과 그와 같은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5, 7, 21, 26, 29, 31, 32, 42, 43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셨고 모세는 봉사자들에게 지시하였고 봉사자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 일을 수행했다.

사람의 옷은 보통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제사장들의 정교한 옷과 아론의 거룩한 옷은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상징한다. 그것은 그의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심을 상징한다. 특히 그 옷의 천이 보라색(테켈렛)(BDB, KB), 자주색, 진홍색인 것은 그의 신적이며 왕적인 영광과 함께, 그의 십자가 대속의 고난을 상징한다고 본다. 붉은 빛은 그의 대속의 피를 나타낼 것이다.

[2-5절] 그가 또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 . . .

브살렐은 또 금실과 보라색 자주색 진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을 만들었다. 그는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었고 그것을 보라색 자주색 진홍색실과 가는 베실에 섞어 공교하게 짰다. 또 그는 에봇을 위해 견대를 만들어 그 두 끝에 달아 붙였고 에봇 위에 에봇을 매는 띠를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실과 보라색 자주색 진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붙여 짰다. 그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6-7절] 그들이 또 호마노를 깎아 금테에 물려 인을 새김같이 . . . .

이스라엘 백성은 또 호마노를 깎아 금테에 물려 도장을 새김같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그것에 새겼고 모세는 그것을 에봇 견대에 달아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 보석을 삼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 호마노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 에봇 견대에 단 것은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의 사역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 사역이었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고(마 20:28), 또 자신이 십자가에서 흘릴 피는 많은 사람을 위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룩함을 얻었다(히 10:10).

[8-15절] 그가 또 흉패를 공교히 짜되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 . . .

브살렐은 또 흉패를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실과 보라색 자주색 진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하게 짰다. 그것의 길이는 한 뼘, 너비도 한 뼘으로 네모 반듯하고 두 겹이며 그것에 한 줄에 세 개씩 네 줄로 보석을 물렸다.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며,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이며,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며,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었다. 이것들은 다 금테에 물렸다.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 곧 그들의 이름대로 열 둘이었다. 그것들에 도장을 새김과 같이 열두 지파의 각 이름을 새겼고 또 순금으로 사슬을 노끈처럼 땋아 흉패에 붙였다.

이것은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택한 모든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가슴에 품으심을 나타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다.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6-21절] 또 금테 둘과 금고리 둘을 만들어 그 두 고리를 . . . .

또 브살렐은 금테 둘과 금고리 둘을 만들어 그 두 고리를 흉패 두 끝에 달고 그 두 땋은 금사슬을 흉패 끝 두 고리에 꿰어 매었으며 그 땋은 두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두 끝에 곧 그 에봇 안쪽 가에 달았다. 또 그는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에봇 띠 윗편에 달고 보라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서 에봇을 떠나지 않게 하였다. 그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22-26절] 그가 에봇 받침 긴 옷을 전부 청색으로 짜서 만들되 . . . .

브살렐은 또 에봇 받침 긴 옷(메이르] ; ‘두루마기’[robe])을 전부 보라색으로 짜서 만들되 그 옷의 두 어깨 사이에 구멍을 내고 갑옷 깃같이 그 구멍 주위에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보라색 자주색 진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그 옷 가장자리에 석류를 수놓고 순금으로 방울을 만들어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석류 사이사이에 달되 방울과 석류를 서로 간격하여 봉사하는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달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27-29절] 그들이 또 직조한 가는 베로 아론과 그 아들들을 . . . .

이스라엘 백성은 또 직조한 가는 베로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코트놋)(tunic)(BDB, NASB, NIV)을 짓고 세마포로 두건(頭巾)과 빛난 관을 만들고 가는 베실로 세마포 고의(袴衣)들을 만들고 가는 베실과 보라색 자주색 진홍색실로 수놓아 띠를 만들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30-31절] 그들이 또 정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입을 . . . .

그들이 또 순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김같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 새기고 그 패를 보라색(테켈렛) 끈으로 관 전면에 달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32-41절]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 . . .

이스라엘 자손은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일을 마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고 그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왔다. 32절을 다시 번역하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일들이 마쳤으며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으니 그들이 그렇게 하였으며”이다(KJV, NASB).

그것들은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갈고리들과 그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돌고래의 가죽 덮개와 가리우는 휘장과 증거궤와 그 장대들과 속죄소와 떡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하나님 앞에 놓는 떡]과 순금 등대와 그 잔 곧 벌여놓은 등잔과 그 모든 기구와 등유와 금향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과 장막문 휘장과 놋제단과 그 놋그물과 그 장대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대야와 그 받침과 뜰의 휘장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문의 휘장과 그 줄들과 그 말뚝들과 성막의 모든 기구들과 성소에서 섬길 때 즉 제사 직분을 행할 때 입는 정교한 옷 곧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었다.

[42-4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 . . .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모든 일들을 마쳤다. 모세는 그 마친 모든 것을 보니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다. 43절을 다시 번역하면,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보니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고 그들이 그렇게 행하였으니 모세는 그들에게 축복하였다”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자. 구약의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아론의 옷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상징한다. 우리에게는 거룩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히브리서 4:14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말한다. 그는 신적 존재이시다. 히브리서 1장에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가 지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했고(1:2-3), 7장에는,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고 말했다(7:26). 또 아론의 붉은 빛 옷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이루실 대속 사역을 상징하였다.

특히, 대제사장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고 보석같이 여겨 그들을 가슴에 품게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마 20:28). 그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고(마 26:28), 우리를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셨다(엡 5:2). 그는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고후 5:14).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확증이었다(요 3:16).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했다(롬 5:8).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슴에 품고 대속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영접하고 굳게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자. 그것이 우리의 의요 구원이요 생명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함으로 교회를 세우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며 성막을 건립하였다. 성막은 신약교회를 상징한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했고(고전 3:9), 에베소 교인들에게는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으로 지어져가고 있다고 말했다(엡 2:21-22).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명하신 대로 믿고 행함으로 교회를 건립하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하신 교훈을 가감하지 말며(신 4:2)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신 5:32). 요한계시록 22:18-19도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책의 내용에 무엇을 더하지도 말고 또 무엇을 빼지도 말 것을 교훈하셨고 그 책에서 가감하는 것을 큰 죄로 간주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믿고 다 행하려고 힘써야 한다. 우리는 자기 생각으로 살지 말고 인간적, 세상적 생각으로 교회 생활을 하지 말고, 오직 성경의 교훈대로만 믿고 순종함으로 우리 자신을 건립하고 성경의 교훈대로만 우리의 교회를 참된 교회로 건립하자.

 

 

40장: 성막을 세움

출애굽기 40장의 내용은 모세가 여호와의 성막을 세웠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막에 가득했다는 사실 등에 관한 것이다.

[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월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정월 초일일[초하룻날]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셨다. 17절에 보면, 그 해는 제2년 곧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지 제2년 정월 초하룻날이었다. 성막은 ‘회막’(會幕, 오헬 모에드) 곧 ‘만남의 장막’ 혹은 ‘만남의 집’이라고 불리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시는 처소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9:42-43에서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고 말씀하셨고, 출애굽기 30:36에서는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라고 말씀하셨다. 회막 안의 속죄소는 특히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장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속죄소에서 너와 만나겠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말하겠다고 약속하셨다(출 25:2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증거궤 혹은 법궤 곧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 있는 나무상자를 들여놓고 또 휘장으로 그 법궤를 가리우라고 명하셨다. 그 휘장은 지성소의 문이다. 그는 또 모세에게 떡상을 들여놓고 그 위에 ‘진설병’이라고 불리는 하나님 앞에 두는 떡을 놓고, 또 등대를 들여놓고 불을 켜고, 또 금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문에 휘장을 달라고 명하셨다. 그 휘장은 성소 곧 성막의 문이다.

[6-11절] 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문 앞에 놓고 또 물두멍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놋으로 만든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문 앞에 놓고, 또 물두멍 곧 큰 물대야를 회막과 번제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또 성막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달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성막뜰문이다. 그는 또 모세에게,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법궤와 금향단과 물두멍과 번제단은 일직선 상에 놓였다. 그것들은, 위에서 내려다 보면, 떡상과 등대와 더불어 십자가 형상을 이룰 것이다. 성막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번제단은 죄인들이 제사를 통해 죄사함을 얻고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함을 보이고, 물두멍은 하나님을 섬기려는 자들이 영육으로 깨끗해야 함을 보이고, 떡상과 등대는 말씀과 성령의 빛을, 또 금향단은 기도를 상징하며, 그런 후에야 마침내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지성소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인다.

[12-16절] 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발라](마솨크)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반포 속옷](tunic)을 입히고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바름]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발라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부음[바름]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다.

[17-21절] 제2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 . .

제2년 정월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성막이 세워졌다. 모세는 그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또 그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

모세는 또 증거판 곧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법궤 속에 넣고 채[장대]를 법궤에 꿰고 법궤 뚜껑 곧 속죄소를 법궤 위에 두고 또 그 법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휘장을 드리워서 그 법궤 곧 증거궤를 가리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

[22-28절]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북편으로 장 밖에 상을 . . . .

모세는 또 회막 안 성막 북편, 곧 입구에서 보면 지성소 휘장 바깥 오른쪽에 떡상을 놓았고 또 여호와 앞에 떡상 위에 떡을 차려놓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 모세는 또 회막 안 성막 남편, 곧 왼쪽에 등대를 놓아 떡상과 마주 대하게 하고 또 여호와 앞에 등잔에 불을 켰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 모세는 또 금향단을 회막 안 지성소 휘장 앞에 곧 중앙에 두고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살랐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 모세는 또 성막문에 휘장을 달았다. 그것은 성소문 곧 성막문이었다.

[29-33절] 또 회막의 성막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 . . .

모세는 또 회막의 성막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렸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 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번제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손과 발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번제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 그는 또 성막과 번제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휘장을 달았다. 그것은 성막뜰문이다. 모세는 이같이 성막 세우는 일을 마쳤다.

[34-38절]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 . . .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고, 모세는 회막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옛 시대에 구름을 자신의 영광의 증표로 사용하셨다.

또 구름은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기도 하였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출발하여 앞으로 진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출발하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 온 족속 앞에서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었다. 이것이 본장의 내용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오직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행하자. 성막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위에서 보면, 법궤와 향단과 떡상과 등대와 물두멍과 번제단은 십자가 형상이었다. 죄인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죄사함을 받아야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모세는 이 성막을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대로 만들었고 세웠다. 전장(前章)에서 열 번이나 반복해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성막과 그 기구들을 만들었다는 말씀이었다(39:1, 5, 7, 21, 26, 29, 31, 32, 42, 43절). 본장 16절도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고 말하며, 또 본장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는 말씀이 일곱 번이나 반복해 기록되어 있다(40:19, 21, 23, 25, 27, 29, 32절). 이것은 온전한 순종을 증거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순종을 해야 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분별하여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구원얻은 성도의 마땅한 삶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에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도록 준비시키는 책이다(딤후 3:16-17).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주관대로 행하지 말고 또 성경을 가감하지 말고, 오직 성경대로 믿고 행하며 봉사해야 한다. 모든 봉사자들과 성도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워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이 일을 도우실 것이지만, 우리도 이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깨닫고 감사하자. 모세가 성막을 세웠을 때 구름이 성막에 가득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거하시는 표이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그의 몸된 신약교회의 모형이다. 교회는 성령의 전이다(고전 3:16).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셨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롬 8:9; 엡 1:13).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자.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로 함께하시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 날들과 떠날 시간을 지시하셨다(민 9:15-23).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와 인도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신약교회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모형적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자기 백성을 광야 같은 세상에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는 우리를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성경을 묵상함과 기도와 성령의 감동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체험한다. 우리는 날마다, 일마다, 한걸음씩 그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체험한다.

 

미주

1) 고대 헬라어 70인역, 라틴어 벌게이트역, KB 히브리어 사전, NASB, NIV, 대부분의 현대학자들은 ‘각다귀’라는 뜻을 취하고; 고대 수리아어역, 아람어 탈굼역, KJV, 현대히브리어는 ‘이’라는 뜻을 취한다(BDB).

2)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사도행전 7: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400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갈라디아서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과 야곱에 걸쳐 재확인되었으므로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430년은 야곱이 애굽에 내려간 때로부터 계산한 햇수일 것이다.

3) ‘홍해’라는 히브리어(얌 숩)는 ‘갈대의 바다’라는 뜻이며 헬라어로는 에뤼드라 달랏사(ejruqrav qavlassa) 즉 ‘붉은 바다(홍해)’라는 뜻이다. 그것은 성경에서 주로 홍해 북단의 갈라진 두 개의 만, 즉 수에즈만과 아카바만을 가리킨다.

4) 바로가 그 추격에서 죽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때의 왕은 투트모세 3세이었을 것이며 그의 통치 연대는 주전 1482-1447년경으로 추정된다(J. B. Payne's Outline of Hebrew History).

5) 히브리어로 ‘약’은 레푸아이며, ‘건강’은 마르페이다. 이 단어들은 다 ‘치료하다’는 단어 라파에서 나왔다.

6) 원문에는 엘로힘 이라고 되어 있고 ‘하나님’(ASV, NASB)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7) ‘상관치 아니하면’이라는 원어(아쉐르 로 예아다흐)는 ‘그를 (첩으로) 정하지 않은’(who did not designate her [as concubine]) (BDB)이라는 뜻으로 쓰여 있고(케팁) 주인을 수식한다. 그러나 마소라 학자들의 제안(케레)은 아쉐르 로 예아다흐(발음은 같음) 즉 ‘그를 자신을 위해 (첩으로) 정한’(who designated her for himself)(NASB)이라는 뜻으로 읽는 것이다. 헬라어 70인역과 아람어 탈굼과 라틴어 벌게이트역은 후자를 따른다. KJV, "who hath betrothed her to himself"; NIV, "who has selected her for himself."

8) 오나사흐, her marriage rights(BDB), marital intercourse(KB).

9) 히브리어에서 보통 명령법의 부정은 을 사용하지만, 강한 부정에는 를 사용한다. 본문은 세 번 를 사용하였다.

10) 원문은 강의형(Piel) 동사 명령어에 절대부정사가 함께 사용되었다.

11) 아카시아 나무는 우리나라의 아카시 나무와 다르다고 한다.

12) 합정동교회 본당은 폭이 약 17.5미터, 길이가 약 29미터, 로비까지 합하면 약 35미터이니까, 성막뜰은 이보다 폭이 약 5미터 더 넓고, 길이가 약 10미터 더 긴 셈이다.

13) 왕의 저울(삼하 14:26)에 의한 1세겔은 약 13그램이며,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1세겔은 약 11.38그램이었다고 한다.

14) ‘항상 취한다’고 번역된 원어(익카크)는 미완료형으로서 반복적 행동을 나타낸다. 모세는 진이 이동할 때마다 그렇게 하였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