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레위기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1월 10일

  자료 내려받기

 

 

머리말

 우리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는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유산을 받은 모든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신념이다. 누구든지 무엇을 주장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하고 누구든지 무슨 이의를 제기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제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목회 전반, 목사의 설교나 지교회 혹은 전체 교회의 모든 활동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을 제쳐놓고 무슨 활동을 계획하거나 수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레위기의 히브리어 명칭와이크라 (또 그가 부르셨다)이다. 레위기(Leviticus)라는 말은 헬라어 70인역에서 왔다. 레위기의 주요 내용은 제사 제도와 거룩의 법이며, 특징적 진리는 거룩이다. 레위기 1-10장은 제사 제도에 대한 것이며, 11-27장은 거룩의 법들에 대한 것이다.

출애굽기에 성막과 여섯 가지 거룩한 기구들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나오듯이, 레위기에는 다섯 가지 제사들에 대한 규정, 깨끗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에 대한 규정, 속죄일에 대한 규정, 성 도덕에 관한 법, 10가지 절기들에 대한 규정, 복과 화에 대한 말씀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Karl Feyerabend,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to the Old

Testament.

Holladay 

William L. Holladay,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NBC

The New Bible Commentary. IVP

 

 

 

제목 차례

1장: 번제

2장: 소제

3장: 화목제

4장: 속죄제

5장: 속건제(贖愆祭)

6장: 번제, 소제, 속죄제의 규례

7장: 속건제와 화목제의 규례

8장: 제사장 임직식

9장: 제사장 직무를 시작함

10장: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11장: 정결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

12장: 자녀 출산 후 정결법

13장: 나병에 관한 법

14장: 나병환자의 정결법

15장: 유출병에 관한 법

16장: 속죄일

17장: 피를 먹지 말 것

18장: 성 도덕에 관한 법

19장: 여러 가지 법들

20장: 율법을 어긴 벌

21장: 제사장에 대한 법

22장: 합당한 제물

23장: 절기들

24장: 하나님을 훼방한 죄의 형벌

25장: 안식년, 희년

26장: 복과 화

27장: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

 

 

 

 

1장: 번제

[1-2절]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 . . .

여호와께서는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회막 곧 성막을 건립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와 말씀하셨다. 회막(會幕)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시는 장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회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만나주신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오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표준이다(사 8:20; 딤후 3: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에 대해 명령하셨다.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코르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생축 곧 소나 양 같은 가축으로 예물을 삼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3절]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 . . .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먼저 번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번제(燔祭 burnt offering; 올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사이다. 아담의 아들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번제이었을 것이다(창 4:4). 또 노아는 홍수 후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창 8:20). 번제로 드릴 수 있는 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나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소의 번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제사 드리는 자는 흠 없는 수소를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받아지도록] 드려야 했다. ‘흠 없는 수컷’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분이시다(고후 5:21; 히 4:15). 죄가 없는 자이어야 속죄제물이 될 수 있다. 죄인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어야 하므로 남을 위한 속죄제물이 될 수 없다.

[4절]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제사 드리는 자는 자기가 가져온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했다.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자의 죄책(罪責)을 그 제물에게 돌리는 것, 즉 죄책의 전가(轉嫁)를 의미한다. 죽어야 할 자는 제물이 아니고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제물은 그 사람의 죄를 지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속죄(贖罪)의 원리이다. 이와 같이, 번제의 기본적 의미는 속죄이다. 구약 제사들의 기본적 의미는 속죄이다. 레위기에는 ‘속죄’라는 원어(킵페르)가 47회나 사용되었다. 속죄의 개념은 대리적 형벌을 통한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이다. 죄인은 속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5절]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제사 드리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죽이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려야 했다. 본장에서 ‘그는’(4, 5, 6, 9절)은 제사 드리는 자를 가리킨다(한글개역 9절에서 ‘그는’이 생략됨). 제사 드리는 자는 자기가 드릴 제물을 직접 죽여야 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짐승이 자신을 대신하여 죽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번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에 있는 번제단 사면에 뿌려야 했다. 피는 곧 생명이며, 피 흘림은 죽음을 상징한다. 죄의 값은 죽음이며 제물의 피 흘림은 속죄를 상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려졌다(마 26:28).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구원을 얻는다.

피는 제단 사면에 뿌려져야 했다. ‘단 사면에’라는 원어(알 함미즈베아크 사비브)는 ‘번제단 위 사방에’라는 뜻일 것이다(KJV). ‘뿌린다’는 원어(자라크)는 ‘듬뿍, 풍부하게 뿌린다’는 뜻이다. 헬라어 70인역은 ‘붓는다’는 말(프로스케오)로 번역하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손과 양발, 머리와 옆구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셨다. 성막의 기구들은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며 그것의 밑부분은 번제단이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십자가 밑에, 곧 번제단 위 사방에 듬뿍 뿌려질 것이었다.

[6절]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물을 드리는 자는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했다. 가죽을 벗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겉옷과 속옷까지 벗김받으실 것을 예표한 것 같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옷 벗김을 당한 채 수치스런 죽음을 죽으셨다. ‘각을 뜬다’는 말은 여러 토막들로 자르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온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받으셨다.

[7-8절]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제사장들은 가죽을 벗기고 토막들로 자른 번제물과 머리와 기름을 번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아야 했다. 불은 지옥 형벌을 상징할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요 지옥의 형벌을 포함한다. 죄인은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 대신, 속죄제물이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대속 사역에 대한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셨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의 고난과 죽음 정도가 아니고, 죄인을 대신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이었다. 그것은 지옥 형벌의 잔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일반 순교자에게 베푸신 은혜와 위로조차도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진노의 불을 쏟으셨다.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다. 비록 여섯 시간 동안의 고통이었지만, 그것은 택자들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을 당하신 지옥 형벌의 고통이었다.

[9절]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는] 그 내장과 정갱이[다리들]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제사 드리는 자는 제물의 내장과 다리들을 물로 씻을 것이며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아야 했다. 그것은 화제(火祭) 곧 제물을 불로 태우는 제사이었다.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는 것이 번제의 특징이다. 다른 제사들은 제물의 일부분만 불사르고 나머지는 먹기도 하지만, 번제는 제물 전부를 불태워 드려야 했다.

이것은 온전한 희생을 가리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셨다. 그의 죽음은 번제이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몸과, 물과 피와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 그것이 우리에게 속죄와 구원이 되었다. 여기에 기독교가 있다. 죄인들을 위해 속죄제물이 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속(救贖)과 의와 거룩과 생명이 되셨다.

불태워진 번제물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 하나님은 짐승을 죽여 피 흘리고 불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잔인한 하나님이신가? 아니다. 여기에 거룩하고 귀한 사실, 곧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처분이 있다. 무수히 많은 짐승들이 사람을 위해 희생되었으나, 그것은 인간을 죄와 형벌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었다. 불태워진 제물은 단순히 짐승이 아니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자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 자신이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잔인함이 아니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의 은혜와 사랑이었다. 죄로 더러워지고 허무하게 된 존재인 인생이 무엇이기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인가? 아, 이것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10-13절]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그 기름을 베어 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0-13절은 양이나 염소의 번제, 곧 양이나 염소로 드리는 번제에 대한 말씀이다. 규정은 소의 번제와 같다. 단지, 짐승을 잡는 곳이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라고 표현되었다. 그것은 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었을 것이다.

[14-17절]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릴 것이며 멱통과 그 더러운 것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위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4-17절은 새의 번제, 즉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로 드리는 번제에 대한 교훈이다. 이것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배려한 규정이다(레 5:7; 12:8). 새의 번제물은, 제사장이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려야 하였고 멱통[멀떠구니=먹이 주머니]과 그 깃털들1)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위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아야 하였다.

레위기 1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하자. 번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나 흠 없는 수컷이었다(3, 10절). 제사 드리는 자는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했다(4절). 그 제물은 피 흘림을 당했고(5, 11, 15절) 제단 위에 불태워졌다(9, 13, 17절). 구약의 번제는 우리의 죄와 형벌을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의 피 흘리신 죽음은 우리에게 속죄가 되었다. 레위기 17:11에서,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우리의 의, 우리의 구원, 우리의 영생이 되었다. 우리는 번제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자. 번제의 특징은 제물 전체를 단 위에 불살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9절에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고 말씀하셨고, 13절에도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전부를 희생시키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자.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린도후서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삶을 살자. 번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제사이었다. 9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3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7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 에베소서 5:2, “그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우리의 헌신의 삶, 선한 봉사의 삶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 그러한 삶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이다. 빌립보서 4:18,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선한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자.

 

 

2장: 소제

[1절]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레위기 2장은 소제(素祭 grain offering; 민카)에 대한 규정이다. ‘소’(素)라는 말은 ‘채식’이라는 뜻이다. ‘소제’는 ‘곡물제사’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앞장의 번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였다면, 본장의 소제는 그의 생애를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고운 가루’(솔렛 fine flour)는, 자신을 부정하시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인격을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운 가루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기름은 성경에서 빈번히 사용된 대로 하나님의 영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명하신 일을 완수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伸冤)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예언하였다(사 61: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도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나사렛 회당에서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 성경 구절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오늘날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눅 4:16-21).

소제의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향기, 곧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인격과 온전한 순종 사역의 향기를 나타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성령의 충만한 역사 가운데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였다. 소제는 그것을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뒤에 레위기 5:1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고운 가루로 속죄제물을 삼게 하실 때 그 위에 기름과 유향을 두지 않게 하셨다. 그것은 속죄제물이 대리 형벌과 저주의 죽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롭고 아름다운 인격과 삶을 상징하며 그것은 향기로운 제물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소제에 기름과 유향을 두어 좋은 냄새를 내게 하셨다고 본다.

[2-3절]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제사 드리는 자는 소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온다. 2절을 다시 번역하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그[제사 드리는 자]는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 기념물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MT, KJV, NASB). 소제물은, 번제물과 달리, 단지 제물의 일부인 기름 섞은 고운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만 취해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랐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돌려야 하였고 그것은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었다.

[4-7절]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본문 4-7절은 소제의 세 가지 종류에 대해 말한다. 첫째는 화덕에 구운 것으로 드리는 소제이다. 그것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누룩을 넣지 않고 얇게 만든 떡)으로 드리는 것이다. 둘째는 번철에 부친 것으로 드리는 소제이다. 그것은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않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 셋째는 솥에 삶은 것 혹은 프라이팬에 구운 것으로 드리는 소제이다. ‘솥에 삶은 것’이라는 원어(마르케쉣)의 뜻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삶는 솥’이라는 견해이고(BDB, Langenscheidt, NIV), 다른 하나는 ‘굽는 팬’이라는 견해이다(KB, LXX, KJV). 이 말은 솥에 삶은 것이라는 뜻이든지, 팬에 구운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8-10절]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 . . .

제사 드리는 자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며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제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이것은 화제(火祭)이며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이었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주었고 그것은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었다.

[11-12절]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소제물에 누룩을 넣지 못하게 하셨고 또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하게 하셨다. 누룩이나 꿀은 처음 익은 열매로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지만, 향기로운 냄새를 위해 제단에 올리지 말아야 했다. 누룩은 성경에서 죄와 부패성을 상징한다. 또 꿀은 육신적 쾌락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고 육신적 즐거움을 구하지도 않으셨다. 그는 거룩한 생애를 사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의 길을 걸으셨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삶을 본받아야 한다.

[13절]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 . . .

또 하나님께서는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소금은 맛과 불변성을 상징한다고 본다. 소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짠맛이다. 음식에는 소금을 치지 않으면 맛이 없고 적당히 소금을 쳐야 맛이 난다. 소금의 중요한 또 다른 역할은 썩는 것을 막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소금은 불변성과 영속성의 상징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변적 언약을 ‘소금 언약’이라고 부르셨다. 민수기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擧祭, 드는 제물)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應食)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소제에 소금을 치는 것은 이 두 가지 뜻, 곧 소제의 음식에 맛을 내게 하며 또 이것이 하나님의 불변적 언약의 한 내용임을 나타내는 뜻이 다 있다고 본다.

[14-16절]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하나님께서는 첫 이삭의 소제는 그것을 볶아 찧은 것으로 소제를 드릴 것을 명하셨다. 볶아서 찧는다는 것 외에는 다른 소제의 규례와 동일하다. 첫 이삭은 볶아서 찧어야 잘 찧어질 것이다.

레위기 2장의 소제에 대한 규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는가? 첫째로, 우리는 소제를 통해 우선 하나님께서 주신 곡물들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곡물은 인간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에 대해 항상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의를 알자. 고운 가루와 같이, 예수께서는 자신을 부정하시며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셨다. 그는 흠이 없는 인격자이셨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율법의 의를 온전히 이루셨다. 그는 종과 같이 낮아지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하셨다(빌 2:6-8). 로마서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義)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구원이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순종을 본받자. 고운 가루는 흠과 점이 없는 의로운 인격을 상징한다고 본다. 우리는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그를 본받자. 우리는 양심에 거리끼는 모든 죄를 다 청산해야 한다. 회개는 죄의 청산이다. 회개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회개는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빌립보서 4:8-9,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우리는 의와 순종을 본받자.

 

 

3장: 화목제

[1-2절]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레위기 3장은 화목제(和睦祭; 제바크 쉘라밈)에 대한 규정이다. 화목제는 소나 양이나 염소로 드린다. 먼저, 사람이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리되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그것을 죽이며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려야 하였다.

번제와 달리, 화목제에서는 제물을 수컷이나 암컷을 다 쓸 수 있었다. 그것은, 화목제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인 동시에, 화목의 효력이 제사 드리는 남녀 모두에게 미침을 나타내는 것 같다.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자의 죄를 전가(轉嫁)하는 뜻이 있고 그 제물을 죽이고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리는 것은 속죄의 의미가 있다. 속죄는 대리 형벌의 의미를 가진다. 화목제도 일차적으로는 속죄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화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한 것이다. 속죄의 성경적 의미는 화목을 포함한다.

[3-5절]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제사 드리는 자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해야 했고,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살라 여호와께 화제(火祭)로 드려야 했다. 이 화제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이다.

기름은 제물의 가장 좋은 부분을 가리킨다. 콩팥(신장)은 노폐물을 몸에서 걸러내어 피를 깨끗케 하는 아주 중요한 기관이다. 콩팥이 망가지면 몸에 상당한 이상이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물 중에서 모든 기름들과 중요한 기관인 두 개의 콩팥을 화제로 드리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보이시고, 또 우리가 우리 자신 속의 죄악된 요소를 다 걸러내고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함을 강조하신 뜻이 있는 것 같다.

[6-11절]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려골에서 벤 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火祭)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

[12-16절] 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양이나 염소로 화목제를 드릴 때도 비슷하다. 단지, 양의 경우에, 화제의 내용물로 양의 미려골[꼬리뼈]에서 벤 기름진 꼬리를 언급하였다. 또 화목제의 화제는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라고 표현되었다(11, 16절). 그것은 하나님과의 식탁 교제를 상징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제사 드리는 자들과 다른 이들도 그것의 나머지 부분을 먹을 수 있는 제물이었다(레 7:15-17). 또 화목제도 번제나(레 1:9, 13, 17) 소제처럼(레 2:2, 9)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제사이었다(레 3:5, 16). 모든 제사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이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상징하고 또 우리 모두의 정성어린 예배와 봉사를 상징할 것이다.

[16-17절] . . .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모세는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고 말한다. 또 그는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의 모든 기름을 자기 것으로 구별하셨다. 기름은 가장 맛있는 부분이다. 하나님의 이 규정은 오늘날 의학적 지식으로는 건강상에도 매우 좋다. 동물성 기름이 사람의 혈관 내벽에 불순물을 끼게 만들며 혈압을 높이고 동맥경화나 뇌졸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오늘날 많이 알려진 상식이 되었다.

레위기 3장에 기록된 화목제에 대한 규례는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는가? 첫째로, 이 규례는 하나님과의 화목의 진리를 계시한다. 화목제도 속죄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제사 드리는 자가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죽이고 그 피를 흘려 제사장으로 그것을 번제단 사면에 뿌리게 하는 행위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 속죄 사역은 ‘화목’이라는 뜻을 가졌다. 화목은 성경적 속죄 개념의 한 요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셨다.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에베소서 2:14-18,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儀文, 글자)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죄인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씻음받는 자마다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使臣)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했다(고후 5:20).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목하셨는가? 아직 하나님과 화목치 못한 분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시간 하나님과 화목하라.

둘째로, 하나님과 화목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상징한다.2) 바쳐진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이라고 불린다(11절). 또 화목제는 제사 드리는 자가 그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제사이다(레 7:15-18). 그것은 식탁 교제를 의미한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화목을 잃어버렸었고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 누리는 큰 특권의 하나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고 하였다(롬 5:1). 구원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의 삶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마음이 열리고 깨달아지는 것과 또 우리가 기도할 때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 증거이다. 대화가 없는 교제는 없다. 우리가 에녹처럼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며 사는 것은 땅 위에서 가장 큰 특권이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동행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고 교훈하였다(신 10:20). ‘친근히 하라’는 원어(팃바크)는 ‘꼭 붙들라’는 뜻이다. 그것은 친밀한 교제를 가리킨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었는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며 살고 있는가?

셋째로, 화목제는 감사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3) 레위기 7장에 보면, 화목제에는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 등 세 가지가 있다. 하나님과 화목되고 교제의 회복을 얻은 자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할 것이다. 시편 50편 저자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고 말했다(14-15, 23절). 또 시편 116편 저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고백했다(12, 17절). 사도 바울도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교훈하였고(엡 5:20),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였다(골 3:17).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곧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 일을 묵상하며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자.

 

 

4장: 속죄제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레위기 4장은 속죄제(캇타스)에 대한 규정이다. ‘속죄제’라는 원어(캇타스)는 ‘죄’라는 말로서 ‘속죄제’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는 말씀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불신앙적 성경학자들이 부정하는 모세 오경의 신적 권위성을 증거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참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모세의 율법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그것은 또한 인류 전체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주셨는지를 보인다. 즉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인다.

속죄제는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을 때 죄사함을 위해 드려야 했던 제사이었다. 십계명을 중심한 하나님의 법은 인류 전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었다. 죄는 그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그릇’(비쉐가가) 범하였다는 말은 ‘부주의하여, 부지중에, 실수로’ 범하였다는 뜻이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고 그의 계명을 범하는 죄와 구별되었다.

민수기 15:30,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여기에서 ‘짐짓’이라는 원어(베야드 라마)는 ‘높은 손으로, 건방지게, 고의적으로, 도전적으로’라는 뜻이다. 출애굽기 21:14,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여기에서 ‘짐짓’이라는 원어(지드)도 ‘주제넘게, 건방지게, 뻔뻔스럽게’라는 뜻이다. 고의적인 죄는 이처럼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실수로 범한 죄는 속죄제를 통해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다.

[3-4절]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속죄제를 드려야 할 사람에 따라 속죄제는 네 종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제사장의 경우이다. 본문은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라고 말한다. ‘기름 부음받은 제사장’은 대제사장이 아니고4) 일반 제사장을 가리킨다고 본다. 원어 성경에서는 ‘기름 붓는다’는 말(pour, 야차크)과 ‘기름 바른다’는 말(anoint, smear, 마솨크)이 구별되게 사용된다고 보인다. 본문은 원문에 ‘기름 바른 제사장’이라고 되어 있다.

성경은 대제사장 아론만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보인다. 출애굽기 29:5, 7,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 . .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야차크).” 레위기 8:12,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야차크) 거룩하게 하고.” 레위기 21:10, “자기 형제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야차크)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단지 기름 바름을 받았다. 출애굽기 30:30,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출애굽기 40:14-15,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바름](마솨크)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발라서](마솨크)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바름](마솨크)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민수기 3:3, “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라.” 레위기 10:7, “여호와의 관유(기름 바름)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

기름 바른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집행하는 자로 구별된 자이기 때문에, 그의 범죄는 매우 큰 죄로 간주되었다. 제사 집례자가 범죄하면 그의 제사가 흠결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기름 부음[바름]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이라고 표현하였다. ‘죄얼을 입게 하였다’는 말은 ‘죄 곧 죄책(아쉬마)을 얻게 하였다’는 뜻이다.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백성이 죄 곧 죄책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범죄는 매우 큰 죄이며 그는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야 했고 그것을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죽여야 했다. 흠 없는 수송아지는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그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그의 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轉嫁)시키는 뜻이 있었다. 또 그는 그 제물을 여호와 앞에서 죽여야 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범죄한 인간 대신에 제물이 죽임을 당했다. ‘여호와께 드리라’는 말씀은 제사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나타낸다. 성경적 속죄 개념은 죄인의 죄에 대한 대리적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셨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속죄제물로 죽으셨다.

[5-12절]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 . . .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야 했다. 족장의 범죄나 평민의 범죄에 대한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지 않았지만(25, 30, 34절), 제사장의 범죄나 온 회중의 범죄에 대한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야 했다. 그것은 그 죄의 무게가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회막에 들어간 제사장은 그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즉 지성소)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했다.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것은 완전한 속죄를 상징한다. 또 그는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발라야 했다. 이것은 중보자와 예배자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힘있게 올려진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하였고 그의 중보 기도와 또 그 안에서 우리의 기도들이 하나님 앞에 올려지고 받아지게 하였다.

제사장은 회막에서 나와 그 제물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아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피를 다 쏟으셨다. 제사장은 또 그 속죄제물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화목제물의 소에게서 취함같이 해야 했고, 그는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또 그는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로 나무 위에 살라야 했다. 진 바깥 재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은 성소로부터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처소로부터 떨어진 형벌의 장소 곧 지옥을 예표했을 것이다(안드류 보나).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성밖 갈보리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히브리서 13:11-12,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21절]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 . . .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도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려야 했다. 그 규례는 제사장의 속죄제와 동일하였다. 제사장은 그 제물의 피를 가지고 회막 안에 들어가 성소 곧 지성소 앞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했고 그 피를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향단 뿔에 발라야 했다. 또 그는 회막에서 나와 그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아야 했다. 또 그는 그 제물의 모든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야 했고 또 모든 고기는 진밖으로 가져다가 불살라야 했다. 본문 20절은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이것이 구약시대에 죄사함을 얻는 방법이었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예표했다.

[22-26절]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 . . .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으면, 그는 흠 없는 숫염소를 속죄제로 드려야 했다. 그는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 번제 제물을 죽이는 곳에서 죽여야 했고,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은 화목제 희생의 기름같이 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이 속죄제는, 더 중요한 앞의 두 경우와 달리,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지 않고 회막 밖에서 제사를 집행하는 속죄제이었다. 그러나 속죄의 효력은 동일하였다.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가 죄사함을 얻을 것이다.

[27-31절]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 . . .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속죄제물로 드려야 했다. 그 규례는 족장의 속죄제와 동일하였다.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하여야 했다.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는 죄사함을 얻을 것이다.

[32-35절] 그가 만일 어린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거든 . . . .

그가 만일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어린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면 흠 없는 암컷을 드릴 수 있었다. 그 규례는 앞의 경우와 동일하였다.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를 전부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살라야 했고, 이와 같이 제사장이 그의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해 속죄하면 그가 죄사함을 얻을 것이다.

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속죄의 방법을 감사히 받자. 죄는 속죄가 필요한데, 하나님께서는 제사 제도를 통해 속죄의 길을 주신 것이다. 그 속죄의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예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마 1:21).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의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서이었다. 예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말씀하셨다(요 6:51). 또 그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0:28).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완전한 속죄제물이시다. 히브리서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성탄의 참 의미는 단순히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데 있지 않고, 속죄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영접하는 데 있다. 요한복음 1:11-12는 말하기를,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속죄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영접하고 믿고 의지하며 따르자.

둘째로,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깨닫자. 죄는 반드시 속죄를 통해서만 사해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가장 귀한 선물로 보내주셨다. 죄의 대가는 크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죽으셨다. 죄는 개인과 인류 전체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자.

속죄의 규례는 또한 죄에 경중(輕重)이 있음을 보인다. 율법은 ‘부지중에’ ‘실수로’ 범죄한 경우에 속죄제를 드리도록 규정한다. 고의적인 죄에 대한 죄사함의 길을 말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고의적인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속죄의 규례는 또 직분이 중할수록 죄의 책임이 크다는 것도 보인다. 제사장의 죄는 족장이나 평민의 죄보다 더 무거운 죄임을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더 중요한 직분을 받을수록 범죄치 않도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죄라도 직분이 없을 때 짓는 죄보다 직분을 받은 후에 짓는 죄는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죄를 멀리해야 한다.

 

 

5장: 속건제(贖愆祭)

레위기 5장은 속건제(贖愆祭)에 대한 규정이다. 13절까지를 속죄제에 대한 규정의 계속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Bonar, 카일-델리취, 박윤선), 5:1-6:7을 속건제에 대한 규정으로 본다(NASB). ‘속건제’라는 원어(아솸)는 ‘죄책’(guilt) 즉 죄에 대한 법적 책임 곧 죗값이라는 뜻이다. ‘건’(愆)이라는 한자는 ‘허물’이라는 뜻이다. 속건제는 속죄제처럼 속죄의 뜻을 나타내지만, 속죄제보다 죗값과 보상(報償)의 의미가 강조되는 것 같다.

[1-6절]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 . . .

레위기 5장과 6:1-7에 의하면, 속건제를 드리는 경우는 모두 여섯 가지 경우이다. 첫째는, 증언을 회피한 경우이다.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고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묵비권은 세상에서는 통용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들은 것과 본 것과 아는 것을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둘째는, 부정한 것을 만졌을 경우이다. 누구든지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死體)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들, 무릇 부정한 것을 만졌으면 부지중에 즉 알지 못하고 했을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 허물이 있을 것이요 혹시 부지중에 사람의 부정에 다닥쳤는데 즉 접촉했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떤 부정이든지 간에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다.

셋째는, 헛맹세를 했을 경우이다. 누구든지 무심중에 즉 생각 없이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런 세 가지 경우에 범죄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했다. 제물은 어린 암양이나 암염소이었다. 6절에 이것을 ‘속죄제’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속건제나 속죄제는 그 의미상 큰 차이가 없었다. 이 경우는 평민의 속죄제와 동일하였다(레 4:27-35).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해 속죄해야 했다.

[7-10절] 만일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 . . .

만일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면 그 죄를 속하기 위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야 했다. 제사장은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속죄제물의 피를 번제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단 밑에 흘려야 했다. 이것은 속죄제이다.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로 드려야 했다. 제사장이 그의 범과를 위해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11-13절] 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 . . .

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 죄를 인해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1을 예물로 가져와 속죄제물로 드려야 했다. 1에바는 약 22리터이었다. 에바 10분의 1은 약 2.2리터이다. 이것은 속죄제이기 때문에 그 위에 기름을 붓지 않고 유향도 놓지 말아야 했다. 속죄제는 소제와 달리 죄의 형벌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제사장에게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취해 번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 것이다. 이것이 속죄제이었다. 제사장은 그가 이것들 중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해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그 나머지는 소제물같이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다.

[14-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넷째 경우는, 성물에 대해 잘못을 범했을 때이다. 그것은 오늘날 각종 헌금이나 교회의 거룩한 물건들에 관계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즉 실수로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5분의 1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17-19절]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를 . . . .

다섯째 경우는, 하나님의 금하신 계명을 범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앞에 언급한 성물에 관한 법들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 전반에 관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명하시기를,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 있고 벌을 당할 것이며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그의 부지중에 그릇 곧 실수로 범한 허물을 위해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속건제이다. 그는 실로 여호와 앞에 범죄하였었다.

[6: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레위기 6:1-7은 속건제에 대한 규정의 계속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한글성경 6:8부터가 6:1이다. 속건제의 여섯 번째 경우는, 거짓 증거나 거짓 맹세를 했을 경우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 잡거나 강도질하거나 늑봉 즉 강탈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이며 그 빼앗은 것이나 강탈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의 물건에 5분의 1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며,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다시 번역하면, ‘속건제를 드리는 날에’(KJV, NASB, NIV) 그 주인에게 줄 것이요,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오되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해 제사장에게로 끌어올 것이며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속건제 규정을 다시 요약하면, 속건제는 속죄제와 같이 속죄의 뜻을 가졌으나, 죗값과 보상의 의미가 더 강조된 것 같다(15-16, 18절; 6:5). 또 속건제는 특별히 특정한 죄들에 대한 속죄의 경우에 드리도록 규정된 것 같다. 본문에 나오는 예들은 여섯 가지이다. 첫째, 증언을 회피한 경우, 둘째, 부정해진 경우, 셋째, 헛맹세를 한 경우, 넷째, 성물을 범한 경우, 다섯째, 하나님의 금령중 하나를 어긴 경우, 여섯째, 거짓 증거나 거짓 맹세한 경우이었다.

속건제의 제물은 처음 세 경우에는 어린 암양이나 암염소이었고, 집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로도 가능했고, 그것도 힘든 자들은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1로도 가능했다. 그 속죄제는 기름과 유향을 넣지 않았다. 나머지 세 경우들에는 지정된 가치대로 숫양을 드리고 또 5분의 1을 더해 제사장에게 드렸다.

속건제 규정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죄는 죄책이 있으며 속죄는 그 죄책의 보상임을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은 우리의 죄책을 보상하신 것, 즉 죗값을 지불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말했다(행 20:2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 신약교회 곧 예수 믿는 우리 모두를 사셨다.

바울은 또 고린도전서 6:19-20에서도 말하기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다. 우리의 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핏값으로 사신 바된 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와 선의 도구로 살아야 할 몸이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6에서도 또 말하기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贖錢)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증거될 것이었느니라]”고 말했다. 우리의 죗값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지불하셨다. 그가 우리의 죄의 형벌을 친히 담당하셨다. 우리의 무거운 죄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거되었다. 우리는 죄로부터, 죄의 형벌과 공포로부터 자유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 굳게 믿고 의지하자.

또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을 순종하여 의와 선만 행하자. 본문의 예와 같이, 우리는 증언을 회피하는 죄를 짓지 말자. 우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의 증언이 필요한 때는 언제나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본 것, 우리가 아는 것을 진실하게 증언해야 한다. 또 우리는 세례 서약이나 결혼 서약이나 임직 서약에 있어서 진실해야 하고 그것을 진실하게 지켜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혹은 드린 헌금을 도적질해서는 안 되며 교회 물건을 자기 것처럼 사용하거나 자기 것으로 취해서도 안 된다. 또 우리는 거짓 증언을 하거나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진실한 말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죄이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죄뿐이다.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의와 선만 행하는 자가 되자.

 

 

6장: 번제, 소제, 속죄제의 규례

[8-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명할 제사의 추가적 규례에 대해 말씀하셨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번제의 규례에 대해 말씀하셨다. 번제물은 단 위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계속 붙도록(투카드 be burning) 할 것이며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로 하체를 가리우고 단 위에서 탄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가야 했다. 단 위에 불은 항상 붙어 있고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르며 불이 단 위에 붙어 있고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번제단의 불은 제물을 태우는 용도로 계속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잘 보존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불이 항상 붙어 있고 꺼지지 말게 하라고 명하셨다. 9절,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계속 붙게] 할 것이요.” 12절,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13절,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번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번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은 영원한 지옥의 불을 상징할 것이다. 지옥은 불못이며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 우리는 그 지옥의 불을 두려워해야 한다.

[14-18절] 소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 . . .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소제의 규례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론의 자손은 소제를 번제단 앞 곧 여호와 앞에 드리되 그 소제의 고운 기름 가루 한 움큼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해야 했다. 소제의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어야 했다. 그들은 그것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아야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화제(火祭) 즉 불태워 드리는 제물 중에서 그들에게 주어 그들의 소득이 되게 하신 것이다. 소제는 속죄제와 속건제같이 지극히 거룩하기 때문에 무릇 아론 자손의 남자들이 이것을 먹어야 했다.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서 그들의 대대로 영원한 소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할 것이다.

소제물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표현된다(17절). 이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께서 받으신 거룩한 제물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제사장들만 그것을 먹을 수 있었다. 제사장들이 소제의 남은 것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소제를 받으셨다는 것을 상징할 것이다. 소제는 우리의 감사의 제사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의를 상징한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의도 받으실 것이다.

[19-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 . . .

셋째로,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 자손이 기름 부음을 받는 날에 여호와께 드릴 소제, 즉 임직식 소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것은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1을 항상 드리는 소제물로 삼아 그 절반은 아침에, 절반은 저녁에 드리되 그것을 기름으로 반죽하여 번철에 굽고 기름에 적시어 썰어서 소제로 여호와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론의 자손 중 기름 부음을 받고 그를 이어 제사장된 자가 드릴 것이며 영원한 규례로 여호와께 온전히 불살라 드려야 했다. 무릇 제사장의 소제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백성이 드린 소제물은 제사장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것을 받으시는 뜻으로 먹지만, 자신이 드리는 소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뜻으로 온전히 불사른 것일 것이다.

[24-3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 . . .

넷째로,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속죄제 제물의 규례에 대해 고하도록 말씀하셨다. 속죄제의 규례는 다음과 같다. 속죄제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므로 여호와 앞 번제물을 죽이는 곳에서 그 속죄제 제물을 죽일 것이며 죄를 위해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다. 또 무릇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놋그릇]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어야 했다.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므로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어야 했다.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즉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물이나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물(레 4:1-21)의 고기는 먹지 말고 불살라야 했다.

제사장이 속죄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속죄제를 받으셨다는 것을 상징할 것이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 남은 고기를 먹는 것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제나 자신이 포함되는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의 경우는 먹지 말고 불살라야 했다. 그것은 그때에는 그가 하나님의 입장에 서지 않고 사람의 입장에만 서기 때문일 것이다.

레위기 6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영원한 불못인 지옥을 두려워하자. 번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은 지옥을 상징할 것이다. 지옥은 사탄과 악령들과 악인들을 위해 예비된 형벌의 장소이다. 지옥의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불탄다. 마가복음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전통본문]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전통본문에는 44, 46절에도 있음).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요한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우리는 영원한 지옥 불못을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구약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한다. 번제는 그의 온전한 헌신, 소제는 그의 온전한 순종과 의, 속죄제는 그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의 온전한 헌신과 순종과 의를 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살고 의와 선만 행하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의 생명이다. 또 우리는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 성경에 교훈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의와 선만 힘써 실천해야 한다.

 

 

7장: 속건제와 화목제의 규례

본장은 속건제와 화목제의 추가적 규례이다.

[1-7절] 속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 . .

첫째로, 속건제의 규례이다. 속건제는 지극히 거룩하므로 번제물을 죽이는 곳에서 제물을 죽이며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리며 그 모든 기름을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불태워 드려야 했다. 거기 포함된 것은 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 등이다.

그 피를 단에 뿌리는 것은 속죄의 의미가 있다. 속건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예표하였다. 또 그 모든 기름은 제물의 가장 좋은 부분을 가리킨다고 본다. 또 콩팥은 죄악된 요소를 걸러내는 것을 상징한 것 같다. 또 속건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므로 제사장의 남자마다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다. 그것은 속죄제의 규례와 동일하였다. 제사장이 그 제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속죄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8-10절] 사람의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 곧 그 제사장은 . . . .

8-10절은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에게 줄 제물의 부분들에 대해 말한다.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은 그 번제물의 가죽을 얻을 것이다. 또 소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은 그 소제물을 얻어 모든 형제들과 함께 나누어야 했다.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에게 이런 것들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셨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대우하는 뜻도 있었다고 본다.

[11-14절]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 희생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 . .

둘째로, 화목제의 규례이다. 본장은 화목제에 세 가지 종류가 있음을 보이는 것 같다. 첫째는 감사의 화목제이며(12절), 둘째는 서원의 화목제이고, 셋째는 자원의 화목제이다(16절). 화목제는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과의 화목과 그 결과로 하나님과 교제가 회복됨을 상징하는 제사이며, 하나님과의 교제의 요소들로서 감사와 서원과 자원을 말씀한 것이라고 본다.

특히, 감사의 화목제는 화목제물과 더불어 기름 섞은 무교병(누룩 없는 떡)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함께 드리고 또 유교병(누룩 넣은 떡)도 함께 드려야 했다. 유교병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대상인,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자가 여전히 부족한 죄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동안에도 여전히 부족이 많은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치 않고 더욱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화목제의 예물들은 그 전체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擧祭)5)로 드리고 그 드린 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 주어야 했다.

[15-18절]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 . . .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제사 드린 그 날에 먹어야 했고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아야 했다. 우리의 감사는 보통 하루에 제한되는 것 같다. 그러나 서원이나 자원의 화목제물은 제사 드린 날에도 먹지만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을 수 있었다. 단지 그 고기가 제3일까지 남았으면 불살라야 했다. 만일 그 고기를 제3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제사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가증한 것이 되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과 가지는 우리의 교제는 경건함과 두려움과 진지함을 가진 교제이어야 한다.

[19-21절] 그 고기가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 . . .

또 화목제물이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불살라야 했고 또 그 고기는 깨끗한 자만 먹어야 했다.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몸이 부정하지 않고 깨끗한 자만 화목제물을 먹을 수 있게 한 것은 죄사함받은 성도들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음을 상징한 것 같다.

[22-2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중요한 명령을 추가하셨다. 첫째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먹는 것 외에는 쓸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짐승의 기름을 여러 가지 생활의 용도로 쓰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짐승의 기름을 먹지 말아야 했다. 특히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었다. 기름은 하나님께만 온전히 드려야 했다.

둘째는, 그들의 사는 모든 곳에서 무슨 피든지 새나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였다. 그것은 오직 대속(代贖)의 상징으로 거룩하게 사용되어야 했다.

[28-3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하나님께서는 또 화목제에서 제물의 가슴과 우편 뒷다리[넓적다리]를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장의 영원한 소득으로 주어야 할 것을 명하셨다. 화목제를 드리는 자는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搖祭, 테누파)(wave-offering)를 삼고 그 기름은 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요제’(搖祭)는 ‘흔들어 드리는 제물’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번제단을 향하여 전후로 흔드는 것으로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로부터 그것을 다시 받는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런 다음 그 가슴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주어졌다. 또 제사 드리는 자는 화목제물의 우편 넓적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KJV) 혹은 ‘헌물’ (NASB)로 삼게 했고 그 우편 넓적다리는 화목제의 피와 기름을 드린 제사장의 소득이 되었다.

이와 같이, 화목제물의 가슴과 우편 넓적다리는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34절) ‘여호와께서 명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36절)이 되었다.

[37-38절]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 . . .

37-38절은 이상의 내용이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제와 화목제의 규례”이며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라 명하신 날에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임을 증거했다. 어렵지만 우리가 읽고 묵상하며 조금 깨달았던 레위기의 이 제사 규정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명하신 바이었다. 이것이 성경의 성격이다. 성경은 인간 역사의 구체적인 시점들에 구체적인 환경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의 내용들인 것이다. 성경책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들이다. 우리는 이 책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며 깨닫고 믿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이해하여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평안과 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7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자. 제사장은 속건제물의 모든 기름을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화제로 드렸다. 제물의 기름은 사람이 먹을 수 없었다. 제물의 기름은 가장 좋은 부분을 가리켰다(민 18:29). 실상 기름은 맛도 좋고 냄새도 좋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한다. 그는 우리의 최선의 것, 최상의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거룩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자. 화목제는 일차적으로는 속죄의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뜻도 있었다고 본다. 화목제는 제사 드리는 자가 그 제물을 먹을 수 있었다. 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타낸다. 물론 화목제물은 깨끗한 자만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먼저 죄씻음을 받고 평소에 성결한 생활을 힘써야 함을 보인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인생의 가장 큰 특권이며 행복이다. 시편 25:14,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였었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권을 누린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귀히 여기자. 하나님께서는 속건제물의 고기, 번제물의 가죽, 소제물들, 감사의 화목제 중 무교병, 무교전병, 구운 과자, 및 유교병의 각각 한 개씩, 또 화목제물 짐승의 가슴, 우편 뒷다리 등을 제사장들에게 주게 하셨다. 그것들은 제사장의 영원한 소득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물들을 받으셨다는 것을 상징하는 동시에 제사장들을 하나님의 일꾼들로 대우하시는 뜻이 있어 보인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제사장들을 존중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성도들은 주의 종들을 존중하고 귀히 여겨야 한다(살전 5:12-13). 그들을 영접하는 것을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마 10:40; 25:40).

 

 

8장: 제사장 임직식

[1-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아론과 . . . .

본장은 제사장 임직식을 거행한 내용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숫양 둘과 무교병 한 광주리를 이끌고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으라.”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고 회중은 회막문에 모였다. 모세는 회중에게 “여호와께서 행하라고 명하신 것이 이러하니라”고 말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속옷(쿳토넷)6)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또 겉옷(메일)7)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또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8)을 넣고 또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앞면에 금패를 붙였다. 그 관은 거룩한 관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10-13절] 모세가 관유를 취하여 장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 . . .

모세는 관유를 취해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단에 일곱 번 뿌리고 단과 그 모든 기구들과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했고, 또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으며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붓는다’(pour)는 말(야차크)은 아론에게만 사용되었다. 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관유를 머리에 붓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상징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神性)의 충만함을 가지셨다. 골로새서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거룩한 대제사장이시다. 관유와 피로 그에게 뿌리고 그의 옷에도 뿌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행위가 거룩하심을 상징한다. 히브리서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14-17절] 모세가 또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끌어오니 아론과 . . . .

모세는 또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끌어왔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속죄제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였다. 원문에는 15절에 “그는 그것을 죽이고 모세는 그 피를 취하여”라고 되어 있다(KJV). ‘그’는 아론을 가리켰다고 본다. 모세는 손가락으로 그 피를 단의 네 귀퉁이 뿔에 발라 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피는 단 밑에 쏟아 단을 속(贖)하여 거룩하게 했다. 또 그는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그 수송아지 곧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은 진 밖에서 불살랐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18-21절] 또 번제의 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 아들들이 . . . .

또 번제의 숫양을 드릴 때,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였다. 원문에는 19, 20, 21절에서 매 절마다 앞부분은 ‘그가’라고 시작되고 뒷부분은 ‘모세가’라고 시작된다(KJV). ‘그가’는 아론을 가리켰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론은 그 숫양을 죽였고 모세는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렸으며, 아론은 그 숫양의 각을 떴고[토막으로 잘랐고] 모세는 그 머리와 각뜬 것과 기름을 불살랐으며, 아론은 물로 그 내장과 정갱이들을 씻었고 모세는 그 숫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살랐다. 이것은 향기로운 냄새를 위해 드리는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22-29절] 또 다른 숫양 곧 위임식의 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 . . .

또 다른 숫양 곧 임직식 숫양을 드릴 때에도,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였다. 원문에는 23절도 앞절들과 같은 구조이다. 아론은 그 숫양을 죽였고 모세는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귓불 혹은 귀뿌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발랐다. 모세는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를 발랐으며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렸다. 또 그는 그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과 우편 뒷다리를 취하고 여호와 앞의 무교병 광주리에서 무교병 한 개와 기름 섞은 떡 한 개와 전병 한 개를 취하여 그 기름 위에와 우편 뒷다리 위에 놓아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 아들들의 손에 두어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搖祭)를 삼게 하고 모세가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단 윗 번제물 위에 불살랐다. 이것은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임직식 제사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火祭)이었다. 또 모세는 임직식 숫양의 가슴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搖祭)를 삼았다. 이것은 모세의 응식(應食)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30-36절] 모세가 관유와 단 위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 . . .

모세는 관유와 단 위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했다. “내게 이미 명하시기를 아론과 그 아들들은 먹으라 하셨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서 그 고기를 삶아 임직식 광주리 안의 떡과 아울러 그 곳에서 먹고 고기와 떡의 나머지는 불사를지며 또 임직식은 7일 동안 행하나니 임직식이 마치는 날까지 7일 동안은 회막문에 나가지 말라. 오늘날 행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속(贖)하게 하시려고 명하신 것이니 너희는 7주야를 회막 문에 거하여 여호와의 부탁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 아론과 그 아들들은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모든 일을 준행하였다.

8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자. 본장은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바를 순종하였음을 강조한다(4, 9, 13, 17, 21, 29, 36절). 주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고(마 28:20), 사도 바울은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다(살후 2:15).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을 다 믿고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귀와 손과 발을 거룩하게 하자. 모세가 임직식 숫양의 피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른 것은 그들의 몸의 각 기관들을 거룩하게 하는 뜻이 있었다. 제사장들의 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되어야 하며 그들의 손과 발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손과 발이 되어야 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신약 성도의 모형이다. 신약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벧전 2:9). 그러므로 신약 성도들은  범사에 듣는 것과 말하고 행하는 바를 조심하여 하나님께 거룩하게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막문에서 임직식 제물인 숫양의 고기를 삶아서 광주리의 떡과 함께 먹어야 했다. 임직식 숫양은 일종의 화목제이었다. 그것은 제사 드리는 자가 제물을 먹는 제사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목과 교제를 상징하였다.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과 화목한(롬 5:1)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었다.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놀라운 특권이며 복이다. 우리는 성경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자.
 

 

9장: 제사장 직무를 시작함

본장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시작한 일을 증거한다.

[1-4절] 제8일에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 . . .

7일간 임직식을 한 후 제8일, 모세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렀고 아론에게 말했다. “흠 없는 송아지를 속죄제를 위해 취하고 흠 없는 숫양을 번제를 위해 취하여 여호와 앞에 드리라.” 그는 아론에게 또 말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숫염소를 속죄제를 위해 취하고 또 송아지와 어린양의 1년 되고 흠 없는 것을 번제를 위해 취하고 또 화목제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릴 수소와 숫양을 취하고 또 기름 섞은 소제물을 가져오라’ 하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

흠 없는 속죄제물과 번제물과 화목제물은 일차적으로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셨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했다(벧전 1:18-19).

번제와 화목제와 소제는 부차적으로 온전한 헌신과 교제, 감사와 온전한 순종을 교훈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제사 드리는 자들에게 큰 교훈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온전한 순종을 바쳐야 한다.

[5-7절] 그들이 모세의 명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고 . . . .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명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왔고 온 회중은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섰다. 모세는,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고 말했고, 또 아론에게, “너는 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해 또 백성을 위해 속(贖)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해 속하되 무릇 여호와의 명대로 하라”고 말했다.

본문은 아론이 처음 제사장 직무를 수행한 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바이었고 그가 모세의 명 곧 여호와의 명대로 그 일을 다 수행했다고 말한다. 모세의 명은 여호와의 명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해져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진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날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된 모든 성도의 생활법칙은 성경이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분명한 뜻이다.

[8-14절] 이에 아론이 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 . . .

아론은 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죽였고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받들어 주니 아론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단 밑에 쏟고 그 속죄제물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단 위에 불살랐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또 그는 속죄제물의 고기와 가죽을 진 밖에서 불살랐다.

아론은 또 번제물을 죽였고,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니 그는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렸고, 그들이 또 번제물의 토막들과 머리를 그에게로 가져오매 그는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내장과 다리는 씻어서 단 윗 번제물 위에 불살랐다.

[15-21절] 그가 또 백성의 예물을 드리되 곧 백성을 위한 . . . .

그는 또 백성의 예물 곧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염소를 취하여 죽여 전과 같이 죄를 위해 드렸고, 또 번제를 드리되 규례대로 드렸고 또 소제를 드리되 그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아침 번제물에 더해 단 위에 불살랐다. 또 그는 백성을 위하는 화목제의 수소와 숫양을 죽였고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매 그는 단 주위에 뿌렸고, 그들이 또 수소와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것과 콩팥과 간 꺼풀을 그에게로 가져다가 그 기름을 가슴들 위에 놓으매 그가 그 기름을 단 위에 불살랐고 그가 가슴들과 우편 뒷다리를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드니 모세의 명한 것과 같았다.

[22-24절]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 . . .

아론은 백성을 향해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왔다. 또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였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살랐다. 모든 백성은 그것을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다.

모세의 말대로(4, 6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는 불의 응답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는 지금도 활동하고 계신다. 그는 때때로 인간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의 경험 속에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러한 나타나심들을 증거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러한 나타나심들을 특별계시라고 부른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의 기록이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방법은 바뀌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고 말씀하셨고 기적을 행하셨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다 기록된 사도 시대 이후 그는 일반적으로 성경을 통해 또 그것과 함께 활동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살아계셔서 활동하시지만, 주로 성경을 통해 일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또 그 말씀과 더불어 활동하시는 성령의 불 같은 사역을 사모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불 같은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소멸하시고 우리의 인격을 새롭게 하시고 무능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를 사모한다.

레위기 9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율법의 제사 제도를 통한 교훈을 기억하자. 구약의 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한다. 우리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우리의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또 구약의 제사들은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과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함과 온전한 순종을 교훈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속죄 신앙을 가지고, 온전한 헌신과 교제, 감사와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자. 그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교훈하기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하였다(벧후 3:11-13, 14).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경의 교훈대로 행하자. 아론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해져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야 하며, 교회의 봉사의 일도 성경대로 해야 한다. 신명기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감치 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대로 지키라고 말했고(신 4:1-2; 5:32-33), 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신 10:12-13). 우리는 신구약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생활하며 봉사하자(딤후 3:16; 마 28:20; 살후 2:15).

셋째로, 우리는 오늘날도 살아계셔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불 같은 사역을 사모하자.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또 성경과 더불어 활동하신다. 우리는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말씀과 기도의 단에 불로 응답하시기를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우리 교회에게 내면적 불로 응답하셔서 영광을 나타내시고 우리의 모든 추하고 더러운 죄악을 다 태우시고 하나님을 확신하고 사랑하고 그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를 간구하자.

 

 

10장: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1-5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 . . .

레위기 10장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사건을 기록한다. 이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생긴 일인 것 같다. 제사장들은 저녁과 아침에 회막의 등불을 켤 때와 정리할 때 아마 향로에 불을 담아(민 16:18) 향단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향기로운 향을 살라야 했다(출 30:7-9). 그 불은, 꺼지지 않게 항상 간수되었던(레 6:9, 12, 13) 번제단의 불을 사용했을 것이다(레 16:12; 민 16:46). 그 불은 영원한 지옥 불을 상징하는 동시에 속죄의 불이었다고 본다. 그 불 외에 다른 불로 향을 살라서는 안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였다. ‘다른 불’이라는 원어(에쉬 자라)는 ‘이상한 불’(KJV, NASB, BDB)이라는 뜻이며, ‘공인되지 않은 불’(NIV), ‘이상하고 불결한 불’(Amplified Bible)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그때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켰고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즉시 죽었다.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회막 혹은 성소 앞에서라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모세는 아론에게 말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은 잠잠했다. 모세는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 밖으로 메어 가라”고 말했다. 그들은 나아와 모세의 명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 밖으로 메어 나갔다.

[6-11절]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 . . .

모세는 아론과 그의 남은 아들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했다.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들의 죽음을 일반 사람들처럼 애도할 수 없었다. 거룩한 제사장 직분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또 그들에게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해 슬퍼할 것이니라.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세의 명대로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또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그것은 옳은 말씀이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분별하여 수행할 자들로서 포도주나 독주에 취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어그러뜨려서는 안 되었다. 나답과 아비후의 실수는 술취함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12-15절]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 . . .

모세는 또 아론과 그 남은 아들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했다. “여호와께 드린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단 곁에서 먹되 이는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 네 응식(應食)과 네 아들의 응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네 응식과 네 자손의 응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그 든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응식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소제의 남은 것들과 화목제물 중 든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그들의 응식(應食)으로 주셨음을 다시 강조하셨다.

[16-20절]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 . . .

모세가 속죄제로 드린 염소를 힘써 찾았으나(원문) 그것은 이미 불살라졌었다. 모세는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말했다. “이 속죄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해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고기는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 모세가 노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모세의 말대로 그들은 그 고기는 성소 뜰에서 먹어야 했었다. 그러나 아론은 모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의 고기를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아론은 그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속죄제물의 고기를 먹는 상징을 행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 모세는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다.

레위기 1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명하신 대로 행하자. 본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런 저런 일들을 명하셨다고 증거한다. 1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어떤 불로 하나님 앞에 분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명령하셨음을 보인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는 잘못을 범했다. 또 5절, “그들이 나아와 모세의 명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 밖으로 메어 내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의 뜻을 나타내셨다. 7절,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하니라.” 아론과 그 아들들은 모세의 명대로 행하였다. 모세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11절,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셨고 제사장들은 그 규례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야 했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명령과 교훈을 다 믿고 다 소망하고 다 행하자.

둘째로, 우리는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자. 나답과 아비후가 향로에 담았던 ‘다른 불’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불이었다. 그들의 문제점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과 그의 거룩한 규례를 따라 섬기지 않고 인간의 생각과 방법대로 섬기려 한 데 있었다. 하나님은 엄위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 행위를 용납지 않으셨고 노하셨고 그들을 분향하는 그 자리에서 즉시 죽게 하셨다. 다윗 왕 때에도 웃사는 법궤를 다윗 성으로 실어오는 수레를 몰고 오던 중에 소들이 뛴다고 법궤를 손으로 붙들었다가 즉사하였다(삼하 6:6-7).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대로, 또 참된 믿음과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성경에 분명하게, 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우리는 이 책의 진리와 교훈에 가감하지 말아야 한다(신 4:2; 계 22:18-19). 우리는 잘못된 방법으로, 즉 성경을 거슬러 혹은 성경과 상관없이 우리의 주관적 생각과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불은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계시된 바른 사상과 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11장: 정결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

[1-8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먹을 만한 정결한 생물과 먹어서는 안 될 부정(不淨)한 생물을 구별하게 하셨다. 정결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의 구별은 노아 시대에 벌써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라”고 말씀하셨었다(창 7:2).

땅의 모든 짐승들 중에 먹을 만한 생물은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모든 것들이었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부정하고, 사반9)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지만 새김질을 못하므로 부정하다고 간주되었다. 이런 것들의 고기는 먹지 말고 그 사체(死體)도 만지지 말아야 했다. 이것들은 부정한 것이었다.

[9-12절] 물에 있는 모든 것 중 너희의 먹을 만한 것은 . . . .

또 강이나 바다나 물에 있는 모든 것들 곧 민물고기든지 바다고기든지 물고기와 조개 종류들 중에 먹을 만한 것은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조기나 민어 같은 것들이 표준적인 생선이다. 수중 생물들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가증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사체를 가증히 여겨야 했다. 그러면 게, 새우, 조개 종류들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 것 같다.

[13-19절]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 . .

또 새들 중에 가증하여 먹지 말아야 할 것은, 독수리10)와 솔개11)와 어응[검은 독수리]12)과 매13)와 매 종류14)와 까마귀(raven) 종류와 타조15)와 다호마스[수컷 타조]16)와 갈매기(gull)와 새매(hawk) 종류와 올빼미17)와 노자[가마우지=바다 까마귀]18)와 부엉이19)와 따오기20)와 당아[펠리칸]21)와 올응[독수리]22)과 학(stork)과 황새[왜가리]23) 종류와 대승[후투티]24)과 박쥐(bat) 등이었다. 그것들은 주로 다른 생물을 잡아먹거나 죽은 사체들을 먹는 맹금류들이다.

[20-23절]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 . . .

또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가증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단지 그런 것들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먹을 수 있었다. 그것들은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팟종이 등 메뚜기 종류이었다.25) 그러나 날개가 있고 기어다니기만 하는 곤충들은 다 가증한 것이었다.

[24-26절] 이런 유는 너희를 부정케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 . . .

이런 유는 사람을 부정케 하는 것이며 누구든지 이것들의 사체(死體)를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무릇 그 사체를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아야 했고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무릇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하지 않는 것의 사체도 다 부정하였고 그것을 만지는 자도 부정하였다.

[27-28절]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 . . .

또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에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부정하였다.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사자나 곰이나 늑대 같은 것들일 것이다. 그것의 사체를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사체를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아야 했고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29-30절] 땅에 기는 바 기는 것 중에 네게 부정한 것은 . . . .

또 땅에 기는 것들 중에 부정한 것들은 족제비26)와 쥐(mouse)와 도마뱀 종류27)와 합개[도마뱀 종류]28)와 육지 악어29)와 수궁[도마뱀 종류]30)과 사막 도마뱀과 칠면석척[카멜리온]31) 등이다.

[31-40절] 모든 기는 것 중 이것들은 네게 부정하니 무릇 . . . .

모든 기는 것들 중 이런 것들이 부정하므로 무릇 그 사체(死體)를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이런 것들 중 어떤 것의 사체가 나무 그릇에든지 의복에든지 가죽에든지 부대에든지 그릇에 떨어지면 부정해지므로 그것을 물에 담가 씻어야 했다. 그것들은 저녁까지 부정하다가 정할 것이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이 어느 질그릇에 떨어지면 그 속에 있는 것이 다 부정해질 것이며 그 그릇을 깨뜨려야 했다. 먹을 만한 젖은 식물이 거기 담겼으면 부정해질 것이요 그 같은 그릇의 마실 만한 마실 것도 부정할 것이며 이런 것의 사체가 물건 위에 떨어지면 그것이 모두 부정해지며 화덕이든지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든지 깨뜨려 버려야 했다. 이것이 부정해져서 사람에게 부정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샘물이나 웅덩이 물은 부정해지지 않고 그 사체가 닿는 것만 부정해질 것이며 이것들의 사체가 심을 종자에 떨어져도 그것이 정하지만, 종자에 물을 더할 때에 그것이 그 위에 떨어지면 부정하였다.

먹을 만한 짐승의 죽은 사체를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였고 그것을 먹는 자도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였고 그 사체를 옮기는 자도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41-43절]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기는 것은 가증한즉 먹지 . . . .

또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들, 즉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은 다 가증하므로 먹지 못하였다. 즉 뱀, 도마뱀, 지네 종류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기어다니는 것들을 인해 자신을 가증하게 되게 말고 또 그것을 인해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말아야 했다.

[44-47절]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 . . .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해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레위기에는 ‘거룩’이라는 말이 약 87회나 나온다.

이와 같이, 본장에 기록된 것은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의 모든 기어다니는 것에 대한 규례들, 즉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구별한 것이다.

정결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에 대한 본장의 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몇 가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첫째로, 위생적 의미가 있어 보인다. 옛 시대에 아직 의학이 충분히 발달되지 못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위생적 이유에서 어떤 생물을 먹지 못하게 하셨던 것 같다. 오늘날 지식에 의하면, 사반이나 토끼의 피 속에 있는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야토병을 줄 수 있다고 하며, 돼지는 몇 가지 기생충들의 매개체로서 촌충들을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돼지고기로부터 감염될 수 있는 병으로 선모충병과 주혈원충병 등이 있다고 한다. 또 게나 새우 같은 것들은 썩는 고기를 먹으며 전염병을 쉽게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로, 이방인들과 구별하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 법은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인들이 그들의 우상숭배적 종교의식에서 먹었던 것들을 금함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을 구별하는 뜻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이런 의식법들이 다 폐지되었다(골 2:14-17).

셋째로, 상징적 의미가 있어 보인다. 땅의 짐승 중에서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것은 안정적인 초식동물로서 남을 해치지 않고 사납지 않은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들, 사자나 곰이나 늑대 등은 남을 해치며 할퀴는 것들이다. 물고기들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은 물의 흐름을 거슬러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나쁜 영향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새들 중에도 다른 것을 잡아먹는 새들을 부정하다고 한 것은 남을 해치지 않아야 함을 상징할 것이다. 까마귀나 쥐나 도마뱀이나 뱀 종류는 다 불결한 것이거나 인류 초기로부터 혐오하는 것들이다. 뱀은 사탄을 상징하는 혐오물이었다.

요약하면, 이 규정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악하고 사납고 불결한 것들로부터 구별되기를 원하심을 나타낸다. 44-45절,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성경은 우리가 죄악된 것들과 구별되며 악의 영향을 받지 말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라고 교훈한다. 성도는 세상의 죄악된 풍조를 거슬러 경건하고 도덕적이게 살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우리는 모든 죄악된 것들을 버리고 거룩하게 살자.

 

 

12장: 자녀 출산 후 정결법

[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생리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자를 것이요 그 여자는 33일 동안 피를 정하게 해야 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까지는 어떤 성물도 만지지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지니라. 또 여자가 딸을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생리할 때와 같을 것이며 66일 동안 피를 정하게 해야 할지니라.”

[6-8절]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 . . .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산모(産母)가 정결케 되는 규례를 말씀하셨다.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자는 번제물로 1년된 어린양과 속죄제물로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해 회막문의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 그 여자를 위해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출산한 여자에 대한 규례이니라. 그 여자의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본장은 여인이 자녀 출산 후 정결케 되는 법을 규정한다. 본장의 내용은 몇 가지 진리를 보인다. 첫째로, 본장은 인간의 죄성(罪性)에 대해 증거한다. 자녀를 출산한 여인은 속죄가 필요한 자로 간주된다. 2절,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생리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5절, “딸을 낳으면 그는 두 이레(두 주간) 동안 부정하리니 생리할 때와 같을 것이며 66일 동안 피를 정하게 해야 하리라.” 또 6-8절은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자가 번제물과 속죄제물을 회막문의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며 제사장이 그 여자를 위해 제사를 드림으로 그 여자가 속죄함을 받아야 했고 그래야 그가 정결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여자가 자녀를 출산하면 속죄가 필요한가? 속죄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의 출산 행위가 죄가 된다는 뜻을 내포한다. 여자의 자녀 출산이 죄인가? 자녀 출산의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아닌가? 출산은 하나님께서 복 주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그렇다.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본문은 출산이 죄악된 일이며, 그래서 속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의 원죄 때문에, 즉 출산된 아기가 죄의 본성을 가진 죄인으로 출산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매튜 풀은 “그 여자가 불결한 것은, 임신이나 출산에 있는 어떤 불결 때문이 아니고, 출산과 임신 때로부터의 인간 본성의 보편적이고 뿌리 깊은 부패성을 나타낸다”고 주석했다. 안드류 보나도 그의 주석에서 “여인은 아이의 출산으로 불결하게 된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그 아이는 죄인으로 즉 지옥의 상속자로 출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를 낳은 여자는 불결하다고 간주된다”고 말했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죄인이다. 산모가 7일 동안 부정한 것은 인간의 죄책과 죄성이 많음을 보인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정죄와 지옥 형벌을 받을 만한 죄인이며 그 부패성은 매우 뿌리깊고 심각하여 치료 불가능하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되었고 전적으로 무능력해져 있다. 인간은 심히 죄악되다.

둘째로, 본장은 죄인이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증거한다. 죄인인 어린아이는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다. 제8일에 할례를 받아야 했던 것은 산모와 아이가 다 7일간 부정했기 때문이다. 할례는 인간이 죄인인 것을 전제한다. 할례는 언약의 표이었고 그것은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구원 원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심으로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창 17:9-14). 하나님의 언약은 죄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곧 성도가 되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의 내면적 뜻은 죄사함을 통한 구원이다. 할례는 죄를 정결케 하는 뜻이 있었다. 그것은 중생(重生)을 상징한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重生)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다”고 하였다(딛 3:4-6). 구약시대의 할례는 신약시대의 세례와 의미가 같다(골 2:11-12). 할례나 세례는 구원과 언약의 외적인 표에 불과하고, 그것이 상징하는 내면적 의미는 회개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사함의 구원이다.

셋째로, 본장은 남녀의 구별에 대해 증거한다. 본장은 여자가 남자 아이를 출산하면 7일간 부정하고 33일 후에 산혈이 깨끗할 것이며 그가 여자 아이를 출산하면 14일간 부정하고 66일 후에 산혈이 깨끗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구별을 두는가? 그것은 남녀의 구별을 보인다. 또 그 구별은 창조 질서에 근거할 뿐 아니라 죄에 대한 징벌의 의미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하셨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창조 때부터, 즉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서부터 구별되었다. 또 인간의 타락 시에, 여자는 남자를 범죄케 하는 자가 되었다(창 3: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하셨다(창 3:17).

그러므로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구원의 특권을 누리지만, 가정에서와 교회에서의 그 역할에 있어서 구별이 있음을 분명히 증거한다. 에베소서 5:22-24,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디모데전서 2:11-14,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므로 본장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로, 우리는 인간의 죄악됨을 깨닫자. 인간은 날 때부터 죄인이다. 인간은 원죄(原罪)를 가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중생(重生, 거듭남)의 구원이 필요하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마음의 할례를 받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자.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는 중생을 상징하는 언약의 표이다. 그것은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씻음과 새로워짐을 나타낸다. 우리는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가?

셋째로, 우리는 남녀의 구별을 인식하자. 남자와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구원의 특권을 누리지만, 가정과 교회에서 구별이 있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되었다. 가정의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요 그것 없이는 가정의 참 행복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남자의 역할을 다하고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해야 하고, 또 여자는 자기 위치를 알고 그 위치를 지키고 그 역할을 다하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13장: 나병에 관한 법

본장은 나병에 관한 법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위생적 규례이며 아울러 영적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1-3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32) 딱지33)가 앉거나 색점34)이 생겨서 그 피부에 문둥병같이 되거든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 자손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 ‘문둥병’ 즉 ‘나병’이라는 원어(차라아스)는 구약성경에서 35회 사용되었는데, 레위기 13장과 14장에서 29회 나온다. 그것은 오늘날의 나병(한센병)을 포함하여 심각한 전염성 피부병을 가리키는 용어이었다고 본다.35)

하나님께서는 또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처의 털이 희어졌고 환처36)가 피부보다 우묵해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처라. 제사장이 진단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위생적 진단을 할 책임도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책임을 가졌고 거기에는 의식법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감독하는 일도 포함됐다.

[4-8절] 피부에 색점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 환자의 피부에 색점[반점]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털이 희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7일 동안 금고할[격리시킬] 것이며 7일 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그의 보기에 그 환처가 변하지 아니하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제사장이 그를 또 7일 동안을 격리시킬 것이며 7일 만에 제사장이 또 진찰할지니 그 환처가 엷어졌고[색이 옅어졌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피부병이라. 제사장이 그를 정하다 할 것이요 그는 옷을 빨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피부병’이라는 원어(미스파카스)는 ‘부스럼’(scab)(KJV, NASB, BDB) 혹은 ‘뾰루지’(rash)(NIV)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나 정결한 여부를 위해 제사장에게 보인 후에 병이 피부에 퍼지면 제사장에게 다시 보일 것이요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병이 피부에 퍼졌으면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 것이라. 이는 나병임이니라.”

[9-11절] 사람에게 문둥병이 들었거든 그를 제사장에게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사람에게 나병이 들었거든 그를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피부에 흰 점이 돋고 털이 희어지고 거기 난육이 생겼으면 이는 그의 피부의 오랜 나병이라. 제사장이 부정하다 진단할 것이요 그가 이미 부정했은즉 격리시키지는 않을 것이며”라고 말씀하셨다. ‘난육’(爛肉)이라는 원어(미크야스 바사르 카이)는 (살갗이 벗겨진) ‘생살’이라는 뜻이다.

[12-17절] 제사장의 보기에 문둥병이 그 피부에 크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제사장의 보기에 나병이 그 피부에 크게 발하였으되 그 환자의 머리부터 발까지 퍼졌거든 그가 진찰할 것이요 나병이 과연 그 전신에 퍼졌으면 그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다 희어진 자인즉 정하거니와 아무 때든지 그에게 난육[생살]이 발생하면 그는 부정한즉 제사장이 난육을 보고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지니 그 난육은 부정한 것인즉 이는 나병이며 그 난육이 변하여 다시 희어지면 제사장에게로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진찰하여서 그 환처가 희어졌으면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그는 정하니라.” (14-16절의 ‘난육’이라는 원어는 바사르 카이라고만 되어 있고 그 뜻은 같다.)

[18-23절] 피부에 종기가 생겼다가 나았고 그 종처에 흰 점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피부에 종기(쉐킨)가 생겼다가 나았고 그 종처에 흰 점이 돋거나 희고 불그스름한 색점이 생겼으면 제사장에게 보일 것이요 그는 진찰하여 피부보다 얕고 그 털이 희면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지니 이는 종기로 된 나병의 환처임이니라. 그러나 제사장의 보기에 거기 흰털이 없고 피부보다 얕지 아니하고 빛이 엷으면 제사장은 그를 7일 동안 격리시킬 것이며 그 병이 크게 피부에 퍼졌으면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지니 이는 그 환처임이니라. 그러나 그 색점이 여전하고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이는 종기 흔적이니 제사장은 그를 정하다 진단할지니라.”

[24-28절] 피부를 불에 데었는데 그 덴 곳에 불그스름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피부를 불에 데었는데 그 덴 곳에 불그스름하고 희거나 순전히 흰 색점이 생기면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색점의 털이 희고 그 자리가 피부보다 우묵하면 이는 화상(火傷)에서 발한 나병인즉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은 나병의 환처가 됨이니라. 그러나 제사장의 보기에 그 색점에 흰털이 없으며 그 자리가 피부보다 얕지 아니하고 빛이 엷으면 그는 그를 7일 동안 격리시킬 것이며 7일 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만일 병이 크게 피부에 퍼졌으면 그는 그를 부정하다 진단할 것은 나병의 환처임이니라. 만일 색점이 여전하여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고 빛이 엷으면 화상으로 부은 것이니 제사장은 그를 정하다 할 것은 이는 화상의 흔적임이니라.”

[29-37절] 남자나 여자의 머리에나 수염에 환처가 있으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남자나 여자의 머리나 수염에 환처가 있으면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고 그 자리에 누르고 가는 털이 있으면 그는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은 이는 옴이라. 머리에나 수염에 발한 나병임이니라. 만일 제사장의 보기에 그 옴의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검은 털이 없으면 제사장은 그 옴 환자를 7일 동안 격리시킬 것이며 7일 만에 제사장은 그 환처를 진찰할지니 그 옴이 퍼지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누른 털이 없고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거든 그는 모발을 밀되 환처는 밀지 말 것이요 제사장은 옴 환자를 또 7일 동안 격리시킬 것이며 7일 만에 제사장은 그 옴을 또 진찰할지니 그 옴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고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면 그는 그를 정하다 진단할 것이요 그는 그 옷을 빨지니 정하려니와, 깨끗한 후에라도 옴이 크게 피부에 퍼지면 제사장은 그를 진찰할지니 과연 옴이 피부에 퍼졌으면 누른 털을 찾을 것 없이 그는 부정하니라. 그러나 제사장의 보기에 옴이 여전하고 그 자리에 검은 털이 났으면 그 옴은 나았고 그 사람은 정하니 제사장은 그를 정하다 진단할지니라.” ‘옴’이라는 원어(네세크)37)는 ‘(나병으로 의심되는, 머리나 수염에 난) 부스럼’(BDB)이라는 뜻이다.

[38-39절] 남자나 여자의 피부에 색점 곧 흰 색점이 있으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남자나 여자의 피부에 색점 곧 흰 색점이 있으면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피부의 색점이 부유스름하면 이는 피부에 발한 어루러기라. 그는 정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어루러기’라는 원어(보하크)38)는 ‘해가 없는 피부 부스럼’(BDB)을 가리킨다.

[40-44절] 누구든지 그 머리털이 빠지면 그는 대머리니 정하고 . . . .

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그 머리털이 빠지면 그는 대머리니 정하고 앞머리가 빠져도 그는 이마 대머리니 정하니라. 그러나 대머리나 이마 대머리에 희고 불그스름한 색점이 있으면 이는 나병이 대머리에나 이마 대머리에 발함이라. 제사장은 그를 진찰할지니 그 대머리에나 이마 대머리에 돋은 색점이 희고 불그스름하여 피부에 발한 나병과 같으면 이는 나병 환자라. 부정하니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확실히 진단할 것은 그 환처가 그 머리에 있음이니라.” 이와 같이, 본장은 여러 종류의 나병을 말한다. 본장은 ‘피부의 오랜 즉 만성적인 나병’(11절), ‘종기로 된 나병’(20절), ‘화상에서 발한 나병’(25절), ‘머리에나 수염에 발한 나병’(30절), ‘대머리에나 이마 대머리에 생긴 나병’(43-44절) 등을 말하며, 47절 이후에는 의복의 나병, 또 14장 끝부분에는 ‘집에 생긴 나병’까지(34절) 말한다.

[45-46절]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 . . .

하나님께서는,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47-59절] 만일 의복에 문둥병 색점이 발하여 털옷에나 . . . .

본장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의복에 생긴 나병에 대한 규정을 말씀하셨다. “만일 의복에 나병 색점이 발하여 털옷에나 베옷에나 베나 털의 날에나 씨에나 혹 가죽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있되 그 의복에나 가죽에나 그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병색이 푸르거나 붉으면 이는 나병의 색점이라. 제사장에게 보일 것이요 제사장은 그 색점을 살피고 그것을 7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7일 만에 그 색점을 살필지니 그 색점이 그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가죽에나 가죽으로 만든 것에 퍼졌으면 이는 ‘악성 나병’(차라아스 마메에레스)이라. 그것이 부정하니 그는 그 색점 있는 의복이나 털이나 베의 날이나 씨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을 불사를지니 이는 악성 나병인즉 그것을 불사를지니라. 그러나 제사장의 보기에 그 색점이 그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제사장은 명하여 그 색점 있는 것을 빨게 하고 또 7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그 빤 곳을 볼지니 그 색점의 빛이 변치 아니하고 그 색점이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부정하니 너는 그것을 불사르라. 이는 거죽에 있든지 속에 있든지 악성 나병이니라. 빤 후에 제사장의 보기에 그 색점이 엷으면 그 의복에서나 가죽에서나 그 날에서나 씨에서나 그 색점을 찢어버릴 것이요 그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색점이 여전히 보이면 복발하는[다시 생기는] 것이니 너는 그 색점 있는 것을 불사를지니라. 네가 빤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그 색점이 벗어졌으면 그것을 다시 빨아야 정하리라. 이는 털옷에나 베옷에나 그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발한 나병 색점의 정하고 부정한 것을 단정하는 규례니라.”

본장에 기록된 나병에 대한 자세한 규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첫째로, 본장의 규정은 위생적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본장은 나병을 부정(不淨)한 질병으로 규정한다. 나병을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전염성을 가진 악성 질병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 질병은 환자 자신을 심각하게 해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심각하게 해친다. 그러므로 그 병에 걸린 사람은 이스라엘 회중과 격리되어야 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위생적 성결의 문제라고 본다.

둘째로, 나병은 많은 성도들이 이해해온 대로 인간의 악한 죄성, 그것도 단순히 인간의 죄성이 아니라 악한 전염적 죄성을 상징한다고 본다. 죄는 자신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올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악을 전염시킨다. 죄는 교리적 오류든지 윤리적 오류든지 간에 남에게 악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그것은 누룩에 비유되고(갈 5:9; 고전 5:6) 또 독한 창질에 비유된다(딤후 2:17). 그러므로 성도는 죄와 분리되어야 하고 범죄자들과도 분리되어야 한다. 죄의 전염성 때문에 악인들과 교제의 단절이 필요한 것이다(롬 16:17; 고전 5:11-13; 딛 3:10). 최종적으로, 천국은 의인들만의 거주지이며 악인들은 영원히 제외될 것이다(고전 6:9-10; 계 21:27; 22:15).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자. 죄는 나병처럼 부정하다. 그것은 인생에게 불행과 죽음과 지옥 형벌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버려야 한다. 주께서 전하신 첫 번째 내용은 회개이었다(마 4:17).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하자.

둘째로, 우리는 모든 죄의 씻음을 받자. 나병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요일 1:9). 우리는 더러운 모든 죄의 씻음을 받자.

셋째로, 우리는 죄인들과의 교제를 조심하자. 죄인과 친하게 지내면 자연히 죄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시 1:1). 악한 친구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전 15:33). 죄인들은 우리의 전도 대상이지 교제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과의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

 

 

14장: 나병환자의 정결법

본장은 나병환자가 나았을 때 그를 정결케 하는 규례이다.

[1-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문둥환자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나병환자가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에 대해 명하셨다. 병이 나은 나병환자는 제사장에게 데려갈 것이며 제사장은 진에서 나가서 그를 진찰해야 했다. 그 나병환자의 환처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정결한 산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명하고,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죽이게 하고 다른 하나는 산 대로 취하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와 새 피를 찍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말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아야 했다.

병이 나은 나병환자를 정결케 하는 의식은 단순히 위생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적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나병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근본적으로 죄 때문에 온다. 그러므로 그 정결 의식은 죄씻음을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새 한 마리를 죽여 그 피를 나병환자에게 일곱 번 뿌리고 살아 있는 새를 들에 놓아주는 것은 죄의 완전한 제거를 상징하고, 백향목은 썩지 않음을, 홍색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상징하였다고 본다. 우슬초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며 피를 적셔 뿌리기에 편리하였다. 인간의 죄 때문에 모든 불행이 왔고 죄씻음을 통해 참 평안과 행복이 온다.

[8-9절]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 . . .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는 자는 또 그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어야 깨끗케 되었고 그 후에 백성의 진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장막 밖에서 또 7일을 거해야 했다. 제7일에 그는 그의 모든 털을 다시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어야 깨끗케 되었다. 이렇게 옷을 빨거나 모든 털을 밀거나 몸을 씻는 것을 두 번 하여야 했다. 그것은 위생적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완전한 정결함을 상징하였다.

[10-14절] 제8일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둘과 1년된 . . . .

제8일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둘과 일년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또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3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해야 했다. 가루 한 에바는 약 22리터이며, 기름 한 록은 약 0.3리터이다. 나병환자를 정결케 하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와 그 물건들을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어린 숫양 하나를 취하여 기름 한 록과 함께 속건제로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搖祭)를 삼아야 했다. 그 어린 숫양은 거룩한 장소 곧 속죄제물과 번제물 죽이는 곳에서 죽이고 속건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므로 속죄제물처럼 제사장에게 돌려야 했다. 또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환자의 오른편 귀뿌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발라야 했다.

레위기 1장과 4장에 규정된 대로, 어린 숫양 하나는 속건제를 위해, 다른 하나는 번제를 위해 쓰였고, 어린 암양은 속죄제를 위해 쓰였다. 속건제는 죗값을 보상하는 뜻이 있고, 속죄제는 단순히 속죄의 뜻이 있고, 번제는 속죄와 더불어 온전한 헌신의 뜻이 있고, 소제는 감사와 온전한 순종의 뜻이 있다고 본다. 속건제물의 피를 취해 정결함을 받아야 할 자의 오른편 귀뿌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른 것은 귀로 죄악된 말들을 듣고 손으로 죄악된 일들을 행하고 발로 죄악된 길들로 갔던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씻음받고 이제부터 깨끗하게 살겠다는 각오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15-20절] 제사장은 또 그 한 록의 기름을 취하여 자기 좌편 . . . .

제사장은 또 그 한 록의 기름을 취해 자기 왼손바닥에 따르고 오른손가락으로 왼손의 기름을 찍어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리고, 또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는 환자의 오른편 귀뿌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 위에 바르고, 그 손에 남은 기름은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바르고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해 속죄해야 했다. 속건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상징하고, 기름은 성령의 활동을 상징한다고 본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성령의 사역이다. 우리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받았고 중생(重生)했고 성화(聖化)한다(고전 6:11; 딛 3:5-6).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을 인해 정결함을 받으려는 자를 위해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죽이며 그 번제물과 소제물을 제단에 드려 그를 위해 속죄하면 그가 깨끗케 되었다. 속죄제는 속죄를, 번제는 속죄와 온전한 헌신을, 소제는 감사와 온전한 순종을 상징한다고 본다.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죄씻음을 받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과 감사와 온전한 순종을 각오해야 한다.

[21-25절] 그가 가난하여 이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 . . .

만일 정결함을 받을 환자가 가난하여 이런 제물들을 준비할 힘이 없으면, 그는 속건제를 위해 어린 숫양 하나와 소제를 위해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1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삼아, 제8일에 그 결례를 위해 그것들을 회막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와야 했다. 제사장은 속건제 어린양과 기름 한 록을 취해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속건제물 어린양을 죽여 제물의 피를 취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편 귀뿌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발라야 했다.

[26-32절] 제사장은 그 기름을 자기 좌편 손바닥에 따르고 . . . .

제사장은 또 그 기름을 그의 왼손바닥에 붓고 오른손가락으로 왼손의 기름을 조금 찍어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리고, 그 손의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편 귀뿌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를 바른 곳에 바르며, 그 손에 남은 기름은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발라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해 속죄해야 했다. 또 정결함을 받을 그 환자는 그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하나나 집비둘기 새끼 하나를 속죄제물로, 하나는 소제물과 함께 번제물로 가져와야 했고,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해 여호와 앞에 속죄해야 했다.

[33-47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 . . .

본문은 집에 생긴 나병에 대한 규례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가나안 땅에 이른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의 땅에서 어느 집에 나병 색점을 발하게 하시면 그 집 주인은 제사장에게 와서 무슨 색점이 집에 생겼다고 말해야 했다. 34절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느 집에 나병 색점을 발하게 하거든”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며, 나병을 포함하여 모든 질병도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시요 주권적 섭리자시다.

제사장은 그 색점을 보러 가기 전에 그 가장집물(家藏什物)에 부정을 면케 하기 위해 명하여 그 집을 비우게 한 후에 들어가서 그 집을 보되, 그 집 벽에 푸르거나 붉은 무늬의 색점이 있어 벽보다 우묵하면 제사장은 그 집 문으로 나와 그 집을 7일 동안 폐쇄하였다가 7일 만에 또 와서 살펴보되, 그 색점이 벽에 퍼졌으면 그는 색점 있는 돌을 빼어 성밖 부정한 곳에 버리도록 명하고 또 집안 사면을 긁게 하고 그 긁은 흙을 성밖 부정한 곳에 쏟아 버리게 하고 다른 돌로 그 돌을 대신하며 다른 흙으로 집에 바르게 해야 했다.

만일 돌을 빼며 집을 긁고 고쳐 바른 후에 색점이 집에 다시 생기면 제사장은 또 와서 살펴보되, 그 색점이 집에 퍼졌으면 악성 나병이므로 부정하기 때문에, 그는 그 집을 헐고 돌과 재목과 집의 모든 흙을 성밖 부정한 곳으로 내어가게 해야 했다. 그 집을 폐쇄한 날 동안에 그 집에 들어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집에서 자는 자는 그 옷을 빨고 그 집에서 먹는 자도 그 옷을 빨아야 했다.

[48-53절] 그 집을 고쳐 바른 후에 제사장이 들어가 . . . .

그 집을 고쳐 바른 후에 제사장이 들어가 살펴보아서 색점이 집에 퍼지지 않았으면 이는 색점이 나은 것이므로 제사장은 그 집을 정하다고 말하고 그 집을 정결케 하기 위해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취하고 그 새 하나를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죽이고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과 산[살아 있는] 새를 가져다가 죽인 새의 피와 흐르는 물을 찍어 그 집에 일곱 번 뿌리며, 새의 피와 흐르는 물과 산 새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로 집을 정결케 하고 그 산 새는 성밖 들에 놓아 그 집을 위해 속하여 깨끗케 해야 했다.

이상과 같이, 레위기 13장과 14장은 각종 나병환자에 대한 규례와 의복과 집에 생긴 나병에 대한 규례, 그리고 나병이 나은 자를 정결케 하는 규례 등을 기록했다.

레위기 14장의 주요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나병환자가 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정결 의식을 행해야 하는데, 그 의식은 두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그 날 즉시 살아 있는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가지고 가서 정결 의식을 행하고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몸을 씻어야 했다. 또 그는 백성이 거주하는 진영 안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7일간 자기 장막 밖에 거해야 했고 제7일에 다시 모든 털을 밀고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은 후에 자기 장막에 들어올 수 있었다. 또 제8일에는 속건제, 속죄제, 번제, 소제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특히 속건제물의 피를 그의 오른편 귀뿌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르며 또 기름도 그 위에 발라야 했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완전한 죄씻음이 필요하다. 정결함을 받을 나병환자에게 죽인 새의 피를 일곱 번 뿌린 것이나 산 새를 들에 놓아준 것은 완전한 죄씻음을 상징한다. 우리의 완전한 죄씻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만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 10:4).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우리의 모든 추하고 더러운 죄를 깨끗케 하신다(요일 1:7).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씻음과 영생의 구원을 다 얻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만 믿고 성령의 은혜를 의지하자. 속건제, 속죄제, 번제의 피는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 또 정결케 될 나병환자의 귀와 손과 발에 발라진 기름은 성령의 은혜를 상징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은혜만 믿고 성령의 은혜를 의지하자. 성경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밝히 증거한다(롬 3:21-24). 또 성경은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육신의 죄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갈 5:16). 거기에 그리스도인의 성화(聖化)의 비결이 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만 믿고 그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확신하고 성령의 은혜와 도우심을 의지하며 간구하자.

셋째로, 우리는 온전한 헌신과 감사와 온전한 순종으로 새 삶을 살자. 번제와 소제는 온전한 헌신과 감사와 온전한 순종을 상징한다고 본다. 또 귀와 손과 발에 피를 바르고 기름을 바른 것은 거룩한 삶의 시작을 상징한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몸을 죄의 도구가 아니고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거룩히 드리고(롬 6:12-13),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자(엡 4:22-24). 우리는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자(롬 12:1). 우리는 헌신과 감사와 순종의 새 삶을 살자.

 

 

15장: 유출병에 관한 법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출병에 대한 법을 고하라고 말씀하셨다. ‘유출병’이라는 원어(조브)는 ‘흘러나오는 것, 유출물’39)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생식기에서 나오는 피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BDB).40) 본문은 유출병이 있는 자는 그 유출병으로 인하여 부정(不淨)하다고 강조한다. 몸에서 그 유출물이 흘러나오든지 그것이 엉겼든지 그는 부정하며 따라서 그가 눕는 침상이 부정하고 그가 앉았던 자리도 부정하다고 말한다.

[5-12절] 그 침상에 접촉하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 . . .

유출병이 있는 자는 이와 같이 부정(不淨)하기 때문에, 그의 침상을 만진 자, 그의 앉았던 자리에 앉는 자, 유출병 있는 자의 몸을 만진 자, 유출병 있는 자가 침을 뱉은 자, 유출병 있는 자가 탔던 안장을 만진 자, 그런 것을 옮기는 자, 유출병 있는 자가 물로 손을 씻지 않고 만진 자 등은 다 부정해지며 그런 자는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고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다. 본장에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고 저녁까지 부정하리라”는 표현이 열 번이나 반복해 나온다(5, 6, 7, 8, 10, 11, 13, 21, 22, 27절). 유출병이 있는 자와 접촉된 자는 하루 동안 부정해지며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했다. 또 유출병 있는 자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리고 나무 그릇은 물로 씻어야 했다.

[13-15절] 유출병 있는 자는 그 유출이 깨끗하여지거든 . . . .

유출병 있는 자가 그 유출이 깨끗해지면, 그는 그의 몸을 정결케 하기 위해 7일을 계산하여 그의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몸을 씻을 것이요 그리하면 정할 것이다. 즉 유출병 있는 자는 유출이 있는 동안 부정하고 그 유출이 깨끗해져도 7일 동안 부정하다는 말이다.

또 그는 제8일에 자기를 위해 비둘기 둘을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가서 제사장에게 드리고 제사장은 그 하나는 속죄제로, 하나는 번제로 드려 여호와 앞에 속죄해야 했다. 속죄제는 ‘속죄’의 뜻이, 번제는 ‘속죄’와 더불어 ‘온전한 헌신’의 뜻이 있었다고 본다.

이 규정을 보면, 유출병의 정결 의식은 단지 위생적 의미뿐 아니라, 죄씻음의 의미가 있었다. 모든 사람은 죄씻음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인생의 죄사함이다. 죄가 인생의 근본 문제요, 죄사함이 인생의 근본적 치료와 해답이다.

[16-18절] 설정(泄精)한 자는 전신을 물로 씻을 것이며 . . . .

본문은 설정(泄精)에 대한 정결 규정이다. ‘설정’이라는 원어(세체 쉬케밧 자라)는 ‘정액이 나온다’는 뜻이다. 설정한 자는 온 몸을 물로 씻어야 하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또 정액이 묻은 옷이나 가죽은 물에 빨아야 하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남녀가 동침하여 설정하였으면 둘 다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다.

[19-24절]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 유출이 피면 7일 동안 . . . .

피를 유출하는 여자는 7일 동안 불결할 것이다. 그것은 주로 여성의 월경을 가리킨다. 그가 불결할 동안 그의 누웠던 자나 그의 앉았던 자리도 부정할 것이다. 또 앞의 유출병 규례에서와 같이, 유출이 있는 여자를 만지는 자, 그의 침상을 만지는 자, 그 좌석을 만지는 자, 그의 침상과 그 좌석에 있는 것을 만지는 자는 다 부정하고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하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다. 그것은 하루 동안의 부정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월경 중인 여자와 동침하면 그는 7일 동안 부정할 것이다. 즉 율법은 여성의 월경 기간에는 부부 관계를 금하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25-27절]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외에 있어서 여러 . . . .

피의 유출에 대한 규정은 여성의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즉 월경 기간 외에 있을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 피의 유출이 월경 기간 외에 여러 날 갈 때에도 그 여자는 부정할 것이다. 또 그의 침상이나 좌석에 접촉한 자도 부정하므로 옷을 빨고 몸을 씻어야 할 것이다.

[28-30절] 그의 유출이 그치면 7일을 센 후에야 정하리니 . . . .

여자의 피의 유출이 그치면, 그 여자는 7일을 센 후에야 정결케 될 것이다. 즉 그 여자는 피의 유출이 멈춘 후에도 7일 동안 부정할 것이다. 또 그 여자는 제8일에 비둘기 두 마리를 자기를 위해 취해 회막문 앞 제사장에게 가져오고 제사장은 하나는 속죄제로, 하나는 번제로 드려 유출로 부정한 여자를 위해 여호와 앞에 속죄해야 했다. 역시, 속죄제는 ‘속죄’의 뜻이, 번제는 ‘속죄’와 더불어 ‘온전한 헌신’의 뜻이 있었다고 본다. 이와 같이, 유출병은 죄로 인한 불결로 간주되었다.

[31-33절]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 부정에서 . . . .

유출병 규례의 요점과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부정(不淨)에서 떠나게 하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로 그 가운데 있는 내 장막을 더럽히고 그 부정한 중에서 죽음을 면케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유출병의 정결 의식은 죄에서 정결케 됨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거하시는 장막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유출병은 인간의 숨은 죄악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 불신앙, 교만, 이기심, 욕망 등의 죄악은 남 앞에 드러나지 않으나 사람을 더럽히는 죄악들이다. 주께서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5:19-20). 죄는 불결이다. 사람 앞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죄악들도 그러하다.

둘째로, 유출병 규례는 죄인들과의 교제를 피할 것을 교훈한다. 유출병 환자와의 접촉이나 그가 앉았던 침상이나 좌석의 접촉은 사람을 하루 동안 더럽힌다. 접촉한 자는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고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이 법은 죄인과의 교제에 관해 교훈하시는 것 같다. 죄인과 접촉하는 자는 깨끗지 못할 것이다. 성도는 불신자와 교제를 조심해야 하고(고후 6:14-18) 믿는 형제라도 성경의 교훈대로 행치 않는 자와는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살후 3:6,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우리는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

셋째로, 부정한 자는 정결함을 얻어야 한다. 유출이 있는 자는 부정하며 정결함을 얻어야 했고 유출이 있는 자와 접촉한 자도 물로 몸을 씻고 저녁까지 부정했다. 유출병 규례의 요점은 정결함에 있다. 그것은 죄씻음을 가리켰다. 주께서는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정결케 해주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을 음란과 탐욕 등 죄악된 욕심으로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혹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러워지면 즉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샘에 나아가(슥 13:1) 씻음받아야 한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6장: 속죄일

[1-5절]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 . . .

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레 10장),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죽음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지성소와 속죄소는 지극히 거룩한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이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홀로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성막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구름 가운데서 시시때때로 나타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특별계시의 사건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특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자신을 위해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고 숫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물로 몸을 씻고 거룩한 옷들, 즉 세마포 속옷과 세마포 고의[바지]를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쓰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을 위해 숫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해 숫양 하나를 취하라고 말씀하셨다.

[6-10절]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 . . .

하나님께서는 또 아론이 자신을 위한 속죄제물의 수송아지를 드려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을 위하여 두 염소를 취해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제비뽑되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고 하나는 ‘아사셀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사셀’이라는 원어(아자젤)는 ‘내어놓는 염소’(scapegoat)(KJV, NASB, NIV)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아론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물로 드리고 또 아사셀 즉 ‘내어놓는 염소’로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내어놓는 염소’로 광야로 보내라고 하셨다. 이것은 나병 환자의 정결법 때 산 새 한 마리를 들에 놓았던 것처럼 죄의 완전한 제거를 상징할 것이다.

[11-16절]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 . . .

아론은 먼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죽여야 했다. 그런 후 그는 향로를 취해 여호와 앞 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워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 앞에 두고,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아마 첫 번째로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향을 살라 그 향의 연기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해야 했고 그래야 그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또 그는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다시, 즉 아마 두 번째로 휘장 안 지성소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알 페네 학캅포렛 케드마) 즉 ‘속죄소 위의 앞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리페네 학캅포렛 ) 일곱 번 뿌려야 했다.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것’(14절, 19절)은 완전한 속죄를 상징한다. 또 그는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인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다시, 즉 아마 세 번째로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려야 했다.

이렇게 그는 이 날 지성소에 아마 세 번 들어가 속죄제사를 드림으로써 자신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不淨)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해 지성소를 위해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不淨)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해 그같이 해야 했다.

[17-19절]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 권속과 . . . .

아론이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신과 그 가족들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해 속죄하고 나오기까지 누구든지 회막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아론은 속죄제사를 마친 후 여호와 앞 번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해 속죄하되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번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不淨)에서 단을 성결케 해야 했다.

[20-22절]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 . . .

아론은 지성소와 회막과 번제단을 속죄[정결케]하기를 마친 후에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 것이며 그 사람은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無人之境) 즉 한적한 곳에 이르면 그 염소를 광야에 놓아주어야 했다. 이것은 죄의 완전한 제거를 상징하였다고 본다.

[23-28절]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 . . .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신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신과 백성을 위해 속죄하고 속죄제물의 기름을 제단에 불살라야 했고, 또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 즉 ‘내어놓는 염소를 보낸 자’도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와야 했다. 또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는 그 피를 성소로 들여와 속죄하였으므로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진밖으로 내어다가 불살라야 했고, 불사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와야 했다.

[29-31절]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7월 곧 . . . .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셨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7월 곧 그 달 10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것이 매년 유대 달력으로 7월 10일(오늘날의 9월 말)에 지켜야 할 ‘속죄일’(욤 학키푸림) 규례이다(레 23:26-32).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속죄일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명하셨다. ‘괴롭게 하라’는 원어(테안누)는 ‘자신을 겸손히 낮추라’을 뜻으로서(NASB)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을 의미하였다고 본다(BDB, Amplified Bible). 또 그 날은 ‘큰 안식일’이라고 불렸다. ‘큰 안식일’이라는 원어(솹밧 솹바손)는 ‘휴식의 안식일’(a sabbath of rest)(KJV, NIV), ‘엄숙한 휴식의 안식일’(a sabbath of solemn rest)(NASB)이라는 뜻이다.

[32-34절] 그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아비를 대신하여 . . . .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아버지를 대신하여 대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세마포 성의(聖衣)를 입고 지성소를 위해 속죄하며 회막과 번제단을 위해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해 속죄해야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영원히, 즉 오랫동안 지켜야 할 규례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모든 죄를 위해 1년 1차씩 속죄해야 했다.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1년 1차씩 온 백성의 모든 죄를 위해 속죄했던 이 속죄일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진리를 예표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드려 단번에 많은 사람들, 즉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속죄를 이루셨다. 히브리서는 이것을 ‘단번에’라는 말로 증거하였다(에파팍스 ejfavpax 3번, 하팍스 a{pax 2번)(히 7:27; 9:12, 26, 27; 10:10). 히브리서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메시야의 단번 속죄의 진리는 이미 구약에서도 예언된 바이었다.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異像)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스가랴 3: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의 속죄일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사역을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로 우리는 많은 복을 누린다. 첫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율법을 행함으로 얻을 수 없었던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었다(롬 3:21-24).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린다.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고(히 10:19)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히 4:16) 하나님과 교제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화(聖化)를 이룬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은 그리스도인의 성화(聖化)의 원동력이다.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예수님의 의와 성령 안에서 거룩함을 힘써 이루자.

 

 

17장: 피를 먹지 말 것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나 양이나 염소를 먹으려 할 때 먼저 회막문 여호와 앞에 와서 화목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을 주셨다. 3-4절을 다시 번역하면, “무릇 이스라엘 집의 누구든지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진 안에서 죽이거나 진 밖에서 죽이고,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기 위해 회막문으로 가져오지 않는 자는 피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가나안 정착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소나 양이나 짐승의 고기를 먹고자 하면 어디에서나 죽여 먹을 수 있었다. 신명기 12:15, 2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같이 먹으려니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한 대로 너는 여호와의 주신 우양을 잡아 너의 각 성에서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먹되.” 이 법은 엄격하여 이 법을 어기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되었다.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말은 사형이나 출교를 의미하고, 그것이 시행되지 않는 경우 하나님의 직접적 징벌을 의미한다고 본다.

[5-9절]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희생을 회막문 . . . .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들에서 드렸던 화목제를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여호와께 드려야 하였고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해야 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 귀신들’(세이림)(NASB, BDB)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속적 규례이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시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번제나 다른 제사를 드릴 때 회막문에 가져와 여호와께 드리지 않으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10-13절]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는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본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반복해 기록한다(10, 12, 14절). 또 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피가 생명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11, 14, 14절).

이 명령을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피가 죄를 속한다는 귀한 진리를 밝히 증거하셨다. 11절, “이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알 나프쇼세켐)[너희의 영혼들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이는]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반네페쉬)[생명 때문에](ASV, NASB)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다시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14-16절]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 . . .

하나님께서는 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로서 피가 생명임을 다시 강조하셨다.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어지리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자는 본토인이나 타국인이나 물론하고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 정하려니와 그가 빨지 아니하거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죄를 당하리라.”

우리는 피를 먹지 말라는 법을 포함하여 모든 의식법이 신약시대에는 폐지되었다고 믿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3은 모든 의식법들이 신약 아래서 폐지되었다고 진술하였다.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 중에 이방인 신자들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라는 규례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는 초대교회를 위한 임시적 조치였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장 11절에 증거된 피의 속죄 개념은 우리의 구원에 직접 관계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피의 중요성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실 때부터 암시되었고, 그것은 그 후 아벨이 양의 첫새끼로 드린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을 때도 증거되었다. 인류역사 초기로부터 행해진 번제는 피의 중요성을 암시하였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제사 제도는 피의 중요성을 증거하였다.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번제단에 뿌리고 또 지성소 휘장이나 속죄소에도 일곱 번 뿌려야 했다.

이 속죄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을 예표한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려 죽으셨다. 그의 속죄사역은 피 흘리신 사역이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저녁식사를 하실 때 포도즙 잔을 나누시며,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이루는 속죄의 피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다.

사도 바울은 피의 속죄를 밝히 증거하였다.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유화제물]로 세우셨으니.” 히브리서 9:12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제사이었다. 그는 속죄제물로 죽으셨다. 그를 믿는 우리 모두는 그의 속죄제사로 말미암아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18-19에서,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증거하였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7에서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은 피의 속죄를 증거한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짐승 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보혈을 예표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믿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그를 위해 거룩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자.

 

 

18장: 성 도덕에 관한 법

[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41)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여호와시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하셨다. 영원자존자이신 여호와, 온 세상의 창조자시요 섭리자이신 그가 그들에게 이 법을 주셨다. 그는 참으로 인류에게 의로운 법을 주실 수 있는 자격과 권한이 있으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애굽 땅이나 가나안 땅, 곧 세상 풍속을 따르지 말고 그가 명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법도와 규례를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것이 의(義)이며 그 의가 사람에게 영생이 된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요 의의 결과는 생명이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를 이룰 수 없는 죄인들, 곧 뿌리깊은 죄성(罪性)을 가진 죄인들이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대속제물이 되셨고 또 우리의 완전한 의가 되셨다(롬 10:4; 고전 1:30).

[6-8절] 너희는 골육지친을 가까이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 . . .

본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풍속과 규례의 한 두드러진 특징은 성적인 부패 곧 음란이다. 본장은 음란을 경계하라고 말씀한다. 특히 본장의 많은 부분은 근친상간을 경계하고 금한다. 그것은 물론 근친결혼도 금한 법이라고 본다(Calvin, Poole).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골육지친을 가까이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고 명하셨다. ‘하체를 범한다’는 원어(레갈로스 에르와)는 ‘벌거벗음을 드러낸다’(KJV, NASB), ‘동침한다’(BDB), ‘성 관계를 갖는다’(NIV)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골육지친과 동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근친상간과 근친결혼을 경계하시고 금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네 어미의 하체는 곧 네 아비의 하체니 너는 범치 말라. 그는 네 어미인즉 너는 그의 하체를 범치 말지니라. 너는 계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이는 네 아비의 하체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어머니나 계모의 하체를 범해서는 안 된다.

[9-11절] 너는 네 자매 곧 네 아비의 딸이나 네 어미의 딸이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네 자매 곧 네 아비의 딸이나 네 어미의 딸이나 집에서나 타처에서 출생하였음을 물론하고 그들의 하체를 범치 말지니라. 너는 손녀나 외손녀의 하체를 범치 말라. 이는 너의 하체니라. 네 계모가 네 아비에게 낳은 딸은 네 누이니 너는 그 하체를 범치 말지니라”고 명하셨다. 사람은 자기의 누나나 여동생의 하체를 범해서는 안 되며, 또 손녀나 외손녀의 하체를 범해서도 안 된다. 또 그는 계모가 낳은 딸의 하체를 범해서도 안 된다.

[12-14절] 너는 고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그는 네 아비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고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그는 네 아비의 골육지친이니라. 너는 이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그는 네 어미의 골육지친이니라. 너는 네 아비 형제의 아내를 가까이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 그는 네 백숙모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법은 구체적이다. 사람은 고모의 하체를 범해서는 안 되며, 또 이모의 하체를 범해서도 안 된다. 또 그는 백모나 숙모의 하체를 범해서도 안 된다.

[15-18절] 너는 자부의 하체를 범치 말라. 그는 네 아들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자부의 하체를 범치 말라. 그는 네 아들의 아내니 그 하체를 범치 말지니라. 너는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치 말라. 이는 네 형제의 하체니라”고 명하셨다. 사람은 며느리의 하체를 범해서는 안 되며, 형수나 제수의 하체를 범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여인과 그 여인의 딸의 하체를 함께 범치 말며 또 그 여인의 손녀나 외손녀를 함께 취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 그들은 그의 골육지친이니 이는 악행이니라. 너는 아내가 생존할 동안에 그 형제를 취하여 하체를 범하여 그로 투기케 하지 말지니라”고 명하셨다. 사람이 여인과 그의 딸을 함께 취하든지, 여인과 그의 손녀나 외손녀를 함께 취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것은 ‘악행’이라고 표현된다. ‘악행’이라는 원어(짐마)는 ‘음란한 악’(BDB), ‘악한 일’(KJV, NIV), ‘음탕함’(NASB)이라는 뜻이다.

[19-21절] 너는 여인이 경도로 불결할 동안에 그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여인이 경도[생리]로 불결할 동안에 그에게 가까이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지니라. 너는 타인의 아내와 통간하여 그로 인하여 네 자신을 더럽히지 말지니라”고 명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케 말아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불로 통과케 한다’는 것은 ‘불로 태워 제물로 드린다’는 뜻이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우상숭배의 극치이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이신데, 몰렉신을 열렬히 섬긴다면 그것은 영적 간음 행위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큰 죄악이다.

[22-23절]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가 된 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 동성과의 교합과 짐승과의 교합은 음란의 극치이다. 모든 음란이 다 가증한 악이지만, 동성애는 ‘가증한 일’ (토에바)이라고 표현되었고, 또 짐승과의 교합 혹은 교접은 ‘문란한 일’이라고 표현되었다. ‘문란한 일’이라는 원어(테벨)는 ‘(본성과 하나님의 질서를 어긴) 문란(confusion)’(BDB, KJV), ‘성적 도착(倒着, 정로에서 벗어남)’(perversion)(NASB, NIV), 혹은 ‘가증한 것들’(KB)이라는 뜻이다.

[24-25절]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죄는 불결한 것, 더러운 것이며 우리의 인격을 더럽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모든 음란한 행위들로부터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쫓아내실 가나안 족속들은 이 모든 일로 인해 더러워졌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더러운 죄악 때문에 그들을 벌하시며, 또 그 땅도 그 거민들을 토하여 낸다고 말씀하셨다.

[26-28절]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시 너희 중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도 행하지 말라. 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만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모든 가증한 행위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강조하셨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 땅이 그 거민들을 토함같이 그들을 토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29-30절] 무릇 이 가증한 일을 하나라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 . . .

하나님께서는 또, “무릇 이 가증한 일을 하나라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을 지키고 너희 있기 전에 행하던 가증한 풍속을 하나라도 좇음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의 풍속을 본받지 말자.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우리는 세상의 풍속, 유행, 음악, 복장 등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세상이며 우리는 세상을 회개시키고 구원시켜야 할 전도자들이다.

둘째로, 우리는 특히 음란하지 말고 음행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자. 인간의 죄, 특히 음행의 죄는 우리의 인격을 더럽힌다. 성경은 성 도덕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성적 탈선을 멀리해야 한다. 또 음행의 방지를 위해 우리는 부부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잠언 5:18,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고린도전서 7:2-3,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셋째로, 우리는 인간의 죄, 특히 음란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거민들의 음행의 죄악을 벌하셨다. 신약성경은 간음하는 자, 음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며(고전 6:9-10)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라고 경고하였다(계 21:8). 우리는 하나님의 형벌을 두려워하고 모든 죄를 다 버리고 멀리하자.

 

 

19장: 여러 가지 법들

1-12절, 십계명 순종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가 모든 죄와 불결로부터 떠나 계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 곧 공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에게는 불의와 악과 거짓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우상을 숭배치 말아야 하고 안식일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아야 하고 거짓증거하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정직함과 선함과 사랑과 진실함으로 행하며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3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 . .

하나님께서는 특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의 정신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하셨다(출 20:12). 사람은 그의 부모를 공경하고 높이고 경외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성경은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말하고(잠 23:22), 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한다(엡 6:1-3). 성경은 실상 우리가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 상대를 서로 먼저 존경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벧전 2:17; 롬 12:10).

하나님께서는 또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원문에는 “나의 안식일들을 지키라”고 되어 있다. ‘안식일들’이라는 말은 주간 안식일 외에 구약 율법에 규정된 여러 안식일들을 가리킨다.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8-29장을 보면, 주간 안식일 곧 제7일 안식일 외에, 연중에 일곱 안식일이 있다. 그것은 무교절의 첫날과 일곱째 날, 맥추절, 나팔절(7월 1일), 속죄일(7월 10일), 초막절의 첫째 날과 여덟째 날 등 일곱이다. 안식년과 희년을 포함하면, 구약의 율법에는 모두 열 개의 안식의 날 혹은 해가 있다. 주간 안식일과 연중 안식일들은 ‘성회’로 모이며 아무 일도 노동도 하지 말아야 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언약의 표이며 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했고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다(출 31:13-17). 에스겔 20장에 보면, 선지자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죄들을 열거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을 반복해서 강조하였다(겔 20:13, 16, 21, 24). 안식일은 세상의 일들, 곧 직업상의 일들이나 육신적 오락들을 중단하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공적 집회로 모이는 날이다.

[4절]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헛것’이라는 원어(엘릴림)는 ‘우상들’을 가리킨다. 우상들을 위하지 말고 신상들을 부어만들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의 제2계명에 명령된 바이다.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처럼 위하는 것,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 혹은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다 우상이며, 그것을 위하는 자들이 다 우상숭배자들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우상을 섬기는 자는 명백히 구분된다.

오늘날에는 돈이나 육신의 쾌락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이 많고 교인들 중에도 있는 것 같다. 교회생활에서 자기 절제가 도무지 없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흥미를 위해 교회에 드나드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예배에나 성경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인내심이 없고 자기 절제심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 경외함이 없고 육신적 재미와 흥미만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부모 공경이나 부모 교훈을 귀찮게 생각하고 자신의 재미만 구하는 철없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자.

[5-8절]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열납되도록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 열납되도록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화목제물은 감사와 서원과 자원의 뜻으로 드리는 제물이었다. 레위기 7장에 보면, 그 제물은 규례대로 드려져야 했다. 감사의 화목제물은 드린 그 날에 먹어야 했고 그 이튿날에 먹어서는 안 되었다. 서원이나 자원의 화목제물은 이튿날에 먹을 수 있었으나 제3일에는 먹지 말고 불태워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제3일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제3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열납되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 더럽힘을 인하여 죄를 당하리니 그가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9-10절]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법은 레위기 23:22에도 나온다. 또 신명기 24:19-22에도,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말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신다. 그것이 선(善)이며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러한 선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교훈하였다(딤전 6:17-18).

[11절]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제8계명에 해당한다. 성경은 우리가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해야 함을 명하고 남의 것에 손을 대는 것을 도적질로 간주한다. 부모의 것과 자식의 것도 구분되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도 구분된다. 그 구분선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임의로 넘는 것이 도적질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제9계명 즉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에 해당한다. 우리는 남을 속이지 말고 서로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고 교훈한다(엡 4:25; 골 3:9).

거짓말하는 자는 지옥에 던지울 것이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1:8은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고, 요한계시록 22:15는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새 예루살렘성=천국] 밖에 있으리라”고 말한다.

[12절]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헛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십계명의 제3계명에 해당한다(출 20:7).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운 마음으로, 진실되이, 진지하게 사용해야 한다. 엄숙한 맹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이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큰 죄악이다.

1절부터 12절까지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오며(3, 4, 10절),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한번(2절), 또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한번 나온다(12절).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참 하나님 곧 창조자와 섭리자이심과, 그가 모든 율법을 명하신 명령권자이심과, 또 자기 백성의 보호자시요 관리자이심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우리의 섭리자시요 보호자시요 관리자이신 하나님 때문에 인간적, 세상적 염려와 걱정을 버릴 수 있고 참된 평안을 누린다.

레위기 19:1-12의 본문에는 여러 가지 교훈이 나와 있다. 본문에 기록된 순서대로 보면, 먼저 우리는 모든 죄악과 불결을 버리고 거룩하자.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우리도 모든 말과 행실에 있어서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되어야 한다(벧전 1:15-16).

우리는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자. 이 날 세상의 일들을 쉬고 오락을 금하며 오전에도, 오후에도 공예배로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배워야 한다.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주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히 10:25).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경외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의 교훈이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도 잘되고 복을 받는 길이다.

우리는 돈과 육신적 쾌락을 포함하여 우상을 섬기지 말자. 말세의 풍조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지만(딤후 3:1-5), 우리는 그런 풍조를 배격하고 그런 자들에게서 돌아서고 자기를 부정하고 절제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인내함으로써 선한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자. 성경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한다(잠 14:31).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자. 우리는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해야 하고 남의 것을 취하는 자가 되지 말고 도리어 가난한 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해야 한다(엡 4:28).

우리는 서로 거짓말하지 말자. 우리는 서로 지체가 된 것을 깨닫고 모든 거짓을 버리고 서로 참된 것을 말해야 한다(엡 4:25).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운 마음으로 진실하게 사용하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모든 계명들에 순종해야 한다.

 

13-18절, 공의와 사랑

[13절]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압제하다’는 원어(아솨크 ק)는 ‘압제하다, 학대하다, 강탈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폭력으로 남을 위협하거나 구타하거나 해치고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는 그런 나쁜 사람들이 있지만 이스라엘 사회 안에는 그런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우리는 폭력으로 남을 해치거나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늑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늑탈하다’는 말은 강도짓하는 것, 곧 강제로 빼앗는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은 앞의 명령 속에 내포된 바이기도 하다. 강도짓은 도적질보다 더 나쁜 것이다. 밥 한 끼라도 부담을 주어 얻어먹는 것은 좋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품꾼은 누구에게 고용된 일반 노동자를 가리킨다. 옛시대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어떤 직장에 고용되어 매월 월급을 받는 자들이 많다. 하나님의 명령은, 매일이든지 매월이든지 주인이 일꾼들의 품삯을 미루지 말고 제 때에 주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그들의 생활비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2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신 24:14-15). 우리가 누구에게 일을 시키면, 그 값은 정중히 그 날 혹은 그 시간에 지불해야 하고 고의적으로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14절]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듣지 못하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고 보지 못하는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악한 일이다. 비록 귀먹은 자는 그의 저주를 듣지 못하고 소경은 그가 장애물 놓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들으시고 보시며 판단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귀먹은 자나 소경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눈앞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을 첨가하신 것은 바로 이런 뜻에서 하신 것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그런 악한 일을 행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본절과 16절과 18절에,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모든 명령의 근거와 권위를 증거한다. 이 명령들은 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명령이라는 뜻이다. 영원자존자 여호와 하나님,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홀로 섭리하시는 살아계신 주 하나님께서 이 모든 명령들을 내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명령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것들을 성심으로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15절]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라”고 말씀하셨다. 재판은 사람들 상호간 생긴 문제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재판은 하나님의 행위를 본받는 일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재판장이시다. 그러므로 재판에 불의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3:3에서,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고 명하셨다. 모세도 천부장과 백부장 등을 세우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 것이라”고 하였다(신 1:17). 우리는 재판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일에서도 공정하게, 공평하게, 공의로 판단해야 하고, 어떤 일에서 무조건 가족이나 친구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16절]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원문은, “너는 네 백성 중에 남을 중상하는 자로 다니지 말라.” ‘남을 논단하지 말라’는 원어(라킬)는 ‘남을 중상(中傷)하는 자, 즉 거짓 소문으로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남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3장에서,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라”고 명하셨다(출 23:1). 거짓 소문으로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것은 참으로 나쁜 일이다.

세상에는 이런 나쁜 사람들이 많고 이스라엘 사회에도 그런 악한 자들이 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니며 비방하는” 자들에 대해 지적하였다(렘 6:28; 9:4). 에스겔도 22:9에서 그런 자를 언급하였다. 한글성경에는 ‘이간을 붙이는 자’라고 번역되었으나 같은 단어이다.

시편이나 잠언도 이런 자를 정죄한다. 시편 15:3은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자는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는” 자라고 말하였다. 또 시편 101:5는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했다. 잠언 11:13은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고 말하며, 잠언 20:19도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말하는데,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라는 원어가 바로 같은 단어이며, 그것은 남을 비난하고 헐뜯으며 돌아다니는 자를 가리킨다.

신약성경도 이 점에 대해 말씀하였다. 주 예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다(마 7:1-3).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에서, 장로와 집사의 아내들의 자격에 대해 말하면서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고 했다(딤전 3:11). 참소하는 것이 거짓말로 남을 헐뜯는 것을 말한다. 그는 또 에베소서에서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한다(엡 4:31). 또 사도 베드로도,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한다(벧전 2:1). 성도는 훼방하는 일, 곧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일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웃이 잘못을 하면 그를 책망할 수 있지만, 그를 죽음에 내몰 정도로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녀를 책망하는 것은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잘못을 깨우치고 고쳐 좋은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듯이, 성도의 책망은 상대방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깨우치고 고치려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책망은 이 정도의 선까지이며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이다.

[17절]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責善)하라.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미움은 살인의 시작이다. 살인은 미움에서부터 시작된다. 미움은 실상 마음의 살인이다. 남을 미워하는 자는 이미 마음으로 그를 죽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하였다(요일 3:15). 우리가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이웃에 대한 미움부터 없애야 한다. 미움은 상대에 대한 독한 비난을 만들고 기회가 되면 그를 죽이게까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責善)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웃이 잘못을 행할 때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권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 이웃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뜻이다. 참된 사랑은 이웃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27:5-6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신약성경도,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勸戒)하라”고 말하며(살전 5:14), 또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말하였다(히 3:12-13).

[18절]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에 대해 공의로 보복하실 것이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므로 잠언 20:22는,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말한다.

주 예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교훈하셨다(마 5:39, 44). 사도 바울도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교훈하였다(롬 12:17, 19-20).

하나님께서는 또 “동포를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일을 하다가 잘 안 되면, 우리는 남을 원망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남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그 현실을 달게 받고 잘 대처하고 이겨나가야 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교훈하였고(빌 2:14), 또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교훈하였다(약 5:9).

하나님께서는 또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은, 주께서 하나님의 계명들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두 개 중 두 번째의 계명이다. 마태복음 22:35-40,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의 완성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0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13-18절까지의 본문은 여러 가지 법들을 말한다. 이 법들은 다 여호와 하나님, 곧 온 세상의 창조자시요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법들이며 모든 인생이 유념하고 지켜야 할 생활 법칙이다.

첫째로, 우리는 이웃을 폭력으로 위협하거나 구타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힘을 그렇게 남용하는 자는 능력의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의 소유물을 강제로 빼앗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도적질보다 더 나쁜 악한 일이다. 그렇게 얻은 이익은 결코 자신에게 복이 되지 못한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일을 맡긴 자에게 그 삯을 뒤로 미루지 말고 약속대로 정한 때에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사람이 자기가 일하고 받을 삯을 간절히 기다림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이웃이 못 보고 못 듣는다고 그를 저주하거나 해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보시고 다 들으시고 공의로 보응하실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모든 일을 공의로 판단하고 처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을 미워하시고 모든 일을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여섯째로, 우리는 남을 거짓되이 헐뜯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나쁜 사람이다.

일곱째로, 우리는 이웃을 죽을 지경에 이르도록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책망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지 죽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여덟째로, 우리는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그를 죽인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아홉째로,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보면 지적하고 책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다. 열째로, 우리는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한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우리는 오직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열한째로, 우리는 이웃을 원망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자신의 부족을 반성하며 어려운 현실을 담대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 열두째로, 우리는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여기에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19-28절, 순수한 종교

[19절]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 . . .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규례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본문의 교훈이 하나님의 규례, 곧 하나님께서 주시고 정하시고 세우신 규례들임을 강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첫째로,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가축의 이종교합(異種交合)을 금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수나귀와 암말의 교합으로 노새를 낳게 하는, 사람들의 오래된 관습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혼잡케 하는 일이다. 수노새가 생식력이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혼잡을 인정치 않으신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밭에 씨를 뿌릴 때, 벼와 보리, 밀과 수수를 섞어 뿌리는 것을 금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식물들도 각각의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각각의 종류대로 재배되고 추수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두 재료로 직조(織造)한 옷을 입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아마포(리넨)와 양모, 혹은 면사와 명주실로 섞어 만든 옷 같은 것을 입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에는 섞어 짠 천으로 만든 혼방 옷이 많은데,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이런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셨다.

위의 세 가지 규례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혼잡케 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 이 규례들은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들과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상들을 혼합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영적인 교훈을 준다고 본다.

[20-22절] 무릇 아직 속량도 되지 못하고 해방도 되지 못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여종과의 행음의 죄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한 여종이 어떤 사람과 약혼하였으나 아직 속량되거나 자유롭게 되지 못한 상태에서 주인이 그와 행음하면, 그들이 벌을 받을 것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 여종이 아직 자유케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규정이다. 그러나 그 주인은 숫양을 속건제물로 삼고 그것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와야 하며 제사장은 그의 범한 죄를 위해 그 속건제의 숫양을 드려 여호와 앞에 속죄해야 하고 그리하면 그의 범한 죄가 사함을 얻을 수 있었다.

[23-25절]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 . . .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에 과일나무를 심는 규례에 대해,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일나무를 심거든 그 과일은 아직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3년 동안 그것을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제4년에는 그 모든 과일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제5년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즉시 거기에서 난 곡물(穀物)은 먹을 수 있었다. 여호수아 5:10-11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길갈에 진 쳤고 1월 14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는데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 즉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과일나무를 심을 때에는 3년 동안 할례받지 못한 나무로 간주하여 그 과일을 먹지 말고 제4년에는 그 과일을 하나님께 거룩히 드리고 제5년부터 그 과일을 먹으라고 규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가나안 땅으로부터의 성별을 교훈한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거기에 사는 거민들과 모든 가축들을 다 죽이게 명하셨다. 그런 정신에서 보면, 그들이 가나안 땅의 나무들의 과일들도 다 버려야 마땅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3년의 기간을 주셨던 것이다. 이 규례는 가나안 땅의 과일나무들이 성별되어야 함을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의 거민들과 구별된 거룩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다.

[26절]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 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 채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레위기 17:12, 14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노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끊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복술을 하다’는 원어(나카쉬)는 ‘점을 치다’는 뜻이고, ‘술수를 하다’는 원어(아난)는 ‘예언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점을 치거나 무당의 예언을 듣는 신비적 행위를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이다. 이것은 신약시대에도 적용되는 교훈이다.

[27-28절]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치 . . . .

하나님께서 또 “[너희는]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치 말며 죽은 자를 위하여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신다. 머리 가를 둥글게 깎는 것이나 수염 끝을 손상시키는 것은 그 당시 이방인들의 풍습이었고 죽은 자를 위해 살을 베거나 몸에 무늬를 놓은 것, 즉 문신(文身)을 새기는 것도 그 당시 이방인들의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행위와 풍습이었다고 한다(R. K. Harrison).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의 그런 풍습들을 본받지 말기를 원하셨다.

19절부터 28절까지의 본문은 특별히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진리의 혼잡을 조심하자. 하나님께서는 다른 종류의 가축들 간의 교합이나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는 것을 금하셨고 또 두 재료로 직조한 옷도 입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질서를 혼잡케 말라는 뜻을 가지는 동시에, 참된 종교를 이방종교와 혼잡시키지 말라는 뜻도 있어 보인다. 우리는 기독교와 이방종교를 혼합시키지 말아야 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보수하며, 이단들과 이설들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거짓된 신비주의를 조심하자.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점을 치거나 무당의 예언을 듣는 거짓된 신비적 행위를 금하신다. 신약성경도 우리가 거짓된 신비주의를 경계할 것을 교훈한다(마 24:24; 계 13:13, 15; 살후 2:9-12). 우리는 오늘날 교회들이 초자연적 은사를 추구하고 방언과 예언과 병고침을 강조하며 기적을 행한다고 선전하는 자들(은사주의자들, 신사도운동가들 등)의 말들과 행위들을 매우 경계해야 하고, 오직 성경의 바른 교훈 안에 거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방 문화를 조심하자. 하나님께서는 머리 가를 둥글게 깎는 것이든지 수염 끝을 손상시키는 것이든지 죽은 자를 위해 살을 베거나 문신을 새기는 것을 금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과 구별되기를 원하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문화를 조심해야 한다. 세상 사람은 앞이 많이 파진 옷을 입고 매우 짧은 치마를 입지만, 성도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또 노래와 춤에 있어서, 세상의 풍조는 시끄럽고 광란적이고 음란성이 있지만, 성도는 그런 풍조를 배격해야 하고, 경건하고 단정하고 성결해야 한다.

 

29-37절,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라

레위기 19장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내용이다. 본장에는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여덟 번(12, 14, 16, 18, 28, 30, 32, 37절),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일곱 번(3, 4, 10, 25, 31, 34, 36절) 나온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그의 자녀라면,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생활규범으로 삼고 그 교훈을 실천해야 한다.

[29절] 네 딸을 더럽혀 기생이 되게 말라. 음풍이 전국에 퍼져 . . . .

하나님께서는 “네 딸을 더럽혀 기생이 되게 말라. 음풍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번역하면, “네 딸을 더럽혀 (혹은 범하여) 그로 음행을 하게 하지 말며, 온 땅이 음행하며 온 땅이 죄악이 가득하지 않게 하라.”

이것은 우선 가정에서의 성결함을 명하신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의 순결성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계명 준수는 가정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 또 부모는 자녀들로 하여금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엄하게 교훈하고 지도해야 한다. 자녀들이 부모의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부모는 그들을 엄하게 징벌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殿)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교훈한다(고전 6:18- 20). 또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라”고 교훈한다(살전 4:3-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회의 도덕성을 염려하신 것은 신약교회의 도덕성을 염려하신 것이다. 세상은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교회만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교회 안에는, 성도들의 삶에는 음란 풍조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 또 나아가서, 성도들은 사회의 도덕성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주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4).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면, 이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30절]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내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의 안식일은 우리의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다. 모든 날이 하나님의 날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날을 하나님의 날로 구별하여 안식과 예배의 날로 지키게 하셨다. 그 날은 온종일, 또 온 식구가, 철저하게 지켜야 하였다. 또 그 날을 범하는 자는 죽임을 당해야 하였다.

출애굽기 31:14-15에는,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聖日)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7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 성소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다. 제사로 하나님을 섬기는 처소인 성막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장소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성소를 공경해야 하였다. 성막은 후에 성전이 되었고 오늘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귀히 여기고 교회가 모이는 장소인 예배당도 귀히 여겨야 한다.

신약 성도는 열심히 교회에 모여야 한다. 히브리서 10:25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한다. 또 성도는 교회를 욕하거나 더럽혀서는 안 된다. 고린도전서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31절]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26절에서도, 그는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거짓된 신비주의를 경계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다(마 7:15-16, 22- 23). 우리는 거짓된 신비주의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32절]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셨다.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교훈을,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교훈과 함께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노인 공경의 교훈도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는 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내포된 바이다. 우리는 집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교회나 사회에서는 노인들을 공경해야 한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라”(잠 20:29)고 말씀한 대로, 노인들은 흰머리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인생의 아름다움인 줄 알아야 하고, 젊은이들은 머리가 희어진 노인들을 더욱 공경하고 사랑해야 하겠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뜻이다. 잠언 15: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잠언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또 에베소서 6장에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한다(엡 6:1-4).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부모를 공경하고, 또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로 양육해야 한다.

[33-34절]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우리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학대하지 말고 우리 동족같이 사랑하고 배려하라는 명령이다.

신약성경도 우리에게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말한다. 주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나그네된 형제를 돌보지 않은 것이 주님을 돌보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35-36, 40). 감독의 자격요건들 중 하나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다(딤전 3:2; 딛 1:8). 히브리서 13:1-2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찾아온 신입교인부터 따뜻하게 영접하자.

[35-36절]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재판을 할 때나, 장사를 할 때나 공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해야 할 것을 명하신 것이다.

이미 15절에서도,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재판은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는 또 더러운 이, 즉 불의하고 부정당한 이익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사업하는 자, 장사하는 자는 정직하고 진실하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자신에게 복이 된다.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장로와 집사의 자격요건들 중의 하나로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것’을 꼽았다(딤전 3:2; 딛 1:8). 또 그는 종들에게 주인의 소유를 “떼어 먹지 말라”고 교훈하였다(딛 2:10).

[37절]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가 성경말씀이다.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義)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15는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말한다.

29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일을 지키고 교회를 귀히 여기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인생에게 가장 중요하고 복된 일이다. 우리는 주일에 온 식구가 교회에 나와 그 날을 온종일 거룩히 지키도록 기도하고 노력하자. 우리는 교회를 귀히 여기며 사랑하자.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자기와 자기 자녀들에게 복이 된다.

둘째로, 우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따르지 말자. 우리는 오늘날 교회들 안에 유행하는 혼란하고 거짓된 신비주의와 은사주의를 조심하고, 오직 성경 교훈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노인들을 공경하자. 우리는 가정에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며 그들을 기쁘시게 해야 하고, 교회와 사회에서는 나이든 어른들을 공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외국인들을 학대하지 말고 또 신입교인들을 사랑으로 영접하자. 우리는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들에서 온 노동자들이나 결혼한 자들을 학대하지 말고 사랑하고 배려하고 도와주어야 하며, 또 교회의 신입교인들을 사랑으로 영접해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음란한 행실과 풍조를 조심하자.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거룩을 실천하고, 우리 자녀들을 음란한 세상과 구별되게 단정하고 순결하게 키워야 하며, 또 우리 교회를 거룩한 교회로 세워야 한다.

여섯째로, 우리는 재판이나 상거래에서 공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하자. 우리는 모든 일을 공정하게 판단해야 하고, 상업 활동에서 결코 불의하고 더러운 이익을 취하지 말고 공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일곱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교훈을 행하자. 신구약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법칙이며, 거기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들에 따라 죄를 회개해야 하고, 성경의 모든 교훈을 순종해야 하며,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야 하고 사랑과 선을 실천해야 하고, 또 진실해야 한다.

 

 

20장: 율법을 어긴 벌

레위기 20장은 율법을 어긴 벌에 대해 자세히 증거한다.

[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라고 명하셨다.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자식을 불태워 몰렉에게 제물로 드리는 사람은 사형을 시켜야 했다.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경내에서 그런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그런 자도 사형을 시켜야 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이스라엘 사회가 그 악한 일을 권징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재앙으로 그런 자들을 죽이실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6-7절]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거짓된 신비주의를 따르는 자들은 사형시켜야 하였다. 거짓된 신비주의는 영적 간음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음란하듯’이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영적으로 말해, 사람의 남편과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따라야 한다.

[8-9절]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1:17에서도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명하셨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시켜야 하였다. 신명기 27:16은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말하였다.

[10-13절]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여러 가지 간음과 음행 죄에 대한 벌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는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인간 사회에서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매우 중요한 인간 관계의 시작이다. 사람이 결혼 관계를 무시하고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은 사형을 당할 큰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그 계모, 즉 그의 새 어머니와 간음하는 것은 매우 부도덕한 일이며 사형을 당할 큰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누구든지 그 자부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가증한 일’이라는 원어(테벨)는 ‘문란한 일’(BDB)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그의 며느리와 간음하면 그것은 문란한 일이며 그 두 사람은 죽임을 당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토에바)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동성애(同性愛)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이며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악이다.

[14-17절] 누구든지 아내와 그 장모를 아울러 취하면 악행인즉 . . . .

하나님께서는 또, “누구든지 아내와 그 장모를 아울러 취하면 악행(짐마)인즉 그와 그들을 함께 불사를지니 이는 너희 중에 악행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와 그 아내와 그 장모를 ‘함께 불사르라’는 말씀은 그들의 죄가 심히 큼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또, “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여자가 짐승에게 가까이 하여 교합하거든 너는 여자와 짐승을 죽이되 이들을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짐승과 교합하는 것도 큰 죄로 간주되었고, 그 사람도, 그 짐승도 죽임을 당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누구든지 그 자매 곧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을 취하여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지니 그가 그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 죄를 당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끊어진다’는 말은 사형이나 출교를 의미한다고 본다.

[18-21절] 누구든지 경도하는 여인과 동침하여 그의 하체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누구든지 경도[월경]하는 여인과 동침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면, 남자는 그 여인의 근원을 드러내었고 여인은 자기의 피 근원을 드러내었음인즉 둘 다 백성 중에서 끊쳐[끊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월경하는 여인을 범하는 것도 사형죄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의 이모나 고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 이는 골육지친의 하체인즉 그들이 그 죄를 당하리라. 누구든지 백숙모와 동침하면 그 백숙부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이 그 죄를 당하여 무자(無子)히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무자(無子)히 죽는다’는 말은 자녀 출산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어떤 주석가들은 본문이 사형을 의미하지 않고 그들이 결혼해도 자녀 출산의 복을 얻지 못하거나 자녀를 낳아도 그 자녀가 호적에 등재될 합법적 자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자녀를 출산치 못하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본장 전체의 문맥과 내용상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또, “누구든지 그 형제의 아내를 취하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이 무자(無子)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그 형제의 아내를 취하는 악한 경우도, 그들이 자녀를 출산치 못하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22-24절]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앞에 언급된 여러 가지 간음과 음행의 죄악들은 그 당시에 가나안 땅에 유행하던 풍속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로 말씀하셨다. 우리가 가나안 땅의 심히 죄악됨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가나안 땅을 무자비하게 징벌하시고 그 거민들을 다 죽이기를 원하셨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미워하신다. 그는 특히 모든 우상숭배의 죄들과 모든 음란한 죄들을 미워하신다. 그것들은 사람들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죄악들이다.

[25-26절] 너희는 짐승의 정하고 부정함과 새의 정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짐승의 정하고 부정함과 새의 정하고 부정함을 구별하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부정한 것으로 구별한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는 곤충으로 인하여 너희 몸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27절]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거짓된 신비주의를 추종해서도 안 되지만(6절), 우리 자신이 신접한 자나 무당이나 박수가 되어서도 안 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우상숭배치 말고 거짓된 신비주의에 빠지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본장은 간음과 음행에 대해 자세히 경계한다. 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것이지만, 성의 잘못된 사용은 죄악이다. 성은 부부관계에서만 사용해야 한다(잠 5:18- 19). 부부관계를 벗어난 모든 성행위는 다 죄악이다. 온갖 근친상간의 행위가 그렇고 심지어 동성간이나 짐승과의 교합도 그렇다. 우리는 십계명에 명하신 하나님의 법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율법을 어긴 벌이 죽음인 것을 인식해야 한다. 본문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는 말씀이 여덟 번(2, 9, 10, 11, 12, 13, 15, 16절),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혹은 “끊어지리라”는 말씀이 다섯 번(3, 5, 6, 17, 18절), “불사를지니라”는 말씀이 한 번(14절), “무자(無子)하리라”는 말씀이 두 번 나온다(20, 21절). 또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이 다섯 번(9, 11, 12, 13, 16절), “그들이 그 죄를 당하리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온다(17,19, 20절). 율법을 어긴 죄의 벌은 죽음이며 그것이 죄인이 받아야 할 정당한 죗값이다. 우리는 특히 간음의 죄성과 그 벌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가정적, 사회적 폐해를 낳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온다. 모든 사람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義)만 의지해야 한다. “우리의 의는 예수의 피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후 범하는 죄도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다윗이 간음죄를 범한 후 당한 혹독한 시련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거룩한 삶을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본장에서 죄의 벌을 선언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음란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거룩과 순종의 삶을 원하신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힘써야 한다. 우리는 음란한 영상물을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 읽고 기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남는 힘과 시간을 운동과 선한 봉사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 대해, 또 남녀교제에 대해, 예컨대, 단 둘이 방에 있지 말라든가 신체접촉을 피하라는 등 구체적으로 엄히 교훈하고 훈련시켜야 하고, 또 컴퓨터를 공개적인 곳에 두고 부모가 없는 시간에 사용하는 것을 제한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사회의 도덕적 개선과 음란 풍조 방지를 위해 지도자들에게 조언을 주고 그들을 격려하고 또 위하여 기도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21장: 제사장에 대한 법

[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 . . .

레위기 21장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신 제사장들에 대한 몇 가지 규정들이다. 여호와께서는 제사장들에게 먼저, “백성 중의 죽은 자로 인해 스스로 더럽히지 말려니와 골육지친인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결혼하지 아니한 처녀인 친자매로 인하여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고 하셨다. 제사장들은 성막 제사의 거룩한 직무를 맡은 자들이므로 백성들 중의 죽은 자로 인해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였고, 단지,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결혼하지 않은 친자매의 장례를 치르는 일은 허용되었다.

[4-6절]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42)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그 수염 양편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그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火祭) 곧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제사장은 제사를 집례하는 자이므로 거룩해야 하였다. 그는 머리털을 대머리같이 깎는다든지 수염 양편을 깎는다든지 살을 베는 등(레 20:27-28)의 이방 풍습을 본받아서는 안 되었다.

[7-8절] 그들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 것이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들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 것이며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그는 네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나 여호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자는 거룩함이니라.” 제사장은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여인을 아내로 취하지 말아야 하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로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하였고 거룩함에 흠이 되는 일을 피해야 하였다. 8절에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는 구절은 “그는 너에게 거룩하리라”고 고쳐 번역해야 할 것이다(MT, KJV, NASB).

이와 같이, 본장은 제사장들이 거룩해야 함을 강조한다. 본문은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고 반복하여 말한다. 6절, “[제사장들은] 그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6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火祭) 곧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7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 8절,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8절,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그는 너에게 거룩하리라].”

[9절]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 . . .

하나님께서는 또,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제사장들인 남자들뿐 아니라, 그 가정의 딸들도 단정해야 하였다. 만일 그들 중 누가 음행하면 그는 그 아버지 제사장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그는 엄한 징벌, 즉 화형(火刑)의 징벌을 받아야 하였다. 제사장의 가정은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하였다.

[10-12절] 자기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자기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말지니 부모로 인하여도 더러워지게 말며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아론의 아들 제사장들 중에서 관유로 기름부음을 받아 아론을 이어서 대제사장이 되는 자는 어떤 경우에도 성소에서 나오지 말아야 하였다. 그는 심지어 부모로 인하여도 성소에서 나와서 머리를 풀고 옷을 찢고 슬퍼하거나 죽은 자의 시체에 가까이 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 등,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대한 직무가 그에게 있기 때문이었다(레 16:3-4, 6, 11, 21, 23, 32).

[13-15절]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지니 과부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지니 과부나 이혼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지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대제사장의 경우는, 결혼 상대에 대해 일반 제사장들의 경우보다(7절), ‘처녀를 취하고 과부와 결혼하지 말라’는 한가지 요건이 더 첨가되었다. 일반 제사장은 제사장의 과부와는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에스겔 44:22에는, “[아무 제사장이든지]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다른 지파도 가능함]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것이며”라고 말하였다.

[16-2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에게 . . . .

여호와께서는 또 제사장들 중에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드리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제한하셨다. 그는 말씀하셨다.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 무릇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못할지니, 곧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곱사등이나 난장이[난쟁이]나 눈에 백막(白膜)이 있는 자나 괴혈병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불알 상한 자나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아와 여호와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아와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의 제사 사역을 금지한 육체적 결함이란, 소경, 절뚝발이, 코가 불완전한 자, 지체가 더한 자, 발 부러진 자, 손 부러진 자, 곱사등, 난쟁이, 눈에 백막(白膜)이 있는 자, 괴혈병, 버짐이 있는 자, 불알 상한 자 등이다. ‘눈에 백막(白膜)이 있는 자’라는 원어(테발룰)는 ‘시력의 결함이 있는 자’(BDB) 혹은 ‘안구에 흰점이 있는 자’(KB)라는 뜻이라고 하며, ‘괴혈병’이라는 원어(가라브)는 ‘옴’(itch) 혹은 ‘붉은 곰팡이 병’(scab)(BDB, KB)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버짐이 있는 자’라는 원어(얄레페스)는 ‘피부의 발진이 있는 자’(BDB)나 ‘백선(ringworm)이 있는 자’(KB)라는 뜻이라고 한다.

육체적 결함이 있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식물[음식]의 지성물(至聖物)이나 성물은 먹을 수 있었다. ‘지성물’ 즉 ‘지극히 거룩한 것’은 제사장들에게 돌려진 제물을 가리킨다(레 2:3; 6:17; 7:1; 14:13). 예를 들면, 레위기 2: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그러나 육체적 결함이 있는 제사장들은 제사를 집례하려고 성소 안에 들어가지 못했고 또 번제단에 가까이 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흠이 있기 때문이었다. 본문은 ‘흠이 있는 자’라는 말을 세 번(17, 18, 21절), 또 ‘흠이 있은즉’ 또는 ‘흠이 있음이라’는 말을 두 번(21, 23절), 모두 다섯 번이나 말한다. 흠이 없는 제사장들만 제사를 집례하고 제단에 나아가고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그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대로 이 모든 내용을 아론과 그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거룩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자.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 없는 대제사장이심을 예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거룩하고 흠이 없으신 대제사장이시다. 이 진리는 히브리서에 자세히 증거되어 있다. 히브리서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대제사장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를 위한 대속제물로 자신을 드리셨고 우리의 거룩과 완전한 의(義)가 되셨다. 우리는 우리의 거룩한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완전한 의가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며 따르며 본받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자.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이 되었다. 우리는 제사장들로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그와 직접 교제한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는 과거에 범죄하고 실수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죄성(罪性)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담대히 나아가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위로와 동행하심과 도우심과 기도 응답을 구하며 체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로서 흠과 점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도 거룩한 가정이 되고 우리의 교회도 거룩한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22장: 합당한 제물

[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성물(聖物)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거룩한 이름]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들에게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에 그 몸이 부정하고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7:20에서도,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끊어질]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끊어진다’는 말은 사형이나 제명 혹은 출교를 가리킨다고 본다.

[4-9절] 아론의 자손 중 문둥 환자나 유출병이 있는 자는 . . . .

성물에 가까이할 수 없는 부정한 경우는, 나병이나 유출병이 있든지 시체로 부정케 되었든지 설정(泄精) 즉 정액을 유출하였든지 혹은 사람을 부정케 하는 벌레에 접촉된 것 등이다. 나병이나 유출병은 다 나은 후에야 성물을 먹을 수 있고, 시체로 부정케 되었거나 설정했거나 부정한 벌레에 접촉된 경우는 저녁까지 부정하므로 해 진 후에 몸을 물로 씻고 성물을 먹을 수 있었다. 또 제사장들은 절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아야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을 지켜야 하였고 그것을 욕되게 하면 그로 인하여 죄를 짓고 그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10-13절] 외국인은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의 객이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외국인[제사장이 아닌 자]은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의 객이나 품꾼은 다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나 제사장이 돈으로 사람을 샀으면 그 자는 그것을 먹을 것이고 그 집에서 출생한 자도 그러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식물을 먹을 것이며 제사장의 딸은 제사장 아닌 자에게 시집갔으면 거제(擧祭)의 성물을 먹지 못하되 그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자식이 없이 친정에 돌아와서 어릴 때와 같으면 그는 그 아비의 응식(應食)을 먹을 것이나 제사장이 아닌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요약하면, 제사장이 아닌 자나 객이나 품꾼은 성물을 먹어서는 안 되었으나 돈으로 산 종이나 집에서 출생한 종들은 먹을 수 있었다.

[14-16절] 사람이 부지중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위의 법을 어긴 자의 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부지(不知)중(비쉐가가)[실수로]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그 5분의 1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주어야 하였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였고, 만일 그들이 성물을 먹으면, 그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아야 하였다.

[17-2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흠 있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말 것을 명하셨다. 그는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우거하는 자가 서원제나 낙헌제[자원제]로 번제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열납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18절에 “서원제나 낙헌제[자원제]로 번제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이라는 구절은 구문이 분명치 않아 보인다. 이 구절은 직역하면, “그가 서원제나 낙헌제[자원제]로 드릴 때, 그들이 여호와께 번제로 예물을 드릴 때”이다. 이 구절의 뜻은 아마, “그들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예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때”인 것 같다. 율법에 의하면, 서원이나 자원하는 예물은 보통 화목제를 드리고 화목제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암컷이나 수컷을 드리고(레 3장), 번제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만 드릴 수 있었다(레 1장).

[21-22절]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서원제나 자원제의 화목제물은 흠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해야 한다고 명하셨다. 예를 들어, 눈먼 것, 상한 것,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 즉 몸의 한 부분이 절단된 것,43)종기 있는 것(얍벨레스), 괴혈병 있는 것[옴 혹은 습진 있는 것],44)비루먹은 것[붉은 곰팡이 병 혹은 백선]45)등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고 명하셨다.

[23-25절] 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한 것은 낙헌예물[자원제물]로는 써도 되지만, 서원한 것을 갚음으로 드리면 열납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불알이 상했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스라엘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지도 말고 이방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하나님의 식물로 드리지 말라고 명하셨고, 이런 것은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이므로 그들을 위해 열납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26-2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수소나 양이나 . . . .

여호와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을 위해 몇 가지 부수적인 법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나거든 칠일 동안 그 어미와 같이 있게 하고 제8일 이후로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열납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22:30도, “너의 소와 양도 그 일례로 하되 칠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팔일 만에 내게 줄지니라”고 말씀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암소나 암양을 물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 법은 짐승에게 너무 잔인하게 고통을 주지 말라는 뜻이라고 본다. 짐승도 모성애 같은 본능이 있고 그래서 갓 태어난 새끼가 적어도 7일 동안 그 어미와 함께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또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죽이지 말라고 하셨다고 본다.

[29-33절]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 희생을 드리거든 너희가 열납되도록 드릴지며 그 제물은 당일에 먹고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 희생을 드리거든 너희가 열납되도록 드릴지며 그 제물은 당일에 먹고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사람의 감사의 감정이 보통 하루 정도밖에 가지 않음을 보이신 것 같다. 그것은 사람의 감사의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드린 화목제물은 그 감사한 마음이 식기 전에 다 먹도록 하신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성호(聖號)를 욕되게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니라.”

본장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자신을 더럽히지 말고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이 성소에 나아가고 성물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지만, 단지 부정한 자는 예외이었다. 오늘 신약 성도도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서 거룩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며 거룩한 예배당에 드나들고 성경책을 읽고 해석하고 들을 수 있지만, 만일 우리가 죄로 부정해진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노여움을 삼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하신 그 분을 섬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반복해 교훈한다. 사도 바울은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교훈하였고(롬 6:19),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교훈하였다(벧전 1:14-15). 우리는 거룩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흠 없는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룩한 예물로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의 예배의 모든 순서들도, 찬양도, 기도도, 설교를 전함과 들음도, 헌금도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예물이 되게 해야 한다.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성령 혹은 심령]과 진정[진리 혹은 진심]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다(요 4:24). 시편 96:8-9는,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른 예배 태도이다. 선지자 말라기는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라고 지적하며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고 말하였다(말 1:7-8). 우리는 항상 거룩하고 흠 없는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자.

 

 

23장: 절기들

본장은 하나님의 절기들에 대한 규정이다. 모세의 율법에 하나님의 절기들에 대한 규정은 주로 다음 네 곳에 나와 있다: 출애굽기 23장, 레위기 23장, 민수기 28-29장, 신명기 15-16장. 구약시대에는, 본장에 나와 있는 일곱 가지 절기들 외에, 월삭(민 28장), 안식년(레 25장, 신 15장), 희년(레 25장) 등 모두 열 가지의 절기들이 있었다.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고 하라고 하셨다. ‘성회’라는 원어(미크라 코데쉬)는 ‘거룩한 집회’라는 뜻으로, 안식일과 절기들에 모이는 종교적인 집회를 가리키며, 또 ‘절기’라는 원어(모에드)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정해진 집회’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BDB). 구약 율법에는 열 가지 절기가 있고, 본장에는 일곱 가지 절기가 나온다.

[3절]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 . . .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모든 세속 업무를 중단하고 쉬는 날이며 ‘성회’ 곧 공적 집회로 모이는 날이었다. 그 날은 우리의 날이 아니고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매주마다 지키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쉬신 일을 기념하는 날로서(출 20:11) 하나님의 영속적 언약의 표이었고(출 31:12, 16-17), 그 날을 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여야 했다(출 31:14-15). 구약의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을 예표한다.

[4-8절]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14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매년 지킬 여섯 가지의 절기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특히 연중의 3대 절기들은 ‘축제’(feast)라는 말(카그)로 불리었다. 첫째는 무교절(카그 함마초스)이며, 둘째는 맥추절(카그 학카치르) 혹은 칠칠절(또는 오순절)(카그 솨부옷)이며, 셋째는 초막절(카그 핫숙코스) 혹은 수장절(카그 하아시프)이다.

하나님께서는 연중 3대 절기들 중에 첫 번째 절기인 무교절에 대해 먼저 말씀하기를, “정월 14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15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7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누룩 넣지 않은 떡]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7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火祭)를 드릴 것이요 제7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고 하셨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때때로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는 구별된다. 유월절은 1월 14일 저녁이며,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7일간이다. 구약시대에 하루는 해가 진 저녁부터 다음날 해가 진 저녁까지이므로, 유월절이 끝나면 곧 무교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무교절의 시간적 간격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또 무교절의 7일 중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은 안식일로 지켰다. 이와 같이, 구약의 연중 여섯 절기들 중에는 주간 안식일과 별개로 안식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무교절 2번, 맥추절 1번, 나팔절 1번, 속죄일 1번, 초막절 2번 등 모두 일곱 번의 안식일들이 있었다.

유월절(逾越節, 페사크)은 ‘넘어간다’는 말(파사크)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내리신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장자 재앙에서 애굽 사람들의 집에는 천사가 들어가 장자를 죽였으나 이스라엘 집은 천사가 넘어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유월절은 애굽 왕 바로의 권세 아래 있던 애굽에서 기적적으로 놓여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뜻이 있었다. 유월절은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예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전 5:7).

[9-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보리 초실절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라”고 명하셨다.

무교절 기간은 보리를 추수하는 계절이다. 보리 초실절에는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안식일 이튿날에 드려야 했다. ‘안식일 이튿날’이라는 말씀에서 ‘안식일’은, 유대인의 전통과 요세푸스와 필로 등에 의하면, 주간 안식일이 아니고 무교절 첫날 안식일 즉 1월 15일을 가리킨다.46)그러면 안식일 이튿날은 1월 16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2(약 4.4리터)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4분의 1(약 1리터)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보리 초실절은 보리 추수를 감사하는 뜻이 있었고,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였다. 예수님은 유월절인 1월 14일 금요일 밤에 죽으셨고, 무교절 기간의 안식일인 1월 15일 토요일에 무덤에 계셨고, 보리 초실절인 1월 16일 일요일(주일) 새벽에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15-21절]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 . . .

하나님께서는 또 연중 3대 절기들 중에 두 번째의 절기인 맥추절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7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50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 처소에서 에바 10분의 2(약 4.4리터)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다.

맥추절 혹은 칠칠절(오순절)은 무교절 기간의 보리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다. 맥추절의 ‘맥’(麥)은 소맥 즉 밀을 가리킨다. 맥추절 때는 밀 추수를 하는 계절이다. 출애굽기 34:22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맥추 곧 밀의 초실절’이라고 부르셨다. 팔레스틴의 곡식 추수는 봄에 보리 추수로 시작하여 늦봄 혹은 초여름에 밀 추수로 마친다. 가을에는 포도주와 기름과 열매들을 거두어 저장한다.

맥추절은 추수감사의 뜻이 있고, 영적으로는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은 영혼 구원의 열매들을 예표한다. 맥추절 곧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셨고(행 2:1-4) 영혼 구원의 전도사역이 시작되었다. 그 날 베드로의 설교로 3천명이 구원얻는 역사가 있었다(행 2:41). 성경은 신약 성도들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이라고 부른다. 로마서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야고보서 1:18, “그가 그 조물(造物)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 날, 누룩 넣어 구운 떡 두 개를 만들어 하나님께 드린 것은 죄성을 가진 구원받은 성도들, 아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상징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1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숫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奠祭)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1년된 어린 숫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첫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22절]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배려하신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에 대해 배려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본받으며 그의 명령을 순종해야 한다.

1-22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절기의 규례들 속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자. 안식일은, 일주일에 하루의 육신의 휴식과 또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의 필요성을 교훈한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표하며, 보리 초실절은, 그의 부활을 예표한다. 맥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한 성령의 강림과 그로 말미암은 영혼 구원을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절기들에 담긴 바를 이루셨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셨다. 우리는 그 은혜를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자주 모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구약교회에게 자주 모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다. 신약교회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셋째로, 우리는 곡물 추수와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한 우리 주위의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자. 구제와 선행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참된 믿음과 사랑의 열매이다.

[23-2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7월 1일, 곧 7월 월삭을 안식일로 삼고 나팔을 불어 기념하며 성회로 모이라고 명하셨다. 또 그 날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라고 하셨다.

이것이 나팔절이다. 이 날은 안식일로 불린다. 이것은 1년에 일곱 번의 절기 안식일들(무교절 2번, 맥추절 1번, 나팔절 1번, 속죄일 1번, 초막절 2번) 중의 하나이다. 그 날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였다. 또 이 날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집회로 모이는 날이다.

이 날은 특별히 나팔을 부는 날이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 오는 한 중대한 절기를 기억케 하는 뜻이 있었다. 그 중대한 절기는 7월 10일 속죄일이다. 속죄일은 기독교의 핵심인 속죄를 증거하는 절기이다. 나팔절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속죄일이 중대한 날임을 암시하며 그 날을 엄숙히 준비시키는 절기이었다.

기독교가 전하는 내용은 한마디로 속죄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하였다(고전 1:22-24). 속죄의 주님은 복음의 핵심이다.

[26-3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7월 10일은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말씀하셨다. “7월 10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火祭)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해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끊어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9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이 날은 속죄일(욤 학킵푸림)이다. 이 날도 안식일이며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였고 성회로 모여야 하였다. 이 날은 ‘쉴 안식일’(솹밧 솹바손)이라고 불렸다(32절). 이 말은 출애굽기 31:15에서는 ‘큰 안식일’이라고 번역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7월 9일 저녁부터 10일 저녁까지 안식을 지켜야 하였다.

특히 이 날은 ‘스스로 괴롭게 하는’ 날이었다. ‘괴롭게 한다’는 원어(인나)는 ‘금식함으로 자신을 낮춘다, 괴롭힌다’는 뜻이라고 한다(BDB). 속죄일은 금식일이었다. 이 날의 규례는 엄격하여 누구든지 이 날에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그 날에 금식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낮추는 것은, 그 날이 메시야의 고난을 예표한 날이기 때문이다.

속죄일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날이다. 그 날은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상징한 날이다. 속죄는 성경의 핵심 진리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하였다(고전 1:23). 또 그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하였다(롬 3:23-24). 여기에 기독교 복음의 진수(眞髓)가 있다.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단번에 완전히 담당하심을 상징하고 예표한다. 단번 속죄는 구약성경이 예언하는 바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전달하면서 말하기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sevens 혹은 weeks)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고 하였다(단 9:24). 선지자 스가랴도 예언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하였다(슥 3:9).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밝히 증거한다. 히브리서에는 ‘단번에’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온다(7:27; 9:12, 26, 28; 10:10).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단번에 속량하셨음을 증거한다.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또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항상 기억하라고 교훈한다. 이것이 주께서 성찬식을 통해 의도하신 바이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벌레와 같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물과 피를 다 흘리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해야 한다.

[33-4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하나님께서는 또 연중 3대 절기들 중 세 번째의 절기인 초막절에 대해 말씀하셨다: “7월 15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7일 동안 지킬 것이라. 첫날에는 성회(聖會)가 있을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7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火祭)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8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초막절(카그 핫숙코스)은 수장절(收藏節, 카그 하아시프)이라고도 하는데, 7월 15일부터 7일간 지키는 절기이다. 또 첫날(7월 15일)과 제8일(7월 22일)은 안식일이며 성회로 모여야 하였고 특히 제8일은 ‘거룩한 대회’(아체렛)라고 불렸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번제와 소제와 희생과 전제[붓는 제사]를 각각 그 날에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 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자원]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은 연중 여섯 절기들 중에 가장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이었다. 민수기 29장에 보면, 초막절에 번제로 드리는 수송아지가 모두 71마리, 숫양이 15마리, 1년된 숫양이 105마리이며, 속죄제로 드리는 숫염소가 모두 8마리이다(민 29:13-38).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8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7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초막절 혹은 수장절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친 후에 드리는 추수감사의 절기이었다. 초막절 때에는 이미 곡식 추수는 끝났고 포도주와 기름과 열매들을 수확하는 때이었다. 그것은 즐거운 절기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7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수고는 하였지만, 그들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열매들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복주심을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는 매년에 7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7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7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모세는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에 7일 동안 초막에 거해야 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막을 치며 살았던 때를 회상하는 뜻이 있었다. 그 40년의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기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주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고 그들을 모든 위험에서 보호해주셨다. 그들은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하였다.

초막절은 몇 가지 영적 교훈을 준다. 첫째로, 초막절은 추수감사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적 소득을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직장도, 우리의 사회적 환경과 여건도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둘째로, 초막절은 이 세상의 삶이 광야 같은 나그넷길임을 알게 한다. 레위기 25: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역대상 29:15,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셋째로, 초막절은 우리가 천국만 소망하며 살아야 함을 보인다. 이 날은 우리가 천국 곳간에 들어감을 상징한다. 마태복음 13:30,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23-44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나팔을 불듯이 속죄의 복음을 널리 전하자. 기독교는 기적이나 인간의 지혜를 전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전 1:22-25).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대속(代贖)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 우리는 주께서 친히 제정해주신 성찬식을 통해 주의 고난과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항상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영육의 복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지만, 이 세상이 광야 같은 나그넷길임을 알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천국만 소망하자. 우리의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니고 천국이다.

 

 

24장: 하나님을 훼방한 죄의 형벌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등대에 대해 말씀하셨다.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 것이며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대 위의 등잔들을 끊이지 않고 정리할지니라.”

등대는 성막의 성소 안의 세 개의 거룩한 기구 중 하나이다. 본문에서 등대는 ‘순결한 등대’라고 불리며(4절), 또 거기에 쓰일 감람유도 ‘순결한 기름’이라고 불린다(2절). 등대를 관리할 자는 아론이었다.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휘장 밖의 등대에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끊이지 않고(2, 4절), 항상(3절) 등불을 켜야 하였다.

성막의 등대는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요 8:12). 성경에서 빛은 지식과 의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참 지식과 완전한 의를 주셨고 또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주셨다.

등대는 성령을 상징하는 뜻도 있을 것이다. 성령께서는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일곱 영, 곧 완전한 영이시다. 요한계시록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깊은 의미에서 일체(一體)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의 신비를 믿는다. 또 성령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영이시다. 성령의 열매는 희락 곧 기쁨을 포함한다(갈 5:22).

또 등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뜻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빛이며 등불이며 또 우리의 기쁨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빛이요 우리의 기쁨이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증거하였고(105절), 또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고백하였다(92, 103절).

[5-9절] 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 둘을 굽되 매 덩이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진설병(陳設餠)에 대해 말씀하셨다. “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 둘을 굽되 매 덩이를 에바 10분의 2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 씩 두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火祭)를 삼을 것이며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둘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진설병은 여섯 개씩 두 줄로 위로 쌓았다고 본다.

떡상도 성막의 성소 안의 세 개의 거룩한 기구들 중 하나이다. 본문에서 떡상은 ‘순결한 상’이라고 불리며(6절), 또 거기에 차려지는 떡과 그 위의 유향은 ‘지극히 거룩한 것’(9절), ‘정결한 유향’(7절)이라고 불린다. 그 떡은 항상 매 안식일에 차리고(8절) 지난 것은 아론과 그 자손이 거룩한 곳에서 먹도록 규정되었다(9절).

진설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한 생명의 떡이시다. 요한복음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또 진설병은 성경말씀을 상징하는 뜻도 있다고 본다. 성경은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다. 마태복음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떡이 생명과 힘을 주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과 위로와 힘을 준다.

[10-16절]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된 . . . .

하나님께서는 또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저주한 범죄자의 벌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된 자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중에서 싸우다가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갔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다.

사람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렸을 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저주한 사람을 진 밖에 끌어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저주하는 것은 매우 큰 죄악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막제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정반대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거나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17-23절]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공의의 보응에 대해 다시 말씀하셨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게 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이웃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외국인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히 할 것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공의는 하나님의 근본적 속성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한 벌을 요청한다. 죄인은 그가 지은 죄에 상응하는 공정한 벌을 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기에 합당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였다. 그들은 저주한 자를 진 밖에 끌어내어 돌로 쳤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2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우리의 빛이 되시고 성경말씀이 우리의 빛이 됨을 깨닫고 감사하며 또 그 빛 안에서 항상 행해야 한다. 빛은 지식과 의와 기쁨과 생명을 상징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참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와 생명과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누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말씀이 우리의 생명의 떡이 되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또 그 생명의 떡을 배불리 먹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자.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은 그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것을 말한다. 또 우리는 성경말씀을 규칙적으로 읽고 묵상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거나 저주해서는 안 된다. 피조물인 인생이 창조자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비방하거나 저주해서는 안 된다.

 

 

25장: 안식년, 희년

[1-7절]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여호와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안식년과 희년 규례에 대해 명령하셨다. 그는 먼저 안식년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6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6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7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안식년 규례이다. 안식년은 국가적인 절기이었다. ‘다스리다’는 원어(자마르)는 ‘가지를 치다, 손질하다, 가꾸다’(prune)는 뜻이다. 포도원을 다스린다는 말은 포도원을 가꾸고 포도나무의 가지를 치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6년 동안 농사하고 포도원을 가꾸고 제7년에는 땅으로 안식하게 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안식년에는 농사짓는 일을 중단하고 쉬어야 했고 곡물이나 포도 열매를 추수하는 일도 쉬어야 했다. 안식년에 밭이나 포도원에 스스로 난 곡물이나 포도는 아무나, 심지어 짐승들도 먹을 수 있었다.

신명기 15장에 보면, 매 7년 끝에 빚을 면제하라는 규례가 있는데, 그것은 국가적 안식년 규례에 첨가된 내용이다. 안식년은 땅의 안식년일 뿐 아니라, 빚진 자들이 빚 면제를 받는 복된 해이었다. 그러나 출애굽기 21:2이나 신명기 15:12에 히브리 종이 6년 동안 일하고 제7년에 자유케 되는 규례는 국가적으로 동일하게 정해진 햇수가 아니고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계수된 햇수를 가리킨다고 본다.

[8-12절]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7년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희년(禧年)에 대해 명령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7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49년이라. 7월 10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50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50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고 하셨다.

희년도 국가적으로 계수되고 선포되는 절기이었다.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난 후 제50년을 가리킨다. 제49년 7월 10일에 나팔을 붊으로써 제50년, 곧 희년을 준비시키게 하셨다. 속죄일에 나팔을 붊으로써 준비시키는 것은 희년에 상징된 복이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복이기 때문이다. 희년은 자유의 해이다. 신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속박된 사람들은 누구나 희년에 자유를 얻을 것이다. 희년은 만유의 회복을 상징하는 절기이다. 희년에는 파종하거나 추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밭이나 포도원의 소출은 먹을 수 있었다.

[13-17절]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희년을 기준으로 하여 땅이나 집의 매매 가격을 정하도록 규정하셨다. 그는,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 살 것이요 그도 그 열매를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 값을 많게 하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 값을 적게 할지니 곧 그가 그 열매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18-22절]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안전에 대해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땅은 그 산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고 하셨다.

여기에 약속된 ‘안전’은 사회적 안전과 경제적 안전을 다 포함한다. 인생의 사회적, 경제적 안전의 길은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켜 행하는 데 있다. 왜냐면 우리의 안전은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신다. 이 약속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7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6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3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 너희가 제8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9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 하나님께서는 3년 쓰기에 풍족한 복을 명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명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안식의 시대를 소망하자. 인생에게는 안식이 필요하다. 육신적 안식뿐 아니라, 경제적 안식도 필요하다. 또 심지어 땅에게도 안식이 필요하다. 천국은 참된 안식의 세계이다. 히브리서 4:9-11,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구원받은 성도가 죽으면 안식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안식의 세계인 천국을 기대하며 소망하자.

둘째로, 우리는 만유의 회복을 소망하자. 희년은 만유의 회복을 예표한다. 온 우주는 새로워질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만유의 회복의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받아두실 것이라고 말했고(행 3:21), 사도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고 말했다(계 21:5).

셋째로, 우리는 안전과 형통의 길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 있음을 알자(18절). 우리가 우리의 삶에 안전과 형통을 소원하고 바란다면,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자.

[23-28절]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 . .

하나님께서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기업 회복의 법에 기초가 되는 진리이다. 우주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이다. 하나님께서 그 주인이시요 소유주이시다. 그러므로 토지 곧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소유권은 위탁적인 개념일 뿐이다. 인생은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에 불과하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모든 것을 다 놓고 떠날 것이다. 다윗도 후에,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대상 29:1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라고 명하신 것이며, 희년이라는 기업 회복의 제도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무르기’라는 원어(게울라)는 ‘되사기, 되찾기’(redemption)라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이 그의 기업의 일부를 팔았을 경우, 가까운 친족은 그를 위해 그것을 사서 되찾게 해야 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을 판 사람이 그것을 살 여유가 생기면 그것을 되살 수 있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살 힘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라도 희년이 되면 팔았던 기업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신 복된 규례이다.

[29-34절] 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 지 만 1년 . . . .

집의 경우, 성벽이 있는 성안의 집과 성벽이 둘리지 않은 촌락의 집의 규례가 달랐다. 사람이 성벽 있는 성안의 집을 팔았으면, 판 지 만 1년 안에는 되살 수 있지만, 그 기간 안에 되사지 못하면, 그 집은 산 사람의 소유로 확정되어 영영히 그의 소유가 되며 희년에 돌려보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집은 나라의 토지와 같이 되살 수도 있고 희년에 돌려보내어야 했다.

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 기업의 성읍의 집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되살 수 있고 만일 레위 사람이 되사지 못하면 그 기업된 성읍의 판 집은 희년에 돌려보내어야 한다. 왜냐하면 레위 사람의 성읍의 집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얻은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또 그 성읍의 들의 사면 밭은 레위인의 영원한 기업이므로 팔 수 없었다.

[35-38절]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난한 이웃에 대해,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객이나 우거하는 자를 돕듯이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에게 이자를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해 돈을 꾸어주지 말고 이익을 위해 식물을 꾸어주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꾸어주지 말아야 했다. 고리대금은 물론, 저리대금도 합당치 않았다. 가난한 자를 돕고자 하면, 그냥 주든지 아니면 무이자로 빌려주어야 했다.

[39-46절]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 . . .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동족이 가난하여 남의 종이 되는 경우에 대해 말씀하셨다. “네 동족이 빈한[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바 나의 품꾼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라.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종으로 팔려온 동족을 종(에베드)처럼 엄하게 부리지 말고, 품꾼(사키르)(a hired man)(NASB)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대하여 일을 시켜야 했다. 그러나 희년이 되면 그의 신분뿐 아니라, 그의 모든 기업은 회복이 될 것이다. 출애굽기 21:1이나 신명기 15:12에 보면, 히브리 종은 6년간만 일하고 제7년에는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만일 희년이 끼면 그는 그 해에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또 희년에는 단지 그의 신분뿐 아니라, 그의 모든 기업이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그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그의 품꾼이므로 다른 사람의 종으로 팔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품꾼’이라는 원어(아바다이)는 ‘나의 종들’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신약교회의 백성도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 주위의 이방인들 중에서는 영구적인 종을 얻을 수 있으나, 이스라엘 동족 중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또 동족인 종은 엄하게 부리지 말라고 명하신다. 옛 시대에 종은 주인의 소유이었고 필요하다면 살 수 있었고 또 산 종들은 영원한 종이 되어 자녀의 기업으로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동족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였다.

[47-55절]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부요하게 되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난하여 그들 가운데 우거하는 이방인에게 팔려 종이 된 경우 그 형제 중 하나나 삼촌이나 사촌이나 그의 근족이 그의 종의 신분을 속량하라고 명하셨다. 그는 희년까지의 연수를 따라 그의 몸값을 주고 그를 속량해야 한다. 물론 종이 된 자 자신이 부요하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속량할 수도 있다. 또 그의 주인은 그를 품꾼같이 여길 것이며 그를 엄하게 부려서는 안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의 종이 속량되지 못한 경우에는, 희년에 그가 자유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그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그의 품꾼(에베드), 곧 ‘그의 종’임을 강조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들이며,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23-55절의 본문을 요약하면, 첫째,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며 영영히 팔지 말라는 것과, 둘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이며 그러므로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는 것과, 셋째, 이스라엘 백성은 동족인 종을 엄하게 부리지 말고, 이자를 위해 돈을 빌려주지 말며, 또 그의 친족은 가난한 사람의 기업이나 종의 신분을 속량하며, 그렇지 못하면 희년에 다 회복이 된다는 등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는 규례들이다.

본문의 교훈은 분명하다. 째로, 우리는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나그네임을 알자.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이 세상의 삶이 나그넷길이요 우리의 본향은 천국임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종임을 알고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종이다.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고린도전서 7:23, “너희는 값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우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 순종하며 살자.

셋째로, 우리는 가난한 교우들을 배려하자. 우리는 우리의 책임 아래 있는 믿는 형제들을 엄하게 부리지 말자. 우리가 윗사람일 경우에 아랫사람들을 배려하자. 우리는 믿는 교우들 간에 돈을 빌려주는 경우 이자를 받지 말자. 또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되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며(갈 6:10) 어려운 교우들을 돌아보자.

 

 

26장: 복과 화

레위기 26장은 복과 화를 선포한 말씀이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는 언약의 형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언약의 말씀을 지키면 복을 얻을 것이지만, 그 언약의 말씀을 어기면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 말씀의 내용은 하나도 어려운 것이 없다. 그 내용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1-2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 원주민들의 우상들을 거부하고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켜야 했다. 오늘 신약교회 성도들도 현대적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며 주일을 구별하자.

[3-13절]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명령을 지키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명령을 준행하면 그들에게 씨 뿌릴 때에나 곡식 거둘 때에 비를 주셔서 1년 먹을 양식을 풍족하게 주실 것이며 또 사회적 안정과 평안을 주셔서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나 전쟁의 칼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는 그들이 적은 군사들을 가지고도 많은 적군들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힘은 그들의 율법 순종의 생활에서 얻을 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권고하여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 것이며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을 인하여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라.” 그는 그의 언약을 이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번성케 하고 창대케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 종된 것을 면케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너희 멍에 빗장목을 깨뜨리고 너희로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을 보인다. 일찍이 이 세상에 조물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민족이 있었는가? 하나님께서 자기의 장막을 어느 민족 중에 세우셨는가? 하나님께서 어느 민족 중에 행하셨는가? 이 세상 어디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민족이 있는가?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율법 순종에 이 놀라운 특권과 복을 약속하셨다.

[14-39절]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 . .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명령을 어기면 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라.” ‘놀라운 재앙’이라는 원어(베할라)는 ‘갑작스런 재앙’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을 폐병과 열병 등의 무서운 질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케 하실 것이다. 또 그는 그들이 추수한 곡식을 대적들에게 다 빼앗기게 되므로 그들의 농사의 수고가 헛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그는 주위의 나라들을 대적으로 일으켜 그들을 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은 그 전쟁에서 패하고 대적들에게 다스림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가 그렇게 되어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면 너희 죄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칠배나 더 징치할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런 표현을 본장에서 네 번 사용하셨다(19, 21, 24, 28절).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철저히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고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너희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농사가 잘 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은 모든 일이 잘 되고 물질적 풍요가 있을 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교만하기 쉬우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그런 교만을 미워하시고 징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거스려[거슬러] 내게 청종치 않을진대 내가 너희 죄대로 너희에게 칠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내가 들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 자녀를 움키고 너희 육축을 멸하며 너희 수효를 감소케 할지라. 너희 도로가 황폐하리라.”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철저하게 징벌하셔서 들짐승들을 보내어 그들의 자녀들과 육축들과 인명들을 잃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를 대항할진대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를 인하여 너희를 칠배나 더 칠지라.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너희의 배약(背約)한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지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붙일 것이며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철저하게 징벌하셔서 전쟁과 무서운 질병과 양식의 부족으로 치실 것이다. 그들은 저울에 달아 주는 떡을 먹을 것이며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 죄를 인하여 칠배나 더 징책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극심한 굶주림 때문에 자기 아들과 자기 딸의 고기를 먹는 처참한 지경에 떨어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의 산당을 헐며 너희의 태양 주상을 찍어 넘기며 너희 시체를 파상한 우상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내가 너희 성읍으로 황폐케 하고 너희 성소들로 황량케 할 것이요 너희의 향기로운 향을 흠향치 아니하고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거기 거하는 너희 대적들이 그것을 인하여 놀랄 것이며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산당과 태양주상을 파괴하실 것이며 그의 마음이 그들을 싫어하실 것이며 그들의 성읍들과 그들의 성소들이 황폐케 되고 그들이 이방나라들에 흩어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한 동안 너희 안식 시에 쉼을 얻지 못하던 땅이 그 황무할 동안에는 쉬리라.” 그들이 평안할 때 율법에 규정된 7년마다 지킬 땅의 안식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대적의 땅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그 땅이 황폐한 가운데 안식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 남은 자에게는 그 대적의 땅에서 내가 그들의 마음으로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은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 있음같이 서로 천답하여[밟혀] 넘어지리니 너희가 대적을 당할 힘이 없을 것이요 너희가 열방 중에서 망하리니 너희 대적의 땅이 너희를 삼킬 것이라. 너희 남은 자가 너희 대적의 땅에서 자기의 죄로 인하여 쇠잔하며 그 열조의 죄로 인하여 그 열조같이 쇠잔하리라.” 이스라엘은 열국 앞에서 심히 쇠약해지며 쇠잔해지며 두려워 떨 것이다.

[40-46절]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 . .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그 잡혀간 나라에서 자신과 그 열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그가 그의 언약을 기억하여 그들을 돌아보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및 그들이 나를 거스린[거스른] 허물을 자복하고 또 자기들이 나를 대항하였으므로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우리는 무슨 고난이든지 고난 중에서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겸손히 그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그 고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대적의 땅에 거할 때에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가 그들을 싫어 버리지 않으시고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그들과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는 것은 그의 크신 은혜이다.

이 모든 말씀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그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로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다.

본장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감사하자.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온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복과 저주는 온전한 순종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이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저주를 받을 만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의가 되셨고 우리는 그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실을 감사하며 힘을 내어 더욱 믿음으로 살고 더욱 의롭게 살자.

둘째로, 우리는 율법을 힘써 순종하자.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제적으로도 우리가 율법 지키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죄에게서 해방되고 의에게 종이 되었다(롬 6:1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다(딤후 3:16).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다 믿고 다 순종하자. 우리가 율법을 순종할 때, 우리는 율법에 약속된 하나님의 모든 복, 즉 풍성한 양식, 환경적 평안, 신체적 건강, 하나님의 동행하심 등의 복을 감히, 즐거이 기대할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혹 연약하여 범죄하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 낙심치 말아야 한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 때문이다(히 12:5-6). 우리는 병들었을 때 자신을 반성하며 혹 기억나는 죄가 있으면 고백하면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약 5:15-16). 주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계 3:19).

 

 

27장: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

본장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 가축, 집, 밭에 대한 규례와, 또 가축의 첫새끼나 아주 바친 것이나 십일조에 대한 규례이다.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라는 원문은 “사람이 어려운 서원을 할 때, 그는 여호와께 속한 자들에 대한 너의 정한 값대로 값이 정해질 것이니라”는 뜻이라고 본다(MT, NASB). 사람이 자신이나 자기 자녀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일에 대한 규례이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사무엘처럼 성전 봉사의 일에 바쳐지는 것일 것이다. 본문이 말하는 사람의 값은 바쳐진 그를 다시 무르려 할 때 하나님께 드리는 값을 가리킨 것 같다.

[3-8절] 너의 정한 값은 20세로 60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 . . .

하나님께서는, “너의 정한 값은 20세로 60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50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30세겔로 하며, 5세로 20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20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10세겔로 하며, 1개월로 5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은 5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은 3세겔로 하며, 60세 이상은 남자이면 그 값을 15세겔로 하고 여자는 10세겔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1세겔은 보통 약 11.4그램이지만, 성소의 세겔은 약 10그램이었다고 한다(NBD).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정한 값을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편대로 값을 정하라고 하였다.

[9-13절]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 . . .

사람이 가축을 서원물로 하나님께 드릴 때는, 그것이 거룩하므로 그것을 변경하여 좋든지 나쁘든지 바꾸지 못할 것이며 그것을 다른 가축으로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라고 하였고, 또 그 가축이 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것이면 그것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 갈 것이며 제사장은 그것의 값을 정하며 그 값은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5분의 1을 더해야 하였다.

[14-15절] 사람이 자기 집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 . . .

사람이 자기 집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제사장은 그것이 좋든지 나쁘든지 그 값을 정할 것이며 그 값은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 그 사람이 자기 집을 무르려면 정한 값에 5분의 1을 더할 것이며 그러면 자기 소유가 될 것이다.

[16-25절] 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두락수대로 값을 정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는 은 50세겔로 계산할지며.” ‘두락[마지기]수대로’라는 말은 ‘뿌리는 씨의 양대로’라는 뜻이다. 우리 조상들은 1말의 씨를 뿌리는 논밭의 넓이를 한 마지기라고 불렀다. ‘한 호멜지기’라는 말은 씨를 한 호멜 뿌릴 수 있는 넓이의 땅이라는 뜻이다. 호멜은 10에바로서 약 220리터의 분량이다. 한 호멜지기의 밭의 값은 은 50세겔이었다.

그가 그 밭을 희년부터 구별하여 드렸으면 그 값은 정한 대로일 것이며, 그 밭을 희년 후에 구별하여 드렸으면 제사장은 다음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따라 그 값을 계산하고 그 값에서 상당하게 감할 것이다. 또 밭을 구별하여 드린 자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한 값에 5분의 1을 더해야 하였고 그러면 그것이 자기 소유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가 그 밭을 무르지 아니하려거나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는 무르지 못하고 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 무르지 못한다”는 말은 남에게 판 땅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 같다. 보통 남에게 판 땅도 본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다. 희년에는 돌려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땅을 하나님께 바치면 희년에 돌려받지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께 바친 땅이 되어 제사장의 기업이 된다는 뜻 같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샀고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린 경우, 그 밭을 무르려면 제사장은 그를 위해 희년까지 계산하고 그가 정한 값을 그 날에 여호와께 드려 성물을 삼아야 했다. 그 밭은 희년에 판 사람 곧 그 기업의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모든 값은 성소의 세겔대로 하며 한 세겔은 20게라이다.

[26-27절] 오직 생축의 첫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새끼라. . . .

오직 가축의 첫새끼는 여호와께 돌려야 하였다. 소나 양을 물론하고 이미 여호와의 것이므로 누구든지 그것을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다. 또 만일 그것이 부정한 짐승이면 정해진 값에 5분의 1을 더하여 속(贖)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부정한 짐승을 속(贖)하지 아니하려면 그 정해진 값대로 팔아야 하였다. 그러면 아마 그는 그 다음 것을 첫새끼로 드려야 할 것이라고 본다.

[28-29절]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아주 바친 물건’이라는 원어(케렘 ם)는 ‘완전히 멸할 것’이라는 뜻이다. 아주 바친 사람이나 가축은 반드시 죽여야 하였고, 아주 바친 밭은 팔거나 속하지 못하였다.

[30-34절] 땅의 10분 1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 . . .

마지막으로, 십일조에 대한 규례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10분의 1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10분의 1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고 말씀하셨다. 땅의 소산물의 10분의 1 곧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한다는 규례이다. 사람이 그 10분의 1 중에서 어떤 것을 속(贖)하려면 그것에 5분의 1을 더할 것이요 소나 양의 10분의 1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므로 그것이 좋든지 나쁘든지 살피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아야 하였다. 만일 그것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하게 될 것이며 속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내용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들이다.

레위기 27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자. 다윗은 역대상 29:11에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라고 말했다. 시편 24:1에서 그는 또 성령의 감동으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다. 우리는, 천지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온 우주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자. 본장 1-8절은 사람을 바치는 규례이다. 그것은 성막 혹은 성전 봉사에 바쳐지는 것을 말할 것이다. 신약 성도는 모두 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바울은 마게도냐의 교인들이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바울의 전도 사역을 돕는 일에 드렸다고 증거하였다(고후 8:5).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들을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자. 본장 9-25절은 사람이 자기 소유물들, 즉 가축이나 집이나 밭을 하나님께 드리는 규례이다. 역대상 29:14에서 다윗은,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헌금의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 가르쳤다(고후 8:7). 또 그는 헌금하는 방법에 대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하였다(고후 9:7).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들을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자.

넷째로, 우리는 십일조와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자. 본장은 가축의 첫새끼와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의 십일조에 대한 규례를 포함한다. 말라기 3:8-12는, 십일조와 헌물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강조했고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며 그 결과는 그에게 저주라고 말했다. 또 잠언 3:9-10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한다. 십일조와 첫열매의 구약 규례는, 구약시대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신약 성도가 즐거이 본받아 지켜야 할 복된 규례이다.

 

 

미주

1) 한글개역성경 16절의 ‘그 더러운 것’이라는 원어(노차)는 ‘그 더러운 것들’ 혹은 ‘그 내용물들’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Targ, Syr, RV, NIV, 게세니우스, 카일), 그보다 ‘깃털들’이라는 뜻이 더 낫다고 제안된다(BDB, KB, LXX, Vg, KJV, NASB).

2) J. B. Payne, M. F. Unger, G. L. Archer, R. K. Harrison도 그렇게 봄.

3) Calvin과 W. Gesenius는 화목제에서 감사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봄.

4) Keil-Delitzsch, Matthew Poole, 박윤선 등이 그렇게 봄.

5) ‘거제’(heave-offering)(KJV)라는 원어(테루마)는 ‘헌물’이라는 뜻으로 일반명사로 번역되기도 한다(BDB, NASB, NIV).

6) 일상적으로 주로 입는 옷(BDB). 'tunic'(BDB, NASB, NIV).

7) 겉옷(BDB). 'robe'(BDB, NASB, NIV).

8) 우림은 ‘빛’이라는 뜻이고, 툼밈은 ‘완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어떤 도구이었다.

9) 솨판은 ‘바위 오소리(badger)’(BDB, KB, NASB) 혹은 ‘토끼 종류(coney)’(KJV, NIV)라고 번역된다.

10) 네쉐르는 ‘수리’(eagle)라고 번역된다(KJV, NASB, NIV).

11) 페레스는 ‘독수리’(vulture)라고 번역된다(NASB, NIV).

12) 오즈니이야는 ‘검은 독수리’(NIV, KB, ≑BDB) 혹은 ‘말똥가리’ (buzzard)(NASB)라고 번역된다.

13) 다아는 ‘솔개’(kite)(NASB) 혹은 ‘붉은 솔개’(NIV, KB)라고 한다.

14) 아이야 는 ‘송골매’(falcon)(NASB, BDB) 혹은 ‘검은 솔개’(NIV, KB)라고 번역된다.

15) 밧 하야아나는 ‘타조’라고 한다(BDB, KB, NASB).

16) 타크마스는 ‘수컷 타조’(BDB) 혹은 ‘올빼미 종류’(NASB, KB)를 가리킨다고 본다.

17) 코스는 ‘작은 올빼미’라고 번역된다(KJV, NASB, NIV).

18) 솰라크는 ‘가마우지’(cormorant)라고 번역된다(BDB, KB, KJV, NASB, NIV).

19) 얀슈프는 ‘큰 올빼미’라고 번역된다(KJV, NASB, NIV).

20) 틴쉐멧은 ‘흰 올빼미’라고 번역된다(KB, NASB, NIV).

21) 카아스는 ‘펠리칸’(pelican)(BDB, KJV, NASB)이나 ‘사막 올빼미’(NIV)라고 번역된다.

22) 라캄은 ‘썩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carrion-vulture)라고 번역된다(BDB, KB, NASB).

23) 아나파는 ‘왜가리’(heron)라고 한다(KJV, NASB, NIV, KB).

24) 두키팟은 ‘후투티’(hoopoe)라고 한다(BDB, KB, NASB, NIV).

25) 메뚜기(아르베 ), 베짱이(살암), 귀뚜라미(카르골), 팟종이(카가브)는 메뚜기 종류를 가리킨다(BDB).

26) 콜레드는 ‘족제비’(weasel)(BDB, KJV, NIV) 혹은 ‘두더지’ (mole)(NASB, ≑KB)라고 한다.

27) 차브는 ‘큰 도마뱀 종류’(NASB, NIV, ≑BDB)라고 한다.

28) 아나카는 ‘흰 족제비’(ferret)(KJV, BDB), 혹은 ‘도마뱀 종류’ (gecko)(KB, NASB, NIV)라고 번역된다.

29) 코아크는 ‘카멜리온’(chameleon)(KJV), ‘악어’(NASB), ‘큰 도마뱀’ (monitor lizard)(NIV) 등으로 번역된다.

30) 레타아는 ‘도마뱀’(KJV, NASB), ‘벽 도마뱀’(wall lizard)(NIV)이라고 번역된다.

31) 틴솨멧은 ‘카멜리온’(chameleon)(BDB, KB, NASB, NIV)이라고 번역된다.

32) 세에스 swelling.

33) 삽파카스 scab(부스럼).

34) 바헤레스 bright spot(반점).

35) 전통적으로 히브리어 차라아스는 ‘나병’(leprosy)으로 번역된다(BDB, KJV, NASB). 고대의 헬라어 70인역도 ‘나병’(레프라 levpra)이라고 번역했다. 나병이 아니고 단순히 피부병이라는 어떤 히브리어 사전들(KB, Holladay)의 견해는 근거가 빈약해 보이며 그런 사전들에 근거하여 ‘전염성 피부병’이라고 번역한 어떤 유명한 영어번역(NIV)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36) 레 13장과 14장에서 ‘환처’(mark)라는 말(네가)이 60회 나온다.

37) 이 말을 고대의 헬라어 70인역은 ‘비듬’(드라우스마 qrau'sma)이라고 번역했고, 영어성경들은 ‘비듬’(dry scall)(KJV), ‘딱지’(scale)(NASB), ‘옴’ (itch)(NIV) 등으로 번역했다.

38) 이 말을 고대 헬라어 70인역은 ‘습진’(알포스 ajlfov")이라고 번역했고, 영어성경들은 ‘주근깨’(KJV), ‘습진’(eczema)(NASB), ‘해가 없는 뾰루지’ (NIV) 등으로 번역했다.

39) 영어성경들은 'issue'(KJV), 'discharge'(NASB, NIV)로 번역한다.

40) ‘유출병’이라는 원어(조브)는 ‘흐른다’는 단어(주브)에서 나온 말로서 레위기 15장에서 13번 사용되었고, 또 ‘유출병이 있는 자’라는 단어(자브)도 9번 사용되었다.

41) ‘풍속’이라는 원어(마아세)는 ‘행위들’이라는 뜻이다. 영어성경들은 'doings'(KJV), 'what is done'(NASB) 등으로 번역했다.

42) ‘어른인즉’(being a chief man)(KJV)이라는 원어(바알)는 ‘결혼에 의한 친척으로서’(as a relative by marriage)(NASB)라고도 번역되며, 고대의 헬라어 70인역은 ‘갑자기’(엑사피나 ejxavpina)라고 번역했다(BDB).

43) 카루츠라는 원어는 'mutilated'(절단된)라는 뜻이며, 영어성경들은 ‘불구가 된’(maimed)(KJV, NASB, NIV)이라고 번역하였다.

44) 가라브라는 원어는 ‘옴’(itch, scab)(BDB, KB), 혹은 ‘습진’(ecze- ma)(NASB)이라고 번역된다.

45) 얄레페스라는 원어는 ‘붉은 곰팡이 병’(scab)(BDB, NASB) 혹은 ‘백선’(ringworm)(KB)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46) Alfred Edersheim, The Temple. p.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