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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1월 11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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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진술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야곱 벤 카임이 편집한 제2 랍비 성경(봄버그판)을 표준적 마소라 본문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차례

  1장: 불완전한 정복 

 2장: 불순종 

 3장: 옷니엘, 에훗, 삼갈

 4장: 드보라와 바락  

 5장: 드보라의 노래 

 6장: 기드온을 부르심

 7장: 기드온의 300명 용사

 8장: 미디안을 이김

 9장: 아비멜렉 

10장: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심  

11장: 사사 입다  

12장: 에브라임 사람들의 교만 

13장: 삼손의 출생 

14장: 삼손이 블레셋 아내를 취함

15장: 삼손이 많은 블레셋인들을 죽임

16장: 삼손의 실패와 마지막 기도

17장: 미가의 우상숭배

18장: 단 지파의 우상숭배 

19장: 기브아의 죄악

20장: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와 싸움 

21장: 베냐민 지파의 회복 

 

서론

사사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쇼페팀 (재판관들)이다. 헬라어 70인역의 명칭(크리타이 kritavi)도 같은 뜻이다. 사사는 여호수아의 죽은 후부터 사울 왕의 즉위까지 이스라엘의 통치자이었다.

사사기의 저자는 사무엘일 것이다(탈무드 Baba Bathra 14b). 사사기는 구성에 통일성이 있다. 열두 사사들은 잘 배열되어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3:7, 12; 4:1; 6:1; 10:6; 13:1). “그 땅이 태평하니라”는 표현도 자주 나온다(3:11, 30; 5:31; 8:29 등).

사사 시대의 연대 문제에 관하여, 옷니엘부터 삼손까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던 연수는 111년이며 평안을 누렸던 연수는 296년이므로, 이 기간이 407년이 된다. 그러나 열왕기 6:1의 “애굽땅에서 나온 지 480년”이라는 말에 비추어 볼 때 옷니엘부터 엘리까지는 약 326년에 불과한 것 같다. 왜냐하면 광야 생활 40년, 여호수아의 통치 약 30년, 사울 왕의 통치 40년(행 13:21), 다윗 왕의 통치 40년(삼하 5:4), 솔로몬의 즉위 4년의 연수를 다 합하면 154년이 되며 이것을 480년에서 빼면 약 326년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사 시대의 역사는 많은 부분이 중복되었다고 추론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중요한 단서는 사사기 10:7인데, 거기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암몬 자손의 압제와 블레셋 사람의 압제는 거의 같은 시대에 해당하며, 입다의 사건은 동부 지방에서, 삼손의 사건은 서부 지방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사사기 11:26에서 입다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단 동편 헤스본의 정복과 암몬 자손과의 싸움 간의 기간을 300년이라고 말하는데 그의 증거도 위의 생각에 일치된다. 그렇다면, 사사 시대는 대략 주전 1376년부터 1050년까지, 약 326년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사기의 주요 내용은 반복된 실패이다. 사사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보내주신 구주요 재판관이요 통치자이었다. 사사기에는 열두 명의 사사들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사사를 통해 구원을 받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사람의 전적 부패이다. “또”(3:12; 4:1; 6:1; 10:6)라는 말이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복적 범죄와 배교는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을 잘 증거한다.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Jamieson-Faussett-Brown, A Commentary.

 

1장: 불완전한 정복

[1-2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사사기는 사사 시대의 사건들을 기록한 책이다. 사사 시대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사울 왕을 세울 때까지 약 325년간이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자손은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하고 하나님께 물었고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는 응답을 받았다. 그것은 바른 태도이다. 후에 다윗도 전쟁 때마다 하나님께 물었다(삼하 5:19, 23).

[3-4절]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 그들이 베섹에서 일만 명을 죽이고.

유다는 그 형제 시므온에게 함께 올라가자고 요청했고 시므온과 함께 올라가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을 쳤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셔서 그들이 베섹에서 일만 명을 죽였다. 전쟁은 하나님께 있다. 소년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했었다(삼상 17:47). 과연 다윗은 그를 이겼다.

[5-7절]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죽이니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 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유다 자손은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었다. 수족의 엄지가락(보헨)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가리킨다. 이것은 아도니 베섹의 고백대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한 대로 공의로 보응하신다.

[8-10절]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성을 불살랐으며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과 싸웠고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이었더라.

유다 자손은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다. 그들은 민수기에도 언급된 아낙 자손 거인들이었다(민 13:22, 33). 여호수아는 그들을 쫓아내기만 하였었다(수 15:14).

[11-15절]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거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의 아우요[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한 고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드빌 성의 정복에 관련된 이 내용은 여호수아 때에 이루어진 일을 회고하며 삽입한 것 같다. 같은 내용이 여호수아 15:13-19에도 있다. 이것은 후에 첫 번째 사사가 될 옷니엘의 믿음과 용맹을 증거한다.

[16절]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여리고](신 34:3)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

[17-21절]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그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유다가 또 가사와 그 경내(territory, 경역)와 아스글론과 그 경내와 에그론과 그 경내를 취하였고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하신 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무리가 모세의 명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유다와 시므온 자손이 골짜기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그들의 믿음과 충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갈렙은 모세의 명한 헤브론을 받았고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들을 쫓아내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가나안 정복의 분량을 온전히 수행하였다. 그러나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22-26절] 요셉 족속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니라. 요셉 족속이 벧엘을 정탐케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탐정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의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너를 선대하리라 하매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친지라. 이에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 그 사람이 헷 사람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날까지 그곳의 이름이더라.

요셉 족속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벧엘 거민을 다 죽였다.

[27-29절]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하였더라.

므낫세 자손은 벧스안, 므깃도 등의 가나안 사람들을, 에브라임 자손은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30-33절]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 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이는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납달리가 벧세메스 거민과 벧아낫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거민들이 그들에게 사역을 하였더라.

스불론과 아셀과 납달리도 가나안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다.

[34-36절] 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 결심하고 헤레스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더니 요셉 족속이 강성하매 아모리 사람이 필경은 사역을 하였으며 아모리 사람의 지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그 위였더라.

단 자손은 심지어 아모리 사람들에게 쫓겨 물러나기도 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유다는 기업을 취하려 할 때 먼저 하나님께 물었다. 후에 다윗도 그러했다(삼하 5:19, 23). 잠언 3:6, “너는 범사에 그를[주권적 섭리자 되심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과 함께하셨다(2, 4, 19, 22절).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었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전쟁은 이길 것이다.

셋째로, 이스라엘의 불완전한 정복은 사사 시대의 실패의 원인이었다. 잇사갈 지파를 뺀 아홉 지파 자손들은 다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이 믿음과 용기와 충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회의 부패의 원인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온전한 성화와 온전한 교회의 건립을 위해 힘써야 한다.

 

2장: 불순종

[1-2절]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여호와의 사자’는 구약시대에 천사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네가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않았다”고 말씀하셨고(창 22:12), 야곱에게 나타나셨을 때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창 31:13). 야곱은 하나님을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라고 표현하였다(창 48:16). 여호와의 사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불순종을 지적하셨다.

[3절]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남겨둔 가나안 사람들을 그들 앞에서 쫓아내지 않으실 것이며 그 남겨진 자들이 그들의 옆구리에 가시가 되며 그 신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포용한 결과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숭배와 음행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고통과 시험거리가 될 것이다.

[4-5절]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보김은 ‘우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징벌과 자신들의 미래에 일어날 불길한 일로 인해 슬퍼하지 말고, 참으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을 깨닫고 그것을 버리고 고치고 하나님의 계명 순종하기를 결심해야 할 것이다.

[6-7절]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지도자의 역할은 참으로 크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보면, 지도자가 경건하고 바르면 백성은 대체로 바르지만, 그런 지도자가 없으면 백성은 각기 자기 뜻대로 행하고 사회는 급속히 부패하였다.

[8-10절]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경건한 부모들이 없고 올바른 신앙교육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잠언 22:6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11-15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바알은 밭의 신이며 아스다롯은 풍부와 성(性)과 전쟁의 여신이라고 한다(NBD). 그들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긴 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을 범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앞에서 매우 악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고 그들을 노략자들과 대적들에게 넘겨주셨다.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고 그들의 괴로움은 심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면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신 28:19). 죄의 값은 죽음과 불행이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16-19절]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겨 그들에게 절하고 그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대적들에게 압박과 고통을 당해 슬피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사사들을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그들이 사는 날 동안 그들과 함께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 때문이었다. 사사는 재판관이며 통치자요 구원자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사사의 말도 순종치 않았고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이 좇아 그들에게 절했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길을 속히 떠났고,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 열조보다 더욱 부패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겨 절하며 그 패역함을 그치지 않았다. 사람은 참으로 부패된 존재이다(렘 17:9).

[20-23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 열국을 머물러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

하나님의 진노의 한 조치가 그들이 남겨놓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함이었다. 교제의 대상을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포용의 한계를 긋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께서 교훈하신 바를 순종하는 여부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도자가 반듯하면 교회는 경건과 도덕성이 상당히 유지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바른 사상과 인격과 분별력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둘째로, 신앙교육이 중요하다. 이스라엘 사회는 신앙의 계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일을 위해 가정들에서 규칙적인 가정예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포용주의의 결과는 종교의 부패와 순수한 경건의 상실이다. 그들의 문제는 교제의 문제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고 가나안 족속을 다 멸하지 않고 포용하였다. 그러나 포용주의의 결과는 큰 불행이었다. 우리는 세상의 풍조를 본받거나 포용하지 말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성경 교훈대로만 살자.

 

3장: 옷니엘, 에훗, 삼갈

1-11절, 사사 옷니엘

[1-4절]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두신 열국은 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 남겨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사사기 1, 2장의 내용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남김 없이 다 죽이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았고 얼마큼 남겨두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이방 족속들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옆구리의 가시와 발의 올무가 되게 하셨고,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기를 원하셨다.

사사기 3장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겨두신 목적이 두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는 이스라엘 후손들, 즉 가나안 전쟁을 모르는 후손들로 그 전쟁을 맛보고 깨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들의 열조에게 명령하신 말씀들을 순종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함이었다.

[5-7절]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사람들과 친근히 교제했고, 그들의 잘못된 교제는 그들의 자녀들의 결혼 문제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딸들을 며느리로 맞았고 자기 딸들을 가나안 땅의 아들들에게 주었다. 그들의 불순종과 잘못된 교제는 불신 결혼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원주민들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다. 바알은 수리아와 가나안 전역에서 숭배되었던 밭의 신이며, 아세라는 다산(多産, fertility)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아세라는 앗수르의 국가 신(神)인 아시르의 아내 이쉬타르(아스다롯) 여신의 별명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즉 아세라와 아스다롯은 같은 신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사사기 2:13과 3:7을 비교해보면, 그런 생각이 타당해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교제는 그들의 종교와 신앙의 변질과 부패를 가져왔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들의 세상 사람과의 잘못된 교제는 결국 그들의 신앙과 경건의 변질과 부패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면, 우리는 교제 문제부터 조심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5:33,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8-11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그 땅이 태평한 지 40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다는 말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이루어짐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메소보다미아 왕에게 굴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구산 리사다임을 8년이나 섬겼다. 그 8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에게 압제와 굴욕을 당한 고통의 기간이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참으로 무서웠다.

이스라엘 백성은 8년의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때에라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더라면 그 고통에서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며 기도할 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고 하였다(시 51:17). 하나님께서는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위해 한 구원자를 세워주셨다. 그가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이었다. 그는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그에게 부어주셨고 그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셔서 나가 싸워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굴복케 하셨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구산 리사다임을 옷니엘의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그를 이겼다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삼상 17:4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큰 고난에서 건져주셨다. 그 후, 그 땅은 40년 동안이나 평안하였다. 이스라엘은 8년 동안 고생하였지만, 40년 동안 평안을 누렸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기간보다 다섯 배나 더 긴 평안의 시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이었고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본심이셨다. 예레미야 애가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시편 30: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의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명하신 가나안 족속들을 남겨둠으로써 그들과 교제하게 되었고 그 잘못된 교제 때문에 종교적인 변질과 부패를 가지게 되었다. 교제가 중요하다. 우리는 악한 친구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전 15:33). 우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아야 한다(고후 6:14).

둘째로, 우리는 신앙의 순수성을 잘 지켜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잘못된 교제 때문에 부패되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지 않고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는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말했다(딤후 3:1-5). 또 그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했다(딤후 4:3-4). 우리는 이런 어려운 시대에도 순수한 신앙을 지켜 성경대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신다(시 51:17). 하나님께서는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징벌의 고난보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평안을 내려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지난날들의 우리의 모든 죄들도 씻어주셨고 우리를 은혜로 의롭다고 여겨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벌의 고난 중에서라도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하며 그의 크신 긍휼을 바라며 의지하자.

 

12-31절, 사사 에훗

[12-14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여리고]을 점령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18년을 섬기니라.

사사기에 ‘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3:12; 4:1; 10:6; 13:1). 이것은 인간 본성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을 증거한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다.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이시다. 사람 보기에 선한 것 같고 사람들이 그것을 선이라고 말해도,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이 있다. 잠언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셔서 그들을 대적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 왕들의 권력까지도 주장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실 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주권자이시다.

나라들 간의 갈등과 전쟁도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 하나님께서 뜻하심과 허락하심이 없이는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라들 간에 평화도 주시고 갈등도 주신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 모압 왕 에글론은 이스라엘 자손을 쳤고 이스라엘 자손은 모압 왕 에글론을 18년을 섬겼다. 구산 리사다임을 섬긴 8년보다 배갑절 이상 긴 기간이었다.

[15-17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에훗이 장이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자이었더라.

그때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사람은 평안할 때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지만, 고난 중에 하나님께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고난은 사람에게 유익하다. 또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심령을 받으신다. 시편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한 구원자를 세우셨다. 그가 에훗이었다. 그는 사사기에 나오는 두 번째 사사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이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고 왼손잡이이었다. 베냐민 지파에는 왼손잡이 용사들이 많았던 것 같다(삿 20:16).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에훗은 길이가 한 규빗, 즉 약 45센티미터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우측 넓적다리 옷 속에 차고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다. 에글론은 매우 뚱뚱하고 둔한 자이었다.

[18-22절]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페실림)[‘돌 뜨는 곳’(KJV), ‘우상들’(BDB, NASB, NIV)에서부터 돌아와서 가로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왕이 명하여 종용케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에훗이 왕의 앞으로 나아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가로되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 몸에서 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에훗은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자기는 길갈 근처로부터 돌아와 모압 왕을 조용히 독대하면서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그를 칼로 찔러 죽였다. 원문에는 22절 끝에 “또 오물들이 나왔더라”라는 말이 있다.1) 에훗은 자신이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확신하였고 용기 있게 행하였다.

[23-26절]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가로되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취하여 열고 본즉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그들의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발을 가리운다’는 말은 ‘변을 본다’는 뜻이다. 에글론의 신하들은 왕을 호위함에 불성실하였고 해이한 마음으로 잘못된 추측과 판단을 하였다. 그들이 “부끄러울 때까지”(원문, KJV) 오래 기다려도, 왕은 다락문을 열지 않았고 그들이 열쇠를 취하여 다락문을 열고 보니 자기들의 주(主)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져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에훗은 피하여 ‘돌 뜨는 곳’ 혹은 ‘우상들’을 지나 도망했다.

[27-30절] 그가 이르러서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무리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서 모압 맞은편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그때에 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80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에훗은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즉시 소집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단합하여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왔다. 에훗은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을 확신하였다. 무리는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했고 모압 사람 건장한 용사 일만 명 가량을 죽였다. 모압은 이스라엘에게 항복하였고, 그 후 그 땅은 80년 동안 평안하였다. 그 평안의 기간은 징벌의 기간보다 4배 이상이나 긴 기간이었다.

[31절]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본절은 세 번째 사사 삼갈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한다.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었다. 그는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작정된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구원자를 보내주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벌하심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개인이나 국가를 징벌하신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죽음과 불행과 지옥 형벌이다(계 21:8).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알고 모든 죄를 멀리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을 위해 구원자를 주신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구원자인 사사를 세워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멸망할 인류를 위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셨고 때가 되어 보내주셨다(요 3:16).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받고 그를 믿고 따르며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치 말고, 오직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4장: 드보라와 바락

[1-3절]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병거 900승이 있어서 2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지도자의 역할이 크다. 집에서는 가장의 역할이 크고, 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수상의 역할이 크며,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의 역할이 크다. 훌륭한 지도자를 잇는 후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파셨다. 그들은 20년 동안 심히 학대하였다. 옷니엘 때의 8년이나 에훗 때의 18년보다 더 긴 고난의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한다.

[4-7절] 그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2)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여선지자는 성경에서 극히 드문 경우이다. 보통 때는 하나님께서 남자들을 들어 선지자의 일을 하게 하시지만, 비상한 때에는 여자도 들어 사용하셨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사사는 재판관이요 통치자이었다. 드보라는 바락이라는 남자를 앞세웠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여자의 일반적 한계성이며 미덕이었다. 드보라는 “내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군대를 네 손에 붙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락에게 전했다.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8-10절]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 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바락은 드보라에게 함께 가기를 강하게 요청하였다. 이 말은 바락의 연약한 마음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상 그의 믿음을 반영한다. 바락은 드보라가 섬기는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다. 바락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음을 믿었던 것이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함께 가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갔다.

[11절]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사사기 저자는 헤벨이라는 사람에 대한 기사를 여기에 삽입한다.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다고 말한다. 모세의 장인을 호밥이라고 한 것은 그의 이름이 르우엘(출 2:18)이나 이드로(출 3:1) 외에 호밥이라는 이름도 있었는지 아니면 모세의 장인의 [아들] 호밥(민 10:29)이라는 뜻인지 분명하지 않다. 모세의 장인 겐 사람은 유다 자손과 더불어 유다 황무지에서 거하였었다(삿 1:16). 그러나 헤벨이 이곳에 와 거주했다. 헤벨의 기사를 여기에 넣은 것은, 드보라가 하나님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라고 말했던 그 여인이 바로 헤벨의 아내이기 때문이다(17절 이하).

[12-16절]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900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강으로 모은지라.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에서 내려가니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다볼산은 갈릴리 호수와 지중해 중간에 있는 산이다. 그때 드보라는 바락에게 하나님께서 시스라를 그의 손에 붙이실 것을 말했다.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붙여주시면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행하실 것이다. 바락은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에서 내려갔고 여호와께서는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모든 군대를 칼날로 쳐서 남은 자가 없이 패하게 하셨다.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하였다.

[17-21절] 시스라가 도보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덮으니라.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내가 목이 마르도다 하매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 그가 또 가로되 장막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관자놀이: 귀와 눈 사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야엘은 참으로 용감한 여인이었다. 그 시대는 참으로 여인 장부들의 시대이었다. 성경은 여선지자 드보라와 함께 여장부 야엘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장수 시스라는 이처럼 여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22-24절]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가로되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드보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승리를 주셨고 여인의 손에 의해 그 군대의 장수를 죽게 하셨다.

사사기 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치 말자. 지도자도, 백성도 그러해야 한다. 혹시 우리가 잘못을 범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파셨고, 시스라와 그 병거들을 바락의 손에 붙이셨고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셨다. 그는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자.

셋째로, 우리는 영적 용사가 되자. 비상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선지 드보라를 세우셨고 또 헤벨의 아내인 용감한 여자 야엘을 사용하셨다.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해야 한다(고전 16:13). 이 세상에 죄악의 풍조가 만연하고 교계에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풍조가 만연할지라도, 우리는 옛날부터 믿어온 성경적 신앙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용사들이 되자.

 

5장: 드보라의 노래

[1-3절]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드보라가 하나님을 찬송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방백들에게 즐거이 헌신하는 마음을 주심으로써이었다.

[4-5절]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부터 광야의 여정과 에돔 들을 지나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그들 앞에서 인도하셨고 그들과 함께 행하시며 큰 능력을 보이셨다.

[6-7절]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이스라엘에 관원(페라존)[‘시골 거주자들’(BDB; KJV, NASB), ‘관원들, 지도자들’(게세니우스), ‘용사들’(LXX)]이 그치고 그쳤더니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이스라엘의 한 어미인 내가 일어났도다](KJV, NASB, NIV).

이스라엘 백성이 심히 쇠약해져 이방 나라에게 고생을 당한 것은 그들의 우상숭배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삿 4:1-2).

[8-11절]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4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라. 여호와를 찬송하라. 흰 나귀를 탄 자들, 귀한 화문석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선파할지어다. 활쏘는 자의 지꺼림에서,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의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11절에 두 번 언급된 하나님의 의로우신 일은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징벌뿐 아니라, 또한 이스라엘의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가리킬 것이다.

[12-14절]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그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요 그 다음에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13절은, “그때에 남은 자가 백성의 방백들에게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용사들 가운데서 내게 내려오셨도다”라는 뜻일 것이다(MT 벤카임 원문과 분리액센트). 14절에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요”라는 구절은 “그들의 뿌리는 에브라임에게서 났고 아말렉을 대항하며”라는 뜻일 것이다(MT, KJV). ‘대장군의 지팡이’라는 원어는 ‘검열관 혹은 사령관의 지휘봉’을 가리킨다.

[15-22절]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펠라고스)[지역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르우벤 시냇가에서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도다.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미프라츠)[항구]에 거하도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강은 옛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있는 자를 밟았도다. 그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소리는 땅을 울리도다.

잇사갈의 방백들은 그 전쟁에 마음을 같이했다. 15절에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라는 말은 “그는 맨발로 골짜기에 보내졌으니”(KJV)라는 뜻이라고 본다. 그것은 용감하고 빠르게 전쟁터에 나아갔음을 말한다. 르우벤 지역에는 큰 결심이 있었다. 그러나 르우벤은 너무 생각이 복잡하여 그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단이나 아셀 지파도 그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스불론 자손과 납달리 자손은 그 전쟁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였다. 바락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스불론과 납달리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전쟁에 나아갔다(삿 4:6, 1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시스라와 싸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지원하신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천둥과 번개, 폭우와 우박 등으로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을 징벌하셨다. 또 기손강이 그 무리를 표류시켰다는 말은 그 전쟁에서의 승리를 보인다.

[23절]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메로스 거민이 거듭 저주를 받는 까닭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다.

[24-27절]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주었고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장인의 방망이를 들고 그 방망이로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뚫되 곧 살쩍[관자놀이: 귀와 눈 사이]을 꿰뚫었도다.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아 시스라를 쳐서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시스라는 여인의 발 앞에 엎드러졌다. 힘있는 나라의 가장 큰 용사 시스라가 한 연약한 여인의 손에 힘없이 쓰러졌다.

[28-30절]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하매 그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옷이리로다. 곧 양편에 수놓은 채색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드보라는 시스라의 모친과 그 시녀들의 말을 상상하여 말한다.

[31절]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40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전쟁에서의 승리는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을 돌려야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승리함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즐거이 헌신한 바락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받아야 한다. 또 여인 야엘의 놀라운 역할도 기억할 만하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하나님의 귀한 종들의 헌신적 참여와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에 자원적으로 참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서 싸우지 않는 것은 원수들을 이롭게 할 뿐이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치 않고 협력치 않았던 메로스 사람들은 저주를 받았다. 주께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 12:30; 눅 11:23).

 

6장: 기드온을 부르심

1-24절, 기드온을 부르심

[1-6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7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떼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복된 범죄를 증거한다. 이것은 사람들 속에 있는 죄성의 본질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또 악을 행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7년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다. 씨를 심는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은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유다 땅의 서쪽 해변에 인접해 있는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않으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않았다. 이와 같이 이방인들이 그 땅에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려 하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을 인해 미약함이 심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만든다.

[7-10절]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 고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셨는데, 그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의 고난이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불순종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온 것임을 증거하였다.

[11-13절]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들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가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4-16절]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본문은 ‘여호와의 사자’(11-12, 21-22절)나 ‘하나님의 사자’(20절)를 ‘여호와’ 자신(14, 16절)과 동일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이 네 힘을 의지하여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말씀하시며 친히 그에게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신의 집이 므낫세 중에 약하고 자신이 아버지의 집에서 작고 보잘것없다고 말했다.3)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기드온은 겸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4) 너와 함께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사명 받은 기드온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전에 모세에게도, 또 여호수아에게도 그런 말씀을 주셨었다(출 3:12; 수 1:5).

[17-18절]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기드온은 그에게 사명을 주신 자가 하나님의 사자이심을 확인하기를 원하였다. 그는 그에게 말씀하신 자를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기드온은 예물을 가지고 와서 그 앞에 예물을 드리기를 원했고 그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였다.

[19-21절]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여호와의 사자는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기드온이 준비한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었는데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종종 사람이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22-24절]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 보았음을 알고 두려워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안심시키셨다. 기드온은 거기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고 그 이름을 여호와 살롬, 즉 ‘여호와는 평안이라’고 불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한다. 범죄하는 자는 쇠약해지고 불행해지고 죽고 말 것이다(롬 8:13).

둘째로, 우리는 범죄했을 때 참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만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신다.

셋째로, 하나님의 일꾼은 겸손해야 한다. 기드온은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라고 말했다. 기드온은 겸손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일꾼의 첫째 덕목이다.

넷째로,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을 확신해야 한다. 기드온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았을 때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말했다(17절). 그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자 할 때 그를 부르신 자가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자 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과 우리의 구원과 주의 재림과 천국과 영생을 확신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후배 교역자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교훈하였다(딤후 3:14).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읽기를 힘써야 한다.

 

25-40절, 기드온을 준비시킴

[25-27절]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7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기드온이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았던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몇 가지 명령을 하셨다. 첫째는 그의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고 그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으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 견고한 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해 규례대로 단을 쌓으라는 것이고, 셋째는 네 아비의 수소 곧 7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명령들이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공개적 행위이며 아버지와 가족들과 성읍 사람들의 반대를 받을 것이 예상되는 행위이었다. 그러나 기드온은, 비록 아버지의 가족들과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그 일을 대낮에 행치 못하고 밤에 행했으나, 열 명의 종을 데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대로 다 행하였다.

[28-30절]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예상대로 성읍 사람들의 반대는 강하였다. 그들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알의 단이 훼파되고 단 곁의 아세라가 찍히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가 드려진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것이 기드온의 행위임을 알아냈다. 그들은 그의 부친 요아스에게 그가 죽을 죄를 지었으니 그를 끌어내라고 말했다. 어두운 시대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의 반대와 핍박을 일으키기도 한다.

[31-32절]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부친 요아스는 성읍 사람들에게 잘 대답하였다. 그렇다. 바알이 신이라면, 그가 친히 기드온과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요아스는 그 날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고 부르며,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으니 바알로 하여금 그와 다투게 하라고 말하였다.

[33-35절]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미디안 연합군이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치자,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셨다(라베솨)[옷 입히셨다]. 그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덧입혀졌다. 그것은 주의 일꾼들의 필수적 준비이다. 기드온은 아비에셀 족속을 비롯하여 므낫세와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 자손들을 불러모았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위해 준비시킨 지도자에게 자원하는 병사들을 많이 허락하셨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큰일을 이룰 수 없지만,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가능하다. 사사들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힘으로 하였다. 옷니엘도, 입다도, 삼손도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오셔서 사사의 사역을 수행하였다(삿 3:10; 11:29; 13:25; 14:6, 19; 15:14). 기드온은 두려워하며 용기가 없었던 소심한 인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영을 옷 입음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후에 스가랴 선지자는 성전 건립의 일에 관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영]으로 되느니라”고 말하였다(슥 4:6).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참된 교회 건립에 적용된다.

[36-40절]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그러나 기드온은 출전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더 확인하기를 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소원대로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게 하셨다.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또 말하기를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 이슬이 있기를 구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한번 더 확인하기를 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그대로 행하셨다. 물론, 기드온이 하나님의 표적을 두 번이나 구한 것은 그의 연약함을 보인다. 그는 확신과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며 우리 모두의 연약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할 수 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 속에서 기드온의 소원들을 들어주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있는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을 때 먼저 바알의 단을 헐며 아세라 상을 찍고 하나님을 위해 규례대로 단을 쌓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오늘날도 우리는 우상을 품고 주의 일을 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돈이나 육신의 쾌락이나 명예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일꾼은 먼저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영으로 옷 입고 주의 일을 행하였다. 오늘날 개인의 성화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진다. 로마서 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전도도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교회의 참된 건립도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스가랴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성전 건립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항상 구하며 얻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확신해야 한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 번이나 재확인하기를 원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주의 일을 바르게, 힘있게, 또 고난 중에도 끝까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했다(딤후 3:14).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은 성경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부터 온다.

 

7장: 기드온의 300명 용사

[1-3절]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거슬러]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2만 2천명이요 남은 자가 1만명이었더라.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기드온을 따르는 무리가 많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자긍하며 우리가 우리를 구원했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 중 두려워 떠는 자 2만 2천명을 돌아가게 하셨다. 이스라엘을 위해 용기를 가진 남은 자들은 1만명이었다.

[4-8절]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3백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3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3백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을 물가로 데려 내려가게 하셔서 물을 마시는 모습에 따라 두 부류가 나누셨다.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혀로 핥아 마시는 조심성 있는 자들은 300명이었고 나머지 9,700명은 조심성 없이 무릎을 꿇고 마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300명으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미디안 사람을 그의 손에 붙이시기를 원하셨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300명으로 전쟁을 준비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순종했다. 믿음이 없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를 따른 300명도 믿음과 용기와 일치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300명의 작은 수로 저 큰 미디안 군대와 싸울 수 없다고 불평하며 그를 떠나지 않았다.

[9-14절]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그 날 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고 말씀하셨으나, 기드온 속에는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미디안 진에 들어가 그가 미디안 군인들 속에 두려운 마음을 심어주신 것을 확인게 하셨다. 그것은 기드온에게 출전의 확신을 주었다.

[15-20절]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3백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 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1백명이 2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초병]의 체번[교대]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기드온은 300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였고 그들에게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라”고 말했다. 기드온과 그들을 따른 100명은 2경[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초, 즉 밤 10-11시경에 미디안 진 가에 이르렀다. 보초병이 교대하는 시간이었고, 군인들이 피곤하여 쉴 시간이며 마음이 해이해질 시간이었다. 기드온의 군대는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었다. 세 대가 다같이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으로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쳤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작전은 지시대로 잘 행해졌다.

[21-23절]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3백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미디안 진을 사면으로 에워쌌기 때문에 그 온 적군은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다. 그 300명이 나팔을 불 때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자기들끼리 서로 칼날로 치게 하셨으므로 적군이 도망하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다.

[24-25절]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행하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나루턱을 취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그 나루턱을 취하고 또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 사람을 추격하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 기드온에게로 나아오니라.

또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을 불러 요단 나루턱을 취하게 했고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군사들의 수가 많을 때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지 않으셨다. 그들이 자긍하고 자기들의 손이 자기들을 구원했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사람들을 기드온과 그 300명의 용사들의 손에 붙이셨다. 기드온 300명 군대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영적 싸움들에서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에게만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편에서도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두려움은 믿음 없음을 나타낸다. 두려워하는 자는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또 조심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전투에서 항상 깨어 근신해야 한다. 또 하나님의 지시에 대해 믿음으로 항상 순종해야 한다. 이해가 안 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가능한 일이다. 또 솔선수범해야 한다. 기드온은 병사들에게 ‘나 하는 대로 따라 하라’고 말했다. 앞선 자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또 지혜롭고 민첩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다해야 한다.

 

8장: 미디안을 이김

[1-3절]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에브라임 사람들은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었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난다(잠 13:10).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기드온의 이런 선한 말은 그들의 노를 풀게 하였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잠 15:1).

[4-9절] 기드온과 그 좇은 자 3백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종자가 피곤하여 하니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숙곳 방백들이 가로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기드온이 가로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거기서 브누엘에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은 기드온의 전쟁에 동감하지 않았고 지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믿음도, 지식도, 분별력도, 용기도 없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지 않는 것은 원수들을 이롭게 할 뿐이다.

[10-12절] 이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12만명이 죽었고 그 남은 1만 5천명 가량은 그들을 좇아 거기 있더라. 적군이 안연히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편 장막에 거한 자의 길로 올라가서 적군을 치니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추격하여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군대를 파하니라.

기드온과 그의 300명 용사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끝까지 충성하였다. 그들은 비록 피곤하였지만 그 사명과 임무를 완수하였다.

[13-17절]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신문하매 숙곳 방백과 장로 77인을 그를 위하여 기록한지라.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가로되 너희가 전에 나를 기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그 성읍 장로들을 잡고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7절의 “너희 살을 찢으리라”는 말씀에 비추어보면, 숙곳 사람들을 징벌했다는 말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을 죽임으로써 그 성 사람들에게 교훈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또 기드온은 브누엘 망대도 헐었고 그 성읍 사람들도 죽였다. 하나님의 싸움을 위해 협력하지 않고 기회주의적이게 행했던 자들은 그렇게 징벌을 받았다.

[18-21절] 이에 세바와 살문나에게 묻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자이더뇨?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모두 왕자 같더라. 가로되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내가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그 장자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세바와 살문나가 가로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대저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기드온이 일어나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 약대 목에 꾸몄던 새 달 형상의 장식을 취하니라.

기드온은 자신의 친형제들을 죽인 그 두 왕을 죽였다.

[22-23절]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자기들을 다스려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기드온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기드온에게는 교만이나 명예심이나 개인적 욕심이 없었다. 자신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만 높이며 겸손히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통치 받기를 원하는 태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바른 마음가짐이다.

[24-27절]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청구하노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니 그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 던지니 기드온의 청한 바 금 귀고리 중수가 금 1천 7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새 달 형상의 장식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의 입었던 자색 의복과 그 약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

기드온은 그들에게 한가지를 요청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탈취한 귀고리를 그에게 달라는 것이었다. 그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귀고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1,700세겔, 약 19.5킬로그램의 금을 주었다. 기드온은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서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그것은 큰 실수이었다. 에봇을 만든 것은 율법 중심, 성막 중심의 경건에서 이탈한 자기중심적 경건에서 나왔던 것 같다. 온 이스라엘 백성은 그가 만든 에봇을 음란하게 위하였고 그 에봇은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다.

[28-32절]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의 사는 날 동안 40년에 그 땅이 태평하였더라.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70인이었고 세겜에 있는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비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40년간의 평안을 주셨다. 기드온은 아내가 많았고 첩도 있었다. 창세로부터 일부일처(一夫一妻)가 하나님의 뜻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옛시대에 일부다처(一夫多妻)를 허용하셨다.

[33-35절]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죽자마자](KJV, NASB)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사면 모든 대적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하며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의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서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인간은 참으로 무지하고 죄성이 많고 배은망덕한 존재이다.

우리는 기드온처럼 하나님 중심으로만 행하자. 기드온은 하나님만 의지했고 교만하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명예심과 욕심을 버렸다. 우리도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교만과 명예심과 욕심을 버리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자가 되자. 기드온과 그의 300명의 용사들은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였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일인 전도와 참된 교회 건립을 위해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자들이 되자.

우리는 인간의 연약성을 조심하자. 숙곳 방백들은 하나님의 군대를 위하지 않고 오히려 적군을 위하였다. 또 기드온이 에봇을 만든 것이나 그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 숭배에 떨어진 것은 다 인간의 연약성을 보인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거울삼아 조심해야 한다.

 

9장: 아비멜렉

[1-6절]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 어미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외조부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70인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 그 어미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온 세겜 사람들의 귀에 고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말하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바알브릿 묘에서 은 70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자기를 좇게 하고 오브라에 있는 그 아비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70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으되 오직 여룹바알의 말째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세겜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 가서 세겜에 있는 기둥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비멜렉으로 왕을 삼으니라.

기드온이 세겜의 첩에게서 낳은 아비멜렉은 세겜에 가서 그 어머니의 형제들, 즉 외삼촌들과 외가의 친척들에게 골육지친 됨을 강조하여 지지를 얻었고 오브라에 있는 그 아비의 집으로 가서 자기의 형제 70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다. 그는 심히 악했다. 그러나 막내동생 요담은 살아남았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다.

[7-15절] 혹이 요담에게 그 일을 고하매 요담이 그리심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소리를 높이 외쳐 그들에게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나를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를 들으시리라.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왕이 되라 하매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요담은 그리심산 꼭대기로 가서 한 비유를 들어 외쳤다.

[16-21절]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을 삼았으니 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었거늘 너희가 오늘날 일어나서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 아들 70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이고 그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의 왕을 삼았도다. 만일 너희가 오늘날 여룹바알과 그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과 의로움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을 인하여 즐길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를 인하여 즐기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요담이 그 형제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달려 도망하여 브엘로 가서 거기 거하니라.

요담은 그들이 아비멜렉을 세워 왕 삼은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인지, 여룹바알의 집을 선대하고 보답함인지 따졌고 그들을 저주했다. 그의 저주는 정당하였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57절).

[22-24절]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3년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70인에게 행한 포학한 일을 갚되 그 형제를 죽여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서 그 형제를 죽이게 한 세겜 사람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3년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므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다.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3년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기간일 것이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사람에게 닥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이 자기의 형제 70인을 죽인 죄에 대한 벌을 그와 세겜 사람에게 내리신 것이다.

[25-29절] 세겜 사람들이 산들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하여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무릇 그 길로 지나는 자를 다 겁탈하게 하니 혹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고하니라.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 형제로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의뢰하니라.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배설하고 그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에벳의 아들 가알이 가로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 장관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비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아하,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하였으리라 하고 아비멜렉에게 네 군대를 더하고 나오라고 말하니라.

가알이라는 사람은 공공연히 아비멜렉에게 도전하였다.

[30-33절] 그 성읍 장관 스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듣고 노하여 사자를 아비멜렉에게 가만히 보내어 가로되 보소서,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 형제가 세겜에 이르러 성읍 무리를 충동하여 당신을 대적하게 하나니 당신은 당신을 좇은 백성으로 더불어 밤에 일어나서 밭에 매복하였다가 아침 해 뜰 때에 당신은 일찍이 일어나 이 성읍을 엄습하면 가알과 그를 좇은 백성이 나와서 당신을 대적하리니 당신은 기회를 보아 그들에게 행하소서.

그 성읍 장관 스불은 가알의 말을 듣고 노하여 아비멜렉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새벽에 그 성읍을 엄습하기를 요청하였다.

[34-45절]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밤에 일어나 네 떼로 나눠 세겜을 대하여 매복하였더니 에벳의 아들 가알이 나와서 성읍문 입구에 설 때에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백성이 매복하였던 곳에서 일어난지라. 가알이 그 백성을 보고 스불에게 이르되 보라 백성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스불이 그에게 대답하되 네가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느니라. 가알이 다시 말하여 가로되 보라, 백성이 밭 가운데로 좇아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로 좇아 오는도다.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전에 말하기를 아비멜렉이 누구관대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이가 너의 업신여기던 백성이 아니냐? 청하노니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가알이 세겜 사람들의 앞서 나가서 아비멜렉과 싸우다가 아비멜렉에게 쫓겨 그 앞에서 도망하였고 상하여 엎드러진 자가 많아서 성문 입구까지 이르렀더라. 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하고 스불은 가알과 그 형제를 쫓아내어 세겜에 거하지 못하게 하더니 이튿날 백성이 밭으로 나오매 혹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고하니라. 아비멜렉이 자기 백성을 세 떼로 나눠 밭에 매복하였더니 백성이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그들을 치되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떼는 앞으로 달려가서 성문 입구에 서고 그 나머지 두 떼는 밭에 있는 모든 자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죽이니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필경은 취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세겜 성을 쳐서 취하였다.

[46-49절] 세겜 망대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엘브릿 신당의 보장으로 들어갔더니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의 모인 것이 아비멜렉에게 들리매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살몬산에 오르고 아비멜렉이 손에 도끼를 들고 나무가지를 찍고 그것을 가져 자기 어깨에 메고 좇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의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 하니 모든 백성도 각각 나무가지를 찍어서 아비멜렉을 좇아 보장에 대어놓고 그곳에 불을 놓으매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들도 다 죽었으니 남녀가 대략 1천명이었더라.

아비멜렉은 세겜 망대에 불을 놓아 거기에 숨었던 약 1,000명의 남녀들을 다 죽였다. 세겜 성은 이렇게 완전히 멸망을 당했다.

[50-57절] 아비멜렉이 데베스에 가서 데베스를 대하여 진치고 그것을 취하였더니 성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으므로 그 성 백성의 남녀가 모두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간지라.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서 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사르려 하더니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던져 그 두골을 깨뜨리니 아비멜렉이 자기의 병기 잡은 소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그가 여인에게 죽었다 할까 하노라. 소년이 찌르매 그가 곧 죽은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죽은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아비멜렉이 그 형제 70인을 죽여 자기 아비에게 행한 악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아비멜렉은 또 데베스에 가서 그 성의 견고한 망대도 불사르려 했는데, 그때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내려 던져 그의 두골을 깨뜨렸고, 아비멜렉은 그의 병기 잡은 소년을 급히 불러 자신을 죽이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이 그 형제 70인을 죽인 악과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을 갚으셨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아비멜렉처럼 불경건하고 악한 자가 되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하고 의롭고 선하며, 돈이나 명예에 대해 욕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정의편에 서고 반역자의 무리에 들지 말아야 한다(잠 24:21).

우리가 바르게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건강도 주시고(잠 3:7-8)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일용할 양식도 주신다(마 6:33). 나라도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대로 바르게 행하면 평안을 누렸고 신하들이 왕에게 순종했지만, 왕이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계명을 범하여 범죄하면 평안치 못했고 반역이 계속 일어났다. 우리는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10장: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심

[1-5절] 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하여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23년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그에게 아들 30이 있어 어린 나귀 30을 탔고 성읍 30을 두었었는데 그 성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야일의 천막 마을]이라 칭하더라.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아비멜렉이 3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린 후, 잇사갈 사람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그는 여섯 번째 사사로 23년간 다스렸다.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 일곱 번째 사사로서 22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들의 역사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6-7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니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18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은 또다시 여호와의 눈앞에 악을 행하였다. 그들은 바알들과 아스다롯 등 가나안 토착민들의 신들과 그들 주위의 이방 나라 사람들의 신들을 섬겼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않았다. 사실, 사람은 이방신과 여호와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이방신을 섬기는 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을 범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들의 손에 파셨다. 그는 천지만물의 주인이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누구에게 파실 권한이 있으시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다.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들의 손에”라는 말은 사사 시대의 연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사사 시대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햇수와 평안을 누린 햇수를 다 더하면 약 410년이 되지만 실제로 사사 시대는 약 326년간이라고 보인다. 징계와 평안의 햇수들은 중복되었다고 보인다. 예컨대 암몬 자손들에게 학대당한 입다 시대와 블레셋 사람들에게 학대당한 삼손 시대는 중첩되었을 것이다.

암몬 자손들은 요단 건너편 길르앗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18년 동안 학대하였고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도 쳤으므로 그들의 곤고함이 컸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가져오고 그 결과는 사람들의 심한 곤고함이다(시 107:10-12).

[10-14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은 심한 곤고함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자신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고백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죄를 인정하고 고백한다고 금방 도우시지 않는다. 그는 그의 고백이 참된지, 그가 참으로 죄에서 떠나기를 원하는지 시간을 두고 살피신다.

[15-16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그의 영혼이 견디지 못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 중에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렸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것은 참된 회개의 모습이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해 그 영혼이 견디지 못하셨다. 자기 백성을 무섭게 징벌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은 아니시다(애 3:33).

[17-18절] 그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치고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해서 범죄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며(렘 17:9), 흑인이 피부색을 변할 수 없듯이 악에 익숙한 인생이 선을 행할 수 없다(렘 13:23).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되었다. 그러므로 구원은 시작도, 진행도, 완성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진노하신다. 이스라엘은 죄에 대한 징벌로 18년 동안 암몬 자손들에게 학대를 당했다. 바울은 죄의 값은 죽음이라고 말했고(롬 6:23), 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롬 8:13).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잊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죄를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회개와 구원의 표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긴 것처럼, 우리도 모든 우상과 세상의 모든 헛된 것들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치 말고(요일 2:15) 돈을 사랑치 말고(딤전 6:10), 오직 하나님을 알고 그를 섬기고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자. 그것이 평안의 길이며 영생의 길이다. 이사야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11장: 사사 입다

[1-3절]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는 요단강 동쪽 길르앗의 사람이며 힘있는 용사이었다. 그는 기생(잇솨 조나)[매춘부]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다.

[4-11절]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카친)[대장]이 되라.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대답하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 길르앗 땅 장로들은 입다에게 그들의 대장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입다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붙이실 수 있음을 믿었고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였다. 그는 믿음과 기도의 사람이었다.

[12-15절]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이제 그것을 화평히 다시 돌리라.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입다는 암몬 자손의 왕에게 그들이 왜 이 땅을 치러 왔는지 묻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땅을 취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16-18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이 사자를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컨대 나를 용납하여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 보내었으나 그도 허락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유하였더니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둘러 행하여 모압 땅 동편에서부터 와서 아르논 저편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 경계이므로 그 경내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입다는 민수기 20장과 21장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바르게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둘러 행하여 모압 땅 동편에서 와서 아르논 건너편에 진쳤고 아르논은 모압 경계이므로 그 경내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19-22절]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용납하여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매 이스라엘이 쳐서 그 땅 거민 아모리 사람의 온 땅을 취하되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사람의 온 지경을 취하였었느니라.

여호와께서 헤스본 왕 시혼과 그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으므로, 이스라엘은 그들을 쳐서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사람의 온 지경을 취하였다.

[23-28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지 3백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입다는 암몬 자손들의 요구가 정당치 않다고 반박한다. 첫째,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고 주신 땅을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정당치 않다. 둘째, 모압 왕도 국경선을 인정하고 그 문제로 이스라엘과 다툰 일이 없었는데, 그들이 이것을 요구하니 부당하다. 셋째,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아로엘과 아르논 연안의 모든 성읍들에 거한 지 300년인데 그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이제 그들이 그 땅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넷째,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는데, 그들이 이스라엘을 쳐서 악을 행하려 하는 것은 부당하다. 입다는 심판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에 판단하시기를 호소하였다.

[29-31절]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여호와의 영, 성령께서는 입다에게 내려오셨다. 사사들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였다. 입다는 전쟁에 나갈 때 하나님께 한가지 서원을 하기를,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서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자만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입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32-33절]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20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여호와께서는 암몬 자손들을 입다의 손에 붙이시므로 크게 적군들을 죽였고 마침내 암몬 자손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주권적 손에 달렸다.

[34-35절]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입다는 승리의 기쁨 중에도 하나님께 한 서원을 기억하였고 그의 하나뿐인 딸이 그를 영접했을 때 그는 참담한 심령으로 괴로워했다.

[36-38절]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이르되 가라하고 두 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입다의 딸도 그의 아버지처럼 경건했다. 그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의 원수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아주셨으니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해 약속하신 대로 행하시라고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딸이다. 그는 단지 두 달의 애곡 기간을 요청하였다.

[39-40절] 두 달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두 달이 지났어도 입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입다도, 그의 딸도 참으로 훌륭하였다. 그들은 다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맹세하며 약속한 것을, 자기들에게 해로울지라도 그대로 이행하였다(신 23:21; 시 15:4).

다수의 현대학자들은5)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린 것이 아니고 그를 평생 처녀로 지내게 한 것이라고 잘못 해석한다. 그들은 37-39절에 ‘죽음’이나 ‘죽으니라’는 말이 생략된 것과, 또 딸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 인간 본성이나 성경에 반대된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든다. 그러나 옛날부터 유대교 학자들과 고대의 거의 모든 교부들과 대다수의 주석가들은6)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린 것으로 해석한다. 그 근거는, 31절(“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에 입다의 서원의 내용이 분명하고, 35절(“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의 입다의 큰 슬픔과 고통이 그것을 보이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의 뜻은 분명해 보인다. 어둡고 부패한 시대에 입다는 무지한 서원을 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으로 그것을 이행하였다. 히브리서 11장은 그를 신앙의 용사들 중에 포함하였다(히 11:32).

입다는 매춘부의 아들이라는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인물로 성경에 기록되었다. 우리는 입다의 신앙을 본받아 한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그의 손에 붙여주실 것을 기대했다. 하나님의 주권은 성경의 기본 진리이다. 우리는 온 세상을 홀로 섭리하시는 주권적 하나님을 믿자.

둘째로,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길르앗의 우두머리가 되었을 때 먼저 자기 중심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였다(11절). 기도는 하나님을 믿고 그와 교통하며 동행하는 표이며 길이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자.

셋째로, 입다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진 자이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지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나, 그는 성경에 기록된 출애굽 역사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바른 지식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하였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역사를 바로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하였고 그의 서원을 이행하였다. 그는 승리의 기쁨 중에도 자신이 서원한 바를 잊지 않았고, 하나뿐인 딸에게도, 또 2달 후에도 변함 없이 그것을 이행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했다. 우리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성도가 되자.

 

12장: 에브라임 사람들의 교만

[1절]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7) 네 집을 사르리라.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간 것은 잘못이었다. 그들은 교만하였다. 그들은 입다의 승리를 축하하고 격려하고 감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고 그와 그의 집을 멸하려 하였다. 에브라임 사람들의 이런 마음과 태도는 습관적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전에 기드온에 대해서도 시비한 적이 있었다(삿 8장). 교만은 시기 질투를 낳고 거기서 미움이 생기고 마침내 형제를 죽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교만의 싹을 잘라야 한다.

[2-3절]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다툴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내가 너희의 구원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날 내게 올라와서 나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의 말과 싸움은 정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제의 형편과 수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만 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자존심만 세우려고 하였고 자신들의 명예만 의식했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전쟁에서 입다를 사용하셨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해 변론하고 논란한 셈이었다.

[4절]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더니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파하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다. 이 전쟁은 길르앗 사람들편에서 보면, 불가피한 전쟁이며 정당방위적 싸움이었다. 정당한 전쟁은 가능하다.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을 쳐서 파하였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그들을 업신여기며 말하기를, 그들이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고 했었다. 에브라임의 비난은 옳지 않았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 지역으로서 얍복강 북쪽의 땅과 얍복강 남쪽의 땅을 다 포함했고 모세가 갓 지파와 므낫세 반(半)지파에게 준 기업이었다.

[5-7절]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컨대 나로 건너게 하라 하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그에게 이르기를 십볼렛이라 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능히 구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씹볼렛이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4만 2천명이었더라.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6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에브라임 사람들은 쉽볼렛이라는 단어를 십볼렛이라고 발음하였고 요단 나루턱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때 에브라임 사람들은 4만 2천명이 죽었다. 입다는 6년간 사사로 있었다.

[8-15절] 그의 뒤에는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가 아들 30과 딸 30을 두었더니 딸들은 타국(쿠츠)[타지파, 타지역](NASB, NIV)으로 시집 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타국에서 여자 30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7년이라.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그의 뒤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1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그의 뒤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에게 아들 40과 손자 30이 있어서 어린 나귀 70필을 탔었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8년이라.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입다 뒤에는 베들레헴 사람 입산이 7년간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다. 입산 뒤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1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엘론 뒤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8년간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다. 사사기에는 모두 열두 명의 사사들이 있다: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바락),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 등. 그들은 일곱 지파에 속하였다. 므낫세 지파가 셋(기드온, 야일, 입다), 에브라임 지파가 둘(드보라, 압돈), 유다 지파가 둘(옷니엘, 입산), 베냐민 지파가 둘(에훗, 삼갈), 또 그 외에는 잇사갈 지파(돌라), 스불론 지파(엘론), 단 지파(삼손) 등이다.

본장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교만치 말아야 한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교만하였고 그래서 다른 형제들을 시기 질투하며 멸시하고 다투었다. 다툼은 교만에서 나온다. 교만은 사람이 자신이 피조물이며 죄인임을 모르는 데서 나오는 죄악이다. 교만은 큰 죄이다. 교만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6, 7가지의 죄들 중 첫째이다. 그것은 마귀의 죄이다(딤전 3:6).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마 11:29; 빌 2:3-8).

둘째로, 우리는 교만하면 패망할 줄 알아야 한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교만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사람이 교만하면 망한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마귀는 교만하여 마귀가 되었고 지금도 감히 하나님과 다투려고 하지만, 그는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미워하신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멸망할 수밖에 없다.

 

13장: 삼손의 출생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이것은 이스라엘 서부에서의 형편이었고 동부에서의 입다의 통치와 아마 시대적으로 중첩되었을 것이다. 10:7은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셨다고 말했었다.

[2-5절]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단 지파의 마노아에게 아들을 주기를 뜻하셨다. 나실인에 관해서는 민수기 6장에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쳐진 사람을 가리킨다. 남자나 여자가 나실인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치면, 그는 술을 멀리하고 포도나무 열매를 먹지 말아야 하며 그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말아야 하고 또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했다(민 6:1-7). 그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말고 거룩한 서원을 계속 기억하며 지켜야 했다.

[6-9절]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임하였는데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셨으나 그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마노아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사람을 그들에게 다시 임하게 하시고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셨다. 마노아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10-12절]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임하였던 사람이 또 내게 나타났나이다.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사람이니이까? 가라사대 그로라. 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그 아이의 생활방식(미슈팟)과 그의 행위(마아세후)가 어떠하겠나이까?]

마노아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려 하였다.

[13-14절]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she)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마노아에게 주실 아들뿐 아니라, 그의 아내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나실인 서약의 규정에 준해 술을 멀리하고 깨끗지 못한 음식을 먹지 말고 하나님의 사자의 명하신 대로 다 지켜 행해야 했다.

[15-16절]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리나 내가 너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지 못함을 인함이었더라.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염소고기 음식을 대접하기를 원하며 조금 머물러 주기를 청했다. 그것은 그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생각하였고 여호와의 사자인 줄로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17-18절]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룰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숭하리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기묘’라는 원어8)는 ‘놀랍다, 오묘하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구약시대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이실 것이다. 그는 이사야 9장에서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불리었다(사 9: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다.

[19-23절] 이에 마노아가 염소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취하여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사자가 이적을 행한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본즉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이에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갔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여호와의 사자를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하나님과 동일하게 여겼다. 과연,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신 것이었다.

[24-25절]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삼손은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40년간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보내주신 사사이었다. 삼손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마카네단) 즉 ‘단의 진영’(KJV, NASB 난외주)에서 여호와의 영 곧 성령의 감동을 받기 시작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작정하신 때에 그의 종을 보내주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보실 때가 되었을 때 그의 사자를 마노아에게 보내셨다. 인류의 구원은 우리가 염려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의 일에 즐거이 동참하며 그에게 쓰임 받는 자가 되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을 보내실 가정을 택하셨다. 그것은 마노아의 가정이었다. 그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한나처럼, 자녀가 없음이 그들을 더욱 경건하게 만들고 믿음과 기도로 살게 하였을 것이다. 마노아는 기도하며 응답을 체험하였고 하나님의 사자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였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하신 일을 이루시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자.

셋째로, 우리의 소망과 능력은 하나님밖에 없다.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에게 고통당하던 이스라엘에게 소망은 하나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손을 보내주셨고 삼손도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을 받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성령 충만한 삶을 사모하자.

 

14장: 삼손이 블레셋 아내를 취함

[1-4절]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이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 중에서 결혼할 상대를 찾았다. 그것은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려 함이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 줄 알지 못했다. 삼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선한 소원이었다.

[5-7절]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 지르는지라.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음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며 그를 기뻐하였더라.

[8-10절]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떼와 꿀이 있는지라.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행하며 먹고 그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취하였다고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의 아비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배설하였으니 소년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11-14절] 무리가 삼손을 보고 30명을 데려다가 동무를 삼아 그와 함께하게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하리니 잔치하는 7일 동안에 너희가 능히 그것을 풀어서 내게 고하면 내가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고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줄지니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수수께끼를 하여 우리로 듣게 하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그들이 3일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베옷’이라는 원어(세디님)는 ‘세마포 보자기들’이라는 뜻이다(BDB, NASB). 그것은 밤에 겉옷처럼 걸치기도 했다고 한다. ‘겉옷’이라는 원어(칼리폿 베가딤)는 ‘갈아입는 옷들’이라는 뜻이다(BDB, KJV, NASB). 삼손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는 말의 뜻을 알아 맞추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3일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15-17절] 제7일[제4일]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리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취하고자 하여 우리를 청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가로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풀어 이르지 아니하도다. 삼손이 그에게 대답하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풀어 고하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풀어 이르리요 하였으나 7일 잔치할 동안에 그 아내가 앞에서 울며 강박함을 인하여 제7일에는 그가 그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풀어 이르매 그 아내가 그것을 그 민족에게 고하였더라.

제4일에9) 그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남편을 꾀어 수수께끼를 알게 하지 않으면 그 아비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위협하였다. 그것은 옳지 않고 선하지 않았다. 우리는 악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18-20절] 제7일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곳 사람 30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아비 집으로 올라갔고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 되었던 그 동무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은 딤나인들이 자기 아내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위협하고 그 수수께끼를 불법하게 알아낸 것에 대해 보복했고,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 사람들의 오랜 압제에 대한 보복의 시작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마음의 선한 소원을 따라 행하자. 삼손은 블레셋을 치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소원이었다. 그것이 죄 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마음의 선한 소원을 따라 행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싸우자. 삼손은 40년간의 블레셋의 압제에 대해 보복하기를 원하였고 또 딤나 사람들의 불법에 대해 분노하였다. 주께서는 주와 복음을 위해 집이나 가족을 버린 자에게 금세와 내세의 복을 약속하셨다(막 10:29-30).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다(빌 2:22). 오늘날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누가 하나님의 진리와 교회를 위해 싸우며 일하겠는가!

셋째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자. 삼손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에 의한 것이었다. 주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에 대해 스룹바벨에게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셨다(슥 4:6).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할 때 오직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며 행하자.

 

15장: 삼손이 많은 블레셋인들을 죽임

[1-2절]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새끼를 가지고 그 아내에게로 찾아가서 가로되 내가 침실에 들어가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가로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로 내가 생각한 고로 그를 네 동무에게 주었노라. 그 동생이 그보다 더욱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의 대신에 이를 취하라.

삼손의 장인이 그 딸을 임의로 다른 이에게 준 것은 잘못이었다.

[3-5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삼손이 가서 여우 300을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켜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

‘감람원’이라고 번역한 원어(케렘 자이스)는 ‘포도원과 감람원’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BDB, KJV, NIV, LXX, Vg, Targ). 삼손은 장인의 한 일에 대해 매우 분노했고 그 분노는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나타났다.

[6절]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혹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 그 동무 되었던 자에게 준 연고니라. 블레셋 사람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물질적 손실 때문에 삼손의 아내와 그의 아버지를 불태워 죽였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크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의 행위는 무지하고 악하였다.

[7-8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하고 블레셋 사람을 [다리와 허벅지를 치며] 크게 도륙[살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거하니라.

[9-10절] 이에 블레셋 사람이 올라와서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한지라. 유다 사람들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11-13절] 유다 사람 3천명이 에담 바위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려고 이제 내려왔노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그들이 삼손에게 일러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붙일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유다 사람 3,000명은 에담 바위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말하고 새 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틈에서 그를 끌어내었다.

[14-17절]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1천명을 죽이고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1천명을 죽였도다.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 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임하였다’는 원문은 ‘여호와의 영이 힘있게 내려오셨다’는 뜻이다. 삼손은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1천명을 죽였다. ‘라맛 레히’는 ‘턱뼈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레히’(레키)는 ‘턱뼈’라는 뜻이다.

[18-20절]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테슈아)[혹은 ‘승리’](BDB, NIV)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20년을 지내었더라.

삼손은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였다. 그는 자신의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자이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종이었다. 하나님께서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셔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것은 그의 기적이며 삼손의 기도에 대한 그의 긍휼하신 응답이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때에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을 지내었다. 이 표현은 징벌의 기간과 삼손이 사사인 기간이 겹침을 암시하는 것 같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처럼 악을 행치 말자.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악을 행했고 삼손의 아내와 장인도 불살라 죽였다. 삼손이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것은 공의의 보복이었다.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처럼 부당하게 이웃을 해치거나 죽이는 악을 행하지 말고 범사에 선한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인간은 존귀한 존재이지만, 범죄하고 징벌을 받아 죽어가는 사람은 그렇게 존귀하지 않다. 마지막 심판 때에 지옥에 던지우는 악인들은 그렇게 가치 있지 않다. 시편 49:20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말하며, 시편 119:119도,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신다’고 말했다. 사람의 존귀함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고 의와 선과 진실을 행하는 데 있다.

셋째로,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만 의지하자. 삼손의 힘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고백했다. 시편 62:11은,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라고 말한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주신다(대하 16:9).

 

16장: 삼손의 실패와 마지막 기도

[1-3절]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기생’이라는 원어(잇솨 조나)는 ‘매춘녀’를 가리킨다. 삼손은 자신의 정욕을 통제하는 데 약하였다.

[4-6절] 이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1천 1백을 네게 주리라.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도 매춘녀이었던 것 같다. 그도 참 사랑보다 돈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은 1,100개가 은 1,100세겔을 가리킨다면 그것은 약 13kg에 해당하고, 1데나리온이 은 5g이므로 약 2,500데나리온의 가치이며 그것은 노동자의 약 7년치 수입에 해당한다.

[7-9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일곱을 여인에게로 가져오매 그가 그것으로 삼손을 결박하고 이미 사람을 내실에 매복시켰으므로 삼손에게 말하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그 칡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같이 하였고 그 힘의 근본은 여전히 알지 못하니라.

‘푸른 칡’이라는 원어(예사림 라킴)는 ‘새 줄’(BDB, NASB, NIV)이나 ‘새로 잡은 짐승의 힘줄’(KB)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0-12절]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청컨대 무엇으로 하면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이제는 내게 말하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쓰지 아니한 새 줄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들릴라가 새 줄을 취하고 그것으로 그를 결박하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팔 위의 줄 끊기를 실을 끊음같이 하였고 그때에도 사람이 내실에 매복하였었더라.

‘새 줄’이라는 원어(아보심 카다쉼)는 7절의 ‘푸른 칡 새 줄’과 원어는 다르나 뜻은 비슷하다.

[13-14절]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때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내가 무엇으로 하면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가닥을 위선에 섞어 짜면 되리라. 들릴라가 바디로 그 머리털을 단단히 짜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어 직조틀의 바디와 위선을 다 빼어내니라.

‘위선’은 ‘베틀의 실’을 가리키고, ‘바디’는 베틀의 핀을 가리킨다.

[15-17절]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이 진정(콜 립보)[그의 모든 마음]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모라)(razor, 면도칼)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삼손은 그에게 그의 모든 마음을 토하였다. 나실인이 머리를 깎지 않는 것은 율법에 규정된 바이었고(민 6:5), 삼손이 태어나기 전에 여호와의 사자가 그의 모친에게 지시한 바이었다(삿 13:5).

[18-22절] 들릴라가 삼손의 진정을 다 토함을 보고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을 불러 가로되 삼손이 내게 진정을 토하였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은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이 밀렸고 힘을 잃었다. 그는 잠을 깨며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고 했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그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눈이 뽑혔고 놋줄로 매여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22절에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긍휼이 있을 것을 암시한다.

[23-27절] 블레셋 사람의 방백이 가로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다 모여 그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가로되 우리 토지를 헐고 우리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자기 신을 찬송하며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로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도 거기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3천명 가량이라. 다 삼손의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다 모여 그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였다. 또 백성들도 그들의 신을 찬송하며 즐거워하였다. 그들은 감옥에서 삼손을 불러내어 그들을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였다.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했다. 블레셋 모든 방백도 거기 있고 지붕에도 남녀가 3천명 가량 있어 다 삼손의 재주 부리는 것을 보았다.

[28-31절]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 아비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20년을 지내었더라.

삼손은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간 지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음란에 빠지지 말자. 사사 삼손은 말년에 가사의 매춘녀에게 들어갔었고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였다. 그는 육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의 실패의 근본적 원인이었다. 성령의 열매 중에는 ‘절제’의 열매가 있다(갈 5:23).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욕구를 절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삼손처럼 실패자가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잘 교훈하였다. 고린도전서 6:15-18,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우리는 음란에 빠지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서약을 잘 지키자. 삼손은 나실인 서약을 잘 지키지 못했다. 그는 그의 머리를 깎이지 않게 해야 했다. 삼손이 실패한 원인은 그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힘을 잃어버렸고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몇 가지 서약들이 있다. 첫째, 세례 서약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고 끝까지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 결혼 서약이 있다. 결혼한 부부는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어떤 형편에서든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부부로서의 순결과 의무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셋째, 임직 서약이 있다. 목사나 장로는 그 직분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신구약성경과 우리 장로교회의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성경의 교훈대로 살며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며 섬기기를 서약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 우리의 서약들을 성실히 지키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하자. 삼손은, 비록 범죄하고 실패하였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하였고 응답을 얻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또 자신을 향해 행한 악에 대해 원수 갚기를 원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그가 기대어 있던 그 건물의 두 기둥을 붙들고 힘을 다해 몸을 굽혔고 함께 죽기를 구했다. 집이 무너졌고 블레셋 모든 방백과 모든 백성이 함께 죽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들이,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다. 삼손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자신을 드려 원수를 갚은 헌신과 희생의 행위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하자. 우리는 늘 부족하고 실수가 많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하면 이 세상을 승리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17장: 미가의 우상숭배

사사기 17-21장은 사사 시대에 두 가지 죄악의 예들을 증거한다. 그 하나는 우상숭배의 죄이며 다른 하나는 음행의 죄이다. 첫 번째 것은 미가의 집과 단 지파의 우상숭배의 예를 기록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의 음행의 예를 기록한 것이다. 우상숭배와 음행은 사사 시대뿐 아니라, 인류의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대표적인 두 가지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1-3절]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그 어미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1천 1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미가가 은 1천 1백을 그 어미에게 도로 주매 어미가 가로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돌리리라.

은 1,100개, 아마 1,100세겔은 삼손 때 블레셋 방백들이 들릴라에게 준 금액으로서 매우 큰 액수이었다. 미가는 그것을 어머니에게서 도둑질하였으나, 어머니의 저주의 말씀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어머니께 사실을 고한 것 같다. 어머니의 돈을 훔친 것은 큰 죄이다(잠 28:24).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의 고백을 듣고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했다. 여기에 도덕적 혼란이 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엄히 책망했어야 했다. 죄의 고백이 복 받을 일은 아니다. 더구나 그가 이미 저주를 선언한 후이었다. 그는 쉽게 저주하고 쉽게 축복하였다. 그것은 다 도덕적 결함이었다.

또 미가의 어머니의 경건도 순수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의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부어만들기를 원하였고 그 우상을 만들기 위해 그 은을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해 드렸다. 이것은 참으로 무지와 혼란일 뿐이다. 그것은 아들을 위하는 일이 아니고 아들을 멸망케 하는 일이었다. 그가 아들을 참으로 위하려면 모든 우상과 우상숭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바로 섬겨야 했다.

[4-5절] 미가가 그 은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미가 그 은 2백을 취하여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우상숭배는 미가의 어머니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미가의 집에는 신당이 있었고 그는 에봇과 드라빔도 만들었다. 에봇은 제사장의 옷들 중 하나이다. 또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으로 섬기는 우상이다. 창세기 31장에 보면,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신상인 드라빔을 훔쳐 자기 약대의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아서 그것을 숨긴 일이 있었다. 미가는 우상숭배자이었다. 그는 또 자기 아들들 중 하나를 세워 제사장을 삼았다.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만 될 수 있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던 미가는 에브라임 지파의 자손이었을 것이다. 그가 후에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을 보면 그는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 아들들 중의 하나를 임의로 세워 제사장을 삼은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악이었다.

[6절]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본문은 사사 시대를 잘 묘사한다(삿 21:25도).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표현은 사람들이 주관주의와 인본주의의 넓은 길을 걷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통일된 하나님의 지식이 없었다. 진리 안에서의 다양성은 좋은 것이지만, 진리에 대한 다양한 견해, 그것도 서로 모순되는 견해를 용납하는 것은 혼란일 뿐이다. 사사 시대가 바로 그런 종교적 포용주의 혹은 다원주의의 시대이었다. 그것은 결국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이다. 바른 길은 인간의 주관적 사상들을 버리고 성경에 계시된 진리의 바른 사상을 받아들이고 믿고 실천하는 것이다.

[7-9절]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뇨?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유다 베들레헴’은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과 구별하는 표현이다(사사기 17장과 19장 및 룻기 1장 등에 나옴). 그는 레위인으로 거기 우거했다. 그는 거할 곳을 찾으려고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지역에서 그들의 거처할 성읍으로 여섯 개의 도피성을 포함하여 48개의 성읍들을 얻었었다(수 21:1-41).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음으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레위인들은 경제적 안정을 찾아 방황한 것 같다. 그 레위인도 그러하였던 것 같다.

[10-11절]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레위인은 제사장이 될 수 없다. 단지, 그들 중 아론의 자손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가는 그 레위 소년을 자기 집의 제사장으로 초청했다. 그 레위 소년은 경제적 어려움을 가진 터이므로 그 집에 들어가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을 것이다.

[12-13절]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미가는 종교적 열심이 있었고 하나님의 복을 사모했으나,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복을 받기보다 오히려 그의 징벌을 받기에 적합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다 우상이다. 우리에게 하나님 대신에 절대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은 다 우상이다. 우리의 절대적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뿐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최종적, 절대적 의미이시며 가치이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우상숭배의 어두움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참된 경건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진리의 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진리의 지식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성경에 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신구약 66권에 충분하게 다 계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책에 정통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여러 사상과 주장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더욱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귀를 기울이며 그 교리와 생활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또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건전하게 해석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 죄인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경건과 도덕성의 회복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경건하고 온전한 인격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다(시 119:105).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딤후 3:16-17). 우리는 모든 성경말씀을 다 믿고 그 모든 교훈을 다 행해야 한다. 우리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온전해야 한다.

 

18장: 단 지파의 우상숭배

[1절]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단 지파는 여호수아 때에 소라와 에스다올과 아얄론과 에그론 등의 성읍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 기업으로 얻었으나(수 19:40-46), 사사기 1:34에 보면, 아모리 사람이 그들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했고 그래서 그들은 다른 곳에서 기업의 땅을 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2-6절]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 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단 자손들이 땅을 탐지하려 보낸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은 미가의 우상숭배를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레위 소년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 소년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평안이 있으리라고 말했다.

[7-10절]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와서 그 형제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가로되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그 다섯 사람은 라이스에 한가하고 평안한 사람들이 있으니 올라가 그들을 쳐서 기업을 삼자고 그 형제들에게 보고하였다.

[11-16절] 단 지파 가족 중 6백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올라가서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치니 이러므로 그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단의 진영]이며 그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무리가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다섯 사람이 그 편으로 향하여 소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하고 단 자손 6백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서니라.

단 지파의 용사 600명은 라이스로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이전에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들에게 그 집에 레위 사람 제사장이 있음을 말하자 그들은 그 집 앞에 섰다.

[17-20절]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할 때에 제사장은 병기를 띤 6백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하여 내매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땅을 탐지하러 갔던 그 다섯 사람은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했다. 그것은 명백히 강도짓이었다. 그들은 그 제사장에게 그들과 함께 가서 그들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고 제안하였다. 그 제사장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갔다. 그 레위 사람도 의와 진리 안에서 신실하게 행하지 않았다.

[21-26절]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낯을 돌이켜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미가가 가로되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 하느냐?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단 자손들은 미가의 우상들을 강탈하였고 그들을 따라온 사람들을 죽음으로 위협하였다. 우상숭배는 부도덕한 일들과 친구이다. 참 경건만이 정직과 선함과 겸손과 진실을 동반한다.

[27-31절]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모세’라는 말은 히브리어 전통본문에는 ‘므낫세’라고 되어 있다.10) 이 구절은 정통유대교 서기관들인 마소라 학자들이 구약성경에서 글자의 진실성을 의심하여 글자를 정상적인 줄 위에 쓴 네 곳 중의 한 곳이다. 즉 마소라 학자들은 이 구절을 므낫세보다 모세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았다. 모세라는 본문은 그가 레위 소년이라는 뜻에도 맞다. 그러나 므낫세라고 하면 어려움이 있다. 성경에는 레위 자손 중에 므낫세라는 이름의 아들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로잡히는 날까지’라는 표현은 사무엘이나 사울 때에 블레셋에게 패배한 때를 가리키든지, 아니면 북방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때를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 미가가 만든 새긴 신상이 단 자손들에게 있었다.

본장은 사사 시대의 한 예로서, 단 지파의 다섯 명의 정탐꾼이나 선발된 600명의 병사들이나 단 지파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음을 증거한다. 사사 시대에는 거짓된 신들, 거짓된 제사장들, 거짓된 예배들이 유행하였다. 오늘날에도 교회들과 교인들 가운에 여러 가지 혼란한 일들이 많다. 자유주의 신학, 교회연합운동, 은사주의, 세상적 음악, 돈 사랑 등의 풍조가 많다. 더 이상 경건하고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가지지 못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신구약성경에 계시되고 교훈된 대로만 믿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밝히 계시하는 삼위일체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또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고 그의 재림만 소망해야 한다. 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경건하고 거룩하고 올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19장: 기브아의 죄악

본장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성읍의 동성애와 집단 강간의 악행의 부끄러운 일을 그대로 증거한다. 이것은 인간의 극악한 부패성과 구약교회의 심각한 부패상을 증거한다.

[1-3절]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 그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하나와 나귀 두 필을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비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비가 그를 보고 환영하니라.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경건해야 할 이 레위인은 육신의 감정에 있어서 연약했고 절제심이 적었고 한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고 첩을 두었고 게다가 그의 첩은 음행을 했다. 음행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重罪)이다. 이 첩은 행실이 단정치 못했을 뿐 아니라 아내의 의무에 성실치 않은 자이었다. 그러나 그 남편은 그 일에 대해 너그러운 용서심을 가진 자이었다.

[4-15절] 그 첩 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를 머물리매 그가 삼일을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나흘만에 일찌기[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어 그대의 기력을 도운 후에 그대의 길을 행하라.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첩 장인의 간청으로 다시 유숙하더니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찌기[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돕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그 사람이 첩과 하인으로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첩 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해가 저물어가니 청컨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찌기[일찍이] 그대의 길을 행하여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나아가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모두 앞으로 행하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이켜 들어가서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 첩의 장인은 그를 삼일 동안 머물게 하였고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였고, 나흘째 날에도 그를 머물게 하였고 다섯째 날에도 그렇게 하려 하였으나, 그 레위인은 해가 기울어가는 때에 일어나 떠났고, 해가 지려 하는 때에 여부스 곧 예루살렘 맞은편에 이르렀다. 그들은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려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다. 경건과 선행은 같이 간다. 악한 자는 불경건할 뿐 아니라, 이웃 사랑도 없어서 이웃에게 불친절하고 나그네를 대접할 줄도 모른다.

[16-21절] 이미 저물매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이더라.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거리에 행객이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뇨?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보리가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 우리들과 함께한 소년의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에브라임 출신으로 거기 우거하던 노인은 선하고 인정이 있었다.

[22-26절]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하나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동틀 때에 여인이 그 주인의 우거한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누웠더라.

‘상관한다’는 원어는 ‘안다’는 뜻으로 ‘성관계를 가진다’는 뜻이다. 그 불량배들은 노인에 대한 공경심과 나그네에 대한 친절이나 예절이 없었고 폭력적이고 음란했다. 그들은 동성애의 음란 행위를 원하였다. 그것은 마치 소돔 고모라 시대의 상황과 비슷하였다(창 19:5). ‘망령된 일’(니발라)이란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악행’이라는 뜻이다. 그 노인은 두 번 “이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고 말했다. 두 번째의 원어는 강한 금지를 나타낸다.11) 노인은 경건하고 도덕성이 있었다. 그의 딸이 ‘처녀’이었던 것도 그 사실을 증거한다. 그 불량배들은 그 첩을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며 새벽 미명에 그를 놓아 보내었다. 집단 강간을 한 것이다. 동틀 때에 그 여인은 그 주인의 우거한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누웠고 마침내 죽었다.

[27-30절] 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사사시대의 두드러진 두 가지 죄악은 우상숭배와 음란이었다. 작은 죄악의 포용은 한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부패시키고 한 부패된 마을의 포용은 한 지파 전체의 분위기를 부패시킨다. 작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진다. 그러므로 작은 죄 하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피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탐욕과 음행은 큰 죄이다.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말했다(골 3:5). 또 히브리서 13:4는, 혼인은 모두에게 귀하며 잠자리는 더럽지 않은 것이지만,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피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는가?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또 인간편에서도 우리는 거룩하게 살려는 굳은 결심과 성실한 노력을 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부부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권징을 충실히 시행함으로써 경건과 도덕성의 해이와 부패를 막아야 한다. 교리적 도덕적 오류를 품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권면하며 책망하고 그와의 교제를 끊어야 한다.

 

20장: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와 싸움

[1-3절]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왔는데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40만이었으며 이스라엘 자손의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본장에 ‘일제히’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 두 번은 ‘일제히’라고 번역되었고(1, 8절) 한 번은 ‘하나같이’라고 번역되었다(11절). ‘일제히’ 혹은 ‘하나같이’라는 원어(케이쉬 에카드)는 ‘한 사람같이’라는 뜻이다. 세 번째의 경우는 ‘합심하여, 연합하여’라는 말(카베림)이 함께 쓰였다. 비록 기브아와 베냐민의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의 단합은 깨어졌지만, 그 나머지 지파들은 일치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한 사람같이 모였다.

[4-7절]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내 첩으로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음행’이라는 원어(짐마)는 ‘악행, 음탕함’이라는 뜻이며, ‘망령된 일’이라는 원어(네발라)는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이다. 기브아인들의 집단 강간은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일이다.

[8-11절]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가로되 우리가 하나라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라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우리가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 뽑아서 그들을 치되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에 열, 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예비하고 그들로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의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연합하여 그 성읍을 치려 하였다.

[12-14절]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그들은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붙여 죽이게 하라고 말했으나 베냐민 자손은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않았고 도리어 각 성에서 기브아에 모여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였다.

[15-18절] 그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2만 6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7백인데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7백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40만명이니 다 전사라.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지니라.

그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용사의 수는 26,000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 700명은 다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왼손잡이 전사들이었다. 이스라엘 사람의 용사들의 수는 40만명이었다.

[19-23절]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2만 2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자손과 싸웠으나 베냐민 자손은 이스라엘 사람 22,000명을 땅에 엎드러뜨렸다.

[24-28절]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1만 8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그 이튿날에도 베냐민 자손이 다시 이스라엘 자손 18,000명을 땅에 엎드러뜨렸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틀 동안 40.000명이 전사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이틀간의 전쟁에서 패배한 까닭이 무엇일까? 우상숭배와 음행은 단 지파나 기브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 전반의 문제이었던 것 같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어느 정도 징벌하셨다고 보인다. 또 기브아의 음란한 소문은 일찍 이스라엘의 다른 곳들에 알려졌을 것이나 그들이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것을 권징하지 않았던 잘못도 컸다고 보인다. 작은 누룩은 마침내 베냐민 지파 전체에 도덕적 해이를 가져왔다.

[29-32절] 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제3일에 베냐민 자손에게로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매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길 곧 한편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편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30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이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였다.

[33-37절]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 항오를 벌였고 그 복병은 그 처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1만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심히 맹렬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2만 5천 1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간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에 돌입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초장’이라는 원어(마아레)는 ‘빈 들판’이라는 뜻이다(BDB).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베냐민 자손을 쳐서 파하게 하셨으므로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사람 25,100명을 죽였다.

[38-42절]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상약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미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물러가고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30명 가량을 쳐죽이기를 시작하며 이르기를 이들이 정녕 처음 싸움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연기 구름이 기둥같이 성읍 가운데서 일어날 때에 베냐민 사람이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이스라엘 사람은 돌이키는지라. 베냐민 사람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이켜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서 진멸하니라.

[43-48절]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쌌더니 기브아 앞 동편까지 쫓으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1만 8천이니 다 용사더라. 그들이 몸을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5천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2천명을 죽였으니 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2만 5천이니 다 용사더라. 베냐민 6백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달을 지내었더라.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쉬는 곳’이라는 원어(메누카)는 ‘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地名)인 것 같다(BDB). 이스라엘 사람은 베냐민의 땅의 온 성읍을 불살랐고 모든 사람들과 가축들을 다 죽였다. 도망한 6백명 외에는, 한 지파가 거의 다 멸절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회의 거룩을 잘 지켜야 한다. 교회는 법적으로 이미 거룩하지만 실제적으로도 거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었다(엡 5:26-27). 그러므로 교회는 음행을 포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에 권징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권징이 없는 교회는 사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해이해진다. 우리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해야 하고(딛 3:10) 또 교인들 중에 음행하거나 탐욕적이거나 우상숭배하거나 남을 욕하거나 술취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와 교제를 끊고 그를 교회에서 내어쫓아야 한다(고전 5:11-13).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말씀만 믿고 성경 교훈대로 모든 죄를 버리고 겸손히 의와 선만 실행해야 하고 또 교회는 성경의 교훈대로 권징을 충실히 시행해야 한다.

 

21장: 베냐민 지파의 회복

[1-4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통곡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이튿날에 백성이 일찌기[일찍이]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번제는 속죄와 헌신을 상징하며 화목제는 속죄와 교제를 상징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속죄의 은혜를 구하며 헌신을 다짐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구한 것이라고 보인다.

[5-7절]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이스라엘 자손은 열두 지파 중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된 상홍을 안타까워하며 베냐민 지파의 회복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8-12절] 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치 아니하였으니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회중이 큰 용사 1만 2천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너희의 행할 일은 모든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 하였더니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4백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

이스라엘 회중은 큰 용사 12,000명을 야베스 길르앗으로 보내어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고 길르앗 거민 중 젊은 처녀 400명을 얻었고 그들을 실로의 진으로 끌어왔다.

[13-15절]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그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인 중에서 살려둔 여자를 그들에게 주었으나 오히려 부족하므로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궐이 나게 하셨음이더라.

온 회중은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케 했고 야베스 길르앗 처녀들을 그들에게 주었다.

[16-18절] 회중 장로들이 가로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 또 가로되 베냐민의 도망하여 면한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회중의 장로들은 베냐민 지파의 회복을 위해 생각하였고 배려하였다. 그들은 잘못했던 형제들에 대해 너그러운 사랑을 가졌다.

[19-21절] 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베냐민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그들은 한 방책을 생각해내었다. 실로에서 해마다 여호와을 위한 절기가 있는데, 베냐민 자손에게 명하기를 포도원에 숨었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면 그들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께 한 맹세를 어기지 않고 베냐민 지파를 회복시킬 한 방도라고 생각했다.

[22절]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콘누누 오삼)[우리를 위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라](BDB, KJV).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25절]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니라.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을 떠나 각각 그 지파,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되 곧 각각 그곳에서 나와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왕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를 추종하지 않고, 왕이 없는 자들처럼 자신들의 생각대로 살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한 맹세를 꼭 지켜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맹세한 대로 야베스 길르앗을 징벌하였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 맹세한 대로 베냐민 자손에게 딸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한 맹세를 지켰다.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된다. 신명기 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전도서 5: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시편 15:4, “[하나님의 장막에 유할 자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우리는 하나님께 한 맹세를 기억하고 중요하게 여기며 꼭 지키자.

둘째로, 우리는 형제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베냐민 지파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졌다. 비록 베냐민 지파가 잘못하여 징벌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거의 멸절된 그 지파를 긍휼히 여기며 그 지파가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며 그 방책을 모색하였다. 형제를 긍휼히 여기고 배려하는 것이 사랑이다. 고린도전서 13:5,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로마서 15:1-2,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형제를 책망하거나 징벌할 때에도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셋째로, 우리는 사사 시대의 혼란을 본받지 말자. 25절,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옛날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시고 또 우리의 왕이시다. 우리는 그를 왕으로 모시고 그가 주신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책을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은 우리의 생활의 지침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미주

1) MT, BDB; Vg, Targ, KJV, NASB.

2) ‘여선지’라는 원어(잇솨 네비아)는 ‘여자 선지자’라는 말로서 ‘여자’(잇솨)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3) ‘극히 약하다’는 원어(핫달)는 ‘가장 약하다’는 뜻이요, ‘제일 작은 자’라는 원어는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자’라는 뜻이다.

4) ‘반드시’라고 원어()는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지만(KJV, NASB), 아마 단지 직접화법을 도입하는 접속사일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번역할 것이 없다(NIV, BDB).

5) Lange, NIV.

6) Matthew Poole, A. R. Fausset, NBC.

7) ‘너와’라는 원어(알레카)는 ‘너 때문에’ 혹은 ‘너뿐 아니라’라는 뜻이라고 본다.

8) 히브리어 성경에는 필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나(케팁), 마소라 학자들은 펠리라고 읽으라고 제안하였다(케레).

9)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과 라틴어 벌게이트역은 ‘제7일’이라고 되어 있으나 어떤 영어성경들은 고대의 역본들(LXX, Syr, It)을 따라 ‘제4일’이라고 본문을 고쳤다(NASB, NIV). 그것은 문맥적으로 타당해보인다.

10) 어떤 영어성경들(KJV, NASB)은 히브리어 전통본문대로 ‘므낫세’라고 읽지만, 고대 헬라어 70인역(LXX), 옛 라틴어역, 라틴어 벌게이트역은 ‘모세’라고 읽었다. ‘게르손’은 원문에 ‘게르솜’이라고 되어 있다.

11) 첫 번째의 ‘행치 말라’는 원어는 알 타아수이지만 두 번째의 ‘행치 말라’는 원어는 타아수이다. 라는 단어는 강한 금지를 표시할 때만 쓰인다.

12) 어떤 히브리어 사본들과 옛 수리아어역은 “그 여자가 들어가니라”고 되어 있고, 어떤 영어역이 그것을 채택했다(KJV, NASB). 그러나 히브리어 전통본문은 “그 남자[보아스]가 들어가니라”고 되어 있다(MT, 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