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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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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우리는 신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는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 다양한 풍조들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본서의 저자는 이사야이다. 옛 전통에 의하면, 그는 유다왕 므낫세 통치 기간 중 톱으로 켜져 순교를 당하였다고 한다. 성경비평학자들은 이사야 40장 이하를 ‘제2 이사야서’라고 부르며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에 익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비평적 견해가 잘못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사야 40장 이하의 부분에 나타난 지리적 배경, 동식물에 관한 언급, 또 기후 조건 등은 저자가 바벨론보다 팔레스틴에 살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백향목, 디르사 나무, 상수리나무 등은 팔레스틴의 고유의 나무들이다.

2. 우상숭배에 대한 책망(44:12-17; 57:3-10; 65:2-4)은 왕국 말기의 상황에 맞고 포로 시대나 그 후에 맞지 않는다. 에스라, 느헤미야나 말라기 등을 보면, 포로 시대나 그 후에는 우상숭배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3. 이사야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의 용어나 문체의 차이점은 그것들이 다루는 주제에 관계되며, 두 부분의 공통점 혹은 유사점도 분명히 많다. 예를 들어, 구약의 다른 곳에서 오직 5회만 나오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이사야 전반부에서 21회, 후반부에서 14회 나온다. 보수적 학자들은 두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구절들이 적어도 40-50구절이 된다고 말한다.1)

4. 이사야 후반부도 주전 7, 8세기의 선지자들, 특히 미가의 글들과 문학적 유사성이 많다. 이사야 후반부는 언어적으로 바벨론 포로 시대의 특성인 아람어나 바벨론어의 영향이 전혀 없다. 그것은 전반부와 같이 순수한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

5. 무엇보다, 신약성경은 이사야서 전체를 한 사람 이사야에게 돌린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2:38, 40에서 사도 요한은 이사야 53:1과 6:10을 인용하면서 이사야의 글이라고 증거한다.

이사야서의 주요 내용은 심판과 구원이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62번, ‘영광’이 38번,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거룩한 자’라는 말이 약 27번, ‘남은 자,’ ‘남는 자,’ ‘남아 있는 자’라는 말이 13번 사용되었다.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Karl Feyerabend,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to the Old

Testament.

Holladay 

William L. Holladay,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NBC

The New Bible Commentary. IVP

 

 

제목차례

 1장: 이스라엘과 유다의 부패상

 2장: 하나님의 날       

 3장: 유다의 멸망을 예언함   

 4장: 시온의 회복        

 5장: 하나님의 심판    

 6장: 이사야의 환상   

 7장: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함 

 8장: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따르라

 9장: 메시아 왕국  

10장: 앗수르에 대한 심판  

11장: 메시아 시대    

12장: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 찬송함  

13장: 바벨론에 대한 경고   

14장: 바벨론 왕의 멸망    

15장: 모압에 대한 경고  

16장: 모압의 멸망    

17장: 다메섹에 대한 경고    

18장: 구스에게 주는 메시지 

19장: 애굽에 대한 경고        

20장: 애굽과 구스가 사로잡힐 것  

21장: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

22장: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23장: 두로에 대한 경고    

24장: 땅을 심판하심     

25장: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함   

26장: 구원의 노래    

27장: 이스라엘의 회복   

28장: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29장: 예루살렘에 대한 진노           

30장: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은혜

31장: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32장: 메시아의 통치    

33장: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34장: 열국에 대한 심판     

35장: 새 세계        

36장: 산헤립의 침입        

37장: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38장: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      

39장: 바벨론 사자의 방문   

40장: 이스라엘의 회복    

41장: 너를 도우리라    

42장: 주의 종        

43장: 하나님의 백성     

44장: 유일하신 하나님   

45장: 하나님은 유일한 구원자  

46장: 하나님은 절대주권자   

47장: 바벨론의 멸망     

48장: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49장: 이스라엘의 회복 

50장: 메시야의 사역     

51장: 하나님의 의와 구원    

53장: 메시야의 고난과 대속사역  

54장: 이스라엘의 영광스런 미래  

55장: 하나님을 청종하라     

56장: 고자(鼓子)와 이방인도 받으심  

57장: 우상숭배자들을 고치심  

58장: 나의 기뻐하는 금식   

59장: 하나님께서 자기 의로    

60장: 영광스럽게 회복됨    

61장: 메시아의 구원 시대   

62장: 예루살렘의 회복         

63장: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함   

64장: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을 간구함

65장: 하나님의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66장: 하나님의 심판     

 

 

1장: 이스라엘과 유다의 부패상

1-9절,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

[1절]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 . . .

본문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異像)이라”고 말한다. 이사야는 주전 740년부터 680년 사이에 남쪽 유다 나라에서 사역한 선지자이었다. 그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선지자이며 다른 선지자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인용되었다(Poole).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로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달하였다. 그들이 전한 내용은 모세의 율법과 일치하며 그 율법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전한 내용의 요지는 죄의 책망과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 또한 회복의 예언들이며 그 회복의 예언들 중에는 메시아 예언도 포함된다.

[2-3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 . . .

이사야는 말한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됨을 지적하셨고,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그 지적을 전달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배려하고 양육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효막심하고 배은망덕한 자식같이 하나님을 거역했다. ‘거역하다’는 원어(파솨)는 ‘배반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수없이 많이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았더라면 하나님께 순종했을 것이다. 그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자들이었다. 소와 나귀가 그 정도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들은 주인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4-9절]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 . . .

이사야는 말한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한 나라이며 허물 진 백성이며 행악의 종자이었고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이신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모하고 귀히 여겨야 할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버렸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를 맞으면서도 더욱 패역하였다. ‘패역하다’는 원어(사라)는 ‘거역하다, 변절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배교하며 변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패역하였다. 그것은 인간 본성 속에 있는 치료 불가능한 죄성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17:9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심히 부패했다’는 원어(아누쉬)는 ‘절망적이게 악하다’(KJV), ‘치료 불가능하다’(NIV)는 뜻이다.

이사야는 또 말한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징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평안을 빼앗으셨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었다. 하나님의 징벌은 이스라엘의 높은 지도자들로부터 비천한 평민들까지 미쳤고, 그것은 육신적 질병과 정신적 피곤을 포함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주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은 중한 병에 걸렸으나 의사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적절하고 좋은 약의 처방을 받지 못한 환자와 같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받지 못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또 이스라엘 땅은 황무하였고 성읍들은 불에 탔고 토지는 이방인에게 삼키웠다. 하나님의 징벌은 사회적, 경제적 재앙으로 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징벌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었다.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오이밭--KJV, NASB)의 상직막[원두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그들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로 조금 남겨 두셨다. 이사야서에는 ‘남은 자,’ ‘남는 자,’ ‘남아 있는 자’ 등의 말이 약 13번 나온다.2)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배반하지 말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효막심한 자식 같고 배은망덕한 자같이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짐승보다 못한 자들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이신 하나님을 버렸고 매를 맞으면서도 더욱 거역하며 변절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치료 불가능한 죄성을 증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배반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엄하게 징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육신적 건강과 정신적 평안을 빼앗으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주지 않으셨다. 그는 또 그들에게서 사회적 평안과 경제적 평안도 빼앗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음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징벌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조금 남겨두셨다. 그것은 포도원의 망대 같고 오이밭의 원두막 같았다. 하나님께서 만일 조금 남겨두지 않으셨으면 이스라엘은 옛날 소돔과 고모라 성같이 완전히 멸망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그러하다. 구원의 본질은 의(義)의 회복이다. 우리에게 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했다(롬 3:21-24).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과 그의 의(義)만 믿고 의지하자.

 

10-20절, 헛된 종교의식

[10절]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옛날 멸망당한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과 다를 바 없었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는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성들이었지만, 심히 죄악되었고 불경건하고 음란하였고 이웃 사랑이 없었다(창 13:13; 18:20; 19:1-13; 겔 16:49-50).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경건한 도덕적 사회를 세우는 데 무관심하고 해이하고 안이하고 부도덕했던 자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11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 . . .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을 드렸고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드렸다. 오늘날 말로 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인 예배들을 드렸고 헌금들을 바쳤다. 그러나 그런 예배와 그런 제물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였다.

[12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밟는다’는 원어(라마스)는 ‘짓밟는다’는 뜻이다(BDB, NASB).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는 말씀은 형식적으로 성전을 드나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고 멸시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속임수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을 멸시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보이러 오라고 그들에게 요구한 적이 없으셨다.

[13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 . . .

하나님께서는 또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많은 제물들을 ‘헛된 제물’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마음에 없는 것들, 즉 형식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물들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분향과 월삭과 안식일과 정한 절기들의 모임들을 가증한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미워하셨다. 왜 그러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종교의식이 아니고 그들이 악을 떠나는 것이었다. 악을 버리지 않고 악을 행하면서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헛된 일이며 가증한 일이었다. 오늘날도 우리는 악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겨야 하며, 그렇지 않은 형식적인 예배나 기도나 헌금, 형식적인 예배회들과 기도회들은 헛된 일이며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14절]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정기 집회들은 헛된 일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일이며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일이며 그가 지시기에 곤비한 일이었다. 그런 형식적 종교 의식은 결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는 제발 그런 예배, 그런 헌금, 그런 기도, 그런 찬양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자는 참된 경건과 순종심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15절]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 의미가 있고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많이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기도는 왜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이었는가? 그것은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손에 가득한 피는 살인의 피이며 미움의 피이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실상 살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요일 3:15). 그들에게 미움과 살인이 가득한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는가?

[16-17절]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책을 가르쳐주셨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나님의 대책은 한마디로 회개하라는 것이다. 모든 악을 버리고 선과 의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와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에서 표현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구주를 믿고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의와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성경의 요점이다. 우리는 악을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하는가?

[18-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 . .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많은 죄를 씻는 길은 한마디로 회개 곧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 곧 마음의 순종이다.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였지만, 이제는 그의 뜻에 즐거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말하였다(행 2:38).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형식적 교회생활을 하지 말자. 형식적 교회생활이란 악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모양만 가지고 교회에 드나드는 생활이다. 형식적인 교인에게는 진실한 마음, 진지한 마음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배, 그런 기도, 그런 헌금, 그런 집회들을 헛되고 가증하며 그가 지기에 곤비한 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형식적 교회생활을 하지 말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과 진지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악이라고 지적하신 바를 회개함이 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기도하거나 헌금하거나 봉사하는 자가 되지 말자.

바른 교회생활은 악을 버리고 계명을 순종하면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악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우리는 십계명에 어긋나는 모든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지 않은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치 않은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마음으로라도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음란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탐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계명의 내용은 의와 선이며 사랑이다. 우리는 범사에 올바르게 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동정하고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에 대해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21-31절, 예루살렘의 타락과 회복

[21-23절]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의 타락한 현실을 지적한다. 예루살렘 성은 본래 ‘신실하던 성읍’이었으나, 지금은 육신적 음행과 영적 음행 즉 우상숭배가 있다. 공평과 의가 충만했던 그 성은 지금 살인자들이 가득하다. 거기에는 의에 대한 이성과 양심의 판단이 없다. 경건의 변질은 도덕적 부패를 가져온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난다(잠 16:6). 선지자는 또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고 말한다. 찌끼가 섞인 은이 가치가 떨어지며 물이 섞인 포도주가 맛이 떨어지듯이, 그 성은 무가치하여졌고 더 이상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 못하였다.

또 유다의 방백들은 패역하였다. ‘패역하다’는 원어(사라르)는 ‘완고하고 반항적이다’라는 뜻이다. 방백들 즉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향해 완고하고 반항적이었다. 그들은 도둑들을 처벌하기는커녕 도둑들과 단짝이 되었다. 그들은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좋아하였다. 그들은 고아나 과부 같은 소외 계층의 사람들의 억울한 송사를 정당하고 의롭게 처리하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당시 구약교회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심히 부패해 있었다.

[24-27절]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아비르)[권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救贖)이 되고 그 귀정(歸正)한[회개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선지자는 자기의 말과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을 구별한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 속에서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며 말씀을 선포할 때도 있다. 이처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선포하는 자이었다. 이사야는 타락한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함께 전한다. 그것은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의 마음을 함께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예루살렘 성을 징벌하시고 깨끗게 하시고 이전과 같이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24, 25, 26절에서 ‘내가,’ ‘내가,’ ‘내가’라고 반복해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실 것이다. 심판과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이시며 또한 구원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것인가? 그는 악인들을 제거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대적과 원수는 바벨론 사람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중 악인들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포로로 삼은 바벨론 나라를 징벌하실 것이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회복의 기회가 될 것이지만, 그는 또한 이스라엘 중의 모든 악인들도 공의로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찌끼와 혼잡물을 온전히 제하여 버리실 것이며 그들의 지도자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시키실 것이다. 한 사회가 바르게 되려면 그 사회의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이 바르게 되어야 할 것이다. 천국에는 악인들이 없을 것이다. 참된 교회 안에도 드러나게 죄를 짓는 악인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예루살렘은 다시 경건하고 의로운 성이 될 것이다. 이것은 참된 교회와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죄인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구원은 의의 회복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로 사람을 구원하시고 의인 되게 하시며(롬 1:17; 3:21-26) 또 실제로 의와 거룩을 행케 하실 것이다. 구원받고 회복된 새 세계는 의의 세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참된 교회와 천국에서 그것을 볼 것이다.

[28-31절]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이사야는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말한다.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거슬러 행한 자들은 다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들이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고 그들이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말은 그들이 거기서 행하였던 우상숭배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라고 말했고(렘 2:20), 호세아는, “저희가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라고 말했다(호 4:13). 그들은 그 우상숭배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며 물 없는 동산 같을 것이다.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악인들은 물 없는 동산에 잎사귀가 마른 상수리나무같이 완전히 불타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철저한 공의의 심판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과거의 잘한 점을 자랑하지 말고 현재의 부족을 살피자. 예루살렘 성은 신실하고 공평이 충만하며 의가 있는 성이었고 은과 같이 가치가 있고 포도주같이 맛이 있고 즐거움을 주는 도시이었으나, 지금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찌끼가 섞인 은 같고, 물이 섞여 맛이 떨어진 포도주같이 되었다. 과거의 잘한 것은 잘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가 어떠한지 물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상태와 부족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구주 하나님만 의지하자.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은 심히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 가운데서 찌끼를 청결케 하고 그들을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구주이시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실제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줄 바로 깨닫고, 사람을 자랑치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찬송하며 항상 구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자.

셋째로, 우리는 실제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자.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와 방향은 의와 거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를 이루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법적으로 이미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실제 삶에서도 의롭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불경건하고 불의하고 불결한 자들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현실 속에서 실제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자.

 

 

2장: 하나님의 날

1-4절, 여호와의 전의 산

[1-2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 . . .

본문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고 말한다. 미가 4:1-3에도 본문과 똑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사야와 미가는 같은 시대에 사역한 선지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 선지자에게 같은 내용의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용은 “말일에” 즉 “마지막 날들에” 되어질 일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관한 것이었다. 신약시대는 말세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말했고(벧전 4:7), 사도 요한도 그의 서신에서 “이것이 마지막 때라”고 말했다(요일 2:18).

성경에 의하면, 인류 역사는 대략 6천년이다. 구약시대가 약 4천년이며 신약시대가 약 2천년이다. 천지 창조는 주전 4천년경에 있었다. 노아의 출생은 대략 주전 3천년경에 있었고, 아브라함의 출생은 대략 주전 2천년경에, 또 다윗의 출생은 대략 주전 천년경에 있었다. 신약교회 2천년은 교회 확장의 기간이었지만, 그 중 대략 주후 500년부터 1500년까지 천년 동안은 교회가 부패하고 변질된 기간이었고, 주후 1500년대 초에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교회가 새로워졌고 부흥하였다.

19세기 이후 세계복음화가 힘있게 촉진되었으나, 20세기에 들어와 교회들은 또다시 불신앙과 배교에 떨어지고 있고, 잘못된 연합운동과 은사운동으로 인해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역사의 대종말이 가깝다고 느껴진다. 인류 역사 6천년은 지루하고 매우 긴 시간이다. 역사는 시작이 있고 대종말이 있다. 그 후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가 펼쳐진다. 복된 천국과 두려운 지옥이 있다.

이사야는 말한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산으로서 신약교회를 가리킨다. 또 ‘모든 산꼭대기’와 ‘모든 작은 산’은 이방 나라들과 이방 종교들을 가리킬 것이다. 신약교회는 모든 나라들과 이방 종교들 위에 뛰어날 것이다. 그런 증거들은 이미 충분히 나타나 있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든다는 것은 세계복음화를 가리킨다. 모든 나라, 모든 민족에게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신약교회 안으로 모여들며 강물처럼 흘러 들어올 것이다. 이것은 세계복음화의 전망이다. 이것은 성경에 밝히 계시된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고(창 22:18), 시편에는,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67:3),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113:3),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지어다”(117:1)라고 말했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엄숙히 명령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최대의 임무와 사명이다.

[3절]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라.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많은 민족과 백성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를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모든 족속이 신약교회 안으로 들어올 것을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세상]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14).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선” 것을 보았다(계 7:9). 그는 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라고 외치는 하늘의 큰 음성을 들었다(계 11:15). 세계복음화는 이루어지고 있고 마침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복음 전파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셨고(눅 24:47),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행 1:8).

[4절]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온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있은 후에 세상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다. 칼은 쟁기날이나 만들고 창은 낫이나 만들 것이다.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이 없을 것이며 전쟁을 위한 연습이나 훈련도 없을 것이다. 평화로운 나라 곧 의와 평강이 충만한 새 세계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사 11:6-9; 65:25; 호 2:18).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신약시대가 마지막 때임을 알자. 이사야가 예언한 마지막 날들의 일은 신약시대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이미 종말의 시작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자. 새 시대가 시작되어 구주께서 오셨다. 이제 다른 이가 없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구주이시다. 우리는 굳은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고(행 11:23),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고(행 13:43),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만 거해야 한다(행 14:22).

셋째로, 우리는 세계복음화가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인 줄 알고 세계복음화의 대업(大業)에 동참하자. 사도 시대에 이미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했다(롬 15:19). 바울은 이 복음이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라고 증거했다(골 1:23). 오늘날 이 복음이 세계 곳곳에 전파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있다면 우리는 전도자들을 그 곳으로 보내야 하며 전도지들을 그 곳에 배포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복음화의 일에 직접 몸으로, 또 기도로, 또 헌금으로 동참하자.

넷째로, 우리는 평화의 날을 소망하자. 하나님의 마지막 대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 후에 평화의 새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주 예수는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사 9:6-7). 천국은 의와 평강의 나라이다(롬 14:17).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인들만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다(벧후 3:13). 모든 눈물과 고통과 질병과 죽음이 없는 새 세계가 올 것이다(계 21:4). 우리는 이 평화의 천국이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대하자.

 

5-11절, 하나님께서 버리심

[5절]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이사야는 말한다. “야곱의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빛은 지식과 진리와 의와 기쁨을 상징한다. ‘여호와의 빛’은 하나님의 지식과 진리, 하나님의 의와 기쁨을 가리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과 진리 안에 행해야 하며 하나님의 의와 기쁨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며, 인생의 참 행복이 거기에 있다.

[6절]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야곱 족속을 버리셨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신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이유는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죄는 무엇보다 우상숭배의 죄이었다. 우상숭배는 죄 중에 첫 번째 죄악이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이방인들과의 교제에서 비롯되었다. 이스라엘 땅에는 동방 풍속, 곧 앗수르와 바벨론의 풍속이 가득하였다. 그것은 무역이나 국제결혼 등을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의 거짓된 신비주의가 이스라엘 땅에 유행하였다. 또 그들은 이방인들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다. 참 종교의 부패는 이처럼 잘못된 교제를 통해 시작되었고 조장되었다.

[7-9절]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 . . .

이사야는 말한다.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경제력이 크고 군사력이 강함을 증거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물질적 부요와 군대의 힘을 의지했다. 그러므로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했다. 그들은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손으로 만든 허무한 것을 섬기고 있었다. 우상숭배에는 천한 자나 귀한 자가 차이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선지자는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버리심은 더 이상 용서가 없는 하나님의 최종적 조처이었다. 그것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같다.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고 말하였다(요일 5:16).

[10-11절]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그 날에 사람의 교만한 눈이 낮아지며 사람들의 높은 마음이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버리심의 결과에 대해 증거한다. 하나님의 버리심의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다. 그들은 바위틈에 들어가며 땅 속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나타날 때에 사람들의 교만한 눈과 높은 마음은 다 꺾어지고 부서질 것이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마지막 결과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결말이며 인류 역사의 결말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를 멀리하자.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은 근본적 이유는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우상숭배는 인간의 죄 중에 가장 큰 죄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중 첫째와 둘째의 계명을 어기는 죄악이다. 그것은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는 것이다. 그것은 참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이다. 현대의 우상은 돈과 쾌락이다. 우상숭배자는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계 21:8).

둘째로, 우리는 불신자와의 교제를 조심하자. 하나님께서 야곱 족속을 버리신 까닭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였고 블레셋 사람처럼 술객이 되었고 이방인들과 손을 잡아 언약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방인들과의 교제가 그들을 부패시켰고 그들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겠느냐?”고 교훈하였다(고후 6:14).

셋째로, 우리는 물질적 부요를 의지하지 말자. 이스라엘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였고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였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는 그들로 안이하게 만들었고 그들도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섬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교훈했다(딤전 6:17). 우리는 물질적 부요를 의지하지 말자.

넷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인간의 모든 교만과 우상숭배가 다 파하여지고 여호와 하나님만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만 높이자.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로 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성경 전체의 요점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식과 진리, 하나님의 의와 기쁨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영생이요 영육의 참된 행복의 길이다.

 

12-22절, 여호와의 날

[12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 . . .

이사야는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가 앞에서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고 한 것에 대한 이유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의 군대인 천군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시는 여호와라는 뜻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자이며 특히 그의 심판의 수종자들이다.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요 진노와 징벌의 날이다.

특히 그 날은 모든 교만한 자들과 거만한 자들과 자고한 자들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할 것이다. 교만은 인간의 가장 큰 죄이며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이다. 그들의 삶에는 오직 사람이 기준이다. 교만은 하나님 대신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교만한 자는 자기의 견해만 주장한다. 사람은 사상적 교만이나 도덕적 교만에 빠져서는 안 되며, 또 성도는 신앙적 교만에 빠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실상,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세상의 기원도, 세상의 종말도, 또 자신의 존재 목적도, 죽음 후의 일도 알지 못하는 존재이다.

[13-16절]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과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는 이웃 나라의 교만한 지도자들을 가리켰을 것이다.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은 교만한 이웃 나라들을 가리키고,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은 그들의 강한 방어성들을 가리켰고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은 물질적 부요를 가리켰을 것이다. ‘조각물’이라는 원어(쉐키이요옷 t/Ykic])는 ‘보물들, 조각품들’이라는 뜻이다. 부자는 교만하기 쉽다.

[17-18절]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 잠언 6:16-17,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우주의 주권자와 왕이신 하나님은 홀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이 인생의 목적이며 최고의 가치 곧 가장 귀한 분이심을 알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만 따르자! 시편의 히브리어 명칭은 ‘찬양들’이라는 뜻이다. 시편의 주요 내용과 결론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높이며 찬양해야 한다.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다. 우상은 사람이 고안해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교만과 무지 속에서, 자기 뜻대로 만들어낸 헛된 것이다. 시편 115:4-8,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오늘날의 우상도 마찬가지다. 돈과 세상의 부귀, 영광, 권세, 명예, 또 육신의 쾌락 등은 헛된 우상이다. 에스겔 7:19,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뜨리는 것이 됨이로다.”

[19-21절]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려 하는 두려운 날이 다가올 것이다. 사람들은 은 우상과 금 우상이 쓸모 없고 무가치하고 무익하고 무능한 것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던져버릴 것이다. 그들은 바위굴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위엄과 그 위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며 그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 떨 것이다.

[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의지하지 말라’는 원어(키들루)는 ‘끊으라’는 뜻이다. 그것은 문맥적으로 볼 때 사람을 높이고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을 끊으라는 뜻이다. 인생은 그 호흡이 코에 있으며 수에 칠 가치가 없다. 인간의 모든 대단하게 보이는 것들은 그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다 헛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의지하거나 높이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교만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이스라엘을 치실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날이 임할 때 나타날 것이다. 그 날은 심판과 진노와 징벌의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모든 사람들을 낮추실 것이다. 교만은 인간의 죄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죄이다. 교만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매우 미워하신다. 교만한 자는 망하고 말 것이다. 교만한 자는 패망하고 거만한 마음을 가진 자는 넘어진다고 성경은 말한다. 성도는 신앙적 교만, 영적 교만도 버리고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는 결코 교만하지 말자. 우리는 모든 교만을 버리자.

둘째로, 모든 헛된 우상을 버리자. 하나님의 심판 날이 오면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질 것이다. 우상들은 사람들의 기도를 듣지 못하고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현대적 우상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인의 우상은 인간의 이성이나 돈이나 세상적 부귀 영광이나 육신적 쾌락이다.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이나 돈이나 세상적 부귀 영광이나 육신적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살지만, 그것들은 다 헛된 우상들이다. 우리는 그 모든 우상을 다 버려야 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헛된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그것들은 참으로 허무한 것들이다.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높이자. 교만한 자들은 다 낮아질 것이다. 우상들은 다 없어질 것이다. 모든 교만한 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위엄과 그 위대하심 앞에 두려워 떨며 피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결론적으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한다. 인생은 수에 칠 가치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오직 하나님, 곧 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롭고 선하시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높이자.

 

 

3장: 유다의 멸망을 예언함

1-12절, 유다의 멸망을 예언함

[1-3절]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 . . .

이사야는 말한다. “[이는]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곧 의지하는 모든 것들]을 제하여 버리시되[버리실 것이이라]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

본문은 앞절에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한 이유로 그것은 수에 칠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 말씀에 대한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주 만군의 여호와’ 곧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며 그 중에는 각 방면의 훌륭한 사람들도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유다 백성이 의지했던 것들을 열거한다. 첫째는 식품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물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 양식과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 둘째는 군대이다. 군대는 국가적 안전에 필수적인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라다. 셋째는 사회의 지도자들이다. 그들 속에는, 재판관 곧 방백들과, 종교인들 곧 선지자와 복술자와 ‘능란한 요술자’들과, 또 장로들과 50부장들과 귀인들과 모사들이 포함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 넷째는 기술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공교한 장인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

오늘날도 세상 사람들은 식품들, 군대와 군사력, 사회의 지도자들과 인재들,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을 의지하고 의뢰한다. 심지어 오늘날 교인들 중에도 돈이나, 건강이나, 세상적 지혜나, 학벌과 학력이나, 기술 등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제거하실 때 다 없어질 요소들이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거나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고 의지해야 한다.

[4-7절]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가[내가](MT, KJV, NASB, NIV)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 말라 하리라.”

구약시대의 선지자는 종종 성령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에 사회적 혼란을 주실 것이다. 우선, 사회에 지도자들이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어린아이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실 것이다. ‘적자들’이라는 원어(타알룰림)는 ‘변덕스러움, 자유분방함’이라는 뜻으로 ‘변덕스런 아이들’(NASB)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어른들에게 바른 지도를 받아야 할 어린아이들이 도리어 어른들을 다스린다고 하니 얼마나 혼란한 일이겠는가?

또 백성은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해칠 것이며, 예절이 없고 무질서할 것이다. 아이는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다. 나이든 자를 존중하는 것은 사회의 기본적 질서이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에 내포된 바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9:32는,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유다 사회는 기본적 예절과 질서를 저버렸다. 그러므로 유다 사회에는 아무도 지도자 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8-12절]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슬러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격노케] 하였음이라.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본문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의 이유를 말한다. 8절의 ‘멸망하다’는 원어(카솰)는 ‘비뚤거리다’는 뜻이다. 그것은 패망하기 전의 모습을 묘사한다. 유다는 비뚤거리다가 엎드러져 멸망할 것이다. 그들의 언어와 행위는 여호와를 거슬러 그 영광의 눈을 격노케 하였다. 그들은 불신앙적인 말과 불평, 원망, 비방의 말을 하였다. 또 그들은 우상숭배하였고 살인과 음행에 빠졌다.

그들의 얼굴은 그들의 죄를 증거했다. 사람의 죄는 그의 얼굴로도 증거된다. 죄는 감추기 어렵다. 죄는 즉시 토해내고 청산하고 새 출발하는 것이 좋다. 회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치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소돔 사람들처럼 그 죄를 숨기지 않고 공공연하게 드러내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뻔뻔스럽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특히 지도자들의 잘못이 컸고 결정적이었다. 그들을 몰아대는 자는 변덕스런 아이같이 행하며 부녀들이 관할했다. 지도자가 잘못을 하면 그 사회는 가망이 없다.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에 대한 보응을 선언하셨다. 그들은 재앙을 자취하였다. 의인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의인과 악인에게는 각 사람이 행한 행위에 대한 공의로운 보응이 임할 것이다. 사람은 행한 대로 받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자. 우리는 인간적인 것, 세상적인 것, 곧 돈, 건강, 지식, 명예, 기술 등을 의지하지 말자.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없애실 때 다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고 지키며 소망하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가 이제까지 누린 평안과 질서를 감사하고 사모하자. 죄는 지도자의 부재(不在)를 가져오고 서로 미워하고 예절도 질서도 없는 사회를 만들지만, 경건과 의는 지도자가 있게 하고 서로 사랑함을 실천하며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든다. 그럴 때 국가적으로는 진실한 자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되려 할 것이며, 또 교회적으로는 성숙한 인격자들이 장로 되기를 사모하며 목사 되기를 지망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죄짓지 말고 말과 행위로 의롭게만 살자. 죄는 멸망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말과 행위로 죄짓지 말자. 우리는 불평과 원망, 및 비방의 말을 버리자. 특히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바르게 행해야 한다. 어떻게 행하는 것이 바르게 행하는 것인가? 성경대로 사는 것이 바르게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성경의 교훈대로 살고자 힘써야 한다. 마태복음 3:8-9,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모든 죄를 청산하고 오직 의를 행해야 하고, 미움을 버리고 오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말과 행위로 죄짓지 말고 의롭게만 살아가자. 그것이 평강과 형통과 영생의 길이다.

 

13-26절, 시온의 딸들에게

[13-15절]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 . . .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일어나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심문하시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신다.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 곧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포도원을 강탈하였고 또 불의한 욕심을 품고 가난한 자들에게서 물건을 강탈하였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5:40). 또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압제하였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을 무시한 것은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다(잠 15:31). 우리는 이웃에게 악을 행치 말고,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일하여 정당하게 번 돈으로 살며, 오히려 선을 베풀어야 한다.

[16절]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시온의 딸들의 죄악을 지적하신다. 그는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고 말씀하신다. 시온의 딸들의 죄는 한마디로 교만과 음란과 사치의 죄이었다. 그들의 교만은 그들의 늘인 목에서 드러났다. 교만한 자는 남에게 인사도 안 하고 필요한 때 머리를 숙이지도 않는다. 또 그들의 음란은 정을 통하는 눈에서 드러났다. ‘정을 통하다’는 원어(사카르)는, 사전에 보면, ‘추파를 던지다’ (BDB), ‘요염하게 눈짓하다’(Langenscheidt), ‘유혹하는 눈짓을 하다’ (KB)는 뜻이다. 또 그들이 ‘아기죽거리며’ 즉 ‘멋을 부리며’ 행하고 발로 쟁쟁한 소리를 내는 것은 그들의 사치의 단면을 보여준다.

[17-23절]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지환과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손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딸들의 교만과 음란과 사치에 대해 징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우선, 선지자는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고 말한다. 여인들은 머리를 단장함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머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여인들의 은밀한 곳이 드러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체’(下體)라는 원어(포스)는 ‘이마’라는 뜻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KB, NASB, NIV), 전통적 히브리어 사전은 ‘은밀한 부분’이라는 뜻으로 본다(BDB, Langenscheidt, KJV).

선지자는 시온의 딸들의 21가지 장신구들을 열거하며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제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는 발목 고리, 둘째는 머리의 망사, 셋째는 반달 장식, 넷째는 귀고리, 다섯째는 팔목고리, 여섯째는 면박이다. ‘면박’이라는 한자어(面帕)는 요즘 쓰지 않는 말로서 ‘면파’라고 읽어야 맞고, 그것의 원어(레알라 hl;[;r')는 ‘얼굴 가리개’(veil)라는 뜻이다. 일곱째는 화관(花冠), 여덟째는 발목 사슬, 아홉째는 띠, 열째는 향합 곧 향수병, 열한째는 호신부(護身符) 곧 부적, 열두째는 지환 곧 반지, 열셋째는 코 고리, 열넷째는 예복, 열다섯째는 겉옷, 열여섯째는 목도리, 열일곱째는 손주머니 곧 지갑, 열여덟째는 손거울, 열아홉째는 세마포옷, 스무째는 머리 수건, 스물한째는 너울이다.

시온의 딸들의 장신구들은 참으로 다양하였다. 세상에는 여인들의 장신구들이 다양하게 많다. 세상 사람들은 거기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구약교회의 교인인 이스라엘 여인들조차도 영적인 소망과 즐거움보다 물질적인, 육신적인, 세상적인 소망과 즐거움이 컸던 것 같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이다.

[24-26절] 그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시는 때에 시온의 딸들에게서는 썩은 냄새가 향 곧 향수 냄새를 대신할 것이다. 또 노끈이 그들의 띠들 곧 머리나 허리 등에 띠는 장식띠들을 대신할 것이다. 또 대머리가 잘 손질된 머리털을 대신할 것이다. 본문에 ‘숱한 머리털’이라는 말은 ‘잘 손질된 머리털’이라는 뜻이다(KJV, NASB, NIV). 또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할 것이다. 심판과 환난의 날에 화려한 옷들은 다 더러워지며 찢어지고 세탁할 여건도 되지 못할 것이다. 또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다. ‘자자한 흔적’이라는 원어()는 ‘불에 탄, 그을린 (얼굴)’이라는 뜻이다. 그 날에 여인들의 얼굴은 햇볕에 타고 상처투성이이고 씻을 형편도 되지 못할 것이다. 선지자는 또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戰亂)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고 말한다. 유다의 청년들은 죽을 것이며 예루살렘 성은 슬픔과 황폐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 슬픈 예언은 역사상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사야 3:13-26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방백들의 죄를 반복하지 말자. 그들은 남의 포도원을 삼켰고 가난한 자들의 물건을 탈취하였고 백성을 핍박하였고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압제하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며 이제는 사랑과 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에게 악을 행치 말고 오직 선을 베풀며 살자.

둘째로, 우리는 교만하지 말자. 시온의 딸들은 교만하여 늘인 목으로 다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심히 미워하신다(잠 8:13). 교만은 마귀의 죄이다. 교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인간을 높이고 의지하는 태도이다. 교만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나아간다. 교만한 자는 망한다. 성도의 기본적 덕은 겸손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약 4:6).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곧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그의 겸손의 극치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로서 교만을 버리고 오직 그의 겸손을 본받자.

셋째로, 우리는 음란하지 말자. 시온의 딸들은 정을 통하는 눈, 남을 유혹하는 눈으로 다녔다. 그러나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마 5:28). 음란은 자기 몸으로 범죄하는 죄이다. 사도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 말하였다(고전 6:18).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살전 4:3). 그러므로 우리는 보는 것을 조심하고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거룩함을 지키고 우리의 눈의 거룩함을 지키자.

넷째로, 우리는 사치하지 말자. 시온의 딸들은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내었고 온갖 장신구들을 갖추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치를 미워하신다. 성도의 덕은 검소와 절제이다. 사도 바울은 여인들이 아담한 옷 곧 단정한 옷을 입으며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내면적 단장, 선행의 단장을 힘쓰라고 교훈하였다(딤전 2:9-10). 우리는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살며 절제하며 살자.

 

 

4장: 시온의 회복

이사야 4장은 시온의 회복에 대해 증거한다. 이사야 1장부터 39장까지는 주로 심판에 대한 선언이다. 그러나 심판의 선언 가운데서도 본장과 같이 회복이나 위로의 메시지가 중간중간에 나오는 것이다. 4장에 시온의 회복, 9장의 메시아 왕국, 11장에 메시아 시대, 12장에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찬송함, 25장에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함, 26장에 구원의 노래, 27장에 이스라엘의 회복, 32장에 메시아의 통치, 35장에 새 세계 등의 주제들이 그러하다. 40장 이후에는 회복에 대한 메시지가 주로 나온다.

[1절]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 . . .

1절은 앞장의 내용에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일곱 명의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하게 하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으로 남자들이 많이 죽었으므로 여자들이 결혼할 남자를 얻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바로 그때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의 영광이 나타난다.

[2-4절]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선지자는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한다. ‘싹’이라는 원어(체마크)는 ‘가지, 순’이라는 뜻이다. 선지자들의 여러 예언을 보면, ‘여호와의 싹(혹은 가지)’은 메시아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예레미야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 예레미야 33:15, “그 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스가랴 3:8, “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체마크)을 나게 하리라.” 스가랴 6:12,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싹, 가지, 순은 확실히 메시아를 가리켰다. 그 메시아는 영화로우시고 아름다우실 것이다. 이것은 특히 메시아의 인격적, 도덕적인 면을 말한다. 사도 요한은 고백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하였다(요 1:14).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백성을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남은 자라고 표현한다. 선지자는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錄名)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도 어떤 이들을 은혜로 택하시고 세상에 남겨두신다. 그들이 남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자들을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에, 그들은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을 것이다.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시고 우리로 죄씻음을 받게 하시는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중생시키시고 깨끗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 곧 ‘거룩한 자’라는 존귀한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5-6절]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성도’라고 부르실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을 천막으로 보호하신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폭풍과 비]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고 한다. 세상에는 여름의 무더위가 있고 겨울의 강추위가 있다. 또한 세상에는 한낮의 뙤약볕이 있고 한밤의 폭풍우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피할 곳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셔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실 뿐 아니라 이 환난과 고통 많은 세상 가운데서 그들의 피난처가 되시고 은신처가 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은신처이시다.

이사야 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메시아께서 오셨음을 감사하며 그를 믿자. 약속하신 ‘여호와의 싹, 가지, 혹은 순’이 나타나셨다. 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른 곳에서 말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하였다(사 9:6).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 그의 탄생하던 날에 한 천사는 그 부근에서 양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하였다(눅 2:10-11).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했다(딤전 1:15).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하였다(요 1:11-1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영접하며 그를 믿고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남은 자’ 곧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구원하시고 거룩케 하셨음을 감사하자. 우리는 ‘성도’로 부름을 입었다. 로마서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고린도전서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베소서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는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고, 성도라는 존귀한 이름을 얻었다. 우리는 우리의 이 큰 구원을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환난과 고난이 많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 되심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다른 곳에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고 하셨다(사 43:1-2). 예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친히 말씀하셨다(마 28:20).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기도하며 항상 감사하자.

 

 

5장: 하나님의 심판

1-7절, 하나님의 포도원

[1절]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 . . .

선지자 이사야는,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라고 말한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며(7절) ‘심히 기름진 산’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묘사된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출 3:8, 17; 13:5; 33:3; 레 20:24 등).

선지자 이사야는,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였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뿐 아니라 또한 사랑해야 한다. 신명기 6:5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마 10:37-38).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좋아하는 것, 기뻐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 믿고 의지하는 것,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2절]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선지자 이사야는 계속 말하기를,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라고 한다. ‘극상품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 곧 유다 사람들을 가리켰다(7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경건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족속이다. 땅을 파서 돌을 제거하고 망대를 세우고 술틀을 파듯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거주했던 우상숭배적이고 음란한 원주민들을 멸망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곳에 정착하게 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좋은 포도 맺기를 바라셨으나 그들이 들포도를 맺었다고 말한다. ‘들포도’라는 원어(베우쉼)는 본래 ‘악취나는 무가치한 것들’이라는 뜻이다. 들포도는 그들의 불경건함과 부도덕함을 가리킨다. 그것은 7절에 말한다.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3-4절]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 . . .

3절 이하는 하나님의 친 음성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 속에 하나님의 친 음성을 대언(代言)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찜인고”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패역하였고 불순종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을 증거한 역사이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했다(렘 17:9).

[5-6절]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이제 심판을 선언하신다. 그는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국경선이 무너지며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외국 군대가 침공해 들어오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황무하게 될 것이다. 들판에는 가시나무와 엉겅퀴만 날 것이며, 비조차 내리지 않아 들판이 황량할 것이다.

[7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선지자는 포도원의 비유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고 그의 기뻐하시는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을 가리켰다. 좋은 포도는 공평과 의로움을 가리키고, 들포도는 피흘림과 부르짖음을 가리켰다. ‘포학’이라는 원어(미스파크)는 ‘살륙, 피흘림’이라는 뜻이다. 원문에서 ‘공평’(미슈파트)과 ‘포학’(미스파크), ‘의로움’(체다카)과 ‘부르짖음’(체아카)은 비슷한 발음으로 대조를 이룬다. 이스라엘 사회의 도덕은 땅에 떨어졌다. 불의와 불법으로 인한 탄식과 고통의 부르짖음이 컸다. ‘좋은 포도’는 공평과 의, 사랑과 진실의 도덕성을 가리킨다. 그것이 인간이 창조된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성령의 열매이다. ‘들포도’는 살륙과 피흘림, 미움, 거짓, 사악함을 가리킨다.

이사야 5:1-7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선지자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오래 참고 기다리며 겸손히 순종하며 즐거이 섬기는 것이다. 신명기 6장에서 모세는 교훈하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다(신 6:4-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들 중 가장 큰 계명이다.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38).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둘째로,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자.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언 16: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는 악을 멀리 떠나며 그의 계명을 생명같이 지킬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요점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거룩과 의와 사랑과 진실의 인격과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간이 본래 지음받았던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이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것은 성령의 열매이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는 의와 사랑과 진실의 좋은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자.

셋째로, 우리는 들포도를 맺는 자들과 그 포도원은 결국 망하고 황폐케 됨을 기억하자. 좋은 열매 없는 나무는 찍힐 것이다. 마태복음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요한복음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불의와 미움과 악과 거짓을 행하는 자들은 세상에서도 또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8-17절, 이스라엘의 죄와 멸망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와 멸망에 대한 말씀이다.

[8절]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선지자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해 지적한다. 그는,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외친다.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들이 사는 집을 확장했고 크고 아름답게 하였다(9절). 또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밭을 사고 또 샀다. 그것은 땅과 재산에 대한 욕심이었다. 그것은 오늘날 말로 하면 일종의 투기성이 있는 땅 구입, 집 구입이었다. 그것은 가난한 일반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자기 중심적 욕심으로 가득한 자들에게 진노하셨다.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9-10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는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 능력으로 섭리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살아계신 섭리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귀에 분명한 말씀으로 말씀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정녕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할 자가 없을 것이며, 또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는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고 하셨다. 열흘갈이(ten acres) 포도원은 약 1만평의 땅인데, 거기서 겨우 포도주 한 바트 즉 약 22리터가 나올 것이며, 한 호멜지기는 약 220리터의 곡식을 추수할 수 있는 밭인데, 거기서 겨우 한 에바 즉 약 22리터만 수확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황폐케 하실 것이며 그들의 수확과 소득이 매우 적게 되게 하실 것이다.

[11-12절]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선지자는 그들의 죄악을 또 지적한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독한 술을 마시고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였고, 또 잔치를 열며 각종 악기를 연주케 하였으며 포도주를 마시며 즐겼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그의 손으로 하신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었다.

[13-14절]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경건함에 대해 징벌하실 것이다. 선지자는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쟁에 패배하여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또 선지자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라고 말한다. 그들은 일용할 양식의 궁핍을 경험할 것이다. 또 선지자는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호화로움과 쾌락은 끝날 것이며 그들은 다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음부’는 지옥을 가리킨다고 본다(KJV).

[15-16절]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선지자는 또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천한 자나 귀한 자나 다같이 패망을 경험할 것이다. 특히 교만한 자들이 낮아질 것이다. 사람은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않고 범죄한다. 교만은 불순종으로 나아간다. 이스라엘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멸망당할 때 그들의 교만은 낮아질 것이다. 그때 만군의 여호와는 공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나타날 것이다.

[17절] 그때에는 어린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

선지자는 “그때에는 어린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요”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그 땅이 황폐해질 때에 어린양들은 거기서 자기 풀밭처럼 풀을 뜯어먹을 것이다. 또 선지자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고 말한다.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이란 지금 평안하고 부요하여 쾌락을 즐기는 자들의 밭이 그 날에 황무한 밭이 될 것이므로 그렇게 표현한 것일 것이다. ‘유리하는 자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밭들은 주인 없는 밭이 되어서 거기서 무슨 열매나 결실이 나면 아무 나그네들이나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사야 5:8-17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형벌을 통해 교훈을 받는다. 본문에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사치와 쾌락을 버리자. 이스라엘은 사치하고 연락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물욕(物慾)과 육신적 쾌락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건하고 선하게 사는 일을 방해한다고 말씀하셨다(눅 8:14). 재리(財利)와 일락(逸樂)은 성도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소이다. 사치와 쾌락은 성도에게 큰 시험거리이며 경건하고 선한 삶에 반대된다. 야고보서 5:5도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라고 말한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검소하고 절약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사치와 쾌락을 버리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술취하며 잔치에 각종 악기를 갖추었지만, 여호와의 행하심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같은 귀한 일꾼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한 자들이었다. 빌립보서 2:21-22는,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말한다.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 곧 복음 전파의 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자이었다. 에바브로디도도 그러하였다. 빌립보서 2:30은,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자가 되자. 우리는 무엇보다 교회의 공예배에 힘써 참석하며 기도하기를 힘쓰자. 또 전도하기를 힘쓰고, 국내외 선교와 개척전도의 일을 후원하자. 우리는 주일학교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교사나, 차량운전 봉사에 참여하자. 찬양대 봉사도 귀한 일이다. 가정 예배를 쌓는 것은 큰 복이다. 주방 봉사의 일도 귀한 일이다. 문서출판사역과 신학교육의 일도 분명히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자.

 

18-30절, 화 있을진저

본문은 선지자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죄악들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한 내용이다.

[18-19절]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자는 화 있을진저.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선지자는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짓과 죄악을 행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의와 선과 진실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불의와 죄악과 거짓으로 행하였다. 이스라엘 사회는 남을 비방하고 해치는 일이 많았고 거짓말이 난무하였다는 말이다.

선지자는 또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섭리를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참고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의 조급함은 곧 그들의 불신앙이었다.

[20-23절]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

선지자는 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악 판단을 바르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부패한 사회의 모습이다. 잠언 28:4는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고 말했다.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 하는 것은 그 심령이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되었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도덕적 혼란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잠언 17:15는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고 말했다. 성도는 선악 판단을 바르게 해야 한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해야 하며, 선한 것은 선하다 하고 악한 것은 악하다 해야 한다. 그것이 공의로움이요 정직함이다.

선지자는 또,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는 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26:12는,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우리 자신을 낮추며 우리 자신의 부족과 어리석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선지자는 또,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사회는 사람들이 술을 잘 마시는 사회이었다. 이것이 구약 교회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였고 독주를 섞어 만들기에 유력하였다. 그러나 술 취함이 사람을 실수케 만들며 또 과음과 폭음이 사람의 몸도 병들게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술 취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금주(禁酒)와 금연(禁煙)은 그리스도인의 지혜요 복이다.

선지자는 또,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사회에는 뇌물이 많이 오고갔고 그로 인하여 도덕 판단이 혼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 하고 또 의인을 악하다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출애굽기 23:8에 말씀하셨다.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 사회는 이처럼 거짓과 죄악이 많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섭리를 믿지 않았고 선과 악을 잘못 판단하였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지혜롭다고 생각하였고 술을 즐겼고 뇌물이 많이 오고갔다. 이스라엘 사회는 심히 부패되었고 죄악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런 죄악에 대해 진노하셨다. 18-23절에서, 선지자는 이미 ‘화 있을진저’라는 말을 네 번이나 사용하였다(18, 20, 21, 22절). 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화와 진노이다.

[24-25절] 이로 인하여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 분토같이 되었으나 그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

선지자는 “이로 인하여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불은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불일 수도 있지만,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불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킨다. 불은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다 태우고 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또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같이, 그 뿌리로부터 썩고 망하겠고 꽃 같은 그 찬란한 영광은 티끌처럼 날아갈 것이다.

선지자는 그들의 멸망의 이유를 다시 요약한다. 그는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멸시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존중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66:2에서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존중한다면, 그는 겸손하며 정직하고 선하며 진실할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또 선포하기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 분토같이 되었으나 그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고 한다.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 백성의 시체는 거리에 쓰레기같이 많게 될 것이나 그래도 하나님의 노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26-30절] 기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 . . .

선지자는 또 하나님께서 먼 나라들을 불러와 이스라엘을 치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말한다. “기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 올 것이로되 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신들메는 끊어지지 아니하며 그들의 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기어졌으며 그 말굽은 부싯돌 같고 차바퀴는 회리바람 같을 것이며 그 부르짖는 것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물건을 움키어 염려 없이 가져가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리어져서 어두우리라.”

선지자는 무서운 전쟁을 예고하였다. 이스라엘 나라를 침공할 이방 나라들의 군대는 빠르고 강할 것이며 그들 중에는 피곤하여 넘어지거나 조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무기는 날카로울 것이며 그들의 병거 바퀴는 회리바람 같을 것이며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사자들의 표호 소리와 같을 것이다. 온 땅은 흑암과 고난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사야 5:18-30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 불같이 진노하셔서 먼 나라들을 불러와 그들을 치실 것이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에 쓰레기같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경고대로 된 것이다. 레위기 2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거역하면 그들의 대적들에게 패배하고 그들을 당할 힘이 없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마침내 멸망하고 그 땅은 황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었다(14-17, 31-33, 37-38절).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을 가져온다. 성도가 범하는 죄도 다르지 않다. 죄는 다 악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게만 살자. 무엇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 오늘 본문에 의하면, 우선,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며 그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존중하고 그 말씀을 읽고 믿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또 우리는 거짓과 죄악을 버리고 멀리하며 선악을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선악을 바르게 판단하는 기준은 성경과 우리의 양심이다. 우리의 양심은 항상 깨끗해야 한다. 또 우리는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항상 겸손히 처신해야 하며, 술 취하지 말고 깨어 절제해야 하며, 결코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바르게만 살자.

 

 

6장: 이사야의 환상

1-7절, 이사야의 환상

[1절]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고 말한다. 웃시야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유다 왕국의 열 번째 왕이었다(주전 790-739년경에 통치). 역대하 26장에 보면,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하나님을 구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 그러나 그가 강성해졌을 때 그는 마음이 교만해졌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만 할 수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려다가 즉석에서 나병[한센병] 환자가 되었고 죽는 날까지 그러하였다(대하 26:5, 16, 19, 21).

교만하여 범죄했던 웃시야 왕이 하나님의 엄한 징벌로 죽었을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두려우심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인간 왕은 실패하고 죽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참된 왕으로서 영원히 살아계심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이었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은 자이다. 이사야는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2:41에서 이사야가 주 예수의 영광을 보았다고 증거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믿는 우리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곧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사야가 본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신 것은 그가 왕이심을 나타낼 것이다. 과연 이사야는 5절에서 그를 ‘왕’이라고 불렀다. 또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은 그가 제사장이심을 나타낼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신 동시에 제사장이시다.

[2-4절]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이사야는 천사들이 그 영광의 주를 모셔 선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천사들을 ‘스랍들’이라고 말한다. 성경에는 ‘스랍’을 포함하여 ‘그룹, 가브리엘, 미가엘’ 등 천사 개인 혹은 부류의 이름들이 나온다.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천사 개인들의 이름이고, 그룹과 스랍은 천사 부류의 이름이라고 보인다. 이사야 6장에만 나오는 스랍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또 사람으로 하나님께 접근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천사들인 것 같다.

스랍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었고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면서 서로에게 외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하였다. 스랍들이 두 날개로 얼굴을, 다른 두 날개로 발을 가린 것은 그들의 겸손과 하나님 경외함을 나타낼 것이다. 또 그들이 다른 두 날개로 난 것은 그들이 민첩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뜻을 온전하게 순종한다.

스랍들의 찬송 소리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다. 거룩함이란 유한한 피조 세계로부터 초월해 계심과 도덕적 불결로부터 떠나 계심 즉 도덕적 성결을 가리킨다.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신 능력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온 세상,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주만물의 창조자시요 섭리자이시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로 인해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의 표시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시내산에 내려오실 때에도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었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었다(출 19:16, 18).

이와 같이,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는, 비록 웃시야 왕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벌로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었으나, 영원하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고 살아계시며 지극히 거룩하시고 온 세상에 그의 영광이 충만하신 신이심을 보았던 것이다.

[5절]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그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보았을 때,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말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대조하여 자신의 죄악됨을 깨달았다. 특히 그는 자신의 입술의 더러움을 깨닫고 고백하였다.

사람의 입의 말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주께서는 자기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2:34-35). 인간의 죄성은 특히 말의 악함에서 나타난다. 죄인들의 특징은 악하고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의 기관 중에 혀는 매우 악한 부분이다. 야고보서 3:8-10,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교훈하기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였고 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였다(엡 4:29; 5:4). 구원받은 첫 번째 표는 말의 성결에서 나타날 것이다. 변화된 인격은 말의 변화로 증거될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 앞에서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말했다. 어부였던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 곧 신성(神性)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었다(눅 5:8). 또 사도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보았을 때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었다(계 1:17).

[6-7절]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그때에 스랍들 중 하나가 화로에서 쓰는 부젓가락으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이사야에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그 입에 대며 말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제단 숯불을 입에 댄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으로 이루신 대속(代贖)으로 정결케 됨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효력은 오늘도 추하고 더러운 우리의 입술을 정결케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온 몸을 깨끗케 한다.

죄사함 곧 더러운 악의 제거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며 특히 말씀의 봉사자인 선지자에게 필요한 일이다. 오늘날에도 말씀의 봉사자들인 목사와 전도사, 그리고 장로, 권사, 권찰, 교사에게 필요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거룩한 직분이 주어져 있다. 이제 우리의 입이 정결하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으며 이 존귀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결함을 얻어야 우리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의 요점은 죄사함이다. 죄사함이 구원이다. 또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고 또 날마다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씻음받는 자들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이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고 권면하는 자격자가 될 것이다.

이사야 6:1-7에서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깨닫자. 이사야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보았다. 하나님을 알며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며(잠 1:7; 10:9),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있다(요 17:3).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죄성(罪性)을 깨닫자. 이사야는 자신이 입술이 부정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한 자임을 깨달았다. 베드로는 주 앞에 엎드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었고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었다(눅 5:8; 딤전 1:15).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히 부족함과 죄악됨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몸과 입술을 정결케 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쓰임을 받으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몸과 우리의 입술을 정결케 하자(딤후 2:21).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고(고후 7:1), 또 무엇에든지 정결하자(빌 4:8). 또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요일 3:3).

 

8-13절, 나를 보내소서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자신의 추함과 입술의 부정함을 깨달았고 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제단의 숯불로 그의 입의 악을 정결케 하심도 보았다. 그는 이 일들을 환상 중에 보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라고 표현하신 것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몇 번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그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셨다(창 1:26). 또 그는 범죄한 아담을 에덴 동산에서 내어보내실 때,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창 3:22). 또 노아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바벨탑을 쌓았을 때, 그는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고 말씀하셨다(창 11:7). 하나님께서 이처럼 때때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그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위해 사람을 사용하심을 보인다. 그것은 성경 역사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에 사람을 사용하신다. 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실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나님의 일은 어려운 일이며 그의 일을 수행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시대의 사도들은 다 고난과 핍박을 당했고 멸시와 배척을 당했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고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욕과 비방을 당하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고백하였다(고전 4:9-13).

이사야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했다. 그는 어디에서 이런 헌신의 용기가 났을까? 그것은 분명히 그가 본 사죄(赦罪)의 환상에서 났을 것이다. 죄책감은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과 무기력함에 머물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죄사함을 확신할 때 힘과 용기를 얻고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게 될 것이다. 죄는 영원한 멸망의 원인이며 거기에는 두려움밖에 없지만, 죄사함은 영생의 길이며 거기에는 기쁨과 평안이 넘친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많은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9-1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직무를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좀 이상한 말씀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달려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진리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은혜 주실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지만, 그가 버려두신 자들에게서는 그의 은혜를 거두신다.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고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깨닫지도 못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구원을 받지도 못하고 참된 의와 선을 행하지도 못한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이것은 성경의 분명한 진리이다. 이것이 개혁주의 또는 칼빈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사도행전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사도행전 16:14,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로마서 9:16, 18,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선지자의 직무를 받은 이사야는 하나님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여쭈었다. 하나님께서는,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고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벨론의 침입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될 때까지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불순종하는 유다는 결국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의 사역은 전망 없는 사역, 결실 없는 사역처럼 보였다. 하나님의 일은 때때로 전망 없는 사역, 결실 없는 사역처럼 보인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사역이 대표적인 예이었다. 그는 41년간 사역했지만,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한 사역이었다. 예루살렘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마침내 멸망을 당하였다(렘 5:1).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도 외형적으로는 성공적이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고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은 이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배우게 된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그러나 전도자는 고난을 각오하며 전도자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딤후 4:3-5).

[13절] . . .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그러나 사람이 무지하고 완악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루터기는 나무를 벤 후에 남은 나무둥치를 가리킨다. 유다가 멸망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땅의 ‘거룩한 씨’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메시아를 암시하는 말씀이라고 본다. 그것이 이사야의 책 전체에 흐르고 있는 메시아 진리이다. 이사야서는 또 ‘남은 자’에 대해 많이 말한다.3) 그들은 메시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처음에는 적은 수효일 것이지만(눅 12:32), 마지막엔 셀 수 없이 많은 수가 될 것이다(계 7:9). 하나님의 일은 결국 실패치 않고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힘들고 지루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이사야 6:8-13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자가 되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이사야는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였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복음 사역을 위해 보내실 만한 사람들을 찾으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그 죄사함을 확신하고 그 죄사함받은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즐거이 헌신하자. 또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기를 소원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어렵다는 것을 미리 알자. 사람은 심히 부패되어 있고, 사람 구원의 일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은혜만 간구하며 또 하나님의 심정을 배우며 인내하며 일해야 할 것이다. 목회와 전도, 주일학교 교사와 권찰의 일, 또 교회의 모든 봉사의 일이 다 그러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어려움을 알고 단단히 각오하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남은 자들이 되자. 인류의 소망은 거룩한 씨에 있다. 거룩한 씨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세상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게 소망을 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이다(롬 6:3-4; 요 15:4-5). 그 증표는 믿음과 순종과 거룩한 삶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남은 자들이 되자.

 

 

7장: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함

1-9절,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

[1-2절]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 . .

유다 왕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다윗 집에 고하기를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 이전에 다윗 때는 이스라엘이 아람을 지배하기도 하였었다. 또 다윗 집에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원수들의 거대한 세력 앞에서 유다 왕은 두려워 떨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죄로 인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3-4절]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 . . .

그러나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셨다.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유다 왕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그것은 유다의 경건한 자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긍휼로 악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그 아들 스알야숩과 함께 아하스를 만나게 하셨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으로 그 이름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과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아하스에게 주신 말씀의 내용은,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 왕들이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 즉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에 불과하다고 표현하셨다.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은 화덕에서 불타는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화덕에서 꺼내져, 불이 꺼져 가는, 그래서 연기만 많이 나는 나무이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세력은 꺼져 가는, 연기 나는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들이 앗수르 왕에게 패망할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유다 왕은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들로 인해 낙심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5-9절]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아하스에게 말할 것을 계속 말씀하셨다.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해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은 동맹을 맺고 유다를 쳐서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자는 계획까지 세웠지만, 그 계획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세워지고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와 온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과 그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가리킨 것 같다.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주전 733년경)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주전 744-727년경)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 열왕기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또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때에(주전 722년경) 이스라엘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주전 727-722년경)에게 망하였고 포로로 잡혀갔다(왕하 17:1-6). 그리고 후에 앗수르 왕 에살핫돈(주전 681-669년경) 때에  앗수르 왕은 사람들을 앗수르 지역에서 옮겨 사마리아 여러 성들에 두었고(왕하 17:24) 이로써 나라 회복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려 하였다. 65년의 기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모르나, 아하스 2년(주전 740년경) 때로부터 에살핫돈이 므낫세 왕을 포로로 잡아간 때(주전 675년경; 대하 33:11)까지의 기간이 대략 65년이 된다.

그러나 유다 왕 아하스는 선지자로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앗수르 왕을 의지했고 다메섹 신(神)들을 의지했다. 역대하 28:16, 23, “그때에 아하스왕이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아하스 왕은]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와 유다 백성에게 참된 믿음, 굳건한 믿음이 필요함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사야 7:1-9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약해진다. 유다 왕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다. 아하스는 16년 통치하는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왕하 16:2-4; 대하 28:1-4). 그 결과, 아하스와 유다 나라는 영육으로 매우 약해졌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았던 북쪽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 아람 연합군의 침공 앞에 이제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다. 성도가 범죄하면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확신치도 못하게 된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언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거슬러 범죄할 때, “내가 그들의 마음으로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은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 있음같이 서로 천답하여[발로 짓밟아] 넘어지리니 너희가 대적을 당할 힘이 없을 것이요”라고 하셨다(레 26:36-37). 아하스와 유다가 그러하였다. 범죄한 사울의 모습도 그러하였었다(삼상 28:5). 성도가 범죄하면 약해진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력을 얻으려면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의를 행하고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허락 없는 인간의 계획은 다 헛되다. 아람은 이스라엘과 동맹하여 유다를 침공하고 정복하려 계획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왕까지 내정하였다. 그러나 본장 7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고 말씀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시편 127:1-2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하였다.

누가복음 12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 어리석은 농부의 이야기는 한 좋은 예이다. 풍년을 맞은 그 농부는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을 쌓아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다(20절). 그러므로 야고보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이라고 말했다(약 4:15).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는, 사람의 모든 계획들이 다 헛됨을 깨닫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자. 9절,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서지 못하리라.”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하려 하였었다(왕하 16:7).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다윗은 시편 20편에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고 말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마음가짐이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고 하였다(사 26:3-4).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만 믿자. 우리는 개인의 생사화복이나 단체와 국가의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알자. 우리는 세계 역사도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을 믿는다(롬 8:28).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굳게 의뢰하였다(딤후 1:12).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그의 모든 말씀과 약속만 믿자.

 

10-16절, 임마누엘의 징조

[10-12절]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여호와께서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징조’라는 원어(오스)는 ‘표적’이라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아하스에게 표적을 구하라고 하신 것은 아하스가 하나님의 예언, 곧 아람과 이스라엘이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에 불과하며 그 나라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아하스가 불신앙적이었고 앗수르를 의뢰하고 이방신들을 섬기며 의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려 하신 것이라고 본다. 아하스가 하나님의 어떤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징조가 그에게 참 믿음을 만들어, 그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우상을 섬기고 앗수르를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게 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그가 믿음이 강하여서가 아니고 그 반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무시하기 때문에 표적을 거절한 것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시험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으나, 그것은 일종의 위선적인 말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는 그 대신에 인간의 이성의 판단을 믿었고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하였다.

역대하 28:16, “그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역대하 28:22-25, “이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또 여호와의 전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이것이 아하스의 불신앙적 상태이었다.

[13-16절]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

그러므로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책망의 말을 전했다.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그는 아하스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힘쓰고 앗수르를 의지하려 한 것은 사람들과 하나님을 괴롭게 한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사야는 이제 하나님께서 주실 놀라운 한 징조 혹은 표적을 선포한다. 그것은 아하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뜻의 선포이었다. 그것은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은 임마누엘이라 불린 메시아의 초자연적 탄생에 대한 것이다. ‘징조’ 혹은 ‘표적’이라는 말은 임마누엘의 초자연적 탄생에 맞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처녀’라는 원어(알마 hm;l][')는 단순히 ‘젊은 여자’(RSV)라는 뜻이 아니고, ‘결혼하지 않은 젊은 처녀’를 가리킨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용법이나 고대 헬라어 70인역이나 또 신약성경의 적용에서 분명하게 증거된다.

구약의 몇 가지 예를 보자. 창세기 24:43, “내가 이 우물 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알마)가 물을 길러 오거든.” 이 단어는 16절의 ‘처녀’라는 말(베술라)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출애굽기 2: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알마)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아가 1: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아가 6:8,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알마)가 무수하되.”

신약성경의 적용에서도 분명하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파르데노스 παρθένος)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신약성경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하셨음을 밝히 증거한다.

사도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고 증거하였다(마 1:18). 또 그는, 그 남편 요셉이 저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는 것과,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며 이것은 이사야 7:14의 예언의 성취라고 일러준 것과, 요셉이 주의 천사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하였다(마 1:19-25).

누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의 몸을 통해 탄생하셨음을 분명하게 증거하였다. 그는 그의 모친 마리아와 천사의 대화를 증거하였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4-35).

이사야의 본문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한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루어졌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이사야의 예언은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의 증표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계속 말하기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고 하였다. 메시아가 5, 6세가 되기 전에 이스라엘 왕과 아람 왕의 땅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또 유다 땅의 보전에 대한 약속도 내포하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아하스는 불신앙적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표적을 주실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예언들과 표적들을 기록하고 증거한 책이다. 우리는 아하스와 같이 헛된 우상을 믿고 섬기지 말고, 무능한 존재인 사람도 의지하지 말고 허무한 돈이나 세상 권력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순수하게 믿고 또 성경을 믿자.

디모데후서 3:15-17,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순수하게 믿고 섬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성경대로, 성경 중심으로만 믿고 섬겨야 한다. 오늘날에는 잘못된 사상들과 말들과 풍조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성경을 부정하고 불신앙하고 가감하는 자유주의, 이성주의를 경계하고 모든 성경을 다 믿어야 한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깨닫고 믿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거짓된 신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주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이미 교훈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고”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11, 24절).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이미 교훈하였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9-12절).

성경의 예언대로, 오늘날 거짓된 신비주의가 너무 많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 방언, 환상, 계시 등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대개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성경의 건전한 교리와 윤리 교훈에 착념해야 한다.

 

17-25절, 앗수르 왕의 오는 날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금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유다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지만, 장차 아하스의 악에 대해 보응하실 것을 증거한다.

[17절]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비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니라.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기를, 장차 여호와께서 에브라임 곧 북쪽 이스라엘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아하스와 그의 백성 곧 유다 백성과 그의 아비 집 곧 다윗 왕가에 임하게 하실 것이며 그것은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 재앙 곧 앗수르 왕이 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복과 화는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국가에 복을 주기도 하시고 재앙을 내리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부르실 것이다. 앗수르 왕은 누구인가? 그는 유다 왕 아하스가 도움을 요청했던 자이었다. 열왕기하 16장에 보면,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말하기를,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라고 말하였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었다(왕하 16:7-8).

그러나 유다 나라는 장차 그 앗수르에게 화를 당할 것이다.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올라와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였고 유다 왕 히스기야는 라기스로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라고 하였다. 또 앗수르 왕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하므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때에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다(왕하 18:13-16). 유다 나라에 이런 치욕적인 일이 마침내 일어났었다.

[18-19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본문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의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실 것이며, 그들이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모든 가시덤불과 모든 초장 혹은 물웅덩이들에 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문에는 ‘그 날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18, 20, 21, 23절).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날, 그의 진노하시는 날, 그의 재앙의 날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날이 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한 시간표대로 진행된다. 물론,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바와 같이 인간의 선한 노력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를 이루는 방편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앗수르를 파리와 벌로 비유하셨다. 그것은 그들 침략군들의 수가 많고 신속하고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그로 인한 고통과 해가 매우 클 것을 암시한다. 적군들은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덤불과 초장 등 모든 곳에 들어와 그 곳들을 점령할 것이다. 그 땅에는 그들을 피하여 숨을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땅은 그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황폐케 될 것이다.

[20절]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본문은 그 날에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유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고 말한다.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했으나 이처럼 유다 나라는 장차 앗수르에게 큰 화를 당할 것이다. 이사야 10:5에서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사람들을 그의 진노의 막대기와 몽둥이라고 표현하셨으나, 본문은 앗수르 왕을 세내어 온 삭도 곧 면도칼이라고 표현하였다. 머리털이나 발털이나 수염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부분이다. 그러나 침략자들은 와서 그 털들을 다 밀어버릴 것이다. 유다 나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곧 존귀한 자로부터 비천한 자까지 다 노략하고 짓밟을 것이다. 장차 유다는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21-22절]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그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뻐터와 꿀을 먹으리라.

본문은 그 날에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를 것이며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며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이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른다는 말은 가난한 생활을 묘사할 것이다. 황폐한 유다 땅에 남은 사람들은 가난할 것이다. 사람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우유와 버터가 많을 것이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농사나 장사가 되지 않으므로 곡식, 과일, 고기 등을 먹지 못하고 주로 뻐터와 꿀만 먹는다는 뜻도 가질 것이다.

[23-25절] 그 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라. 온 땅에 질려와 형극이 있으므로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질려와 형극 까닭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

본문은 그 날에 포도나무 천 그루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원마다 찔레와 가시나무들이 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전에 많은 포도 수확으로 큰 소득을 올렸던 포도원이 장차 가꿀 일손이 없어서 찔레와 가시나무들만 무성할 것이다. 또 본문은 온 땅에 찔레와 가시나무들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서이든지 아니면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본문은 또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찔레와 가시나무들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고 말한다. 이전에 밭과 포도원이었던 땅은 더 이상 밭 농사나 포도 농사를 하지 못하고 황폐하게 방치될 것이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이스라엘의 죄악은 이스라엘로 멸망케 하였고, 유다의 죄악도 유다로 패망의 길로 나가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말자.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이다. 히브리서 2:1-3,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공의로운]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히브리서 10:26-31,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그러므로 우리는 특히 하나님 앞에서 고의적인 죄를 짓지 말고 그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본문에는 ‘그 날에’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다. ‘그 날’은 하나님의 작정된 심판의 날이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불러오실 것이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날이 있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 있다. 우리 개인을 향해서도, 또 우리 가정이나 우리 교회나 우리 국가나 온 세계를 향해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 16:3).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소망하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는 자는 하나님만 소망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데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산 것이 불행의 원인이었다. 북쪽 이스라엘이 그러하였고 남쪽 유다도 하나님을 찾고 그의 계명에 순복하지 않으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불러 그들의 땅을 황폐케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전에 누렸던 풍요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소망하며 그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힘써 행한다면 그들은 평안과 형통을 누릴 것이며, 징벌 아래 있다 할지라도 머잖아 회복의 날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안에 평안과 영생이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하였다(딤전 4:7-10).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불신앙과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소망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자.

 

 

8장: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따르라

1-10절, 앗수르가 오리라

[1-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 . .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원문(마헤르 솰랄 카쉬 바즈)은 ‘노략이 속히 온다. 그가 약탈을 서둘렀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노략이 속히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이었다. 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이 계시는 진실한 증인 우리야와 스가랴를 통해 확증될 것이었다. 그들은 진실한 증인이라고 불리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증거하는 자가 진실한 증인이다.

이사야는 자기 아내(한네비아)[여선지자]와 동침했고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 바 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의 아들 이름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대로 ‘노략이 속히 온다. 그가 약탈을 서둘렀다’는 뜻이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내 아빠(아비), 내 엄마(임미)’라고 말할 줄 알기 전에, 즉 아마 2-3살이 되기 전에, 앞으로 2-3년 내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망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람과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경에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악한 세상 나라는, 비록 일시적으로 강할지라도, 결국 망하고 만다. 땅에 있던 전제국가들, 백성의 인권을 짓밟고 자유를 빼앗던 그 독재국가들은 다 망하고 말았다. 대 로마 제국도, 군국주의 일본 제국도, 나치 독일도 다 망했다. 불경건하고 부도덕하던 아람과 이스라엘도 그렇게 망할 것이다. 그들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망할 것이다. 그들의 재물과 노략물은 앗수르 왕 앞으로 옮긴 바 될 것이다.

[5-8절]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일러 가라사대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 . . .

여호와께서는 다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러므로 주님인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강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수로들과 강들]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유다의 잘못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를 기뻐하고 의지한 것이었다. ‘실로아’는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샘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신약성경에 나온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그리로 보내어 눈을 뜨게 하셨던 바로 그 실로암 못이다(요 9:7).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참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야단스럽거나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달변이 아니고, 조용하고 진실하고 진지한 교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그런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주위의 나라들의 요란스런 우상숭배적 행위들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적 방식, 육신적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먼 곳으로부터 앗수르 사람들을 불러오셔서 유다가 의지하는 아람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인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강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국을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 주님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악한 세상 나라들을 마침내 멸망시키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앗수르의 침공은 유다 땅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앗수르 왕은 “그 모든 곬[수로들, 강들]에 차고 그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칠” 것이다. ‘그 모든 곬과 그 모든 언덕’은 아람과 이스라엘의 골짜기들과 강들과 언덕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앗수르 왕은 아람과 이스라엘을 정복한 후에 유다에까지도 접근해 올 것이다.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범죄 때문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유다 나라를 ‘임마누엘이여’라고 부른 것은 그 나라가 ‘임마누엘’ 곧 메시아의 땅이며 장차 메시아로 인해 회복될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메시아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9-10절]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

그러나 최총적으로는 앗수르를 포함한 모든 열방들이 다 멸망할 것이다. 선지자는 외친다.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혹은 부서지리라(NASB)].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

지금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침공하고 위협하지만, 그들은 수년 내에 앗수르에게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앗수르는 영원한 나라인가? 아니다. 앗수르도 모든 지혜와 모략으로 계획하며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지만,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세상 나라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본문은 ‘필경 패망하리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한다. 그들의 계획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열국이 패망하고 그들의 계획이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지자는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유다에는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의 약속이다. 그것은 이사야 7:14에서 임마누엘이라고 불릴 한 아기의 탄생을 예언했을 때 이미 암시되었다. 메시아께서 오셔서 이루실 일 때문에 열국들은 결국 패망하고 유다는 마침내 이길 것이다.

이사야 8:1-10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내 아빠, 내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과 사마리아, 곧 아람과 이스라엘을 패망케 하실 것이다(4절). 그는 친히 앗수르를 불러 오실 것이다. 7절, “그러므로 주님인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강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또 그는 열국들의 패망을 선언하셨다(9-10절). 그 예언 속에는 앗수르의 멸망도 포함된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세력들을 다 파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악의 대장]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했다(롬 16:20). 하나님은 홀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알자. 시편 96:10,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지로다.” 요한계시록 11:15,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둘째로, 우리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로 만족하자. 6절,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것이 유다의 문제점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을 버리고 세상의 것들을 기웃거리고 세상 사람들의 사상과 풍습을 배우려 하지 말자. 우리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로 만족하자.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진리로, 성경적 기독교로 만족하자. 우리는 성경의 교훈, 즉 성경의 교리적, 윤리적 교훈을 붙들자. 우리는 옛신앙을 붙들자. 예레미야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유다 백성들은 변절하고 패역하였으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부탁하였다(딤후 1:13-14). 우리는 이 사도적 전통, 즉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으로 만족하며 그 진리, 그 신앙을 굳게 붙들고 지키자.

셋째로, 우리는 임마누엘을 믿자. 유다까지도 앗수르의 침공을 받을 것을 예언하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임마누엘이여’라고 부르셨다(8절). 선지자는 이방 나라들의 패망과 그들의 계획의 실패의 이유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고 말했다(10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라는 뜻이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은 메시아를 가리켰다(사 7:14).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과 승리는 메시아의 사역에 의존한다. 인생은 다 부족하고 구원받은 성도도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고 실수와 범죄가 없지 않은 존재들이지만, 우리의 의는 메시아의 대속 사역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족한 인생들을 위해 메시아를 보내주셨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이 되셨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 28:20). 또 성령께서는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신다(요 14:16).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자이시다.

 

11-22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11-12절]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 하시며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을 내게 경성시켜 가라사대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 즉 강한 감동으로 그의 뜻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알게 하셨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강하고 그 영향이 너무 크므로 하나님께서는 강한 감동으로 선지자를 교훈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감동하셔서 이 세대와 싸워 이기게 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의 길로 행치 말라고 교훈하셨다. 그는 그에게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생각지 말고 그들의 생활방식으로 살지 말라고 교훈하신 것이다.

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하셨다. 12절에 두 번 나오는 ‘맹약한 자가 있다’는 말의 뜻은 불분명하다. ‘맹약한 자’라는 원어(케쉐르)는 ‘공모(共謀), 모반(謀反)’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가들의 해석은 다양한 것 같다. 그러나 12절 후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맹약한 자 혹은 공모(共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하여 형제 유다를 치려는 것을 가리킨 것 같다. 그들 연합군의 침공, 그들의 공모는 유다에게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일 것이다.

[13-15절]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개인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나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하나님께서 홀로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외형적으로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이 위협적이고 두려운 일이지만, 유다는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유다는 오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한다. 역사상 경건한 성도들은 다 그러하였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풀무불과 사자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의지하고 소망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즉시 부언(附言)하시기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적 유다 백성에게는 오히려 거치는 돌이 되실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 절정적으로 드러났다(벧전 2:8).

[16-18절]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 . . .

이사야는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그의 제자들 중에 봉함하라고 말한다. ‘싸매며 봉함한다’는 것은 보존한다는 뜻인 동시에 감춘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향해 낯을 가리우시지만, 이사야는 하나님만 바라본다. 그는 세상 풍조와 여론까지도 역행하며 살아야 했다. 그의 길은 고난의 길이며 외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성도들이 가야 할 길이다.

이사야는 또 자기 자녀들이 하나님의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고 말한다.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그의 첫아들 ‘스알야숩’은 ‘남은 자들이 돌아온다’는 뜻을 가졌고, 둘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노략이 속히 임한다’는 뜻이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계시의 말씀을 잘 보존해야 했다. 그 말씀은 유다 백성에게 지침이 되고 소망이 될 것이었다.

[19-22절]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이사야는 특히 신비주의적, 은사주의적 거짓 선지자들에 관해 경계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고 하였다. 선지자 이사야가 사역하던 시대에 유다 사회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고 하는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 즉 신비주의적, 은사주의적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단호하게 말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한다’는 원문(아쉐르 에인-로 솨카르)은 ‘그들 속에 빛이 없기 때문이다’는 뜻이다(KJV, NASB). 우리의 신앙생활의 표준은 율법과 증거, 곧 하나님의 말씀, 성경말씀뿐이다. 기적은,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기 전에 하나님의 진리를 확증하는 목적으로 어느 기간 동안 주셨던 것이었다.

기독교는 결코 기적을 추구하거나 기적을 의존하는 기적주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사는 종교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결심하고 힘쓰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심 곧 성경 중심으로 살지 않는 자는 그 속에 진리의 빛, 곧 참된 지식이 없는 자이다.

이사야는 계속 말하기를, “[그들은]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노하여서] 위를 보며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원문, NASB, NIV)고 하였다. 거짓된 신비주의에 빠져 거짓된 것을 의지하고 그것들에게 묻는 자들은 결국 방황하고 곤고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환난과 고통의 흑암에 떨어질 것이다.

이사야 8:11-22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자. 하나님은 창조자시며 섭리자이시다. 그는 개인의 생사화복과 사회의 흥망성쇠를 홀로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만 우리의 의지할 자이시며 우리의 참된 피난처이시다. 주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고(마 10:28), 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고 하셨다(마 24:6).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2-39).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계신 참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만 붙들자.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이다. 우리는 성경적 기독교, 역사적 기독교, 곧 옛신앙을 굳게 붙들자. 특히 오늘날 불건전하고 거짓된 신비주의, 은사주의가 난무하여 성도들을 유혹한다. 기독교는 신비주의나 은사주의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증거했다(고전 1:22-23). 우리는 은사추구적, 은사의존적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의 바른 교리를 믿고 바른 생활교훈을 따라 살자.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했다(딤후 4:3-4). 오늘 시대가 바로 이런 시대라고 생각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성경 말씀을 붙들자.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옛 길을 참고하면서 바로 믿고 바로 사는 신앙생활을 하자.

 

 

9장: 메시아 왕국

[1-5절]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본문은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백성, 특히 이스라엘 북방의 스불론과 납달리 땅에 기쁨과 즐거움의 날이 찾아올 것을 예언한다. 이스라엘은 전에 고통을 당하고 흑암 가운데 있었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했으며 멸시를 당했고 무겁게 멘 멍에와 어깨에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가가 있었다고 묘사된다. 북쪽 이스라엘 나라는 죄로 인해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었고 많은 핍박과 학대를 당하였었다. 모든 인생의 영적 상태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마귀와 죄와 사망에 포로되어 양심의 고통, 육신의 질병들, 환경적 고통, 사망의 공포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이다.

본문은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빛과 즐거움이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본문은 전에 고통하던 자들에게 이제 흑암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본문은 또 옛적에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으나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인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한다. ‘해변 길’(Via Maris)은 북쪽의 다메섹에서 갈릴리 호수와 므깃도를 이어 가사로 이어지는 구약시대에 가장 중요한 도로이었다. ‘요단 저편’이라는 표현은 가나안 땅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방인의 갈릴리’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북방이 이방 나라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부패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들에게 빛이 비췰 것이다. 성경에서 빛은 참 지식과 의와 기쁨을 가리킨다. 그것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다(요 1:9).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다(요 8: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릴리에서부터 전도사역을 시작하셨다. 마태는 이사야서의 본문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내용을 성취하셨다고 말했다(마 4:12-16).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실 것이다. 본문은 그가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4) 그들은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주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본문은 그 까닭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미디안의 날 같이 꺾으실 것이기 때문이며,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땔감같이 살라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를 통한 영혼들의 구원과 교회의 건립과 확장과 그로 인한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은 이 예언의 성취이다.

[6-7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메시아 예언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사야는 신적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한다. ‘이는’이라는 시작말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한 아기의 탄생으로 말미암음을 나타낸다.

이사야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고 예언한다. 과거시제를 사용한 것은 미래 사건의 확실성을 나타낸다. 메시아를 ‘한 아기’라고 표현한 것은 메시아의 인성(人性)을 증거한다. 메시아께서는 한 인간으로 탄생하실 것이다.

그 아기의 이름은 ‘기묘자’라고 불릴 것이다. ‘기묘자’라는 원어(펠레 al,p,])는 ‘놀라우신 분’이라는 뜻으로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나타낸다. 그의 성육신(成肉身)과 동정녀 탄생, 그의 기적 행하심, 또 그의 부활 등은 다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들이다. 인간으로 오실 메시아는 신적 존재이실 것이다.

‘모사’(요에츠)(조언자)라는 이름은 메시아의 지혜를 나타내며, ‘전능하신 하나님’(엘 깁보르)이라는 이름은 그의 능력을 나타낸다. 특히 ‘영존하시는 아버지’(아비-아드)라는 명칭은 그의 영원성, 그의 사랑, 생명의 근원 되심, 아버지와 일체(一體) 되심 등을 증거한다. 그것은 다 메시아의 신성에 관계된다. 메시아는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겸비하신 독특하고 놀라운 인격이시다.

‘평강의 왕’(사르-솰롬)이라는 명칭과, “그 어깨에 정사(政事, 다스림)를 메었고,” “그 정사(政事)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메시아의 사역, 즉 그가 장차 하실 일을 증거한다. 메시아는 왕 곧 통치자로 오실 것이며, 그의 통치 사역은 자기 백성에게 평강을 주시는 사역일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과연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 그는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의와 평강을 이루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고(고후 5:18; 롬 5:1), 그것에 근거하여 참 평강을 얻었고 누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8). 또 그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요 14:27).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살후 3:16).

본문을 통해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메시아께서는 참빛으로 오셨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인생, 구원과 내세에 대한 참된 지식을 주셨고 완전한 의를 주셨고 기쁨과 행복을 주셨다. 메시아는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불리신다. 그는 참된 신성과 참된 인성을 가지신 독특하고 놀라우신 인격이시다. 우리가 믿는 예수가 바로 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시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참으로 깨닫고 그를 믿고 구원을 얻으셨는가?

둘째로, 메시아께서는 특히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 이 세상에는 참된 평안이 없다. 참 평안은 하나님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복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이 평안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마다 이 평안을 누린다. 우리는 이 은혜를 감사하며 누리며 또 다른 이들에게 증거하자.

 

8-21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8-12절]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본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증거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의 교만함을 지적한다. 그는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셨고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으므로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그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고 하였다고 말한다. ‘완악한’이라는 원어(고델)는 ‘거만한’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교만하였다.

선지자는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을 선언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인 아람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격동시켜 이스라엘을 삼키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5) 하나님의 노가 쉬지 않으실 것이다.

[13-17절]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褻慢)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 . . .

선지자는 또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의 무지와 완악함이다. 사람이 실수하고 범죄할 수는 있어도 그 실수와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가 부모의 교훈을 어기고 잘못을 범할 수 있으나 부모가 그것을 지적할 때 즉시 그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뉘우치고 그것을 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똑같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선언한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존귀한 자들을 친히 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루 사이에 그들을 죽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말한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들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들이 백성을 잘못 인도하면 그 백성은 잘못된 길로 가고 마침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또 선지자는 “이 백성이 각기 설만(褻慢)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한다”고 지적한다. ‘설만(褻慢)하다’는 원어(카네프)는 ‘불경건하다’는 뜻이다(BDB, NASB, NIV). ‘망령되이’라는 원어(네발라)는 ‘어리석은 것’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 불경건하며 악을 행하였고 입으로 어리석은 것을 말하였다.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고 한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악을 행할 때 그는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도 않으실 것이다. 비록 고아와 과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없을 것이다. 선지자는 또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18-21절]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 . . .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에 비유한다. 그는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돔 고모라는 하늘의 불로 멸망을 당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에 자주 비유한다. 나훔 1:6,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마침내 하나님의 최종적 진노의 형벌은 지옥 불못이다.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이며(막 9:43)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막 9:44, 46, 48).6)

선지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하기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굶주림 속에서 서로의 것을 빼앗으며 또 그들은 연합하여 유다를 칠 것이다. 선지자는 또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고 부언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아람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일으켜 교만한 이스라엘을 치실 것이다. 또 그는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는 청년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로 섶나무를 태우듯이 그들을 태우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서로의 것을 빼앗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이렇게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더 두려운 말씀은 12, 17, 21절에 반복해 나오는 말씀이다. 12절,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17절,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21절,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한번 그가 노하시면 그는 악인을 철저하게 징벌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이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교만이었다. 9절,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교만은 그 자체가 큰 죄악이며 멸망의 길이다. 교만은 모든 인생의 문제이다. 사람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치 않는다. 교만한 이스라엘은 자기를 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다(13절).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이었다.

우리는 죄를 지적받을 때 그것을 욕으로 여기지 말고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이사야 31: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예레미야 3:14, 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 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요한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째로, 우리는 인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16-17절,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불경건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어리석은 것을] 말하니.” 우리가 만일 잘못된 인도자를 만나면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기 쉬울 것이다. 구약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은 헛된 평안을 선포하였다. 예레미야 6:14, “그들[선지자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대수롭지 않게]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예수께서도 거짓 선지자들, 즉 거짓 목사들의 출현을 예언하시며 그들을 경계하라고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24:11, 24,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우리는 그들의 전하는 말과 선한 행실을 보고 그들이 참된 목사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믿음 안에서 앞선 자들이나 교회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말과 행실에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고 다른 이들의 신앙 생활과 교회 생활에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10장: 앗수르에 대한 심판

1-19절, 앗수르에 대한 심판

[1-4절]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榮華)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 . . .

선지자는 이스라엘 사회가 매우 불법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위해 봉사하기커녕 옳지 않은 법령을 공포하였고 가난하고 빈핍한 자들을 불공정하게 판결하며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과부의 소유물이나 고아의 소유물을 강제로 빼앗았다. 그러니 그런 자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공의와 선과 진실을 명한 법이었다. 출애굽기 23:6은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다. 레위기 19:15도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라”고 말했다. 또 잠언 14:31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한다.

불의와 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사회에 대해, 선지자는 징벌을 선포한다.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榮華)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그들은 재앙의 날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도망칠 수 없고 다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5-6절]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忿恨)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를 그의 진노의 도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그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를 ‘나의 진노의 막대기’라고 부르셨고, 또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忿恨)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한 불경건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려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한 나라’라는 원문(고이 카네프)은 ‘한 불경건한 나라’(BDB, NASB, NIV)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이스라엘 나라를, 앗수르 나라를 도구로 사용하여 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세상 나라들을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은 그들이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사람들의 악함에 대해서도 이제 진노를 선언하신다.

[7-11절]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여 이르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 . . .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었으나, 하나님의 보시기에 바르지 못했다.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이스라엘의 침공과 탈취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의 뜻과 마음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달랐다. 그들은 여러 나라들을 파괴하며 멸절시키려 하였고 심지어 유다까지도 침공하려 하였다. 그들은 자랑하듯이 말하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내 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 그 조각한 신상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보다 우승하였느니라. 내가 사마리아와 그 신상에게 행함같이 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고 하였다.

[12-14절]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 . .

하나님께서는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려는 앗수르 사람들의 그 욕심과 교만을 미워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주’(아도나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온 세상의 소유자시요 통치자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주님이시요 왕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시온산과 예루살렘, 즉 유다 나라에 대한 그의 일, 곧 유다를 징계하시는 일을 행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 일을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완악한 마음’이라는 원어(고델 레밥)는 ‘거만한 마음’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앗수르는 마음이 교만했고 높은 눈으로 자랑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으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였다. 교만은 큰 죄악이다.

[15-19절]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 . . .

선지자는 이제 앗수르에게 그들의 교만과 자랑이 합당치 않다고 말한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의 도끼나 톱과 몽둥이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앗수르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榮華)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그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시와 엉겅퀴]가 소멸되며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稀少)하여[적어서]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본문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며 의지하고 섬기며 순종하자. 그는 온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5-6, 12, 16절). 세상의 모든 사람이 경배하며 섬길 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다. 이사야 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라고 썼다(요일 2:13).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요 17:3). 우리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더욱 알고 그를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의와 악을 미워하신다. 특히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을 미워하시고, 또 그는 높은 마음, 교만한 마음, 자랑하는 마음을 미워하신다(1-2, 12절).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교훈하셨고, 또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돌아보라고 교훈하셨다.

잠언 18:12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했고, 잠언 14:31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자.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또 그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3:34-35).

사도 바울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했고(엡 4:31-32), 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다(빌 2:2-3). 우리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과 선을 실천하자.

 

20-34절, 남은 자가 돌아올 것

본문은 본장 앞부분에 이어서 앗수르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면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을 예언하였다.

[20-23절]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 . . .

선지자는, ‘그 날’ 즉 하나님께서 앗수르 나라를 심판하시는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앗수르 같은 나라를 의뢰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히 의뢰할 것이며, 남은 자들 곧 야곱의 남은 자들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멸망]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고 말했다.

‘끝까지’라는 원어(칼라)는 ‘완전한 멸망’(BDB, NASB)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최종적 심판과 멸망을 작정하셨고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그것은 공의의 심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죄에 대해 매우 진노하시고 엄히 징벌하실 것이다. 이 세상은 마침내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본문은 ‘남은 자’에 대해 증거한다. ‘남은 자’라는 말이 본문에 4번이나 나온다(20, 21, 21, 22절).7)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하여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그들은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곧 앗수르를 멸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다시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진실히 의지할 것이다.

[24-27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불구에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죽이신 것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 드신 것같이 하실 것이라.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셨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불구(不久)에[머잖아]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현재 유다 나라는 앗수르 나라의 침공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장차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를 침략하는 앗수르 나라를 징벌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 곧 무수히 많은 천사들을 거느리신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채찍을 들어 앗수르 나라의 왕을 치실 것이다. 그는 옛날 사사 기드온 시대에 미디안 사람들을 오렙 반석에서 쳐죽이게 하신 것처럼(삿 7:25) 하실 것이며, 또 출애굽 시대에 애굽에서 모세가 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든 것같이 하실 것이다(출 14:15-16). ‘그 날’ 곧 앗수르 나라가 심판을 받는 그 날에, 앗수르 나라의 무거운 짐이 이스라엘의 어깨에서 떠나고 앗수르 나라의 멍에가 이스라엘의 목에서 벗어질 것이다. 27절에 ‘기름진 까닭에’라는 원문(밉페네 솨멘)은 ‘기름부음 때문에’(KJV)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에 주신 기름부음, 특히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으실 메시아를 가리킨 것 같다(Poole, 박윤선). 앗수르 나라의 멸망과 이스라엘 나라의 구원은 메시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28-32절] 앗수르 왕이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치중을 머무르고 영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 사람은 도망하도다.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 . .

앗수르 왕8)은 유다에 들어올 것이다. 그는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치중을 머무르고 영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할 것이다. 아얏, 미그론, 믹마스, 게바는 다 예루살렘 부근에 있는 유다 나라의 성들이다. ‘치중’이라는 한자어(輜重)는 ‘짐’이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계속 외친다. “그때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 사람은 도망하도다.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맛메나 사람은 피난하며 게빔 거민은 도망하도다.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손을 흔든다’는 표현은 적군이 그 성을 공격하는 모습을 묘사할 것이다.

[33-34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철로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

선지자는 계속 말한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들이 찍힐 것이요 높은 자들이 낮아질 것이며 철로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강조한다. ‘혁혁한 위력으로’라는 원어(베마아라차)는 ‘와지끈하게’(with a terrible crash)(NASB)라는 뜻이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와지끈하게 꺾으실 ‘그 가지’는 앗수르 왕을 가리킬 것이며(박윤선, Poole, J. A. Alexander), 레바논도 앗수르를 가리킬 것이다(겔 31:3). 또 ‘그 장대한 자들’(원문)과 ‘높은 자들’(원문)도 앗수르의 장군들을 가리킬 것이다. ‘권능 있는 자’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천사(사 37:36)을 가리킬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22절, “넘치는 공의로 훼멸[멸망]이 작정되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우상숭배와 음란을 심판하실 것이며, 앗수르의 교만과 악함과 강포를 심판하실 것이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작정되어 있다. 로마서 2:5, 16,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그 심판은 참으로 두려운 사건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버리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사모하자. 이사야서는 ‘남은 자’에 대해 증거하며 강조한다. ‘남은 자’라는 표현이 본문에 4번이나 나온다. 남은 자들은, 그리고 오직 남은 자들만, 모든 우상숭배와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만 진실히 의지할 것이다. 그들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자들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겨두신 자들이 있다. 엘리야 시대와 같은 배교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을 맞추지 않은 자들 7천명을 남겨두셨다(왕상 19:18). 남은 자들은 돌아올 것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남은 자들이다. 우리는 과연 남은 자들의 표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남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긍휼과 은혜만 사모하자.

 

 

11장: 메시아 시대

1-9절, 이새에게서 난 한 싹

[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9)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것은 메시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자손이라고 표현한 것은 메시아의 비천한 출생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새는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동료 신하들에게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라”고 말했었다(삼상 18:23).

이 예언은 메시아의 인성(人性)과 그의 낮아지심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출산하고 40일이 지나 결례(潔禮)를 행하는 날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하려 하였는데(눅 2:24), 그것은 가정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음을 나타낸다. 보통 출산한 여인은 1년된 어린양으로 속죄제를 드렸으나 가난한 경우는 비둘기로 드렸다(레 12:6-8).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하셨고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2절]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이사야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라”고 예언한다. ‘신’이라는 원어(루아크)는 ‘영’(靈)이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신’은 ‘여호와의 영’ 곧 성령을 가리킨다. ‘강림하신다’는 원어(누아크)는 ‘머무르다’(rest upon)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메시아 위에 머무르실 것이다.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시며 모략과 권능의 영이시며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는 말은 ‘여호와를 경외케 하는 영’이라는 뜻일 것이다.

과연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께서는 그 위에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 마태복음 3:16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실상 예수께서는 본래부터 신성(神性)을 가진 자로서 사람이 되셨다. 사도 요한은 증거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하였다(요 1:14).

본절은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아께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을 것이다. ‘메시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그것은 성령의 충만한 부음을 가리킨다. 골로새서 2:9는 “그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고 말한다.

[3-5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 . . .

선지자 이사야는 또 예언하기를, “그[메시아]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말한다. ‘즐거움을 삼는다’는 원어(하리코)는 ‘냄새를 낸다, 알아차린다, 향기를 낸다’는 뜻이며 또 ‘기뻐한다’고 번역되기도 한다(BDB, NASB, NIV). 옛날 영어성경은 ‘지혜를 얻게 한다’고 번역했는데(KJV), 그것이 더 나아 보인다.

이 예언은 메시아의 사역의 한 면을 증거한다. 즉 메시아께서 오셔서 공의의 심판자로 일하실 것을 증거한다. 메시아께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않으실 것이다. 즉 그는 사람을 외모로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공의로 가난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정직으로 겸손한 자들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앞에는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그가 공의로 보응하시는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은 그가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시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들을 죽이실 것이며 공의와 정직으로 심판을 시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6-9절]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 . . .

선지자 이사야는 또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사역의 결과로 이 땅 위에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새 세계의 특징은 한마디로 평화이다. 거기에는 악한 짐승들이 없을 것이다. 모든 짐승들은 성질이 온순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세상에 상함과 해됨이 더 이상 없을 것이며, 그것은 세상에 하나님의 지식과 경외함이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언은, 만일 그것이 문자적 의미라면,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만일 비유적, 영적 의미라면, 신약시대나 천국의 모습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 그 예언은 영적으로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이사야 11:1-9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며 그를 굳게 믿고 의지하자. 예수께서는 이사야서에 예언된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셨다.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했다(딤전 1:15). 우리 모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자.

둘째로, 우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롬 2:6-8) 아들 예수를 심판자로 세우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셨다(요 5:22). 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를 명하셨고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말했다(행 17:30-31). 그러므로 이 지식을 가진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평화의 새 세계를 사모하며 소망하자. 평화의 새 세계는 영적으로는 이미 시작되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인들이 거룩한 의인들로 변화된 자들이다. 그들은 평안을 얻었고 또 화평케 하는 사신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성화가 불완전하듯이 지상의 교회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장차 주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천년왕국이나 천국에서 이 예언은 충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義)가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벧후 3:13) 그 세계를 사모하며 소망하자.

 

10-16절, 만민의 기호

이사야는 메시아께서 만민의 기호가 되실 것이며 그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온 열방이 그에게로 나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10-11절]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 . . .

이사야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은 ‘그 날에’라는 말을 두 번 말한다. ‘그 날’은 분명히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라는 원문은 단순히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KJV, NASB, NIV). 1절에서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예언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본절에서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메시아께서는 이새의 자손인 한 인간으로 오실 것이지만, 실상 그는 이새의 뿌리, 아니 모든 사람의 뿌리이시다.

이새의 뿌리’라는 표현은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뿌리이시다. 요한계시록 22:16에서도 예수께서는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만물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요한복음 1:3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또 고린도전서 8:6도,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한다.

본문은 이새의 뿌리가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며 이방 나라들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12절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한다. ‘만민의 기호’라는 말은 ‘만민이 그를 믿고 따를 자,’ 즉 세상의 주님과 구주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주님과 구주이시다.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다(딤전 1:15).

본문은 메시아 시대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오고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온다고 예언한다.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라’(10절)는 말씀의 원문은 ‘열방이 그를 찾으리라’는 뜻이다. 또 주께서는 그 날에 다시 손을 펴셔서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 곧 동서사방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 남은 백성’이라는 말은 ‘남은 자’라는 말과 동의어로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자들을 가리킨다.

[12절]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 . . .

이사야는 또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離散)한 자를 모으시리라”고 예언한다. 이것은 메시아 시대에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과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아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회복과 이방인들의 구원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바이다. 로마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롬 11:25-26).

[13-16절] 에브라임의 투기(妬忌)는 없어지고 . . . .

이사야는 또한 메시아 시대에 분열된 교회의 단합이 있을 것이며 세계복음화의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남은 자들을 위한 구원의 대로(大路) 곧 광대한 길이 열릴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먼저 “에브라임의 투기(妬忌)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는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투기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즉 구약교회가 서로 질투하고 갈등하였었다. 그러나 메시아 시대에는 참된 교회는 단합하며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주께서 남기신 새 계명의 정신이며 또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주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라고 하신 기도의 내용이기도 하다. 참된 교회들은 일치단합할 것이다.

이사야는 또 “그들이 서(西)으로 블레셋 사람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고 예언한다. 그것은 메시아 시대에 이스라엘이그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할 것을 보인다. 그것은 신약교회가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할 것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과연 신약교회는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였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이사야는 또 “여호와께서 애굽 해고(海股)를 말리시고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서 그 하수를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大路)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고 말한다. ‘애굽 해고(海股)’라는 원어(레숀 얌-미츠라임)는 ‘애굽 바다의 혀’ (KJV, NASB)10)라는 뜻으로서 홍해의 북서쪽 끝, 즉 오늘날 수에즈만을 가리킨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말리시고 유브라데 강을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갈 수 있게 하실 것이며, 또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해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大路)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실 것이다. 이 예언은 온 세계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힘있게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는 열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다(마 28:19). 그는 일찍이 제자들에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었다(마 24:14). 이제 그 일이 거의 이루어졌다.

이미 신약시대의 초기에 하나님의 복음이 주의 사도들을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광대하고 효력 있는 전도의 문, 구원의 문이 에베소에서 열렸다고 간증하였다(고전 16:9). 또 그는 골로새서에서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고 말했다(골 1:23).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찬송하였다고 하였다(계 7:9). 세계복음화가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기호, 곧 세상의 구주이시며, 택한 모든 백성은 다 그에게로 나아올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구원의 대로(大路)가 열려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인에게 힘써 전하자. 전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수요전도대에 참여하고, 국내의 개척교회사역이나 국외의 선교사역에 물질과 기도로 힘써 후원하자.

 

 

12장: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 찬송함

본장은 메시아 시대에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와 그 내용과 그 기쁨과 그 전파에 대해 증거한다.

[1절]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 . . .

먼저,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에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에 대해 말한다. 그는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고 말한다. ‘그 날’은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사 11:10). 그 시대에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할 것이다. ‘감사하다’는 원어(야다)는 ‘감사하다’(NASB) 혹은 ‘찬송하다’(KJV, NIV)라고 번역된다. 이 말은 옛날 영어성경(KJV)에서 ‘감사하다’는 말로 40회, ‘찬송하다’는 말로 53회 번역되었다.

성도들이 감사하며 찬송할 이유는 하나님의 노가 쉬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속죄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그의 진노를 가라앉히셨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5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라고 말하였는데, ‘화목제물’이라는 원어(힐라스테리온 ἱλαστήριον)는 ‘유화제물’ 즉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제물이라는 뜻이다. 그는, 또 로마서 5:9에서,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증거하였다. 구원은 하나님의 진노의 그치심, 곧 진노로부터의 구원이다. 그것이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이다.

[2절]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 . .

선지자 이사야는 또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내용을 말한다. 그는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말한다.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만 의뢰한다. 우리는 이 세상도, 우리 자신의 현재와 미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 가운데 방황하던 시간들을 끝내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주 여호와는 우리의 힘, 우리의 노래, 우리의 구원이시다. 옛날 영어성경(KJV)은 ‘여호와’라는 원어를 ‘주’(the Lord)라는 말로 번역하였으나 본절을 포함하여 네 곳에서는 ‘여호와’(Jehovah)라는 말로 그대로 번역하였다(출 6:3; 시 83:18; 사 12:2; 26:4). 죄는 하나님의 징벌로 우리에게 고통과 두려움을 가져왔으나, 죄사함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 힘과 기쁨과 노래를 가져다 주었다.

[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선지자 이사야는 또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기쁨을 표현한다. 그는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고 말한다. 그는 구원을 우물들에 비유한다. 우물은 물 저장고와 다르다. 물 저장고는 물을 다 쓰면 물이 없지만, 우물은 계속 물이 나오는 곳이다. 우물은 물이 풍성하다. 그 물은 목마름을 해소시킬 만한 시원한 물이며 우리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줄 만한 깨끗한 물이다. 그 물은 물맛도 매우 좋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생명이다.

주 예수께서는 구원을 생수에다 비유하셨다. 그는 수가성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4:13-14). 또 그는 초막절 끝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그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켰다(요 7:37-39).

성도의 감사와 찬송은 기쁨의 감사와 찬송이다. 성도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다. 성도는 기쁘게 하나님을 찬송한다. 선지자 스바냐는 그 기쁨의 노래를 예언하기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다(습 3:14-15).

[4-6절]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 . .

선지자 이사야는 또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이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이름을 만방에 선포하며 전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말하기를,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할 것이다. 찬송은 일종의 전도가 될 것이다. 성도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극히 아름다운 일을 찬송할 것이다. ‘극히 아름다운 일’이라는 원어(게우스)는 ‘뛰어나신 일들’(KJV, NASB), 혹은 ‘엄위하신 일들’ (BDB)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구원의 일을 가리킨다.

구원은 역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진 사건들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하였다(고전 15:3-4). 복음의 내용은 놀랍고 엄위하신 일들이다. 그러나 구원은 또한 개인적으로는 구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건이다. 우리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얻게 되었는지, 참으로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구원은 단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또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구주이시다(딤전 1:1; 딛 1:3). 우리의 성화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하였다(고전 3:7).

본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릴 것을 예언하였다.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고 그의 위로하심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과 힘과 노래가 되신다는 것이다. 또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들의 구원의 기쁨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또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은 온 세계에 전파될 것이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일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의 일들, 또 우리 속에 주신 구원의 일들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이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졌다.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쳤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위로가 넘쳤다. 구원의 생명수는 우리의 심령에 넘쳐 흐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찬송하며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만방에 전파하고 알리자.

 

 

13장: 바벨론에 대한 경고

[1-5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 . .

본장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멸망의 날이 가깝다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자산(赭山) 위에 기호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로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불러 바벨론을 치게 하실 자들을 가리킨다. ‘자산’(赭山)은 벌거숭이산(민둥산)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바벨론을 치게 하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자들이며 하나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이라고 표현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그들을 불러 바벨론을 향하신 그의 노를 풀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선지자는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고 말하며,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그 군대를 검열하시는 소리라고 표현한다. 또 그는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가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라고 말한다. 바벨론을 치러 올 무리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러 오셔서 바벨론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6-10절]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 . . .

선지자는 또,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라고 말한다. 바벨론의 멸망의 날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표현된다. 성경에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키실 날이 가까웠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 두려운 사실을 듣고 애곡할 것이다.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그러므로 모든 손이 피곤하며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잡혀 임산한 여자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같으리로다”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그 날이 얼마나 두려운지 잘 묘사하는 것이다. 그 날에 사람들의 모든 손은 피곤하고 각 사람의 마음은 녹으며 그들은 다 놀라 괴로움과 슬픔에 잡히며 해산하는 여자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고 두렵고 당황하여 얼굴이 붉게 상기될 것이다.

선지자는 또,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라고 말한다. 그는 ‘여호와의 날’을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라고 표현한다. 그 날은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날이다. 그 날은 죄인들을 멸하기 위해 예비된 날이다. 그 날에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도 빛을 잃을 것이다.

[11-16절]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단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세상의 악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악을 벌하려 하실 뿐이다. 그는 세상의 악을 ‘교만’ ‘오만’ ‘강포’ ‘거만’이라고 표현하신다. 교만과 강포는 어느 시대에나 인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 악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고 말씀하신다. 이 세상은 사람을 위해 창조된 세상이지만, 사람들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세상에는 사람들의 수효가 심히 적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같이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맹렬히 진노하시는 그 날에, 바벨론 제국의 거민들은 심히 놀라서 뿔뿔이 자기 고향으로 도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만나는 자는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겠고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그 목전에 메어침을 입겠고 그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 그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어느 전쟁이나 그러하겠지만, 바벨론 멸망 때에는 수많은 전사자(戰死者)들이 생길 것이며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앞에서 메어침을 당하겠고 아내들이 욕을 당할 것이다.

[17-18절]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 . . .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벨론을 멸망시킬 나라가 누구인지 알려주신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로 쓰일 그 나라는 바로 메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메대 사람을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또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가석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메대 사람들의 무자비한 침공이 바벨론을 멸망케 만들 것이다.

[19-22절]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 . . .

선지자는 바벨론이 황폐해지리라고 예언한다. 그는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라”고 말한다. ‘영광’이라는 원어(체비)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이고, ‘자랑하는 노리개’라는 원어(팁에레스 게온)는 ‘위엄의 영광’이라는 뜻이다(BDB). 바벨론은 열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하였고 갈대아 사람들의 위엄의 영광이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제국이 멸망하여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며 그 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영영히 없을 것이다. 아라비아 사람들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 곳에 그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다.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집들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그 궁성에는 이리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집에는 들개가 울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의 때가 가깝고 그의 멸망의 날이 오래지 아니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메대 사람들을 격동시켜 바벨론을 쳐 멸망시키게 하실 것이다. 3절,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시며 명령하시며 불러 그의 노를 풀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가 될 것이다(5절). 하나님의 날 곧 그가 정하신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6, 9절). 11절,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라.” 그 날에 그는 땅의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17절,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라.”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인류의 역사(歷史)를 주관하신다. 그는 그의 진노의 도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개인의 생사화복(生死禍福), 즉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이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국가의 평안과 환난도, 교회의 평안과 고난과 승리도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이사야 45:6-7,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우리는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죄를 즉시, 철저히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진노하시는 것은 그들의 죄가 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죄인들을 벌하시고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향해 진노하시고 바벨론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9절,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11절,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며 그 결과는 멸망이다.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참으로 무섭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어떤 죄를 깨달을 때, 깨닫는 즉시, 철저하게 그것을 회개하자.

셋째로, 우리는 의 안에만 거하자.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의 행위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옷과 같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완전한 의가 되신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 안에 거하며, 그의 의 안에서 실제로 모든 죄악된 생각과 말과 행위를 버리고 오직 의롭게만 살아가자.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만 의지하며 그 의 안에 거하면서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경의 교훈에 순종하여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14장: 바벨론 왕의 멸망

1-23절, 바벨론 왕의 멸망

[1-2절]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 . . .

1-2절에서,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라”고 예언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온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택하시고 그들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또 이사야는 “나그네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라”고 예언한다. ‘나그네된 자’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에,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입하여 그들과 연합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개종과 구원의 일이다. 이사야 2:2는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었다. 구약교회는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확장된 교회가 될 것이다.

이사야는 또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奴婢)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고 예언한다. 이스라엘 족속의 회복의 날에는, 그들이 힘과 세력을 얻어 이방인들을 굴복시킬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군사적 정복이 아니고, 영적인 정복, 곧 복음 전파로 말미암은 회개와 구원의 정복을 가리킨다. 그것은 신약교회가 복음 진리로 이방인들을 회개시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본다. 주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 28:18-20).

[3-5절]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 . . .

3-5절에서,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슬픔과 곤고와 및 그들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스라엘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에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셔서 참 평안과 안식을 주셨다.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8).

이사야는 그 날에 바벨론 왕에 대해 이 노래를 지어 말하라고 한다. 그것은 바벨론 왕과 그 나라가 멸망한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라는 내용이었다. 바벨론 왕은 이방인들을 학대하고 압제하였었다.11) 그러나 이제 바벨론 왕과 그 제국이 폐하여지고 그 왕권이 패망할 것이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고 말한다.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은 바벨론 왕을 가리킨다.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6-8절]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 . . .

6-8절에서, 이사야는 바벨론의 과거의 행적을 증거한다. 그는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라고 말한다. 바벨론은 과거에 강력한 세계적 제국이었다. 그 대제국을 제압할 세력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었다.

이사야는 다시 말하기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무너뜨리시므로 “이제는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니 무리가 소리질러 노래하는도다.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도 너로 인하여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뜨리웠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작벌할 자 없다 하는도다”라고 한다.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은 이스라엘을 상징한 것일 것이다.

[9-11절]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 . . .

9-11절에서, 선지자는 바벨론 왕이 멸망할 때 지옥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소동한다고 표현한다. 그는 말하기를, “아래의 음부[지옥]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에서의 모든 영웅을 너로 인하여 동하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으로 그 보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라고 한다. 영화롭고 강대한 나라, 비파 소리가 울려 퍼졌던 희락의 나라 바벨론이 멸망하다니, 지옥에 먼저 가 있던 열왕들이 다 놀란다고 표현한다.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같이 되었느냐?” 그러나 그 영화를 누렸던 바벨론 왕은 죽어 구더기와 지렁이가 있는 누추한 곳으로 던지울 것이다.

[12-14절]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 . . .

12-14절에서, 선지자는 바벨론 왕의 교만에 대해 증거한다. 그는 말하기를,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라고 한다. 바벨론 제국이 세계적인 위세를 드러낼 때, 바벨론 왕은 교만하여 자신을 지극히 높은 자 하나님과 감히 견주려 하였다.

[15-17절]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 . . .

그러나, 15-17절에서, 선지자는 바벨론 왕의 멸망을 말한다. 그는,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고 말한다. 사람은 자기 행위대로 보응을 받는다. 상급에 차등이 있듯이, 형벌에도 차등이 있을 것이다. 큰 죄를 범한 자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驚動)시키며[놀라게 하며]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 하리로다”라고 한다. 한 때 온 세계를 두렵게 하고 놀라게 하며 파괴하며 정복했던 바벨론 왕은 이제 지옥의 맨 밑에 던지울 것이다.

[18-20절] 열방의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어쫓겼으니 . . . .

18-20절에서, 선지자는 바벨론 왕이 죽어 무덤에 정상적으로 안장(安葬)되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열방의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빠진 주검에 둘려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네가 자기 땅을 망케 하였고 자기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일반으로 안장(安葬)함을 얻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의 후손은 영영히 이름이 나지 못하리로다 할지니라”고 말한다. 악한 자의 마지막은 항상 비참하다.

[21-23절] 너희는 그들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그 자손 도륙하기를 예비하여 그들로 일어나 땅을 취하여 . . . .

21-23절에서, 선지자는 또 “너희는 그들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그 자손 도륙하기를 예비하여 그들로 일어나 땅을 취하여 세상에 성읍을 충만케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다. ‘도륙하기’라는 원어(마트베아크)는 ‘살육할 장소’라는 뜻이다(BDB). 바벨론은 그 선조들의 죄악 때문에 그 자손들이 살육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다시 온 세상에 성읍을 충만하게 건립하지 못할 것이다.

선지자는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그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것으로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비로 소제하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은 멸망할 것이며 그 땅은 황폐할 것이다. 그 땅은 ‘고슴도치의 굴’이 될 것이라고 표현된다. 또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비로 소제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모든 일을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절부터 23까지의 말씀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5절,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 22-23절, “내[여호와]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그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내가 또 그것으로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비로 소제하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주권적 섭리를 믿자. 잠언 16:1에는,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말하며, 잠언 16:3에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말하며, 잠언 16:9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둘째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말자. 바벨론 왕의 멸망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본문에 증거된 대로 그의 강포와 교만 때문이었다. 그는 남을 압제하는 자이었고 난폭한 자이었다(4절). 그의 강포와 압제를 막을 자가 없었다(6절). 그는 한때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누렸었다. 그때 그는 교만하여 자신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감히 견주려 하였다(13-14절). 그러나 그의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잠시이었다. 그것들은 참으로 헛되었다. 그는 그 이전에 죽은 왕들이 놀랄 정도로 연약하게 될 것이며(10절) 그의 영광과 희락은 다 없어질 것이다(11절). 그는 지옥 맨밑에 떨어질 것이다(15절).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 전도서는 세상의 모든 일이 헛됨을 말씀하며, 결론적으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하였다(전 12:13).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한다(요일 2:15-17). 우리는 세상을 사랑치 말고 죄를 짓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고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택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그들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다(1-3절). 바벨론 왕의 멸망은 이스라엘에게 안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과 사랑과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엡 2:4-5). 주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고 그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참된 평안이다(마 11:28; 요 14:27).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항상 의지하고 감사하자.

 

24-32절, 앗수르와 블레셋의 멸망

[24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24-27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앗수르의 멸망에 대해 예언한다. 24절에서, 그는 우선,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거니시고 자유로이 동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힘있게 행하시고 이루심을 나타낸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가 확실함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지만, 그가 맹세하며 선포하시는 말씀은 확실한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생각한 것’ ‘나의 경영한 것’이라는 표현들은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세상의 만물과 만사(萬事)를 그의 기쁘신 뜻 가운데 다 작정하고 계획하셨다. 그 하나님의 작정은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이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의 성취 과정이다. 하나님은 홀로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며 그의 뜻하신 목표를 향해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시편 115:3은,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였고, 시편 135:6도,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라고 말씀하였다. 다니엘서는,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는 진리를 세 번이나 반복하여 기록하였고(단 4:17, 25, 32), 다니엘 자신도 증거하기를,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하나님]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라고 하였다(단 4:35). 사도 바울도 “이는 만물이 주[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증거하였다(롬 11:36).

[25절]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 아래 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2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멸망에 대해 예언하신다. 그는,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 아래 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땅’ ‘나의 산’은 이스라엘 땅을 가리킨다. 당시에 앗수르 나라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지배하였고 북쪽 이스라엘도 정복하였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사람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파하며 이스라엘 산에서 발 아래 밟으실 것이다. 그때에 앗수르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갈 것이며 앗수르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다. 앗수르의 멸망의 날은 이스라엘에게 자유와 해방의 날이 될 것이다.

[26-27절]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26-2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고 말씀하셨다. 앗수르 나라가 당시에 세계를 지배한 대제국이었으므로, 앗수르를 향하신 하나님의 작정은 곧 온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작정이었다. 실상,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열국들의 흥망성쇠는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는 주권적 작정과 섭리이며 그 작정과 섭리를 대항하거나 좌절시킬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고 증거한다.

[28-29절] 아하스 왕의 죽던 해에 받은 경고라.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

28-31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또한 블레셋의 멸망에 대해 예언한다. 그는 말하기를, “아하스 왕의 죽던 해에 받은 경고라.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고 한다. ‘너를 치던 막대기’는 블레셋을 치던 남쪽 유다 나라의 세력을 가리켰다고 본다. 역대하 26장에 보면, 유다의 웃시야 왕은,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성과 야브네성과 아스돗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였고 또 하나님이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셨다”(대하 26:6-7).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는 표현은 블레셋을 지배했던 유다의 왕권이 쇠약해졌음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 이유로서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독사’와 ‘불뱀’은 쇠약한 유다 왕국에서 일어날 강한 왕을 가리킨다.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가리킨 것일지도 모르나, 역사적으로는 히스기야 왕을 가리켰다고 본다. 열왕기하 18:8에 보면, 히스기야 왕은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다.

[30절]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빈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너의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너의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

30절에서, 선지자는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빈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너의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너의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가난한 자,’ ‘빈핍한 자’는 유다를 가리켰다고 본다. 유다 백성은 현재 가난하고 궁핍할지라도, 그들이 배부르게 먹고 평안히 눕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뿌리가 될 자들을 기근으로 죽이실 것이며 그들의 남은 자들이 칼로 살육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31절]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게 되었도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 없느니라.

31절에서, 선지자는,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게 되었도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 없느니라”고 말한다.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라는 말은 ‘대열에서 낙오한 자’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블레셋이 다 소멸되게 되었다고 말한다. 블레셋은 북방으로부터 오는 군대에 의해 소멸될 것이다. ‘북방에서 오는 연기’ 곧 ‘북방으로부터 오는 군대’는 바벨론 군대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를 그 곳에도 보내셔서 블레셋을 징벌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이다.

[32절]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32절에서, 선지자는 바벨론의 침입으로 블레셋이 멸망할 것이지만, 그 사건이 시온을 재건(再建)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이방나라 사신들에게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고 대답하라고 전한다.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 회복될 것이며, 지금 곤고한 이스라엘 백성은 장차 하나님께서 시온을 재건하실 때 그 시온성 안으로 피난하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본장 1절 이하에서, 바벨론 왕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였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인들을 지배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의 슬픔과 곤고와 고역에서 그들을 놓으시고 안식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였었다.

이사야 14:24-32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앗수르와 블레셋의 멸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씀하셨고,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세상의 만물과 만사를 그의 뜻 가운데 다 작정하셨고, 그 작정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과 섭리의 손 안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홀로 역사를 주관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시편 115:3은,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라고 말한다. 또 다니엘은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라고 증거한다(단 4:35)

둘째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목표는 교회이다. 앗수르와 블레셋의 멸망은 시온의 재건을 위한 것이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다시 세우시고 곤고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로 피난케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만세 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 즉 교회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작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救贖)하셨고 또 성령을 통해 중생(重生)시켜 교회로 이끄시고 교회를 세우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도 우리를 의로 훈련시키신다. 구원받은 성도의 지상 생활은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이며, 그것은 훈련과 징계를 통해 성화를 이루게 하시는 과정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그 ‘선’은 우리의 성화를 가리킨다.

 

 

15장: 모압에 대한 경고

[1절]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길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본장은 모압에 관한 경고이다. 모압은 사해의 동쪽 지역, 즉 오늘날 요르단의 중부의 서쪽 끝지역이었다. 모압은 롯의 큰 딸이 나은 아들 모압의 자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압 족속에 대해서 자세한 관심을 가지셨고, 모압의 패망에 대해 경고하셨다.

모압의 패망은 하룻밤에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길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알’은 모압 중부의 한 도시이며 ‘길’은 길하레셋이라는 도시로서 모압 남부의 중심도시이었다. 길하레셋은 북부의 디본과 함께 모압의 쌍둥이 수도와 같은 큰 성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압 알이 하룻밤에 망해 황폐해질 것이고 모압의 수도인 길까지도 하룻밤에 망해 황폐해질 것이다.

[2-3절] 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도다. 그들이 각각 머리털을 없이 하였고 수염을 깎았으며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모압 나라가 멸망할 때 그 거민들은 그들이 섬기던 산당들에 올라가서 자기들의 멸망을 인해 통곡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이 각각 머리털을 없이 하였고 수염을 깎았으며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라고 말씀하신다. 모압이 멸망할 때 사람들은 애곡의 표로 머리털과 수염을 깎고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지붕과 넓은 곳에서 애통하며 심히 울 것이다.

[4-5절]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니 그러므로 모압의 전사가 크게 부르짖으며 그 혼이 속에서 떨도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귀인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로 도망하여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는 또한,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니 그러므로 모압의 전사(戰士)가 크게 부르짖으며 그 혼이 속에서 떨도다”라고 말씀하신다.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북방 국경도시이며 ‘야하스’는 중부의 동쪽끝의 도시이었다. 북방 국경지역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중부의 국경의 도시에까지 들릴 것이라는 표현이다. 또 그 멸망의 날에 용감한 군인들도 크게 부르짖을 것이며 사람들의 혼이 떨리는 큰 두려움이 닥칠 것이다.

5절에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라는 말은 선지자의 말일 것이다. 선지자는 멸망하는 모압을 생각하며 놀람과 고통 속에 또 아마 긍휼의 심령으로 부르짖는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귀인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로 도망하여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부르짖는다”고 말씀하신다. ‘그 귀인들’이라는 원어(베리케하)는 ‘그 피난민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BDB, KJV, NASB). ‘소알’은 모압의 서남쪽 끝, 즉 사해 남단에 있는 도시이었다. ‘에글랏 슬리시야’는 ‘3년된 어린 암소’(KJV)라는 뜻으로 ‘3년된 어린 암소같이 급하게’라는 뜻 같다. 그것은 모압이 멸망할 때 급한 피난 행렬이 있을 것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본다.

[6-7절]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

하나님께서는 또,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 피난하는 때에는 먹을 양식이 없고 마실 물이 없을 것이다. ‘청청한 것’ 곧 푸른 채소 같은 것들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라”고 말씀하신다. 피난민들은 자기 소유물들을 챙겨 짊어지고 버드나무 시내, 즉 모압의 맨 남쪽에 있는 시내인 세렛 시내를 건널 것이다.

[8-9절] 이는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브엘엘림에 미치며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의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이는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브엘엘림에 미치며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사방’이라는 원어(게불)는 ‘국경’이라는 뜻이다. 곡성(哭聲)이 모압 사방 끝까지, 국경 지역까지 가득할 것이다. 또 살육이 가득함으로 디몬 물에 피가 가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럴지라도12)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의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에 “내가”라는 표현은 모압의 멸망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과 징벌임을 증거한다. 또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여서,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에게와 도피한 자들에게도 사자들을 보내셔서 죽게 하실 것이다. 오늘날까지 모압 지역은 황폐해 있다고 한다.

본장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열국을 살피시고 섭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본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압의 여러 성들의 이름들을 언급하신다. 그는 모압 알, 모압 길, 바잇, 디본, 느보, 메드바, 헤스본, 엘르알레, 야하스, 소알, 루힛, 호로나임, 니므림, 에글라임, 브엘엘림, 디몬 등 16개 이상의 이름들을 열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에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아니었고 이방 나라에 대해서도 자세한 관심을 가지셨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 때에도 이방 나라 앗수르의 어린 생명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심을 말씀하셨다. 요나 4:10-11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나라, 모든 사람에 대해 자세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신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는 신약교회에 세계복음화의 대명령을 주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열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고(마 28:19-20), 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다(막 16:15). 또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열국을 살피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둘째로, 우리는 안일한 마음을 버리고 항상 깨어 있자. 본장은 하룻밤에 모압의 성들인 ‘알’과 ‘길’이 망할 것을 예언한다. 하룻밤에 멸망이 올 수 있다. 주께서는 어리석은 농부의 비유에서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다고 말씀하셨다(눅 12:20). 야고보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말하였다(약 4:14-16).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이 도적같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깨어 예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마 24:42, 44). ‘깨어 있는 삶’이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가리킨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안일함은 금물이다. 우리는 안일하고 해이한 마음을 버리고 오늘이라는 날에 날마다 항상 깨어 있어 진지한 마음으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힘쓰자.

셋째로, 우리는 모든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죄는 멸망을 가져온다. 그것은 심한 통곡과 두려움, 급한 피난 행렬,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의 궁핍, 살육의 가득함 등을 포함하는 무서운 멸망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압을 심판하시되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다. 9절,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의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다. 그는 옛날 노아 시대에 온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신 적이 있으시고 또 음란했던 소돔 고모라 성을 하늘에서 유황불비를 내려 멸망시키신 적도 있으시다. 시편 7:11-12,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온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벌하실 것이라고 성경에 밝히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을 홀로 섭리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만복의 근원이실 뿐 아니라, 악인들을 공의로 엄하게 벌하시는 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경건과 불신앙의 모든 죄를 다 버려야 하고 미움과 음란과 거짓 등의 모든 부도덕한 죄들을 다 버려야 한다. 죄는 불과 같고 무서운 암균과 같다. 그것은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교훈과 명령에만 순종하자.

 

 

16장: 모압의 멸망

본장은 모압의 멸망에 대해 예언한다. 선지자는 모압에 대해 권면하지만, 모압은 선지자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권면을 듣지 않으며 마침내 멸망을 당할 것이다.

[1-2절] 너희는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양들을 드리되 . . . .

선지자는, “너희는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산으로 보낼지니라”고 말한다. ‘이 땅 치리자’는 유다 왕을 가리킨 것 같다. 그러나 이 유다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셀라’는 모압 남쪽 에돔의 보스라 부근 도시를 가리키든지, 아니면 모압 땅의 한 지역을 가리켰을 것이다.

선지자는 모압이 유다 왕에게 조공을 드리며 그를 섬기라고 권면한다. 다윗 시대에 모압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었다(삼하 8:2). 또 이스라엘 왕 아합 때에도 모압 왕 메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새끼양 10만을 바친 적이 있었다(왕하 3:4). 이와 같이, 이제도 모압은 유다 왕을 섬겨야 할 것이다. 유다 왕에게 복종하라는 권면은 유다 왕이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라는 뜻을 포함한다.

선지자는 또 “모압의 여자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원문-“보금자리에서 흩어진 떠다니는 새같이, 모압의 여자들은 아르논 나루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르논은 모압의 북부 국경으로서 동서로 가로질러 사해로 흐르는 강이다. 모압이 멸망할 때 모압의 여자들은 보금자리를 떠나 새들처럼 방황할 것이다.

[3-4절] 너는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오정 때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 피할 곳이 . . . .

3-4절은, 모압이 시온의 통치자에게 말하는 내용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Amplified Bible, NASB, NIV), 선지자가 모압에게 계속 말하는 내용으로 본다(한글개역, KJV, Poole, 박윤선). 선지자는 모압에게,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단하여 유다 피난민들을 대낮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그 쫓겨난 자들로 그와 함께 있게 하고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의 피할 곳이 되라고 말한다. 선지자가 그렇게 권면하는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을 토색하는 자가 망하고 멸절하는 자가 그치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토색하는 자’ ‘멸절하는 자’ ‘압제하는 자’는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앗수르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망하였고’ ‘그쳤고’ ‘멸절하였으며’라고 과거형으로 표현된 것은 확실한 미래의 사건을 나타내는 표현법이다.

[5절]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 . . .

선지자는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고 말한다. 다윗 왕국의 회복을 예언한 것이다. 그 왕국은 인자함과, 충실함 혹은 진실함과, 공평과 의로 굳게 설 것이다. 세상 나라는 망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굳게 설 것이다. 다윗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현재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장차 천국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6절]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 . .

선지자는,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라고 말한다. ‘그 과장이 헛되도다’라는 원어(로 켄 밧다우)는 ‘그의 헛된 말들은 옳지 않도다’라는 뜻이다. 모압의 문제점은 교만이었다. 모압은 심히 교만하고 거만하며 자신을 헛되이, 과장되이 자랑하였다. 그러나 그 자랑하는 말들은 다 옳지 않았다. 교만은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신뢰하며 높이는 태도이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할 수 없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7-8절]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 . . .

선지자는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라고 말한다. ‘길하레셋 건포도 떡’이라는 구절에서 ‘건포도 떡’이라는 원어(아쉬쉐)는 ‘건포도 떡’이라는 뜻이든지(BDB, NASB), 혹은 ‘기초들’(foundations)(KJV), ‘파괴로 드러난 기초들’(Gesenius), ‘파괴된 잔해들’(Langenscheidt)이라는 뜻이다. 길하레셋은 모압의 수도이다. 모압은 성읍들의 멸망과 밭의 곡물들과 열매들의 없음을 인하여 슬퍼하며 통곡할 것이다.

[9-10절]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 . . .

선지자는 계속하여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실과,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9절 끝에 ‘소리가 일어남이니라’는 구절에서 ‘일어남이니라’는 원어(나팔)는 ‘떨어진다, 소멸된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모압의 멸망을 동정하며 눈물을 흘린다. 모압은 이전에 풍성한 포도와 그 외의 여름실과의 수확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기뻐하던 그 즐거움과 기쁨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징벌하신 일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시고 그것을 빼앗기도 하신다.

[11-12절]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같이 소리를 발하며 나의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 . .

선지자는 또,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같이 소리를 발하며 나의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모압을 인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슬퍼한다. 모압 사람들은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그들의 신 그모스를 섬겼고 기도하였을지라도, 그들의 모든 종교적 행위와 기도가 헛되었다. 종교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니며, 신이라고 다 괜찮은 것이 아니며, 경건하다고 다 선한 것이 아니다. 바른 경건이어야 하고 참 신을 섬겨야 하고 참 종교를 가져야 한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에 계시된 종교,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며 그가 인간의 생활법칙으로 주신 십계명을 행하자.

[13-14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 . . .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3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라고 한다. ‘소용이 없다’는 원어(로 캅비르)는 ‘힘이 있지 않다’ 혹은 ‘수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BDB).

모압의 멸망은 일찍부터 예언된 바이었지만, 이제 3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 것이며 그 남은 수는 심히 적고 그 국가는 미약하게 될 것이다.

말씀을 맺는다. 모압은 헛된 우상숭배를 하며 심히 교만하며 거만하고 헛된 자랑을 하다가 마침내 멸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하지 말자. 잠언 6:16-19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눈, 곧 마음의 교만을 미워하신다.

잠언 8:13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신다. 또 잠언 16:18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사람이 교만하면 멸망한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교만을 버리자.

사람이 교만하면 불경건과 우상숭배에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교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모든 경건생활의 시작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 17:3). 참 경건을 구하자.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지자. 성경적 신앙을 가지자.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모든 우상을 버리자.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을 가장 귀한 일로 여기고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참 성도가 되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절대복종하자.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는 ‘절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쓴다.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하였다(신 10:12-13).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17장: 다메섹에 대한 경고

[1-3절]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 . .

본문은 다메섹에 관한 경고이다. 다메섹은 아람 나라의 수도이며 아람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메섹이 장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예언대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은 유다 왕 아하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메섹을 쳤고 아람을 멸망시켰다. 열왕기하 16:9는,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아람 왕] 르신을 죽였더라”고 기록한다. 고고학적 기록물에 의하면, 디글랏 빌레셀은 “내가 목베어 죽인 자들의 수효는 다 셀 수 없고 르신의 아버지 벤하닷의 왕국의 500개 성읍들을 훼파하여 무더기를 만들었다”고 말하였다(박윤선, 173쪽).

또 하나님께서는,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로엘은 요단강 동남편 모압 국경 가까이의 이스라엘 성읍인데, 아로엘의 성읍들은 그 주위의 성읍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사람들 대신 양들이 평온하게 눕는 곳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백성이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 7:2의 말씀대로, 북쪽 이스라엘과 아람 나라가 동맹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다메섹에 관한 예언의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성읍들이 함께 언급되었다. 아람과 이스라엘은 함께 멸망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은 ‘소멸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4-6절]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서도 예언하신다. 그는,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마치 추수꾼이 추수하듯이 이스라엘을 점령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2, 3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4, 5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멸망시키지만, 그러나 그들 중에 조금 남겨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남겨진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선택된 자들이다. 신약교회는 바로 그 남겨진 자들 중에 속한다.

[7-8절]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들이 우상숭배를 청산하고 창조자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믿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구원받은 자는 우상숭배를 버리고 참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를 섬기며 따를 것이다.

[9-11절]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 . . .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계속 이스라엘의 견고한 성읍들의 멸망을 선언하신다고 생각된다. 그는,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원문에는 ‘옛적에’라는 말이 없으나,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는 옛적에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했던 가나안 족속들의 처소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범죄한 이스라엘의 견고한 성읍들은, 우상숭배적이고 음란했던 옛날 가나안 족속들의 성읍들이 황폐해졌던 것처럼, 황폐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 견고한 성읍들이 멸망할 것은, 그 성읍 사람들이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까닭은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장 큰 죄악이며 거기에서 그 외의 모든 죄악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식물을 심으며 이방의 가지도 이종(移種)하고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로 두르고 아침에 너의 씨로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주위의 이방나라 종교와 그 풍습을 수입하여 본받고 섬겼으나 ‘근심과 심한[절망적] 슬픔의 날’ 곧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없어지리라’는 원어(네드)는 ‘[황폐한] 무더기’라는 뜻이다(KJV, NASB).

[12-14절]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 . .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핍박자들과 노략자들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의 뛰노는 소리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물의 몰려옴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의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의 분깃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의 보응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민족의 소동과 충돌은, 유다를 침공했던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군을 가리키든지, 이스라엘을 침공했고 또 유다를 침공하려는 앗수르와 그 연합군들의 소동과 충돌을 가리킬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실 때, 즉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그들은 바람 앞에 겨같이,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같이 될 것이다. 저녁까지 두려움이 되었던 그들이 아침이 되기 전에 멸망을 당할 것이다. 이 예언은, 유다 왕 히스기야 때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으나, 하룻밤에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이 죽임을 당한 일에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노략한 자의 분깃이며 보응이었다.

본장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자. 우리는 사람이 만든 헛된 우상들을 바라보거나 의지하지 말자. 예레미야 10:2-5,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 기둥[허수아비]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 10:10-11,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예레미야 10:14-16,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 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헛된 우상숭배를 다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며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자. 시편 95: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시편 96:1-3,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우리는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항상 감사와 찬송을 올리자.

셋째로, 우리는 긍휼의 하나님을 의지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면서도 은혜로 조금 남겨두셨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겨두신 자들이 있다. 로마서 9:27,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로마서 11:4-5,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우리는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만 의지하자.

 

 

18장: 구스에게 주는 메시지

본장은 구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구스는 애굽의 남쪽, 곧 나일강 상류지역의 나라이었고, 이 지역은 오늘날 수단의 동북부이다. 구스는 고대에 매우 강대한 나라이었고, 비록 한때 애굽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나, 애굽을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본장은 그 강대한 나라 구스가 갑자기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 안에 있다.

[1-3절]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나는 땅이여, . . .

선지자는 구스에 대해 예언한다.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나는 땅이여,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 경첩한[빠른] 사자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도다”라고 말한다.

창세기 10장에 보면, 구스는 함의 맏아들이며 그 형제는 미스라임(애굽의 시조)과 붓과 가나안이었다. 구스는 스바, 하윌라, 삽다, 라아마, 삽드가를 낳았고 마지막으로 니므롯을 낳았는데, 니므롯은 고대의 강력한 군주이었고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레센을 건축하였다(창 10:6-12).

선지자는 구스를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며 소리나는 땅’이라고 표현한다. 본문의 ‘구스의 강’은 나일강 상류이다.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그 길이가 총 6,695킬로미터라고 한다.13) ‘날개치며 소리나는 땅’이라는 표현은 ‘날개 그늘 아래 있는 땅’(KJV) 즉 비교적 평안한 땅이라는 뜻이든지, 혹은 ‘날개 치는 땅’(NASB, NIV) 즉 무역이 활발한 땅이라는 뜻일 것이다. 구스는 주전 2,000년에 이미 존재했던 나라로서 고대에 지중해와 근동과 아프리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진 중심지의 역할을 하였고, 구스인들은 농업, 예술, 정치, 종교, 금속 공업 등의 지식을 나누었고 또 무역의 중심지이었다고 한다(월드북 대백과사전).

선지자는,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나는 땅이여,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 경첩한 사자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도다”라고 말한다. 나일강은 애굽뿐 아니라, 구스 사람들에게로 연결하는 수로(水路) 즉 주요 통로이었던 것 같다. 나일강 하류에 자생하는 파피러스 나무는 배를 만드는 좋은 재목이었다고 한다.

선지자는 구스를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라고 표현한다. 구스는 나일강의 큰 두 지류가 합치는 곳이다. 오늘날 그 두 지류를 백나일강과 청나일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오늘날 수단이라는 나라에 있다. 선지자는 또 구스를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라고 표현한다. 과연, 구스는 고대에 일찍부터 힘이 있고 번성한 나라이었다.

선지자는 또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거하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호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고 말한다. 구스의 멸망에 대한 소식은 그 당시에 온 세계의 모든 거민들에게 알려질 만한 뉴스거리이었다. 구스에게 빠른 사자를 보내어 그들의 멸망에 대한 소식을 전하라는 말은 구스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뜻이 있고, 또 아울러 유다 사람들이 구스를 부러워하거나 의지하지 말라는 뜻도 들어 있다고 본다.

[4-6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 . .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 갈 때에 내가[혹은 ‘그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버려서 산의 독수리들에게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끼쳐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과하(過夏)하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과동(過冬)하리라 하셨음이니라”고 한다.

선지자는 심판자 하나님을 자기 처소인 하늘에서 죄인들을 조용히 감찰하시는 자로 묘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쬐이는 햇볕같이 또 가을 더위에 이슬을 머금은 구름처럼 그들의 행위를 주목하시며 그들에게 언제라도 징벌을 내리실 수 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갑자기 추수 직전에 꽃이 떨어지듯이, 포도가 익어갈 즈음에 낫으로 그 가지를 베어버리듯이, 그래서 산의 독수리들이나 땅의 들짐승들에게 주어 그것들이 여름을 나고 겨울을 나게 하시듯이, 그들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이 갑작스럽게 온다.

1915년 4월 22일 오후 4시,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은 사상 최초로 연합군 측에 독가스를 사용하였다. 그들은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근거하여 그 일을 감행하였다. 그런데 별안간 바람이 반대로 불었고 살포된 독가스는 도리어 독일군 쪽으로 되돌아와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었고 독일군의 계획은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연합군을 기이하게 도우신 사건이었다고 한다.14)

[7절] 그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하며 . . . .

선지자는 또, “그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하며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서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산에 이르리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구스를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라고 말하면서, 그 나라 백성을 ‘장대하고 준수하며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라고 다시 표현한다. 또 그는 이 강대하고 역사 깊은 나라가 멸망할 때 그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기 위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시온산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구스 땅에도 임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 세력을 의지하지 말자. 아무리 강대한 나라 구스라 할지라도(2, 7절) 하나님께서 그를 파하실 것이다. 시편 20:7,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둘째로, 우리는 심판자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나님은 그의 처소 하늘에서 조용히 온 세상을 감찰하신다(4절). 그는 잠잠하신 듯하나 다 보고 감찰하시고 그의 정하신 때에 갑자기 악인들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시고 징벌하신다. 이 세상에서 그의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를 힘써 섬기자. 구스를 패망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5절). 그는 온 우주에서 홀로 영광을 받으실 자이시다. 전도서 12:13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힘써 지키자.

 

 

19장: 애굽에 대한 경고

[1-4절]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 . . .

본장은 1절 말씀대로 “애굽에 관한 경고”이다. 하나님께서는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로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실 것이다. 또 그가 심판을 시행하시면 애굽의 우상들은 그 앞에서 떨 것이다. 우상들은 참 하나님 앞에서 그 헛됨과 허무함이 드러날 것이다. 또 우상들을 섬겼던 애굽 사람들의 마음도 녹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원문에 보면,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 계획은 나의 파한 바가 되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내전(內戰)이나 내란(內亂)이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죄악된 세상의 한 특징은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그 사회적 혼란이 하나님의 징벌인 줄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이 쇠약해지고 마술적 우상숭배에 더욱 빠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치리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에 예언된 ‘잔인한 군주’가 누구를 가리켰는지 분명치 않으나, 그는 주전 670년에 애굽을 통일했다고 알려진 심히 포학했던 군주 프싸메티쿠스든지, 혹은 역시 포학하였다고 알려진 그의 아들 느고(주전 616-597년에 통치)를 가리켰을 것이라고 한다.

[5-10절]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 시냇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달과 갈이 시들겠으며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아 없어질 것이며 어부들은 탄식하며 무릇 나일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는 슬퍼하며 물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백목[흰천]을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애굽의 기둥이 부숴지고[부서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나일강을 마르게 하실 것을 예언하신다. 강들에서는 악취가 날 것이다. 또 나일강이 마름으로 그 주위의 밭들에서 농사하는 농부들과 나일 강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이 탄식할 것이다. 10절에 ‘기둥’이라는 원어(솨소세하)는 ‘기둥 혹은 귀족들’이라는 뜻이든지(게세니우스, BDB, Langenscheidt, NASB), ‘직조공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KB, NIV). 애굽 땅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이 없어지고 입을 옷과 일할 직장도 없어질 것이다.

[11-15절] 소안의 방백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애굽의 방백들이 무능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다. 그는, “소안의 방백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모략[계획]은 우준하여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고 말씀하신다. ‘소안’은 애굽의 옛 수도이었다. 그 도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고센 땅에 있었다(시 78:43). 그 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출발했던 곳인 라암셋과 동일한 도시라고 생각되곤 하였다(출 12:37). 소안의 방백들, 즉 애굽 왕실의 방백들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들의 계획은 미련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고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가 애굽에 대해 정하신 뜻 곧 애굽에 대해 계획하신 바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것은 애굽의 심판에 대한 계획이었다. 애굽의 지혜자들이라도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멤피스]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지파들의 모퉁이돌이어늘 애굽으로 그릇가게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사특한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으로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나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나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소안과 놉의 방백들 가운데 ‘사특한’(이웨임) 혹은 ‘뒤틀린, 일그러진’ 마음을 섞으셨기 때문에 그들이 애굽으로 매사에 잘못 가게 하였다. 왕의 참모들이 좋은 조언을 하지 못하면 나라가 바르게 진행할 수 없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참모들이나 장관들이 좋은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나라가 잘 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섭리하신다.

[16-17절] 그 날에 애굽인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 떨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 날에 애굽인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이 그 위에 흔들림을 인하여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모략을 인함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고 말씀하신다. 애굽 사람들의 두려워함은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손을 흔드시기 때문이다. 애굽 사람들은 유다 땅을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에 대해 다시 말씀하신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18-22절]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하리라.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 . . .

그러나 본장 끝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할 것을 예언하신다. 그는,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가나안 방언으로 말하는 것,’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것’은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애굽 안에 다섯 성읍이나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장망성’(이르 하헤레스)15)이라 불릴 것이다. 이 도시는 하나님께서 고대의 중요한 도시인 ‘헬리오폴리스’(혹은 ‘온’이라고 부르는 도시)의 뜻인 ‘태양성’(이르 하케레스)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인다. 즉, ‘태양성’이 멸망하는 도시가 되고,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시로 거듭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해 제단이 있겠고 그 주위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한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신다. ‘보호자’라는 원어(라브)는 ‘위대한 자, 우두머리, 대장’이라는 뜻이다. ‘한 구원자, 대장’은 신적인 구주를 암시한다. 애굽 땅 중앙에 하나님을 섬기는 단이 있을 것이다. 애굽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변화될 것이다. 이것은 로마제국시대에 애굽의 알렉산드리아가 기독교 세계의 한 중요한 도시가 되었을 때 성취되었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또,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인 고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시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두려운 심판자이시지만, 또한 죄인들을 치료하시는 구원자이시다. 애굽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25절]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쉘리쉬야)[세 번째가 되고](KJV, NASB, NIV)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방 세계에 생명 얻는 회개와 구원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애굽을 포함한 이방나라들에도 전해질 것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누릴 것이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의 모임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본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섭리자이시다. 그는 이방나라들도 그의 뜻대로 다스리신다. 특히 그는 심판자이시다. 애굽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심판자로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신다. 그는 애굽인을 격동시켜 서로 분쟁케 하시며, 애굽인들의 정신을 쇠약케 하시며 그들의 계획을 파하시며, 강물을 마르게 하시고 초목을 시들게 하신다. 그는 사람의 지혜와 계획을 어리석게 만드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심판자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애굽과 앗수르를 긍휼히 여기시며 치료하시며 구원하실 것이다. 이방나라 애굽에도 가나안 방언을 말하는 자들이 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애굽 땅 중앙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세워질 것이다. 애굽 사람들은 압박자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한 구원자, 한 위대한 지도자를 보내실 것이다. 그가 신적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제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고 이방인들이 충만하게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우리도 그들 중에 속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힘써 섬기자.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요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자이시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계명만 즐거이 순종하자. 그것이 인생의 정로이며 그것이 평강과 행복과 영생의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자.

 

 

20장: 애굽과 구스가 사로잡힐 것

[1절]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본장의 말씀을 주신 때는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어 아스돗을 쳐서 취하였던 해이었다. 앗수르 왕 사르곤은 사르곤 2세로서 주전 722년부터 705년까지 통치했던 인물로 알려진다. 그는, 주전 722년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멸망시켰던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주전 727-722)의 왕위를 빼앗고 그를 이어 왕이 된 자이었다.

그는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어 그것을 쳐서 취하였다. 본문에 ‘군대장관’이라는 말(타르탄)은 ‘앗수르의 야전사령관 직함’이라고 한다(BDB). 아스돗은, 앗수르에서 애굽으로 이어지는 고대의 중심도로인 해안 도로(Via Maris)에서 블레셋의 첫 주요 도시이다. 주전 713년 아스돗이 앗수르를 배반하였고 다른 도시들도 동참하였으며, 애굽은 그들에게 도움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주전 711년 앗수르는 아스돗을 점령하였다. 그것은 앗수르의 애굽 침공이 임박하였음을 의미하였다. 발굴된 조각문에, 사르곤은 “내가 아스돗으로 나아가 포위하고 정복하였다”고 기록하였다(Annals 224).

아스돗이 앗수르 왕에게 점령된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특별한 사건 때에 자신의 뜻을 알리셨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든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을 알려주신다. 신구약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행위에 대한 정확무오한 법칙이다.

[2-4절] 곧 그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 . . .

아스돗이 앗수르에게 점령된 때에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즉 겉옷을 벗고 신을 벗으라는 명령이었다. 그것은 부끄러운 내용의 이상한 명령이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즉시 순종하였다. 그는 그 명령대로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명령에 대해 설명하셨다. 그는, “나의 종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오스)와 기적(모페스, wonder, sign)이 되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또,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애굽과 구스 사람들이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패함으로 포로로 잡혀 끌려갈 것을 상징적으로,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3년 동안’이라는 말은 이 예언이 3년 안에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는 것은 애굽과 구스 사람들에게 또 유대인들에게 확실한 교훈이 될 것이다.

[5-6절]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을 인하여 놀라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을 인하여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그 날에 이 해변 거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의 ‘그들’과 ‘이 해변 거민’은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유대인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애굽과 구스를 바라고 의지하며 자랑하였다. 그들은 애굽을 믿었고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애굽으로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하나님 대신에 애굽과 구스를 의지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죄악이었다.

그러나 이제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게 패망할 때에 그들은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며 피할 곳을 몰라 당황해 할 것이다. 그들은 늦게나마 애굽과 구스가 참으로 사람들이 의지하고 자랑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 대신 사람이나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노여워하신다.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블레셋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들은 애굽이나 구스를 의지하지 말아야 하였다. 우리는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참으로 의지하고 소망할 만한 것이 못됨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씀하셨었다(사 2:22).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노여워하시고, 우리는 어느 날 그것들 때문에 크게 낙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그 둘을 다 택할 수는 없고 그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노여워하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것을 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 의지하는 세상의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깨우쳐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의지하던 것이 무너질 때 우리에게 큰 충격과 낙망이 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았어야 하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세상의 것들이 헛되다는 것을 알았어야 하였다.

이사야 31:1-3은 말한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 . .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자기 백성이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그 의지하는 것들을 없어지게 하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나님만 바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자. 이것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고 인생이 본래부터 가져야 했던 진리이다.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생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었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은 인생의  정로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고 고백하였다(시 20:7).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25). 또 주께서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고 말씀하셨고, 또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하셨다. 우리는 허무한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자.

 

 

21장: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

본장은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이다.

[1-4절]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 . .

1-4절은 바벨론에 대한 경고이다. 1절의 ‘해변 광야’는 큰 강 유브라데를 품고 있는 바벨론 땅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남방 회리바람같이 몰려왔도다.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라고 말한다. 바벨론을 침공할 적군들이 회리바람같이 몰려올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주께서는,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바벨론은 이전에 속이는 자요 약탈하는 자이었으나 이제는 엘람[파사]과 메대의 연합군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약탈을 당할 것이다. 메대와 파사의 연합군은 들어와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이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은 메대와 파사에게 ‘올라가서 바벨론을 치고 정복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고 이루실 것이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그의 모든 탄식’은 바벨론의 학대로 인한 모든 사람의 탄식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탄식을 그치게 하실 것이다.

선지자는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임산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내게 임하였으므로 고통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내 마음이 진동하며 두려움이 나를 놀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라고 말한다. 대제국 바벨론의 멸망 소식은 선지자에게 여인의 출산 고통 같은 큰 고통과 두려움을 주었다. “고통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라는 구절은, “내가 그것을 듣자 엎어졌고 그것을 보자 당황하였도다”라는 뜻이라고 본다(MT, KJV). ‘희망의 서광’(네쉐프 키쉬키)이라는 원어는 ‘나의 즐거움의 새벽빛(혹은 저녁빛)’이라는 뜻이다(BDB).

[5-9절]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 . .

5절에서, 선지자는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방백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라고 말한다. ‘파수꾼을 세운다’는 구절(차포 핫차피스)은 ‘자리를 편다’는 뜻이다(BDB, NASB). 바벨론 군대는 아마 자신들의 군사력만 믿고 안일하게 식탁을 베풀고 먹고 마셨다. 그래서 선지자는 “너희 방백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르라”고 말한 것이다. 침략자가 곧 들어올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막을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6절 이하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마침내 멸망할 것을 예언하셨다. 주께서는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 보는 것을 고하게 하되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떼와 약대떼를 보거든 자세히, 유심히 들으라.” 메대 파사의 연합군은 마병대와 나귀떼와 약대떼를 전쟁에 많이 사용하였다. 마침내 파수꾼이 사자같이 부르짖었다.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섰었고 밤이 맟도록[밤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과거시제로 표현된 것은 확실한 미래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확실히 멸망할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의 원인은 죄 때문이었다. 특히 그것은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예레미야도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조각한 신상들을 벌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렘 51:47, 52). 우상숭배의 죄는 죄 중에 가장 큰 죄이다. 바벨론이 멸망하는 날 그 우상들이 무익하고 헛된 것들임이 증명될 것이다.

[10절]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 . .

선지자 이사야는,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고하였노라”고 말한다. ‘너 나의 타작한 것’ ‘나의 마당의 곡식’은 이스라엘을 가리킨 말씀이라고 본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소식을 듣고 그의 섭리의 손길을 깨닫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배우고 확신해야 한다.

[11-12절]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 . . .

11-12절은 두마에 관한 경고이다.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두마는 에돔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자신을 파수꾼이라고 부른다. 에돔 사람들도 지금 밤, 곧 환난 중에, 고난 가운데 있다. 그들은 그 밤이 언제 지나갈 것인지 선지자에게 묻는다. 선지자는 “아침이 오리라” 즉 환난의 끝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선지자는 또 “밤도 오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또 다른 환난이 올 것이라는 뜻 같다.

그러나 선지자는 “너희는 돌아올지니라”는 중요한 말을 선포하며 전한다. 중요한 것은, 환난의 남은 기간이 얼마이며 그 끝이 언제인가가 아니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는가, 참으로 회개했는가이다. 회개가 없으면 또 환난이 올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참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평안한 날을, 그것도 오랫동안 주실 것이다.

[13-17절]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이여, . . .

13-17절은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이다. 선지자는, “드단 대상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데마 땅의 거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고 말한다.

드단 대상(隊商)은 낙타 타고 떼지어 다니는 상인들이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부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이 멸망할 때에 그들은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피하여 수풀 속에 거하며 데마 거민들을 통해 겨우 물과 떡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 여유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릴 것이다.

주께서는 또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다. “품꾼의 정한 기한같이 일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게달은 이스마엘의 열두 아들들 중 하나이다(창 25:13-15). 그들은 양떼를 치는 유목민이었고 비교적 부유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전쟁의 패배로 1년 내에 쇠약해질 것이다. 본문은, 이 말씀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증거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 없는 이방 나라들은 결국 다 멸망할 것이다. 강대한 바벨론도 멸망할 것이다. 부요한 드단 대상들도, 게달의 영광도 쇠하여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나라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시편 98:9,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마태복음 25:31-32,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우리는 세상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것들임을 깨닫자.

둘째로, 하나님은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엘람(파사)과 메대의 연합군을 불러와 바벨론을 쳐서 멸망케 하실 것이다. 그는 바벨론으로 인한 모든 탄식을 그치게 하실 자이시다. 본장 6절과 16절은 하나님을 ‘주’(아도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요 주관자이시다. 그는 주님이시다. 그는 우리 개인의 삶과 행복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잘 증거한 책은 다니엘서이다. 다니엘 4:35는,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라고 말한다. 로마서 11:36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과 우리의 일생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 우리는 그 사실을 굳게 믿자.

셋째로, 중요한 것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의 원인은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다(9절). 하나님께서는 에돔 족속에게 “너희는 돌아올지니라”고 말씀하셨다(12절). 지금 그들은 고난의 밤을 통과하고 있다. 아침이 곧 올 것이지만, 그러나 밤도 올 것이다. 그러므로 에돔은 지금 닥친 고난을 모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죄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참된 평강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산다면, 아침이 와도 곧 또 밤이 올 것이다. 인생의 참 행복은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데 있다. 그것이 인생의 정로이며 평강과 형통의 길이다.

 

 

22장: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1-4절] 이상(異像)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 . .

본장은 “이상(異像, vision)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상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본장에 유다(8절), 예루살렘(10절), 셉나(15절), 엘리아김(20절), 다윗의 집(22절) 등의 언급은 본장의 말씀이 예루살렘에 관한 것임을 보인다. 예루살렘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상(異像) 중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받았던 성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이 범죄하고 패역하여 마침내 멸망할 것이다.

선지자는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거민들이 적군들의 침입을 확인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갈 것이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또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며 너의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라고 말한다. 떠들며 즐거워하던 쾌락의 성에 멸망의 재앙이 임할 것이다. 성의 거민들과 관원들은 전쟁을 피해 도망쳤다가 ‘활을 버리고’ 혹은 ‘활 없이’ 결박을 당할 것이며 죽임을 당할 것이다.

선지자는, “이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멸하였음을 인하여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고 말한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인해 슬피 통곡할 것이며 위로받기를 원치 않는다.

[5-7절] 이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 . .

선지자는, “이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치는 부르짖는 소리로다. 엘람 사람은 전통을 졌고 병거 탄 자와 마병이 함께하였고 기르 사람은 방패를 들어내었으니 병거는 너의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성에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날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며 징벌인 것이다. 성벽은 무너지고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산악을 진동시킬 것이다. 선지자는 엘람 사람들과 기르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엘람과 기르는 앗수르 사람들이나 바벨론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엘람은 티그리스강 하류 동쪽 지역이지만, 기르(왕하 16:9; 암 1:5; 9:7)는 그 위치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 침략군의 병사들은 예루살렘의 골짜기에 가득할 것이다.

[8-11절]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 . . .

선지자는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 같다. ‘덮였던 것’이란, 방어 요새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NASB).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올라와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였다(사 36:1). ‘수풀 곳간의 병기’는 ‘삼림의 궁궐의 병기’라는 뜻으로 솔로몬이 지은 ‘레바논 삼림의 궁(왕상 7:2)에 있는 병기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삼림의 궁의 병기를 바라본다는 말은 그것들을 의지한다는 뜻일 것이다.

선지자는 또,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너희가 또 옛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고 말한다.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의 무너진 곳들을 보수하고 저수지도 만드는 등 방어태세를 정비하였다. 심지어 가옥들의 일부를 헐어 성벽을 견고케 하였다.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들의 문제점이었다. 그들은 성의 수비에만 힘쓰고 이 일을 행하신 자,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 즉 이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12-14절]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 앞에서 그들이 통회자복하기를 명하셨으나 그들은 오히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였고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라고 말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육신주의요 쾌락주의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성도답지 못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선지자의 귀에 말씀하셨다.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그들의 육신주의, 쾌락주의는 사함받지 못하는 큰 죄로 간주되었다.

[15-19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 . . .

유다의 멸망은 왕의 부패뿐 아니라, 고위 공직자의 부패에도 기인하였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국고(國庫)를 맡고 왕궁을 다스리는 자인 셉나를 책망하신다. 그는,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 장사같이 맹렬히 던지되 정녕히 너를 말아 싸서 공같이 광막한 지경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 있으리라[혹은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거기서 네 영광의 수레도 네 주의 집의 수치가 되리라’(MT, KJV)].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리라”고 말씀하신다.

셉나는 교만하였다. 그는 마치 임금처럼 자기를 위해 바위에, 높은 곳에 자기의 묘실을 팠다. 그것은 그에게 합당치 않은 행동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관직에서 쫓아내시며 그의 지위를 낮추실 것이며, 그를 힘있게 붙잡아 맹렬히 던져 포로되게 하실 것이며, 이방나라에서 죽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20-24절]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있게 하고 . . . .

선지자는 또 하나님께서 셉나 대신에 한 사람을 세우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하기를,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의 아비가 될 것이며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그를 견고케 하리니 그가 그 아비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그 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항아리까지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불러 셉나의 관직을 그에게 주고 또 유다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다. 그는 그의 직책을 견고케 하실 것이며 그로 그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의 크고 작은 친척들이 그로 인해 영광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주권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시며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신다. 그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25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 . . .

선지자는 또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파쇄되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만한 고위 관리였던 셉나의 패망에 대해 다시 말씀한 것 같다. 지금 권세를 누리는 셉나는 마침내 멸망하게 될 것이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육신주의와 쾌락주의를 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작정하시고 선포하셨고 그들에게 통회자복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고 통회자복하기커녕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우리는 이런 육신주의, 쾌락주의를 버리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자. 유다 백성은 성의 방어에만 급급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작정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고 그를 존경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자. 우리는 나라의 전쟁과 평안, 사람을 관직에서 쫓아내심과 세우심이 다 하나님의 주권적 손 안에 있음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모든 일을 작정하셨고 때가 되어 이루시는 자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자.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통회자복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징책의 손길과 우리의 부족을 깨닫는 데 민감하여 깨닫는 즉시 통회자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만 순종하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경건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23장: 두로에 대한 경고

[1-3절]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선척들아, . . .

본장은 “두로에 관한 경고”이다. 두로는 이스라엘 북쪽 국경 너머 지중해 연안의 나라이다. 본장은 부요하고 견고하고 희락이 넘쳤던 두로의 영화가 황폐케 되어 그 주위의 나라들의 거민들이 슬퍼하며 두로의 거민들도 슬퍼하고 부끄러워하고 도피할 것을 예언한다.

선지자는,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니라”고 말한다. 다시스는, 스페인의 타르테서스(Tartessus)를 가리키거나(알부라잇, 여러 학자들), 이탈리아 서쪽의 사디니아섬을 가리키거나(아하로니), 소아시아 동남부 길리기아 다소를 가리킬 것이다(요세푸스, 매튜 풀). 그것은 두로와 무역했던 한 중요도시이었다. 옛시대에 세계 무역의 중심지이었던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기 때문에 그 소식을 깃딤 땅 곧 구브로섬으로부터 들은 다시스의 뱃사람들은 슬피 부르짖을 것이다.

선지자는 또,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거민들아, 잠잠하라.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물로 수운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었도다”라고 말한다. 두로와 시돈은 애굽의 풍부한 곡물이 거래된 열국의 시장이었다. 오늘날 홍콩처럼, 또는 우리나라 서울의 남대문, 동대문 시장처럼, 각 나라의 상품들과 물건들이 그곳에서 거래되었다. 지중해 연안의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의 상인들 때문에 부요함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 두로의 멸망은 그들로 할 말을 잃게 하는 큰 충격이 될 것이다.

[4-7절]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보장(保障)이 말하기를 나는 구로하지 못하였으며 생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 남자들을 양육하지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니라.” ‘바다의 보장(保障)’은 바다에서 견고한 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이 견고한 성 두로가 자녀들을 출산치 못하고 양육지 못하는 자가 됨으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을 인하여 통도하리로다.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 해변 거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유하던 성이냐?”라고 말한다. 두로의 멸망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애굽 사람들도 슬퍼할 것이다. 두로는 고대에 건설된 유서 깊은 성이며 ‘희락의 성’ 곧 그 부요와 세력으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던 성이며 먼 지방까지 세력을 떨쳤던 성이었다. 그러나 이제 두로 거민들은 다시스로 도피할 것이다. 또 그로 인해 유여함을 얻었던 지중해 연안의 거민들은 그의 멸망을 인해 슬피 부르짖을 것이다.

[8-12절]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이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 . .

선지자는 두로의 멸망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이었음을 증거한다. 그는 두로를 “면류관을 씌우던 자” 즉 다른 나라들을 부요하고 존귀하게 하던 자이며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 즉 두로와 무역하던 자들이 각 나라의 방백과 귀족들이었음을 말하면서, 그 두로의 멸망에 대해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라고 묻는다. 그런 후,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고 스스로 대답한다. 그 부요하고 강력한 나라 두로를 멸망시킬 일을 계획할 수 있는 자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바이었다. 또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두로의 멸망을 뜻하신 것이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교만과 영광을 꺾으시기 위하여 두로의 멸망을 작정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교만을 가장 미워하신다.

선지자는 또, “딸 다시스여, 나일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고 말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 다시스도 두로에게 속박을 당했었으나 이제 두로의 멸망으로 자유함을 누릴 것이다. 다시스는 두로의 패권주의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것이다.

선지자는 또,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을 내려 그 견고한 성을 훼파하게 하시고 가라사대 너 학대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열방을 흔드시고 주장하셔서 두로의 멸망을 이루실 것이다. 상인이라는 뜻을 가진 ‘가나안’은 두로 지역을 염두에 둔 말씀이며 ‘그 견고한 성’은 두로를 가리켰다고 본다. 두로는 이방 나라에게 학대를 받을 것이며 다시는 희락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또 두로 거민들은 깃딤 곧 구브로 섬으로 도피할지라도 거기서도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악인들은 어디를 가나 평안을 얻지 못한다.

[13-14절]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들짐승의 거하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케 하였느니라.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13절은 갈대아 사람들의 멸망을 예로 든 것인지(매튜 풀),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들을 사용하여 두로를 멸망시키실 것을 암시한 것인지(박윤선, 재미슨-포셋-브라운) 분명치 않아 보인다. 원문을 직역하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었으며 앗수르 사람들이 들짐승의 거하는 곳이 되게 하였고 포위망대를 세웠고 그 궁궐들을 헐었으며 그가 그것을 황무케 하셨느니라.” 본절은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황폐케 하신 것을 증거하며 이처럼 두로도 이처럼 황폐케 될 것이라는 뜻 같다. 또 선지자는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고 말한다. ‘너희 견고한 성’은 두로를 가리킨다고 본다.

[15-18절]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같이 70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같이 될 것이라. . . .

15-18절은 하나님께서 두로의 멸망뿐 아니라, 두로의 회복도 작정하셨다는 것을 증거한다. 선지자는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같이 70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같이 될 것이라. 잊어버린 바 되었던 기생 너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행하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케 하라 하였느니라”고 말한다. 두로는 70년 동안 잊혀져 있다가 다시 회복될 것이다.

선지자는 또 말한다. “70년이 필한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돌아보시리니] 그가 다시 취리(取利)하여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70년 후에 두로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두로는 다시 물질적 유여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 물질적 여유가 이제는 하나님께 거룩히 드려지고 하나님 앞에 거하는 자들의 먹을 양식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데 쓰일 것이다. 이 예언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유세비우스는 그의 초대교회역사 책에, 하나님의 교회가 두로에 세워졌고 그것의 많은 재물이 하나님께 바쳐졌고 전도사역의 후원을 위해 드려졌다는 한 사람의 연설문을 실었다(교회사, 10.4).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기뻐하거나 자랑하지 말자. 두로는 한때 열국의 시장으로서 부요하였고 또 ‘바다의 보장,’ ‘희락의 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견고하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친 성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황무케 만드셔서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게 하시고 어린 자녀들이 없어지고 그 자신은 부끄러워하고 멀리 도피하게 하시고 주위의 나라 사람들도 놀라고 슬퍼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 기쁨과 즐거움이 변하는 것임을 알자. 하나님께서 재앙을 허락하시면, 사람들은 슬퍼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부끄러워할 것이며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멀리 도망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기뻐하거나 자랑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8-9절,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두로의 멸망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두로의 회복도 작정하셨다. 17절, “70년이 필한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돌아보시리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홀로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주권자이시다. 개인의 생사화복도, 교회와 국가의 흥망성쇠도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주권적 작정자, 섭리자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 하나님 안에 참 평안이 있고 형통과 영생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겸손히 하나님의 계명만 순종하자. 하나님께서 두로를 멸망시키신 까닭은 두로가 부요와 영광 속에 교만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부요해지면 교만해지고 음란과 쾌락주의에 빠진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며 이것들은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며,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일 2:15-17).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계명만 순종하자. 오직 믿음으로만 살고 서로 사랑하며 선을 행하자.

 

 

24장: 땅을 심판하심

본장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이라고 본다. 본장은 13장부터 23장까지에 나오는 바벨론, 모압, 다메섹(아람), 구스, 애굽, 에돔, 아라비아, 두로 등 열국에 대한 예언의 결론이다. 본장에는 ‘땅’이라는 말이 7번(1, 2, 4, 5, 6, 11, 13절[원문]) 나오고, ‘세계’라는 말(테벨 lbeTe)이 원문에 1번(4절) 나온다.

[1-3절]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 . . .

선지자는 말한다.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집어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며 종과 상전이 일반일 것이며 비자(婢子)와 가모(家母)가 일반일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채급하는 자[채권자=꾸어주는 자]와 채용하는 자[채무자=꾸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일반일 것이라.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는 온 땅이 온전히 황무해지고 그 거민이 흩어지고 사회의 조직이 다 무너짐으로 혼란해져 높은 자나 낮은 자가 없고 가진 자나 못 가진 자의 구별이 없어질 것이다. 이것은 유대땅뿐 아니라, 온 세상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예언이라고 본다. 성경은 다른 곳들에서도 열국의 심판에 대해 예언한다.

요엘 3:1-2,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심판]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라.” 스바냐 3: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마태복음 25:31-32,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리라.”

[4-6절]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 . . .

4-6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당하였도다. 그러므로](KJV, NASB, NIV)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으리라.”

온 세상이 슬퍼하고 쇠잔해질 것이다. 세상에서 높은 자들도 쇠약해질 것이다. 온 땅이 그 거민들로 인해 더러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율법을 범하고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기 때문이다. ‘율법’ ‘율례’ ‘영원한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모세의 율법과 십계명을 가리키지만,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심어주신 양심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행위언약의 반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하게 될 것은 그 거민들의 죄악 때문이다. 사람들의 죄가 멸망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저주를 받고 정죄를 당하며 멸망을 당할 것이다.

[7-13절]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소고치는 기쁨이 그치고 . . . .

7-13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소고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마치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노래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며 ‘약탈을 당한’(토후 WhTo ‘혼란한’) 성읍이 훼파되고 집마다 닫히었고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암흑하여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으며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온 세상이 황무할 때 인간의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기쁨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노래 부르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그때에는 그런 기쁨과 즐거움, 그런 노래와 행복이 없을 것이다. 혼란한 성읍은 훼파되고 집들은 문이 닫혀 있고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온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14-16절]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 . . .

14-16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궤휼자가 궤휼을 행하도다. 궤휼자가 심히 궤휼을 행하도다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의 공의의 위엄과 영광을 찬송하는 소리가 온 세상에서 들릴 것이다.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얻은 자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의 공의로운 처분에 대해 영광을 돌리기 때문일 것이다. 신약시대에 구원받은 진실한 성도들의 찬송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대환난의 때이며 성도들에게 고난과 핍박도 있는 때이다. 선지자가 말한 ‘궤휼자’는 바로 적그리스도들과 핍박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예언된 바와 일치한다. 주께서는 그가 재림주로 오기 직전에 온 세상에 전쟁, 기근, 질병, 지진, 적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배교와 핍박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17-20절] 땅의 거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였나니 . . . .

17-20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땅의 거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였나니 두려운 소리를 인하여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오두막](KJV, NASB, NIV)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지고 다시 일지[일어나지] 못하리라.”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구원이 온 땅에 편만한 동시에 환난과 핍박도 많은 시대이다. 세상의 거민들에게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임할 것이며 땅의 기초가 흔들리고 땅이 깨어지고 갈라지고 술취한 자같이, 오두막같이 흔들릴 것이다. 대환난 시대의 한 특징은 지진이다.

[21-23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 . . .

21-23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같이 모음을 입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 그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늘 군대, 즉 악한 천사들인 사탄과 악령들을 벌하실 것이며, 땅의 열국의 왕들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최종적 심판의 날까지 지옥에 갇혀 있을 것이며 마지막 날에 공의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다”고 말하였다(벧후 2:4).

또 그때에 해와 달이 빛을 잃을 것이다. 그것은 신약성경의 예언과 일치한다. 마태복음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요한계시록 6:12-13,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검은 천]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더라.”

본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믿자. 온 우주에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심판하시며 땅을 황폐케 하실 것이며 마침내 악한 영들과 악인들에게 공의로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자. 우리가 범죄하면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이며 그의 진노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죄를 버리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면, 우리는 그를 영화롭게 할 것이며 거기에 인생의 참된 행복이 있다.

셋째로, 우리는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을 각오하자. 신약시대는 환난과 핍박이 있는 시대이다. 그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인내이다. 요한계시록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우리는 늘 고난을 각오하며 살자.

 

 

25장: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함

[1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 . . .

선지자는,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선지자의 개인적 찬송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그는 그를 높이고 그의 이름을 찬송한다.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을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을 가리킨다. 그것은 옛부터 그가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바이었고 그의 열조들에게 약속하신 바이었다.

[2-3절]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 . . .

선지자는 또,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견고한 성읍으로 황무케 하시며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영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앗수르나 바벨론의 성읍들을 황폐케 하는 일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무더기가 되게 하시고 황폐케 만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질 때 강한 민족들, 포학한 나라들이라도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2:44에서 로마 시대에 그가 한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며 그가 모든 세상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실 것을 예언하셨다.

[4-5절]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같이 주께서 외인의 훤화를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리움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보장(保障)’이라는 말은 ‘방어물’이라는 뜻이다. ‘빈궁한 자,’ ‘환난당한 빈핍한 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폭풍이 성벽에 충돌하듯이 포학자의 기세가 몰려올 때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그는 폭풍 중의 피난처와 같고 폭양을 피하는 그늘과 같으시다. 낯선 이방인들의 떠드는 소리들은 마른 땅에 폭양과 같이 위협적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그치게 하실 것이며, 뙤약볕을 구름으로 가리움같이 포학한 자들의 떠드는 소리를 낮추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환경여건을 홀로 주장하시고 인도하신다.

[6-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 . .

선지자는 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세계적인 구원과 회복을 암시한다. ‘이 산’은 ‘예루살렘산’을 가리킨다. 이것은 신약교회와 장차 이루어질 영광스런 천국을 상징할 것이다. ‘만민’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다 포함할 것이다.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는 그 연회는 예수님의 비유들에 자주 등장하는 천국 잔치일 것이며(마 22:2; 눅 13:29; 14:16). 그 잔치는 이미 신약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선지자는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面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이 열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릴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면박’(面帕)은 한자의 정확한 발음이 ‘면파’이며, ‘얼굴가리개’를 가리킨다.

고린도후서 4:3-4, 6,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선지자는 또,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이루어질 복된 일들을 보인다.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9-12절]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 . .

선지자는 또,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만민을 위해 연회를 베푸시는 그 날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 즉 세상의 회복을 기다리며 기다렸었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이루어졌고 그들은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또 말한다.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의 초개의 밟힘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그가 헤엄치는 자의 헤엄치려고 손을 폄같이 그 속에서 그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을 누르실 것이라. 너의 성벽의 높은 보장을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모압은 세상 나라의 한 예로 언급된 것 같다. ‘거름물’은 ‘거름더미,’ ‘초개’는 ‘지푸라기’를 가리킨다. ‘자기 처소에서’라는 원어(타크타우)는 ‘그 아래서’라는 뜻이 아마 더 낫다(KJV, NIV).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를 멸망시키시며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함을 파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송하자. 주께서는 재림하실 때 모든 민족을 자기 앞에 모으시고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마 25:31-33). 주께서는 세상 나라를 다 멸하실 것이다. 세상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 11:15). 우리는 세상에서 구원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온 것을 감사하며 찬송하자(골 1:13; 벧전 2:9).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심을 믿자. 그는 폭풍 중에 피난처이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시다(4절).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살고 순종으로만 살자.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며 서로 사랑하자.

또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특권을 감사하며 기뻐하자. 천국은 한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잔치를 베푼 것과 같다(마 22:2). 천국은 신약교회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미 천국의 기쁨과 평안과 영생을 시식(試食)하고 있다. 우리는 이 복을 감사하며 기뻐하자.

 

 

26장: 구원의 노래

1-11절, 구원의 노래

[1절]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선지자는,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고 말한다. ‘그 날’은 메시아 시대 곧 세상의 종말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선지자는 그 날에 부를 노래를 소개한다. 그 내용은 7절까지 계속되는 것 같다. 그것은 구원의 노래, 즉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평탄케 하시고 교만한 악인들을 낮추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선지자는,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고 말한다. 그 노래는 한 ‘견고한 성읍’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보호하시는 성읍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킬 것이다. 스가랴 2:5도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성곽이 되리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견고하고 안전한 성읍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실 것이다.

[2-3절]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선지자는 또,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信)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心志)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신(信)’이라는 원어(에무님)는 ‘신실함’(faithfulness)(BDB)이라는 뜻이다. ‘신(信)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하라’는 말은 ‘신실함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하여금 들어오게 하라’는 뜻이다.

‘심지(心志)’라는 원어(예체르)는 ‘마음가짐, 목적, 의도’라는 뜻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을 ‘신실함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 ‘심지가 견고한 자’ ‘주를 의뢰하는 자’라고 묘사한다. 성도는 신실해야 하고, 은혜로 받은 하나님의 의 곧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의를 행하는 자이어야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이 견고해야 하며,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지식이며, 하나님을 이렇게 믿고 의를 행하는 자들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실 것이다. ‘평강에 평강으로’(솰롬 솰롬)라는 원어의 표현은 ‘완전한 평강으로’(KJV, NASB, NIV), ‘충만한 평강으로’라는 뜻이라고 본다. 성경에서 ‘평강’이라는 말은 심리적 평안, 사회적, 환경적 평안, 몸의 건강, 물질적 여유 등을 다 포함하는 포괄적인 말이다. 평안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복이다. 하나님은 ‘평강의 주님’이시다. 데살로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계명에 즐거이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평안을 내려주신다. 이사야 48:18,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4절]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선지자는 또,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히 의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정로(正路)요 마땅한 일이다. 왜냐하면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시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라는 원어(야흐 예호와)는 ‘여호와, 여호와’라는 뜻의 강조된 말이다. ‘여호와’는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라는 뜻이다. 영원자존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반석’(추루 올라밈) 곧 만세반석이시다. ‘반석’은 ‘보호자, 피난처’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와 피난처가 되시므로, 우리는 그를 영원히 의지하고 의뢰해야 하는 것이다.

[5-6절] 높은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선지자는 또, “높은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라고 말한다.

‘높은데 거하는 자’와 ‘솟은 성’은 악인들과 악한 나라들을 묘사한 것이며, ‘빈궁한 자’와 ‘곤핍한 자’는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악인들은 교만하고 악한 나라들도 그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낮추시고 땅에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며, 고난당하는 그의 백성들이 그들을 발로 밟게 하실 것이다.

[7절]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선지자는 또한,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라고 말한다. 본문의 ‘정직함’이라는 원어(메솨림)는 ‘평탄함’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그것은 평안을 주신다는 3절의 말씀과 같은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의롭고 정직하게 사는 자기 백성의 길을 평탄케 하신다. 그는 그들의 길에서 감당치 못할 시험과 환난을 제하시고 감당할 만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13).

[8-9절]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 . .

선지자는 또,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라고 말한다. ‘간절히 구한다’는 원어(솨카르)는 ‘이른 아침부터 구한다, 부지런히 구한다’는 뜻이다(BDB).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되어 고난을 당하는 어두운 밤 같은 때에도 하나님을 기다렸고 주의 기념 이름을 사모하였다. 선지자는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구하리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이다. 성도는 하나님만 바라며 심지어 징계의 채찍을 당할 때에라도, 고난의 깊은 밤에라도 하나님을 간절히,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바란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시며, 하나님의 심판 때에 온 세상은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배우게 될 것이다.

[10-11절]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 . . .

선지자는 또한,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르리이다”라고 말한다.

의인들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간절히 구하지만, 악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때라도 의를 배우지 않으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불이 그들을 사를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시는 그 열심을 볼 때 부끄러워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은 견고한 성읍이시요 만세반석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말하기를,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였다(시 90:1-2).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의 품이시며 우리 인생들의 품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피한다면, 우리를 해할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는 영원히 우리가 의지할 자시며 우리의 보호자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만 의지하자.

둘째로, 하나님 안에는 완전한 평안, 충만한 평안이 있다. 그는 자기 백성을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며 평탄한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평강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마다 일마다 평강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살후 3:16).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는 미움과 속임과 싸움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완전한 평안, 충만한 평안이 있다. 천국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세계이다(롬 14:17).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리라고 말한다(빌 4:6-7).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의인으로만 살자. 하나님의 견고한 성에 들어가려면 ‘신실함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이어야 하고, ‘심지가 견고한 자’이어야 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의의 길을 걷는 자이어야 한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근심과 진노를 가져오고 그의 징벌과 그의 징계의 채찍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굳건한 마음으로 의를 행하면 충만한 평안 가운데 거할 것이다. 신약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로 이미 의롭다 하심을 얻었지만, 결코 범죄해서는 안 된다. 성도가 범죄하면 그의 길이 평탄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힘써 의를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길을 평탄케 하실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 안에서 오직 의를 행해야 한다.

 

12-21절,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모함

[12절]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선지자는,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라고 말한다. ‘베푼다’는 원어(솨파스)는 ‘세운다, 정한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평강을 확실히 베푸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살후 3:16). 

선지자는 또,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평강을 기대하는 그의 믿음의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며 그것을, 우리를 위해, 즉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행하시고 이루시기 때문이다. 로마서 8:28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한다.

[13-14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멸하사 그 모든 기억을 멸절하셨음이니이다.

선지자는 또,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말한다. ‘주 외에 다른 주들’이란 이방 나라의 왕들을 가리킨다. ‘주만 의뢰하고’라는 원어(레바드-베카)는 ‘오직 주[당신]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나라의 왕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라고 고백한다.

또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멸하사 그 모든 기억을 멸절하셨음이니이다”라고 한다. ‘그들’은 이방 나라의 주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의 왕들을 벌하실 것이며 그들은 다 죽을 것이며 그들의 기억은 없어질 것이다.

[15절]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선지자는 또,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라고 말한다. ‘이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확실히 이스라엘 나라를 더 크게 하실 것이며 그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실 것이며 이로 인해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교회가 온 세상에 확장될 것을 보인다.

[16절]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선지자는 또,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고 온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모하였으며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였을 때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간절히 기도하였다’는 원어(차쿤 라카쉬)는 ‘속삭이는 기도를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생활 중에서, 부자유스럽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조용한 소리, 속삭이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 쏟아 부었던 것이다.

[17-18절]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선지자는 또,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 중에 하나님께 갈급히 부르짖은 기도는 마치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다 되어 산통으로 부르짖음과 같았다. 또 선지자는 말하기를,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산고의 부르짖음 같은 기도를 올렸으나 그 기도는 온 세상에 흩어진 자들에게 구원이 되지 못하였었다.

[19절]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놓으리로다.

선지자는 그러나 소망의 소식을 전한다. 그는,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라고 말한다. ‘주의 죽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이미 죽은 자들도 있을 것이며 지금 살아 있어도 죽은 자와 같이 사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라는 원어(네벨라시 예쿠문)는 “그들은 나의 시체와 함께 일어나리이다”라는 뜻이라고 본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활과 회복을 믿으며 그 중에 자신의 부활도 포함시킨다.

선지자는 또,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놓으리로다”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의 이 본문은 멸망했던 이스라엘의 회복과 더불어 종말론적인 부활을 예언한다고 본다. 다니엘 12:2도 “땅의 티끌 가운데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다”고 말하였다.

신약성경은 부활의 진리를 밝히 증거한다. 주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다(요 5:28-29). 사도 바울도,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라”고 증거하였다(고전 15:51).

[20-21절]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선지자는 또, “[그러나]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지금 부활의 때가 된 것은 아니다. 아직 세상에는 환난이 있을 것이며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온 세상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땅의 거민들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다. 심판자께서는 땅 위에 흘려졌던 의인들의 피흘림에 대해 철저하게 보응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성도들이 밀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하나님의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어 있으라고 말한다. 밀실은, 세상과 분리된 곳이며,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는 곳이며,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곳이다(매튜 풀). 성도는 대환난 시대에 밀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잠깐 숨어 있어야 한다. 그때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무분별하게 교제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세상의 환난은 길어 보여도 영원한 천국에 비교하면 ‘잠깐’에 불과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실 것이며 모든 일을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섭리하실 것을 믿자. 하나님은 평강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현실 가운데서 평강을 주실 수 있고 주시는 주님이시다. 참된 평강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고 우리 주님 예수께서만 주실 수 있다. 주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고(요 14:27), 사도들은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롬 1:7).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섭리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안다(롬 8:28).

둘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나라 왕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은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모하였고 하나님께 속삭이는 기도를 쏟아 부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며 그의 죽은 자들을 영광스럽게 부활시키실 것이다. 이와 같이, 신약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환난 중에 낙심치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하자.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권면하였다(롬 12:12). 또 히브리서 저자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하였다(히 10:35-37).

셋째로, 우리는 환난 시대에 밀실에 들어가 잠깐 숨자. 우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고 성경적 교제의 원리를 지키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힘쓰자.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삶이며 승리하는 삶이 될 것이다.

 

 

27장: 이스라엘의 회복

[1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 . . .

1절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고 말한다. ‘그 날’은 전장 끝에 말씀한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날, 곧 세상의 마지막 심판날이다. ‘견고하다’는 원어(카쉐)는 ‘사납다, 흉포하다’는 뜻이다. ‘리워야단’(리우야산)은 ‘바다 괴물’을 가리킨다(BDB). ‘용’이라는 원어(탄닌)도 ‘큰 바다 동물’을 가리킨다. ‘날랜’이라는 원어(바리아크)는 ‘나는’(fleeing)이라는 말로서 ‘날듯이 빠른’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과 ‘바다에 있는 용’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간교한 뱀, 곧 요한계시록 12:9에 말씀한, 온 세상을 미혹하는 사탄을 가리킨다고 본다(JFB).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납고 강한 칼로 그를 죽이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0은 마귀가 마지막 심판 때에 불과 유황 못 즉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2-5절]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 . . .

2절 이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노래가 나온다. 선지자는,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라고 말한다. ‘아름다운’이라는 원어(케메르)는 ‘포도주’라는 뜻이다(KJV, NASB). ‘아름다운’이라는 번역은 고대 역본들을 따른 것이다.16)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였다. 포도원이 다시 포도주를 생산할 수 있게 되듯이, 황폐된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회복될 것이다.

선지자는 또,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상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라고 말한다. ‘때때로’라는 원어(리르가임)는 ‘매순간’이라는 뜻이다(BDB, KJV, NASB).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지기처럼 친히 이스라엘을 관리하시고 매 순간 물을 주듯이 성령의 감동과 힘을 주시고 밤낮 지키시고 아무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선지자는 또,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질려와 형극이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그리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해 노함이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혹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일어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압하시고 진멸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화목해야 할 것이다.

[6절]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 . . .

6절은,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에 채우리로다”라고 말한다. ‘후일에’라는 원어(핫바임)는 옛날 영어성경은 ‘오는 자들’(KJV)이라고 번역했으나, 원어사전은 ‘오는 날들에, 후일에’라는 관용구로 본다(BDB, NASB, NIV). 본절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대 곧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온 세상에 충만할 신약시대를 가리켰다고 본다.

[7-8절]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은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 . . .

7-8절은,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은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살륙을 당하였은들 백성을 도륙한 자의 살륙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고 말한다. ‘적당하게’라는 원어(베사스아)는 ‘그를 몰아내심으로써’라는 뜻이거나(BDB, NASB), ‘정확하게’(measure by measure)(게세니우스, 델리취, RSV) 혹은 ‘어느 정도, 적당하게’(in measure)(KJV, ASV)라는 뜻이라고 본다. 본문의 뜻은, 주께서 이방 나라들을 치셨듯이 이스라엘을 치시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엄하게 징벌하셨다는 뜻인 것 같다.

[9-11절]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 . . .

선지자는,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이 되어 광야와 같았은즉 송아지가 거기서 먹고 거기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자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자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한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어떻게 징벌하셨는지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던 제단과 우상들을 다 부서뜨리시고, 견고한 성읍들을 적막하고 황무하게 만드실 것이며, 거기에 송아지들이 먹고 누울 것이다. 그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깨달음과 지식이 없으므로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징벌로 인해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긍휼로 구속(救贖)함을 얻을 것이다.

[12-13절]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 . . .

선지자는 또,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같이 너희를 일일이 모으시리라. 그 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고 말한다. ‘하수’(나하르)는 유브라테스 강을 가리킨다. ‘시내’라는 원어(나칼)는 비가 올 때만 흐르는 물이 있는 시내 즉 ‘와디’라고 부르는 시내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저 북쪽 유브라테스 강부터 남방 애굽 시내까지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일일이’ 곧 한 사람, 한 사람씩 다 불러모으실 것이다. 그들은 돌아와 예루살렘의 거룩한 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할 것이다. 참된 신앙생활은 모든 헛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살전 1:9).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마귀의 운명을 알자. 인류와 온 세상을 미혹했던 영인 마귀는 마침내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다. 주께서는 지옥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41). 요한계시록 20:10은 세상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도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했다(롬 16:20).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 구원하실 것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영육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의 모든 죄와 불의를 다 씻으실 것이다. 그는 온 세계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일일이 다 불러모으실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다(요 6:39-40).

셋째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오직 살아계신 참 하나님만 섬기자. 모든 우상은 다 파괴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다(전 12:13).

 

 

28장: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1-13절, 에브라임의 술 취함과 교만

본문은 북쪽 이스라엘의 술 취함과 교만에 대해 증거한다.

[1절]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선지자는,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에브라임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킨다. 본문은 북쪽 이스라엘을 ‘면류관,’ ‘영화로운 관,’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라고 묘사한다. 그 나라는 상당한 물질적 부요와 권세와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나라를 또한 ‘취한 자,’ ‘교만한 자’라고 증거한다. 그것은 그 나라가 술 취하고 교만했음을 나타낸다. 그 나라의 위정자들이나 백성이 다 술에 취해 있었다. 선지자 아모스도 그들이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신다”고 지적하였다(암 6:6). 그들은 문자적으로 그러하였을 뿐 아니라, 비유적으로도 우상숭배에 취해 있었고 육신의 쾌락과 세상 사랑에 취해 있었다.

본문은 그 나라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또 선지자는 그 나라가 ‘쇠잔해가는 꽃 같다’고 표현하며 다시 화를 선포한다. 지금 북쪽 이스라엘과 수도 사마리아 성은 상당히 부요와 권세와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그 부요와 그 권세와 그 영광은 쇠해지고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이다.

[2절]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큰물의 창일함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선지자는 또,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큰물의 창일함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라”고 말한다.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는 앗수르 나라를 가리킨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 곧 하나님께서 북쪽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온 열국이 하나님의 도구이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앗수르는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큰물의 창일함같이 이스라엘 땅에 덮칠 것이다. 이 예언은 주전 722년경에 역사적으로 이루어졌다. 열왕기하 17장은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3-4절] 에브라임의 취한 자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선지자는 또, “에브라임의 취한 자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라고 말한다. 본문은 북쪽 이스라엘을 ‘면류관,’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라고 표현하지만, 여전히 ‘취한 자’ ‘교만한 자’라고 다시 부르며, 그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며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를 사람들이 보고 얼른 따서 먹듯이 그 꽃이 떨어지고 쇠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북쪽 이스라엘은 멸망할 것이다. 그 부귀와 권세와 영광은 곧 사라질 것이다.

[5-6절]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마는.

선지자는 또,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라고 말한다. ‘그 날에’는 앞에서 말한 이스라엘의 멸망의 날을 가리킨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자유로이 동원하시는 전능하신 섭리자 하나님을 증거한다. ‘그 남은 백성’은 남쪽 유다 백성을 가리킬 것이다.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도 남쪽 유다는 약 136년이나 더 지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자들, 즉 유다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과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재판석에 앉은 자들에게 ‘판결하는 신’(루아크 미쉬파트) 즉 ‘공의의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들, 즉 법정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위해 변론하는 자들에게 힘이 되실 것이다. 사회에 경건과 도덕성이 상당히 회복될 것이다. 그것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 때 특히 그러하였다.

[7-8절]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그러나 선지자는 또, “그러나 그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라고 말한다. 7절은 ‘그러나 그들도’라고 시작된다(KJV). ‘그들’은 ‘그 남은 백성’ 곧 유다 백성을 가리킬 것이다. 남쪽 유다가 상당한 기간 하나님을 모시고 섬길 것이지만, 그들도 마침내 부패될 것을 보이신 말씀이라고 본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세상 사랑을 인해 부패할 것이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이스라엘 온 땅에 죄악들이 가득할 것이다.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은 이와 같이 북방이나 남방이나 다 부패하여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9-10절]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 . . .

선지자는 또,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주는 초보적 말씀이라고 무시하고 조롱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라고 멸시하며 비방하였다. 그러나 그들 속에 하나님의 참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들은 반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할 것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받아야 할 것이다.

[11절]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선지자는 이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고 말한다. ‘생소한’이라는 원어(라아그)는 ‘더듬거리는’이라는 뜻이다. ‘생소한 입술’ 즉 ‘더듬거리는 입술’이란 이방 나라에서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묘사한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절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 나라들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실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12절]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고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다. 인간의 참 안식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에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안식을 잃어버렸고 수고하고 곤고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며 죄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죄를 즐기면서 안식과 위로를 찾고 있고, 그 결과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3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 . . .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고 선언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비방한 말을 되받아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선지자들을 통하여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시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시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증거하실 것이며 그들은 그 말씀을 받지 않고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될 것이다.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어떤 좋은 말씀도 믿지 않을 것이다.

1절부터 13절까지의 본문에서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술 취하고 교만하지 말자. 멸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술 취하며 교만하였다. 그들은 ‘취한 자,’ ‘술에 빠진 자,’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는 자’로 묘사되었고, 또 ‘교만한 면류관’이라고 묘사되었다. 우리는 술 취하지 말자. 신약성경은 분명히 술 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고전 6:10; 갈 5:21). 에베소서 5:18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교훈하였다. 또 우리는 교만하지 말자. 잠언 16:18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가장 미워하신다. 교만은 마귀의 죄악이다.

술 취하고 교만한 이스라엘은 결국 망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의 물질적 부요와 권세와 영광은 쇠잔해가는 꽃같이 되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강하고 힘있는 앗수르 나라를 불러 갑자기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고 그것을 발로 밟고 그 땅을 정복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술 취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자. 여호와는 그 남은 유다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실 것이다. 시편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욥기 22:24-25,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라.” 빌립보서 3:7-9,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안식이 되며 상쾌함이 되는 좋은 말씀인 줄 알자.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이사야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으리라.”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그의 말씀을 지키자.

 

14-29절, 유다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

본문은 유다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다.

[14-15절] 이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경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 .

선지자 이사야는, “이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경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자들, 곧 유다 지도자들을 ‘너희 경만한 자’라고 부른다. ‘경만(輕慢)한’이라는 원어(라촌)는 ‘비웃는, 조롱하는’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유다 지도자들이 교만하여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였음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큰 악이다.

선지자는 또,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음부’라는 원어(쉐올)는 본문에서 무덤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교만한 유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사망과 언약을 맺고 무덤과 맹약을 하였으므로 넘치는 재앙이 와도 자기들에게 미치지 못하며 자기들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 그들은 거짓과 허위로 자신을 감추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말에 불과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판단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16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 . .

선지자는 또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귀한 모퉁잇돌이며 견고한 기초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주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인과 주권자, 곧 섭리자이시며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심을 증거하는 명칭이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 계신 분이시며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한 돌을 시온에 두실 것이다. 그 돌은 ‘시험한 돌’(에벤 보칸) 혹은 ‘시험하는 돌’이라고 불린다(BDB). 또 그 돌은 ‘귀한 모퉁잇돌’(핀낫 이크랏)과 ‘견고한 기초’(무사드 무싸드)라고 표현된다. 시편 118:22에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이 돌은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에 귀한 모퉁잇돌이며 견고한 기초이시다. 사도 바울은,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고전 3:11).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셨다(마 21:42-44).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의 공회 앞에서,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고 담대히 증거하였고(행 4:11), 후에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예수님을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라고 표현한 후 말하기를,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고 이사야 28장의 오늘 본문과 시편 118:22과 이사야 8:14의 말씀을 함께 인용하였다(벧전 2:4, 6-8).

사도 바울도 로마서 9:33에서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이사야 8:14과 28:16을 인용하였다. 본문의 ‘시험한 돌’은 ‘시험하는 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사야 8:14에,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라는 말씀은 ‘시험하는 돌’이라는 번역에 맞아 보인다.

본문은 또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급절한다’는 원어(야키쉬 )는 ‘급히 도망치다(BDB), 당황하다(NASB, NIV)’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재앙의 날에 당황치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피할 곳이 있다. 로마서 5:9는,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17-21절]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 . . .

선지자는 또,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운 심판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도자들의 거짓과 불의에 대해 공의롭게,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은밀하게 숨은 곳들도 다 찾아내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선지자는 계속해 말하기를, “그것이 유행할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유행하고 주야로 유행한즉 그 전하는 도를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나니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功)을 이루시리니 그 공(功)이 기이할 것임이라”고 한다. ‘공’(功)이라는 원어(아보다)는 ‘일, 사역’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그들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침대가 짧아 몸을 펴서 눕지 못하는 것과 같고, 이불이 짧아 몸을 다 덮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또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일어나 진노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브라심 산과 기브온은 다윗 시대의 승전 사건들을 가리킨 것 같다. 역대상 14:11, 14-16, “이에 무리가 바알브라심으로 올라갔더니 다윗이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하나님이 물을 흩음같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함으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하나님이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하나님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쳐서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

[22절]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 . .

선지자는 또,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우심할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서 들었느니라”고 말한다. ‘경만한 자’는 ‘비웃는 자’라는 뜻이고, ‘우심(尤甚)하다’는 말은 ‘더 심하다’는 뜻이다. 그들이 계속 교만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게 포로가 될 것이며 그들의 결박은 더욱 견고하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멸망하실 일을 작정하셨다고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상을 심판하신 적이 자주 있었다. 그는 옛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비로 심판하셨었다. 그는 불경건한 이방 나라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도 악을 행하면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말하였다(벧후 3:6-7).

[23-29절]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 . .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그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않겠느냐?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말한다.

‘소맥’은 밀을, ‘대맥’은 보리를 가리키고, ‘귀리’는 호밀을 가리킨다. 본문은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어 타작하는 농사과정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과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지만, 그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고 그것은 그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한 방편이며 그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임을 보인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일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창세 전에 세우신 그의 구원 계획을 다 이루실 것이다.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말한다.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4절부터 29절까지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기초석 곧 교회의 기초석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고 의지해야 한다.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를 믿는 자는 장차 임할 심판과 재앙을 피할 수 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믿었다. 보배로우신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왔으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석으로 하여 거룩한 집으로 지어져야 한다(벧전 2:5). 우리의 믿음이 말씀과 성령 안에서 또 기도로 견고해져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교만하여 비웃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유대 지도자들은 교만하여 비웃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쳤다. 그들은 거짓과 허위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에 대해 공의로,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그들은 다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하여 비웃는 자들이 되지 말자. 우리는 거짓된 자들이 되지 말자.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앞에 복종하자.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말씀과 기도로 살고 또 주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행하자.

 

 

29장: 예루살렘에 대한 진노

[1-4절]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 . .

1-2절에서 선지자는,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연부년[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고 말한다.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獅子)’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으뜸 되는 도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 도시는 다윗이 진 치고 수도로 삼은 성이었다. 해마다 절기가 돌아올 때면 그 성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성을 괴롭게 하실 것이다.

‘네가 내게 아리엘같이 되리라’는 말씀에서 ‘아리엘’은 ‘번제단 화로’라는 말(아리엘)을 연상시킨다. 두 단어의 발음은 비슷하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이 제물의 피가 쏟아지고 불이 항상 붙는 번제단 화로같이 될 것을 암시한다. 살륙당하는 많은 사람들의 피가 흐르고 거기에서 흘려지고 불같은 환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래서 3-4절에서 선지자는,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군대로 너를 에우며[포위하며] 대[臺 진지]를 쌓아 너를 치리니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고 말한다. 전에는 교만했던 그들이 그 환난의 때에는 낮아지고 비천해질 것이다.

[5-8절]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 . . .

5절에서 선지자는, “그럴지라도[그러나]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불려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경각간에 갑자기 이룰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지라도’라는 원어()는 근래의 영어성경들처럼 ‘그러나’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NASB, NIV).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징벌을 선언하시면서도 그들을 대적하는 원수들에 대한 징벌도 선언하시는 것 같다.

그러므로 6-8절에서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벽력과 지진과 큰 소리와 회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보장(保障)[요새들]을 쳐서 곤고케 하는 모든 자는 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되리니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같이 시온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고 말한다. 6절에 ‘그들을’이라는 말은 원문에 ‘너를’이라는 뜻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은 예루살렘 거민들의 안이한 꿈의 헛됨을 말하기보다 예루살렘을 침략할 자들의 계획이 헛될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

[9-12절]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 . .

9-10절에서 선지자는,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고 말한다.

10절 후반부의 원문은, “[그가] 너희의 눈 곧 선지자들과 너희 지도자들을 감기셨고 그가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의 지도자들과 선지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실 것이다. 지도자들과 선지자들의 영적 어두움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11-12절에서 선지자는,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고 말한다.

성경은 그들에게 봉한 책이 될 것이다. 유식한 자는 책이 인봉되어 있어서 깨닫지 못하고, 무식한 자는 무식해서 책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거짓된 교훈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의 바른 교훈은 사라져서, 선지자 아모스가 예언한 바와 같이(암 8:11), 말씀의 기근과 기갈의 때가 올 것이다.

[13-14절]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 . . .

13절에서 선지자는,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영적으로 잠든 유대 백성은 외식의 죄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입술의 말이 아니고, 우리의 진실한 마음이다.

14절에서 선지자는,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가리어지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지혜와 총명을 없이하시는 것이다. 유대 나라에는 영적 어두움이 찾아올 것이다. 그것은 일종에 하나님의 심판이다.

[15-16절] 화 있을진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 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 . .

15-16절에서 선지자는, “화 있을진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 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의 마음의 은밀한 악을 다 아시고 판단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17-21절] 미구에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않겠으며 . . . .

17절에서 선지자는, “미구에[잠시 후에]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않겠으며 기름진 밭이 삼림으로 여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고난 가운데 있고 지금은 악이 세력을 얻은 것 같으나, 잠시 후에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울창한 삼림이 있는 레바논 산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듯이, 또 기름진 밭이 울창한 삼림의 산으로 변하듯이, 구원은 현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 슬픔과 고난을 당하는 자들은 기쁨과 평안을 누릴 것이며, 지금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자들은 곤고해지며 패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변화를 주실 것이다.

18절에서 선지자는,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 영적 귀머거리와 소경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깨달아 참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또 지금 고난 중에 있고 가난하고 환난을 당하는 자들이 그 날에는 하나님으로 인해 풍성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21-22절에서 선지자는,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경만(輕慢)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그들은 송사에 사람에게 죄를 입히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케 하느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송사에 사람에게 죄를 입힌다’는 말은 ‘그들은 말로 사람을 범죄자가 되게 한다’로 번역할 수 있다(KJV, NASB). 즉 그들은 의인을 악인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이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회복은 강포하고 조롱하는 자들,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제거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22-24절]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부터는 부끄러워 아니하겠고 . . . .

22-24절에서 선지자는,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부터는 부끄러워 아니하겠고 그 얼굴이 이제부터는 실색(失色)하지[창백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 자손은 나의 손으로 그 가운데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자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23절 전반부의 원문은, ‘그가 나의 손으로 지은 그들의 자녀들을 볼 때’라고 번역할 수 있다(KJV, NASB). 변화된 회복의 모습은 첫째,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고 거룩하게 할 것이며, 둘째,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셋째, 그들이 더 이상 영적으로 어둡고 혼미하지 않고 참 지혜와 지식을 가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해마다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는 형식적 종교의식은 헛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 같은 수도 예루살렘을 번제단 화로같이 피흘림과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 유대 지도자들의 교만은 낮추어질 것이다. 사람의 죄가 하나님을 진노케 한다. 사람의 죄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오고, 사람의 죄가 자신을 멸망으로 이끈다. 죄를 품고 드리는 예배, 찬송, 기도, 헌금은 다 헛된 것이다.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불의와 음란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으로 어두웠고 외식의 죄에 빠져 있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영적 소경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멀었다. 우리는 모든 외식의 죄를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마음이 없고 종교적 형식만 남아 있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마음의 눈이 열리고 마음의 귀가 열려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신명기 6:5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하였다. 주께서는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요 4:23-24).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의 손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은 참으로 부족하고 연약하고 불완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마침내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들은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교훈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구원하실 것이다. 그들이 전적으로 부패된 자들이고 전적으로 무능력한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그들의 죄를 제하셨고 그의 긍휼의 섭리와 오래 참으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의와 거룩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바이며, 2천년 전에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바이며, 또 성령께서 실제로 구원하심으로 이루시는 바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선한 열매를 맺음으로 그 구원을 견고하게 하자.

 

 

30장: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은혜

1-17절, 이스라엘의 패역

[1-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 . .

1-2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부르셨다. ‘패역한’이라는 원어(소르림)는 ‘완고한, 반역적인’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자들이었다. ‘계교를 베푼다’는 말은 ‘의논한다’는 뜻이다. ‘맹약’이라는 원어(맛세카)는 ‘덮개’(Vg, KJV) 혹은 ‘맹약(盟約)’(LXX, NASB, NIV)이라는 뜻이다. ‘덮개를 덮는다’는 뜻이라면 환난의 위험을 덮는다는 뜻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의 감동 가운데 환난에 대처할 방법을 의논하거나 외국과 조약을 맺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 왕 바로의 세력을 의지하고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오직 인간적인 방책을 구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의 바른 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3-5절]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 . . .

3-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방백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는 민족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소안은 애굽의 옛 수도 라암셋을 가리킨다(출 12:37). 그들이 의지한 애굽 왕 바로의 세력은 그들에게 수치와 수욕이 될 것이다. 애굽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과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6-7절]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 . . .

6-7절에서 선지자는,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고 말한다. 6절에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는 원어(맛사 바하모스 네게브)는 문자적으로는 ‘남방의 혹은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의 무거운 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무거운 짐’이라는 원어(맛사)는 이사야서에서 ‘경고, 하나님의 말씀(oracle)’이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사 13:1; 15:1; 17:1 등). 본문은 문맥적으로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의 무거운 짐’이라는 뜻도 되고,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에 대한 경고’라는 뜻도 되는 것 같다. 여기에 ‘남방’은 애굽을 가리킬 것이다(단 11장). 본문은 유대의 지도자들이 어린 나귀 등에 많은 보물을 싣고 광야를 지나 애굽에 내려가 도움을 청하였으나 그들의 수고는 헛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애굽은 가만히 앉은 라합이 될 것이다. ‘라합’(bh'r)은 ‘바다짐승’을 가리킨다.

[8-9절]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 . . .

8절에서 선지자는,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고 말한다. 책의 필요성과 유용성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쓰게 하셔서 후대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셨다.

9절에서 선지자는,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은 심히 부패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고 반역적이었다. 그들은 거짓말을 잘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었다.

[10-11절]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 . .

10-11절에서 선지자는 또,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正路)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와 선견자, 즉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세우신 설교자에게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말하며 정직한 말을 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 즉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을 하라고 요구하였다. 또 그들은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또 선지자에게 정로(正路) 즉 바른 길, 바른 노선을 버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그들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듣기 싫어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설교자의 설교내용까지 간섭하고 비평하고 판단하고 반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대단히 큰 죄악이었다.

[12-14절]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 . . .

12-14절에서 선지자는,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같이 아낌이 없이 파쇄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12절에 ‘허망’이라는 원어(날로즈)는 ‘간교함’이라는 뜻이다(BDB, NASB).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도리어 압박과 간교함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높은 담이 갑자기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과 같고, 토기장이가 그릇을 아낌없이 부숨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철저히 부서졌는지 깨진 조각 중에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만한 조각도 없을 것이다. 

[15절]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 . . .

15절에서 선지자는,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고, 그들에게 죄에서 돌이키고 조용히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요청을 거절하였고 그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16-17절]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 . . .

16-17절에서 선지자는, “[그들이]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 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말한 대로 급히 도망할 것이며 다 뿔뿔이 흩어져 남은 자가 산꼭대기의 깃발같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 얻는 하나님의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왕 바로와 그의 힘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헛되고 무익한 일이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하며(사 2:22) 또 은금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한다(잠 11:4; 겔 7:19; 습 1:18). 그것들은 우리에게 완전한 도움이 되지 못하며, 어떤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헛되게 하시면 그것들은 언제나 헛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나 세상 것들을 의지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패역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패역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무슨 일을 의논하고 계획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였고 선지자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고 부드러운 말을 하며 정로를 버리며 하나님을 그들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은 악하고 패역한 자들이었다. 우리는 패역하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법을 좋아하고 바른 말씀, 곧 인생의 정로를 걷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살며 그의 말씀인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실천해야 한다.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등 세상에 만가지 시험과 환난이 있어도 늘 회개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만 붙들고 행하면, 우리는 항상 승리할 것이다.

 

18-33절, 하나님의 긍휼하심

본장 앞부분에서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선지자는 본문에서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대해 예언한다.

[18-19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 . . .

18-19절에서 선지자는 말한다. “그러나(라켄)[‘그러므로’(KJV, NASB)]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미쉬파트)[혹은 ‘심판’(KJV)]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이는 백성이 시온에, 예루살렘에 거할 것임이니라’(MT, KJV)],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경고되어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를 시행하시는 것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예레미야 애가 3:33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18절). 시온에서 추방되었던 그 백성이 다시 시온에 거하게 되고 통곡하던 백성이 다시는 통곡하지 않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고난 중에서 회개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20-22절]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 . . .

20-22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正路)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고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은혜는 본문에 두 가지로 증거되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참 스승들, 곧 참 선지자들을 끝까지 주실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이 정로(正路) 곧 바른 길, 바른 노선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모든 금은 우상들을 버리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회복은 경건의 회복 곧 모든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분만 섬기는 것이다. 순수한 경건의 회복은 구원의 본질이다.

[23-26절]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 . . .

23-26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육지창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高山), 각 준령(峻嶺)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선지자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문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적절한 비를 주셔서 그들에게 추수할 곡식과 양식이 풍성케 하실 것이다. 밭가는 소와 나귀까지도 겨를 까부른 곡식을 먹을 것이다. 24절에 ‘맛있게 한 먹이’라는 원어(베릴 카미츠)는 ‘소금으로 간을 한 여물’이라는 뜻이다. “달짝지근한 여물은 약대들에게 빵과 같고 간을 한 여물은 과자와 같다”는 아랍 속담이 있다고 한다. 또 앗수르와 바벨론이 멸망하는 날, 곧 그 망대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들과 언덕들에도 시냇물들이 흘러 땅들이 비옥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 선지자는 회복된 이스라엘 땅을 달빛이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은 빛이 될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것은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가리키는 것 같다(계 21:23).

[27-29절]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 . . .

27절 이하에서 선지자는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다. 앗수르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회복이 될 것이다. 앗수르 왕과 바벨론 왕은 사탄의 표상이다. 악의 세력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악의 세력들을 다 멸하실 것이며, 택한 백성을 위해 새 세계를 주실 것이다.

27-29절에서 선지자는 말하기를,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그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미혹되게 하는 자갈을 여러 민족의 입에 먹이시리니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할 것이며 저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고 한다. 28절의 ‘자갈’은 ‘재갈’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본문은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묘사한다.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온다는 표현은 장소적으로도 멀리, 파사로부터 아니 하늘로부터이며, 시간적으로도 멀리, 아직 상당한 후의 일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붙듯하시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하실 것이다.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차셨고 그 혀는 태워 삼키는 불 같으실 것이다. 그는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하며 저[피리]를 불 것이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 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다. 앗수르의 멸망은 이스라엘에게 기쁨과 구원과 해방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탄의 멸망은 성도들에게 기쁨과 평안이 될 것이다. 그때 성도들은 기뻐하며 노래할 것이다.

[30-33절]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 . . .

30-33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하나님의 진노는 장엄한 목소리, 혁혁한 진노, 그 팔의 치심, 맹렬한, 태워 삼키는 불, 폭풍과 폭우와 우박 등으로 묘사되신다.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라고 ‘앗수르’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앗수르에 대한 심판은 ‘예정하신 몽둥이’ 곧 ‘예정하신 형벌의 몽둥이’(BDB)로 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33절의 ‘도벳’은 ‘힌놈의 아들들의 골짜기’라는 곳으로 우상숭배자들이 자기 아들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불태워 바친 가증한 곳이었다. 그곳은 지옥을 상징하였다. 본문은 도벳이 이미 설립되었다고 말한다. 지옥은 만세 전에 작정된 곳이다. 그곳은 앗수르 왕을 위해 예비된 곳이다. 앗수르 왕은 사탄의 표상이다. 그곳은 깊고 넓은 곳이다. 지옥은 깊고 넓은 장소이다.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고 여호와의 호흡은 유황 개천 같아서 그것을 사를 것이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 예수께서는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해 밝히 말씀하셨고, 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막 9:43-48[전통본문]).

18-33절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오직 정로(正路)로 행하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18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셨으나 정로를 지시하는 스승도 끝까지 주셨다(20-21절).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며 성경말씀 안에서 바른 길, 바른 노선을 붙들고 오직 그 길로만 가자.

둘째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자. 구약교회의 가장 큰 죄악은 우상숭배이었다. 구원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직 그를 섬기는 것이다. 장차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이스라엘은 그들이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질 것이다(22절).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나 또는 하나님처럼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다 버리자. 우리는 돈이라는 우상, 쾌락이라는 우상, 자기라는 우상을 다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외적 여건, 곧 육신적, 물질적, 환경적 여건을 염려치 말자. 하나님께서는 회복될 이스라엘에게 적절한 비와 풍성한 소산을 주실 것이다(23-24절). 우리는 육신적 건강, 물질적 여유, 환경적 평안 등을 염려할 것이 없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마 6:33).

넷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에 대해 여전히 증거한다.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회복과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자체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역사상 노아 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 심판 등에서 이미 증거되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지옥 형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31장: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1-3절]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 . .

1절에서 선지자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의 예상되는 침공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마땅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모해야 했으나 하나님을 사모하지도 의지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애굽의 말과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며 그 도움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사신들을 파송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큰 불신앙이며 큰 죄악이었다.

2-3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마음에 정하신 바를 실패치 않고 다 이루시는 지혜로운 섭리자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의 불경건과 불신앙에 대해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경고한 대로 행하실 것이다. 그는 악을 행하는 자의 집이나 그를 돕는 자의 집도 치실 것이다. 그는 애굽이 사람이며 신이 아니고 그 말들이 육체이며 영이 아님을 나타내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일어나 그 손을 드시면, 즉 그가 심판을 행하시면, 돕는 애굽도, 도움을 받는 이스라엘도 다 엎드러지며 다 함께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 대신에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4-5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 . . .

4-5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을 인하여 굴복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산과 그 영(嶺) 위에서 싸울 것이며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하셨나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짐승 중 가장 용맹스런 큰 사자나 젊은 사자에 비유하셨다. 그것이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 그것을 치려고 불려온 여러 목자들은 이방나라의 왕들을 가리켰다. 만군의 하나님, 곧 하늘의 천군천사들을 자유로이 사용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시온산과 그 언덕들 위에서 즉 이스라엘 땅을 위해 싸우실 것이다. 그는 어미새가 그 강한 본능을 따라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을 건지며 구원하실 것이다.

[6-9절]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 . . .

6절에서 선지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이것은 선지자들의 핵심적 설교내용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가 ‘하나님을 심히 거역한 역사’이었음을 보인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많은 사랑을 받은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심히 거역하였다. 모세는 신명기 9장에서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세 마디로 요약하였는데, 그것은 첫째로 목이 곧고, 둘째로 항상 거역하고, 셋째로 하나님을 속히 떠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인류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거역하던 자들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 그는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 내기를 원하신다. 그는 그의 뜻하신 바를 이루실 것이며 결코 그의 뜻을 실패치 않으실 것이다.

7절에서 선지자는,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우상, 금우상을 그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회개는 죄를 청산하는 것이며 인간의 죄 중에 대표적인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실 때,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그들은 자기 손으로 만들었던 그래서 그것 때문에 크게 범죄하였던 은우상과 금우상을 다 던져버릴 것이다. 우상의 청산이야말로 구원의 시작이며 구원받은 증표이다.

8절에서 선지자는 또, “앗수르는 칼에 엎더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키울 것이나 여러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칼을 피하지 못할 것이요]17) 그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앗수르 나라도 치실 것이다. 그 나라는 사람들의 칼에 엎드러지고 삼키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칼에 멸망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국의 칼을 사용하실 것이나,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일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이다. 앗수르의 군사들은 정복자들에 의해 강제노역을 당할 것이다.

9절에서 선지자는, “그의 반석은 두려움을 인하여 물러가겠고 그의 방백들은 기호를 인하여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고 말한다. ‘그의 반석’은 앗수르 왕을 가리킬 것이다. ‘물러간다’는 원어(아바르)는 여기서는 ‘멸망하다’는 뜻이다(BDB).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지키시고 거기로부터 열국을 불로 사르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은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말과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복과 재앙을 내리시는 자이시다.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인생은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은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들은 모든 우상을 다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열국의 심판자이시다. 세상 나라들은 다 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하며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신명기 28장에 증거된 율법의 기본 원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복, 즉 육신적, 물질적, 사회적 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과,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는 경고이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여러 곳들에서, 아니 성경 전체에서 자신의 절대적 주권을 증거하셨다. 신명기 32:39는,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라고 말한다. 이사야 50:15, 17은,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개인과 가정뿐 아니라, 우리의 사회와 국가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자.

 

 

32장: 메시아의 통치

[1-4절]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 . . .

선지자는,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政事)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메시아와 신약교회를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 메시아는 의의 왕으로 오실 것이었다. 이사야 9:6-7은 이미 예언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였었다.

메시아는 땅 위에서도 자기 백성에게 ‘바람과 광풍을 피할 곳’이 되신다. 바람과 광풍은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과 재앙들, 특히 악인들로 인해 받는 학대와 핍박을 포함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마 2:2). 그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의를 이루셨고 또 장차 의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이다(살후 1:6-9; 딤후 4:8). 또 그는 지금도 자기 백성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보호하신다.

선지자는 또,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메시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영적으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릴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메시아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또 그들의 조급하고 어리석은 마음은 지식을 깨닫고 그들의 어눌한 혀는 민첩하여져 분명한 말을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것이다.

[5-8절]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 . . .

선지자는 메시아의 시대에 의와 불의, 지혜와 어리석음이 분명하게 구별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正大)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존귀하다’는 원어(나디브)는 ‘고상하다’는 뜻이다. ‘궤휼한 자’라는 원어(킬라이 )는 ‘악당’이라는 뜻이며(BDB), ‘정대하다’는 원어(쇼아)는 ‘고상하다’(BDB), ‘너그럽다’(KJV, NASB)는 뜻이다. 메시아 시대에는 어리석은 자를 고상하다고 말한다거나 악당을 너그럽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선지자는,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니라”고 말한다. ‘간사(奸邪)’라는 원어(코네프)는 ‘불경건’(NASB, NIV)이라는 뜻이며, ‘패역한 말’이라는 원어(토아)는 ‘잘못된 말’(KJV, NASB, NIV)이라는 뜻이다. ‘그릇’이라는 원어(켈라이)는 ‘그의 그릇들, 그의 무기들(NASB), 그의 기구들’이라는 뜻이다. 어리석고 악한 자들은 어리석은 것을 말하고 그 마음에 불의를 품고 불경건한 일을 행하고 잘못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하며 그의 무기들 혹은 기구들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죽인다.

그러나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고 한다. ‘고명한’이라는 원어(나디브)는 ‘고상한’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자들을 가리킨다. 참된 성도들은 의와 선을 구별하며 행할 것이다.

[9-11절]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 . .

선지자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의 안일함을 지적하며 책망하고 심판을 선언한다: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하여 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그는 아마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안일한 부녀들’(2번) ‘염려 없는 딸들’ (3번)이라는 표현을 다섯 번이나 사용하였다. ‘당황하여 하다’는 말은 ‘곤란을 당하다’는 뜻이다. 안일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래지 않아서 큰 곤란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포도 수확이 없을 것이며 열매를 거두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은 옷을 찢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이며 슬퍼하고 탄식할 것이다.

[12-15절] 좋은 밭을 위하며 열매 많은 포도나무를 위하여 . . . .

선지자는 계속 말하기를, “좋은 밭을 위하며 열매 많은 포도나무를 위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형극[가시]과 질려[찔레]가 내 백성의 땅에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산과 망대가 영영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의 즐겨하는 곳과 양떼의 풀 먹는 곳이 될 것임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좋은 밭의 곡식을 얻지 못하고 열매 많던 포도나무의 수확도 얻지 못하므로 슬퍼할 것이다. 예전에 기쁨이 넘쳤던 성읍들은 이제 적막하기만 하고 가시덤불과 찔레나 나고 들나귀가 뛰놀며 양떼가 풀을 먹는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15절에서 선지자는,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고 말한다. 원문은, “위에서부터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며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고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될 때까지 그러하리라”고 말한다(KJV, NASB, NIV). 이것은, 광야같이 쓸쓸하고 황폐한 이스라엘 땅이 아름다운 밭이 되고 울창한 삼림같이 될 메시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것은 선지자 에스겔의 예언과도 일치한다. 에스겔 36:27, “또 내 신[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9:29,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신[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20절] 그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 . .

선지자는 의로 통치하시는 메시아 시대를 다시 묘사한다. 그는, “그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리라”고 말한다. 메시아 시대는 의의 시대요 평안과 안전함이 있는 시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셨다. 고린도전서 1:30,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나 선지자는 또, “먼저 그 삼림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 전에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보인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다 나라도 그들의 죄악들 때문에 멸망을 당할 것이며,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이방 나라들도 그들의 죄악들 때문에 멸망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후에야,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또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의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의지하고 그 안에 거하자. 본장에 예언된 의로 통치하실 왕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분이시다. 요한복음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우리는 그를 영접하며 의지하고 그 안에 거하자.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둘째로, 우리는 선악을 분별하고 고상한 삶을 살자. 세상은 선악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또 어리석고 불경건하고 악하고 거짓된 일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과 악을 날카롭게 분별하고 의와 선을 택하여 고상한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안일한 삶을 버리고 늘 깨어 근신하자. 우리는 안일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 있고 육신의 쾌락을 구하며 범죄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누가복음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마지막 대환난]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넷째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의와 평안을 누리자. 하나님께서는 신약성도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의를 받았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따라 의를 행함으로 충만한 평안을 누리자.

 

 

33장: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1-16절, 하나님의 심판

[1절]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 . . .

1절에서 선지자는,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앗수르에 대한 심판 경고의 말씀이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학대하였고 속였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앗수르에 대해 벌하실 것이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재앙을 받을 것이다.

[2절]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2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간구한다. 그는 말하기를,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고 한다. 인생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환난 때에 구원의 팔이 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세상의 환난들과 원수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앙망하며 그에게 은혜를 구하며 구원을 요청해야 한다.

[3-4절] 진동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인하여 열방이 흩어졌나이다. . . .

3-4절에서 선지자는, “진동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인하여 열방이 흩어졌나이다. 황충의 모임같이 사람이 너희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의 뛰어오름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 오르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하기 위해 일어나실 때 민족들은 도망하며 열방들은 흩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노략물을 취하기 위해 마치 메뚜기들이 뛰어오름같이 그들 위에 뛰어오를 것이다.

[5-6절]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이는 높은데 거하심이요 . . . .

5-6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높으심과 의로우심,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누릴 평안에 대해 증거한다. 그는,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이는 높은 데 거하심이요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홀로 지극히 높으신 통치자이시다. 그는 공평과 의로 특히 시온을 통치하실 것이다.

6절은, “그는 너희 시대의 안정이시며 구원들과 지혜와 지식의 보화이시리로다”는 뜻이다(원문, NASB, NIV). 지존하신 통치자 하나님을 모신 백성은 복되다. 하나님은 우리의 평안과 안정이시며 구원이시고 지혜와 지식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우리의 보배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이며, 그 지혜는 잠언 3:13-18에 증거한 대로 은과 정금이나 진주보다 낫고 그 좌우에 장수와 부귀가 있고 그 길에 기쁨과 평강이 있으며 마침내 영생에 이르는 가장 귀한 보배이다.

[7-9절]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 . . .

7-9절에서 선지자는 유다 나라의 당할 곤란과 혼란을 예언한다. 그는,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끊이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지 아니하며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 마르고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목엽을 떨어치는도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용사들’과 ‘평화의 사신들’은 이스라엘의 용사들과 사신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큰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들이 기대했던 애굽의 도움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앗수르와의 전쟁으로 인해 황폐케 될 것이다. 사론은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갈멜산 남쪽의 비옥한 목초 지역인데, 그곳이 사막과 같이 황폐케 될 것이다. 바산과 갈멜의 나무들도 그 잎들을 떨어뜨릴 것이다.

[10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이우리니.

10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이우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제’라는 말(앗타)을 세 번이나 반복해 사용하셨다. 그것은 그의 심판의 확고한 의지를 보인다. 그가 잠잠하실 때는 악한 자들이 활개쳤으나, 이제 그가 일어나실 것이다. 그는 일어나 이방인들을 벌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11-13절]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 . . .

11-13절에서 선지자는 다시 앗수르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베어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 너희 먼데 있는 자들아, 나의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너희’는 앗수르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라”는 말은 앗수르 사람들의 침략 계획이 헛수고가 될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또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라”는 말은 불을 붙일 때 ‘후’ 하고 숨을 불어 내쉬듯이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삼키려고 숨을 내쉬었지만, 도리어 그것이 그들을 삼키는 불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들의 유다 침공은 도리어 자기들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앗수르 왕 산헤립 때에 그들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였다가 한 밤에 군사 18만 5천명이 죽었고 왕은 고국으로 돌아가 아들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던 일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인다(왕하 18-19장; 사 36-37장).

[14절]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 . . .

14절에서 선지자는,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라고 말한다. 유다 땅에도 의인들과 악인들이 있었다. 그 날에 ‘시온의 죄인들’은 하나님의 불같은 심판을 목격하고 두려워 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평소에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죄를 멀리해야 했었다.

[15-16절]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 . .

15-16절에서 선지자는,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끊이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의인들은 하나님이 계신 높은 곳에 거할 것이다. 선지자는 의인들을,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누가 뇌물을 주려 할 때 손을 흔들며 거절하는 자, 남을 죽이려는 계획에 대해 귀를 막아 듣지 않는 자, 악한 일에 대해 눈을 감아 보지 않는 자”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기를 원하신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의인들에게 평안과 안전을 주시고 또 일용할 양식의 공급함을 주신다. 이것은 주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앗수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 나라들을 학대하고 속였다. 그러나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의 인간적 계획들은 다 헛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같이 그들에게 임하실 것이며, 마침내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요 보배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대 진리이다.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호세아 6:3, 6,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일서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더 깊이 알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어떻게 공의로우심과 그의 심판과 구원의 의지를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자. 선지자는 환난의 시대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에게 기도하고 그의 은혜와 구원과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하나님은 지존하시며 의로우신 통치자이시며 그 안에 평안과 안정이 있고 구원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며 그의 말씀의 교훈 안에 거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생활이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를 경외하며 믿고 의지하며 섬기고 사랑하며 그의 모든 계명과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며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요한복음 15:3-5,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자. 믿음과 순종으로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사람들은 결국 의인과 악인으로 나뉜다. 남을 학대하고 속이는 악인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일어나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며 불같이 그들을 사르실 것이다. 죄인들은 두려워 떨 것이다. 그러나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남의 물건을 빼앗는 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거절하며 뇌물을 받지 않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않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높은 곳에 안전하게 거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견고한 바위와 보호자가 되실 것이다. 또 그들은 양식과 물의 부족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에베소서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7-24절, 영광의 왕의 땅

[17-19절]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 . . .

17절에서 선지자는,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라고 말한다.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라는 말은 ‘왕을 그의 아름다움 중에서 보며’라는 뜻이다. 이 왕은 하나님을 가리킨다. 지혜와 능력으로, 공의와 선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아름다우시다. 그는 불경건하고 악한 열국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또 선지자는 “[너의 눈은] 광활한 땅을 목도하리라”고 말한다. 광활한 땅은 지경이 넓은 땅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의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인다. 신약교회는 온 세계 만국으로 확장되는 세계적 교회가 될 것이다.

18절에서 선지자는,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고 말한다. ‘두려워하던 것’이란 앗수르의 침공 같은 이방 나라들의 침공을 말할 것이다. 전에 그들은 이방 나라들의 침공으로 인해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칭량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한다. ‘계산하던 자’라는 말은 ‘쓰는 자’라는 뜻인데, 백성들에게 세금이나 벌금을 부과하고 그 내용을 종이에 쓰는 자를 가리킬 것이다. ‘칭량하던 자’라는 말은 ‘[저울에] 다는 자’라는 뜻인데, 백성이 세금을 내면 그것을 저울에 달고 받는 자를 가리킬 것이다. ‘망대를 계수하던 자’라는 말은 점령군이 망대 수를 세어서 상관에게 보고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이런 일들은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 때 경험한 것들이다.

19절에서 선지자는, “네가 강포한 백성을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서 네가 알아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깨닫지 못하는 자니라”고 말한다. ‘강포한 백성’ ‘방언이 어려워서 알아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앗수르 나라를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 이방 나라는 물러갈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20-21절]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 . .

20절에서 선지자는,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라”고 말한다. 메시아 시대에 회복될 이스라엘의 모습은 평화로운 예루살렘으로 묘사된다. ‘예루살렘’이라는 말뜻은 ‘평화의 성’이다. 전에 절기 지키던 시온성은 장차 황폐케 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때에 그 성은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 즉 ‘평화로운 곳인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선지자는 또, “그것은 옮겨지지[거두어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다. 예루살렘은 다시 장막을 거두듯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장막의 말뚝을 뽑지 않듯이, 장막을 친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않듯이, 새 예루살렘 성은 영원한 평화의 성이 될 것이며 다시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21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거기에서 엄위하신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해 넓은 강들과 시내들의 장소가 되시며 거기에는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것이라.” ‘노질하는 배’와 ‘큰 배’는 앗수르의 전함(戰艦)들을 가리킬 것이다. 옛날의 전함들은 노질하는 큰 배이었다. 엄위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도우시고 지키실 것이다.

[22절]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22절은 앞절의 이유를 보인다. 선지자는, “이는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제정하신 자시요 그 율법대로 인류를 심판하시고 다스리는 왕이시다. 또 그는 자기 백성을 온갖 고난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도 하시고 구원도 하신다. 특히 그는 모든 원수들을 다 멸하실 것이며 자기 백성을 도우시며 구원하실 것이다.

[23-24절]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 돛을 달지 못하였었느니라.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 . . .

23절에서 선지자는,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풀리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못하고] 돛을 달지 못하였었느니라[못하느니라]”고 말한다. 여기에 ‘너’는 앗수르를 가리켰다고 본다. 옛 시대의 큰 군함은 돛을 단 배이었다. 그러나 앗수르는 패전할 것이며 그들의 배들은 돛대 줄이 풀리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고 돛도 달지 못할 것이다. 또 선지자는, “때가 되면[그때에]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라”고 말한다. 유다 백성은 앗수르 군대의 많은 재물을 취할 것이며 그것들을 동료들과 나눌 것이다(사 37:36-37). 심지어 발을 저는 자들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다.

24절에서 선지자는,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회복된 시대의 백성은 영육으로 복될 것이다. 그들은 육신적으로도 건강할 것이다. 거기에는 질병이 없을 것이다. 또 영적으로도 그들은 죄 씻음을 받을 것이다. 세상의 가장 근본적 문제인 죄 문제의 해결이 있을 것이다.

17절로 24절까지의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로, 원수들은 멸망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생활 중에는 이방 나라 통치자들에게 온갖 통제와 학대를 당하였으나 이제 그들이 없어질 것이다. 그들의 전함들의 돛대 줄은 풀리고 돛을 달지 못할 것이다. 원수들은 멸망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의 원수는 사탄과 악령들이다(엡 6:12). 로마서 16:20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20:10은,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우리의 원수인 사탄과 악령들은 최종적으로 다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고난 중에 낙심치 말고 끝까지 참고 견디자.

둘째로, 새 예루살렘은 평온하고 안정된 성이 될 것이다. 17절, “너의 눈은 . . .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20절,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이 예언은 신약시대에 영적으로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장차 영광의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롬 14:17). 요한계시록 21:2, 4,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셋째로,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자는 하나님이시다. 17절, “너의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움 중에서 보며.” 21절, “엄위하신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해 넓은 강들과 시내들의 장소가 되시리라.” 22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재판장이시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하나님은 왕, 곧 주권적 통치자이시다. 이사야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우리는 이 주권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34장: 열국에 대한 심판

[1-2절]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 . .

본장에서 선지자는 열국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다. 1-2절에서 그는,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대저 여호와께서 만국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당하게 하셨도다”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온 세계의 모든 나라들과 ‘그들의 만군’ 즉 그들의 군대들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멸하시고 죽이실 것이다. 이것은 온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다.

[3-4절] 그 살륙당한 자는 내어던진 바 되며 . . . .

3-4절에서 선지자는 또, “그 살륙당한 자는 내어던진 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대심판 때에 죽임을 당할 자들이 많을 것이다. 온 땅에 죽은 자들의 시체들이 많고 그것들의 썩는 냄새가 솟아오를 것이다.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다. 이 말은 산들이 피에 적셔질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때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며 하늘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며 만물이 포도나무 잎이나 무화과나무 잎같이 마를 것이다.

[5-7절]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 . . .

5-7절에서 선지자는 또,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멸망으로 정한 백성 위에 내려서 그를 심판할 것이라.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수양[숫양]의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스라에서 희생을 내시며 에돔 땅에서 큰 살륙을 행하심이라.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한 가지로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고 말한다.

하늘의 별들을 치신 여호와의 칼이 에돔 위에 내릴 것이다. 에돔은 멸망으로 정한 백성,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세상 나라들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돔 땅에서 큰 살륙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피흘림이 있을 것이다.

[8-10절] 이것은 여호와의 보수할 날이요 . . . .

8절에서 선지자는, “이것은 여호와의 보수(報讐)할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伸寃)하실 해라”라고 말한다. 이 날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날이며 그 백성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으시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성도들의 원수를 갚아주실 것이다.

9-10절에서 선지자는 또,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붙는 역청이 되며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않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 심판이다. 역청과 유황에 불이 붙어 타듯이, 온 세상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그 불은 끊임없이 타오를 것이며 에돔 땅은 영원히 황폐하게 될 것이다.

[11-15절]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 . . .

11-15절에서 선지자는 에돔 땅이 황폐할 것을 예언한다. 그는, “당아[사다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억새]이 자라서 시랑[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수염소[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 거하여 쉬는 처소를 삼으며 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이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베푸신다’는 말은 그가 에돔 땅을 혼란하게, 공허하고 황폐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 땅은 황폐해져서 가시나무와 엉겅퀴와 억새가 자라고 시랑과 타조, 들짐승들과 이리, 숫염소와, 올빼미, 부엉이, 솔개의 거처가 될 것이다. 에돔이 황폐케 될 것이다. 심판 때에 온 세상이 그러할 것이다.

[16-17절]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 . .

16-17절에서 선지자는 또,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친수(親手)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고 말한다.

앞에서 예언한 에돔의 황폐함, 즉 들짐승들과 새들의  거처가 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책인 성경에 자세히 예언하신 바이다. 하나님의 열국 심판과 땅의 황폐함은 하나님의 작정된 바이다. 그 예언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도 빠짐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 너무 큰 애착을 두지 말자. 성경은 마지막 날의 세계적 심판을 예언한다. 세상은 필경 멸망할 성, 곧 장망성(將亡城)이다. 베드로후서 3:6-7, 10은,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불타버리리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현실에 충실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만, 세상에 너무 큰 애착을 두거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고 순종하자. 세상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이다(2, 6, 8절). 그러므로 우리는 온 세상의 섭리자, 통치자이신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고 순종하자. 베드로후서 3:11-12는,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한다. 시편 39:6-7에서 다윗은,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자. 열국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대로, 성경에 자세히 기록된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권위로 인쳐진 책이다.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자. 성경을 자세히 읽고 연구하자.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견고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큰 위로를 받을 것이고 우리의 신앙인격이 온전케 될 것이며 마지막 심판을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베드로후서 3:14는,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했고, 디모데후서 3:16-17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자.

 

 

35장: 새 세계

본장은 새 세계를 예언한다. 이것은 메시아의 초림(初臨)으로 시작되고 그의 재림(再臨)으로 완성될 새 세계이다.

[1-2절]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 . . .

1-2절에서 선지자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장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신 결과 온 땅은 광야와 메마른 땅같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었다. 광야는 춥고 쓸쓸하고 위험한 곳이다. 거기에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고 사나운 짐승이 있는 곳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온 세상은 광야와 같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회복될 새 세계는 사막에서 백합화가 무성하게 피고 레바논에 수목이 우거짐같이 되고 비옥한 갈멜과 사론의 밭같이 될 것이다. 이사야 32:15에서도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고 예언하였었다. 새 세계는 이처럼 자연환경적인 변화를 볼 것이다.

선지자는 또,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러한 새 세계의 회복이 메시아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을 보인다. 죄로 인해 멸망할 세상이 메시아의 오심과 대속사역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며 새로워질 것이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증거했다(요 1:14).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온 땅에 비취고 있다.

[3-4절]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며 . . . .

3-4절에서 선지자는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한다. 그는 말하기를,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고 말한다. 새 세계는 하나님의 열국심판과 더불어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이방인들에 의해 손이 약해졌고 무릎이 떨리며 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심판자 하나님께서 오셔서 원수들을 공의로 벌하시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한 손을 강하게 하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고 겁을 내지 말고 굳센 마음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5-7절]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 . . .

5-7절에서 선지자는,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라”고 말한다. 새 세계에는 건강의 회복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질병들은 큰 슬픔과 불행을 가져왔었다. 불치의 병들의 대표적 예들은 소경과 귀머거리와 절뚝발이와 벙어리 등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날에는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절뚝발이가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가 노래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런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그것은 천국을 시식(試食)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광스런 천국에서는 병자들이 없을 것이다.

선지자는 자연환경적 변화에 대해 다시 말하기를,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라”고 한다. ‘부들’이라는 원어(고메)는 ‘등심초, 골풀’(rush, papyrus)이라는 뜻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이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변하여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골풀이 날 것이다. 더 이상 황량한 광야는 없을 것이다.

[8-9절]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 . . .

8-9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거기 대로(大路)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救贖)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라.”

새 세계는 거룩한 땅이 될 것이다. 그리로 가는 길은 거룩한 길이라고 불릴 것이다. 깨끗지 못한 죄인들은 그리로 지나가지 못할 것이며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성도들만 걸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 길을 범하지 못할 것이다. 또 거기는 사자같이 사납고 난폭한 짐승들이 그리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죄 없는 자들, 죄씻음을 받은 자들만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메시아의 대속사역으로 완성될 천국은 거룩한 성이며 거기에는 거룩하고 의로운 자들만 거할 것이다. 거룩한 사람들의 나라가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목표이다.

시편 15편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聖山)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했다(시 15:1-5). 천국은 거룩한 자들의 세계이다.

[10절]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 . . .

10절에서 선지자는 말한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새 세계는 기쁨의 땅이다. 거기에 거할 백성은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인데, 그들은 노래하면서 그 성에 이를 것이며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과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며 슬픔과 탄식은 달아날 것이다.

천국의 특징은 의와 거룩과 희락이다. 로마서 14:17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했다. 또 요한계시록 21장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한다(계 21:1-4). 천국에는 모든 눈물이 없을 것이다. 죽음도 애통하는 것도 아픈 것도 없을 것이다.

비옥한 땅, 건강한 몸, 거룩한 땅, 기쁨의 땅은 새 세계의 특징들이다. 그것은 자연환경적인 변화, 신체적인 변화, 도덕적인 변화, 심리적인 변화이다. 또 이 모든 변화는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심으로 이루어질 구원사역의 결과이다. 본장에 예언된 새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시작되었고 장차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임인 신약교회는 이미 거룩함을 얻은 자들 곧 성도들의 모임이다. 또 그들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평안을 누리는 은혜를 이미 받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에 예언된 새 세계는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세계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고린도전서 6:9-11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때마다 일마다 주시는 평안을 누린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들을 감사하며 잘 간직하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자.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죄의 낙을 누리며 죄와 질병과 슬픔 속에 사는 불쌍한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자. 저들도 죄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기쁨과 평안을 맛보며 살도록, 또 장차 주님 재림하실 때 영광의 천국에서 완전한 건강과 충만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세세토록 영생하게 하기 위하여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마 11:28), 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다(요 3:16). 이 복음을 널리 전하자.

 

 

36장: 산헤립의 침입

[1-3절]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 . . .

히스기야 왕은 분열왕국 시대에 남방 유다 역사에서 가장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29년의 통치기간 중 제14년 즈음에 크게 어려운 일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앗수르 왕의 침략이고 둘째는 죽을병에 걸린 것이었다(사 38:1).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중에 발생한 일이며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었다.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들을 쳐서 취하였다. 앗수르 왕은 라기스에서부터 군대장군 랍사게를,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의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였다. 랍사게가 세탁업자의 터의 큰 길 윗못 수도구 곁에 서자, 유다 나라에서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비서실장]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史官) 요아가 그에게로 나아갔다.

[4-7절]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 . .

랍사게는 앗수르 왕의 글을 통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와 그 백성을 두렵게 하고 낙망시키려 하였다. 그는 그를 맞는 유다의 고위관리들에게 말했다. “이제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의뢰하니 무엇을 의뢰하느냐?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모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그는 히스기야가 싸울 전략과 용맹이 없다고 말하며 그와 유다 백성을 두렵게 하고 힘을 빼며 낙망케 하려 하였다.

또 그는,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느냐?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 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고 말한다. 유다 관리들 중에는 친애굽파가 있었을 것인데, 앗수르 왕은 그들도 낙망시키려 하였다. 이웃의 강대국을 의지한다는 것은 실상 헛된 일이다.

랍사게는 또, “혹시 네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 마는 그는 그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하기를 너희는 이 제단 앞에서만 경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와 유다 백성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 하였다.

[8-10절]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 . .

랍사게는 계속 말하기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나는 네게 말 이천 필을 주어도 너는 그 탈 자를 능히 내지 못하리라. 그런즉 네가 어찌 내 주의 종 가운데 극히 작은 장관 한 사람인들 물리칠 수 있으랴”고 하였다. 그는 히스기야의 군대의 장군들과 그 군사력을 조롱하였다.

또 그는 “어찌 애굽을 의뢰하여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 하느냐?”고 말하였고, 또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고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말하기까지 하였다.

[11-12절] 이에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 . . .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는 아마 매우 위축된 마음으로 랍사게에게 말했다.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 청컨대 그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의 듣는 데서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마소서.” 그러나 랍사게는 유다 백성을 모욕하며 말하였다. “내 주께서 이 일을 네 주와 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13-16절] 이에 랍사게가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쳐 . . . .

또 랍사게는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치며 히스기야 왕을 모독하기를,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에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그가 능히 너희를 건지지 못할 것이니라.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는 것을 받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붙임이 되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히스기야를 청종치 말라”고 말했다. 그는 마치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이 백성을 미혹하는 거짓된 말인 것처럼 선전하며 유다 왕을 모독하였다.

[16-17절] . . . 앗수르 왕이 또 말씀하시기를 . . . .

또 그는, “앗수르 왕이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물을 마실 것이요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힘을 빼고 무력화(無力化)시키려는 심리적 전술이었다.

[18-20절]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꾀임을 받지 말라. . . .

또 앗수르 왕은 여호와 하나님까지 모독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꾀임을 받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그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고 말하였다. 앗수르 왕은 하나님을 자기와 비교하며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와 능력을 발로 밟았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모독한 큰 죄이었다.

앗수르 왕의 말은 마귀와 말과 같았다. 마귀는 성도들에게 절망을 안겨준다. 그는 세상적 방편이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며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성도를 절망시키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성도에게 무슨 절망이 있는가? 또 마귀는 성도에게 두려움, 의심, 불신을 조장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 한다. 또 마귀는 오늘날 교회들과 주의 종된 목사들과 심지어 하나님까지 모독한다. 그는 항상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시키려 한다.

[21-22절]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였으니 . . . .

그러나 유다 백성은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왕이 그들에게 명하여 대답지 말라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귀의 장난과 위협과 모독적 말에도 대답할 필요가 없다. 그때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은 경건한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간에 유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친 것을 증거한다. 성도는 세상에서 어려운 일들을 당한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하였다(시 90:10). 다윗은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증거하였다(시 34:19). 주 예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요 16:33).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행 14:22). 성도가 어려운 일을 만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생각지 말자.

또한 성도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하나님의 섭리의 손 안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또 전쟁의 승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심판과 징벌로 주시는 전쟁이 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할 것이다. 유다 멸망시 바벨론의 침공 같은 전쟁이 그러했다. 그때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권면대로, 적군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전쟁이나 정당방위적인 전쟁 같은 정당한 전쟁이 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들 곧 하나님의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실 것이다.

특히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믿음과 의를 지켜야 한다. 불경건과 죄는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가져온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유황불비로 멸망을 당했다(창 18:32). 또 후에 예루살렘 성은 의인 한 명이 없어서 결국 멸망하였다. 예레미야 5: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의만 붙들자. 본장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는 랍사게의 말 속에서 증거된 히스기야의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그 어려운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구원하실 것을 믿었다. 이사야 37:1은 그가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고 증거한다. 그것이 해답이다. 거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다. 다윗은,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고백하였다(시 20:7). 또 그는,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고 고백하였다(시 62:1). 우리는 오직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믿음과 의를 지키자. 그러면 어떤 고난의 현실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37장: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1-4절]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 . . .

전장에서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을 모욕하고 혼란시키려 하였고 하나님을 모욕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그 말을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갔다. 그는 먼저 고위 관리들을 모아 안보회의 같은 것을 열지 않았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찾았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먼저 성전이든지, 골방이든지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었다. 왕은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었고, 그들은 이사야에게 말하였다.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책망]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살아계신] 하나님을 훼방[비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현실을 그대로 알리면서 기도를 부탁하였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고, 주의 종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좋다.

[5-7절]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 . . .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갔을 때, 이사야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모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보라 내가 신[한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風聲)을 듣고 그 고토(故土)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우선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셨다. 또 그는 앗수르 왕을 자기 땅으로 돌아가 죽게 하겠다고 예언하셨다.

[8-13절] 랍사게가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 . . .

랍사게는 앗수르 왕이 유다 서남부에 있는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돌아가다가 그 왕이 립나 치는 것을 만났다. 그때에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의 일에 대하여 “그가 나와서 왕과 싸우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든지 단순한 풍문이든지 간에 그는 그 말을 듣고 상당히 불안하였을 것이다. 그는 아마 예루살렘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해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앗수르 왕은 사자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며 말했다.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고하여 이르기를 너는 너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 왕들이 모든 나라에 어떤 일을 행하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멸절시켰는지 네가 들었으리니 네가 건짐을 얻겠느냐? 나의 열조가 멸하신 열방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및 들라살에 거하는 에덴 자손을 그 나라 신들이 건졌더냐?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 왕과 이와 왕이 어디 있느냐 하라.”

[14-20절]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 . . .

히스기야는 사자의 손에서 앗수르 왕의 글을 받아 보고 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그에게 기도하며 말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자로 사시는[살아계신] 하나님을 훼방[비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 땅을 황폐케 하였고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이들은 참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으로 주만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히스기야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자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확고히 믿고 있었고, 또 열국의 신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일 뿐이며 참 신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눈을 떠서 유다 백성이 모욕당함을 보고 계시며 귀를 기울여 듣고 계심을 확신하였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주시기를 구하였고 여호와께서만 온 세상의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해주시기를 간구하였다.

[21-25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 . . .

그때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네가 훼방[비방]하며 능욕[모욕]한 것은 누구에게냐[누구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니라. 네가 네 종으로 주를 훼방[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또 그 한계 되는 높은 곳에 들어가며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밟아 말리리라 하였도다.”

[26-29절] 네가 어찌 듣지 못하였겠느냐? . . . .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전하였다. “네가 어찌 듣지 못하였겠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그러므로 그 거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같이, 푸른 나물같이, 지붕의 풀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았었느니라.” 앗수르 왕들이 열국들을 멸한 것과 그 거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들의 풀같이, 푸른 나물같이, 지붕의 풀같이 패망하고 수치를 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정하신 바를 이루신 것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나를 거스려[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네가 나를 거스려[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자갈을 네 입에 먹여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의 교만과 오만을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기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

[30-32절]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금년에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2년에는 또 거기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3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를 돌보시는 징조이었다. 그것은 전쟁으로 인하여 두 해는 농사짓기 어려울 것이지만, 제3년에는 정상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선지자는 또 말한다.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족속 중에 ‘남는 자’ 혹은 ‘피하는 자’를 두실 것이다. 인류는 부패하여 다 멸망받아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이다. 남북의 나라가 결국은 우상숭배로 다 멸망할 것이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유다 족속 중에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이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자들이며 장차 회복될 새 세계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이다.

[33-35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가라사대 . . . .

선지자는 또 앗수르 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한 살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앗수르 왕은 그가 오던 길로 돌아가고 예루살렘 성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지켜주실 것이다.

[36-38절]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18만 5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 . .

유다 왕 히스기야와 선지자 이사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왔다.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18만 5천명을 쳤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온 진영에 시체뿐이었다. 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떠나 돌아갔고 수도 니느웨에 거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자기 신 니스록의 묘[전]에서 경배할 때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다. 그래서 그 아들 에살핫돈이 그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본장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어려울 때 기도하자. 유다 왕 히스기야는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로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였고 해결함을 얻었다. 기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는 방법은 기도뿐이다. 우리는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든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할 수 있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약 5:13). 시편 50:15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하였다.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했다(빌 4:6-7). 우리는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하자.

둘째로,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고 바로 믿자.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확신했다. 그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어려울 때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했다. 믿음과 기도는 정비례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낙망치 말고 기도하기를 힘쓰라고 교훈하신 후,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다(눅 18:8).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은 성경과 기도를 통해 얻고 자란다. 우리는 평소에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고 바로 믿자.

셋째로, 우리는 현실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자. 히스기야는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를 의지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믿었고, 마침내 그의 도우심과 구원을 경험하였다. 앗수르 왕은 군사 18만 5천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자기 나라로 물러갔고, 하나님의 예언대로 그 나라에서 자기 아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경건한 인물들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경험했다. 특별한 경우, 하나님께서 핍박도 받게 하시고 순교도 당하게 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섭리하신다(롬 8:28).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따르자.

 

 

38장: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

[1-3절]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 . . .

1절에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즈음’은 앗수르의 침공으로부터 구원을 얻은 때 즈음을 말한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간 다스렸는데, 앗수르의 침공은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제14년 때의 일이었고, 그 즈음에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렸었다. 그에게 어떤 죄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죄가 그 병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17절). 질병은 죄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는 그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기억]하옵소서”라고 하며 심히 통곡하였다.

히스기야는 비록 나이가 젊었지만 평소에 경건하고 선하게 살았음이 분명하다. 소년 다윗처럼,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지식과 담대함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 때 우리는 믿음의 담력을 얻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고 말했다(요일 3:21). 또 히스기야는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눈물의 기도는 진심에서 나오는 간절한 기도이다.

[4-6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 . .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는 즉시 하나님의 응답을 얻었다. 히스기야가 눈물로 기도했던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였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15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는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욥은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다”고 말했다(욥 12:10). 다니엘은 벨사살 왕 앞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호흡을 주장하는 자이시라고 말했다(단 5:23). 예수께서는 어리석은 농부의 비유에서 하나님께서 오늘밤이라도 우리의 영혼을 부르실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눅 12:20).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죽을 병에서 건져내어 15년을 더 살게 생명 연장을 하실 뿐 아니라, 그와 그의 성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지고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다.

[7-8절]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를 물러가게 하리라”고 하셨고, 그 말씀대로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10도를 물러갔다. 이것은 지구의 자전(自轉)을 조금 거꾸로 돌리신 사건이었다. 그것은 여호수아 때에 태양을 멈추게 하셨던 사건(수 10:12-13)과 함께 인류 역사상 하나님께서 천체의 움직임을 직접 간섭하신 2대 사건이었다.

[9-12절]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 병이 나을 때에 . . . .

9-20절은,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 병이 나을 때에 기록한 글이다. 이것은 그의 간증이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그의 나이 39세 때의 일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중년에 음부(陰府)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생존세계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음부’(陰府)는 무덤을 가리킨다. 또 그는,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같이 나를 떠나 옮겼고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같이 하였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나의 명(命)[생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라고 말했다. ‘거처’라는 원어(도르)는 ‘세대, 수명’(KJV)이라는 뜻 외에 ‘거처’(BDB, NASB)라는 뜻도 있다. 히스기야는 죽을 때가 가깝다고 느꼈을 정도로 심히 아팠었다.

[13-14절]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같이 . . . .

히스기야는 계속 말하기를,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나의 명(命)[생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라고 하였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사자같이 자신의 모든 뼈를 꺾으셨다고 말한다. 즉 자신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15-17절]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 . . .

히스기야는 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고 말한다. ‘내 영혼의 고통’은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겪은 심적 고통을 가리킬 것이다. ‘내가 각근히 행한다’는 원어(엣닷데 hD,D'a,)는 ‘천천히 행하다, 신중히 행하다’(BDB) 혹은 ‘겸손히 행하다’(NIV)는 뜻이다.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갔다오면 좀더 신중해지고 겸손해질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신중히 행해야 한다.

히스기야는 또,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라고 말한다. ‘이에’와 ‘거기’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그의 긍휼과 능력을 가리킬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히스기야는 또,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의 질병이 자신의 죄 때문에 왔음을 시인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사하셨고 그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다고 증거하며, 또 그가 큰 고통의 질병으로 고생했지만, 하나님께서 결국 평안을 주셨다고 간증한다.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케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다(애 3:33). 그는 결국 죄씻음과 평안을 주신다.

[18-20절] 음부(陰府)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 . . .

히스기야는 이제 하나님께 찬송을 올리기를 결심한다. 그는 말하기를, “음부(陰府)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라고 한다.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한다. 산 자만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진리를 알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마다 감사하며 찬송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그를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다(엡 1장).

[21-22절] 이사야는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 . . .

이사야는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고 말했고, 히스기야도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뇨?”라고 말했었다.

본장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기도하자.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였다. 물론 그의 질병은 그의 어떤 죄 때문에 온 것 같다. 우리는 무슨 일을 이루었을 때 교만하거나 해이해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경건하고 선하게 살았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비교적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고난 중에 기도하자.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그것을 멀리하기를 결심하며 기도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며 담대하게 또 간절하게 기도하자.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우리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죽을 병에서 건져주시고 생명을 15년간 더 연장해주셨다. 인간의 생명과 죽음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는 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생을 다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자. 물론 우리는 죽음이 나와는 상관 없는 것처럼 살지 말고, 죽음이라는 현실을 늘 인식하며 살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성실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삶과 죽음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후에 더욱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되었다. 그는,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신중히] 행하리이다.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옵니다”고 말했다(15-16절). 또 그는,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고 말한다(20절). 찬송은 성도의 마땅히 행할 바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중히 행하며 항상 찬송을 올리자.

 

 

39장: 바벨론 사자의 방문

본문의 내용은 열왕기하 20:13-19에도 똑같이 나와 있다.

[1절] 그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유다 왕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나았던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은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내었다. 그 당시 아직 앗수르의 한 영토였던 바벨론은 므로닥발라단 때부터 독립국가로 나타나 앗수르와 힘을 겨루려 하였던 것 같다. 그러므로 므로닥발라단은 유다와 애굽 등과 연대하여 앗수르를 압박하려 하였던 것 같다.

[2절] 히스기야가 사자를 인하여 기뻐하여 그에게 궁중 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을 다 보였으니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은지라.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자의 방문을 기쁘게 맞았다.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신흥 바벨론 나라의 방문은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어떤 유력한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히스기야는 그 사자를 환대하며 그에게 궁중 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다. 궁중의 보물과 국내의 모든 보물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가 앗수르 왕을 물리친 일과 죽을병에서 나은 일이나 아하스의 일영표의 해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간 일 등은 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은혜를 증거했어야 했으나, 그 대신 나라의 보물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훌륭한 점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자랑하고 증거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교훈하였고(고전 3:21-23), 또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고백하였다(갈 6:14).

[3-4절]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이사야가 가로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보물은 보이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그때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물었다.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고 대답하자, 이사야가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고 물었다. 히스기야는,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보물은 보이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고 대답하였다. 히스기야는 확실히 잘못 행하였다. 그는 장차 유다의 원수가 될 바벨론 나라의 사자에게 유다의 재정적, 군사적 상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 되었다.

[5-7절]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장차 있을 유다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선언하였다. 그는 히스기야에게 말했다.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유다는 장차 바벨론 나라로 인해 멸망할 것이다. 히스기야는 그런 바벨론 나라의 사자에게 나라의 중심부를 다 드러내 보여주었으니, 그것은 큰 실수이었다.

그 실수의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그의 교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역대하 32:24-25는,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본문의 사건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은혜로 주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증거하는 대신에 자신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실수는, 더 깊이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역대하 32:31은,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지켜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인간 본성의 연약성과 죄악성 때문에 실수하고 또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경건한 인물 히스기야도 그러하였다. 하나님께서 버려두실 때 그는 마음이 높아졌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증거하는 대신에 자신의 보물들을 자랑하였다. 히스기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만 사모해야 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며(고전 15:10), 하나님의 은혜만 사모해야 한다.

[8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또 가로되 나의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당신의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고 말하며, 또 “[왜냐하면] 나의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있음이로다]”라고 하였다. 그는 장차 있을 유다의 비극적인 멸망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선언을 겸손하게 받았다.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자신의 세상적 부귀와 영광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고 그의 은혜만 증거하자. 우리의 우리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고전 3:21-23)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자. 우리는 사도 바울과 함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고백하자(갈 6:14).

둘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고 의지하자.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지와 교만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우리도 실수하고 실패할 것이다. 하나님의 귀한 사람 다윗이나 히스기야가 실수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육체의 죄성을 이길 수 있다(갈 5:16).

 

 

40장: 이스라엘의 회복

이사야 40장 이하도 1장부터 39장까지 쓴 선지자 이사야가 쓴 내용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2:38, 40에서 이사야 53:1과 이사야 6:10을 인용하면서 그것들이 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임을 증거하였다.

 

1-11절, 하나님의 오심

[1-2절]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 . .

이사야 39:6-7에서 유다 백성이 장차 바벨론에 포로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는 본장에서 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회복될 날을 암시한다. 선지자는 말한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신다. 그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해 징벌을 받아 멸망당하고 오랫동안 바벨론 포로생활로 고생할 것이지만, 이제 회복의 날이 올 것이다. ‘그 복역의 때’라는 원어(제바아흐)는 ‘그의 전쟁’ (KJV, NASB), 혹은 ‘그의 고역’(NIV)이라는 뜻이다. “그의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말은 그가 죄의 징벌로 받은 포로생활의 기간, 즉 전쟁 같은 고역의 기간이 찼다는 뜻이다. 유다 백성은 그 죄에 대해 하나님의 징벌을 충분히 받았고 이제 그 죄악의 사함을 받았다.

[3-5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 . . .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메시아의 강림을 암시한다. 이 예언은 신약시대에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에게 적용되었다. 선지자는 말한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여호와의 길’ ‘우리 하나님의 대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오실 것을 보인다. 여기에 ‘외치는 자’는 메시아의 강림을 준비하며 선포했던 세례 요한을 암시한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를 전파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켰었다. 광야와 사막은 거친 세상의 현실이나 인생의 수고로운 삶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셔서 회복시키실 것이다.

선지자는 계속 말하기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한다. 골짜기는 거짓과 미움과 탐욕과 음란으로 복잡한 사람들의 죄악된 심령을, 산과 작은 산은 사람들의 교만한 마음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들을 다 버리고 겸손히 회개하는 자들만 영광의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는 말씀은 신적 구주의 강림을 말하는 중요한 계시 내용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자기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메시아의 성육신(成肉身)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14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증거하였다.

본문은 마지막에 부언하기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말씀하셨음이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오심,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에 대한 이 예언은 하나님의 입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신적 메시아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언하신 바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6-8절]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 . .

6-8절은 인생과 세상적 영광의 헛됨을 증거하며, 그것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한다. 선지자는 말한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고 떨어질 것이다. 인간은 허무하다.  그것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다. 인생의 허무함은 그들이 죄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다. 이 말씀은 특히 이스라엘 백성의 쇠약함과 멸망을 두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 말씀은 헛되지 않고 영원히 서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있다.

[9-11절]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 . .

9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에 대한 소식을 널리 전하라고 말한다. 그는,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 시온이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 예루살렘이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 . .”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KJV, NASB).18) “너희 하나님을 보라”는 말씀은 장차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오실 것을 증거한다.

10-11절에서 선지자는 메시아의 오심을 좀더 구체적으로 예언한다. 그는,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고 말한다.

주 여호와께서는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며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다. 그는 공의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그는 선한 일을 행한 자들에게 상을 주실 것이며 악한 일을 행한 자들에게는 벌을 내리실 것이다(계 22:12). 또 그는 좋은 목자이실 것이다(요 10:11). 그는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들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고,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실 것이다. ‘젖먹이는 암컷들’(NASB)19)은 교역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양들을 모으시는 것은 그들을 구원하심을 가리키고, 양들을 안으시는 것은 보호하심을 가리킬 것이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인간의 삶이 헛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영원하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였다(벧전 1:24). 인생이 허무한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그 말씀은 많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고 쇠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헛된 영광을 추구하고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만 소망하자.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신적 구주께서 오셨다.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증거하였다(요 1:14). 성육신하신 하나님, 신적 구주이신 그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라고 썼다(딤전 1:15). 우리는 이 복음을 널리 전해야 한다. 주 예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고(마 28:19-20), 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다(막 16:15).

셋째로, 이제 우리는 신적 구주의 인도하심만 따르자. 신적 구주께서 능력의 팔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품에 보호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공급하시며 마지막 날에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27-28). 요한계시록 14:3-5는,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만 4천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말한다. 우리는 오직 구주 예수님만 따르자. 그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 되자. 그의 말씀이 성경책에 있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교훈대로 행하자.

 

12-17절,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12절]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았으랴.

선지자는 말하기를,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았으랴”라고 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가 심히 크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땅, 또 바다와 산들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 우리가 사는 지구가 매우 크지만, 그것은 온 우주에서는 한 작은 점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거대한 공과 같다. 그 둘레는 약 4만 킬로미터가 된다. 표면 면적은 약 5억 천만 평방킬로미터, 그 중 바다가 육지보다 약 2.4배 많다. 육지의 넓이는 약 1억 5천만 평방킬로미터이다. 육지에서 가장 높은 산은 높이 8,848미터인 에베레스트 산이며, 바다에서 가장 깊은 곳은 깊이 약 11,000미터인 마리아나 해구이다.

그런데 이 큰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아홉 개의 행성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태양에서 가장 먼 행성인 명왕성은 태양에서 약 60억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그러면 태양계의 직경은 약 120억 킬로미터이며 빛의 속도로 거의 12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약 1000억개의 이런 별들이 모여 은하계라는 것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은하계의 직경은 10만 광년이라고 한다. 1광년은 빛이 1년간 날아가는 거리인데, 약 9조 4500억 길로미터이다. 은하계의 직경은 그것의 10만 배라고 하니 상상하기 어렵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우주에 이런 은하계가 약 1000억개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우주의 광대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누가 지구 표면의 거대한 바다들의 물의 부피를 달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지구의 흙을 되에 담아 달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저 높은 산들과 저 작은 산들이라도 그 무게를 저울에 달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저 광대한 하늘의 크기를 재어볼 수 있겠으며, 저 끝없이 펼쳐진 우주의 크기를 재어볼 수 있겠는가? 단지 추측하고 상상해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지구, 이런 우주를 창조하신 자이시다.

[13-14절]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선지자는 또 말한다. “누가 여호와의 신[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홀로 하셨다. 이사야 44:24,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와 우주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를 나타낸다. 창조자 하나님을 지혜로 지도하고 가르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 의와 지식을 가르친 자도 없었다. 그는 지혜와 지식과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요 지극히 의로우신 자이시다. 그러므로 욥기 12:13은,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다”고 말하였고, 시편 147:5는,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라고 고백하였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다.

[15-17절]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선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조자 하나님 앞에서 열방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증거한다. 그는 말한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지금 세상에는 악인들이 권세가 있어 보이고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학대하는 이방나라들, 곧 앗수르와 바벨론의 세력이 대단하여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고,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신다. 그는 이방나라들과 그 권세들을 무(無)로 여기신다. 그는 온 세상을, 세상 나라들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신다.

다니엘도 그 진리를 강조하여 증거한다. 다니엘 4:17은,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고 말한다. 또한 다니엘 4:35는,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고 말한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결국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그의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뜻은 죄인들 중에 택한 자들을 다 구원하셔서 자기 백성을 삼으시는 것이다. 그는 그 뜻을 다 이루신다. 시편 93:1-2는,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고 말한다. 주께서는,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다(요 6:40).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 과정이다. 다니엘 2:44는, 로마 제국 시대에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며 그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을 나라라고 예언하였다. 주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과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을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마 6:10). 또 그는 그의 음성을 듣는 그의 양들이 있다는 것과, 그가 그들에게 영생을 줄 것이라는 것과, 그들이 영원히 멸망치 않을 것이며 그들을 그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다(요 10:28). 그것이 구원이며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된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과 완전하심을 알자. 이 광활한 세상과 우주를 파악할 수 없는 인생이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어찌 파악할 수 있으랴. 하나님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은 지극히 크셔서 피조물인 우리가 다 파악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굴복하며 그를 인정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 나라들을 주관하심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방을 통의 한 방울 물같이, 저울의 적은 티끌같이, 또 없는 것같이 여기신다. 그는 홀로, 주권적으로 온 세상의 열국들을 통치하신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임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그의 뜻을 이루심을 알자.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는 택자들의 구원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표를 다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이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홀로 통치하시는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택자들을 구원하시고 교회와 자기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알고 오직 그를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18-31절, 참 하나님을 섬기라

[18-20절]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 . .

이사야는 본장 초두에서 이스라엘을 위로하라고 선포하였다(1절). 그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회복될 것을 암시하는 예언의 말씀이었다. 또 그는 땅의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 풀이 시들고 꽃이 떨어짐같이 그것들이 다 시들고 쇠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의 약속의 말씀도 영원하다고 증거하였다(6-8절). 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없는 것과 같다고 증거하였다(15, 17절).

그러므로 이제 선지자는,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고 말한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명 없는 우상을 비교한다. 그는, “우상은 장인이 부어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우상은 보통 놋쇠로 부어만들고 금으로 입히고 은사슬로 장식한다. 그는 또,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고 말한다. 놋쇠와 금은을 살 여유가 없는 가난한 자들은 나무를 택하여 그것을 공교한 장인으로 조각하게 하여 우상을 만들었다.

현대인도 여전히 조상신을 숭배하여 제사나 차례를 드리며 심지어 부적을 소지하기도 한다. 죽은 자의 영혼이 신이 되어 자손들에게 복과 화를 내리겠는가? 부적 종이조각이 신적 보호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또 현대인은 인간을 숭배하고 자신을 높인다. 그들은 과학을 숭배하고 돈과 육신의 쾌락를 최고 가치로 여긴다. 그러나 거기에 참 평안과 행복이 있는가? 창조된 것들이 신이 될 수 있는가?

놋쇠, 금은, 돌, 나무 등으로 만들어지는 우상이 생명이 없고 능력이 없으며 그런 것을 섬기는 행위가 헛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인간과 돈과 육신의 쾌락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것이 허무하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원시적 우상들이나 현대적 우상들이나 그 어떤 우상도, 또 인간이 절대적 가치를 두려 하는 그 어떤 피조물도 헛되고 무익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런 것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21-22절]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 . . .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심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그는,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遮日)[휘장]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신 자이시다. ‘궁창’이라는 원어(쿠그)는 ‘둥근 원[궤도], 둥근 천장’이라는 뜻으로 하늘을 묘사한 것이다. 창조자 하나님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초월적 존재이시다. 그는 하늘에 계신 자이시다. 땅의 거민들은 그 앞에 메뚜기 같아 보인다. 그는 하늘을 휘장같이 펴셨고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다. 그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자이시며 창조주 그분만 참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 10:11은,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고 말한다.

[23-24절]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 . . .

하나님은 또한 섭리자이시다. 선지자는, “[그가]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귀인들을 폐하시고 세상의 재판관들을 헛되게 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25-26절]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 . .

이사야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거룩하신 자이시다. 그는 모든 피조 세계로부터 초월해 계신다. 그의 존재 자체가 초월적이며 그의 도덕성이 이 불결한 세상과 구별되신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홀로 섭리하시는 주권적 하나님을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사야는 다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증거한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그 수효대로 이끌어 내셨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셨다. 그의 능력이 크고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이 창조되었다. 이 세상의 어느 신, 어느 우상이 이런 능력을 조금이라도 가졌는가?

[27절]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 . . .

이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낙심된 마음 상태를 지적하며 그들을 위로하려 한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내 사정’이나 ‘내 원통한 것’은 그들이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을 말한다. 그들은 죄 때문에 당연히 고난을 받고 있지만,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갈망하며 또 그들을 학대하는 이방인들에 대해 하나님의 공정한 보응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깊은 뜻 가운데 자기 백성을 고난 중에 버려두셨고 그들을 잊으신 것처럼 보였다. 그는 때때로 그러하셨다(시 13:1-2).

[28-29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 . .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그가 자기 백성에게 무엇을 주실 것인지 증거한다. 그는 말한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이스라엘은 먼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스라엘은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피곤치 않으시고 명철과 능력이 무한하신 자이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명철과 능력으로 그 선하신 뜻을 다 이루신다.

[30-31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 . .

이스라엘은 특히 하나님께서 피곤한 자들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피곤하고 낙망할 수 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실수하거나 낙심할 때가 있었다. 사람은 질그릇과 같다. 능력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시편 62:11은,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는다고 고백하면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증거하였다(고후 4:7). 사람은 연약하지만,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며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달려가고 곤비치 않을 것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가 헛됨을 알자. 놋쇠나 나무로 만들고 금은을 입힌 우상은 아무 생명이 없다. 제사와 차례도 헛되고 가증한 우상숭배임을 알자. 또 돈 숭배와 인간 숭배와 육신의 쾌락 추구도 헛된 것이다. 우리는 헛된 우상숭배를 버리자. 인간 숭배, 돈 숭배, 육신의 쾌락 추구를 버리자. 그것들은 우리에게 참 평안과 행복을 주지 못하고 더더욱 영생을 주지 못한다.

둘째로, 우리는 참 하나님만 섬기자. 태초부터 하늘 위에 앉으신 자,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홀로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만 믿고 섬기자. 그는 명철과 능력이 무한하시며, 피곤치 않으시는 자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신을 증거하셨다. 그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의 죽음과 부활로 자신을 증거하셨다. 우리는 그 하나님만 믿고 섬기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날마다 새 힘을 얻자. 이스라엘은 고난 중에 피곤해져 있고 낙심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실 것이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감동하셨고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오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우리는 피곤함과 낙심을 떨쳐 버리고 날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새 힘을 얻고 하나님 안에서 살며 활동하자.

 

 

41장: 너를 도우리라

1-16절, 내가 너를 도우리라

[1-4절]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 . .

1절에서 선지자는 말한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라고 번역된 원어는 “심판대 앞에 함께 나아가자”는 뜻이다(KJV, NASB, NIV).

2절에서 선지자는,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해 동쪽의 파사에서 고레스 왕을 일으키셔서 의로운 심판의 도구가 되게 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사야 44:28은,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고 예언하고, 이사야 45:1은,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또 이사야 46:11은,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고 말하고, 이사야 45:13은,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고 말한다.

2-3절에서 선지자는 계속 말하기를,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다”라고 한다.

파사 왕 고레스는 넓은 영토를 점령하고 열국들을 굴복시킬 것이다. 그는 열방을 멸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와 같이 150년 내지 200년 후에 나타날 인물과 일에 대해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예언하였다.

4절에서 선지자는 말한다.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만대’는 모든 시대라는 뜻이고, ‘명정하다’는 원어(카라)는 ‘부르다’는 뜻이다. 창세 때부터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모든 시대들을 작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신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이사야 46:10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5-7절]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 . . .

5-7절에서 선지자는 열국들의 반응에 대해 말하기를,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라고 한다.

열국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땅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헛된 우상숭배를 뉘우치고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도리어 더욱 우상숭배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서로 격려하며 우상 만드는 일을 힘쓸 것이다. 메질꾼은 모루를 치는 자를 가리킨다. (모루는 대장간에서 달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를 말한다.) 그러나 우상숭배는 결국 다 헛될 것이다. 29절,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니라.”

[8-10절]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 . .

8-9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고난당하는 이스라엘을 도우실 것을 예언하기를,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나의 종 너 이스라엘’ ‘나의 택한 야곱’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의 친구라고 부르시며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우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었다(출 20:6).

10절에서 선지자는 더욱 담대히 전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 징벌과 고난 중에도 버리지 않으시고 도우시고 붙드실 것이다. 즉 그는 그들을 마침내 구원시키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마치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고 말씀하신다.

[11-14절]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 . . .

11-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라.” 이스라엘은 이전에 열국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했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노하며 다투던 열방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되며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열방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열방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뜻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오른손을 붙드시고 그들을 도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부르셨다. ‘지렁이’라는 원어(톨라아스)는 ‘벌레’(worm)라는 뜻이다(BDB, KJV, NASB). 그것은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증거한다.

[15-16절]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 . . .

15-16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셔서 이방의 크고 작은 나라들을 다 멸하실 것이다. 그것은 메시아로 말미암은 구원 사역을 가리켰다고 본다. 다니엘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금신상 꿈을 해석하면서,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라고 말한다(단 2:34-35).

그 꿈은 로마 시대에 메시아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고 그 나라가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을 예언한 것이다. 본문의 예언도 같은 내용이라고 본다. 이것은 신약의 복음 전파와 교회 건립의 일을 가리킨다. 이 예언은 신약시대에 이미 시작되었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1-16절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홀로 주권적 작정자, 창조자, 섭리자이심을 알자. 4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우리는 이 주권자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하며 바로 살자.

둘째로, 우리가 현재 혹시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낙심치 말자. 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벌로 멸망하여 먼곳으로, 땅끝까지 흩어져서 열방의 분노와 다툼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책과 훈련을 달게 받으며 두려워 말고 낙심치 말고 주권자 하나님을 바라며 기다리자.

셋째로, 우리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이스라엘을 붙드시고 부르시고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