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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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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성경 원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은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교회의 전통적 견해를 버릴 타당한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헬라어 비잔틴 다수 사본들의 본문은 순수하게 보존된 성경 원본의 본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의미를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들은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하며,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내용 목차

 서론   

 1장: 성령의 강림을 약속하심 

 2장: 성령께서 강림하심

 3장: 솔로몬 행각에서 전도함

 4장: 공회 앞에서 증거함 

 5장: 사도들이 많은 기적들을 행함  

 6장: 일곱 사람을 택함

 7장: 최초의 순교자 

 8장: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됨 

 9장: 사울을 부르심

10장: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달됨 

11장: 안디옥 교회의 설립 

12장: 헤롯의 핍박과 죽음

13장: 최초의 선교사 

14장: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전도함 

15장: 예루살렘 회의

16장: 빌립보에서 전도함 

17장: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에서 전도함 

18장: 고린도에서 전도함

19장: 에베소에서 전도함

20장: 에베소 장로들에게 권면함

21장: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잡힘

22장: 무리들 앞에서 증거함 

23장: 공회 앞에서 증거함  

24장: 벨릭스 총독 앞에서 증거함 

25장: 가이사 황제에게 호소함 

26장: 아그립바 왕 앞에서 증거함 

27장: 로마로 호송됨

28장: 로마에서도 전도함 

 

서론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이다. 저자는 본서의 서두에 자신이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에 대해 글을 썼다고 말했다(1:1-2). 사복음서 중에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해서까지(1:2) 쓴 책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고 데오빌로라는 동일한 대상자에게 쓴 것을 볼 때 저자가 쓴 책은 누가복음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또 본서에 ‘우리’라는 구절들(행 16:10-17; 20:5-21:18; 27:1-28:16)은 저자가 사도 바울의 동행자이었음을 증거하는데, 누가가 그러하였다(딤후 4:11). 또 본서에 의학적 용어(28:8, 열병, 이질등)나 세심한 진술들1)은 저자가 의사라는 사실에 적합하다.

정경에 대한 무라토리 단편에는 “모든 사도의 행적은 다 한 권의 책에 기록되었다. 누가는 자기 생존시에 이루어진 모든 일을 자세히 데오빌로 각하에게 전해주기 위해 수집하였다”고 써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본서를 인용하면서 누가의 글이라고 증거하였다(Stromata, 5.1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애굽교회에서, 이레니우스나 무라토리 정경은 서방교회에서, 터툴리안은 아프리카 교회에서 사도행전의 누가 저작성을 각각 증거하였다(디이슨, p. 179).

본서의 저작 연대는 주후 62년경일 것이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온 때(주후 60년경)로부터 2년쯤 지난 때에(행 28:30) 본서를 기록하였을 것이다.

사도행전의 특징적 주제는 전도이다. 본서는 승천하신 주께서 어떻게 성령을 통해 그의 제자들 속에서 계속 활동하셨고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전파했으며 또 어떻게 확장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본서는 교회 역사 초기부터 ‘사도들의 행전’이라 불렸으나, 주로 베드로와 바울의 전도 활동을 증거한다. 또 본서의 중요한 한 목적은 바울의 이방인 전도 사역이 정당함을 보여주고, 또 열두 사도들을 대표한 베드로와 후에 부름을 받은 바울의 복음이 동일한 복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의 중요한 의미이었다. 원사도들과 장로들과 교인들이 모였던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문은 사도 바울에 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울]”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사도 바울과 그의 사역을 인정하고 그의 사역과 자신들의 사역의 일치성을 증거하였다(행 15:25-26).

사도행전은 몇 가지 특징적 내용들을 가진다. (1) 성령의 강림과 사역을 증거함. ‘성령 행전’이라고 불림. (2) 선교의 책. 초대교회의 전도 활동과 교회성장의 역사를 증거함. 1-7장, 예루살렘에서; 8-12장,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13-28장, 수리아 안디옥에서 로마까지. (3) 주로 베드로와 바울의 사역을 다룸. 1-12장, 베드로의 사역; 13-28장, 바울의 사역. (4) 24개의 설교들 혹은 연설들이 나옴(그 중 9개는 베드로의 설교이며, 9개는 바울의 설교임. 그 외에 야고보, 스데반, 가말리엘, 데메드리오, 서기장, 베스도의 것이 1개씩). (5)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됨(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하여, 사도들과 기타 여러 사역자들, 로마의 관료들). (6) 바울 서신들(목회서신 제외)의 배경을 말해줌. (7) 바울이 예루살렘을 4번 혹은 5번 방문함(9:26-30; 11: 28-30; 15:1-29; [18:21-22--가이사랴?]; 21:15-23:30).

 

1장: 성령의 강림을 약속하심

1-11절, 성령의 강림을 약속하심

[1-2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누가복음에 이어 본서를 데오빌로에게 쓰고 있다. ‘데오빌로’가 누구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높은 신분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누가복음 1:3에서는 그를 ‘데오빌로 각하’라고 부르는데, ‘각하’라는 말(크라티스토스)은 총독들에게 사용된 용어이었다(행 23:26; 24:3; 26:25).

누가는 사도들을 ‘그의 택하신 사도들’이라고 부른다. 사도들은 주 예수께서 친히 택하신 자들이었다. 마가복음 3:13-14,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주께서 친히 택하셨다는 사실에 사도들의 특별한 권위가 있다. 또 여기에 교회의 모든 직분들의 근본적 선택 원리가 있다. 물론 오늘날 교회는 주로 추천과 투표의 방식으로 직분자들을 뽑지만, 그것은 주께서 택하신 자들을 세우는 절차이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을 세워야 할 것이다.

[3절]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테크메리온) (convincing)(BDAG, NASB, NIV)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자세히 증거하기 전에 그의 부활에 대해 다시 한번 더 강조하여 증거한다. 그의 부활이 없으셨다면 그의 승천도 없으셨을 것이다. 부활하지 않으신 자는 승천하실 수 없다. 누가는 주께서 부활하셔서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셨고 ‘40일 동안’ 사도들에게 보이셨다고 증거한다. 복음서들과 고린도전서 15장의 증거들에 의하면,2)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고 심지어 5백여 형제들이 있는 장소에 나타나셨다. 그것은 환각일 수가 없다. 또한 그가 나타나신 기간이 40일이나 되었다. 그는 확실히 자신의 다시 사심을 증거하셨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사건은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아나셨다! 그는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께서 전하신 복음의 중심 내용이었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시며 전도 사역을 시작하셨다(마 4:17). 또 그는 일곱 가지의 비유로 천국에 대해 가르치셨다(마 13장). 누가복음 4:43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울의 전도의 중심 내용이기도 했다. 사도행전 28:23, 31,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안에서 시작되어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완성될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독교 복음의 한 중심적 내용이다.

[4-5절]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중요한 부탁은 우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대로 성령의 세례를 받도록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성령 세례는 전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사람들이 이룰 수 없는 거대한 일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친히 이루실 일이다. 이제 성령께서 능력으로 제자들 속에 오셔서 이 일을 시작하실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이었고 주께서도 마지막 식사 때에 약속하셨던 내용이었다(욜 2:28-29; 요 14-16장). 성령의 오심은 ‘몇 날이 못되어’ 즉 약 10일 후에 이루어질 것이다.

주께서는 성령의 세례를 요한의 물 세례와 비교하셨다. 물 세례는 죄씻음을 표시하였다. 이와 같이 성령의 세례는 성령께서 신자 속에 오셔서 그를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제자들은 이미 죄 씻음을 받았고 거듭난 자들이었다(요 13:10; 15:3). 그러나 그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였다(요 7:39). 그러므로 이제 성령께서 오시면 그들 속에 거하시고(요 14:16-17) 그들을 인치시고(엡 1:13)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연합시키시고(고전 12:13) 그들에게 더욱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주실 것이다.

[6-8절]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나를 위한 증인](전통사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서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예언에 소망을 두고 있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천년왕국이나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내용이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에 대한 질문은 비록 인간의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긴 하였지만 성경에 예언된 바에 대한 제자들의 간절한 소망과 기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의 질문과 관심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주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문제이므로 우리가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인간의 시간표와 다르다. 조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보기에 하나님의 행동이 때때로 더딘 것 같으나, 실상 하나님께서는 구원 얻을 영혼들을 위해 기다리시고 오래 참으시는 것이다. 그의 구원 계획은 서서히 그러나 다 이루어질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그 대신 제자들에게 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즉 사명(使命, mission)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가 사도들을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이었다(마 28:16-20; 막 16:15-16). 그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증인이 되는 일이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을 친히 보았고 증거할 수 있는 증인들이었다.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는 증인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와 함께 3년 동안 생활했던 증인들이었다(행 2:32; 13:31).

사도들이 증거해야 할 대상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이다. 그것은 온 세계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할 복음이며 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하나도 빠짐 없이 다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이 증거하는 대로, 후에 예수께서 사도로 불러주신 바울이 당시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고 또 서바나(스페인)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했으므로 거의 땅끝까지 복음을 전한 셈이다. 그러나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의 말씀은 그들이 남긴 증거의 책들을 통해 그들의 증언들이 그 후에 온 세계에 전달되고 우리에게까지 왔으며 오늘날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들에 전달되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주께서는 사도들의 사명에 관한 말씀과 함께 그들을 도우실 성령의 임하심에 대해 말씀하셨다. 성령께서 오시는 목적은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실제로 죄인들에게 적용하여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 구원 사역에 한 필수적 요소는 전도자들의 능력 있는 전도의 사역이다. 사도들이 받은, 그리고 오늘날 교회가 이어 받은, 복음 전파의 일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일이었다. 초대교회의 전도와 교회 설립과 확장의 역사(歷史)는 단순히 사람들이 이룬 역사가 아니고 성령께서 사람들을 사용해 이루신 역사이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의 행전이었다. 오늘날도 영혼 구원과 교회 부흥의 힘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있다.

[9-11절]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는 전도의 일을 부탁하신 후 승천하셨다. 사도행전 1:12는 그 장소를 감람산이라고 증거한다. 주께서는 그들의 보는 데서 올리우셨다. 주의 승천은 모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사도들은 그것을 함께 목격하였고 따라서 함께 증거할 수 있었다. 본문은 또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했다고 증거한다. ‘가리워’라는 말(휘포람바노)은 ‘취하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구름은 승천하시는 주를 낚아채듯이 취하였고 사도들은 구름 속으로 취하여진 주님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또 본문은 주께서 올리우실 때 제자들이 자세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장소의 이동 즉 땅에서 하늘 위로 옮겨진 일이었다. 주님의 승천은 말 그대로 승천(昇天)이다.

본문은 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증거한다. 그것은 흰옷 입은 두 사람에 의해 증거되었다. 그들은 천사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때에 천사들을 통해 진리를 증거하신다. 주 예수의 탄생 때에도 천사들은 나타나 주를 찬양하였고(눅 2:13-14), 주의 부활 때에도 천사들이 나타나 빈 무덤과 주의 부활을 증거하였고(눅 24:4), 이제 주의 승천 때에도 주의 천사들이 나타나 승천하신 바로 그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증거하였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제 제자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천사들은 또 승천하신 예수께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증거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이 어떠할 것을 증거한다. 주의 재림은 눈으로 볼 수 있게 이루어질 것이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사건일 것이다. 또 주의 재림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사건일 것이다. 승천하실 때 구름이 그를 가로채듯이 취하여 갔고 구름 속으로 들어가셨듯이,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그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승천 때의 구름이 실제의 구름이었듯이, 재림 때의 구름도 실제의 구름일 것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 우리는 그의 기적적 탄생도, 그의 기적 행하심도, 그의 십자가 대속(代贖)도, 그의 몸의 부활도, 그의 승천도, 그의 재림도 믿는다. 우리는 그가 장차 주실 천국과 영생도 믿는다. 성경은 이 모든 사실들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자신의 부활을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제자들에게 증거하셨고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셨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그는 지금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확신하자. 부활하신 주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데서 구름이 가리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올리우셨다. 그는 승천하셨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자. 승천하신 주께서는 주의 천사들이 증거한 대로 또 사도들과 신약성경이 밝히 증거하는 대로 제자들이 그의 승천하심을 본 그대로, 즉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재림을 소망하자.

넷째로,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도 오셨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오셨고 제자들이 본격적으로 전도사역을 시작하였다고 증거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은 자들이다. 로마서 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예수님 믿는 우리는 다 성령을 받았고 모시고 있다.

다섯째로, 우리는 이제 전도의 사명을 다하자. 주께서는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고 성령께서 오신 목적은 그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 일을 이루게 하심이다. 신약교회와 신약 성도들의 최대의 임무와 사명은 전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명을 다하자.


12-26절, 기도와 사도 보선(補選)

[12-14절]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야고보와 요한](전통사본),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제자들은 감람원이라 하는 산[감람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성경에 감람산 벳바게(마 21:1), 베다니(마 21:17; 눅 24:50), 감람산(마 24:3) 등은 다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갈 수 있는 거리이었다.3) 그들은 함께 머물었던 다락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있었고 그들은 여자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그의 아우들과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전념하였다. 전통본문(Byz)에는 그들이 기도와 간구에 전념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들은 십일 동안 기도와 간구에 전념했다. 그것은 주께서 명하신 전도의 사명을 위하여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준비기도회이었다.

교회의 삼대임무는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임무요, 영적 성장은 교인들을 위한 임무요, 전도는 세상을 위한 임무이다. 예배와 영적 성장에 있어서 그리고 전도를 위하여 중요한 것은 기도이다. 교회는 기도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는다. 또 교회는 기도로 성장하고 온전하여진다. 교회의 이 삼대임무는 성경이 밝히 계시하는 바이며 전통적으로 교회가 잘 이해하고 힘써 왔던 바이다. 이 삼대임무를 저버리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닐 것이며, 이 삼대임무를 소홀히 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5-20절]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제자들](전통본문)4)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指路)한[길을 인도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그 기도회에 모인 무리의 수는 약 120명이었다. 그 기도회 기간에 하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주 예수께서 세우신 열두 사도의 자리 중 비게 된 한 자리를 보충하게 하셨다. 그는 일어나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는 일에 안내자가 되었던 가룟 유다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말하였다. 그것은 시편 69편와 109편의 말씀이었다(시 69:25; 109:8). 성경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며 또 그 말씀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성취된다. 예언과 그것의 성취라는 성경의 성격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된 책임을 더욱 증거한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넘긴 가룟인 유다의 말로(末路)는 참으로 비참했다. 본문과 마태복음 27장의 말씀(27:5-8)을 보면, 가룟 유다는 주 예수께서 정죄되심을 보고 후회하였고, 자기가 받았던 은 30개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었으나 받지 않자 성소에 던져 넣고 돌아가서 스스로 목매었고 그는 죽을 때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몸이 곤두박질해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왔던 것 같다. 한편, 대제사장들은 그가 도로 준 은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다. 그 밭은 아겔다마 즉 피밭이라고 불리었다.

복음서들에 보면,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이었고(요 6:64)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가는 도적이었고(요 12:6) 죄씻음을 받지 못한 자이었다(요 13:10). 사탄은 그의 마음 속에 주를 배반하고 팔려는 생각을 넣었고(요 13:2) 돈에 대한 욕심은 마침내 그로 하여금 은 30개에 주님을 배신하게 했다(마 26:15). 그는 모든 면에서 직분자의 자격이 없었다. 교회의 직분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씻음을 받은 자이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돈을 사랑치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자이어야 한다(딤전 3:3, 8).

[21-26절]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베드로는, 주를 배신하고 멸망의 길을 택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 한 명을 보충할 것을 제안하며 사도의 자격 요건으로서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께서 승천하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그들과 함께 다녔던 사람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증인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 특히 그의 부활하심을 증거해야 할 자들이었다. 모든 제자들은 베드로의 제안에 동감하여 바사바와 맛디아 두 사람을 추천했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었고 그는 열한 사도의 수에 더하여 사도가 되었다.

처음 제자들의 사도 보선(補選)의 사건은 후대 교회에게 본이 된다. 그들에게서는 선거 운동 같은 인간적 요소를 찾을 수 없다. 그들에게서는 후보자들의 경쟁이나 자기 선전이나 상대방에 대한 비방을 찾을 수 없다. 또 그들에게는 성대한 임직식 같은 것도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소박하고 순수하고 영적이었다. 오늘날 교회들도 직분자를 택할 때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교회는 먼저 어떤 직분의 역할과 직무를 설명하고, 둘째 그 직분을 가질 만한 자의 자격을 성경에 계시된 대로 정하고, 셋째 거기에 해당하는 자들을 후보로 추천한 후, 하나님께 기도하고 결정하면 될 것이다. 후보자들이 바르게 추천되고 추천된 자들이 다 자격자라면, 성경의 예처럼 제비 뽑기도 결정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중요한 직분의 경우, 교회의 관례대로 세례교인들이 투표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는 최다수 득표자로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회의 사명의 수행을 위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와 간구에 힘쓰자. 교회는 친목이나 자선사업을 위한 단체가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영적으로 자라고 복음을 두루 전하는 단체이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기도와 간구에 힘쓰자.

둘째로, 우리는 가룟 유다의 마지막을 기억하자. 그는 실패한 직분자의 예이다. 그는 믿음이 없었고 교만했고 돈의 욕심이 있었다. 그는 주님을 배신하고 범죄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비참하였다. 우리는 가룟 유다의 실패를 거울 삼아 교만하거나 범죄하지 말자.

셋째로, 교회는 사명 수행을 위해 직분자들의 정렬을 항상 정비해야 한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기적들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증거할 증인들이었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들의 증언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바른 성경 지식과 믿음과 인격을 구비해야 한다. 교회는 직분자들을 바로 세워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2장: 성령께서 강림하심

1-36절, 성령께서 강림하심

[1-4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방언들]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은,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무교절 주간에 처음 추수한 보리 곡식단을 안식일 후 첫날 곧 1월 16일에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 보리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다. 이 오순절은 일요일이었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들이 모여 있었던 곳은 1:13에 언급한 ‘저희 유하는 다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고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성령의 강림은 이와 같이 외적인 현상들을 동반하였다. 성령께서는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들을 동반하면서 내려오셨다.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사실을 나타내는 독특한 현상이요 표시이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구약의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바와(욜 2:28-29), 주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 후 제자들에게 교훈하실 때 약속하신 바가(요 14-16장) 이루어진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약속대로 오셨다. 또 성령께서 오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셨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속(救贖)하신 자들을 실제로 구원하시는 일 즉 그들을 중생(重生)시키고 성화(聖化)시키는 일을 하시기 위해서이다. 오늘날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시는 시대이다. 신약교회 시대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시대이다. 성령의 오심은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복이다. 성령께서는 성도들 속에 영원히 거하셔서 그들에게 보혜사 곧 위로자가 되신다. 또 성령께서는 성도의 신앙생활과 성화(聖化)를 도우시고 특히 전도를 위해 능력을 공급해주신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자신의 죄성(罪性)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영혼들을 구원한다.

[5-13절]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방언들]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방언들]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그들이] 다 우리의 각 방언[방언들]으로 하나님의 큰 일[일들]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오순절 성령 강림의 독특한 한 표시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었다. 방언이라는 원어(글로싸 glw'ssa)는 ‘언어’라는 뜻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다른 방언들, 즉 다른 언어들로 말하였다. 본문은 무리들이 사는 15개의 지역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그것은 제자들이 적어도 약 15개의 언어들로 말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약성경의 방언은 이와 같이 언어를 가리킨다. 사도시대의 방언은 외국어,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직 배워본 적이 없는 외국어이었다고 보인다.

이미 믿은 자들은 성령께서 그들 속에 거하시는 표로 방언을 말할 필요는 없다. 방언은 성령 강림의 표시이었다. 그러나 이미 믿은 자에게는 방언보다 인격적 신앙생활, 즉 바른 지식과 믿음과 사랑의 인격이 더 중요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4:19,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나님께서 제자들로 방언을 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세계복음화의 일을 이루게 될 것도 암시하는 것 같다. 세계복음화의 한 큰 장애물은 언어의 장벽일 것이다. 인류는 본래 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창 11:1). 그러나 홍수 심판 이후 노아의 자손들이 바벨탑을 쌓고 연합을 도모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고 인류는 의사 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로 하여금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택한 백성들을 다 구원하실 것이다.

[14-21절]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3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오순절에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여러 나라 말들로 방언을 말할 때 그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모여든 많은 무리들이 놀라고 또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자,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더불어 서서 소리를 높여 담대하게 말했다. 이것은 베드로의 첫 설교이었다. 그것은 원고를 준비한 설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성령의 감동과 힘에 이끌리어 한 설교이었다.

그의 설교의 요지는, 우선 그들이 방언을 하는 것이 당시 시각이 제3시 즉 오전 9시이니 제자들이 술취한 것이 아니고, 선지자 요엘의 예언의 성취로서 성령을 받은 현상이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세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실 것이며 성령께서 부어지면 사람들은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예언은 구약 백성이 경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풍성한 임하심을 약속한 것이었다. 이것이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이루어졌다.

[22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베드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의 강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한다. 그는 먼저 예수께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사실을 증거한다. 그는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나사렛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나셨음을 증거한다. 그는 물질적 몸을 가진 인간이셨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이셨다. 그것은 그의 행하신 기적들을 통해 증거된다. 그는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들을 행하셨다. 그것은 인간으로는 하기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역사상 누가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일이 있었으며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인 일이 있었으며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는 냄새가 나는 사람을 살린 일이 있었는가? 이 모든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들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풍성히 증거하였다. 또 이 기적들은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도 아는 바에,” “너희 가운데서,” “너희 앞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성(神性)을 증거하셨다.

[23-24절]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성(神性)을 밝히 증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영접지 않고 배척하였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의 십자가는 인간의 심히 악함을 증거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았고 믿을 만한 많은 일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정하고 멸시하고 배척하고 대적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심히 악함을 증거할 뿐이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셨다. 그는 예수님을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시키셨다.

[25-32절]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지옥](KJV)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位)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지옥](KJV)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베드로는 시편 16편을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이 시편에 예언된 바임을 증거했다. 거기에서 다윗은 주께서 그의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고 또 그로 하여금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 다윗은 죽어 장사되었고 그의 무덤은 그때까지 그들 중에 있었다. 그의 육체는 다 썩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시편에서의 그의 고백은 자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편은 메시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이었다. 이 예언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33-36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는 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도 시편 110편을 들어 성경의 예언대로 되었음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이심이 증거되셨다. 또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하나님 우편에 앉는다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통치권을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들은 사탄과 악령들과 사탄의 종들이다. 그들은 다 함께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방해하며 허물고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핍박한다.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주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 멸하실 것이다. 이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오셨다. 그는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구속(救贖)을 성령께서 그 택자들에게 적용하여 중생(重生)시키시고 회개하고 믿게 하시는 것이다. 또 그는 구원받은 우리들의 성화(聖化)를 이루신다. 그는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또 위로 격려하시고 도우신다. 그는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

둘째로,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표로 방언을 하였다. 성령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내려오실 때 외적인 현상들을 동반하셨다. 그는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현상과 함께 제자들에게 내려오셔서 그들이 방언들을 말하게 하셨다. 그들이 말한 방언들은 외국어이었다. 그들은 약 15개 지역의 언어들로 말하였다. 방언을 포함하여 사도 시대에 주신 기적들과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을 전달한 사도들의 표이었다(행 2:43; 5:12; 고후 12:12). 또한, 제자들이 방언들을 말한 것은 세계복음화의 암시이었다고 본다. 그들은 온 세계에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했다. 오늘 우리는 기적들과 초자연적 은사들과 방언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바른 지식과 온전한 사랑의 인격을 사모하며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셋째로,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였다. 성령께서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제자들에게 전도할 능력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주 예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겠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일어나 소리를 높여 담대히 전도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적들을 행하셨음을 증거하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음과 3일 만에 부활하셨음을 증거하였고 또 승천하셨음을 증거하였고 또 승천하신 주께서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음을 증거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로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하였다. 우리가 전할 내용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복음서들에 기록된 복음의 내용이며 복음서들이 증거하고자 하는 바이다(요 20:30-31).


37-47절, 초기 예루살렘 교회

[37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오순절에 모인 무리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사도 베드로의 전도 설교는 효력이 있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마음이 굳어 찔림을 받지 못한다. 말씀의 화살이 그 마음에 꽂히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고 믿을 준비가 되었다. 그들은 구원의 문 앞에 서 있었다.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다’는 원어(메타노에오)는 ‘생각을 바꾸다’는 뜻이다.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 없이 사는 데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의지하는 데로, 죄의 낙을 누리던 데서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데로, 예수님을 부정하던 데서 예수님을 믿는 데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회개는 생각을 바꿈으로 삶을 바꾸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십자가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세례를 받으라는 뜻이라고 본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한다. 인간에게 죄씻음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죄 때문에 세상에 죽음과 불행이 왔으나 죄씻음으로 의와 영원한 생명과 평안이 온다. 세례 자체가 죄를 씻는 것은 아니지만, 세례는 예수님 믿음으로 그의 피로 죄씻음 받음을 표시한다.

사람이 죄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자라가며 거룩하여지며 또 하나님을 힘있게 섬기며 전도할 수 있게 된다.

[39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약속’은 죄사함 받고 성령을 받는다는 약속을 가리킨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이름으로 세례받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또 성령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은 ‘너희와 너희 자녀’ 곧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먼데 사람’ 곧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졌다. 이 약속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에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에게 마음의 변화를 주시며 부르시는 것을 가리킨다. 이 부르심으로 사람은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받는다.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전도는 진리의 선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확증과 권면’도 필요하다. 사도 베드로는 여러 말로 복음을 확증하며 권면하였다. 성경은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 연구하는 자들은 다 확신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구원은 이 세상과의 구별도 가져온다. 이 세상은 악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패역하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목이 곧고 완악하다. 사람이 이 세상의 풍습대로 살면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41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약](원문) 3천이나 더하더라.

사도 베드로의 전도와 확증과 권면은 결실을 얻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고 성령의 역사이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약 3천명이나 더했다. 그들은 다 예수께 복종한 제자들이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120명의 무리에 3천명의 신입교인이 더하여졌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기쁜 사건이었다.

[42절]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또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 그들은 네 가지 일에 힘썼다. 이것은 후시대의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일들이다.

첫째로,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바른 가르침이 중요하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며 교리적 내용과 윤리적 내용을 다 포함한다. 설교자나 주일학교 교사는 바른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매우 조심해야 한다. 가르침이 혼란하면 교회가 혼란해진다. 요즘 교회들은 가르침이 혼란하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교회연합운동, 은사운동, 여성 안수, 열린 예배 등 별별 풍조들이 교회들 안에 들어왔다.

오늘날에는 복음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단들이 포용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말하며 어떤 이들은 창조와 진화를 절충시키려 한다. 어떤 이들은 자유주의 교단 안에 머물러 있으며 자유주의자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천주교회까지 포용하려 한다. 그것은 참된 복음주의가 아니다. 참된 기독교는 그런 오류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타협적 복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확고히 서야 한다.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사상이 바르고 부교역자들의 사상이 바르고 교사들과 권찰들의 사상이 바를 때, 교회는 바로 세워질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다. 그것은 성도의 교제이다. 그것은 주께서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교제이다. 그것은 서로 문안하고 서로를 돌아보는 교제이다. 그것은 남을 미워하거나 비난하거나 해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오래 참고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며 친절하고 진실을 말하며 상대방에게 선을 행하는 교제이다. 그들은 또 성찬식을 행했고, 또 성도들 간의 식탁교제도 힘썼다.

셋째로, 그들은 기도하는 일에 전적으로 힘썼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성장 곧 성화를 위해, 전도와 영혼 구원을 위해, 참된 교회들의 건립을 위해, 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힘의 통로이다.

[43-45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 사도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그들의 가르침을 믿고 순종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구원과 성화(聖化)에 이르게 하는 유익한 두려움이었다. 그들이 사도들을 두려워한 까닭은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성경에는 단지 몇 가지의 기적들만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을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그것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그들이 전하는 바가 하나님의 진리임을 확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기적들을 통해 구원의 진리들을 확증하셨다(히 2:3-4). 기독교는 기적들로 확증된 종교이다.

믿는 사람들은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였다. ‘다 함께 있어’라는 말은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한 장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서로 교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상적 교회의 모습이다. 또 그들의 교제는 그들의 물건들을 서로 통용하는 행위로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의 물건들을 공동 소유로 생각하고 사용하도록 내어놓았다. 그것은 그 물건들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며, 또 교회의 교인들이 서로 형제 자매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이런 지식과 믿음이 있는 자들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서로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교제는 구제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 물론, 성경은 자기 손으로 성실히 일하여 먹고살라고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친히 일하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성도들에게 일하는 본을 보여주었다(행 20:34-35). 또 그는 손으로 일하며 살라고 가르쳤다(엡 4:28).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명하였다(살후 3:10). 그러나 재산이 넉넉히 있는 자들이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것은 선하고 좋은 일이다. 돈은 구제 같은 선한 일에 쓰는 데 가치가 있다.

[46-47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카트 오이콘)[각 집에서, 각 집을 돌아가며]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또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 드리고 또 다른 이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예배당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기 위해 준비된 거룩한 집 곧 성전(聖殿)이다.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주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 힘써 모여야 한다(히 10:25).

또 그들은 각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이것은 성찬식과 식탁 교제를 가리킬 것이다. 성찬은 성도들의 엄숙한 교제의 표시이며 식탁 교제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의 사랑은 거짓되지 않고 진실했다. 서로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사랑의 식탁 교제를 나누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기 예루살렘 교인들의 사랑은 진실하였다.

그들은 또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찬양은 교회의 중요한 임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다(사 43:2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 하심이었다(엡 1장). 교회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무리들의 모임이다. 찬송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들은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지으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욕하고 그들의 하나님도 욕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경건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며 구제를 힘쓰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의 하나님도 칭송할 것이다. 참된 신자는 가까운 가족들과 이웃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그 교회에](전통본문)5) 더하게 하셨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는지는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물론 그들은 기회 있는 대로 전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것보다 성도들의 행실의 본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주께서는 날마다 그 교회에 구원 얻는 자들을 더하게 하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그는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다른 이들을 구원하신다. 수적인 성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이었다.

전통본문에 의하면, 본절에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교회’는 어떤 인간적 조직이나 외형적 건물이 아니고 믿는 이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중요하다. 그들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며 순종하며 서로 교제하는 곳에 교회가 있다. 주의 이름을 진실히 부르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교회가 있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또 교회는 바른 말씀의 교훈과 그 교훈을 믿고 실천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회개는 사람이 자신의 죄들을 깨닫고 청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알고 믿었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둘째로, 사도들은 오순절 때에 구원의 큰 결실을 보았다. 오순절은 맥추절과 같은 절기이었다. 그것은 밀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이다. 그것은 사람의 거듭남(중생 重生)과 구원을 상징한다. 그 날 누룩 넣은 떡 두 덩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구원받을 죄인들, 특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곡식 추수는 대체로 오순절 기간에 그친다. 가을에는 나무 열매, 포도주, 기름 등을 거두어 저장한다. 추수감사절인 오순절에 약 3천명이 회개하고 믿고 세례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다 그 교회에 더하게 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자들로서 오순절의 곡식 제물과 같다.

셋째로,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후대 교회의 본이 된다. 첫째, 그들은 사도들을 통해 바른 말씀의 교훈을 받았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책을 읽고 모일 때마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을 듣기를 사모해야 한다.

둘째, 그들은 서로 교제하였다. 그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또 각 집에서 모여 성찬을 나누었고 식탁교제를 하였고 모든 물건을 함께 사용하였고 어려운 교우들을 구제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서로 교제하며 병든 교우들을 방문하며 궁핍한 교우들을 돌아보며 구제하자.

셋째, 그들은 기도하기를 힘썼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도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자. 우리가 성화하는 길은 기도이며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전도할 힘을 얻는 길도 기도뿐이다.

넷째,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힘썼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3장: 솔로몬 행각에서 전도함

[1-2절] 제9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美門)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제9시는 오후 3시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 같다. 다니엘은 왕의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단 6:10). 하루 세 차례는 제3시(오전 9시), 제6시(정오), 제9시(오후 3시)의 세 차례였다고 보인다(행 10:8, 30).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 3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다.

그때 사람들은 한 앉은뱅이를 메고 왔다. 그들은 그가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게 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美門) 즉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다. 그는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자이니 참으로 불쌍한 자이었다.

[3-10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였다. 그때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주목하며 말하였다. “우리를 보라.” 그는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았다. 베드로는 말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그리고는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기적은 즉각적이며 완전하였다. 그것은 돈 얼마를 구제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값졌다. 난생 처음 걸어 본 그 앉은뱅이의 기쁨과 감격은 참으로 컸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 베드로로 하여금 그 40여년간 고생한(행 4:22) 앉은뱅이를 고치게 하시고 그를 통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셨다. 사람들은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해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랐다.

[11-16절]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주랑--벽이 없고 기둥만 있는 집]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결정]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 기적이 자기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했다. 그는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했다. 또 그는 로마 총독 빌라도가 인정한 바대로 예수께서 죽을죄가 없는 자, 즉 거룩하고 의로우신 자시요 생명의 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우리가 그 일에 증인이라고 말하였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이었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그들에게 여러 날 나타내 보이셨다. 또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그 앉은뱅이를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고 만 자가 아니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심을 증거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17-21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

베드로는 그들이 알지 못하여 그리한 줄 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게 하셨다고 말했다. 그런 후, 그는 무리에게 회개하여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말했다. 그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받으라는 소식이다. 죄는 멸망의 원인이지만, 회개는 구원의 길이다. 우리의 전할 내용도 회개와 죄사함이다.

베드로는 또 사람이 회개하고 죄 없이 함을 얻으면 즐겁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구원의 즐거움과 심령의 평안,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또 그것들이 천국에서 풍성하게 이루어질 것을 말할 것이다. 그는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도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회복의 때까지 그를 천국에 두실 것이지만, 그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 밝히 증거된 대로(마 24: 30; 계 22:20; 살전 4:16; 살후 1:7-8; 벧후 3:10) 다시 세상으로 보내실 것이며 그때 온 세상은 새로워질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목표이며 인류 역사의 목표이고, 또한 교회의 소망이기도 하다.

[22-26절]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또 이 시대가 모세가 ‘나 같은 선지자’가 올 것을 예언한 예언이 성취된 시대요, 사무엘 이후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 곧 메시아로 말미암은 이스라엘 회복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한 시대임을 증거하였다. 또 이 시대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그 말씀의 성취이기도 하다고 했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대속 사역과 그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영적 회복과, 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육체적, 물질적, 환경적 회복을 포함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나면서 앉은뱅이된 걸인을 동냥할 은과 금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다.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그들 속에 계셨다. 그는 부활 승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그 주께서는 오늘날도 예수님 믿는 우리 모두들 속에 살아계신다. 그는 시시때때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시고 힘을 주신다.

그러므로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그 일에 대한 증인들이다(154절).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시다(창 12:3; 22:18).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일으키셨다. 그를 믿는 믿음이 그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그로 완전히 낫게 했다. 예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한 번 더 자신을 증거하셨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과 구주이심을 확신하자.

둘째로,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자. 회개는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미워하고 그 죄를 버리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회개하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음을 감사하며, 또 항상 죄를 멀리하고 말씀 묵상과 기도 가운데 믿음으로 살고 오직 의와 선을 행하자. 죄 없이 함 곧 사죄와 칭의(稱義)가 곧 구원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과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만유의 회복을 소망하자. 현재의 하늘과 땅은 영원하지 않고 지나간다.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세계, 빠르게 지나가는 이 허무한 세계에 소망을 두지 말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우주는 새로워지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앞에 이루어질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원토록 살며 기쁨과 평안과 복을 누릴 천국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회개치 않은 악인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우리는 그 날을 사모하며 천국에, 오직 그 나라에 우리의 모든 소망을 두자.

 

 

4장: 공회 앞에서 증거함

1-22절, 공회 앞에서 증거함

[1-4절]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성전 경비대장]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道)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제사장들은 구약교회 지도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싫어하였다. 중생치 못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할 것이다. 심지어 교회의 직분자라 할지라도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만 깨달을 수 있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가 전한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셨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며(롬 10:17) 듣고 믿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엡 2:8). 남자들의 수가 약 5천명이 되었다. 이 말은 솔로몬 행각에서의 전도로 많은 사람들이 믿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수가 약 5천명으로 늘어났다는 뜻일 것이다(칼빈, 매튜 풀).

[5-7절]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관원’이라는 원어(알콘타스 a[rconta")는 ‘다스리는 자들’이라는 말로 아마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등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산헤드린이라고 불리는 유대인 공회의 회원으로서 사두개파에 속하였다. 당시에 시무하는 대제사장은 유대인 공회의 의장이 되었다.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이었으나 바리새파에 속하였다. 서기관들은 율법학자들로 성경의 사본을 보존하고 필사(筆寫)하고 연구하고 해석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는지 즉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지 자신들의 이름으로 하는지 물었다.

[8-10절]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담대하게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때에 비상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며 그의 종들에게 담대함과 능력을 주신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에게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앉은뱅이가 건강하게 되어 그들의 앞에 섰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죄가 없으셨음을 증거하였고 더 나아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다(롬 1:4). 또 베드로는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자주 표현했다(2:22; 3:6; 10:38). 그것은 사람으로 오신 역사적 예수를 가리킨다. 바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독특한 인격 곧 하나님과 사람이시다. 그는 살아계셔서 지금도 신성(神性)의 영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이시다. 그의 이름이 능력이 있고 그 이름이 이 앉은뱅이를 낫게 한 것이다.

[11절]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베드로는 시편 118:22의 말씀으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였다. 그 말씀은 메시아 예언이었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너희 건축자들’은 유대 지도자들을 가리켰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고 마침내 로마 총독 빌라도를 통해 그를 죽게 하였으나, 그 버린 돌은 집 모퉁이의 머릿돌, 집의 좌우의 벽을 연결하는 기초석이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교회의 기초석이시다. 사람들은 그를 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셨고 중요하게 사용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뜻을 이루는 일이었다.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 베드로는 세상에서 구주는 예수 그리스도뿐이심을 분명히 증거하였다. 주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였다(딤전 2: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주를 세상에 보내주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에 유일한 구주이시다. 우리는 이 유일한 구주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계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타종교와의 대화분과장이었던 웨슬리 아리아라자는 타종교인은 회개의 대상이 아니고 동료 순례자라고 말하였다.6) 감신대학 학장이었던 변선환 교수도 타종교들도 “그들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7) 우리는 이런 이단 사상을 경계해야 한다.

[13-14절]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파르레시아 parrh- siva)[담대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사도들의 담대한 발언은 분명히 성령께서 주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약속하셨었다(마 10:19-20). 모세가 하나님께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하며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고 말씀하셨었다(출 4:11-12).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구변(口辯)을 주실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셨던 것 같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말했었다(요 7:15).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고 은혜스럽게 가르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이 사람들 앞에서 진리를 담대히 은혜스럽게 증거케 역사하신다.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비난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이 전에 예수와 함께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고 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친 앉은뱅이가 그들과 함께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리는 항상 당당하다. 진리에 대한 정당한 비난은 없다. 진리의 사람들에 대한 비난들은 항상 있어왔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대해서도 그러했으나, 모든 거짓된 비난들은 다 파하여지고 진리는 견고히 세워질 것이다.

[15-16절]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그노스토스)[확실한, 다툴 여지가 없는]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그 앉은뱅이가 나은 것은 공회원들도 부인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려 했다. 그것은 그들이 어두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진리는 은밀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게 이루어진 사실들에 기초하고 있다(행 2:22). 그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항상 진리를 부정하고 왜곡시키려 하였다.

[17-18절]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공회원들은 예수님에 대해 믿을 만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반대하고 대적하며 그것이 전파되는 것을 싫어하고 방해하고 위협하였던 것이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살후 3:2).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다(롬 3:11).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19-20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였다. 그들은 유대 지도자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는 말씀을 순종하였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과 그의 명령들을 말하고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말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취해야 할 유일한 길이다.

[21-22절]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40여세나 되었더라.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원수들의 입을 막으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환경조건과 별개로 역사하신다. 유대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설교를 싫어하고 그들을 잡아 가두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믿게 하셨다.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수는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 충성하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하자.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였다. 또 그는 살아계신 주 예수께서 그 앉은뱅이를 낫게 하셨다고 증거하였다. 구주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가 없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유일한 구주이시다. 인류의 구속(救贖)을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자는 예수밖에 없으시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 유일한 구원의 종교이다. 오늘날 교회들 속에 들어와 있는 종교 다원주의는 이단이며 그것을 포용하는 것은 배교이다.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사람들의 위협 속에서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하고 또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사도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고 증거하는가? 우리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고 증거할 수 있는가?

 

23-37절, 고난에 대한 사도들의 대처

[23-24절]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주께서는]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하나님이시니이다](전통본문).8)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잡혀 공회 앞에서 심문을 당했고 위협을 받고 놓여났다. 그들은 동료 사도들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도들은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하였다. 그들은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이 믿음의 기본이다. 그것은 창세기 1:1을 아는 것이요 믿는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것이 무신론이며 인본주의(휴머니즘)이다. 세상의 창조자께서는 또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자 곧 ‘대주재’이시다.

그들은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께 기도하되 일심으로 기도하였다. 신자들의 마음을 합한 기도는 힘이 있다. 주께서는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8:19). 또 제자들은 소리를 높여 기도했다. 묵상기도도 참 기도이지만, 그것은 사람이 약하여 명상이나 망상과 허상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기도는 소리내어 하는 인격적 기도가 좋고 특히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는 속한 응답을 가져올 것이다. 주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아버지께 기도하셨다(히 5:7).

[25-28절]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사도들은 헤롯과 빌라도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메시아를 대적한 것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쓴 시편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사도들은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성경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증거했다. 또 그들은 주권자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불신앙과 대항도 그의 기쁘신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셨음을 증거하였다.

[29-31절]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주의](전통본문)9)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사도들은 하나님께 담대함을 구하였다. 그들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위협을 당하였다. 위협은 사람에게 두려움과 위축과 의기소침과 낙심, 포기, 좌절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은 변절의 시험거리가 될 수도 있다. 위협에 대해 의연히 대처함, 담대함, 용기, 인내, 충성이 필요하다. 그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시기를 간구하였다. 주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요 16:33). 또 그는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계 2:10).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했고(고전 15:58), 또 그는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교훈했다(딤후 4:5). 우리도 담대함을 간구하자.

또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시기를 간구했다. 사도 시대에는 병 고침과 기적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었다. 사도행전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이며 신약교회가 아직 튼튼하게 건립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 복음 진리를 확증하셨으나, 하나님의 기사들과 능력들은 교회 역사상 계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그런 것들 없이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기독교는 기적을 전하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고(고전 1:22-23) 교회의 확장은 기적들을 통해서가 아니고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모인 곳은 진동했고 모든 사도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얻었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성령께서는 능력의 영이시며 능력을 주시는 영이시다. 사람은 대적자들의 위협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기 쉽지만, 성령의 충만함으로 담력을 얻는다. 오늘날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얻음으로 담대히 전도할 수 있다. 전도의 담력은 성령의 충만함에서 나온다.

[32-37절]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공동으로 사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고난을 당했으나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과 담대함을 얻었고, 또 구제와 선행으로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함께 사용하였고, 또 밭과 집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팔아 헌금하였고 그 헌금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으로써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없었다. 사도행전 2:44-45도,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들의 그런 삶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서로 사랑함에서 나왔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실천한 것이고 한 믿음과 한 소망을 가졌고 한 순종심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물론 기독교는 사유재산(私有財産)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사회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신 15:11). 왕정 시대에도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었다. 또 부지런한 자는 부해지고 게으른 자는 가난해진다(잠 10:4). 그러나 비록 성경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만, 우리의 모든 재산은 실상 다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바로 알고 물질에 종이 되지 말고 물질을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구약시대에 다윗은 시편 24:1에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증거하였다. 또 그는 성전 건축을 위해 자신의 많은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했다(대상 29:11, 14-16).

우리가 우리의 모든 재산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백성의 필요를 따라 즐거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초대 교인들의 자기의 것을 함께 사용할 수 있었던 정신이었다. 물질적 여유가 있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신의 물질을 내놓을 수 있었다. 내 것이라고 자랑하며 내놓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을 그의 뜻과 그의 영광을 위해 내놓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게으름은 악한 것이다. 사람마다 건강 상태가 다르고 타고난 재능도 다르겠으나, 누구든지 손으로 하는 일을 싫어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했다(살후 3:10).

구제와 선행은 진실한 믿음과 순종의 표이다. 고린도후서 8: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고린도후서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루살렘 교인들은 그런 표를 가졌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성도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대처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며 바라보며 기도해야 한다. 그가 곧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자이시다. 그는 개인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그는 인류 역사를 주장하신다. 무신론자나 인본주의자는 기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기도한다. 또 우리는 기도하되 일심으로 또 때때로 소리 높여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잘 응답하신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자.

둘째로, 우리는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담대함을 구하자.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직면한다. 그러나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담대함과 용기, 인내와 충성이다. 우리에게 그런 담대함과 용기, 인내와 충성이 없다면, 우리는 두려워하고 위축되고 의기소침하게 되고 낙망하고 자포자기하고 좌절할 것이다. 또 믿음의 변절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힘과 능력과 담대함을 주신다. 또 우리 속에 오신 성령께서는 이런 담대함을 주기 위해 오셨다. 그는 우리의 위로와 힘과 담력의 원천이시다. 우리의 심령이 평안과 힘을 잃어버리려 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붙드시고 힘과 평안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담대함을 구하자.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고난과 핍박 중에서도 구제와 선행을 실천했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함께 사용하였고 재산이 있는 자들은 그것을 팔아 가난한 교우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는 궁핍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 구제와 선행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표이다. 그것이 헌금의 목표이다.

 

5장: 사도들이 많은 기적들을 행함

1-16절, 사도들에게 권세를 주심

[1-6절]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사도 시대에 예루살렘 교회에 재산이 있는 성도들은 자기들의 밭과 집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사도행전 4:34-35,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4:37, “그[바나바]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5:2,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성도들은 사도들을 신뢰했고 사도들은 그들이 위탁한 재물을 구제를 위해 사용하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그들의 소유인 땅을 팔아 그것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중 일부를 감추고 일부만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차적 문제는 거짓말과 탐심이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하였다. 그들의 속에는 사탄이 가득하였다. 그들은 단지 사도 베드로를 속이려 한 것이 아니고 성령을 속이려 한 것이며, 단지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한 것이었다. 거짓은 곧 마귀의 속성이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다(요 8:44). 성도들의 회(會) 속에 이런 거짓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교회가 거짓을 용납한다면, 교회는 급속히 부패하고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을 한 것은 그들 속에 물질적 탐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헌금을 하긴 해야 겠는데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을 사도들 앞에 다 드리기가 아까웠다. 그들에게는 물질적 욕심이 있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5). 그것은 물질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마음이다. 물질에 대한 탐심 때문에 그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에게 거짓말을 한 아나니아를 죽게 하셨다. 그 일을 듣는 사람들은 다 크게 두려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었을 때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 중에 나답과 아비후는 자기들의 향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다가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켰고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레 10:1-2). 다윗 시대에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려고 할 때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가 그 궤 곁에서 죽었다(삼하 6:6-7).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두려우시다.

[7-11절]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도 사도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하다가 역시 죽었다. 그들은 함께 꾀하여 하나님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의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특별한 권위를 주셨다는 데 있다고 본다. 사도들을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며 복종하였을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속에는 사도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거짓말이나 욕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도직의 권위의 문제이었다. 그것이 중요한 까닭은 사도들이 선포하고 가르치고 기록한 말씀 곧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도들을 신뢰해야 했고 그들의 영적 권위 앞에 겸손히 복종해야 했다.

[12-16절]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주랑]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도들의 손으로 많은 기적들이 행해졌다. 예루살렘 부근의 많은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다 고침을 얻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단지 병자들이 불쌍해서만이 아니었다. 만일 그 이유라면, 왜 사도 시대 이후에 그런 기적들이 계속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도들을 통해 행해진 기적들은 그들의 권위를 확증하고 그들이 전한 복음과 교훈들이 진리임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히브리서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기적들을 행함은 사도들의 신분증과 같았다. 여기에 사도들의 글인 신약성경의 권위의 근거가 있다.

그러나 주께서는 또한 말세에 거짓 기적들을 조심하라고 교훈하셨다(마 24:11, 24). 사도 바울도 같은 교훈을 하였다(살후 2:9-1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성화를 포함한 신앙생활 전반을 위해 충족한 성경을 주셨다(사 8:20; 눅 16:29, 31).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함으로 믿고 구원을 받고 성화를 이루고, 기적주의, 은사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본몬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거짓을 버리자.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요 지옥 갈 죄악이며 교회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큰 악이다. 거짓을 용납하는 교회는 참 교회의 표를 잃어버릴 것이다.

둘째로, 물질적 욕심을 버리자. 탐욕과 돈 사랑은 우상숭배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천국 갈 수 없는 죄이며 버려야 할 큰 죄악이다.

셋째로, 교인들은 교회의 성경적 바른 교훈과 치리를 존중하고 복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권위가 확립되고 그들이 전파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치셨다고 본다. 그것은 두려운 사건이었으나 그만큼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하였다. 사도직은 존중되어야 하고 교회는 그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 복종해야 했다. 목양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말씀의 권위이다. 그가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은 권위 있게 전달되고 받아져야 했다. 오늘날 목사들과 장로들은 감독자의 직분을 받았다(행 20:28). 그러므로 그들과 그들의 교훈의 권위는 교인들에 의해 존중되고 복종되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2-13,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우리는 성경적, 바른 교훈과 치리를 존중하고 복종하자.

 

17-42절, 공회 앞에서 또 증거함

[17-21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 즉 사두개파 사람들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르는 것을 시기하여 그들을 옥에 가둔 것이다. 그러나 주의 사자는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늘 함께하셨고 비상한 때 비상한 방식으로 일하셨다. 사도 시대에는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물론 사도 시대 이후에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주의 사자는 사도들에게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말했다. 사도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을 가르쳤다. 복음은 생명의 말씀이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의 말씀이다. 그것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의 길을 증거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으며 죽어도 장차 영광스런 부활을 한다. 새벽에 공회가 소집된 것 같다. 그러나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통해 일어난 기적들을 검토하는 대신에 그들을 제재할 궁리만 하였다.

[22-26절]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 함이러라.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지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위하시고 그들을 도우신다는 것을 알리시며 느끼게 하셨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달리, 일반 백성들은 사도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고 그 말에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오늘날도 교회의 직분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일반 신자보다 못하게 되고 오히려 진리를 대적하고 비방하는 자가 될 수 있다.

[27-28절]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敎)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유대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이 예루살렘에 가득히 퍼지고 있음을 우려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를 죽인 죗값이 자기들에게 돌려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핍박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힘있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29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것은 옳은 말이다. 우리는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그의 명령은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람의 생각이나 견해나 주장에 매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뜻, 즉 바른 교리와 교훈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성경 연구의 중요성이 있다. 누구든지 어떤 사상을 주장하고자 하면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하고, 또 누구든지 어떤 사상을 반박하고자 하면 성경에 근거해서 반박해야 한다. 건전하게 해석된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은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30-31절]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사도들은 공회 앞에서의 발언의 기회를 이용하여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들이 증거한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 부활하심, 승천하심, 우리의 임금과 구주가 되심, 사람들이 죄를 회개함, 죄사함 등이었다. 이것들은 기독교 복음의 요지들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럼으로써 그는 우리의 왕과 구주이심이 확증되셨다. 또 사람은 회개하고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는다. 이것이 교회가 전파해야 할 복음의 요지이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는다.

[32절]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친히 보고 들은 자들이었다(행 1:21-22). 하나님의 복음은 증인들에 의해 확증되었다. 이것은 사도 시대 이후의 사람들이 복음을 믿는 데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확실한 근거는 진실한 증인들의 증언이다. 기독교 복음은 진실한 증인들의 진실한 증언들에 근거한 확실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또 성령께서는 기적들을 통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확증하셨다. 성령께서는 주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도들 속에 오셨고 그들을 통해 기적들을 행하셨다. 히브리서 2:3-4,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오늘날 성령께서는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하신다.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성경말씀 안에서 그리고 성경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33절]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유대의 공회원들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들을 죽이려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던 저들은 그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또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악한 일을 계속 행할 수 있겠는가? 사도들이 무슨 죽을 잘못을 범하였는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과 회개와 죄사함의 복음을 전한 것이 왜 죽을죄가 되는가?

[34-39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교법사는 율법학자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도 가말리엘 선생 밑에서 교육을 받았었다(행 22:3). 가말리엘은 공회 중에 일어나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라고 명한 후에 이전의 인물 드다와 갈릴리 유다의 예를 들어 동료들에게 예수의 제자들을 조심하여 다루라고 하면서 그들을 버려두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 이유는, 만일 예수의 제자들의 가르침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라면 조만간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존경받던 가말리엘 선생의 정당한 충고를 통해 사도들을 그 살벌한 공회 가운데서 건져내어 주셨다. 그는 그의 뜻 가운데서 무엇이나 자유로이 행하신다. 하나님의 뜻과 허락하심이 아니면, 사람은 아무 때나 쉽게 죽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참새 한 마리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마 10:29-31).

[40절]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공회원들이 가말리엘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사도들은 이로써 죽음의 위험을 면했다. 그러나 가말리엘 자신은 복음에 대해 무지했던 것 같다.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였다. 이처럼 초대의 성도들은 전도하다가 핍박을 당했고 매를 맞았다. 오늘날에는 자유로이 전도할 수 있는 지역도 있고 전도가 금지된 지역도 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전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41-42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예수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11-12). 제자들은 핍박받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였고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복음은 생명의 말씀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주며 죽어도 다시 살고 천국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길을 보이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6:53-5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러분은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영생을 얻었는가?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왕과 구주이시다. 구주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자이시다. 오늘날 무지와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하고 믿고 의지함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한다. 또 왕 혹은 주님은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임을 보인다. 로마서 1:5-6,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우리는 주 예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을 각오하며 전도해야 한다. 주 예수께서 가신 길은 고난의 길이며 십자가에 죽으신 길이다. 참된 신앙생활은 고난을 각오한 생활이다. 주께서는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는 자는 복되다고 말씀하셨다(마 5:11). 바울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핍박도 있으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였다(딤후 3:12; 행 14:22). 또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했다(빌 1:29).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거나 핍박을 받는 자들은 복되다. 그들에게는 큰 상이 있다(마 5:11-12).

 

6장: 일곱 사람을 택함

[1절]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사도행전에는 믿는 자들을 ‘제자’라고 자주 불렀다(행 2:41; 6:1, 7; 11:26, 29; 13:52; 14:22; 19:9; 20:30 등). ‘제자’는 선생의 말과 행위를 배우고 본받는 자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의 말씀과 행위를 배우고 본받는 제자들이다.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더 많아졌다. 구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핍박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더욱 컸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수는 날로 더 많아졌다. 오순절에 3천명이 구원을 얻었고(행 2:41) 앉은뱅이를 고친 후 제자들의 수는 5천명이나 되었으며(행 4:4) 그 후에도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 늘어갔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한 것이었다. 헬라파 유대인은 세계 각곳의 출신으로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을 가리키고, 히브리파 유대인은 유대 땅 출신 유대인을 가리킨다. ‘매일 구제’라는 말은 매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아마 고의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일로 인하여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 불평하는 말이 생긴 것은 좋지 않았다. 사람의 인격의 부족함 때문에, 교회 안에는 때때로 문제가 생긴다.

[2-4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 하니.

그때 열두 사도들은 제자들을 불러모으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구제의 일에 시간을 너무 쓰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했다. ‘공궤를 일삼는 것’이라는 원어는 ‘식사 봉사의 일’을 뜻하며 금전출납의 일을 내포할 수 있다(BDAG). 또 그들은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고 말했다. 사도들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었으므로 식사 봉사나 금전출납의 일로 인해 말씀 전파의 일이 소홀히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운 직분이 집사직이다. 본문에 집사라는 말은 없으나 그 직무가 그러하다. 식사 봉사나 구제나 금전출납의 일을 목사와 장로들이 해서는 안 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말씀과 기도의 일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집사들을 세워 그 일을 맡기게 된 것이다.

집사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표현되었다. 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사람’이라는 원어(아네르)는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