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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강해

김효성 목사

2017년 2월 21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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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대로(1:8), 성경 원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은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 이것이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웨스트코트와 호트가 주장한 불확실한 가설에 의해 많은 교회들이 신약성경의 전통적 다수 본문을 버리고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의 사본들(א와 B)을 중시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헬라어 비잔틴 다수 사본들의 본문은 순수하게 보존된 성경 원본의 본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설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중세 시대 말, 종교개혁 직전과 같이, 오늘날 벌써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는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하며,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 차례

1장: 자발적인 선행

 

서론

레몬서의 저자도 바울이다(1, 9, 19절). 오리겐은 본서를 바울 서신으로 인용했다.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주후 60년경일 것이다. 본 서신은 골로새서와 연관성이 많으며 골로새서와 거의 같은 때에 로마 감옥에서 쓰여졌던 것 같다.

빌레몬서의 한 장으로 된 짧은 서신이며 그 특징적 주제와 주요 내용은 자발적 선행이다(14절). 14절,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自意)로[자발적으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1장: 자발적인 선행

1-7절, 성도의 참된 교제

[1-2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된[그리스도 예수의 죄수인]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및 [사랑을 받는]1)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사도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라고 부른다. 그가 자신을 그렇게 부른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고 감옥에 갇혔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의 증거요 구원받은 성도의 면류관이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의 수신자인 빌레몬을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라고 부른다. ‘동역자’라는 말은 ‘함께 일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영혼들을 구원하고 참된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함께 일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것은 전도하고 목회하는 일과 설교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포함한다. 빌레몬은 한 교회의 담임목사 즉 목회자이었던 것 같다. 목사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 고린도전서 3:6-9,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사랑을 받는 자매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인 것 같다. 아킵보는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라고 표현된다. 그는 빌레몬의 아들이며 그 교회의 목회의 일에 참여한 일꾼이었던 것 같다. 바울은 골로새서 4:17에서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고 말했었다. 모든 성도는 넓은 의미에서 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우리는 사탄과 싸우는 군사들이며, 특히 영혼들을 사탄의 쇠사슬에서 건져내는 구원 운동은 영적 전투이다.

‘네 집에 있는 교회’라는 말씀은 초대교회가 때때로 성도의 집에서 모였음을 보인다. 로마서 16:5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원문에), 골로새서 4:15에는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 그리고 본문에는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 등 초대교회는 집에서 잘 모였다. 구약교회와 달리, 신약교회는 건물을 중시하지 않고 성도들의 모임과 교제와 영적 성장을 중시한다. 신약교회의 건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교회 활동을 위해 편리한 정도면 충분하다. 신약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설교와 성경 강해와 기도를 통한 성도들의 영적 교제와 성장이며, 나아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3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안’은 성도들에게 큰 복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결과이다. 성도는 구원받은 후에도 성화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 또 평안은 마음의 평안과 몸의 건강, 또 경제적 안정과 환경적 평안까지 포함한다. 인생의 참된 복인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만 온다.

[4-5절]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사도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다. 지금 감옥 중에서도 그는 감사를 쉬지 않는다. 우리도 환경에 좌우되지 말고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5:18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교훈하였다.

사도 바울은 기도할 때 빌레몬을 언급했다. 이것은 기도의 교통이다. 우리도 우리 자신이나 우리 가족 정도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주의 종들과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 중에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의 좋은 점을 감사하고 그에게 필요한 점을 간구하면서 기도로 교통해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이다.

사도 바울이 기도 중에 빌레몬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그의 사랑과 믿음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즉 주 예수께 대한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모든 성도에 대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며 충성해야 한다. 또 그의 명령을 따라, 성도들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을 나의 형제와 자매로 생각하고 사랑해야 한다.

[6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다시 번역하면, “네 믿음의 교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혹은 위하여)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을 알게 되므로 효력 있게 되기를 원하노라.” ‘네 믿음의 교제’라는 말은 성도의 참된 교제가 무엇임을 보인다. 성도의 교제는 단지 세상적 놀이나 오락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운동이나 등산이나 소풍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즉 성도의 교제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교제가 아니다. 성도의 교제는 ‘믿음의 교제,’ 즉 믿음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며 서로 권면하고 위로하는 교제이다.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1:3에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의 교제이어야 한다.

이런 믿음의 교제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취하신 속죄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을 알게 되며, 그것은 우리의 신앙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 구원, 새 생명, 경건과 사랑의 새 성향, 의, 영생, 천국 소망 등을 가리킬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욱 자라고 굳세어진다.

[7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우리가]2)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감사]3)과 위로를 얻었노라.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다. 그것은 그의 참된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다. 성도들의 마음은 참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는 다른 성도들을 인하여 평안함과 힘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의 유익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평안함과 힘을 얻었다는 사실 때문에, 또 빌레몬의 사랑 때문에 많은 감사와 위로를 얻었다. 옥중의 고난 가운데서, 바울의 감사와 위로는 바로 그것이었다. 오늘날도 진실한 성도들의 소식, 곧 참된 믿음의 열매의 소식과 말씀 순종의 소식을 듣는 것이 주의 종들에게 큰 감사와 위로이다.

성도의 교제는 단순히 세상적 놀이나 오락에 있지 않고 먹는 데 있지도 않고, 영적인 데 있다. 성도의 교제는 기도의 교통에 있다. 기도 중 서로를 기억하며 서로의 이름을 언급하며 감사하고 간구하는 데 있다. 또 성도의 교제는 서로 간의 진실한 믿음, 고난으로 증명된 믿음의 생활을 보고 듣는 데 있고 성도들의 사랑의 소식을 듣는 데 있다. 우리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교제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그때 우리의 마음 속에도 평안과 힘과 감사와 위로가 넘칠 것이다.

8-25절, 자발적 선행

[8-10절]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나의]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고(16절)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왔던 것 같으나 바울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고 보인다. 이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해 간구한다. 비록 사도로서 무슨 선한 것을 명령할 수 있겠으나, 그는 명령하지 않고 사랑을 인해 간구하였다. 많은 세월을 주를 위해 수고했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옥에 갇혀 있는 나이 많은 그가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빌레몬은 그의 요청과 간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11-14절]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를 받으라](전통본문).4) 저는 내 심복이라. 저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자발적으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오네시모’라는 원어(오네시모스)는 ‘유익한’이라는 뜻이다. 전에는 그가 빌레몬에게 무익한 종이었으나, 지금 그는 바울과 빌레몬에게 유익한 자가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만들어 낸 변화이었다. 복음은 무익한 자를 유익한 자로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죄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무익한 자이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유익한 존재가 된다. 과거에는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이었으나 지금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고 있었다. 노예제도에서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었다. 출애굽기 21:21은 ‘종은 주인의 금전이라’고 말했다.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는 이제 주인에게 돌려보내지고 있었다. 전통사본에는 ‘돌려보내노니’라는 말 다음에, “저를 받으라”는 말이 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받으라고 부탁한다. 과거에 그가 한 일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를 받아들일 수 있겠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노사도의 부탁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를 받아들일 즐거운 마음을 갖겠는가?

바울은 곧 이어 ‘그는 내 심복이라’고 표현한다. ‘심복’이라는 원어(스플랑크나)는 ‘창자, 마음, 심정’ 등의 뜻이다. 오네시모는 큰 은혜를 받았으며 그의 영적 스승이었던 바울을 위한 충성된 수종자가 되었고 바울도 그를 진심으로 아꼈다. 바울은 그를 자기에게 계속 머물러 두어 그의 복음 사역을 위해 수종드는 자로 삼고자 하였으나, 모든 일을 바르게 처리하고자 하였다.

바울은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발적으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고 말한다. 본절은 본서신에 계시된 중심 교훈이라고 본다. 그것은 자발적인 선행이라는 교훈이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냈다.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필요한, 바울이 아끼는, 충성된 조수이었으나, 바울은 그의 소유권이 빌레몬에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일도 주인의 승낙 없이 하는 것은 선하지 않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인의 승낙 아래 오네시모를 자기 곁에 두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울은 빌레몬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되게 하기를 원했다. 억지로 하는 선행도 선행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발적 선행을 기뻐하신다.

[15-16절]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의 집을 도망쳐 나온 종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잠시 주인을 떠났었으나, 이제 이 일을 인해 빌레몬은 그를 영원히 두게 되었다. 오네시모는 그에게 100년의 이 세상에서 뿐만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에서의 형제가 되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서 얻게 된 결과이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 안에서 영원한 가족들이다.

오네시모는 이제 빌레몬에게 종 이상이며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이다. 바울에게 그러했다면,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빌레몬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여기에 노예제도의 변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옛 시대의 노예제도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려 하지 않으셨다. 어떤 사회제도의 개선이든지 혁명은 바람직한 방법론이 아니다. 혁명은 결코 더 나은 사회의 보장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점진적 사회의 개선을 뜻하셨다. 주인들, 윗사람들, 가진 자들의 마음가짐의 변화가 사회개선을 위하여 먼저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주 안에서 주인과 종의 관계를 이렇게 사랑하는 형제 관계가 되게 하셨다.

[17-19절]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친구]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너는 이 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오네시모를 추천한다. 그는 빌레몬에게, 만일 네가 나를 친구로 여긴다면, 오네시모를 나처럼 영접하라고 부탁한다. 바울이 주 안에서 형제로 귀히 여기는 오네시모를 그의 친구 빌레몬이 어떻게 외면하거나 박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종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듯이, 바울의 사랑하는 조수 오네시모를 영접하는 것은 곧 바울을 영접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잘못을 범하고 그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고 도망쳤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까지도 자신이 담당하겠다고 말한다. 바울은 친필로 이 편지를 쓰면서 오네시모의 빚을 자기가 갚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의 말에 대해 그가 도장을 찍거나 서명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이 자기에게 빚진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것은 영적인 빚을 뜻하였을 것이다. 그는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재물보다 못하지 않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세상의 금은보석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욱 귀하다.

[20-21절]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빌레몬은 주 안에서 바울의 형제이다. 정말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바울의 선한 뜻을 행함으로 그로 하여금 기쁨을 얻고 마음의 평안과 힘을 얻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진실한 성도들을 향한 주의 진실한 종들의 소원이다. 그들은 주 안에서 형제된 자들 때문에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얻기를 소원한다.

바울은 빌레몬이 그의 말을 순종할 것을 확신한다. 바울은 빌레몬이 그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안다고 말한다. 오늘날 동역자들 간의 관계는 어떠하며, 목사와 성도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진실한 목사들은 어디에 있고, 순종하는 성도들은 어디에 있는가? 또 목사의 가르침보다 더 행할 성도들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교회 안에도 좋은 일꾼들이 많이 있고, 좋은 신자들이 많이 있기를 바란다.

[22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바울은 자기를 위해 거처를 준비해 줄 것을 그에게 부탁하고, 그들의 기도로 그가 그들에게 나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거처를 준비하는 것은 인간 편에서 할 일이지만, 바울이 옥에서 나가 골로새로 가고 못 가는 것은 하나님께 달린 일이다. 사람이 계획하지만, 일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잠 16:1, 9). 그러므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밖에 없다(잠 3:6).

[23-25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들]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할지어다. [아멘.]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라는 표현과 ‘나의 동역자들’이라는 표현은 주 안에서 귀한 말들이다. 주의 피로 구속(救贖)받은 우리는 주의 일을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기 원하며, 또 필요하다면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옥에 함께 갇히기도 원한다. 이런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은 주를 믿는 자들에게 영광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남에게 무엇을 요청할 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듯이 하지 말고 겸손히 간청하자. 이것이 빌레몬서의 주요 교훈이다. 그것은 자발적 선행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요청한 바이었고 우리에게 본이 된다. 우리는 무슨 선한 일이든지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행해야 한다. 헌금도 그러하고(고후 9:7) 봉사도 그러하다.

둘째로, 우리는 세상에서 무익한 자가 되지 말고 유익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는 무익한 자이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유익한 자가 되게 만들었다.

셋째로,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 자매로서 교제해야 한다. 주 안에서는 주인도, 종도, 고용주도 피고용자도 형제 자매이다. 우리가 주 안에서 형제 자매 됨의 관계는 영원하다. 천국에서도 우리는 형제 자매로 서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 자매로 사랑해야 한다.

 

미주

1) Byz vgms (syrp) copsa-mss 등에 있음.

2) Byz (D*) syr 등이 그러함.

3) TR UBS4 א A C D latt syr cop; 그러나 Byz는 ‘은혜’ 혹은 ‘감사.’

4) Byz C* itd vgww st (cl) (copsa bo arm) 등에 있음.

5) Byz א C vg syrp copbo armms eth 등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