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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서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6월 12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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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대로(1:8), 성경 원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은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 이것이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웨스트코트와 호트가 주장한 불확실한 가설에 의해 많은 교회들이 신약성경의 전통적 다수 본문을 버리고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의 사본들(א와 B)을 중시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헬라어 비잔틴 다수 사본들의 본문은 순수하게 보존된 성경 원본의 본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설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중세 시대 말, 종교개혁 직전과 같이, 오늘날 벌써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는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하며,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서론

요한이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이 점에 대하여 초대 교회의 전통은 분명하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5년경),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264년경 사망), 및 키프리안(258년 사망)은 본 서신을 사도 요한의 서신으로 인용하였다. 수신자인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는 어떤 교회의 여성도와 그 자녀를 가리키는 것 같다.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주후 85-90년일 것이다.

본서의 특징적 주제는 ‘진리 안에서 행함’이다. 4절, “너의 자녀 중에 . . .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또 아울러 본 서신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교리를 저버린 이단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을 밝히 교훈하였다(7-11절).


 

1장: 진리 안에서 행함

1-3절, 문안 인사

[1-2절]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사도 요한은 자신을 ‘장로’라고 표현한다. ‘장로’라는 말은 나이 든 노인을 암시하는 말로서 사도라는 말보다 더 친근감이 있는 표현일 것이다. 본 서신은 사도 요한의 노년에 쓴 것 같다.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에서 자신을 장로라고 불렀다(벧전 5:1).

본 서신의 수신자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자녀들]’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보다 문자 그대로 ‘한 여성도’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4절에 ‘너의’라는 말과 5절에 ‘부녀여’라는 말과 13절에 ‘네’라는 말과 ‘네게’라는 말은 한 교회보다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여성도와 그의 자녀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작은 교회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는 ‘진리’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1절의 ‘참으로’라는 원어(엔 알레데이아)도 ‘진리 안에서’라고 번역할 수 있다(KJV, NSAB, NIV). 요한은 자신을 ‘진리 안에’ 있는 자로 표현하며 다른 성도들을 ‘진리를 아는 자들’로 표현한다. 또 그는 이 진리가 우리 안에 거하며 영원히 그러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킨다. 주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6에서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7:17에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바울은 에베소서 1:13에서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로 표현하였다. 진리의 내용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요 그를 믿으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는다는 약속이다.

성도는 진리를 아는 자들이며 이 진리가 그들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이 진리는 그들 속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며 그의 진리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아는 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도는 이 진리 안에서, 이 진리 때문에 서로 사랑하게 된 자들이다. 사도 요한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고 표현한다. 또 그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한다”고 말하며, 그 까닭은 “우리 안에 거하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리가 우리를 사랑의 줄로 묶었다. 진리가 우리를 한 가족같이 사랑하는 교회가 되게 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이익 집단과 다르다. 교회는 하나님의 큰 가정이다. 비록 우리가 서로 다른 집에 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대가족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그의 형제요 그의 자매이다(마 12:50). 성도들의 이 사랑의 교제에 교회의 교회다운 점이 있다.

[3절]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주]1)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안이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고 기원한다. ‘진리’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믿는 자마다 죄사함의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를 가리킨다. 우리는 그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고 있다. ‘사랑 가운데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 실천을 다 가리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로 구원을 얻었고 그 은혜와 긍휼로 힘을 얻고 성화를 이루어간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안에서 세상에서 참 평안을 누린다. 그 평안은 마음의 평안뿐 아니라, 몸의 건강과 물질적 여유와 환경적 평안까지 포함한다. 또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은 우리에게 더욱 넘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진리, 우리가 믿은 진리를 가장 귀히 여기며 확신하고 사랑하고 널리 전파하자. 그 진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사역에 대한 내용이다. 그것이 성경의 요지이다. 성경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와 동일하게 진리를 전달받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다른 이들을 사랑하자.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때문이다. 우리는 그 진리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 것이다. 천국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참된 사랑으로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살 곳이다. 천국에 들어갈 자들은 이 세상에서도 서로 미워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안을 늘 풍성히 받기를 사모하며 받아 누리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구원과 성화의 근거이며, 하나님의 평안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릴 매우 귀한 복이다.

 

4-13절, 진리 안에서 행함

[4절]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본 서신은 사도 요한이, 믿는 여성도에게 보낸 개인적 서신이다. 그러나 그 교훈은 한 개인적 가정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시대,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교훈이다. 그 여성도의 자녀들 중에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의 모든 자녀들이 다 잘 믿은 것 같지는 않다. ‘너의 자녀 중에’라는 말은 그 자녀들 중에 일부가 잘 믿었음을 암시한다. 부모가 잘 믿는다고 자녀들이 잘 믿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진리에 행한다는 말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뜻이다. 진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이란 10계명과 성경의 모든 말씀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구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과 성경의 모든 교훈대로 사는 것을 뜻한다.

사도 요한은 그 여성도의 자녀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았다. 신앙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마음의 태도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도록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지 안 행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도는 그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 죄인들의 삶 속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기쁨일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큰 기쁨이다.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이 주 예수님을 믿는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큰 기쁨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들에서 성도들을 자신의 기쁨과 자랑이라고 표현하였다(빌 4:1; 살전 2:19-20). 더욱이,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보는 것은 목사와 성도들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전파된 말씀을 거역하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슬픔이 되지만(빌 3:18), 그것을 받아 그대로 사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이다.

[5절]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강조한다. 서로 사랑하자는 강조는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하고 유익하다. 본 서신에 나타난 대로, 그 여성도가 처한 형편은 이단들의 미혹이 있는 형편이었다. 이단과 오류가 교회 안팎에 많이 들어와 있을 때 성도들은 사랑이 식어지기 쉽다. 주 예수께서도 그의 재림 직전의 징조들을 언급하시면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12).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성경 진리를 굳게 지키며 이단과 오류를 배격하는 일 뿐만 아니라, 또한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 간에는 서로 사랑하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믿기 시작할 때부터 배운 기본적인 삶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남겨 주셨고, 또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사람이 우리가 그의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3:34, 35). 교회는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거룩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모임이다.

[6절]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사도 요한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을 서로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들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행하지 않고 십계명을 범하거나 성경말씀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거나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르게 사는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실상,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할 때부터 들은 바와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행하라”는 말은 ‘사랑으로 행하라’ 즉 ‘서로 사랑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 아니고 결국 한가지이다.

[7절]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미혹하는 자는 속이는 자라는 뜻으로 이단자를 가리킨다. 이단은 마귀의 활동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것이다(갈 1:8-9; 딤후 2:17-18). 벌써 사도 시대에 많은 이단자들이 교회 안팎에 나타났다. 사도 요한은 이제 그들의 정체에 대해 언급한다.

본절에 언급된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것은 요한일서 4:2-3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다(요 1:14). 말씀이라고 불리신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시다(요 1:1). 본래 신적 인격 즉 하나님이셨던 그가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 인격이 아니시고 한 분이시다. 신성과 인성, 신적 본질과 인적 본질이 결합되셨으나 두 분이 아니고 한 분이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1문답은 진술하기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救贖者)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지만 사람이 되셨고 그래서 두 구별된 본질들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이시며 한 분이셨고 영원히 계속 그러하시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이다. 이 지식을 버린 목사들은 다 속이는 자들이다.

[8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너희는 삼가 우리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않고 온전한 상을 얻게 하라](전통사본).2)

‘온전한 상’은 전도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을 뜻한다. 고린도전서 3:5-8,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복음 사역자들에게는 상이 있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편지를 받는 그 여성도와 그의 자녀들이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자신의 전도 사역이 헛되지 않고 마지막 날에 주께 상을 얻는 일이 되게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9절] 지내쳐[이탈하여, 범죄하여](전통사본)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자이다. 이단은 특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하는 자이다(요일 2:22-23; 4:1-3).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교리 안에 거하는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신 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이단을 분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교리 안에 거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구주이시기 때문에 그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를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사람이 예수님께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가질 때, 우리는 그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을 둘 다 영접하고 섬기는 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10-11절]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이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교리이다. ‘이 교훈을 가지지 않은 자’는 이단을 가리킨다. 이단은 사탄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에 참 교회는 그를 용납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아야 한다. 로마서 16:17-18에 보면, 사도 바울도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너희가 배운 교리](원문)을 거스려[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말했고, 디도서 3:10에서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 적용해보자.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이단은 교황을 우두머리로 한 천주교회의 사상과 조직체이다. 또한 오늘 시대에 가장 심각한 이단은 기독교계 전체를 부패시킨 자유주의 신학, 곧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부정하는 현대신학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그들의 목사양성원들인 신학교들에 용납하는 개신교회의 역사적 대교단들은 포용주의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 또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배격하지 않는 교회연합운동(WCC 등)과 각종 연합활동들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들과 성도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그들의 교회의 교제와 신학교들에서 배격해야 하고 그들을 용납하는 포용주의적 교회들을 책망해야 하며 그런 자들과의 교제와 연합 예배나 연합 활동들을 금해야 한다.

[12-13절]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우리]3)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아멘.]4)

사도 요한은 성도들을 대면하여 말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기쁨이 충만케 되기를 원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성도들 간의 참된 교제를 통해 기쁨이 충만케 되기를 원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진리 안에서 행해야 한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은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힘써 읽고 배우며 그대로 실천하기를 힘써야 한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은 특히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는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이다.

둘째로, 우리는 이단을 분별하고 배격해야 한다. 우리는 성도들 간의 교제와 서로 사랑함을 힘써 실천해야 하지만, 교리적, 윤리적 오류와 악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 안팎에 이단 사설들이 난무하는 말세에 성경적 신앙을 보수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교리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 옛신앙을 파악하고 그 안에 거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신앙을 이탈하는 것이 사탄의 미혹이다. 우리는 이단자들을 용납하지 말고 그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집에 들이거나 그들에게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주

 1) Byz א vgmss copbo-mss arm 등에 있음.

2) Byz. 그러나 א B A vg copsa bo arm (Irenaeuslat)은 한글개역과 같음.

3) Byz א 등이 그러함.

4) Byz vgmss arm (eth) 등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