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강해

김효성 목사

2019년 12월 26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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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마 5:18; 요 10:35)와 사도 바울(갈 3:6; 딤후 3:16)의 증거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진술된 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오류가 없이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성경의 헬라어 비잔틴 다수 사본들의 본문이 순수하게 보존된 성경 원본의 본문에 가장 가까운 본문으로 여전히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본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서론

유다서의 저자는 열두 사도 중 하나인 유다(눅 6:16)이든지 혹은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막 6:3)라고 본다.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라고 말하였다(1절). 유다는 17절에서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자신을 사도들과 구별시키는 것 같다. 그러면 후자가 더 타당할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이었고 사도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으므로(행 15:13; 갈 1:19; 2:9) 그의 동생 유다가 본 서신의 저자이었다면 그는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라고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후 2세기 경에 벌써 허마와 폴리갑은 본 서신을 인용하였다. 초대교회는 본 서신을 영감된 책으로 받아들였다. 본 서신의 9절과 14절에 인용된 말들이 모세의 승천이나 에녹서 같은 가경서(假經書)를 인용했으므로 영감된 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떤 공통적 원천인 구전(口傳)에서 인용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베드로후서가 기록된 지 여러 해 후일 것이다. 디이슨은 그것을 주후 75년경으로 본다. 본서의 특징적 주제는 ‘진리를 위한 싸움’이다. 3절,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공통적 구원에 관하여]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다는 이단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였다(4-19절). 본서의 교훈은 마지막 때를 당하여 배교와 타협과 혼란이 극심한 오늘날 매우 적절하고 요긴하다. 우리는 우리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위해 이단들을 대항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

 

 

진리를 위한 싸움

1-4절,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거룩해졌고](전통사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긍휼과 평강[평안]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부른다. ‘야고보의 형제’라는 말은 야고보가 당시에 유력한 인물이었음을 암시한다. 그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신앙과 순종을 나타낸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곧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그러하시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주님으로 믿으며 그에게 절대 순종하기를 원한다.

1절 하반절을 다시 번역하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거룩해졌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키심을 얻었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이다. 유다는 이 편지를 받는 자들을 세 마디로 표현한다.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거룩해졌다(헤기아스메노이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들의 죄를 씻으셨고 그들을 거룩케 하셨다. 둘째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키심을 입었다. 세상이 비록 험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키심을 입었다. 요한복음 10:28에 보면, 주 예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셋째로, 그들은 부르심을 입었다. 그것은 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와 믿게 하신 것을 말한다. 로마서 1:6-7,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유다는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평안과 사랑이 더욱 많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을 입어 구원을 받은 자들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시는 영육의 평안을 소유하고 누리는 자들이다. 그렇지만 세상이 너무 악하고 우리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평안과 사랑은 날마다 시간마다 우리에게 더욱 많이 요구되는 것이다.

[3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테스 코이네스 소테리아스)[공통적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피스티스)[믿음]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얻은 것이다. 또 우리가 믿는 바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이다. ‘믿음의 도’라는 원어(피스티스)는 단순히 ‘믿음’이라는 말이지만 믿는 마음가짐보다는 믿음의 내용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신약교회에 단번에 주신 것이며 시대마다 변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말하기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였다(갈 1:7-9). 기독교 복음 진리의 내용은 확정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를 이루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은 반복될 수 없게 이루어진 사실들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세상에 성경이 증거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주가 없으며,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없다.

유다는 평소에 이 구원에 대해 성도들에게 몇 마디 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道)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받은 구원에 대해 도전하고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이 불변적 복음 진리를 부정하고 있었다.

주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이단들을 대항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싸워야 할 선한 싸움이다(딤전 1:18; 딤후 4:7).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우선, 우리는 이단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이단을 포용하거나 이단과 협력하고 연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단을 분별하고 그것을 반박하고 이단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성경의 교훈이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요한이서 7, 10-11,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그러나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잃지 말고 상대에 대해 바른 말을 하고 잘못 표현하거나 잘못 정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갈 6:1; 딤후 2:24-26).

[4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정죄]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주재자 하나님과](전통사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본문은 이단에 대해 몇 가지 특징을 증거한다. 첫째, 그들은 가만히, 은밀하게 교회에 들어왔다. 이단은 드러나게 말하거나 처신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이단을 분별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경건치 않았다. 이단은 온 세상의 주재자이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이단들에게는 참된 경건이 없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었다. 이단은 대체로 음란하고 육신의 쾌락을 구하며 방종의 생활을 한다.

넷째, 그들은 옛적부터 정죄를 받기로 작정되었다. 이단은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고 마귀의 종들이다. 그들은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고 만세 전부터 정죄를 받기로 작정된 자들, 곧 버려진 자들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통적으로 받은 구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고 거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에게 주신 은혜이다. 우리는 그 은혜의 구원을 감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진리들을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 이단들은 교회 속에 은밀히 들어와 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진리를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신성(神性)과 속죄사역을 부정한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육신의 색욕거리로 바꾸는 음란한 자들이다. 그들의 뿌리는 사탄과 악령들이다. 우리는 교회 속에 들어와 있는 이단 사설들을 분별하여 그들을 대항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 우리는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이단을 포용하거나 이단과 연합하여 활동하지 말고 이단들을 배격하고 교제를 끊어야 한다.

 

5-16절, 이단들의 죄악과 심판

[5절]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다는 겸손하게 권면한다. 그는 자신의 권면의 말이 성도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고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이지만,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한다고 겸손하게 말한다(롬 15:14-15). 유다는 거짓 교사들 곧 이단자들의 죄악과 심판을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에 비교한다. 첫째로, 그는 그것을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멸망한 이스라엘 선조들에 비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큰 능력으로 애굽에서 구원해내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할 때 그들을 광야에서 다 멸망시키셨다. 이와 같이, 이단자들도 그 죄를 회개하고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멸망하고 말 것이다.

[6절]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둘째로, 유다는 이단자들을 자기 위치를 떠난 천사들에 비교한다. 그 천사들은 사탄과 악령들을 가리킬 것이다. 사탄과 악령들은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위치, 즉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지키지 않음으로 타락하였다. 디모데전서 3:6은 마귀의 죄를 교만이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악한 천사들이 지금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 일부는 그러하다(벧후 2:4). 타락한 천사들을 벌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이단자들도 지옥에 던지실 것이다.

[7절]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셋째로, 유다는 이단자들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교한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에 사는 사람들은 심히 음란하므로 마침내 유황불비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다.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라는 말은 ‘이 사람들 즉 이단자들과 같은 모양으로’라는 뜻이다.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라는 말은 정상적 남녀관계를 벗어난 관계 즉 동성애를 가리킬 것이다. 동성애는 성적인 타락의 한 형태이다. 성경은 그것을 ‘가증한 일’이라고 표현했다(레 18:22). 이단자들은 음란한 죄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과 같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8절]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이단자들은 ‘꿈꾸는 사람들’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꿈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다고 선전함을 암시한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고 마귀의 종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 즉 음란한 자들이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기 때문이다. 권위와 영광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합법적 권위를 가리켰다고 본다. 이단자들은 교회의 합법적 교훈과 치리에 복종치 않는다. 물론 우리가 사람의 종이 될 필요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합법적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친 바이다(마 16:19; 18:18; 히 13:17). 교인들이 교회의 합법적 교훈과 권위에 복종치 않는다면, 교회는 이단을 막아낼 수 없고 분파의 죄악과 혼란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9-10절]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 마귀와 변론한 일은 모세의승천이라는 책에 있었다고 하고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옛날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내용이었다고 본다. 천사장 미가엘이라도 마귀에 대하여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했는데 저 이단자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고 비난하였다. 주께서 주신 교회의 합법적 권위자들을 정당치 않게 비난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또 그들은 육신적 죄악성으로 인해 멸망한다. ‘본능으로 아는 그것’은 사람이 가진 본능적 욕망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것은 이성 없는 짐승이 가진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 단지 그런 것만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것보다 고상한 영혼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양심 즉 도덕적 분별력이 있다. 그러나 이단자들은 죄악된 감정과 욕망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11절]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다는 이단들을 세 명의 인물들에 비교한다. 첫째로, 그들은 가인의 길을 가고 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자기 동생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의 동생을 미워하여 들판에서 그를 죽였다. 이와 같이 이단자들은 마음 속에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에 대한 미움을 가득히 품고 그들을 죽이려 한다.

둘째로, 그들은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가고 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모압 왕 발락의 요청대로 그 사자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나 물질적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러 행하다가 큰 책망을 받았다. 이단자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셋째로, 그들은 고라의 패역을 따르고 있다. 고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신 그의 종 모세를 다른 동료들과 함께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큰 벌을 받았고 땅이 갈라져 산 채로 삼키웠다. 이와 같이 이단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된 종들을 대적하다가 마침내 멸망에 이를 것이다.

[12-13절]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이단자들은 몇 가지로 평가된다. 첫째로, 그들은 애찬의 암초 같다. 암초는 배를 파선시킨다. 이단들은 교회의 사랑의 식탁 교제에 기탄 없이 참여하지만 실상 교회를 파괴시키는 암초 같은 존재들이다.

둘째로, 그들은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와 같다. 목자는 양을 기르는 자요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지만(요 10:11), 이단들은 양을 기르지 않고 자기의 몸만 기르는 목자이다.

셋째로, 그들은 바람에 밀려가는 물 없는 구름과 같다. 구름은 비를 기대하게 하지만, 물 없는 구름은 그 기대를 헛되게 한다. 비는 생명의 은혜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단들에게는 생명의 은혜가 없다. 그들은 세상의 풍조에 밀려다니는 물 없는 구름과 같다.

넷째로, 그들은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와 같다. 열매는 의와 선과 영혼 구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단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므로 그들에게는 그런 열매가 없다.

다섯째로, 그들은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과 같다. 그들은 거짓과 미움과 탐욕, 음란과 강포 등의 언행으로 인격의 수치를 드러낸다. 그들은 교회의 수치거리이다.

여섯째로, 그들은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과 같다.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어두움은 지옥을 가리킨다. 이단들이 마지막으로 갈 곳은 지옥밖에 없다(마 23:33; 계 19:20).

[14-15절] 아담의 7세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거슬러]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본문도 가경 에녹서의 내용과 같지만(1:4; 60:8) 그것은 말로 전해 내려오는 내용이라고 본다. 주께서는 재림하실 때 이단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수만의 거룩한 자’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주의 재림의 목적은 악인들에게 징벌하시는 것이다. 본절은 ‘경건치 않은’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단들은 불경건한 자들이다.

[16절]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利)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이단자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향해 또 교회의 합법적 권위자들을 향해 원망하며 불만을 토하고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는 자들이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음란한 자들이며, 탐심이 있어서 물질적 이익을 위해 아첨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이 아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만치 말아야 한다. 이단자들은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는 교만한 자들이다. 그들은 합법적 권위를 비방하고 불만, 원망하고 자랑한다. 우리는 교만치 말고 겸손해야 한다. 로마서 12:3,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둘째로, 우리는 음란치 말아야 한다. 이단자들은 정욕을 따라 행하며 자기 몸을 더럽히는 자들이다. 음행은 자기의 몸을 더럽힌다. 고린도전서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성도는 음행을 피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탐심을 버려야 한다. 이단자들은 물질적 탐심을 품은 자들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치 않는 자는 세상과 돈을 사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천국을 소망하는 자들은 더러운 이익을 구하지 않아야 하고(딤전 3:3 전통본문, 8) 탐심을 버려야 한다.

17-25절, 권면과 송영

[17-19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유다는 사도의 말을 인용하여 이단에 대해 증거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것 같다. 유다가 인용한 내용은 베드로후서 3:3이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유다서는 베드로후서를 사도의 글로 인용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유다는 사도의 말을 들어 마지막 때에 나타날 이단에 대해 몇 가지로 증거하였다.

첫째로, 그들은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며 육에 속한 자들이다. 경건치 않은 자들은 육신의 정욕대로 산다. ‘육에 속한 자’라는 원어(프쉬키코이 yucikoiv)도 ‘육욕적인, 호색적인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이단자들의 한 특징이다. 이단자들은 음란하다.

둘째로, 그들은 기롱하는 자들, 즉 하나님의 진리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이며 당을 짓는 자들이다. 이단들은 역사적 기독교 교리들을 조롱한다. ‘당을 짓는 것’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행위이다.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교리들을 믿는 자들은 다 하나이다. 그 교리들을 조롱하고 배척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들이다. 이단들이 바로 교회의 일치와 화평을 깨뜨리는 자들이다.

셋째로, 그들은 성령을 모시지 않은 자들이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딤후 3:16). 성령을 모신 자들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며 그 중요한 진리에 있어서 일치한다. 주 예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6:13). 그러나 이단들은 진리의 성령을 모시지 않은 자들이다.

[20-21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다는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를 권면한다. 첫째로, 그는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라”고 권면한다. 유다는 성도의 믿음을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믿음의 성격을 나타낸다. 성도의 믿음은 세상적 욕심이나 목적을 가지고 세상의 것들을 구하는 세상적인 일이 아니다. 성도의 믿음은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그것은 죄를 버리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일이며, 지옥에 들어갈 자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얻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 만일 우리가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자이다. 성도의 인격은 믿음 위에 건립된 인격이다. 우리는 아름답고 튼튼한 건물을 짓듯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잘 건립해야 한다.

둘째로, 그는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령으로’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 즉 성령의 감동과 도우심으로’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18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하였다. 기도는 믿음의 증거이다. 믿는 자는 기도하며 믿음 없이는 기도할 수 없다. 성령께서는 보혜사 곧 우리의 위로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그는 우리의 기도 생활도 도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가 잘 안 될 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자기를 지키라는 말은 교리적 이단들과 윤리적 죄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라는 뜻이다. 유다는 이단들에 대해 많이 말했다. 그는 본 서신의 초두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단 사상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이단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 우리는 더러운 죄들로부터도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성도는 온갖 더러운 죄들, 특히 음란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힘입어’라는 뜻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죄씻음과 영생의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이 아무리 크고 강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악과 싸워야 하며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말하였다(롬 8:31-32).

넷째로, 그는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의 구원은 시작도, 진행도, 완성도 하나님의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뿐이다. 우리의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도 그의 긍휼로 이루어졌고, 성화(聖化)도 그의 긍휼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부족하며 시시때때로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일어선다. 또 우리의 구원의 완성 곧 영화(榮化)도 주의 긍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주께서는 피흘려 사신 영혼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의 긍휼을 기다리면서 영생을 향해 달려가야 하고 끝까지 그러해야 한다.

[22-23절]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어떤 자들을 구별하면서](전통사본)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두려움으로]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싫어하라](전통사본).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전통사본은 생략함).

다섯째로, 그는 “어떤 자들을 구별하면서 긍휼히 여기라”고 권면한다. ‘어떤 자들을 구별하면서’라는 말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구별해야 하고, 확고히 믿는 자들과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의 믿음을 살피면서 그를 긍휼히 여겨야 한다.

여섯째로, 그는 “어떤 자를 두려움으로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불신앙과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을 두려움으로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야 한다. 죄의 결과는 지옥 불못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 교훈대로 지옥 갈 자들을 복음으로 구원해야 한다.

일곱째로, 그는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죄인을 긍휼히 여기지만 그의 죄는 미워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해야 한다.

[24-25절]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지혜로우신](전통사본)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전통사본에는 생략됨)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우리를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시다. 지금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넘어지지 않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로 그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큰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시작과 진행과 완성을 주관하신다. 빌립보서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시작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완성자]인 예수를 바라보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그의 긍휼과 은혜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마땅한 일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건축해야 한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고 믿음이 있으면 구원과 영생이 있다. 믿음은 성경말씀을 통해 생기고 견고케 된다(롬 10:17; 눅 1:4).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들음으로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건립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힘써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확증된 그의 사랑으로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적 이단 사상들과 윤리적 죄악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며 우리의 믿음과 구원을 지켜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영생에 이르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한다. 구원의 목표는 영생이다(요 6:39-40; 롬 6:23; 딛 1:1-2). 또 우리의 구원은 시작도, 진행도, 완성도 주의 긍휼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생에 이르도록 주의 긍휼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어떤 자들을 구별하며 긍휼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믿음 없이 범죄한 자들을 살펴서 그들의 연약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여섯째로, 우리는 어떤 자들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야 한다. 우리는 범죄하여 지옥 불에 떨어질 자들을 전도하여 구원해내야 한다.

일곱째로, 우리는 어떤 자들의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해야 한다. 우리는 죄인들의 죄악된 언행들과 그들의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