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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6월 12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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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성경 원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은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교회의 전통적 견해를 버릴 타당한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헬라어 비잔틴 다수 사본들의 본문은 순수하게 보존된 성경 원본의 본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 차례

요한계시록 서론

1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2장: 일곱 교회들에 주신 교훈 (1)

3장: 일곱 교회들에 주신 교훈 (2)

4장: 하늘 보좌의 광경

5장: 어린양

6장: 일곱 인

7장: 흰옷 입은 무리

8장: 일곱 나팔 (1)

9장: 일곱 나팔 (2)

10장: 작은 책을 먹음

11장: 두 증인

12장: 사탄이 내어쫓김

13장: 두 짐승

14장: 구속받은 성도들

15장: 승리한 성도들의 노래

16장: 일곱 대접

17장: 큰 음녀

18장: 바벨론의 멸망

19장: 백마 탄 자의 심판

20장: 천년왕국과 대심판

21장: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

22장: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라

 

서론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인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등은 본서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인용하였고 서방교회에서는 대체로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인정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오랫동안 논란되었으나, 순교자 저스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등은 본서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인용하였고, 특히 수리아의 위대한 교부 에브라임 시루스는 요한계시록을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반복해서 인용하였다.

본서의 저작 연대는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 때인 주후 95-96년경이라고 보인다.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유세비우스 등은 사도 요한이 도미시안 황제(81-96년)의 통치 제15년에 밧모섬에 유배되었고(주후 95년), 도미시안 말기에(주후 96년) 그 섬에서 이 계시를 보았고, 도미시안이 죽은 후에 네르바 황제(주후 96-98년)의 통치 초기에 에베소로 돌아와 트라얀 황제(주후 98-117년) 때까지 에베소에 머물렀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의 특징적 주제는 종말 예언이다. 본서는 장차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강조하며(1:7; 22:20) 그 재림 전에 있을 환난 시대에 대해 예언한다. 이 예언의 목적은 교회들로 하여금 환난에 대비하여 믿음에 굳게 서고 인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본서에는 “내가 보았다”(ei\don)는 단어가 57회, “또 내가 보았다”(kai; ei\don)는 표현이 32회 나온다. 그 외에도, ‘어린양’(28회), ‘주’(21회) 등의 말이 빈번히 나온다.

요한계시록 6장부터 19장까지에 기록된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재앙의 해석에 대해 크게 네 가지 견해가 있다.

1. 과거적 견해--초대교회 시대 즉 로마 제국시대에 다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 종말과 주의 재림 직전의 대환난의 징조들로 본서의 내용과 같은 것들을 말씀하셨다(마 24장). 그러므로 이미 다 이루어졌다는 해석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2. 교회사적 견해--사도 시대로부터 세상 종말까지의 교회 역사 전체에 관한 것으로 본다(루터, 벵겔, 반즈, 메이천). 그러나 본서의 내용들이 교회역사상 어느 정도 나타날 수는 있어도 그것들을 교회역사상의 구체적 사건들과 일치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3. 영적 견해--역사에서 악의 세력과 참 교회 간의 투쟁의 원리를 교훈하는 것으로 본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제롬, 어거스틴). 그러나 본서의 내용이 악의 세력과 참 교회 간의 투쟁의 원리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보지만, 본서가 예언서인 한 어떤 미래의 구체적 사실들이나 사건들과 그것들의 전개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언은 비록 상징적일지라도 미래의 어떤 사실들 혹은 사건들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4. 종말론적 견해--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사건들에 관한 것으로 본다(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터툴리안, 잔). 이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마태복음 24장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내용과 비슷한 점들이 많다. 박윤선 박사는 종말론적 해석을 중시하면서 영적 해석과 교회사적 해석도 참고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네 견해들에 더하여,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비유적 해석의 두 견해가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은 대략적으로 여덟 가지 견해가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뜻은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견해들도 다양하다. 그러나 장차 있을 대환난을 대비하고 믿음과 인내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광의 천국을 소망하라는 교훈은 분명하다.

 

1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3절, 계시의 성격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이다. 요한계시록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계시란, 감추인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바울이 받은 복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었다. 갈라디아서 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요한이 받은 종말 예언은 그의 계시이다. 이것은 본서의 신적 권위를 증거한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부터 자신의 모든 뜻을 계시하여 주셨다(히 1:1-2). 하나님의 진리들은 하나님 자신께서만 계시하실 수 있다. 창조의 진리도, 구원의 진리도, 종말의 진리도 그러하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별되신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비가 여기에 있다. 성경은 삼위(三位)[세 인격]의 구별을 하나님, 주 예수, 성령으로 표현하거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한다. 신성(神性)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은 구별되시나, 그 둘은 한 하나님이시다. 인성(人性)에 있어서도 아들께서는 하나님과 구별되신다. 예수께서는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사람이신(딤전 2:5) 그는 하나님과 구별되신다. 예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한 인격이시며 하나님과 예수님은 신적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다.

이렇게 삼위의 구별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고 그들의 관계성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까닭은 성경이 그의 신성에 대해 충만히 증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요일 5:20), ‘크신 하나님’(딛 2:13)으로 불리셨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고(포도주와 떡 기적, 나병, 중풍병 치료, 죽은 자들을 살리심 등), 하나님과 나란히 영광과 찬송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신다(계 5:13).

본서는 ‘반드시 속히 될 일들’ 즉 미래의 일들, 특히 종말 사건들에 관한 것이다. 그것들 속에는 대환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마지막 심판, 죽은 자들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 등이 포함된다. ‘반드시’라는 말은 계시된 내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종말 예언의 내용은 진실하고 확실하다. 또한 ‘속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낸다. 이 계시의 내용들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다. 이 말씀을 주신 지 2천년이 지났다. 교회는 이 예언의 말씀대로 때가 가까움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 수 없으므로 항상 종말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일이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가 작정하신 모든 일들을 속히 이루실 것이다.

계시의 목적은 ‘그 종들에게 보이시기 위함’이다. ‘그 종들’은 주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가리킨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로마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유다서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요한계시록은 바로 하나님의 종된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본서의 계시는 천사를 통해서 그리고 요한을 통해서 주어졌다(계 22:8). 또 그 방법은 상징으로 나타내시는 것이었다. ‘지시하신’이라는 원어(세마이노)는 ‘상징으로 나타내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사건들에 대한 상징적 예언의 책이다.

[2절]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계시의 기술자는 요한 자신이다. 요한은 자기가 받은 계시를 책으로 기록하였다.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주께서 친히 증거하신 진리이며, 사도 요한이 본 바이었다. 본서에는 ‘본다’는 동사(에이돈)가 57회나 사용되었고, 그 중에 ‘또 내가 보니’라는 표현(카이 에이돈)이 32회나 나온다. 요한은 많은 상징적 내용들을 환상 중에 보았다. ‘다 증거하였다’는 말은 요한이 기록한 본서가 하나님의 계시를 충분하게 기록하였음을 증거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충족한 말씀이다. 그 말씀은 우리를 온전케 하고 선한 일을 위하여 온전히 준비되게 한다(딤후 3:16-17). 그러므로 이 책에 무엇을 가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계 22:18-19).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도는 하나님의 계시를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옛날에는 책이 귀하므로 한 사람이 읽고 나머지 사람들은 들었다. 그래서 읽는 자(단수명사)와 듣는 자들(복수명사)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감사하게도 모든 성도들이 누구나 원하면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지킨다는 말은 성경말씀을 보수(保守)하고 실천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보수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특히 계시록을 통한 복은 환난을 대비함과 인내와 위로의 복이고(13:10; 14:12) 성도가 환난과 죄악을 이겨 마침내 천국과 영생에 이르는 복이다(22:5, 17).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은 그것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참으로 복되다.

계시된 내용은 긴급한 일들이다. “[마지막] 때가 가깝다.” 성도에게는 항상 종말의식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지구의 종말이 가깝다. 본서와 성경 다른 곳들에 예언된 세상 종말의 징조들, 예를 들어 많은 거짓 목사들의 출현, 교회들의 배교(背敎), 전쟁, 기근, 전염병, 지진, 핍박, 세계복음화 등이 이미 나타나 있다. 자연계에도 자원 고갈, 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현상 등 이상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 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계시의 책에 주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책이므로 주관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덮어두어서는 안 될 중요한 책이다.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내용, 곧 신적 권위로 인쳐진 말씀이다. 우리는 신적 권위로 인쳐진 말씀인 이 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요한계시록은 종말 예언의 말씀이다. 본서는 인류와 세계의 미래 역사에 대한 지도책과 같다. 우리는 인류와 세계의 미래를 위하여 이 책을 주목하고 지침으로 삼고 연구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이 책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장차 올 대환난을 대비할 믿음과 인내와 위로를 얻을 것이며, 또 마귀와 세상과 죄악을 이기고 마침내 천국과 영생에 들어가는 복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믿고 지켜야 한다.

4-8절, 문안과 송영

4-8절은 사도 요한의 문안 인사와 송영이다.

[4-5a절]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였다. 종말 예언의 계시인 본서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형태로 되어 있다. 여기에 아시아는 소아시아, 지금의 터어키 지역을 가리킨다. 요한은 먼저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안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원하였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영원 자존(永遠自存)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계시하셨다(출 3:14).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그 보좌 앞에 일곱 영들’은 성령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 신들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의 완전한 지혜와 지식, 충만한 위엄과 능력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5:6은, “[어린양의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그의 충성된 증인 되심, 그의 부활, 땅의 임금들의 머리 되심을 언급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충성된 증인이셨다. ‘증인’이라는 헬라어(말투스)는 ‘순교자’라는 뜻도 가진다. 충성된 증인은 죽기까지 진리를 증거하는 자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증거하신 충성된 증인이셨다. 또 그는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땅의 왕들의 머리가 되셨다. 그는 모든 교회의 우두머리이시며 온 세계의 정치가들의 우두머리이시다. 그는 만주의 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시다(계 17:14). 우리는 만주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긴다.

사도 요한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안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원하였다. 은혜와 평안은 성도에게 참으로 요긴한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다. 사람은 은혜를 받아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더 잘 믿을 수 있고 죄 안 짓고 바르게 살며 성화를 이룰 수 있다. 평안은 은혜의 결과로 포괄적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일차적으로 마음의 평안을 가리키지만, 또한 몸의 건강과 일용할 양식과 환경적 평안까지 포함한다고 본다. 또 그것은 현세와 내세의 평안을 포함한다.

[5b-6절]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다수의 전통사본들은 ‘해방하시고’ 대신에 ‘씻으시고’라고 되어 있다.1) 뜻은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었다. 이것이 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기쁜 소식이다. 죄는 인생의 근본 문제이다. 범죄한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지옥에 던지움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씻음을 받아야 하고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음으로 죄씻음 받는 것이 구주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이다.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특권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고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되었다(벧전 2:9).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천국 백성이 되었다. 또 우리는 시시때때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간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능력을 돌려야 한다.

[7절]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본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승천 시 구름이 그를 가리웠듯이 그의 재림 시에도 그는 구름과 함께 오실 것이다. 구름은 그의 영광의 신비를 부분적으로 가리울 것이다. 그의 재림은 각인의 눈이 볼 수 있는 사건일 것이다. 또 심판주의 나타나심 앞에 어떤 사람들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후회와 공포 속에 부르짖을 것이다. “그러하리라, 아멘”이라는 마지막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확실함을 강조한다.

성도는 이 땅의 것을 소망하지 않는다. 이 땅의 것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다 불탈 것이다. 그것들은 다 불심판을 위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다. 그가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의 기대는 전적으로 거기에 있다. 그가 다시 오시면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8절]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본절은 다시 하나님의 영원자존성을 증거한다. ‘주 하나님’이라는 말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신약적 표현이다. 구약성경의 ‘여호와’는 신약성경에서 ‘주’라고 번역되어 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끝 글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시작과 끝이시다. 시작은 창조요 끝은 심판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하나님이시요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의 사건을 기록한 창세기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세상의 종말을 예언한 요한계시록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자, 곧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제한성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는 제한성이 없으시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여기에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이 질적으로 다름이 있다. 하나님께서 영원자존하시며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우주와 인생의 모든 해답이 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다.

4절부터 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사람은 우주의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는 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아시는 영원하신 자이시다. 그는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개인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섭리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하나님만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땅의 왕들의 머리가 되시며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씻으시고 장차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 그가 다시 오실 때 그를 기쁘게 영접하는 자도 있을 것이나, 두려워 떨며 통곡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것들을 소망하지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성도들의 복된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자.

셋째로, 우리는 일곱 영으로 온 세상에 충만하게 활동하시는 성령을 믿자. 그는 지혜와 지식, 위엄과 능력이 충만하시다. 그는 믿는 성도들 속에 영원히 계시며 그들을 위로하시고 거룩한 삶을 이루게 하신다.

넷째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음을 믿자. 우리는 천국 백성답게 의롭고 거룩하게 살고, 또 제사장의 특권을 가지고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얻기 위해 담대히 그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

9-20절, 계시를 받은 경위와 주께서 하신 말씀

[9-11절]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요한은 자신을 성도들의 형제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노사도의 겸손한 인품을 나타낸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겸손히 처신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성도들은 직분자들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존경해야 한다. 요한은 자신을 또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표현하였다.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받는 환난이 있다(마 16:24; 행 14:22; 딤후 3:12). 우리는 다 그 환난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또한 그의 나라와 참음에도 동참하는 자들이다. 환난이 있지만, 그의 나라도 있다. 참으면 영광도 있다(딤후 2:12). 그의 십자가의 낮아지심 뒤에는 부활과 승천의 높아지심도 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받았는지, 즉 그가 계시를 받은 경위를 증거한다. 그는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다. 그는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날도 주일이었고(요 20:19, 26),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도 주일이었다(행 2:1; 레 23:15-16). 사도시대에 벌써 하나님께서 주일을 복된 날로 구별하시는 표들이 있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주의 계시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섬에 있었다. 초대교회의 증거에 의하면, 그는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였으나 그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를 위하여 그를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어려운 일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생기며 모든 일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요한은 그가 보는 내용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주께서 요한이 본 내용을 책에 기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더 잘 보관하고 전파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에 더 굳게 서고 더 큰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함이셨다. 여기에 성경의 필요성과 목적이 있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온전함을 위해 성경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고 주야로 읽고 묵상해야 하며 그 교훈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해야 한다.

[12-16절]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요한은 일곱 금촛대와 촛대 사이에 서신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한다. 요한이 본 첫 번째 내용은 일곱 금촛대이었다. 그것은 일곱 교회를 가리켰다. 그것은 금촛대와 같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은 존귀하고 교회는 영광스럽다(엡 5:26-27).하나님의 뜻은 교회의 설립과 성장과 완성에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참된 교회의 건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요한이 본 두 번째 내용은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같은 이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예수께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신 것은 그의 왕으로서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시는 것 같다.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것은 그의 지극히 거룩하심을 나태내신다. 또 그의 눈이 불꽃같은 것은 그의 깊고 철저한 통찰력을 나타내시며, 그의 발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것은 그의 심판의 권세를 나타내신다. 그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은 것은 그의 말씀의 큰 권위를 나타내신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는 것은 그가 교회들의 목사들을 붙드시고 사용하심을 나타낸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쪼개는 그의 예리한 말씀을 나타내신다. 그의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은 것은 그의 크신 영광을 나타내신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셨고 장차 재림하실 주 예수께서는 참으로 영화로우시고 엄위하시다. 그 영광의 주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이시며 주의 재림 직전의 종말 사건들을 홀로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17-20절]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 엎드러졌다.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엎드러져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피조물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본질과 본체에 있어서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처음과 나중이시다.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의 신비는 성경이 증거하는 기본적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는 이제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그는 죄인들을 사망과 지옥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구주이시다.

‘네 본 것’은 일곱 금촛대와 그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이제 있는 일’은 사도시대 교회들의 일들을 가리키고 ‘장차 될 일’은 교회 역사상 되어질 일들과 주님 재림 직전의 일들과 인류의 최종 상태에 대한 것들이다. 일곱 교회와 일곱 별의 ‘일곱’은 땅 위에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대표할 것이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하였는데, 사자는 교회의 목사를 가리킨다. ‘일곱 별의 비밀’이라고 한 것은 목사들의 영적 상태와 충성의 정도는 사람들은 모르고 주님만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교회의 목사들은 주님의 오른손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너무 염려하거나 너무 낙심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는 일곱 교회들 사이에 다니시며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오른손에 붙들고 쓰기도 혹은 쓰지 않기도 하신다.

9절부터 20절까지의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과 위엄을 깨닫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결과 위엄, 그의 불꽃같은 눈길, 그의 권위 있는 말씀을 깨닫자.

둘째로, 우리는 교회의 존귀함을 깨달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금은 보석처럼 귀한 존재이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의 옷의 흉패와 견대에 있는 보석들과 같다.

셋째로,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는 촛대와 같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전도와 선행이 그 빛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선한 행실이 세상에 빛이 된다고 말씀하셨다(마 5:16). 베드로는 우리가 받은 구원의 목적이 그러하다고 말했다(벧전 2:9).

넷째로, 우리는 목사들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목사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별들이다. 그가 그들을 붙드시고 사용하실 것이다. 여기에 목사직의 존귀함도 있지만 목사들의 책임과 의무도 있다. 목사들은 하나님의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2장: 일곱 교회들에 주신 교훈 (1)

요한계시록 2장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들의 목사들에게 주신 교훈이다. 그것은 첫 사랑을 회복할 것, 죽도록 충성할 것, 순결성을 지킬 것 등을 강조한다.

1-7절, 에베소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1-3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편지하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케크메카스)[피곤하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3장에 7번 나오는 ‘편지하기를’이라는 원어(그랍손)는 ‘편지하라’는 명령형이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 보내진 각 편지는 그 교회의 사자, 즉 목사에게 보내졌다. 목사는 교회를 인도하는 자이다. 마치 목자가 양무리를 인도하듯이, 목사는 하나님의 양무리인 교회를 인도한다. 장로들은 이 일에 목사와 협력한다. 그러므로 목사가 바로 서면 교회는 바로 설 것이고, 목사가 잘못되면 교회가 잘못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께서는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신다. 그는 모든 것을 아신다. 그는 목사를 세우실 능력도, 폐하실 능력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므로 자기의 원하시는 바를 다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급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잠잠히 그의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할 것이다.

전지하신 주께서는 에베소 교회 목사의 선한 행위들을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주께서는 그의 믿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 때때로 다른 이는 우리의 중심을 모를지라도 주께서는 아신다. 특히 에베소 교회의 목사는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았고 자칭 사도라 하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일은 많은 원수들과 싸워야 하는 힘든 일이요 낙심하기 쉬운 일이지만, 그는 이 일을 잘 수행하고 잘 참고 피곤하지 않았다. 주께서는 그의 선하고 충성된 행실을 기억하고 계셨다. 

[4-5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주께서는 에베소 교회의 목사의 과거에 잘 한 일도 인정하시지만, 현재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책망하신다. 그의 문제점은 처음 사랑을 버린 일이었다. 그가 처음 사명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주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의 복음 진리를 전하고 지키는 일을 위해 수고하고 참고 성실하였으나, 지금은 처음에 가졌던 그 사랑과 그 열심과 그 성실함을 버렸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지금 주를 진실하게 사랑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의 일을 바르게 수행할 수 없다.

주께서는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물론 근본적 회개는 사람의 일생에 한번만 있다. 하나님 없이 죄 가운데서 방황하며 살던 사람이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가 그것이다. 그것은 단회적 성격의 회개이다. 이것이 ‘생명 얻는 회개’(행 11:18)이다. 아직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치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눅 13:3, 5), 곧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이런 회개를 한 자도 어떤 구체적 죄 가운데 빠졌을 때 그 죄로부터 돌이켜야 한다. 이런 회개는 반복적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지만, 그 은혜는 죄인 속에 반드시 회개와 믿음을 일으킴으로 그를 구원하는 은혜인 것이다.

주께서는 그에게 만일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네게 임하여 그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말씀하셨다. 촛대를 옮기는 것은 교회를 폐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평양의 교회, 그러나 그 도시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는 죄를 범했던 그 교회를 폐하신 것과 같다. 그것은 무서운 경고이다.

[6절]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에베소 교회의 목사에게 선한 점도 있었다. 그것은 그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이었다. 니골라당은 14-15절에 있는 대로 우상숭배와 음행을 허용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자유를 왜곡하고 남용하였던 것 같다. 주께서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셨다. 주의 참된 종들은 이단들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주 예수의 말씀은 곧 성령의 말씀이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본질과 본체에 있어서 하나이시다. 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하신 말씀은 다른 교회들에게, 즉 지상의 모든 교회들의 사자들과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 모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알고 믿고 그를 사랑했던 그 처음 사랑을 버리지 말고 주를 향한 사랑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신다. 이긴다는 말은 죄와 사탄과 세상을 이긴다는 말이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먹는 것은 영생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지는 자, 곧 죄에 지고 사탄과 세상에 지는 자는 영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는 영생을 얻고 이기는 자가 될 것이다. 요한일서 5:4,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그러나 그것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성령 안에서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 주 예수를 진실히 믿고 순종하는 자는 이긴다. 우리는 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1절부터 7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오래 참고 선한 일을 힘쓰고 수고하고 피곤해지지 말자. 다른 사람은 우리의 중심을 몰라주어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과 우리의 선행과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낙심치 말고 선한 일을 위해 하나님께 충성하자.

둘째로, 우리는 특히 처음 사랑이 식어지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에는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다. 현재 우리의 사랑과 열심이 식어져 있다면 주님의 책망을 들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 예수를 날마다 더욱 사랑해야 한다. 오늘 말씀과 기도로 깨어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일에 힘쓰자.

셋째로, 우리는 범죄한 일을 깨달으면 즉시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성도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어떤 특정한 죄를 지으면 그 죄를 고백하고 버리고 바른 길에 서야 한다. 우리는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온다.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거룩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죄와 사탄과 세상을 이겨야 한다.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부도덕을 버려야 하고 멀리해야 하고, 사탄과 악령의 시험과 장난을 분별하고 대적해야 하고, 세상의 악하고 음란한 풍조를 배격하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중생시켜 구주 예수를 믿게 하신 자들은 다 이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과 성령 안에서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

8-11절, 서머나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8-9절]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편지하라.] 처음이요 나중[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전통사본)2)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會)라.

주께서는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만 참 하나님이시며 오직 그 분만 온 세상을 주관하신다. 또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인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다(요 11:25). 우리가 그를 위하여 죽는다 할지라도 그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다시 살리실 수 있고 참으로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활의 주께서는 고난받는 목사들과 성도들에게 큰 힘과 위로와 소망이 되신다.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 목사의 계명 순종과 충성의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아셨다. 주께서는 우리의 계명 순종과 충성을 아신다. 또 주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환난과 궁핍을 경험할 것이다. 사도행전 14:22,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디모데후서 3:14,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비록 서머나 교회의 목사가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평가하셨다. 인생의 참된 부요는 물질적인 데 있지 않고 영적인 데 있다. 물질적인 가치는 일시적이지만, 영적인 가치는 영원하다. 주 예수께서는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고 교훈하셨다(눅 12:21). 또 가난한 자들이 믿음이 좋은 경우가 많다.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말했다(약 2:5).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만 소망하며 위로로 삼고 하나님의 뜻만 행하며 사는 자이다.

서머나 교회의 목사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을 받았다. 구약교회는 매우 타락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또 주의 제자들과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2: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구약교회인 유대인들의 모임은 실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고 사탄의 회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죽이고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자들이 어떻게 참 교회에 속하겠는가? 그들은 분명히 사탄의 회에 속한 자들이었다.

[10절]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 교회의 목사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아야 하였다. 고난은 기껏해야 우리의 육신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자. 주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고(마 10:28), 사도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노라”고 말하였다(고후 5:1).

서머나 교회에는 장차 10일 동안의 환난이 있을 것이며 마귀가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다. 그 교회의 목사가 견고히 섰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시험과 환난이 있을 것이다. 10일 동안의 환난은 서머나 교회에게 닥칠 문자적으로 10일 간의 환난이든지 혹은 상징적으로 어떤 제한된 기간을 가리킬 것이다. 성도들이 당하는 핍박과 고난은 영속적이지 않고 지나가는 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목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다. ‘충성’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참 충성은 죽기 전까지는 증명될 수 없을 것이다. 충성은 죽음을 통해 참으로 증명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구원받은 성도들]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사탄]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순교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확실한 표이다. 물론 참 하나님, 곧 신구약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 그의 뜻을 위한 순교와 충성만이 의미와 가치가 있다.

주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는 종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생명의 면류관은 면류관의 종류 중 하나라기보다 생명의 영광 혹은 영광스러운 생명이라는 뜻일 것이다. 죽기까지 참된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는 자는 영광스러운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 충성치 않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보장되지 않는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난 자에게는 영생의 영광이 약속되지 않는다.

[11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주의 참된 종들과 성도들은 주 예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음성 곧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성경책을 읽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모든 내용을 믿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기는 자는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며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둘째 사망의 해는 지옥 형벌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요한계시록 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믿음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대해 충성치 않고 순종치 않는 자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지 않는다. 그러나 구원은 반드시 믿음과 인내, 그리고 순종과 충성의 삶을 동반한다.

8절부터 1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물질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구하지 말고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구하자.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는 일시적 가치를 가질 뿐이며, 영적 부요는 영원한 가치를 가진다. 영생은 백년의 세상 생활과 비교할 수 없이 복되고 영광스럽다. 천국은 온 세상과 바꿀 수 없는 보화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과 믿음, 천국 소망, 그리고 하나님과 교회 사랑에 부요한 자가 되자.

둘째로, 우리는 환난과 순교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죽도록 충성하자. 충성은 참 믿음의 증거이다. 그것은 이기는 자가 되는 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충성하다가 죽으면 우리는 영광의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세상은 단지 우리의 육신적 목숨만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 앞에서 죽도록 충성하자.

 

12-17절, 버가모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12-13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주께서는 자신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로 묘사하셨다. 1:16에서는 그 검이 입에서 나온다고 표현되었다. 그 ‘좌우에 날선 검’은 그의 예리한 말씀, 즉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여 영혼을 회개시키는 말씀을 가리킨다. 물론 그 말씀이 악인을 죽이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칼과 같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주께서는 좌우에 날선 예리한 칼과 같은 말씀을 주신다. 버가모 교회의 목사는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야 한다. 개인의 신앙생활과 교회의 진리 운동은 영적 전쟁과 같다. 마귀와 불신앙과 비진리를 대항하여 싸울 이 전쟁에서 우리의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주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 “기록되었으되” 하며 성경말씀을 사용하셨듯이, 오늘날 우리도 마귀의 시험을 물리칠 때 기록된 성경말씀을 사용해야 한다.

버가모는 사탄의 위(位)가 있는 곳, 곧 우상숭배의 총본부와 같았다. 그 도시에는 제우스 신의 신전과 아테네 여신의 신전과 디오니소스 신의 신전 외에, 뱀 모양의 의술의 신 에스큘라피우스 신의 신전이 있었고, 로마 황제 아구스도를 숭배하는 신전도 있었다고 한다. 황제 숭배는 초대교회 시대인 로마 시대에 보편적 풍조이었다. 사탄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시켰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미혹하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의 목사는 믿음과 순종의 행함이 있는 사람이었고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이었다. 그는 주의 이름을 굳게 잡았고 주의 충성된 증인 혹은 순교자 안디바가 죽임을 당했을 때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바른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순교자 못지 않게 충성된 자일 것이다. 버가모 교회의 목사는 그런 사람이었고 주께서는 그의 믿음과 행위를 아셨고 그를 인정하셨고 칭찬하셨다.

[14-15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주께서는 버가모 교회의 목사에게 책망도 하셨다. 우리에게 칭찬거리가 있으면 그가 우리를 칭찬하실 것이지만, 우리에게 책망거리가 있으면 그는 우리에게 책망도 하실 것이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책망은 그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발람의 교훈은 발람이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미혹하는 한 방책을 일러준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 여자들과 행음하며 그 신들에게 제사한 제물을 함께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셨다(민 25:1-3). 그 범죄는 발람의 조언에 의한 것이었다(민 31:16). 이와 비슷한 교훈이 버가모 교회 안에 들어온 니골라당의 교훈이었다. 그것은 우상숭배와 음행을 용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의 목사는 그런 자들을 용납하고 있었다.

오늘날도 교회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교회가 경계해야 할 우상숭배는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와,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숭배와, 종교다원주의의 이방 종교 관용이다. 우상숭배의 용납은 하나님께 책망받을 큰 잘못이다. 오늘날 교회는 또 음행을 경계해야 한다. 현대 사회와 문화는 심히 음란하다. 오늘날 교회에는 심지어 동성애와 동성애자 결혼, 그리고 동성애 목사까지 용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인들을 바로 가르치고 바로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께 큰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목사는 바른 교훈을 전하고 가르치며 교인들을 그 교훈대로 살도록 지도하고 관리해야 한다.

[16절]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주께서는 버가모 교회의 목사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교회 안에 우상숭배와 음행을 하는 자들을 용납하는 것은 교회의 목사가 회개할 죄이었다. 만일 목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께서는 그 교회에 직접 개입하실 것이다. 교회가 권징을 회피한다면 주께서 직접 개입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교인들 중에서 죄 지은 자들에게 직접 징벌을 내리실 것이다. 주께서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신다는 말씀을 보면 주의 입의 칼은 심판의 칼인 것처럼 보인다. 주님의 직접 개입은 목사에게 큰 수치가 될 것이다. 그가 돌보는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직접 징계를 당할 것이다. 그의 목회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목회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상급은 크게 감소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직접 개입하시기 전에 그는 교인들을 바르게 관리하고, 필요할 때 적절한 권징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1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만나는 천국의 양식을 상징하는 것 같다. 시편 78:24-25,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만나를 주셔서 먹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주님과 누릴 사랑의 식탁 교제를 가리킬 것이다. 또 흰 돌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옛 시대에 흰 돌은 운동 경기에서 이길 때에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 시에나, 큰 잔치에 입장할 때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과연 장차 우리가 받을 흰 돌은 그런 의미들을 다 포함하는 것 같다. 그 흰 돌은 세상에서의 영적 싸움에 승리한 자들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무죄(無罪) 혹은 의롭다 하심의 판결을 받을 자들과, 영광스럽고 복된 천국 잔치에 참여할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 흰 돌 위에는 새 이름이 기록될 것인데, 그것은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새 이름은 천국에서 사용될 우리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천국 백성으로서 우리가 누릴 복된 신분과 영광을 나타낸다.

12절부터 17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탄의 위(位)가 있는 곳, 우상숭배가 가득하고 죽음의 위협이 있는 곳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주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참 믿음은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장차 온 세상에 임할 대환난 시대에 대비하여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의 악을 포용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시대는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이다. 우리는 이 어두운 시대에 교리적, 윤리적 죄악을 분별하고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구원받았지만, 우리는 죄를 짓지 말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악을 정죄하면서 악을 용납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가 될 것이며 주의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8-29절,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18-19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네 사업[행위]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도다.

주님의 눈이 불꽃같다고 한 것은 그의 통찰력의 날카로움을 나타내시며 그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고 한 것은 그의 심판의 엄위함을 나타내신다고 본다. 주께서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에게 이런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주께서 그 목사의 문제점을 통찰하시고 그가 포용한 악에 대해 심판하실 것을 암시한다. 오늘날도 주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시며 우리의 행위들을 판단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먼저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가 잘 한 일에 대해 칭찬하셨다. 그 목사는 주께 칭찬들을 일을 많이 했다. 그는 주를 위해 많은 일을 하였고 주를 사랑했고 믿었고 섬겼고 인내했다. 이것들은 다 좋은 점들이었다. 우리도 주를 위해 일하는 자가 되고 주를 참으로 사랑하고 믿고 섬기는 자 되기를 원하며 또 환난 중에도 오래 참는 자 되기를 원한다. 또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는 나중 행위가 처음 것들보다 많았다. 그는 참으로 진실한 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꾸준히 주를 믿고 섬겼으며 점점 더 열심히 주를 믿고 섬겼다.

[20-21절]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네 아내]4)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그 여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진실히 주를 믿고 섬기는 목사에게도 문제점이 있었다. 그의 문제점은 버가모 교회 목사의 문제점과 같이 잘못된 자를 포용하는 데 있었다. 그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그의 아내 이세벨을 용납하였다.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의 아내는 선지자로 자처하였을 뿐만 아니라, 옛날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처럼 우상숭배자이었다. 그 여자는 주의 종들을 가르쳐 꾀어 음행하게 하고 우상제물을 먹게 함으로써 우상숭배에 떨어지게 하였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는 이 죄악을 용납하고 있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도 포용주의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과 목사들이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들과 천주교회를 포용하거나 심지어 동성애 같은 악을 포용하고 있다. 주께서는 확실하게 그들에 대해서도 책망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그 여자에게 그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주께서는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믿을 기회를 주신다. 그들은 그 기회에 지체하거나 고집을 부리지 말고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구원받지 못한 자이었을 것이다. 교회 속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회개치 않는 죄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자들을 보면 낙심할 것이 아니고, 힘써 권면해야 하고 또 우리 자신을 성찰하여 그런 죄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바울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 말했다(고전 15:33-34).

[22-23절] 볼지어다, 내가 그[그 여자]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주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 사모에게 징벌을 선언하셨다. 첫 번째는 그를 침상에 던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를 병상에 눕게 하심을 가리킨다. 두 번째는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회개치 않으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여자의 자녀들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공의의 징벌이다. 이로써 모든 교회는 주께서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죄는 마음의 은밀한 곳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주께서는 인간의 그 은밀한 마음과 뜻을 살피시고 판단하시고 징벌하신다. 주 앞에는 비밀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께서는 오늘날에도 공의로운 징계의 채찍을 드실 것이다.

[24-25절]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감사하게도 두아디라 교회에는 그 여자의 교훈을 받지 않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남아 있었다. 해이해지고 넓어진 교회들 속에도 순진한 교인들이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는 두아디라에 남아 있는 교인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으셨다. 그는 그들에게 단지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을 그의 재림의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권면하셨다. 오늘날도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안에 사탄의 은밀한 활동들이 많이 있다고 판단된다.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이 만연하고 비성경적 에큐메니칼 운동 즉 교회연합운동이 활발하고 은사주의의 혼란과 교회 음악의 타락 등이 그 증거들이라고 보인다. 현 시대는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주께서 남겨두신 신실한 교회들이 있고 목사들과 성도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들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끝까지 속죄신앙과 개혁신앙을 지키고 의와 선과 진실을 행하기를 원한다.

[26-29절]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심판의 권세이다. 요한계시록 12:5에는 예수님 자신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주께서는 이 권세를 성도들에게도 어느 정도 주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9:28). 사도 바울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말했다(고전 6:2). 또 주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그 새벽별은 주님의 영광의 빛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는 요한계시록 끝부분에서 자신을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표현하셨다(계 22:16).

18절부터 29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의 선한 행위와 사랑은 처음 믿었을 때보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자라고 풍성해져야 한다. 두라디아 교회의 목사는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았다. 우리는 세월이 흐를수록 믿음과 선행이 자라가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가족들 중에 있는 악이라도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는 잘못된 교훈을 따르는 아내를 용납하였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잘못이 있을 때 그를 책망하고 고치게 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음행과 우상숭배를 경계해야 한다. 모든 악의 포용은 교회를 부패시킨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

셋째로, 우리는 처음 믿을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굳게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밝히 계시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굳게 지켜야 한다. 시대마다 교회 속에 은밀히 들어오는 온갖 교리적, 윤리적 오류들을 분별하고 배격하고 성경적 교훈만을 붙들고 믿고 행해야 한다.

 

3장: 일곱 교회들에 주신 교훈 (2)

요한계시록 3장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서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들의 목사들에게 주신 교훈이다. 그것은 신앙과 행위의 온전함, 바른 신앙의 보수, 확신 등을 강조한다.

1-6절, 사데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1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고 계신다. 성령을 일곱 영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분의 완전한 지혜와 지식과 통찰력을 나타내신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 곧 성령과 본질적으로 일체가 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지혜와 지식, 또 그의 통찰력은 완전하시고 충만하시다.

주께서는 사데 교회의 목사의 행위를 아셨고 그의 행위에 근거하여 그를 판단하셨다. 우리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혹은 불완전한 말만 듣고 사람을 판단하기 쉽지만, 주께서는 그의 행위를 보고 판단하신다. 사람의 행위는 그의 마음과 인격의 표현이다. 사람의 말은 자기 마음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고 심지어 위선적일 수도 있으나, 사람의 행위는 그것을 그대로 나타낼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사람의 마음도 판단하시지만, 특히 행위에 근거하여 사람을 판단하신다.

사데 교회의 목사는 살았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었다. 그와 그의 교회는 사람들의 보기에 매우 활동적이었고 또 그렇게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활동적이라는 것이 교회가 건전하다는 표시는 아니다. 이단들도 매우 열심이 있고 이방종교인들이나 공산주의자들도 그러하다. 열심이 있다는 것이 진리를 소유한 표시는 아니다. 무엇을 위한 열심이냐, 어떤 성질의 열심이냐가 중요하다.

사데 교회의 목사는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이었다. 죽었다는 말은 영적 의미이다. 그는 육신적으로는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었을지 모르나, 영적으로, 신앙적으로는 죽었다고 간주되었다는 말이다. 그의 활동은 바른 지식과 참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행위들은 인정받을 만하지 않았다. 의롭고 선한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으로 보기 어렵다. 의롭고 선한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2절]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이 말씀을 보면, 사데 교회의 목사는 아직 완전히 죽은 상태는 아닌 것 같다. 그에게 죽게 된, 죽어가고 있는 남은 바가 있었다. 그것은 복음 신앙의 뿌리이었거나 중생했으나 연약한 생명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죽을 처지에 있었다. 그 남은 것을 그냥 내버려두면 결국 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목사는 그것을 굳게 붙잡아야 했다. 그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했다. 행위의 온전함은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행위를 가리키고, 행위의 결함은 불경건하고 더럽고 불의하고 악하고 거짓된 행위를 가리킬 것이다. 사데 교회의 목사에게는 행위의 온전함이 없었다.

[3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성도가 받고 들은 것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진리이다. 사데 교회의 목사는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해야 하였다. 생각한다는 말은 기억한다는 말이다. 과거의 기억은 유익하다. 특히 구원의 기억이 그러하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찬송가 405장). 우리는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회개케 하셨고 예수님 믿게 하셨는지 기억하고 회개해야 한다. 과거에 받은 은혜에 대한 기억은 오늘과 내일의 신앙생활에 힘이 된다. 그러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셔도 그 목사가 일깨지 않으면 주께서 도적같이 그에게 임하실 것이며 직접 개입하실 것이다.

[4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교인들의 영적 상태는 목사의 영적 상태를 따라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데 교회는 달랐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사데 교회는 목사가 영적으로 죽은 자이었으나, 그 교회에는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닐 자들이었다. 그들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흰옷은 순결을 의미한다. 성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흰옷이며 의롭다 하심을 얻는 참 믿음 곧 속죄신앙이 흰옷이다. 또 성도는 이 의 안에서 바른 믿음을 지키고 바르고 선한 일을 힘쓴다. 그러나 흰옷을 입은 자들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많은 이들이 믿음을 저버리고 해이해졌고 죄의 낙을 누렸다. 노아 시대에도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다 멸망을 당했다. 영생에 이를 좁은 길로 가는 자들은 적다.

[5-6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는 흰옷 입은 목사, 흰옷 입은 직분자들, 흰옷 입은 성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흰옷 입은 무리의 수에 들어야 한다. 성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고 또 그 의 안에서 의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흰옷을 입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짓는 자는 흰옷을 더럽히는 자요 영적으로 죽어 가는 자이다. 교인들은 산 자와 죽은 자, 흰옷 입은 자와 흰옷을 더럽히는 자, 둘 중의 하나에 속한다.

흰옷 입은 자들의 구원은 확실하다. 주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지우지 아니하고 그것들을 하나님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다. ‘이름을 흐린다’는 말은 이름을 지워버린다는 뜻이다. 주님만 바라고 죄를 대항하고 의를 행하는 자들의 구원은 확실하여 주께서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흰옷을 더럽히는 자들 곧 범죄하는 자들의 구원은 보장될 수 없다. 사람이 죄 가운데 살면서 구원을 말하는 것은 거짓된 확신이며 그가 구원을 소망한다고 해도 그것은 헛된 소망이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성경의 모든 교훈을 행해야 한다.

1절부터 6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외적인 모습이나 이름이나 평판만 가지지 말고 실제로 참 믿음과 선한 행위를 가져야 한다. 사데 교회의 목사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 혹은 죽어가는 자이었다. 우리는 그런 자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는 단순히 입술의 고백이나 종교적 의식의 종교가 아니고 실제의 삶의 종교이다. 우리가 참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경에 증거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파악하고 굳게 지켜야 한다. 우리는 신앙의 기본적 내용을 보수하고 그것에 합당한 경건하고 선한 행위를 가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의 흰옷을 입은 자는 그 흰옷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참으로 믿는 자가 되며 참으로 이기는 자가 될 것이다.

 

7-13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7-8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아니하였음이라].

본문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분문은 주께서 거룩하시고 진실하시다고 말하며 또 그가 다윗의 열쇠로 천국문을 열기도 하시고 닫기도 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고 말한다. 죄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4:6).

주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에게 열린 문을 주셨다. 그것은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이다. 열린 문은 천국의 확실한 보장을 가리킨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자가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위해 주께서는 천국 문을 여신다. 주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보장하신다. 그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28).

주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에게 열린 문을 주신 이유는, 그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린 문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인간 편에서 볼 때 그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는 큰 재능을 가진 자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 주의 말씀을 지켰고 주의 이름을 부인치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하나님께서 주신 열린 문, 곧 천국의 확실한 보장이었다.

우리는 힘이 없다고 핑계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래서 두렵고 떨릴지라도, 힘을 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거나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신앙의 순결과 절개를 지켜야 한다. 그것은 깨끗한 신앙생활을 말한다. 그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경건하게 살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고, 세속의 죄악된 풍조에 물들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교회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작은 힘으로도 주를 진실하게 믿고 따라야 한다.

[9절]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주께서는 유대인들의 모임을 사탄의 모임이라고 부르셨다. 구약교회인 유대인들의 모임은 부패되고 타락하여 사탄의 모임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였고 신약교회를 핍박하였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2:15-16에서,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 유대인들 중에 몇 사람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 앞에 굴복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 신실한 목사에게 내리시는 보상과 같았다. 주께서는 이 일을 통해 자신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거하실 것이다.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살아계심과 그들을 사랑하시고 위하심을 종종 현실 속에서 이렇게 나타내신다.

[10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주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에게 한 가지 더 복된 약속을 주셨다. 그것은 주께서 친히 그를 지키어 장차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시험의 때는 대환난의 때를 가리키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은 그 목사가 대환난을 통과하지 않고 하늘로 올리우는 것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모든 성도들이 대환난을 겪을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요한계시록 7:14,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시험과 환난의 때를 면하는 은혜가 예비되어 있었다. 그것은 옛날 애굽에 내렸던 10가지 재앙 중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했던 고센 땅이 그 재앙을 받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은혜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대환난 중에도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11절]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께서는 단지 한 가지를 그 목사에게 요구하셨다. 그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른 신앙의 보수를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역사적 기독교,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것이 장차 우리가 받을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범죄하고 회개치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장차 받을 면류관, 곧 영광을 빼앗길 것이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고 우리에게 예비된 천국의 영광을 빼앗으려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주께로부터 받은 말씀 안에 굳게 서고 유일한 복음인 십자가의 속죄의 복음을 굳게 믿어야 한다.

[12-13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참된 성도를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엡 2:21-22).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집이다. 또 그들은 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 된다는 뜻이다. 또 주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세 가지의 이름, 즉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의 새 이름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새 예루살렘 성의 백성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확증하신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이 다 듣고 실천해야 할 교훈이다.

7절부터 13절까지의 본문은 무슨 교훈을 주는가? 우리는 본문에서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받는다. 그것은 우리가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 믿음을 굳게 지키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능력이 크든지 적든지, 우리는 주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사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켰고 주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그러해야 한다.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로부터 전달받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로마 천주교회의 어두움으로부터 다시 발견한 바른 신앙을 잘 파악하고 믿고 끝까지 지키고 실천해야 한다. 그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을 지키는 것이 보수신앙이며 옛신앙이다. 온 세상에 마지막 대환난이 올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기 백성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며 환난과 시험을 감당하거나 피할 길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오직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만을 굳게 간직하자.

14-22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14-16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편지하라.] 아멘[진실]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실하시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 곧 만세 전에 그가 택하신 자들의 대속 사역을 이루시는 일에 충실하셨고 그의 뜻을 참되게 증거하셨다. 주께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사에게 교훈하시는 뜻이 있어 보인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사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주께 충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주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고 표현하셨다. 고대의 헬라 철학자들은 우주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였다. 우주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며 철학자들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시다.

주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하셨다. 차거나 덥다는 것은 주의 복음과 일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굳게 믿고 그 복음을 전하며 영혼들을 구원하며 바른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 열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주께서는 그의 미지근한 태도를 지적하시며 그가 분명한 태도를 가지기를 원하신다. 즉 믿는가, 믿지 않는가 확실한 태도를 취하고 믿으려면 확실히 믿으라는 것이다. 미지근한 태도는 믿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고, 오히려 참된 믿음에 방해가 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신을, 믿는 자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이런 미지근한 태도를 미워하신다. 미지근한 태도는 꾸며진 불신앙이며 일종의 위선이다. 하나님께서는 위선을 미워하신다. 그는 우리의 진실한 믿음과 순종을 원하신다.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적으로 즉 교인 수나 재정에 있어서 부요했던 것 같다. 그 교회 목사는 자기 만족에 빠져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네가 가난하다’고 말씀하셨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사는 물질적으로 부요하였으나 영적으로 빈곤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참된 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었고 벌거벗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머나 교회의 목사의 경우와 정반대이었다. 서머나 교회의 목사는 외적으로는 빈곤하였으나 내적으로는 부요한 자이었다(계 2:9).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사는 외적으로는 부요하였으나 내적으로는 빈곤한 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물질적 부요를 크게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의 영적, 신앙적 부요를 크게 여기신다(눅 12:21).

[18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 곧 확신을 가리킬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다(벧전 1:7). ‘벌거벗은 수치를 가릴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확신을 가리킬 것이다. 우리의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교훈하였고(롬 13:14), 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하였다(갈 3:27). 또 안약은 영적 세계, 하나님의 세계, 진리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성령의 지혜와 지식을 가리킬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주 예수께로부터 살 수 있다. 주님께 산다는 말은 이 모든 것이 주의 소유라는 것을 나타낸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실상,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이런 것들을 간구할 때 그는 그것들을 값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셨다(사 55:1).

[19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책망과 권면, 회개의 촉구는 다 주님의 사랑에서 나온다. 주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많은 부족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오래 참고 또 책망하시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버려두시거나 아니면 벌써 쳐서 데려가셨을 것이다. 부모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매를 때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에게 충고한다. 만일 우리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사를 사랑하시며 그에게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12:5-6은,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말했다.

[20-22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사는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었다. 목사인 그는 주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못하였다. 주께서는 그의 몸을 성전 삼지 못하시고 그를 떠나 계셨다. 그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경우이다. 그는 문을 열고 그를 영접해야 했다. 그가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면 그는 즐거운 식탁 교제, 즉 주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이기는 자들은 심판날에 주의 보좌에 함께 앉고 그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

14절부터 22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해야 한다. 라오디게아 목사의 문제는 미지근한 데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에게는 주께 대한 불신앙과 의심이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그는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시력도 없었다. 그는 세상적 가치관과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미지근한 마음을 버리고 주님과 그의 복음 진리를 확신하고 의롭다 하심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무슨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을 즉시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열심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주님과의 교제의 회복, 즉 말씀의 깨달음과 기도의 문의 열림과 그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것이다.

 

4장: 하늘 보좌의 광경

[1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나팔소리 같은 음성은 주님의 음성이었다(계 1:10, 12). 본문은 어떤 이들이 잘못 생각하듯이 교회의 휴거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요한이 성령의 감동 중에 천상의 광경을 보게 된 경위를 말하는 것뿐이다.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이란, 이미 1:19에서 말한 대로, 사도 시대 이후의 교회 역사와 세상의 종말 사건들을 가리킨다.

[2-3절]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사도 요한은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5:1에 그의 오른손에 책을 가지고 계셨다는 말씀은 이 사실을 더욱 확실케 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그의 본체는 아무도 볼 수 없으나 때때로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과 무지개와 녹보석 등 상징적인 네 단어로 여전히 묘사되었다. 벽옥은 그의 거룩하신 영광을, 홍보석은 그의 공의와 심판의 엄위하심을, 무지개는 그의 신실하신 긍휼의 약속을, 녹보석은 그의 선하시고 아름다우심을 나타내는 것 같다.

[4절]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사도 요한은 또 보좌에 둘려 있는 24보좌를 보았다. 거기에는 24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24장로들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 24라는 수는 구약교회의 12지파들과 신약교회의 12사도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요한계시록 21:12, 14에 보면,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문 위에는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자손 12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고, 성곽의 열두 기초석 위에는 12사도의 이름이 있었다. 또 24장로들이 입은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와 성결을 가리키고, 그들이 쓴 금면류관은 장차 교회가 누릴 존귀와 영광을 상징할 것이다. 우리의 소망과 영광은 이 땅에 있지 않고, 천국에 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를 바라며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며 산다. 세상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태워질 것이나,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영광이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것이다.

[5-7절]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나타날 능력과 위엄을 보이는 것 같다. 또 보좌 앞의 일곱 등불, 곧 하나님의 일곱 영은 하나님의 충만하신 지혜와 지식을 나타낸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신 영이시다. 그는 사람들의 모든 말과 행위를 다 아시고 그들의 은밀한 일까지도 아시고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사도 요한은 또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 것을 보았다. ‘수정 같은 유리바다’는 구약시대에 성막의 물두멍이나 성전의 바다를 기억나게 한다. 그것들은 다 제사장의 수족을 씻는 일을 위하여 만든 것이었다. 천상의 ‘수정 같은 유리바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흠과 점 없게 된 성결을 나타낼 것이다. 보좌 가운데와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그룹 천사와 같다. 24장로가 교회를 대표하듯이, 이 네 생물은 천사들을 대표하는 것 같다. 그들의 앞뒤에 눈이 가득한 것은 그들의 통찰력과 지식의 충만함을 상징할 것이다.

그 네 생물의 모습은 매우 상징적으로 묘사되었다.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다. 사자는 불굴의 용맹스러움을, 송아지는 온순함과 충성을, 사람은 지혜를, 독수리는 쇠하지 않는 생명력과 민첩함을 상징할 것이다. 천사들은 악령들과의 전투에서 용맹스럽고, 온순하여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충성하며, 지혜롭고 총명하며, 민첩하며 쇠하지 않는 생명력을 가진다.

[8-11절]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5)] 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네 생물들은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찬양하기를 힘썼다. 천사들의 모습은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천사들의 존재는 실재이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즐겁게 하려고 노래하는 자들이 아니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을 찬양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허무한 가사를 지절거리는 노래들을 미워하시나, 진리에 합한 노래들을 귀히 보신다. 물론, 찬양은 가사뿐 아니라, 곡과 리듬과 박자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과 질서에 맞게 아름다워야 한다(시 96:9).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해야 한다.

24장로들은 하나님께 경배하며 자신들의 면류관을 벗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져 드렸고 오직 하나님께만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돌렸다. 성도의 찬양의 근본적인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만 우리의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믿음과 선행에 대해 상주시지만, 성도는 사실상 그런 상을 받을 만한 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우리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임을 천상에서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의 어둡고 불완전한 현실만 보지 말고 천상의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며 또 천국의 영광을 묵상하며 그 영광을 바라자. 온 우주의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엄위하시고 아름다우시며 천국의 영광도 그러하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골로새서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둘째로, 우리는 장차 의의 흰옷, 즉 죄성이 전혀 없는 영광스런 몸과 금면류관을 쓸 것을 소망하자. 이것이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릴 복된 영광이다. 빌립보서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로마서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셋째로, 우리는 네 생물의 덕, 즉 사자 같은 용맹, 송아지 같은 온순함과 충성, 사람의 지혜, 독수리같이 쇠하지 않는 생명력과 민첩함을 배우자.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모든 종들에게 필요한 덕이다.

 

5장: 어린양

[1-5절]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獅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든 책은 장차 될 일들, 즉 교회 역사와 세상 종말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쓴 책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6장부터 계시되는 내용이며 요한계시록의 중심 부분이기도 하다. 안팎에 썼다는 말은 그 내용이 많고 자세함을 보인다. 일곱 인으로 봉하였다는 것은 은밀하게 감추어진 내용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그 인봉이 하나씩 떼어질 것이고 인류 역사의 종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씩 계시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밀한 종말 계획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의인의 영들 중에도 없고, 땅 위에 살아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 죽은 자들 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요한은 크게 울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안타깝고 답답하여 울었을 것이다.

그때 장로들 중의 한 사람이 요한에 울지 말라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일을 하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가르쳐 주었다. 유대 지파의 사자(獅子)요 다윗의 뿌리라는 표현은 창세기 49:9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는 예언과 이사야 11:1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날 것이라”는 예언 등에 근거했다고 본다. ‘이기셨다’는 말은 그가 마귀의 시험과 죄와 세상의 악을 이기셨다는 뜻일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과 죄와 세상의 악을 이기셨고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다. 이제 그는 인류 역사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셨다.

[6-7절]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요한이 본 어린양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상징한다. 그는 죽음으로 하나님의 택자들을 위한 속죄를 완성하셨고 부활로 그 사실을 확증하셨다. 어린양에게 있는 일곱 뿔은 그의 신적 능력을 보이고 일곱 눈은 그의 신적 통찰력과 지식을 보인다. 그 일곱 눈은 온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일곱 영 곧 성령이시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어린양은 종말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기록한 책을 취하였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이며, 어린양은 구속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인류 역사의 미래와 종말 사건들, 심판과 최종 영광까지를 계시하실 자격자가 되셨다. 미래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어린양에 의해 하나씩 계시될 것이다(계 6:1).

[8-10절]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엎드렸고 장로들은]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6)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우리를](전통본문)7)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왕들과]8)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어린양이 책을 취하실 때에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그에게 엎드려 경배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천사들과 성도들에게 경배를 받으실 자이시다. 24장로들은 각각 거문고와 향 대접을 가지고 있었다. 또 성도의 기도들은 향에 비교되었다. 성도들의 찬양과 감사, 죄의 고백, 및 소원의 간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과 같다.

새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노래하는 노래를 가리킨다. 어린양 예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서 세계 각 나라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속(救贖)하셨다. 그러므로 참된 찬송은 속죄의 찬송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친히 자기 피로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찬송해야 한다.

또 주께서는 그의 속죄사역으로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셨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일 뿐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왕들이 되었다. 우리는 장차 천년왕국에서 왕노릇할 자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천국에서 영원히 왕노릇할 자들이다(계 20:6; 22:5). 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들이 되었다.

[11-12절]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요한은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 소리를 들었다. 그 천사들의 수는 천천 만만으로 표현되리만큼 수없이 많았다. 그들은 어린양에게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돌렸다. 어린양의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은 하나님의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다. 특히 신성(神性)을 가지신 그가 죽임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죄의 책임과 형벌을 대신하기 위함이셨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에게 죄씻음의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었음을 인해, 하늘의 천사들도 어린양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이다. 그 찬송은 합당한 찬송이다.

[13-14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천지의 만물들, 즉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사람들이나 기타 모든 만물들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찬송과 영광을 돌렸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올리는 만물의 영광스러운 합창이었다. 여기에 한번 더 성자(聖子) 예수께서 성부(聖父)와 동등한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다는 삼위일체 교리가 증거된다. 만물들의 찬송에 대하여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경배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심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 역사의 미래가 계시되었음을 알자. 역사는 정치가들이 만들어 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배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의 뜻이 역사 속에 다 이루어진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이다. 그의 계획 속에 그의 아들 예수께서 인류의 구주로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택한 백성의 속죄를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인류 역사의 미래에 대해 증거해 주실 유일한 주님이 되셨다.

둘째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救贖)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모든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들의 경배와 찬송을 받으실 주님이시다. 본장의 찬송 가사들같이, 우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을 항상 주께 올리자.

 

6장: 일곱 인

1-8절, 첫째 인부터 넷째 인까지

[1-2절]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소리같이 말하되 오라[와서 보라]9)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을 취하신 어린양께서 그 인을 하나씩 떼실 때마다 장래 일들이 예언된다. 첫째 인을 떼실 때, 요한은 흰말과 그 탄 자를 보았다. 요한계시록에서 흰색은 좋은 뜻으로 사용된다. 흰색은 성결과 의를 나타낸다. 인자 같은 이의 머리털은 양털같이, 눈같이 희었다(1:14). 신실한 성도들은 흰 돌을 받았고(2:17) 흰옷을 입었다(3:4). 또 재림의 주님은 흰말을 타고 오실 것이며(19:11) 그를 따르는 하늘 군대들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흰말을 타고 그를 따를 것이다(19:14). 또 하나님의 최종 심판 보좌도 흰 보좌일 것이다(20:11). 그러므로 본절의 흰말과 그 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그레다너스, 박윤선) 혹은 그의 거룩한 심판 사역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가 면류관을 받고 이기고 또 이기려 한 것은 그의 사역이 승리적임을 말한다.

[3-4절]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와서 보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붉은 말과 그 탄 자는 전쟁을 상징함이 분명하다. 그가 ‘큰 칼’을 받은 것은 전쟁으로 인한 큰 살육을 뜻할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볼 수 있는 대량 살상 무기를 예언한 것일지도 모른다. 말세의 한 징조는 국가 간의 갈등과 전쟁들이다. 주의 재림 전에 큰 전쟁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요한계시록에는 본절 외에도 유브라데 강 부근에서 2억의 군사가 동원될 전쟁과, 유브라데 강이 말라 동방의 왕들이 들어옴으로 세계적 연합군이 형성되어 아마겟돈(므깃도 언덕)에서 마지막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 예언되어 있다(계 9:13-16; 16:12-16).

역사상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었으나, 그 모든 전쟁들 중에서도 20세기에 치룬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처참한 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죽은 군인들만 거의 1,000만명에 이르렀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군인들만 약 1,700만명이었다고 한다. 민간인 사망자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서방세계와 공산진영으로 서로 대립되었고 아직까지 그 갈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세계 공산화의 꿈을 버리기 전까지는 그러할 것이다. 또한,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종교적 갈등이 있다. 만일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핵무기와 화학-생물학무기들을 동원한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매우 처참한 전쟁이 될 것이다.

[5-6절]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전통사본은 생략함)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검은 말과 그 탄 자는 기근을 상징함이 분명하다. 손에 저울을 가진 것은 식량의 배급을 상징하며 그것은 식량이 부족할 것을 뜻한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고, 한 되는 보통 사람의 1일분 식량이라고 한다. 하루 품삯으로 한 되의 밀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식량값이 매우 비싼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식량의 큰 부족을 나타낸다. 보리는 밀보다 품질이 낮은 식량이다. 그러나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서민들의 기본적 식용품, 의약품, 음료수가 허용됨을 보이는 것 같다.

주의 재림 전에는 기근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처처에 기근들과.” 기근은 옛날부터 있어왔지만 근래에 세계적으로 더욱 심해진 것 같다. 월드북 백과사전10)에 의하면, 1870년대에 남부 인도에서 약 5백만명이 기근으로 죽었고, 중국에서는 9백만명 이상이 죽었다. 1929년과 30년에는 중국의 황허강의 홍수로 인한 기근으로 약 2백만명이 죽었다. 1943년 동부 인도 벵갈에 대기근이 있었다. 제2차 대전 후 150만명 이상이 기근으로 죽었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남부 사헬 지역과 남부 아프리카, 특히 이디오피아 등에 심각하여 수백만명이 죽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13년 현재 세계에 약 8억 7천만명이 기아 상태에 있다고 보고했다.11)

[7-8절]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와서 보라] 하기로 (내가 보매)(전통사본에는 생략됨)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청황색 말과 그 탄 자는 사망을 상징한다. 그의 뒤를 따르는 음부는 무덤을 가리킨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4분의 1은 전쟁과 기근과 사망 혹은 무서운 질병과 땅의 짐승들로 인해 죽을 것이다. ‘사망’이라는 원어(다나토스)는 ‘사망’이라는 뜻 외에 ‘치명적 질병’이라는 뜻도 있다(BDAG). 주의 재림 전에 많은 질병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기근들과 온역들(전통본문)과.” 역사상 많은 질병들이 있었지만, 의학이 발달된 오늘날도 병원들은 각종 환자들로 붐빈다. 고혈압과 당뇨와 암은 오늘날 무서운 질병들이다. 특별히 동성애적 음란에 관련되어 있다고 보이는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의 확산은 매우 위협적이다. 에이즈는 1981년 처음 보고된 이후 2001년까지 약 20년간 그로 인한 전 세계의 사망자 총수는 약 2,100만명이었고, 매년 거의 200만명씩 죽는다. 2011년 현재, 전 세계에 에이즈(HIV) 감염자수는 약 3,40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12) 이것은 시대적 재앙이다. 이와 같이, 전쟁과 기근과 질병 등의 사실들은 오늘 시대가 세상의 마지막 시대라는 징조라고 본다.

1절부터 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인부터 넷째 인까지는 주의 재림 직전의 대환난 시대의 여러 일들을 계시한다고 본다. 그것은 시대 순서라기보다 동시적이라고 생각된다. 주의 재림 직전에 전쟁과 기근과 사망 혹은 질병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자신의 재림 직전의 징조들로서 제시하신 내용들과 일치한다. 물론 이러한 징조들은 교회 시대 전체에 걸쳐 성도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어느 정도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보이나, 교회 시대 말기, 즉 주의 재림 직전에 절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치신 바이었다고 본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전쟁과 기근과 질병들과 사망의 대환난의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가 그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환난에 대비하는 믿음을 준비하는 일이다.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께서 오늘날 교회들과 우리에게 순교의 상황을 주시고 순교를 요구하신다 할지라도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참된 믿음과 충성된 마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9-17절, 다섯째 인과 여섯째 인

[9-11절]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죽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伸寃)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어린양께서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사도 요한은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탄원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고 죽으면 몸과 영이 분리된다. 몸은 땅에 묻히지만,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간다(전 12:7). 순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자들이다. 즉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자들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였더라면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몸만 죽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마 10:28).

이와 같이 신앙의 핍박과 순교는 종말 징조이며 대환난 시대의 한 특징이다. 물론, 경건한 자는 항상 핍박을 각오해야 하였다.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다(딤후 3:12). 그러나 주의 재림 직전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주께서는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다”고 말씀하셨다(마 24:9-10).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3장에서 한 짐승에 대해 “[저가]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고 증거했는데(계 13:7) 그것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며, 또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는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라고 말했다(계 13:15).

순교자들의 영혼들은 제단 아래서 하나님께 공의의 심판을 탄원하였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을 보응하신다는 도덕 질서를 위하여 또 기독교가 참된 진리임을 변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또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의 탄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그는 그 핍박자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의 영혼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셨다.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은 성결과 의를 상징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른 동료 종들과 형제들이 순교하기까지 잠시 동안 쉬라고 말씀하셨다. 순교자들의 영혼들에게는 비록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간청하는 기도가 있었지만 또한 참된 안식이 있을 것이다. ‘잠시 동안’이라는 말은 인간의 시간표의 수천년도 하나님 앞에서는 잠시에 불과함을 보인다(벧후 3:8).

다섯째 인의 환상은 마지막 심판 때까지 순교자들이 더 있을 것을 보인다. 교회 역사상 초대교회로부터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 로마 시대와 중세 시대, 일제시대와 공산치하에서 학살당한 자들의 수 속에는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포함되었다. 특히 중세 1,200년 동안 5,000만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역사상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고 마지막 심판 때 전까지 순교의 죽음은 계속될 것이다.

[12-14절]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어린양께서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사도 요한은 큰 지진과 천체의 큰 변동을 보았다. 해는 총담같이 검어졌다. 총담은 털실로 짠 거무스름한 부대자루를 가리킨다. 달은 피같이 되었다. 별들은 무화과나무가 큰 바람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졌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갔고 각 산과 섬은 제자리에서 옮겨졌다. 이러한 묘사는 극심한 천재지변을 나타낸다. 큰 지진들과 천재지변들은 종말의 한 징조라는 사실이 계시된 것이다.

천재지변들은 세상의 종말과 주의 재림 직전의 한 징조이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주께서는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29). 또 요한계시록 8:12에도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고 예언되어 있다.

특히 큰 지진들은 세상의 종말과 주의 재림 직전의 한 징조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지진들이 세상 종말과 자신의 재림 직전의 한 징조일 것을 말씀하셨다(마 24:7). 또 요한계시록 11:13은 두 증인의 승천 후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명이라고 증거하였고 요한계시록 16:17-20은 일곱째 대접을 쏟을 때 큰 지진이 있어 큰 성 바벨론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또 큰 우박이 있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큰 지진의 힘은 약 1억 8천만 톤의 티엔티(TNT) 폭탄과 같으며,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용되었던 원자폭탄의 약 만 배의 위력이라고 한다.

월드북 사전에 의하면, 역사상 대지진들이 간혹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 더욱 빈번해졌다. 20세기에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지진들은 24개 이상이 되며, 그 중에 2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것은 14개나 된다. 5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큰 지진들만 열거해본다면, 1908년 이태리 멧시나 7만 5천명, 1920년 중국 중앙부 간서 20만명, 1923년 일본 도오꾜-요코하마 약 14만 3천명, 1932년 중국 중앙부 7만명, 1935년 인도 쿠에타(오늘날의 파키스탄) 6만명, 1970년 페루 침보테 약 6만 8천명, 1976년 중국 북동부 헤베이 24만명 등이다.

[15-17절]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그의](전통본문)13)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은 평상시에는 담대하고 때때로 교만하기까지 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대환난의 날에 두려워 떨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를 피할 곳을 찾기에 급급할 것이다.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하나님의 심판 날에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고 하였다(사 2:19). 대환난은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이다. 이때에 불경건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을 것이다.

본문은 다섯째 인과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 징조를 증거한다. 다섯째 인과 여섯째 인은 핍박과 순교와, 큰 지진의 징조를 나타낸다. 이 세상 종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참된 신앙에 대한 핍박이 있고 순교도 있을 것이며 또 큰 지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징조들을 볼 때 성경의 예언들을 기억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을 각오하며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일들을 다 이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7장: 흰옷 입은 무리

1-8절, 인 맞은 자의 수 14만 4천

[1절]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이 말씀은 시간 순서대로가 아니고 환난 시대에 대한 계시의 중간에 삽입된 위로의 말씀이다. 땅 네 모퉁이, 땅의 사방의 바람 등은 온 세상을 가리키는 일상적 표현이다. 바람은 환난을 가리킨다. 네 천사가 땅 사방의 바람을 잡고 있다는 것은 성도가 감당할 만한 것 이상의 환난을 하나님께서 통제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주께서는 종말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20-22).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2-3절]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환난은 중지될 것이다. 인을 친다는 것은 확인과 확증의 표시이다. 중요한 문서들에는 확인의 도장을 찍는다. 하나님의 인은 인 맞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확인하는 것이다. 즉 구원의 보장이다. 이것은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소유로 인치셨으므로 우리를 끝까지 지키실 것이다. 주께서는 요한복음 10:28에서,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1장에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救贖)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다(엡 1:13, 14). 또 그는 로마서 8장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했다(롬 8::35, 38, 39).

[4-8절]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만 4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1만 2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갓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1만 2천이라.

이스라엘 12지파 중 단 지파가 빠졌고 그 대신 레위 지파가 들어 있다. 또 에브라임 지파 대신 요셉 지파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각 지파의 인 맞은 14만 4천은 14만 4천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고, 구속받은 모든 성도의 완전 충만한 수를 상징한다고 본다. 12는 3과 4를 곱한 수로서 완전한 수를, 1,000은 충만한 수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12x12x1,000은 완전 충만한 수를 상징할 만하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14만 4천명을 세상에서 구속받은 모든 성도의 상징으로 볼 만한 근거는, ① 본문이 일반적인 이스라엘 12지파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며, ② 요한계시록 9:4의 황충 재앙에서 그 재앙이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자들에게만 임하는데, 거기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며, 또 ③ 요한계시록 14:3에 보면, 14만 4천은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이라고 불리우기 때문이다.

구속받은 성도들을 이스라엘 지파들에 비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이라고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약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29에서,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말했고, 갈라디아서 6:16에서,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구원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다 포함하는 것 같다.

9-17절, 흰옷 입은 큰 무리

[9-10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흰옷 입은 큰 무리는 앞에서 말한 14만 4천과 동일한 무리라고 본다. 그들은 대환난 전에 인침을 받았고 대환난을 통과하는 자들이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라는 말은 교회의 세계성을 말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온 세계에 하나이며 그 구성원들은 온 세계에 속한다.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다는 말은 구원받은 수가 충만함을 말하며, 이것이 14만 4천명으로 상징되었다고 본다. 흰옷은 역시 성결과 의를 가리키며, 종려가지는 승리와 기쁨을 상징할 것이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대환난을 무사히 통과하여 승리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힘찬 찬송이 있다. 어떤 이들은 구원이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시 3:8; 롬 9:16, 18).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회개할 수도 믿음을 가질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주시고 깨달음을 주셔야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끄셔야 회개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요 6:37, 44).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은 결국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그는 구원의 길을 지시하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의 능력의 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11-12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서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천사들은 성도들의 찬송에 화답하였다. 그들은 구원이 참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일임을 노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 같은 죄인을 그의 기이한 방식으로 불러주셨고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그의 능력으로 살리셨고 우리가 속죄 신앙을 지키고 거룩의 열매를 맺도록 항상 우리를 보존해 주신다.

[13-14절]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 환난을 통과해 나오는 흰옷 입은 성도들에 대한 환상은 대환난을 직면한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환난을 통과할 성도의 무기는 하나님과 주 예수를 믿는 믿음뿐이다. 이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뿐이다(요일 5:4-5).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믿음으로 죄를 이기고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알지 못하는 자는 환난에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종교적 형식은 소유했으나 참 종교의 실질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알곡이 아니고 쭉정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속죄 신앙을 가진 자마다 죄와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15-17절]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대환난을 통과한 승리한 성도들은 천국에서 완전한 평안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위에 장막을 치셔서 더 이상 주림이나 목마름이 없이 공급하실 것이며 또 더위로 인한 해가 없도록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며 또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실 것이다.

본장의 중요한 진리는 구속받은 성도들이 대환난을 통과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인치심이 있기 때문에 잘 감당하고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환난을 통과해야 할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어린양의 피에 우리의 옷을 빨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세상의 환난과 시험을 잘 이겨 나가야 한다.

 

8장: 일곱 나팔 (1)

1-6절, 일곱 나팔과 금향로의 환상

[1-2절]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半時) 동안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侍衛)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6장에 기록된 일곱 인들 중 첫째 인부터 여섯째 인까지의 환상은 전쟁, 기근, 죽음, 순교, 큰 지진 등 대환난 시대에 대한 묘사이었다. 거기에는 땅 4분의 1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 언급되어 있었다(6:8). 이제 일곱째 인은 일곱 나팔의 환상을 보이며, 그것은 좀더 구체적이고 좀더 강화된 재앙을 보이는 것 같다. 이런 재앙을 나팔을 통해 증거하신 것은 경고하는 뜻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회개하라는 경고요, 믿는 자들에게는 기도와 믿음과 순종과 전도로 더욱 환난을 준비하라는 경고일 것이다. 그러나 뒤에 16장에 일곱째 나팔로 계시될 일곱 대접 환상은 하나님의 경고의 시간들이 지나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선포되는 것이라고 보인다. 본문에 ‘반시 동안쯤의 고요함’은 다가올 환난과 재앙이 심히 크고 두려울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성도는 대환난 앞에서 믿음과 기도로 준비해야 할 것이며 불신자는 이제라도 회개해야 할 것이다.

[3-6절]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金)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香煙)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본절은 성도들의 기도들이 하나님께 올려지며 또 그 결과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시행됨을 나타낸다. 성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다 시행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도들의 기도는 강력한 무기와 같다.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하며 사탄과 악령들의 일들이 파하여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게 한다. 우리는 고난의 세상 속에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7-13절, 첫째 나팔부터 넷째 나팔까지

[7절]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3분의 1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3분의 1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일곱 나팔의 재앙은 문자적으로 성취될 수 있으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려면 정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성경 본문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건전한 해석의 태도일 것이다. 첫째 나팔의 재앙은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는 것이다. 그 불로 인해 땅의 3분의 1과 나무들의 3분의 1과 모든 풀들이 태워질 것이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 대화재 사건이 될 것이다. 땅은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므로 땅과 나무들의 3분의 1과 모든 풀들이 불태워진다는 것은 실로 사람들의 생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땅과 나무들의 3분의 1만 타고 3분의 2가 남겨지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요 성도들과 세상을 위한 배려임이 분명하다.

[8절]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3분의 1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3분의 1이 죽고 배들의 3분의 1이 깨어지더라.

둘째 나팔의 재앙은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다. 그 일로 인해 바다의 3분의 1이 피가 되고 바다의 생물들의 3분의 1이 죽고 배들의 3분의 1이 파괴될 것이다. 이것도 문자 그대로 성취될 수 있다. 바다도 사람들의 주요한 생활의 터전이며 배들은 특히 어부들과 상인들의 주요 생활 수단이므로 그 재앙으로 인한 타격도 매우 클 것이나, 그것도 3분의 1만 타격을 받을 것이다.

[9-10절]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3분의 1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3분의 1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셋째 나팔의 재앙은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강들과 물샘에 떨어지는 것이다. 하늘의 별들도 하나님께서 떨어지게 하시면 떨어질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큰 별은 강들과 물샘들의 3분의 1을 쑥과 같이 쓰게 만들 것이며 그 쓴 물을 마시는 자들은 죽게 될 것이다. 물은 사람이 사는 데 매우 필수적인 요소이다. 사람의 몸은 70퍼센트가 물(수분)이라고 한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런데 물들의 3분의 1이 오염되었고 식수 오염 때문에 마실 물이 적어졌으니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겠는가?

[12절]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3분의 1과 달 3분의 1과 별들의 3분의 1이 침을 받아 그 3분의 1이 어두워지니 낮 3분의 1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넷째 나팔의 재앙은 해와 달과 별들의 3분의 1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어두워지게 하실 것이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가능한 재앙이다. 그것은 창조주에게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때 지구는 빛의 양이 줄어듦으로 갑자기 추운 겨울을 맞을 것이다. 참으로 두려운 재앙이다.

위의 네 가지 재앙들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자연 재난, 생태계의 재앙, 천재지변이다. 이 재앙들은 복음서에 증거된 예언들과 일치한다. 마태복음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후에 주의 재림과 세상 종말이 올 것이다.

[13절]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주께서는 독수리들로 남은 세 재앙들이 사람들에게 화가 될 것을 선포하셨다. 앞에 증거된 네 재앙들도 두렵지만, 남은 세 재앙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특히 남은 세 번째 재앙, 곧 일곱 대접의 재앙은 앞에 증거된 재앙들보다 더욱 두려운 재앙이 될 것이다.

8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무엇보다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성도들의 찬송과 감사와 간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향연과 같이 올려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기뻐하신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종말 예언의 성취도 포함할 것이다. 대환난의 성취도, 악인들에 대한 공의의 보응도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장차 일어날 천재지변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것들은 하나님의 예언하신 바이며 문자 그대로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주께서는 앞으로 있을 천재지변에 대해 미리 증거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하여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만 살자.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며 그에게는 평안과 기쁨과 영생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는 죽으면 즉시 하나님의 영광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하고 회개치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릴까 두려울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거룩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9장: 일곱 나팔 (2)

1-12절, 다섯째 나팔

[1절]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많은 주석가들은 이 별을 사탄 혹은 타락한 천사로 보고 어떤 이들은 정반대로 거룩한 천사로 본다. 그러나 이 별을 말 그대로 하늘의 별로 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넷째 나팔까지도 문자적으로 해석했듯이, 다섯째 나팔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 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고 한 것은 별이 땅에 떨어져 큰 구멍을 낸다는 것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하늘에서 큰 별이 하나 떨어지면 지구에 큰 충격이 생기고 땅 깊은 곳으로부터 구멍이 뚫어질 것이다. 무저갱(아뷔쏘스)은 주로 지옥을 가리키지만, 단순히 ‘땅속 깊은 곳’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권한과 허락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천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소행성이란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 수십만개의 작은 별들을 가리키며 지구에 근접하는 것들로서 지구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은 240개 가량이라고 한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2002 NT7이라는 소행성은 직경이 2km로 추정되며 초속 약 28km(시속 약 10만km)로 달리고 있는데 2019년 2월 1일에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의 충돌 충격은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폭탄 2천만개의 위력이라고 하며(미 우주항공국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 의하면, 그것은 TNT 100만 메가톤[1조톤]의 폭발 충격일 것이라고 함) 그때 엄청난 먼지 구름이 대기권을 덮으므로 태양을 가려 1년 이상 겨울이 지속될 것이며 또 충돌 지점의 국가들이 초토화되는 것은 물론 대규모 해일이 일어나고 오존층이 파괴되므로 2년간 자외선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생물체들에 돌연변이와 암과 백내장 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14)

[2-3절]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그 별로 인해 뚫어진 땅속에서는 큰 풀무의 연기 같은 것이 올라왔고 그 연기로 인해 해와 공기가 어두워졌다. 그것은 역사상 유래 없는 대기 오염 사건일 것이다. 또 그 연기 가운데로부터 황충들 혹은 메뚜기들이 올라왔다. 이 황충들은 문자 그대로 땅속에서 올라온 특별한 생물체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들 중의 하나를 위해 준비된 악한 생물체들일 것이다.

[4-6절]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앞장에서도 수목과 풀, 바다, 고기, 배, 강과 샘, 해와 달과 별들 등을 다 문자적 의미로 보았듯이, 본문의 땅의 풀과 나무도 문자 그대로 풀과 나무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황충 재앙은 자연 세계에 내리는 재앙이 아니고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자들,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리는 재앙이다.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인 맞은 사람들’은 재앙에서 면제됨을 보인다. 하나님의 이 재앙은 차별적이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들을 애굽에 내리실 때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했던 고센 땅에는 내리지 않으셨던 것과 같다. 시편 91:1-3, 5-7,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白晝)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황충 재앙은 다섯 달 동안 고통을 주는 재앙이다(5, 10절). 황충들은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것이다. 전갈은 쏘는 독을 가진 생물체이다.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들에게 다섯 달 동안 이러한 전갈의 쏘는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사람들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을 것이다.

[7-10절]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戰場)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이 황충들은 보통 메뚜기와 달랐다. 그것들은 전마(戰馬)들처럼 기동성이 있고 그들의 활동은 승리적이고 사람 같은 지혜를 보이고, 사자 같은 잔인함을 나타내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두려울 것이다. 그것들은 심판을 위해 준비된 생물체인 것 같다.

[11-12절]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無底坑)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사탄은 그 황충들의 왕이다. 아바돈, 아볼루온은 ‘파괴자’라는 뜻이다. 그것은 사탄에게 해당되는 명칭이다. 사탄과 악령들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나라와 신약교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한 일들을 파괴하는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1절부터 12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의 재앙이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자. 다섯째 나팔 재앙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에게 무저갱의 열쇠를 줌으로 이루어졌다. 그 열쇠를 주실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주기도 하시고 주지 않기도 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욥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내가 모태에서 적신[벌거벗은 몸]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말했고 고난 중에 범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다(욥 1:21-22).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사 45:6-7).

둘째로, 우리는 재앙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황충 재앙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에게만 고통을 주는 재앙이다.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 즉 믿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고통을 주지 못할 것이다. 또 그 재앙은 다섯 달 동안만 계속될 것이다. 이와 같이 재앙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가 정하신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그의 뜻만 행하며 그의 편에 서서 참고 기다리자.

13-21절, 여섯째 나팔

[13-15절]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연,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3분의 1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금단은 향을 사르는 금향단을 가리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고 보며 금향단의 뿔은 기도의 능력을 가리킨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와 성도들의 기도에 능력으로 응답하신다. 그 결과, 하나님의 정하신 종말 사건들은 하나씩 이루어질 것이다. 성도들의 많은 기도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방법이다.

유브라데 강은 오늘날 시리아와 이라크를 통과해 페르샤 만으로 흐르는 강이다. 그 주위에는 중동의 아랍 국가들이 있다.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들을 놓아주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권한으로 억제하고 있던 것을 풀어주라는 뜻이다. 그것은 중동 지역이 세계대전의 격전지가 될 것을 암시한다. 중동은 전 세계의 석유의 주 공급원이며 그 곳에는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마지막 세계대전의 화약고가 될 만하다.

유브라데 강 주위에서 일어날 전쟁은 하나님의 작정 속에 있다. 여섯째 나팔을 불 때에 그 전쟁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의 정확한 연도와 월일과 시각을 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만세 전에 다 아실 뿐 아니라 또한 그의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뜻대로 작정하셨다. 전쟁은 하나님의 작정 속에 있다. 중동에서 일어날 거대한 세계대전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 전쟁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죽임을 당할 가장 참혹한 전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제3차 세계대전을 암시한다. 20세기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도 참혹한 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군인들은 약 천만명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군인들은 약 1,700만명이었고 민간인까지 합하면 약 5천만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절에 예언된 이 전쟁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죽게 할 가장 참혹한 전쟁이다. 2017년 6월 현재 세계 인구가 약 75억이라고 하는데, 요한계시록 6장에 예언된 넷째 인으로 4분의 1이 죽으면 약 56억이 남고 그 중에서 3분의 1이 죽으면 약 37억 즉 현재의 반만 남게 되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죽일 전쟁이 가능한가?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인류가 수많은 대량살상무기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차 세계대전은 화생방 전쟁, 즉 화학무기, 생물학 무기,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어느 전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상하기 어려운 무서운 전쟁이 될 것이다. 구 소련의 의학연구소장 리콜라이 볼로킨은 핵 군비축소에 관한 과학자 회의 연설에서 “핵전쟁이 나면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죽고 나머지는 핵암으로 쓰러질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15) 그의 말은 성경의 예언과 일치한다. 만일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전쟁이 될 것이다.

[16-19절] 마병대의 수는 2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3분의 1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이 거대한 세계대전에는 2억명의 군인들이 동원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는 말은 그 수가 실제적으로 가능한 수임을 암시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과 아직 공산주의 이념을 버리지 않은 러시아와 중국, 또 이슬람교 신앙으로 단합될 아랍 국가들의 총인구를 생각한다면, 아마 중동에서 발발하리라고 예상되는 이 세계대전에 참여할 군인들의 그 거대한 수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2017년 6월 현재, 세계 인구는 약 75억명이며, 그 중 중국이 약 13억 8천만명, 인도는 약 13억 4천만명이다. 또 본문은 이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을 묘사한다. 그 군인들은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으로 무장하였고 그들의 무기들은 불과 연기와 유황을 내뿜을 것이다. 그것들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 말들의 힘이 그 입과 꼬리에 있다는 것은 그 전쟁 무기들이 전후에 화력 발사장치가 장착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20-21절]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銅)과 목(木), 석(石)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여섯째 나팔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우상숭배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재앙보다 더 슬픈 사실이다. 이 사실은 부수적으로 대환난 시대의 환난들과 재앙들의 목적을 보여준다. 그것은 죄인들의 교정과 회개를 위함이 아니다. 택함 받은 죄인들은 이미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 환난과 재앙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분노뿐이다. 그래서 6:16-17에서는 이것을 ‘어린양의 진노,’ ‘그의 진노의 큰 날’이라고 불렀다. 8:13에서는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을 두고 화, 화, 화라고 표현하였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화를 내리시는가? 그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다. 무슨 죄 때문인가? 로마서 1:18 이하에 언급된 대로 불경건과 음란과 불의의 죄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불경건의 죄 가운데는 성경말씀대로 믿고 성경말씀대로 살지 않고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는 목사들과 교인들의 행위들이 포함될 것이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큰 전쟁의 불행을 통과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재앙을 당한다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회개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과연 회개할 기회가 올 지는 미지수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행 11:18). 그러므로 사람은 회개할 마음이 들 때 회개해야 한다. 그때가 하나님께서 회개하도록 은혜를 주시는 때이다. 우리는 회개를 내일로 미루지 말고 회개해야 할 때에 즉시 회개해야 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말하였다(사 55:6). 우리는 죄를 깨달을 때 즉시 회개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문은 다가올 세계적 전쟁에 대해 예언한다. 다가올 세계대전은 지구의 인구 3분의 1을 죽이는 무서운 전쟁이 될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대량살상무기라고 부르는 소위 화생방 무기, 화학무기(각종 화학 가스), 세균무기,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에 불과하다. 대환난과 세계적 전쟁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3차 세계대전까지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섬기고 그의 교훈대로 정직하고 선하게만 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스런 천국과 부활과 영생만 사모하자. 이 세상은 참으로 헛된 세상이며 심히 죄악되어서 장차 불타버릴 장망성(將亡城)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단지 죄를 짓지 않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하고 또 혹시 연약하여 죄를 지었을지라도 즉시 회개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회개치 않고 완고한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영영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10장: 작은 책을 먹음

[1-4절]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16)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본절의 매우 위엄 있고 영광스러운 천사는 많은 주석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신약성경이나 요한계시록 다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천사로 표현한 곳이 없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천사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6절에 하나님께 맹세하여 말하는 것도 천사에 더 적합하다. 천사가 들고 있는 책은 펴 있는 책이었다. 요한을 통하여 증거되는 종말 예언은 공개된 내용이다. 천사가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선 것은 종말 예언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야 할 것을 나타낸다. 과연 그 천사는 그 책을 들고 바다와 땅을 밟고 서서 사자같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때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했다. 종말 예언의 말씀은 말세에 큰 소리로 외쳐야 할 경고의 말씀이다. 요한은 일곱 우뢰의 소리를 기록하려고 했으나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그것을 기록하지 말라고 하였다. 일곱 우뢰 소리들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미래의 사건들의 계시 여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

[5-7절]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시간이 더 이상 없으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나님께서는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시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자이시다. 그 하나님께서만 참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만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신다. 종말의 사건들과 심판은 그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세상의 창조자께서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다. 사람들이 바라고 의지할 자는 그 분밖에 없다. 그 천사가 맹세하며 말한 내용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비밀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가리킬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시다(골 2:2). 예수님의 성육신(成肉身), 그의 대속의 죽음, 그의 부활, 승천, 재림이 다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때가 되어 다 이루어졌고, 이제 그의 재림 하나만 남아 있는데 그것도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의 역사는 창조로 시작되고 심판으로 끝나는 일직선의 과정이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그의 모든 계획이 성취될 것이다.

[8-11절]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작은 책]17)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책]18)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하늘에서 나는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다. 천사의 손에 펴 놓인 그 책은 종말 예언의 책인데, 요한계시록 전부를 가리키든지 아니면 11장부터의 내용을 가리킬 것이다. 책을 취하여 먹는다는 것은 종말 예언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뜻할 것이다. 성경은 영의 양식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려고 힘써야 한다. 모든 성도들은 성경말씀에 정통해야 한다. 이것은 성도에게 거룩한 의무요 복된 특권이다. 입에 단 것은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의 즐거움을 말할 것이다(시 19:10; 시 119:103). 그러나 배에 쓴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의 내용을 음미할 때 오는 마음의 고통과 이 말씀을 지키며 전하려 할 때 예측되는 고난을 나타낼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제까지 예언했지만, 다시 온 세계의 나라들과 백성들을 위해 예언해야 한다. 요한이 먹은 종말 예언의 말씀들은 책에 기록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말씀들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도 요한을 통해 주셔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종말 사건들에 대한 예언은 봉인된 내용이 아니고 공개된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이 책의 말씀을 읽고 이해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둘째로, 이 세상과 역사의 대종말이 곧 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며 시간이 더 이상 없다는 표현은 그런 종말 의식을 보인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종말 의식을 가져야 한다.

셋째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종말 예언은 온 세계에 전파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 즉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소식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하며 그 내용 중에는 이 세상과 역사의 종말과 심판에 대한 진리도 포함된다. 하나님의 철저한 공의의 심판은 죄인들의 구원의 필요를 증거한다.

 

 

11장: 두 증인

1-14절, 성전과 두 증인의 환상

[1-2절]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지팡이 같은 갈대는 길이를 재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은 구약적 표현이다. 구약의 성전은 일차적으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지만, 또한 그의 몸된 교회인 참된 성도들도 가리켰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참된 성도들을 가리키며 ‘척량한다’는 말은 소유물의 확인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아신다. 그는 대환난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보존하신다. ‘성전 밖 마당’은 성전 뜰만 밟는 중생치 못한 형식적 교인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들은 습관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외식적으로 교회에 다니거나 가족이나 친척의 비위를 맞추려고 다니거나 인간적 교제나 세상적 유익을 위해 다니는 자들이다. 그들은 본질상 이방 사람들이다. 이런 형식적 교인들은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 밖에 있다.

거룩한 성은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는지도 모르나, 그보다 이름만의 기독교 세계를 가리킨 듯하다. 그 속에는 천주교인들, 각종 이단종파 신봉자들, 자유주의자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연합운동의 세계이다. 이름만의 기독교 세계는 이방인에게 마흔 두 달, 즉 3년 반 동안 짓밟힐 것이다. 이 3년 반은 대환난 기간의 일부분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3년 반을 의미하든지, 아니면 너무 길지 않은 어떤 기간을 상징할 것이다.

[3-6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본문은 본서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들 중 하나이다. 말씀하시는 자는 그리스도이시라고 보인다. 두 증인이 나타나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간, 즉 3년 반 동안 말씀을 전할 것이다. 두 증인의 증거는 확실한 증거로 여겨진다. 예수께서도 전도자들을 둘씩 내보내셨다(눅 10:1). 굵은 베옷은 금식하며 회개할 때 입는 복장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죄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기도할 것이다.

1260일은 신약교회시대를 가리킬지 모른다. 주께서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고 예언하신 대로, 예루살렘 성은 지금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고 있다. 그러나 1260일은 여섯째 나팔로 계시된 유브라데 강에서 시작되는 전쟁이 끝난 후에 이방인들이 형식적 교회들과 교인들을 핍박하는 기간에 더 적합해 보인다. 또 아마 그 기간에 두 증인이 나타날 것이다.

두 증인들은 이 땅의 주, 곧 하나님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하였다. 이 표현은 구약 스가랴 4장의 환상에 나오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비슷하다. 본문의 두 증인은 3년 반 환난 기간 중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신약교회 혹은 충성된 두 명의 종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이 감람나무라고 불리는 것은 성령의 끊임없는 공급을 받기 때문이고 촛대라고 불리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빛, 곧 하나님의 바른 뜻을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 같은 능력을 가진 신약교회 혹은 두 명의 종들일 것이다. 모세가 물로 피가 되게 하는 기적을 행했듯이, 또 엘리야가 3년 동안 기근이 들게 하고 또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였듯이,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며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것이다. 또 그들을 해하려는 자들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모세와 엘리야같이, 그들은 그 사역기간 동안 여러 능력의 일들을 행할 것이다.

[7-8절]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아마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그 두 증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이다. ‘무저갱’은 깊은 구덩이를 가리킨다. 짐승으로 표현된 이 인물은 짐승같이 사납고 난폭하며 이성과 도덕성이 없는 인물을 나타낼 것이다. 그것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예언된 ‘죄의 사람’으로서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전제적, 독재적 통치자와 동일한 인물로 보인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초대교회로부터 활동해왔다. 역사상 로마제국과 로마 천주교회는 적그리스도의 영에 이끌려 활동하였다. 그들은 많은 참된 성도들을 핍박하였고 또 죽였다. 그러나 마지막 날들에 적그리스도라고 불릴 특별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며 그가 나타나면 그 두 증인들과 싸워 이길 것이고 그들을 죽일 것이라고 보인다.

두 증인들의 시체가 놓여질 큰 성은 적그리스도의 본거지일 것이다.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이라고 불렸다. 소돔은 음란한 도시이며 애굽은 우상숭배의 나라이었다. 또 그 도시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곳, 즉 예루살렘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본거지는 소돔과 애굽과 예루살렘으로 표현된다. 그 도시는 뒤에 나올 음녀와 바벨론으로 묘사된 큰 도시와 동일한 도시일 것이다. 그것은 참된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도시를 가리킬 것이다. 역사상 로마가 바로 그런 도시이었다.

[9-10절]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온 세상 사람들은 그 두 증인의 시체를 3일 반 동안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기뻐하며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두 증인의 설교는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내용들이었고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들의 죄를 회개치 않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심한 고통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1-12절]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즐거움도 잠시 동안뿐이었다.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영 혹은 기운이 들어감으로 두 증인은 다시 살아날 것이고 구경하는 자들은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더구나 부활한 그 증인들은 예수님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할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예언이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모든 성도가 주를 영접하기 위해 하늘로 올릴 것이다.

[13-14절]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두 증인의 승천이 있을 때, 그 큰 성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파괴되고 7천명이 죽게 될 것이며,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옛날 애굽의 바로 왕이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러했듯이(출 9:27; 10:16, 17; 단 2:46-47), 이런 행위가 그들이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첫째 화와 둘째 화가 지나갔다. 첫째 화는 황충 재앙이고, 둘째 화는 유브라데 강에서의 큰 전쟁과 그 후에 있을 두 증인의 사역과 큰 지진이다. 이제 마지막 화만 남았다. 그것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계시될 것이다.

1절부터 14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전 뜰만 밟는 형식적 교인이 되지 말자. 그런 자들은 쭉정이와 같고 가라지와 같고 염소와 같다. 그들은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주님의 비유에서 등만 가지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신랑을 기다리던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고, 주께서 맡겨주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다. 사도 바울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했다(딤후 4:3-4).

둘째로, 우리는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리며 바른 목사들의 교훈을 겸손하게 또 즐거움으로 받고 행하는 성도들이 되자.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속죄신앙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늘 깨어 있으며 서로 사랑하고 선을 베푸는 자들이 되자. 그런 자들이 구원받은 표를 지닌 자들이며 환난 날에도 승리하는 자들이다.

셋째로, 우리는 진실한 증인들처럼 순교를 각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증거하자. 환난 날에는 고난을 각오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많은 형식적 교인들이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참 성도들은 승리할 것이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다시 살 것이다.

 

15-19절, 일곱째 나팔과 하늘의 찬송

[15절]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하니.

일곱 천사들의 나팔로 말미암은 종말 예언들이 하나씩 계시되는 가운데, 이제 일곱째 천사의 나팔로 말미암은 종말 예언이 계시된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외치는 소리이다. 그 내용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 하나님과 그의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며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왕노릇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16절 이하에는 하늘에 올라간 의인들의 영혼들의 화답이 있다.

세상 나라는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 주’는 주 하나님을 가리킨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역사이다.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예언하였다(단 2:4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선포하셨다(마 4:17). 신약시대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확장의 시대이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모든 자들이 다 구원받아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때, 또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것이 인류 역사의 목표이다. 하나님의 통치의 회복과 완성은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목표이다.

[16-18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24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이는]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왕노릇하심이로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로소이다 하더라.

24장로들은 하늘의 큰 소리에 화답하여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감사의 찬송을 올렸다. 24장로들은 구약교회와 신약교회를 대표할 것이다. 그들은 구약시대의 열두 지파와 신약시대의 열두 사도를 대표하는 것일 것이다. 24장로들은 하나님을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을 ‘장차 오실 자’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재림의 때가 다 되지는 않았지만, 재림의 시간을 미리 앞당겨 하나님의 통치권이 완전히 드러났음을 노래한 것이다.

24장로들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17절에 나타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큰 권능을 가지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활동하던 사탄과 악령들의 일들이 끝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하심은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요 내용이다. 18절도 계속 감사의 이유를 말한다. 24장로들은 하나님의 통치 내용에 대해 좀더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관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방인들이 분노했을 때 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죽은 자들까지도 주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심판은 철저하고 공정한 심판일 것이다. 그 심판의 결과는 보상 혹은 멸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지만, 세상을 멸망시키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24장로들의 감사의 내용과 이유이었다.

[19절]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사도 요한은 하늘의 성전이 열리는 광경을 보았다. 하나님의 성전은 천국 자체를 상징한 듯하다. 요한계시록 21:22에 보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에는 성전이 없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히브리서 9:23-24에는 하늘 성소에 대해 말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성전 혹은 성소는 천국 자체, 특히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상징했다고 본다. 요한은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도 보았고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을 보았다. 요한이 성전 안에 있는 언약궤를 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에 의거한 것임을 보인다. 하나님의 심판은 구약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공의의 율법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운 심판이다.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함을 나타낸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 나라는 마침내 주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통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전히 드러날 것이다.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자께서 통치하신다.

둘째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의인과 악인이 다 심판을 받고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철저하고 공정한 심판이다.

셋째로,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한 종들과 성도들은 칭찬과 상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한 영광의 삶을 주실 것이다. 그것은 다시 슬픔과 고통과 죽음이 없는 삶이다.

넷째로, 세상에서 악을 행하고 교회를 혼란시키고 사람들을 멸망시킨 자들은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사탄과 악령들이 들어가는 지옥에 함께 들어가 참으로 영원한 수치와 고통을 당할 것이다.

 

 

12장: 사탄이 내어쫓김

[1-2절]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사도 요한은 하늘의 한 놀라운 광경, 즉 해를 입은 한 여자의 광경을 보았다. 이 여자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가 해를 입은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의의 영광을 소유함을 나타내며, 그의 발 아래 달이 있음은 교회가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함을 나타내는 것 같고, 그의 머리에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쓴 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나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들을 나타낼 것이다. 아이를 배어 해산하려 한 것은 구약교회가 메시아를 갈망한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3-4절]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3분의 1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사도 요한은 하늘의 또 다른 하나의 광경, 즉 큰 붉은 용의 광경을 보았다. 그 용은 사탄을 가리킨다. 그것이 크고 붉은 것은 그의 세력이 크고 심히 잔인함을 나타내는 것 같고, 그의 머리가 일곱인 것은 그의 지혜가 매우 큼을 보이며, 그의 뿔이 열인 것은 그의 힘이 매우 큼을 암시하는 것 같다. 사탄은 하늘의 별 3분의 1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 그것은 사탄이 하늘의 천사들의 3분의 1을 타락시킨 것을 가리킨 것 같다. 사탄과 더불어 타락한 그 천사들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귀신들 혹은 악령들이라고 본다. 그 용은 그 여자가 낳을 아이를 삼키려 하였다. 그것은 사탄이 헤롯 왕을 통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한 일을 가리킬 것이다(마 2장).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때부터 그를 죽이려 하였다.

[5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여자가 낳은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는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리어 갔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는 원어는 “그 아이가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리어 갔더라”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가리킨다.

[6절]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신약교회가 1260일 동안 사탄의 핍박을 피하도록 광야에 하나님의 예비하신 피난처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인다. 1260일은 신약시대 전체를 가리키든지, 혹은 대환난 기간 중의 한 부분을 가리킬 것이다.

[7-8절]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하늘에서 전쟁이 있었다. 그것은 천사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 곧 사탄과 그의 사자들과 싸운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용과 그의 사자들은 이기지 못하여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했다. 이 전쟁은 언제 일어났는가 혹은 언제 일어날 것인가? 천사 미가엘과 사탄의 전쟁이 일어난 때는 아마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완성된 직후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셨고(눅 10:18) 또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2:31). 사탄의 권세는 죄와 사망의 권세인데,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완성으로 사탄은 하늘에서 쫓겨났다.

[9절]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큰 용은 옛날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범죄케 했던 옛 뱀, 곧 마귀 혹은 사탄이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이다. 사탄과 그의 미혹을 받은 천사들은 다 땅으로 쫓겨났다. 사탄과 악한 천사들은 지금 성도들을 속이고 그들을 시험에 떨어지게 하고 그들을 위협하고 핍박한다. 그들은 악하고 거짓되고 더러운 영들이다. 사탄과 악령들은 항상 이 세상을 속이고 더럽히고 불행케 해왔지만(엡 2:2), 그들은 특히 구원받은 성도들을 믿음을 잃게 하고 범죄케 하고 멸망시키려 열심을 내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했고(벧전 5:8), 사도 바울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했다(엡 6:10-12).

[10-12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이는]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쫓겨났음이라.] 또 여러 형제가[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때문에]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사도 요한이 들은 하늘의 큰 음성은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는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영혼들의 음성이 분명하다. 그 음성의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밤낮 성도들을 참소하던 사탄이 쫓겨났기 때문이었다. 천국에서 사탄의 추방으로 하나님의 통치권이 나타났다.

또 그들의 음성은 진실한 성도들이 승리했음을 말하였다. 진실한 성도들은 죽기까지 주님을 따랐고 그를 믿었고 그를 사랑했다. 로마서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그들의 승리의 비결 혹은 근거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어린양의 피 때문이고, 둘째는 그들의 증거하는 말씀 때문이다. 어린양께서 피 흘려 사신 자들은 실패치 않는다. 그의 피는 효력이 있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고 말씀하셨다. 또 복음의 말씀도 성도의 승리의 힘이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말했다(행 20:32).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는 성도들은 즐거워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밤낮 성도들을 헐뜯고 비난하던 사탄이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탄이 땅에 내려왔고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성도들을 대적할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사는 성도들은 핍박과 고난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13-17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19)

사탄은 성도들을 핍박하지만, 성도들에게는 그 핍박을 피할 길도 있다. 큰 독수리의 두 날개는 하나님의 강한 보호의 날개이다.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은 피할 곳을 가지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심지어 땅도 성도들을 도와 사탄의 악한 활동을 막는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신약교회시대 혹은 대환난 기간의 일부인 삼년 반 즉 1260일을 가리킬 것이다. 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표현은 대환난의 시작과 강화와 중단을 묘사하는 것 같다.

사탄은 진실한 성도들과 싸우려고 준비하였다.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이미 죽은 자들과 순교자들을 제외하고 지상에 살아 있는 진실한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롭게 사는 자들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탄과 악령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지금도 하나님과 참된 교회 즉 참된 성도들을 대적하고 세상을 속여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들과 사탄의 큰 싸움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탄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강해야 하고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과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엡 6:10-11).

셋째로,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한다. 앞서간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며 속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사탄을 이기고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도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죽도록 충성하자.

 

13장: 두 짐승

1-10절, 첫째 짐승

[1-2절] 내가 [바다 모래 위에 서서](전통사본)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본장의 두 짐승의 환상에서 그 첫째 짐승은, 사도 바울의 예언한 대로, 주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불법[죄]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라고 생각된다(살후 2:3). 그것은 어떤 독재적 국가나 강력한 독재적 통치자일 것이다. 이 짐승이 바다에서 나오는 것은 그 국가 혹은 인물이 열국들 중에서 나타날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 짐승의 일곱 머리와 열 뿔은, 17장에 설명되어 있는 대로, 그가 많은 지혜와 능력이 있음을 보인다. 그 짐승의 머리들에 참람된 이름들이 있는 것은 그가 심히 불경건하고 신성모독적임을 나타낸다. 옛날 로마 황제들은 신적 명칭을 자신에게 돌렸었다. 천주교회의 교황들도 신성모독적이게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자신들에게 돌렸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때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도 신성모독적일 것이다. 또 그 적그리스도는 표범같이 날쌔고 곰같이 덮치고 사자같이 찢는 힘과 파괴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것의 배후에 사탄이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줄 것이다. 그 적그리스도는 사탄의 도구인 것이다.

[3-4절]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본문은 적그리스도의 나라의 한 지도자가 죽게 되었다가 회복되므로 온 땅이 이상히 여겨 그 나라를 따르고 사탄이 그 나라에 권세를 주므로 온 세상의 사람들은 사탄에게 경배하며 그 나라에 경배하며 그를 높이고 추앙할 것을 보이는 것 같다. 온 세상은 불경건하고 반기독교적이게 될 것이다. 사탄 숭배는 보편화될 것이다.

[5-7절]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향해서와 하늘에 거하는 성도들을 향해서 참람된 말들을 많이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 끝날에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4:15). 또 바울도 주의 재림 직전에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살후 2:3-4). 또 적그리스도의 나라는 42개월 즉 3년 반 동안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들, 즉 온 세계를 다스릴 권세를 받을 것이며 또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될 것이다. 그때 성도들은 큰 핍박과 감금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 3년 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성도들이 순교하는 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참된 성도들은 결코 그 악의 세력에게 지지 않는다. 성도들은 죽음으로써 믿음을 지키며 승리할 것이다.

[8-10절]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창세 이후로’라는 말은 ‘죽임을 당한’이라는 말에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짐승의 제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어느 시대에나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구원을 받는다. 속죄신앙이 참 신앙이다. 우리의 의(義)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성도가 자신의 죄와 세상의 악과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의 피밖에 없다. 그러나 속죄신앙이 없는 자는 실패할 것이다. 구원은 종교적 형식에 있지 않고 속죄신앙 여부에 있다. 속죄신앙을 가진 자들만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될 것이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에게 굴복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므로 악한 자들의 악에 대해 공의로 징벌하실 것이다. 성도들을 사로잡는 적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사로잡힐 것이며 성도들을 칼로 죽이는 자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의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믿음이다. 진실한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따르며 고난 중에 참고 기다려야 한다.

1절부터 10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속죄신앙을 가져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의와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우리는 그 복음 신앙, 속죄신앙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바른 신앙을 위해 고난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주 예수의 재림 직전에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이며, 그 적그리스도는 심히 불경건하고 불법할 것이며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항상 고난과 핍박과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

셋째로,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끝까지 참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만 믿을 것이다. 환난 시대의 성도의 덕은 인내와 믿음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의 재림과 천국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11-18절, 둘째 짐승

[11-12절]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사도 요한은 또 다른 짐승을 보았는데, 그것은 새끼양 같았다. 이 둘째 짐승은 ‘거짓 선지자’로 불리며(계 16:13; 19:20; 20:10), 배교한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것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은 그것의 근원을 보인다. 배교한 교회는 세상에 속한다. 그것이 어린양같이 두 뿔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교회인 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하는 말은 사탄의 말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배교한 교회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의 권세를 가지고 행하고 사람들을 적그리스도의 나라에 충성하고 복종하게 한다.

[13-15절] [그 짐승이]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주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배교한 교회는 기적을 행하는 은사주의 교회이다. 주께서는 재림 직전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24). 사도 바울도 “악한 자의 임함은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라”고 예언하였다(살후2:9 -10). 배교한 교회는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하며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을 죽일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16-18절]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니라.

그 배교한 교회는 사람들로 오른손에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 그 표 없이는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다. 이런 일은 장차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오늘날 벌써 이런 유의 통행증이 특별한 곳들에서는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짐승의 숫자 666은 무슨 뜻인가?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라틴어는 글자로 수를 표시한다. 예컨대, 히브리어로 ‘로마 사람’(로미시), ‘로마 왕국’(로미스)이나 헬라어로 ‘이탈리아 교회’(이탈리카 에클레시아), 또 라틴어로 교황을 가리키는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 vicarius filii dei) 등은 다 666이 된다. 종교 개혁자들, 루터와 칼빈, 존 낙스 등과 존 웨슬리와 요나단 에드워드 등은 로마 천주교회와 교황을 그 짐승으로 보았다. 또 다른 이들은 666이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나라나 인물을 가리킬 것이라고 본다.

11절부터 1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은사주의, 기적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주의 재림 직전에 배교한 교회의 한 특징은 은사주의적이다. 우리는 기적들과 초자연적 은사들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의 교훈과 바른 삶이 중요하다.

둘째로, 우리는 특히 우상숭배를 조심해야 한다. 주의 재림 적전에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그 우상에게 경배케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위협 속에서도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주의 말씀대로 자신을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각오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비록 주의 재림 직전에 죽음이나 상거래 중지의 위협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바른 믿음을 지켜야 한다.

 

 

14장: 구속받은 성도들

14장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 재앙의 계속으로 큰 용과 두 짐승들의 핍박 속에서도(12-13장) 구속받은 성도들이 승리할 것을 증거한다.

1-5절, 구속받은 성도들

[1-3절]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14만 4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사도 요한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선 것을 보았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시온산은 하늘에 있는 시온산 곧 천국이다. 히브리서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또 사도 요한은 그와 함께 14만 4천명의 성도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14만 4천명의 성도들은 본서 7장에 증거된 대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이다. 그들은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 즉 교회를 가리킨다. 그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소속과 소유권을 나타낸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자들이다.

사도 요한은 또 하늘에서 나는 큰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았으며 거문고 타는 자들의 거문고 타는 소리와 같았다. 그것은 분명히 14만 4천명의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의 소리이었다. 참된 성도들은 지상과 천상에서 찬송을 부를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 노래는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14만 4천명의 성도들밖에는 배울 수 있는 자가 없는 새 노래이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좋아하며 불렀던 노래들, 민요든지 유행가든지, 그것들은 다 옛 노래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것들이 헛되다는 것과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심지어 죄악되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노래를 좋아하지 않으며 또 부르기를 원치 않는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새 노래를 부른다. 새 노래는 구원의 노래이다.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속죄신앙을 가진 자들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새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또 증거하는 노래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새 노래를 배우고 그것을 부르고 그것을 사랑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시편 98: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4-5절]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예수로 말미암아]20) 구속(救贖)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본문은 구속(救贖)받은 성도들의 특징들을 묘사한다. 첫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순결한 자들이다.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이들은 여자들로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했으니 이는 그들이 처녀임이라.” 여자들은 세상을 가리킨다. 참 성도들은 구원받은 후 다시 죄악되고 멸망할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과거에 술 마시고 방탕하였을지라도, 이제 그들은 다시 그런 세상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이 세상을 사랑했다면, 그들은 자신의 몸을 더럽힌 여자와 같았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 말하였다(고후 11:2-3). 또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납한 것을 지적하며 책망하고 바르게 믿음 생활하기를 권면하였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모든 잘못된 사상과 교리, 모든 잘못된 행위와 풍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섬기며 경배하며 또 오직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온전한 뜻만 믿고 그를 따르며 섬겨야 할 것이다.

둘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원문). 우리는 사람을 따라가는 자들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으며 목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며, 그의 말씀과 명령이 성경에 있으므로 성경말씀만 믿고 순종하며, 목사의 성경적 교훈을 존중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바른 태도이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그의 말씀만 따라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의 명령이 보이는 대로, 그가 어디로 가시든지 그를 따라가는 것이 순종의 삶이다. 그러나 주를 따라가는 것은 항상 기쁘고 즐겁고 평안한 길만이 아니다. 주를 따라가는 길에는 때때로 수고와 고난과 핍박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의 교훈대로 즐거이, 자원함으로 따라가야 한다.

셋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첫 열매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피조 세계의 회복을 계획하셨고, 택하신 사람들을 먼저 구원하셨다. 그들은 첫 열매들과 같다. 성도들의 구원이 충만하게 성취되면, 온 세상 만물이 회복되며 새로워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넷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 구속받은 성도는 거짓말하지 않는 자로 증거되었다. 거짓은 사탄의 죄악이며 사탄의 종들의 특징이고, 진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들의 특징이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다(계 21:8, 27; 22:15). 또 구속받은 성도는 흠 없는 자로 증거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흠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것은 우리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이었다(엡 1: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었다(엡 5:26-27). 사도 바울은 우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 빛들로 나타나야 한다고 교훈했고(빌 2:15),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라면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했다(벧후 3:14).

1절부터 5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늘의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으며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한 십사만 사천 명의 성도들은 신앙의 순결성을 지켰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대로 따라간 자들이며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고 흠이 없는 자들이었다. 오늘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땅에서 구속받은 저 십사만 사천 명의 성도들의 모습을 본받자. 우리는 신앙의 순결성을 지키자.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지키자. 또 주님께 순종하며 진실하게, 흠 없이 살자. 그리고 항상 새 노래, 즉 구원의 노래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자.

 

6-12절, 세 천사들의 외침

[6-7절]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사도 요한은 온 세계에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공중에 날아가는 한 천사를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계시하시기 위해 천사들을 사용하신다(계 1:1; 8:2; 10:1; 16:1).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신속히 수행함을 상징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다. 그것은 어느 한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복음이다. 그 효력은 영원하다. 그것은 사람에게 영원한 천국과 영생을 주는 복음이다. 그것은 특히 마지막 심판 전에 온 세계에 증거되어야 할 복음이다.

그 천사는 큰 음성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천지와 바다와 샘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에게 경배하라고 외쳤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매우 근본적인 진리들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다(잠 1:7; 9:10). 거기에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도 가능하다. 또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한다. 또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에게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죄인들에게 필요한 근본적 진리이다.

[8절]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사도 요한은 다른 한 천사 곧 두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들었다. 그 외침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내용이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라고 두 번 반복한 것은 그 무너짐의 확실함을 나타낸다. 큰 성 바벨론은 마지막 날에 확실히 무너질 것이다. 이 바벨론은 17:5, 18에서는 땅의 임금들과 음행하는 큰 음녀요 그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말했고, 19:3, 10에서는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해 부요함을 얻었던 크고 견고한 성이라고 말했고, 16:19에서는 일곱째 대접 재앙에서 큰 지진으로 인해 세 갈래로 무너질 큰 성이라고 말했다. 그 성은 무너질 것이다.

이 큰 성 바벨론에 대해서는 성경 주석가들의 해석이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로마 제국을 가리킨다고 보고(헹스텐버그),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이 세상을 가리킨다고 본다(헨드릭슨, 박윤선). 또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로마 천주교회를 가리킨다고 보고(매튜 풀, 벵겔, 알포드, 반즈),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미래의 배교한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포셋, 렌스키, 비더울프, 김응조). 이 마지막 두 견해 중 하나가 적절해 보인다. 장차 배교한 기독교회는 로마 천주교회와 연합하여 한 교회를 이룰 것이라고 본다. 짐승을 탄 음녀(17:3)인 이 바벨론은 세속화된 배교한 교회를 가리키며 그것은 아마 장차 로마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큰 성 바벨론은 모든 나라를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먹였다. 여기의 ‘음행’은 육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둘 다 가질 것이다. 배교한 교회는 음행의 풍조를 퍼뜨리는 일에 앞장 설 것이다. 또 그 교회는 이단들을 포용하고 이방 종교들을 포용하는 신학적 포용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의 교회가 될 것이고, 또 물질적인 부요와 육신적인 향락을 조장하는 세속화된 교회가 될 것이다.

옛날 로마 천주교회는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하였었다. 그것은 큰 성 바벨론과 같았다. 그래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교황청이야말로 성경에 예언된 그 바벨론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늘날 온 세계의 배교한 교회들의 연합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또다시 로마 천주교회와 연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세계적인 배교한 교회들의 중심에 또다시 로마의 교황이 서게 되리라고 본다. 또다시 로마가 세계의 종교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배교한 교회는 망하고 말 것이다.

[9-11절]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사도 요한은 또 다른 천사 곧 세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들었다. 그것은,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배교한 교회의 교인들 곧 신앙의 변절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한다. 그는 비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고 비진리와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을 버린 자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잔을 받을 것이며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고통의 형벌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이다.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미래의 사실들이 이러할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오직 인내가 필요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義)이며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죄이다. 성도는 은혜로 구원받은 자이지만, 의로운 행위로 그 구원을 증거해야 한다. 행위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나 구원의 증거가 된다. 사람이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의로운 행위 없이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 가운데 살 수 없다. 죄 가운데 사는 자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구원받은 자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모든 죄와 싸우며 모든 죄를 떠날 것이다. 또,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참 신앙은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다. 그것이 보수 신앙이다. 보수 신앙은 성경말씀대로 믿고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6절부터 12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 선포된 영원한 복음, 곧 속죄의 복음,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복음을 믿고 확신하자. 우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경배하며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을 구별하는 잣대가 된다.

둘째로,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배교한 교회들이 결국 망하게 될 것을 알자. 우리는 장차 멸망할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하고 또 성경적 교훈의 터 위에 세워지고 그 교훈만을 전하고 가르치고 그 교훈 안에서 양육되는 바른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우리는 배교한 교회들의 연합운동을 배격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끝까지 인내로써 바른 믿음을 지키고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자. 바른 믿음이란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가리킨다. 보수신앙은 그 믿음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또 우리는 돈과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며 음란한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거룩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끝까지 실천해야 한다.

 

13-20절,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됨

[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저희는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며 저희의 행한 일이 저희와 함께 따르리라]21) 하시더라.

‘이후로[이제부터]’라는 말은 ‘복음 신앙을 가진 이후부터’라는 뜻이라고 본다. 복음 신앙은 곧 구원이 되므로 복음을 믿고 죽는 자는 확실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므로 복되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죽음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은 대환난 시대에 순교자들이 많을 것을 암시한다(계 6:11). ‘주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과의 영적 연합 속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주 밖에서, 복음 신앙 없이 죽는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모든 믿지 않는 죄인들에게 죄의 값인 죽음 곧 단순히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눅 16:19-31).

그러나 주 안에서 죽는 것은 큰 행복이다. 본문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그가 그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수고와 고생이 많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했다(시 90:10).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8). 세상은 수고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에게는 참 안식이 있다. 히브리서 4:3, 10-11,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 안식의 땅이 바로 천국이다. 천국은 평안이 넘친 세계이다.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복된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이 세상에서 행한 선행들에 대해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행이란 천국에 들어갈 만한 가치도 없는 누추하고 얼룩지고 보잘것없는 것이며 그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귀히 보시고 상 주실 것이다. 고린도후서 5:8-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4-16절]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利)한[날카로운]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사도 요한은 흰 구름 위에서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날카로운 낫을 들고 땅의 곡식을 거두는 인자(人子) 같은 이를 보았다. 요한이 본 그 사람은 구름 타고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곡식을 베는 것은 성도들의 구원의 때 곧 그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가 된 것을 상징한다. 심판의 때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때이다. 가을에 곡식이 다 익으면 추수하여 창고에 들이듯이,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천국으로 들이신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성도의 가장 큰 소망이요 기쁨의 이유이다.

[17-20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利)한[날카로운] 낫를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利)한[날카로운]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利)한[날카로운]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천 6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날카로운 낫으로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는 것은 땅의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상징한다. 그들을 포도송이에 비유한 것은 그들이 큰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피가 말굴레 즉 말의 목까지 튀는 것은 온 세상에 많은 피가 흘려질 것을 암시한다. 인류의 마지막 전쟁은 많은 피를 흘리는 처참한 전쟁이 될 것이다. 1,600스다디온은 약 295km로서 이스라엘 땅의 남북의 길이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땅 전체에 많은 피가 흘려질 것이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심히 두렵고 그들이 당할 재앙은 매우 처참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는 심히 두려울 것이다.

13절부터 20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복됨을 깨닫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복음 신앙을 가지고 죽는 것은 복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참된 안식이 있고 그 선행에 대한 상급이 있기 때문이다. 성도에게는 천국의 안식이 있다. 또 마지막 심판 때에 주께서는 성도의 선행에 대해 상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고 오직 의와 선을 행하자.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치 않고 섬기지 않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믿지 않고 살다가 죽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온 세상에 만연한 불경건과 우상숭배, 미움과 음란과 거짓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이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피를 흘리는 전쟁을 동반하는 심판이며 사람들의 피는 온 땅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두려워해야 하며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15장: 승리한 성도들의 노래

[1절]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일곱 천사들이 가진 일곱 재앙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내리실 마지막 재앙들이다. 그것은 일곱 대접 재앙들로서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들보다 더욱 심해진 재앙들이다.

[2-4절]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사도 요한은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을 보았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666)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대환난의 시대를 통과하고 승리한 성도들의 노래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마지막 재앙으로 인해 두려움을 가지지 않도록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뜻이 있다고 본다. 지금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은 미래의 승리를 앞당겨 봄으로써 위로를 받고 더욱 담대함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노래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라고 불리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불렀던 노래의 제목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이한 능력으로 도우셔서 그들을 위협하던 악한 세력을 완전히 파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한 노래이었다. 물론 신약교회가 부를 노래는 모세의 노래가 아니고 어린양의 노래이지만, 그 둘의 내용은 똑같다. 신약교회가 받은 구원은 대환난의 세상으로부터의 구원,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원이지만, 그 내용은 동일하다.

그 노래의 첫 번째 내용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이 크고 놀랍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크고 놀라운 일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멸하실 것이고,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은 우리로 적그리스도와 그 우상을 이기게 하실 것이다.

두 번째 내용은 만국의 왕이신 하나님의 길이 의롭고 진실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왕이실 뿐 아니라, 의롭고 진실하신 왕이시다. 그는 의롭고 진실하게 세상을 다스리시며 심판하신다. 그는 불의하며 악하고 거짓된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의롭고 진실한 성도들을 환난에서 지키시며 구원하신다.

그 노래의 세 번째 내용은 하나님께서만 거룩하시고 그의 의로우신 행위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만국의 모든 사람이 그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고 그에게 경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경외심이며 특히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와 심판을 경험한 자들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다. 악한 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경배와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겨야 한다.

[5-8절]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사도 요한은 승리한 성도들의 노래하는 광경을 본 후에 앞에 보았던 그 천사들을 보았다. 하늘에 증거의 장막이 열리고 일곱 재앙들을 가진 일곱 천사들이 그 성전으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은 그들이 수행하는 심판이 얼마나 성결하고 영광스러운 사역인가를 나타낸다. 그들은 또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고 또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을 받았다. 금띠와 금대접도 그들이 수행하는 심판의 위엄성과 영광을 나타낸다. 하늘의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인하여 연기가 가득하였고 일곱 재앙들이 마치기까지는 아무도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길이 없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들만 남아 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은 참 성도들이 대환난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핍박을 이기고 마침내 천국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를 것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과 거룩한 심판은 두려운 사실이지만, 승리자들의 노래하는 광경은 대환난을 통과할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된다. 성도들은 반드시 사탄과 세상과 악을 이길 것이다. 로마서 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요한일서 5:4-5,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성도는 세상을 이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만 섬기며 의지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려고 애써야 한다. 참 믿음과 거룩과 의와 선함은 성도의 정상적 삶의 덕이다. 이와 같이 살아서 우리도 천국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되자.

 

16장: 일곱 대접

1-11절, 첫째 대접부터 다섯째 대접까지

[1절]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일곱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의 마지막 재앙이다(15:1, 7).

[2절]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악하고 독한 종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났다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들은 이 재앙에서 면제됨을 암시한다. 그 재앙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과 악인들을 구별하신다.

[3절]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바다는 심각한 적조현상을 나타냈고 모든 바다 생물들은 죽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해산물의 공급 중단으로 큰 고통을 당할 것이다.

[4절]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물은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몸의 70퍼센트는 물이다. 사람들은 식수원들의 오염으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5-6절]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시고 보복하신다. 적그리스도와 그 나라 사람들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의인의 피를 흘린 대가로 피를 마시게 하실 것이다.

[7절]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이것은 6장에 기록된 순교자들의 영혼들의 탄원에 대한 응답과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일곱 대접 재앙으로 그 호소에 응답하셨다. 그 재앙으로 순교자들의 영혼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참되고 의로우심을 증거할 것이다.

[8-9절]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태양의 중심 온도는 약 섭씨 1,500만도로 추정되며 태양 표면의 온도는 약 섭씨 5,500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만일 태양 주위의 가스층이 대폭발을 한다면, 태양의 표면 온도는 약 섭씨 200만도로 올라간다고 한다.22) 그러지 않아도, 오늘날 지구는 이상 기온의 더위를 경험하고 있다. 그것을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만일 태양의 표면 온도가 급격히 높아진다면, 지구의 생명체들은 태양의 열기로 인해 태움을 입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앙을 받으면서도 악인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사실, 회개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때에만 할 수 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회개할 만한 때에 회개해야 한다. 이사야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우리는 회개를 뒤로 미루지 말고 항상 오늘이라는 시간에 또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할 마음을 주실 때에 즉시 회개하기를 힘써야 한다.

[10-11절]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종기’는 2절의 ‘헌데’와 같은 단어(헬코스)다. 짐승의 나라 즉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곧 어두워졌고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었다는 것은 혼란하고 쇠퇴하며 몰락하게 됨을 뜻한다. 사람들의 고통은 독한 종기와 태양 열기로 인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신다. 죄는 일시적 쾌락을 줄지 모르나, 그 결과는 재앙과 고통이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고 자기 행위들을 회개치 않았다. 넷째 대접의 경우와 같이, 그들은 회개치 않았다.

1절부터 1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공의로우시며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심을 알자. 5-6절,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사람의 판단은 불공정하고 편파적이기 쉬우나 하나님의 판단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특히 악인들에게 엄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대접 재앙은 땅, 바다, 강과 샘, 해, 짐승의 보좌에 쏟아졌다. 특히 땅에 쏟아진 재앙으로 독한 종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났다. 마지막 날 악인들은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셋째로, 사람은 회개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가능하다.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회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할 마음이 들 때 즉시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몸이 조금 아플 때라도 하나님 앞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회개할 것이 없나 자신을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교훈하시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회개하기를 힘써야 한다.

 

12-21절, 여섯째 대접과 일곱째 대접

[12절]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여섯째 천사는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테스에 쏟았는데, 그러자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다. 9:13 이하의 여섯째 나팔 재앙과 같이, 유프라테스 강은 세계사에서 마지막 세계대전의 격전지로 예언되어 있다. 강물이 마른 것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것일 것이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이란과 인도와 중국 등의 군대를 가리킨 듯하다. 여하튼 유프라테스 강이 마름으로 동서양의 연합군 즉 온 세계의 연합군의 집결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본문은 중동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을 보이는 것 같다.

[13절]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적그리스도 나라의 활동은 악령들의 활동이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들’은 그들이 자기 주장을 개구리같이 시끄럽게 떠들어댈 것이나 실상은 거짓되고 더러운 영들임을 암시한다. 그 영들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왔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말들은 악한 영들의 활동이다. 이 귀신의 영들은 온 천하에 다니며 정치가들을 충동하여 연합군을 형성하게 한다. ‘이적을 행하여’라는 말은 이 악령들의 활동은 은사주의를 동반함을 보인다. 우리는 은사운동을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여러 곳들에서 ‘여호와의 날,’ ‘주의 날’로 묘사된 그 날, 곧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다. 그 날의 전쟁은 요한계시록 19장에 증거된 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의 전쟁을 가리킬지도 모른다. 19:11, 14, 19,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15절]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적같이 오실 것이다. ‘도적같이’라는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뜻밖에 혹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을 보인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의 정상적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믿고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참된 경건과 의로운 삶을 가리킨다. 바른 믿음은 바른 삶으로 나타난다.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죄를 떠나고 의롭게 살게 되어 있다. 주 예수께서는 또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성도의 옷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義)이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 십자가의 의를 믿는 믿음을 간직해야 한다.

[16절] 세 영이[그가]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모으시더라].

‘세 영이 모았다’는 원문(쉬네가겐 sunhvgagen)은 ‘그가 모으셨다’라고 번역할 수 있고(KJV), 여기에 ‘그’는 하나님을 가리킬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동방의 왕들을 모으실 것이다. ‘아마겟돈’이라는 말은 다수 사본에는 ‘므깃도’라고 되어 있다.23) 그곳은 팔레스틴 북부, 갈릴리 호수 서편으로서 역사상 여러 전쟁이 일어났던 곳이다. 그곳은 유다 왕 요시야가 애굽 군대를 맞아 싸우다가 전사한 곳이며 그 일 후에 유다 왕국이 급속히 몰락하게 되었다고 보인다. 아마겟돈 전쟁의 예언은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 이스라엘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보이는 것 같다. 여섯 째 대접 재앙은 아마겟돈 전쟁을 위한 준비를 예언한다. 그 전쟁 자체는 아마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의 큰 음녀 곧 바벨론의 멸망과 관계되고 특히 19장에 백마 타고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될 것이다.

[17-21절]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일곱째 천사는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았다. 그때 성전에서부터 ‘되었다’는 큰 음성이 들렸다. 그것은 ‘다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일곱째 대접 재앙으로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이다. 일곱째 대접의 재앙은 번개와 뇌성과 음성들을 동반한 큰 지진과 우박의 재앙이다. 그 지진은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 될 것이다.

큰 성 바벨론, 즉 적그리스도 나라의 수도는 그 지진으로 인하여 세 갈래로 갈라지고 그 외의 지구의 모든 성들도 그 지진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악들을 안 보시는 듯할지라도 다 보시고 아시고 마지막 날에 다 보복하시는 것을 증거한다. 하나님 앞에 피할 수 있는 죄인은 아무도 없다. 이 마지막 큰 지진으로 인해 섬들과 산들도 부서지고 가라앉고 사라질 것이다. 또 큰 우박이 내릴 것인데, 그 우박의 무게는 한 달란트 즉 약 30kg이나 될 것이다. 이런 무게의 큰 우박이 떨어지니 그 재난이 얼마나 극심할 것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역시 회개치 않고 하나님을 훼방하기만 할 것이다.

12절부터 2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적그리스도와 배교한 교회를 조심해야 한다. 배교한 교회는 이적을 행하는 은사주의 교회이다. 은사주의 목사들의 나타남은 성경에 예언된 바이다(마 24:24; 살후 2:9-11). 우리는 그런 교회들과 목사들을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 성경적 신앙, 속죄신앙, 바른 신앙, 옛신앙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역사적 기독교 신앙, 성경적 신앙, 속죄신앙, 바른 신앙, 옛신앙을 지키고 성경말씀의 교훈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힘쓰는 것이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회개할 만한 때에 열심으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치 못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에는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힘써 회개하자. 히브리서 12:15-17,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17장: 큰 음녀

1-6절, 큰 음녀에 대한 환상

[1-2절]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큰 음녀는 많은 물 위에 앉은 자로 증거되었다. ‘많은 물’은 15절에 증거하기를,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상징적으로 표현된 그 큰 음녀는 온 세상 나라들과 백성들 위에 역사하는 자이다. 그의 영향력은 세계적이다. 그는 세계적인 인물 혹은 단체이다. 특히 그는 세계의 정치가들과 결탁되어 있다. 그의 음행은 영적인, 육적인 의미를 다 포함하는 것 같다. 그는 사상적으로 참된 종교와 세속주의를 혼합시키고 도덕적으로도 음란을 조장하는 자인 것 같다. 본문은 온 세계의 정치가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상적, 도덕적 음행에 빠질 것을 암시한다.

본장의 큰 음녀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그 큰 음녀를 악인들의 세상으로 보는 견해이다.24) 그러나 그 음녀는 세상에 거하는 자들을 그 음행의 포도주로 취하게 한 자이며(2절), 일곱 산 위에 앉은 자이며(9절),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며(18절), 하나님의 백성은 거기서 나와야 할 자들임을 생각할 때(18:4), 그는 단순히 악인들의 세상과 동일시되기 어려워 보인다.

둘째는 그 큰 음녀를 로마 천주교회로 보는 견해이다.25) 그 근거는, 첫째, 그가 정치 권력과 결탁되어 있다는 것이다. 3절,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천주교회는 역사적으로 정치적 세력 집단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참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요한복음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둘째, 천주교회는 기독교회의 배교와 이방종교화(마리아 숭배 등)의 결정체이다. 천주교회는 온 세계를 영적인 간음의 포도주로 취하게 하는 자이다(2, 5절). 셋째, 천주교회는 역사상 성도들의 피를 많이 흘렸다. 6절, “내가 보니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순교자들]의 피에 취한지라.” 넷째, 로마는 일곱 산 위에 위치하고 있다. 9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그 산들의 이름은 팔라티누스, 퀴리날리스, 아벤티누스, 샐리우스, 비미날리스, 에스퀼리누스, 카피톨리누스이다.26) 그래서 옛날부터 사람들은 로마를 ‘일곱 언덕’(septem colles) 혹은 ‘일곱 언덕의 로마’(septicollis Roma)라고 불렀다.27)

셋째는 그 큰 음녀를 말세에 나타날 ‘배교한 교회’로 보는 견해이다.28) 그러나 이 견해는 배교한 교회가 왜 일곱 산 위에 위치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장차 로마 천주교회가 모든 개신교회들을 흡수하여 배교한 교회로 진전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둘째와 셋째의 견해는 하나가 될 것이다.

[3절]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천사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요한을 광야로 데리고 갔다. 광야는 참 교회가 사탄의 핍박을 피하여 숨은 곳이었다(계 12:6, 14). 거기서 요한은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탄 것을 보았다. 여자가 탄 그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가리킨다. 여자가 그 짐승을 탄 것은 배교한 교회가 적그리스도의 정치 세력과 결탁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짐승의 색깔이 붉은 것은 그것의 호화롭고 사치스런 세상적 영광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거스르는 자임을 나타낸다.

[4절]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여자가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은 것이나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진 것은 다 세상적 부귀와 영광을 나타낸다. 배교하고 타락한 교회는 세상적으로는 부요하고 사치와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가 손에 든 금잔 안에는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였다. 그 여자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배교한 교회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에게는 영육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만 가득할 것이다. 그 교회는 신앙적으로 성경의 바른 진리를 저버렸고 도덕적으로도 음란하고 부패할 것이다.

[5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사도 요한이 본 그 음녀의 이마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비밀’이라는 이름은 그의 정체가 드러나 있지 않고 감취어 있음을 나타낸다.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분별력이 아니고서는 그 정체를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큰 바벨론’이라는 명칭은 역시 로마를 암시한다. 바벨론이 옛날 바벨론 제국의 수도이었듯이, 로마는 사도 요한 당시 로마 제국의 수도이었다. 그것은 큰 바벨론이라고 불릴 만했다.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이름은 그 음녀가 영적으로 모든 우상숭배와 거짓 사상들의 원천이며 또한 육적으로 모든 음란의 원천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타락한 종교가 오히려 세상을 부패시킬 것이다.

[6절]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사도 요한은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 혹은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여 있음을 보았고 그것을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겼다. 로마 천주교회는 역사상 무수히 많은 진실한 성도들과 종들을 죽였다. 마지막 시대에도, 그 배교한 교회는 많은 진실한 성도들과 죽도록 충성하는 순교자들의 피를 흘릴 것이다. 그러나 참된 성도들과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행위는 그 교회가 참 교회가 아니고 거짓 교회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1절부터 6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에 예언된 음녀는 배교한 교회로서 로마 천주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 로마 천주교회(RCC)는 장차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연합하여 세계의 모든 교회들을 포괄하는 세계적 교회를 형성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세계교회협의회와 천주교회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 두 집단은 배교적 집단들이다.

우리는 배교한 교회들의 영적인 음행과 육적인 음행을 주의해야 한다. 영적인 음행은 이단, 우상숭배, 배교, 자유주의, 세속주의, 물질만능주의를 받아들임으로 우리의 사상과 인격이 죄로 더러워지는 것을 가리킨다. 육적인 음행은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을 가리킨다. 이 세상은 항상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다. 우리는 음란을 멀리하고 거룩해야 한다. 결혼한 이들은 부부의 관계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유지해야 하고, 결혼하지 않은 자들은 자기의 몸과 그 순결성을 깨끗하게 지키며, 눈으로 보는 것과 이성 교제나 동성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

 

7-18절, 큰 음녀가 받을 심판

[7-8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지금]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지금]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적그리스도의 나라는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우리는 본 예언이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으나, 역사상 적그리스도적 성격을 나타낸 나라들은 종종 있었다. 옛날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강력한 나라이었다. 또 헬라 시대에 수리아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적그리스도적 인물이었다(단 8:9). 사도 요한 당시 로마 제국의 도미시안 황제(주후 81-96년)도 초대교회와 성도들에게 무서운 핍박자이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이 책을 쓸 시점에는 아직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없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의 나라는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올 나라로 묘사되었다. 이 나라는 마귀의 권세를 가진 독재정권일 것이다.

[9-12절]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본문은 그 짐승의 일곱 머리가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라고 설명해준다. 이것은 로마를 가리키는 것 같다. 예로부터 로마는 ‘일곱 언덕’ 혹은 ‘일곱 언덕의 로마’라고 불리었다. 만일 그 나라가 로마라면, 이 예언은 배교한 교회가 로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교회일 것이며 또 적그리스도의 나라도 그곳을 중심으로 삼고 활동할 것이라는 예언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시대처럼 로마와 로마 천주교회는 또 다시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가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일곱 왕이 일곱 나라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 일곱 나라들 중 이미 망한 다섯은 아마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등 다섯 나라일 것이며, 하나는 아마 로마제국을 말하며, 아직 오지 않은 다른 하나는 미지수인데 아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세계적인 강력한 독재 정권일 것이다.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이 짐승은 여덟째 나라이며 그것은 그 일곱 중에 속한 자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 나라를 ‘다시 나타날 로마제국’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오늘날 유럽연합(EU)이나 러시아, 중국, 이슬람 세계 등을 주목한다. 열 뿔은 거기에 속한 많은 나라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열’(10)은 아마 상징적 숫자일 것이다.

[13-14절]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적그리스도의 나라들은 재림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싸울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싸우실 싸움이다. 이것은 아마겟돈 전쟁과 동일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싸움에서 어린양은 그들을 이기실 것이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또 어린양과 함께 있는 자들, 곧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입고 진실한 자들은 이길 것이다.

[15-18절]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또 네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그 큰 음녀 즉 배교한 교회는 마침내 적그리스도의 나라에 의해 망하고 말 것이다. 교회가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벗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 음행으로 간주하시고 징벌하신다. 야고보서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몽둥이로 들어 타락한 교회를 치실 것이다. 배교한 교회는 세상보다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교한 교회의 죽음과 멸망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되어지는 일이다. 적그리스도의 나라 지도자들이 그 배교한 교회를 미워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자기들의 뜻대로 할 마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7절부터 1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배교한 교회는 망할 것이다. 그 교회는 물질적 부요와 세상 권세를 누릴 것이지만, 오히려 영적으로, 육적으로 음란하다가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나라는 얼마 동안 그 배교한 교회를 사용하다가 마침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 가운데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교한 교회에 속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자들, 곧 그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은 참된 성도들은 이길 것이다. 우리가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배교한 교회의 핍박과 미혹에서 승리하려면, 우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며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속죄신앙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으며 신구약성경의 모든 말씀과 그 교훈을 다 믿고 또 온전히 복종하며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8장: 바벨론의 멸망

1-8절, 바벨론의 멸망과 그 이유

[1-3절]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이는]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치부하였음이라] 하더라.

주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배교한 교회는 앞장에서 말한 큰 음녀이며 13장에 예언된 두 짐승 중 두 번째 짐승과 동일하다고 본다. 그것은 17:5에는 큰 바벨론으로 표현되었다. 그 배교한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확실히 멸망할 것이다. 그 멸망의 이유는 그 교회가 각종 더럽고 가증한 영들의 집합소가 되고 모든 형식적 교회들과 종교들을 통합할 것이기 때문이며, 또 땅의 왕들과 상인들로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했기 때문이다. ‘사치’라는 원어(스트레노스)는 ‘사치’라는 뜻도 있으나 ‘음탕함’이라는 뜻도 있다(BDAG, NASB). 그 음행이란 영적인, 육적인 뜻을 다 가진다고 본다. 그 교회는 거짓 사상들과 이념들과 종교들로 만국을 미혹시킬 것이다. 즉 그 배교한 교회는 신학적 포용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 즉 혼합주의의 입장을 취할 것이다. 또 그 교회는 거룩과 의로 이 세상에 빛이 되고 세상을 인도하기는커녕 도리어 음란을 조장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 로마 천주교회에서 상당히 나타났다. 로마 천주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이방종교들의 풍습들을 받아들여왔다. 그 대표적 행위가 마리아 숭배이다. 또 로마 천주교회는 도덕적으로 매우 음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황청은 오랫동안 매우 음탕하고 난잡하였다.29) 또 오늘날 개신교회들도 매우 부패하고 해이해졌다. 많은 교회들이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수용하고 있다. 또 역사적 대교단들의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심지어 종교다원주의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또 오늘날 다수의 교회들은 낙태와 동성애를 용납하고 있다. 심지어 동성애 목사들이 나타나고 동성애 결혼식을 주례하는 일들이 빈번해진다.30) 이것은 바로 그 음녀의 교회의 모습이다.

[4-8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는]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기억하심이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배교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그 배교의 죄와 그 영적인, 육적인 음행에 참여하지 말고 거기에서 분리되어 나와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그 배교한 교회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그 배교한 교회와 정신적으로 분리할 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적으로도 분리해야 할 것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성경은 우리에게 악과 타협치 말고 분리하라고 교훈한다. 로마서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요한이서 7-11,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바벨론의 멸망의 이유는 그 죄가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에게 행위대로 갑절이나 갚으실 것이다. 그는 그 교회가 자신을 영화롭게 하며 사치한 만큼 그에게 고난과 애통으로 갚으시며 그 교회가 자신을 여왕으로 높이고 자만한 만큼 하루 동안에 사망과 애통과 흉년의 재앙들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갑작스럽게 임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불로 그를 사르실 것이다.

주 예수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배교한 교회, 영적인 육적인 음녀와 같은 그 교회는 마침내 갑작스럽게, 하루 동안에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그가 누렸던 세상적 부귀와 영광과 쾌락도 한순간에 끝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거기서 나와야 한다. 그들의 죄와 멸망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단지 정신적으로만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분리되어야 한다. 우리는 순결하고 흠 없는 온전한 교회를 건립해야 한다. 우리는 배교와 타협하지 말고 배교와 분리된 교회를 세워야 하고 지켜야 하며 핍박과 순교를 각오하는 소수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

 

9-24절, 바벨론 멸망의 모습

[9-10절]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배교한 교회라고 보이는 큰 음녀와 음행을 하고 그로 인해 부요와 사치를 누릴 세상의 정치가들은 그것이 불타며 망하는 광경을 보고 울며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을 무서워할 것이다. 그들은 멀리 서서 부르짖기를, 크고 견고한 그 성에 일시간에 심판이 이르렀고 그 성이 재앙과 화를 당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 성의 멸망은 일시간에 돌연히,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10, 17, 19절).

[11-14절] 땅의 상고[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놋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이런 묘사들을 보면, 큰 음녀 곧 바벨론이 어떤 부요한 세상 나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온 세계의 상인들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들이 없을 것이므로 그 성의 멸망을 애통할 것이다. 그들이 취급했던 물품들은, 첫째로 금, 은, 보석, 진주 등의 귀금속들이요, 둘째로 세마포, 자주 옷감, 비단, 붉은 옷감 등의 옷감들이요, 셋째로 각종 향목, 상아 기명, 값진 나무, 놋쇠, 철, 옥석 등으로 만든 고급 그릇들이요, 넷째로 계피, 향료, 향, 향유, 유향 등 향품류들이요, 다섯째로 포도주, 감람유, 고운 밀가루, 밀 등의 식료품들이요, 여섯째로 소, 양, 말 등의 가축들이요, 일곱째로 수레들과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었다. 사람들이 한때 즐겼던 모든 좋은 것들이 다 멸망을 당하여 없어질 것이다.

[15-19절]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致富)한[부자가 된] 이 상품의 상고[상인]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부자가 되었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큰 음녀로 인해 부자가 되었던 상인들과 선장들과 선인들은 그 성의 멸망을 인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할 것이다. 그들은 그 큰 성의 불붙는 모습을 보면서 그 성의 이전의 부귀와 영광이 이처럼 일시간에 망하는 것을 인해 무서워하며 울며 애통할 것이다.

[20절]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하늘에 있는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 큰 음녀의 멸망을 인해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억울함을 갚으시는 심판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그 큰 음녀, 곧 배교한 교회가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성도들을 많이 죽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억울한 피흘림을 이와 같이 갚으실 것이다.

[21-24절]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 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큰 음녀의 멸망은 영원할 것이다. 다시는 그것이 누리던 세상적 즐거움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다시는 거기서 음악소리도, 세공업자도, 맷돌소리도, 등불도, 신랑과 신부의 음성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큰 음녀 곧 배교한 교회로 인해 만국이 미혹을 받았었고 많은 선지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보였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끝 날이 왔고 다시는 그 교회의 찬란한 옛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하게 될 것이다.

9절부터 24절까지의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의 영광이라는 것이 일시간에 끝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은 일시간에 왔다. 10절,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라.” 17절, “그러한 부(富)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19절,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의 피를 갚아주실 것이다. 20절,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순교자들은 땅 위에서 억울하게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에게 큰 벌을 내리심으로 그들의 억울함에 대해 공의로 갚아주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순결한 성도들과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전서 1:15-16,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우리는 영적, 육적 음행을 멀리하는 순결한 자가 되어야 한다.

 

 

19장: 백마 탄 자의 심판

1-10절, 하늘의 찬송

[1-3절]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그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하늘에 허다한 무리는 천국에 있는 천사들과 성도들을 다 포함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찬송한다. 사탄과 적그리스도들과 배교는 세상에 이미 역사하였고 또 말세에 절정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힘을 합쳐 참된 성도들을 심히 핍박할 것이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돈과 육신의 쾌락과 음란의 유혹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또한 고난과 핍박과 순교까지 견뎌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모든 고난에서 건지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 즉 배교한 교회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의 피를 많이 흘린 그 배교한 교회에 갚으실 것이다.

[4-5절]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노인이든지 어린아이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의 구원을 찬송해야 한다.

[6-8절]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섭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으로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표현되었다. 혼인은 연합을 가리킨다. 신부는 성도들을 가리키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부활한 성도들이 천국에서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누릴 것을 가리킨다. 사람의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져왔으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은 연합으로 나타난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이다(고전 12:27). 그러나 그것은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완성이다.

신부가 입게 될 옷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옷이다(8절).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이다. ‘옳은 행실’이라고 번역된 원어(디카이오마타)는 ‘의(義)들’이라는 뜻이다. 성도들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밖에 없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라고 말했다(빌 3:9). 인간의 행위의 의는 불완전하다. 이사야는 인간의 의가 더러운 옷 즉 누더기 옷과 같다고 말했다(사 64:6). 오직 예수께서 주신 의만이 완전하고 영광스럽다. 그러나 성도는 그 의 안에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비록 보잘것없어도,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위한 당연한 준비가 될 것이다.

성도들이 누릴 천국의 영광을 혼인 잔치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기쁘고 즐겁고 참된 만족을 주는 것임을 나타낸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천국에서 누릴 기쁨과 만족은 이 세상의 가장 큰 기쁨과 만족보다 더 크다.

[9-10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이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영임이라] 하더라.

요한은 너무 감격하여 그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였다. 그때 그 천사는 자기도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했다.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천사가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하나님의 영에 의한 대언(代言) 사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만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한다.

1절부터 10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면,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큰 음녀 즉 배교한 교회로부터 분리된 삶을 사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하늘의 천사들과 화답하여 힘차게 하나님을 찬송하자. 특히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공의의 심판과 은혜의 구원을 찬송하자. 어른들도, 아이들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송하자.

둘째로,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 즉 성도가 부활한 몸으로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사모하자. 거기에는 더 이상 죄가 없고 슬픔이 없고 질병과 고통도, 피곤과 낙심과 방황도 없다. 거기에는 완전하고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이 있다. 우리는 천국의 그 영광을 사모하자.

셋째로, 우리는 혼인 잔치에 참여할 신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거룩과 의를 간직하고 그 거룩과 의 안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로서 마땅한 일이다.

 

11-21절, 주께서 백마 타고 오심

[11절]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충성]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백마와 탄 자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말은 전쟁을 수행하는 기동력과 힘을 나타내고 흰색은 성결함을 나타낸다. 심판하러 오시는 주는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의 심판은 신속하고 힘이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충성과 진실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 즉 택한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영생에 이르도록 구원하는 일을 충성되이 완수하셨다(요 6:39-40). 그는 그 일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셨다. 예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고 참되신 구주이시다. 또 그는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는 자이시다. 그의 심판은 공의로울 것이다. 그는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공의롭고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그가 싸울 대상은 모든 악한 자들 곧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포함한 모든 악인들이다. 그는 그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12-14절]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여러 이름들이 있고](전통본문)31)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불꽃같은 눈은 그의 꿰뚫는 지식과 통찰력을 가리킨다. 또 그의 머리에 많은 면류관은 그가 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상징한다. 그에게는 여러 이름들, 즉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충성, 진실 등의 이름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한 이름도 가지고 계신다. 그것은 그의 신성의 이름을 나타낼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본질을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은 인간에게 신비에 감취어 있다.

그는 피 뿌린 옷을 입으셨다. 그것은 그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음을 나타내거나, 혹은 원수들을 심판할 때 그들의 피가 그의 옷에 묻을 것을 상징할 것이다(사 63:1-3). 또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칭하였다. 그것은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시다(요 1:1).

그를 따르는 하늘 군대는 선한 천사들을 가리킨다. 주께서는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살후 1:7). 천사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탄 것은 성결함과 기동력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심판을 도울 천사들은 다 거룩하고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15-16] 그의 입에서 이(利)한[날카로운]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재림하시는 주 예수의 입에서 날카로운 검이 나오는 것은 말씀의 능력을 나타낸다. 그의 말씀은 심판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다. 그는 두려운 말씀으로 만국을 치실 것이다. 또 그는 친히 철장으로 저희를 다스리실 것이다. 그를 대항할 자는 아무도 없다. 또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이다. 그는 포도주 틀을 밟듯이 그 원수들을 진멸하실 것이다. 그의 옷과 다리에는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그는 분명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 17:14). 그는 모든 왕들을 다스리시는 크신 왕이시요 모든 주인들의 참 주인이시다.

[17-18절]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천사가 해에 선 것은 온 세계의 새들이 볼 수 있도록 외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나님의 큰 잔치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대조된다. 본문의 큰 잔치는 하나님의 심판의 잔치이다. 그것은 새들이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고기를 먹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예언된 대전쟁에 참여한 자들이 처참하게 죽을 것을 의미한다.

[19-21절]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연합군은 재림의 주님과 더불어 싸우려 하다가 패하며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잡혀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울 것이다. 독재적 통치자와 교황이든지 혹은 그 국가와 그 교회가 멸망하고 맨 먼저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산채로 던지운다는 말은 그들이 악인의 부활체를 입은 후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을 가리킨 것 같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2:8에서,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고 예언하였다. 또 그 전쟁에 참여한 나머지 사람들도 다 죽어 새들의 밥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거룩하고 권세 있는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하늘의 천사들도 그를 따라 내려와 그의 심판을 도울 것이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결국 잡혀 산채로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배교한 교회는 일시적으로 번영하고 사치할 것이지만, 마침내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써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며 죄악된 일을 버리고 오직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20장: 천년왕국과 마지막 심판

1-6절, 천년왕국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무(無)천년설은 천년왕국을 신약교회시대로 본다. 둘째로, 후(後)천년설은 천년왕국 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견해로서 천년왕국을 교회시대 후기의 복음의 황금시대로 본다. 셋째로, 전(前)천년설은 천년왕국 전에 주께서 재림하신다는 견해, 즉 주께서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세우신다는 견해이다. 요한계시록 20:1-10은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로는 해석이 어렵고, 전천년설로 가장 잘 이해된다고 본다.

[1-3절]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무저갱(無底坑)은 ‘밑바닥이 없는 구덩이’라는 뜻으로 사탄과 악령들의 감금 장소로 생각된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큰 권세를 가지고 용을 잡았다. ‘용’이라는 원어(드라콘)는 ‘큰 뱀’을 가리킨다. 그는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케 했던 그 뱀 곧 마귀와 사탄이다. ‘마귀’라는 원어(디아볼로스)는 ‘훼방자, 참소자’라는 뜻이며, ‘사단’이라는 원어(사타나스)는 ‘대적자, 원수’라는 뜻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인류를 범죄케 하고 타락시킨 자요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훼방하고 참소하는 자요 대적자요 하나님과 인류의 원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귀를 잡아 결박하여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가두게 하시고 인봉하여 그 감금을 확실케 하셨다. 마귀는 천년 동안 만국을 미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감금은 일시적이다. 천년이 차면 사탄은 반드시 잠깐 놓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마귀의 결박과 감금이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효력을 가리킨다고 본다(무천년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말미암아 마귀가 감금되었기 때문에 그는 복음의 힘있는 전파를 방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사탄의 잠시 놓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효력이 잠시라도 무효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의 일시적 감금을 신약시대 전체로 보는 것은 바른 해석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이상의 뜻, 곧 문자 그대로 사탄이 결박되고 감금되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주께서 백마 타고 오셔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폐하신 후에 사탄을 천년 동안 감금시키실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본문에 가장 적절한 해석일 것이다.

[4-5절]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사도 요한은 몇 가지를 보았다. 우선, 그는 보좌들을 보았다. 보좌는 재판하는 권세를 상징한다. 사람들이 그 보좌들에 앉아 있었다. 거기 앉은 자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원문에는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 위에 앉아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아마 그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할 모든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 보좌에 앉은 자들은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 ‘심판하는 권세’라는 원어(크리마)는 ‘심판’으로 보통 번역되지만 여기서는 ‘심판하는 권세’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요한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을 보았다. 그것은 순교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일 것이다. 물론 그들도 심판 권세를 받고 보좌들에 앉은 자들 중에 포함될 것이다. 또 요한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았던 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순교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진실한 성도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다 심판 권세를 가지고 보좌에 앉아 있는 자들이라고 본다. 적그리스도들의 활동은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를 거쳐 교회 역사상 항상 있어 왔고 주의 재림 직전에는 더욱 절정적으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들의 세력에 복종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들도 교회 역사상 항상 있어 왔고 마지막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들은 앞에 언급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다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다음절에 언급된 ‘첫째 부활’이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만일 앞에 언급된 자들이 순교자들만을 묘사한 것이라면,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예수 믿는 나머지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나, 앞에 언급된 자들이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보기 때문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불신자들과 악인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즉 이 구절은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구별한 것이라고 본다. 고린도전서 15:23-24,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러므로 본문의 ‘첫째 부활’은 성도들의 영혼의 중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성도들의 몸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본다. ‘부활’이라는 원어(아나스타시스)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은 자들의 몸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12, 13, 21, 42절). 그 말은 성경에서 중생을 위해서는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첫째 부활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은 복되다. 그들은 몸의 구속(救贖), 즉 몸의 영광스런 부활을 받은 자들이므로 완전히 거룩함을 얻은 자들이다. 둘째 사망 곧 지옥의 형벌이 그들을 다스릴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계 5:10)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통치할 것이다. 그 천년은 사탄이 결박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온 세상에서 불법이 상당히 제압되고 풍성한 평화가 있을 것이다. 천년왕국은 복된 시대가 될 것이다.

1절부터 6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탄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금하기도 하시고 활동하게도 하신다.

둘째로, 성도는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셋째로, 성도에게는 복된 부활이 있다. 그것이 첫째 부활이다. 그것은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몸을 가지는 부활이며(고전 15:42-44), 영생의 부활이다. 그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며 둘째 사망, 곧 지옥 불못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

넷째로, 승리한 자들은 주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다. 예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그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않은 자들은 살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할 것이다.

 

7-15절, 마지막 심판

[7-8절]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천년의 감금 기간이 다하면 사탄은 그 무저갱의 감옥에서 놓여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되어질 것이다. 사탄은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년 동안의 긴 감금 기간 동안 회개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대항할 결심을 한다. 그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즉시 거대한 일을 도모한다. 그것은 역사상 전무한 일이다.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백성을 미혹하는 일이다.

본문은 지구상의 모든 백성을 ‘곡과 마곡’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 같다. 곡과 마곡은 구약 에스겔 38장과 39장에서 인용한 표현일 것이다. 거기에서 곡과 마곡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적자로 예언되어 있다. 마지막 시대에 지구상의 사람들도 곡과 마곡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천년왕국 중에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다.

사탄은 그들을 미혹하여 마지막 전쟁에 참여케 할 것이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아마 이렇게 선동할 것이다. “저 그리스도인들은 특권 계급처럼 너무 오랫동안 우리를 통치해왔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고 우리 스스로의 민주적 통치를 원한다. 자, 우리가 단합하여 저들을 쳐부수고 영구적인 자유를 되찾자.” 그러나 사탄의 이 선동은 순전한 속임수이다. 왜냐하면 그 전쟁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기는커녕 자신과 인류의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같이 많을 것이다.

[9-10절]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성도들의 진’은 부활한 성도들이 거주한 곳을 가리키고 ‘사랑하시는 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킨 것 같다. 재림하신 주께서는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시며 부활한 성도들도 한 곳에 모여 사는 것 같다. 성도들은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온 세계를 통치할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놓여난 후 세상을 미혹하자 그 미혹을 받은 사람들은 성도들의 통치권을 부정하며 대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이 세계적인 반란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마지막 형벌의 때이다. 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소멸하시고 마귀를 처단하실 것이다.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에 의하면, 사탄의 미혹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대반란은 대체로 주의 재림 전에 있을 기독교회를 향한 세상의 대핍박을 가리키고, 하늘에서 내리는 불은 주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멸망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6-19장의 대환난 후의 천년왕국 예언의 문맥상 자연스럽지 않고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곡과 마곡의 연합군을 하늘의 불로 소멸하신 후 그들을 미혹한 마귀를 잡아 불과 유황 못, 즉 영원한 지옥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짐승 곧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도 있을 것이고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다 거기서 세세토록 밤낮 고통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짐승이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가리키고 거짓 선지자가 배교한 교회를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본문에 그들이 지옥불에 던지운다는 표현은 그들이 어떤 인물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만일 그렇다면, 짐승은 적그리스도 나라의 우두머리이며 거짓 선지자는 배교한 교회의 우두머리일 것이다. 이제 마귀 즉 사탄은 그들과 함께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인류 역사 6천년간 하나님과 성도들을 대적했던 사탄의 형벌이다.

[11절]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마지막 크고 흰 심판 보좌를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땅 위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할 큰 심판 보좌이다. 그 심판 보좌가 흰 보좌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거룩하고 의로울 것을 나타낸다.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일 것이다. 그는 성경에 마지막 심판주로 증거되어 있다.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사도행전 10: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땅과 하늘은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고 심판받을 모든 자들이 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죽은 자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부활하여 서게 됨을 가리킬 것이다. 의인들은 천년왕국 전에 부활했으므로 이때는 악인들이 부활할 것이다. 사람은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차 다 부활하여 심판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가장 공평한 처분이다. 그는 사람을 가장 존귀하게 창조하신 대신에 마지막 날에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성경에 말씀하셨다. 이것은 바르고 정당한 처분이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공평한 처분을 불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설 자들로서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사도 요한은 심판대 앞에서 여러 권의 책들을 보았다. 그것들은 다 펴져 있었다. 여기에 언급된 ‘책들’은 사람들의 행위들을 기록한 책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행위들을 보시고 그 행위들에 따라 공의롭게 심판을 하실 것이다. 죽은 자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행위록들과 구별되는 다른 한 책은 생명책이라고 불리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들을 기록한 책이 분명하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눅 10:20).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이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지옥 형벌을 피할 것이다(계 20:15).

[13-15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자들은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자들이다. 바다에 빠져 죽은 자들도 부활할 것이다. 모든 무덤들이 죽은 자들을 내어줄 것이다. 온 세상에서 죽은 자들의 원소는 다시 결합되어 부활할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고 그 후에 부활이 있고 심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이시다. 모든 죽은 자들은 다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 보좌 앞에 서서 각각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에 대해 받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결코 핑계하거나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극히 공의롭고 공정할 것이다.

육신의 죽음과 무덤, 또 악인들이 부활 전까지 머물며 고통 받던 음부 곧 지옥도 최종적 지옥인 불못에 던지우는 것으로 표현된다. 불못은 부활 후에 악인들이 들어갈 형벌의 장소이다. 그것이 둘째 사망이다.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사망이다.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 곧 첫째 사망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사람의 일들 중에 장례식이 가장 슬픔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렵고 슬픈 일이 둘째 사망의 일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보다 이 둘째 사망으로 그의 행과 불행이 나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누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7절부터 15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탄이 아무리 무섭고 강한 원수일지라도 우리는 사탄이 결국 지옥에 던지울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자. 그것이 사탄이 받을 최후의 심판과 형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을 두려워하거나 그에게 굴복하지 말고 당당히 대적하자.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바로 안다면 우리는 바른 행위에 힘쓸 것이다. 우리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후 5:9-10).

셋째로, 우리의 이름은 반드시 생명책에 기록되어져야 한다. 그것은 주 예수께 대한 참 믿음으로 된다. 그 믿음은 성령의 역사로 또 성경말씀을 통해 생기며 견고해진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요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장차 영원한 지옥 불못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복된 삶이 아니지만,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지 못했을지라도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면 우리는 확실히 행복자이다.

 

21장: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

1-8절, 천국과 지옥

[1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다.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베드로후서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현재의 하늘과 땅은 죄로 인해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 속에도 갖가지 불행한 요소들이 있다. 아름답고 푸른 하늘은 때때로 폭우와 폭설을 내린다. 각가지 먹을 것을 내는 땅은 때때로 화산과 지진으로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공포를 준다. 또 땅에는 무서운 짐승들이 있다. 바다는 때때로 사람들을 삼킨다. 이것들은 다 사람이 범죄한 후 하나님께 받은 저주의 결과들이다(창 3:17).

그러나 현재의 하늘과 땅은 영원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다. 죄악된 세계가 가고 의로 충만한 새 세계가 오며, 저주받은 이 땅이 가고 하나님의 복이 충만한 새 세계가 올 것이다.

[2절]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새 도시가 세워질 것이다. 그것은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린다. 그 도시는 ‘거룩한 성’이다. 그것은 죄악되고 불결한 현재의 세상 도시들과 전혀 다르다. 그 성은 죄악과 불결이 없는 거룩한 성이다.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또 새 예루살렘 성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은 아름다운 도시이다. 11절,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또 18, 19, 21절,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고] . . . .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죄는 추함을 만들지만, 의는 아름다움을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움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은 아름다운 도시일 것이다.

[3-4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새 세계 곧 천국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 거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주관자이시며 관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는 모든 좋은 것들이 다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기쁨과 평강이 넘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 자체가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다.

천국은 모든 불행이 없는 세계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눈물이 없고 사망이 없고 애통이 없고 아픈 것이 없을 것이다. 얼마나 이 세상과 다를 것인지! 이 세상에는 병자들이 많고 가난한 자들, 외로운 자들, 갖가지로 고통 당하는 자들이 많다. 이혼으로 파탄한 가정들도 많고 독거노인들도 많고 소년 소녀 가장들도 많다. 굶주리고 헐벗는 사람들도 많다. 죽는 사람들이 끊임없고 공동묘지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새 세계에서는 이런 불행한 요소들이 다 제거될 것이다.

[5-7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만물을 회복시키실 자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나 이 세상은 인간의 범죄로 부패하였고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되고 저주받은 세상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시며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는 말씀은 만물의 회복이 중요한 진리임을 강조한다. 만물의 회복은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이며 그의 구원 역사의 목표이다. 만유의 회복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구원 사역을 시작하시고 진행해오셨고 마침내 완성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들에게 값없이 주신다. 그것이 구원이다. 또 그는 이기는 자들로 천국을 유업으로 얻게 하시며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다. ‘이기는 자’는 죄의 유혹과 마귀의 시험과 세상의 핍박을 이기는 자를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기는 자가 될 것이다.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성경말씀에 순종할 것이다. 세상은 악하고 마귀의 시험은 크고 우리는 약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세상을 이기고 자신의 죄성을 이기고 마귀를 이길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이기는 길이며 천국에 들어가는 복된 삶이다.

[8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천국에는 악한 자들이 없을 것이다. 죄인은 다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핍박과 죽음을 겁내는 자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행음자들, 마술사들, 우상숭배자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모든 악인들은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영원한 불못인 그 지옥은 사탄과 악인들의 형벌의 장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와 그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 그렇지만 죄와 의는 반대되며 죄 가운데 머무는 자는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한다. 죄는 지옥 백성의 행위이며 천국 백성의 행위가 아니므로,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한다.

1절부터 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만물의 회복의 때를 사모하자. 만물의 회복은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이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이루어질 때를 사모하자. 그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나라를 사모하자. 거기에는 더 이상 눈물도 고통도 죽음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과 그가 약속하신 천국에 두자.

둘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죄성을 이기고 세상과 마귀의 유혹과 핍박을 이겨야 한다. 하나님의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救贖)하시고 성령께서 인치신 자들은 반드시 이길 것이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천국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이기는 자가 되자.

셋째로, 우리는 결코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이 되지 말자. 우리는 미움과 살인, 음욕과 간음, 우상숭배, 거짓 등 모든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오직 거룩과 의와 선함과 진실함으로 살자.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자들이 되도록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9-27절, 새 예루살렘 성

[9-11절]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는 구원 얻은 성도들 곧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부활의 영광을 입은 상태에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교인들을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처녀에 비유하였고(고후 11:2), 또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에 비교하면서 한 몸 됨을 강조하였다(엡 5:32).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 중에 새 예루살렘 성의 환상을 보았다. 이것은 어린양의 아내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이었다. 새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그 성이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성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혜와 능력으로 만드신 성임을 나타낸다. 히브리서 11:10,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 새 예루살렘 성은 무엇을 가리켰는가? 어떤 이들은 그것을 단순히 영화된 교회의 상징으로 보았으나(렌스키, 헨드릭슨), 어떤 이들은 그것을 실제의 어떤 도시로 본다(랑게, 필립 휴즈).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일 것이다.

그 성은 한마디로 거룩한 성이라고 표현된다. 인간의 영화의 상태는 죄가 없는 상태이며 영화된 의인들이 들어갈 천국은 한마디로 죄가 없는 곳이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그 성의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았다. 그것은 그 성이 심히 거룩하고 영광스러움을 나타낸다.

[12-14절]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열두 문에 있는 열두 천사는 그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이다. 그 성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성이다. 또 열두 문에는 각각 열두 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열두 지파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전체의 수를 상징할 것이다(계 7:4-8). 그러므로 열두 문에 열두 지파 이름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모든 백성들이 그리로 들어올 수 있음을 나타낼 것이다. 동서남북에 세 개씩의 문이 있는 것도 온 세계로부터 택한 백성들이 그리로 들어옴을 상징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민족 중에서 택한 백성들은 다 구원받을 것이며 그들만 구원받을 것이다. 세계 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었고 그 위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었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고전 3:11), 그는 사도들을 통해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말했다(엡 2:20). 교회는 사도들이 전파하고 증거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의 복음 위에 세워졌다.

[15-17절]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長廣)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12,000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144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금 갈대로 척량된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고 너비와 길이가 같은 정방형이며 높이도 같다. 그 길이는 12,000스다디온이다. 12,000은 12 x 1,000이다. 12는 ‘완전’을 나타내는 수이며 1,000은 ‘충만’을 나타내는 수라고 본다. 스다디온은 약 184미터이며 12,000스다디온은 약 2,210킬로미터이다. 우리나라의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경상남도 남쪽 끝까지의 거리가 약 1,000킬로미터이니까, 새 예루살렘 성은 그 길이의 두 배 가량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를 가진 도시이다. 그러나 12,000스다디온은 아마 완전충만한 길이를 상징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 성곽의 높이는 144규빗이다. 144는 12 x 12이다. 그것은 약 65미터 정도이지만 그것도 아마 완전한 높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18-21절]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紫晶)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그 성은 아름답고 깨끗하고 귀하고 영광스럽다. 그것은 성도들이 장차 누릴 영광을 보인다. 그것은 성도들의 부활체의 영광이며 영원한 천국의 영광이다. 특히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며졌다. 성곽의 기초석 위에는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14절). 그것은 교회의 기초가 된 사도들이 각각 받은 은혜가 달랐지만, 다 귀한 하나님의 보배들이었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보석과 같이 귀히 여기신다(마 13:44-46).

[22-27절]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성 안에는 없는 것들이 있었다. 첫째, 성전이 없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구약 성전은 그림자와 모형이었고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주 예수께서 친히 계시기 때문에 성전이 필요치 않다. 둘째, 해와 달의 비침이 없었다. 그것들은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직접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광은 해와 달의 비침보다 더 클 것이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올 것이다. 셋째, 밤이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성을 항상 대낮같이 밝게 만들 것이며 따라서 성문들을 닫는 일도 없을 것이다. 넷째, 죄인들이 없었다. 모든 더러운 것들과 가증한 일이나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거기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회개치 않은 자들은 아무도 그곳에 들어올 수 없으며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씻음받고 중생한 자들만 그곳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속죄신앙은 그 성에 들어가는 출입증과 같다.

9절부터 27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도적 교훈을 굳게 지키자. 사도적 교훈은 새 예루살렘 성곽의 기초와 같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13-14에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고 말했다.

둘째로, 우리는 천국의 영광을 사모하자.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움과 영광은 장차 우리가 입을 부활체의 영광이요 우리가 누릴 천국의 영광이다(롬 8:30; 빌 3:2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하나님의 뜻만 순종하자. 하나님의 뜻이 성경에 밝히 계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성경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믿고 소망하며, 또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교훈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자.

 

 

22장: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라

1-7절, 새 예루살렘 성의 복됨

[1-2절]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앞장에서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에 대해 증거한 사도 요한은 이제 그 성의 복됨에 대해 증거한다. 성도들은 그 성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 그것은 수정같이 맑은 강이다. 그것은 더러운 쓰레기와 오물과 오폐수로 더럽혀져서 사람들에게 해를 주는 이 세상의 강들과는 달리 수정같이 맑은 강이다. 그것은 생명수의 강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그 강물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풍성하게 주는 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강물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는 것을 나타낸다.

그 생명수의 강은 길 가운데로 흐르고 그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힐 것이다. 그것들은 천국 백성에게 다양하고 풍성하게 생명력을 북돋울 것이다. 또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에 생명력과 활기를 주는 데 사용될 것이다. 천국에는 생명의 쇠약함이나 쇠잔함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질병도 병원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항상 건강과 원기가 넘칠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 우리는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다.

[3-5절]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저주가 없을 것이다. 이 땅의 저주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내려졌었다. 창세기 3:17-18,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땅의 저주는 거두어졌다. 또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성도들은 천국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며 그에게 예배드리고 그의 얼굴을 보고 그와 교제할 것이다. 또 그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소속을 나타낸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으로 인침을 받은 자들이다. 또 거기에는 밤이 없으며 등불이나 전깃불이나 햇빛이 쓸데없을 것이다. 주 하나님의 영광이 친히 그들에게 밝히 비췰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왕 같은 신분과 특권을 가지고 생활할 것이다. 천국은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될 것이다. 사람은 다시는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범죄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6-7절]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 말’ 곧 새 예루살렘 성에 관한 말씀은 신실하고 참되다고 증거되었다. 천국은 반드시 이루어질 나라이다. 또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은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신’ 것이라고 증거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실하고 참된 말씀이며 요한계시록도 그 한 부분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반드시 속히 되어질 사건들을 예언하며 기록한 것이다.

또 주 예수께서는 자신의 재림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3에서도 증거된 말씀이다. 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은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대환난과 주의 재림과 천국과 지옥에 관한 것이다. 주의 재림 직전에 천재지변들이 있고 세계적 전쟁들이 있고 적그리스도 즉 세상을 지배하는 무서운 독재국가나 통치자와, 거짓 선지자 즉 배교한 전세계적 교회나 종교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다. 극심한 환난과 핍박과 순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재림하심으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패할 것이다. 또 사탄도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성도들은 마지막 대환난 중에도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고 주의 재림과 천국 소망을 든든히 붙들어야 한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메시지의 요지이다. 우리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1절부터 7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복된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자. 그 성에서 우리는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를 통해 풍성한 영생의 생명을 누릴 것이다. 거기에는 다시 저주가 없을 것이다. 또 그 성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얼굴을 뵈올 것이며, 왕 같은 신분과 특권을 누릴 것이다. 우리는 그 복되고 영광스런 새 예루살렘 성과 거기에서의 삶을 사모하자!

둘째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예언과 성경말씀을 지키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살자. 장차 극심한 대환난과 핍박이 닥치며, 순교의 시대가 올 것이지만, 우리는 불신앙과 배교와 음란과 온갖 죄악에 물들거나 타협하지 말고 속죄 신앙과 천국 소망 가지고 끝까지 참고 성경의 교훈대로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8-15절, 행한 대로 받음

[8-9절]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사도 요한은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다. 사도일지라도 실수할 수 있다. 천사는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은 그와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 곧 우리 모두와 함께 된 종이라고 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했다. 우리의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우리 모두는 다 평등하게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이며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자들일 뿐이다.

[10-11절]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천사는 또 때가 가깝기 때문에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가 말한 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며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때이며 영광의 천국이 땅에 이루어지는 때이다. 때가 가까우므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은 감추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은 상징적 표현들이 많은 어려운 책이긴 하지만, 덮어두어야 할 책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목사들이 성심으로 읽고 묵상하고 강론해야 할 내용이며 모든 성도들도 읽고 깨닫고 장차 올 대환난과 주의 재림을 대비하고 실천해야 할 내용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가깝기 때문에,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한두 번 권면했으면 충분할 것이다.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권면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각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좇아 자신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 불의를 하는 자나 더러운 자는 더 이상 권면을 받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의로운 자와 거룩한 자는 그대로 살면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대로 하나님께 응답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힘쓰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일 것이다. 우리는 그 은혜 안에 거하고 그 은혜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12-13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보응]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주께서는 그의 재림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시면서 행위의 보응에 대해 말씀하셨다. 의를 행하는 자는 천국에, 악을 행하는 자는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 의와 거룩을 행하다가 영생에 들어간다.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주 예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하셨다. 처음과 시작은 창조를 가리키고 나중과 끝은 종말과 심판을 가리킬 것이다. 처음과 끝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또 처음과 끝이 되신 그는 인간과 세상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시며 정리자가 되신다.

[14-15절]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전통본문)32)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의와 사랑을 명하신다. 의는 그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며 찬송하고 기도하기를 원할 것이다. 또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다른 이를 미워하거나 비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남을 존경하고 남의 부족과 실수를 용서하고 남에 대해 너그러움과 이해심과 관용심을 가질 것이다. 이런 자들은 다 생명나무에 나아갈 것이며 문들을 통해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을 것이다. 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이다.

그러나 의와 사랑이 없는 자들, 죄 가운데 사는 자들, 예컨대, 개들 즉 부도덕하고 남에게 해를 주는 자들, 술객들 즉 악한 신비술을 쓰는 자들, 행음자들, 살인자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은 다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을 것이다. 성 밖에 있다는 말은 천국에서 제외된다는 뜻이고 결국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는 말과 같다고 본다. 인류의 최종적 상태는 천국과 지옥, 둘뿐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다시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히 오셔서 각 사람의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다. 우리는 공의로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을 믿고 두려워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되다. 하나님의 계명들의 내용은 경건과 의와 사랑과 진실 등이다. 우리는 항상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의와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또 진실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우상숭배, 살인, 간음, 거짓말 등 모든 종류의 죄악을 멀리해야 한다. 죄인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16-21절,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6절]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위해 그의 천사를 사도 요한에게 보내어 그로 하여금 우리에게 증거하고 기록하게 하신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참 저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다윗의 뿌리’이며 ‘다윗의 자손’이라고 증거하셨다. ‘다윗의 뿌리’라는 말은 그의 신성(神性)을 나타낸다. 그는 만물의 근원이시다.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그에 의해]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 모든 인류의 뿌리이시며 또 다윗의 뿌리이시다. 또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그의 인성(人性)을 나타낸다. 그는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하셨고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로 오셨다.

그는 또한 자신을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증거하셨다. 그는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올 때 떠오르는 별처럼 그의 대속 사역으로 죄악된 인류 역사를 끝마치고 천국의 새 시대를 여셨다.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오소서]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오소서라고]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자는]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그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님을 가리킨다. 처음에 언급된 ‘오라’는 말은, 많은 주석가들이 이해하는 대로, 앞뒤의 문맥으로 볼 때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7, 12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에 대한 대답으로 이해된다. 즉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원한 것이다. 또한 주의 재림의 약속이나 그에 대한 응답의 말을 듣는 자들은 재림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오소서”라고 간절한 소원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자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 . .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18-19절]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가감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서부터 강조되었다. 신명기 4: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선지자들이 쓴 역사서들이나 선지서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지 않은 죄와 그 결과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을 증거하였다. 시편을 비롯한 시가서들도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는 것이 복됨을 증거하였다(시 1:2; 전 12:13).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무엇을 첨가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었다. 이제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 메시아로 오셨다(마 1:1).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예언의 성취이며 구약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신약성경 중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끝에 가감치 말라는 강조와 경고가 또 다시 기록되어 있다. 이 경고는 매우 엄숙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만일 누구든지 주께서 기록케 하신 이 책의 내용에 무엇을 더하면 하나님의 재앙이 그에게 더하여질 것이며, 누구든지 무엇을 빼면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 경고는 이 책의 절대적 권위를 증거하며 이 책이 종말 예언에 있어서 충족한 계시의 책임을 증거한다. 더 이상 이 책에 무엇을 첨가할 내용이 없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예언에 있어서 최종적 권위를 가진 책이다.

그러나 이 경고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와 신구약성경 전체에 적용될 말씀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성경 맨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에 대한 증거와 교훈이 되었다.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20-21절]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진실로](전통사본)33)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진실로(나이)(전통사본)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하였다. ‘진실로’라는 말(나이)은 ‘진실로, 참으로’라는 뜻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함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나이). 아멘.”

주께서는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주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정,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나타낸다. 베드로후서 3:8-10,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밤에](전통본문)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원소들]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불타버리리라].”

“아멘, 주 예수여, 진실로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재림을 대망하는 것은 모든 신약 성도들의 큰 소망이다. 주 예수께서 다시 오셔야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요 살아서 주를 맞는 자들은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되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16절부터 2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뿌리이시며 그의 자손이시고 광명한 새벽별이시다. 그것은 그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과 그의 구원 사역을 가리킨다. 그는 우리의 신적 구주이시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는 새벽별이시다.

둘째로, 주 예수께서는 그에게 오는 자들 곧 그를 진실히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생명수를 주신다. 그것이 구원이다. 목마른 자들은 누구나 와서 값없이 생명수를 받을 수 있다. 요한복음 7:37-38,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셋째로, 주 예수께서는 진실로 속히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성경에 계시된 종말 예언들의 절정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요한계시록의 결론이며 성경의 결론이다. 우리는 사도 요한과 함께 “아멘, 주 예수여, 진실로 오시옵소서”라고 말해야 한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책을 주셨다. 신구약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다. 우리는 66권으로 된 이 성경을 가감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을 가감하는 것은 큰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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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B. F. Westcott, J. B. Lightfoot 등.

2) Henry Alford, H. B. Swete, William Milligan, Theodor Zahn 등.

3) The World Book Encyclopedia.

4) 조선일보, 1998년 12월 7일, 11쪽.

5) 조선일보, 2001년 6월 4일, 9쪽.

6) 조선일보, 2002년 7월 25일, 14쪽; 7월 27일, 11쪽.

7) 조선일보, 1983년 5월 19일.

8) 2, 10절, 비블리온.

9) 8, 9절, 비블리다리온.

10) 디아 + 목적격.

11) NRON KSR, 네론 카이살.

12) 헹스텐버그.

13) 헨드릭슨, 박윤선.

14) 매튜 풀, 벵겔, 알포드, 반즈.

15) 포셋, 렌스키, 비더울프, 김응조.

16) 전선교, 지구의 종말, 어디까지 왔나 (계시록학회, 2001), 320쪽.

17) William Hendriksen, George Ladd, Alan Johnson, 박윤선 등의 견해.

18) 개신교 저술가들의 거의 대다수, 예를 들어 근래에 Henry Alford, Albert Barnes 등의 견해.

19) Matthew Poole, III, 994.

20) septicollis Roma

21) septem colles

22) A. R. Fausset, R. C. H. Lenski, John Walvoord, 김응조 등의 견해.

23) 유럽연합(EU=European Union)은 1950년대의 유럽석탄철강 공동체에서 시작되어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시장), 1967년 유럽공동체(EC), 1991년 유럽연합으로 진전되어 왔다. 1957년 초창기 회원국은 벨기에,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델란드이며, 1973년에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이, 1981년에 그리스가, 1986년에 포르투칼, 스페인이, 1995년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이 가입하여, 현재 회원국이 15개국이다. 유럽연합의 궁극적 목표는 통합된 유럽 즉 유럽합중국의 설립이다. 2004년에는 회원국이 25개국으로 확대된다고 한다.

24) 카이 에카디산 에프 아우투스.

25) ‘목 베임을 받다’는 원어(펠레키조)는 ‘도끼로 치거나 자르다, 목을 베다’는 뜻.

26) 카이 타스 프쉬카스(목적격), ‘그리고 그 영혼들을.’

27) 카이 오이티네스(관계대명사 남성 복수 주격), ‘그리고 그들은 누구든지.’

28) 무천년설에 의하면, 사탄의 미혹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대반란은 주의 재림 전에 있을 기독교회를 향한 세상의 대핍박을 가리키고, 하늘에서 내리는 불은 주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멸망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문맥상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29) 원문에는 우크라는 말이 두 번, 우테라는 말이 세 번 사용되어, 부정어가 모두 다섯 번이나 사용되었다. 이것은 강조된 표현이다. ‘없을 것이다! 없을 것이다!’

30) G. E. Ladd, R. C. H. Lenski 등이 그렇게 봄.

31) J. P. Lange, Willbur S. Smith 등이 그렇게 봄.

32)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그에 의하여]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