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회 비평

김효성 목사

2017년 6월 12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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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교리적 문제

마리아

미사

칭의(稱義)

교황

 윤리적 문제

학살

음행

탐욕

결론

[부록]

현대교회의 배교와 타협

(1) 배교적 연합주의

(2) 타협적 복음주의

참고도서

  

서론

 천주교회 즉 로마 가톨릭교회는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한 참 교회라고 말한다.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회를 세상에서 유일한 참 교회로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교회를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배교적 단체, 즉 세상에서 가장 역사 깊은 강력한 이단으로 보았다. 개혁자들의 판단은 옳았고 오늘날도 유효한 것인가? 아니면 그 교회가 이단종파가 아니고 개신교회가 용납할 수 있는 교회인가?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교회는 과거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는가? 우리는 천주교회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나는 천주교회의 교리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비평들을 간략하게 몇 가지 항목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비록 1차 자료들을 다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비평의 근거들은 충분해 보인다. 이 비평은 천주교인들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이 글을 읽어보고 생각해보기를 원한다. 나는 특히 잘못된 지식을 가진 많은 개신교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천주교회의 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천주교인들의 입장에서나 타협적 개신교인들의 입장에서 할 말이 있으면 할 수 있지만, 정당성 없는 비방이나 미움과 악의에 찬 폭력적 언행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큰 악을 쌓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6).  

교리적 문제

천주교회는 중요한 교리들에 있어서 심각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

마리아

첫째로, 천주교회는 마리아에 대한 교리에 있어서 심각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 우선, 천주교회는 마리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느님[하나님]의 어머니’

첫째, 천주교회는 마리아를 ‘하느님[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교회는 주후 431년에 에베소 회의에서 처음으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부르면서 마리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주후 451년의 칼케돈 신경도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의 편으로는 하나님의 모친이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표현했다. 천주교회 교리문답 495항은, “교회는 마리아를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고백한다”고 진술한다.  

무죄 잉태와 평생 무죄

둘째, 천주교회는 마리아가 죄 없이 잉태되었고 평생 무죄하였다고 가르친다. 1854년에 교황 피우스 9세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선언하였다. 천주교회 교리문답 508항은, “마리아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의 더러움으로부터 완전히 보전되고 평생 모든 개인적 죄로부터 순결하였다”고 말한다.

또 천주교회 교리문답 411항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그녀의 전 지상생애 동안 어떠한 종류의 죄도 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제2 바티칸 회의 교회헌장 56항도,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일생동안 어떠한 죄도 범치 않았다”고 진술한다.

영구적 처녀성

셋째, 천주교회는 마리아가 계속 처녀이었다고 가르친다. 마리아의 영구적 처녀성은 주후 451년의 칼케돈 회의에서 선언되었다. 천주교회 교리문답 501항은, “예수는 마리아의 유일한 아들이다”라고 말하며, 또 천주교회 교리문답 510항은, “[마리아는] 항상 처녀이었다”라고 말한다.

승천

넷째, 천주교회는 마리아가 승천하였다고 가르친다. 1950년 교황 피우스 12세는 마리아의 승천을 선언하였다. 12세기의 성 버나드는 마리아의 승천, 하늘의 여왕 됨, 우리를 보호해주기를 그에게 기도함에 대해 말하였다고 한다.1) 천주교회 교리문답 966항은, “마리아가 지상 생애의 여정을 마쳤을 때 몸과 영혼은 하늘 영광으로 올림을 받아 주님에 의하여 만물 위에 여왕으로서 존귀케 되었다”고 말한다. 제2 바티칸 회의도, “마침내 원죄의 모든 더러움 없이 보존된 그 순결한 동정녀는 그의 지상 생애가 끝났을 때 몸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 속으로 들림을 받았다”고 선언하였다.2)

만물의 여왕, 보혜사, 중보자

다섯째, 천주교회는 마리아에게 만물의 여왕, 보혜사, 중보자 등의 칭호들을 돌린다. 가톨릭 교리서는, “마리아는 . . . 하늘에 오르시어 천상과 지상의 모후(母后)가 되셨다”고 가르친다.3) 제2 바티칸 회의도, “[마리아는] 그의 지상 생애가 끝났을 때 몸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 속으로 들림을 받았고 주님에 의해 만물 위의 여왕으로 존귀케 되었다”고 선언하였다.4) 또 그 회의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하늘로 올림을 받은 후 그는 이 구원하는 직책을 버리지 않으셨고 여러 가지 중보사역에 의해 계속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선물들을 가져다 주신다. . . . 그러므로 그 복된 동정녀에게 우리는 교회에서 변호자(Advocate)[보혜사], 돕는 자, 은혜 베푸는 자, 또 중보자(Mediatrix)의 명칭들로 빈다.5)

기도의 대상

여섯째, 천주교회는 교인들이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주후 600년경부터 가톨릭교회는 마리아와 죽은 성인들과 천사들에게 통공(通功)의 기도를 올릴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통공의 기도란 선행의 공적을 가진 자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을 말한다.6) 가톨릭 교리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항상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에게 신뢰하는 마음으로 각별한 공경과 기도를 드리고 모든 위험과 어려움에서 도와주시기를 청해야 한다”고 가르친다.7)

천주교회에서 성자로 추앙된 알폰스 드 리구오리는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고 받지 못하지만, 마리아에게 구하여 받는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구하는 바를 예수께 기원함으로써보다 마리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더 신속히 얻는다.”8)

마리아 숭배

일곱째, 천주교회는 마리아를 숭배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지도적 인물들이나 심지어 교황들은 말과 행위로 마리아에 대한 열렬한 숭배를 표현하였다.

알폰스 드 리구오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죄인들은 마리아를 통해서만 용서받는다,”9) “마리아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는 실패하고 잃어버려진다,”10) “거룩한 교회는 마리아에게 특유한 경배를 명한다,”11) “마리아는 하늘의 문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를 통하지 않고는 저 복된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12) “구원의 길은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에게도 열려져 있지 않다,”13) “하늘과 땅의 모든 능력이 그에게 주어졌으므로 마리아의 명령에 모두가 순종한다. 심지어 하나님도 순종하신다. . . .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온 교회를 마리아의 통치 아래 두셨다,”14) “그는 우리의 구원, 우리의 생명, 우리의 소망, 우리의 모사,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 도움이시다.”15) 마리아에 대한 그의 관념은 신적인 숭배의 관념이다.

파티마의 우리 부인 청군(靑軍)의 기관지 소울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리아는 성령과 완전무결하게 연합하여 있음으로 성령은 오직 그의 배우자를 통해서만 활동하신다. . . . 순간 순간마다 마리아가 친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시하고 인도하고 변화시켜서 그녀의 형상을 닮게 한다. 그러므로 마치 예수님이 그녀 안에 살고 계시고 성부께서 성자 안에 살고 계신 것처럼 우리 안에는 우리가 아니라 마리아가 살고 계신다.16)

1965년 교황 바울 6세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언하였다.17)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그 자신과 자신의 교황직을 ‘우리 부인’인 마리아에게 바쳤다. 그는 1982년 5월 13일, 1983년 10월 16일, 1984년 3월 25일, 그리고 1985년 12월 8일에 세계를 마리아에게 봉헌하였다.18) 그는 그가 착용하는 제복에 마리아를 나타내는 M자를 그려놓았다.19)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1993년 9월 리투아니아에서 행한 연설에서 “마리아여, 당신에게 나의 전부를 맡기나이다”라고 말했다.20) 또 그는 같은 해 세계청년의 날에 덴버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망의 표적이요,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는 믿음의 순례 길에서 받는 위로의 근원이신, 하늘의 황후(Queen of Heaven)를 향하여 내 가슴 속 깊은 찬송을 바치며, 이 엄숙한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를 영접합니다. . . . 이 예배는 태양의 옷을 입은 여자, 마리아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오 태양으로 옷을 입은 여자여 . . .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뜨거운 사랑으로 당신께 인사합니다. . . . 교회의 어머니로서 당신은 계신 곳 하늘로부터 지금도 우리들을 인도하시나이다.21)

성인 숭배, 성물 숭배

천주교회는 마리아뿐 아니라, 이미 죽은 여러 성인들을 숭배하고 그들에게 기도한다. 천주교회에는 수십명의 성인들이 있고 또 그들의 날이 지정되어 있다. 천주교회는 교인들이 그들에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또 천주교회는 많은 성상들과 성물들을 숭배한다. 유럽에는 수천 개의 성상을 갖고 있는 교회들도 있다.22) 또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는 태양 숭배와 관련 있고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알려진 오벨리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23) 또 천주교회에는 수천 혹은 수만 개의 유물들이 있다고 말해진다. 이것들은 다 미신적인 것들이다.

[비평]

마리아 숭배는 원래의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아니었다. 처음 1세기 동안 교회는 마리아에 대해 그 어떤 것도 강조하지 않았다.24) 가톨릭 백과사전도 시인하며 말하기를, “1세기 기독교에서 저 복된 여인 마리아에 대한 명확한 숭배의 흔적을 찾지 못한다 해도 전혀 놀랄 필요는 없다. 마리아 숭배는 나중에 발전된 것이다”라고 했다.25)

2세기 후반의 야고보 복음은 마리아의 신기한 탄생, 평생 처녀성에 대해 말했지만, 3세기 초의 터툴리안은 그런 전설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였다. 4세기 초 콘스탄틴 황제 때에 비로소 사람들은 마리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4세기 말 크리소스톰은 마리아 숭배 움직임을 저지하였고,26) 어거스틴도 마리아의 죄 없는 잉태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고 마리아의 죄성을 선언하였다.27) 주후 431년 에베소 회의는 비록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방어하려는 의도에서일지라도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표현하였다.28) 그러나 로레인 뵈트너의 표현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성(人性)에 있어서 아버지가 없으시고, 신성(神性)에 있어서 어머니가 없으시다.29)

비평가들은 마리아 숭배 사상은 기독교에 들어온 바벨론 종교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바빌론의 수많은 기념비들은 어미 여신 세미라미스가 자기 아들 담무스를 팔에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30) 우드로는 여러 책들과 글들을 인용하며 고대 중국이나 독일, 인도, 그리스, 이집트 등에서도 아기를 안고 있는 어미 여신에 대한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다고 말한다.31) 마리아 숭배뿐 아니라, 성당, 향, 등, 제물, 성수, 축일, 의복, 삭발, 형상들 등 천주교회의 많은 의식들이 다 유대교나 이교에서 기원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천주교의 의식들 중 75퍼센트가 이교에 기원하였다고 말한다.32)

천주교회는 마리아가 평생 처녀이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증거와 다르다. 마리아는 맏아들 예수(마 1:25 전통본문; 눅 2:7)를 낳은 후에 그의 동생들과 누이들을 여러 명 낳았다(마 13:55-56; 막 6:3).

천주교회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어떤 이는 매일 전세계의 로마 가톨릭 교인들이 성모송과 그 밖에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를 암송한다고 할 때 이 기도의 수와 로마 가톨릭 교인수를 곱하면 마리아는 1초당 46,296번의 간구와 청원을 들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33) 그것은 마리아를 신의 자리에 올려놓는 행위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마리아에게 드려진 기도는 단 하나도 없고 또 성경에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라는 어떤 암시도 없다. 또 마리아가 누구를 도와줄 수 있다거나 도와주겠다는 어떤 약속도 없고, 다른 사람을 기적적으로 도와주었다는 단 하나의 기록도 없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만 섬기며 기도해야 하며 어떤 피조물에게도 경배와 기도를 올려서는 안 된다(출 20:3; 마 4:10). 구약성도들은 하나님께만 기도했지 다른 어떤 성인들에게도 기도하지 않았다.

또 우리의 구주와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주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4:6). 사도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증거하였다(행 4:12). 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했다(딤전 2:5).

우리는 성경에서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높임을 볼 수 없고 도리어 그 반대의 예를 본다. 동방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였다(마 2:11). 무리 중 한 사람이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라고 예수께 말하였을 때,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다(눅 11:27-28). 또 그의 모친과 형제들이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그의 모친을 다른 제자들보다 높이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2:50).

마리아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 죄인에 불과하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천사에게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겸손히 고백하였다(눅 1:38). 그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고 찬송하였다(눅 1:46-48).

그러므로 천주교회의 마리아 교리들은 확실히 비성경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오류들이다.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그를 ‘보혜사, 중보자, 천국의 문, 구원의 길, 천상 천하의 어머니와 여왕’ 등으로 부르는 행위는 분명히 우상숭배적이다. 촬스 핫지는 바르게 말하기를, 천주교회가 이론적으로는 마리아를 하나님처럼 섬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피조물에게 전지와 전능의 신적 속성들, 및 기도 응답의 신적 사역을 돌리기 때문에 우상숭배적이라고 하였다.34)

미사

둘째로, 천주교회는 미사 교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부정한다. 천주교회의 미사는 개신교회의 성찬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천주교회에서 ‘미사’는 역사상 점차 제사로 발전되었고, 11세기에는 교인들의 참석이 의무화되었다.35)

천주교회는, 미사가 속죄제사로서 거기에서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며 그리스도께서 미사 때마다 반복하여 죽으신다고 주장한다. 주후 1215년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위와 같은 개념의 소위 ‘화체설’을 선포하였다.36) 한편 1415년의 콘스탄스 회의는 평신도들에게 잔을 거부하였다.

트렌트 회의는, “누구든지 미사에서 참되고 적절한 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언했다.37) 트렌트 신앙고백 제6항은, “나는 미사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참된, 적절한 속죄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진다고 고백한다”고 말하였다.

20세기 중엽의 제2 바티칸 회의도, 미사는 “십자가의 제사가 계속되는 제사”이며 “미사의 제사에서 우리 주님은 제물로 죽임을 당하신다”고 선언하였다.38) 우리나라의 가톨릭 교리서도, “미사 성제는 예수님이 바치신 십자가의 제사를 새롭게 하고 되풀이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제의 손으로 당신 자신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제물로 드리신다. . . . 따라서 미사 성제는 십자가의 제사와 완전히 같으며, 가장 완전한 신약의 제사이다”라고 설명한다.39)

뿐만 아니라, 천주교회는 단순한 성찬 의식을 복잡한 미사 의식으로 변질시켰다. 미사 때 사제의 행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그는 십자가 표시를 16번 하고 회중을 향해 6번 돌아서고 하늘을 향해 자기 눈을 11번 들고 제단에 8번 입맞추고 자기 팔을 4번 모으고 자기 가슴을 10번 치고 머리를 21번 굽히고 무릎을 8번 구부리고 어깨를 7번 숙이고 십자가 표시로 제단을 30번 축복하고 제단에 손을 29번 놓고 11번 은밀하게 기도하고 큰소리로 13번 기도하고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꾼 후 잔을 10번 덮었다 열었다 하고 앞으로 뒤로 20번 왔다 갔다 한다.”40)

[비평]

미사에서 빵과 포도즙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천주교회의 주장은 미사가 가장 놀라운 기적의 현장이든지, 아니면 가장 마귀적 사기이든지, 둘 중의 하나로 만든다. 그러나 미사에서 빵과 포도즙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또 이성적, 상식적, 경험적으로도 합당하지 않다.

성경적으로, 미사는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사역에 대한 왜곡이며 모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요 19:30).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성취하셨음을 나타낸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음을 강조하였다(히 7:27; 9:12, 26, 28). 히브리서 7:27은,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위해 더 이상 속죄제사가 필요치 않다. 히브리서 10:18은,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칼빈(John Calvin)은 이 말씀이 미사라는 가증스러운 것을 정죄한다고 말했다.41)

이성적으로도, 미사 교리는 합당치 않다.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즙을 축복하신 후에도 거기에 계셨고 빵과 포도즙의 형태로 나타나기 위해 사라지지 않으셨다. 또 그는 그 포도즙을 여전히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라고 부르셨다(마 26:29). 또 만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사람의 피를 마셨다면 그것은 율법을 어기는 행위이었을 것이다(레 17:14). 또 미사 때에 빵과 포도즙에는 어떤 외형적, 실체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증거가 없다. 빵은 여전히 빵이며 포도즙은 여전히 포도즙이다. 속성의 변화가 없는 실체의 변화란 있을 수 없다.  

칭의(稱義)

이신칭의(以信稱義) 부정

셋째로, 천주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칭의(稱義)의 복음을 부정한다. 1563년 트렌트 회의는, “누구든지 사람이 공식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는다고 말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언하였고,42) 또 “누구든지, 사람이 그리스도의 의(義)의 전가(轉嫁)에 의해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말하면, . . . 혹은 심지어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호의뿐이라고 말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언하였다.43)

의식주의를 가르침

천주교회는 죄를 대죄와 소죄로 나눈다. 대죄는 일곱 가지 용서할 수 없는 죄들과 십계명을 범한 죄들이다. 일곱 가지 용서할 수 없는 죄란 교만, 탐욕, 호색, 분냄, 탐식, 시기, 게으름 등이다.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범한 모든 성적인 범죄, 개신교 교회에 출석한 것, 개신교 성경을 읽은 것, 충분한 이유 없이 주일 아침 미사에 빠진 것 등이 실제로 대죄에 포함된다. 대죄는 고해성사를 통해서만 사죄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신자의 고해성사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의식이 된다.

16세기 천주교회의 트렌트 회의는 성경에 대한 권위, 은혜와 믿음만으로 얻는 구원, 신자의 만인 제사장 등 종교개혁의 주장 전부를 부인하였고 개신교의 주장에 대해 100회 이상 저주를 선포하였다.44) 그 회의는 성례가 구원에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만약 누구든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법(新法)의 성례(sacraments)가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 . . 성례 없이도 사람이 믿음만으로 의롭다는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는 저주(정죄)를 받을지어다.45)

20세기 중반의 제2 바티칸 회의는, 예배 의식(liturgy), 특히 성찬의 신적 제사를 통해 우리의 구속 사역이 성취된다고 말하며, 천주교회의 모든 기본 교리를 재천명하며, 제2 니케아 회의(787년), 프로렌스 회의(1438-42) 및 트렌트 회의(1545-63)의 선언들을 다시 추천한다고 선언하였다.46)

천주교회는 7성례 외에도 많은 의식들과 의례들을 가르친다. 예를 들면, 아베 마리아 같은 기도, 십자성호, 금식, 채찍질, 성상들, 성화들, 묵주(로자리), 십자가상, 스카풀러(일종의 부적), 유물, 순례여행 등이 그것들이다.47) 

행위 구원을 가르침

천주교회에 의하면, 신자는 고해성사를 통해 대죄만 용서받고 그것은 지옥에서 영혼을 구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소죄들은 금생에서 속죄받든지 사후에 연옥에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천주교회는 신자들의 소죄들의 속죄가 남아 있고 그들이 선행들을 통해 그 죄들을 속죄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된다.

면죄부에 대한 교리도 그 하나이다. 면죄부 교리는 1343년 교황 클레멘트 6세에 의해 교회의 공식 교리로 선포되었다.48) 면죄부에 대한 교리와 실행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20세기 중엽에 열렸던 제2 바티칸 회의도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교회는 면죄부의 사용이--그 사용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며, 거룩한 공회들의 권위에 의해서 인정된 것이다--교회 내에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명령한다. 그리고 교회는 면죄부가 무익하다거나 교회가 면죄부 발행의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저주로 정죄한다.49)

연옥의 교리

천주교회의 교리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완전에 도달한 신자들만 죽을 때 즉시 천국에 간다. 세례받지 않았거나 세례받은 후에라도 대죄를 범한 모든 사람은 즉시 지옥에 간다. 부분적으로 정결함을 받았으나 어느 정도 죄를 짓는 대부분의 신자들은 연옥으로 가서 그 죄가 깨끗케 될 때까지 고통을 받은 후 천국으로 올라간다.

연옥(Purgatory)의 교리는 주후 593년 그레고리 1세에 의해 제정되었고, 주후 1439년 플로렌스 회의에 의해 교리로 선포되었고, 1548년 트렌트 회의에 의해 승인되었다.

트렌트 회의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만약 누구든지 칭의의 은혜를 받은 후에는 책벌이 다 사해졌고 영원한 처벌이 모든 회개한 죄인들로부터 도말되어서 지상에서 처벌을 더 받을 빚이 없어졌으며 혹은 하늘문이 열리기 전 연옥에서도 더 이상 처벌당할 빚이 다 없어졌다고 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지어다.50)

제2 바티칸 회의도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죄는 속죄되어야 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이생의 슬픔과 불행과 시련의 일들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속죄는 내세에서 불과 고통들 혹은 정결케 하는 형벌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51)

가톨릭 교리서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고백의 성사로 지옥의 벌(영원한 벌)은 언제나 사함을 받으나, 세상과 연옥의 벌까지 사함을 다 받는 것은 아니다. 이 유한한 벌의 사함을 받기 위해서 신부는 보속(補贖)을 정해준다. 고백 성사를 받는 사람은, 우리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자기 죄에서 오는 벌을 보상해야 한다.52)

천주교회가 이와 같이 연옥에 대해 선언하지만, 어떤 사람이 얼마 동안 연옥에 갇혀 있게 되며 어떤 수단으로 얼마만큼이나 연옥 기간이 단축된다는 것을 규정한 적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다.53)

[비평]

고해성사와 연옥 교리는 비성경적임

천주교회는 의식주의적인 종교이다. 그것은 복음의 단순함에서 멀리 떠났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비밀 고해에 대하여 가르친 적이 없다. 죄의 고백을 가르친 것같이 보이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는 야고보서 5:16의 말씀은 성도 간에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다는 뜻일 뿐이다.

또 성경은 어디에서도 연옥에 대해 가르친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주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5:24). 또 주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눅 23:43).

천주교회가 연옥 교리의 근거로 의존하는 마카비하 12: 39-45는 죽은 우상숭배자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내용이다. 천주교회의 교리에 의하면 우상숭배자들은 지옥에 가기 때문에 그 구절은 연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구절이다.

히슬롭은 연옥교리가 바벨론, 헬라, 로마 등의 이교신앙에서 기원하였음을 증거하였다.54)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완전함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완전하며 오직 그의 보혈 공로에 근거하여 죄인이 믿음으로 죄씻음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로마서 3:21-22는,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 .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증거한다. 이것은 일한 것이 없이도 은혜로 받는 의이다. 로마서 4:4-5도,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말한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의인이 되었다(롬 5:18).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의(義)가 되신다(고전 1:30).

사죄와 이신칭의(以信稱義)는 완전함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사죄와 칭의는 완전하다. 로마서 8:1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하고, 로마서 10:4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증거한다. 히브리서 10:10은,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말하며, 히브리서 10:14도,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었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 사죄와 칭의는 우리의 선행에 의해 보충될 여지가 전혀 없는 정도로 완전하다.

성도들의 선행의 의미

그러면 성도들의 경건과 선행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도들의 경건과 기도, 그리고 선행과 봉사는 결코 사죄와 칭의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사죄와 칭의의 결과요 열매일 뿐이다. 천주교회의 칭의론은 분명히 복음의 왜곡이며 변질이요 이탈이다. 그것은 다른 복음이다.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였다(갈 1:8-9). 그것은 큰 죄악이다.

교황

넷째로, 천주교회는 교황의 교리에 있어서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교황’(Pope) 즉 전 세계의 감독이라는 명칭은 신약교회 시대의 처음 6백년 동안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주후 607년 황제 포카스에 의해 보니페이스 3세에게 처음으로 부여되었다.55)

성경과 유전(遺傳, Tradition)의 동등한 권위

천주교회는 교회와 전통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와 동등히 여긴다. 1546년 트렌트 회의는 유전(遺傳)이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고 선포하였다.56) 천주교회의 유전의 내용은 14권 내지 15권의 외경들, 헬라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의 저작들, 교회회의들의 선언들과 교황들의 칙서들을 포함한다.57) 천주교회의 특징적 교리들, 예를 들어 연옥, 사제직, 미사, 화체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고해성사, 마리아 숭배, 성상 사용, 성수(聖水), 묵주알, 독신제도, 교황제도 등은 이러한 유전들에 근거한 것이다.58)

교황의 사도 베드로 계승을 주장

천주교회는 또한 로마 교회의 우위성과 교황의 사도 베드로 계승성을 주장한다. 천주교회 교리문답 880항은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라고 표현한다. 제2 바티칸 회의 교회헌장 18항도,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표현하였다.

교황의 그리스도 대리자 됨과 신적 권위를 주장

천주교회는 또한 교황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신적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중세에 와서 발전된 교리이었다. 로마의 주교들은 자신들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하였고, 다른 주교들이 ‘파파’라고 불리우는 것을 금하였다. 로마의 주교들은 ‘최고승원장’(Pontifex Maximus),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 of Christ), ‘주교들의 주교’라는 칭호를 자신들에게만 사용하였다.59)

여기에서 교황제도가 발전하였고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게 되었다. 중세 천주교회의 최대 신학자로 인정받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황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고 말하였다.60) 1885년, 교황 레오 13세는 교황이 “지상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선언하였다.”61)

제2 바티칸 회의 교회헌장 18항도,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표현한다. 천주교회 교리문답 882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황은 모든 교회 위에 언제나 방해받음 없이 행사할 수 있는 완전한, 최상의, 그리고 보편적 권세를 가진다”고 말한다.

뉴욕 교리문답은, “교황은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참된 대리자,” “전혀 오류가 없는 통치자,” “하늘과 땅의 최고의 재판관,” “지상에서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한다.62)

교황이 쓰고 있는 삼중의 왕관은 하늘과 땅과 지하 세계의 왕권을 상징한다.63) 교황의 대관식에서는, “그대는 왕자들과 왕들의 아버지이며 세계의 지배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임을 알라”고 선포된다.64)

페라리스의 가톨릭 교회사전은, “교황은 대단히 존엄하시고 지극히 높임을 받으셨으므로 그는 단순한 하나의 사람이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님이시며 또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라고 말한다.65)

교황의 무오성(無誤性)을 주장

천주교회는 특히 교황의 무오성(無誤性)을 주장한다. 1870년 제1 바티칸 회의에서 교황 피우스 9세는 교황이 그 직분에 따라 믿음과 윤리에 관한 교리를 정의할 때 그는 무오(無誤)하다고 선언하였다.

1964년 제2 바티칸 회의도 교황을 “베드로의 계승자,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체교회의 유형적 머리라고 부르면서” 교황의 머리됨과 무오한 교훈의 직분에 관한 교리를 “모든 신실한 자들이 확고히 믿어야 할” 교리로 강조하였다.66)

전제주의

천주교회의 구조는 제일 꼭대기로부터 맨 밑바닥까지 전제주의적 조직이다. 조직의 맨 위에는 교황이 있다. 그 다음에는 추기경들이 있다. 그들은 새 교황 앞에 바닥에 엎드려 그 발에 입맞추므로 완전한 충성을 맹세한다. 대주교들과 주교들은 교황에 의해 직접 임명되며 교황에게 개인적 충성을 맹세하며 그에게 직접 종속된다. 그 밑에 사제들은 주교들에게 직접 종속되며 절대 복종해야 한다.67)

1215년 유럽 헌법의 어머니로 불리는 영국의 대헌장 마그나 칼타가 발표되었을 때,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즉각적으로 비판하고 그것의 무효를 선포하고 그것을 제정한 영국의 귀족들을 파문하였다.68) 13세기 말, 교황 보니페이스 8세는, “우리는 모든 존재가 로마 교황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말하고 명확히 하고 단언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69) 20세기 중엽 교황 피우스 12세는, “개인적인 자유란 실상 지독한 무질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70)

천주교회의 유일성을 주장

천주교회는 그들만 진정한 교회이며 개신교회들을 포함한 기타 다른 교회들은 이단들이며 존재할 권리가 없다고 본다. 가톨릭 백과사전은 “참된(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신 외의 이상한 교회들을 관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71)

13세기 말 교황 보니페이스 8세는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이 로마 교황에게 복종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선언한다”고 말했다.72) 16세기 중엽 트렌트 회의는 교회법과 선언문에서 적어도 100회 이상 개신교 신앙에 대해 저주를 선포하였다.73) 16세기 후반 교황 피우스 4세의 신경 제14항은 다음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형태의 개신교든지 가톨릭교회가 우세한 곳에서는 어떤 권리도 가지지 못하고 결코 가질 수도 없을 것이다,”74) “하나님을 섬기는 비가톨릭 방식들은 가짜라고 단정되어야 한다,”75) “모든 형태의 개신교회들은 그 자체에 있어서 정당성이 없다.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76)

1864년 교황 피우스 9세는 80개 항목의 “오류 목록” (Syllabus of Errors)을 선포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천주교 사제들이 임직 시 믿고 변호하겠다고 맹세하는 내용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7항, “그리스도의 이 유일한 참 교회 밖에는 어떤 영원한 구원도 없으며 그것을 소망할 수도 없다.” 18항, “개신교는 가톨릭 교회와 동등하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분리된 하나의 참된 기독교가 아니다.” 77항, “오늘날에도 가톨릭은 다른 모든 예배형식을 배제하고 유일한 국가종교로서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77)

20세기 후반에 요한 23세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이 땅에서 그의 인격을 대표하기 때문에 교황의 권위 아래 들어오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양무리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78)

2007년 7월 10일,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로마 가톨릭 이외의 기독교 교파들을 ‘올바르지 못한 교회’(not proper churches)로 규정하는 문서를 발표하였다. 16쪽 분량의 그 문서는 “그리스도는 지구상에 오직 하나의 교회를 세웠고 이는 가톨릭 교회로 존재한다”며 “다른 교파들에 과연 ‘교회’의 자격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문서는 그리스 정교회에 대해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 결함이 있다(defective)”고 묘사했고, 개신교회들을 “교황의 존재를 시인하기를 거부하고, 성찬식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는 등 올바른 의미에서의 교회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79)

[비평]

권위의 원천이 무엇인가?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근본적인 차이는 권위의 원천의 문제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적, 신학적 논의의 핵심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사고와 행위는 무엇에 의해 규정지어지는가? 인간의 이성인가, 교회의 전통인가, 사람들의 풍습인가, 아니면 영원불변적인 하나님의 말씀인가?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회가 종교의 기준을 교회의 권위, 특히 교황의 권위에 둔 것에 대항했다. 그들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권위적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임을 천명하였다. 그것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견해이며 예수님 자신의 견해이었고 또 초대교회로부터 정통 기독교의 견해이었다.

천주교회는 성경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권위의 원천임을 부정할 뿐 아니라, 또한 성경이 신도들의 손에 들어가 읽혀지는 것을 방해하기까지 하였다. 주후 1229년 툴루세(Toulouse) 혹은 발렌시아(Valencia) 회의는 평신도들이 성경을 가지는 것 자체를 금지하였다.80) 교황 클레멘트 11세(1700-21)는 “우리는 평신도들이 구약과 신약의 책들을 통속적인 언어로 소유하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는 우니게니투스(Unigenitus) 법안을 발표하였다.81) 1957년에 스페인의 마드리드의 영국 해외성서공회의 성경저장소는 폐쇄되었고 저장된 성경들은 몰수되어 불태워졌다.82)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죄보다도 큰 죄악이다.

교황이 사도 베드로의 계승자인가?

로마 주교인 교황이 사도 베드로의 계승자인가? 로마 주교들이 사도 베드로의 계승자라는 주장은 주후 3세기 초 로마 주교 칼릭스투스 때에 비로소 나타났다. 그러나 그 주장은 정당치 않다.

(1) 신약성경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교황으로 임명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16:18의 ‘이 반석’이라는 말은 베드로를 가리키지 않는다. 어거스틴과 제롬은 그 말을 베드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이해하였다.83) 또 마태복음 18:18은 천국 열쇠가 베드로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 즉 교회 전체에 주어졌음을 증거한다. 그것은 교회의 복음 전파와 권징의 권세를 나타낸다.

(2) 신약성경과 베드로의 서신들은 베드로가 다른 사도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졌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총회에서도 그 회의의 결정은 베드로가 아니고 야고보의 의견을 반영하였다. 베드로전서 5:1에서 베드로는 자신을 다른 사도들이나 장로들과 동등된 자로 말하였다.

(3) 베드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게 하지 않았다(행 10:25-26). 그는 오늘날 교황들과 달랐다.

(4) 베드로는 오늘날 교황처럼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으며 화려한 왕관도 쓰지 않았다.

(5) 베드로는 결혼한 자이었다(마 8:14; 고전 9:5).

(6) 베드로는 바울 앞에서 책망도 받았다(갈 2:11).

(7) 바울은 13-14개 서신들(2,033절)을 썼으나, 베드로는 단지 두 서신(166절)만 썼다.

(8) 로마는 그 당시 이방인들의 수도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사도인 베드로보다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에게 더 적합하였다.

(9) 베드로가 로마의 첫 번째 주교라는 역사적 증거가 없다. 주후 2세기 말, 이레니우스는 처음 로마 주교들 12명의 명단을 제공하는데, 거기에는 베드로의 이름이 없다. 로마의 제1대 주교는 리누스이었다. 교회사를 쓴 유세비우스도 베드로를 로마의 주교로 기록한 적이 없다. 다만 베드로가 말년에 로마에 왔고 그곳에서 처형되었다고 쓸 뿐이다. 베드로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단절 없는 사도 계승의 교황 족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허구에 불과하다.84)

(10) 베드로는 인간의 전통이나 교회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높이지 않았다(벧전 1:18).85)

 

가톨릭 역사가 될링거는, 마태복음 16:18을 해석한 교부들 중에 이 구절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로마 주교에게 적용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성경 주석을 저술한 교부들 중 단 한 사람에게서도 로마의 우월권이 사도 베드로에게 주어진 위임이나 약속의 결과라고 암시한 가장 희미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고, 교부들은 한결같이 그 구절의 반석을 예수님 자신이거나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거나 혹은 둘 다라고 이해하였다고 증거하였다.86)

될링거는 또, “고대의 어떤 신앙고백도, 어떤 요리문답도, 백성들의 교육용으로 집필된 교부들의 어떤 문서들도, 교황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더구나, 신앙과 교리문제의 확정이 교황에게 달려있다는 내용은 전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였다.87)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피터 드 로사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부들에게 그것--바위라는 것--은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의 믿음이거나 혹은 주님 즉 베드로가 믿는 그 주님이었다. 4세기의 니케아 회의로부터 15세기 콘스탄스 회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회의들은 그리스도 자신이 교회의 반석 즉 그 위에 교회가 세워진, 기초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 . . 교부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베드로로부터 그의 후게자에게 권세가 이전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없다. 항구적인 베드로 직분에 대한 흔적도 없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베드로가 로마의 주교였다고 보지도 않았고 그러므로 로마의 주교가 베드로를 계승(繼承)한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 . . 복음은 교황제도를 제정하지도 않았고, 일단 제정된 교황제도는 복음에 의존하지도 않았다(교황제도 안에는 복음도 없긴 했지만).88)

교황(Pope)의 명칭과 복장의 이교적 기원

또 교황(Pope)의 명칭과 복장은 이교적 기원을 가진다. 교황이라는 명칭은 로마 제국의 대표적 신비종교인 미트라교의 최고 제사장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89) 또 교황이 가지는 최고승원장(Pontifex Maximus)이라는 칭호도 이교도들의 제사장 겸 왕인 황제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90)

로마 제국의 행정조직과 로마 교회의 행정조직은 매우 비슷하다. 맨 위에 황제와 교황이 있다. 그들은 최고승원장이라는 공식명칭을 가진다. 그 다음에, 황제와 교황을 선출하는 원로원과 추기경회가 있다. 그 다음에 황제와 교황이 직할 통치하는 제국 총독과 추기경이 있다. 그 다음에 각 도와 대교구를 관할하는 각 도 총독과 대주교가 있다. 또 그 다음에 각 도시와 교구를 관할하는 지방 총독과 주교가 있다. 그 아래, 백성들과 평신도들이 있는 것이다.91)

교황들이 입는 매우 값비싸고 화려한 의복은 로마 황제들의 의복을 흉내낸 것이다. 교황들이 쓰는 물고기 모양의 모자는 메소포타미아의 물고기 신인 다곤 숭배에서 나타난다. 교황이 어깨에 걸치는 팔리움(영대)은 그리스와 로마의 이교 성직자들의 복장이었다.92)

교황 무오설의 허구

천주교회의 교황의 권위와 무오성에 대한 교리는 성경에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모든 기독교 교리들의 기초인 성경의 신적, 절대적, 최종적 권위에 대한 교리에 가장 모순된다.

신약성경의 어느 곳도 또 초대 교회의 어느 인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주교를 교회의 무오한 교사와 치리자로 세우셨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레니우스도, 터툴리안도, 제롬도 그러하였다. 6세기 말의 가장 영향력 있던 교황 그레고리 1세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1415년의 콘스탄스 회의와 1432년의 바젤 회의는 “교황일지라도 회의의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93) 콘스탄스 회의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합법적으로 개최된 교회를 대표하는 모든 회의는 그 권위를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으며 신앙문제에 있어서나 분단의 치료에 있어서나 그리고 교회의 개혁에 있어서 교황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회의에 순복한다.94)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 가톨릭교의 무오 교리의 근원에 관한 한 . . . 그것은 천천히 ‘발전’되거나 혹은 ‘전개’된 것이 아니라, 줄곧 이단으로 규탄을 받아왔으며, 비정상인 프란시스칸 수도승 피터 올리비(1298년 사망)에 의해서, 그의 일필휘지로 1200년대에 돌연히 창조된 것이다. . . . 중세 교회법 전문가들도 신앙의 보존을 위해서 교회가 무오한 교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 . . 그리고 무오설에 대한 현대의 비판적 공격은 당연히 성서와 가톨릭 전통의 후원을 받고 있다.95) 

1870년 제1 바티칸 회의에서 선포된 교황무오의 교리는 콘스탄스 회의의 선언을 부인해버린 행위이었다. 그 회의는 예수회파의 각본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헤슬러는 바티칸의 기독교일치국에서 5년간 일하는 동안 제1 바티칸 회의에 관한 비밀문서들에 접하였는데, 사건 전체가 분명한 회의의 조작이었음을 알고 어떻게 교황이 무오하게 되었는가? 라는 책을 썼고 그 원고를 탈고하자마자 ‘돌연한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은 그 책의 서문을 썼다는 이유로 교편직을 박탈당하였다.96)

학자이며 대주교이었던 스트로스마이어(Strossmayer)는 그 회의에서 그 교리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당하게 말하였다.

나는 가장 진지하게 신구약성경을 연구하려고 애썼고, 나는 이 진리의 존엄한 기록물들에게 여기에 사회하고 있는 신성한 교황께서 성 베드로의 참된 계승자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교회의 무오한 박사인지 나에게 알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나는 사도시대에는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모하멧의 문제가 없었듯이, 교황에 대한 문제가 없었음을 발견합니다. 이제 나는 전 신약성경을 읽고나서 하나님 앞에 저 위대한 십자가상 앞에 내 손을 들어 선언합니다. 나는 이 시점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교황제도의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신하였습니다: (1) 예수께서는 그가 베드로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권세를 그의 사도들에게도 주셨습니다. (2) 사도들은 성 베드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3) 베드로는 자신을 교황으로 생각하거나 결코 그처럼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4) 처음 4세기의 교회 회의들은, 로마 주교가 로마라는 이유 때문에 가졌던 높은 지위를 인정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은 명예를 부여한 것이지 결코 권세나 사법권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5) 거룩한 교부들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유명한 구절에 대해, 교회가 결코 베드로 위에(super Petrum) 세워진 것이 아니고 반석 위에(super petram), 즉 그 사도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고 이해하였습니다. 나는 승리자의 심정으로, 역사와 함께, 이성과 함께, 논리와 함께, 상식과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가지고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 베드로에게 수위권(首位權)을 부여하지 않으셨으며, 로마의 주교들은 단지 주교단의 모든 권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몰수함으로써 교회의 주권자가 되었을 뿐입니다.97)


47년간 교수이었던 그 당시 가장 저명한 가톨릭 역사가이며 신학자이었던 J. H. 이그나즈 본 될링거는 교황무오설의 근거가 성경에서나 교회 전통에서 빈약하다고 지적한 죄로 파문당하였다.98) 그의 저작 교황과 공회라는 책은 제1바티칸 회의 개최 직전에 출판되었는데, 출판되자마자 즉시 금서목록에 포함되었다. 그 책에서 될링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진술하였다.

고대의 신앙고백들이나 요리문답,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 기록한 교부들의 기록들 가운데 단 하나도 교황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더욱이 모든 신앙과 교리가 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교회 역사의 처음 1000년 동안 교리 문제 가운데 단 하나도 교황에 의해서 최종 결정된 것은 없다. . . . 심지어는 오랫동안 동방교회의 문젯거리가 되어 몇 번의 종교회의를 소집해야만 했던, 사모사타의 바울에 의해서 야기된 기독론마저도 교황의 어떤 개입이 없이 종결되었다. . . .

초대교회에 발생했던 세 개의 문제들--부활절 문제, 이단 세례 문제, 회개한 자들에 대한 징계 문제--에 로마 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문제 전부 다 로마 교황들은 자신들의 뜻이나 견해나 관행을 관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교회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기들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소아시아 교회들이 로마의 방법을 추종하도록 강요한 교황 빅토르의 시도는 그들을 파문하겠다고 위협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99)

터툴리언, 씨푸리언, 렉텐티어스 등은 교황의 특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며, 교리 문제 결정에 있어서 교황이 더 높은 권위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헬라 교부들--유세비어스, 성 아타나시우스, 성 대(大)바실, 그레고리 형제들, 성 에피파니어스 등--의 저서들 가운데 로마 교황의 특권에 관한 기록은 단 한 마디의 언급도 없다. 헬라 교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설교를 남긴 성 크리소스톰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 침묵이다. 두 명의 씨릴도 마찬가지고 또한 라틴 교부들--힐러리, 파시언, 제노, 루시퍼, 설피시어스, 및 성 암부로스--도 모두 마찬가지다.

성 어거스틴은 교회의 통일과 권위에 대해서 다른 모든 교부들의 글을 합친 분량보다 더 많은 글을 썼다. . . . 그는 도나티스트들이 교회로 돌아와야 할 모든 이유들을 제시했지만, 교황 좌(座)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100)


로텐버그 주교이었고 교회사 교수이었던 요셉 헤펠레(Hefele)는 제1 바티칸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제가 간략하게 말하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교부들의 저술들과, 공회의 기록 등을 위시하여 교회사의 원전 및 교회가 가르쳐 온 교리들에 대해서 상당히 익숙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문서들을 말하자면 . . . 밤낮으로 손에 들고 사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서들 중에서 (믿을 만한 근거로부터 교황무오설에 관한) 교리는 결코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101)


제1 바티칸 회의를 주재했던 교황 피우스 9세에 대해, 많은 부정적인 평판이 있었다. 파리 소르본 대학 학장이었던 주교 앙리 마레(Henri Maret)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피우스 9세를 “가짜요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 추기경 구스타브 본 호헨로헤(Hohenlohe)는 “나는 (교황무오설을 반대함에 있어서) 단지 이 사실 하나 외에 다른 어떠한 주장도 필요 없다. 즉 나는 나의 전 생애를 통해서 피우스 9세보다 더 진리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은 사람을 만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주교 두판루프(Dupanloup)는 1870년 6월 28일자의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더 이상 공회에 가지 아니할 것이다. 폭력과 수치를 모르는 철면피, 사기, 허영, 끝도 없는 거짓 등은 나로 하여금 거리를 두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102)

더욱이, 역사상, 교황 비질리우스(Vigilius, 6세기 후반), 교황 인노센트 3세(13세기 초), 교황 클레멘트 4세(13세기 후반), 교황 그레고리 11세(14세기 후반), 교황 하드리안 6세(16세기 초), 교황 바울 4세(16세기 중반) 등의 교황들은 교황무오의 교리를 반대하였다.103)

또, 교황 무오의 교리는 교황들의 칙령들의 실제 역사에도 모순된다. 역사상 어떤 교황들을 다른 교황을 정죄하였고 또 전의 교황의 선언을 부정하였다. 또, 교황들의 사상들과 선언들 간에는 차이점들과 심지어 상호 충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그레고리 1세(590-604)는 누구든지 ‘전 세계의 감독’이라는 칭호를 가지려 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라고 말했으나, 보니페이스 3세는 황제로 하여금 그에게 그런 칭호를 주도록 만들었고 다른 교황들은 그 칭호를 합당하다고 주장하였다. 9세기 후반 하드리안 2세는 세속 결혼도 유효하다고 선언했으나, 19세기 초 피우스 7세는 그것을 무효라고 정죄하였다.

또 16세기 말에 씩스투스 5세는 성경 읽기를 권장하였으나, 피우스 7세와 여러 다른 교황들은 그것을 정죄하였다.104) 18세기 후반에 클레멘트 14세는 예수회 회원을 억제하는 명령을 내렸고 19세기 초 피우스 7세는 그들을 회복하는 명령을 내렸다. 15세기 초, 유게니어스 4세는 잔다크를 마녀와 이단으로 정죄하여 불태워 죽였으나, 20세기 초, 피우스 10세는 그녀를 시복하였고 베네딕트 15세는 그녀를 성자로 선언하였다.105)

또, 많은 교황들이 이단적인 교리들을 가르쳤다. 3세기 초의 로마 주교 칼리스투스는 성부와 성자를 나눌 수 없는 한 영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이단사상이다. 4세기 중엽 리베리우스는 아리우스 이단 교리에 찬동하는 서명을 하였다. 5세기 초 조지무스는 펠라기우스를 정통 교사로 선포하였다가 후에 그 입장을 바꾸었다.106)

덧붙여서, 참으로 교훈의 무오성을 가진 교황이라면, 가장 정확한 성경주석을 출판함으로써 온 세계에 은혜를 베푸는 것이 얼마나 선한 일일까? 그러나 이제까지 어느 교황도 성경의 어느 한 권, 아니 어느 한 장이라도 무오한 해석을 출판한 일이 없다. 또 무오한 교황이 있는데, 어떤 문제에 있어서 교황이 신학자들과 주교들의 연구보고서를 제출케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종교적 전제주의는 정치적 전제주의와 상통함

천주교회의 종교적 전제주의는 정치적 전제주의들과 상통한다. 교황 피우스 11세는 1929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라테란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교회가 이탈리아의 유일한 종교로 인정되는 것이며 또한 독재자 무솔리니가 로마 교회의 인정 속에서 이탈리아에서 자유로이 활동하는 발판을 얻은 사건이었다.107)

1933년에 교황이 독일의 히틀러와 조약을 체결한 사건도 그러하였다. 그 전쟁 기간 내내 교황청은 수백만 불의 교회세를 수입으로 얻었고 그 대신 히틀러를 파문시키지 않았고 6백만명의 유대인들의 학살도 묵인하였던 것이다.108)

천주교회는 공적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하지만, 전제주의라는 형태는 비슷하다. 소련과 중국 외에 가장 큰 공산당을 가진 나라는 천주교 나라인 이탈리아이다. 이탈리아의 투표권자들 중 거의 3분의 1은 공산주의자라고 한다.109) “전체주의 교회에서 전체주의 국가로의 이행은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된다.”110)

이전에 천주교회 신자이었던 쿠덴호브-칼러지 백작은 “칼빈주의가 기독교의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한 날개라면 가톨릭[천주교회]은 파시스트적인 한 형태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양심에 강조점을 두지만 파시즘은 권위와 순종에 강조점을 둔다”고 말했다.111)

 

윤리적 문제

천주교회는 또한 역사상 심각한 윤리적 오류들을 가지고 있었다. 로레인 뵈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실 로마교회는 전 역사를 통해 그리고 공적인 자격으로 종교란 이름 하에서 저질러진 가장 흉악한 범죄들, 예를 들면 살인, 도둑질, 모든 종류의 박해, 뇌물, 사기, 기만 그리고 실제로 인간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다른 범죄들을 자행해왔다. 그러나 그 교회는 과거의 그 역사를 인정하거나 통회자복하지 않았다. 그러한 범죄들은 단지 평신도들뿐 아니라 앞으로의 교회사 연구가 보여주겠지만 죄인임을 부정하는 교황들, 추기경들, 주교들, 사제들에 의해서도 저질러졌다. 그러한 범죄들은 로마교회가 개신교를 억압하려고 시도하는 곳에선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112)

학살

천주교회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기본권인 자유를 극도로 탄압하였다. 19세 초의 교황 클레멘트 12세에 대하여, 한 역사가는, “그가 사도의 보좌에 즉위하자마자, 그의 전임자와 같이, 그는 사회의 각계 각층에 침투해 들어온 민주적 사상과 원수라고 선언하고, 자신이 전능한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선포하였다”고 말했다.113)

천주교회의 고문과 학대와 학살의 방법은 옛날 로마 제국에 비할 바 아니었고 또한 근래에 공산주의자들이나 독재자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고 알려져 있다.

고문

천주교회는 역사상 많은 사람들을 매우 비인간적 방식으로 고문하였다. 1184년 베로나(Verona) 회의는 ‘종교재판소’(the Inquisition)를 설립하였고,114) 1252년 교황 인노센트 4세는 “박멸에 관하여”라는 문서를 통해 고문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드 로사는 말하기를, “13세기 이래 80명의 교황 전부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종교재판소의 신학적 타당성이나 기구 자체를 거부한 자는 없었다”라고 하였다.115)

교황들은 사람을 고문하는 데 여러 가지 방법들을 사용하였다.116)

① 긴 평판의 고문대(rack)--사람을 긴 평판에 뒤로 눕히고 손발을 양쪽에서 묶어 밧줄로 잡아당기는 고문법.

② 손톱 뽑기와 불로 지지기.

③ 로울러 고문--날카로운 칼날과 송곳들이 쭈뻣쭈뻣하게 나온 로울러로 성도들 위에 앞뒤로 굴려 고통을 주는 고문법.

④ 손가락, 다리와 발가락을 비틀거나 짓이기는 고문법.

⑤ 철갑 처녀(iron maiden) 고문기--사람 몸에 딱 맞는 크기로 제작된 관에 그 내부는 철침으로 가득 박혀 있는 고문기. 문이 닫히는 순간 온몸에 침이 박혀 출혈로 서서히 죽게 됨.

⑥ 도르래 고문--손을 등 뒤로 묶은 후 그 손을 다시 밧줄로 매달아 위로 들어 올려 도르래를 작동시켜 몸뚱이를 공중에 매달리게 하거나 혹은 떨어뜨리기도 하는 고문법.

⑦ 유다 요람--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 뾰족한 부분에 끈으로 묶인 대상자의 항문 혹은 질이 위치하도록 앉힌 다음 줄을 천천히 풀어서 체중에 의해 서서히 파고들게 하여 고문하는 기구.

그 외에도, 귀와 입에 납을 부어넣기, 눈을 빼기, 자기의 소변과 배설물로 인한 질식사, 고문실 안에 사는 쥐들과 해충의 먹이가 되어 죽는 경우 등도 있었다.

살인

천주교회는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도미니칸 수도회의 가장 뛰어난 사상가이며 천주교회의 최고의 신학자이었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가 이단자들을 죽이고 제거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록 이단들이 관용되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두 번째의 훈계로 그들이 교회의 신앙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들을 참아야 한다. 그러나 두 번째 훈계 후에도 그들의 오류들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자들은 제명 출교되어야 할 뿐 아니라 세속권력에 넘겨져 박멸되어야 한다.117) 

이단자들에 관하여는, 이단은 죄이므로 그들이 단지 제명 출교로 교회에서 분리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죽음으로 세상에서 끊어져야 마땅하다.118)

로마 천주교회는 로마 제국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다. 인노센트 3세(1198-1216)는 종교재판소(the Inquisition)를 통해 무죄한 그리스도인들 100만명 이상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살해하였다.119) 그는 어떤 로마 황제가 그의 전 통치기간 중에 살해한 숫자보다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한 나절에 죽였다.120) “수많은 교황들이 인명과 자유에 대해서 경시해온 것은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역사적 기록이다.”121)

주후 1209년 베지에르에서는 6,000명이 칼로 살육되어 거리에 피가 강같이 흘렀다.122) 주후 1211년 라바우어에서는 총독이 교수대에서 처형되었고 그의 아내는 우물 안으로 밀려들어가 돌에 맞아 죽었고 약 400명은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그 즈음에 약 10만명의 알비파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메린돌 대학살에서는 500명의 여인들이 창고에 갇힌 채 불태워 죽임을 당했다.123)

15세기 초, 교황 마틴 5세는 폴란드 왕에게 후스파를 절멸할 것을 명령하며 이렇게 썼다. “그러므로 아직 시간 여유가 있을 때, 귀하의 군대를 보헤미아로 진격하시오. 전역을 불사르고 살육하고 초토로 만드시오. 왜냐하면 이보다 더 하나님 뜻에 합당한 것은 없기 때문이오.”124)

16세기 후반의 교황 피우스 4세의 신경 제14항은 “이단들은 파문될 뿐 아니라 정당하게 사형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125) 주후 1545년 프랑스에서는 왈도파(Waldensians)에 대한 대학살이 있었다. 21개 마을이 불에 탔고 거주민들은 약탈되고 살해되었다.126) 주후 1572년 성 바돌로매 날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1만여명의 위그노 교도들이 대학살을 당했고, 프랑스 전역에서는 4-6만명에 이르렀다.127)

18세기 말, 마드리드 종교재판소 서기로 일했던 케논 로렌테는 그의 책 종교재판소의 역사(History of Inquisition)에서 스페인에서만 300만명 이상이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약 30만명이 화형당하였다고 기록했다.128)

천주교회는 반유대주의적 정서를 가지고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거나 학살을 방조하였다. 교황들은 반유대주의를 학문적으로 발전시킨 자들이었다. 죽을 때까지 천주교 신자이었던 히틀러는 자신은 교회가 시작한 일을 끝마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129) 천주교회는 히틀러, 무솔리니, 히믈러 등 유대인 학살의 주역들 중 어느 한 사람도 파문시킨 적이 없다.130) 천주교회는 또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단지 그들의 교리와 권위에 복종치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죽였다.

W. E. H. 레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를 바로 아는 프로테스탄트라면 로마 교회가 인류 사회에 존재했던 어떤 단체보다도 무고한 자를 많이 죽였음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 . . 로마 교회에 의해 희생된 자의 수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131)

죤 다울링은, “교황권이 존재한 기간 중에 해마다 평균 4만명의 종교적 살인이 자행된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132)

J. M. 캐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또다시 잔악한 박해의 손길이 닥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코자 한다. 만약 암흑시대라 불리었던 1200년 동안에 5000만명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아 죽었다고 하면--역사는 확실히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는 100년마다 평균 400만명 이상의 비율로 죽은 셈인데, 이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133)

데이브 헌트(Dave Hunt)는 다음과 같이 또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역사상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심한 핍박을 가한 당사자이며, 이방신을 섬기는 로마와 회교도들이 살해한 숫자보다 엄청나게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처형한 자이다. 그리스도인의 박해와 처형에 있어서 로마교회를 능가한 자들은 모택동과 스탈린 밖에는 없다.134)

종교재판소(the Inquisition)는 그 후 ‘성직회’(the Con- gregation of the Holy Office)라고 불리웠고 1966년 교황 바울 6세는 그 이름을 다시 ‘신앙교리회’(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라고 개명하였고, 또한 ‘교리회’(the Doctrinal Congregation)라고도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그 회의 중심인물은 지금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된 요셉 라칭거(Joseph Ratzinger) 추기경이었다.

[비평]

자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기본적 권한이다. 장로교 헌법은 이것을 정치의 원리 제1조에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다.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일반 인류는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누구든지 이 권리를 침해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이 자유를 누린다. 고린도전서 7:23은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말하였다.

교회가 종교의 이름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이나 학살 방조, 그리고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고문과 핍박과 학살을 하였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공할 만한 죄악이다. 이것은 천주교회가 통회자복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지 의문인 큰 죄악이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이런 죄악들에 대해 인정한 적도, 통회자복한 적도 없다.

J. C. 라일(Ryl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리 여왕 때 순교자들을 불태운 것은 로마 교회가 포기한 적이 없는 행위이다. . . . 보드와인들이나 엘비젠스들에게 저지른 일들을 그들은 회개한 적이 없다. . . . 스페인 종교재판소에 의한 대량 살인 행위도 결코 회개한 적이 없고 . . . 영국 개혁자들을 불태워 죽인 행위도 아직 회개한 적이 없다.

우리들은 이 사실들을 유념해야 할 것이고 우리 마음 속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로마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135)


데이브 헌트(Dave Hunt)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까지 로마는 어떠한 잘못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종교재판소에 대해서도, 수십만에 달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가혹한 핍박과 학살에 대해서도, 수백만의 순교한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도, 2차대전 기간 동안 일백만 세르비아인들의 학살에 대해서도 그리고 수만명의 나치 전범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킨 일에 대해서도 결코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136)  

음행

천주교회의 역사는 음행으로 더럽혀진 역사이었다. 역사상, 교황들 중에는 음란하고 부도덕한 자들이 많이 있었다.

교황 세르기우스 3세(904-911)는 이전의 교황의 첩인 마로지아와 불륜의 관계로 사생아들을 낳았고 창녀들의 통치시대(904-963)를 시작하였다.137)

교황 요한 12세(955-964)는 교황청에 창녀들을 불러들였고 그의 때에 교황청은 도덕적 부패가 극에 달하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와 동침하였고 첩의 여동생과 동침하였고 여자라면 닥치는 대로 음행을 저질렀다고 알려진다.138) 그는 그의 전 생애를 간음에 소비하였다. 또 그는 간음을 행하다가 중풍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139)

교황 베네딕트 9세(1033-1045)는 대낮에 간통과 살인을 자행하였다.140)

교황 요한 23세(1410-1415)는 자기 형제의 아내들, 수백명의 처녀들, 또 결혼한 여인들과 간음을 행하였다.141)

교황 피우스 2세(1458-1464)는 많은 사생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142)

교황 인노센트 8세는 여러 여자들과 음행했고 16명의 자녀들을 두었다.143)

교황 알렉산더 6세(1492-1503)는 추기경들을 뇌물로 매수해 교황이 되었고 여섯 아이를 낳았는데, 그 중 둘은 교황이 된 후에 낳았다. 그는 자기의 두 누이들과 근친상간하였고 자기 딸에게서 자식을 두었다고 전해진다.144)

교황 레오 10세(1513-1521)는 교황청에서 열두 명의 나체소녀들에게 저녁식사 시중을 들게 하였다.145)

가톨릭 역사가이며 예수회 회원이었던 피터 드 로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황들은 불과 열다섯 살 된 여아들을 정부(情夫)로 데리고 있었으며, 온갖 형태의 근친 간음 행위와 성적 범죄를 저질러 왔고, 헤아릴 수도 없는 사생아들을 두었고, 간음의 현장에서 [자기 아내와 한 침대에 들어 있는 것을 목격한 남편들에 의해서] 살해당해 왔다.146) 

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신생활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 . . 어둠의 역사다. . . . 그 역사의 대부분은 여성 타락의 역사이다. . . . 차텃의 이보(Ivo of Chartres)가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수녀원들은 이름만 수녀들이지, 실상은 모두 창녀들이라는 것이다.147)

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부들과 고위 성직자들뿐 아니라 교황들까지도 전 역사를 통해서 살펴볼 때 정부들을 두고 있었으며 창녀들에게 출입해 왔다. 많은 성직자들이 동성애자들이었다. 성행위로 인하여 파문된 성직자는 없었다.”148)

드 로사는, “567년 제2차 투어스 회의(Council of Tours) 때 . . . 아내와 정부를 두지 않은 사제는 거의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149)

윌 듀란트는, “1490년 로마 인구 약 9만명 중 등록된 창녀의 수가 6,800명이었고, 이것은 사창굴의 창녀 수는 포함되지도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150) 17세기 초, 교황 바울 5세 때에도 로마시의 인구가 10만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매춘부는 무려 6천명이었다고 한다.151) “모든 성직자들은 첩을 두고 있었고 로마의 모든 수녀원은 추악한 것으로 유명하였다.”152)

[비평]

천주교회에 의해 화형을 당했던 사보나롤라는 그의 불같은 설교에서 로마를 “동전 한 잎에 몸을 파는 창녀”153)라고 칭했다. 또 그는 사제들은 “모든 자에게 영적 죽음을 불러오는 자들이며 . . . 그들의 경건은 창녀들과의 동침에 있다”고 비난하였고, 또 “천 명, 만 명, 만 사천 명의 창녀들이 로마에게는 오히려 부족하다. 로마의 모든 남녀가 다 창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154)

천주교회의 음란한 역사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부를 수 없을 정도이며 아니 일반 종교로서도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것은 가증한 일이며 이 한가지만 보아도 천주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다.

이런 일들은 그들의 독신주의 제도에 기인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약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정욕이 불일듯하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교훈했다(고전 7:9).

탐욕

천주교회의 또 하나의 윤리적 문제는 물질의 탐욕에 있었다. 교황들은 세속적 권력을 가지고 수백만 달러가 넘는 매우 값비싼 왕관들을 썼다. 그것은 그들이 누렸던 물질적 풍요의 표이었다. 교황은 제2 바티칸 회의 때까지 공식적으로 진주와 보석으로 장식된 ‘티아라’라는 삼중관을 썼다. 11개의 사파이어, 19개의 에메랄드, 32개의 루비, 252개의 진주와 529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티아라가 있다고 한다.155) 또 로마의 바티칸은 수십조 달러의 가치가 있는 예술품들과 수억 달러의 보화들을 소유하고 있고, 이탈리아 주식의 27%를 독점하고 있으며, 세계 교회로부터 걷는 세금과 광대한 토지와 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156)

역사상 교회가 물질을 모으는 한 수단으로 연옥의 교리가 사용되었다고 보이며 또 면죄부도 그러했다. 천주교회에서 드려지는 각종 미사는 값이 정해져 있다. 평미사는 값이 싸지만, 장엄미사는 비용이 좀 든다. 천주교회가 멕시코 같은 나라의 가난한 지역에서 엄청난 물질적 부를 축적하고 거대한 대성당들과 남녀 수도원들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교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비평]

예수께서는 세상의 부귀, 권세, 영광을 누리지 않으셨다.

교황들이 세속적 정치 권력을 가지는 것과 호화로운 왕관을 쓰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다르다. 주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고 말씀하셨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하셨다. 그는 부귀, 권세, 영광을 소유하지도 누리지도 않으셨다.

부도덕한 교황이나 교회는 하나님의 종이나 교회가 아니다.

천주교회의 부도덕한 교황들이 어떻게 교회의 참된 머리나 무오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머리나 무오한 지도자가 아닐 뿐 아니라, 참되고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영광을 부당하게 탈취하는 자들이다.

주께서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다(마 10:8).

더욱이, 종교를 빙자하여 돈을 버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다. 또 교황들이 참으로 영혼들을 연옥에서 풀어줄 권세를 가진 자들이라면 돈을 받지 않고 그 권세를 행사하려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나쁜 일일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자로 내보내시며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셨다(마 10:8). 그것이 전도자들과 교회 사역자들의 바른 마음가짐이다. 주의 종들은 아무 대가 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사람들을 섬기는 자이어야 한다.

결론

천주교회는 앞에서 분석한 대로 몇 가지 중요한 교리들에 있어서 성경적 기독교로부터 분명하게 이탈하였다. 또 천주교회는 역사상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바른 교회라면, 그 문제들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철저히 청산해야 할 것이나 천주교회는 그렇게 한 적이 없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회를 적그리스도적이며 우상숭배적 단체라고 말하였다. 루터는 교황제도를 마귀적이라고 비평하였다.157) 칼빈도 천주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치명적 대적자로 간주하였고, 천주교회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때보다 더 불순한 교리를 가지고 더 큰 우상숭배를 하고 있고 다니엘과 바울이 예언했던(단 9:27; 살후 2:4) 바로 그 적그리스도이며158) 교황의 복음은 사도 바울의 복음의 ‘무서운 변질’이라고 간주하였다.159)

천주교회의 비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인 교리들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천주교회에 대한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의 판단과 태도는 오늘날도 여전히 정당하고 유효하다. 천주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고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배교적인 단체 즉 신약교회 역사상 대표적인 또 지금도 세계적으로 매우 활동적인 이단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설교자 촬스 스펄젼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약 로마 교회의 교황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그 이름으로 불리울 자는 단 하나도 없다. 그는 그리스도를 상하게 하는 자요, 그리스도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자요,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자리에 성례들을 대신 앉혀 놓은 자이며, 구세주 대신에 한 조각의 떡을 드는[숭배하는] 자이다.160)

마틴 로이드-존스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모조품이다. . . . 최악의 그리고 가장 악마적 형태이며 . . . 적그리스도의 모범이며 . . . 배척하고 공개적으로 정죄받아야 할 대상이다.”161) 

[부록]

현대교회의 배교와 타협

오늘날 개신교회들은 천주교회에 대해 우호적이며 포용적이 되어 가고 있다. 평신도들뿐 아니라, 목사들이, 그것도 자유주의 목사들뿐 아니라, 심지어 복음주의 목사들이 천주교회를 인정하고 가깝게 교제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현대교회의 배교와 타협이다. 이것은 진실한 성도들과 교회들을 심각하게 혼란시킨다. 우리는 현대교회의 배교와 타협의 사례들을 부록으로 간략히 정리해보았다. 본서에 제시된 천주교회의 교리적, 윤리적 문제들을 분명히 인식하고 천주교회가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이단임을 인식한 목사들과 성도들은 현대교회의 배교와 타협의 현실을 인식하고 경각해야 할 것이며 또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배교적 연합주의

오늘날 기독교계의 주류 교단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에큐메니칼 운동 즉 교회연합운동은 천주교회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상, 기독교계의 재연합이라는 교회연합운동의 비전이 천주교회를 포함하지 않고는 수적으로 큰 결함이 있을 것이다. 천주교회의 교인수가 개신교회들과 헬라정교회의 교인수를 다 합한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세계기독교백과사전에 의하면, 1980년 중반 천주교 교인수는 약 8억 9백만명, 개신교 교인수는 약 2억 8천만명, 헬라정교회 교인수는 약 1억 2천4백만명, 영국교회(성공회) 교인수는 약 6천5백만명이라고 한다.162)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은 천주교회와 밀접하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초대 총무이며 명예 회장인 빌렘 비셜트 후프트는 세계교회협의회와 천주교회의 적극적 협력관계에 대해, “우리가 반복해 말하는 바는, 세계교회협의회 내의 교회들과 천주교회는 이제 모두 한 동일한 교회연합운동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163) 세계교회협의회의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도, “현재 세계교회협의회와 천주교회 간의 관계는 매우 긍정적이며 모든 종류의 우호 관계들이 있다”고 말하였다.164)

천주교회는 1959년까지 교회연합운동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교황 요한 23세와 바울 6세의 노력으로 연합운동에 적극적이게 되었다. 1962년에 시작된 제2 바티칸 회의는 그 특별한 전환점이었다.165) 천주교회는 아직 세계교회협의회의 회원이 아니고 회원권을 구하고 있지도 않지만 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1968년 이후, 10-15명의 천주교 신학자들이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에 정회원으로 참여해왔다. 천주교회는 정규적으로 세계교회협의회의 주요 대회들에 참관인이었고 세계교회협의회의 프로그램 작성 간사 중에도 들어 있다.166) 1993년,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 세계대회의 120명 회원 중 26명은 천주교인이었다.167)

1997년 8월 미국복음주의 루터교회(ELCA)는 수세기 동안의 천주교도들과의 분열의 싸움이 끝났고 과거의 정죄들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168) 그 교회의 에큐메니칼 담당자 프랭크 센 목사는, “우리는 16세기에 분리되어 나간 자들이며, 우리는 다시 함께 돌아가야 할 자들이다”고 말했다.169)

1998년 1월 우리나라 성공회 대성당에서 열린 기독교일치주간 연합예배에 개신교회, 성공회, 천주교회, 정교회 등이 참여했다.170)

1999년 현재, 천주교회는 56개국 교회협의회들의 정회원이다.171)

1999년 5월 12일 ‘영국교회-천주교회 국제위원회’는 “로마 주교는, 교회의 세계적 수위권(首位權)의 표현으로서, 진리를 분별하고 밝히는 특별한 사목(司牧) 활동을 한다”고 명시했다.172) 교회연합운동에서 모종의 교황제도를 받아들이려는 경향은 처음부터 있었다.173)

미국의 교회협의회와 천주교 주교대회는 매년 문안과 사절단을 교환하는데, 그런 협력의 한 상징으로, 교회협의회 회장이며 미국의 전 유엔 대사 앤드류 영이 1999년 9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한 천주교 성당에서 그의 취임식을 거행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174)

1999년 10월 31일, 루터교 세계연맹 크리스티안 크라우제 주교와 교황청 일치위원장 에드워드 카시디 추기경은 신교와 구교의 500년 만의 화해 사건으로 ‘칭의의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에 서명했다.175)

2000년 1월 18일 로마의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2000년 대희년 교회일치기도회에 천주교회 교황 요한 바울 2세와 영국교회 수장 조지 커레이 캔터베리 대주교와 동방정교회 대표 헬리오폴리스 수석대주교 등이 참여했다.176)

2000년 4월 앨버타 에드몬튼에서 열린 캐나다 교회협의회는 천주교회 온타리오 주교인 안드레 발리를 새 지도자로 선출하였다. 천주교인을 회장으로 뽑은 것은 그 협의회 창립 56년 만에 처음이다.177)

또 오늘날의 은사운동은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 간의 접착제로 나타난다. 1983년 미국에서만 60만명 이상의 천주교인들이 은사주의적 기도회에 참여하고 있고, 온 세계에서는 약 5천만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178)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처럼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연합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개신교 에큐메니칼 운동이나 천주교회의 문제는 이런 정도만이 아니다. 오늘날 개신교 에큐메니칼 운동이나 천주교회는 종교다원주의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전교황 요한 바울 2세는 종교다원주의적 발언들과 행동들을 많이 하였다.179)

타협적 복음주의

더욱 혼란스러운 사실은, 오늘날 심지어 복음주의 지도자들 가운데 천주교회를 용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대표적 복음주의자들의 말들과 행위들에서 풍성하게 확증되기 때문에 예를 들 것이 없지만, 몇몇 중요한 사실들을 시간 순서로 열거해보자.

1967년 신복음주의 전도자인 빌리 그레이엄은 예수회 소속 벨몬트 애비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이 학교를 설립한 복음과 오늘밤 나를 이 곳에 오게 한 복음은 여전히 지금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그런 복음이다”라고 말하였다.180)

빌리 그레이엄은 또, “나는 나의 신앙이 정통 로마 가톨릭 교인들의 신앙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한 적이 있고,181) 또 교황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라고 불렀다.182)

1993년 6월, 빌리 그레이엄은 미국 피츠버그에서 1,050개의 교회들과 65개 교단들이 협력한 세 번째 전도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대회는 여섯 명의 천주교인들을 실행위원에 포함시켰다.183)

199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이사 스털링 허스턴은 말하기를, “지난 10-15년간 그레이엄 전도대회에서 천주교회의 참여가 크게 늘어났으며 소수의 천주교회 지도자들은 이제 전도대회 계획위원회들의 공식적 대표자들로 봉사한다. 천주교회 신자들은 안내위원들, 성가대원들, 심지어 상담위원들로 환영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184)

빌리 그레이엄은 또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신학적 상이점들이 “개인의 영혼 구원에 관한 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였다.185)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 1997년 3월 30일자는 빌리 그레이엄의 알라모도움의 전도집회에 대한 보도에서, “그 지역 천주교회도 중심적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교황의 1987년 성안토니오 방문 기간에 보인 그 침례교인의 후원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었다”라고 말했다.186)

복음 전파(Proclaiming the Gospel) 1997년 6월호는 말하기를, “천주교회는 이제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들에 참여하고 있다. 전도대회를 선전하고 촉진시키고 천주교회 상담자들을 사용하는 대가로, 빌리 그레이엄은 믿음을 고백하며 앞으로 나오는 모든 천주교인들을 그들의 천주교회로 돌려보내겠다고 그 지역의 주교와 약속한다”라고 하였다.187)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8월 10일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구 약 백만의 [오타와] 지역을 위한 지난 6월 25-28일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활동에서,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 간의 간격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 전도대회를 후원한 470개의 지역 교회들 가운데, 60개는 천주교회이었다. 천주교회의 참여는 모든 그레이엄 전도대회 가운데 가장 중대하였다.” 또 그 잡지는, 새 신자들 중 얼마는 천주교회에서 데려갔다고 말하였다.188)

데이빗 클라우드는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에 대해, 그가 천주교회의 복음이 자기가 전하는 복음과 동일하다고 말했고 수천명의 회심자들을 천주교에 넘겨주었고 천주교 주교들을 강단에 초청하였고 그의 결신 초청 시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축복하게 하였다고 말한다.189)

대학생 선교회(CCC)의 창설자요 총재이었던 빌 브라잇은 1969년 천주교회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는 천주교회를 공격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교회 안에서 힘있는 역사를 하고 계심을 믿으며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일을 돕기 위하여 수백만의 천주교인들을 사용하실 것을 의심치 않는다”라고 하였다.190) 대학생 선교회에는 이미 1970년대에 간사들 가운데 천주교인들이 있었고191) 1973년의 ‘키(Key) ’73’이나, ‘여기에 생명 아메리카가 있다’는 주제의 1976년 집회들에 천주교인들의 참여와 협력이 있었다.192)

남침례교단의 전 회장이었던 W. A. 크리스웰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 가톨릭인들보다 기독교의 위대한 근본 교리들에 더 헌신적인 사람들은 없다”고 말했다.193)

복음주의 잡지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81년 10월호 사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가톨릭 교인들과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의 의미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가를 토의할 때, 우리는 공통 신앙을 소유했다는 것이 넘치게 자명해졌다. . . . 전통적 로마 가톨릭 교인들은 은혜만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 . . 그들(가톨릭 교인들과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셨다는 그분의 약속을 서로 나누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곧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서로를 용납하는 것이 옳다.194)

빌리 그레이엄, 제리 팔웰, 잭 반 임페, 제임스 로빈슨, 에드 답슨 등의 복음주의자들은 천주교회 교황 요한 바울 2세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1985년, 에드 답슨은, “교황 제도가 적그리스도적이라고 말하는 극단주의자들은 . . .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고 말했다.195)

미국 대형 기독교 TV 방송국인 트리니티 방송국(TBN) 창설자 폴 크라우치(Paul Crouch)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서, 우리들의 신학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소위 교리상 상이(相異)라고 불리우는 것들도 보면 실은 단순한 언어상의 문제에 불과한 것들이다. . . . 따라서 나는 비판자들과 신학적으로 침소봉대하는 자들을 향해 “예수의 이름으로 꺼지라”고 말하는 바이다. 사랑과 일치의 정신으로 우리 함께 갑시다. (방청객들의 갈채소리).196)

또 크라우치는 말하기를, “나는 나의 사전에서 프로테스탄트라는 단어마저 삭제해버리고 있다. . . . 나는 아무것에 대해서도 프로테스트(항의)하지 않는다. . . . 이제는 가톨릭인들과 비가톨릭인들이 다함께 성령 안에서 하나되어, 주 안에서 하나되어 모일 때이다”라고 하였다.197)

유명한 복음주의자들은 1994년 천주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복음주의자들과 가톨릭교인들과 함께”(ECT)라는 상호 인정과 협력을 선언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하였다. 그 문서에 서명한 사람들로는 팻 로벗슨, 척 콜슨(교도소 선교회), 존 화이트(제네바 대학 총장,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NAE] 전 총재), 빌 브라잇(대학생선교회[CCC] 총재), 마크 놀(위튼 대학 교수), 리차드 무(풀러신학교 총장), J. I. 패커 등이다.198) 그 문서에 서명한 존 화이트는 천주교인들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불렀다.199)

빌 브라잇은 촬스 콜슨, 제임스 패커 등과 함께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1994년 선언서에 서명한 일로 비난을 받고 그의 입장을 취소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그는 천주교인들 가운데 수천만명의 참된 신자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200)

달라스 신학교 교장 척 스윈돌은 1997년 10월의 한 서신에서 테레사 수녀를 ‘주목할 만한 여자’라고 불렀다.201) 제임스 답슨은 테레사 수녀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했고 그것은 “그가 그의 생애에서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었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잭 반 임페는 그녀가 구원받지 못한 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꾸짖었다.202)

그러나 빌 잭슨은 바르게 말하기를, “테레사 수녀는 누구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영혼이 연옥을 떠나기를 기도하였고, 성찬떡에 대한 사제의 축복이 아니면 예수를 소유할 수 없다고 말하였고, 교황에게 마리아를 ‘그리스도인의 협력구속자, 협력중보자 및 보혜사라고 부르기를 공공연하게 간청하였다”고 하였다.203)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3월 2일자에 의하면, 잭 반 임페는 최근에 교황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변호하는 데 그의 전체 방송을 사용했다. 또 그는 다음 번 교황이 요한계시록의 그 거짓 선지자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경고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로서 결합되었다”고 말했다.204)

많은 복음주의 단체들, 예를 들어 월드 비젼,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촬스 콜슨의 교도소선교회, IVF, CCC, 순복음실업인회, 청년선교회(Youth with Mission), 위클리프 성경번역회 등이 천주교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205) 기독교 도서협회(Chriatian Booksellers Association)의 서점저널(Bookstore Journal) 1992년 2월호는 가톨릭 고객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로 여기라고 권고하였다.206)

그러나 천주교회가 성경에서 멀리 이탈한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단체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오늘날 자유주의적 개신교 목사들이나 복음주의자들이 천주교회와 화해하고 연합하고 협력하는 행위들은 진리를 배신하고 악과 타협하는 일이다. 그것은 천주교회의 치명적 오류들에 대한 무지의 결과이든지, 아니면 분명히 성경적 교제의 원리에 대한 위반이다. 그것은 종교개혁의 귀중한 유산을 저버림이며,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다. 성경은 교리적, 윤리적 오류를 책망하고 배격하고 멀리하라고 분명히 말한다. 성경적 교회는 천주교회와의 교제를 끊어야 한다. 


참고도서

[천주교회에서 나온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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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에 대한 비평적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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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우, 랄프. 천주교의 유래. 정동수 역. 서울: 말씀과 만남, 2003.)  


 각주

1) Ralph Woodrow, Babylon Mystery Religion, 정동수 역, 천주교의 유래 (서울: 말씀과 만남, 2003), 36.

2)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VIII. 59, in Documents of Vatican II, ed. Austin P. Flannery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 1975), 417-18.

3)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교리서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7), 114.

4)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VIII. 59, in Documents of Vatican II, 417-18.

5) Ibid., VIII. 62, in Documents of Vatican II, 419.

6) Loraine Boettner, Roman Catholicism, 이송훈 역,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2), 21.

7)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 교리서, 114.

8) Alphonsus de Ligouri, The Glories of Mary (Brooklyn: Redemptorist Fathers, 1931), 127, 254.

9) Ibid., 82-83.

10)  Ibid., 94.

11) Ibid., 130.

12) Ibid., 160.

13) Ibid., 169.

14) Ibid., 180-81.

15) Ibid., 257.

16) Soul Magazine, November-December 1984, 4; Dave Hunt, A Woman Rides the Beast, 정태윤 역, 짐승 위에 탄 여자 (서울: 누가, 2007), 342에서 재인용.

17)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24.

18) The Fatima Crusader, November-December 1986, 9;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52에서 재인용.

19)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52.

20) The Pope Speaks, vol. 39, no. 2 (March-April 1994), 105;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37에서 재인용.

21) Kathleen R. Hayes, "All-Night Prayer Vigil Becomes Devotion to Lady of the New Advent, a Heavenly Goddess," NRI Trumpet, October 1993, 6-14; 헌트, 340에서 재인용.

22) "Images and Idols," Hasting's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23)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55-59.

24) Encyclopedia Britannica, XIV, 309;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22에서 재인용.

25) The Catholic Encyclopedia, XV, 459;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22에서 재인용.

26)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193-195.

27) De peccatorum meritis, ii, c. 24; 뵈트너, 225에서 재인용.

28) 뵈트너, 191.

29) 뵈트너, 193.

30) J. G. R. Forlong, Encyclopedia of Religions (New Hyde Park, N. Y.: University Books, 1964), II, 398;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7에서 재인용.

31)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8-20.

32)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26.

33)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33.

34) 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III, 281.

35)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22.

36) 뵈트너, 23.

37) The Canons and Decrees of the Council of Trent, ed. and trans. H. J. Schroeder, O.P. (Tan Books, 1978), Session XXII, Canon 1.

38) Eucharisticum Mysterium, Introduction C, Section 1, 2.

39)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교리서, 135-36.

40) Boettner, Roman Catholicism, 170-71.

41)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235-37.

42) The Canons of Trent, Session VI, Canon 10.

43) Ibid., Session VI, Canon 11.

44)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269.

45) The Canons of Trent, 52; 헌트, 266에서 재인용.

46) Vatican Council II, I, 412; 헌트, 270에서 재인용.

47)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380-407.

48)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75.

49) Vatican Council II, I, 71; 헌트, 140에서 재인용.

50) The Canons of Trent, Session VI, Canon 30; 헌트, 365에서 재인용.

51) Indulgentiarum Doctrina, I. 2.

5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교리서, 148.

53)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67.

54) Alexander Hislop, The Two Babylons, 168;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317-18에서 재인용.

55)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21.

56) 뵈트너, 116.

57) 뵈트너, 113.

58) 뵈트너, 118.

59)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44.

60)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서울: 예루살렘, 2009), 88.

61) Boettner, Roman Catholicism, 127.

62) 뵈트너, 180;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84.

63) 뵈트너, 181.

64) National Catholic Almanac; 뵈트너, 180에서 재인용.

65) "Pope," in Ferraris' Ecclesiastic Dictionary; 유석근, 84에서 재인용.

66) Documents of Vatican II, 370, 380.

67)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56-59.

68) J. H. Ignaz von Dollinger, The Pope and the Council (London, 1869), 19; R. W. Thompson, The Papacy and the Civil Power (New York, 1876), 419; 헌트, 49에서 재인용.

69) Catholic Encyclopedia, XV, 126; Boettner, Roman Ca- tholicism, 408에서 재인용.

70) Pope Pius XII, April 6, 1951; Boettner, 409에서 재인용.

71) Catholic Encyclopedia, XIV, 766; Boettner, Roman Ca- tholicism, 408에서 재인용.

72)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552.

73)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152.

74) Bronson's Review; Boettner, 407에서 재인용.

75) 널리 사용되는 고등학교 교과서인 Flynn, Loretto, and Simon, Living Our Faith, 247; Boettner, 407에서 재인용.

76) America, January 4, 1941; Boettner, 407에서 재인용.

77) 뵈트너, 46-48.

78) 뵈트너, 552.

79) 조선일보, 2007. 7. 12;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426.

80)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23, 139.

81)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141.

82) 뵈트너, 143.

83) 뵈트너, 154.

84)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82-83.

85) 뵈트너, 149-174;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07-108.

86) Dollinger, The Pope and the Council, 74; 헌트, 115에서 재인용.

87) Dollinger, 53; 헌트, 118에서 재인용.

88) De Rosa, Vicars of Christ, 24-25; 헌트, 116에서 재인용.

89)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16.

90) 우드로우, 116.

91)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73.

92) 우드로우, 117-120.

93) 뵈트너, 332-333.

94) Dollinger, 244; 헌트, 390에서 재인용.

95) August Bernhard Hasler, How the Pope Became Infallible (Doubleday & Co, 1981), from the Introduction by Hans Kung, 9;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91에서 재인용.

96) Hasler, How the Pope Became Infallible, 74, 29, and inside back jacket; 헌트, 105에서 재인용.

97) Boettner, Roman Catholicism, 244-45. 그 교리의 반대자들은 천주교회를 탈퇴해 1871년 9월에 ‘구 카톨릭 교회’(Old Catholic Church)를 설립하였다. 제1바티칸 회의는 교황무오 교리의 선언으로 교회 회의의 권위를 포기한 셈이 되었다. 교황무오 교리는 로마교회사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이었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민주적 요소에 조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이 이후로는 어떤 교회 회의도 교황의 선언에 반대할 수 없게 되었다.

98) Boettner, 246.

99) Dollinger, The Pope and the Council, 52-55;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107-108에서 재인용.

100) Dollinger, 71; 헌트, 106-107에서 재인용.

101) Hasler, 153; 헌트, 107에서 재인용.

102) Hasler, 126, 133, 136; 헌트, 108-109에서 재인용.

103) 뵈트너, 347; 우드로우, 140; 조영엽,『가톨릭교회교리서』비평, 273-288 참조.

104) 뵈트너, 343; 우드로우, 141-144.

105) 헌트, 95.

106) 뵈트너, 342.

107) 헌트, 170-171.

108) 헌트, 172.

109) 뵈트너, 18.

110) 뵈트너, 18.

111) Coudenhove-Kalergi, Crusade for Pan-Europe, 173; 뵈트너, 19에서 재인용.

112)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49-50.

113) Cormenin, History of the Popes, 243, cited in R. W. Thompson, The Papacy and the Civil Power, 206;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101에서 재인용.

114) 뵈트너, 22.

115) De Rosa, 175; 헌트, 191에서 재인용.

116)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99-106;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49-51.

117) Summa Theologica, IV, 90; Boettner, 425에서 재인용.

118) Summa Theologica, II, 154; Boettner, 425에서 재인용.

119)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30.

120) De Rosa, 35;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190에서 재인용.

121) 헌트, 98.

122) 우드로우, 151.

123) 우드로우, 151.

124) Cormenin, History of the Popes, 117, cited in R. W. Thompson, The Papacy and the Civil Power, 553; 헌트, 192에서 재인용.

125) Catholic Encyclopedia, XIV, 768; Boettner, 407에서 재인용.

126) 뵈트너, 로마 카톨릭 사상 평가, 572.

127) 뵈트너, 572; 우드로우, 153.

128) R. W. Thompson, The Papacy and the Civil Power, 82; 헌트, 68에서 재인용.

129) 헌트, 27.

130) 헌트, 223.

131) W. E. H. Lecky,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the Spirit of Rationalism in Europe, vol. 2, 32;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106에서 재인용.

132) John Dowling, History of Romanism, 541-42; 유석근, 106에서 재인용.

133) J. M. 캐롤, 피흘린 발자취 (서울: 혜남사, 1988), 52; 유석근, 113에서 재인용.

134)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204.

135) 헌트, 299.

136) 헌트, 113.

137) Chiniquy, The Priest, the Woman, and the Confes- sional (Chick Publishing Co.), 138;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27.

138)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131.

139) The Catholic Encyclopedia, VIII, 427;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28-29에서 재인용.

140) Halley's Bible Handbook, 775;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30에서 재인용.

141) Will Durant, The Story of Civilization. vol. 6. The Reformation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44-1977), 21; 우드로우, 천주교회의 유래, 133에서 재인용.

142) Halley, 779; 우드로우, 134에서 재인용.

143) Halley, 779; 우드로우, 134에서 재인용.

144) Charles Chiniquy, The Priest, the Woman, and the Confessional (Sea Cliff, N. J.: Christ's Mission, n. d.), 139; 우드로우, 135에서 재인용.

145) Durant, The Story of Civilization. VI, 344; 우드로우, 137에서 재인용.

146) De Rosa, Vicars of Christ, 396-97;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67에서 재인용.

147) De Rosa, Vicars of Christ; 헌트, 127에서 재인용.

148) 헌트, 128-129.

149) De Rosa, 403; 헌트, 129에서 재인용.

150) Durant, The Story of Civilization, V, 576; 헌트, 133에서 재인용.

151) Durant, The Story of Civilization. VI, 21; 우드로우, 168에서 재인용.

152) J. H. Merle D'Aubigne, History of the Reformation (New York: Putnam, 1872), 11; 우드로우, 168에서 재인용.

153) Durant, The Story of Civilization, VI, 18; 헌트, 130에서 재인용.

154) Durant, VI, 155-156; 헌트, 130에서 재인용.

155)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263.

156) 유석근, 265.

157) Luther, Church and Ministry, III, 363.

158) Calvin,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4. 2. 4, 9, 12.

159) Commentary on the Galatians, 32.

160) Michael de Semlyen, All Roads Lead to Rome? (Dorchester House Publications, England, 1991), 183;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17에서 재인용.

161) 헌트, 299.

162) David B. Barrett,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A Comparative Study of Churches and Religions in the Modern World AD 1900-2000, 6.

163) The Ecumenical Review, 37 (1985), 336.

164) One World, January-February 1986, 6.

165) John J. McDonnell,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nd the Catholic Church (New York: Edwin Mellen Press, 1985), 129-221.

166) Hans-Georg Link, ed., Apostolic Faith Today, Faith and Order Paper, no. 124 (Geneva: World Council of Churches, 1985), 9.

167) Calvary Contender, 15 September 1993.

168) Calvary Contender, 15 September 1997.

169) Calvary Contender, 1 August 1997.

170) 기독교신문, 1998. 1. 11, 1.

171) Calvary Contender, 1 February 1999.

172) 기독신문, 1999. 5. 19, 16; Calvary Contender, 1 August 1999.

173) The Ecumenical Review, 37 (1985), 336.

174) Christian News, 21 June 1999; Calvary Contender, 15 July 1999.

175) 조선일보, 1999. 11. 2, 8.

176) 조선일보, 2000. 1. 22, 23.

177) 크리스챤신문, 2000. 5. 22, 2.

178) Ignatius Catanello, "The Effects of the Charismatic Movement on Local Ecumenism" (Ph.D. dissertation, New York University, 1983), 1.

179)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20-32.

180) Gastonia Gazette, November 22, 1967; 헌트, 313에서 재인용.

181) McCall's, January 1978; 헌트, 299에서 재인용.

182) Time, 15 October 1979; Christianity Today, 3 Novem- ber 1979; Saturday Evening Post, January-February 1980;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01에서 재인용.

183) Christianity Today, 19 July 1993; Calvary Contender, 1 August  1993.

184) Calvary Contender, 1 December 1993.

185) "Catholics, Protestants Work for Graham Crusade," Cleveland Plain Dealer, 27 March 1994; 헌트, 301에서 재인용.

186) Calvary Contender, 1 May 1997.

187) Calvary Contender, 15 June 1997.

188) Calvary Contender, 1 September 1998.

189) Calvary Contender, 15 September 1999.

190) The Post and Times Star (Cincinnati, Ohio), 30 August 1969; David W. Cloud, "Bill Bright Joins Hands with False Gospels," Christian News, 3 January 2000, 18.

191) James Hefley, "A Prejudiced Protestant Takes a New Look at the Catholic Church" (1971), 122; Cloud, Ibid.

192) Cloud, Ibid.

193) Dallas Morning News, 19 August 1978; David Beale, S.B.C.: House on the Sand? (Greenville, SC: Unusual Publications, 1985), 142-43.

194) "What Separates Evangelicals and Catholics?" Christianity Today, October 1981; 헌트, 318-19에서 재인용.

195) Calvary Contender, 1 December 1992.

196) "Praise the Lord"(TBN), 17 October 1989의 테이프로부터;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12에서 재인용.

197) 위의 테이프; 헌트, 317에서 재인용.

198) 헌트, 15.

199) Calvary Contender, 15 May 1994.

200) Christianity Today, 14 July 1997; Calvary Contender, 15 June 1997; 1 August 1997.

201) Calvary Contender, 1 February 1998.

202) C.E.C. Journal, February 1998.

203) Calvary Contender, 1 March 1998.

204) Calvary Contender, 15 March 1998.

205) 헌트, 짐승 위에 탄 여자, 311.

206) 헌트,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