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회 동향 - 1997

 

 

 

 


 

 

킹제임스 영어성경(KJV)이  무오(無誤)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한기총', '한복협'의 분별력?

예장 통합측 교단은 건전한가?

합동신학교의 입장은?

잘못된 일치운동

사회참여가 선교인가?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남녀평등주의

동성연애자 목사 안수를 찬성하는 목사들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천주교인들의 지원을 받음)

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장로교 일치운동

총신·장신 교직원 체육대회

장로교 연합예배

박형룡 신학의 의의

오도(誤導)되는 연합운동

고신 교단에 분별력이 있는가?

교회갱신은 어디로부터?

장로교 평신도들의 무지

복음주의협의회의 노선

빌리 그레이엄[그래함]과 제리 팔웰

누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할 것인가?

대학생 선교회(CCC)의 빌 브라잇

하버드 대학 교회의 동성애 목사

미국 교회의 쇠퇴

미국 남침례교단과 침례교 세계 연맹

천주교회와 가까와진 자유주의자들

중국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자

천주교인들을 향한 루터교인들의 서곡

감독교인들과 동성연애자들

빌리 그레이엄의 방법론

안락사(安樂死)

몰몬교

카톨릭 신자들과의 일치가 가능한가?

빌리 그레이엄과 보편구원론

말세에 소돔의 정신

보수적 목사들에게 분별력 필요하다

WCG의 두 얼굴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마리아 숭배?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배교적 증거들

하버드 신학교수의 동성애 견해

미국 연합 감리교회 내의 동성애 옹호자들

중국은 200개의 가정교회를 폐쇄시킴

캐나다 연합 교회의 자유주의 목사들

선교사들이 요청됨

공산주의의 살인 통계

 

 

 

킹제임스 영어성경(KJV)이  무오(無誤)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1611년 제임스 1세 때에 영국에서 번역, 출판된 소위 킹제임스 성경만이 무오(無誤)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1885년 나타난 신구약 개역판과 그 이후의 대부분의 영어 번역 성경들, 그리고 한글 개역 성경을 이단적 번역이라고 비평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며 지나친 비평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 문제는 성경의 사본에 대한 문제와 관계된다. 중세시대에는 천주교 세계에서 라틴어 성경이 주로 사용되었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개혁자들은 원어 성경, 곧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과 신약의 그리스어 성경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들은 다 전통적인 사본들에 근거한 성경이었다.

그러다가 1881년 소수의 고대 사본들에 근거하여 번역된 신약성경의 출판으로 성경의 본문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특히 신약 본문에서 문제되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 소수의 고대 사본들의 본문과 다수의 전통 사본들의 본문에 대단히 많은 차이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 두 종류의 본문 중 과연 어느 것이 성경의 원본에 충실한 것인가?

우리는 소수의 고대 사본들의 본문보다 다수의 전통 사본들의 본문이 성경 원본에 더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고대 사본들(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 파피러스 사본들)은 서로 다른 경우들이 적지 않으며 그 차이성도 다양하다.

2. 고대 사본들에 근거한 본문은 매우 주관적이고 비확정적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오늘 우리는 성경 원본의 믿을 만한 본문을 갖고 있지 못하다.

3. 우리는 성경 본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보호를 믿는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축자적으로 영감하셨고 그 본문을 훼손되거나 상실되게 내버려두시지 않고 잘 보존되게 섭리하셨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8절, "옛 하나님의 백성의 모국어(母國語)였던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과, 기록 당시 여러 나라들에게 매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었던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경은 직접 하나님의 영감(靈感)을 받았으며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으므로 믿을 만하다. 따라서 종교상 모든 논쟁들에서 교회는 최종적으로 그 성경들[원어 성경]에 호소하는 것이다."

4. 우리는 성경을 위탁받은 교회의 권위와 역할을 중시한다. 적어도 성경의 본문에 관한 한, 우리는 그것을 위탁받은 교회들, 특히 그리스어를 계속 사용해왔던 비잔틴 교회들의 권위와 역할을 중시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보존해 왔듯이, 비잔틴 교회가 신약성경을 보존해 왔다고 본다. 로마서 3:1, 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더욱이,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더하거나 감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가 신약성경의 맨 끝에는 기록되어 있다(계 22:18, 19).

5. 우리는 다수 사본들의 지지를 중시한다. 이것은 그리스 정통교회의 전통적, 귄위 있는 본문을 밝히 증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성경의 5000개의 사본들 가운데 다수 사본들(약 85퍼센트 이상)이 일치하게 가지는 본문을 성경의 원본의 본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6. 전통 사본의 본문에 대한 고대적 증거들이 없지 않다. 전통사본들이 주로 9-11세기의 후대사본들이지만, 그들의 본문이 반드시 후대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본문은 빈번히 고대의 사본들이나 역본들, 혹은 교부들의 인용문들에서 확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세기의 파피러스 사본들이 4세기의 다른 고대 사본들과 다르고 후대의 비잔틴 사본들과 일치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 것이다(예를 들어, 눅 10:42; 12:31; 15:21; 행 13:26 등).

결론적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몇몇 고대 사본들에 근거한, 그것도 때때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들에 주관적 선택에 의해 구성된, 매우 주관적이고 불확실하고 비확정적인 본문을 반대하고 다수 사본들에 근거한 전통적 본문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다수의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들이 글자적으로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원본의 본문의 내용을 정확히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비록 우리의 견해가 이러하지만, 킹제임스 성경만이 무오하다는 주장은 독단적인 잘못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이후 교회들에게 무오한 사본을 주지 않으셨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사본상에는 약간의 부정확성이 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도 무오한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당시에 최선의 원어 성경에서 가장 잘 번역된 성경에 불과하다. 그 당시에 갖고 있었던 그리스어 신약 사본들은 제한되어 있었다. 오늘날까지 원본의 본문을 무오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인정된 사본은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믿음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믿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통적 본문과 소위 고대 사본에 근거한 본문 간에 근본적 차이점들이 있는가? 물론 상당수의 차이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그 차이점들 때문에 그 두 종류의 성경이 전체적으로 교리적, 윤리적 내용의 차이를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한 종류의 성경이 주는 교리적 체계와 다른 종류의 성경이 주는 교리적 체계가 다른가 하는 질문이다.

거기에 대하여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는 한글 개역 성경에 근거하여 성경 교리들의 체계를 정리하였으나 그것이 서양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근거하여 정리한 체계와 다를 바 없었다. 하나님의 지혜는 두 종류의 본문이 내용적으로 전혀 다른 교리적, 윤리적 교훈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한 종류의 것이 이단적이라고 비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동안 그것을 사용하여 많은 구원과 은혜의 역사를 하신 사실을 부정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전통적 본문이 회복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제까지 사용하여 오는 한글 개역 성경에 대하여 과격하게 비난하는 말을 용납할 수 없다. 개역 성경을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성경의 바른 본문을 확인하고 확증하는 것이 건전한 태도라고 믿는다. *

'한기총,' '한복협'의 분별력?

교회연합신문 1994년 2월 19일자(10쪽) 보도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는 그 단체의 3.1절 기념예배 설교를 한국의 자유주의 목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강원용 목사에게 부탁하였다. 기독교보 1994년 3월 12일자(7쪽) 보도에 의하면, 한기총은 3월 8일 임원 취임 예배 설교를 유명한 기장측 목사인 조향록 목사에게 부탁하였다. 한국기독공보 1994년 4월 2일자(4쪽) 보도에 의하면, 4월 9일 한기총 남북교회 협력을 위한 세미나의 강사에 강원용 박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크리스챤신문 1995년 8월 5일자(2쪽) 보도에 의하면,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한복협)의 광복 5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의 강사 중에도 조향록 목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위의 사실들은 한국교회내에 보수적 교단들의 연합체로 인식되는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나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한복협)가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하려는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음을 보인다. 이것은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지도자들이 과연 영적 분별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일으킨다.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교회 연합체나 협의체가 어떻게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단의 지도자들을 강사로 세울 수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교회에 유익한 일인가?

오늘날 기독교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배교(背敎)의 문제이다. 현대 교회의 배교는 서너 갈래 방향에서 일어나고 있다. 첫째는 물론 역사상 뿌리 깊은 천주교회의 배교요, 둘째는 19세기 말 이후에 일어난 여러 이단종파들이요, 셋째는 20세기에 개신교회들을 교파를 막론하고 크게 변질, 부패시키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이요, 넷째는 성경적 신앙으로 만족하지 않고 은사 체험을 의지하고 강조하는 은사주의이다.

그러나 참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이러한 배교적 운동들을 잘 분별하고 배격해야 한다. 특히,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침입과 확산에 대해 잘 대처해야 한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들을 이단적이라고 인식하여 배격하지 않는 입장과 단체들은 참된 보수주의가 아니며 또 건전한 보수적 단체들이 아니다. *

예장 통합측 교단은 건전한가?

기독신보 1995년 7월 29일자(1쪽)는 예장 합동측 총회임원회가 예장 통합측과 함께 8.15연합예배를 드리기로 했다고 보도하면서 ". . . 우선 양교단이 화합을 도모해 . . . 교단 교류와 관련해 총회정서를 고려 단회적 행사임을 분명히 밝히고"라고 부언하였다. 동(同)신문 1995년 8월 19일자(1쪽)는 두 교단이 37년만에 한국기독교 연합회관 대강당에서 함께 예배드렸음으로 보도하면서, "양교단의 우호증진은 물론 한국교회연합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하였다.

오늘날은 배교(背敎)와 혼동의 시대이기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옛부터 전수된 성경적 신앙 그대로를 소유하고 있지 않고 사상적으로, 윤리적으로 매우 방황하고 있다. 오늘날 한 교단의 건전성 여부는 그 교단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에 의해 판명된다고 본다. '그 교단의 태도'라는 말은 그 교단의 목사양성원인 신학교의 주류적 입장이나 교단 지도자들의 대체적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면 서울 안에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연동교회 등이 소속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은 과연 건전한 교단인가? 위에 인용한 합동측 총회임원회의 태도에 의하면 통합측 교단은 건전한 교단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예장 통합측 신학교는 어떠한가? 그 신학교가 과연 성경적 바른 신학을 보수, 전수하고 자유주의 이단신학을 배격, 비판하고 있는가?

예장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몇 가지 상식적, 경험적, 자료적 증거들을 열거해보자.

첫째로, 예장 통합측 신학교인 장로회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오랫 동안 재직하였던 이종성 박사가 신정통주의자이었다는 것은 한국교계에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신정통주의'란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의 증거를 부정하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한 파로서 칼 바르트, C. H. 다드,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신학사상을 가리킨다.

둘째로, 같은 교단에 속한 한철하 박사(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설립자 및 원장)가 '장로회 신학대학이 신정통주의적이다'고 논평한 적이 있다는 것도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셋째로, 장로회 신학대학이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르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넷째로, 그 신학교가 성경의 처음 다섯 권[모세오경]의 모세저작성을 부정하고 자유주의적인 문서설을 용납하고 또 이사야 40장 이하를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고 후대의 어떤 익명의 저자가 썼다는 자유주의 학설을 용납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자, 우선 이상의 것들이 사실이 아닌가?

다섯째로, 예장 통합측 교단지도자들은, 비록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인물들까지도, 오늘날 심히 배교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교단 안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의 문제점들과 그 단체로부터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섯째로, 장로회 신학대학원의 한 석사논문은 그 결론 부분에서 솔직히 말하기를, "우리 입장은 신정통주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표류 중이다"고 하였다(이동렬, "한국교회와 신정통주의," 장로회신학대학원, 1984).

일곱째로, 예장 합동측 신학교에 3년간 재학하였다가 통합측으로 옮겨 수년간 공부했던 필자의 절친한 친구 한 사람은 "과연 예장 통합측 신학교의 분위기가 다르기는 다르더라. 그러나 구약교수 한 명은 보수적이며 문서설을 반대하고 있다. 나머지 교수들은 '고뇌하는 신학자들'이라고 보인다"고 증거하였다.

여덟째로, 1980년도에 서울 사당동 총신대학 부근에서 개척교회를 하던 예장 통합측의 한 목사는 학교에서 배운 자유주의 신학과 성경적 설교를 요구하는 현실적 교회의 목회 사이에서 자신이 '고민'하고 있음을 필자에게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아홉째로, 예장 합동측 기관지였던 기독신보의 주필로 오랫 동안 일했던 채기은 목사는 그의 책 한국교회사에서 말하기를, "필자가 진단하기에는 본교단(예장 합동측)을 비롯하여 고려측, 성경장로회측, 호헌파, 재건파, 복구파, 중립파는 전적으로 보수주의 신학편에 들 수 있으며, 통합측은 반반[半半]으로 나뉘어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장측에는 절대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고 하였다(채기은, 한국교회사, 231쪽).

열째로, 1994년 예장 통합측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안수안을 통과시켰다. 다시 말해, 통합측 총회는 사도적 교훈의 신적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딤전 2:11-14; 고전 14:34-38) 여자목사와 여자장로를 세우는 악을 허용한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이 예장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가? 물론, 통합측의 모든 목사들과 성도들이 자유주의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교단의 목사양성원인 장로회 신학대학원이 자유주의적이라면, 그리고 그 교단의 지도적 목사들의 다수가 자유주의적이라면, 그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라는 말이다. 누가 예장 통합측이 성경적으로 건전한 교단이라고 반증하겠는가? 누가 장로회 신학대학원이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성경적 신학을 보수하고 전수하고 있다고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예장 합동측 같은 보수교단들은 예장 통합측과의 교류와 교제와 협력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했고(고후 6:14-15), 또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무질서하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하였다(살후 3:6). *

합동신학교의 입장은?

기독신보 1995년 11월 18일자(17쪽) 보도에 의하면, 합동신학교 학우회는 개교 15주년 기념 찬양 축제에 총신대, 장신대 신대원 학우를 초청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동신학교의 김명혁교수는 "그 동안 분리에 분리를 거듭했던 총신과 장신, 그리고 합신의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음을 모으고 목소리를 합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러울 뿐 . . . 역사는 종종 젊은이들의 순수한 헌신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한국교회 안에 이미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하였다.

기독신보 1995년 12월 2일자(17쪽)의 "신학대학원 학생 대표자협 출범: 비생산적 신학 대립 지양"이라는 기사에 의하면, 감신, 성공회, 연대신, 이화, 장신, 한신, 협성신 등 8개 신학대학원 학생들의 연합 단체가 1995년 11월 23일 결성되어 각 교단 청년 신학도간의 교류와 한국교회의 일치 등을 다짐했다. 이 단체의 출범 선언문에는 "비본질적이고 비생산적인 경쟁과 신학적 대립을 지양하고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존중하면서 . . . 궁극적으로 한국 신학과 교회를 갱신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진술되어 있다.

예장 합동측의 1979년 주류, 비주류 논쟁의 한 결과로 한국장로교의 존경받는 보수적 지도자 박윤선 박사와 예장 합동측 신학교의 여러 교수들에 의해 세워졌고 오늘날 한국내에 보수적 신학교로 꼽히는 합동신학교의 교수들과 신학생들의 입장이 무엇인가? 그들에게 이 배교적이고 혼란한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이 있는 것인가? 그들이 어찌하여 자유주의적 신학교들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들이 어찌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교제의 바른 원리를 따르지 않는가? 성도들의 교제는 아름답고 귀한 것이지만, 자유주의적 단체들과의 무분별한 교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금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오늘날 주의 종들이 배교적 자유주의 사상에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중단하는가?

잘못된 일치운동

기독신보[예장 합동측 기관지] 1996년 9월 14일자(19쪽)의 기사에 의하면, "한기총은 어디로"라는 주제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발제자 한명수 목사(전 한기총 총무, 창훈대교회 목사, 기독신보 주필)는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면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한기총과 교회협[한국교회협의회, NCC]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단체로 우뚝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논찬자로 나선 정진경 목사(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 전 한기총 대표총무) 역시 개신교계 대표성을 띤 연합기관이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 한기총과 교회협의 하나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합동신학교 교수, 강변교회 목사)도 "한기총 대표회장 최훈 목사도 하나되는 소망을 갖고 일한다"며 "양 기구는 기구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개념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교단의 목회자 양성기관에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와 세력을 잡고 있는 소위 자유주의 교단들이 중심이 된 교회협[NCC]과, 비교적 보수적 교회들의 연합체인 한기총이 통합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이것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후 6:14)는 성경의 교훈을 명백히 어기는 생각이다. *

사회참여가 선교인가?

기독교보(예장 고신 기관지) 1996년 10월 12일자(5쪽)에는 한국개혁신학회(회장: 김영한 교수) 제1회 정기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장로회신학대학(예장 통합) 이형기 교수의 "한국개신교의 나아갈 방향: 선교신학의 입장에서"라는 제목의 강연이 요약 보도되었다.

그 보도에 의하면, 이 교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회심시키는데 촛점을 두었던 19세기 선교개념이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에서는 교회의 사회참여 측면을 포함하게 되었다고 전제한 후, 이 두 흐름의 선교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전(全) 복음(the whole Gospel)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회 참여를 선교에 포함시키는 '넓어진' 선교 개념은 성경의 명확한 교훈과 교회의 바른 전통에 어긋난다. 영혼 구원의 일이 아닌 일반적 사회 정치 활동은 예수님의 사명 곧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었고 그가 제자들에게 사명으로 명하신 적이 없고 사도행전에 증거된 대로 초기의 제자들이 행한 적이 없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영혼구원의 전도만이 교회의 사명(선교, mission)임을 밝히 이해하고 실천해왔. *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기독교연합신문 1996년 11월 10일자(7쪽)에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9월 16일자)에 실린 케네스 칸쩌와의 대담 내용이 보도되어 있다. 칸쩌는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학장을 역임한 복음주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를 어떻게 구별하는가는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원래 근본주의자들은 정통 개신교 신앙을 고수하는 복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모더니즘[현대주의=자유주의]과의 투쟁과정에서 모더니스트[현대주의자]들과 결별하기 위해 분리를 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만약 누군가 나를 '성경을 의지해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고수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근본주의자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이 진술에서 그는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는 본래 같은 입장을 가리켰는데, 점차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자들과 분리하는 입장을 취하였고 복음주의는 그렇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근본주의는 정통 개신교 신앙을 고수하고 자유주의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입장이고, 복음주의는 정통 개신교 신앙을 고수하려 하지만 자유주의로부터의 분리를 반대하는 입장임을 증거한 것이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에 대한 그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거의 정확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유주의 이단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정당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분리하라'는 사도들의 명령도 성령의 감동으로 밝히 증거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적 교제의 단절을 가리킨다.

분리의 대상들은 첫째 불신자들이며(고후 6:14-18), 둘째 이단자들이며(롬 16:17, 18; 딤 3:10; 요이 7-11; 유 3), 셋째 회개치 않는 범죄자들이며(고전 5:11-13), 넷째 고의적 불순종자들이다(살후 3:6, 14-15).

분리의 이유는 첫째로 교회가 바른 신앙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교회의 본질 때문에, 둘째로 교회가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거룩해야 한다는 교회의 순결성 때문에(엡 5:26, 27), 그리고 셋째로 악의 전염성 때문이다. 적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진다(고전 5:6).

성경은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하고(롬 16:17), 또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없이[무질서하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분명히 말씀했다(살 3:6). *

남녀평등주의

기독교연합신문 1997년 1월 19일자(15쪽) 라브리 청년대학생 수양회에 대한 기사는 '세상 속의 일그러진 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한 제람바즈 교수의 강의를 보도하였다. 제람바즈 교수는 미국 커버넌트 신학교 변증학 교수이며 프란시스 쉐퍼 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 기사에 의하면, 제람바즈 교수는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남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이 해야 할 일에 관하여 구분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돕는 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성경말씀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는 의미가 아니고 동등한 위치의 남성과 여성으로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남녀는 동등한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유행하는 남녀평등주의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이 복음주의적 신학교 안에서 가르쳐지고 기독대학생들과 청년들에게 퍼진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현상이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밝히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성경을 믿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왔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인간적, 시대적 생각을 버리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의 창조기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돕는 자, helper]'을 지으셨다(창 2:18). 이 기사가 분명히 보이는 바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를 위하여 남자를 만드신 것이 아니고,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를 위하여 여자를 만드셨다는 점이다. 여기에 남녀의 역할의 구분이 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하는 역할, 돕는 역할을 하도록 창조된 것이다.

물론 이것이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지배하고 학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둘은 한 몸이요 참된 사랑의 관계이다. 남편은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그 둘의 관계는 한 편이 다른 편을 위하는 관계이고 순종하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도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조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치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라고 말하였다(딤전 2:11- 12). 그 이유로서 그는 남녀 창조의 원리와 여자의 범죄에 대한 징벌을 들었다(딤전 2:13, 14). 그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하였다. 이것이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명백한 교훈이다. 그러므로 남녀의 역할의 구별을 부정하고 남녀의 동등성을 강조하는 것은 명백히 비성경적인 오류이다. 우리는 오직 성경의 교훈을 따라야 한다. *

동성연애자 목사 안수를 찬성하는 목사들

갈보리 컨덴더(Calvary Contender) 1997년 5월 1일자에 의하면, 수년간의 논쟁 끝에 미합중국 장로교 총회(PCUSA)는 모든 미혼 목사들, 집사들, 장로들이 독신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성적으로 순결치 못한 모든 독신 직분자들을 당황케 할 것이지만, 특히 동성연애자들의 목사 안수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합중국 장로교 총회의 이런 결정은 진실한 성도들에게 기뻐할 일이기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동성연애가 명백히 큰 죄임에도 불구하고 그 교단은 수년 동안 동성연애자의 목사 안수 문제를 놓고 논쟁했었고 겨우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 교단 안에는 동성연애자 목사 안수를 찬성하는 많은 목사들, 장로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합중국 장로교단이 참된 교회라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이것이 교회의 배교와 변질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은 참된 성도들에게 진실로 통탄할 일이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천주교인들의 지원을 받음)

갈보리 컨덴더(Calvary Contender) 1997년 5월 1일자는 최근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알라모도움에서의 전도집회에 대해 보도한 휴스턴 크로니클 3월 30일자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그러나 그 지역 천주교 공동체도 중심적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교황의 1987년 산 안토니오 방문 기간에 보인 그 침례교인[빌리 그레이엄]의 후원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었다. . . . 기독교 지도자로서 빌리 그레이엄은 신학적 차이점들을 초월하는 존경을 얻었기 때문에 침례교인들과 천주교인들과 장로교인들이 그레이엄 전도집회 준비를 위한 수개월 전의 계획 모임들과 훈련 회의들에 함께 모인다."

세계적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이 자유주의 교회들과 심지어 천주교회 지도자들과 협력하는 포용주의적 방법의 대규모 전도집회를 시행해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물론, 그것은 그가 천주교회를 참 교회가 아니라고 비판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포용주의적 집회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데는 성공했는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성경에 보이신 바른 방법은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천주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참된 주의 교회들에 의하여 '적그리스도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단체'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천주교회는 1960년대에 소집되었던 제2차 바티칸 회의 이후에도 그 근본적 교리나 체제에 있어서 이전과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천주교인들이나 천주교회 지도자들은, 참으로 회개치 않는 한, 전도의 대상자들이지 전도의 협력자나 후원자가 될 수 없다. *

장로교 일치운동

조선일보 1997년 4월 5일자(15쪽) "장로교 '일치(一致)운동' 활발"이라는 기사에 의하면, 예장 통합, 합동, 고신, 대신, 개혁, 기장 등 장로교 주요 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협의회는 최근(3월 31일)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에서 "장로교 연합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그 기사에 의하면, 이 모임에서 합동측의 한명수 목사는 "개신교계 분열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앞세운 데서 생긴 결과"라고 말했고, 통합측의 김순권 목사는 "권위주의와 신학교 난립, 감정 대립 등이 장로교 분열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은 정확하지 않다. 물론 한국 장로교회들의 분열 역사에서 권위주의나 감정대립의 요소가 없었다고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신앙인들도 성화의 불완전 때문에 겸손을 잃고 감정이 격화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한국 장로교의 주된 분열의 원인이었는가?

한국 장로교회의 주된 분열은 고신, 기장, 통합, 합동의 분열이다. 이 네 교단이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52년 고신 교단의 분립은 총회측에서 신사참배가결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적절한 징계조치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고신 교단은, 비록 인간적 연약성을 종종 보였지만, 가장 순수한 흐름을 잇고 있다.

1953년 기장 교단의 분립은 총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자유주의 신학자 김재준을 두둔하는 이들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은 명백히 교리적 문제로 인한 분열이었다.

1959년 통합과 합동의 분열은 일차적으로 분명히 세계적인 에큐메니칼 운동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보는 견해의 차이 때문에 일어났다. 통합측은 그 협의회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합동측은 그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창립당시부터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단체이었고 세계교계가 이미 자유주의 신학으로 인하여 혼란한 때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 분열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상의 사실을 생각해볼 때, 과거 역사상 한국 장로교의 가장 중요한 분열은 일차적으로 신학적 문제에 있었지, 단순히 인간적인 생각이나 교권주의나 감정 대립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한 교회일치는 건전한 교리적 일치에서 찾아야지 교리적 오류를 무시한 일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리적 오류를 무시한 일치는 혼돈에 불과하다. *

한국장로교 일치운동

기독교연합신문 1997년 5월 11일자(1, 3쪽) '한국장로교 하나된다'는 제목의 기사에 의하면, 한국의 대표적 두 장로교 협의체인 한국장로교협의회와 대한예수교장로교협의회가 5월 15일 합동총회를 열어 통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기사에 의하면, 양측 5인씩의 합동위원회 모임은 '조건 없는 합동'을 결정하였고 두 단체의 회장들은 "두 단체가 따로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데 동의하였다고 한다.

교회들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데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적으로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 통합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의 통합이 될 것인가가 문제이다. 그것은 특히 한국장로교협의회['한장협']가 신앙적으로 건전한 협의체인가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대한예수교장로교협의회['예장협']은 34개 교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보수적인 많은 군소교단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한장협은 예장 통합, 기장,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대신, 예장 개혁 등의 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기장은 물론, 예장 통합이 오늘날 불신앙적이고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 교단들과의 협의 혹은 그런 교단들을 포함하는 일치 추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장과 예장 통합에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그 동안 한국장로교회 일치 논의에서도 상당히 드러났다.

크리스챤신문 1993년 5월 1일자(3쪽) 한국장로교회 일치 위한 특별좌담 보도에서, 예장 통합 부산진교회 박성원 목사는 교회가 "과거 분열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허위 구조 즉 정통성 수호라는 미명아래 교인들에게 강요해온 모든 허위구조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개인 구원, 사회 구원을 각기 외치면서 교회가 진보, 보수로 나뉘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의 진보교회와 보수교회가 일치하려면 '타협주의'가 필요하며, 예컨대 보수측에서 '성경이 유일한 계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장로교 일치는 대단히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그 좌담에서 기장 신학연구소장 김원배 박사는 교회 일치는 진정한 교회 회복 운동인데, 교회 일치를 위해 도그마[교리적 확신]에서 벗어나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교리'만 따진다면 끝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예장 대신총회 총무 김재규 목사도 한국교회가 교리를 따지지 말고 선교에 함께 참여함으로 일치를 이루자고 제의했다. 심지어 그는 "신학에 대한 고집이 곧 한국 장로교회 일치의 저해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과거엔 김재준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했으나 오늘 보수 신학에선 그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좌담은 한국교회 안에 자유적 교단과 보수적 교단의 사상적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잘 드러내 보인다. 예장 통합측 목사의 사상은 기장측 목사 못지 않게 자유적이고, 심지어 예장 대신측 총무의 발언은 경악할 지경이다. 오늘날 보수 신학에서 김재준 박사의 자유주의 사상을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니 그것이 예장 대신측의 입장인가?

기독교는 바른 교리 위에 세워져 있다. 바른 교리와 잘못된 교리를 구별치 않는다면 진리와 비진리, 정통과 이단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바른 신학은 바른 교회의 건립과 진행을 위해 매우 본질적이다. 그러나 한장협은 이런 심각한 차이점을 무시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한국장로교회들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활동해왔던 것이다.

기독교연합신문 1993년 5월 30일자(3쪽)에 실린 한장협 소속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 선언문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장로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고 말하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앙의 본질적인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기독교보 1993년 12월 11일자(7쪽)에 의하면, 한장협은 1994년 사업 계획에 각종 강단 교류, 신학생 예배 강단 교류, 세계 장로교와의 교류 등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바른 교리, 바른 신학을 무시한 교회 일치 운동은 성경적 운동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운동이 아니다. 한국장로교회 안에 기장측이 명백히 자유주의노선이고 예장 통합측도 명백히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노선이기 때문에, 그 두 교단은 자체정화를 해야 하고 그 때까지 적어도 그 두 교단을 포용하는 한국 장로교 연합 활동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 성경은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고 분명히 가르쳤고(딛 3:10), 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밝히 명령했다(고후 6:14). *

총신·장신 교직원 체육대회

기독신문 1997년 5월 14일자(21쪽) 기사에 의하면, 총신대학교(총장: 김의환 목사)와 장신대학교(총장: 서정운 목사) 교직원 친선 체육대회가 5월 3일 장신대에서 열려 학교간 친선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는 양교에서 150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행사는 성경의 교훈과 역행하는 잘못된 행사라고 본다. 장신대학교는 예장 통합측 대학교로서 성경의 근본적 진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예를 들어, 전문적 용어로 신정통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거나 이미 자유주의 신학 입장에 서 있는 학교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명백히 이단적이므로, 성경을 믿는 신자들은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이나 이런 사상을 포용하는 자들과 교제해서는 안된다.

로마서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너희가 배운 교리]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6, 14,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총신대학교는 예장 합동측 대학교로서 성경의 근본적 진리들을 믿는 학교인 줄 안다. 만일 그러하다면, 그 학교의 교직원들이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 입장을 취하거나 적어도 그런 사상을 포용하는 학교의 교직원들과 비록 체육대회라 할지라도 교제를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성경에 명백히 계시하신 하나님의 교훈을 어기고 있는 행동이라고 본다. 이런 교제는 성경 진리의 바른 증거를 위해서 그리고 건전한 교회와 건전치 못한 교회를 구별하는 선이 그어져야 할 필요성에 비추어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한다.

장로교 연합예배

기독교연합신문 1997년 6월 8일자(15쪽)의 기사에 의하면, 한국장로교협의회가 주최한 서울지역 장로교연합예배가 6월 1일 과천교회에서 있었다. 그날 낭독된 공동 선언문에는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위에 세워진 하나의 장로교회이므로 이 본질 위에서 정통과 전통을 이어나갈 것,' '교단의 정치 부조리를 물리치고 점진적인 신학 교류, 강단 교류, 연합 행사 등을 실시해 장로교회의 원형으로 회복할 것' 등의 내용이 있었다.

한국장로교협의회에는 예장 합동, 고신, 대신, 개혁이 예장 통합과 기장과 더불어 참여하고 있다. 예장 합동, 고신, 대신, 개혁 등의 교단이 신학적으로 보수적 신학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대개 인정할 것이며, 예장 통합과 기장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 혹은 주장하고 있다는 것도 거의 그러할 것이다.

기장은 처음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한, 아니 표방한, 교단이었다.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이 주로 한신대, 감신대, 연세대 신대 등을 통하여 흘러들어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예장 통합측의 장신대도 신학적으로 소위 '신정통주의적'인 입장에서 맴돌았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보수적 신학을 가진 장로교단들이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교단들과 함께 '하나의 장로교회' 혹은 '장로교회의 원형'을 논하고 '신학 교류와 강단 교류'를 제안할 수 있는가? 자유주의적 교회 지도자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보수적 교회 지도자들이라는 분들이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이런 류의 연합을 주장하고 거기에 참여하는가?

성경은 "굳게 서서 우리의 말로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전통]을 지키라,"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고 말씀했다(살후 2:15; 고후 6:14). *

박형룡 신학의 의의

기독신문 1997년 6월 4일자(7, 21쪽) 보도에 의하면, 지난 5월 30일 예장 합동측 총신 양지 캠퍼스에서 고(故)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평가하는 '제1회 죽산 세미나'가 열렸다. 박형룡 박사가 소천한지 19년 만에 있은 일이었다.

그 보도에 의하면,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 한철하 박사는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기독교의 정통적 교리 사상을 전승한 '사도적 신학,' '바른 신학'이라고 평가하였다. 또 총신대학교 총장인 김의환 박사는 "박 박사는 선교사들이 전수한 신학을 보다 체계화하고 한국교회의 현장에서 보수 신학을 수호하고 전수했으며 메이천의 '교회론적 취약점'을 극복, 결과적으로 우리 교단[합동측 교단]을 만들고 지켜왔다"고 평가하였다.

늦게나마 박형룡 신학의 의의와 가치를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면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다. 박형룡 박사는 하나님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 주의 충성된 종이었고 자유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 그리고 신복음주의 바람에 대처하여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힘써 싸웠던 분이셨다.

그러나 "메이천의 '교회론적 취약점'"이라는 김의환 박사의 표현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박형룡 박사는 '한국의 메이천'이라고 불리웠다. 그것은 그가 메이천 박사처럼 자유주의를 철저하게 비평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고 변호하였기 때문이었다. 메이천이나 박형룡의 사상을 아는 자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였다. 박형룡 박사는 메이천처럼 자유주의에 대한 비평 뿐만 아니라 또한 복음주의의 타협적 입장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평하였다.

그는 신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에 대해 학문성이 없느니 반교파주의니 세대주의니 부정주의니 하고 가혹히 비판함을 지적하면서 "근본주의에 대한 가혹한 비평은 비평자의 정통성을 의문케 한다"고 반박하였다. 특히 그는 신복음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가지고 빌리 그레이엄과 같이 그들과 협력적 전도활동을 하며 배교적인 교단들을 떠나지 않고 머물고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박형룡, 신복음주의 비평 [서울: 보수신학 서적 간행회, 1971], 26-58쪽).

그러므로 박형룡 신학에 대한 평가는 그가 매우 중요하게 여긴 이러한 점을 바르게 다루지 않고서는 바르게 할 수 없다. 오늘날 예장 합동측 목사들이 박형룡 박사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작 그 교단과 신학교에서는 그의 보수주의적 정신, 분별력 있는 바른 입장은 사라져가고 있지 않는가?

왜 그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박형룡 박사를 논하는 자들과 그 교단, 그 신학교가 그가 그토록 조심하기를 원하며 경고하고 경계했던 바로 그 오류의 방향, 곧 신복음주의적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오도(誤導)되는 연합운동

기독교보[고신 기관지] 1997년 6월 21일자(3쪽)에는 예장 대신측 교단의 직전 총무인 조순태 목사의 "한국교회 연합운동"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글에서 조 목사는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으로 위기상황일 때 교회 연합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마땅치 않게 여기는 교파도 같은 사도신경을 믿고 있으며 . . . .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심히 정신없고 무책임하고 잘못된 것이며, 그런 글이 소위 한국의 보수교단들로 알려져 있는 대신측 교단의 직전 총무에 의해서 쓰여졌고 또 고신측 교단의 기관지에 실렸다는 것은 대신측과 고신측의 넓어진 노선의 증거로서 심히 슬픈 일이다. 이것은 시정되어야 할 오점(汚點)이다.

비성경적 연합 운동은 사회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바벨탑 운동을 승인치 않으신다. 더욱이 자유주의 교단들이 마치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고 잘못된 주장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 역사상 가장 무서운 이단 사상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 연합이나 연합적 활동은 반드시 자유주의를 배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

고신 교단에 분별력이 있는가?

기독교보 1997년 7월 5일자(3쪽)에 고신총무 심군식 목사는 "연합운동의 자세와 방향"이라는 글에서 사회적 문제와 사이비 이단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두 성향을 구별하여 힘을 약화시키지 말고 일치 단합된 연합 운동과 사업으로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고신총무는 2천년 교회역사상 전무한 현대 자유주의 교회들의 사상적 변절과 혼란을 알면서 하는 말인가? 사회문제를 위해서는 배교자들과도 연합할 수 있는가? 더욱이 오늘날 가장 심각한 사이비가 자유주의 신학임을 아는가? 성경은 이단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물리치라고 교훈하였다(롬 16:17; 유 3). 고신 교단은 초기에 가졌던 바른 분별력을 회복해야 한다. *

교회갱신은 어디로부터?

기독교연합신문 1997년 7월 6일자(3쪽) 보도에 의하면, 장로교단들의 소장 목회자들이 각각 중심이 된 소위 '갱신 그룹들'은 지난 26일 사랑의 교회에서 회동, 각교단 개혁현안 문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하였다고 한다. 거기 참여한 단체들은 예장 통합측, 기장측, 예장 합동측이었고, 비행기 연착으로 불참하였으나 예장 고신측도 참가 의사를 밝혔었다고 한다.

젊은 목사들이 교회정치윤리의 갱신을 말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갱신은 보다 근원적인 데서부터 즉 배교적 사상과 신학의 갱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장 통합측과 기장측의 자체 갱신과 예장 합동측과 고신측의 자유주의적 교단들과의 무분별한 교제의 반성을 내포한다.*

장로교 평신도들의 무지

기독교보 1997년 7월 12일자(1쪽)에 의하면, 예장 고신측, 합동측, 통합측 3개 교단의 전국 남전도회 혹은 남선교회 연합회 임원들은 대구 수성관광호텔에서 제4차 연석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채택한 결의문에서 서로 사랑할 것을 다짐하면서 첫번째 내용으로 교단 간의 화합과 일치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우리는 그들 평신도들의 신앙이 비교적 순수하고 성경적이리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각 교단들의 지도적 장로들로서 오늘날 기독교계의 배교와 타협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큰 슬픔과 탄식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그런 문제점을 느끼고 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예장 통합측의 신학적 문제와 갱신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언급하였을 것이며 단순히 '교단간의 화합과 일치'를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음주의협의회의 노선

기독교보[고신 기관지] 1996년 7월 13일자(5쪽)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의 'NCC 개혁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 발표회 내용의 개요를 보도하였다. 그 보도에 의하면, 그 협의회의 지도적 인물인 홍순우 목사는 진보적 교회와 보수적 교회가 모두 자기 반성을 해야 하고 한국교회 전체 정서에 맞는 연합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NCC나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연합 기관이 합력하여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또한 그 발표회에서 전호진 박사도 "보수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연합 운동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고 말했다.

교회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분들이 자유, 보수를 분별치 못하고 비성경적인 연합을 제안하고 승인함은 심히 통탄스러운 일이다. 신실한 종들과 성도들은 이런 일에 참여치 말아야 한다.

빌리 그레이엄[그래함]과 제리 팔웰

빌리 그레이엄[그래함]은 세계적인 부흥사이며 오늘날 신복음주의적 입장의 대표자이다. 제리 팔웰은 자신을 근본주의자라고 말하는 미국의 유명한 한 지도자로서 리버티(Liberty) 대학교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근래에 제리 팔웰은 신복음주의자들과 친근히 지내왔고 빌리 그레이엄과도 가까와졌다. 1997년 5월 3일 리버티 대학교 제24회 졸업식에서 빌리 그레이엄은 연설을 하였다. (내쇼날 리버티 져날, 1997년 6월호.)

주의 검(Sword of the Lord) 편집자 쉘톤 스미스 박사는 빌리 그레이엄과 제리 팔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둘은 다 근본주의자들로 시작하였다! 그 둘은 다 큰 성공을 이루었고 국제적 인물로 부상되었다! 그 둘은 다 그들의 사역의 거점을 그들의 근본주의적 기지로부터 보다 넓은 복음주의자들의 서클에로 변경하였다. 표준들과 분리의 원리들은 사라졌다! 타협은 규범이 되었다! (50년대에) 그레이엄에 의해 채택된 에큐메니칼 태도는 이제 리버티 대학교에서 기정화된 경기 방법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진리와 오류는 자유로이 섞인다. 바른 교리는 교제를 위하여 보류된다. 한때 성경적 권위의 강한 목소리가 있었던 곳에, 이제는 적응과 편의의 정신이 우세하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6월 15일.)

누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할 것인가?

오늘날 누가 복음을 가지고 천주교인들[로마 카톨릭 교인들]에게 갈 것인가? 많은 선교 기관들과 교회 밖의 단체들이 이제 타협된, 무력(無力)한 복음을 가지고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천주교인들과 연합하여 일한다. 복음 전파(Proclaiming the Gospel)지 1997년 6월호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천주교회는 이제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대회들에 참여하고 있다. 전도 대회를 선전, 촉진시키고 천주교 상담자들을 사용하는 댓가로, 그레이엄은 믿음을 고백하며 앞으로 나오는 모든 천주교인들을 그들의 천주교회들에로 돌려보내겠다고 지역의 주교와 약속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어린아이들은 이와 같이 성경적 복음과 그것을 전파하는 자들을 정죄하는 이리들에게로 의탁된다. 촬스 콜슨, 빌 브라잇, 제이 아이 패커 및 다른 복음주의자들, 곧 전도보다 일치를 위해 더 바쳐진 저들은 1994년 기본적으로 서로의 양무리를 '개종시키지' 않기로 천주교인들과 합의하여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 ECT)라는 문서에 서명하였다.

이와 같이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하기를 중단하고 그들을 동반자로 여겨 그들과 함께 일하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잘못된 입장과 태도에 항거하며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천주교인들에게도 전할 것이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6월 15일.)

대학생 선교회(CCC)의 빌 브라잇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 1997년 7월 14일자는 대학생 선교회의 창설자요 총재인 빌 브라잇 박사에 대한 10페이지의 글을 실었다. 그 글은 그가 지난 해 템플톤 상을 받았음을 언급했고 또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브라잇에 의해 따뜻하게 용납된다"고 말했다.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빌 브라잇을 1994년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 ECT)라는 상호 인정과 협력의 진술서에 서명한 것 때문에 그를 이단이라고 비난했고 어떤 이들은 ECT에 대한 그의 입장을 취소하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천주교인들 가운데 수천만명의 참된 신자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참된 신자들은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하고 천주교회와도 분리되어야 한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8월 1일자.)

하버드 대학 교회의 동성애 목사

헌츠빌 타임즈(Huntsville Times)지 1997년 7월 17일자에 의하면, 하버드 대학교 기념 교회(Harvard University Memorial Church)의 동성애 목사 피터 고움즈(Peter Gomes)는 말하기를, 그 교회는 동성(同性, same-sex) 결혼들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캘버리 컨텐더, 1997년 8월 1일자).

이 얼마나 해괴망칙한 현실인가? 이렇게 부패하고 타락한 현대 교회를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참으시겠는가? 그가 진노의 손을 곧 들지 않으시겠는가? 참된 성도들은 가슴을 치고 이 배교의 현실을 탄식해야 하며 경성하며 참된 말씀의 부흥을 사모해야 하겠다.

미국 교회의 쇠퇴

헌츠빌 타임즈(Huntsville Times)지 1997년 7월 19일자에 의하면, 미 합중국 장로교단(PCUSA)은 매년 약 35,000명의 교인을 잃어버리고 있고, 감독교단은 지난 30년 동안 교인수가 30퍼센트 떨어졌다고 한다. 크리스챤 뉴스(Christian News)지 1997년 7월 7일자는 새 갤럽 조사에 의하면 미국내의 교회 참석자 수는 194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떨어졌다고 말한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8월 1일자.)

이것은 미국이 영적으로 매우 쇠퇴하여 가고 있음을 증거한다. 오늘처럼 바른 말씀이 천주교와 자유주의의 배교에 가리워 혼란해진 시대가 있었는가? 그러므로 부흥은 배교와 타협의 죄를 철저히 회개함이 없이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부흥은 참된 말씀과 순종의 회복에서 시작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교회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미국 남침례교단과 침례교 세계 연맹

뱁티스트 월드(Baptist World)지 1997년 7-9월호에 따르면,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침례교 세계 연맹(Baptist World Alliance = BWA)에서 이제까지 가장 큰 회원 교회이다. BWA 회원 교회들의 다수가 세계 교회 협의회(WCC)와 관계가 있다. WCC에서 BWA 회원 교회들은 전체의 15퍼센트에 이를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전도자요 침례교인인 빌리 그레이엄은 여섯 번의 BWA 대회에서 연설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그 단체를 후원하라고 격려하였다. 또 1995년 BWA는 그에게 특별 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BWA나 WCC는 현대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하지 않고 포용하는 배교적 단체들이다. 남침례교단 같은 BWA 회원 교회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그리스] 정통 교회를 포함하여 완전히 다양한 다른 교회들과 에큐메니칼 대화에 참여하여 왔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교회들 간의 기구적 연합을 향한 어떤 움직임을 수상하게 생각했던 침례교인들도 오늘날의 에큐메니칼 상황에서는 훨씬 더 편안하게 느끼기 쉬울 것이다.

남침례교단이 '보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 교단이 BWA와 WCC 등 배교적 에큐메니칼(하나의 세계 교회) 운동 단체들과 가지는 연관성을 기억해야 한다. 그 교단이 참으로 '보수적'이라면, 그 교단은 배교적 단체들과 연관을 가져서는 안된다. 참된 성도들과 교회들은 마땅히 배교적 단체들로부터 떠나야 한다(캘버리 컨텐더,

천주교회와 가까와진 자유주의자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8월 1일자에 의하면, 미국 복음 루터교회(ELCA)의 에큐메니칼 지도자 프랑크 센(Frank Senn)은 말하기를, "나는 우리와 로마 카톨릭 교회와의 관계가 우리가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진영에 있다"고 했고, 또 부언하기를, "우리는 16세기에 분리되어 나간 자들이며, 우리는 다시 함께 돌아가야 할 자들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자유주의 교단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바른 지식과 믿음에서 떠나 있는가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말이다.

천주교회는 교회의 권위를 성경과 동등하게 높이고, 마리아를 거의 신적 존재와 같이 숭앙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의 핵심을 명백히 부정하는 등 그 근본적 교리들에 있어서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회가 참된 교회가 아님을 천명했으며 그 교회를 적그리스도적이고 우상숭배적이라고 판단하였다. 그 판단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자유주의 지도자의 발언과 태도는 참으로 악하고 배교적이다. 현대는 배교와 혼돈의 시대이다. 참된 성도들은 진실로 경각해야 한다. *

중국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자

카리스마(Charisma)지 1997년 7월호에 따르면, 중국의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는 최근에 말하기를, "우리의 적(敵)은 총을 가진 자들이 아니고 성경을 가진 선교사들이다"고 하였다(갈보리 컨텐더, 1997년 8월 1일자).

월드(World)지 1997년 8월 2일자에 의하면, 중국 교회의 약 10퍼센트는 공산 정부가 "삼자(三自) 애국운동"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정신적 통제 아래 등록된 교회이지만, 신자들의 90퍼센트는 가정 교회들에서 예배드리며 많은 이들은 국가를 신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핍박을 당한다고 한다(갈보리 컨텐더, 1997년 8월 15일자).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반기독교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중국에 종교적 자유가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되겠다. 물론 우리는 중국의 개방 정책과 일부 자본주의 방식의 채용이 그 나라의 정신적 변화와 종교적 자유의 허용을 가져오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라도 중국 공산정권의 이중적 태도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북과 중국을 포함하여 공산 세계가 하루 속히 진정한 종교적 자유를 누리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계속 기도해야 한다. *

천주교인들을 향한 루터교인들의 서곡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자유주의적인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는 8월 모임에서 수세기 동안의 로마 카톨릭교도들과의 분열의 싸움이 끝났다고 선언하였고, 과거의 정죄들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진술을 958대 25의 표결로 승인하였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9월 15일.)

감독교인들과 동성연애자들

동성애에 관하여 심각히 분열되어 있는 감독교인들은 그들의 7월 대회에서 남녀 동성애자들에게 사죄하였다. 그들은 동성(同性) 결합들의 축복을 연구하고, 가사의 일에 관여하는 배우자들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을 확장하기로 가결했고, 성적으로 활동적인 동성애 성직자를 금지하려는 시도들을 부결시켰고, 동성애 관심사에 동정적인, 자유주의적인 새 감독 회장을 선출하였다. 그들은 7명의 여성 감독들과 약 1,500명의 여성 신부들을 가지고 있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9월 15일.)

빌리 그레이엄의 방법론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8월 11일자에 의하면, 빌리 그레이엄의 '금세기의 책'인 내 모습 그대로라는 책의 서평에서, 컬럼비아 국제대학교 명예총장 로벗슨 맥퀼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빌리 [그레이엄]의 접근 방식이 모든 사람들, 즉 로마 천주교인, 그리스 정교회 교인, 자유주의자에게 열려 있고 따뜻하다는 것은  . . . 분명하다. 근본주의자들 외의 모든 사람에게[!]. 에큐메니칼 포용주의에 대한 그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중심주제이다. 그래서 그의 신학적 혈육인 근본주의자들은 그를 따르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이 그레이엄과 분리된 것은, 한 부류로서의 근본주의자들이 다른이들보다 더 위선적이고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직하다. 그들이 방법론에 관하여 그렇게 엄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그들은 영적 사역에서 불신자들과 협력하는 것은 죄악된 불순종이라고 믿는다. . . . 빌리는 기독교계를 나누는 많은 교리들을 힘써서 무시하고, 연합하는 것을 전공한다. . . . 그의 강조점은 신앙의 순결성보다 그것의 일체성에 있다. . . . 그의 사역은 전도이다. 그는 인종차별은 (우리가 다루어야 할) 도덕적 문제지만, 낙태는 (우리가 피해야 할) 정치적 문제라고 [정의한다]. . . . 빌리는 신학적 차이점들을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낮춘다. 그가 신앙의 근본 교리들을 믿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9월 15일.)

안락사(安樂死)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 1997년 9월호에 의하면, 네델란드(화란)는 가망 없는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부터 만성적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 신체적 질병을 위한 안락사로부터 심리적 고통을 위한 안락사로, 그리고 자발적 안락사로부터 비자발적 안락사로 움직여왔다. 일단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 죽이는 것이 허용되면, 의사들이 보다 더 회색 지역들[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들]로 그 선을 넘는 것이 더 쉽다. 환자의 '죽을 권리'가 교묘하게 환자의 '죽을 의무'와 의사의 '죽일 면허증'이 된다. '죽음의 의사'(Dr. Death)라는 별명이 있는 잭 케보키안(Jack Kevorkian)은 적어도 45건의 '자살'을 도왔다. 그 중 많은 이들은 최종적으로 아픈 상태가 아니었고 몇 경우는 질병의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매스컴은 케보키안을 의사라고 부름으로써 그의 행위들을 정당화하지만, 그의 의사 면허증이 1991년에 중지되었음을 말하지 않는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9월 15일.)

몰몬교

몰몬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기독교라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기독교가 아니다. 몰몬교도들은 다른 예수, 다른 영, 그리고 다른 복음을 믿는다(무디 먼슬리, 1997년 9월호). 그 창시자이며 자칭 선지자이었던 죠셉 스미스는 잘못된 신비주의에 관여되어 있었다. 그가 받았다고 주장했던 112가지의 계시들 중에, 88가지는 재정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타임, 8월 4일자). 몰몬교는 성경 말씀을 사용하지만 다른 의미들로 사용하기 때문에 혼란을 주고 있다. 몰몬경에 언급된 어떤 몰몬 도시들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떤 히브리어 비문도 인디안 폐허들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몰몬경의 어떤 고대 사본들도 발견된 적이 없다. 역사적 사실들은 몰몬경과 충돌한다. 이전에 몰몬교도이었던 한 사람은 일부다처(一夫多妻)제도가 유타주와 서부에서 살아 있고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크리스챤 뉴스, 7월 14일자). (캘버리 컨텐더, 1997년 9월 15일.) *

카톨릭 신자들과의 일치가 가능한가?

1997년 9월 '복음주의자들과 카톨릭 신자들 함께'(Evan- 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라는 모임에서 "구원의 선물"이라는 두번째 진술서를 발표하였다. 그 글은 매우 복음적인 구원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 외에는 구원 얻는 다른 길이 없다고 바르게 진술한다. 또 그것은 의롭다 하심이 인간의 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만 근거한다고 바르게 말한다.

그러나 그 진술서는 카톨릭의 공로 개념, 연옥, 마리아 경외 등의 문제에 대하여 '다양한 이해들'이 있다고만 언급하고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로를 참으로 믿는 모든 사람은 주 안에서 형제 자매이다"고 말한다. 또 그것은 진술하기를, "종교개혁의 유산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고전적 신앙고백을 확신을 가지고 공언하는 복음주의자들로서, 카톨릭 교회의 교훈에 양심적으로 충실하는 카톨릭 신자들로서, 그리고 우리의 기독교 선조들에 대한 우리의 빚과 우리의 동시대인들과 우리 후에 올 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인식하는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여기에서 고백한 복음 안에서의 우리의 일체성을 선언한다"고 했다.

그 진술서에 서명한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는 대학생 선교회 국제 총재인 빌 브라잇 박사,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해롤드 O. J. 브라운 박사와 존 우드부릿지 박사, 휘튼 대학의 마크 A. 놀 박사, 카나다 리전트 대학의 제임스 I. 패커 박사 등이다. 이들은 다 오늘날 유명한 복음주의자들이다.

빌리 그레이엄과 보편구원론

파운데이션(Foundation), 1997년 5-6월호에 의하면,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박사와의 1997년 5월 31일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박사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사람, 그들이 그것을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고 생각한다. . . . 그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고 있지 못할지도 모르나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빛으로 향하며, 나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고 그들이 우리와 함께 천국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 .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고, 그들은 주위의 사회와 전혀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로버트 코팔(Robert Kofahl)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엄 박사가 표현한 교리는 . . . 정확히 교황과 로마 천주교회의 에큐메니칼 연구소가 수년 동안 가르쳐 왔던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우상숭배를 행하고 성경이나 은혜의 복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이름과 구속 사역에 대한 지식이 조금도 없는 어떤 이교도도, 만일 그가 '좋은 사람'이고 그가 믿는 바가 무엇이든지 그 믿는 바에 있어서 신실하다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는다'는 관념이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10월 15일.)

말세에 소돔의 정신

크리스챤 뉴스 1997년 10월 27일자(1, 6, 7쪽)는 데이빗 클라우드(David W. Cloud)의 글을 실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 있다.

"우리는 도덕적 타락의 정신이 기독교의 배교적 분자[교회 혹은 단체] 전체에 걸쳐서 명백함을 본다. 그것은, 강요된 악한 '독신생활'를 가진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항상 명백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역사는 소돔과 고모라의 연대기의 어떤 것과 같다. 심지어 다수의 교황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셀 수 없이 많은 카톨릭 신부들이 동성애에 빠졌다. 심지어 로마 카톨릭의 역사들도 그것을 인정하지만, 그것들은 '모교회'의 도덕적 실패에 관하여 보통 덜 솔직하다. 널리 퍼진 타락은 오늘 시대에까지 계속된다.

미국의 카톨릭 교회는 동성애 신부들에 대항해 승소한 소송 사건들 때문에 벌금으로 수억 달라를 지불하였다. 1989년 11월 13일자 타임(Time)지는 '동성애 성직자에 대한 전쟁'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는데, 그 글은 미국에서만 약 10,000명의 동성애 로마 카톨릭 신부들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최근에 한 행위 규정이 추천되었는데, 그것은 카톨릭 신부들이 어린 아이들과 홀로 있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그곳의 카톨릭 교회는 신부들이 수백명의 어린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였음을 시인하였다. 뉴 사우스 웨일즈주에서 발행된 올해의 한 보고서는 '성직자' 가운데서의 동성애 문제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그 보고서는 말하기를, 많은 신부들은 '그들의 독신 서약이 단지 이성적(異性的) 성관계에 관한 것이고 소년들이나 청년기의 남자들과의 단정치 않은[음란한] 행위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RNS, 1997년 9월 25일).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년들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고는 이해하지 않았다! 카톨릭 신부들 가운데서의 도덕적 타락의 예들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들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 타락은 또한 현대 개신교회의 자유주의 분자[교회 혹은 단체]의 주요 부분이었다. 현대주의와 신정통주의의 선조들 중의 다수, 예를 들어 틸리히와 바르트는 간음한 자들이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이었고, 그들의 [영적] 자녀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대교단들은 동성애를 그리스도인의 합법적인 생활 방식이라고 서둘러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단지 [미국 및 카나다 교회들의] 몇 가지 예들만을 제공하겠다.

1. 1968년, 메트로폴리탄 공동체 교회 세계 협회(UFM CC)라고 불리우는 한 교단이 활동적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오늘날 그 교단은 330교회들에 30,000명 이상의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2. 1972년,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는 윌리암 존슨(William Johnson)의 안수를 허락했는데, 그는 대교단에 의해 안수받은 첫번째의 공공연한 동성연애자이다.

3. 1979년도의 한 책에서, (연합 감리교회의) 남부 감리교 대학교의 빅터 폴 퍼니쉬(Victor Paul Furnish)는 바울이 신약 성경에서 정말 동성애를 정죄했는지 의문(疑問)하였다.

4. 1980년, 유니테리안 보편구원 교회(UUC)는 공공연히 동성애적이고 양성애적(兩性愛的, bi-sexual)인 인물들을 지도적 지위들에 채용하기로 결의했다.

5. 1982년, 연합 감리교회에서 출판된 '인간의 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동성애적인 남자들과 여자들이 교회 목회나 지도적 직분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고 진술하였다. 그 보고서는 주장하기를, ' 많은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동성애적이며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완전한 그리스도인 제자의 생활을 하고 상호 간의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6. 1984년, 유니테리안 보편구원 교단(UUF)은 동성연애자들 간의 결혼을 인정한 최초의 주요 교단이 되었다.

7. 1987년, 뉴저지주 뉴워크시 감독 교구는 동성애적 결혼들의 인정을 요청하였다.

8. 1987년 11월, 매사추세츠 감독 교구의 '성직자' 대표들은 결혼식과 비슷한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축복 의식을 개발하기로 한 결의안을 승인하였다.

9. 1988년, 카나다 연합 교회(UCC)는 카나다에서 동성애자들의 목사 안수를 합법화한 최초의 교단이 되었다. 그 이후, '남녀 동성연애자들'을 교회 생활의 모든 방면에 환영하는 연합 교회들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10. 또 1988년, 감독교회의 감독 존 스퐁(John Spong)은 죄 가운데 삶: 한 감독이 인간의 성(性)을 재고함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그 책에서 스풍은 쓰기를, '나는 남여 동성연애자들의 짝들에 대한 교회의 축복은 불가피하고, 옳으며, 명확한 선이라고 간주한다'고 했다(198쪽).

11. 1992년 5월, 카나다 연합 교회(UCC)의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회는 공공연한 동성연애자인 팀 스티븐슨(Tim Stevenson)을 목사로 안수하였고, "그리스도인의 상호간의 위탁의 진정한 표현들로서 동성간의 언약들의 타당성을 선언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종교 뉴스 통신(RNS)은 카나다 연합 교회의 어떤 목사들은 동성연애자들의 짝들을 위한 '언약' 의식들을 집행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12. 같은 해, 카나다 연합 교회의 마니토바와 노스웨스턴 온타리오 대회는 동성연애자들의 짝들을 교회들 내에서 결혼시키는 것을 허락하도록 표결하였다.

13. 그 다음 주, 카나다 연합 교회의 사스카치완 대회는 오는 삼년 동안 적어도 10개의 강단을 동성연애자들에게 개방하기로 표결하였다.

14. 1993년 국내 및 국제 종교 보도(NIRR)에 의한 설문조사는, 미국의 감독교인들의 75퍼센트는 성적으로 활동적인 동성연애자들이 여전히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

15. 1993년 11월, (300교단 이상을 대표하는) 세계 교회 협의회(WCC)는 2,000명의 여성들이 참석한,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의 리이메이징(Reimaging) 대회를 후원하였다. 연사들 중 다수는 여성 동성애를 조장하였고, 대략 100명의 여성 동성애자들 무리는 그들의 동성애를 자축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갔고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한 분과토론회는 '교회 내에서의 여성 동성애자들의 예언적 목소리'라는 이름을 가졌다. 미국 침례 교회(ABC)에 부름을 받은 첫번째 '드러난' 여성 동성애 목사인 내디안 비숍(Nadean Bishop)은 성경에서 마리아와 마르다는 여성 동성연애자이었다고 주장했다.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에서 스스로 여성 동성애 여목회자로 공언한 재니 스파(Janie Spahr)는 주장하기를, 그의 신학은 무엇보다 먼저 그의 여성 동성애 파트너인 "코니(Coni)와 사랑을 함"으로써 지식을 얻었다고 했다.

16. 1994년, 총회장 폴 쉐리(Paul Sherry)를 포함하여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지도자들은 '남녀 동성연애자들과 양성애(兩性愛, Bisexual)자들의 동등권과 해방을 위한 워싱턴 행진'에 참가하였다.

17. 1995년 11월, 워싱턴 D.C.에 있는 연합 감리교단 소속 파운드리(Foundry) 감리교회(빌 글린턴 대통령과 힐라리 여사가 그 교회에 출석함)에서 열린 한 공개토론회 연사들은 바울을 '자신을 미워하는 남자 동성애자'로 묘사했고, 동성애 결혼을 칭찬했고, 또 다윗 왕이 양성애자이었을지 모르며 예수 그리스도가 동성애자(homosexual 'drag queen')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였다. 그 대회는 동성애적 무지개 상징을 보이는 깃발들을 앞세운 '성직자 행렬'을 포함하였다.

18. 1996년 7월, 유니테리안 및 보편구원 회중 협회(UU AC)는 동성 결혼의 합법적 인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였다.

19. 1996년 10월, 남 오스트레일리아 연합 교회(Uniting Church)는 동성애자들을 지도적 직위들에 임명하는 것에 대한 연기 제안을 부결시켰다.

20. 1996년 11월 16일, 영국 국교 내의 남녀 동성연애자 기독교 운동(LGCM)의 2천명 이상의 지지자들은 런던의 유명한 사우스워크 대성당에서 20주년 기념행사를 거행했다. 20년 동안, 이 단체는 동성애를, 부도덕한 것으로 정죄되어서는 안될 본성적 상태로 인정받기 위해 역설해 왔다. 이 기념회의 연사인 영국 국교회 주교 존 글래드윈(John Gladwin)은 "인간의 성의 본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고 단언했다.

21. 1997년 2월, 주로 동성연애자들로 구성된 앞에 언급한 메트로폴리탄 공동체 교회 세계 협회(UFMCC)는 남 캘리포니아 에큐메니칼 협의회에 가입되었다.

22. 1997년 7월, 영국의 연합 개혁 교회(URC)는 '실제적인 동성애자들'을, 그들을 뽑기로 결정하는 교회들의 목사로 받아들이기로 동의하였다. 또한 미국 감독교회(EC)는, 1997년 7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3년마다 열리는 총대회 기간에, 남녀 동성연애자들에게 "여러 해 동안 교회가 [그들을] 거절하고 박대한 것에 대하여" 사죄하였다.

이상의 목록은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 동성애를 합법적인 생활양식으로 간주하려는 움직임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풍성히 증거한다. 교회들이 심히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보수적 목사들에게 분별력 필요하다

기독신문, 1997년 10월 29일자(22쪽) 보도에 의하면, 예장 합동측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를 비롯하여 예장 통합측 '바른 목회 실천 협의회'(회장: 손인웅 목사), 예장 고신측 '고신 정신 잇기 목회자 협의회'(회장: 윤희구 목사), 기장측 '21세기 목회자 협의회'(회장: 전병금 목사) 등 장로교단들 중 대표적인 네 교단의 목회자 협의회들이 11월 3, 4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미래 한국교회를 위한 장로교 목회자 모임'을 갖는다고 하였다.

동신문은 또한, 그 모임에서 선언문도 발표할 예정인데, "그 선언문에는 장로교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을 참회하는 한편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목회자들이 일치와 연합된 모습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보도하였다.

'교회 갱신'을 추구하는 목사들 특히 예장 합동이나 고신 같은 보수적 교단의 목사들이 시대를 분별하는 분별력이 없이 혼란한 일에 힘을 쓰고 있으니 심히 탄식스럽다.

첫째로, 교회 갱신은 성경적 복음 진리에 입각해야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이 신학교들 속에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자유주의 이단의 추방이 없는 교회 갱신은 무의미하며 위선적이다. 현대 교회의 갱신은 성경적인 바른 신학을 재확인하고 보수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로, 잘못된 분열들의 죄를 인식한다고 해서, 곧 무분별하게 교회 일치를 말하는 것은 교회를 혼란시키는 죄악이다. 성경은 잘못된 분열을 육체의 일로 정죄하지만(갈 5:20), 또한 교리적 오류로부터의 분리를 명백히 명령한다(롬 16:17; 딛 3:10 등). 배교와의 타협은 분열 못지 않은 큰 죄악이다. *

WCG의 두 얼굴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 = WCG)가 허버트 암스트롱(Herbert W. Armstrong)의 어떤 이단적 교리들을 버렸고 이제 삼위일체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그 교회는 여러 방면에서 복음주의적으로 보이며 최근에는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의 회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WCG 교회는 여전히 영원한 [지옥] 형벌의 교리를 거절하고, 유대교적 안식일 준수를 고집하고, 죽은 후의 구원의 두번째 기회에 대한 비성경적 가르침을 받아들인다(Fundamental Digest, 1997년 10월). 지옥에 대한 그들의 결함 있는 가르침에 대한 추가적 증거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 8월 12일자에서 WCG의 한 목사로부터 보여진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11월 1일.) 오늘날 복음주의는 오류를 포용할 만큼 넓어졌다.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카톨릭 수녀인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가 작년 9월 별세하였다. 그는 인도의 극빈자들을 섬기는 '많은 놀라운 일들'을 하였다. 그는 노벨 상 수상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다"고 믿는 보편구원론자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신에게든지 당신이 평안하게 느끼는 신에게 기도하시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에이즈(AIDS) 환자들에 대해 말하기를, "그들 각 사람은 고통 당하는 자로 위장된 예수다"고 하였다. 그는 낙태를 강하게 반대하였으나, 그는 "우리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사상들은 비성경적이다. 무엇보다, 그가 충실한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은 그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이나 촬스 콜슨(Charles Colson)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아낌 없이 칭송하였다. 촬스 콜슨은 그를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매'라고 불렀다. 이것은 진리를 혼동시키는 잘못된 발언들이다. 정통 천주교인들은 복음 진리를 부정하는 이단자들이요 마리아를 그릇되이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이다. (캘버리 컨텐더, 1996년 11월 15일, 1997년 4월 1일, 10월 1일.)

마리아 숭배?

로마 천주교회의 마리아 숭배는 마리아를 성경이 계시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본다.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로마에서 무장 괴한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마리아가 자기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하였다(Canadian Revivalist, 1997년 8월). 그는 마리아에게 지극한 헌신을 보였고 말하기를, "마리아여, 나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니이다"고 하였다. 오늘날 천주교 내에서는 마리아를 신의 지위로 올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것은 뉴욕의 추기경 죤 오컨너(John O'Connor)의 조용한 지지를 얻었다. 그것은 삼위일체를 확장하여 새로운 '거룩한 사위일체(四位一體, Quartet)를 형성하도록 요청하는데, 거기에서 마리아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며 성령의 배우자로서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로서 인정될 것이다(Christian News & Views, 1997년 10월). 옹호자들은 그 계획을 위해 430만명의 서명을 수집하였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11월 1일).

그러나 천주교회의 이런 사상과 그 사상의 노골적인 표현인 근래의 움직임은 명백히 비성경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오류이다. 마리아는 결코 천주교회가 말하며 드리는 그런 존경과 숭앙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는 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배교적 증거들

크리스찬 뉴스, 1997년 11월 10일자(1, 7쪽) 기사에 의하면,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소속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소망 루터교회의 톰 브록(Tom Brock) 목사는 뉴올리안스에서 열렸던 교단의 여름 청년집회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교단 총회에 대하여 슬픔과 탄식의 심정을 가지고 몇 가지 사실을 증거하였다.

첫째로, 그는 교단 청년집회에 관하여, '관계 있는 루터교인들'(Lutherans Concerned)이 그 집회에서 책상을 하나 허락받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증거하였다. '관계 있는 루터교인들'은 동성애의 행위를 조장하는 무리이다. 그가 교단 총회에 참석했을 때 '정의의 벽'이라는 방에 들어갔었는데, 거기에서도 그 무리를 위한 전시물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이런가? 우리의 젊은이들을 교회 집회에 보내서 실제적 동성애자들에 의해 선전을 듣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

둘째로, 그는 교단 총회에 관하여,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대표가 '성령'께서 그의 교단을 인도하셔서 실제적 동성애자들에게 안수를 주었다고 진술하고 우리 루터교인들도 그들의 순례 과정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을 때 혼란스러웠다고 증거하였다. 후에 그는 그 대표에게 사적으로 이야기하며 그가 아마도 성령을 모독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한 영이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끌어 그들이 한 일을 하게 하였다고 믿지만, 그것은 성령이 아니셨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교단 총회가 70 대 30 비율의 표차로, 임신 20주까지 요청이 있으면 계속 교회 헌금을 사용하여 낙태를 위해 지불하기를 표결하였다고 증거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공식적으로 배교적 교회로서 완전히 갔다고 믿는다"고 했다.

여기에 지적된 것은 윤리적 문제들에 불과하다. 그것들도 중요한 점들이다. 동성애는 성경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악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변태적 음란의 악이다. 또한 낙태도 성경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악이다. 출애굽기 21:22-25은 말씀하기를,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 . . .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 . . 갚을지니라"고 했다. 여기에 '다른 해'라는 것은 엄마나 아이에게 다 적용된다. 낙태는 살인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가 동성애나 낙태의 악들을 공식적으로 포용한다는 것은 그 교회가 배교적이라는 것을 명백히 증거한다.

그러나 사실은 문제가 그런 정도에 있지 않다. 이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의 신학 사상이 이미 변해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규칙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태도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바르게 직시해야 한다.

문제가 이러하다면, 오늘날 왜 보수적 교회가 필요한지, 그리고 왜 보수적 교회들이 초교파적 교제에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기독교계가 혼란한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 개인은 그가 속한 지교회의 신앙 입장과 일치해야 하고, 지교회는 그가 속한 교단의 신앙 입장과 일치해야 하며, 지교단은 그가 관계하는 다른 교회들과 단체들, 연합체들의 적어도 기본적 신앙 입장과 일치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성도와 교회의 태도일 것이다.

오늘날 참으로 요청되는 것은 건실한 지교회들과 건실한 교단들과 건실한 장로교적 연합체들, 그리고 좀더 전체교회적 안목에서, 건실한 초교파적 협의체들이다. 여기에 '건실한'이라는 단서는 적어도 오늘날 이 배교적 문제점을 바르게 인식하고 대항하며 신앙과 행위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는 의지와 분명한 원리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에드먼드 벌크(Edmund Burke)는 이렇게 말했다: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유일한 일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

하버드 신학교수의 동성애 견해

크리스챤 뉴스 1997년 11월 10일자(7쪽)는 하버드 대학교 신학교수 피터 고움즈(Peter Gomes)의 동성애에 대한 견해를 지적한 데이빗 클라우드(David W. Cloud)의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USA 위크엔드 1997년 10월 3일, 리이드 캐레임(Reed Karaim)과의 인터뷰에서, 고움즈는 레위기에서의 동성애의 금지가 동성연애자가 "본래 악하기" 때문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그것을 행하고 그러므로 그것이 의식적(儀式的)으로 불결하기(ritually impure)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로마서 1:27에서 동성애 행위에 대한 바울의 비평이 "본성적으로" 동성연애자인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고 이성(異性)연애자들에 의한 동성애 행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진술하기를, "바울이 동성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모두 그것의 타락한 이방적 표현이었다. 그는 그러한 무지 때문에 정죄될 수 없지만, 그의 무지가 우리 자신의 무지를 위한 변명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명백히 정죄하는 동성애에 대한 극히 부자연스러운,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심히 악한 변명이다. 레위기 18:22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고 했다. 거기에 어떤 단서가 붙어 있지 않다. 또 고린도전서 6:9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불의한 자들의 목록 중에 '탐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가 들어 있다. 동성애는 하나님 앞에서 심히 가증스러운 음란 행위이며 회개해야 할 큰 죄악이다. =

미국 연합 감리교회 내의 동성애 옹호자들

크리스챤 뉴스 1997년 11월 24일자(11쪽)의 한 기사에 의하면, 지난 9월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의 제일 연합감리교회의 지미 크리치(Jimmy Creech) 목사는 그의 교인 중 두 명의 여자 동성연애자들을 위해 결혼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그 교회의 한 교인의 고소로 그 사건이 재판 중에 있다.

그런데,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연합 감리교인들의 비공식적 대표 모임인 '단언'(Affirmation)이라는 회의는 그 교단의 최고 법정인 재판 위원회가 동성애자들의 결혼식에 대한 1996년의 교회의 금지 규정이 합헌적인지 여부를 판단해 주기를 원한다. '단언'의 대변인인 진 네퍼는, 1996년 채택된 그 금지 규정이 "불분명하고, 비헌법적이고 강요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불공정하며 교회의 어떤 회원들에 대한 필요불가결한 봉사를 부정한다"고 말했다.

교회가 얼마나 타락하고 넓어졌으면, 동성애의 악한 행위를 이렇게 옹호하는 자들이 포용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말세의 배교의 증거이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교리적으로 성경의 기본적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이단 사상을 포용하고, 윤리적으로 동성애 같은 명백한 죄악들을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한 성도들은 이런 악에 조금도 물들지 말고 성경 말씀을 굳게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한다.

중국은 200개의 가정교회를 폐쇄시킴

크리스챤 뉴스 1997년 12월 1일자(3쪽)는 컴퍼스 디렉트(Compass Direct)지를 다음과 같이 인용, 보도하였다. 중국 정부관리들은, 비공식적 교회들을 정부에 강제 등록시키는 일이 강화되었던 1997년 초 이후, 남부 저장(Zhejiang)성의 원조우(Wenzhou)시에서 200개의 교회들을 폐쇄 혹은 파괴시켰다. 남부 저장성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기독교인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남부 후난(Hunan)성과 막상막하이다. 물론 4천만 인구의 저장성은 1억 천만 인구의 후난성보다 훨씬 작다. 많은 신자들은 그들의 집들에 붉은 십자가를 그리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그들의 점포들 위에 '임마누엘'과 '에벤에셀' 같은 글자들을 큰 금색 글씨로 써놓기도 한다. 종지아(Jong Jia)군 같은 곳들에는 매 킬로미터마다 교회가 있다고 한다.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신앙생활에 분발하면서 중국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자.*

캐나다 연합 교회의 자유주의 목사들

기독신문, 1997년 12월 3일자(16쪽) 보도에 의하면, 교인 300만의 캐나다 최대의 개신교단인 캐나다 연합 교회(UCC)의 총회장 빌 핍스 목사는 10월 24일자 오타와 시티즌지와의 대담에서 "예수가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발언하여 한 달이 넘도록 교단내 자유주의 진영과 보수주의 진영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보도에 의하면, 논쟁이 가열되자 85명의 교단 집행위원들이 대책 회의를 연 후, "캐나다 연합 교회는 개인의 신앙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으며, 따라서 총회장의 개인적 신앙고백을 존중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 캐나다 연합 교회의 신학 노선과 총회장 신임을 재확인했다.

캐나다 연합 교회가 매우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은 벌써부터 들어왔지만, 우리는 그 구체적인 한 증거를 보면서 다시 한번 더 경악한다. 한 기독교회의 총회장이라는 이가 어떻게 이처럼 명백히 불신앙적 이단 사상을 가질 수 있는지 놀랍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교단 집행위원들이라는 소위 교단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이처럼 진리를 저버릴 수 있는가? 이처럼 교회가 포용적이게 되었다. 이처럼 교회가 진리를 지키려는 의지를 버렸고 무관심주의에 떨어졌다. 이것은 현대 교회의 배교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4: 6). 베드로 사도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증거하였고(행 4:12), 바울 사도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했다(딤전 2:5).

그러므로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진실한 성도들은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는 오늘날 교회의 배교적 현실을 직시하며 세계적, 초교파적 교제에 있어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또한 캐나다 연합 교회에 속한 진실한 목사들과 성도들은 단호히 자유주의 이단자들을 추방하든지 아니면, 그 교회로부터 나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단과 교제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자유주의자들과의 교제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크리스찬 뉴스, 1997년 12월 8일자(1, 12쪽) 보도에 의하면, 캐나다 연합 교회(UCC) 새 총회장 빌 필립(Bill Phipps) 목사는 오타와 시티즌(Ottawa Citizen)지와의 대담에서 "나는 예수가 하나님이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고, 천국과 지옥의 성격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나는 지옥이 있는지 어떤 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지옥에 대하여 그렇게 관심을 가지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 땅 위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 . . 천국이 장소입니까? 나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지 어떤 지 모릅니다. 그것은 부적절한 문제입니다"고 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사상에 대하여 첨가하여 말하기를, "예수께서 신적이지 않다는 노골적인 진술은 잘못된 인상을 줍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만큼, 하나님의 본질을 계시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의 전체적 개념은 예수에게서 표현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고 더 신비하고 더 거룩합니다"고 하였다.

지난 호에 우리가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부패하였으면, 이런 류의 불신앙이 포용되며 그런 사상을 가진 자가 총회장이 되며 또 교단의 지도자들이 그런 자를 축출하기는 커녕 옹호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교회에 대하여 분노하지 않으시며 징벌하지 않으시겠는가? 말세의 진실한 성도들은 이 시대가 배교의 시대인 것을 알고 더욱 성경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한다.

선교사들이 요청됨

캘버리 컨텐더에 의하면, 이단종파인 몰몬교는 5만 5천명의 전임 선교사들을 가지고 있고, 여호와의 증인은 약 27만명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회의 선교사들은 다 합해도 단지 18만명 정도에 불과하다(워치만 미니-익스퍼지터 1997년 11월호). (캘버리 컨텐더, 1998년 1월 1일자.) 오늘 우리 교회에는 기독교의 바른 진리를 위해 자신을 바칠 젊은이들이 없는가? *

공산주의의 살인 통계

캘버리 컨텐더의 보도에 의하면, 공산주의는 1917년 이후 지구의 4대륙에서 8천 5백만 내지 1억만명의 생명들을 빼앗았다(휴스턴 타임즈 1997년 12월 3일자). 미국의 무역 최혜국인 중공은 7천 2백만명의 많은 희생자들을 낸 나라로서 그 목록의 제1위이다. 옛 소련에서는, 약 2천만명이 숙청, 굶주림, 집단 추방, 그리고 강제 노역장들로 죽어갔다. 캄보디아에서는, 독재자 폴 포트가 집단 추방, 굶주림, 강제 노역을 사용하여 자기 동족 130만명 내지 230만명을 죽게 하였다. (캘버리 컨텐더, 1998년 1월 1일자.) 공산주의는 악마적 사상과 이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