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교회동향 - 2003

 

 

 

 


 

 

버트 펑크와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

미국 최대의 연합교단 기구 탄생

축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모델인가?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인가

근본주의의 지도력

전투성 안에서 비열함을 피하라

화란이 지구촌이 지향하고 있는 곳인가?

외설물이 현대 사회의 주된 위협이다

수녀들에 대한 신부들의 성적 학대

흡연으로 인한 사망

굶주리는 군사 대국인 북한

테러 국가들에 의한 세균 전쟁

북한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자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빌 매카트니의 천주교회관

달라스 신학교 교수의 잘못된 사상

신복음주의가 치명적인 이유들

R.T. 켄달이 '토론토의 복된 체험'을 받아들임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로버트 펑크와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설립자인 로버트 펑크(Robert Funk)는 미국 워싱턴 D.C. 교외의 한 연합 그리스도 교회(UCC)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성경에서 예수의] 말들 중에 확실한 것은 20퍼센트도 안된다,"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의 신성(神性)과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은 믿을 만하지 못하고 비유들과 재치 있는 말들은 역사적이다," "니케야 신조는 넌센스이며 수정할 가치가 없다," "고대 교회의 신조들은 상상의 산물들이다." (Wanderer, Dec. 30, 1999; Christian News, Jan. 3, 2000, p. 12)

펑크는 그 모임에서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인 21개의 명제를 배부하였다.
(1) 물질 세계 바깥에는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
(2) 다윈의 사상은 창조의 교리를 영원히 말살시켰다.
(3) 창세기 이야기의 비(非)문자적 해석은 원죄(原罪)의 교리를 끝장나게 하였다.
(4) 신적인 기적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완전에 대한 모욕이다.
(5) 저 밖에 있는 신에게 말해지는 기도는 무의미하다. 기도는 명상이다.
(6) 예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7) 예수를 구속자(救贖者)라고 하는 것은 낡아빠진 생각이다.
(8) 예수의 처녀 탄생은 현대적 지성에 대한 모독이며 여성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9) 속죄의 교리는 반(半)이성적(subrational)이고 반(半)윤리적(subethical)이다.
(10)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11) 모든 계시적 요소들은 기독교 주제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12) 예수 자신은 기독교 신앙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예수의 비젼이 그를 대치해야 한다.
(13) 예수는 인간의 선함을 믿었다.
(14) 예수는 축제(celebration)를 믿었다.
(15) 예수는 성적인 방향에 근거한 경계선들을 포함한 사회적 경계선들을 거부하였다.
(16)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중보자들은 없다.
(17) 예수는 예배 의식들을 믿지 않았다.
(18) 하나님의 나라는 끝 없는, 영구적 방랑의 여행이다.
(19) 다른 신화들이 그렇듯, 성경의 정경(正經, canon)은 시대에 맞추어 축소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20) 성경은 객관적 행동 기준을 담고 있지 않다.
(21) 예수의 비젼의 재구성은 항상 수정되어야 한다. (위의 글.)

우리는 예수 세미나 같은 활동들을 통해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이 얼마나 이단적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보게 된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로버트 펑크의 발언들과 그가 배부했던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을 읽어보라. 그리고 이런 불신앙적이고 이단적인 생각들을 단호히 버리고 옛 신앙을 굳게 붙들라. 디모데후서 1: 13, 14,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히브리서 6:1, 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

미국 최대의 연합교단 기구 탄생

2002년 1월 18일,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연합 감리교회(UMC), 미국 성공회,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등 미국의 9개 교단들은 '연합하는 그리스도의 교회'(CUIC)라는 연합 교단 혹은 에큐메니칼 기구를 형성한다. 그 교회는아직 교단들의 조직과 교권의 통합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2007년까지 소속 교단들의 목회자들의 강단 교류를 포함하여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 계속 대화하기로 결의하였다고 한다. (크리스챤신문, 2002년 1월 14일, 1, 2쪽.)

그러나 위의 교단 혹은 단체는,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들을 가르치거나 포용하는 배교적 교회들의 연합체이다. 이런 류의 연합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과는 상관이 없는 인간적인 바벨탑에 불과하다. 성경은 분명히 이단을 배격하라고 명령한다.

축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모델인가?

2001년 8월 10-11일,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스에서의 루이스 팔라우(Luis Palau)의 축제는 10만명의 사람을 모았다. 이것은 많은 교단들에 속한 375개 교회들의 목사들과 교인들이 1년 동안 기도하고 협력한 결과이었다(Religion Today, Aug. 24, 2001). 게임들과 음악과 오락이 그 기간을 가득채웠고 팔라우는 매일 밤 말했다. 그는 말하기를, "축제는 [젊은이의] 마음에 접근하는 첩경인 것 같다. 그것은 대중에게 접근하는 이 세대의 모델이다." 위에 언급한 '교단들'은 전형적으로 에큐메니칼적이고 심지어 천주교회를 포함하였다. (Calvary Contender, Sep. 15, 2001.)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예장 고신 총회의 교단신문인 기독교보 2002년 1월 12일자 사설에서 "연합운동에서 고신의 위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이는 작년 12월 28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대표회장 선거에서 고신의 후보가 패배한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고신이 연합운동에서 해야 할 일과 한계를 분명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 . . 고신은 신학적으로 다른 보수교회처럼 교회의 연합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것은, 신학적으로 우리의 교회관은 교부들의 신학적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다. 교부들의 신앙고백은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사도적 공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 속에 교회관의 핵심이 담겨있다. 교단은 많으나 영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이다. 우리는 '분열주의자'도 '분열주의적'도 아니라는 것을 말로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고신 목사 중에 연합에 인색한 자들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개선해야 한다. . . . 우리는 연합운동에 내놓을 만한 리더십[지도력]도 돈도 없다는데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3쪽).

나는 위의 글을 읽고 연합에 대한 고신 교단신문의 정신이 잘못되었음을 느끼며 심히 통탄한 마음을 가진다. 우리 나라의 진실한 많은 목사들은 총신이 넓은 길로 갈지라도 고신만은 성경 교훈에 바로 선 좁은 길을 걷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종종 고신의 목사들이 잘못된 연합 운동에 관련된 것을 볼 때에 실망적이었으며 이제 이런 교단신문의 사설을 읽게 되니 더욱 실망이 크다.

고신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연합적 인식 혹은 연합 정신의 부족이 아니고 잘못된 연합 정신을 버리고 바른 연합 정신을 가지는 것이다. 사설을 쓴 이는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 되는 것이 바른 교회관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교회관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천주교회의 배교적 사상보다 더 배교적이다. 자유주의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성경의 신적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대속(代贖), 육체적 부활, 승천, 재림, 마지막 심판과 지옥, 죽은 자들의 부활 등을 믿지 않는 명백한 이단이다. 천주교회로부터의 분리가 단순히 '분열주의'가 아니듯이,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배교적 교단들로부터의 분리는 이 시대적 요청이다. 바른 연합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한 연합이다.

예장 통합측은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교단이다. 그 교단은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그런데 고신은 어찌하여 그런 교단과의 교제를 문제 있는 교제로 보지 않고 오히려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것인가? 고신은 어찌하여 '분열주의'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자유주의 교단들과의 교제의 단절을 오히려 악으로 간주하는 것인가? 고신의 초기 선교사들은 소위 메이천파 선교사들이라고 불리웠다. 메이천은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분리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확신하였었다.

오늘날 고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잘못된 교제를 청산하고 한국 교계 안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한 교단들 간의 교제를 주도하는 것이다. 한기총은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아니다. 그것이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되려면 예장 통합측을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도자들은 그것을 배제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며 오히려 오래 전부터 기장과 기감 같은 자유주의 교단들까지 받아들이려는 생각을 보여왔다. 이런 한기총이 어찌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되겠는가? 고신은 한기총을 갱신하든지 참신한 보수교단들의 협의체를 만드는 일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파운데이션(Foundation)지 7-8월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창조 연구소의 설립자인 헨리 모리스(Henry Morris)와 베레아의 외침(Berean Call)지의 편집자인 데이브 헌트(Dave Hunt)가 최근에 '만세(萬世)의 지혜' 사경회에 갈보리 채플 설립자 척 스미스(Chuck Smith)와 연합하였다는 것을 보도하는 것은 실망을 주는 일이다." 여러 해 동안 모리스와 헌트의 유익한 경고의 사역들을 언급하면서, 그 글은 "이 슬픈 타협은 갈보리 채플 운동의 은사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노력들에 신임을 빌려준다"고 말했다. 파운데이션지는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방언과 다른 계시적 은사들을 포용하고 은사주의와 신복음주의 진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척 스미스와 함께 사역적 노력에 연합했을 때 타협이 일어났다고 했다. 헌트와 모리스는 성경적 분리 외의 다른 거의 모든 영역들에서는 탁월한 분별력을 보인다. (Calvary Contender, Sep. 15, 2001.)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인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기독신문에 의하면, 총회의 중점사업의 하나로 총회 산하에 총회사회복지위원회가 창립되었고 그 초대회장에 사랑의 교회의 옥한흠 목사가 추대되었다고 한다. 그 신문에 의하면, 총회 사회복지사업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교단산하 목회자 장로 사회복지전문가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창립예배에서 참석자들은 "새로운 목회의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에 사회복지는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고 한다(기독신문, 2001년 12월 12일, 1쪽).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 그것도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가? 만일 그러하다면, 전통적 교회들은 가장 기본적인 임무를 망각하고 소홀히 한 심히 불성실한 교회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복지사업은 교회의 임무가 아니며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더더욱 아니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 보수 교단의 활동과 지도적 인물들의 생각과 교단 신문의 논조가 사회복지사업을 교회의 가장 기본적 임무로 보고 있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니다. 그러한 생각이 옳다면, 교회들은 이제까지 매우 잘못되었고 지금도 다수의 교회들은 매우 잘못된 상태에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사회복지사업이란, 예를 들면, 유기된 아이들, 독거 노인들, 소년소녀 가장들을 돌아보는 사업, 고아원 사업, 양노원 사업, 어린이집이나 탁아소 사업, 가정폭력 문제, 노숙자 문제, 정신박약아들, 지체장애인들 등을 위한 사업 등 사회의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사업을 일컬을 것이다. 이런 사업들은 다 선하고 좋은 일들이며 오늘 사회에서 매우 필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이런 일들에 관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며, 또 관여해야 한다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교회의 임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교회관에 있어서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3대 임무를 말해왔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임무요, 둘째는 자체를 향한 영적 성장 혹은 양육의 임무요, 셋째는 세상을 향한 전도의 임무이다. 가난한 자들의 구제나 병자들의 방문은 교회 안에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로서 초대교회로부터 이루어져왔지만(행 2:44, 45; 4:34; 11:29; 고후 8:4; 9:1; 갈 2:10), 교회 밖에서는 결코 일차적이거나 독립적인 일로 행해지지 않았다. 교회는 교회 밖에서 즉 세상에서는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에 전심전력하였고 그 과정에서 필요를 따라 구제하고 병자들을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면모이기도 하였다. 주께서는 결코 전도와 별개의 사회복지사업을 행하신 일이 없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오신 목적이 사회복지사업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그는 오직 전도하기 위해 혹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다고 자신의 임무를 분명히 말씀하셨다(막 1:38; 눅 5:32). 그가 병자를 고치신 것도 대부분 그를 믿는 자들을 고치신 것이었고 그가 떡 기적을 행하신 것도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여러 날 그를 따랐던 무리를 위한 부득이한 행위이었다(마 14:15-21; 15:32-38).

사도행전에 밝히 나타나 있는 대로,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명령과 모범을 따라 오직 영혼 구원의 전도에 전심전력하였다. 그들이 성도를 구제한 것은 믿는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의 실천 행위이었다. 그들은 전도 이외에 혹은 전도와 별개로 사회복지사업을 생각하지 않았다. 개혁교회들을 포함한 전통적 교회들은 이런 성경적 생각을 따라 행해왔다. 그들은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일에 전력하여 왔다.

그러나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회 단체들, 예컨대 YMCA나 YWCA 같은 것들은 달랐다. 그것들은 사회복지사업에 힘썼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영혼 구원의 복음 전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사함과 칭의,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자유주의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 교회의 임무에 대한 바른 생각을 버리고 변질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사회복지사업이 교회가 그 동안 매우 큰 실수로 소홀히 하였던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고 심지어 사회복지사업을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역사적이지도 않다. 전도의 한 방편으로서의 구제나 봉사가 아닌 구제나 봉사는, 비록 그 자체가 선한 일일지라도, 주께서 교회에 명하신 임무가 아니다. 물론 교회는 그런 일을 기회가 있을 때에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또 신자 개인은 얼마든지 힘 있는 대로 그런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의 모임인 단체로서의 교회는 주께로부터 받은 임무와 사명이 있다. 그것은 앞에 말한 대로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임무이다. 특히 주께서는 교회에게 전도의 대 임무를 부여하셨다(마 28:19; 행 1:8). 그러므로 전도는 세상 속에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 교회가 가지는 특수한 임무, 곧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mission)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을 바로 알고 교회의 임무와 사명을 바로 깨달아 바른 목회, 바른 교회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사업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목회 패러다임'이 아니고, 목회가 무엇인지, 교회 활동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잘못된 목회 패러다임이다. 주의 종들과 교회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고 바른 일들을 해야 한다.

근본주의의 지도력

미국 디트로이트 침례교 신학교의 롤랜드 맥퀸(Rolland McCune) 박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최근 십년 혹은 이십년 사이에 근본주의의 어떤 인정된 지도자들의 은퇴나 죽음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그들의 위치를 대신할 지도력의 쇠퇴가 왔다. 더 최근의 세대의 근본주의자들은 이 면에서 일종의 공백을 경험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후의 근본주의 지도력의 후예들은 덜 강력하고 덜 확정적이며, 덜 전투적이고, 논쟁에 매우 가깝게 접근하려는 마음이 덜하다. 어떤 이는 신복음주의의 환심을 사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근본주의 선배들 사이에 어떤 거리를 두기를 열망한다. 다른 이들은, 아직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고 선포하기는 하지만, 더 조용하게 또다른 한 방향으로 가버린다." (Calvary Contender, Jan. 1, 1991; Sep. 15, 2001.)

전투성 안에서 비열함을 피하라

펀더멘탈 다이제스트(Fundamental Digest)지 2001년 7-8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싸우는 근본주의자들은 전투적이면서 비열함이 없이 적절한 입장과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중대한 싸움들에서, 우리는 때때로 사랑하는 형제들과 친구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항상 우리의 용감한 입장 때문이고 우리의 잔인한 성향 때문이 아닐 수 있다. 또한 죤 브로크(John Brock) 박사는 프론틀라인(Frontline)지 7-8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대부분의 근본주의적 침례교 설교자들과 사람들은 불친절하거나 생각이 없거나 사랑이 없거나 율법주의자들이지 않다. 그것은, 근본주의 입장을 가지는 소수의 사람들이 감정의 절제가 없거나 불친절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성경적 교훈[분리의 원리]을 포기하게 만드는 마귀의 거짓말이다." (Calvary Contender, Sep. 15, 2001.)

화란이 지구촌이 지향하고 있는 곳인가?

9시 이후의 화란의 텔레비젼에는 완전히 벌거벗은 사람들이 보통이다. 주말에는 음란성 영화들이 텔레비젼에 방영된다. 마약류들이 소위 '커피 하우스들'에서 공공연히 소모된다. 동성 결혼이 화란에서는 합법적이다. 안락사(安樂死)가 최근에 합법화 되었다. 낙태는 크게 성행하고 있다(Focus on the Family, June 1, 2001). 이혼은 화란인의 60퍼센트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잡지는 벌거벗은 여인들의 사진을 겉표지에 싣고 있다. 근친 상간의 사고가 높은 것도 또한 충격적이다. 이 모든 도덕적 부패의 근본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쇠퇴가 있다(Calvary Contender, July 1, 2001.)

외설물이 현대 사회의 주된 위협이다

"외설물의 중독은 수백만의 정신적 건강을 훼손시키고 있다. 그것은 에이즈(AIDS)와 기타 질병들의 확산의 명백한 원인이다(National Liberty Journal, Sep. 2001). 외설물은 악이다. 그것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이용하고 착취한다. 어린이 치한들과 성폭행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외설물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저항력을 약화시킨다. 우리 나라[미국]는 노골적인 외설물의 밀물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Light). 약 2천 5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일주일에 1시간부터 10시간까지 인터넷 섹스 싸이트들을 방문한다. 모든 인터넷 웹 싸이트의 방문들의 약 60퍼센트는 성격상 성적(性的)이다." (Calvary Contender, Sep. 15, 2001.) 이러한 진단과 통계는 한국에도 해당될 것이다. 성도들은 외설물들을 끊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인터넷 직통선을 끊어야 한다. 실상, 상당한 필요성이 없는 인터넷 직통선의 개설은 돈 낭비와 시간 낭비이며 그보다 더욱 음란 마귀의 밥이 될 극히 위험한 장난이 될 수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인터넷의 위험에 대해 엄히 교훈하고 그들의 인터넷 사용을 통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사탄이 인터넷을 통해 주는 음란의 독주에 취해 망하고 말 것이다.

수녀들에 대한 신부들의 성적 학대

바티칸 당국은 어떤 신부들, 주로 아프리카의 신부들이 매춘부들로부터의 에이즈 감염을 두려워하여 정규적으로 수녀들을 강압하여 성관계를 가졌다는 주장들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확인하였다(Christian News, March 26, 2001). 어떤 경우들에서는, 신부들이 수녀들을 임신케 하고 난 다음 강제로 낙태케 하였다고 한다. 한 수녀는 주장하기를, 한 수녀원장은 지역 주교에게 그의 수녀들 중 29명이 임신하였다고 항의하였을 때, 그 주교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그를 교체시켰다고 했다. "결혼을 금하는"(딤전 4:3) 로마 천주교회의 비성경적 가르침이 그런 성적 학대를 가져온다. (Calvary Contender, April 15, 2001.)

흡연으로 인한 사망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전 세계에서 400여만명이 흡연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다고 보고하였다. 그것은 8초에 한 명씩 죽는 것이 된다. (조선일보, 1999년 10월 27일, 9쪽.)

굶주리는 군사 대국인 북한 

북한은 세계에서 다섯째로 큰 군대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기술을 이란이나 시리아나 기타 가상적 불량 국가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전쟁 무기의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World, May 26, 2001). 기근이 주민들의 다수를 황폐케 하였다. 1995년 이후, 적어도 2백만명의 북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었다고 한다. 국제 연합은 식량 재정의 30퍼센트 이상을 북한에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큰 식량 제공자이며 북한에 매년 50만톤의 곡식을 보내고 있다. 메노나이트파 등 여러 교회 단체들이 수많은 원조를 보내지만, 그 중 많은 부분은 군인들을 먹이고 러시아로부터 새 무기를 구입하는 것 등에 사용되며 주민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 (Calvary Contender, June 15, 2001.)

테러 국가들에 의한 세균 전쟁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유고슬라비아, 및 큐바는 천연두 바이러스 표본의 은밀한 비축을 가지기를 원하든지 혹은 이미 가지고 있는 국가들 가운데 있다. 이러한 알려진 테러 후원자들은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을 구축하기를 원한다(World, June 2, 2001). 10미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천연두 바이러스의 잠재력은 그것을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살인자로 만든다. 세균전 자살 테러범은 그 질병을 비행기에나 스포츠 경기장에 가져가서 하루 안에 수천명을 감염시킬 수 있을 것이다. (Calvary Contender, July 1, 2001.)

북한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자

황장엽씨는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는 제목의 그의 책(월간 조선사, 2001)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eMailClub, NK리포트, 2001년 9월 28일). 이북의 주체 사상을 정립한 사람이 이런 사상과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지만, 특히 오늘날 정치적 이념 문제로 혼란한 우리 사회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남북통일에 대해] "우리 민족의 운명에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두 체제간의 모순을 제거하는 문제, 즉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북한이 내세우는 '민족'에 대해] "김정일의 조선민족 제일주의는 곧 조선수령 제일주의다. 그는 조선민족을 '김일성민족'이라고 하며 자기가 곧‘조국’이라고까지 노래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민족을 자기의 소유물같이 생각하는 자가 어떻게 민족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김정일이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북한인민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수백만 명의 인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도 자기 아버지의 시신궁전을 꾸미는 데 막대한 자금과 자재를 낭비하는 사람이 과연 북한인민을 동정하고 사랑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북한 '자주' 주장의 허구에 대해] "북한은 6.25전쟁을 통하여 민족통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미국이 유엔의 모자를 쓰고 개입하였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고 하면서 계속 미국을 원망하고 있다. 그러면 6.25 전쟁을 통하여 북한이 승리하여 우리 민족이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 밑에 통일되었다면, 이것을 자주적인 통일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도와주려는 벗들을 배척하고 통일문제를 북한과 남한이 단독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은 남한과 북한의 자주적인 관계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대북 경제원조 방법에 대해] "정부차원에서도 북한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원조는 주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변화'를 보는 기준에 대해] "북한이 진짜 변하였는가 변하지 않았는가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정치 사상적 변화와 군사적 면에서의 변화를 기준으로 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수령에 대한 우상화 선전을 그만두고 이와 관련하여 왜곡하고 날조한 역사를 바로잡으며 수령의 지위를 세습제도나 종신제로 하지 말고 민주주의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임기제로 하여 선거하도록 변화했는가를 보아야 한다. 군대수를 대대적으로 줄이고 군 복무연한도 단축하며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중지하고 생화학무기 금지 조약에 참가하게 되었는가를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을 보는 시각에 대해] "미국을 한국의 자주성을 위협하는 외세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흑백을 전도한 완전한 기만이다. 실지로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의 자주성을 위협하여 온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북한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남북간의 화해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더는 필요없게 되었다는 국제적 여론이 환기되는 시기를 기다리는 한편, 한국 내의 반미 경향이 더욱 강화되어 한국 스스로 미국의 지원이 필요없다는 것을 선포하게 만들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연방제'의 핵심] "김일성은 연방제와 관련하여 핵심 간부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조하였다: '연방제에서는 국가 수반을 한 번은 북측에서 담당하고 다음 번에는 남측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교대할 수 있다. 우리(북한) 헌법에는 국가 수반이 인민군대 총사령관으로서 일체 국가 무력을 장악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연방국가 수반이 남측에서 나올 때에는 우리 무력의 통수권도 남측 출신의 연방국가 수반에게 넘어가게 된다. 연방제를 실시하여도 무력에 대한 통수권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에는 우리가 무력을 쓸 수 있다. 이번에 국방위원장이 총사령관을 겸하도록 헌법을 고친 것은 그 때문이다. 국방위원장은 노동당 총비서이기 때문에 국가 수반과는 관계가 없다.'"

[북한내 저항운동의 어려움에 대해] "그들은 남한에서 이인모가 40년간 장기수로서 전향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고 크게 내세우는 동시에 남한이 그를 40년 동안 가두어 두었다고 하여 남한에 민주주의가 없는 것처럼 비방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북한에서 반체제 인사가 자기의 반체제적 입장을 밝힌다면 40년이 아니라 40분 이내에 체포되어 총살당하고 만다."

['냉전은 끝났다'는 견해에 대해] "현실을 외면하고 외국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탈냉전시대니 뭐니 하는 따위의 술어를 써가면서 탁상공론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 진짜 옳은가, 그른가를 신중히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냉전이 끝났지만 북한은 확실히 냉전시대의 유물이며 우리나라에서 냉전상태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남과 북 사이에 판이한 두 체제의 대립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무시하고 체제간의 경쟁이 끝난 것처럼 주장하며 투쟁을 부정하고 화해 일면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냉전을 극복한 사람들처럼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속에서도 냉전을 볼 줄 모르는 철없고 분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민주화의 과제에 대해] "북한의 독재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방법은 북한 인민들을 인권사상으로 각성시켜 북한 통치자들에게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는 쉬운 지름길이란 없다. 원칙적인 길이 가장 지름길이다. 북한 인민들을 수령우상화 사상에서 해방하고 민주주의적 인권사상으로 각성하게 하는 것보다 더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

황장엽,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 (월간 조선사, 2001). eMailClub, NK리포트, 2001년 9월 28일. 북한교회의 실상에 대한 한 보고

조선일보 2002년 1월 30일자(55쪽)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북한교회의 실상에 대한 한 보고를 실었다: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1988)와 칠골교회(1992)는 목사, 부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성가대, 부인전도회 등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순수 종교인으로 믿는 북한주민은 거의 없다. 종교조직이나 교회는 대외행사기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평양에 교회와 성당이 처음 생겼을 때도 놀라는 주민이 거의 없었다. 남한을 비롯한 바깥에서 오히려 의아해했을 뿐이다. 교회를 찾았던 외국인들도 "수령님 배려로 오늘 예배를 드리게 됐다"는 북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방문했던 남한의 성직자와 신도들에 따르면 가끔씩 등장하는 '수령님 은혜' 운운하는 설교만 빼면 예배과정은 남한 교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건물에 인민과 함께 하는 수령의 사진이 걸리는 것은 북한주민에겐 당연한 상식이지만 외국인이나 남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장충성당에는 신부가 없는 게 특징이다.

평양에 봉수교회나 칠골교회, 장충성당은 '행사'가 없으면 조용하다. 이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교회 안팎을 기웃거려도 별로 통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이나 남한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행사 때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생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와 호기심으로 기웃거리던 주민들이 보위부에 끌려가기도 한다.

목사나 전도사 등은 그리스도연맹 소속이고 월급도 그곳서 받는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연맹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소속 대남부서 가운데 하나인 통일전선부 제6과에서 관할하고 있다. 조선카톨릭교협회나 나머지 종교단체도 마찬가지다.

탈북자 김희성(가명 45)씨는 절친한 후배가 인민군에서 제대하여 그리스도교연맹에 배치된 것을 축하해준 적이 있다고 한다. 주위사람들은 그의 '출세'를 부러워했고 집안식구들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연맹이라는 곳이 대남관련기구이기 때문에 잘하면 해외에 나갈 수 있고 달러도 만질 수 있는 '요직'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맹에 들어가기 전에 당원증을 조직에 맡기고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당에 충성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평소 성경책은 비밀도서로 분류돼 열람이 금지된다. 성경과 찬송가책은 교회 내에 비치되고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성경은 중국 연길에서 인쇄한 것이 많다고 한다.

종교인들의 동원행사가 잦아지면서 98년에 '신도'들을 길러내기 위한 단기 강습코스(1~3개월)도 생겼다. 주로 그리스도교연맹 건물에서 교육이 실시되는데 대학의 철학과 교수들이 담당한다. 종교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종교의 허구성이나 해악에 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며 더욱 철저한 반종교적 의식을 갖도록 요구한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방문하게 되는 가정예배소는 교육받은 신도들이 그리스도교연맹의 지시에 따라 행사 때만 모이는 곳이다. 평소 가정예배소는 존재할 수 없다.

'신도'가 되려면 노동당 당원이어야 한다. 통일전선부 소속 기독교단체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가족이 우선 선발되며 보위부나 인민보안성(경찰)에서 제대한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 성가대원들은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사상성이 투철해야 하며, 학생성가대는 중창조로 유명한 봉수고등중학교 음악소조가 전문 출연한다. 공식행사에 나오는 '신도'들은 워낙 사상이 투철한 사람들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진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산속의 절도 다를 게 없다. 진짜 스님은 존재하지 않고 사찰과 문화재 관리자가 스님 행세를 하고 있을 뿐이다. 주민들은 이들을 '출퇴근 중'이라고 부른다.

보위부에 근무했던 한 탈북자는 "보위부에서는 상당수의 진짜 신자들이 비밀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있지만 색출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기독교보 2002년 1월 19일자(11쪽)에 의하면,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의 월례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EFA 회장)는 "복음주의 운동의 활성화"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신정통주의가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한 최근의 표현이라면, 신복음주의는 정통주의에 대한 최신의 옷이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기피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겠다는 의도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다르다. 개인적 복음과 사회적 복음 사이에 이원론의 필요가 없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초자연적 개인의 구원 경험과 사회적 철학이다. 교리와 사회 윤리는 둘 다 기독교 학문이다. 근본주의가 리더십과 사회라는 영역에서의 책임을 포기하고 사회를 변혁하거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무능해졌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믿는 모든 전통적 교리를 신봉하거나[신봉하나?] 사회적 철학을 포함시켰다"고 주장했다.

만일 그 신문에 보도된 것이 김 목사의 발표 내용이라면, 그는 신복음주의를 정통 기독교 교리의 신봉과 적극적 사회적 철학을 가진 최신의 정통주의로 정의한 셈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그의 사상이라면, 그는 신복음주의나 근본주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또 사회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책임과 교회의 단체적 책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신복음주의는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될 그런 입장이 아니다. 신복음주의의 보다 본질적 내용은 자유주의를 포용하거나 자유주의화된 교단들로부터의 분리를 거절하고 그 안에 머물고 자유주의자들과 교제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성경에 교훈된 이단과의 분리의 명령을 어기는 타협적 죄악이다.

또한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에 관하여, 전통적 개혁교회나 근본주의가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확신했던 바는 교회가 공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표준적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1:4에는 "[교회의] 대회들과 협의회들은 교회적 문제 외에는 아무 것도 다루거나 결정해서는 안되며; 비상한 경우들에 겸비한 청원의 방식으로나; 국가의 위정자들로부터 요구된 경우에 양심의 만족을 위해 충고의 방식으로 외에는, 국가와 관계되는 세속적 사건들에 간섭할 것이 아니다"라고 진술되어 있다.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지교회적으로나 교단적으로나 간에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교회가 직접 학교나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운영하지 않았다. 물론 교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주신 은사를 따라 정치가나 교육가나 자선사업가 등이 있을 수 있고 또 교회가 정신적으로 그들을 측면에서 후원할 수 있을 것이지만, 교회가 직접 그런 일을 경영하거나 관여하는 것은 교회의 본연의 임무와 사명을 저버린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고(막 1:38) 또 그가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특별한 임무이었다(마 28:19; 막 16:15; 행 1:8).

물론 교회는 교회에 속한 교인들 가운데 가난한 자나 병든 자를 돌아보았고 그것은 사랑의 당연한 표현이었다(행 2:45; 갈 2:10). 또 교회 밖의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선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교회의 제한된 시간과 힘과 물질을 가지고 교회는 힘써야 할 사명을 주께로부터 받았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이다. 주께서는 그의 전능을 가지시고도 병고치는 일을 주로 하신 것이 아니었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일을 주로 하셨다(마 9:13).

근본주의가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은 바른 말이 아니다. 근본주의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이단 신학을 포용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오히려 현재 세계적인 근본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북아일랜드의 이안 페이슬리는 목사로서 유럽 의회의 국회의원이며 북아일랜드 내에서 카톨릭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개신교 지도자로서 그 누구보다도 전도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이다. 우리는 그의 활동을 북아일랜드의 특수 상황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여하튼 그것은 근본주의자가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잘못된 비난에 대한 충분한 반박의 예가 될 것이다. 단지 근본주의나 전통적 개혁교회가 확신하는 바는 하나의 단체로서의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뿐이다.

한국의 소위 교회지도자들은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활동해야 할 것이며 그것들이 관심을 두는 문제들을 바르게 직시하고 성경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신복음주의의 타협적 죄악을 어떤 말이나 글로든지 가리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이단 사상들이 없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신학들을 포용하거나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적 교단들과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신실 혹은 배신이다. 적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진다. 교제의 작은 오류는 마침내 온 기독교계를 부패시키고 말 것이다. 유다왕 여호사밧 자신은 경건하였을지라도 이스라엘왕 아합과의 그의 잘못된 교제는 마침내 유다 왕국을 우상숭배의 나라로 부패시키고 말았다는 성경 역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빌 매카트니의 천주교회관

프로미스 키퍼즈(Promise Keepers) 창설자인 빌 매카트니(Bill McCartney)는 나이트 리더 뉴스 서비스(Knight Ridder News Service)의 리챠드 쉐이닌(Richard Scheini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신은 천주교회를 합법적인 기독교회라고 간주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물론이죠'라고 답변하였다(Daily Oklahoman, September 15, 2001). 데이빗 클라우드(David Cloud)는 논평하기를 "매카트니가 로마 천주교회가 거짓된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다(Calvary Contender, October 1, 2001).

달라스 신학교 교수의 잘못된 사상

지난 달,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의 회장인 달라스 신학교 교수 대럴 보크(Darrell Bock)는 "복음주의 운동을 위해 날카로운 경계선들이 그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 대신, 보크는 "복음주의는 경계선들에 의해서보다 중심에 의해서 더 정의되는 '푸른 마을'에 비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열린 유신론'(open theism)의 교리를 거부해야 할지에 대한 토론 동안에 행한 한 연설에서 복음주의 신학회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열린 유신론'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다 아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단 사상이다. 비록 복음주의 신학회가 열린 유신론을 정죄하는 구속력 없는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보크는 그것을 반대하여 주장했다. . . . 어떤 근본주의 신학교들은 선생들이 달라스 신학교로부터 대학원 과정의 학위들을 취득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 . . 그들은 달라스 신학교의 타협에 관해 경고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David W. Cloud; Calvary Contender, January 1, 2002.)

신복음주의가 치명적인 이유들

촬스 우드부릿지, "신복음주의는 가장 치명적인 신학적, 도덕적 타협이다. 그 입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활한 공격이다.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보다 더 간교한 위협을 직면한 적은 없다. . . . 그 입장은 몇 가지 이유에서 치명적이다. 첫째로, 그것은 신학적 부패의 한 형태로서 복음주의 진영들 밖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 또 그 진영들 밖으로부터가 아닌 안으로부터의 공격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것은 어떤 경우들에서 수년 동안 성경을 믿는 복음주의자로 알려진 자들에 의해 옹호되기 때문이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참으로 한때 신앙의 변호자들이었다. 그들은 무리들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에 저들은 그들의 견해들이 바뀌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따라 그들의 타협들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그것은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명확히 반박할 수 있는 분명하게 정의된 다른 신학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의 음흉한 성격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넷째로, 그것은 교리를 희생시키면서 사랑을 강조하고 복음의 사회적 측면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거짓된 가르침을 반대하는 정통 신자들은 사랑이 없거나 반(反)사회적이라고 간주될 위험이 있다. . . . 다섯째로, 그것은 자유주의 진영의 신학적 지식층의 비위를 맞추고 요구를 만족시키며, 자기의 견해들을 가지지 않는 자들은 전(前)근대적이라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정식적인 학구적 훈련을 조금밖에 받지 못한 목사들은 이것이 낙심시키는 일로 생각될 것이다. 여섯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의 잘못된 그러나 그럴듯한 견해들로 세뇌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교리적 윤리적 쇠퇴가 교회 생활의 여러 영역들에서 보여진다. 일곱째로, 신복음주의라는 낙타의 코는 이미 기독교 천막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낙타는 그 전체를 차지하려고 힘써 밀고 들어오고 있다." (Gospel Standard, October 2001; Calvary Contender, October 15, 2001.)

R. T. 켄달이 '토론토의 복된 체험'을 받아들임

영국 런던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채플[교회]의 목사이었던 캠벨 모건(G. Campbell Morgan, 1863-1945)은 오순절운동을 '사탄의 마지막 구토물'(the last vomit of Satan)이라고 불렀다(Calvary Contender, July 15, 1988). 모건 밑에서 5년간 사역했고 1943년부터 1968년까지 단독 목사가 되었던 마틴 로이드 죤스(Martyn Lloyd-Jones)는 성령의 세례를 회심 후의 체험이라고 말했다(Calvary Contender, July 15, 1992). 은사주의적 '예언자' 폴 케인(Paul Cain)은 1992년에 웨스트민스터 사역에 연합하였다. "복음주의와 은사주의 진영들에서 크게 존경을 받는" 켄달(R. T. Kendall)은 지난 25년간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담임목사이었다. 그는 토론토의 복된 체험이라는 운동이 발간하는 불을 번지게 하라는 잡지에서 "내가 토론토의 복된 체험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 . . 그러나 많은 일들이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 . . 우리는 사실 런던에서 이 현상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교회이었다"라고 썼다. 캠벨 모건이 이 비극적 유산을 본다면 슬퍼할 것이다. (Calvary Contender, October 15, 2001.)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카리스마지 2001년 10월호는 빌 브라잇[CCC의 창설자]이 신유 전도자 베니 힌(Benny Hinn)을 '사랑하는 친구'로 간주하는 중재자라고 말한다. 그 잡지는, 그러나 은사들에 대한 논쟁이 브라잇의 사역과 가정에 심각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 운동이 대학들에 영향을 주었던 1970년대에, 대학생 선교회(CCC)는 간사들이 방언을 말하거나 그런 행위를 옹호하는 것을 금하는 방침을 도입하였다. 브라잇의 아들 잭이 성령의 세례를 체험하였을 때, 견해의 충돌 때문에 아들은 그 사역과 가정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오래 되지 않아서 화해하였고 대학생 선교회는 '그 강경' 입장을 폐지하였으나 아직도 공적 집회시에 방언하는 것을 금한다. 브라잇은 "나는 은사주의자나 천주교인이나, 헬라 정교인이나 주류파 교인이나 간에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누구든지 함께 일한다"라고 말한다. (Calvary Contender, October 15, 2001.)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천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유대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과 기타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수년 동안 말해왔다. 2001년 9월, 교황은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이 연합하기를 요청하며 말하기를, "나는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이 한 분 전능하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를 요청한다. 우리 모두는 그의 자녀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천주교회가 '진정한 이슬람교인'에 대하여 오직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 신앙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Christian News, October 1, 2001). 그는 2000년 12월에는 심지어 말하기를, 불신자들이 의로운 삶을 산다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Calvary Contender, January 1, 2001). (Calvary Contender, October 15, 2001.)